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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성

성 지식

by Healing New 2020. 7. 22.

    과속 운전
  속칭 '조루'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글자 그대로 사정이 빠르다는 뜻이다. 하지만 얼마
나 빨라야 조루인가 하는 기준은 없다. 왜냐하면 혼자서 마스터베이션을 할 때는 시간이 문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루라는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
데, 설사 남자가 5분밖에 지속하지 못할지라도 상대 여자가  5분 만에 오르가슴에 도달한다
면 조루라고 할 수가 없고, 반대로 남자가 1시간을 버텨도 여자가 2시간은 돼야 오르가슴에 
도달한다면, 그건 조루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조루라는 것은, 남녀 쌍방간의 
상대적인 시간차 개념에 불과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오르가슴(사정)에 도달하는 시간이 훨씬 빠르다. 말하자면 과
속 운전이다. 그렇다면 조물주께서는 어째서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까? 그 이유를,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해석 내지는 유추를 하고 있다.
  원시 사회에서, 인간이 성행위를 할 때는 맹수들의 공격으로부터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
문에, 가급적이면 빨리 끝내야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고, 정신분석학적으로 오이디푸스 콤
플렉스의 죄책감 때문에, 성교시간의 최소화라는 의미에서 남성이 빠르다는 설이 있는가 하
면, 또 여성의 성적인 태풍이 너무 거세기 때문에, 그걸 피해가기 위해서 남성은 생리적으로 
과속 운전은 섹스의 엔조이 측면보다는, 종족보존의 측면에 더 우선순위를 둔, 조물주의  뜻
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옛날엔 조루가 있는 남성도, 우얼감과 권위의식으로 여성의 성적인 불만을 무시 내지는 
깔아뭉갤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여성상위 시대인 요즘에는 그게 통하질 않는다. 여성을 구름 
위에 두둥실 띄어놓지 못하는 남성은, 아내로부터 과속 운전의 딱지를 떼이게 된다. 이게 여
러번 반복될 경우에는 자동차 보험의 할증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심지어 면호 정지 내지
는 면허취소 처분까지 받을 수가 있다. 그래서 조루가 있는 남편은 항상 아내에게 기를 못 
펴고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때로는 구상유취의 청소년이 비뇨기과에 찾아와서는, 조루증 때문에 왔노라며 겁
도 없이(?)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머리에 쇠똥도 안 벗겨진 녀석이 무슨 놈의 조
루증 타령이냐"며 면박을 주고 싶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청소년들도 이젠 어른 뺨 칠 정
도로 섹스에 도통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뭐 짜드라 고까울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 몹쓸 조루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물론 있다. 조루를 해결하는 데
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남성은 늦게, 여성은 빠르게'라는 것이다. 그러
니 여성도 가급적이면 빨리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방법을 숙지해서, 남성의 과속 운전이 속
도 위반이 되지 않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남성들도 문제는 있다. 여성의 속도를 빠르게 할 생각은 않고, 제 혼자 어떻게 버텨보겠다
고 안간힘을 쓰거나, 오로지 마르고  닳도록 그놈의 살송곳 하나에만 매달려서, 낑낑댄다는 
사실이다.
  여성은 온 몸이 가히 성감대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를 필요충분하게 활용해야 하며, 살
송곳은 마지막 카드로 비장해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굿바이 훔런을 날려야 된다는 말이
다.
  또 오르가슴만을 섹스의 유일한 목표로 삼고, 오로지 그 목표를 향해 일로매진, 악전고투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르가슴의 정상에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까지 올라가기 
위한 그 등산의 과정의 즐거움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네 인생 자
체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 목표이기보다는, 그 목표를 향해 올라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과 마
찬가지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극적으로 다시 만났으면 그만이지, 그후로 아들 딸 몇 명 낳았
다는 얘기도, 이몽룡이 바람을 피웠는지 어떤지 그런 얘기도 없질 않은가.
  옛날에는 조루에 대해서 별 희한한 처방이 다 나왔는데, 예를 들면 섹스를 하다가 사정이 
임박해졌다 싶으면, 찬물을 떠다 놓고 양 손을 담그라느니, 아니면 빚쟁이나 꼴보기 싫은 사
람의 얼굴을 떠올리라느니 하는 따위의 원시적인 처방이었다. 그렇다면 최신 처방은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보자.
  섹스를 할 때는 우선 그 장소의 분위기가 문제가 된다. 주위가 시끄럽거나 안온하지 못하
면 불안해진다. 이 불안한 마음이 과속의 주범이다. 너무 허겁지겁 덤비는 것도 문제이다. 
누가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닌데, 하나도 덤벙댈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되면 번번이 실패한다.
  엔조이로서의 섹스에 있어서는 엔조이 자체가 중요하지, 사정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니 
심심풀이 장기 두듯이,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 가도 그만 와도 그만,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의 심정이라야 한다. 말하자면 유유자적한 
장자의 소요유의 기분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듯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장난치듯 그렇게 섹스를 시작하는데, 그러다가 사정이라는 
도깨비가 나타날 징조가 보이면 일단 '스톱'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몇 분 후에 그 도
깨비는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도깨비가 사라진 게 확인되면, 그땐 또 슬슬 '고'를 하는 것
이다. 그러다 또 도깨비의 그림자가 나타나면, 지체없이 '스톱'을 해야 한다. 얼마 후 도깨비
가 꽁무니를 빼면, 다시 '고'를 한다. 이렇게 섹스의 '고 스톱'에 숙달이 되면, 그땐 자유자
재 엿장수 맘대로 할 수가 있다. 까짓것 못 먹어도 '고'라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
깨비가 나타나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눈치챌 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이미  도깨비
가 나타나버리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요즘은 여러 가지 약제와 시술법까지 나와 있어서, 야코가 팍죽은 과속 운전자들에게 그
야말로 복음이 되고 있다. 아무리 기를 쓰고 '고 스톱'을 해봐도 여전히 과속을 하는 사람
은, 약을 쓰거나 신경 부분절단 시술을 받으면,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과속이
여, 안녕'이라고.
  
    도끼와 자루
  도끼는 옛부터 벌목을 하거나 장작을 팰 때 없어서는 안될 요긴한 기구였다. 옛날 그 도
끼질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외국에서는 통나무를 도끼로 찍어 자르는 시합을 벌인다고 하
는데, 그것은 일종의 민간 스포츠로 정착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의 통치자들은, 이 도끼를 주로 사형을 집행하는 기구로 사용했다. 군대가 출
정을 할 때 군왕은 총사령관에게 손도끼 한 개를 주었는데, 그것은 만약 명령을 따르지 않
거나 군율을 어기는 사람은, 군왕을 대신해서 가차없이 목을 치라는 뜻이었다. 그 도끼는 곧 
군왕의 권위인 동시에 어명의 상징이기 때문에, 부월이라고 했다.
  기독교를 세계 종교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담당했던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처
형당할 때도 도끼로 목이 잘렸다. 얼마나 그것을 세게 내려쳤던지, 바울의 목을 자르고도 그 
밑의 바위에까지 지금도 도끼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이렇듯 생활의 요긴한 기구로서, 또한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서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도끼가, 한편으로 성적인 면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도끼는 쇠로 된 몸통과, 나무로 된 자루로 만들어져 있다. 도끼를 뜻하는 '부'자는, 도끼에 
뚫려 있는 구멍을 지칭하는 말이다. 도끼날의 효용보다는 그 구멍의 효용을 강조한 것인데, 
아무리 도끼날이 날카로울지라도 자루를 꽂을 구멍이 없다면, 그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자의 삼십복공일곡의 사상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가 있겠다.
  '시경'에 보면 "도끼자루 만들기"가 있는데, "도끼자루 만들려면 도끼 아니면 안되고 / 신
부를 얻으려면 중매 아니면 안되지 / 도끼자루 만들려면 자루 치수 맞춰야지 / 그 님을 만
난다면 진수성찬 대접하지"라는 게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도끼의 구멍은 골풀무를, 그리고 도
끼자루는 살송곳을 상징하는다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가 있다.
  '삼국유사'에도 보면, 하루는 춘정이 동한 원효대사가, "누가 나에게 자루 빠진 도끼를 준
다면,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련만"하고 동네방네 외고 다녔다.
  이 소식을 들은 태종무열왕이, 필시 원효대사가 귀부인을 얻어 현자를 낳고자 함인 줄 짐
작하고, 그를 불러들여 자루 빠진(과부) 요석공주의 도끼에다 자루를 꽂게 해, 과연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깍으니, 그각 곧 설총이다.
  옛날엔 일단 자루가 빠진 도끼는 그냥 빠진 채로 두는 것이 관례였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쇠도끼를 잃어버린 나무꾼이 은도끼와 금도끼를 골라잡듯이, 아카시아나무 도
끼자루를 잃어버린 사람이, 오동나무나 박달나무 도끼자루를 골라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끼의 구멍이 골풀무라면, 그 자루는 당연히 살송곳이다. 살송곳을 음경이라고 하
는 것도, 그것이 '자루'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니 도끼는 남녀가 성적으로 결합하고 있
는 형상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데 도끼의 몸체는 쇠로 되어 있고, 자루는 나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나무
는 쇠보다 빨리 썩는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남성의 자루
는 여성의 도끼보다 힘의 수명이 짧다는 뜻이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 세상에서 쇠붙이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나무들은 아
연실색했다. 그래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는데, 갑론을박 끝에 나온 결론은, "어떤 일이 있
어도 쇠붙이에게 결코 자루를 제공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오늘날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 
앞에 영 맥을 못 추는 '자루'들의 처량한 모습을 이미 꿰뚫고 있었던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끼는 자루에 대해 항상 심기가 편칠 않다. 아기는 5세 정도가 되면 
생식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데, 머슴애들은 자신의 '자루'에 대해서 경이로움과 자부
심을 갖게 되고, 발기했을 때의 그 늠름한 모습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또래와 
누가 더 큰가 겨우어보기도 한다. 그러는 중에 '크기'에 대한 선망이 싹트게 되는데, 이것이 
나중에 큰 돈 벌고, 큰 집 갖고, 큰 권세를 잡으려는, 남자로서의 야망을 갖게 한다.
  또 이때는 자연스럽게 소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는데, 앉아서 오줌을 누는 계집애
들과는 달리, 머슴애들은 당당히 서서 오줌을 눔으로써, 오줌 줄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
자재로 보낼 수 있게 되고, 이 묘기가 장차 자기의 적성에 따라 성공의 길로 매진할 수 있
게 하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끼는 그것이 없다. 신기한 요술방망이 같은 자루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루
를 부러워한 나머지 자기도 머슴애들처럼 서서 오줌을 눠보지만, 형편이 영 말씀이 아닌지
라, 괜스레 열등감에 빠져 나중에는 못 먹는 호박 찔러나 보듯이, 저놈의 자루, 그만 댕강 
떨어져버렸으면 하는 괴이쩍은 생각이 무의식 속에 잠재하게 되는 것이다. 머슴애들에겐 당
연히 있어야 하는 '자루'임에도, 그게 없어졌으면 하는 이런 양가감정이, 장래의 특유한 여
자의 마음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알다가도 모를 갈대와 같은 여자의 마음이다.
  그래서 여자란, 남자의 한시적인 동반자인 동시에, 영원한 적인지도 모를 일이다.
  
    북 치는 사람(1)
  비뇨기과 진찰실에는 종종 희한한, 그리고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질 때가 있다.
  젊은 남녀 두 사람을 앞세우고, 그 뒤로 여러 명의 중년 부인들이 자못 심각한 표정을 하
고는 우르르 밀어닥칠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이럴 때 좀 노련한 비뇨기과 의사는, '아하 이
거 또 고자 사건이구나'하고 짚어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물론 젊은 남녀는 문제의 그 당사자들이고, 중년 부인들은 양가의 대표 자격으로 선발된 
사람들이다.
  이럴 때 짐짓 모른 척하고 허떻게들 왔느냐고 물어보면,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양
쪽 대표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나선다.
  "아니, 그래. 남의 처녀 신세를 조져놔도 분수가 있지, X도 안서는 빙시(병신)를 감쪽같이 
속여가지고 세상에 이럴 수가 어딨노 엉이? 이건 순 사긴기라 사기. 그래 남의 귀한 딸 신
세 조져논거 이거 무라(물려)줄끼가 안 무라줄끼가 엉이?"하고 삿대질을 해대며 신부측 대
표들이 살기등등하게 포문을 열면, "와, 남의 집 금쪽 같은 아들을 뭣 때문에 빙시 취급을 
하노. 멀쩡한 남의 아들을 뭣 때문에 빙시 취급을 하노 이 말이다. 아이구 분해, 아이구 분
해라아. 그래, 조오타. 법대로 하자, 법대로"하며 시퍼렇게 반격을 가하는 쪽은 신랑측 대표
들이다.
  이럴 땐 사돈이고 나발이고 없다. 삿대질에다 악다구니는 약과고, 육두문자까지 난무하는
가 하념, 최악의 경우 머리칼을 꺼두르고 나뒹구는 육박전까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쯤되면 진찰이고 뭐고 온 데 간 데 없고, 진찰실은  시쳇말로 독 테이블 5분 전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럴 재미있는 현상은 막상 당사자들인데, 신랑은 영 풀이 죽어 처량한 모습을 하
고 유구무언인 데 반해, 신부는 자기측 대표자들의 혈전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가 하면, 
심지어 어떤 신부는 자신이 몸소 선봉장이되어, 축 처져 있는 신랑을 향해 대거리를 하면서, 
의사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형용사를 구사하면서 몰아세운다는 사실이다.
  속칭 고자라는 말은, 영어로 임포텐스(Importence)라고 하는데, 우리 말의 고자는 글자 그
대로 '뒷북 치는'사람이라는 뜻이고, 영어의 임포텐스는 '힘이 없다'라는 뜻이다. '힘이 없다
'라는 영어의 직유적인 표현보다는, '뒷북 친다'는 우리 말의 은유적 표현이 훨씬 감칠맛이 
있질 않은가. 막상 해야 할 일은 못 하면서, 괜히 분주하기만 한 사람을 일러 "고자 처갓집 
드나들 듯한다"는 말의 구수한 맛과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고자의 심리적 특징은, 자신이 고자인 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끝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부는 이렇게 하소연을 한다. "선생님. 저 사람 있지예. 
막상 거시기는 못하면서 괜히 올라갔다 내려갔다, 땀을 팥죽같이 흘리면서 지 혼자 밤새도
록 낑낑대는 바람에, 한숨도 못 잔다. 아입니꺼." 하지만 신랑의 말은 또 딴판이다. "선생님
예. 제가예. 저 여자하고 거시기를 할라꼬 하면예. 저 여자가 내 위에 먼저 올라가 뿌린다 
아입니꺼. 암만 봐도 처녀가 아인기라예. 그러니 거시기가 될 택이 있겠십니꺼?"
  그러나 이 말은 어디까지나 억지요,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젊디젊은 남자가 거시기를 못한
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은 것이다. 그래서 변명없는 고자는 없는 법이다. 
핑계없는 무덤 없듯이.
  남자가 고자가 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하나는 기질적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반반인데, 기질적인 원인
은 당뇨병 같은 전신적인 질환과, 혈관 이상에 의한 국소적인 경우가 있다. 특히 혈관의 이
상으로 인한 경우에는, 수술로써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정신적 원인인 경우에는 정신과적인 치료를 요하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정신적
인 원인으로 볼 수가 있다. 첫째, 일어서긴 잘 일어서는데, 막상 골풀무에 진입하려고 하면 
그만 문간에서 털썩 주저앉아버리는 경우. 둘째, 부부간에는 안되지만, 오입할 때는 멀쩡한 
경우. 셋째, 혼자 연습(용두질)할 때는 잘 되는데, 막상 실전에 임해서는 그만 야코가 팍 죽
는 경우. 넷째, 특히 40대 이전에 어느  날 갑자기 살송곳이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 다섯째, 
어떤 때는 잘 되다가 어떤 때는 안되는 경우. 여섯째, 실전에는 비록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지만, 잠을 잘 때 밤중에 살송곳이 저 혼자 몰래 일어서는 경우 등등이다.
  정신적인 원인 중에는, 어릴 때 섹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고 하며, 또 성병에 걸려 혼쭐이 나고부터, 혹시 살송곳이 못 쓰게 되지나 않을까, 또는 이 
다음 결혼해서 기형아를 낳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심리가 고착이 되어, 그로 인해 고자가 되
는 수도 있다.
  정신적 원인의 고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배우자의 절대적인 이해와 협조
이다. "이 병신아. 누구 신세 조질라카노. 이거 무라낼끼가 안 무라낼끼가 엉이?"하며 입에 
거품을 물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배우자도 그렇지만 양가 가족들의 협조도 못지 않
게 중요하다. "얘야, 마 치아뿌라. 재수없으마 뒤로 넘어져도 코 깬다 안카더나. 미친 개한테 
물린 셈치고, 어디 딴 데 한번 알아보자. 자다가 구해도 저 병신보다야 못할라고" 이런 소리
는 절대 금물이라는 말이다.
  육체적으로나 성적으로는 완전히 정상적인 사람이지만, 단지 자라온 환경이나 여건의 부
조화 때문에 초래된, 강박적인 불안심리 때문이라는 사실을 십분 이해하고, 주위에 있는 모
든 사람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 그리고 지도와 편달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말이다.
  정신적 원인의 고자는 자세히 보면, 벌써 그 눈빛부터가 다르다. 자신이 고자라는 사실에 
대한 열등감고, 강박적인 불안감 때문이다. 주위의 협조와 애정으로 이것이 해소되면, 어느 
날 기적처럼 살송곳이 일어서게 된다. 일단 한번 꿋꿋한 발기에 성공하면, 이를 이완시켰다
가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워보라. 그러면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기고, '고자여 안녕'을 할 수 
있게 된다(What is done can not be undone).
  
    북 치는 사람(2)
  정신적인 어떤 이유로 그만 고자가 되어버린, 재미있는 실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여 년 전 일이다. 어떤 신혼부부가 내 질료실에 찾아왔는데, 신부가 머뭇거리며 수줍게 
하는 말이, 신랑이 첫날밤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거시기'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첫날
밤, 밤새도록 10여 차례나 땀을 뻘뻘 흘리며 끈덕지게 시도를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파김치가 되어 술만 벌컥벌컥 들이키다가 곯아떨어졌는데, 그후로 한 달 동안 매일 밤 그 
도깨비 시름(?)을 계속하는 남편이 안타까워, 이렇게 상담을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새신랑을 불러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봤더니, 신랑은 사실이라며 맥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보아한니 신랑은 건장한 체격이었다. 이토록 신체 건강하고 사상 온건한 대한민국의 청년이, 
거시기를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신부를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신랑한테, 혹시 총
각 시절에 남앞에 말 못하고 구석구석에 눈물나는 그런 고름 맺힌 사연이 있지나 않은지 어
디 이실직고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한동안 눈을 지긋이 감고 회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윽고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기구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도 총각 때는 남 못잖게 성욕도 강하고 치마만 봐도 사타구니에 차일을 칠 정도로 발기
도 끝내줬으며, 남들처럼 부지런히 용두질도 즐겼고, 때로는 노류장화도 꺾어보았던, 지극히 
정상적인 대한민국의 청년이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어떤 아가씨 한 사람과 사귀게 되었다. 그런데 아가씨 쪽에서 
자꾸 전화를 해대는 바람에 만나서 데이트를 하긴 했지만, 그는 그녀를 여자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몇 해 동안 그런 어정쩡한 상태로 교제를 해오던 중, 어느 해 징글벨 소리가 도
시의 현란한 밤거리를 수놓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는 그 아가씨를 만났단다. 야간 통행금
지도 해제되어, 모처럼 맛본 해방감과 함께 밤거리에 넘실대는 선남선녀들의 물결이 괜히 
마을을 들뜨게 하고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그런 밤이었단다.
  두 사람이 다방에도 가고 극장에도 들르고, 거기다 술도 한 잔씩 걸치면서 밤거리를 싸돌
아다닌 사이, 그럭저럭 자정이 되었고,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그가 말했단다. 그러자 그녀가, 
오늘같은 밤은 기분도 그렇잖고 하니 이대로 그냥 헤어질 순 없질 않겠느냐고 하길래, 먹을 
것 다 먹고 실컷 놀았잖느냐고 했더니, 그녀는 딱 한가지가 남았다고 하더란다. 그가 그게 
뭐냐고 하니까, 아가씨가 거슴츠레한 눈을 하고 어떤 곳을 가리키는데, 그곳은 바로 여관이
더란다.
  어떨떨한 기분으로 장승처럼 서 있는데, 아가씨가 반 우격다짐으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그
는 할 수 없이 여관으로 들어갔단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가씨가 다짜고짜 옷을 훌
훌 벗어던지더란다. 그러고 나더니 자기더러도 옷을 벗으라고 했고, 엉거주춤 그냥 서 있으
려니까 아가씨가 바지를 홀랑 벗겨버리더란다. 그래서 황당한 기분으로 서 있는데, 아가씨가 
대담하게도 육탄공격을 개시하더란다. 그때 기분이 어떠했느냐고 짐짓 물었더지, 얼굴 근육
을 한 번 실룩하고는, 말도 말라며 고객를 내저었다.
  그래서 그는 순간적으로 아찔해지면서 위기의식을 느꼈단다. 왜냐하면 그 아가씨와 결혼
까지 할 의사는, 애초부터 눈꼽만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만간에 오늘 밤 이 순간을 
무사히 모면하지 못하는 날에는, 끝장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더란다. 그런 와중
에도 염치없는 살송곳이 주인의 속도 모르고, 이미 일전을 불사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분
연히 일어서 있는 데는, 정말이지 미치고 환장하겠더란다. '여기까진 따라오지 말았어야 하
는 건데'하며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하늘이 아니라 여관의 천장을 우러러 탄식을 했지만 때
는 이미 늦었더란다.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덫에 걸린 너구리처럼 이제 꼼짝없이 당하는구나 생각하니, 눈앞
이 캄캄하더란다. 거기다 아가씨의 불덩이 같은 몸이 점점 더 공격의 강도를 높여 압박해오
는 바람에,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며 완전히 케세라 세라의 심정이 되어, 눈 딱 감고 
그만 화끈거리는 아가씨의 배꼽 위에 엎어졌단다.
  그런데 아 이게 웬 조화란 말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넉살좋
게도 시뻘겋게 일어서 있던 그 살송곳이, 어느새 새색시처럼 얌전해져 있더란다. 참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고 한다.
  아가씨가 숨을 할딱거리며, 그 얌전해빠진 살송곳을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질척거리는 
골풀무에다 집어넣어보겠다고, 기를 쓰고 몸부림을 쳤건만, 그 살송곳이 오불관언 초연한 자
세로 마음을 비우고 유유자적하니, 자신이 생각해도 그렇게 신통하고 기특하고 고맙고 살가
울 수가 없더란다.
  그렇게 해서 그는 연옥 같은 그 여관방에서 구사일생 탈출할 수가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
은 그 아가씨로부터 며칠 뒤에 전화가 왔길래 받아보니,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하더
란다. 이유가 뭐냐고 내가 좀 짓궃게 물었더니 그는 멋쩍게 식 웃으며, "날보고 X도 못하는 
병신이라 안갑니꺼"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날 여관방에서의 위기일발의 엑소더스 이후, 그토록 대견하고 갸륵하던 살송곳
이 영영 고개를 숙인 채 지금까지 일어날 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청천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세상에 그때 유유자적하던 살송곳이 지금도 계속 유유자적만 하고 있으니. 아무리 
달래고 얼러봐도 마이동풍인지라, 미치고 팔짝뛰다가 이렇게 용기를 내어 찾아왔다고 그가 
말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쭈껑 보고 놀란다더니, 골풀무 보고 놀란 살송곳 조개 보고 
놀란 것일까?
  따지고 보면 살송곳에도 용불용설이 적용되고, 동시에 관성의 법칙을 따르게 마련이다. 위
기 모면의 무의식적 방어기전에 의해 임시로 유유자적하던 살송곳이, 위기가 해소된 후에도 
계속 유유자적만 하는 것은, 살송곳의 관성의 법칙 때문이라는 그런 말이다.
  
    여자와 물
  이 지구상에서 모든 생물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물이 있어야 한다. 첫 생명체가 물에서 나
왔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물은 바로 생명의모체이다. 그래서 '생명수'라고 한
다. 임신을 못하는 여자를 일러 석녀라고 하는 것도, 돌처럼 물이 없다는 뜻이다.
  물이 체중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인체는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이 지구를 봐도 그렇다. 
지표면의 2/3를 물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지구도 엄연히 하나의 생물임을 알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지구 내부의 마그마는 섭취한 음식물이고, 암석층은 골격이고 청석층은 근육이
다. 그 위의 흙은 피부이고 식물들은 모발이며, 동물들은 이에 불과하다. 또 지하수는 동맹
이고 지표수는 정맥이며, 바다는 심장이다. 바닷물이 사람의 혈액처럼 생리식염수로 되어 있
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지진은 지구의 오한이고, 화산폭발은 구토이며 태풍은 
그 한숨이고, 바람은 호흡이다.
  이렇듯 지구는 하나의 살아 있는 거대한 생물이라는 그런 말이다. 기껏해야 한 마리 이에 
불과한 인간이, 대자연 앞에 겸허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산요수라는 말이 있다. 현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현자는 남성적이며, 지자는 여성적이다. 그래서 여성은 물을 좋아한다는 말이 된다.
  여성의 신체 생리를 봐도 그렇다. 눈물이 많고 유액이 분비되며, 다달이 서답이 있고, 섹
스를 할 때도 분비물이 나온다. 그러니 여성은 남성보다 월등히 많은 물을 내놓는다는 말이
다.
  또 여성들이 꾸는 꿈 가운데 선유몽이라는 것이 있다. 꿈에 어느 산마루에 올라가서 오줌
을 눴더니, 온 세상이 오줌에 잠기더라는 그런 꿈 말이다. 이것은 산이 남성을 상징하고, 그 
위에서 여성이 물을 내놓는다는 것은, 곧 성교를 의미하는 동시에 생명의 탄생을 뜻한다. 그 
오줌물에 온 세상이 잠겼다는 것은, 탄생하는 아기가 장차 천하를 통치한다는 뜻이다. 신라 
김유신 장군의 누이동생인 보희의 선유몽이 아마 그 대표격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는 게 이른바 홍수설화이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
치고 홍수설화가 없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치산치수가 어려웠던 옛날에는, 자연재해 중에서 
홍수만큼 겁나는 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불가항력적인 대홍수를, 타락한 인
간을 징벌하기 위한 신의 노여움으로 받아들였다.
  대홍수는 곧 낡고 오염되고 타락한 생명을 제거하고, 새롭고  깨끗하고 참신한 생명을 탄
생시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른바 '노아
의 대 홍수'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홍수는 물이고 물은 여자이며, 여자는 
음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양은 음의 홍수에 잠겨 익사하고 말았다는 뜻
이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노아'라는 양을 하나 살려둠으로써, 인류의 멸종을 막았다는 것이
다.
  물은 또 '씻는다'. '깨끗이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몸을 깨끗이 함은 물론 그 마
음 또는 영혼까지도 깨끗하게 한다는 상징적인 뜻으로, 기독교에서는 성수로 세례의식을 행
하고 있고, 힌두교에서도 갠지스 강에 몸을 씻음으로써 영혼을 정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렇듯 물이 종교의식에까지 등장하는 것은, 물이 가지고 있는 그 여성 상징성, 다시 말해 
모계 사회에서의 사랑과 은유와 자비의 화신으로서의 여신, 즉 태모신의 숭배사상에 그 맥
이 닿아 있다 할 것이다.
  물 속에는 또 물고기가 살고 있다. 물고기는 그 미끈거리는 감촉과 좌우로 몸을 흔들며 
헤엄치는 그 동작 때문에 섹스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사람의 몸에서 이 물고기를 닮은 부분
은 바로 눈이다. 인도의 미술에 보면 미인은 유별나게 눈이 크게 그려져 있다. 꼭 물고기처
럼 말이다. 남성은 사랑을 입으로 말하지만, 여성은 눈으로 말한다. 그러니 미인을 낚으려면 
물고기가 있는 미인의 눈, 그 호수에다 낚시를 드리워야 한다.
  옛날 로마에서 기독교가 핍박을 받을 때, 기독교도들간에 몰래 물고기를 그려 보임으로써, 
서로가 기독교임을 확인했던 적이 있었다. 이것이 이른바 '물고기 기호'로 불리는 '이스티
스(Ichthys)'. 그것은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섹스의 상징인 물고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게 되었을까? 물고기는 
생명의 물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생명, 즉 생명 중의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 중의 
인간, 왕중의 왕(King of King)이라는 사실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을 것이
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물'이다. 우물은 임신한 여자의 자궁을 상징한다. 그러니 우
물에서 생명(위인)이 탄생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흔히 말하는 난생설화에, 우물가에 있는 
알에서 위인이 탄생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 신라의 시조 혁거세는 '나정'이라는 우물가에서 
태어났고, 그의 왕비 알영은 '알영정'이라는 우물가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렇듯 우물은 위대한 인물을 탄생시키는 곳이기에, 그 우물물은 신성한 물이 아닐 수가 
없다. 새벽에 맨 먼저 우물에서 길어온 물을 정화수라고 해서, 장독대 위에 얹어놓고 여인들
이 두 손을 비비며 치성을 드리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또 물은 본래 고유한 모양이 없고, 담겨지는 그릇의 형태에 따라 그 모양이 결정된다는 
면에서도 여성적이다. 그러기에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섹스를 일명 '운우'라고 한다. 먹구름이 뒤덮이고 장대같은 빗물이 쏟아진다. 
거기 어찌 우레의 감창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여자는 죽을 때도 물을 좋아한다. 우물에 빠져죽은 장화홍련,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 백마강에 다이빙한 삼천궁녀들, 남편 아사달을 기다리다 끝
내 영지에 빠져죽은 아사녀, 그리고 햄릿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강물에 뛰어들어 떠내려간 
오펠리아를 보라.
  
