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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심령 과학

심령과학 4 (저승을 다녀온 사람들)

by FraisGout 2020. 5. 16.

    제1장 영원한 생명 
 
    자기 자신의 의식을 잃게 되어 한탄하게 되는 일은 결 
    코 없다. 그런 일은 영원히 없으리라.
    아아빈 슈레딩거의 <생명 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또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인생의 커다란 
수수께끼는 어느 쪽을 택해도 딜레마에 빠지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오랜 옛날부터 어떤 종파나 철학적인 유파를 막론하고 약간의 호기심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어려운 질문에 당황해 왔다.
   확고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대체로 영원한 생
명을 믿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탄생은 하나의 생물학적인 현상이며, 숨이 넘어갈 때 의식도 소멸되는 것이라고 주
장하는 무신론자는 어느 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유물론적인 사고 방식은, 기계문명이 놀랄만큼 발달하여 멋진 테크노
로지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극히 소수파에 지나지 않는다. 1982년의 갤럽사 여론조사에
서도 미국인의 67%가 죽은 뒤의 생명이 존재함을 믿고 있다고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죽은 뒤에 생명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인가하는 문제가 따라붙게 마
련이다. 육체가 없어진 뒤에도 의식이 남는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지만, 사후의 삶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는 분명히 파악할 길이 없고 상상조차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미지가 활발하고 생기 넘치는 것이기보다는 막연하고 추상적 
인 것이다.
   영국 심령연구협회의 전 회장인 H · H ·프라이스는 '저승이 어떤 곳인가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면, 사후의 삶이라는 개념 자체도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고 쓰고 있다 
   신화나 민간전승의 미신, 세계의 여러 종교, 심령주의에서는 내세에 대하여 다양하
게 주장을 해온 셈인데, 최근 불과 15년 사이에 근사사 체험에 대한 연구가 계속 개발
됨에 따라 현대의학에 근거를 둔 증거와 고대인의 추측 사이에 견해의 일치가 나타나
게 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임상적으로 죽음을 선고받은 뒤에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을 조사하
여 흥미진진한 자료를 축적해 왔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죽음의 자리에 섰던 증인들'은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
혀 다른 세계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보고가 하나같이 똑같은 말
로 전하고 있는 것은 죽게 된 시점에서 의식은 육체를 떠나 터널을 통해 흡수되어 갔
고, 비교할 수 없이 눈부신 빛과 지극한 환희와 평화스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육체에서 빠져나와 자유스럽게 활동할 수 있었던 자기가 이승으로 되돌아오고 싶
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버렸던 그 비좁고 불편한 육체 속으로 억지로 되돌아가
게 되었다고 증인들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되살아나자마자 곧 자기가 변했음
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없어졌음을 이야기(죽음은'귀향'이라느니 '감옥으로
부터의 탈출'이라고 표현한다하고 또 다른 의식형태로서 행복하게 지냈던 사실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해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들 설명은 모두 한결같이 흥분과 자극에 가득찬 것이지만, 그들이 가져다 준 지
식은 한정되어 있다.
    마치, 국경에 발이 묶였던 해외특파원이 국경에서 그 나라의 사정을 보고한다면 
불충분한 보도 밖에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나. <임종시에 본 죽음의 세계>의 저
자인 케네스링 박사는 '죽음의 초기 단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다'라고 근사사 체험의 불완전성을 표현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이 문제를 직접 취급하여,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 죽음의 오지 깊숙이 
여행한 휫튼 박사가 다룬 피실험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전인미답의 땅-이승의 사람들
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세계-에 조명을 비춰보기로 한다.
   깊은 트란스상태에서 보내온 메시지가 전하는 것은 죽은 뒤의 삶은 태어나기 전의 
삶의 상태와 같으며, 우리들 거의 모두가 육체를 갖지 않은 영혼으로서 다른 저승에서 
몇 번이고 산 일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이승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정도로, 저승에 대해서
도 잘 알고 있다.
   다음 세계란, 태어나기 위해 뒤에 남겨놓고 온 곳이며, 죽게 되면 또다시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윤회는 되풀이되고 탄생과 죽음이 서로 교대되며, 개인의 마음은 성장하게 되는 것
이다.
   죽음이란, 어느 단계와 그 다음 단계를 구별짓는 접경지대에 불과하다. 틀림없이 
삶과 삶 사이에도 또 다른 삶이 존재하는 것이다.
   횟튼 박사가 다룬 피실험자들은, 그 당시 윤회전생에 대한편견의 유무가 각인각색
으로 달랐던 것처럼, 종교적인 소양도 가지각색이었는데, 모두 한결같이 우리들을 둘
러싼 진화의 과정에 있어서 환생한다는 사실은 아주 근본적인 것과 관련된 문제라고 
증언하고 있다.
   피실험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죽으면 혼은 육체를 떠나서 시간도 공간도 없는 상
태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곳에서 방금 끝낸 땅 위에서의 생각이 어떠했는지가 검토된 
뒤, 카르마의 필요에 따라 다음 번 환생이 계획된다. 이를테면 전생에서의 자기 행동
이 원인이 되어 누나를 자살하게 만든 어떤 피실험자의 경우에는, 그 부채를 갚기 위
해 또다시 그녀의 남동생으로 태어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과 같다.
   횟튼 박사는 열네살 때부터 최면가로서의 솜씨를 발휘했다고 한다. 희망자를 상대
로 파티같은 곳에서 이 재주를 발휘하는 일은 있었지만, 전생으로 유포하려고 한 일은 
그때까지 없었다.
   그러나 20대 초기에 박사는 윤회전생 사상을 차차 믿게 되어 최면기법에 더욱 숙달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토론토대학에서 의사로서의 여러가지 면허장을 얻은 박사는, 동대학의 정신과 주임
교수가 되었다. 깊은 최면상태에 들어간 사람들-인구의 약 4%에서 10%에 해당된다고 
한다-은 모두 한결같이 지시에 따라서 탄생 이전의 전생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박사가 발견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전생으로 돌아가 주세요... 자! 당신은 누구이며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박사가 말하면 최면상태에서 긴 의자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은 또 다른 시대, 
또 다른 곳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그때의 일들을 또
다시 연출해 보이는 일까지 있었다.
   무의식 아래 놓인 인간의 마음에 대해 더욱 이해를 깊게 하게 된 횟튼 박사는 최면
상태에 놓인 환자들에게 정신적인 외상의 원인이 된 전생의 기억을 의식에 떠올리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피실험자들은 눈에 띄게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는데, 어째서 그렇게 되는
지는 박사 자신도 만족할만한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두려움이나 불안 등에 대한 기억이 자기가 어떤 인간인가를 이해시켜 주고 해방과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이상한 작용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무거운 심신의 장해가 
너무도 어이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전생이나 죽어서 다음에 환생하게 되기까지의 사이, 즉 중간생의 체험을 몇 번이
고 되풀이함에 따라서 질병이나 심리적인 문제가 해소된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 저기 
의사들을 찾아다녀도 헛수고에 그친 뒤에 휫튼 박사를 찾아오는 환자들도 가끔 있었
다. 병적인 공포증을 앓고 있는 이도 있었고, 말기증상의 환자도 있었는데, 모두 한결
같이 '지금까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의사들의 치료를 여러가지로 받았지만, 하
나도 좋아지지 않았다'고 불평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전생요법은 종래의 방법으로서는 고쳐지지 않았던 환자들에게 좋은 효과를 거두는 
일이 많아 휫튼 박사는 '의사로부터 버림받은 중환자들을 살려주는 대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퇴행최면으로 중병에서 회복된 사람이 실제로 전생을 다시 체험했다는 객관적인 증
거가 없다고는 하지만, 피실험자 자신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들이 겪은 체험이 진실이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휫튼 박사도 20년 가깝게 전생요법을 연구해온 지금, 무의식적인 마음이 그 
속에 저장해 온 전생의 지식을 생각해 내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극적인 치료 효과가 이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죤 랑구돈 데이비스가 
그의 저서인 <인간-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의학에
는 다른 분야의 학문보다 뛰어난 강점이 있다. 의학에 있어서 진리임을 판단하는 기준
이 되는 것은 치료법에는 반드시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한가지에 귀결되기 때문이다.
 '
   피실험자가 일단 다른 인생으로 유도되면 다른 인격을 나타내고, 현재의 자기와는 
다른 육체를 갖고 있는 듯이 느끼지만 그 반면에, 또 하나의 자기와 자기 자신이 똑같
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성별이나 인종이 바뀌는 것은 흔한 일이다. 전생의 인격에게 
명령하여, 그 일생의 어느 시점에도 데려가게 할 수가 있고 피실험자는 그 당시의 나
이나 성별, 교양의 정도, 언어 습관, 성격, 역사적인 배경 등을 반영시킨 목소리로 자
유스럽게 그 당시를 이야기한다.
   감정적으로 중요한 뜻을 가진, 그 인생의 기억을 모아둔 저장고가 텅 비게 되면, 
좀더 앞의 또 다른 생애에로 피실험자를 옮겨가게 한다.
   최면(트란스) 상태 속에 빠져 있는 환자는 이어서 그때까지 나타났던 인물과는 전
혀 다른 또다른 인물을 불러낸다. 그 인격은 강물의 본 줄기와 같은 질서 정연한 인격
에서 갈라져 나온 또 하나의 지류와 같은 것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최면에서 깨어나 평상시의 의식상태로 돌아오면 피실험자는 반드시, 전생에서의 감
정이 어떤 상태였었는가를 파악하여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최면상태에서 겪은 체
험을 일기에 적도록 지시 받는다.
   문제가 어디에선 생겼는가를 조사하기 위하여, 박사는 환자 전생의 인격을 분석하
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윤회전생에 입각하여 보통 행하는 정신의학적인 순서를 밟아
간다. 정신분석이 발전해 온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사상의 인물과 가공
적인 인물까지 정신분석의 도마 위에 올려져 온 게 사실이다.
   지그몬드 프로이트 자신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모세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분석
했고,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어네스트 죤스는 햄릿을 분석한 바 있다.
   칼 융은 피카소를 분식했고, 아돌프 히틀러 조차도 미국 정신분석의사들의 공동 연
구의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정신과 의사로서 치료할 경우, 기본적으로 프로이트주의를 고수해 온 휫튼 박사는 
무의식에 대하여 깊은 외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심리적인 
것에 우연적인 일은 하나도 없으며, 생각이나 행동에는 모두 그것에 선행하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프로이트와 틀리는 점은 박사가 이들 원인을 탄생보다 훨
씬 이전의 전생이나, 죽어서 다음에 다시 태어나기까지 사이의 상태에까지 거슬러 올
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이다.
   불과 100년 전 까지만 해도 간장이나 담낭에서 나오는 분비액이나 자궁의 위치가 
인간의 기질을 결정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왔다.
   쟝 말탄 샬코나 피엘 쟈네, 프로이트 등 초창기의 심리학자들은 내장이나 혈관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에 관심을 갖게되어 마음에 대한 연구는 한층 높게 향상되어 갔다.
   인간의 목표라든가 소망이나 환상 따위를 결정하는 것은 억압당한 충동과 성심리의 
발달 과정에 있어서 장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심리학상의 연구는 계속되어 보다 새로운 개발과 중요한 발견들이 수 없이 이루어 
졌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심리학은 거의 전부가 어른들의 신경증적 행동이 모
두가 어렸던 시절이나 또는 청년시대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전제에 사로잡혀 있
었다. 칼 융은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앞길이 확 막혀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예감을 가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이 같은 막다른 골목 속에 갇힌 상태에서 자기의 연구를 통해 막
다른 골목 자체의 정체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융 자서전-생각, 꿈, 사상>에서 융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합리주의와 독단주의는 현대의 질병이다. 이것들은 모든 해답을 알고 있는 것 같
은 겉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실들이 이제부터 발견될 것이다. 현재 우리
들이 서 있는 좁은 시야에서 볼 때,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고 생각된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제외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은 대체적으로 확실하다는 것에 불과하다..."  
   19세기의 의학이 유치한 것에 불과했음을 초기의 심리학자들이 꿰뚫어 보았듯이, 
오늘날 심리학의 사고방식도 보다 새로운 증거에 의해 수정되기 시작하고 있다. 요즘
에 와서 전생요법을 활용하는 심리요법가들에 의해 육체적, 심리적으로 획기적인 치료
가 가능해졌다. 저명한 치료가로서는 모오리스 네자톤 박사, 이디스 필레 박사, 영국
의 죠오 키이튼박사 등이 있으며 이들은 잠재의식이, 의식에 떠오르지 않은 전체적인 
것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전생요법에 의하여 여러 번의 생애를 넘고 넘어, 우리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
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고차원의 자기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게 된 것이
다.
   휫튼 박사가 연구하고 있는 죽은 뒤부터 다시 전생하는 사이, 즉 중간생의 상태는 
최면술을 활용한 전생의 조사 연구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해 온 것이지만 그의 개발에 
의해, 이 고차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은 더 한층 증가되었다.
   반복적으로 피실험자에게 최면을 걸어서, 한번 환생한 뒤부터 다음에 환생할 때까
지의 사이로 인도해 가는 동안 휫튼 박사는 중간생에서의 인간의 의식이 이승에서 과
거로 퇴행하거나 전생으로 퇴행하고 있는 동안에 경험하는 의식 보다 훨씬 놀은 정도
의 의식상태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의식은 우리들의 현에서 경험하는 리얼리티라는 개념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써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다보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중간생의 상태에서는, 흔히 말
하는 '선악의 판단력'이 확대되어 마음의 이미지로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힘
이 주어지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휫튼 박사는 이 뛰어난 지각상태를 의식이라고 이름짓고 있다.   
   그러면 초의식이란 다른 각의 수준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 다른 것일까? 가령 , 의
식을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보면 이 특수한 상태가 얼마나 다른 의식의 상태를 초월한 
것인가를 쉽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선 첫 단계를 해리의식이라고 이름지어 보기로 
한다.
 
   해리의식-잠자고 있거나 또는 깨어있는 의식이 나누어져, 두개 또는 그 이상의 경
험적인 흐름이 존재하고 있는 상태인데, 이 상태에 놓인 사람은 대개 한번에 한쪽 흐
름 밖에 의식하지 못한다. 꿈, 환상, 전에 한번 경험했다는 낯익은 느낌, 다중인격, 
전생의 기억, 체외이탈체험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보다도 더 정묘한 것이 다음의 '정서적 의식'이다.
   
   정서적 의식-말로는 분명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주관적인 상태-시각적 내지는 감정
적인 상태, 또는 그 양쪽-를 의식하고 있는 것. 사랑과 미움 등의 감정, 기분과 같은 
것이나 신비주의자가 체험하는 '우주와의 일체감'과 같은 우주의식이 이에 해당된다. 
이 것에 계속되는 최고 단계가 초의식 이다.
 
   초의식-기억의 지각이 매우 역설적으로 된 상태. 여기에서는 지각하는 사람이 존재 
그 자체 속으로 빠져들어감으로써, 자기의 아이덴테티(주체의식)라는 감각을 모두 잃
게 되어, 지금과는 달리 자기가 무엇인가를 의식하는 상태만이 된다. 초의식의 체험-
즉, 중간생의 직접적인 기억을 체험하는 것-은, 이 3차원 세계의 현실감을 뛰어 넘는 
것으로써, 그 결과 자기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되고 또한 자기의 카르마, 즉 불교에서 
말하는 업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 세계는 너무나 색다른 세계
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며, 상징적 표현으로도 그 본질을 나타낼 수가 없
다.
 
   휫튼 박사는, 형태상으로 이들 3개의 색다른 의식이 공존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
다. 이를테면, 한 사람이 꿈을 꾸고(해리의식), 주관적 감정(정서적 의식)을 경험하
며, 그 사이에 중간생에서 지냈던 기억(초의식)을 되찾는다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박
사는 이 3가지 타입의 의식을 종족은 틀려도 같은 모이통에서 모이를 먹을 수 있는 말
과 양과 닭으로 비유하고 있다.
   전생이나 중간생에서 겪은 체험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이승에서의 환경이나 주
요한 인간관계와 관련을 갖게 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카르마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의 장(제7장~제12장)에서 천천히 밝혀 나갈 생각이다.
   케이스 별로 조사한 장에서는 휫튼 박사가 실험한 여섯명의 전생과 중간생이 기본
적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 여섯사람은 깊은 최면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뿐이
다.
   자기들의 환생이 어떤 경로를 더듬게 되었는가가 밝혀지자, 피실험자들은 자기가 
처한 괴로운 입장이나 감정장해의 정도가 환생할 때마다 변화하게 된 이유를 납득하게 
되었다. 그 같은 이해가 생활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때로는 어떤 전생의 때나 장소에 대하여 경험에서 미루어 짐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왜냐하면 최면상태에 들어가 정신적인 외상이 생겼을 때의 고통을 다
시 체험하고 있는 피실험자가 환생의 조사에는 필요하지만 자기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치료상 불필요한 정보에 대하여는 남겨놓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피실험자의 신원을 알 수 없도록 이름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직업도 바꾸어 놓았지
만, 케이스 스터디를 구성하는 에피소드나 마음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충실하게 기록했
다.
   바로 2, 3년 전,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손꼽히는 유명한 전생치료가인 모오리스 네쟈
아톤 박사는 중간생의 상태에 대해 무엇인가 발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했다.
   "삶과 삶 사이의 간격에 대하여 증명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살아있는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측정하는 것도 관찰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라고 박사는 그의 저서 인 <전생요법>에서 주장했다.
   휫튼 박사는 이 중간생을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적, 치료적 가치가 있으
며, 사람을 깨닫게 하기 위한 정보원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오랜 시일에 걸쳐 최면요법을 받아 온 30명 이상의 퍼실험자들-휫튼박사가 취급한 
사람들 수에서 본다면 불과 몇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은, 이 별세계가 얼마나 놀랄만
한 곳인가를 증명해 주었다.
   그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초의식이라고 불리우는 상태로 여행하여, 이 책의 선구
적인 관찰기록의 근원이 된 통찰과 정보를 갖고 돌아와 주었던 것이다 
@ff
    제2장
    우리들이 돌아가는 고향 
 
    죽음과 공허란 단단한 땅과 같은 것, 그 위를 
    생명체가 걸어간다.
    아란 홧츠
 
   고대 티베트 사람들은 한마디로 삶과 삶 사이의 중간상태에 딱 들어맞는 이미지를 
표현했다. 바르도라는 말이 그것인데, 그 단어의 뜻은 섬과 섬 사이에 있는 공간을 말
한다.
   바르도는 섬처럼 협소하고 고통스런 육체를 떠난 혼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임
무로 가득찬 공간인 것이다.
   <바르도 소돌>이라는 8세기에 쓰여진 책이 있다. 서양에 서 <티베트 사자의 책>이
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책에는 사람이 죽은 뒤에 다음 번 이승에 태어나게 되기까지
의 의식의 단계가 그려져 있으며, 죽음의 문을 넘어선 인간의 혼이 차례로 그 모습과 
형태가 없는 의식상의 체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몇 세대에 걸친 체외
이탈의 여행 자료를 바탕으로 편찬되고 요약된 이 책은, 요즘에도 임종을 맞이하는 사
람들이나 죽은 자의 머리맡에서 읽혀지고 있다.
    육체를 떠난 혼은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바르도를 무사히 통과해서 두 번 다시 이
승에 태어나지 않아도 되도록 소원하는 것이다.
   <티베트 사자의 책>에 의하면, 중간생은 이 기간을 상징하는 49일 동안 계속되고 
클리어 라이트(밝은 빛)에 둘러싸인 기쁨에 넘치는 곳에서 시작하여 '온갖 선행이나 
악행을 뚜렷하게 비추어 주는' 업장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조사하는 염라대왕과 만나
게 될 때까지 계속된다.
   티베트의 바르도에 해당되는 여러가지 호칭 등은 다른 문명 사회의 기록에도 등장
한다. 이를테면 고대애굽인 -보통 때는 소박한 집에 살면서 무덤만은 훌륭한 것을 세
웠다-의 경우, 아멘티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혼은 또다시 이승으로 내려와서 새로운 
육체에 깃들이게 될 때까지 여기에서 줄곧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다.
   일본의 오끼나와에서는 육체를 떠난 혼이 이승으로 되돌아오기 전에 후생에서 산다
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인 아볼리지니는 다음 환생 때까지 안제아라는 지상의 주
거지에서 산다고 믿었고 어린애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하기 위
한 의식을 통해 축복했다.
   나중에 어린애는 나무나 바위, 물 웅덩이에서 얻어진다고 했고 호메로스가 쓴 <오
뒤세이아>에 전해지는 전설에서는 인간이 '참나무나 바위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대의 헤브루 사람들은 내세를 위한 가르침을 받는 장소인 파아딧슈에 머무르게 
된다고 상상했다. 카바라의 근본경전인 <죠오할>(빛의 책)에 의하면, 이 파아딧슈에서 
나을 때는 '유형의 몸이 비탄에 빠져서 진짜 행복이 없는 곳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현대인들이 최근에 와서야 알기 시작한 일, 즉 인생과 인생 사이에 가
로놓여 있는 중간생이야말로 우리들이 본래 돌아가게 되는 고향이며, 그곳에서 우리들
은 육체 속에 깃들게 되는 어려운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리 P 홀은 <죽음에서 재생으로>란 책에서, 육체를 뒤집어쓰고 태어나게 되는 경
험을 잠수부가 무거운 잠수복을 입은 다음, 방금 맛본 기분 좋은 빛과 상쾌한 공기를 
뒤로 하고 이제부터 목숨줄에 의지하여 깊은 바다 속으로 내려가는 것과 비유하고 있
다.
    
   <무거운 잠수복은 육체인 것이며, 바다란 목숨의 바다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사람은 잠수복을 몸에 걸치는데, 그 영혼은 항상 생명의 줄에 의하여 윗쪽 빛의 세계
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숨겨진 예지라고 하는 보물을 찾기 위하여 슬픔과 멸망의 
바다 속 깊이 내려가게 된다. 왜냐하면 경험과 이해는 굉장히 값비싼 진주인 것이며,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사람은 모든 괴로움을 견디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보물이 발견
되거나 목적이 끝나면, 그는 다시금 배 위로 끌어 올려져서 무거운 장비를 벗어버리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다시 자유를 만끽한다.
   현인들은 우리들이 '일생'이라고 부르는 기간이 바다 밑을 한번 왕복하는 것에 불
과하며, 우리들은 이미 몇 번이나 바다 밑을 다녀온 일이 있고 또한 보물을 발견할 때
까지 앞으로도 몇 번 더 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많은 미개부족이나 고대 애굽과 같은 멸망한 문명 세계에서는 이미 중간생의 존재
를 인정하고  있으며, 즉은 이들에게도 내생을 위한 준비를 충분히  구비해 주었다.
    육체를 떠난 혼이 때로는 이승에 미련을 갖고 남아 있으면서 물질적인 생활을 잊
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를 도와주는 표시로서 입는 것과 무기, 조리기구 등을 
죽은 이와 함께 매장했던 것이다.
    기원 전 3400년, 페르샤만의 북쪽에 꽃피웠던 슈멜인들 사회에서는 가장이 죽게 
되면, 하인들이 내세에서도 주인의 시중을 들도록 살해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인 <국가> 제10권에서 전사한 뒤, 12일이 지나 화장하려던 장작
더미 위에서 다시 살아난 판퓨리아 인인 엘의 이상한 전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 글 속에서, 엘은 중간생에서 혼에게 어떤 모양으로 다음 환생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는가를 눈에 보듯이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선택이 결정되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혼은 '망각의 강
물'을 마신다고 했다.
   이와 같이 다시 환생되기 전에 억지로 기억을 지우게 되는 이야기는 불교에서부터 
비교적인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종교상의 가르침에 흔히 있는 것이다.
   헤브루의 카바라를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밤의 천사인 라에라가 방황하
는 혼의 입술을 가볍게 누르고 코를 잡아 기억을 잊는 주문을 외운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입술에는 천사의 손가락 자욱이 남아 있다고 한다.
    성전이나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중간생의 공통된 특징이 이 밖에도 많이 나타
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시간이 사라진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든가, 굉장히 눈
부신 빛이 찾아와서 황홀해 졌다든가, 지나가 버린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바라다본다거
나, 혼이 세 사람의 현인들 도움을 받아 재판을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로마 카톨릭효도의 연옥에 대한 생각은, 죽은 뒤에  다음 환생할 때까지의 생활에 
대한 고대 희랍인들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인지학을 연구한 루돌프 슈타이너에 의하면 카톨릭 교회에서 의미하는 연옥이란, 
혼이 식욕 · 정욕 등의 모든 욕망에서 격리되는 중간생의 최초 단계를 말하는 것 같
다.
    슈타이너의 지식은 투시능력에 의해 얻어진 것으로서, 죽은 뒤부터 다음 환생하게 
될 때까지의 의식의 단계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죽음과 환생 사이
의 삶은... 이승 생활의 계속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슈타이너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단순히 부활하여 원기를 되찾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의식을 유지하여 이를 활동상태로 놓아두기 위해 우리들은 육체라고 하는 껍질을 
쉴새없이 파괴해 왔다'고 그는 쓰고  있다.
    건강한 몸이 잠을 요추하듯이, 우리들의 끊임없는 진화를 위해서 중간생은 꼭 필
요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925년 슈타이너가 죽은 뒤, 사후 육체를 떠난 의식의 비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1960년대의 히피 문화가 상징하는 것은 보잘것 없는 현실에서의 도피 이상
의 것이었다. 히피들이 환각제에 '취해' 보고 동양의 신비주의에 귀의한 것은 모두 육
체를 초월하는 체험 -즉, 중간생 상태의 참 모습일 뿐이다-을 일사불란하게 추구한 것
이었다.
   '프라워 파워'를 슬로건으로 한 히피 정신이 지금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버렸지만, 혼의 여행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며, 어디까지 도착할 수가 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금도 미해결로 남아있다. 그런 까닭으로 요즘에 와서 바르도
의 수수께끼를 밝혀보려는 유사과학적인 시도가 자주 행해지고 있다.
   환생의 연구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안 스티븐슨 박사는 중간생에 대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고 있는 관심사'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박사가 '막간의 기억'이라고 부르고 있는 관찰 예가 가장 많은 곳은 태국
인데, 많은 피실험자들이 죽은 뒤에 자기 육체를 보고 자기 자신의 장례식 장면을 지
켜보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 저승에서 '흰 옷을 입는 사나이'의 영접을 받았고 환생하게 되기 전에 '망각의 
나무 열매'를 받았다는 사람들도 많다.
   이 나무 열매를 먹으면 전생의 기억이 사라지게 되는데, 그 중에는 이 유혹에 넘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도 전생의 자기 육체가 
화장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 어떻게 하여 이제부터 자기가 태어나게 될 집으로 안
내를 받았는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1928년에 죽은 뒤부터 1947년 환생하게 될 때까지, 자기가 '공중을 날라다녔고 나
무 꼭대기에 앉기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스티븐슨 박사의 조사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예지몽인데, 임신하기 전에 
어머니에게 전에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 자기의 자식으로 환생한다는 것을 꿈 속에서 
알려주는 경우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꿈은 이제부터 태어나게 될 사람이 아직 육체 속에 들어오지 않은 의식(마음)
과 직접 접촉한 것이라고 생각되며, 꿈에서 어린 아이의 이름을 지정해 오는 경우도 
있다.
   어떤 생애에서 다음 생애로 옮겨가는 상태에서, 미래의 어머니 앞에 자기 모습을 
나타낸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안 스티븐슨 박사가 전생 기억의 조사를 위해 온 세계를 두루 여행하고 있을 무
렵, 미국 국내에서는 진찰실의 쇼파에 피실험자를 앉혀 놓고 최면을 걸어 이것과 똑같
은 기억을 끄집어 내는 시험이 행해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준의 최면치료가인 이이디스 피오레 박사의 1978년도 보고에 의하면, 박
사가 담당했던 피실험자들 가운데 삶과 삶의 중간지대에 들어가서 '순수한 에너지와 
빛'을 보거나, '아름다운 호수와 경치, 번쩍이는 마을들'을 본 사람들이 있다. 그밖에
도 '계획자', '상담자들'과 만나서 다음 번 환생을 선택하는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
기도 있다. 출산 전, 어머니의 윗쪽에 '떠 있던' 혼의 안내를 받았다는 경우도 몇가지 
있다.
   1979년 샌프란시스코의 임상심리학자인 헤렌 웡백크 박사가 대규모로 행한 최면 연
구의 결과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간생의 '빛과 사랑'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다고 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나게 되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웜백코 박사가 다룬 피실험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삶과 삶의 중간에서 성별은 없
으며, 대개의 경우 '상담자들'이나 '평의회''권위자의 집단'과 의논한 결과 마음은 내
키지 않지만 환생하는데 마지못해 동의했다고 한다.
   중간생을 보았다고 보고하는 사람은, 이를테면 지구의 남쪽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
온 후, 태양이 북쪽에서 떠올라 왔다는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옛
날 뱃사람과 같은 것이다.
   뱃사람의 이야기는 고국에서 의아스럽게 보여졌다. 즉, 그 이야기는 유럽에서의 태
양의 움직임과 달랐으므로,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는 대립되었기 때문이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은 흔히 그 시대의 지식을 혼란시키는 결과를 가
져올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ff
    제3장 바르도와의 만남
 
