(1) 막스 게르손 박사
독일의 루드비히대학교 의과대학을 1909년에 졸업하고, 독일에서
의사생활을 하다가 1933년에는 미국 뉴욕에서 개업면허를 얻었으며,
1941년경에는 뉴욕에서 의사개업을 한 박사는 50여년 전에 벌써 채소즙과
생채소로 불치의 결핵환자와 암환자를 치료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1929년부터 두통과 결핵 및 암에 관한 식이요법 논문을 의학잡지에
42회나 발표하였고, (암치료 50인의 사례)를 비롯한 결핵과 암에 관한
저술을 4권이나 발간했다.
극히 온유겸손하고 물욕이 없이 청빈했던 그가 영감에 의해 개발한
찬란한 의학상의 업적은 현대 정통의학으로부터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말할 수 없는 멸시와 천대를 받았었다.
게르손 박사는 무염식으로 당근, 꽃양배추, 미나리, 야채를 잘게 으깬
것을 먹이고, 즙을 매일 12컵이나 마시게 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당시
불치병인 피부결핵(낭창)환자를 400여명이나 치료하고, 많은 암환자를
치료한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도 1959년에 77세로 후계자도 없이
사망하였다. 다만 1951년 독일 베르히데스 가덴에서 열린 독일 의학자
회의에 게르손 박사가 초청을 받고, 연설한 인연으로 거기에 참석했던
이셀 박사가 게르손 박사의 식이요법을 들은 대로 환자를 치료해서 말기
암 환자의 95%가 치료되는 뜻밖의 좋은 결과를 보았다.
그런데 그중 치료가 되지 않아 사망한 가족으로부터 1960. 9. 15에
사기와 살인자로 몰려 의사가 체포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 후 고소는 취하되었지만 진리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게 한다.
생식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인류를 포함한 우주 자연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가.
아프리카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다음과 같은 글로 게르손
박사를 격찬했다. 도둑이 도둑을 알아보듯, 슈바이처 같은 위인이 아니면
그를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 나는 의학역사를 통해서 가장 뛰어난 의학적 천재의 한 사람을 보았다.
... 게르손 박사의 암치료가 크게 이바지하였음에 따르는 난관을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로 말하면 의학사상 길이 빛날 업적을 남긴
의학적 천재이다."
이 두 분이 서로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50세 때 결핵을 앓고 있던
슈바이처 박사의 부인을 식이요법으로 완치시켜 준 일이 있었다.
막스 게르손 박사가 자연식의 식이요법을 발견하게 된 것은 우연한
체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박사 자신이 물려받은 편두통 때문에, 통증과 메슥거림과 어지러움증으로
고생했다. 당시에도 치료약이 없던 때라, 혼자 연구에 몰두한 끝에
자연식으로 자신의 편두통을 깨끗이 치료한 체험을 살려 편두통환자를
치료했다.
그런데 여러 환자 중에 편두통으로 실직의 위험에 빠진 환자를
치료했는데, 그 환자가 앓고 있던 피부결핵도 함께 치료가 되었다. 박사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환자가 알려주어 결핵도 치료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위의 글을 인용한 책에서 대화의 한 토막을 옮긴다.
"편두통은 어떻습니까."
박사가 찾아온 환자에게 물었다.
"없어졌습니다. 다 없어졌습니다." 하고 그 사람은 즐겁게 외쳤다.
"그후부터는 하루도 직장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말했다.
"의사선생님 제 얼굴에서 뭐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십니까?"
게르손 박사는 더욱 가까이 다가앉았다.
"같은 사람인데, 무엇?"
"제 낭창, 그 무섭고도 추악한 낭창이 사라졌어요. 기적과도 같이."
환자와 의사가 한층 의기양양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의학논문조차 의학잡지(뉴욕주)에서 게재를 거부했다.
식이요법은 현대의학의 목적과 상반된다는 이유이다. 그리고 뉴욕주
의사회는 식이요법의 방법을 검토하기 위해 위원을 다섯 번이나 보내어
조사를 했지만,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었다. 또한 의사회의 회원권과
특권도 2년간 정지당했다. 어떤 의사들은 게르손 박사가 미쳤으면,
정신분열증이라고 했고, 심지어 사기라고 주장했다.
어떤 의사는 "그의 치료 사실을 믿는다. 그러나 현 시점에 있어서 그는
우리들의 가시이다"라는 놀랄 만한 대답을 했다.
그가 고인이 된 지 30년이 되지만 아직 정통의학계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것도 하늘의 섭리이다. 만일 인류가 그러한 자연식이요법을
받아들였다면 의학의 발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막스 게르손 사건으로 1946년에 미 상원 소위원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렸는데, 치료된 환자들이 출석하여 증언한 사실도 있었지만 결과는
유야무야되고 말았다(막스 게르손 박사 (암을 뿌리뽑는 길 S.T호트 기록,
정사영 박사 번역. 시조사. 1971 참조).