    배자상수
  한자의 글자를 해체하거나, 상황에 따라 글자의 획수를 가감함으로써, 그 글자를 쓴 사람
의 길흉화복을 알아 맞히는 것을 이른바 측자파자라고 하는데, 이는 표의문자인 한자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특징이자 매력이다. 이것은 특히 당나라와 송나라 때 크게 성행했다고 하
는데, 여기에 정통한 사람을 일러 '측자선생'이라고 해서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 여기서 몇몇 유명한 측자선생들의 일화를 소개해보기로 하자.
  송나라 때 사석이라는 측자선생이 있었는데, 하루는 어떤 관리가 찾아와서 측자를 요청하
기에, 아무 글자나 한 자 써보라고 하니 그 관리는 부라는 글자를 썼다. 사석은 그 글자를 
한참 보고나서, "미안한 말씀이지만 당신은 10일 후에 관직에서 쫒겨날 것입니다"라고 했다. 
얼굴이 흙빛이 된 그 관리가 자세히 설명을 좀 해달라고 하자 사석은, "당신은 방금 쓴 이 
부자를 보십시오. 이 글자를 파자하면 십일방이 됩니다. 그러니 10일 후에는 삭탈관직이 된
다는 그런 말입니다"했다. 과연 그 관리는 10일 후에 뇌물수수 혐의로 쫓겨났다고 한다.
  또 송나라의 고종이 아직 왕자로 있을 때, 민심을 살피기 위해 천하를 주유하던 중, 사석
이 고명하다는 마을 듣고 찾아갔다. 사석이 글자 한 자를 써보라고 하자, 고종은 지팡이로 
땅 위에다 한일자를 썼다. 그러자 사석은 황망히 일어나서 고종에게 큰 절을 올리는 게 아
닌가. 고종이 하도 기이해서 그 연유를 물었더니 사석이 이르기를, "흙 위에 한일자를 그었
으니 훗날 반드시 군왕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했다.
  역시 송나라 사람인 왕룡도 측자파자로 이름을 떨쳤는데, 하루는 그 고을 군수가 그를 불
러 한 번 시험해보고자 했다. 군수는 참새 한 마리를 손에 쥐고, 자기가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지 알아맞춰 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왕룡은 군수더러 아무 거나 하나 지적을 해달
라고 요청했다. 군수는 때마침 뜰 아래 엎드려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젊은 여인을 가리켰
다. 그러자 왕룡은 즉시 "군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은 참새입니다"라고 했다. 깜짝 놀란 군
수가 어떻게 그걸 알았느냐고 묻자 왕룡이 빙긋이 웃으며, "저 뜰 아래 엎드린 여인을 보니 
아름답고 젊은 여인이군요. 그러니 연소가인이 아닙니까. 여기서 젊을 소와 아름다울가를 합
치면 참새작이 되질 않습니까?"하니 군수를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역시 송나라 사람인 장승차도 측자파자의 달인이었는데, 먼 길을 떠난 아들이 언제쯤 돌
아올 수 있겠느냐며, 어떤 사람이 와서 측자파자를 부탁하기에, 한 자 써보라고 하니, 그 사
람은 덕자를 썼다. 그랬더니 장승차는 대뜸 걱정 마십시오, 앞으로 14일 후에 틀림없이 돌아
올 것입니다"했다. 어떻게 그토록 장담을 할 수 있는냐고 그 사람이 물으니 장승차는, "덕이
란 글자의 왼쪽은 쌍인이니 이는 길 떠난 사람 즉 행인을 뜻하고, 오른쪽은 십사가 있고 그 
밑에 일심이 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14일째 되는 날엔 꼭 들어온다는 말입니다"라고 했
다. 그런데 과연 14일 후에 그 사람의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한다.
  '삼국자'에 나오는 동탁이 결국 여포에게 죽을 것이라는 요언도 역시 파자 "천리초 하청
청 십일상 부득생"이라고 되어 있다. 즉 '천리초는 어찌 푸르디푸르기만 하겠는가. 십일상은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말이다. 여기서 천리초는 동을, 십일상은 탁을 뜻한다. 그 와중에 또 
어떤 사람이 흰 베에다 입구자 두 개를 써가지고 깃대를  만들어 들고 다녔다. 입구자 둘은 
여이고 베는 포이기 때문에, 결국 '동탁은 여포에게 죽는다'는 뜻이다.
  한고조 유방이 일찍이 미관말직에 있을 때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한 마리 양을 잡아 그 
뿔을 뽑고 꼬리마저 뽑아버렸다. 기이한 꿈이라서 어느 측자선생에게 가서 해몽을 부탁하니 
측자선생이 말하기를, "양의 뿔을 뽑고 꼬리마저 뽑았으니, 남은 것은 임금왕자뿐입니다. 장
차 군왕이 되실 길조입니다"했다고 한다. 이성계의 이른바 '서까래 꿈'은 여기서 힌트를 얻
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듯 한자는 글자 그대로 뜻이 깊다. 그런데 또 하나 재미있는 것으로, 배자상수라는 게 
있다. 한자를 묘하게 배열하여 수연을 축하한다는 뜻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잔치의 흥을 돋
우기 위한 것이다.
  옛날에 어떤 남자가 회갑잔치를 벌이게 되었다. 그는 한창 때 꾀나 호색을 한 바람둥이였
는데, 슬하에는 출가한 딸이 셋 있었다. 왕년에 아버지의 화려무비한 엽생행각의 이력을 잘 
알고 있는 세 딸은, 이제 세월의 뒤안길에서 쓸쓸히 추억만 반추하고 있는 아버지가 측은하
게 생각되어, 기발한 배자상수로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드디어 잔치가 벌어졌다. 먼저 맏딸이 아들 하나를 데리고 나와서, "아버지, 저는 좋을호
자로 아버지의 만수무강을 빌어 드립니다"하고 잔을 올리니 아버지는, "음, 어디 보자. 옳지, 
아들자자와 계집녀자라, 과연 그렇군 그래. 허허"하며 좋아했다.
  다음은 둘째딸이 양손에 딸을 하나씩 데리고 나와서는, "아버지, 저는 간음할간자로 아버
지의 회갑을 경하드립니다"하고 잔을 올리니 아버지는, "어흠, 그래. 계집녀자가 셋이니 간
음할간자라 그 말이지. 보아하니 과연 그렇군 그래 허허"하며 즐거워했다.
  마지막으로 셋째딸이 나왔다. 그녀는 아직 애기가 없었으므로 혼자 나왔는데, 느닷없이 한
쪽 다리를 90도로 번쩍 들어 상 위에다 척 올려놓고, 치마를 훌렁 걷어붙이는데 보니 노팬
티 차림이었다. 그러고는, "아버지 저는 가할가자로 아버지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옵니다"하며 
잔을 올리니 아버지는, "어험, 음. 가만있자 그러니까, 양 가랑이 사이에 입구자라. 허허 과
연 절묘한 가할가자로구나. 역시 우리 셋째딸이 화끈하단 말이야. 다만 저 입구자가 조금 비
뚤어지긴 했지만서도 말씀이야. 허허."
  
    맞춤구두
  요즘이야 그렇진 않겠지만, 옛날에는 훈련소에 신병들이 입대하면 군모와 군복 그리고 군
화를 지급받게 되는데, 그것들이 맞춘 것이 아니라서, 어떤 사람에겐 너무 크고 어떤 사람에
겐 또 너무 작아서 희비가 엇갈리는 해프닝이 곧잘 벌어지곤 했었다.
  군화가 너무 헐렁할 걸 지급받은 한 신병이 상관에게, 자기 발에 꼭 맞는 걸로 바꿔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야 임마, 군화를 네 발에 맞추는 게 아니고, 네 발을 군화에다 갖다 맞춰. 
이게 군대라는 거야. 알았어?" 했다고 한다.
  사람이 지닌 것은 뭐든지 자기 몸에 꼭 맞아야 한다. 아무리 좋고 비싼 옷이라도 자기에
게 꼭 맞지 않으면, 그건 입을 수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가 터무니없게 높으면, 어쩐지 어린이가 어른 모자를 
쓴 것처럼 딱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딱한 것은, 그런 사람들은 자
신의 모자가 너무 크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살송곳과 골풀무의 합궁의 여건은 어떤가. 옛날 신라의 지철로왕 같은 별난 분
을 제외하고는, 모든 살송곳과 골풀무의 궁합은 기차게 꼭 맞도록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살송곳이 너무 커서 골풀무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없고, 그렇다고 골풀무가 너무 넓어 
살송곳의 출입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그런 경우도 없다는 말이다. 조물주의 이같은 살뜰
한 배려에 우리는 오직 감읍할 따름이다.
  그러나 여성이 일단 아기를 분만하고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골풀무의 그 천혜의 아늑한 
오솔길을, 아기의 머리가 무지막지하게 휘젓고 지나가버렸으니 오솔길은 엉망이 되기 마련
이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 망가진 오솔길은 어느 정도 자연 복원이 되지만,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이 되면 오솔길은 영영 복원이 되질 않고, 고속도로 터널처럼 되어버린다. 여기에 
살송곳의 허탈과 절망이 있다. 그래서 옛날의 그 아늑한 오솔길로의 복원공사를 시도하게 
되는데, 이게 이른바 '이쁜이 수술'이다.
  그런데 이 황폐해진 오솔길의 복원공사는, 실의에 빠진 남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여성
들 스스로가 자진해서 공사를 착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남성들이 아내를 복원
공사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의 살송곳을 형질변경하는 수도 있
다. 이를 '음경 확대술'이라고 한다.
  오솔길의 복원공사를 함에 있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노폭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 하는 
것인데, 물론 제일 좋은 방법은 완전히 원상복원하는 것이다. 처녀 시절의 그 아늑한 오솔길
로 말이다. 그런데 얼핏 생각하면 쉬울 것 같지만 그게 글쎄 그렇지가 않다는 데 문제가 있
다. 그래서 종종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는데, 산부인과 의사와 어느 아주머니의 대화를 
들어보자.
  "아주머니,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어 딴게 아니고예, 이쁜이 수술인가 뭔가 카능거 있잖아예. 그거 하러 왔다 아입니꺼."
  "아 네에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곧 해드리지요."
  "그런데 요즘 이런 수술 하러 오는 사람 많습니꺼?"
  "네에. 뭐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바깥양반이 잠자리에서 투덜거린다며 찾아오시는 분들이 
더러 있지요."
  "그런데 시간은 얼마나...."
  "뭐 별로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안 아픕니까?"
  "물론이지요. 아무 걱정 마십시오."
  "그라마 해주이소. 그런데 이거..."
  아주머니가 짤막한 실을 꺼내놓는다.
  "아니 이게 뭡니까?"
  "아이, 뭐라케야 되노. 저...애 아빠 그거..."
  아주머니는 실을 동그랗게 만들어 보인다.
  "아, 알겠습니다. 아주머닌 참 준비성이 있어 좋습니다. 허허."
  실을 가지고 미리 남편 살송곳의 원주 둘레를 재가지고 온 것이다.
  또 어떤 날은 이쁜이 수술을 성공리에 끝내고 나오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그 여자의 남편
이 물었다.
  "수술 끝났습니까?"
  "네. 수술 아주 잘 됐습니다."
  "그럼, 수술을 어떻게 했는데요?"
  "아니, 수술을 어떻게 하다니요?"
  "아, 그게 그렇잖아요. 당신이 내 그거 사이즈를 어떻게 안다고, 당신 멋대로 수술을 해
요?"
  "아니 그게 아니고...."
  말문이 막혀버린 그 산부인과 의사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그거 말 되는데'라고.
  어느 중년 신사가 산부인과엘 찾아왔다. 좀 의아해진 산부인과 의사가 물었다.
  "여기는 산부인과인데 어떻게...."
  "아, 네. 딴게 아니고. 여기서 한 달 전쯤 이쁜이 수술인가 뭔가 하는 수술을 받은 ooo의 
남편되는 사람입니다."
  "아, 네. 그렇습니까? 그런데...."
  "아니 뭐 별다른 게 아니고...."
  "네, 말씀해 보십시오."
  "이거 참 말하기가 좀...."
  "괜찮습니까. 말씀하십시오. 혹시 수술 후에 무슨 후유증이라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고....거 있잖습니까. 그게 너무 좁은 것 같아서...."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됐군요. 그러면 전연 불가능...."
  "아 아닙니다. 가능하긴 한데. 이거 도무지 아파서...."
  "아, 네. 그렇겠군요.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맞춤구두를 신어 보신 적인 
있지요?"
  "그야 있지요."
  "바로 그겁니다."
  "바로 그거라니요?"
  "맞춤구두는 새 구두 아닙니까?"
  "그야 물론이지요."
  "바로 그거라는 말입니다. 새 구두를 신을 때, 처음에 발이 좀 아프지요? 게다가 어떤 때
는 발뒤꿈치가 벗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중엔 어떻습니까? 아주 딱 맞지요? 마찬가집니
다. 신으면 늘어나는 법입니다. 그러니 당분간만 꾹 참고 신어보십시오. 기성화보다 맞춤구
두의 진가를 아실 날이 꼭 올 겁니다. 그때 가서 괜히 또 신발 안 벗겠다고 떼를 쓰지나 마
습시오. 허허."
  
    비너스의 병(1)
  이른바 '성병'이란 것은 남녀(또는 동성)간의 성적인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을 말하
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이런 병은 노류장화에  의해서 걸린다고 해서 화류병이라고 
불렀다.
  영어로는 '베니어리얼 디지즈(V.D.)'라고 하는데, 이 말은 '비너스의 병'이란 뜻이다. 화
류병이나 비너스의 병이나 병 자체는 고약하지만, 그 이름  하나는 시쳇말로 끝내주게 시적
이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이 병의 종류가 점점 많아지고 또 다양해져서 V.D.라는 말로는 수지
가 맞질 않기 때문에 S.T.D.(Sexually Transmissible Disease)라 부르기로, 국제 비뇨기과학
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을 본 바 있다.
  성병은 그 역사도 꽤나 깊어서, 중세에 이미 매독이 창궐했던 적이 있었다.
  이 매독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기념(?)으로 유럽에 갖고 와서 퍼뜨린 것인데, 유
럽인들에 의해 수탈과 능욕을 당한 신대륙의 원주민들이 감사(?)의 뜻으로 준 값진 선물이
었다.
  이렇게 해서 매독이 휩쓸게 되자 유럽 대륙은 비상이 걸렸다. 젖꼭지만 겨우 가리고 상체
를 거의 반 노출하다시피한 화려한 야회복을 입고 사교계에서 멋지고 우아하게 춤을 추던 
귀부인들이, 온 몸에 매독의 발진이 꽃무늬처럼 돋아나는 바람에, 그 화려한 무도복을 입을 
수가 없게 되었고, 이 때문에 유럽의 복장사에 일대 변혁이 초래된 것은 물론, 귀부인들은 
그야말로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때 하늘도 무심치 않았던지 에르리히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살바르산(Salvarsan, 606번
째 실험에서 비로소 성공했다고 해서 일명 606호)'이란 신통한 약을 만들어, 그 지긋지긋한 
매독을 작살내고 있다는 승전보(?)에 귀부인들이 그만 감격한 나머지 에르리히 씨의 발에다 
뜨거운 눈물의 키스를 퍼부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문명화(Civilization)는 곧 매독
화(Syphilization)를 뜻할 뿐이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세계적인, 내노라하는 많은 위인들이 성병의 희생자가 되었기에, 성병은 가히 역사의 진로
를 바꾸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몇 사람만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이자 소설가인 동시에 문학 이론가이기도 했던 에드거 앨런 
포. 불후의 명시 '에너벨리'를 지었던, 그리고 추리소설의 아버지였던 포. 고아가 되어 암울
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포. 그래서 생활이 방탕했던 포. 그는 매독 환자였다. 그는 어느 날 
술에 만취하여 볼티모어의 비너스 상 앞에 쓰러져 그 길로 이승을 떠났는데, 비너스의 병에 
걸린 포가 비너스 상 앞에서 죽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네델란드의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감자를  먹는 사람들'과 그로테스크한 '자화상'
으로 유명한 고흐. 타는 듯한 색체로 이 세상 모든  것에 창조적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했던 
고흐. 인간의 본질을 바탕으로 영원을 그리고자 했던 고흐. 그도 매독에 걸려  정신분열증으
로 자살했다. 38세의 천재는 이렇게 꿈을 접어야 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며 기고만장했던 나폴레옹. 그는 임질의 후유증인 요
도협착으로 죽을 고생을 했다. 야외훈련장에서 나무둥치에 팔꿈치를 기대고 하염없이 오줌
을 찔끔거리고 있는 작달막한 청년 장교는, 멀리서 봐도 나폴레옹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요도협착에 의한 매뇨곤란이 얼마나 심했던지, 점점 신경질적으로 되었고, 나중에는 
전쟁을 일으켜 유럽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나폴레옹 덕분에 영국에서는 두 사람의 영웅이 나타났는데, 한 사람은 트라팔가 해전의 
넬슨 제독이고, 또 한 사람은 워털루 전투의 웰링턴 장군이다. 이 두 사람이 영웅이 된 것
도, 따지고 보면 임질 덕택이 아닌지 모르겠다.
  "자살이란 인간이 자연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인 동시에 그 해답의 강요이며, 신은 자살
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전능하지 않다"고 기염을 토했지만, 자신은 끝내 자살하지 않았던 
쇼펜하우어가 지독한 여성 혐오자가 된 것도 매독 때문이었다. 여자 때문에 매독에 걸렸기 
때문이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밀린 하숙비를 내라며 오복 조르듯 졸라대는 하숙집 
아주머니를 홧김에 떠밀어 버렸더니, 일이 꼬이느라고 그랬는지 그 아주머니는 골절상을 입
었고, 뼈가 붙을 때까지 매월 그 아주머니에게 생계비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고는 
더더욱 여자를 혐오했다고 한다.
  "신은 죽었고, 인간은 초극되어야 할 그 무엇이며, 이 세상은 초인이 지배해야 한다"고 입
에 거품을 물었던 철학자 니체도 매독 환자였다. "용기가 곧 선이며, 힘은 바로 권력이다"라
고 말한 니체도 쇼펜하우어처럼 여자를 멸시했다. 그는 "여자는 우정을 모르기 때문에 친구
를 가질 능력이 없고 기껏해야 암소에 불과하며, 남자에게는 가장 위험한 장난감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매독환자인 철학자 쇼펜하우어
가 그의 명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발표했을 때, 그 책을 읽은 매독 환자인 철학자
니체는 까무라칠 정도로 감명과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세상은 살려고 하는 의지의 표상에 불과하며, 그 살려고 하는 의지는 맹목적이다"라
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충격을 받은 니체는 살려고 하는 의지 대신에 '권력의지'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즉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권력이며, 그 절대권력은 초인으로부터 나와야 한
다"고 그는 역설했다. 같은 매독 환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니체의 '권력의지'는 쇼펜하우어
의 '살려는 의지'를 패러디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 권력의지와 초인을 설파한 니체의 명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
을 공교롭게도 미치광이 히틀러가 탐독을 했고, 그 초인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히틀러는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
렀다.
  이와 같은 역사의 맥락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유태인 학살의 전대미문의 만
행도,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매독 때문이란 사실에 우리는 새삼 놀라게 된다.
  
    비너스의 병(2)
  성병, 즉 비너스의 병은 인간에게만 주신 섹스의  특혜에 대해서 조물주께서 부과하는 '
특별 유흥세'의 고지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결혼 일주일째 된다는 신혼부부가 내 진료실에 찾아왔다. 사연인즉, 결혼 후 3일 
만에 신랑이 오줌을 눌 때마다 적이 불편하더니, 급기야는 팬티에 누런 추상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소변검사를 해보니 급성요도염이었다. 그러면 신부는 어떤 증세를 느끼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여자들은 원래 증세를 잘 못 느끼기 때문에, 일단 같이 검사를 해
야 된다고 설득을 한 후에, 보니 역시 요도염과 질염이 있었다. 두 사람 다 함 께 치료를 해
야 된다고 말했더니, 그러면 두 사람 중에 누가 원흉(?)이냐며 신랑이 내게 물었다. 참으로 
딱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질문과 꼭 같
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걸 따지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이해시키
고는 치료를 했는데, 주사를 맞고 나온 신랑이 내게 단독 비밀회담(?)을 요청하질 않는가. 
그래서 주위를 물리치고 들어봤더니, 사실은 자기가 결혼 전에 화류계에서 특별 유흥세의 
고지서를 몇 번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게 완납된 줄 알았는데 다시 재발된 것 같으니, 부디 
신부에게는 이 사실을 극비에 부쳐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신부 
역시 꼭 같은 부탁의 말씀을 간호사에게 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구차한 부탁의 말씀을 의사
나 간호사에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처녀총각 시절에 자유분방했던 사람들은, 결혼을 앞두고
는 반드시 특별 유흥세가 완납되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한 신혼부부의 경우, 두 사람 모두 자유분방했기에 망정이지, 만간에 신랑이 숫
총각이었다면 신부는 무슨 수로 변명을 할 것이며, 반대로 신부가 숫처녀였다면 신랑은 또 
무슨 재주로 둘러댈 것인가.
  중년 남자들도 흔히 특별 유흥세의 고지서를 갖고 비뇨기과에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고지서를 받을 만한 사건이 있었느냐고 물으면,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노라고 딱 잡아뗀다. 
그렇다면 홍등가나 화류계 아가씨들 말고 다른 어떤 여성과도 관계가 없었느냐고 재차 물으
면 그제야, "하지만 그 여자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그 여성을 극구 변호하고 나선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그 여성이 뭘하는 누구인지는 알 바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부인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부인도 아닌 여자가 자기에게 골풀무의 문짝을 활짝 열어주
었다면, 자기 말고 다른 남자에게도 얼마든지 열어줄 수가 있다는 사실은 왜 모르는지 참으
로 답답한 노릇이다. 아! 어리석고 골빈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니라.
  어떤 남자들은 한 술 더 뜬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면, 있긴 있었는데 맹세코 절대
로 사정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정을 하지 않았으니 비너스의 병에 걸렸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나는 "그 새로운 학설을 국제 비뇨기과학회에 한 번 보고해보라"고 
권한다.
  이런 건 그래도 약과다. 도저히 못말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시기를 하고 나서 골풀무 안
에다 꽁초를 넣어두면 비너스의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혹시 골풀무를 재떨이로 오해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특별 유흥세'가 무서운 것은, 매독이 중추신경을 침범해서 정신분열증을 일으
키는가 하면, 남성의 요도염은 부고환염이 되어 자동 정관수술이 되고, 여성들도 나팔관염이 
되면 자동 난관결찰이 되어버린다. 또 균이 나팔관을 지나 복강 내에 들어가게 되면 복막염
이 되는데, 오른쪽일 경우에는 흔히 맹장염으로 오진되어 배를 째는 수가 있다. 외과 의사들
을 김새게 하는게 바로 이런 경우이다.
  이렇게 볼 때 성병은 비너스의 병이니 화류병이니 해서 그 이름 하나는 기차게 낭만적이
고 시적이지만, 결국은 이놈이 정신분열증으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고, 부고환염이나 나팔
관염을 일으켜 인류의 씨를 말리는 악질임을 알 수가 있다.
  거기다 요즘은 '에이즈'라는 새로운 비너스의 병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섹스의 특혜를 준 대신에, 특별 유흥세
를 부과하고 있는데, 에이즈는 아직도 인간이 납부하기엔 너무나 벅찬 세금이다.
  특히 현대는 바야흐로 섹스의 혁명시대인 동시에 자유방임 시대이다. 청소년들에까지 비
너스의 병이 확산되고 있는 이 '섹스토피아'의 시대에 즈음하여, 우리는 적어도 다음 몇 가
지는 꼭 명심해둬야 하겠다.
  첫째, 비너스의 병은 매춘부나 화류계 여성들만 감염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가질 때는, 무조건 비너스의 병이 옮을 수 있다고 보고 미
리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여성들은 대부분이 비너스의 병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
면 여성들은 해부학적인 골풀무 구조상의 특이성 때문에 별다른 증세가 없다. 이게 바로 비
너스의 병을 만연시키는 원흉이다.
  셋째, 섹스 엔조이 방식의 다양화에 따라, 입이나 항문에도 병균이 감염되어 있다는 사실
이다.
  넷째, 다른 병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비너스의 병은 얼마든지 예방을 할 수가 있기 때문
에 반드시 예방조치를 해야 하며, 일단 걸렸을 때는 지체없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 후유증이 
온 다음에는 광명을 찾아봤자 캄캄할 뿐이다.
  다섯째, 일단 걸렸을 때는 민간요법이나 근거없는 처방에 현혹되어 치료시기를 놓치지 말
라는 것이다. 전문의를 찾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여섯째, 자기가 비너스의 병에 걸렸다고 해서, 억하심정 내지는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우멍거지
  포경이란 말은 귀두가 포피에 덮여 있고, 포피를 위로 올리려고 해도 옴짝달싹 않는 경우
를 말하는데, 순수 우리말로는 '우멍거지'라고 한다. 영어로는 피모시스(Phimosis)라고 하
는데, '닫혀 있다'라는 뜻이다.
  조물주가 어린아이의 귀두 부분을 이렇게 포피로 덮어씌워 놓은 것은, 그 여린 부분을 일
정기간 보호해주기 위한 배려에서이다.
  그러다가 청소년기가 되면 '고추'에서 '살송곳'으로 변신을 하게 되는데, 이때 포피의 입
구가 충분히 열리면서 귀두가 만천하(?)에 자랑스럽게 노출되어 그 위용을 자랑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는 행운아는 전체의 10% 정도이고, 나머지 89%는 포피를 올리면 올라
갔다가 손을 놓으면 도로 내려와버리는, 흡사 고장난 셔터처럼 되어버리는데, 이런 경우를 
이른바 '과잉포피(Redundant Prepuce)'라 하고, 마지막 1%는 포피가 요지부동이고 그냥 오
줌나오는 구멍만 겨우 열려 있는 경우인데, 엄밀한 의미에서의 포경, 즉 피모시스는 이런 상
태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이른바 포경은 미포시스보다는 광이포피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청소년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훌러덩 벗어져야 할 포피가, 어째서 벗어나질 않고 
우멍거지 신세가 되는가 하면, 물론 선천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만성 염증에 의한 
유착이 원인이다. 따라서 평소 엄마가 꼬마들을 목욕시킬 때는, 가급적 귀두를 노출시켜 깨
긋이 씻겨주고, 후에 다시 포피를 원위치에 갖다놓아야 한다. 이렇게만 해준다면, 상당히 많
은 남자들이 우멍거지 신세를 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살송곳이 우멍거지가 되어 있으면, 귀두와 포피의 피지선에서 분부되는 기름이 밖으로 나
오지 못하고 그 속에서 다져져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른바 치구(Smegma)가 형성되기
도 하고, 때로는 여기에 칼슘 성분까지 침착이 되어 시멘트(?)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본인의 위생상태도 엉망이 되지만, 장차 배우자에게 자궁경관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하니 신경쓸 일이다. 거기다 우멍거지인 사람은 또 조루증이 있는 경우
가 많다.
  우멍거지의 결정적인 약점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암의 발생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원적포경
인 피모시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경우를 몇 본 본 적이 있는데, 심지어 어떤 중년 남자는 우멍거지에서 암이 발생하
여 살송곳이 썩어들어가는 데도(?), 미련스레 속칭 조약으로 몇 년간 다스려오다가, 급기야
는 살송곳이 그만 도마뱀 꼬리처럼 뎅겅 떨어져나가버려., 내가 진찰했을 때는 그냥 오줌 구
멍만 빠꼼히 뚫려 있었다. 오 마이 갓!
  이런 일을 보더라도 우멍거지는 반드시 늦기 전에 수술을 해야 된다는 사실이 자명해지는
데, 어떤 민족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해서 태어남과 동시에 포경수술(할레)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우멍거지를 해결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정신분석학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죄책감에 의한 거세 콤플렉스의 보상행위라고 볼 수도 있고, 또한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불
결한 인간을 청결하게 하기 위한 의식인 세례보다 더욱 강력한 의미를 가진 청결의식으로 
볼 수도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할례를 함으로써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긍심의 
표지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선민사상이다.
  그래서 '구약성서' 창세기 34장에 보면, 여호와의 선민임을 자부하는 유태인들이, 이방인
들을 징벌하기 위해 포경수술을 이용하는 기록이 보인다.
  히위족의 추장인 세겜이 평소 야곱의 딸 디나를 짝사랑하다가 어느 날 디나를 잡치하여 
강간을 한 후에 번뻔스럽게도 청혼을 해왔다. 디나를 자기 아내로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야
곱의 아들이 이르기를, "너희들도 우리처럼 모두 할례를 하면 그 청혼을 받아주겠노라"고 
했다.
  그러자 그 날로 추장은 물론이고, 히위족의 모든 남자들이 포경수술을 받았는데, 말이 포
경수술이지 그 당시 의술의 수준을 생각하면, 아마도 살송곳 껍질을 칼로 그냥 무지막지하
게 썩둑 잘라내고는, 거기다 된장(?)을 척 갖다바르고 헝겊으로 친친 감아 싸맸을 게 뻔하
다.
  그러니 수술 후 3일째 되는 날, 살송곳이 퉁퉁 부어오르고 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
을때, 갑자기 야곱의 아들들과 장정들이 기습을 감행하여, 닥치는 대로 살육과 방화 그리고 
약탈을 하여 쑥대밭을 만들어놓고는 납치된 디나를 구출해 왔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라는 유태인의 기질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포경수술이 이렇듯 전략적인 가치가 있을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제갈공명이 하품을 할 일이다.
  요즘 아이들은 흔히 저희들끼리 "야 너 고래 잡았니?"라는 말을 곧잘 주고받는데, 이 말
은 포경수술을 받았느냐는 그런 말이다. 포경은 곧 포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래는 언제쯤 잡는 것이 좋을까? 앞에서 태어나자마자 고래를 잡은 할례를 이
야기했지만, 사실 너무 어린 고래를 잡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수술 후에는 몹시 고
통에 시달리게 되고, 쬐끄만 녀석이 고추장 발라당 까져 있으면, 또래들로부터 놀림을 당하
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년 전에 4살된 꼬마를 데리고 온 한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몇 달 전에 포경수
술을 했는데, 유아원에서 또래들이 그 꼬마의 발랑까진 고추가 신기했던지 걸핏하면 만지
고 잡아당기는 바람에, 혹시 고추에 탈이 나지 않았는지 좀 진찰해달라는 것이었다.  꼬마가 
그후로 유아원에 가지 않겠다고 울고 불고 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니 고래잡이는 사춘기가 임박했을 때 죽 초등학교 4-6학년때가 가장 적기라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땐 자신의 고추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곰티재
  옛날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로 기억된다. 생물시간이었는데, 그날따라 선생님께서 수업을 
좀 일찍 끝내시고는, "에,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내기로 한다. 나머지 시간은 자네들이 평소
에 여성에 대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한 가지만 질문을 받도록 하겠
다. 누가 대표로 질문을 해주기 바란다"라는 폭탄선언(?)을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만 해도 그런 일은 분명 하나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교실 안은 금방 술렁거리고 웅성대고 한쪽에선 킥킥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드디어 
어느 용감한 학생이 일어나, "저, 선생님예. 여자들 '그거' 한번 그려봐주이소"하고는 자리에 
앉자, '와!'하고 학생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모두가 같은 심정이라는 뜻의 함성이었
다. 그러자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자, 조용히! 자네들이 가장 궁금한 것이 뭔지 잘 
알겠다"하시고는 칠판에다 그걸 천천히 그리기 시작하셨다. 교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지
고 일종의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그러나 선생님이 그걸 미처 다 그리시기도 전에, 학생들은 일제히 "에이"하는 실망의 탄
식소리를 내뱉았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그리고 계시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질과 자공, 나
팔관 그리고 난소 같은 그 흔해빠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학생들이 궁금해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고, 바로 골풀무의 그 사실적인 그림이
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여성들이 살송곳을 보고 싶어하는 정도보다, 남성들이 골풀무를 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훨씬 더 강렬할 것이다. 왜냐하면 살송곳은 그 형태가 비교적 단순하기 때
문에, 언뜻봐도 그 전모를 파악할 수가 있지만, 여성의 골풀무는 그 형태가 복잡다양하고, 
게다가 이중의 문으로 닫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을 열지 않으면 여성의 골풀무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성들이 골풀무를 보고 싶어하는 그 충동은 다음 얘기로도 알수가 있다.
  옛날 중국 은나라 시대의 폭군 주왕은 그의 요비 달기와 날마다 질탕하게 놀아났지만, 단 
한번도 그녀의 골풀무를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주왕이 용기를 내어 달기의 골풀무를 한
번 알편(?)하기를 간청했더니, 달기는 서슴없이 자신의 골풀무를 열어보였고, 주왕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그 현묘한 한 송이 연꽃을 이윽히 바라다보았다고 한다.
  골풀무의 형태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대구에서 청도로 가는 중간쯤에 속칭 '곰티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곰티재'라는 이름이 
붙여진 사연은 이렇다.
    옛날 대구에서 청도로 시집간 어느 여인이, 친정 모친의 부고를 받고는 밤중임에도 아
랑곳 않고,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곰티재를 넘어오는데, 난데없이 커다란 곰 한 마리가 나타
났다. 그녀는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어 얼떨결에 치마를 훌렁 뒤집어쓰고는, 길가에 머
리를 처박고 엎드려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곰이 포효를 하며 덮치려다 말고 깜짝 놀라 멈칫하질 않는가. 그
도 그럴 것이 세상에 그런 짐승은, 곰도 머리에 털나고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은은한 달빛 
아래 그 짐승을 보니, 머리가 두 개나 달려 있는 것만도 섬뜩한데, 그 가운데 있는 입은 더
욱 소름이 끼쳤다. 왜냐하면 어떤 짐승도 입이 가로로 찢어져 있는데, 이놈의 짐승은 입이 
세로로 찢어져 있는 데다, 금방 무슨 짐승을 잡아먹었는지 아직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질 않은가. 혼비백산한 곰이 그만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뛰어 달아난 것은 물론이다. 
곰이 튀어 달아났다고 해서 '곰튀재'라고 했다가, 경상도 발음상 '곰티재'가 되었다고 한다.
  남자들은 흔히 산부인과 의사를 보고 '그거' 하나는 눈에 다래끼가 날 정도로 실컷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고 짐짓 부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만도 않다. 
대부분이 탈이 난 골풀무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 현모한  골풀무에 대한 경애심이 환멸감
으로 바뀔 우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느 노련한 산부인과 의사가 심한 대머리였다. 단골 술집에 갈 때마다, "선생님은 어쩌다 
그렇게 민둥산이 되었느냐"며 아가씨들이 깔깔거렸다. 듣다 못한 그 의사가 하루는 점잖게 
한 마디했다. "내가 왜 지독한 대머리가 됐느냐 그 말이지? 그야 그럴 수밖에 없지. 너희들 
그곳을 진찰하느라 맨날 음기의 훈을 쐬게 되니, 머리칼인들 어디 배겨낼 재간이 있겠어? 
안그래 요것들아."
  