  잘못을 범하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진보해 가기 위한 수업이다.
  월리 암 에 라리 차닝
 
   휫튼 박사의 중간생에 대한 조사 연구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마침 그 무렵, 
캘리포니아에서는 최면 연구의 대가들이 잇달아 관찰기록을 발표하고 있었는데, 박사
만은 자기가 연구한 내용의 공개를 보류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가치있는 사례들을 더 많이 수집해서, 우선 결론을 짓자고 생각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최종목적으로 박사는 몇 년씩 걸려서 환자들을 반복해서 중간생으로 안내하
곤 했던 것이다.
   육체가 죽을 때, 누구나 겪게 되는 체험이 어떤 것인가를 찾아내어 확증을 얻고저 
하는 것이 박사의 목표였던 것이다.
   10년 이상 계속된 이 연구의 출발점이 된 것은, 이제부터 이 장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기술적인 잘못으로 우연히 발생한 어떤 발견 때문이었다.
   휫튼 박사와 바르도와의 만남은 1974년, 그가 28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까지, 박사에게는 죽은 뒤부터 다음에 환생하게 될때의 중간 지점까지 최면을 
유도해본 일이 한번도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다음의 인생과 어떤 모양으
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추적 조사하는 데만 열중해 있었던 박사는, 인간의 혼이 육체 
속에 깃들어 있지 않을 때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한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
었던 것이다.
   그 무렵, 박사의 형이상학적인 연구의 주제는 최면으로 피실험자들을 일괄적으로 
전생으로 퇴행시키는 일이었다.
   윤회전생의 이론을 증명하는 것보다도, 그는 계통적인 원칙에 근거 한 뚜렷한 가설
을 탐색하고 있었다.
    최면에 의한 추적 조사를 오랜 시간에 걸쳐서 끈기있게 계속해 가는 가운데, 휫튼 
박사는 몇천년에 걸친 전생의 개인 기록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알게 되었던 것이
다.
   그가 발견한 것은 카르마(업)의 필요성에 따라서 피실험자가 육체 속에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그 관계가 변화한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같은 영혼과 관련되
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마다 전생에서의 시련이나 성공, 실패가 현재의 그 사람 인간형성에 어떻
게 도움이 되었는가 하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각자 환생의 경력을 더듬어 가면 얼른 보기에 하나 하나의 인생이 전혀 관계
가 없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와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반드시 밝
혀지게 되었다. 즉, 어떤 인생에서의 행동이나 태도가 현재 또는 장래의 인생에서의 
환경이나 도전 목표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몇천 시간의 최면 치료를 끝낸 뒤, 휫튼 박사는 옛날 경전에 쓰여진 사실들에 대해 
과연 그렇구나하고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깨달음이란, 환생을 되풀이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정화의 여행을 계속한 후에야 손
에 넣을 수 있는 보물이라고 어느 경전에도 쓰여져 있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전생 경력을 조사해서 알게 된 것은 오바 소오울-대령, 즉 여
러가지로 환생하는 인격의 그늘에 숨어서 작용하고 있는 내적인 자기-의 성장이나 발
전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서 죄를 씻어가는 과정 여하에 따라서 정해진다는 것이었
다.
   그 전해인 1973년 가을, 이와 같은 확신이 점점 굳어져 갔던 휫튼 박사는 아직 예
비 연구의 단계에서 생기는 호통을 한참 겪고 있는 중이었으나, 토론토 심령연구협회
의 의학위 원회에 장기간에 걸친 하나의 실험을 자기가 해보겠다 라고 신청했던 것이
다.
   이 실험에서 퇴행최면이 윤회전생의 연추수단으로서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
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때는 퇴행 최면을 많이 실험하게 되어 이 문제에 관한 과학적
인 지식이 굉장히 축적된 무렵이어서, 이 같은 대조 연구가 처음 기대되는 것이었다.
   1950년대 중반에, 미국 콜로라도주의 주부인 버지니아 타이가 최면상태에서 19세기
의 아일랜트 처녀, 쑤라이디 마아피의 생애를 이야기했는데, 이 이야기가 유명해진 후
로는 계속해서 전생을 찾아낸 보고서가 증가되었다.
   캘리포니아주 등에서는 선구적인 임상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이 앞다투어 퇴행
최면의 기술을 익혀 전생요법으로  인기를 집중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학계의 주류파들은 이런 현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고 전생의 
기억 따위는 교묘하게 조작된 이야기라고 일소에 붙였던 것이다. 
    이안 스티븐슨 박사는 자연스럽게 나온 전생의 기억-그 대부분은 아직 어린 아이
들이 이야기한 것이었다-을 추적하고 다른 장소에 실재로 살고 있는 전생의 가족들을 
찾아 조사한 내용을 집대성한 책 <환생을 시사하는 20가지 사례>라는 책을 출판했지
만, 일반적인 무관심을 크게 변동시키지는 못했다.
   그후, 최면이나 전생 문제에 일반인들의 관심이 쏠리게 되자, 휫튼 박사의 실험에
는 50명이 넘는 지원자가 응모했고 철저한 조사를 한 결과, 포라 콘시데인이라는 부인
이 선출되었다.
   42세의 포라는 안정된 기질의 소유자로서, 깊은 최면상태에 들어갈 수가 있었고 사
는 방식이나 취미, 행동 등도 아주 정상적인 북아메리카 주부의 전형이라고 할만했다.
   남편은 트럭 운전기사였고 10대의 아들이 두명 있으며 그녀 자신은 토론토 시내의 
회계회사에 근무중이었다.
   그녀는 아주 평범한 여성이었으므로 이 특별한 실험에는 꼭 알맞는 피실험자였다. 
그녀는 윤회전생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고 후최면의 암시를 거는 데도 아
주 좋았다.
   후최면의 암시란. 최면에서 깨어난 뒤에 전생체험의 기억이 의식에 남아 있지 않도
록 피실험자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거는 암시를 말한다.  
   이것은 치료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연구를 위한 조사이기 때문에, 휫튼 박사는 
포라가 평상시의 의식상태로 돌아왔을 때, 전생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기억해 내지 
못하도록 세심하게 주의하여 진행시켰던 것이었다.
   박사가 크게 염려한 것은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불쾌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
다는 점이었다. 몇 번이고 환생한 체험을 되풀이하게 되면 반드시 고통을 받았거나 잔
혹한 일을 당한 무서운 일들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었다.
   1973년 10월 초순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때가 되면 근무를 끝낸 포라는 시내를 가
로질러 토론토 심령연구협회 본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부가 있는 집은 19세기에 세워진 크고 호화스러운 저택이었는데, 정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방인 '황색의 거실' 앞에서 신을 벗고 쇼파에 누운 그녀는 횟튼 박사의 최
면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1년 동안, 그녀는 전부 합해서 100시간 이상에 걸친 깊은 최면상태에 들
어갔는데, 자기의 긴 전생의 역사를 논리 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말한 전생은 다음과 같이 거의 전부가 여성과 관련된 것들뿐이었
다. 
   
   *마아사 페인: 1822년, 미국 메리란드주의 농장에서 태어났고 어린 소녀시절에 농
가의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다. 
   
   *마아가렛트 칸벨: 캐나다의 퀘벡시 근처에 살았던 주부. 1707년에는 17세였고, 나
중에 모피상인 사냥꾼과 결혼함.
   
   *여승인 오오가스터 세시리아: 1241년, 당시 34세. 그  일생의 대부분을 스페인 국
경 근처인 포르투갈의 고아원에 서 보냄.
   
   *테르마: 징기스칸 시대, 몽고 족장의 딸(그녀는 징기스칸을 '테무진'이라고 불렀
다). 16세의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싸움터에서 살해당했다고 한다. 
   
   포라의 전생을 더듬어 가자, 고대 이집트에서 노예의 딸로 살았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갔는데, 그녀에의 최면 여행이 갑자기 방향을 전환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1974년의 어느 화요일 저녁, 평소와 같이 그녀는 깊은 최면상태에 들어가자, 마아
사 페인의 농장에서 생활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 도중에 휫튼 박사는 
전날의 마아가릿트 칸벨 이야기에서 좀더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 있었음을 갑자기 생
각해 냈다. 그래서 박사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피실험자를 일단 가로막고 이 같이 명령
했다.
   "당신이 마아사가 되기 전으로 돌아가 주세요."
   마아사의 어린애같은 목소리가 나이 많은 카나다의 주부 목소리로 변하는 것을 기
대하면서 잠시 몇분 동안을 기다렸다. 그러나 언제나 들려오던 프랑스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다. 가끔가다 한숨과 같은 소리가 들려 올 따름이다.
   포라의 표정은 끊임없이 변해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
았으나, 입술은 그 표정과 함께 가볍게 움직일 따름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횟튼 박사는 그녀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고, 자기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 유도 신문을 했는가 하고 머리를 갸웃둥거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박사의 눈 
앞에서 갑자기 그녀는 눈을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듯 그녀는 입을 오물거리다가 이윽고 꿈
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억양이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하늘의...위에 있습니다... 농장의 집과 곡식 창고가 보이고... 아침 일
찍... 태양은... 막 떠오르기 시작하네요... 추수가 끝나서 밭은 새빨갛고... 새빨갛
게 물들어서...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네요·.. "
    휫튼 박사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포라가 하늘 위에 있을 까닭이 없다. 자기는 기
술적으로 무엇인가 잘못한 게 분명하다...허나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최면의 피실험자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비슷한 데가 있다. 즉, 명령하기에 따라서
는 아주 훌륭한 대답을 낼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무엇인가 정확한 명령
을 입력시켜 줄 필요가 있다. 하나라도 잘못 입력되면 프로그램은 작동하지 않게 된다
-적어도 최면을 건 시술자가 기대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는 대답이 나오지 않게 마련이
다.
    횟튼 박사는 포라에게 '당신이 마아사가 되기 전으로 돌아가 주세요.' 라고 말해 
버렸지만, 사실은 이렇게 지시했어야 했다. '당신이 마아사가 되기 전의 인물로 돌아
와 주세요.'라고. 이 두 가지는 분명히 다른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늘 위에서 무얼하고 있습니까?"
    당황하여 박사는 물었다. 
    "저 는...태어나기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하고 계신 것을 지켜보고 있
습니다. "
    "어머니는 어디 계십니까?"
    "어머니는...수도있는 곳에서... 물통에 물을 담고 있습니다... 아주 힘들어 보이
시네요."
    "어째서죠. "
    "제 몸의 무게때문에... 배를 조심하라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어머
니의 몸을 위해서도, 또 제자신을 위해서도. "
    "당신의 이름은?"
    "이름은... 없습니다. "
    완전히 당황한 휫튼 박사는 언제나 하듯이 후최면의 암시를 걸어서, 지금 이야기
한 것을 전부 잊게 한 뒤, 포라를 현실 세계인 20세기로 되돌아오게 했다. 그렇게 하
면서도 박사의 마음은 편치가 못했다. 
    어쩌다 쓴말이 정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우연히도 환생과 환생 사이의 틈이
라고 하는, 인간체험의 지토에는 없는 영역에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것이었다.
    기록상으로, 마아가렛트 칸벨의 죽음에서 마아사 페인이 태어나기까지의 사이에는 
55년 이상의 공백 기간이 있었다.
    고대 티베트에서 말해지고 있는 바르도의 세계로 포라의 무의식이 들어가버린 것
일까?
    표면상으로 휫튼 박사의 연구 방침에는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그는 이 실험에서, 
미리 정해진 목표와 최종적인 조사 결과에 대하여 분명하게 결정하고 있었기에 탄생을 
기다리면서 공중에 떠 있는 혼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고 쉴새없이 목표를 향해 진행
했다.
   뉴우호라이즌 연구재단의 기관지에 실린 박사의 연구 발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
고 있다.
   "최면이 윤회전생한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은 의
심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현재, 피실험자에게 최면을 걸어서 얻어진 기억이 옳다는 
것은 확인되고 있지만, 그 기억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는 수수께끼이다. 
   윤회를 믿는 사람은, 그 기억이 올바른 깃이어서 전생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주
장할 게고, 믿지 않는 사람은 그런 기억 따위는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이
다. 믿지 않으니까 자연 잘못을 입증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믿고 있다면 일부러 증명
하려고 애쓰지도 않는 것이다. "
 
   한때는 휫튼 박사도, 메리랜드주의 시골 하늘 위에 포라의 육체를 갖지 않는 의식
만이 떠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연 육체를 갖지 않은 채 존재할 수 있는 일이 
실재로 가능한가 하고 생각에 잠겼었지만, 속마음으로는 이 애매모호한 이야기의 뒤에 
틀림없이 포라의 전생 기억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른과 같은 관심과 마음 씀씀이를 보여 준 마아사로부터는 육체에 깃들이기 전에
도 그녀가 굉장히 예민한 성품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아직 육체 속에 들어가 있지 않은 그녀의 혼은 어머니가 될 분을 지켜주듯이 상공
을 떠돌면서, 육체를 지닌 보통 인간보다도 훨씬 폭넓은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몇 백년 전부터, 임종 자리에서 '죽음'을 선고받은 뒤, 의식을 되찾은 사람들의 이
야기가 가끔 보고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병원의 침대나 사고현장에 누워있는 자기자
신의 몸을 '보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증언과 포라가 말한 '공중에 떠 있었다'는 기억은 서로 비슷한 것으로 횟튼 
박사에게는 생각되었던 것이다.
   한가지 다른 것은, 다시 소생한 체험을 이야기한 사람이, 태어나기 전의 며칠동안
이나 몇 주일동안 대신에, 죽은 뒤의 불과 몇 초 동안과 몇 분 동안만 의식이 있었다
는 점이다.
   휫튼 박사는 죽은 뒤 육체를 떠난 의식이 어떻게 되는가를 연구하기 위해 즉시 새
로운 실험을 하려고 하지 않고 고대에도 떠도는 영혼에 해당되는 것을 나타낸 무슨 기
록이 있었는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티베트 사자의 책>을 조사하기 시작한 박사는 이에 해당되는 기록을 찾아냈다. 죽
은 다음 다시 환생하게 되기까지의 육체에 깃들여 있지 않는 기간의 영혼에 대한 기록
이다. 
 
   <...그대는 피와 살의 육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고로 생생한 어떤 소리, 색깔, 
광선도 그대를 괴롭힐 수 없고 그대는 죽을 수도 없다...이것이 바르도의 상태임을 알
라>
   라고 적혀 있었다. 
   또, 기원전 600년 전, 옛날에 쓰여진 인도의 카타우파니샷트에도 똑같이 이렇게 쓰
여져 있다.
 
   <육체는 없어져도 자기 자신은 없어지는 일이 없다. 영이며 자기 자신인 아트만은 
살아 있고, 살아갈 온갖 것의 가슴 속 깊이 숨어 있으며 극미한 원자보다도 적고, 극
대한 우주 보다도 크다.>

   희랍의 철학자였던 플루타르코스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데, 메리랜드를 떠도는 
혼에 대하여 만일 그의 입을 빌렸더라면 역시 이와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어떤 혼도... 달과 지구 사이를 육체에서 육체로 방황하도록 정해져 있다.>
 
    이들 이야기는, 굳이 중간생의 의식을 증명하기 위하여 말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인용도 삶과 삶 사이의 개념 즉, 하나의 인생에서 다음 인생으로 의식이 끊기는 일이 
없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휫튼 박사가 바르도의 수수께끼를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다음 해인 
1975년에 레이몬드 무우디 박사가 쓴 획기적인 연구인 <잠시 살펴 본 저승세계>가 출
판된 뒤였 
다.
   이 책은 병상에서 죽음으로 선고받은 뒤, 되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을 쓴 것으로서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체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환생한다는 사실
을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우디 박사가 다룬 환자들은 자기의 
몸이 누워 있는 것을 보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과 같은 여러가
지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과 기쁨, 평화를 강렬하게 느꼈고 이루 표현하기 어려운 눈부신 빛에 둘러싸여
서 자기 평가의 과정에 참여했으며, 마침내 그곳으로부터는 앞으로 갈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어느 보고에나 공통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잠시 살펴 본 저승세계>에 의해 저승에 대한 깊은 관심이 생겨났기 때문에, 휫튼 
박사는 자기 자신이 여지껏 해온 연구를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하고 포라가 메리랜드의 
농장 하늘 위에 떠 있었던 기억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이
다.
   환생의 문제나 육체를 떠난 의식에 관한 증거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고, 그 증거나 
신비주의와 신학상의 통찰과를 비교 연구해감에 따라서, 박사는 더욱 더 흥미가 깊어
져 갔던 것 
이다.
   전생이라든가, 죽음과 탄생과 같은 경계선 위에 있었던 증언을 얻을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혼이 육체에 깃들이기 이전에 살고 있었던 아득히 먼 곳은 아직도 수
수께끼에 싸여 있어 전혀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그리하여 휫튼 박사는 바깥 우주의 엄숙한 수수께끼에 매료된 우주 물리과학자처럼 
바르도가 어떤 것이며, 어떤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탐구하는데 강한 흥미를 느끼
게 되었다.
   이윽고, 그는 이 미지의 나라에 대한 지도 제작에 힘쓰게 되어, 사후의 세계에 대
한 노련한 탐험가가 되었다.
   그리고 자기의 최면기술만을 무기로 신중하게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하나의 환생과 다음 번 환생 사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큰 문제를 가지
고서 말이다.
@ff
    제4장 삶과 삶의 한가운데에서 
 
    죽은 뒤부터 새롭게 태어나게 될 때까지의 생활은 태 
    어난 뒤부터 죽게 될 때까지의 이승의 생활과 마찬가 
    지로 변화가 많게 마련이다.
    루돌프 슈타이너
 
   언어란 이승의 체험에서 생겨난 깃이므로, 삶과 삶의 중간지대라고 하는 비물질적
인 세계에서는 말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하면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나
타내고, 말이 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영국의 시인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그의 작품인 <파라케르스스> 속에서 바르도의 설
명하기 어려운 본질에 부닥쳤다. 우리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더듬으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고 브라우닝은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빛에 가득찬 진리가 살고 있노라 
 
    '안다는 것' 그것은 
    길을 여는 것
 
    마음 속에서 갇혀진 빛을 나가게 하는 것 
    빛은 바깥에서 오지 않는다.
 
   휫튼 박사는 30명 이상의 피실험자들과 함께 몇년에 걸쳐서 이 시간과 공간이 없는 
'갇혀진 빛'의 영역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던 것이다.
   그 체험은 필설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강렬한 것이어서, 처음 그곳을 찾는 이는 할 
말을 잃고, 두려운 나머지 얼굴이 일그러지며 주위의 장엄한 정경을 표현하려고 해도 
그저 입술이 떨릴 뿐인 것이다.
   그들은 훨씬 뒤에, 그때의 넘쳐 흐르는 풍부한 이미지나 인상을 이해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어떤 피실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러하다. 
 
   "그렇게 좋은 기분을 느껴보기는 처음입니나. 이승의 것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황
홀감, 굉장히 눈부신 빛, 나에게는 이승에서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육체가 없으며 그 
대신에 그림자같은 몸, 애스트랄체(유체)가 있어서, 공중에 떠 있었습니다.
   땅도 하늘도 없고, 경계 같은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나 꿰뚫어 볼 수 있습
니다. 밖에도 사람들이 있는데 이야기를 직접 나누지 않아도 뜻을 서로 통할 수가 있
었습니다..." 
 