(2) 일본의 니씨 가쓰조오 선생
일본의 서의학 창시자로 유명한 가쓰조오 선생은 100년 전인 1884년에
태어난 분이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신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천재
소년이었지만 9살 경부터 원인도 모르는 설사로 고생하고 계속 감기를
앓았다. 부모님이 너무 귀엽게 키웠기 때문에 아침부터 쇠고기 중심의
식생활을 하였다.
중학교 입시에서 신체 쇠약으로 낙제하여 직업학교에 입학했다. 조금만
공부를 하고 나면 미열이 나고 설사를 하였다. 16살때 당시의 명의 시사키
박사로부터 결핵 때문에 20살까지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선생은 22살 때 광산회사에 들어갔지만 병약으로 여전히 고생을 하였다.
현대의학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음을 깨닫고 고금동서의 건강법을 연구하고
또 그것을 실천했다. 때로는 며칠이고 방 속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짐승의
생태법을 흉내내어 친구들로부터 미치광이 취급을 받은 일도 있었다.
생식법을 실험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생야채식을 하기도 했다. 1951년
32살 때 눈을 다쳐 큐우슈우대학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실명의 선고를
받았다. 7일간의 단식을 하고 이어서 생야채식으로 시력을 회복했다.
그후 1927년 44살 때 서식건강법을 공표하였다. 그리하여 당시에도
불치병인 암, 심장병, 혈압병 등 현대의학에서 손을 못쓰는 환자들을
치료했다.
일본에는 그의 서식의학을 계승하여 활약하고 있는 서의학연구소장
와다나베 쇼 박사, 자연식을 연구하는 모리시다 게이이찌 박사,
생채식으로 자신의 병원에서 많은 불치병을 고치고 있는 고오다 미쓰오
의사가 대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참고, 서승조 저(원본 서식건강독본)
한국자연건강회 1983).
(3) 고오다 미쓰오 의사
의과대학 재학시절부터 채소를 나무 절구통에 넣어 참나무 절구로 찧어서
생식한 분이다. 하루 1,300g이 넘는 채소를 4년 8개월이나 먹었고, 그것도
곡식은 전혀 안 먹고 채소만으로 하루 두 끼를 나누어 먹었다. 하루 2,500
칼로리가 필요한데 1,000칼로리도 안 되는 식사량이다. 학교에까지
절구통을 갖다놓고 점심식사를 준비했던 것이다.
4년 8개월 동안 채소의 효력을 터득하고자 묵묵히 실천한 그 신념과
무욕의 의지에 대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후 현미 가루를 추가해서
환자에게 생식을 시키고 있다.
선생의 병원에서는 암을 비롯한 수십 종의 불치병을 치료하고 있다. 팔,
다리의 근육이 오그라드는 진행성 근위축증, 피부가 굳어지는 강피증,
배에젯트병, 만성고혈압, 당뇨병 등의 불치병을 근치시키고 있다. 그밖의
현대의학에서 못 고친다고 선언을 한 많은 질병을 완치시키고 있다.
(4) 정사영 박사
80여세인데도 아직 건강하신 노박사는 평생을 의사로서 활약하셨다.
자신이 만성신부전증 환자로서 미국에서 인공신장기의 도움으로 생명을
연장해오다가 자연식으로 완치시키고 건강을 회복했다.
우리 나라에 (기적을 낳는 현미) 라는 책으로 현미식을 제일 먼저 소개한
분이다. 성경을 절대적으로 믿는 기독교 신자로,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미국, 캐나다, 우리 나라 등지에서 건강의학 강의를 한다.
무염식, 자연식의 요법인 (네가 낫고자 하느냐) 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시조사, 1985) 했다.
박사 자신이 현미밥에 소금없이 날채소로 식사를 한다. 박사가 저술한
위의 책에는 질병에 따라 채소의 종류를 선택하도록 하는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박사도 암환자에게는 현미밥이 아닌 날현미가루를 먹도록
상담지도를 해주고 있다.
(5) 이상구 박사
1989년 K.B.S T.V 에서 박사의 채식 강의가 육식과 채식의 논쟁으로까지
비등했던 일은 기억에 새롭다. 이 박사의 채식이론은 자연식과 좀 다르다.
자연식은 현미밥에 날채소, 산나물, 해초, 도라지, 더덕 등을 익히지 않고
먹는 방법인데, 이상구 박사의 채식은 현미밥에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먹기도 하고, 채소를 살짝 쪄서 양념을 하여 즐겁게 먹는 방법도 병행하는
채식방법이다.
이상구 박사는 미국에서 미국인을 주로 치료하고 있기 때문에 생식이나
자연식은 육식을 하는 미국인에게는 권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미국인들은
저항력이 강하고, 육식이 주식이기 때문에 생식을 하지 않아도
채식만으로도 치료가 잘 되기 때문이다.
(6) 인도의 성웅 마하트마 간디
간디의 채식과 생식은 유명하다. 평생 동안 채식을 하기로 어머니에게
맹세를 했던 그는 자서전 (진실을 찾아서)를 쓸 당시까지 13년간 과일로만
생식을 했다. 또 10년간 소금을 먹지 않는 무염식을 했다.
그는 즐거움으로 소모되는 정신적 에너지를 절제하여 저장했다가 인도의
독립을 위한 투쟁과 자제력으로 전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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