    피리와 북
  음악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 중에 이른바 '모방설' 이라는 것이 있다. 음악이란 발
정기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모방한 것에서 비롯했다는 설인데, 여기서 우리는 음악과 섹스의 
함수관계를 눈치챌 수가 있다.
  흔히 인간 정신의 순화와 도덕률의 고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는 '아폴로적' 음악과, 인간이 
가진 희로애락의 성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수단의 측면에서 보는 '디오니소스적' 음악에 속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중국의 악기 중에는 부부를 상징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곧 금과 슬이다.
  우리의 거문고 가야금과 비슷한 것으로, 금은 남편이고 슬은 아내이다. 금은 곧 금할 금이
고 사악한 생각을 금한다는 뜻이며, 그 길이가 3척 6촌 6푼인데, 그것은 일년의 3백 66일을 
뜻한다. 또 위쪽이 둥근 것은 하늘을 의미하고, 아래쪽이 각이 진 것은 땅을 나타낸 것이며, 
줄이 다섯인 것은 오행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금은 하늘이요 남편이며, 슬은 땅이요 아내
이기 때문에 합해서 금슬, 즉 금실이라고 한다. 부부간에 금실이 좋으려면, 심금으로 화답하
는 지음의 경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악기 중에는 섹스를 상징하는 것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피리와 북이다. 피리
는 속이 비어 있으면서도 빳빳하기 때문에 발기한 살송곳을 상징하고, 북은 가죽으로 된 상
자(판도라의 상자를 상기시키라)이기 때문에 골풀무를 상징한다.
  또 피리는 산을 상징하고 그 재료는 대나무이며, 북은 물을 상징하고 그 재료는 가족이다. 
이처럼 피리와 북은 산과 물이기에 남녀의 상징이라는 말이다. 인도 사람들이 멋들어지게 
피리를 불 때, 코브라가 대가리를 번쩍 치켜들고 일어서는 장면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퍽이
나 인상적이다.
  달밝은 밤 구성지게 피리를 불어, 설중의 매화 일지매의 북을 치는데 성공한 임백호의 풍
류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또 흔히들 '펠라치오(Fellatio)'를 '피리 분다'라는 은유로 곧잘 표현하는데, 중국의 성고
전 '금병매'의 여주인공인 반금련의 피리 부는 솜씨는 가히 천하일품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피리가 남성의 살송곳을 뜻한다면, 여성의 그 무서운 정염의 파도를 쥐죽은 듯 잠
재울 수 있는 피리를 우리는 만파식적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시경'에도 보면, 어떤 총각이 한 처녀를 애타게 짝사랑하고 있던 차에, 하루는 그 처녀
가 붉은 관을 총각에게 줬다고 되어 있다. 그 붉은 관은 아마 피리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 
붉은색의 피리는 곧 발기한  살송곳을 상징한다. 처녀가 그걸  총각에게 주었다는 것은,  곧  
그 총각의 애틋한 사랑을 받아들이겠다는 그런 뜻이다. 반대로  처녀가 만약 총각을 애틋하
게 사모했다면, 그 총각은 처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북치는 소년' 디스크 한 
장을 주면 어떨지 모르겠다.
  북은 겨울을 의미하고 또 죽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장례식 때도 북을 친다. 북을 치면서 
북망산으로 가는 것이다. 북은 또 악귀를 몰아내고 병자를 희생시킬 때도 두드린다. 그래서 
북은 회생과 사멸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골풀무가 살송곳을 사멸시키고, 다시 
새생명을 탄생시키는 양면성과 너무나 일치하질 않은가.
  동아프리카에서는 북을 무척 신성시해서, 국왕이나 추장의 북안치소는 출입이 엄격히 통
제되었다고 한다. 비록 국왕이나 추장일지라도 초승달이 뜬 밤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
는데, 초승달은 그믐에 죽었던 달이 다시 재생하기 시작하여 태음의 음기가 활동하기 시작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안치소는 곧 성소이기 때문에, 죄인이 그안으로 도망쳐 들
어가면 굳이 체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여성의 골풀무를 상징하고, 죽음과 재생의 모티브를 지니고 있으며, 거기다 절대 
신성시되었던 북(자명고)을 감히 찢어버린 낙랑공주가, 끝내 사랑에 실패하고 죽어야만 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북을 찢었다는 것은 처녀성의 상실을 의미하
고, 불임을 뜻하는 동시에 신성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오랑캐 짓
  결혼을 영어로는 Marriage라고 하는데, 이 말은 라틴어의 Martius에서 나온 것으로 '남편
'이라는 뜻이며, Matrimony란 말도 역시 라틴어의 Mater에서 나온 말인데, '어머니'란 뜻이
다. 이렇게 볼 때, 결혼이란 남편이 되고 어머니가 된다는 그런 뜻이다. 그래서 '신약성서' 
마가복음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두사람을 한몸이 되게 하셨으미, 사람의 힘으로 나누지 못
하리라"라고 해서, 결혼은 하늘이 맺어준 신성한 의식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인륜지대
사이다.
  한편 '코란'에서는 "성행위와 자손 생산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계약"이라고 해서 상당히 
현실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결혼을 하라. 그리하면 불행해질 것이다. 결혼을 하지 말라, 그래도 불행해질 것
이다"라는 말이나, "결혼이란 새장과 같아서 안에 있는 새는 나가고 싶어하고, 밖에 있는 새
는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결혼이란 결코 행복의 보증서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선지 요즘 신세대들은,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들이여, 결혼을 하라.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남편을 철학자로 만들 수는 있다"라고.
  또 이사도라 던컨이 하루는 버나드 쇼에게, "당신과 결혼을 해서 두뇌는 당신을 닮고 용
모는 나를 닮은 아이를 낳는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은근히 자기의 미모를 자랑했더니 
"만일 그 반대로 된다면 어쩌겠소?"하고 버나드 쇼가 그답게 비꼬아주었다고 한다.
  사실 결혼이라는 것은 위대한 천재들에게는 방해가 되고, 바보들에게는 득이 되며, 우리 
같은 필부들에게는 필요악이다.
  옛날에는 결혼의 일차적인 목적은, 대를 이을 자손의생산에 있었다. 그래서 한 고을에 노
총각 노처녀가 많으면 목민관이 문책을 당했다고 하며, 그리스나 로마에서도 홀아비는 공식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했는가. 남편은 하늘이요, 아내는 땅이었다. 그래서 여필종부였다. 심
지어 민며느리는 신랑감이 죽어버리면, 시집도 못 가보고 생과부 신세가 되었고, 신랑은 어
리고 신부는 성숙했기 때문에, 성숙한 신부의 성적 발산을 억누르기 위해, 시어머니는 며느
리를 눈코 뜰 새 없이 혹사시켰다.
  여자는 이혼도 재혼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칠거지악을 만들어, 얼마든지 아내
를 내칠 수가 있었다. 그래도 쥐꼬리만한 양심은 있었던지 삼불거라고 해서, 세가지 경우에 
한해서는 내쫓지 않았다고 한다.
  또 아내를 내쫓을 때는 남편의 저고리 섶을 삼각형으로 잘라서 주었다는데, 그게 꼭 나비
같이 생겼다고 해서 '접포'라고 했다. 그 가련한 소박대기는 그 접포를 갖고 꼭두새벽에 성
황당에 나가 있다가, 그날 맨 처음 만나는 남자와 무조건 같이 살아야 했다고 하니, 한많은 
'나비부인'이었던 셈이다.
  그리스 로마에서도 간음과 불임의 두 가지 경우에는 아내를 내쫓았다는데, 이것은 이거지
악인 셈이고, '구약성서'에는 '아내가 깨끗하지 못할 때'는 내쫓아도 된다고 했으니, 이건 
또 일거지악인 셈이다. 또 "우리는 즐기기 위해 창녀를  두고, 건강을 위해 첩을 두며, 자녀
를 위해 아내를 둔다"라고  기고만장했던 데모스테네스는, 요즘  같으면 귀싸대기 얻어맞기 
꼭 알맞을 성싶다.
  사실 결혼반지라는 것도 알고 보면, 중세 유럽에서 신불르 팔아먹는 매매결혼 때 신란이, 
'이제 너는 내 것이다'라며 끼워주었던 소유물로서의 표지였다. 그러니 비록 결혼반지가 몇 
캐럿의 다이아몬드일지라도, 그걸 받고 입이 함박처럼 벌어지는 신부도, 이런 사실을 안다면 
심기가 별로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호화혼수 문제이다. '딸 가진 죄인'이란 말
도 있듯이, 특히 속칭 '사'자 붙은 신랑감일 경우에는 신부측의 부담이 결코 만만치가 않
다. 혼수적게 해왔다고 며느리를 콩 볶듯이 달달 볶아, 끝내 며느리가 자살하도록 만든 시
어머니도 있고, 자기가 바라던 만큼 해오지 않았다고 신부를 복날 개 패듯이 두들겨 팬 신
랑도 있다. 이런 인간 말종들을 위해 문자 한 번 써야겠다. 자고로 왈 "혼사에 있어서 재물
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 짓이니라."
  
    콩쥐와 신데렐라
  사람의 몸에서 가장 천덕꾸러기인 것이 발이다. 손과 비교해보면, 그 이유가 더욱 분명해
진다.
  발은 신체의 맨 아래쪽에 있으면서, 무거운 체중을 떠받치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손이 할 
일이 있으니 가자고 하면 두 말없이 모셔다드린다. 진 데 마른 데 가릴 것 없이 말이다.
  그런데 일이 잘 되면 상금과 트로피는 손이 받는다. 그러나 만간에 일이 잘못되면, 그건 
순전히 손발이 안 맞아서 그렇다며, 허물을 발에다 몽땅 뒤집어 씌어버린다. 또 손으로 얻어
맞은 것보다는 발로 채인 것이 훨씬 더 분하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장갑은 벗어서 챙겨
두지만, 양말은 벗으면 집어던져버리고, 질병중에서도 가장 하찮게 여기는 것도 발가락의 무
좀이다.
  이렇듯 천덕꾸러기인 발이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그렇지만도 않다.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섹스 어필한 부분으로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발은 작게 만들어 더욱 섹스 어필하게 보이도록하기 위해 만든 것이 이른바 
전족이다. 전족은 옛날 중국의 특산물(?)이다. 어릴 때부터 발을 무지막지하게 싸매어 크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발은 자그마하고 활처럼 휘어 기형이 된다. 그래서 걷
기가 무척 불편해져 오리걸음처럼 뒤뚱거리게 되지만, 그런 걸음걸이가 골반과 회음부에 탄
력을 길러주게 되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전족은 섬예향연이라야 좋다고 한다. 즉 섬세하고 뾰족하며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보들보
들한 것 말이다. 거기다 전족의 모양이 꼭 연꽃과 비슷하다고 해서 금련이라고 했는데, 연꽃
이 골풀무의 상징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금련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남자를 '연벽
이 있다'고 했다. 전족으로 즐기는 성희도 무려 52가지나 있다고 하니,  역시 중국다운 면모
라 하겠다.
  발이 이렇듯 섹스 어필한다면, 버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예쁜 발에 하이얀 버선은 흡사 
외씨같이 날렵하다. 또 버선은 한 번 신고 벗는 데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신을 때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용을 써야 하고, 벗을 때도 혼자서는 도저히 벗질 못해서 다른 사람이 잡아
당겨 주기도 하는데, 그러다 버선이 쑥 빠지는 순간 두 사람 모두 뒤로 벌렁 나동그라지는 
해프닝이 벌어지곤 한다. 그것은 바로 은장도를 품고 다녔던 우리네 부녀자들의 서릿발 같
은 정절을 말해준다. 요즘의 스타킹과 비교해보라. 신을땐 그냥 펴 올리면 되고, 벗을 때도 
그대로 말아 내리면 된다. 식은 죽 먹기다. 거기다 올이 하나만 빠져도 그냥 일사천리로 좍 
올이 나간다. 손만 대면 쩍 벌어지는 봉선화 씨앗처럼 말이다. 이전 바로 요즘의 인스턴트 
섹스를 말해준다.
  그 다음은 신발이다. 여성의 신발은 누가 뭐래도 골풀무의 상징이다. 그래서 옛날 기생들
의 화대는 대략 신발 한 켤레 값과 비슷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투르카나족의 여인들은 먼 길을 떠난 남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때는, 
자기의 신발을 공중에 던져서 땅에 떨어진 신발 두 짝이 마주보면, 남편이 객사한 걸로 판
단한다고 한다.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는 우리 말도 다 같은 맥락이다. 왜냐하면 여자의 고
무신은 골풀무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주석에서 흥이 도도해지면, 느닷없이 아가씨의 고무신에다 술을 부어 돌려가며 
마시는 수가 있는데, 이것은 골풀무에다 술을 부어 마시는 그 상징성을 만끽하기 위함이다.
  콩쥐가 끝내 관찰사와 결혼하게 되고, 신데렐라가 결국 왕자와 결혼하게 되는 행운은, 두 
사람 모두 무척이나 아름다운 신발 때문이었다. 그 신발 한 짝을 주운 관찰사나 왕자는, 그 
아름다운 신발만큼이나 아름다운 골풀무의 주인공을 찾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계모의 딸들이 기를 쓰고 그 신발을 신어보았지만 발이 커서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콩쥐나 신데렐라의 발이 무척 작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 결국 작고 아름다운 골풀
무의 주인공에게 영광은 돌아갔던 것이다.
  
    도깨비의 성적 상징
  서양에 '님프'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도깨비'가 있다. 지금까지의 인문과학적인 연구 결
과에 의하면, 도깨비는 사람들의 불안정한 마음의 투사라고 한다. 특히 전란이 휩쓸고 간 후
에 곧잘 도깨비 소동이 일어나곤 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박모 교수가 도깨비를 절굿공이와 남정네를 뜻하는 말의 합성어인 '돗구아비'라고 새롭게 
주장함으로써, 도깨비에대한 흥미를 새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박교수의 학설이 상당한 신빙
성이 있다고 보고, 도깨비 즉 돗구아비의 성적인 측면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도깨비의 정체는 보통 절굿공이나 홍두깨, 방망이나 빗자루 또는 부지깽이 등이다. 그 생
긴 모양이나 용도로 볼 때, 그것들은 모두가 살송곳의 상징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동시에 
그것들은 주로 여자들이 사용하는 연장들이다. 즉 숙녀용이다. 살송곳이 숙녀용인 것처럼 말
이다. 더구나 그런 연장들이 도깨비로 둔갑을 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피가 묻어 있어야 한다. 
여자들이 그 연장을 사용하다 다쳐서 묻힌 피, 그것은 살송곳에 묻어 있는 골풀무의 피다.
  또 도깨비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게 아니고, 밤에만 나타난다. 밤이란 곧 섹스의 시
각이다. 더구나 도깨비가 나타나는 장소도 그렇다. 아무데서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으슥
하고 후미진 곳,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그런 후미진 곳은 바로 섹스를 
하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다. 
  또 재미있는 것은 도깨비를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두 사람 이상이 
밤길을 가다가 도깨비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없다. 도깨비는 혼자 만나는 것이다. 혼자라는 
것은, 섹스의 일 대 일 행위를 뜻한다. 거기다 여자 도깨비는 없고 전부가 남자 도깨비뿐인 
것은, 그것이 '돗구아비'임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아닌가 싶다.
  도깨비의 속성을 봐도 그렇다. 초인적인 능력(힘)을 갖고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어처구
니없이 어리석다. 그것은 바로 남정네들을 의미한다. 여자보다  힘이 월등히 세지만, 그만큼 
어리석은 것이 남정네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도깨비란 놈은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다짜고짜 씨름을 걸어온다
는 사실이다. 왜 하필이면 씨름일까? 씨름은 옛날 남정네들의 전용 오락이었고, 남정네들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였다. 여자들이 보는 앞에서 남자다운 힘을 과시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이
었다.
  씨름은 '샅바'라고 하는 띠를 잡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힘 겨루기다. '샅'은 사타구니이
고 '바'는 밧줄이다. 그러니 씨름은 남정네들이 사타구니를 잡고 승부를 가리는, 다시 말하
면 살송곳의 힘겨루기의 상징이다.
  도깨비의 식성을 보면 또한 재미있다. 보신탕과 묵을 좋아하고,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보신탕과 막걸리는 바로 남정네들의 음식이고, 묵은 여성의 상징이다.
  이렇듯 도깨비가 남정네, 그것도 씨름꾼일 정도로 완력이 쎈 남정네를 뜻하고, 그 남정네
의 살송곳, 그것도 절굿공이처럼 장대하고 힘이 좋은 살송곳을 상징한다고 볼 때, 그것은 생
산의 풍요를 중요시했던 농경시대 사람들의 다산의 염원인 동시에, 남근숭배사상의 흔적으
로 볼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바로 도깨비가 갖고 있
는 방망이, 즉 도깨비 방망이다. 그것은 무소불능이요 만능의 방망이다. 일개 민초가 일약 
거부가 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 그것은 민초들의 한이 투사된 방망이다. 그 방망이 하나
만 있으면, 천덕꾸러기 민초일지라도 하루아침에 왕후장상의 반열에 오를 수가 있다. 도깨비 
방망이에 대한 민초들의 비원의 투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자와 여자는 적인가(1)
  인간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어 있고, 이 양성의 조화로운 공존공영이야말로, 인류 번영
의 기본적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사정은 그렇지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공존공영은커
녕, 남성의 일방적인 가학과 여성의 속절없는 피학의 역학적 관계였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
는 남성과 여성의 투쟁사이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지만,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의 사관을 원
용한다면, 여성의 도전과 남성의 응전의 역사인 셈이다.
  그러나 고대에서 중세까지 여성의 도전은 실로 미미한 것이었고, 중세 이후부터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은 같을 수가 없고, 여성은 오직 남성을 위해
서만 그 존재 가치가 있다"라며 기고만장한 남성들의 횡포에, 여성들은 그야말로 피눈물나
는 도전의 항쟁을 계속했던 것이다.
  여성은 노예나 동산 부동산처럼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도 보
면, "처녀를 꾀어 동침한 자는, 그 처녀의 결혼 지참금만큼의 돈을 줘야 한다"고 되어 있다. 
여성은 재산에 불과하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아닌  민사소송의 손해배상으로 족하다는 그런 
뜻이다.
  또 자녀도 당연히 남성의 소유였다. 왜냐하면 여성은 단순히 하나의 밭에 불과하고, 남성
이 거기다 씨를 뿌린 농부이기 때문에 그 수확도 당연히 농부의 것이라는 논리였다. 정액을 
뜻하는 Semen이라는 말이 원래 씨앗을 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여성은 얌전해야 하고 수동적이어야 하며, 오로지 남성에게 헌신적이기만 하면 그
로써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여성들도 그런 게 당연한 걸로 알았고, 자기 남편을 
Lord나 Master라는 존칭으로 불렀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
의 머리는 남자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린도전서 11
장)"라고 했을 정도다.
  유태인들이 기도할 때도 "오 하나님, 여자는 비참하오니 내 자손은 딸이 나지 않게 하옵
시고, 나를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중국의 시인 백낙천도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여, 결코 여성으로는 태어나지 말지니, 평
생의 고락이 남의 손에 달렸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뜻이다.
  도미니카의 수도사인 스프랭커 씨는 한 술 더 떴다. "여자는 우정의 적이요, 자연의 죄악
이며, 지능은 어린애 수준인 주제에, 야하게 화장을 하고 남자를 호리는 색마이다. 또한 남
자의 굽은 갈비뼈로 만들었기 때문에 항상 비뚤어져 있고, 남자와는 사사건건 반대쪽이다"
라고 말이다.
  루소도 한 마디 했다. "여자는 약하고 수동적이어야 하고, 남자의 보호하에 있어야 하며, 
과학은 물론 천재적인 업적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참깨 들깨 노는데 아주까리 못 놀겠는가. 쇼펜하우어도 거들었다. "여자가 아기의 보육자
나 교육자로 적합하다는 것은 그만큼 유치하기 때문에, 돈을 버는 것은 남자의 의무이고, 그
걸 소비하는 것은 여자의 권리로 알고 있고, 또 속이는 것이 여자의 속성이므로 다른 사람
의 거짓은 잘도 알아낸다"라고.
  오죽하면(?) 점잖은 공자께서도,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어려우니, 가까이하면 버르장머
리가 없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고 한탄했을까.
  또 있다. '신약성서' 전도서에 보면, "마음이 덧과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자는 죽
음보다 독한 자"라고 했다. 우리의 속담도 있다. "여자는 사흘만 패지 않으면 엉덩이에 꼬리
가 난다"는 것 말이다. 또 아녀자라고 해서 여자와 아이를 동격으로 취급했다.
  이러니 남성들의 여성들에 대한 가학은 동서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성처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고부터, 여성이 남성의 구원에 일익을 담
당했다는 이유로 다수 누그러지기 시작해서, 문예부흥이나 프랑스혁명 같은 대사건을 거치
면서, 이른바 여성해방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지긋지긋한 압박과 설움에서의 해
방 말이다.
  
    남자와 여자는 적인가(2)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암수가 서로 아무런 문제 없이, 그야말로 연리지의 관계를 유지하
고 있는데, 유독 인간만이 복잡미묘한 문제가 꼬리를 물고 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의하면, 여자는 남자를 돕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당시 
남성 신이었던 여호와를 신봉했던 유태인들의 남존여비 풍조의 반영일 뿐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인류의 역사는 성적으로 여성의도전에 대한 남성의 응전의 역사로 
볼 수가 있는데, 그 결과는 언제나 여성측의 KO 내지는 판정패였다.
  사람은 태어나면, 남성은 남성으로 처신하도록 교육받고, 여성은 여성으로 처신하도록 교
육을 받는다. 이게 바로 사회통념의 '이중 기준(Double Standard)'이라는 것이며, 남녀 골육
상쟁의 원흉이라고 한다.
  사실 여자 같은 남자가 있어서 오히려 여자의 역할이 더 어울리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남자 같은 여자도 있어서 차라리 남자의 역할이 더 걸맞는 경우도 있지만, 그 잔인한 '이
중 기준'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여성의 몸으로 남장을 하고 군대를  지휘하여, 패배 일
보 직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중 기준'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끝내 화
형을 당해야만 했던 잔 다르크의 비극이 이를 잘 말해준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우리의 '이중 구조'와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여성들은 그 빌어먹을 이중 기준인지 삼중 기준인지 하는 고약한 통념에 거세게 
도전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 경우에 가장 거추장스러운 것이 유방이었다.
  그렇다고 유방을 왕창 들어낼 수도 없고, 궁여지책으로 '노 브라' 캠페인을 벌였는데, 만
천하의 여성들에게 브래지어를 벗어던지라며, 페미니스트들은 입에 거품을 물었다.
  여인 천하인 아마존의 여인국에서는, 활을 쏠 때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한쪽 유방을 어
릴 때부터 잘나내 버린다는데, 여기서 힌트를 얻은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남성에 도전하는 여성에게 있어서 또 하나 치욕적인 것이 생리인데, 이들은 생리대를 착
용할 때마다 절감하는 그 비통함을 해결하기 위해, 아예 자궁을 왕창 들어내 버린다고 한다.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길거리로 뛰쳐나가 시위를 벌였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왜 남성이어야만 하느냐는 것이었다. 여성으로 하면 뭐가 덧나느냐는 것이다. 만일 여성으로 
바꿀 수가 없다면, 중성으로라도 해야만 남녀 평등에 부합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남
자는 결혼 전이나 후나 '미스터'로 남아 있는데, 여자는 왜 '미스'에서 '미시즈'로 바뀌어
야 하느냐고 항의하고, '미즈'로 통일하자며 악을 쓰고 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이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핸디캡은 바로 성교를 
할 때이다. 남자보다 우수했으면 우수했지 결코 못할 건 개코도 없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그들도, 성교를 할 때 남자의 살송곳이 그들의 몸을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는 것이다. 오 마이갓!
  하기야 인류역사상 남성의 횡포에 대한 여성의 한맥원루가 얼마나 구천에 사무쳤으면, 여
성들이 이토록 오월비상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남녀평등이란 것은, '아침밥은 내가 지었으니, 저녁밥은 네가 지어라'든가, '첫 애 
기는 내가 낳았으니, 둘째는 네가 낳아라'는 그런 식이 아니다. 어느  한쪽이 우세하거나 열
등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생리적 적성에 따라 조화롭게 맡은  바 일을 분담해나갈 때, 비로
소 남녀는 평등해지는 것이다.
  이제 외국에서는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가서 요리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빨래하기 시장보
기도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모습이 이젠 결코 어색하지 않은 정도가 됐다.
  여성들이여, 이제 그대들은 도전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응전을 해야 할 시기에까지 왔
다. 그러니 이젠 그 막강한 힘으로, 남성들을 흔들지 말고 요람을 흔들어라. 왜냐하면, 요람
을 흔드는 손이 세계를 흔들기 때문이다. 
  