   휫튼 박사가 초의식이라고 이름지은 이 지복의 상태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어떠
한 존재상태도 초월한 현실감(리얼리티)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꿈을 꾸고 있는 상태나, 체외이탈체험, 전생의 재제험같은 어떤 변성의식과
도 다른 것이다.
   초의식의 상태란, 존재의 본질과 동화되어 자기 자신의 아이덴티티(일치감)를 포기
하고 그 결과, 얼른 보기에는 모순된 것 같지만, 여지껏 경험하지 못한 자기 존재를 
분명히 깨닫게 되는 상태인 것이다. 초의식이란, 육체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우주와 한 
몸이 되어 끝없이 펼쳐진 구름 속의 한 조각 구름이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그야말로 구름을 잡는 것과 같은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으나, 중간
생이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세계는 아닌 것이다.
   그 풍부함을 맛본 사람은, 자기가 찾은 곳이 궁극적인 현실세계(리얼리티), 즉 환
생하여 다음의 시련을 받기 위하여 그 곳에서 출범하는 곳이고 육체가 죽으면 또한 그 
곳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의식의 세계라고 알고 있다.
   일단 중간생에 발을 들여놓으면, 최면상태에 놓인 피실험자의 눈 앞에 온갖 종류의 
뜻 있는 일들과 드라마가 펼쳐지게 마련인데, 피실험자가 이 혼란상태를 잘 정리해서, 
자기가 무엇을 체험하고 있는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잘 해독하여 번역하지 않으
면 안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무의식 속에서 정신분석의 대가인 칼 융이 원형이라고 말한 집
합적 무의식에서 생긴 보편적인 심벌을 활용해 이를 표현한다.
   바르도의 여행자는 심벌을 통하여 이 시공이 없는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쉽게 심벌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시각화가 
힘든 사람은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실험자들이 굳이 바르도에 들어간 것은 단순히 조사때문이었고, 살아 있는 인간
으로서는 거의 갈 수 없는 장소에 대한 여행 정보를 얻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보수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그들의 체험-'재판관들'을 만난 후부터 내생을 위한 '카르마의 
대본'을 '쓰기'에 이르기까지의-이 사실은 치료상 깊은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전생에서의 끔찍스럽게 괴로운 기억을 해소시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적인 
치료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뿐만 아니라 중간생을 체험
함으로써 피실험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 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초의식을 통해 그들은 현재의 자기가 어째서 지금과 같은 환경에 놓여 있게 됐는가
를 알게 되었다.
   또한 육체에 깃들이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자기들이 이제부터 태어나려고 하는 
이승에서 어떤 경우에 놓이게 될 것인지, 어떤 사건 속에 휘말리게 될 것인지를 선택
한 것도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 · 직업 · 인간관계 ·희노애락에 대한 주요한 문제들도 이미 전에 선택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중간생에로의 여행은 대개 죽는 장면에서 부터 시작된다.
   횟튼 박사는 최면상태에 들어간 피실험자를 우선 전생으로 되돌아가게 한 다음, 그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잠깐 살펴 본 뒤, 소파에 누워 있는 그 사람을 바르도의 경계 
지역까지 도달하게 한다. 때때로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이 보입니까' 하고 질
문하면서 진행상태를 체크한다.
   전형적인 예인데, 피실험자는 자기 전생의 몸으로 보이는 육체에서 숨을 거둔 다
음, 서서히 근사사체험을 비교 연구해 온 레이몬드 무우디 박사나 케네스 링 박사, 마
이켈 세됩 박사, 모오리스 로닝즈 박사 등 의사들이 수집한 체험담과 아주 비슷한 이
야기를 시작한다.
   초의식 상태에 들어가면, 피실험자의 표정은 갑자기 변하게 된다. 죽음의 체험과 
함께, 눈썹을 찡그리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등, 두려움과 고민하는 표정이 떠오르
게 마련인데, 그 표정이 사라지면 우선 무표정하게 되고, 그리고 편안하고 온순한 표
정으로 변하며, 마지막에는 놀라움의 표정으로 변하게 된다. 
   두눈을 감고는 있지만, 피실험자가 틀림없이 눈 앞에 벌어지는 정경에 넋을 잃고 
그 포로가 되어 있는 모습이다. 피실험자가 그 광경에 완전히 열중되어 있기 때문에 
휫튼 박사는 
한동안 질문하거나 지시하거나 가로막는 일을 하지 않고, 피실험자를 그대로의 상태에 
방치 함으로써 이 별세계의 리얼리티에 익숙하게 해준다.
   다음에 박사가 소파에 누워있는 인물에게 이야기할 때는, 눈 앞에 보이는 인물에게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그 당시 잠깐 인격을 나타나게 한 '영원한 자기'를 향해 이야
기하는 것이 된다. 엘렉트로닉스(전자공학) 관계 일을 하고 있는 기술자인 피실험 자
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과거세를 체험하고 있을 때, 자기가 분명히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하나의 인
격체란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중간생에서는 눈에 보이는 육체가 없습니다. 나는 이
미지에 둘러싸여진 관찰자인 것입니다. "
 
   자기 자신이 육체를 갖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점에서부터 
진짜 중간생은 시작된다.
   압도될 것 같은 눈부신 빛, 파노라마 같은 지금까지 겪어온 인생의 광경 등 '죽음
에 가까운 현상'을 보고한 사람들은 중간생을 '가까이에서 잠시 엿보는 것'을 허용받
아 왔다.
   근사사를 체험한 환자는 소생했을 때, 삶과 죽음의 사이라고 생각되는 경계나 장벽
에 가까이 갔을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횟튼 박사가 다룬 피실험자들은 이미 이행을 끝냈기 때문에, 근사사 체험자와 같이 
여행 도중에서 다음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제약은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파도와 같아 밀려드는 황홀감과 이승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자비로운 빛의 환영
을 받아, 그것에 익숙해지게 되면 그들은 거의 모두가 틀림없이 당황하게 된다.
   바르도에서는 시간의 경과와 3차원적인 감각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론도 질서도 시간의 경과도 없이, 모두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혼돈 속에서 통찰과 이해를 끌어내기 위해 어떻게하면 좋을지, 박사는 머지 않아 
그 방법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 콜라주의 화면과 같이 많은 단편이 
뒤섞인데서 하나 하나의 사실을 집어내어, 최면상태에 놓인 피실험자가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이를테면 유리알들이 잔뜩 들어있는 주머니 속에 몇번이고 반복적으로 
손을 넣어 한번에 한알씩 유리알을 꺼내서 순서대로 늘어놓는 것과 같은 일이다.
   우리들도 필요에 따라서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들이 보고해 온 여러가지 체험을 묘
사하면서, 순서에 따라 삶과 삶 사이가 어떠한 것인가를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러나 
기억해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사리에 맞는 부분은 죽은 직후와 태어나기 직전의 
시기 즉, 이승에 가장 가까이 있을 때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럼, 이제부터 모두가 공통적으로 보고해 온 중간생의 특징을 알아보기로 하자. 
다만, 최면상태에 놓인 피실험자는 알기 쉽게 설명을 한다기 보다는, 조각 조각 흩어
진 단편을 전해오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이제부터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은 많은 경험을 선택적으로 합성시킨 중간생의 모습이다.
 
    이 세상을 떠난다 
 
   시인 디이란 M 토마스는 죽음의 개념에 대하여 오로지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조용히 그 부드러운 밤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노하세요, 화내세요, 
꺼져 가려는 생명의 불길에 대해서 ..."
 
   그는 빈사 상태에 빠진 아버지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그의 마음은 피할 수 없는 죽
음을 받아들여 
    "죽음이여, 멋진 위안이여, 찾아와라"
    고 읖조린 월트 횟트먼의 감성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겠지만, 각자의 태도와 인생
의 내용, 혼의 발달상태가 이승을 떠날 때의 체험내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을 알고 있는 이는 별로 없다.
    육신에서 영의 세계로 지극히 간단하게 옮겨갈 수 있는 것은 거룩한 혼의 충동에 
따라 성격 형성을 계속해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경우이다.
    그들은 육체의 붕괴를 기뻐하고 지금까지 갇혀 있었던 육체로부터의 해방을 기대
함으로 밝은 기분이 되게 마련이다.
    혼이 발달된 사람의 경우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불완전했다고 느낀다면, 바
르도의 숭고한 세계에 또다시 찾아들게 된 기회를 바라면서도 자기의 부족하였음을 한
탄하게 될 것이다. 인격이 덜 발달된 사람이 취하는 입장은 대개 두 가지인데, 죽은 
뒤 어떻게 될까가 걱정되어 육체에 계속 남아 있으려고 발버둥치거나, 건강치 못했던 
사람인 경우는 특히, 그 몸을 되도록 빨리 새로운 '양복'과 바꿔 입으려고 재빨리 환
생하려고 하든가-이들 가운데, 어느 한가지이기가 쉽다.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 경우는, 이 충격으로 인해 당혹함과 분노, 자기 연민, 복수 
따위의 욕망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에 몸에서 빠져나간 혼이 이승에 남아있게 하는 원
인이 된다.
   어떤 대학교수는 몇백년 전, 아메리카 남서부, 인디언이었던 때의 전생에서 살해 
당한 것을 재체험했는페, 초의식으로 들어갈 때의 정신적 움직임을 기억하여 그는 다
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세사람의 인디언에게 학살되고 손과 발이 절단된 저는 무섭게 화를 내면서 
몸 바깥으로 떠올라 갔습니다. 좀 더 단련을 쌓고, 체력이 강했드라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 몸에서 떠나는 순간, 분통이 터져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습니다. 공격으로부터 몸
을 지키고 살 수 있는 기회가 다시 한번 필요했던 것입니다. "
 
   흔히 인용되는 이행의 원형인 '터널' 체험은, 이승을 떠날 때 공통적으로 볼 수 있
는 특징이다.
   휫튼 박사가 다룬 피실험자들은, 아랫쪽에 누워 있는 자기의 몸을 본 뒤에, 긴 원
통형의 통로를 지나서 급격하게 끌려갔다고 되풀이 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 뒤에 자기는 육체를 떠났으며, 남겨진 친족과 친구들을 위로해 줄 수도, 안심시
킬 수도 이제는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상스럽고 멋진 체험
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승에 대한 애착심은 곧 사라지게 된다.
   관이라던가 터널은 죽은 뒤의 세계로 통하는 통로의  실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여
진다. 그리고 이행하는 도중에 '안내인들'과 만나게 되어 중간생으로 연행되는 사람들
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혼자서  여행을 계속하여 여로 끝에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합류하게 된다고 한다.
   바르도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을 최종적으로 맞이하는 사람들-이미 이승을 떠난 친
척들, 친구, 지도자, 안내인 등이며, 지금까지 자기가 '인솔'하던 사람의 생활을 지켜 
본 사람들-이, 앞길을 비추는 횃불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일은 흔하
다.
   비물질적인 인상을 상징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이 횃불을 든 모습으로 잘 나
타나 있다. 그 성질상으로 보아서도 중간생은 '장소'일 뿐일리가 없고 횃불같은 도구
도 있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사고, 즉 무의식이 이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환시킨 사고뿐인 것
이다.
   작가 스트워드 C 이이스톤은 삶과 삶 사이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중간생은 ...높은 하늘같은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 또는 유형적인 세
계와 연결된 것 전부를 완전히 망각함으로써 상상 가능한 존재의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그러나, 만일 이 별개의 차원을 지각할 수 있다면, 그 추상적인 요소는 현재의 인
생이나 또다른 인생에서 알게된 심벌을 사용한 이미지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멋진 출발 
 
   <애굽의 죽은 자의 책>은 기원전 1300년의 옛날에 쓰여진 사후의 안내서이다. 이 
원전의 제목은 '해빛 속에 나타난다'인데, 삶에서 죽음으로 옮겨가는 체험을 정확하게 
표현한 책 이다.
   눈부신 빛과 압도적인 밝음이 중간생으로 들어갔을 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우주의식이라고 하는 큰 바다에 잠긴 것과 같은 체험이란 이 빛을 지각하는 작용일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행복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은 모든 사람들을 삼켜 버리는 
이 순수한 황홀감에 필적하는 것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사랑 뿐이다. 혼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존재에 또다시 흡수
되게 되는 순간 느끼는 강렬한 황홀감에 두려움이나 부정적인 상념은 사라져 버린다. 
   우리들은 환생을 끝낼 때마다 몇번이고 이 눈부신 시작의 마중을 받는다. 그 시작
은 언제나 완전한 놀라움으로서 느껴지게 마련이다.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눈가래가 
갑자기 치워지고 우리들은 환희에 가득차 깨닫게 된다... 우주가 전개되는 모습을, 그
리고 자기 자신이 이 우주의 어느 곳에 자리 잡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인간이 차례 차례로 환생을 거듭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영원한 생명이란, 
윤회의 과정이란 무엇인가 하는 수수께끼도 아주 쉽사리 풀리게 된다. 일곱번에 걸쳐 
중간생을 방문했던 어떤 여성 사회 봉사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전생의 죽음을 지나가면 황홀해지면서 자신의 몸이 완전히 변했음을 느끼게 됩니
다. 나의 몸은 방안 가득히 퍼지고 여지껏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행복감이 찾아듭니
다. 이렇게 느끼면서, 내 자신이 사실은 누구며,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내 자신은 
이 우주 속에서 어떤 지위에 있는가 라는 사실도 완전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
에 뜻이 있고 모든 것이 완전하게 옳다, 사랑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음은 사실입니
다.
   멋진 일입니다. 보통의 의식으로 되돌아오려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저 사랑이
나 지식, 안심감을 남겨 놓고 떠나야만 합니다. 실망으로 인생살기가 싫어졌을 때, 차
라리 죽어버릴까 하고 생각하고 싶어지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죽는다는게 저 멋진 상
태에 되돌아 가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줄곧 죽는 게 무서웠습니다만, 이제는 무섭지 않습니다. "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매우 밝고, 아름답고 투명합니다. 뜨겁다는 것을 느끼지 않으면서 태양 속으로 빨
려 들어가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된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되돌아 오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
 
   이와 같이 끝없는 기쁨과 심원한 계시의 내용은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이고 그 
사람의 경험과 의식, 기대에 따라서 틀리는 것 같이 생각된다.
   기쁨과 평화를 방사하는 밝은 빛의 돔 속에 들어가 있다고 느끼는 피실험자들이 많
다. 어떤 사람들은 무지개의 일곱 색깔도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멋진 색채를 보았다
고 했다. 또는, 자기가 일생을 통하여 추구해 온 흥미의 대상과 직접 연결되는 계시를 
받아 깨달음을 얻는 사람도 있다.
   수학자로서 두 번의 인생을 보낸 어떤 남자는, 지금까지 풀지 못했던 문제를 완전
히 풀어서 대발견을 했을 때의 아르키메데스가 된 것 같이 크게 기뻐했다.
   그 해답은 일련의 방정식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세계의 제1급 물리학자
들이 찾아 헤매던 우주 에너지의 여러 가지 형태 관계를 설명한 해설이 포함되어 있었
다고 한다.
   몇번이나 음악가로서 살아왔던 여성은 굉장히 멋진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녀
의 말에 의하면 '그 작품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훌륭한 음악이어서 대작곡가가 아니고
서는 만들 수 없는 음악'이었다고 했다.
   내세를 이미 예상하고 있던 사람에게는 자기가 상상했었던 것과 비슷한 내세가 기
다리고 있는 경우가 있다. 전생에서 스웨덴의 젊디 젊은 색시였던 과거로 되돌아 갔던 
어느 화가는 17세기 말에 자기가 탄 스페인의 대형 군함이 폭풍우 치는 북해에서 침몰
해 물에 빠져 죽었던 때의 일을 다시 경험했다.
   그 생애에서 믿음이 두터운 카톨릭 교도였던 그녀는 초의식의 세계에 들어가서 자
기가 믿고 있던 그대로의 광경을 보고 완전히 만족했다. 보라색 배경을 등 뒤로하고, 
떼를 지은 천사들의 합창과 함께 대천사가 나타났고, 예수 그리스도가 두 팔을 벌리고 
그녀를 마중나와 주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우주와 하나가 될 때는 사고의 과정이 정지된다. 명상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현상을 말한다.
   삶과 삶의 중간세계에서는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서 우선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육체를 떠난 뒤의 삶은 무의식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삶과 삶
의 중간에 있어서는, 생각한다는 행위를 통해서만 존재라고 하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 
구름 속의 한조각 구름 언저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르네 데카르트가 말한 유명한 격언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중간생의 상태 바로 그것임을 알아야 한다.
   바르도에서 어느 만큼 자기라는 존재를 지각하느냐는 사람에 따라서 그 정도가 제
각기 다르다.
   열심히 영적인 발전을 원하는 사람은 죽은 뒤 다음에 환생하게 되기까지의 기간에
도 의식이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성장의 과정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세속적인 관심에 사로잡힌 시간
이 길었던 것과 알맞게 그만큼 잠자는 경향이 있다.
 
    혼이 사는 곳 
 
   집이라고 하는 곳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생각하는 바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인데, 
삶과 삶의 중간지대라는 환경도 각자의 생각과 기대를 그대로 반영한다. 
   <티베트 사자의 책>에서는, 바르도에 사는 이들은 마음속에 생각했던 그대로 스스
로의 환경을 만들어 낸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하고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도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이미지는, 죽은 뒤에 주위의 세계로서 나타나게 된다고 이야
기하고 있다.
   '죽은 뒤, 우리들의 생각이나 마음에 그렸던 것들은 전부 영혼 앞에 대 파노라마로
서 나타난다'고 그는 말한다.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들은 초의식 상태 속을 헤맸을 때의 여러가지 모습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멋진 궁전과 아름다운 정원이 보입니다"
 
   "여러가지 크기의 추상 모양에 둘러싸여 있고...어떤 것은 장방형, 어떤 것은 원통 
모양입니다. "
 
   "끝없는 무 속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바닥도 천장도 하늘도 땅도 없습니다. "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그곳
에 있다...교회도, 학교도, 서관도, 운동장도... "
 
   "제 자신이 어느 곳에 있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이미지가 
나타나곤 합니다. "
 
   어떤 남성은 금생에 태어나기 이전으로 끌려가져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동굴 속에 
있었다. 동굴 안에는 벽이 가로막아 서 있었고 그 꼭대기에 떠 올라가 뒤돌아다 보았
을 때, 식물이 푸르게 무성한 이 세상의 풍경이 눈에 띄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계속한다.
 
   "저는 양쪽 세계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높이에서도 땅 위의 초목과 
대기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온 것과 반대 방향은 좀 더 밝고, 공기도 
희박한 느낌이었습니다. 안내자와 함께 저는 지중해의 경치와 같은 이 별세계를 향하
여 걷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평화스러웠습니다. 경사진 언덕의 기슭에는 
도장한 흰 건물이 서 있어서 독특한 빛을 내어 뿜고 있었습니다. 어느 건물에도 아치
가 있었고 그 아래는 방안에 
서 나오는 빛으로 밝게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
  
    인간은 자기가 이 세상에 살고 있었을 때 마음에 그리거나 바라던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가르침을 원칙대로 지키고 살아간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배알할 수 있고, 
천국에도 들어가리라고 믿고 있는 근본주의자들은 실망을 맛보게 마련이다. 신앙심에 
꽉 찬 전생을 보낸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들이 중간생에서 발견한 것은, 인간의 발달이
라고 하는 복잡하고 긴 도정이 '구제'라고 하는 단순한 관념만으로는 대치될 수 없다
는 사실이었다.    
    제7장의 맨 먼저 케이스 스타디에 등장하는 피실험자인 마이켈 카란다의 전생의 
인격, 빅터 부락크네루는 17세기의 신앙심 깊은 청교도였는데, 자기야말로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하고 있다는 굳건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죽은 뒤에 예수 그
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중간생에서 그는 그리스
도 비슷한 환영조차도 거룩한 천국도 볼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갈등하게 되었고, 무분별하게도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결과를 가져 왔
던 것이다.
 
    바르도의 아이덴티티 

   초의식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은 개인의 능력으로 보이지 않는 근원인 영원한 오오
버 소울(대령)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부의 자기를 직관력으로 파악한다는 
것이야말로 아란 왓츠가 그의 저서인 <지고의 아이덴티티>에서 쓰고 있는 '형이상학적
인 인식의 싹'인 것이다.
   자기 생명의 핵 자체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것은 체험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리핫드 아라뉴야카 우파니샷드에서는, 
이것을 만물에 내재하는 아트만이라고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진짜로 보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대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진짜로 듣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대로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진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대로서는 알 수가 없다. 진짜 알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이야말로 그대의 아트만, 만물에 내재하는 아트만이다.
   그밖의 모든 것은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이니라.
 
    각자의 오오버 소울에는 대개 인간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이름이 있는 것 같다.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들 가운데 몇사람은 최면상태에 놓여 있을 때 아무리 애써도 
발음할 수 없는 미지의 언어로 쓰여진, 내부의 자기를 나타내는 이름에 대하여 보고하
고 있다.
    18세기의 엠마뉴엘 스웨덴보그는 '천사의 언어'라고 쓰고 있는데, 혹시 어쩌면 이
것이 '천사의 언어'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어떤 남성은 한권의 책에 심벌과 같은 모양으로 표시된 자기의 이름을 보고 목소
리를 내어 말해보려고 굉장히 애썼지만, 아무래도 잘 발음이 되지 않았다.
    그는 소리로 표현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성질이 틀리는, 본질적인 마음의 언어를 
발음하려고 애썼던 모양이었다. 이 텔레파시로 전달하는 언어는 일찌기 땅 위에서 지
기였던 바르도에 사는 혼끼리 사용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들 속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마도 전생에서 체현된 여러가지 인격을 포함한 오오버 소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 
것이 다.
   깊은 최면 상태에 들어간 피실험자는 과거의 교훈을 의식에 떠오르게 하기 위해 각
자의 전생이나 중간생을 조사할 수가 있는데, 이것으로 궁극적인 완성이라고 하는 최
종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최면상태에서 명령을 받으면, 어떤 
전생의 인격이라도 이승에 있었을 때 보다 더 깊게 자기 자신을 알 수가 있다.
   전생의 인격에 대하여 '당신의 무의식 세계에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습니까?'라고 
하는, 눈 뜬 상태의 인간으로서는 전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
이다.
   이 장의 처음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멋진 출발에도 불구하고, 대개 전생의 인격
은 방금 끝난 인생에서 생각하거나 이야기하고, 행동한 것 때문에 생긴 감정때문에 몹
시 지쳐있게 마련이다. 노여움이나 오감의 만족, 정욕 ·슬픔 ·질투 따위의 동물적인 
감정은 육체와 함께 사라진다. 다만 아주 드문 일이지만, 생전에 가졌던 감정이 굉장
히 격렬했을 경우, 육체를 떠난 혼에 그 감정이 깊이 투입되는 일도 있는데, 그런 경
우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나 죄악감 · 황홀감 · 놀라움 · 후회 · 상실감 · 공포심 같은 정서는 
그림자의 몸 또는 아스트랄체에 계속 간직된다.
 
    재판관들 
 
   무서운 재판관들 앞에서 '혼의 계량'을 받는다고 하는 고대 애굽의 신앙에서부터, 
정령의 재판관들이 각자의 행위에 따라 운명을 저울질한다고 하는 배화교의 가르침에 
이르기까지 어떤 종교, 철학, 신비주의의 전승에도 죽은 뒤의 심판에 대한신앙은 침투
되어 있다.
   이러한 하늘나라의 권위자들은 대개 3명이 한 팀으로 등장한다. 희랍 신화에 나오
는 3명의 무자비한 재판관이나, 노자의 철학에 나오는 삼보의 관념은 힌두교의 삼신일
체에 상당하는 것이며, 또한 기독교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있다. 
   심판극의 심벌이나 그 성격은 문화에 따라서 다르지만, 심판이 행해지는 목적은 항
상 같은 것이어서, 혼이 행한 일들을 평가하여 장차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하느냐를 
계획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인간은 그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니까, 이와같은 자세한 취조를 받는게 
아닌가 하는 예감이 생기게 된다.
   신약성경의 <히브리서> 10장 27절에는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
과 대 적 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호 되어 있고, 또한 스칸디나비아의 
<오오라아브 오스티슨의 노>에서는 '영혼의 비탄은 얼마나 큰 것일까... 그곳에서 혼
은 우주의 심판에 복종한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횟튼 박사의 피실험자들 증언은 모두 심판관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태고때
부터 세계 각지에서 전승되어온 이야기를 보다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초의식 속에 들어간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나이 많은 현인들의 집단 앞에 나가서 
재판을 받았다고 했다. 이 늙은 현인들은 대개는 3명, 때로는 4명, 아주 드물게는 7명
인 경우도 있었고 그 모습도 여러가지 였다고 한다. 그들은 정체불명인 경우도 있고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나, 종교상의 대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피실
험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안내자는 나의 팔을 잡고 장방형의 테이블 앞에 재판관들이 앉아있는 방으로 데리
고 들어갔습니다. 재판관들은 품이 넓은 흰 옷들을 입고 있었고, 모두 나이가 많아 현
명해 보였습니다.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나 자신이 끝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
 
   이 비물질계의 법정에 참여하는 재판관들은 고도로 영적인 발달을 해서, 이승에서
의 환생의 싸이클은 이미 졸업한 존재들 같이 생각된다.
   그들은 눈 앞에 놓인 인물에 관하여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나 직관적으로 알고 있
으므로 그 사람의 방금 끝낸 인생을 평가하는 것을 도와준다. 경우에 따라서 다음의 
환생에서는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는 일도 있다.
   삶과 삶의 중간에도 각자에게 지옥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영혼이 반성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돌보는 순간이 될 것이다.
   전생에서의 잘못에 대한 후회와 죄악감, 자책의 마음이 진심으로부터 토로되어, 그 
때문에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로 고민하고 비통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살아 있었을 때
는 잘못된 행동도 이유를 붙여서 마음 한 구석에 밀어넣을 수도 있었고, 변명도 얼마
든지 할 수가 일었다. 그런데 중간생에서는 이와 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에 생긴 감정
이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타협이 허용되지 않는다.
   타인에게 준 고통은 마치 자기가 그 고통을 받는 것과 같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
러나 아마도 제일 괴로운 것은, 회개해도 그 잘못을 바로잡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깨닫
게 될 때일 것이다. 
   전생으로 통하는 문은 이미 굳게 닫혀져, 지금까지 자기가 한 행동이나 태만의 결
과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포커 게임의 마지막 순간에 손에 들고 있는 카드들을 
전부 보여주어야 할 때처럼 자기가 누구며 무엇인지 설명이 요구된다.
   타인의 의견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
의 성실성과, 우리들 내부의 도덕성뿐인 것이다.
   감정이 혼란된 트랜스상태에 놓인 피실험자들은, 자기 자신의 악업때문에 자기 몸
에 장해가 있을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흔히 있다.
   전생에서 애인을 죽인 남자는 목을 칼로 빈 모습으로 3명의 재판관 앞에 나타나고, 
자식을 부주의 때문에 죽게 만든 어떤 어머니는 쇠사슬에 묶인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
게 된다.
   전생에서 배반한 행위를 한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어떤 여성은, 죄의 무거
운 짐을 옛날 그대로의 기독교적인 이미지로 이렇게 표현한다.
 
   "저는 커다란 십자가를 오른쪽 어깨에 짊어진채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죄의식과 고통, 후회, 슬픔 때문에 제 영혼은 벌벌 떨고...너무나도 창피스러워서 
그 세분을 쳐다 볼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푸른 빛의 따뜻함과 헤아리기 어려울 정
도의 편안함이 차차 강하게 저를 감싸주었습니다. "
 
   의료기관에서 사무원으로 있는 이 피실험자가 재판관들 앞에서 느낀 '편안함'과 같
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체험하고 있다.
   재판관들은 장해를 제거하기 위해 회복과 치유의 에너지를 방사하여, 죄인들의 마
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 사무원은 어깨에서 십자가가 치워졌다고 느꼈고, 목이 잘린 
남자는 상처가 아물고, 쇠사슬에 묶였던 여성의 손과 발의 족쇄도 풀려져 나간 것이었
다. 다른 피실험자는 또 이렇게 이야기 한다.
 
   "재판관 앞에 나가는게 처음에는 무서웠습니다만, 곧 걱정할 것 없다고 깨달았습니
다. 모두가 친절하고 자비심에 넘쳐 있어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
 
   재판관들은 죄를 깊이 뉘우치고 후회하는 영혼들에게 자책심이나 불만이 더 커지도
록 하지 않고, 인생의 긍정적인 면과 건설적인 점을 지적하여 용기를 북돋아 준다.
   "자아 기운을 내라고... 자네의 인생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처럼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 
   라고 말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균형이 잡힌 견해가 옳다는 것을 증
명하기 위하여, 재판관들은 지금까지의 지나온 일생을 회상시켜 준다.
 