    무지개의 성적 상징
  "무지개 타고 가는 하늘의 황금마차......" 중년층의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시작되는 대중가
요를 아련한 추억의노래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백설희의 낭랑한 목소리로 
말이다.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뛴다는 어느 시인도 있지만, 무지개는 원래가 아이들의 것이다. 무
지개는 아이들에게 무한한 꿈을 꾸게 하고,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아이들은 무지
개의 뿌리가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 뿌리가 박힌 곳을  파면 온갖 금은보화가 나올 것이라
고 믿기로 했다.
  어렸을 적에, 비가 온 뒤 칠색영롱한 무지개가 선 것을 보고, 무지개 뿌리를 파면 영롱한 
구슬(그땐 한창 구슬치기로 열을 올리던 때였다)이 나온다고 누군가가 꼬드기는 바람에, 우
리 개구쟁이들이 떼를 지어 무지개 뿌리를 케겠다고, 온 산과 들을 조랑말처럼 내달렸던 기
억이 아직도 새롭다.
  무지개 중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것이 유명하다. 하나님이 사악해진 인간을 홍수로 멸
망시키고 나서, 다시는 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키지 않겠노라며, 노아에게 약속의 증표로 보여
준 것이 바로 무지개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무지개를 희망의 상징으로 본다. 슬프고 절망적
일 때, 그들은 하늘을 쳐다본다고 한다. 무지개가 뜨는 저 하늘을 말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체크메이트(Checkmate)라는 그림이 있다. 그것은 인간과 악
마가 체스(서양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인데, 악마가  외통장군(Checkmate)을 불러 인간이 도
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막다른 코너에 몰리고 있는 상황의 그림이다. 인간에게는 끝내 구원
의 묘수는 없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 그림을 감상하던 한 유태인이 너무나 절망적인 인간의 상황을 보고는, 그만 비명을 지
르다가 세번씩이나 경비원에 의해 쫓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네번째 다시 들어와서, 과연 빠
져나갈 묘수가 없을까 하고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았더니 신통하게도 딱 한 가지 빠져나
갈 구멍이 있더란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하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것이다. 거기 기필
코 찬란한 무지개가 서리라고 확신하면서.....
  이렇듯 꿈과 희망의 상징인 무지개를, 사람들은 또한 섹스의 상징으로도 보았다. 무지개는 
우선 그 색깔이 찬란하다. 다시 말하면 바로 색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
이다. 그렇다면 칠색영롱한 그 책의 다리를 누가 건너는가. 바로 선녀들이다. 하늘나라 선녀
들이 그 다리를 건너 땅으로 내려온다. 뭣하러 오는가. 목욕하러 온다. 선녀탕에 목욕하러 
내려온다. 이때 나무꾼 총각이 나타나서 한 선녀의 옷을 감춤으로써, 아이를 둘씩이나 낳고 
살았다는 우리네 전설은, 바로 무지개와 섹스의 함수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무지개를 어떤 곤충(파충류)으로 봤던 게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무지개를 
뜻하는 홍, 체, 그리고 동자에 모두 벌레충자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네들이 좋아하는 커
다란 뱀이나 용으로 본 게 아닌가 싶다.
  또 '시경'에 보면, "동녘 하늘에 무지개 섰다/ 결코 손가락질은 하지 마라/ 여자란 언젠
가는 시집가는 법/ 부모형제 떠나서 시집가는 법/  무지개를 보면 아가씨들은/ 결혼하고 싶
어서 안달이다/ 정절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부모님 말씀도 아랑곳없이"라는 구절이  있다.  
무지개를 보면 아가씨들이 환장을 해서, 정절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고, 부모님 말씀도  귀
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라고 한 걸 보면, 무지개가 아가씨들을 발정시킨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또 이런 대목도 있다. "남산 위에 뭉개구름/ 아침 무지개 섰다/ 예쁜 아가씨들은/ 사랑에 
굶주리네"
  하늘의 선녀들도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는 판에, 아가씨들의 마음이 남산 위의 뭉게구름처
럼 두둥실 달뜨고, 앙가슴이 싱숭생숭해지고 빠담빠담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유토피아는 여성의 나라
  인간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존재다. 왜냐하면 현실이란 언제나 고통의 연속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꿈을 꾼다. 생리적인 꿈이 아니라 정신적인 꿈 말이다. 고통이 없
고 즐거움만 있는 그런 곳을 꿈꾸게 된다. 그런 곳이 바로 유토피아 또는 이상향이다.
  서양에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위시해서, 플라톤의 '국가',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베이컨의 '뉴 아틀란티스', 제임스 힐턴의 '샹글리라 잃어버린 지평선', 보부아르의 '
아무도 죽지 않는 나라' 그리고 올더스 헉슬리의 '멋있는 신세계' 등이 있다. 동양에는 도
연명의 '무릉도원'을 비롯해서 열자의 '종북국' 노자의 '소국과민', 장자의 '묘고사산' 그리
고 '산해경'에 나오는 '청요산'등이 있다.
  또 유토피아와는 좀 다르지만, 인간이 목숨을 걸고라서도 얻으려고 하는 부귀영화(일종의 
현실적 유토피아)도, 지나고 보면 한낱 덧없고  헛된 것일 뿐이라는 달관의 경지를 '꿈'이라
는 비유를 통해서 보여준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남가일몽, 한단지몽 그리고 화서지몽이다.
  그런데, 그 많은 유토피아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고통없이  즐겁게 그리고 병들지 
않고 늙지도 않고 오래오래 살고지고'라는 것이다. 동양의 신선사상도  바로 이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백발이 성성하게 늙기는 늙되, 그 얼굴은 홍안 소
년같은 그런 백발홍안이었다.
  이러한 인간의 욕심을 나타낸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 천금의 재산을 가지겠느냐, 
아니면 나라의 통치자가 되겠느냐, 그것도 아니면 학을 타고 노니는 신선이 되겠느냐고 물
었더니, 기왕이면 나라의 통치자가 되어 천금의 재산을 갖고,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노닐고 
싶노라고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려 보인 유토피아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그것은, 유토피아는 
어디까지나 '여성원리'라는 사실이다. 즉 유토피아는 여성적  사회라는 것이다. 여성적 사회
는 곧 농경사회를 말한다. 농경사회는 태모신인 대지의 다산과  풍요에 의지해서 사는 사회
이며, 거기에 필수적인 것은 '물'이다.
  열자의 '종북국'에도 마시면 불로장수한다는 신천이 있고,  도연명의 '무릉도원'에도 복사
꽃이 떠내려오는 맑은 물이 있다. 종교가 제시하는 유토피아도  예외는 아니다. 즉, 에덴 동
산에도 네 줄기의 강물이 있고 그 한가운데 생명의 나무가  있다. 또 코란이 제시하는 유토
피아에도 맑은 샘물이 있고, 젖이 흐르는 냇물이 있는가 하면 술이 흐르는 냇물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여성원리이다. 유토피아가 여성원리라는 결정적인(?)  단서는 '산해경'에 나
온다. 거기에 신이 특별히 감추어놓은 유토피아가 나오는데,  그 이름은 청요산이다. 거기에
는 대합조개가 많다. 대합조개는 여성의 골풀무를 상징한다. 거기에 진수라는 냇물이 흐르고 
있다.
  또 요라는 새가 있는데, 눈과 꼬리가 빨란 색이고, 그 새를 잡아먹으면 아이를 많이 낳는
다고 하며, 순초라는 풀은 그 열매가 붉고, 그걸 먹으면 얼굴이 고와진다고 한다. 더구나 그 
청요산을 다시리는 신선은, 허리가 가늘고 치아가 눈처럼 희며 귀고리를 달고 있다고 했으
니, 청요산이라는 유토피아는 바로 여신선이 다스리는 지극히 여성적인 곳임을 알 수가 있
다.
  이렇듯 인간이 애타게 그리는 유토피아가 남성이 아닌 여성원리로 되어 있다는 것은, 그
곳이 태모신이 다스리는 곳, 다시 말해서 인간이 가장 행복하고 아늑하게 살았던 본향인 어
머니의 자궁을 뜻하며, 정신분석학적 모태회귀의 염원일 것이다.
  그러나 일단 태어난 인간이 다시 자궁 속으로 들어가기는 영글렀듯이, 유토피아라는 말도 
끝내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인 걸 어쩌랴.
  아! 밤은 고통의 현실인 따을 딛고, 머리는 즐거움의 유토피아인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인
간존재의 부조리여!
  
    양념으로서의 섹스
  식과 색은 모든 생물의 기본적인 본성이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생
활에서의 대화에도 알게 모르게 섹스가 양념처럼 묻어 들어가는 걸 볼 수가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
  어떤 여자가 길에서 남자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그 여자의 친구
가 "왜 남의 남자를 붙들고 핏대를 올리느냐"고 하자 그 여자 왈, "얘 글쎄 내 말 좀 들어
봐. 내가 좀 바삐 가느라고 저 사람과 약간 부딪쳤는데, 아 글쎄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
는데도, 고만한 일로 성을 뭣같이 내며 욕을 하잖아. 그래 내가 가만 있게 됐어?"
  옛날 농촌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해프닝이다. 그해따라 고추농사가 흉년이 되자, 평소 아
들을 못 낳은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오던 시어머니가,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를 발로 
툭 차며 심통을 부린다. "흥! 우리집 고추농사가 잘될 리가 없지. 암 없구말구. 잘되면 지 그
리지 지 글러"하며 며느리 들으라고 일부러 목청을 높인다. 그 소릴 들은 며느리는 속이 부
글거리지만 대들지는 못하고, 입이 석 자나 나온 채 뒤안으로 휭하니 가버린다.
  어떤 주부가 우유배달 아저씨에게 불평을 한다. "아저씨, 이번 달에는 우유를 큰 걸 넣었
다가 작은 걸 넣었다가 하는 바람에, 우유값 계산이 영 헷갈려 죽겠어요. 다음부터는 큰 걸
로만 계속 넣어주세요." 그러자 우유배달 아저씨가 미안하게 됐다며 이렇게 말한다. "아이
구, 이거 미안합니다. 큰 것이 좀 달리는 바람에 작은 걸 넣어드렸는데, 다음부터는 계속 큰 
걸로 넣어드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오랜만에 친구끼리 만났다. "야아 이거 얼마만인가. 부고가 안 날아와서 살아 있는 줄은 
알았네만 정말 얼굴 잊어버리겠네." "이 사람, 사돈 남말하고 있네. 그런데 듣자하니 자넨 
요즘 돈 좀 벌어갖고 목에 깁스하고 다닌다던데 그게 사실인가?" "뭐 약간 벌긴 벌었지. 그
런데 자넨 요즘 뭘 하고 있나?" "말 말게.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새끼 먹여살리
느라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뛰고는 있네만 영 신통찮네."
  돈 씀씀이가 헤픈 마누라에게 남편이 열을 올린다. "아니 이것봐. 내가 뭐 돈을 찍어내는 
줄 아나 주워오는 줄 아나. 이건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아냐 이거. 쥐꼬리 월급쟁이가 이거 
어디 해먹겠어? 그래 내딴에는 X이 빠지도록 벌어오는데, 도대체 여편네가 이 모양이니 나 
원 기가 막혀서".
  어느 노인이 아가씨와 치정극을 벌였다는 보도를 두고, 아주머니들이 입방아다. "하이고 
글쎄, 칠십이 넘은 영감탱이가 손녀같은 아가씨하고 그게 무신 꼬라지고." "와 아이라. 그노
무 영감쟁이도 주책이지. 시상에 우째 그랄 수가 있노 엉이."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 
아주머니가 이의를 제기한다. " 이 여편네들이 와 이캐쌌노 참말로. 영감이라고 아가씨하고 
그거 몬하라는 법 있나. 와 늙은 말이 콩 마다카능거 봤나."
  친구간의 대화 한 토막을 보자. "자네 그 친구 알지." "아하, 그 친구. 그 국제 얌체 말이
지?" "맞아. 그 국제가 글쎄 꺽다리 김군의 돈을 빌려가서는 꿀꺽해버렸대. 자네도 알다시피 
김군도 겨우 입에 풀칠하는 형편이 아닌가." "누가 아니래. 국제 얌체 그 자식도 구제불능이
야. 세상에, 어린애 XX에 밥풀을 떼어먹어도 유분수지."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하소연을 한다. "이 사람아. 난 이제 쫄딱 망했네." "아니, 망하다
니. 뭐가 우째 됐는데." "말도 말게. 얼마전에 친척 재정보증을 섰는데, 이게 사고가 났어." 
"그럼 자네가 덮어썼다는 기가?" "그뿐이 아니네. 마누라가 하던 계마저 깨져버렸다네. 국 
쏟고 뭐 디인가 카디이. 내 참 더러버서."
  어떤 아주머니가 일억짜리 복권에 당첨됐다는 소문이 이웃에 좍 퍼졌다.
  "글쎄, 그 집은 살기도 괜찮은 편인데, 거기다 일억짜리 복권까지. 아이구, 복도 많지 뭐
니."
  "누가 아니래. 거 왜 이런 말 있잖니? X복 많은 년은 엎어져도 쇠말뚝에 엎어진다고."




    거북을 물고 늘어진 조개
  십여 년 전 미국의 게리하트 상원 의원이 민주당 대통령후보경선을 포기한 것은, 어느 여
배우와의 스캔들 때문이었다. 또 영국의 국회의원들이 이른바 섹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일도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또 섹스 스캔들에 휘말려,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클
린턴은 이 사건으로 하마터면 현직 대통령직에서 중도 하차할 뻔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역사상 그 예가 한둘이 아니다. 남자는 여자에 대해서는 누구
나 도둑의 심보를 갖고 있다. 특히 영웅호걸은 더더욱 그렇다. 이런 남자들의 심보를 노린 
것으로, 작게는 자기 여편내를 미끼로 하는 이른바 '왕팔'이 있고, 크게는 미인을 미끼로 
던지는 이른바 '미인계'가 있다. '삼국지'의 영웅 여포가 미인계에 의해 나가 떨어졌고, 월
나라 임금 구천이 미인 서시를 미끼로 오나라 임금 부차를 낚은 게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남자들이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 도둑심보를 풍자한 우스개가 있다. 남자들
이 모여서 여자들에 대한 품평회를 열고 있었는데, 거기서 갑론을박 끝에 나온 최종 결론은, 
뭐니뭐니해도 과부가 최고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중의 한 남자가 무릎을 탁 치며, "맞다 
맞어. 바로 그거야. 내 마누라를 과부로 만들면 되겠구먼"하더란다.
  옛날 어느 서당 훈장님이 있었는데, 평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주호에다 색광이었다. 그
러던 그도 세월은 이길 수가 없었던지, 어느 날 병이 들어 몸져눕게 되었다. 하루는 제자들
ㄹ이 문병을 오면서, 평소 훈장님이 워낙 약주를 좋아하셨기에, 마지막으로 약주 한 잔 대접
하고자 술을 사왔다. 그들이 임종을 눈앞에 둔 노 훈장님께, "훈장님, 평소에 가장 좋아하시
던 것을 저희들이 갖고 왔습니다. 일어나시지요"하며 훈장님을 부축하니, 죽은 듯이 눈을 감
고 있던 훈장님이 금새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눈을 번쩍 뜨더니 "오! 여잔가"하더란다.
  남자들이 이토록 색에 약하다는 사실을 여자들은 십분 이용한다. 그래서 속칭 여자들은 
남자를 '문다'고 말하고, 남자는 '물린다'고 한다.
  이렇게 남자를 무는 여자의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꽃뱀'이다. 또 평소 별 볼일 없던 여자
가 어느 날 갑자기 비까번쩍하게 차리고 다니면 주위에서, "흥, 저 여자 굵직한 놈팡이 하
나 문 모양이지?"라며 이죽거린다. 그래서 물린 남자는 또 이렇게 투덜거린다. "개구리한테 
뭐 물린다 카딩이, 내 참 더러버서....." 어느 난봉꾼이 기생에게 물려서 가산을 탕진하고는 
"그놈의 구멍은 무슨 놈의 구멍인지, 논밭 다 넣었는데도 아직도 입맛만 다시고 있으니....."
하며 탄식을 했더란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남자들에 대해 초연한가. 천만의 말씀이다. 다음 이야기를 보자.
  어떤 젊은 과부가 말시장 앞에서 두부를 팔고 있었는데, 때마침 한 쌍의 말이 시끌벅적하
게 운우의 한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과부는 그만 삭신이 노글노글해지고 말았다. 
말들의 한판 잔치가 끝났을 때 보니, 과부는 얼마나 용을 썼던지, 소래기안에 가득 담긴 두
부를 자기도 모르게 짓이겨놓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피장파장이요 장군멍군이다.
  지금은 장가갈 나이가 된 막내녀석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표딱지만한 거북이 새끼 두 
마리를 자그만 어항에 넣어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사람이 시장에서 재첩(가막조개)을 
사가지고 왔단다. 그걸 본 막내가 그 중 몇 마리를 길러보겠다며 거북이 어항에도 넣었단다. 
그런데 얼마 후에 들여다본 막내녀석은 그만 기절초풍(?)을 하고 말았단다.
  그도 그럴 것이, 가막조개 한 마리가 겁도 없이(?) 거북이 새끼의 발을 물고 늘어져 있더
란다. 거북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한사코 놓아주질 않더란다. 급한 김에 그걸 건져내어 
뗄려고 잡아당겨 봤지만, 얼마나 야무지게 물었던지 까닥도 하질 않더란다. 그래서 결국 망
치를 갖고 와서 그 조개를 일격에 바수어버렸단다.
  내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갔을 때, 무슨 큰 사건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온 식구가 호들갑을 
떨면서 내게 보고한 사건은 고작 그것이었다.
  그래서 난 막내녀석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래. 그건  네가 잘한 거야. 거북이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 조개는, 망치로 바수어 버려야 해 그럼."
  
    무덤에 부채질하는 여자
  남자들은 흔히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느니, 고양이 눈알처럼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
한다느니 하면서, 그 카멜레온 같은 변화무쌍함을 곧잘 개탄한다. 햄릿도 아버지를 독살하고 
왕권을 찬탈한 숙부에게 시집을 가는 어머니를 보고,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지이니라"
라고 탄식을 했다.
  그러니 여자는 믿을 게 못 된다는 그런 말이다. 모급부인이란 말도 있잖은가. 남자들이 큰 
일을 도모할 때, 그 사실을 여자가 알면 일단 그걸 중지하라는 그런 뜻이다.
  이런 우스개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한 사실을, 열두제자 놔두
고 왜 하필이면 막달라마리아에게 맨 먼저 알려줬느냐 하면, 여자는 입이 싸기 때문에 그 
소문이 빨리 전파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란다.
  옛날 기생들은 정든 임과 이별할 때, 오로지 당신만을 생각하며 수절을 할 테니 당신도 
딴짓하지 않겠다는 정표를 달라고 했다는데, 속옷이나, 갓, 망건, 수염은 물로 심지어 치아
까지 뽑아달라고 했다. 치아를 왕창 뽑아준 배비장전 이야기가 아마 대표격일 성싶다.
  그런데 기생들이 하필이면 왜 치아를 빼달라고 했을까. 그것은 치아란 정신분석학적으로 
살송곳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마 살송곳을 뽑아놓고 가라고 할 수는 없고, 꿩 대신 
닭으로, 살송곳의 상징인 치아를 뽑았던 것이다. 이제 네 살송곳은 내가 보관하고 있으니, 
어디 가서 딴수작하지 말라는 그런 뜻이다.
  그래서 어떤 한량은 아까운 생니를 뽑아주고 석별의 정을 나눈뒤, 몇 년 후에 그곳에 들
러보았더니, 그 기생은 수절은커녕 뭇 사내들과 정신없이 놀아나고 있더란다. 그 모습을 보
고 그가 말짱 속았다며 길길이 날뛰니까, "흥, 기생더러 수절을 하라느니 차라리 도축장에 
가서 살생하지 말라는 게 낫지"하며 콧방귀만 날리더란다.
  그러다가 그 기생들은 늙어서 뒷동산 새도 안 돌아보는 퇴물신세가 되면, 추억의 치아 주
머니를 꺼내놓고, 왕년의 그 잘 나가던 때를 회상하며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하고, 치아를 뽑
아준 그 많은 골빈 친구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혼자 피식 웃기도 했단다.
  장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루는 장자가 산책을 하다보니, 어떤 소복
을 한 젊은 여인이 무덤에다 대고 부채질을 하고 있질 않는가. 하도 기이하여 그 연유를 물
었더니, 그 무덤은 어제 장사지낸 남편의 무덤인데, 개가를 할려면 아무리 빨라도 무덤의 흙
은 말라야 한다기에, 흙이 좀더 빨리 마르라고 이렇게 부채질을 하고 있노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장자는 뜻한 바(?) 있었던지, 집에 돌아오자 마자 부인에게 그 여인의 이야
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장자의 부인은 펄쩍 뛰면서, "원 세상에 남편이 죽은 것만도 하늘
이 무너질 것 같을 텐데, 수절은 고사하고 무덤에 부채질이라니. 그래 백보를 양보해서, 흙
이 마르는 데 일 년이 걸리나 십 년이 걸리나. 그런 싸가지없는 년은 가랑이를 찢어 죽여야 
한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런데, 이튿날 멀쩡하던 장자가 갑자기 죽어버렸다. 여러 문상객들 중에 장자의 제자 한 
사람이 상당히 미남이라는 사실이, 황망한 가운데서도 장자 부인 눈에 띄었다. 순간 장자의 
부인은 본능적으로 배꼽 밑이 화끈해짐을 느꼈다.
  그날 밤 장자 부인이 그 미남자를 몰래 불러들여 뜨거운 가슴을 호소하자, 그 남자는 의
외로 순순히 받아들이질 않는가. 그래서 운우의 한판이 막 시작되려는데, 그 미남자가 갑자
기 배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굴렀다. 당황한 장자의 부인이 어쩔 줄 몰라 허둥대고 있는데, 
그 미남자의 하는 말이, 자기 병은 자기가 잘 알고 있는데, 금방 죽은 사람의 뇌를 먹으면 
직방으로 낫는다는 것이었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장자의 부인은 퍼뜩 짚이는 게 있어, 광에 있는 도끼를 들고 
와서는 장자의 관을 내리찍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관이 짝 벌어저면서 죽은 장자가 벌
떡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관에서 나온 장자는, 부인이 기절초풍해 넘어져 있는 그 집에다 불을 질러버리고는, 정처
없는 나구네길을 떠나면서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호랑이의 피부는 그리기가 쉬워도 그 
뼈를 그리기는 어렵고, 사람의 얼굴은 알기 쉬우나 그 마음을 알기는 어려워라"라고.
  그렇다면 남자는 믿을 만한가. 아무렴 믿을 만하지. 남성일언 중천금이라 하질 않던가. 왜 
농담도 못하냐?"
  
    스물아홉 살의 여자
  '젊다'는 말은 남자가 제일 좋아하고, '아름답다'는 말은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중년 남자에게 "선생님은 연세보다 훨씬 젊어 보입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십니까?"라
고 해봐라. "뭐 그럴라구. 내 머리털 좀 봐. 세고 빠지고 이젠 영 고물 다 됐는데 뭘"하면서
도 속으로는 흐뭇해할 것이다.
  또 중년 여자에게 "부인께선 처녀 때 보통 미인이 아니었겠습니다. 지금도 양귀비 뺨 치
겠는데요"라고 해봐라. "아이구, 원 별 말씀을. 이젠 할망구가 다  됐는데요 뭘. 하기야 말이 
났으니까 말이지만, 처녀 땐 죽자 살자 쫓아다닌 총각이 한둘이 아니었다우. 호호호." 이렇
게 나올 것이다. 설사 그 반대일지라도 말이다.
  사람의 나이는 중금속과 같다. 왜냐하면 소량이라도 오랫동안 먹으면 죽으니까 말이다. 그
런데 사람은 태어나서 몇 살까지는 성별이 없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아기'라는 중성(?)으
로 통칭된다. 그러다 '아기'에서 '아이'가 되면 '사내 아이', '계집 아이'라고 해서 성을 
구별해주는데, 이것도 완전한 구분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 사내' '아이 계집'이라야 완
전한 성적인 구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소년' '소녀'가 되어야 비로소 완전히 
성적인 구분이 되는 셈이다. 외국에서도 13세부터 19세까지를 'Teen  Ager'라고 해서, 정식
르오 남성과 여성으로 인정을 해주는데, 그것은 13세부터는 섹스가 가능한 그런 나이라는 
뜻이다.
  소녀라는 글자를 합치면 묘자가 된다. 소녀란 참으로 묘한 존재라는 그런 뜻이다. 말똥망 
굴러가도 우습고, 낙엽만 떨어져도 눈물을 찔끔거리는가 하면, 봄바람만 불어도 한숨짓는다. 
또 샐쭉하고 토라졌다가도 금세 깔깔대고, 흡사 여름 하늘의 뭉개구름처럼 천변만화 종잡을 
수 없는 게 바로 소녀다. 그래서 묘한 것이다.
  중국의 시인 이상은의 시에 이런 것이 있다. "열네 살때 곧잘 부모 뒤에 숨었지요 / 남자
들이 웬지 부끄러워서 / 열다섯살 땐 봄바람 때문에 곧잘 울었지요 / 그넷줄 잡은 채 얼굴 
돌려서."
  요렇게 귀엽고 깜찍하고 묘한 것이 바로 소녀라는 것이다. 남자의 양기나 여자의 음기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점점 위로 올라간다고 한다. 즉, 아이들일때는 그게 다리에 있기 때문
에, 늘상 뛰고 달리고 쏘다니게 된다. 그러다 청년이 되면 허리에 올라간다. 그래서 왕성한 
성욕이 발동하며, 이때 종족보존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 다음 노년이 되면 입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다리도 허리도 힘이 빠지고, 살아 있는 것
은 입뿐이다. 그러기에 잔소리가 많아진다. 특히 여자들은 남자보다 더 말이 많아진다는데, 
입이 둘이기 때문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여성에게 나이를 묻는 건 실례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여성은 나이로 말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에는 장사가 없는 법, 여자나이 삼십이면, 눈 먼 새도 
안 돌아본다고 했으니, 여자의 설흔 살은 일단 위기의 나이로 볼 수가 있다. 실제로 생리적
으로도 여자는 스물세살부터 이미 늙기 시작한다고 했으니, 이때를 결혼 적령기로 잡았던 
선인들의 지혜를 알 만하지 않은가. 옛날의 기생들은 스무 살만 되면 이미 퇴물취급을 받았
다고 하니, 설흔 살의 고독(?)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의 나이는 스물아홉 살이 가장 길다고 한다. 스물 아홉은 한 살만 더 먹으면, 
눈 먼 새도 안 돌아본다는 위기의 설흔 살이 되는 나이다. 그러니 노처녀들이 기를 쓰면서 
붙들고 늘어지는 그런 나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설흔 살이 되어버린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제 나이는 작년에 스물아홉이
에요"라고. 또 일년 후에 설흔 한 살이 되면, "재작년에 스물아홉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러
니 여자의 스물아홉은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아! 아쉽고 애달픈 스물 아홉 살이여.
  하지만 여자의 몸에는 나이를 먹지 않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게 어디냐구요? 맨입으로 
절대 안되지.
  
    성기불기
  일찍이 공자께서는 '군자불기'라고 했다. 그릇처럼 한 가지 목적에만 소용되는 그런 융통
성없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현대사회가 고도의 정보화사회로 바뀜에 따라, 인간의 역할은 점차 세분화, 전문화되어가
고 있다. 빠른 속도로 달릴수록 그만큼 시야가 좁아지듯이, 속도의 시대인 정보화사회일수
록, 그만큼 사람들의 시야도 좁아지고, 융통성도 없어질 수 있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처럼 말이다. 현대에 이른바 전인교육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성기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사람의 성기도 섹스의 기능 하나만을 갖고 있는 그런 
융통성없는 연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성기불기인 셈이다.
  먼저 골풀무를 보자. 동남아 방면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휘호를 하나 갖고 온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사연이 무척 재미있다. 관광 안내원이 진귀한(?) 휘호를 하나 선물하겠다길
래 따라 갔더니, 어느 예쁜 아가씨 서예가(?)한테 데려가더란다. 멀리 한국에서 오신 귀한 
손님이니 특별휘호를 부탁한다고 하자, 그 아가씨는 묵향 그윽하게 먹을 갈고 화선지를 펼
치더니, 느닷없이 옷을 훌훌 벗더란다. 그러고 나서 붓에다 먹을 듬뿍 찍은 다음, 그 붓을 
자기의 골풀무에다 척 갖다 꽂더란다. 그녀가 흡사 파도에 노니는 한 마리 인어처럼, 그 풍
만한 곡선의 율동을 화선지 위에서 펼치고 나자, '한국김선생환영'이라는 일필휘지의 칠언절
구(?)가 완성됐더란다. 그 뿐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골풀무에다 붓을 뽑아내고는 
거기다 루즈를 살짝 바르더니 그냥 낙관을 쾅 내려찍더란다. 행서로 내려쓴 그 글씨는 내가 
보기에도 어줍잖은 서예가 뺨칠 정도였다.
  또 세관에 X-레이 투사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보석류의 밀수품을 골풀무 속에다 
숨겨 들어오는 수가 있었다고 한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옛날 어느 홀아비가 과년한 딸과 
함께 산골에서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도둑들이 들이닥쳐 재물을 몽땅 털어가버렸다. 딸의 
혼숫감으로 마련해둔 패물도 물론 다 털리고 말았다. 홀아비가 땅을 치며 탄식을 하는 걸 
보고 딸이 있다가, "아버지, 너무 걱정 말아유. 그래도 값진 패물 몇 개는 여기다 감춰놓았
어유"하며 골풀무에서 꺼내보이자, 홀아비는 더욱 가슴을 치며, "허이구우, 이럴 때 네 엄마
가 살아 있었다면, 패물을 하나도 뺏기지 않았을 텐데 말이여"하더란다.
  그렇다면 살송곳은 어떤가. 어느 회사에 늘상 과장한테 야단을 맞는 신입사원이 있었다. 
그 신입사원은 언제 한 번 과장을 골탕 먹여야겠다고 벼르던 참에, 과장의 살송곳이 신통찮
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어느 날 과장이 목욕탕에 갈 때 슬쩍 따라들어갔다.
  과장이 벌거벗고 앉아 몸을 씻고 있을 때, 그 친구가 과장 앞에 딱 버티고 섰다. 그리고는 
두손을 허리에 버티고 목은 오른쪽으로 약간 삐딱하게 힘을 꽉 주고 나서, "과장님, 목욕하
러 오셨군요"하고 인사를 했다. 누군가 싶어 무심코 올려다보던 과장은 힘칫 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의 장대한 살송곳이 과장의 코 앞에서 시뻘겋게 성이 난 채 씩씩거
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장이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그 친구는 "과장님, 어제 과장님이 저를 기합주신 거 
너무했다고 생각됮 않습니까? 하며 삐딱하게 걸고 들었다. 그러자 곤혹스러워진 과장은 손
을 내저으며, "이봐. 김군. 그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제발 거기 좀 앉으라구. 우리 앉아서 
이야기하자구"하며 통사정을 하더란다.
  옛날에 남편은 장님이고 아내는 벙어리인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동네에서 화재
가 발생했다. 남편은 뉘 집에 불이 났는지 아내더러 가서 보고 오라고 했다. 아내가 돌아오
자 남편은 "그래 뉘 집에서 불이 났던고?"하고 물었다. 그러자 벙어리 아내가 남편의 입에
다 '쪽'하고 뽀뽀를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허허, 저 건너 여씨 집에서 불이 났구먼"했다. 
"그래, 어쩌다가 불이 났던고?"하며 재차 물으니, 이번엔 아내가 남편의 씨감자 두 개를 살
짝 만졌다. 그랬더니 남편은, "저런 변이 있나. 아이들이 부엌에서 감자를 구워먹다가 불을 
냈구먼. 그래 얼마나 탔던고?"하고 또 재우쳐 물으니, 이번에 아내가 남편의 살송곳을 살풋 
거머쥐었다. 그랬더니 남편은 "아이구, 맙소사. 결단났구먼. 기둥만 남기고 다 타버렸으니 쯧
쯧...." 하더란다.
  이만하면 성기가 불기임을 아무도 부인하진 못하리라.
  
    에로스 공화국
  인간의 섹스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심지어 신과도 가능함을 안다면 새삼 놀랄 것
이다.
  인간과 동물과의 섹스는 그 역사가 꽤나 깊다. '구약성서' 레위기에 보면, "짐승과 교접
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가 된 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가
증한 일이니라"라고 구절이 있고, 실제로 동물과 교접한 자는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탈무드'에도 보면, 과부가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은 금지하고 있으나, 홀아비가 애완동물
을 기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는 것도 재미있다.
  킨제이의 보고를 보면 남자의 17%, 여자의 3%가 동물과의 교접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
데, 그 대부분은 농촌지역이다.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있었던 이야긴데, 어느 총각이 소 먹이러 갔다가 그만 춘정이 발동
하는 바람에, 자기집 소와 교접을 했다가, 이 사실이 들통나서 동네방네 소문이 나는 바람
에, 남 우세스러워 밤중에 몰래 동네를 떠나고 말았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동물과의 교접 충동이 있다고 한다. 옛날 로마에서는, 죄인으로 하여금 동
물과 교접하게 해놓고는, 그걸 보며 즐겼다고 한다. 하기야 요즘도 어떤 나라에서는 관광객
을 상대로 동물과의 교접장면을 라이브 스테이지 쇼(Live stage show)로 보여준다고 한다.
  또 옛날 중국에서는 군인들의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병영 안에다 염소(암컷)를 길
렀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에스키모족은 백인을 보고는, 수캐와 여자가 교접해서 태어난 종족으로 생각
했다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과의 교접은 예술 작품에도 나타나는데,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인
간은 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동물의 수컷과 여자와의 교접장면이다. 이 사
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곧 남자들의 늑대근성, 다시 말해서 도둑놈 심
보를 나타낸 것이다.
  남자가 맘에 드는 여자를 보고 흑심을 품었을 때, 그냥 남자의 형태로는 여러 가지로 제
약을 받기 때문에, 어떤 짐승의 형태로 변신해서 접근한다는 것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가면 무도회라는 게 바로 여기서 출발했다면 억측일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여자와 동물이 아예 한몸이 되어 있는 경우를 상상하는 것도 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인어'다.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물고
기(물고기는 섹스의 상징)라는 것은, 상상만 해도 남정네들을 즐겁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인어 아가씨가 바닷가에 나와 왕자를 꼬이기도 하고, 로렐라이 언덕에 나와 그 
요염한 자태로 뱃사공들의 얼을 뺌으로써, 그만 배가 언덕에 부딪쳐 파선하는 바람에 익사
하고 말았다는, 그럴 듯한 핑크빛 상상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또 스핑크스는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사자다. 그것은 오이디푸스로 하여금 수수께
끼를 풀게 함으로써, 결국은 어머니를 범하게 만든 근친상간의 콤플렉스를 상징하는 괴물이
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왜도 상반신도 여자이고 하반신은 뱀이다. 뱀은 살송곳의 상징이다. 
그래서 여왜는 이 세상을 창조한 태모신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에게 강력한 동물교접 성향이 있듯이, 신에게는 인간과의 교접성향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바람둥이 제우스가 심심하면(?) 황소로 변신을 헤서 에우로페와 즐겼
고, 백조로 변신을 해서 레다와 연애를 한 것은, 신의 인간과의 교접성향을 말해준다.
  그뿐만 아니다.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의 왕비가 황소와 교접하여, 머리는 황소이고 몸뚱
이는 사람인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는데, 이게 미궁에 살면서 매년 제물로 바치는 일곱 명씩
의 소년과 소녀를 잡아먹고 살았다는 것도, 바로 신의 인간교접 성향을 말하는 것이다. 인당
수의 해신도 심청이 같은 예쁜 처녀를 좋아했고, 동해의 용왕님도 수로부인 같은 미인을 납
치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볼 때, 배꼽 밑에 한해서는 동물이나 사람이나 신이나 그 모두가 꼭 같은 에로스 
공화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아틀라스의 힘
  인류의 존망은 살송곳의 힘에 의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살송곳이 90도
로 일어서서는 그 힘의 벡터(Vactor), 거기에 인류의 존망이 달려 있다는 말이다.
  살송곳이 일어서는 것을 발기라고 하는데, 발자를 보면 아들자와 힘력자가 있다. 그래서 
'남자의 힘'이란 뜻을 갖고 있다. 보디 빌더들이 미스터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온 몸에 힘
을 콱 주고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발기 그 자체이다. 그것도 온 몸 통째로 말이다. 그 모습
은 수컷적인, 너무나 수컷적인 그런 뜻이다.
  발기를 뜻하는 영어의 에렉션(Erection)이라는 말은, '빳빳해져 일어선다'라는 뜻이다. 하
지만 그냥 빳빳해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빳빳해짐과 동시에 일어선다는 것은,  
죽음과 삶을 공유하고 있는상태, 즉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공존상태인 것이다.
  또 일어선다는 것은 수직이 된다는 말이다. 수직으로 서 있는 나무들은 발기해 있는 살송
곳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나무 중에서 가장 수직적인 것인 대나무다. 그래서 복술가들은 대
나무를 신이 내리는 영험이 있는 나무로 보고 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대나무의 영험은 곧 
살송곳의 영험이다. 이것은 남근숭배사상 내지 태양숭배사상, 즉 조로아스터교와 무관하지 
않다. 철학자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만약 차라투스트라(조로아
스터)가, 니체가 갈망하던 그 '초인'이라면 차라투스트라는 곧 살송곳이라는 말이 된다.
  봄을 섹스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도, 땅 속에서 식물들의 싹이 일어서기 때문이다. 나무들
도 수액을 빨아올려 싱싱하게 우듬지를 발기하기 시작하고, 분수도 물줄기를 뿜어올린다. 그
건 바로 물의 발기다.
  일어서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은 불이다. 불꽃의 수직성과 시뻘건 색깔 그리고 뜨거움, 그
것은 곧 발기한 살송곳이다. 어머니들이 촛불 위에서 소지를 올리며 기복을 했던 이유도 바
로 여기에 있다.
  옛날 시골의 더벅머리 총각들이 모여 노는 방에는, 문구멍이 아니라 총각들이 살송곳으로 
뚫어놓은 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웬만한 살송곳은 그 창호지를 뚫지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 
그 창호지를 뚫는 날에는 친구들이 막걸리 파티를 열어 축하를 함은 물론, 그 구멍은 바르
질 않고 아무개의 살송곳 구멍이라며 무형문 화재(?)로 보존해둔다. 단, 장가를 들면 그 구
멍은 발라버린다.
  서양 사람들의 살송곳은 우리의 것보다 확실히 굵고 길다. 그러나 그 거창한 풍체에 비해
서 힘은 별로다. 흡사 밭에서 따낸 지 며칠째 나는 가지처럼 휘청휘청하기 마련이다. 거기 
비하면 우리나라 남자들의 그것은, 비록 그 풍체가 장대하지는 못하나, 일단 일어섰을 때는 
알아줘야 한다. 마치 철판이라도 뚫을 듯한 그 기세는 다부지고 당차다.
  사기 열전에 보면 여불위라는 걸물이 나온다. 그는 조나라의 장사꾼이었는데, 자기가 임신
시킨 애첩 주희를 진나라의 장양왕에게 선물(?)로 바쳐, 정이라는 왕자를 낳게 한다. 그런 
와중에도 여불위와 주희는 계속 남몰래 재미를 본다.
  그러다 장양왕이 죽자, 그의 아들(실은 여불위의 아들) 정이 임금이 되고(훗날의 진시황), 
그의 어머니(여불위의 애첩)는 모태후가 된다. 말이 모태후지 아직 팔팔한 청상이다. 게다가 
살송곳 좋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통곡할 여자다. 여불위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언젠가 탄로날 
것에 겁을 먹고, 살송곳 힘이 기똥찬 젊은이 하나를 모태후에게 소개해주고, 자기는 뒤로 슬
쩍 빠지는데, 그 젊은이가 바로 노애라는 친구다.
  모태후가 웬만한 살송곳은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에, 여불위는 그녀의 구미가 당기게 하
려고 노애의 살송곳 힘을 과시하는 공개행사를 벌였는데, 오동나무로 만든 수레바퀴의 축에
다 노애의 살송곳을 꽂아 그 바퀴를 굴리게 했다. 그 가공할 힘을 보고 모태후가 한눈에 반
해버린 것은 물론이고, 노애는 그 무지막지한 살송곳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막강한 권
세를 휘둘렀다고 한다.
  위대할진저 살송곳의 힘이여! 그 힘은 바로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려놓는 힘이요, 이 지구
를 떠매고 있는 아틀라스의 힘이다. 만약 노애의 살송곳 힘이 조금만 약했더라면, 인류의 역
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남자는 도둑, 그리고 여자는?
  '남도여창'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섹스에 있어서 남자는 도둑놈이요, 여자는 창녀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남자는 도둑이라서 남의 골풀무를 훔치려 하고, 여자는 창녀라서  남의 
살송곳을 넘본다는 말이다.
  남자들의 이 도둑놈 심보를 나타낸 말에는 일도, 이비, 삼첩, 사기라는 말이 있다. 즉, 남
의 마누라를 훔치는 것이 일등이고, 여종을 훔치는 것은 이등, 첩은 삼등이요, 기생은 사등
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남도여창의 잠재적 인간심리를 무조건 타기할 것만은 아니다. 예수께서도 
"음심을 품은 자는 이미 간음한 것돠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뒤집으면, 남녀의 심보
는 누구나 남도여창이라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문학작품의 상당수가 남도여창의 '
간통이야기'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간통이나 간음은, 엄격한 법적 도덕적 제재를 받은 게 사실
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미혼자가 간음했을 때는 그 사람의 옷에다 붉은 색깔로 'V'자를 
썼고, 기혼자가 간통했을 때는 'A'자를 썼다(호오도온의 소설 주홍글씨를 상기하시라).
  우리나라에서도 옛부터 심심찮게 음풍사건이 일어났는데, 절대적 남성우위 사회였던 만큼, 
남자들은 외도니 오입이니 해도 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여자들은 사정이  달랐다. 
간통을 한 여자는 법적인 처벌 이전에 가문형이나 동리형을 집행했는데, 코를 꿰어 온 동네 
끌고 다니면서 창피를 주고 난 후에, 절벽에서 추락사시키거나 나무에다 목을 매달기도 하
고, 심지어 팔다리를 잘라 죽였다고 한다.
  또 한양(서울)에서는 이런 음녀들을 외곽지역 어느 곳에다 강제로 이주시켰다는데, 그 동
네 이름을 '탕촌'이라 불렀다. 이런 음풍사건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세종 때 어우동 사건일 
것이다.
  어우동이 관가에 끌려갔다가 구사일생 풀려나오면서, 앞으로 살아갈 일이 난감하다며 자
기 하녀에게 걱정을 했더니 하녀가 "까짓, 이게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며 어우동의 배꼽 밑
을 툭 치더란다. 이게 이른바 '어우동 배알치기'라는 속담이다.
  과거 자유당 때도 음풍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는데, 춤꾼 박 아무개가 수십
명의 여대생들을 농락한 사건이다. 여기서,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명판결이 나왔고, 박 아무개는 무죄가 됐다. 스스로 입을 벌린 조개를 먹은 황새는 죄가 없
다는 말이다.
  이런 우스개도 있다. 배꼽 밑이 자유분방한 어떤 아가씨가 컴퓨터에다 입력을 해봤더니 
"이건 걸레다. 이건 걸레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약이 오른 아가씨가 골풀무를 깨끗이 씻고 
나서 다시 입력을 했더니 이번엔,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빨아도 걸레다"라고 하더란다.
  하지만 이젠 간통을 법으로 제재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고, 실제로 
간통사건을 형법상으로 처벌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우리도, 이제 세계 속의 한국이 되었으니 간통죄를 폐지하는 것이 어
떻겠느냐는 공청회를 연 일이 있었는데, 페미니스트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그만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 페미니스트들은 남도만 문제를 삼고, 여창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하기야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남녀가 모두 자신의 배우자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또한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어차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남자들의 남도 심리의 충족이고, 미스터코리아 선발대회는 
여자들의 여창 심리의 충족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괜시리 눈 감고 아웅하지 말자. 남도여창
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억제하며 조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
나 이를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확실히 '간' 큰 남자와 '통' 큰 여자임에 틀림
없다. 그래서 '간통'이다.
  
    살송곳이 나사로 되었다면
  질투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보면, 바람둥이 제우스가 바람을 피울 때
마다, 본처인 헤라가 무섭게 질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질투의 속성은 가망이 없는 사람이 질투를 하는 게 아니라, 가망은 있으나 거기까
지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질투를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두 눈이 성한 사람을 질투
하는 것은, 장님이 아니고 애꾸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질투는 질투로만 머물러 있어서는 비참하게 된다. 그래서 이를 해소해야 하는데, 
남자가 질투를 해소하는 방법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끊임없이 노력을 해서 그 질투의 대상과 대등하게 됨으로써 해소하는 것이다. 둘째, 
그 질투의 대상과 의도적으로 친해져서 그 사람과의 '동일시'라는 정신 역동적인 방법으
로 해소하는 것이다. 셋째, 그 질투의 대상을 자신의 위치에까지 헐뜯고 깎아내림으로써  해
소하는 것이다. 남자의 질투의 대상은 남자이다.
  그러나 질투나 투기같은 글자를 보면 모두 계집녀자가 들어 있는데, 이는 진짜 질투는 여
성의 질투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여성의 질투는 정말이지 못말리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칠거
지악에 넣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여자의 질투는 남자를 독차지하겠다는 데서 비롯된다. 애정의 독과점적인 질투라고 할 수 
있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했듯이, 사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든 구름
을 잡든 오불관언 초연(?)한 아내가 있다면 별로 매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여자의 질투
는 필요악이다.
  이 세상에서 뭐가 빠르니 해도 여자의 눈길만큼 빠른 것 없다. 가히 전광석화다. 길에서 
또래의 여자와 휙 스치고 지나가는 사이에 벌써 그 여자의 용모와 헤어스타일은 물론, 옷과 
핸드백 그리고 구두까지 단번에 파악해버린다. 거기다 그 여자가 미인이면, 그 눈길엔 가속
도가 붙는 법이다.
  여자가 질투를 해소하는 방법엔 네 가지가 있는데 첫째,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다(좀 진
부한 방법이지만), 남편의 바람이 잦아들고 '석양에 돌아온 왼손잡이'처럼 후줄근한 모습으
로 돌아올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둘째, 그 여자를 찾아가서 머리채를 꺼두르고, 
너 죽고 나 살자며 사생결단을 내는 것이다. 셋째, 히스테리 발작을 하는 것이다. 눈을 허옇
게 까뒤집고 거품을 내며 기절(?)해버리는 것이다. 이쯤되면 제법 배짱이 두둑한 남편씨도 
혼비백산하기 마련이다. 넷째, 이른바 맞불 작전이다. 즉 남편의 바람에 대한 맞바람 작전이
다. '네 바람 피우나 내 바람 피우나 피장파장'이라는 작전이요, 홧김에 뭐 한다는 그런 작
전이다.
  어떤 여자들은 기회를 봐서, 자기에 대한 남편의 애정과 관심도를 슬쩍 떠보는 수도 있다. 
"여보, 오늘 시대에서 우연히 옛날에 알고 지냈던 남자를 만났는데, 돈을 무지무지하게 벌었
다지 뭐예요. 그런데 내가 싫다는데도 기어코 점심을 같이하자고 해서 마지못해 따라갔지 
뭐예요. 그런데 있잖아요. 그 사람이 날보고 아직도 상당한 미인이라지 뭐예요. 그 사람 웃
기지요?" 하며 남편의 표정을 슬쩍 곁눈질해 본다. 그때 남편씨의 대답이, "응 그랬어? 잘 
됐구먼. 점심도 한 끼 벌고, 앞으로도 그 친구 종종 만나서 밥값 좀 벌라구." 이런 식으로 
나오면, 마누라는 맥이 빠진다.
  그보다는 "뭐 뭣이 어쩌고 어째? 처녀 때 알던 남자를 만나 단 둘이 점심을 먹었다고? 이
게 죽을라고 환장을 했나. 그래, 어떤 놈이야. 바른대로 말해. 아니 말 안할 거야? 어이구 이
걸 그냥. 내 이번엔 참아주는데, 앞으로 한 번만 더 만났다간 봐라. 다리몽댕이를 확 분질러
놓을 테니." 최소한 이 정도로는 나와야 마누라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속으로 혀를 날름거
릴 것이다.
  흔히 중년 여자들이 우스갯소리로 곧잘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살송곳이 나사로 되어 있
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다. 남편이 출근할 때는 빼가지고 마누라가 보관하고 있다가, 
퇴근하면 도로 끼워주고, 정말 꿈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 소릴 들은 능글맞은 남자들은 
오히려 반색을 한다.
  "흥, 제발 그렇게만 되어라. 백화점에 가서 근사한 거 맘대로 골라잡을 테니까."
  
    입이 둘이라서
  "여자와 북어는 팰수록 부드러워진다"느니, "여자는 사흘만 안패면 엉덩이에 뿔이 난다"느
니 하는 말이 있다. 이런 말들은, 여자를 다스리는 데는 폭력이 특효약이라는 뜻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지만, 폭력이란 항상 지적인 열등생이 의존하는 수단이다. 그
렇다. 남자는 언제나 여자보다 논리적이지 못하니까 말이다.
  만약 여자와 입씨름을 해서 이긴 남자가  있다면, 나는 무조건 그 사람을 존경할 것이다. 
남자가 입씨름에서 여자에게 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비논리적인 탓도 있지만, 남자는 단구
인데 반해 여자는 쌍구이기 때문이다. 아담에게 금단의 과일이 맛있다며 먹어보라고 나불거
린 그 이브의 쌍구 말이다."
  어떤 처녀 뱃사공이 있었다. 어느 싱거운 남자가 그 처녀 뱃사공의 배를 타고 가면서, 슬
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이봐요, 뱃사공 아가씨. 내가 지금 아가씨의 배에 올라
탔으니, 나하고 아가씨하고는 어떤 사이가 되능교?"하며 능청을 떨었다. 그러나 처녀 뱃사공
은 얼굴만 빨개질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배가 강 건너편에 닿자, 그 싱거운 남자는 의기양양하게 배에서 내려 걸어갔다. 그
때 처녀 뱃사공이 "보이소, 아저씨예"하고 그를 불러세웠다. 그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
아보았을 때 처녀 뱃사공은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가 금방 내 배에서 나갔으니, 나하고 아
저씨 사이는 그라마 우째되는데예?" 물론 결과는 그 싱거운 남자의 KO패였다.
  어떤 남자와 여자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빈택시 한 대가 오자, 남자가 순발력을 
발휘해서 잽싸게 올라타버렸다. 그걸 본 여자가 약이 올라, "흥, 다리가 세 개라서 빠르기도 
하군"하고 빈정댔다. 그 말을 들은 남자가 슬그머니 부아가 나서 "흥, 입이 두 개라서 둘러
대기도 잘 하는군"하고 응수했다. 그러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흥 머리가 두 개라 회
전도 빠르군"하고 물고 늘어졌다. 물론 남자의 TKO패였다.
  이렇듯 입씨름을 해가지고는 본전도 못 찾기 때문에, 논리가 궁해진 남성들이 원용하기 
쉬운 것이 바로 폭력이다. "흥, 가만히 있으면 누가 때려? 맞을 짓을 하니까 그렇지." 마누
라 두들기는 남자들이 곧잘 둘러대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맞을 짓'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물론 허튼 짓을 했다면 그건 그럴 수 있겠
다. 그러나 여기서의 맞을 짓이란 대부분 여자의 입놀림을 말한다. 오죽하면 '입방아'라고 
했을까. 그 입방아를 사정없이 찧어서, 남자의 허파를 휘뜩 뒤집어놓기 때문이란다.
  옛부터 동네 우물가가, 그 동네의 방송국이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쌍구들이 우물가에 
모여 온 마을의 뉴스를 이합집산시키는 것이다. 누구 집 암캐가 발정을 했다는 뉴스로부터, 
뉘집 새댁이 입덧을 하기 시작했다는 뉴스까지, 입방아 뉴스를 종일 보도하는 것이다. 게다
가 우물은 여성의 상징이기 때문에 우물가는 쌍구들의 입방아 타령으로 언제나 시끌시끌하
게 마련이다.
  얼마전 어느 TV공개토론에서, 남편의 폭력을 쌍구들이 모여 성토하는 걸 본 적이 있는
데, 폭력은 어디까지나 야만적인 행위이며, 어떤 이유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아무도 그 여자의 그 쌍구의 횡포(?)에 대해 말하지
는 않았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은, 100m 이내로는 접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양의 울타리 밖에서 맴도는 늑대의 신세가 되
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남편의 폭력이 해결될까? 결코 그렇진 않을 것
이다.
  그러니 만천하의 쌍구님들이여! 남자란 단순하고 어린애 같은 면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논리적 열등생인 남자가 궁지에 몰렸을 때, 원시적인 폭력으로 그 궁지에서 탈출하려
고 하는 남자들의 그 배수진의 고충을 이해하시라. 여우는 호랑이에게 맞서지 않고도 능히 
호랑이를 조종한다고 하질 않던가. 그러니 복잡한 현학적 논리로 남편을 궁지로 몰아넣지 
말고, 항상 어린애 다루듯이 하되 결코 칭찬에 인색하지 마시라. 그리고 남과 비교 분석하지 
마시라. 또 그 쌍구의 관리에 좀더 신경을 쓰시라. 남편은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비겨야 
할 상대임을 명심하시라. 그렇게만 하신다면 남편의 '스파링'상대에서, 일약 남편의 '트레
이너'로 바뀔 수가 있을 것이다.
  
    흉기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에게 가장 치욕적인 것은 육체적으로 살해당하는 것이고, 여자에게 
가장 치욕적인 것은 강간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강간의 역사는, 이미 로마나 히브리의 형법에도 나와 있고, 함무라비 법전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기독교의 십계명에도 나와 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로마 형법에는 강간당한 여자가 처녀일 때 한해서 강간범
을 처벌했다는 것과, 히브리 형법에서는 유부녀가 강간을 당하면, 그 유부녀도 강간범과 똑
같이 처벌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들은, 유부녀들의 단정치 못한 차림새나 태도에도 그 
책임을 물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즘 같으면 여성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날 일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카마수트라'에도 보면, 쉽게 꼬실 수 있는 26가지 유형의 여자
가 있다. 예를 들면, 문 밖에 자주 나가서 있는  여자, 베란다나 창문 밖으로 길거리를 자주 
내려다보는 여자, 남자를 잘 쳐다보는 여자, 남편을 미워하는  여자, 그리고 쥐뿔도 없는 주
제에 허파에 바람만 잔뜩 든 여자 등등.
  우리는 흉기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그것은 말 글대로 흉측한 도구라는 뜻이다. 그러
나 흉측한 이름이 붙은 그 흉기라는 도구들은, 사실은 흉기가 아니다. '흉기로 찔렀다'라
고 하면 그건 보통 칼을  말하고, '달리는 흉기'라고 하면 자동차를  말한다. 하지만 칼이나 
자동차는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지 결코 흉기가 아니다. 다만 부정적인 용도로 쓰였을 때, 요
긴한 필수품은 흉기라는 흉측한 이름을 얻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디 한 군데 이쁜 데라
고는 없고, 하는 짓이 개망나니 같은 사람을 두고 흔히 흉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따지고 보면 살송곳도 그렇다. 인류의 존망을 책임지고 있는 살송곳이지만, 그게 강간이라
는 부정적인 용도로 쓰여졌을 땐, 그만 흉기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이런 우스개가 있다.
  어떤 남자가 목욕탕에 갔는데, 그만 깜박해서 여탕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경찰관이 와서 그를 연행해갔다는 사실이다. 그건 단순한 실수였을 뿐이었는데도 말이
다. 그러나 그에겐 어마어마한(?) 죄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불법무기소지죄'였다.
  이 우스개가 시사하는 것은, 남성의 살송곳과 그 밑의 고환을 보면 권총을 연상하게 한다
는 것이다. 물론 발기했을 때 말이다. 그렇다. 그것은 영락없는 권총이다. 정액이라는 실탄을 
발사하는 권총, 그래서 사정이라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강간사건은 해마다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학 캠퍼스  내의 
강간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105명의 강간당한 여성의 평
균 나이는 30세이고, 싱글 여성이 50%로 가장 많다. 장소는 피해자의 집이 38%로 제일 많
고, 아는 남자보다는 낯선 남자가 63%로 가장 많다. 다시 말하면, 30세의 독신여성이 자기 
집에서 낯선 남자로부터 강간을 당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는 말이 된다.
  하기야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강간을 당할 수 있도록, 조물주가 여성의 완력을 남성보다 
약하게 만들어놓은 것은, 종족보본의 지상명제를 실현시키고자 함이다. 하지만 원시시대에는 
그게 좋았을지 모르겠으나, 지구가 만원사례 상태인 현대에는, 조물주의 의도가 빗나간 감이 
없지 않다.
  강간은 여성에게 있어 가장 치욕적일 뿐만 아니라, 그 후유증 또한 심각하다. 한번 당한 
여성은, 모든 남성들이 맹수처럼 보이고, 심지어 남편이나 애인마저도 꼴보기 싫어지며, 정
신과적인 상담이 필요한 경우까지 있는가 하면, 끝내 자살을 택하는 경우까지 있다.
  흉기 소지자측으로 봐서는 단순한 오발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오발탄을 맞은 사람은 
생사람 잡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니 불법무기소지자들이여! 부디 당부하노니. 그 고
귀한 도구를 흉기로 사용해서 생사람 잡지 말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이기로만 쓰시라.
  
    오냐, 네 잘났다.
  인간은 원래는 남녀가 한몸이었다는 신화가 있다. 남녀가 합쳐져 있으니 그 지능이 너무 
우수해서, 신이 이를 시기한 나머지 둘로 갈라놓았단다. 그때부터 인간은 자신의 반쪽을 찾
아헤메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앙숙이요 천적이라는 말도 있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이가 갈리는' 그런 관계 말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도 보면,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
서 쫓겨나는데, 그건 순전히 이브 때문인 것으로 되어 있어, 남녀가 앙숙 관계란 것을  암시
하고 있다.
  앙숙이니까 싸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부부싸움이다. 그런데 부부싸움은 무슨 거
창한 쟁점이 있어서 싸우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 발단이 된다. 가령 남
편이 밤늦게 곤드레가 되어 들어왔다 하자. 이때는 마누라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는 게 보
통이다.
  "흥! 세월 조오타. 세월 좋아."
  "뭐가 어째? 내가 뭐 세월 좋아서 술 마시는 줄 알아? 사는 것이 괴로워서 마신다 이거야 
알겠어? 거 왜 이런 말도 있잖아. 아버지가 마시는 술의 절반은 눈물이라고. 끄윽."
  "흥! 눈물 좋아하시네. 남들처럼 돈이나 왕창 벌어다주고 마시면 밉지나 않지. 쥐꼬리만치 
벌어오는 주제에 괴로운 거 좋아하시네. 말이 났으니 말인데, 여태껏 시집와서 날 호강 한 
번 시켜 준 일 있어? 집에 밥이 끓든 죽이 끓든 아랑곳없이, 밤낮 술이나 퍼마시고. 아이고 
내 팔자야."
  "왜, 팔자가 어때서?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어디 좋은 놈 있으면 가보라구."
  "내가 뭐 가라면 못 갈 줄 알아? 자다가 엉겁결에 만나도 당신보다는 나은 사람 만날 수 
있어. 왜 이래 이거."
  "흥! 언놈 눈에 명태 껍데기 발랐나? 당신 같은 지떨매(지붕에서 떨어진 메주)한테 오게."
  이렇게 점입가경으로 가는 것이 바로 부부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부부싸움은, 싸움은 싸움이되 전투가 아니고 전쟁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전투는 단
순한 살상을 목적으로 하지만, 전쟁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 때문
이다. 그래서 J.호이징하도 전쟁을 일종의 '놀이'로 보았듯이, 부부싸움도 권태를 몰아내고 
활력소를 찾기 위한 놀이라야 한다는 말이다.
  아내는 항상 남편이 자신의 오감을 즐겁게 해주기를 바란다.
  '당신만을 사랑해'로 귀를 즐겁게, '월급봉투 두둑이'로 눈을 즐겁게, '맛있는 외식'으로 
입을 즐겁게, '고급 화장품'으로 코를 즐겁게, 그리고 '좋은 옷'으로 촉감을 즐겁게 등.
  그뿐이면 얼마나 좋으랴. 또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배꼽 밑을 즐겁게'이다.
  하지만 남편도 나름대로 요구가가 있다. 아무리 돈 못 벌고 목에 힘줄 일 개코도 없지만, 
그래도 집에서는 당당한 가장으로 대우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의 아픈 곳을, 다른 사람
도 아닌 아내가 건드리는 것은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장노릇하기 힘겨워하는 자신을, 아
내가 포근히 감싸주고 격려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부부는 하나님의 섭리로 되는 것이라 했고, 불교에서는 삼생의 인연이 있어
야 부부가 된다고 했다. 그러니 그 얼마나 소중한 인연의 만남인가.
  어떤 노련한 신사의 경험론적 부부철학에 의하면, 돈을 많이 벌어주고 배꼽 밑의 평화를 
유지해주면, 부부싸움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노릇인가. 그래서 
이런 우스개가 있다.
  돈은 잘 벌어오는데, 배꼽 밑의 평화 유지에 실패하는 사람의 아내는, "돈이면 다야? 돈이
면 다야? 돈이면 다야?" 하면 악을 쓰고, 돈벌이는 신통찮지만 배꼽 밑의 평화는 시쳇말로 
끝내주는 사람의 아내는, "그거면 다야? 그거면 다야?"하며 삿대질을 하고, 돈과 배꼽 밑 둘 
다 끝내주는 사람의 아내는, "오냐 네 잘났다. 오냐 네 잘났다"며 이죽거린다고 한다. 누가 
말했던가. 여자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아는 사람이라고.
  