    일생을 돌아다본다 
 
   영혼의 눈 앞에는 자기평가를 위해, 한순간 사이에 전개되는 파노라마 같은 프렛슈
백(회상장면)이 전개된다. 지나가 버린 인생에서 해왔던 일들이 여기에 하나도 빠짐없
이 회상되 는 것이다.
   엠마뉴엘 스웨덴보그는 이 회고 모습을 한 인간이 태어난 뒤부터 죽을 때까지의 행
장기를 낭독하는 형식의 극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 체험에 의
하면 그 과정은 좀더 짧고 순식간에 일어나며, 모든 것을 포함한 완전한 전생의 재체
험이었다고 한다. 어떤 피실험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생을 묘사한 영화의 화면 속에 들어와 버린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지나온 
인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실감을 동반한 채 재연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눈 깜짝
할 사이에 말입니다. "
 
   이 전생을 회고함으로써 완전히 기억을 회복하면서, 영혼은 자기자신이 기억했던 
것 이상의 것까지 알게 된다. 여지껏 알지 못했던 세계의 전모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커다란 그림이 세부까지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처럼, 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영혼
은 자기가 행복을 몰라보고 발로 걷어찬 일이며, 아껴주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타인
에게 상처를 준 일이며,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에 일어났던 일들의 뜻을 이해하게 된
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찍은 비디오 테이프같은 것에서, 영혼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 
뜻을 이해하게 되어 엄격하게 자기분석을 진행시켜 가게 된다. 이때가 영혼에게 있어
서는 결정적  인 순간인데, 이 동안에는 재판관들도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 이야기에 의하면 재판관들이 옛부터 말해져온 것처럼, 그렇
게 엄격하게 조치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 보다는 오히려, 학생들을 격려하여 과거
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게 하려는 자애로운 선생과 같이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재판관들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중요한 에피소드를 예로 들어 조언해 주고, 비록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지 못한 것이었다고 해도 어떤 체험도 모두 한결같이 그 사람을 
성장시켜주는 요인이 되는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는 것이다. 회고되는 것들은 
그 사람의 소망, 우정, 이상, 취미와 좋아하는 일, 마음의 성장 과정 등 모든 것에 관
계된다.    
   재판관들을 적극적인 태도로 많은 생애를 꿰뚫어 보고, 대국적인 관점에서 행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해주기 때문에, 영혼은 감정이 격앙되는 일이 없이 편안하게 있
을 수가 있다고 했다. 한번의 인생에서만 영적 발전에 있어서 긴 여로의 진행상태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업장의 경향
과 패턴을 조사해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생에 대한 회고는 '아카식크 레코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아카식
크 레코드라고 하는 것은, 우주의 에테르적인 물질에 남겨진 과거의 온갖 일들에 대한 
불멸의 흔적이라고 옛부터 예언자와 신비학자들이 주장해온 것이다.
   미국의 위대한 투시능력자였던 에드가 케이시는 아카식크 레코드가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 물질계의 영화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투시능력자들은 이 우주의 
기억과 접촉할수 있는 모양인데, 최면의 피실험자들도 이 방대한 비물질계의 기억 창
고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는것 같다.
   퇴행하여 전생의 어느 장면에 촛점을 맞출 때는 반드시 최면에 걸린 인물은 직관적
으로 그 장면의 범위 바깥의 것까지 자세히 알게 된다. 완전한 재현능력을 갖춘 비디
오테이프와 같은 것에서 정보가 얻어지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음의 인생을 계획한다 
 
   휫튼 박사의 연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육체에 깃들여 있지 않은 상태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다음의 인생을 계획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점이다.
   회고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삼아 영혼은 다음번 환
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매우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영혼은 혼자서 의지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결단을 내릴 때는 재판관들의 
존재가 크게 작용한다.
   재판관들은 영혼에게 어떠한 업장의 부채가 있는지, 또 어떤 점을 배울 필요가 있
는가를 감안해서 폭 넓은 조언을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
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육체를 갖춘 존재로서는 유일하게 육친을 선택할 특권을 가
진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택의 길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으며, 앞으로 살
아야 할 인생을 설정하거나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서 양친의 선택이 대단히 중요함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고대의 티베트 사람들은 이 내세를 선택하는 수속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바르도 소돌>은 육체를 떠난 혼에게...'그대가 태어나고저 하는 곳을 조사하라, 
육체를 선택하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이 바라는게 아니라 영혼이 필요로 하는바에 따라서, 재판관들은 영혼에게 충
고를 한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영혼이 어떤 부담을 감수하드라도 일방적으로 성장만
을 추구할 생각이 없다면, 이 충고는 복잡한 감정과 함께 받아들여질 경향이 많다.
   어떤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떤 어려운 일이 삶의 도중에 생겨도 그것에 직면할 수 있도록 다음 번 인
생을 계획하는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 할 것만 생각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장해를 뛰
어넘기위한 부담이 주어져야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좀 더 강해지고, 좀더 의식
을 높히며, 보다 진보되고 보다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발전의 대가에는 항상 시련과 곤란이 따르게 마련이다. 영혼이 성장함에 따라서 인
생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여러 번에 걸친 생애를 
통해 깊은 인연을 맺어온 다른 영혼과 상담하면서, 다음 번 인생의 계획을 결정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즉, 탄생의 시간과 장소의 선택이 굉장한 중요성을 띄우게 된
다는 이야기다. 선택을 잘못하면 재회할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룹 환생이란 같은 혼들이 조를 만들어서, 여러 가지 인생에 있어서 끊임없이 변
화하는 관계를 통하여 발전해 가는 것인데,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에 의하면 이 그룹 
환생은 자주 되풀이 된다고 한다.
   '카르마의 대본'에서는 관계의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전생에 등장한 사람과 또다
시 새로운 관계를 갖는 게 요구된다.
   자기가 남에게 대하여 보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어떤 인물은,
   "전생에서 충분한 대우를 해주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또다시 이 세상에 돌아
와서 부채를 갚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번에 그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입장이 되어도 
용서해 줄 생각입니다. 또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죠. 여
기가 고향이니까요."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영혼의 벗(소울메이트)'이라는 말을 들으면, 서로의 성장을 위하여 몇번이고 같은 
목적으로서 환생을 함께 해온 혼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함께 있으면서도 결코 즐겁지 않은 상대와 다시 만남으로써 성장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싫다...저 여자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어느 피실험자는 이 같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는 전생에서 자기가 죽인 여인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게 혼의 성장에 크
게 도움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자기의 업장에 알맞는 상황에 놓이기 위하여 결함있는 몸을 선택하도록 조언받은 
피실험자들도 몇 사람 있다.
  크게 진보하기 위해서는 역경을 받아들여야만 될 경우도 있는 것이다. 어떤 여성은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저는 그 분이 알츠하이머형 노인성 백치의 발병율이 높은 집안 출신이므로, 제 자
신도 같은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 그분을 어머니로 선택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업장(카르마) 관계는 어떤 유전학상의 결함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입니
다.
   그분을 어머니로서 선택한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재판관들이 저에게 이번 
생애에서는 아버지 없이 성장하는 체험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양
친이 멀지않아 이혼하게 되리라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부모를 선택함으
로써, 결혼 상대자가 될 남성과 만나게 될 때 이상적인 조건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 다. "
 
    계획은 반드시 이와 같이 정해진 조건 아래에서만 수행되는 것은 아니다. 발달이 
아주 부족한 인격일수록 자세한 설계도를 필요로 하는 것 같으며, 발달된 혼이 되면, 
대체적인 윤곽만을 만들어서 어려운 상황 속에 처했을때는 보다 창조적으로 활동하는 
것 같다.
   몇번에 걸친 인생에서 침울하고 어두운 생활을 보낸 어떤 남자는 자기 영혼의 발달
을 위해서 다음번 환생에서는 화려한 애정생활을 하는게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가 계획한 것은 다정한 여인이 된다는 큰 줄거리뿐이었고, 기본이 되는 성별과 
태도만을 정해, 나머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은 자세히 정하지 않았다. 다음 번 인생 설
계를 세우면서 그는 이린 이미지를 그렸다.
 
   "시계장치가 되어 있는 기계와 같은 것이 있죠. 일정시간이 지나면 작동을 개시하
는 부품을 붙이게 되어 있는... 생각컨데 저는 제가 고치고 싶은 것을 조정하고 있었
던 게 아 
닐까요. 기계에 손질해서, 중간생에서 세운 계획에 맞추어 장차 저의 인생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적당히 조작한 변환 스윗치를 장치했던 것이죠. "
 
   이 피실험자는 전생에서부터 알고 있던 분명한 인간의 모습을 갖지 않은 존재가 있
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의 다음 번 인생에 등장하여 큰 구실을 하게 될 한 인물이, 
반쪽 몸은 장미꽃이고 반쪽 몸은 코브라라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눈 앞에 나타났던 것
이다.
   이 심벌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은 피실험자가 대답하기를, 그 사람이 지
닌 코브라의 측면은, 그 인물이 과거에 두 번씩이나 그를 죽인 장본인이었음을 나타내
는 것이고, 장미는 몇 번의 인생에 걸쳐 이들 두 사람을 연결시켜온 사랑의 본질을 나
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 자신이 세운 계획을 알고 크게 낙담하는 경우도 있다. 택시 회사의 배차계에 
근무하고 있는 여성은 감정적인 문제와 열등감 때문에 굉장히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자기의 중간생에서의 계획을 알게되면, 금생에서는 자기가 무엇인가 큰 일을 성취할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의식의 상태에 들어가서 알게 된 것은, 그녀의 금생의 목적은 다른 사람
들과의 감정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현재의 열등감은 그녀가 전생에서 취한 잘난체하는 교만한 태도 때문이었다. 자기 
카르마의 대본에 의한 진행 상태가 너무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되어 놀란 그녀는, 낙담
한 나머지 우울증을 없애는 약을 처방받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 되었다. 괴롭기는 했지
만, 이 개인적인 계획을 알게 됨으로써, 그녀는 결국 자기가 설정한 임무를 수행할 수
가 있었다.
   커다란 곤란을 극복하는데 몇번이나 실패한 사람들은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때
까지 같은 상황에 처하도록 재판관으로부터 촉구되었다고 한다.
   자살한 사람은 중간생에서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기들이 미
숙한 채, 이 세상과 각별하게 된 원인인 고통의 단계에 또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
다는 것을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피실험자는, 영양학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 전생을 조
사해 보았던바, 과거 2000년 동안 줄곧 고독들 견디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생애에서도 이 여성은 자기의 아들에게 지나치게 의지하게 되어서, 아들이 대
학에 들어가려고 집에서 떠났을 때는 신경쇠약이 되기 일보 직전에 이르렀던 것이다.
   초의식에서 알게 된 것은, 또다시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대한 테스트에 실패했으므
로 이 약한 마음을 극복하는 것을 배울 때까지 똑같은 환경을 계속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 세상에서 인생이 진행중일지라도 계획을 완전히 변경시킬 수가 있다. 스티브 로
오간이라는 피실험자가 그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젊었을 때, 아버지를 굉장히 싫어했고 아버지의 병이 위독하다고 하는데도 여
간해서 마이아미의 노인 요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때, 어쩐지 아버지의 
심변이 염려되어서 요양원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노인 요양원에 도착해보니까, 아버지는 중태여서 여러 종류의 생명유지 장치가 연
결되어 있었다. 머리맡에 서서 스티브가 본 것은 인공호흡 장치의 고무관이 빠져 숨을 
쉴 수가 없어 괴로워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이 상황에서 스티브는 딜레마에 빠졌다.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간호원을 부를 수도 
있지만, 보고도 못본채 하여 아버지를 죽게 할 수도 있었다. 순간, 망설였으나 그는 
큰 소리로 간호원을 부르면서 방에서 뛰어나왔고, 간호부는 무사히 호무관을 본래의 
위치에 들어가게 하였다.
   몇 년이 지난 뒤, 스물 아홉 살이 된 스티브는 오레곤주의 작은 고을에서 자전차를 
타고 가다 심한 사고를 당하였다. 옆에서 튀어나온 트럭에 치었는데, 다행하게도 다리 
골절 정도 였다.
   그는 마흔 살 되던 해, 초의식 상태가 되어 비로소 이들 두 가지 사건이 자기의 중
간생에서 계획된 것임을 알았다.
   그는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아버지의 생사를 결정한 그 사건은, 분명히 제가 스스로 계획한 중요한 시련으로
서, 그 일은 제 카르마의 대본에 분명히 쓰여져 있었습니다. 만일 저에게 대하여 아버
지가 범한 죄-몇 번의 인생에 걸친 것인 듯 했다-를 용서해드린다면, 저는 자전차 사
고로 죽지 않아도 되게끔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계획에는 제 과거의 행위 때문에 아
버지를 돌아가시게 하려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테스트에 합격해, 사
고가 있은 뒤 그 계획은 끝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세에 걸친 미완성의 계획이 앞당
겨져 금생에서 일어났음을 알았습니다. "    
 
   몇회에 걸친 미래의 인생까지 계획해 온 사람들은 자기들의 영혼의 성장과 깊이 관
련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굳은 결의를 가진 혼은, 바르도에 머문 기간의 거
의 전부를 어떤 종류의 공부를 하는데 보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물질계에 마음이 사로잡힌 혼은, 중간생으로 들어가는 최초의 표시가 보인 
곳에서 서둘러 육체로 되돌아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향상심이 없는 사람들이 
재판관 앞에 나가면 흔히 잠들어 버려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눈을 뜨라고 
독촉을 받을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중간생에서 지식을 얻게 되면 영혼은 다음 번 환생이나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길 기
회에 대비하게 된다. 실제로 응용해 보지 않으면 숙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 대부분은 자기들이 도서관이나 연구실이 있는 넓은 학사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이를테면 의사나 변호사들은 중간생에 있는 동안, 필요한 학과를 배웠다고 이야기
하고 있으며, '우주의 법칙'이나, 다른 형이상학과 비슷한 과목을 배웠다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세상에는 그것에 상당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는 과
목을 배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조차 있는 것이다. 어떤 여성은 신으로 가는 길을 발견
하기 위한 자신의 탐구에 대하여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모습과 비슷하게 창조된 몸입니다. 즉, 우리들은 하느님처럼 
되써서 하느님 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좀더 높은 차원의 세계가 많이 있으며, 하나님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하느님의 영이 
사는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영이 진짜로 자유스럽게 될 때까지 옷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배우는데는 끝이 없습니다. 때로 우리들은 높은 차원의 세계를 잠시 엿보이게 허용
되기도 합니다만, 높은 차원으로 올라감에 따라서 어떤 세계도 보다 밝고 광채를 더해 
갑니다. "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이미 크게 또는 적게 중간생에서 연습이 끝나 있다고 할 수 있다. 랄프 월드 트라인은 
그의 책인<무한한 것의 목소리를 듣다>에서 1897년의 옛날에 이렇게 쓰고 있다.
 
   <온갖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나타나게 되기 전에, 우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만들어져 있다. 현실의 세계에 나타나게 되기 전에 이념(이데아)의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물질 속에 나타나기 전에 정신 속에서 만들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
역이란 원인계인 것이며, 보이는 것의 영역이란 결과의 영역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는
가는 항상 그 원인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서 결정되고, 지배되고 있다. >
 
   중간생의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우리들은 이를테면 벽화의 기본 그림을 그리는 화
가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육체를 갖고 태어나게 되면, 우리들은 그리려고 
했던 걸작품을 그리려고 작업에 들어간다. 
   매일, 매일 전체의 구상을 세부까지 세밀하게 완성하려고 벽에 바싹 다가서서 일을 
계속한다. 그리고 마침내는-죽음에 임박하여, 또는 초의식을 통하여-벽에서 물러나 예
술작품을 바라다 볼 수가 있게 된다. 삶과 삶의 중간생에 되돌아 왔을 때만, 자기가 
세운 목표에 대하여 어느 정도 충실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밑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실제로 그대로의 작품이 완성된다고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계획의 작성은 끝났다고 해도 그것을 꼭 수행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
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중간생에서 결정한 것에 대하여 충실한지 아닌지를 인생의 도
중에서 알 수 있는 것일까? 대답은 마음 속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카르마의 대본 그대로 끝가지 살아온 사람이라든가, 대본 이상의 삶을 살아온 사람
들인 경우에, 인생은 마땅히 이렇게 되게끔 되어 있다고 느끼게 된다. 계획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인 경우, 모든 일들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혼돈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조명 아래로 발을 내어 디디기는 했으나, 어리석게도 
자기가 입으로 말해야할 대사가 생각나지 않게 된 배우처럼, 그들은 인생이라는 드라
마가 전개되어도 그 장면만 억지로 때우는 연기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좋은 운과 악운 사이, 인생의 대본을 만드는 입장과 즉흥극을 하는 배우로서 
무대에 선 입장 사이에, 되어가는대로 맡긴 상태에 놓여 있는 것과 같이 보이는 사람
들도 있다. 이 사람들에게도 계획은 있다고 하지만 얼마든지 즉흥적인 연기를 해도 좋
은 것으로 되어 있다.
   몇년 전, 이리노이주에 있는 인디안의 묘지 근처 숲 속에 끌려 들어가서 강간당한 
37세의 여성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횟튼 박사에게 의논하러 오기 전에, 이 여성은 어째서 자기가 희생자가 되게 되었
는가 하고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생각해 보았으나 결국은 헛되게 끝나고 
말았다.
   그 뒤, 삶과 삶의 중간지대에 여행해 보니까, 이 강간 사건은 미리 계획되었던 것
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그녀의 카르마 대본의 줄거리에는, 인생의 일대 전기를 가져올 
우발적인 비극 때문에 상처를 입게되어 있다고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의 대본은 30대에서 자기의 혼이 완전히 변모를 할 수 있는 비극적인 사건을 당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촛점을 맞추어 적당한 수단으로서, 자기자신의 인생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
 
   재판관들의 조언을 거부하는 것도 자유이며, 혼은 자기에게 거북한 권고를 받았을 
때도 무시할 수가 있다.
   권고를 거부한다는 것은, 환생이 아무런 계획없이 행해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아
무런 결실이 없는 심한 고통이 언제 닥쳐올지도 모르게 된다. 아무런 계획없이 환생하
는 것도 또한 하나의 선택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 경우 난처한 것은 대본이 없기 때문에, 혼은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 모양이 되
기 쉽다는 것이다. 운명에 관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숙명에 희롱 당하는 사람이 되
기가 쉽다는 것이다.
    세 명의 재판관을 무시해도 벌은 받지 않지만, 그런 경우에 우선 인생을 끝낼 때
가 되어 자기의 인생은 헛된 것이었다고 후회하게 될 뿐일 것이다.
   때로는 최면상태에 놓인 피실험자가, 자기는 중간생의 상태에서 계획을 세우지 않
았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사실을 박사에게 말할 때의 피실험자는 반드시 불
안스러운 표정을 짓게 마련이다. 한편, 카르마의 대본에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최면 
상태에서 매우 어려운 인생계획을 이야기할 때조차도 담담하기만 하다.
   예정되어 있지 않은 미래처럼 나쁜 것은 없는 것 같다.
 
    이 세상으로의 귀환
 
   마지막으로 결정되면, 나머지는 다시 한번 육체로 깃들이기 위해 이승으로 돌아올 
뿐이다. 죽음이란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이고 즉, 싸움과 고통에서 돌아와 
쉬는 휴식시간이며, 탄생한다는 것은 새로운 일을 하가 위한 첫날을 맞이하는 것이라
는 사실이 초의식에서 밝혀지고 있다.
   이 세상에서 시련받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간과 공간이 없는 
바르도를 버리고 물질세계의 구속에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 대부분인 것이다.
   당연히, 이승으로 돌아오는 것을 남달리 더 싫어하는 사람도 있게 된다.
   어떤 사나이는 고대 희랍에서 나이 어린 소년들을 심하게 부려먹고 학대한 일이 있
었다. 이 사람이 이번에는 자기가 여자로서 이승에 되돌아와 학대를 받을 것에 공포심
을 느끼어 '남자들의 희롱 대상이 되다니...그것만을 용서해 줘요!'하고 최면상태에서 
비명을 올렸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저 몸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판관들의 조언에 의해 마지못해 선택한 
것인데, 선택한 이상 끝까지 할 수밖에 없었죠. 독촉받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
   그와 같이 오랜 기간에 걸쳐 환생을 거부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 피실험자가 증
언한 것과 같이, 끝내는 우주적인 압력이 축적되어 물리적 육체 속에 들어가 진보의 
길을 가도록 강요당하게 된다.
   육체에 깃들이지 않고 있는 기간이 어느 정도냐 하는가는 사람에 따라, 또는 생애
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들인 경우, 죽은 뒤부터 다음 번 
환생까지 가장 짧은 기간은 10개월, 가장 긴 경우는 800년 이상이 된다.
   중간생의 평균적인 체재기간은-40년 정도-과거 수 백년 동안에 착실히 단축되고 있
다 옛날 세계에서는 세기에서 세기에 걸친 지구의 변화가 거의 없었고, 오늘날처럼 환
생할 유인도 많지 않았다. 
   변혁이 아주 눈부시게 뒤따르는 현대 세계가 이 세상에서의 새로운 체험을 줄곧 바
라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육체에서 떠난 기간이 아주 짧아지게 된 것 같
다. 이런 점에서 세계적인 인구 증가도 충분히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죽었지만, 머지않아 
환생하여 베이비 붐 세대에 끼어들었다고 한다.
   새로운 육체라면 무엇이든 갖고 싶어하는 미숙한 영혼들은 중간생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전의 인생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생긴 업장(카르마)을 빨리 끝내려고 이 세상에 
태어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중간생에서 체재가 길어지는 것은, 다음 세상에 태어나기 위한 준비를 하려고 크게 
노력한 탓일지도 모르고 진보 발전에 대해 무기력한 태도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후자의 경우라면, 다음 번 환생에서 '깨어나라!'는 부름이 있을 때까지 육체를 떠
나 잠들어 있는 것이 된다. 기원 전 5세기의 희랍 역사가였던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고대 애굽 사람 
들은 한번의 환생과 다음 번 환생까지의 사이에 3000년이 걸린다고 가르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현대의 최면치료가들에 의해 이 숫자는 완전히 바뀌어지고 말았다.
   많은 피실험자들은 20세기라는 기간에서도 몇 번씩 환생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젠 로버츠를 영매로 하여 통신해 온 세스라고 하는 유명한 정령 안내인이 있다. 세스
는 바르도의 길이가 개인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
그것은 항상 그 사람에게 달려 있는 문제다. 당신의 마음 속에 지금 해답이 있는 것처
럼, 그 경우도 해답은 당신 안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 세상에 들어오기 전, 혼은 의식의 진동을 낮추는 작용을 하며, 형태가 없는 장
벽을 통과한다. 이 장벽-옛날부터 전해온 '망각의 강'으로 상징되는 것-을 넘어서면 
바르도에 대한 화려한 기억은 사라져 버린다. 이와 같이 완전히 바르도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뒤에 남겨놓고 온 멋진 세계를 오래 그리워하거나 향수를 느끼
지 않고, 과거의 행적이나 잘못 때문에 정신적 부담없이 새로운 인생이 출발할 수 있
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똑같이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인생에 대
비하여 혼이 세운 계획도 반드시 잊게 된다는 점이다.
   학생에게 있어서 시험 보기 전, 미리 해답을 알고 있으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인
생 테스트에도 어떤 종류의 정보는 의식의 마음속에 일시적으로 감춰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어머니 몸 안에 있었던 최초의 기억은 탄생하기 몇 달 전부터, 자궁으로 나
오게 된 직후까지의 시점에 걸쳐 보고되고 있다. 횟튼 박사의 피실험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어머니의 몸 위에 '떠 있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어머니에게 음식과 음악을 
선택하도록 권유했고 담배나 알콜을 그만두게 하여 일반적으로 모자가 서로 건강하도
록 유도해 왔다.
   태아와 이름을 알려준 경우도 몇 가지 있었다.    
   혼이 육체 속에 들어가는 것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일까, 순간적인 것일까?
   탄생하기 훨씬 전인가, 탄생할 때인가, 태어난 뒤인 것일까? 아니면 사람에 따라서 
그 상황이 크게 틀리는 것일까? 이것들은 중요한 문제인데, 많은 증거는 있지만 서로 
달라서 여기에는 분명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두개 타입의 기억, 즉 뇌의 기억과 혼의 기억이 병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까다롭게 될 수 밖에 없다. 뇌의 기억은 임신 3개월 안에 기능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최면에 걸린 피실험자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중추신경에서 오는 것인지, 영원한 '자기 
자신'의 존재에서 오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요즘 논의가 분분한 낙태문제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견
해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낙태시킬 때 만일 혼이 몸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태아를 낙태시키는 것은 살인행위와 같다고 할 것이고 육체에 혼이 들어가 있지 않다
면, 의사의 행위는 부분적인 세포조직의 제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
다. 
   환생은 바르도 없이 이루어지고 앞서의 육체가 죽자마자 새롭게 태어난다고 주장하
는, 이슬람교 일과인 레바논의 도르즈파 신앙과 관련시키면 낙태의 문제는 한층 더 복
잡해진다.
   중간생이란 것이 없다고 하는 생각은 인도의 자이너교도도 마찬가지인데,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은 그 전생의 몸이 죽었을 때 임신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에드가 케이시의 데이타에 의하면, 분만 전후의 짧은 기간 또는 탄생하는 순간에, 
혼이 육체에 깃들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들은 케이시의 투시에 의한 주장을 지지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탄생의 체험도 보고되고 있다.
 