    사냥꾼과 중고 엽총
  남녀의 성적 성숙도는 차이가 많다. 즉 여자가 훨씬 빠르고 남자는 늦다. 남자들이 아직 
개구쟁이에 불과한 때에, 여자는 벌써 유방이 봉곳이 부풀기 시작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배
꼽 밑에 꽃이 핀다. 달거리꽃 말이다.
  그리고 남자들의 불알이 제법 가무스름하게 될 때쯤이면, 여자는 이미 육체적으로 성숙해 
있다. 육체적으로는 이미 성숙했지만, 성욕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 하지만 남자는 다르다. 살
송곳에 거웃이 나기 시작하면 벌써 강력한 성욕을 느끼기 시작하며, 육체적으로 성숙한 청
년기가 되면, 성욕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불꽃으로 타오른다.
  그 불꽃은 20대에 절정에 이르고, 40대가 되면 이글거리던 성욕의 잉걸불이 서서히 화롯
불로 잦아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자는 20대에 비로소 불이 붙기 시작해서 40대에 절정에 
이른다. 남자의 불꽃이 이미 시들해지는 40대에, 여자의 불꽃은 한창 잉걸불로 타오르는 이 
성욕의 생리적 시차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엔 남자가 여자에게 섹스를 가르쳐
주었다가, 나중엔 감당을 못해 우왕좌왕하는 나이가 남자의 40대라는 말이다.
  사실 요즘 비뇨기과를 찾는 남자들 중엔 30대인데도 벌써 살송곳 타령을 하는 사람이 있
는가 하면, 40대의 상당수가 이미 폐업의 위기에 처해 있노라며 하소연을 하고 있는 실정이
다.
  더구나 현대는 이른바 '제3의 물결'인 정보화의 시대이다. 정보화사회라는 총 없는 전쟁의 
사회이다. 거기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남자들의 스트레스가 오죽하겠는가. 거기다 언제 명퇴
나 조퇴를 당할지 전전긍긍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집에서는 또 마누라의 청구서가 낙엽
처럼 쌓인다. 눈(허영) 이하의 청구서, 횡경막 이하의 청구서, 그리고 배꼽 이하의 청구서 말
이다.
  다시 말해서, 남편이 벌어오는 만큼 아내가 쓰는 게 아니라, 아내가 쓰는 만큼 남편이 벌
어와야 한다. 그래서 직장에선 아니꼽고 배알이 뒤틀려도 꾹 참고, 그저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뛰다가, 퇴근 때는 스트레스 푼답시고 쇠주 한 잔 걸치고는, 비맞은 수탉처럼 후줄근
히 젖어서 집에 돌아오면, 하루종일 배꼽 이하에 힘을 축적해놓고 기다리는 '아내'라는 천적
(?)을 만나게 된다.
  불꽃이 이글이글 타고 있는 그 천적. 가뜩이나 시들한 불꽃이 쇠주에 젖어버렸으니, 이글
거리는 천적 앞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참담한 패배감을 안은 채 곯아떨어지고 만
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의 살송곳이 언제부터 이 지경으로 묵비권을 행사하게 되었는지 곰
곰 생각을 해본다. 지금 한창인 나이에 이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흔들어 본다. 그래서 왕년
의 그 위력을 확인해보기 위해 일부러 해어화를 찾아간다. 말하자면, '자가용은 안되지만 택
시까지 안될라고'하는 오기로 말이다. 그래서 왕년의 그 위력을 재확인한 사람은, '그러면 
그렇지"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거기에 재미를  붙이면 계속해서 확인작업에 
나서게 된다. 중고 엽총을 꼬나들고 산토끼 사냥에 열을 올리게 된다는 그런 말이다.
  그렇게 되면 집토끼는 '네 떡 내 몰라'라 된다. 그러다 어느날 네 개의 다리를 발견하고는 
허탈의 처용무를 추기도 한다.
  한편 해어화를 찾아갔어도, 왕년의 위력을 확인하는 데 실패한 사람은 그만 절망에 빠지
고 만다. 아무리 기를 써도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고 엽총이 작동을 하지 않으면 이제 끝
장이라는 절망감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집토끼도 산토끼도 잡지 못하는 사냥꾼. 그는 
이미 사냥꾼이 아니다. 그는 좌절한다. 좌절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의심을 낳는다. 이게 바
로 의처증의 시초다.
  그러니 여인들이여, 집토끼도 산토끼도 못 잡는 포수에게는, 그것도 기껏 고장난 중고엽총
을 가진 그대들의 가련한 포수에게는, 너무 많은 청구서를 발부하지 마시라. 중고 엽총에 대
한 부가가치세만이라도 면제해주시라.
  
    섹스는 거짓말의 비빔밥
  진짜가 있는 곳에 가짜가 있듯이, 참말이 있는 곳엔 거짓말이 있기 마련이다.
  일평생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거짓말을 해본 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 바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말을 할 줄 알고부터, 제일 먼저 배우는 게 거짓말이다. 그만큼 거짓말은 
인간의 속성 중의 하나다.
  거짓말이라고 해서 모두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참말보다 더 유익한 거짓말도 있다. 
가망없는 중환자에게 충분히 희망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그 환자가 용기백배해서 기사회
생하도록 하는 의사의 거짓말은 거짓말이면서도 참말이다.
  서양에선 매년 4월 1일을 April  fool이라고 해서, 그 날만은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 날로 
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악랄한 거짓말이 아니라, 유쾌한 거짓말로 스트레스를 풀고 한 번 웃
어보자는 그런 뜻이다.
  미국에서도 라이어즈 클럽(Liers Club)이라고 해서 유쾌한 거짓말쟁이들의 모임이 있는데, 
매년 거짓말 대회를 열어서 장원을 뽑고 푸짐한 상품을 준다고 한다. 여기서 장원을 했다는 
거짓말 하나를 소개해보면 이렇다.
  "우리 마을은 북쪽에 있기 때문에 겨울엔 어찌나 추운지, 사람들의 말소리가 전부 얼어붙
었다가, 봄이 되면 그 얼어붙었던 말들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바람에, 시끄러워서 죽을 지
경이랍니다."
  이 정도가 장원을 했다면, 우리 한국산 거짓말도 하나쯤 대표로 파견해봄즉도 하다.  이런 
거짓말 말이다. "내가 어릴 때 말이야, 어느 해 여름이 어찌나 더웠던지, 낚시를 가서 붕어
를 낚아올리는 순간, 붕어가 아니라 굴비가 올라오지 뭔가."
  또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이른바 3대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다. "늙으면 죽어야지"하는 
노인들의 거짓말, "난 절대로 시집안가"하는 아가씨의 거짓말, 그리고 "이거 밑지고 드리는 
겁니다"하는 장사꾼의 거짓말이다.
  이렇듯 사람들이 거짓말 대회까지 열어서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즐기는 데에는 사람들이 
하도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기 때문에 넌덜머리가 난 나머지, 진짜 거짓말은 이래야 된다는 
시범을 보이는 뜻도 있겠다.
  섹스도 따지고 보면 거짓말투성이다. 동물들의 세계 특히 조류를 보면, 섹스가 얼마나 거
짓이고 사기인가를 실감할 것이다.
  새들은 짝짓기를 할 때가 되면, 수놈이 암놈을 꼬시기 위해 온갖 허풍을 총동원한다. 그 
중에 가장 엉큼하고 치사한 것이 수탉이다. 수탉은 암탉 생각이 나면 괜스레 "꾹꾹꾹꾹...."
하면서 무슨 진수성찬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모이를 쪼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주위의 골빈 
암탉들이 얼씨구나 하고 우르르 몰려든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 음흉한 수탉은, 맘에 드는
(?) 암탉의 볏을 물고는 잽싸게 올라타버린다. 이 얼마나 멋진 속임수요 거짓말인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선 월하빙인을 보자. 중매하는 사람치고 거짓말 안하는 사람이 없
다. 곧이곧대로 이야기해 가지고는 성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미가 당기게끔 적당하
게 양념을 하고, 지지고 볶고 부풀리고 색깔을 넣어서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요리를 한다. 
그러니 월하빙인이 내놓는 중매요리는 거짓말의 비빔밥이다.
  여자들의 화장도 그렇다. 자신의 오리지널한 용모의 시나리오를 화장품으로 각색 조명을 
해서, 남자들의 눈을 현혹시킴으로써 구매욕을 촉발시키기 위한 사기요 위장술이다. "계집애
들이 나이가 차면 살이 포동포동 오르고 얼굴이 장밋빛으로 화사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때 
한 남자를 꼬여서 평생을 먹여살리도록 무거운 짐을 지우기 위한 위장술이다." 이건 쇼펜하
우어의 말이다.
  섹스가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연애하는 남녀들의 구름잡는 다리에서 뚜렷이 볼 수가 있다. 
아가씨가 묻는다.
  "자기, 나와 결혼하면 행복하게 해줄 자신 있어?"
  "암, 두 말하면 잔소리지. 난 자기가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어."
  "어머, 자기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어디 한 번 보여줘?"
  "아니 됐어. 그럼 내가 부르는 거 받아 적어봐."
  "음, 뭐든지 불러봐."
  "첫째, 우리가 결혼하면 일주일에 세 번 쇼핑을 하고, 일주일에 세 번 영화보러 가고, 일
주일에 세 번 외식하고, 한 달에 한 번 국내여행 가고, 일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 가고....."
  "아니 아직도 더 있어?"
  "그럼, 자기 싫은 거야?"
  "아아니야, 계속 하라구."
  "음, 뭐 이만하면 됐어. 자기 여기다 도장 찍어."
  도장찍는 소리 '꽝'. 종족보존을 위해 암컷을 꼬셔야 하는 그 지상명제 앞에, 까짓 도장 
아니라 그 무엇인들 못 찍겠는가. 어차피 거짓말과 허풍의 도장인 것을.
  
    존경하는 창녀님
  옛날 그리스 로마 시대에 이미 '익트리온'이라는 매춘숙을 두고, 나라에서 세금까지 징수
했다는 기록만 봐도, 매춘의 역사는 그 뿌리가 꽤나 깊다.
  우리나라는 기록상으론, 김유신 장군을 꼬신 천관녀가 처음이라고 한다. 백제에서도 부여 
근처의 군수리라는 곳에 '꽃생쥐'라는 창가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고려 때 이들을 기생으
로 제도화시켰다고 하며, 조선조에 와서는 화장품을 팔면서 매춘을 겸했던 '매분구'라는 유
녀들이 설쳤던 모양이다. 거기다 사당 패거리들과 무당까지 한 몫 끼어 꽤나 재미를 보았다
고 한다.
  매춘이란 어떤 대가를 받고 섹스를 제공하는 행위인데, 미국에서는 아무 대가를 받지 않
고 무료 서비스를 해도 파트너를 자주 갈아치우는 여자는 창녀로 취급한단다.
  또 신문에 종종 보도되지만, 자기 아내를 미끼로 해서 남자들을 호리게 해놓고는, 그 현장
을 덮쳐 공갈 협박하는 그런 한심한 녀석들도 있는데, 그 한심한 친구를 '왕팔'이라고 하
고, 그런 여편네를 일러 '양한적'이라 한다.
  근엄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매춘은 필요악'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창
녀들도 사회에 이바지하는 바가 없지 않다. 부녀자들이 당할지도 모르는 성폭행을 줄이는 
데 이바지하고 있고, 섹스의 다양한 테크닉을 연구 발전시켜, 고자선생들의 치료를 위한 섹
스의 대행 파트너로서도 당당히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한 몸을 희생함으로써 많은 귀부인들을 겁탈의 위기에서 구해주고도, 그 귀부인들로
부터 감사는커녕 손가락질받는 창녀일 수밖에 없었던 모파상의 '비계덩어리' 창녀를 우리
는 알고 있고, 문학이나 예술계의  고독한 천재들을 어머니처럼 포근히 감싸주고  격려해서, 
불후의 명작을 탄생하게 한 창녀들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사실 예날에는 창녀들이 깃발을 날리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로마에서는, 모든 길은 로마
로 통하고, 로마의 모든 길은 창녀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창녀들의 끗발은 대단했
다.
  외국의 귀빈을 접대하는 자리나 축제 때는 창녀들이 완전히 주름을 잡았다. 특히 '쿠르
티자네(Kurtisane)'나 '아스파샤(Aspasia)'로 불리웠던 고급 창녀들은 사교계의 스타로 각광
을 받았고, 권력층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에 갖가지  청탁이나 이권에 개입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런 창녀들을 '코르테스나 오네스타(Cortesnae  Honestae)'라는 존칭으로 불렀는
데, 그것은 '존경하는 창녀님'이라는 뜻이다.
  또 '베로니 프랑코(Veronica Franco)'라는 거물 창녀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던지, 가히 
로마의 재벌로 행세할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큰 샘을 가진 그대'라는 뜻으
로, '일 그란데 푸타나(Il Granda Puttana)'라고 부렀다. 그뿐이 아니다. 당시의 내노라 하는 
화가들은 앞다투어 거물 창녀들을  모델로 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명화로 손꼽히는 수많은 
인물화의 모델들은 바로 창녀들이었다.
  이렇듯 창녀들의 전성기를 잘 나타낸 사건으로, 1931년 피렌체에서 여섯 명의 기사들이 
집단 결투를 벌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툴리아 다라고나'라는 거물 창녀를 세계에서 
가장 멋있고 우아한 미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만하면 그당시 창녀들의 끗발
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게 되자 일반 부녀자들까지도 그런 창녀를 부러워한 나머지, 자진해서 창녀가 되는 
경우가 속출했고, 성의 문란은 가히 극에 달하게 되었다.
  보다못한 로마 당국은 드디어 창녀와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일반 부녀자들과 차별화하
기 위해서, 창녀들은 구두에 노란 리본을 달게 했고, 어깨 위에는 핀을 꽂게 했으며, 값비싸
고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도록 했다.
  한 벌에 몇천만원짜리 값비싼 옷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데, 그
런 옷은 중세의 창녀들이 입던 옷이란 걸 알면, 싸모님들의 심기가 별로 편치는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그토록 깃발 날리던 호시절도 다 지나가고, 이제 창녀들은 별 볼일이 없게 됐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아마추어 창녀들의 극성 때문에, 프로 창녀
들은 머찮아 폐없하게 될 전망이라고 한다.
  
    부부란?
  총각 처녀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던 문제가 있다. 그것은 '꼭 결혼을 해야만 하
는가'이다. 그렇다. 초만원인 지구 위에 내가 또 아이를 만들어내어, 인구폭발의 공모자가 
될 필요가 있겠느냐는 논리도 성립됨즉하다. 그래서 요즘의 신세대는,  '결혼이란 필수가 아
닌 선택이다'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사실 구미 선진국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이른바 싱글들의 숫자가 날로 늘어간다고 한다.
  특히 여성 싱글들은 주로 학력이 높고 확실한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싱
글들은 전국규모의 협회를 조직해서, 매년 거창하게 총회를 열어 그들의 위세를 과시한다는
데, 재미있는 것은 그 총회기간이 바로 싱글드의 섹스 페스티벌 기간이라는 사실이다. 그 기
간중에 눈이 맞은 싱글들은 부담없이 맘껏 섹스의 푸짐한 향연을 즐긴다고 한다. 그러나 가
족을 부양할 의무가 없기에, 더블보다는 싱글들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유에서, 세금
을 더 많이 부과하는 게 불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싱글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곤 
있지만, 아직 '대한싱글협회'같은 건 없다.
  그러나 결혼은 어차피 인생의 통과의례인 동시에 순리다. 하지만 두 쌍 중에 한 쌍이 이
혼하고(외국), 세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한다는(우리나라) 이 장난 같은 결혼 풍속도엔 그냥 
할 말을 잃게 된다.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 젊은이들, 뿌리없이 부평초처럼 흔들리는 젊은이들, 심심해서 만
났다가 시들해져 헤어지는 젊은이들, 부담없이 만났다가 웃으면서 헤어지는 젊은이들, 권리
만 있고 의무는 없는 사랑, 인스턴트 사랑, 1분 컵라면 사랑, 솜사탕 사랑, 농산물 집하장처
럼 이합집산하는 사랑 사랑 사랑.
  부부란 무촌이면서도 돌아서면 남남인 그런 야누스의 관계다. 그리고 서로가 가장 편안하
게 해주는 그런 관계다. 그래서 가정을 일러 보금자리라고 한다. 그렇다. 배우자 때문에 편
안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불편해진다면, 그건 이미 부부가 아니다. 심지어 요즘은 부부이면
서 부부가 아닌 이상한 부부들이 있다고 한다. 자식 때문에, 체면 때문에 법적으로 같이 살
지만, 그 속사정은 이미 남남으로 살고 있는 부부들이다. 그래서 막내가 결혼해서 신혼여행
을 떠나는 것을 배웅하고 나서, 중늙은이의 부부는 말없이 가정법원으로 무거운 발길을 돌
린다고 한다.
  남녀가 결혼을 해서,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산다는건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다. 
예식장에서는, "오직 배우자만을 사랑하고 아끼고 도우며,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병들었
을 때나 고락을 함께 하기를 맹세하느냐"고 주례가 물으면, 모두가 "네"하고 겁없이 대답이
야 곧잘 한다.
  말이야 쉽지만, 부부의 길이란 실로 험난한 형극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살아가노라면 하
루에도 몇 번씩 속았다는 생각이 들고, 티격 태격 성내고 토라지고 지지고 볶고 아웅다웅 
다투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다. 연애 시절이나 신혼 때의 '죽자 살자'가 끝내 '죽여라 살려라
'로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도록,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가며 사는 것이다.  젊을 때는 고운
정으로, 늙어서는 미운정으로 그렇게 사는 것이다.
  '같이 사는'것은 '같이 사는'것이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한 사람의 반려자를 사는 
것이다. 애인은 마주보고 있는 남녀를 말하지만, 부부는 같은 방향으로 보고 있는 남녀를 말
한다.
  그런 뜻에서 부부는 단순한 암수의 만남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족보존을 위한 종묘상의 
주인도 아니다. 부부란 '피와 땀의 물감으로, 서로의 초상화를 실물보다 낫게 그려주려고 애
쓰고 있는 두 남녀'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계피학발이 될 때까지, 서로가 감싸고 다독
이며 등허리 긁어주며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악처가 효자보다 낫고, 정강이가 맏아
들보다 낫다고 하질 않던가.
  
    소유냐 사랑이냐
  "에로스의 사랑, 즉 연애는 종족보존을 위한 하나의 트릭에 불과하며, 연인들이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는 이유는, 이 풍진 세상의 고해에 허우적거릴 또 하나의 불행한 인간을 만
들어내기 위한 공모이기 때문이다"라고 쇼펜하우어가 비아냥거렸지만, 누가 뭐래도 연정, 그
것은 순수지고한 인간만의 정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에로스의 사랑은 과연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을까. 흔히 에로스는 어린애로 표
현된다. 어린애는 이성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맹목적이다. 눈에 뵈는 게 없다. 그러므로 물불
을 가릴 줄 모른다. 얼마전에 유행했던 대중가요에도,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게 있었다. 그렇다. 일단 에로스의 열풍에 휘말리면 못할 것이 없다. "저 
하늘의 달이라도, 저 하늘의 별이라도 당신 앞에 바치오리다"라는 식이 된다.
  또 에로스는 날개가 있다. 어떤 사람은 날개를 변덕의 상징으로 보았다. 이꽃 저 꽃으로 
자유분방하게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개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초월성으로 보고 싶다. 날개
는 어디까지나 지상에서의 일탈을 뜻한다. 즉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애의 감정
은 어딘가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이고, 심지어 부귀와 명예도 헌신짝처럼 버린다. 마치 비행기
를 타고 지상을 내려다보는 그런 기분이다.
  에로스는 활과 화살을 갖고 잇다. 그것은 무기다. 무기는 살상용이다. 그래서 연애는 죽음
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연애할 때 죽자살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니 실제로 죽기도 한
다. 그래서 실연의 자살이 있고, 비련의 정사가 있다.
  이와같이 연애는 물불을 모르는 맹목성과 비현실적인 몽상성, 그리고 죽음마저 불사하는 
불나비의 속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몽유병이요 열병인 동시에 죽음에 이르는 병이기도 하
다.
  그러나 연애의 이렇나 속성들은, 모두가 상대방을 소유하고자 하는 탐욕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몽유병이요 열병이며,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
이다.
  하지만 진정한 연애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산에 핀 야생화가 아름답다면, 그 아름다움
을 보고 싶을 때는 산으로 가야 한다. 집에 갖다놓고 보기 위해 꺾어오면, 그 야생화는 시들
어버린다. 꽃은 거기 그 자리에 두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소유형태의 연애는, 연인을 시들
게 하고 죽이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또 소유형태의 연애는, 오직 육체의 탐닉을 통한 성욕의 충족과 종족보존을 그 목적으로 
한다. 거기에는 반드시 소유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개연성에 대한 불안이 있다. 그래서 마
치 버마재비의 암컷이, 수컷을 먹어치움으로써 완전히 소유해버리듯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가둬놓고 한 마리의 애완동물 같은 여자를 만들기 위해, 또는 돈이라는 꿀을 따오는 일벌 
같은 남자를 만들기 위한, 그런 목적의식이 깔린 연애는 가장 저질의 연애이다.
  그런 연애는 비록 성공을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두 사람의 탐
욕적 이기주의의 야합인 동시에, 결혼이라는 성취에 의해 이미 상대를 더 이상 소유하기 위
해 안달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내 무관심해지고 심드렁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연
애할 때의 '죽자살자'가 끝내 '죽여라 살려라'로 변질되는 것이다. 연애결혼이 중매결혼보
다 이혼율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정한 이상적인 연애는 서로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육체나 재산 또는 가문
이나 권세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마음씨와 교양, 건강과 미모, 성실성과 특기를 서로 
아끼고 격려하고 존중하며 북돋워주는 것이다. 이게 바로 비익조요연리지다. 다시 말하면, 
E. 프롬이 말한 '연애의 존재형태'라는 말이다.
  참된 연애는 그냥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아무 조건도 계산도 없이, 그저 원도 한도 
없이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다. 그로써 족한 것이다. 결혼을 못하면 어떠랴.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라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알파도 사랑이요, 오메가도 사랑일 뿐이
다.
  사랑하다 사랑하다 그대로 바위가 된들 그 또한 어떠랴.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는 사람
보다는, 내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서만 사랑한 사람보다는, 혼신의 힘으로 아무 조건 없이, 
원도 한도 없이 한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에게 축복 있으라.
  
    도깨비 장난
  지구가 만원사례인 요즘만큼 가족계획이 시급한 때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는데, 그후로는 둘도 많다고 아우성이다. 요즘에
는 곧잘 이런 농담들을 한다. "아들 딸 낳지 말고 우리끼리 잘 살자"라고.
  십여 년 전 일이다. 어느 날 삼십 대 후반의 부부가 내 진료실에 찾아왔다. 그런데 두 사
람 모두 표정은 시큰둥하고, 눈은 충혈된 채 퉁퉁 부어 있었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 조심스
레 물어봤더니, 남편은 기막힌(?) 사연을 털어놓았다.
  남편은 일 년 전에 정관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근래 와서 부인에게 임신 징후가 있어 산
부인과엘 갔더니, 임신 삼 개월이라고 했다. 그만 하늘이 무너지고 천지가 개벽하는 충격을 
받은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밤새도록 한잠 자지 않고 철야심문(?)을 하며, 어떤 놈팡이냐, 
바른 대로 대지 않으면 너 죽고 나 죽는다며, 끝까지 울면서 결백을 주장하는 부인을 복날 
개 패듯이 밤새껏 두들겨팼다.
  드디어, 견디다 못한 부인이 만약 정관수술이 잘못됐다면 그땐 어떻게 하겠느냐며 역습을 
가했다. 그래서, 그러면 좋다. 비뇨기과에 가서 정충검사를 해보자. 만간에 정충이 나오지 않
을 땐, 그땐 너는 축 사망(?)인 것은 물론, 그 날이 네 제삿날인 줄 알라며, 엄포를 놓고는 
이렇게 확인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정충검사를 마치고 나서 두 사람을 보니, 하나같이 초조 착잡 미묘한 표정이었다. 내 말 
한 마디에 사생결단이라도 낼 것처럼, 눈에 광채마저 띠고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부인은, '선생님 정충이 나오지요? 그렇지요?'하는 애원의 눈빛이었고 남편은, '
정충이 한 마리도 없지요? 확실하지요?'하는 눈빛이었다.
  일부러 장난스럽게 뜸을 좀 들이자, 그 남편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지, "그래, 검사결
과는 우째됐습니꺼?"하며 다그쳐 물었다.
  내가 빙긋이 웃으며, "정충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나오는데요"하니까, 갑자기 눈이 퐈등잔
만해진 남편이, "아아니, 정관수술을 했는데도 이럴 수가 있습니꺼? 그게 정말입니꺼?"하며 
떠떠버리처럼 말을 더듬는 순간 바로 그때였다.
  "아이고오, 아이고 분해라. 아이고 분해라아. 지 정관수술인지 나발인지 그거 잘못된 건 
생각도 안하고, 죽일년 살릴년 화냥년 캐싸며 밤새도록 뚜디리패고, 아이고 분해라 아이고 
아이고오....."하는 방성대곡과 함께, 부인이 진료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울부짖
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낭패한 얼굴로, 흡사 얼음판에 나자빠진 쇠눈알처럼, 초점 잃은 희멀
개진 눈을 허공에 던져놓고, 망연자실 장승처럼 서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어지간히 제정신을 차렸을 때, 난 그들에게 정관수술의 도깨비 장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정관수술이란, 가족계획을 목적으로 정관의 통로를 인위적으로 차단시켜, 정충의 배출을 
막는 영구 피임법의 하나인데, 초창기에는 그냥 묶기만 했기 때문에 실패율이 높았다. 그래
서 요즘은 아예 정관을 절단해버리는데, 그렇게 해도 우리 인체의 자생적인 재생력 때문에 
절단된 정관이 저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통계적으로 1-2%  정도가 그렇게 될 수가 있
다고 하니, 정관수술 후에는 반드시 정충검사를 해서, 수술의 성공 여부를 확인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가족계획 사업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이 또다시 일어
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나의 장황한 설명이 끝나자, 바닥에서 툭툭 털고 일어난 부인은 남편을 향해 매서운 도끼
눈으로 한 번 째려보더니, '흥'하는 콧방귀를 날리고는 휭하니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 
뒤를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맥이  다 빠져버린 남편이 휘청거리며 따라나갔는데,  그날  
그 남편씨는 아마도 부인에게 잃은 실점을 만회하느라 진땀깨나 뺐으리라.
  
    공처가
  '구약성서'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어놓고 나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
지 못하니, 내가 그를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하고는, 남자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여자 창조의 목적이, 남자를 '돕기 위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여자는 남자를 돕기는커녕, 끝내 죄를 짓고 낙원에서 쫓겨나게 만
들었다.
  그러므로 옛부터 남자들이 여자들을 학대하고 구박한 것은, 어쩌면 여자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난 것에 대한 집단무의식(?)의 발로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젠 바야흐로 남자와 여자는 그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맥
을 못추는 시대가 기어이 오고 만 것이다. 주말쯤 길거리에 나가 보라. 여자는 성장을 하고 
여왕벌처럼 으스대며 걸어가고 있고, 그 뒤를 아기를 안고 거기다 기저귀통까지 들고, 땀을 
팥죽같이 흘리며 따라가는 일벌 같은 남자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것이다. 심지어 미국에서
는 마누라한테 얻어터지고 징징 우는 남편들의 숫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여자 앞에 점점 왜소해지고 비참해지는 남자들이 증가일로에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코미
디 프로에서도, 고양이 앞의 쥐처럼 마누라 앞에서 쩔쩔매는 남편들을 곧잘 소재로 다루는 
걸 본다. 물론 웃기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언중유골이요 농중진담이라고 했듯
이, 필시 남성 거세현상의 조짐을 보는 것 같아서, 남자들은 심기가 편치 않을 것이다.
  몇 년 전에 방영된 TV 연속극 '사랑이 뭐길래'가 남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던 것
도, 대발이 아버지의 그 당당한 가부장적인 권위에, 왜속한 남자들이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
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요즘 남자들은 왜소하고 째째하고 좁쌀 같아며, 여자들도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한
다. 남자 같은 남자는 이제 천연기년물처럼 희귀하고, 여자의 치마폭자비(?)속에 안주하려고
만 든다는 것이다.
  온종일 직장에서 소같이 일만 하다가, 퇴근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
록 집으로 일로직행새서는, 마누라의 고 알량한 칭찬에 입을 헤 벌리고 어린애처럼 흡족해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허구한날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서야 밥이 끓든 죽이 끓든 오불관
언이 그런 통뼈들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서 속칭 공처가라는 말이 있다. 공처가라는 말에 가자가 붙은 것은, 마누라 무서워하
는 데도 일가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그것도 요즘 와서는 그냥 무서워만 하는 게 아니고 깜
짝깜짝 놀라는 경처가, 파랗게 질려버리는 청처가, 와들와들 떠는 경처가, 그리고 기절해버
리는 기처가로 일취월장하고 있다고 한다.
  옛날 어느 장군이 지독한 공처가였는데, 자기 부하들은 과연 어떤지 한번 시험해볼 양으
로, 연병장 앞쪽에 장대를 세워놓고는, 마누라가 겁나는 사람은 왼쪽 장대로, 겁나지 않은 
사람은 오른쪽 장대로 가라고 했더니 모두가 왼쪽 장대로 우르르 몰려갔는데, 오직 한 사람
만이 오른쪽 장대로 가더란다. 장군은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하고 그 친구를 불러 참으로 
장하다며 치하를 했더니, 그 친구 이렇게 말하더란다.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우리 집사람
이 사람 많이 모인 곳엔 가지 말라고 해서....."
  또 이런 우스개도 있다. 부부싸움 도중 남편이 역부족으로 마루 밑으로 긴급 피난을 했는
데, 마누라가 마루를 발로 쾅쾅 구르며 사내답게 나오라고 하니, 마루 밑의 남편은 이렇게 
큰 소릴 치더란다. "대장부 남자가 한 번 안 나간다면 안 나가!"
  남자가 집을 뛰쳐나가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고 한다. 즉, 집에 비가 셀 때, 집안에 연기
가 꽉 찼을 때, 그리고 집에 악처가 있을 때이다. 톨스토이의 가출도 위의 세 가지 중의 하
나에 해당된다는 말도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 힘이 월등히 센 남성이, 왜 공처가가 되는지 그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어릴 때 너무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거나, 반대로 어머니의 과보호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한다.
  여자는 누구나 남자에게는 어머니로 투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히 중년기 이후에 공처
가가 되는 남자가 많다는 것은, 여자들의 그 쌍구의 소음에 대한 일종의 자포자기가 아닌지 
모르겠다.
  