   "저는 분만실에서 어머니와 그 주위에 있는 의사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진행중
인 모든 일의 주위를 흰 빛이 둘러싸고 있었고 저는 이 빛과 한 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태어납니다'라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새로운 몸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 인생으로 
태어나는 것은 전혀 마음 내키지 않았습니다. 빛의 일부로 남아 있는 게 너무도 좋았
기 때문입니다. "
 
   새로운 인생이 전개됨에 따라서, 중간생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하다. 아이에게는 중추신경계에서 생긴 아이덴티티(동일성)
가 발달하기 때문에, 이 중추신경 자체와 일시적으로 깃들여 있는 육체라는 환경이 유
일한 현실 감각(리얼리티)을 형성한다고 생각해 버린다.
   언어가 발달하게 됨에 따라서, 본래 지니고 있는 순수한 존재형태가 막연하게 느껴
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써 망각 속에 매몰되어 애매하고 추상
적이며 매우 
불확실한 것으로 취급되고 만다.
   깊은 최면상태에서 중간생의 여행을 끝낸 사람이 평상시의 의식을 되찾았을 때, 충
격을 받거나 크게 놀라는 일은 흔히 있다. 과자집에서 정신없이 과자를 먹다가 갑자기 
바깥으로 끌려나간 어린애와 같이,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들도, 무엇이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나라로 되돌아가고 싶어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인생의 의미를 스스로 알 수
가 있고, 혼과 그 영원한 목적이 무엇인가를 유리창을 홍해서 보듯 투시해 볼 수 있는 
그 같은 나라로 되돌아가고 싫어진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세계에 있었는데 두들겨 깨워지다니...겨우 진짜 세계
가 무엇인지 알게 뇌었는데..."라고 어떤 피실험자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인간이란, 죽게 되어 있는 고기 덩어리 속에 잠시 동안 갇혀 있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고, 또한 '진짜 리얼리티'를 알게만 된다면 바르도에서 경험을 또다시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것도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안 뒤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없어진다. 어떤 피실험 자는,
   "죽는 게 아주 멋진 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저는 죽는 날을 즐겁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
   라고 말하고 있다.
   삶과 새로운 삶의 중간지대를 여행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이 멋진 별세계의 감
각을 눈떴을 때 기억하고 있는데, 최면상태에서는 비교적 납득이 될 수 있는 설명을 
했음에도 불 
구하고 그 기억에 대해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만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죠."
   라고 그들은 말을 더듬으면서 자주 이렇게 말하게 된다.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요. 하지만 이제 겨우 제 인생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
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
   라고 어느 여성은 이야기하고 있다. 초의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가 힘든 이유의 
하나는, 그것을 다른것과 비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은 이상한 사실을 표현할 때, 이미 자기가 알고 있는 말로 나타내게 마련인데, 
이승 세계에는 중간생과 비유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심벌조차도 그 체
험의 내용이나 의미를 표현할 수가 없는 것 같다. 
   또한 다시 자기가 기억해낸 것을 살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피실험자는 '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거짓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정
적인 감정을표면에 나타내지 않으려고 억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가까이에서 겪은 일들을 의식의 마음이 알게 되고 이것이 업장을 소멸시키는데 방
해된다고 결정하게 되면, 반드시 혼은 스스로의 기억을 지워버리게 된다. 최면 상태에
서 자기가 장차 겪게 될 사건을 미리 알게 된 피실험자들이 휫튼 박사에게 그 기억을 
의식에서 지워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제발 눈이 떠지면, 이 일이 생각나지 않게끔 하여 주세요. 제 자신이 업장을 다르
게 고쳐 쓰고 싶어지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
   라고 피실험자들은 부탁하곤 했다.
   자기 미래의 경우를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 최면상태에서 벌떡 일어나 버려 지금까
지 밝혀놓은 일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게 된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구하고 자유스럽게 자기 '카르마의 대본'을 살펴보고 거기서 안 일들을 의
식에 떠올려 자기 장래의 인생에 있어서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려고 하는 기분이 된 피
실험자들도 있다.    
   그러한 예언이 아주 가까운 시기였으므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경우는 항상 예언이 옳
았음이 증명되었다.    
   이제부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는-어디까지나 암시에 
불과하지만-경우는 아주 많다.
   1984년 8월, 어떤 기관차의 운전수는 1985년 가을에 '무엇인가 아주 나쁜 일'이 기
다리고 있음을 초의식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이 불길한 사건이 어떤 것인지, 전혀 짐작도 할 수가 없었지만, 비록 그것을 
피하려고 생각해도 그것이 분명히 어떤것인지 알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혼의 성장을 위해서 경험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
니다. "    라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1985년 9월 15일에 그는 갑자기 심한 천
식발작을 일으켜 2주일 동안 입원해야만 했었고, 처음 나흘 동안은 응급치료실에서 지
내야 했을 정도였다.
   바르도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가 다르다. 테마는 비슷하지만 경계에서
의 빛이나 그 밝기의 정도, 재판관들의 모습(3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어떤 높
은 곳에서 들려오는 조언만은 느낀 사람도 있다), 카르마의 대본이 검토되는 정도 등, 
그밖에도 많은 점들이 다르다.
   중간생을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은 불과 몇 사람들이 받은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한가지 점에서 한결같이 엄격한 것이었다.
   즉 '자기가 어떤 인간이고 어떤 환경에 있는가는 모두가 자기 자신의 책임이다. 자
기 자신이 그것을 선택한 장본인이다'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마치 칼끝이 자기 몸을 겨누
고 있는 것과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의 자유로 받아들일지 모르나, 우리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에 목적과 뜻이 주어져 있고 놀랄만한 진보의 과정에 스
스로 참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공포감은 감소되는 것이다.
   자기의 과거에 의해, 다음 번 환생이 어떻게 선정되는가를 알게 되면 중간생을 여
행한 사람은 그 여행에서 되돌아온 뒤, 새삼스럽게 자기자신에게 무거운 책임이 지워
져 있음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대우주에 작용하는 인간정신에 호응하는 
것, 즉 굉장히 복잡하게 꾸며진 환생의 여행에 충만된 것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
끼게 된다.
   심원한 리얼리티인 완전한 조화를 눈 앞에서 본 사람은, 반드시 편견으로부터 해방
되는 것이다. 키케로가 <법률에 대해서>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저 너머 세계를 엿본 
뒤에, '우리들은 겨우, 어째서 자기들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가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들은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뿐만 아니라, 죽음에도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ff
    제5장 
    윤회전생 사상의 전개 
  -퇴행최면에 의한 전생요법이 시작되기까지-
 
    우리들은 모두 이 세상에 다시 되돌아 온다. 그것이 
    분명하기에 인생에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쿠스타브 마아라
 
   제방(뚝)이 없는 강이나 깨어나지 않는 잠이 없듯이, 환생이나 중간생이 없는 인생
도 생각할 수 없다.
   바르도의 본질로 보아서도, 저승에서 겪는 체험은 이 세상의 생활과 표리일체이어
야 된다. 따라서 삶을 받아 육체에 깃들이고, 죽으면 삶과 삶의 중간지대인 비물질계
의 의식으로 되돌아가는 환생의 반복이 필요하게 된다.
   몇 번이고 다른 육체에 깃들여서 이승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은 신
화와 전설, 종교상의 가르침, 그리고 과학적인 연구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증거나 설명을 늘어놓아도, 이 사실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는 흡족하지 못할 것이다.
   환생을 받아 드리는 것과 우리들의 참된 영성이 어떤 것인가를 탐구하는 것은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자기 탐구를 도
와주는 것이 부족하다 교조주의에 중독된 서양문명에 의해 인류가 지닌 영적인 요소는 
무시되고 경멸의 대상으로까지 되었다.
   19세기 후반, 진실로 혁명적이었던 찰즈 R 다윈의 <종의 기원>도 원대한 인류의 진
화를 아주 조금 암시해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윈은 단지, 육체적인 진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을 따름이다. 다윈은 의식의 다양
한 변화를 겪으면서 하나의 인생에서 또 다른 인생으로 인간을 방황하게 하는 영적인 
발전이라고 하는 보다 크고 복잡한 주제에는 전혀 손도 대지 못했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윤회전생을 '인간의 천성'이라고 표현했는데, 물질주의가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이 천성은 항상 어린 싹일 때 잘리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
2년의 갤럽사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 미국인의 23%가 환생하는 사실을 믿고 있으며 
(또한 제1장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죽은 뒤의 생명을 믿는 이들은 67%이다), 그보
다 3년 전에 있었던 런던의 선디 테레그라프지 여론조사에서도 영국 국민의 28%가 환
생을 믿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이 숫자는 10년 동안에 10%가 증가하고 있다. 영국에서 팔리고 있는 쇠로 만든 배
지(휘장)에는 <윤회전생 사상이 지금 전생 중>이라는 글귀가 쓰여져 있었는데 이런 풍
조는 별로 급진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플라톤에서 예수 그리스도(좀더 자세히 뒤에 설명하련다)에 이르는 종
교계나 철학계의 성인현자들은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믿고 있으며, 역사를 
들추어보면 인류의 사상이나 행동의 역사에서도, 윤회전생 사상은 유난히 주목되는 존
재인 것이다.
    우선, 선사시대의 조상에서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자. 그 옛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여러 부족들은 윤회전생을 생명의 법칙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죽음은 '어머니인 
땅'으로의 귀환을 상징하고 그 '어머니인 대지'의 자궁에서부터 다시 한번 인간이 태
어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 다시 태어나게 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태아의 모습처럼 
몸을 구부린 자세로 매장된 네안데르탈 사람들-대략 기원전 20만년 전에서 기원전 75,
000년 전-의 뼈가 발견되고 있다.
   15,000년 전에서 25,000년 전인, 전기 구석기 시대에서부터 시작된 주술신앙에서는 
뼈 그 자체에 본질적인 생명력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되었고, 인간도 동물도 그것에서 
재생된다고 여겨져 왔다.
   북 아메리카 인디언의 부족 사회에서도 주술사가 되고 싶은 인간은, 열 번에 걸친 
죽음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적으로 필요했다.
   원주민 부족들의 기억이나 고대신화, 전설, 종교상의 가르침, 고대로부터 전해 내
려오는 지식들은 모두, 육체의 발달에 세월의 흐름이 필요하듯이 혼의 발달을 위해서
도 환생의 되풀이가 꼭 필요하다고 증언하고 있다.
   환생은 영원한 생명의 틀이며 골조이므로 최종적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수단이라고까지 항상 생각되어 왔다.
   삶과 삶의 중간상태에 있을 때, 우리들은 본시부터 천상계에서 물려받은 유산과 일
체이지만, 땅 위로 되돌아와 육체에 깃들어 갖게 되는 체험속에서 운명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다시 하게 되면, 근원인 하나님과 친하게 지냈던 사실도 일시적으로 잊어버린
다.
   중간생에 대한 지식은 억압되고 변형되어 확신이나 신념이 되고, 이윽고 이것들은 
종교-즉, 뒤에 남겨놓은 숭고한 것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가 되었던 것이다.
   윤회전생의 가르침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권위있는 경전의 여기저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불교의 경전에서는, 육체에서 육체로 옮겨가는 모습이 하나의 촛불에서 다른 촛불
로 옮겨가는 불꽃에 비유되고 있으며, 혼은 금세공사가 황금에 모양을 새길 때 쓰는 
끌로 묘사되고 있다. 고대의 성전에도 카르마의 쇠사슬에 묶인 인간에게 생사를 반복
시키는 윤회에 대 
한 언급이 많다.
   다음 장의 테마인 카르마(업)란 연속된 환생의 조건을 전하는 자기결정의 요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행위'를 뜻하는 카르마는 차례차례 계속되는 인생에 있어서 
인과가 복잡하게 얼킨 상호작용을 말한다.
   제7장 이하의 케이스 스터디의 장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중간생인 상태에서는 카
르마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뼈아프게 느낄 수 있다. 성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제7
절에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실
제로 사람을 떠나서 작용하는 카르마의 작용인 것이다.
   인간이 생각한 것, 행동한 것은 모두 우주에 작용되어, 그 자신의 반응을 불러일으
키게 된다.
   힌두교나 불교의 가르침 때문에 10억이 훨씬 넘는 아시아 사람들은 자기들이 생사
를 몇번이고 되풀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사람들의 소망은 무사한 마음으로 타인을 어여삐 여기고 진리를 탐구함으로써 
윤회에의 주박에서 풀려나 해탈, 또는 구제를 쉽게 받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약점 
투성이인 인간은 대부분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며, 카르마와 관련된 일에 쫓겨 이 세상
의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해 버리기 때문에, 육체에서 육체로 옮겨가는 정화의 여행
은 고달프고 괴로운 것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25000년 동안에 550번 환생했다고 전해지는 석가도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이, 환생한
다는 단조롭고 진보가 없는 제자리걸음이나 차바퀴 같은 것에 인간을 묶어 놓고 있다
고 강조하고 있다.
   석가가 태어나기 훨씬 전, 고대 희랍인과 애굽 사람들은 이미 윤회의 과정에 대한 
복잡한 문제에 정통해 있었던 것이다. 애급의 책에는 비교적인 지식을 인격화시킨 오
시리스신이 반점있는 황소의 모습으로 인도에서 애급으로 쫓겨온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리스의 문헌에도 고대 인도의 신앙을 예시하는 '비참하고 우울해지는 차바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한편, 북유럽에 살고 있던 고대인들은 환생을 확신했으므로, 어린이가 
태어나면 불쌍히 여겨 울었고 죽음을 기쁨으로서 맞이했던 것이다.
   켈트족인 도르이도 교도들의 확신은 좀 더 확고해서, 이번 생에서 빛을 같지 못하
면, 다음에 환생했을 때 갚으면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교육'이라는 말 자체도 본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끌어낸다'는 뜻이었을 정도니
까, 분명히 고대세계에서는 이와 같은 생각이 쫴 널리 보급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
다. 플라톤은 그의 <상기설>속에서 이 문제에 대해 설명하기를 '간단하게 습득되는 지
식은, 이미 그 지식을 영원한 자기 자신이 전생에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해내는 
것도 쉽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로마의 대웅변가였고 철학자였던 키케로도 '어린애가 많은 지식을 재빨리 파악하는 
것은 태어나기 전에 대부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불명한 증명이다'라고 같은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재능은 반드시 그 인생에서만 개발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전생에도 원인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신동의 존재는 이 문제에 대해 틀림없이 강력한 상황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정통파 기독교나 유대교, 이슬람교에서는 윤회를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들 대종파에는 어느 종교나 일찌기 윤회사상을 지지해온 종파가 
있었다.
   일반인들이 믿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환생은 다수의 원시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널리 받아들여져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대영백과사전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빼고는 
교부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고 기록되고 있는 인물, 오리게네스가 환생을 믿고 있었다
는 것은 유명 한 이야기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분명히 '인간 존재가 한 번 뿐인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사실
에 심히 고민했었다는 것이다.
   "주님이시여, 들려주십시오...어렸을 때의 저는, 그보다 전에 죽은 또 다른 시대의 
저의 인생을 이어 받은 것일까요?" 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쓰고 있다.
   그도 아마 모르기는 해도, 현대의 기독교 신자들 대부분이 모르고 있듯이 예수 그
리스도가 윤회를 입증했다는 사실을 몰랐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실은 성경에도 쓰여져 있고, 그노시스파의 책에는 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
다.
   그노시스파의 복음서인 <신앙의 지혜>에는 '혼은 이 세상의 하나의 몸에서 다른 몸
으로 차례차례 주입된다'고 말씀하신 예수의 말이 인용되고 있다.
   4세기가 된 후, 기독교는 박해받던 비교의 신봉자들 집단에서 발전하여, 정치의 세
계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로 거대한 조직체가 된 셈인데, 이때에 비로소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윤회에 대한 반대론이 등장했다.
   대중의 교화와 종속을 목적으로 새롭게 국가와 손을 잡게 된 교회는 환생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윤회전생을 믿는 그리스도 교도들은 스스로의 마음속에 확고한 믿음의 근거를 갖고 
있었고 주체성이 확고했었기에, 교회나 국가의 보장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
었다.
   천국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권유도 받아드리지 않았고, 지옥의 불길에 태워진다는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그들에게는 이단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 것이다. 
   ['이단자'라는 말은, 본래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일 뿐 그 이상의 나쁜 
뜻은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에서는 서기 553년에 유스티니아누
스 황제가 윤회설의 '무서운 부활'에 대하여, 정식으로 교회는 파문을 집행한다는 포
고를 내기까지, 윤회의 가르침을 책망하는 공식성명은 아무 것도 발표되지 않았다.
   신념을 굽히고, 이에 굴복하는 것을 거부한 사람들 모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 것
은 이 포고령이 내려진 이후의 일이었다.
    그런데 저항-특히, 이에 대해 반기를 든 카타리파라고 하는 그리스도 교도에 의한
-은 매우 집요한 것이어서, 교회의 위협과 조직적인 살육이 효과를 발휘하게 된 13세
기가 되어서야 마침내 서양에 있어서의 윤회사상은 패배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등불은 꺼지지 않고, 연금술사나 장미 십자단과 같은 비교적인 단체에 의해 현대에 이
르기까지 남몰래 전해 내려왔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인간성을 찬미하게 됨에 따라, 교회의 엄격한 단속도 본격
적으로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몽시대가 되자, 유럽의 일류 지식인들 대부분
은, 인생이 몇 번이고 거듭 태어나게 됨으로써 불공평하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삶이 공
정하고 뜻 있는 것이 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볼테르도 '결국, 한번 태어나는 게 놀랄 일이 아닌 것처럼, 두 번 태어난다고 해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급한 논리는 일반 대중들
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으면 천국에 가던가 아니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받게 되던가, 
두 가지 중 하나밖에 없다는 성경대로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왔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엄격함을 존중하는 빅토리아 왕조의 견
해나, 산업혁명의 활기있는 여건도 윤회사상의 부활과는 거의 연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이 시대에는 고차적인 의식의 존재가 말없이 부정되어 왔기 때문에 신지학
운동이나 장미십자단의 발전이라는 형태로 유물론에 대한 도전을 갖게 했던 것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신지학협회는 동양의 지혜라고 인정된 지식을 받아들여 서
양사람들을 교화시키려고 세상의 추세를 거부하면서 용맹 과감한 활동을 계속했다.
   그들의 주의 주장은 대중에의 호소력이 결여되어 있었으므로 얼마 후, 칼 마르크
스, 지그먼드 프로이트, 버트란트 러셀과 같은 영적인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상가
들이 나타남으로써 어이없이 궤멸되고 말았다. 단지, 동양의 신비주의 책에 근거하여 
인용과 해석에만 급급했던 신지학은, 오직 외곬으로 지식만을 추구하는 20세기의 풍조 
속에서 윤회사상의 존속을 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윤회라고 하는 수수께끼를 경험적 사실에 기초를 두고 확인하거나 부정하거나 하려
고 하면, 이에 대해 첨단적인 과학 기술의 위력을 가지고 압력을 가하는 것이었다.
   1890년대가 되자, 알베르 드 로셔 대령이라고 하는 프랑스 사람이 처음으로 과학적
인 방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프란츠 안톤 메스멜 (오스트리아의 의사로서 그의 이름을 따서, 최면을 '메스메리
즘'이라고 부르게 됐다)의 수법을 모방하여 드 로셔는 피실험자를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련의 과거생으로 퇴행시켰던 것이다.
   인류의 경험상, 새로운 차원을 덮고 있던 베일이 치워진 셈인데, 당장 문제가 발생
하였다. 그것은 최면상태에서의 전생에 대한 증언이 정말로 전생을 반영하는 것일까 
하는 아직도 의문시되고 있는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피실험자는 과거에 존재했다고 생각되는 장소와 가족의 이름을 말함으로써 얼른 보
기에 믿을 수 있는 증언을 하기는 했지만, 그런 인생이 실제로 있었는지 어떤지 증명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드 로셔는 '새로운 과학의 여명기에는 누구나 직면하게 되는 
암중 모색 상태'치 벽에 부딪치고 말았던 것이다.
   드 로셔가 시험적인 연구를 행한 뒤, 오랜동안 정신과의사나 심리학자들은 환자가 
가끔 전생의 기억을 생각해낸 것을 정신착란 때문이라고 결정했던 것이다.
   전생을 체험했다는 주장을 무시하기 위하여, 아직도 초감각적 지각이라느니, 영혼
이 빙의되었느니,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었던 기억이 솟아났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
다.
   난처한 것은, 비록 전생이 역사적으로 실재했음이 실증되어도 감정과 정보의 전부
를 갖춘 그 인물이 과연 당사자가 주장하는 인물과 같은 인물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증
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개념과 같이, 윤회전생은 형이상학적 문제여서, 이 땅 위의 '
리얼리티'에 의해 억지로 그렇다고 할 수도 없고, 이 세상의 한정된 체험에서 판단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지각이 증명하는 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최면에 의한 퇴행을 처음으로 시도한 드 로셔의 실험은, 그 방면의 전문가들 사이
에 파란을 일으켰거니와 퇴행 최면이 일반인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1954년 아마추
어 최면가인 모레이 바안스타인에 의한 브라이디 마아피 사건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브라이디 마아피라고 하는 것은, 미국 콜로라도주에 살고있는 주부인 버지니아 다
이가 만든 것으로서, 그녀가 촛불에 의해 최면상태에 들어가면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인격이었다.
   그녀가 자세하게 이야기한 19세기에 존재했던 아일랜드 여성, 브라이디의 인생은 
서방세계에서는 크게 취급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전생의 모습으로 차려입은 가
장 파티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1920년대가 반쯤 지났을 무렵, 미국의 대예언가 에드가 
케이시의 업적에 의해, 윤회전생에 대한 사상은 소수이지만 의식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에 이르렀다.
    한편, 케이시는 열성적인 기독교 장로교의 신자였는데, 처음에는 인간이 다시 태
어나는 사실을 부정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23년 8월 10일에 자기 최면의 트랜스 상
태에서 깨어났을 때, 인간은 여러 개의 몸에 깃들여서 다시 태어난다고 최면 중에 자
기 입으로 분명히 말한 것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에게 있는 무의식이라는 기능이 악마에게 이용된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움을 느꼈던 그도, 곧 얼마 후에 카르마의 패턴은 몇천 년에 걸친 한 사람, 한 사
람의 역사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말한 자기 자신의 증언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케이시는 윤회사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차차 
이해하게 되었다. 그 뒤, 21년 동안 그는 2500건에 이르는 '라이프 리딩'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과거생에 대한 투시를 계속했던 것이다.
   현재 걸려 있는 질병이나 약점의 원인이,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에 행한 행동 때문
인, 해야할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케이시는 수많이 알아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유전형질이라는 종래의 개념을 부정하게 된 것이다.
   "나는 아버지 쪽이나 어머니 쪽, 어느 쪽의 유전적 성질을 많이 이어받은 것일까
요."하고 어떤 사람이 질문했던 바, 케이시는 아주 날카로운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어 받은 것이 대부분이고 가족으로부터는 아니다-가족은 혼
이 흐르는 강물에 불과하다"
   에드가 케이시가 등장한 것은 영성이 숨을 쉬기 시작하여 가볍게 움직이고, 세상이 
이에 흔들리기 시작했던 시대였다.
   몇 백년 동안, 서로 반대 입장에 서 있었던 과학과 신비주의는 마음과 몸, 물질과 
정신이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되기 시작하면서, 겨우 다가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뉴톤의 고전물리학으로서는 시간 · 공간 · 운동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 뒤에 등장한 이른바 '뉴우 사이엔즈'에서
는 원자보다 작은 소립자가 끊임없이 죽음과 재생을 반복한다-즉, 소립자 사이의 상호
작용은 본래의 소립자 붕괴와 새로운 소립자의 생성에 의하여 이루어져 있음이 발견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미크로 세계에서의 '환생'이 온갖 물질계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우
주물리학자가, 우주 그 자체는 영원히 죽음과 재생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듯
이, 마크로의 세계에서도 같은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4개의 손을 가진 힌두교의 창조와 파괴의 신인 시바신이 고대에서부터 상징해온 것
은, 이 우주의 삼라만상을 포함하는 죽음과 재생의 모습이다.
   또한 고대중국에서 전해져 온 우주의 근본원리인 '도'에 있어서도 역시 죽음과 재
생은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고, 도의 끊임없는 유전의 사이클이야말로 바로 생명
의 추이의 본질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맥동성전파를 조사 연구하고 있을 무렵, 퇴행최면의 연구를 
시작한 사람들은 인간이 지닌 무의식 영역이라고 하는 안개에 싸인 변경지대의 탐험을 
계속하고 있었다.
   선구자였던 드 로셔 대령의 후계자로서 유명한 인물은, 스웨덴의 욘 벼르크햄과 영
국인으로서 유럽의 아홉 개 대학 학위를 갖고 있는 알렉산더 카논의 두 사람을 들 수 
있다.
   두 사람은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전생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카논 박사는 1382
명의 지원자들을 기원전 몇 천년에 이르는 아득한 옛날로 퇴행시켰는데, 그는 단지 그 
증언들을 하는 수 없이 받아 들인데 지나지 않았다.
   1950년에 카논 박사는 <내부의 힘>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몇 년 동안, 윤회설은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악몽이었으며, 그것을 반박하려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한 셈이다. 최면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광경은 헛소리가 아닌
가하고 피실험자들과 말다툼을 하기조차 했다. 그때부터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 어느 
피실험자들도 믿고 있는 것이 제각기 다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에게 똑같은 이
야기를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1000건을 훨씬 넘는 사례를 조사한 뒤, 나는 윤회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카논박사는 정신분석가였던 지그먼드 프로이트의 업적보다도 '윤회라는 생각이 훨
씬 진보된 것이다'라고 계속 주장한 다음, 콤플렉스나 두려움의 원인을 주로 유아 체
험에서뿐만  아니라 보다 더 전생의 정신적인 외상체험에까지 확대시켜 조사했던 것이
다.
   횟튼 박사의 케이스 워어크는 그가 남긴 유산 위에서 이룩된 것이다. 카논 박사는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걸쳐서 몇 백 명, 몇천 명을 치료해 온 전생요법의 선구자였
던 것이다.
   전생요법의 경우, 시술자에게는 고도의 인내력과 직감력, 기술적인 수완이 요구된
다.
   시대와 장소와 육체가 틀리는 체험 속에서 질병의 증상 원인을 찾아내야만 하기 때
문에 여러 번의 전생을 찾아내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무
의식의 마음에서 증상의 원인이 되는 정보를 제거해 버리면, 몸과 마음의 질병은 대부
분 아주 빨리 또한 극적으로 완치되는 것이다.
   완치되는 이유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랜 세월에 걸
쳐 마음속에 갇혀 있었던 부정적인 마음과 대결하여 이것을 받아들이는 행위가 연금술
과 같은 해방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전생요법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트럭의 운전수에서부터 영화배우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최면상태에서 만난 인물이 자기자신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최면상태에 깊이 빠져서 전생의 육체 속에 들어가 버린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멀리에서 모습이 변해있는 자기를 본 것만으로도 그것이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된다.
   전생요법가들은 모두가 피실험자가 자기들의 전생을 다시 경험하고 있음을 확신하
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있는 임상심리학자인 이이디스 휘오레 박사는 '만일 누
군가의 공포증이, 과거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낸 것만으로 그 자리에서 영구히 완치되
었다면,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던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 생각이
라고 본다'고 설명하고 있다.
   똑같이 켈리포니아주에 살고 있는 임상심리학자인 헤렌 웜백크 박사도 몇 년 전에 
윤회설이 사실인가를 입증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녀의 연구는 몇백 명의 피실험자들에 대한 통계적인 연구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현재의 성별과는 관계없이 기원전 2000년까지 거슬려 올라가서 퇴행했을 때의 생물학
적인 사실에 의해 성별을 기록해 보았던 바, 50.6%는 남성 49.4%는 여성이었다.
   피실험자들은 본래 백인의 중산층 미국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생에 대한 여러 
가지 기억들은 과거 세계에 있어서의 인종이나, 계급, 인구 분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이 보고한 그 당시 사용했던 옷, 신발, 식기 등은 어느 시대에 있어서도 
모두가 역사적인 사실과 일치되어 있었다. 웡백크 박사는 그 연구에서 윤회의 과정을 
믿게 되었  다고 하기보다 오히려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박사는 말했다.
    "도로 옆 텐트안에 있는 당신에게 지나가는 사람 1000명이 펜실바니아주의 다리를 
통과했던 이야기를 해준다면 당신은 펜실바이나주에 다리가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
    전술한바와 같이, 전생의 기억을 지닌 인물이 실제로 과거에 기억되고 있는 사람
과 같은 인물이라고 증명할 수 없는 이상, 다시 태어난다는 증거가 절대적인 것이라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하다.
    이런 딜레마에 직면함에 따라서 생각나는 것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월리암 제임스
의 말이다.
    "모든 까마귀가 검다고 하는 법칙을 뒤집으려고 하면, 검 은 까마귀는 없다는 것
을 증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한 마리의 까마귀가 희다는 것을 증명하면 충분하다.
 "
    이안 스티븐슨 박사와 헤맨도라 바네르지 두 사람은, 전생 기억의 조사를 통해 단 
한 마리의 흰 까마귀를 찾아내기 위하여 25년 동안에 걸쳐 온갖 정성을 다해왔다.
    지금으로서는 흰 까마귀가 영 나타날 것 같지가 않다. 두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
고 세계 각국 수 백 명의 어린아이들이 우발적으로 이야기한 전생의 이야기를 조사 및 
조회하는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반복적으로, 어린이들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역사에 존재했던 인격이나 장소
에 일치되는지 아닌지를 조사해 왔다.
   헌신적으로 조사를 계속하고 있는 두 사람이 쓴 케이스 워크는 흰 까마귀가 일반적
인 조사에서 안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단히 처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버지니아대학 초심리학부에 설치된 컴퓨터에다 2000명 이상의 아이들 사례를 입력
한 스티븐슨 박사는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단지 종교의 교의라든가 문화적인 전승에 
의해서가 아니라 증거에 의해 윤회사실을 믿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박사는 세심한 주의와 함께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한가지의 사례가 아니고 모든 사례를 수집한다고 해도, 윤회를 증명하는 증거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질적으로나 분량이 많다면 윤회를 시사하는 한 무더기의 
증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
   스티븐슨 박사가 조사한 200건 이상 되는 어린이들의 점박이가 그 좋은 예인데, 어
린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전생에서 점박이가 있는 부위에 총알이나 칼 등의 무기가 관
통되어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열일곱가지 실례에서는 전생의 인물이 증언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죽었음
을 증명하는 카르테(진찰부)가 입수되고 있다.
    1957년에 인도 초심리학 협회를 설립하였고, 1970년 이후 미국에서 살고 있는 헤
멘도라 바네르지는 어린이들이 어쩌다가 전생에서 친척이나 친구였던 사람들을 만나 
감격하던 기억을 관찰함으로써, 윤회의 신빙성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상황들은 어린이들을 믿기에 충분한 증거라고 생각된다.
    겨우 두 살에서 다섯 살의 어린이들 증언은 문화적인 편견에 의해 뒤틀려지거나, 
현세적인 체험때문에 억압되어 매몰되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억하고 있
는 전생들 은 대개 비참한 죽음을 겪고 있다. 보통 같으면 자연히 잊게 되어 전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법인데, 사고를 당한 것 때문에 잊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
다. 즉, 아주 심한 정 서적인 반응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어린이는 한결같이 '내가 컸을 때' 라는 말을 자주 입에 담
고, 전과 똑같은 성별을 타고나지 않은데 대하여 불평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일가 친척과 친구들 사이가 단절된 것을 아쉬워하고, 전생에서 즐겼던 음식, 
의복, 생활 양식 등-술이나 약물, 담배까지도-을 그리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갑자기 자기를 중간생으로 보내는 원인이 되었던 외상에 대해 동정심을 받
아도 탐탁하게 생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서양 사회에서는 이러한 솔직한 증언을 부모가 일방적으로 무시해 버리게 마련이지
만, 동양에서는 전생을 알고 있는 인간이 젊어서 죽을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미신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의 입을 막아 전생의 기억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드
물지 않은 것이다.
   '만일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면, 어째서 우리들은 전생에 있었던 일을 기억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라고 흔히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인도의 위대한 철학자이며, 
비폭력주의의 주창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이것을 우주의 프로세스에 대한 어떤 종류의 
자비심 때문이라고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우리들이 과거생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은 자연의 자비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무서운 기억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인생은 큰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최면술의 도움을 받거나, 명상을 오랜동안 반복함으로써 '망각의 강'을 건
너가 기억을 되찾아 '아득히 먼 날의 기억을 깨우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윤회 반대
론에서 자주문제가 되는 것 가운데, 전생 기억의 근원은 사실상 유전적인 요인이 아닐
까 하는 주장이다.
   유전 정보는 유전자의 본체인 DNA분자에 코드화되어 있는데, 육체적인 유사성이나 
체질적인 강약 등 여러가지 소질 뿐만 아니라, 때로는 탄생 이전의 기억까지 갖추어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문제점도 있었으나 퇴행 최면에서 얻어진 정보에 의하여 이 주장
은 곧 부정되었다.
   최면상태에서 백인이 지난날에 흑인 노예였었다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많은 피실험
자들이 양친과 같은 시대에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DNA에는 단 한번 인생의 기억조차도 만족스럽게 코드화되어 있지 못
했는데, 하물며 몇 번의 인생이 기억되어 있을 까닭은 없기 때문이다.
   증거를 검토해 보아 알게 된 것인데, 혼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환생을 되풀이 할 필
요가 있다는 것, 환생을 되풀이함으로써 우리들은 경험에서 배울 수가 있고, 또한 배
움으로써 자기들이 갖고 있는 커다란 가능성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한번뿐
인 인생에서 모든 공부를 끝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삶과 죽음의 연구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큐브라 로스 박사는 한
번의 인생으로 운명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주의 전생요법가인 모오리스 네자아톤 박사는 '자연은 1000만년 걸
려서 그랜드 캐년을 만들어 냈는데 인간의 혼이 70년이나 80년의 세월로서 완성된다고
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횟튼 박사의 케이스 스터디를 읽으면 우리들은 끊임없이 중간생과 이승 사이를 교
대로 환생을 반복함으로써,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자기 영혼의 성장을 위해 노력을 계
속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개인의 체험에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육체를 선택해 환생하지 않고서는 우리들은 다양
하게 성장하는 방법을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질병 · 범죄 · 치부 · 명예 · 굶주림 · 환멸 등 여러 가지 상황
이 있게 마련인데 이러한 많은 인생살이를 경험함으로써 지식을 넓히고 현명함과 지혜
와 동정심 등, 모든 필요한 것들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이것들은 우리들을 이승으로의 환생이라는 견인력을 초월한 고차원의 상태에 도달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 영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이라는 한마디
로는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영겁의 시간이 필요하다.
   환생을 되풀이함으로써 끊임없이 인생의 장면들이 바뀌고, 또 새로운 것들을 계속 
흡수하지 않고서는 그런 긴 여행을 견딜 수 없다. 이승의 생활은 힘든 것일 뿐 아니라 
근시안적인 것이기도 하다-인간은 육체라고 하는 틀에 박혀 환경의 변화에 제대로 적
응하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그 때문에 생기는 욕망이나 불완전성을 넘어선 
곳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거의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죽은 그 시점부터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음 환생을 준비하기 위해 쉬고 검토하고 보다 많이 배우며, 
좀 더 먼 곳까지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또다시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면, 그곳에서의 행위가 다음 번 운명을 
결정하는 엄격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땅 위에서 다시 한번 환생하게 되는 것이다.
@ff
    제6장 우주라는 이름의 교실 
 
    기쁨도 슬픔도 그것을 경험하기 훨씬 전에 우리가 선 
    택한 것이로다.
    가릴 기브랑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발전의 기틀이 되는 계기가 불가결하다. 이 계기가 없다
면 배울 일도 없을 것이고 윤회전생을 되풀이하는 도중에 생기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혼을 발전시켜 주는 것도 없어진다.
   이 추진력, 기동력은 모두 자기자신이 만든 것이다. 이것을, 이제는 완전히 영어권
에 뿌리를 내린 산스크리트 말로 '카르마'라고 한다.
   카르마란, 개개인 스스로가 자기의 욕구나 태도, 행동 등에 의하여 생애에서 생애
로 설정된 것이다. 카르마를 받아들이면, 우주 규모의 체스 게임에서 인간이 단순하고 
보잘 것 없는 한 개의 장기 말에 불과하다는 사고방식은 갖지 않게 된다. 카르마를 받
아들인다는 것은 세계는 이치에 맞는 공정성이 지배하는 무대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느 사람의 경우나 모든 것이, 과거 행위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생긴 것이라고 한
다면 불공평이나 불평등, 불운이란 있을 수가 없다. 카르마는 자기의 책임을 인과응보
의 법칙에 묶어 놓는 것이다.
   계속되는 인생에서 행동한 업보에 의하여, 자기의 다음 인생과 운명의 겉모양이나 
핵심이 정해지는 것이다.
   "지난 날을 알고 싶거든 자기의 현재 인생을 보십시오. 앞날을 알고 싶으면 자기의 
현재를 보라."
   하고 석가도 말하고 있다.
   옛날부터 전해내려 오는 말과 같이, 카르마란 끊임없이 환생을 계속하게 하고 다음
에 오는 윤회전생의 생활 환경을 결정하는 인과응보의 시스템이다. 옛 사람들은, '눈
에는 눈' 이라는 원리로 카르마에서 해방되는 것-다시 말해서, 사람은 언젠가는 자기
가 남을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한 것과 똑같은 일을 그대로 자기도 체험하게 된다고 
가르쳐 왔다.
   하지만, 횟튼 박사의 피실험자에 의하면, 인생을 그런 식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카르마란 본질적으로는 배우는 것이다 라고 바르도를 방문한 사람들은 강조한
다. 카르마는 혼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지닌 모든 것에 작용되는 원칙이다.
   배우는 일이 불가결하지만 어떻게 배우는가?-자기도 대신 끔찍한 경우를 당하거나, 
같은 고생을 하거나, 지혜를 동원하여 통찰하거나-하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
다. 틀림없이, 그 과정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은 봉사이다. '남을 돕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카르마의 법칙 가운데 으뜸가는 원칙이다.
   '서로 사랑하라'고 예수 그리스도도 말했다. 쌓아 온 카르마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
떤 방법이 가장 손쉬운가를 모색하는 사람에게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충고는 없을 것이
다.
   힌두교나 불교의 성전에도 인류는 카르마의 가죽끈에 의하여 윤회전생의 수레바퀴
에 묶여 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횟튼 박사의 피실험자들은 카르마의 작용이 보다 더 
교육적인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모든 인류가 우주라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기로 하자. 그곳에
서 우리는 수많은 인생이라는 교육과정에 의해 차례 차례 수업을 받는 것이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학생이며, 선생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통해 자기가 어느 코스를 택하여 배울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은 '행하는 만큼 사람이 되고, 원하는 만큼 운명은 만들어진다'고 하는 브
리핫드 아라누야카 우파니샤드의 말과 본질적으로 같다.
   개인적인 시련을 통해 향상하려고 혼이 노력한 결과로, 카르마의 패턴(모범적인 원
형)이 형성된다. 그리고 다음의 윤회전생을 선택하고 계획하는데 있어서, 이들의 원형
이 미치는 영 향은 크다.
   중간생인 상태에서, 혼은 여러 생애에 걸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다음 인생에
서, 어떤 행위의 결말을 내든가, 용서를 받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한다.
    과거의 잘못이 중간생에 있는 혼 앞을 가로막고 있는 동안은, 육체를 지닌 존재로 
되돌아가는-대부분의 경우 카르마를 만든 상대와 만난다-것으로 밖에 카르마의 조종은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카르마에 대한 사고방식은 과거 5천년 동안에 많이 달라졌다. 
고대 이집트인에게 있어서, 카르마의 보답이라는 것은 악업에 걸맞게 보답하는 도덕적
인 금전출납부의 빈틈없는 청산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대의 행위가 변하여 그대를 심판하리라'라는 말이 기원전 2600년에 기록된 <프
타호테프의 가르침>의 28절에 있다.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강경
하고, 또 한 강한 복수심까지 엿보인다.
   <요한계시록> 13장 10절에도,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라고 기록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후 몇 세기가 지나자, 고대의 법칙에 대한 해석은 차츰 복잡하
게 되었다.
   기독교적인 그노시스파나 히브리인의 카바라 연구가들은 카르마를 보상의 법칙으로
서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을 죽인 자가 반드시 같은 상황에서 죽음을 선고받는 것은 아니나, 어떠한 방
법으로건 그 행위에 대한 보상을 하게끔 기대되었다-다음 생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이나 
불구자의 시중을 들기 위하여 이 세상으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것이 예상
되었다.
   세번째는 오늘날에까지 계속되고 있는 해석인데, 중세 유럽의 신비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해석에 의하면 카르마란 단지 배움의 과정, 다시 말해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여 
조금씩 지식을 흡수하는 '스파르타식 학교'라고 하는 것이 된다.
   살인죄를 범하면 그것을 계기로 여러 가지 사건이 설정되지만, 그 때문에 반드시 
살인의 희생자가 된다거나, 스스로 보상하도록 강요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떤 형태
로 되돌아오건, 그 결과는 살인자에게 이렇게 가르칠 것이다. 그런 짓을 하면 자기 자
신을 파멸시킬 뿐이며, 남의 육체를 파괴시킴으로써 오직 자기 자신의 정신적인 발달
을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휫튼 박사의 피실험자들에 대한 전생의 조사 기록에는, 이들 세 가지 해석 모두가 
반영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눈에는 눈'이란 방식은, 특히 개인의 발달되지 못한 
단계에서 증언한 것이 두드러진다.
    카르마란, 자기의 성품을 높여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기자신이 창조하는 것이라
고 중간생에 끌려간 피실험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들이 되풀이하여 트랜스 상태에서 강조한 점은, 불완전한 것을 없애고, 더욱 더 
성장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일정한 체험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
들 경험의 취급 방법에 따라 진보하는 정도가 정해지고 만약 학습이 완료되지 않으면, 
같은 상황을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주 교실에서는, '배우는 것보다도 익숙해져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카르마
의 인과관계가 몇 세기에 걸쳐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 그 실례를 휫튼 박사가 취
급한 것 중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벤 가론지는 전생으로의 퇴행에 의하여, 한 쌍의 남녀 생애를 다시 체험하고, 자
신에게 못된 행동을 한 사람들을 죽인다는 비정한 보복을 한 것을 알았다. 이번 생에
서도 그는 또다시 적대관계에 몰리고, 힘으로 결말을 지으려는 유혹에 빠졌다. 어렸을 
때 계속 학대를 받고 자란 벤은, 자라서도 끈질기게 아버지를 미워하고 열여덟살 때는 
아버지를 죽이려는 심정의 바로 직전까지 이르렀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버렸을 때 벤은 아버지의 목을 찌르려고 부엌 서랍에서 식칼을 꺼낸 것이다. 그 때 마
음속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 그는 결심을 바꾸어 식칼을 서랍에 다시 넣었다. 살인
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맹세하자 벤의 인생은 크게 변했다. 원래 의욕이 
없었던 그는 심기일전하자 향상심에 불타, 성격도 외향적이 되었고 일에 열중한 나머
지 경영인으로서 책임있는 지위에 앉을 수 있었다.
   중간생에서 벤이 안 것은 자기와 관련된 카르마의 상황이, 아무리 화가 나도 폭력
에 호소하지 말고 견디는 것을 배우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는 것이었다. 전생에서 몇 
번씩이나 적대관계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아버지로부터 심한 대우를 받을 것을 알고 괴
로움에 가득 찬 어린 시절을 택한 것도 알았다. 바르도에서 벤은 이렇게 말하는 목소
리를 들었다.
   "이번에 올바른 행위를 하면, 일은 잘 해결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더욱 더 심
한 학습 환경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
   벤은 곧, 전번의 식칼을 휘둘려다 중단한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결정적인 사건
에서 아버지에 대해 자제하는 마음으로 행동한 것에 의해 그는 카르마의 고경을 이겨
낸 것이엇다. 스스로 만든 시험에 합격하고, 그는 계속되는 인생에서의 잘못된 패턴에
서 마침내 벗어난 것이다.
 
   *1771년 남편을 비행기사고로 잃은 세 아이의 어머니는, 3천년 전의 자신의 행위에 
대해 직접 보상하고 있다. 최면 상태에서 그녀가 본 것은 중앙 아메리카의 마야문명 
시절, 신앙심이 깊은 지도자였을 때의 자기 모습이었다. 그 무렵의 그녀는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산채로 불태우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오늘
날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남에게 제공한 사별의 슬픔이라는 시련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초의식으로 살펴본 
결과, 그녀가 이번 인생에서는 동정심을 발휘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음이 밝혀졌다.
 
   *지금은 은퇴한, 유대인인 외과의사는 자기가 과거의 행동-특히 유대인에게 잔인한 
짓을 한 것-에 대하여 보상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사후 얼마 동안, 유대에
서는 반란이 자주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는 로마 군인으로서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사이몬 에즈라 박사는, 유대인의 몸을 반쯤 모래 속에 파묻고 그 위를 말을 타고 돌진
하여, 그들을 상처 입히고 있는 광경을 똑똑히 생각해 냈다. 그의 이번 생에서의 카르
마 역할은 박해받는 고통을 체험하고 육체의 치료도 하는 일이었다. 그는 의사가 될 
무렵, 최초의 아내와 헤어졌으나 그 뒤 곧 유대계라는 이유로 토론토의 큰 대학병원에
서 쫓겨나고 말았다. 최면을 받을 때까지, 에즈라 박사는 걸핏하면 화를 내기가 일수
였고 때로는 외과수술 기구를 내던지곤 하여 병원의 간호사를 괴로운 지경에 빠뜨리는 
일도 있었다. 일단 자신이 어째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외과의사를 택하였는가를 잘 알
고 부터는 공격적이었던 그의 태도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어느 이기적 성격의 주부는,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카르마에 있어서의 장해물이고, 
몇 세기에 걸쳐 사고의 원인이 된 것을 중간생에서 알았다. 그녀 히러리 잭슨이 자기
의 전생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선 미모를 자랑하는 조지아주의 남부 미인, 그 전은 거
만한 프랑스인 목사, 그 앞의 전생은 자기만을 생각하고 가족의 요구를 무시한 스코틀
랜드인 남성이었음이 밝혀졌다. 이것을 본 히러리는 이런 방법을 계속하고 있는 한 아
무 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는 태도를 고
친 결과 일단은 파란으로 몰고 갔던 남편과의 사이도 극적으로 좋아진 것이다.
 
   *고등학교 교사인 토니 카라마리스는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에로티시즘에 대한 흥
미와 깊고 영적인 태도를 융합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나, 초의식 상태에서 마음의 갈
등을 일으킨 카르마의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겪은 최근 열 번에 걸친 윤
회전생에는 신앙심이 깊은 행위와 방탕한 행위의 양극단이 포함되어 있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자기의 성품 속의 영적인 면과 에로틱한 면과의 통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
다. 그는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인생에서 극단에서 극단으로 흔들리는 자신을 보고 있는 동안에 이런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게 몹시 지루하게 생각되어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모르겠어! 육욕적인 생활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러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똑히 여성의 얼굴이 보이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선명하였으므로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이 얼굴은 나에게 에로틱한 요소는 
도덕심이나 사람을 도와주는 마음, 자비의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
다. 두 사람 사이를 연결시키는 초보적인 힘인 에로티시즘은 사람들을 두말없이 밀접
하게 연결시키고, 그런 까닭으로 영적인 성장을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 내며 또한 도
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까닭인
즉, 나는 섹스와 영적인 것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실천해야할 일은 두 가지의 통합인 것입니다. "
 
   *베키 로버츠와 그녀의 애인 크리브 이덴서의 경우는, 전생에서 두 사람이 친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계기가 미치는 범위는 1700년에 걸치는 경우였다. 이번 생에서 베키
는 알콜 중독에 걸린 냉혹한 남편에게서 원조 비슷한 것은 거의 받지 않고 고행하면서 
세 차이를 키웠다. 그렇다곤 하지만, 20년쯤 전부터 교제를 시작한 남자와의 은근한 
연애관계 덕분에, 그 고생은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전생을 살펴보면, 베키
의 가정문제를 속속들이 변함없이 원조해 온 크리브 이덴서는 카르마를 변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베키가 기원 3세기 때 알렉산드리아라는 인생으로 퇴행했을 때, 본 것은 오시리스
를 모시는 신전에서 무녀 노릇을 하고 있는 자기의 모습이었다. 또한 크리브가 수행중
의 신관이었던 것도 알았다. 함께 신을 모시기 위하여 독신을 맹세한 몸이면서, 강하
게 서로 끌린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이윽고 뜨거운 관계는 계속된다. 어느 날 마침
내 두 사람의 정사는 상관인 신관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젊은 신관인 크리브는 자기는 그녀에게 유혹 당했다고 주장하여 이 이야기를 긍정
적으로 받아들인 상사들은 그를 석방하였으나, 한편 그녀는 사형을 언도 받는다. 카르
마로 부터는 도망치지 못하고, 크리브는 현재 오랜 옛날에 있었던 자신의 배신행위를 
보상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보기가 보여주듯이, 사랑과 섹스란 인간끼리 끌어당기는 힘을 자극하여 카
르마의 발전을 북돋아 주고 있다. 휫튼박사의 피실험자들 대부분은 아내 ·남편 · 연
인과의 관계를 전생까지 더듬어 올라가 그 관계가 카르마에 있어서 어떤 것인가를 알
았던 것이다.    전생에서 좋은 관계를 체험한 사람들이, 다시금 협력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을 케이스워크는 보여주고 있다.
   이번 생에서도 그 관계가 다시 확립될런지 여부는 대부분의 경우, 중간생인 상태에
서 같이 계획을 세웠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앤드류 옴즈비의 케이스는, 계획을 세우는
데 실패했을 때, 어떻게 정서적인 후라스트레이션에 빠지는 인생과 이어지는가를 분명
히 하고 있다. 앤드류가 19세기의 영국 인생에서 자기의 애인이었던 일이 있는 모오린 
리차드와 만났을 때, 그는 이미 결혼하고 있었고 아내는 첫 애를 임신하고 있었다. 이
와 같이, 미리 전생에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와 모오린의 사이에 싹 튼 연애 관계
를 취소시킬 수 없고 두 사람의 관계는 40년 이상이나 비밀리에 계속되었다.
   초의식으로 앤드류는 자기가 윤회전생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기 때문에 이번의 인생
을 잘못 설계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모오린)가 나에게 속삭이고 있습니다만,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 앤
드류는 트랜스 상태에서 말했다. 앤드류의 눈 앞에는 모오린의 더 한층 선명한 전생의 
모습이 나타나고, 또한 이번 생에서 두 사람이 재회할 계획을 자진해서 세우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자기 모습이 보였다. 카르마의 충동이 다시금 두 사람을 묶었을 때, 두 
사람은 부부사이가 아니라 남의 눈을 피하는 내연관계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
   심신의 장해나 온갖 개인의 비극은 모두 카르마로 인한 것이다. 다음 장 이하 케이
스 스터디의 장에 나오는 실제 보기와 같이 도덕적인 결함도 얽히거나 억압된 감정도 
장차 윤회전생 했을 때, 병이나 정신적인 외상, 공포증 따위, 갖가지 장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최면은 특정한 카르마의 상황을 해명하고 고통은 자기의 의지에 의한 것이
었다고 하는 자각-이 자각은 치료하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 -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카르마가 끝나지 않으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염려할 상태가 생겼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단순히 자기 자신이 부른 것밖에 되지 않는다. 스튜워트 C 이스튼은 
<인지학에서 본 인간과 세계>에서 이 렇게 쓰고 있다.
  " ...이 세상에서의 운명을 한탄하고 불운을 짊어질 때마다, 우리가 비난하게 되는 
일은 자기자신의 선택일 뿐, 심하게 보복하는 변덕스러운 신이나 신들의 선택이 아니
다. 그런 까닭으로 카르마를 아는 이가 범해서는 안 될 악덕은 질투라는 것이 된다-그
것이 남의경우에 대하여건, 남이 가진 재능이나 부나 친구 따위에 대해서이건-그 이유
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
  만약 우리가 괴로운 인생을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도 반드시 전생에서 나
쁜 짓을 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정한 시련을 받으면서, 장래의 사업이나 훌륭
한 업적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카르마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나 관여하
지 않으면 안될 일이 생기기는 하지만, 카르마란 본질적으로 동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자유 의지를 행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인격을 높이는 일 이외에도 기능이나 재능을 향상시키는 일도 카르마적인 성장 속에 
포함된다.
  피실험자가 수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에, 어떻게 하여 어리고 자기 중심적인 인격
에서 청년기의 인격으로, 때로는 원숙한 인격으로 이어지는 긴 도정을 걸어가는가를 
휫튼 박사는 알았다. 진보는 반드시 의지의 강함으로 정해진다.
  또한 어떻게 하여 재능이 인생에서 인생으로 이어져 가는지도 알았다. 이번 생에서
의 비범한 재능은 근본을 따지자면 지금까지의 윤회전생에서 노력하고 전념한 것을 쌓
아온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위대한 정치가, 음악가, 철학가 따위 세계의 저명한 사람들은, 과거
세에서  서서히 그 능력을 얻고 키워왔으며, 마침내 실력자로서의 생애에서 그 능력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 말이다.
  반대로 지도자 정신이 결여되어 있거나 조직력이 없는 사람은, 전생에서도 역사적으
로 유명한 지도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결론이 나온다.
  카르마는 인간에 있어서 노력의 어떤 영역에도 빠짐없이 작용하고 있다. 조세프 J 
위드는 <신비학의 대사의 지혜>에서 카르마의 법칙이 작동하는데 있어서 원인과 결과
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다.
 