    조강지처
  옛날에 남정네들이 칠거지악을 만들어 아내를 내쫓는 구실을 삼았지만, 다음 세 가지 경
우만은 결코 내쫓지 못하게 했다. 즉, 내쫓아도 아내가 갈 곳이 없는 경우, 부모의 삼년상을 
함께 치렀을 경우, 그리고 장가들 때 가난했다가, 그후로 부귀하게 된 경우이다. 이를 삼불
거라고 하는데, 남정네들의 최소한의 양심이었던 셈이다.
  아내를 일러 흔히 '조강지처'라고 하는데, 이 말은 가난과 고통을 함께한 아내라는 말이
다. 그러니 함부로 괄세를 해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조강지처 불하당이라 했다.
  그러나 남정네들의 심보가 어디 그렇던가. 밑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다가도 어찌어찌해
서 밥술이라도 뜨게 되면, 그만 한눈을 파는 게 남정네들이다. 그래서 노류장화를 쫓아다니
거나, 아니면 시앗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아내와 시앗의 틈바구니에서, 팔자에 없는 대머리가 됐다는 우스개도 있다. 
젊은 시앗한테 가면 늙어보인다며 흰 머리칼을 뽑아버리고, 아내한테 가면 젊어보인다고 검
은 머리칼을 왕창 뽑아버리는 바람에, 그만 호마이카가 됐다는 것이다.
  또 어떤 남자는 저녁이 되면 아내와 시앗이 서로 자기 방으로 오라고 쟁탈전을 벌이자, 
"머리맡에는 야차가 울부짖고, 건너방에는 사자가 포효하는구나"라며 탄식을 했다는데, 혹시 
즐거운 비명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했듯이, 처와 시앗의 함수관계는 결코 좋을 
수가 없었다. 처가 시앗을 질투하면 그건 칠거지악에 해당되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전투(?)
를 벌이는게 아니라 물밑에서 으르릉거리는 암투를 벌였다. 말하자면 시앗의 도전과 아내의 
응전이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테살리아의 왕 아드메토스가 어느 날 갑자기 병
이 들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자 아폴론이 운명의 신에게 좀 봐줄 수 없겠느냐고 부
탁을 했는데, 누가 대신 죽을 수 있다면 아드메토스를 살려줄 수가 있다는 승락을 받았다. 
그 말을 들은 아드메토스는 뛸 듯이 기뻐했다. 왜냐하면, 평소 임금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언제라도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노라는 신하들의 소리를, 신물이 나도록 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임금 대신 누가 죽어줄 것이냐는 절박한 상황이 벌어지자, 신하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슬슬 꽁무니를 뺐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신하들도 있었다. "도대체 임금
님의 부모님들은 이럴 때 아들 대신 좀 죽어주질 않고 뭘 하는지 모르겠네. 다 늙은 주제에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그러나 임금님의 부모님도, 아들이 죽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대신 죽는 것은 사양했다. 
이렇게 되자 아드메토스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을 했다. 속으론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믿을 놈 하나도 없네' 라고.
  바로 그때였다. 아드메토스의 아내 알케스티스가, 자기가 대신 죽겠노라며 나섰다. 그런데 
저승사자가 알케스티스를 끌고 가려는 찰나, 천하장사 헤라클레스가 나타나 왕방울 같은 눈
을 부릅뜨고 앞을 딱 가로막고 나섰다. 그 어기찬 기세에 야코가 팍 죽은 저승사자는, 끽소
리 못하고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그래서 아드메토스는, 죽음도 불사한 그의 헌신적인 조강지
처와 잘 먹고 잘 살았단다.
  이런 우스개도 있다. 아내와 시앗이 늘상 으르렁거리는 꼬락서니에 신물이 난 어떤 남자
가, 하루는 둘이 보는 앞에서 칼로 살송곳을 댕강 잘라 마당에 던져버렸다. 그러자 웬 떡이
냐며 마당에 있던 개가 냉큼 삼켜버렸다(그건 미리 준비한 소시지였다). 그걸 본 순간 시앗
은, "너도 못 먹고 나도 못 먹고 속시원히 잘됐다"며, 봇짐을 싸들고는 휑하니 집을 나가버
렸다. 그러나 아내는 마당에 있는 개 앞에 가서 손을 내밀고는 애절한 목소리로, "멍멍아 
퉤, 멍멍아 퉤퉤"하며 통사정을 하더란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아마 콧등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을 것이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이혼을 했거나 사별을 한 사람보다, 조강지처와 함께 아웅다웅하면서
도 같이 사는 사람이 평균 10년은 더 산다고 한다. 조강지처 만세다.
  
    아담과 이브의 변신
  '유니섹스'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이젠 성의 짬뽕시대가 도래한 느낌이 든다. 남
성은 여성화로, 여성은 남성화로 가는 그런 시대란 말이다.
  이런 현상도 일리는 있다고 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로 지금
까지, 남성은 남성으로 여성은 여성으로 그렇게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젠 서로의 
위치를 완전히 바꾸지는 못할망정, 남성은 여성 쪽으로 여성은 남성 쪽으로 변용을 시도해
봄으로써, 서로가 궁금했던 그 성적인 역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을 '남성이다' 또는 '여성이다'로 확연히 구별짓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
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생물학적으로 완전한 남성 또는 여성이라야 하고(Biological Sex), 사회적으로 남성 
또는 여성의 역할을 해야 하며(Gender Role), 성적으로 이성지향적이라야 한다
(Sexual Orientation). 분명히 남자 또는 여자가 확실한데, 사회적으로는 반대로 행세를 하는 
경우를 '성 전환증(Trans Sexualism)'이라 하고, 단지 복장만 반대로 입고 다니는 경우를 '
복장 도착증(Trans Vestism)'이라고 하며,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 로마 황제 칼리굴
라,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 그리고 프랑스의 여걸 잔 다르크가 유명하다.
  복장 도착증이 되는 재미있는 경우로는, 딸만 있는 가정에서 막내가 아들이기를 학수고대
했으나 역시 또 딸을 낳자, 그만 한이 맺힌 나머지 그 딸을 아들처럼 옷을 입히고 아들처럼 
행세하도록 키워오다가, 결국은 복장 도착증이 된 그런 예가 있다. 이게 잘못되면 성 전환증
이 되는 수도 있다. 
  요즘 길거리에서 보면, 신세대들이 청바지를 즐겨 입고 다니는데, 총각들의 청바지는 비록 
낡긴 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온전한 반면, 아가씨들의 청바지는 하나같이 한두 군데가 찢어
져 있다. 찢어진 청바지에다 배꼽까지 내놓고 활보하는 아가씨들의 처녀막은, 그 안부를 물
을 필요가 없음을 말해준다. 
  복장 도착증은 그런대로 큰 문제는 없지만, 성 전환증은 좀 곤란하다. 남자는 자기가 남자
인 것이 견딜 수가 없고, 여자는 자신이 여자인 것이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엄연한 
남자인데도 그 사실이 죽기보다 싫고, 자기가 어딜 보나 여자임에 틀림없는데도, 그 사실이 
그렇게 혐오스러울 수가 없다. 
  성 전환증의 치료는 세 단계로 나누는데, 우선 신경정신과에 보내 그 변태적인 성향을 포
기하도록 열심히 정신치료를 시킨다. 그것이 실패했을 때는 도리없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
로 성 전환을 해주는데, 남자에게는 여성 호르몬을, 여자에게는 남성 호르몬을 투여한다. 그
러나 남자는 유방이 커지고 여자는 음핵이 좀 커지는 정도뿐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성 전
환 수술을 하게 되는데, 남자는 살송곳과 고환을 몽땅 들어내고 거기다 질을 만들면 제법 
쓸 만하게 되지만, 여자는 자궁과 질 그리고 난소와 유방까지 왕창 들어내봤자, 조금 커진 
음핵이 살송곳의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수술 결과에 상당히 만족하
고, 심지어 결혼까지 하는 수가 있지만, 여자들은 실망한 나머지 그만 지구에서 내려버리는 
사람도 있다.
  약 15년 전 일이다. 하루는 어떤 총각이 와서는 아무 말도 않고 자기의 살송곳을 가리키
며 씩 웃길래, '아하, 이 친구가 포경수술을 하러 왔는데, 말하기가 좀 뭣해서 그러는구나' 
싶어, 모셔가지고 아담하게 수술을 해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수술실에서 나온 
그 친구가 날더러, "보소, 아저씨. 난 말이요, 이거 끊어달라고 했는데, 와 이 모양으로 해놨
능교. 당장 무라내소 이거"하며 눈을 부라리는 게 아닌가. 오 마이 갓!
  또 한 번은 옛날 육군병원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하루는 간호장교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서 내게 달려왔다. 덤비지 말고 차근히 이야길 해보라고 했더니, 그냥 손으로 병실 쪽을 가
리키기만 했다. 사태가 심상찮음을 간파한 나는 즉시 병실로 갔다. 가서 보니, 환자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는 가운데, 신장결핵환자인 김일병이 침대에 앉아 열심히 무슨 작
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어이 김일병, 귀관은 지금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가?"하니, 그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히히, 이걸 파낼려고 하는데 어디 마땅한 연장
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이걸로(숟가락) 파내고 있는데, 영 잘 안되네요"하고는 다시 작업을 
계속했다. 그의 살송곳에서 피가 철철 나는 걸로 봐서, 공사가 꽤나 진척된 듯싶었다.
  
    유쾌한 포기
  지구는 만원이다. 그래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이젠 둘도 많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
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고르지 못한 것이 인간사라서, 결혼한 부부들의 10-20%가 불임이라는 사실
은 분명 하나의 아이러니다.
  불임의 원인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불임인 사람의 50%에서 신경증
을 발견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죄책감이나 불안 같은 스트레스가 그 주범이라고 한다. 특
히 불임 여성들은 히스테리나 공격적인 성격이 많은데, 이를 '불임 성격'이라고 한다.
  임신을 해보겠다고 무진 애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멘스가 시작되면, 실망과 자괴감 
그리고 분노마저 느끼게 된다. 급기야는 남편이 하나의 '정충생산 기계'처럼 보이고, 부부
관계에도 혐오를 느껴 통증만 올 뿐 아무런 재미도 없고, 심지어 바기니스무스까지 와서 악
순환이 거듭된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른바 '상상 임신'이라는 게 있는데, 임신을 할 수가 없는데도 천
지신명께 기도를 하고 치성을 드려서 그게 하늘에 사무치면, 지성이면 감천이라 어느 날 배
가 불러오기 시작하고 입덧이 생기면서 영락없는 임신증후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
님이 보우하사 드디어 임신이 되었다며, 아기의 이름까지 미리 지어놓고 기다리는데, 어느 
날 흡사 바람빠진 풍선처럼 배가 푹 꺼져버리는 것이다.
  불임 치료법으로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이른바 인공수정과 시험과 아기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이제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불임 부부에게 하나의 복음이 되고 있지만, 문제
는 인공수정에 있다.
  인공수정은 그 원인이 남성측에 있을 때 실시하는 시술이다. 여기엔 두 가지가 있는데, 하
나는 남편의 정액을 사용하는 경우와(AIH), 다른 하나는 공급자의 정액을 사용하는 경우이
다(AID). 'AIH'의 경우는 남편이 발기부전이거나, 요도하열, 요도협착에 의한 역류성 사정, 
정충이 자궁 경관을 통과하지 못할 때, 그리고 정액이 너무 묽을 때 등이다.
  그러나 애당초 고환에서 정충이 생산되지 않는 경우에는 부득이 'AID' 차관을 도입하
게 되는데, 이것은 또 제공자가 직접 와서 즉석에서 제공하는  일반미(?) 타입이 있고, 미리 
냉동 보관된 정액을 사용하는 정부미(?) 타입이 있다.
  그런데 'AID'에 있어서의 성공확률은 30-90%라고 하는데, 남편의 협조가 없으면 30%, 
협조가 있으면 90%라는 말이다. 사실 'AID' 차관을 도입하는 문제에 있어서, 대부분의 남
편씨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의 억지 춘향이가 되는데  대한 심한 거부반응과 질투 및  분노를 
나타내게 마련이다. 그래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편의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한데, 미
리 남편을 충분히 설득시키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면 그  인공수정의 시술에 적극 동참하는 
뜻에서, 남편이 직접 주사기를 들고 부인의 자궁에다 주입함으로써, '내가 우리의 아기를 만
들고 있다'는 참여의식을 갖게 되면, 성공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남이 만들어놓은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반타작은 되는 셈이 아닌가 말이다.
  또 한 가지 시덥잖은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AID' 인공수정을 시술
하는 의사는, 그 차관 제공자의 사진을 잘 관찰해서, 가급적이면 남편씨와 얼굴이 닮은 사람
의 것을 골라주는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발가락이 닮은 것보다는 얼
굴이 닮은 게 낫기 때문이다.
  어떤 불임 부부는, "에라 모르겠다. 팔자에 없는 자식 용쓴다고 될까보냐. 까짓 무자식 상
팔자 아니던가"라며 깨끗이 단념하고, 부부 동반으로 죽장망혜 단표자로 주유천하의 여행을 
떠나서, 삶의 질곡으로부터 그야말로 무애자재한 자유인이 되어, 텅 빈 마음으로 이토록 아
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조물주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대자연의 품에 안겨 한 쌍의 원앙으로 
맘껏 뛰놀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놀랍게도 임신이 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이게 바로 '유
쾌한 포기'의 신비로움이다.
  일찍이 키에르케고르도 말하지 않았던가. 절망하라고. 실존적 한계상황에서 기사회생하기 
위해서는 절망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절망의 바닥을 박차고서야 비로소 희망의 나래를 활
짝 펼칠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유쾌한 포기'에 다름아니다.
  
    호모와 헤테로
  섹스는 이성간에 이루어지는 게 정상이지만(Hetero), 때로는 동성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동성애(Homo)라고 한다.
  킨제이의 보고에 의하면, 남성의 4%, 여성의 2%가 호모라고 한다. 사실 동성간에 섹스를 
한다는 것은, 어딘가 꺼림칙하고 변태적인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런 
호모를 정신병자로 취급해서 무지막지한 박해를 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헤테로와 호모간에 절대적인 구분이 있는건 아니고, 그 사람의 성적 
취향이 어느 쪽을 선호하는가 하는 차이뿐이다. 킨제이도 헤테로를 0으로 보고 호모를 6으
로 봤을 때, 누구나 이 중의 어느 단계에 속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흔히 
어릴 때는 이성보다는 동성간에 어떤 형태의 육체적 행위를 하는 수가 많고, 군대나 교도소 
기타 동성들만의 집단생활을 하고 있는 곳에는, 호모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넓게 말하면, 남성의 절반과 여성의 20%는 적어도 한 번 이상 동성간의 에로틱한 
경험이 있다고 봐야 한다. 흔히 여자같은 남자와 남자같은 여자가 호모가 될 가능성이 많다
고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호모의 역사도 꽤나 깊다. '구약성서'에 보면,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자고 있을 때 
그의 아들 함이 노아에게 호모(아니면 비슷한)를  한 걸로 되어 있다. 성경의 문구상으로는 
벌거벗은 아버지의 몸을 덮어드리지 않은 걸로 되어 있지만, 그만한 일로 노아가 아들 함은 
물론 손자 가나안까지 저주를 하고 있는 걸 보면, 호모를 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또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유력인사들이 미소년을 고용하여 호모를 즐긴 것은 보통이었고, 
중국에서도 전국시대에 용양군이라는 사람이 위왕에게 호모를 제공하여 벼슬을 얻었다는 기
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사당패들이 호모를 즐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심지어 궁
중에서 세자빈이 궁녀와 호모를 하다가 폐출되어 자결하는 소동까지 있었다. 여자들의 이런 
호모를 우리나라에서는 '대식'이라고 불렀다.
  아프리카의 시완스족, 호주의 아란다족, 그리고 뉴기니아의 케라키족들은 헤테로도 즐기고 
호모도 즐기는, 말하자면 양수겸장의 섹스를 즐긴다고 하는 걸 보면, 호모가 결코 성적 도착
이나 미친 짓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참고로 호모를 즐겼던 세계적인 명사들을 소개해보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
토텔레스, 알렉산더 대왕, 줄리어스 1세, 소포클레스, 아드리아누스(로마 황제), 리차드 1세, 
제임스 1세, 에드워드 2세, 차이코프스키, 랭보, 서머세트 몸, 케인즈, 휘트먼, 고골리, 안데르
센,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실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다. 그리스의 여류 시인 사포
(Sappho)도 호모를 즐겼는데, 그의 고향 레스보스의 이름을 따서, 이런 여성 호모들을 별도
로 '레스비언'이라고 한다.
  이들 호모들이 즐겼던 방식으로는 펠라치오나 컨니링구스 같은 오럴섹스나 상호 마스터베
이션을 하거나 에이널 섹스 또는 각선생을 사용하는 등 다양하다는데, 각선생은 여성 호모
들이 사용하는 것이고, 에이널 섹스는 남성 호모들이 하는 스타일인데, 이 에이널 섹스는 속
칭 '바구리'라고 해서, 옛날 골목대장들이 써먹던 방법이기도 하다.
  몇 년 전 경주의 안압지 준설공사 때 각선생이 발견된 걸 보면, 삼국시대에도 이미 레스
비언이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도 종종 호모들이 해외 토픽란을 장식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젠 그들도 모모가 아니
라, '호모적인 헤테로'임을 주장하면서, 전국 호모협회를 조직하여 신문을 발행해서 그들
의 권익을 옹호하여 홍보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단합된  힘으로 회원들을 정계에도 진출시
키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라는 가공할 전염병이 주로 이런 호모들에게서 
발생하는 걸 보면, 섹스에 대한 자연의 섭리는 종족보전에 있지, 결코 엔조이에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며느리 밑씻개
  남자가 장가를 들면 남편이 되고 사위가 되듯이, 여자도 시집을 가면 아내가 되고 며느리
가 된다.
  머슴살이, 셋방살이, 처가살이, 그리고 시집살이라는 말이 있지만, '살이'라는 말은 모두
가 부정적인 뜻으로 쓰는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여자가 시집을 가서  시집에
서 살게 되면, 그 집이 엄연히 자기 집인데도 '시집살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며느리
의 고충을 알 만하지 않은가.
  "고초당초 맵다 한들 시집살이 비할소냐"라는 말이 있다. 어디 맵기만 했으랴. 시고, 쓰고, 
짜고, 떫었을 것이다. 그건 모두 시어미 때문이다. 이른바 고부갈등이다. 거기다 설상가상으
로 시누이까지 끼어들어 엎친 데 덮치는 수도 있다. 그래서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
이가 더 밉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남편의 고충도 크다. 부엌에 가면 아내 말이 맞고, 방에 가면 어머니 말이 맞
기 때문에,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우왕좌왕하게 된다는 말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옛부터 우리네는 며느리 학대하기로는 이골이 난 민족이
다. 자기 딸도 시집을 가면 어차피 남의 집 며느리가 되어, 맵짠 시집살이에 눈물이 마를 날
이 없을 게 뻔한데, 그걸 생각해서라도 며느리한테 잘해 줄 법도 한데, 그게 글쎄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아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모습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단다.
  며느리가 밉긴 가운데 트집잡을 데가 없으면, 발 뒤꿈치가 계란같이 생겼다며 흉을 봤다. 
심지어 농사를 보살핀다는 이른바 '영등 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도, 비가 오는 날은 
딸을 데리고 내려오고(머리칼이 촉촉해져 예뻐보이라고), 바람이 부는 날은 며느리를 데리고 
내려온다고 믿었다(머리칼이 바람에 날려 봉두난발이 되어 못나보이라고.)
  거기다 며느리가 만간에 아들을 못 낳을 때는, 시어미는 기어이 시앗을 데려온다. 그래서 
남편과 시앗이 방안에서 아들을 낳기 위해 운우의 한판을 벌이고 있을때, 며느리는 청마루
에 정화수를 떠다놓고, "부디 아들이 만들어지사이다"하며 두 손을 비비고 있어야만 했다. 
방안에서 물에 빠진 소리가 그칠 때까지 말이다.
  또 며느리를 얼마나 시덥찮게 여겼으면, 학질 중에서도 매일같이 고열에다 한기가 드는 
고약한 학질을 일러 '며느리 고금'이라 하고, 길가의 흔해빠진 잡초들 이름에 '며느리 배꼽
', '며느리 밥풀'이라는 게 있고, 심지어 '며느리 밑씻개'라는 것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동
물들의 발 뒤축에 쓸모없이 달려 있는 발톱을 '며느리 발톱'이라 하고, 집을 지을 때 서까래 
끝에 짤막하게 이어서 달아내는 서가래를 '며느리 서까래'라 부른다. 한 마디로 '며느리'라
는 말이 붙는 것은 모두가 시덥잖고 별볼일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괄세만 받는 며느리도,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있었다. 부엌에서 아궁이
에 불을 땔 때, 부지깽이를 일부러 몽땅 태워버리기도 하고(부지깽이는 시어머니의 상징), 
누룽지를 긁을 때도 쇠주걱으로 솥바닥이 뚫어져라 박박 긁어대기도 했다. 그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으면 애꿎은 강아지 배때기를 걷어차기도 했다. 또 동네 며느리들이 몇 사람 모처
럼 모이는 날엔, 물을 가득 채운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윷가치로, 시어미의 머리통을 
치는 기분으로, 신나게 두들기며 놀았다는데, 그게 이른바 '물박치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어미의 표독한 눈매를 어느 정도 완충시켜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시아버지
였다. 사위 사랑은 장모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 하질 않던가. 시어미한테 불려가서 한
바탕 구박을 받고 나오다가, 문득 마주친 시아버지의 눈길, 그 인자하고 애처러워하는 시아
버지의 따뜻한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그만 시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한없이 목놓아 울고 싶
었으리라.
  하지만 이제 세상은 많이도 바뀌었다. 이젠 그런 괄세와 구박을 받아가며 시집살이할 며
느리가 없는 것은 물론, 대신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하는 그런 판국이다. 그래서 최근 일본
에서는 며느리에게 잘보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늙어 의지한 데는 며느
리밖에 없기 때문이며, 며느리를 효부로 만드는 것, 그것도 하나의 투자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어느 날 택시를 타고 가다가, 라이오에서 누가 열변을 토하길래 무심코 듣고 있다가 아연
실색할 일이 있다.
  그것은 청소년들의 성문제에 대한 어느 카운셀러의 말씀이었는데 내용인즉, 어떤 여고생
이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하루는 데이트를 하던 중 그 친구가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하길래 
멋모르고 따라갔더니, 갑자기 늑대로 돌변하더란다.
  혼비백산한 여고생은 완강히 뿌리치고 내빼오긴 했지만, 그 후 남자친구가 보고 싶긴 하
고 막상 만나려니 늑대 생각이 나서, 혼자 고민하던 끝에 이렇게 고명하신 선생님에게 자문
을 청하게 되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연실색한 것은, 그 고명하신 카운셀러의 대답이었다. "예, 이런 경우는 말
이지요, 사실은 그 여고생이, 남자 친구보다 오히려 성관계를 갖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는 
겁니다. 좋아하면서도 그만한 일 때문에 다시는 만나기가 싫다느니 겁이 난다느니 하는 건 
말이지요. 이건 정신분석학적으로....."
  그 고명하신 선생님의 말씀은 점입가경이었는데, 그 여고생의 안타까운 호소에 조언을 해
줄 생각은 않고, 지가 뭐 프로이트나 융을 업어치기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종일관 자신의 
그 알량한 구이지학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지봉유설'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척이라는 떠버리가 있었는데, 이 세상의 책이란 
책은 읽지 않은 게 없노라며, 기고만장 떠벌리고 다녔다. 듣다못한 친구들이 하루는, "그렇
다면 목자심역이라는 책도 읽어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만 대답을 못해 친구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목자심역은 두 자씩 합치면 이척, 그 떠버리의 이름이었기 때
문이다.
  각설하고, 현대와 같이 섹스토피아의 시대에, 아직도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걸맞는 성교육
의 패러다임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참으로 가슴아프게 생각하면서, 적어도 다음 
몇 가지는 우리 청소년들이 가슴깊이 새겨주었으면 싶다.
  첫째, 성폭행을 하지 마라. 그것은 치사하고 가증한 짓이다. 짐승들도 암컷이 싫어하면 억
지로 하지 않는다. 그러니 성폭행은 짐승보다 못한 짓이다.
  청소년들의 그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충동은, 단지 배설의 욕구에 불과하다. 도저히, 죽어
도 참지 못하겠거든 살송곳을 잡고 흔들어라. 기껏해야 5분이면 해결된다. 그뿐이다. 그토록 
간단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일을 저질러서, 상대방은 정신병원에 가고, 자신의 
법무부의 국립호텔로 가서야 되겠는가.
  둘째, 인간의 섹스는 동물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동물의 
섹스는 본능적인 성 충동에 의한 섹스다. 그러나 인간의 섹스는 이성의 통제하에서 행해지
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과 책임이 결여된 섹스는, 섹스의 불장난이요 호작질이며 동물적인 
교접행위에 불과하다. 인이 인이듯이, 성은 성이다. 감각적 충동의 만족을 위한 오락이 아니
라는 말이다. 사랑과 책임감의 바탕 위에, 법저긍로 섹스를 보장해 주는 결혼이라는 통과의
례를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냥 한 잔 커피를 마시듯이, 부담없이 즐기
고 미련없이 헤어지는 인스턴트 섹스는, 성스러운 섹스를 모독하는 짓이다.
  청소년들은 앞으로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 청소년 시절을 섹스의 호작질로만 탕진한 사람
은, 나중에 그 시절을 알차게 보낸 사람의 동정과 자비를 구걸하게 될 것이다.
 셋째, 피임을 하라는 것이다. 만약 성적인 호작질에 중독이 되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청
소년은 피임을 하라는 말이다. 청소년들의 피임법으로는 콘돔이 좋다. 그것은 피임과 성병 
예방의 두가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간편하고 간단하다. 그렇게만이라도 하면, 미혼모가 
되어 자신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두통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며, 무서운 성병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악몽에 시달리거나, 지구를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두에서 말했던 그 여고생, 고명하신 카운셀러에게 조언을 구했건만, 엉뚱한 지청구만 받
았던 그 여고생이야말로 얼마나 갸륵한가. 현대의 이 섹스토피아의 시대에, 육체적 탐닉이 
아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갈망했던 그 여고생을, 한낱 섹스의 오락물로만 취급한 그
런 녀석에게 미련을 가질 건 개코도 없다. 그러니 과감히 잊어버리고 새롭게 진실된 남자친
구를 찾아라. 더 좋은 열매를 위해, 쓸데없는 가지들을 과감히 잘라내는 농부들의 전지의 지
혜를 배우라.







    제 3의 물결
  사람의 성적 행위는 사춘기 때부터 시작되는 걸로 알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옛날엔 
사춘기 이전의 아이들에게서는 섹스란 있을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
다.
  루소는 그의 교육서 '에밀'에서 아이들의 섹스를 인정치 않는 것은 론 나아가 '섹스
에 대해 모르고 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고 말했는데 반하여,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
인간은 태어나서 엄마의 젖을 빠는 순간부터 섹스가 시작된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그 바
람에 세상은 발칵 뒤집혀졌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성적 발달을 세 단계로 나누었다.
  첫째는 구순기인데 젖을 빠는 행위를 위시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입으로 만족하고 감지
하는 시기이다. 그러다가 두번째의 항문기로 옮겨가는데, 대소변을 가리는 훈련에 의해 배변
을 자율적으로 조절함으로써 모든 만족의 초점은 항문이 되는 것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성기기로 나아가 이때부터 모든 흥미와 만족은 생식기가 된다. 외부(주
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함은 물론 자기 몸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보이는데(특히 성기), 
사내아이는 이때 자기 아버지를 엄마에 대한 연적으로 인식하는 소위 오이디푸스 컴플렉
스(Oedipus complex)를 느끼게 되며, 계집아이는 반대로 엄마를 아버지에 대한 자기의 연적
으로 생각하는 일렉트라 컴플렉스(Electra complex)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때로는 이 3단계의 이행이 순조롭지 못하여, 구순기나 항문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
도 있는데 이를 '고착'이라 한다.
  구순기에 고착된 경우 성적으로 오럴섹스를 즐기게 되며, 사회적으로 식충이나 골초 또는 
술독들이 많다고 하고 또 항문기에 고착된 사람은 성적으로 더러 계간을 즐겨하고, 사회적
으로는 구두쇠나 수전노가 많다고 한다. 까닭인즉, 창자에 변을 잔득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을 
수중에 잔뜩 움켜쥐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프로이드의 선언이 아니더라도 유아기부터 사내아이는 발기가 가능하며, 계집애는 질에 
윤활액이 분비된다. 유아도 성기의 자극에 쾌감을 느끼며 비록 성인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얼마든지 오르가슴에 이를 수가 있다.
  5세에선 50%, 13세까지는 무려 80%가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데, 여자아이는 비록 육
체적인 발육은 남자보다 빠르나 소위 이성에의 눈뜸에 있어서는 오히려 늦은 편이다. '남
자는 씩씩하게, 여자는 얌전하게'라는 사회 통념의 이중기준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실제로 
고추는 손으로 만질 기회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사람의 성행위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첫째는 자손 생산적인 성행위다.
  옛날엔 성행위라 하면 곧 이것을 의미했을만큼 의 기능을 여기에 국한시켜 왔고 이를 
벗어난 일체의 성행위는 터부였다.
  두번째는 생산과 무고나한, 오직 성적 쾌감을 목적으로 한 성행위로 자위,호모섹스, 오럴 
및 에이널 인터코스(Anal intercourse)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번째는 성적 쾌감 이외의 모든 쾌감 추구의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광의의 성행위이며 
예술, 스포츠, 레저 및 기호품을 즐기는 행위까지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사실 승화된 미를 추구하는 예술은 카타르시스란 쾌감이 있고, 스포츠는 엔도르
핀이란 호르몬의 분비에 의한 쾌감이 있고, 레저 및 기호품은 긴장의 이완과 스트레스의 해
소라는 쾌감이 있기 때문이다.
  인구 폭발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현대인들이 차츰 첫번째의 성행위보다 두번째와 세번째
의 성행위로 옮아가고 있는 인상이 짙음은, 프랑스에서 '제발 아이좀 낳읍시다'란 이색 캠페
인이 벌어지고 있는 걸 보면 알만한 일이다.
  종족 보존이라는 제1의 물결에서 핵가족이란 제2의 물결을 거쳐 부부 엔조이라는  제3의 
성물결이 바야흐로 밀려오고 있다고나 할까.
  