    *뜻을 품거나 원하거나 하는 일은 재능이 된다.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성격의 버릇이 된다.
    *이룩하려고 하는 의지는 행동이 된다.
    *괴로운 체험에서는 도의심이 생긴다.
    *체험을 되풀이하면 지혜가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카르마의 비틀어진 험한 도정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을 제공
해 준다고 하지만, 혼의 고차원적인 목적을 불분명하게 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모
든 개인의 노력과 인간 상호간의 행동에는 카르마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카르마에서 
생기는 불협화음은 우리들 인생의 배경음악에서 주선률-자기자신을 보다 더 똑똑히 알
려고 하는 혼의 내면적인 몸부림-을 지워버리는 수가 흔히 있다. 달리 비유를 든다면, 
우리는 모두 '진화'라는 넓은 고가 도로를 드라이브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카르마의 
교통체증이 방해가 되어 목적지가 분명히 보이지 않게 되는 그런 경우다. 중간생에 있
을 때, 높은 차원의 목적은 곧 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정해진 목적을 완수하려고 
탐구해 갈 경우, 그 나타나는 방법은 수많은 생애에 걸친 '혼의 탐구'라는 형태로 다
음과 같이 5단계를 거쳐, 서서히 발전한다고 본다.
 
  (1) 유물론의 단계: 물질적인 행복을 추구하고, 육체적인 쾌락의 열망에 지배된 상
태. 남의 감정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철학적인 목적은 전혀 없는 것과 같다. 죽은 뒤
의 일이나 어떠한 종류의 궁극적인 힘도 인정하지 않는다.
  (2) 미신의 단계: 자기 자신보다 위대한 힘이나 실재가 있는 것을 비로소 안다. 이 
전능한 힘에 대하여 실질적으로는 아무 것도 모른다. 어쩌면 부적이나 의식같은 것으
로 밖에 제어될 수 없는 것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여전히 유물론적인 
생활방식이 지배적이다.
  (3) 근본주의의 단계: 하나님이라든가 전능한 것에 대하여, 단순하고 미신적이고 틀
에 박힌 생각을 하고 그것이 생활의 기반이 되어 있다. 의식에 따르게 마련인 기도나, 
어떤 태도나 행동을 실천하면, 궁극적인 보답-천국이라던가, 사후의 지위-이 보증된다
고 믿고 있다. 흔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노여움을 달래도록, 신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일이 지도자에게 요구된다. 지도자가 타반을 감은 힌두교의 도사이건, 예수 그리스도
로 불리우건 문제가 아니다. 이 단계에서는 기본이 되는 신념을 활용하고 이를 전도하
여 해석하는 인물이 필요하게 된다.
  (4) 철학의 단계: 자기의 책임을 이제 막 자각한 단계. 종교적인 신념을 계속 가지
고는 있으나, 교의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하는 걸 인식하고 있다. 이 
단계의 특징은 생명을 존중하고 남의 신념에 대하여 너그럽고, 기성 종교의 교의를 깊
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5) 핍박의 단계: 인생의 숨겨진 의미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는 강한 소망이 
생긴다. 내면의 긴장과 노여움이 머리를 쳐든다. 존재의 깊은 뜻과 목적을 알게 되지
만,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분명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해답
을 탐구하기 위해 널리 책을 읽고 연구하고 각종 신비학이니 형이상학 연구의 그룹에
도 가입하는 일이 많다. '핍박'의 명칭은 그리스도의 산상 설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태복음> 5장 10절)에서 인용했다.
 
   이 같은 초심자의 단계를 무사히 졸업하면, 이미 그 사람은 확실하게 진보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다. 진보란 몇 줄기나 되는 좁은 길이 가로 세로 뻗혀있는 높은 산과 
같은 것으로, 길 가운데에는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도 있다. 갖가지 길은, 동쪽에서는 
명상이나 초월명상을 통하여 위로 이어지고, 서쪽에서는 신비주의나 형이상학을 통해 
위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이 갖고 싶다는 이와 같은 집착이 
남는 한, 카르마의 인과관계는 없어지지 않는다. 계기의 법칙을 잘 알게 됨에 따라, 
자기의 동기나 태도나 행동이 어떻게 카르마의 조건을 만들어 가는가를 차례로 똑똑히 
예견할 수 있게 된다.
   석가의 철학은 힌두교 현인들의 저작에서 많은 걸 이어받고 있으나, 놀라운 일은 
그 석가조차도 아직껏 영향을 끼치는 카르마의 영향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석가는 발에 사보텐의 가시가 박혔고,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는 냉담한 말
을 듣고, 가까운 마을로 탁발을 가도 아무런 보시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전생으로
부터 이어 받은 자기 자신의 카르마를 설명하도록 요구받자, 석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카르마의 속박은 충실한 하인과 같은 것이어서, 모든 사람에게 항상 따라다니
고 있다...카르마는 시간의 흐름과 같은 것이다. 끊임없이 인간을 쫓아오는 그 흐름을 
멈출 수는 없다. 카르마의 줄기는 길다. 새로운 것이지만 아직도 묵은 과일로 덮혀 있
다. 모든 사람의 훌륭한 길동무이지만 잡아 당겨도 붙잡아도 잡아 찢어도 잡아 뽑아
도, 비틀어도, 부벼도, 박살내도 절대로 없애버릴 수 없다. "
 
   석가는 만일 높은 곳에까지 도달해도 전생의 잘못에서 도망칠 수도 없애버릴 수도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법은 법이고, 카르마의 상황의 목표인 예지에 도달할 지름길은 
없다. 아란 와츠는 <선의 정신>에서, <...인간의 카르마는 그림자와 같이 사람을 따라 
다닌다. '자기의 그림자 속에 서 있으면서 어두운 것은 어째서일까 하고 사람은 이상
하게 생각한다'고 전해 내려오듯이, 틀림없이 카르마란 스스로의 그림자인 것이다>라
고 쓰고 있다.
   카르마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옛날의 빛을 완전히 갚지 않으면 안되고, 새로 빛을 
져서도 안 된다. 많은 생애에 걸친 장부상의 수지를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사랑과 무아의 계율을 전신전령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또 한가지 죠세프 위드의 말
을 인용해 보자.

   "조금이라도 이기심을 가지고 행동하거나, 보답을 바라고 선행을 하는 한, 그 보답
을 받기 위하여 이 세상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 원인에는 결과가 있고, 활동
에는 성과가 있다. 욕망은 이들을 연결하는 끈이다. 끈의 한 가닥, 한 가닥의 실이 불
타서 끊어질 때, 그 관계도 끝나고, 혼은 자유로워 질 것이다. "
 
   카르마의 개념이 가져다주는 결론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놓여 있는 환
경이 결코 우연이 시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바르도
에서 선택한 것을 몸으로 나타내고 있다. 우리들이 바르도의 육체를 지니지 않은 상태
에서 결정한 것에 의해 이번 생의 경우가 정해지고, 잠재의식의 상황에 따라 행운이나 
악운이 찾아온다. 카르마의 법칙이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일은 곧, 만일 현상이 아무리 
곤란해도, 이 현상에 내 몸을 맡긴 것은 자기자신이다 라고 체념하는 일이다. 사람은 
각각, 시련이나 고난 속에 있어야만 배우고 성장하기 위한 최대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 다음에 그 시련이나 고통을 
탐색하는 것이다.
@ff
    제7장 의지의 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 
    이니.
    "마태복음"(7장 7절)
 
   마이클 갸란다 박사만큼 행운의 사나이는 그리 흔하지 않다-lBM사의 연구원 동료들
도, 그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마이클은 머리가 좋고, 스포츠맨이고 미남이며, 게다가 
인기도 있다. 날카로운 분석력을 구사하여 구변좋게 의견을 말하는 그는, 엘렉트로닉
스(전자공학)에 대해서는 대단한 '수재'로 그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회사의 고위층에서
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나눠주는 사나이이
기도 하다. 지나가다 만나는 주정꾼이나 떠돌이들에게 베풀어주려고 그는 매일 같이 
한쪽 호주머니에 동전을 넣고, 다른 한쪽 주머니는 빵 부스러기가 들은 비닐봉지도 불
룩했다.
   빵 부스러기는 근처 계곡을 숙소로 삼고 있는 비둘기에게 먹이기 위해서이다.
   마이클이 원인불명의 정신적 갈등에 몹시 고민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
었다-그런 일을 느끼는 사람조차 없었을 것이다. 출세니 업적이니 하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마음은 쥐어뜯는 듯한 죄의식과 자기 혐오감이 얼마큼 강렬한 것인가를 아는 
것은 마이클 한 사람뿐이었다.
   아침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과 마주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혐오감으로 가득 차
고, 수염을 깎고 있는 도중에도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치솟는다. 그에게는 자살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까이 오는 차 앞을 가로지르려고 하던 일
이 자주 있었으나, 어쩌면 이 불쾌감은 그것과 관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
이클로서는 원인을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어째서 자기는 심히 곤난한 증상에 
몇 년씩이나 시달려왔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아내인 샤론을 안을 때마다 반
드시 겉잡을 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마이클은 출세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였다. 스램가를 에워싼 뉴욕의 사우스브론
크스 지구에 사는, 노동자 계급인 유대인을 부모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에게서 미움을 
받았고 아버지도 외아들인 그에게 소리나 지를 뿐 거의 상대해 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이렇게 학대받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먹고 자란 탓으로 열 일곱, 여
덟이 될 무렵에 마이클은 완전히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다. 세상은 무서운 것이라고 생
각하고 있었으므로 남과의 접촉을 싫어하였다. 그는 자의식이 너무 지나치게 강했으므
로, 자동차의 기름이 떨어져도 회사의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는 게 내키지 않아, 주유
소에 들어가기를 몇 번 이나 망설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마이클은 고등학교도 대학도 성적이 우수해서 졸업을 했으나, 이미 20대 초에는 공
포나 불안,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차츰 쌓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는 아무리 괴로워도 어려움과 싸워나가려고 처음부터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었다. 그렇
게 결심했기 때문에 15년의 긴 싸움터가 된 종래의 심리요법 프로그램에 착수한 것이
다.
   사업 관계로 전근이 많았으므로, 미주리주의 센트루이스, 오하이오주의 크리브랜드 
그리고 뉴욕 등 세 사람의 정신분석 의사와 상담을 계속하였다. 이 세 사람의 도움으
로 불행한 성장과정에서 생긴 공포감과 불안감에서는 서서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
지만 어느 의사도, 그가 느끼는 죄악감이나 자기혐오감 그리고 샤론에게 항상 느끼는 
불안감을 없앨 수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원인을 설명할 수도 없었다.
   샤론에게 구혼하기 전, 10대 무렵에 사귀던 다른 여자와의 섹스에서는 이런 문제에 
한 번도 부딪친 일이 없었는데 아내인 샤론과 관계할 때만은 자기와의 성교로 그녀가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얼핏 생각하기에도 엉뚱한 공포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마이클에게는 그밖에도 여러 가지 괴로움이 있었는데, 세 사람의 분석의사로서는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뿐이었다. 우선, 어째서 그는 항상 생매장을 당하는 공포감을 
느껴 왔었나?  하는 것인데, 이 공포감이 엄습하면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침체상태에 
빠지면서 식은땀이 솟고 호흡이 이상하게 빨라진다.
   또한 어째서 큰 소리가 나도 일어나지 않는 주제에, 극히 작은 속삭임이나 소리, 
발소리를 죽이며 걷는 것 같은 아주 작은 소리가 나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가? 어
째서 그는 화를 내는 걸 무서워하나? 어째서 어려서부터 흰 가운을 입은 여인이 살해
당하는 환상에 자주 시달려 왔나? 어째서 팔 뒤쪽에 발진이 계속 나타나는가? 이 따끔
거리고 근질근질한 발진은 아무 조짐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돋아나고 몇 분 
동안 계속된다.
    소년 시절, 마침 부모의 침실에 들어간 그는 어머니가 거울 앞에 벌거벗고 서 있
는 걸 본 일이 있었다. 당황한 어머니는 그때 그의 팔 뒤쪽을 잡고 흔들면서, 책망투
로 설교했었다. 정신 분석의사들이 어떤 사실을 꼬집어 이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
했지만, 발진은 낫지 않았다.
   어느 날 센트루이스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을 때의 일인데, 마이클은 그날 심리요
법의 시술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발진이 생기는 걸 생각해 보고 있었다. 순간 그
에게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가 보였다. 그것은 마이클 갸란다가 아니라 그의 인격을 공
유하고 있는, 자기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인 다른 인간의 이미지였었다.
   이 별개의 자기는 누군가를 떠밀려 하고 있었는데, 그 인물은 그의 팔에 늘 발진이 
생기는 바로 그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진찰이 시작된 후에도 그는 마음 산란한 
이 이미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석 의사가 정신이 돌았다고 할지도 모른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이클이 토론토로 옮겼을 때 38세가 되었고, 분석 의사와 상담하는 것도 이제는 
완전히 귀찮아졌다. 분석도 처음 2~3년은 도움이 되었으나, 여전히 계속되는 정신적인 
갈등의 도전에 대해 맞서서 싸워 이길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갈등을 깊이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집착했었고, 이 오랫동안의 정서장해에서 구해줄 사
람을 꼭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끈질기게 믿고 있었다. 결국 그는, 지금까지의 방법과
는 다른 것-인간 존재나 지각)을 보다 더 깊은 곳에서 잡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로 했
다.
   그는 점성술이나 신비주의, 동양의 옛날 예지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그
는 연구를 위하여 토론토 심령연구협회의 회합에 참가했는데, 때마침 그 자리에서 윤
회전생의 형이상학적 의미에 관한 조엘 휫튼 박사의 강연을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은 마이클은 휫튼 박사를 만나서 15년 동안의 치료에도 
호전되지 않는 발진에 대해 고백했다. 그리고, 이른바 과거세의 체험에서 원인을 추명
할 수 있을지 어떨지를 물어보았다. 이번에는 더 이상 정신이 이상하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1979년 2월의 얼어붙을 듯한 추운 어느 날, 마이클은 휫튼 박사와
의 처음 있을 시술을 불안한 표정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마이클은 윤회전생에 대해 분
명히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강연을 들을 때까지 그런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조차 없었다. 다만 알고 있었던 것은 휫튼 박사가 환자를 최면으로 '전생'에 퇴
행시켜서 그 증상에 대처하고 있다고 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마이클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볼 셈이었다.
   첫날의 시술에서는 거의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 횟튼 박사의 진료실 빨간 가
죽 소파에 앙상한 몸을 눕힌 마이클은, 거듭 암시를 받고서야 간신히 깊은 최면상태로 
빠져들었다.
   앞서의 전생이 어땠는가 질문을 받고, 그는 일단은 1915년에 이르러 대답하기 시작
했다... 그 순간 마치 빨갛게 달군 인두로 지진 듯이 그는 몸을 움추렸다. 마이클은 
떨 면서 최면에서 깨어나, 무엇을 보았는지 조차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이윽고 또다
시 최면상태로 유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이 해(1915년)가 어떻게 관련되는지 알
아낼 수 없었다.
   횟튼 박사가 넌지시 유도신문을 하려고 해도 피실험자의 무의식적인 마음은 단호히 
그것을 거절하고 만다. 이 최초의 발화점이라고 할만한 사건이 일어난 1915년이 감정
상 또한 치료하는데 있어서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 박사도 환자도 몇 년 동안 알 수가 
없었다.
   그 후의 시술부터 마이클의 저항은 차츰 덜해가고 그에게서도 전생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소파보다도 진료실의 융단 위에 눕는 편이 마음에 든 그는 과거로부터 차례로 
나타나는 인격을 눈 앞에 보면서 자기는 누구인가라는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그는 종
교개혁 시대에는 독일 케른 마을의 교회를 다니며 일을 하던 스웨덴인의 목수인 구스
타프였었다.
   앙리 라는 16세기 프랑스의 면화 상인이였던 시대에는 언제 터키인의 습격이 있는
가 하고 조마조마 하면서 그가 체험 -아니, 재체험이라고 해야겠다-한 것은 가슴의 통
증과 숨 찬 증세라는 중년 남성 특유의 편도선염 증상이었다. 
   그는 또한 독특한 억양으로 프랑스의 옛말을 몇 개씩이나 말했다. 차츰 최면 상태
에 익숙해지자, 마이클은 이들의 인격이 분명히 다른 윤회전생에서도 육체를 갖추고 
나타난 자신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인정하게 된 것은 
그가 1216년으로 돌아가서, 단순히 빠져드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낀 다음의 일이었다. 갑자기 그의 의식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치솟는 충격에 떨었다.
 
   언덕 위에 성이 우뚝 서 있고, 그 거대한 석벽의 모습에는 자못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것이 있다. 주위에 감도는 음산한 기운의 근원은, 성의 컴컴한 대기실 근처를 초
조하게 움직이고 있는 한 사람의 사나이다-당당한 체구의 그 사나이의 표정은 준엄하
고 어둡다. 그는 초로의 기사로, 베젤공 힐데브란트 라고 부르는데, 독일 웨스트 파렌 
지방의 남동쪽, 라인강가에 있는 작은 공국의 고독한 통치자이다. 그의 인생은 지금까
지 구인 받을 수 없을만큼 잔인하고 이상에 불타 충동적으로 행동하였으나 아무런 도
움도 얻을 수 없고, 지금은 죄악감과 자기 혐오와 공포로 야윌대로 야위었다. 하지만, 
아직도 환상에 매달리고 있는 그는 휫튼 박사를 향해, '난 하느님을 위하여 싸운다! 
난 하느님을 위해 싸운다!' 하고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힐데브란트의 인생에는 중요한 데이터가 많이 숨겨져 있다는 걸 눈치 챈 휫튼 박사
는 계속하여 마이클을 이 기사의 여러 시대로 퇴행시켜 보았다. 마이클이 본 것은 기
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사실 완전히 온 몸이 오싹하는 것이었다-하지만 그 뒤의 효
과는 거의 만족할만한 것이 자주 있었다. 마음속이 일시적이긴 하지만 정리되었다고 
하는 생각은 엉켜있는 실타래같은 그의 억압이 풀리는 것을 의미했다. 15년간 정신분
석에서 제거할 수 없었던 것이 마침내 해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이나 그
가 상담했던 전문의들이, 그가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이 어렸을 때가 아
니라 전생에 원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찌 꿈엔들 생각했을 것인가? 큰 유리창을 작은 
솜뭉치로 문지르듯이 휫튼 박사는 마이클의 파묻힌 기억의 스크린을 거듭 빛낼 수 있
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박사는 기억을 끌어내게 할뿐만 아니라 800년 전의 마이클 가
란다의 분석에도 노력을 기울인 것이었다. 힐데브란트의 생애 기록을 수집하고 합성하
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횟튼 박사는 애당초부터 자기가 다루고 있는 이 사나이
에게서 중대한 범죄의 낌새를 냄새 맡고 있었다... 
   1189년, 31세의 힐데브란트는 고국을 멀리 떠나, 제3차 십자군의 사령관으로서 파
레스티나의 아크레 근방 사막에 병사들과 같이 주둔하고 있었다. 게르만민족 가운데서
도 이름 높은 튜톤인인 그는 검은 십자가의 문장이 그려진 흰 옷을 입고 혹서를 저주
하고 있다. 바로 눈 앞에는 한 떼의 아랍인 여자들이 일하고 있고, 제각기 목숨을 구
걸하고 있는 것이었다. 힐데부란트는 여자들의 애절한 소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포
로들을 멸시하듯 노려볼 뿐이었다. 사막 주변에는 온통 전쟁으로 무참히 살해당한 아
군의 기사들 투구가 흩어져 있다. 용감하고 충성스러웠던 이 사나이들은 그에게 있어
서 형제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을 잃고 큰 소리로 울부짖고 싶은 심경이었으나, 그런 
마음 속을 남에게 눈치채이게 하지 않으려고 그 대신에 힐데브란트는 잔학한 행위를 
하게 된다. 부하에게 명하여 몸집이 작은 여자들을 갑옷 속에 가둬 모래로 파묻은 것
이다. 거대한 쇠로 된 게와 같이 생긴 갑옷 속에서, 여자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산 
채로 태워진다. 구원을 청하는 목소리는 차츰 작아진다... 
 
    평상시의 의식으로 돌아오자, 마이클은 비지땀을 흘리며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음을 뒤흔들만한 체험을 한 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효과가 나타났다. 어
렸을 때부터 계속되어 온 생매장의 공포에서 비로소 그는 해방된 것이다.
   이때부터 2, 3개월에 걸쳐서, 마이클은 힐데브란트가 저지른 추한 죄를 차례로 보
게 되었다. 어느 때 그는, 자기가 이 기사의 몸 안에 실재로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는 말 위에서, 아기를 안고 용서를 비는 여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에 그는 이렇
게 말하고 있다.
   "나는 버러지를 보듯이 그 여인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동정심도 불쌍한 마음도 
없었습니다. "
   창을 겨누어 아이와 함께 어미를 찔렀을 때, 그는 최면상태에서 깨어났다.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자기가 한 짓이라고 알면서도 지금 본 광경을 받아들이거나 
믿고 싶지도 않았다. 마이클 갸란다인 자기가 그런 무정한 짓은 할 수 없다는 것도 알
고 있었다. 그날 휫튼 박사의 진료실을 나온 다음, 그는 혼란에 빠져 정처없이 걸었
다. 이윽고 가까운 공원으로 들어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려고 걸음을 멈췄다. 흩어진 
빵 부수러기를 먹으려고 날아와 가슴을 드러내고 걸어다니는 비둘기를 보면서, 그는 
이상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이 마음씨 착한 다름 아닌 자신이 의지할 데 없는 여인들을 
죽이다니 ... 
   휫튼 박사와의 시술도 곧 일년이 되려고 할 무렵, 마이클은 고집을 피운 끝에 열 
두살의 힐데브란트를 만났다. 이번에는 여느 때와 달리, 그의 관심은 이 잔혹한 중세
의 드라마에 등 
장하는 다른 인물로 향해졌다. 힐데브란트의 부모는 그에게 있어 친밀한 것과는 거리
가 멀었다...그 두 사람이야말로, 이번 생에서의 부모였던 것이다.
   12세기의 웨스트화렌에 있을 때와 그다지 환경에 변화는 없었다-이 곳에서 그는 애
정 없는 결혼에서 태어났고, 그런 탓으로 그의 어린 시절은 평온과는 거리가 먼 것이
었다. 그의 소외감은 때로 심한 적개심으로 변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인 힐데브란트에게 칼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의 미움이 
쌓여있는 소년은 틈을 보아 아버지의 눈을 찌른다. 몇 주일 후에, 깊은 상처를 입은 
왕은 뇌가  화농되어 죽는다. 누구나 사고사로 믿고 있으나 힐데브란트 만은 진상을 
알고 있었다..." 
 
   시술을 거듭함에 따라 차츰 전모가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힐데브란트의 어머니는 수단 방법은 가리지 않는 여인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고 권모 술수를 쓰면서, 궁정 안에 들끓는 음모 사이를 교묘히 헤엄쳐 다녔다. 열 세
살이 되자 힐데브란트는 이제 성인으로 보아졌고, 국무에서 떠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아, 기껏 '말을 타고 숲까지 다녀온다'고 할 정도였다. 궁정 안에서의 정
사에 있어서 만족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차츰 어른스러워진 아들의 늠름한 기상에 매력
을 느끼고, 장난삼아 그에게 접근한다. 나이 젊은 왕자는 그 유혹이 너무도 불쾌한 나
머지 마침내 어머니를 돌계단 가로 밀어젖힌다. 뒤엉켜 싸우던 끝에 유혹 당사자인 어
머니는 계단에서 곤두박질로 떨어져 목이 
꺾이고 만다. 전락사하는 순간에 그는 아들의 팔을 잡으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그의 팔 뒤쪽에 심한 상처가 남겼다..." 
 