    사랑의 포장마차
  이 거대한 지구를 하나의 자그마한 지구촌으로 축소 시켜놓을 정도로 교통수단은 이제 눈
부시게 발전을 했고, 현대인은 바야흐로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옛날부터 이런 교
통수단들중에 섹스에 이용된 것들이 있었다.
  교통수단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는 역시 보행이다. 그래서 남자는 111호 자가용이고, 여자
는 101호 자가용이라고 우스갯소리를 곧잘 하기도 한다.
  현대 스포츠 의학에서도 걷기 운동이 그 어느 운동보다도 건강에 좋다고 발표를 하고 있
다. 더구나 경보경기 같은 것을 보면 정말이지 실감이 난다. 골반과 호음부 근육의 탄력을 
기르는데는 안성마춤이다. 또한 보행의 다른 형태인 춤은 더더욱 그 효과가 뛰어나다고 하
질 않는가.
  다음은 가마에 대해서 알아보자. 가마는 보통 여성들의 교통수단이었다. 새색시가 가마 타
고 시집갈때 종종 가마 안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있다.
  시댁과의 거리가 먼 새색시는 중도에서 오줌이 마렵다고 해서 가마를 세우고 오줌누러 나
가기는 자뭇 거북했을 것이다. 그래서 친정 어머니가 살짝 주는 것이 요강이다.
  그러나 고요한 시골길에서 요강을 강타하는 새색시의 그 오줌소리는 우얄끼고. 더구나 가
마꾼들은 모두가 남정네들이 아닌가. 그래서 친정 어머니는 이를 미리 알고 요강 안에다 목
화씨를 반쯤 채워 넣어두었다.
  새색시의 그 수줍은 오줌소리를 목화씨가 감쪽같이 흡수해 주는 것이다. 하필 목화씨를 
넣어주는 것은, 목화는 길쌈을 상징하며 길쌈은 여성들의 중요한 가사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옛날의 교통수단으로 말을 빼놓을 수 없다. 말은 주로 남자들이 타고 다녔지만, 여자들도 
먼 길을 갈 때는 곧잘 타고 다니기도 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주로 귀부인들이 말을 타고 여행을 했다는데, 그러자면 말을 모는 남자 
동행자가 있어야 했다. 그 사람은 그 귀부인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서 귀부인 자신이 
골라 뽑은 남자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남자는 뒤에 타고 귀부인은 그 앞에 타는데, 그렇게 되면 귀부인의 엉덩이가 남자
의 살송곳에 밀착되고, 말의 걸음걸이에 따라 두 사람의 몸은 전후로 율동있게 움직에게 된
다. 동시에 그 행운의 사나이는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또 한손으로는 귀부인의 온 몸을 
주유천하했다고 한다.
  또 마차가 있다. 이 마차가 섹스용으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중국의 수양제는 색을 무척이
나 좋아했던 황제 중의 한 사람인데, 마차를 타고 밖에 나다니는 그 시간에도 참을 수가 없
어 무슨 좋은 수가 없겠느냐고 신하들을 들볶았다. 호색가인 하타라는 신하가 요상한 마차
를 하나 만들어 진상했는데 그게 바로 '어여차'라는 것이다.
  수양제가 매우 흡족해하면서 후하게 상을 주었다고 하는데 내부 시설이 기가 막혔던 모양
이다. 그런데 하타의 아들 하조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어여차로 출세하는 걸 보고 
뜻한 바 있어, 최신형 마차를 하나 고안해서 진상을 했는데, 그게 저 유명한 '어동여차'다.
  그것은 특수 재목으로 아주 정교하게 만든 것인데, 단추만 누르면 의자가 금새 침대가 되
는가하면, 또 하나의 단추를 누르면 여자의 다리가 번쩍 치켜 들리기도 하는 그야말로 완전 
자동식으로 된 희한한 섹스 마차였다고 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요,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게 마련인가 보다.
  자동차의 시대인 현대에 와서도 소위 '카 섹스'라는 말이 귀에 설지 않을 정도가 됐는데, 
이는 수양제 같은 선구자(?)들의 피나는 노력의 덕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미국에서 온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의 주유소에는 종종 차를 갖다 대놓고 남자
는 차 안에 있고 아가씨만 내려와서 자동 판매기로 직행, 콜라를 한 병 사가지고 병마개를 
딴 후 엄지 손가락으로 막고서는 콜라병을 촐랑촐랑 흔들면서 화장실로 들어가는 경우를 심
심찮게 본다고 한다.
  
    말과 섹스
  색, 즉 공이요. 공, 즉 색이듯이 색, 즉 식이요, 식, 즉 색이다. 그래서 식도락이 곧 색도락
이요, 색도락이 바로 식도락인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음식을 먹는 속도를 보면 섹스의 속도를 알 수 있다는데, 음식을 빨리 먹어 
치우는 사람일수록 그 만큼 섹스의 시간도 빠르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색의 도구가 성
기라면 식의 도구는 입이다. 고로 성욕을 충족시키는데 있어 입도 성기 못지않게 중차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입의 섹스적 역할은 두 가지로 볼 수가 있는데, 하나는 입 자체의 역할
이고 또 하나의 말의 역할이다.
  입 자체의 역할에 의한 성욕의 충족은 시쳇말로 설왕설래가 있고 또 컨니링구스나 펠라치
오 같은 것이 있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말로서도 성욕 충족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가 있다. 따지고 보면 이른바, 육담이나 
Y담 같은 것도 다 말로써 성적 욕구 충족을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파니샷드에 보면 말은 곧 불이라 했다. 불은 곧 섹스의 정염을 뜻한다. 그래서 말로 하
는 섹스, 즉 말섹스다. 중년 이상의 연령층에서 남녀가 꼭같이 육담을 즐긴다는 사실은 그만
큼 쇠퇴해가는 '성기적인 섹스'를 '말 섹스'로 보완하고 대상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라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이 황혼연설 이라고 부르는 노인들의 잔소리도 따지고 보면 이런 맥락
에서도 이해가 됨직하다. 좀  싱거운 중년 남자들이 종종  짖굳은 말 섹스를 즐기는(?)수가 
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떤 남자가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고 나오다가 접수부의 아가씨에게 '아가씨, 오늘 
박은 사진은 언제 뽑습니까?'하고 능청스럽게 물었다. 멋도 모르는 아가씨는 이렇게 대답했
다. '아, 네. 내일 오후쯤 오시면 뽑아 드리겠습니다.'
  또 어느 남자가 음식점에를 들어갔다. 날씨가 더워 선풍기를 틀려고 코드를 플러그에 꽃
으려해도 헐거워서 꽃아지질 않는다. 그 사람은 주인 아주머니를 불렀다. '보소, 주인 아주
무이요. 이거 와 이런교. 꼽으마  빠지고 꼽으마 빠지고 와  이카능교?'하니까, 나이 지긋한 
주인 아주머니가 싱긋이 웃으며 하는 말이, '와 그렇기는 와 그렇겠능교.  그것도 내 맨치로 
고물이 되서 안 그런교. 손님 심 좋거들랑 씨기 한번 꼽아보소.'
  또 어떤 중년 남자가 백화점에를 갔다. 판매원 아가씨와의 대화를 들어보자. '아가씨, 
이 넥타이 얼만교?' '네, 정가가 오천원입니다.'
  '이 혁대는 얼만교?' '아, 네. 그건 칠천 원 되겠습니다.' '이 만년필은요?' '그건 만 오천 
원입니다.' '그라마 전부 얼만교?' '음.....그러니까 모두 합쳐서 이만 칠천 원이 되네요.' '그
라마 여기서 만년필은 빼면 얼마 되는교?' '음.....그렇게 되면 만 이천 원이  되겠네요.' '만
년필을 도루 찡구면 얼마라 켔능교?' '그렇게 하시면 아까처럼 이만 칠천 원이지요. 뭐.'
  그런데 근래에 와서 신종 말 섹스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전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침 
아홉시 반에서 열시쯤, 주부들이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 학교가는 뒷바라지를 끝내 놓고, 한
숨 돌리는 시각 쯤에 어떤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자기는 모 여성 잡지사의 아무개 기자라며 깍듯이 인사를 하고 다음호에 우리 나라 가정
주부들의 성생활에 대해서 특집을 꾸민다며, 좀 거북하시겠지만 솔직하게 대답을 해주시면 
고맙겠노라며 점잖게 양해를 구하고는, 올해 나이는 몇 살이며, 결혼은 몇 년째이고, 자녀는 
몇 명이냐는 등 그럴 듯하게 서두를 꺼내다가 나중엔 점입가경 침실의 프라이버시 문제까지 
파고드는데, 일주일에 평균 성교 회수는 몇 번이며, 시간은 대략 몇 분 정도되며, 오르가슴
에 도달하느냐, 도달할 때는 괴성을 지르느냐 등, 비록 전화이지만 차마 말못할 가히 고문 
같은 질문을 퍼부어대는 자칭 기자라는 그 친구, 기자 좋아하네. 알고보면 그 또한 말 섹스
에 굶주린 어느 늑대(?)의 사기 전화일 뿐이다.
  
    아버지의 복권
  옛부터 우리네 가정에서는 사랑방이라는 곳이 있었다.
  거기엔 아버지가 거처하는 곳으로 가족들의 예의범절이나 행동거지 일체를 통어하는 곳이
었다. 일일이 나서서 간섭을 하지 않더라도 재떨이에 땅땅 담뱃재를 떠는 소리와 '어험'하는 
헛기침 소리만 가지고도 가족들의 언행을 통어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사랑방을 보면 아버지를 의식하게 되고 헛기침 소리만 들어도 옷매무새를 살피곤 
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집 아이가 어쩌다 막 되먹은 언행을 했을 때, 사람들
은 애비없는 호로 자식이라며 욕을 했다. 그런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어머니는 
한번 때릴 회초리를 두번 세번 때리면서 그렇게 자식을 길러왔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랑방이 없다. 아버지도 없다. 아버지 대신 자식들의 친구가 있을 뿐이다. 
어른 친구 말이다. 그것도 욕 친구다. 얼마 전 TV를 보니 이런 얘기가 나왔다.
  몇 가족이 어울려 야외에 놀러갔었는데, 어른들은 술도 마시고 Y담을 하기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아이들은 얼마 안가서 시들해 져버렸다. 그러다 한 아이가 자기 아버지더
러, '아빠, 재미없어. 그만 집에 가.'하며 볼멘 소리를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야, 임마. 기
왕 오랫만에 야외 나왔는데 좀 놀다가자. 너도 아이들하고 저기 가서  좀더 놀다 와라.'하고 
보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그 아이가 다시 집에 가자고  아버지를 조르는데, '야, 집에 
안 갈꺼야? 이 X새끼야.'하니 그  애비는 싱글거리며 '야, 임마. 내가  X새끼면 넌 X손자잖
아.'하더란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고 허물없는 욕친구다. 그래서 요즈음은 아이들이 자기 애비를 아버
지라 부르지를 않고 아빠라고 부른다. 아무리 부자유친이지만 이건 분명히 서양 바람에 실
려온 애칭이라 애비를 귀엽게 부르는 칭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실종된 것이다.
  현재는 바야흐로 아버지의 부재시대이다. 가치 기준의 본이 될만한 당당한 아버지는 실종
되고, 무조건적인 익애와 자유방임을 능사로 하는 자식들의 욕친구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식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비의 임무인양 생각하고 있다. 그러
니 자식들은 불가능이라는 것을 모른다. 아깝다는 것도 모른다. 보릿고개 때 라면을 끓여먹
을 줄 몰랐던 천치 같은(?) 아버지를 불쌍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 어미 애비가 자기의 명령일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
이는 판인데 자기보다 더 잘난 놈이 있을 리 없다.
  학교 선생님도 별 것 아니다. 여차하면 엄마한테 일러서 혼내주라고 하면 된다. 그래서 아
이들은 버르장머리가 없고 시건방지고 염치도 모르는 인간으로 변모해가는 줄도 모르고, 그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똑똑하고 발표력이 있고 발랄한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세상엔 되는 것도 많지만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자유와 방종이 같은 것이 아님을 일깨워줘야 하며, 자기만이 잘난 것이 아님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젊음이라는 열정의 불꽃은 비록 타고 있을때는 매운 연기를 내뿜어 주위를 괴
롭히지만, 일단 다 타고 나면 훌륭한 숯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한다.
  버르장머리 없는 불꽃, 염치를 모르는 불꽃, 시건방만 든 젊음의 불꽃은 화재의 위험만 있
을 뿐이라는 것도 알려줘야 한다.
  몇 년 전 일이다. 스무살쯤된 대학생이 피부병때문에 왔었는데, 내가 열심히 설명해주려니
까 양손을 턱 버티고 서서는, '응' '그래서'하며 이건 흡사 자기 동생에게나 하듯한 말버릇
이었다. 하도 기가차서 아버지가 계시냐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왜요?'하고 퉁명스레 대꾸했
다.
  그래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고 또 물어봤더니, 모 법대에 다니는데 고시 공부를 하고 있단
다. 이 학생이 나중에 법을 집행하는 자리에 앉았을 때를 상상해 보고 나는 어떤 현기증 같
은 것을 느꼈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 아버지를 복권시켜야 한다. 사랑방에다 모셔야 한다. 그래서 담뱃대 
소리를 부활시켜야 하고 헛기침 소리도 들리게 해야 한다.
  
    성과 욕
  인간은 욕을 하는 동물이다. 욕은 원래 남을 모욕하거나 저주하기 위한 것이지만, 일차적
으로는 자기 카타르시스적인 효용이 있다. 뭔가 잘 안되거나 실패로  끝났을  때 곧잘 한마
디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러면 좀 위안이 되고 짜증도 풀리는 기분이 된다. 이런 욕설은 상대방이 없는 독백적인 
욕설에 속한다.
  또 상대방을 두고하는 욕설이지만,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기는 커녕 어떤 의미에선 오히려 
감치는 맛(?)이 있는 욕설도 있다.
  흔히 국수집이나 곰탕집 같은 데에 가보면 '욕쟁이 할매'가 있는데, 처음 들으면 얼굴이 
굳어질 정도로 손님들에게 무차별 욕을 퍼대지만, 손님들은 도리어 재미있어 한다. 그래서 
거기에 익숙해지면 할매 욕설이 마냥 구수해져셔, 국수나 곰탕만 먹는 것이 아니라 구수한 
욕도 한 그릇 먹기 위해서 간다고 한다.
  욕쟁이로는 김삿갓을 빼놓을 수 없다.
  무식한 졸부 정 아무개가 누각에 걸 현판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귀락당'이라고 써 준
것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귀락당을 거꾸로 읽으면 당나귀가 된다). 어느 절간에 가서 하룻
밤 묵고 가기를 간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그는 '승수원원 한마랑 유듀첨첨좌구신'이라고 욕을 
퍼부었는데, 새겨보면 '중놈 대가리는 둥글번질한게 땀난 말 불알 같고, 선비놈 대가리는 뾰
족뺏죽한 게 앉은 개X 같다'는 지독한 욕이다.
  다시 어느 서당엘 찾아갔다가 괄세를 받고 내뱉은 욕설은 더 지독하다.
  즉 '서당내조지 생도제미십 선생 내불알 방중개존물'이라고 했다. 그 뜻은 '서당에 일찍 
와서 보니, 생도는 모두 열 명도 안되는데, 선생은 나를 본체 만체하고 방안에는 모두가  높
은 족속들뿐이로다'인데, 가히 욕설의 극치라 할 만하다.
  이렇듯 김삿갓의 욕설에서도 보듯이 욕설에는 '개'와 '생식기'가 약방 감초처럼 들먹여지
는 게 재미있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욕설에 개가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고 조랑말, 닭, 사
슴, 늑대, 돼지, 젖소, 새앙쥐나 원숭이 등인데, 개는 우리만이 선호하는 것같다.
  개가 사람의 욕설에 억울하게 희생되는 이유는 아마 사람의 배설물을 먹이로 하고 거기다 
대낮에 그것도 중인환시리에 정사를 벌이는 그 철면피성(?) 때문인 듯 싶은데, 이렇게 되면 
개도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인간이 먹이를 얻기 위해서 고름을 빨고 똥 묻은 치질을 핥는 연옹지치의 아첨은 개가 똥 
먹는 것보다 나을 것이 뭐 있으며, 인간은 밤낮없이 춘하추동 전천후로 정사를 벌이지만 개
는 일년에 고작 며칠 간 정사를 벌여서 자손만대의 핏줄을 이어가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뻔뻔스럽게도 걸핏하면 '개새끼', '개같은' 어쩌고 저쩌고 해쌓는 것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러면 죄 없는 생식기는 왜 들먹이는가. 욕설로 생식기를 들먹이는 것은 상대방 혈통의 
뿌리를 공격하는 것이다. 꿈에 나무를 뽑는 것은 거세를 상징한다. 그래서 뿌리인 조상끼리 
싸잡아 공격하는 발본적인 욕설이다. 이쯤되면 이건 욕설이라기 보다는 저주이다.
  그런데 남자에 대한 욕은 살송곳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보통이고 여자에 대해서는 골풀무
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어을우동처럼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음녀라고 공격하는 것이 
가장 지독한 욕이 된다.
  하기야 맹물에 몽둥이 삶아먹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현대에 자기 카타르시스적인  욕설은 
정신위생상으로도 더러 써먹어봄직도 하지만, 진짜 바람직한 욕은 욕쟁이 할매의 욕설이 아
닌가 싶다.
  어느 욕쟁이 할매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나쁜 사람한테는 욕을 안해. 그런 사람은 내한
테 욕을 얻어먹을 자격이 없어.'
  
    공소증후군
  늙으면 성적 능력도 따라서 쇠퇴하기 마련이다. 메스터즈와 존슨박사는 섹스의 노인성 변
화에 다음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발기 시간의 지연이고, 둘째는 사정력의 약화, 세째는 정액량의 감소이고, 네째는 
사정의 불충분 내지 불가능이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섹스에는 별 볼일이 없는가. 결코 그렇지가 않다.
  사람은 늙으면 나오라는 데는 물이 안나오고, 나오지 말라는데는 물이 나온다는 말이 있
지만, 사람은 병이 들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섹스가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늙은 말이 
콩 마다 카나'라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은 이미 성욕의 고뇌로부터 해
방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존경할 만하다'라고 한 쇼펜하우어의 말은 틀렸
다.
  그러니 노인들이란 사실상 별 볼일없는 잉여인생일 뿐인데, 그 주제에 주책없이 섹스는 
무슨 놈의 섹스냐고 픽 웃어버리는 사회적 통념이 서운하고 야속할 뿐이다. 사실 노인들은 
주변이나 자식들의 눈치때문에, 아예 섹스는 완전 폐업(?)한 것처럼 처신을 해야 노인답고 
체통도 서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야속하고 슬프고 외롭다.
  또 늙은이를 봐준답시고 무조건 쉬라고  한다.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지실까.'식
이다.
  새파랗게 젊은 것들도 헬스다 뭐다 해서 멀쩡한 돈 주고 땀빼는 판에 노인들이 짐을 지면 
건강에 좋고 돈벌어 생산적이고 일거양득인데, 그런 씨알도 안먹는 흰소리는 하지 말자. 따
라서 노인더러 그냥 편안히 쉬시고 노시기만 하라는 사람은 불효막심한 사람이다.
  더구나 섹스는 젊은이들만의 독과점 사업이 아니다. 그건 엄연한 노인들의 오락이요 사업
이기도 하다. 이런 사업이 있음으로해서 노인들은 살맛이 나고, 손자도 더 귀엽게 보이는 법
이다. 수로부인에게 절벽에 핀 꽃을 꺽어준 사람은 청년도 장년도 아니고 바로 노인이었다
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런 말이 있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남자의 섹스는 언제까지 가느냐고 물었더니, 할어버
지는 아무 말 않고 담뱃대로 등만 긁적거리시더란다. 이것은 담뱃대처럼 그렇게 언제가지나 
휘어지지 않는다는 뜻이고, 손녀가 할머니에게 여자의 섹스는 언제까지 가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아무 말 않고 불손으로 화롯불만 다독이고 계시더란다.
  이것은 화롯불의 불씨처럼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우수개도 있다. 늙은 시부모가 늙었지만 계속 입육지교를 즐기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품절된 윤활유를 참기름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부엌에 있는 참기름이 턱없이 줄어드는 바람
에 이를 눈치챈 며느리가 하루는 참기름 병에다 휘발유를 부어놓았다. 그것도 모르고 노 부
부는 그날 밤도 역시 참기름을 발랐는데, 그날 따라 영 신통찮아서 이상하게 여긴 영감이 
성냥을 켜들고 골풀무를 조사하던 찰나 아뿔사 골풀무에 '119비상'이 걸려버렸더란다.
  그러나 노인들도 나이에는 장사가 없다. 특히 할머니들의 경우는 폐경이라는 험준한 고갯
길을 넘어온 충격이 있다.
  더구나 자녀들이 다 출가하고 난 후에 파도처럼 엄습하는 고독과 허탈감은, 특히 아들보
다 딸을 출가시킨  후에 더  심해진다고 하는데,  이것을 이른바  '공소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라고 한다.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 상객으로 갔다가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바람에 그걸 감추느라 천정
을 쳐다보고 있는데, 사돈이 '음식을 들다말고 어인일로 천정을 그렇게 쳐다 보느냐'고 묻
자, 얼떨결에 한다는 말이, '사돈댁 서까래 세어본다고 했다'는 말이 있다.
  모두가 다 떠나고 난 텅빈 집. 거기 영감태기와 할망구만 뎅그라니 남아, 서로의 계피학발
을 어루만지며 인생무상에 하염없이 눈물 짓는 그런 증후군 말이다. 그래서 어떤 노인은 현
란한 백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밭에 벌나비가 어지러이 날아드는 광경을 보고 이렇게 
시를 한수 읊으며 탄식을 했다고 한다.
  '늙어서 꽃동산의 주인은 되었으나, 막상 얼큰히 취해서 꽃을 꺾는 사람은 내가 아니로
다.'
  
    성인과 영웅호걸
  중황자라는 사람은 인간을 다섯가지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첫째가 신인, 진인, 도인, 지인, 
성인이고, 둘째가 덕인, 현인, 지인, 선인, 변인, 세째가 공인, 충인, 신인, 의인, 예인, 네째가 
사인, 공인, 우인, 농인, 상인, 다섯째가 중인, 노인, 우인, 육인, 소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첫번째 인간과 다섯째 인간과는 가히 사람과 우마의 차이가 있다고 했다.
  또 옛부터 식물 중에서 빼어난 것을 영이라 하고, 동물 중에서 뛰어난 것을 웅이라 하며, 
총명이 빼어난 것을 영이라 하고, 담력이 뛰어난 것을 웅이라 한다.
  그리고 재주가 천 명 중에서 뛰어난 자를 호라 하고, 만 명중에서 뛰어난 자를 걸이라 한
다. 그래서 영웅호걸이라고 하고, 자기를 이긴  사람을 우리는 성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성인이나 영웅호걸 같은 특출난 사람은 그 출생 양태부터가 필부들과는 무언
가 다르게 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말하자면 성인이나 영웅호걸에 걸맞게 각색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첫째, 수
태하는 방법부터가 다르고 둘째, 출생과정이 다르며 세째, 출생 후에 내다버려지는 점이 다
르다. 적어도 이 세가지 중 하나 이상은 해당이 되어야 성인이나 영웅호걸일 수가 있는 것
이다. 
  첫째, 수태방법의 특이성인데, 여기엔 공통적으로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특징이
다. 즉 정액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는 제거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소위 처녀 수태설을 
도입하게 된다. 어머니의 존재마저 배제해버린 것이 소위 난생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설화들 중에 재미있는 것이 '야래자'설화이다. 어떤 여자
가 임신을 하긴 했는데 그 아비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고, 다만  밤마다 어떤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찾아와서 동침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사나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그의 옷깃
에다 실을 꿴 바늘을 꽂아놓는다.
  이튿날 그 실을 따라가서 바늘이 꽂힌 주인공을 찾아내게 된다. 찾고 보니 그것은 뱀이나 
굼뱅이, 수달, 지렁이 혹은 동삼 등이었다는 설화이다. 
  뱀, 굼벵이, 수달, 지렁이, 동삼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살송곳의 상징이다.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의 아버지격인 야래자가 지렁이였다는 것은 그 일례다.
  다음은 출생 과정이 특이한 것인데, 정상적으로 산도로 나오질 않고 입으로 또는 옆구리
로 나왔다는 식이다.
  필부들이 태어난 구태의연하고 지극히 평범한 그 산도로 나와 가지고는 설득력이 좀 약하
다고 보고 적어도 시저처럼 배를 가르고 나왔다든가, 아니면 석가모니처럼 마야 부인의 옆
구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다. 끝으로 출생 후에 버려지는 것인데, 상자에 담아 강물에 띄어 
버린다든지(모세), 어디에다 내다버렸더니 새나 짐승들이 와서 아기를 보호해 주었다든지(주
몽), 또는 출생후에 박해를 받아 몰래 긴급 피난을 하게 되어 결국 남의 손에 의해 양육되
는(궁예) 기구한 행로를 밟는다는 식이다.
  그런데 영웅호걸은 스스로 색을 찾아 탐닉하는 것이 특징이지만, 오히려 색에 의해 고의
적인 도발을 받는 수가 있다.
  황진이의 도발을 받고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린 지족선사도 있지만 공자는 그렇지가 않았
다. 전국시대 위나라 영공의 부인 남자는 절세의 미모에다 음탕하기로 유명했다.
  그녀가 공자의 고명함을 듣고는 한 번 시험해보리라 생각하고, 가르침을 받는다는 핑계로 
공자를 초청해 놓고는 엉뚱하게 색으로 육탄도발을 감행했다. 그러나 공자는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그 후 영공이 공자를 초빙해서 함께 전국 순시를 떠나려고 했을 때 앙심을 품은 남자는 
호화마차의 공자님 자리에 자기가 냉큼 앉아 버리고 공자는 그 뒷수레에 타게 했다. 그래서 
이들 행차가 지나갈 때 사람들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허허, 색이 성보다 앞서가는구
먼. 쯧쯧.'
  
    형태학 개론
  모든 생물은 자기 고유의 형태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러이러하게 생겼으면 그건 사람이다'라는 식이다. 그러나 인구가 이십 억 아
니라 이백 억이라 할지라도 꼭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
는 공통점, 즉 보편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있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고구마도 고구마의 특성을 갖고 있으면 고구마인 것이다. 이 보편적 특성을 플라톤은 이
데아(Idea)라 했고, 스피노자는 실체(Sudstance)라 했고, 칸트는 물 자체(Ding an sich)라고 
했다. 각설하고, 살송곳과 골풀무의 형태에 대해서 예상 외로 오해가 많은 것같아 이번 기회
에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판소리 변강쇠 타령에 보면 강쇠가 옹녀의 골풀무를 들여다보며 기물타령을 하는 대목에
서 부엌, 늙은 중의 입, 도끼날,  조개, 으름(림하부인), 연계탕, 파명당 같은 이름이 나온다. 
실로 절묘한 형태 비유라 할만하다.
  겉은 검고 속은 붉으니 부엌이요, 이빨이 없으니 늙은 중의 입이요, 쪼개져 있으니 도끼날
이요, 안에 조개살 같은 소음순이 있으니 조개요, 가을에 익어서 쩍 벌어진 으름열매같이 생
겼으니 으름이요, 오동토실 한 게 영계백숙같으니 연계탕이요, 파헤쳐진 무덤 같기도  하니 
파명당이다.
  흔히 사춘기 소녀나 결혼을 앞둔 아가씨들이 자기 골풀무의 형태에 대해서 당혹감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골풀무의 좌우가 꼭 같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골풀무가 삐뚤
어져 있다는 것이다. 안면신경마비때 입이 삐뚤어지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건 삐뚫어진 게 아니라 한쪽 소음순이 반대쪽보다 늘어나 있는 것을 두고하는 
말이다.
  이런 것은 선천적인 경우도 있고, 후천적인 경우는 마스터베이션 때문인데 오른손잡이는 
오른쪽이, 왼손잡이는 왼쪽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아프리카의 호텐톳(Hottentot)족의 여인들이 미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랫입술을 무지막지
하게 잡아당겨서, 숟가락처럼 늘려 놓는다는데, 이들 종족의 이름을 따서 늘어진 소음순을 
'호텐톳 입술(Hottentot Labia)'이라고 한다.
  물론 양쪽 소음순이 다 늘어진 경우도 있는데, 심하지 않은 경우를 속칭 '료마이'라 하고 
심한 경우를 '보쌈'이라고 한다지 아마? 그러나 걱정할 건 하나도 없다.
  료마이든 보쌈이든 그게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면 아담하게 수술을 해주면 만사 오케이다.
  그러면 살송곳은 어떤가. 역시 변강쇠타령에 보면 옹녀가 강쇠의 살송곳을 보며 기물타령
을 하는 대목에서 물방아, 송아지 말뚝, 고추찧던절굿대, 민대가리 등의 이름이 나온다.
  역시 기찬 비유라 할만하다. 확에 내리박히니 물방아요, 박으니 말뚝이요, 내리찧으니 절
굿대요, 대가리는 대가리인데 털이 없으니 민대가리다.
  또 농경사회인만큼 농산물의 형태와 연관시킨 이름도 있다. 고추, 오이, 쑤세미, 가지, 송
이등이다. 여기서 진짜 실물을 방불케하는 것이 송이인데,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느날 동네 아주머니들이 송이 따러간다는 말을 듣고, 숫처녀 복실이도 가고 싶어했다. 
그래서 아주머니들이 처녀에게 물었다. "얘, 복실애이. 버섯은 말이다. 하도 종류가 많아서 
송이가 우째 생겼는지 알아야 한대이. 잘못하면 독버섯 따는기라." "전, 송이를 한번도 못 
봤는데얘." "그라마 니 그거 아나? 남자들 그거 말이다. 꼭 그것 같이 생겼대이." "아니, 아
주머니도. 제가 그걸 우째 알아얘." "아이구, 그라마 안되겠다. 넌 고만 집에 있거라. 그것도 
모르고 송이는 무슨 송이고."
  총각들이 더러 비뇨기과를 찾아와서는 큰 걱정을 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자기 살송곳
의 축이 삐뚫어졌다는 것이다.
  왜 민대가리가 삐딱해져 있는냐며 걱정을 태산같이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정상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자체가 축이 비뚤어져 있으니까.
  또 어떤 총각은 두 개의 불알이 높이가 같지 않노라며, 이건 필시 기형일 것이라고 단정
을 하고는, 어떻게 좀 도와 줄 수 없겠느냐고 통사정하기도 한다.
  그건 지극히 정상이니 아무 걱정말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인 총각이 있는데, 
이럴 땐 도리없이 넌센스 퀴즈(?)로 설명하는 수 밖에는 없다. "이봐 총각, 불알이라는 것은 
말이야. 원래는 붕알인데 조금 위쪽에 있는 것은 붕 떳다고 해서 붕, 아래 있는 것은 알로 
처졌다고 해서 알. 합쳐서 '붕알'이라는 거야. 이제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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