   일단 이 에피소드가 기억에 떠오르자 마이클의 골치아픈 발진은 다시 재발하지 않
았다. 무엇인가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이 마음 속에서 서서히 얼음이 녹기 시작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힐데브란트나 그 밖의 사람
들은 아직 체험해야 할 일이 많이 있었다.
   이 기사의 비참한 사랑의 전말을 알아내는데, 다시 9개월의 시술이 필요했다.
 
   힐데브란트가 왕국을 계승하기 얼마 전에, 그는 궁정 전속의 의사로 있는 글을 아
는 유태인의 딸(힐데브란트의 일족에는 글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인 라켈과 만
나 사랑에 빠진다. 그 무렵 왕자는 궁중의 한 승려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 
승려는 힐데브란트의 부모를 오랫동안 뒤에서 움직여왔던 사나이였으나, 그 아들이며 
왕위 계승자인 힐데브란트를 뜻대로 움직이지 못해, 약간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힐데
브란트와 라켈은 두 사람 사이를 비밀로 하여온 셈이었으나, 승려의 스파이들은 둘이 
깊은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라켈이 임신하고 있는 것까지 알게 된다. 그 때문에 
승려는 라켈이 힐데브란트에게 결혼을 강요하리라고 추측하고, 그와 같은 결혼은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증오하면서 힐데브란트의 마음에 불신감을 심어 준다. 그는 라켈이 
왕위를 새치기하기 위하여 결혼하려고 한다고 설득한다. 승려는 왕이 될 몸인 힐데브
란트에게 말한다.
   '왕자님은 유대인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은 신에게 저주받은 백성입니다. 
왕자님께 합당한, 나라에도 이익이 될 결혼을 하셔야죠'
   힐데브란트는 이상에 불타는 젊은이였으나 이제 와서는 그의 이상주의를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세계에 자기의 생각이 인정받도록 
할 계획이었는데 자기는 마치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아서 주위의 형편에 조종당하는 
꼴이 아닌가. 왕파는 다시금 자신의 인생항로가 자기 이외의 사정에 의하여 결정되고 
마는 것인가 하고 흥분하면서 날뛴다. 승려의 말이 사실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 된다.
   노여움과 낙담한 나머지 힐데브란트는 라켈의 배를 때리고 큰 손으로 그녀의 목을 
조인다. 그녀를 성의 발코니에 때려눕히자 단숨에 난간 밑에 있는 연못으로 머리부터 
집어던진다. 그런 다음 멍청해진 힐데브란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인을 내려
다본다. 시신은 쓰레기가 떠있는 악취를 풍기는 물에 반쯤 가라앉아 있다. 공포에 질
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구역질이 나서 비틀거리며 발코니에서 돌아온 그는 사건의 모
든 것을 마음 속에 간직한다. 참을 수 없는 생각을 견디려고 주먹을 불끈 쥐고 땅을 
치자, 마침내 그의 손에 피가 밴다.
   초연히 방안에 틀어박혀 있던 그가 겨우 모습을 나타냈을 때, 힐데브란트는 무기력
할 만큼 조용하고 차분하였다. 라켈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 
   비밀을 마음 속에 감추었기 때문에 정신적인 균형을 잃은 나머지 힐데브란트는 무
엇에 홀린 것처럼 열광적인 기독교 신자가 된다. 자기 혐오감이 굴절되어 그리스도교
의 성지 파레스티나를 빼앗은 회교도에 대한 복수심으로 변한 것이다. 그가 피도 눈물
도 없는 인간이 된 것은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횟튼 박사는 최면 요법으로 감정이 극도로 고조된 장면을 취급하는데 익숙해지긴 
하였으나, 라켈의 살해가 드라마틱하게 재현되고 있는 동안, 마이클이 몸부림치고 괴
로워함으로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하고 계속 조마조마 하였다.
   그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나 환자도, 힐데브란트도 마음의 상처를 짊
어진 폭풍우가 험한 장면을 넘듯이 통과하였다. 평상시의 의식이 돌아왔을 때, 마이클
은 아직 넓은 방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 이상 과거의 추억을 계속 증언하게 한
다면 과연 자기는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인가... 먼 과거의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에피
소드에 지치고 지쳐 피곤해진 이 마당에, 어째서 자기가 이번 생에서 자기자신에게 벌
을 굳이 내려야만 하는 기분에 견딜 수 없는 것인지 마이클은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극악무도한 폭력에 대하여 책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름 아닌 아내 샤론까지도 살
해했던 것이다.
   마이클의 마음 속에서 틀림없이 샤론과 라켈은 도망칠 수 없는 카르마의 긴 손이 
되어, 그 자신의 소행과 악한 행위로 묶이고 같은 혼을 구성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 뒤, 샤론이 최면상태로 들어가서 라켈의 인생으로 되돌아갔을 때 이 관계는 확인되
었다. 그녀는 자기가 힐데브란트에게 살해당했을 때의 일을 선명하게 생각해냈다.
 
   따뜻한 봄, 밤이었습니다. 나는 성의 발코니와 연결된 침실에 있었고 힐데브란트와 
말다툼을 하면서 발코니와 침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헐
렁한 가운을 입고 있습니다. 힐데브란트는 가운 밑에 셔츠와 타이츠 같은 것을 입고 
나는 맨 몸 위에 가운만을 입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손찌검을 하면서 큰 소리로 뭐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말로 
소리 치고 있었습니다만, 뜻을 알아내려고 하자 영어가 그 말에 덮쳐서 들려옵니다. 
힐데브란트는 
나에게 '이 유대인 계집이? 유대인의 피를 받은 새끼 따위를 후계자로 삼다니 말도 안
돼 !' 하고 소리쳤습니다.
   마침내 우리가 발코니의 끝까지 왔을 때, 힐데브란트는 내 배를 강타했습니다. 웅
크린 내 입에서 피가 뚝뚝 떨어집니다. 그가 이번에는 내 목에 손을 대고 계속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목이 조이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갑니다. 발코니의 손잡이를 버티는 난
간 사이로 밀어 넣었을 때 내 등에서 뭔가가 뚝 부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한 번 
밀자 몸은 난간 사이를 지나서 연못으로 빠졌습니다. 벌렁 누운 채 떠있는 내 머리는 
흐트러지고 더러운 거품과 쓰레기가 엉켰습니다. 잠시 뒤, 성의 중간 마당에 여자들이 
한 떼가 되어 내 몸을 들 것 같은 것에 얹고 실어갔습니다. 얼굴만 내 놓은 나는 머리
카락까지 온통 흰 천에 말려 있었습니다.
   힐데브란트가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무서운 결말을 자초하고만 것을 알게 된 지
금, 화가 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감은 마이클에게서 사라
져버렸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뛰어 일어나는 습성도 마찬가지로 없어졌다. 마이클도 알고 있
었던 일이지만, 힐데브란트는 잠자고 있을 때, 성의 중간 마당에서 들리는 큰 소리에
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 대신 끊임없이 암살을 경계하고 있었던 탓인지 아주 작은 소
리가 나기만 하여도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힐데브란트였었던 마이클이지만, 이제 지금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좋
았다. 그 기사의 일거수 일투족에 언제까지나 구애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한편 휫
튼 박사는 이제 무대를 다음의 장소로 옮기고 마이클의 또 다른 전생을 살펴보려고 생
각했다.
   박사는 최면에 걸린 피실험자를 재촉하면서 말했다.
   "자, 당신이 기사로서 태어나기 이전의 전생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
   마이클은 오랫동안 입을 다문 채로 있었다. 얼굴의 근육이 이따금 씰룩거리고 눈까
풀이 발발 떨리는 모습에서 본다면 그는 어쩌면 저 신비로운 윤회전생하는 틈새인 별
천지의 경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옛부터 지옥으로 떨어지는 죄인도 모두 나름대로의 소망은 가지고 있다는 속담이 
있으나, 간신히 마이클이 입을 열고 한 말에는 이 속담을 방불케 하는 것이 있었다.
   힐데브란트로서의 그의 인생은 그 뒤 계속된 저주스러운 인생에 비하면 훨씬 적극
적이고, 뜻 있는 체험으로서 계획되고 있었던 것이 다.
   마이클의 목소리가 정열적으로 명랑하게 울렸다.
 
   "나는 우주와 일체입니다. 별들과 일체가 되어 앞으로 태어날 것을 가슴 두근거리
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국경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훌륭한 왕이 되어 
어  진 조언자를 두고, 무역이나 학문이나 여행을 장려하고 싶다"
 
   마이클은 자기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힐데브란트는 역시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인간은 아니었다는 걸 알고 얼마간 안심했다. 극히 한 순간의 감정에 못 이겨 이 기사
는 높은 목표를 버리고만 것이었다.
   고매한 이상을 지녔으면서 가엾게도 이상대로 살 수 없었던 힐데브란트는 원래 나
쁜 사람은 아니었었다. 오히려 타락한 결과 쫓기고 괴로워하는 한낱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헌데 그건 그렇고 마이클은 단숨에 시간을 뛰어넘어서 힐데브란트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중간생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무엇이 보입니까?"
   횟튼 박사가 물었다. 마이클은 잠시 잠자고 있었으나, 얼마 후 둑이 터진 것같이 
소리를 내고 울기 시작했다.
   그는 창으로 어머니와 자식을 찔러 죽였을 때의 일들, 힐데브란트가 저지른 악업의 
가지가지를 목이 메이면서 말했다.
   말하는 동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격정에 못 이겨서 그는 더욱 더 심하게 
울었다. 그의 자책하는 마음은 너무나 깊어서 위로해 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무엇이 보입니까?"
   다시 한번 박사가 물었다. 한 마디 한 마디 괴로운 듯이 마이클은 대답한다.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이루었어야 했을 것이 산더미 같이 있었는데 나
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 착한 일을 했었을 텐데...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중간생에서 후회를 체험하는 일은 일종의 지옥을 체험하는 것과 같다.
   까닭인즉, 대부분의 피실험자에 의하면 중간생의 극히 초기 단계에서는 자기가 저
지른 죄가 변명이나 설명도 다 뺀 채, 생생하고 추한 모습을 드러내 놓고 다시금 자기
에게로 돌아오는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 지옥은 영원히 계속되
는 벌이 아니다. 전생이 평가될 때, 재판관들이 사려깊게 격려해 주고 자기들이 저지
른 극악무도한 행위조차도 어느 정도는 동정해 주는 것이다.
   아무리 전번 인생에서 길을 잘못 들어도 그것을 보상하는 또 다른 기회는 반드시 
있다는 것을 오바소울(대령)은 알고 있다.
   마이클도 바르도의 잠 속에서 자기에게 신경증적인 결함이 있었던 것을 인정하고 
마그나스라는, 15세기 전반에 '모스크바 대공원 근처의 포랜드'에 사는 목사로서 전생
할 것을 스스로 계획했다.
   이 새로운 인생은 강한 자제력을 얻기 위하여 특별한 기회를 주려고 계획된 것이었
다. 나중에 마이클은 최면 상태에서 마그나스의 인생을 조사하였으나, 이 목사는 교회
의 규칙을 지키고 원래의 공격적인 성격을 고치고 성욕을 억제하는 데 성공한 것을 알
게 되었다.
   마이클은 자기가 전생의 체험에 휘말리고 있다고 느끼는 일이 자주 있었다.
   자고 있을 때에는 악몽에 시달리고 낮 동안은 최면 시술에서 부상하는 새로운 사실
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억측을 해보거나 하여 하루가 저문다. 헌데 1981년 5월이 되
자, 윤회전생 체험에서 생긴 악몽은 멎고, 그 때문에 자기는 병이 아닌가 하고 고민하
는 일도 없어졌다.
   전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더 탐구를 계속하려고 노력해도 앞 길을 막아버리
는 것이었다. 마이클이 어떤 질문에나 살짝 피할 뿐이므로 휫튼 박사는 틀림없이 그에
게는 치료의 열쇠를 쥔 숨겨진 인생이 적어도 앞으로 하나는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
했다. 역시 중요한 전생이 또 하나 있을 것이라는 걸 알았으나 마이클이 말한 건 별로 
뜻이 없는 뷕터라는 이름뿐이었다.
   시술은 중단되고, 몇 개월 동안의 실속없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 무렵 마이클은 
메사추세츠주의 안이라는 산기슭에 있는 메이지 뉴먼의 별장으로 놀러오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메이지는 사업상 동료인데, 뉴잉글랜드의 연안을 여행할 때 이용하라
고 지금까지 몇 차례나 마이클과 샤론을 초대했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초대에 응한 
일은 없었으나, 이번에는 꼭 오라는 것이었고 과거세의 탐구에 아주 싫증이 난 마이클
도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행기로 보스톤에 도착한 다음, 해변의 별장에 도착한 가란다 부부는 렌터카로 근
처의 세이렘이라는 옛 시가지로 시가로 드라이브를 하기로 하였다. 잠시 후, 두 사람
은 17세기의 마녀 재판으로 악명 높은 이 항구 마을을 산책하였다. 그리고 작은 자료
관으로 빨려들듯이 들어간 마이클은, 무심히 이 마을 마녀의 역사책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가슴이 강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마침내 기묘하게도 그 가슴 두근거림이 육
체적인 반응으로 변해갔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그때 일을 말하고 있다.
   "뭔가가 나를 뒤흔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식은땀이 나면서, 떨리고 장승처럼 그 
자리에 서고 말았습니다. 마음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내가 알지 
못하는무엇인가가..." 
    마이클은 그 책도 그 책에 쓰여진 것도, 자기와 개인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나, 자기 혐오감만이 끝없이 깊어 갔다.
    이것은 틀림없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전조였었다. 세이렘을 떠나 피비린내 나고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린 마이클은 범죄나 섹스, 종교와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는 다음
의 최면 시술을 받기 위해 토론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빅타 브랙넬은 뉴잉글랜드의 농장에서 살고 있다. 그는 청교도의 도덕을 충실하게 
지키는 인물인데, 쾌락은 천국에 들어가려고 열망하는 자의 영적인 발전을 방해한다고 
믿고 있다. 마침 빅타의 결혼날이 다가왔으나 그의 고민 거리는 어떻게 성적인 쾌락을 
억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열쇠장이인 그는 금속으로 한 쪽에 구멍이 뚫린 튜브모
양의 기구를 만들고, 이것을 쓰면 쾌락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첫
날밤에 이 기구를 썼더니 신부의 하반신을 몹시 상하게 하고 말았다. 빅타는 반 미친 
듯이 되어 출혈을 멈추게 하려고 하였으나 허사였었다. 두 세시간 후에 아내는 죽었
다..." 
 
   최면상태에서 깨어날 때, 마이클은 진찰실 바닥 위에서 몸을 비틀며, 아내를 죽음
에 이르게 한 사람의 행위에 대한 불쾌감과 싸우고 있었다.
   그는 빅타와 힐데브란트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힐데브란트 쪽이 훨씬 더 악
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 모두 분별없이 더구나 잘못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죽
인 것이다.
   한편, 다음의 시술에서 마이클은 빅타가 혼미하기 짝이 없는 자기의 성적인 신경증 
증상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의 시체를 숲 속에 묻은 뒤, 그녀의 거처를 누가 물으면 빅타는 첫날밤에 도망
쳤다고 말하고 이 재수 없는 사건에 대한 것을 일체 기억에서 없애버리고 말았다. 이
윽고 그는 심한 죄의식에 시달린 결과, 성적 도착증에 빠져 1692년에 끌려가듯이 세이
렘으로 간다.
   이 마을에서 그는 마녀의 선고를 받고 교수대에서 죽어가는 여자들을 지켜보고는 
쾌락을 맛본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어떤 때는 거짓 증언을 해, 불쌍한 노
파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게 하는 데 한몫을 한 일도 있었다.
 
   '이번 생에서 농담 말고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이클은, 바로 지난번 세이렘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몸서리치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이 무서움은 멎을 것일까? 영
원이라는 직조기에 공급되고 있는 몇 백년에 걸친 자기의 전생의 실을 보호 있는 사이
에, 카르마가 어디까지 계속되고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그는 지금 잘 알고 있었다. 
마치 그 실이 짜여지고 꼬여져서 한 가닥 끈이 만들어지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 것 같
았다. 덕분에 이번 생에서의 분노를 잘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 후의 전생에서 카르마
의 무거운 짐이 가벼워지는 것 보다, 무거운 짐이 덧붙여진 것을 알고는 조금도 마음 
편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지옥과 같은 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
   하고 그는 각별히 가혹한 시술 중에 숨을 헐덕이며 말했다.
   마이클의 잠재의식의 밑바닥을 더 파들어가니 또 하나의 추한 인생이 떠올라 왔다. 
그는 안제라 휘오레라고 하는 이태리 주노바 근처의 가난한 마을 출신 아가씨로 성장 
후에 1809년, 나폴레옹 점령군 장교의 정부가 되고 잔인한 대우를 받았다.
   또한 후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로버트 막레디라는 이름의 학구적인 영국 신사였었
다. 이 사나이는 죄의식이나 성적인 신경증세를 산더미처럼 안고 있고 알콜과 마약에 
빠진 나머지, 40대 초에는 전차에 치어 죽었다.
   마이클은 자기가 이따금 무의식적으로 자살을 도모하려고 하는 일이 있는 것은 이 
로버트에게 있었던 의식의 망상 상태가 지금도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그에 의하면, 마음이 '공백 상태'가 되는 일이 자주 있고 길 한
복판에서 차가 경적을 울려, 그를 보고 깜짝 놀란 통행인이 팔을 잡아 끌어 '제 정신
을 찾는' 일이 몇 번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마이클이 크게 적극적으로 차츰 변신하고 있는 밝은 징조가 있
었다. 죄악감과 공포감은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었으나, 그는 혼자 있을 때도 남과 같
이 있을 때도 지금까지 보다 편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며, 
분명히 자기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휫튼 박사가 냄새를 맡은 경찰견처럼 차분한 상태를 보여
준 일인지도 모른다. 마이클이 자기의 윤회전생 역사를 조사하기 시작한지 3년쯤 지
나, 8세기 동안에 걸쳐 잠재되었던 감정을 해방시키는 계기가 될 전생을 만날 날도 가
깝다고 그는 느끼고 있었다. 휫튼 박사는 마이클이 최초의 서술로 1915년을 언급한 
뒤, 곧 사라지고 말았을 때의 일을 기억하고 이번에는 저항을 피하기 위해 전번의 전
생에서 태어나기 전의 중간생으로 그를 이끌어 가기로 했다.
   환자에게 있어서 이 곳이 정점이라고 휫튼 박사는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이클을 초의식의 상태로 유도하고, 그 얼굴에서 중간생에 들어간 누구에게나 공통된 
경이와 당혹해 하는 표정이 나타나기를 끈기있게 기다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서
서히 최초의 질문으로 들어갔다.
   "어떤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셈입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여자입니다. "
   "그래서, 다음 인생의 목적은?"
   또다시 긴 침묵이 계속되었다.
   "혼이 학습하는데 있어서 다음 단계를 준비를 하기 위해. 카르마를 지불하기 위해. 
"
   더욱 질문을 계속해 가자 마이클의 혼은 중간생에서, 아무리 이 세상에서의 벌이 
무겁더라도 많은 윤회전생에서 참극의 원인이 된 마음의 갈등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도
움말이 기억되었다.
   예정된 것은 형식에 매인 종교적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도 다른 것과의 균형을 
맞추면서 성적인 정신적 외상을 고쳐가는 일이었다. 만약 모든 게 계획대로 된다면 이 
다음의 인생은, 견딜 수 없지만 극히 중요한 전생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누적
된 빛을 단번에 해소시킬 전생이 될 것이다.
   최면상태에 완전히 익숙해진 마이클 갸란다에게 있어서도, 다음 두세 차례의 시술
은 특별히 힘든 것이 될 예정이었다. 중간생에서 용기를 얻고, 그는 주리아 마티슨의 
전생에서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에피소드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
못해 시작했다.
   주리아는 1910년 켄터키주의 시골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
들에 직면하면서도 마이클의 몸은 몇 번이나 마루 바닥 위에서 버둥대며 뒹굴었다. 비
명을 지르기도 하고 울었다가 반항했다가 한숨을 쉬었다가 하는 그 소리는 어린 아이
의 목소리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로 변해갔다. 그가 말한 것은 단명하지만, 분명한 
목적을 지닌 주리아의 인생에서 일어난 가지가지 일이었다.
 
   일찌기 어머니를 잃고 쥬리아는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늘 매맞고 고통받아가며 자란
다. 다섯 살 때, 이 사나이에게 강간당한 주리아는 그 사건을 마음속에 간직한다-마이
클이 생각해내기를 꺼려한 1915년이란 결국 이 해의 일이었다. 자라서도 마음의 상처
는 낫지 않았으나 그래도 그녀는 고집세고 용감한 데가 있는 아가씨였으므로 자기가 
소속된 남부의 침례교파라는 속박이 심한 지역사회에서 떠나려고 결심한다. 기회를 보
아 가출한 그녀는 켄터키주 루이빌의 마을로 향한다. 헐리우드에서 무성영화의 스타가 
되는 날을 꿈꾸면서 이 마을에서 웨이트레스로 일하다가 나중에 창녀가 된다. 어린 시
절 강간을 당했기 때문에 성의 기쁨을 알지 못한 채, 그녀를 창녀로 치닫게 한 것은 
마음의 상처를 가져온 그 사건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그녀가 무의식 상태에서 결정한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밤의 여인으로서 충실해도 그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경험
은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다시금 무의식적으로-어린 시절의 강간의 되풀이에 의해 
자기의 과거를 재발견하고 그 교훈에서 배워 보려고 아버지를 저주하고 있었음에도 불
구하고 그를 유혹할 계획을 세운다.
   "이번에는 아마 그 때의 일을 생각해낼 수 있겠지요. "
   휫튼 박사의 귓전에, 귀찮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는 남부의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 온다.
   지금은 20대가 된 주리아가 야한 흰 페티코트를 입고 아버지를 기다린다. 교회의 
예배를 보러 아버지가 루이빌에 오기로 되어있는 것이다. 일요일 오후 아직 해가 높은 
무렵, 그녀가 사는 아파트 이층으로 통하는 옥외의 계단을 아버지가 비실거리며 올라
오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술에 취해 있음이 뻔하다.
   "들어오세요! "
   아버지는 문을 열고 그녀 곁으로 들어온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아파트 현관에 
선 그는 뭔가 있음직하다고 느끼고 놀림을 당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안다. 그가 화
를 내기 시작하자, 주리아는 멸시하듯 화난 얼굴과 킬킬거리는 웃음을 되풀이 할뿐이
다. 못하게 하여도 그녀는 모른 체 계속한다. 욕망은 어데로 갔는지 화가 머리 끝가지 
난 그는 칼을 뽑아 그녀에게 덤벼들어 찔러 죽이고 만다... 
 
   어떠한 정신적인 외상에서 생긴 신경증을 치유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정신적인 외
상을 의식의 마음에서 되살리기 위해 그 유인이 된 사건을 반복적으로 발생시키는 요
소가 존재한다.
   일생 중에서 똑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논증한 지그먼드 후로이트는 이 현상을 
'반복강박'이라고 불렀다. 휫튼 박사의 케이스 스터디는 또한 이것을 진행시켜 이 원
칙이 생애에서 생애로 넘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최면상태에서는 전생에서 생긴 정신 외상적인 사건을 의식에 올려놓으면 육체적, 
심리적 장해를 없앨 수가 있다. 쥬리아는 맹목적으로 창녀로서 일하는 것에 의해 같은 
일을 되풀이하려고 시도해 본 것이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알자, 이것을 더
욱 철저히 되풀이하려고 중간생에서 세운 계획에 충동적으로 따랐던 것이다. 하지만 
주리아는 계산을 잘못했다-어린 시절에 당한 강간을 실행으로 옮기는 단계에서 살해되
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 생에서 마이클은, 이 같은 고통에 찬 기억을 되찾고 이것으로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살해당하는 환상도 겨우 설명이 된 것이다.
   주리아로 있는 것은 불쾌하기 그지 없었으나, 시술이 끝나 가게됨에 따라 몇 세기
에 걸친 압박감이 몸에서 사라지고, 나중에는 지금까지 몰랐던 편안함이 남는 것을 마
이클은 느꼈다.
   이제는 샤론과의 관계가 공포에 휩싸이는 것은 아니었다. 썰물이 나가듯 죄악감과 
자기혐오는 후퇴되고 말았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살을 기도하려고 하던 일도 깨끗이 없어졌다. 아침마다 거울
을 보아도 이제 절망감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거나 길에서 부
랑자들에게 돈을 줄 때는 동정심에서만이 아니라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나 친척들도 마이클의 생활 방식에 변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놀이나 오락에 
대한 청교도 특유의 완고한 생각에서 겨우 벗어난 그는 아내와 춤을 추더라도 여유있
게 자유스러운 기분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가 마이클의 전생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여 왔는가를 알고 있는 샤론에게
는 남편의 변한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남편은 방심상태에 있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저 사람의 마음은 죄인처럼 부
자유스럽지 않습니다. "
   수확은 그것 말고도 또 있었다. 800년에 걸친 그의 인과로 직조된 옷감을 본 뒤부
터, 마이클의 세계관은 완전히 바뀐 것이었다. 그는 중간생을 방문한 것에 대해 이렇
게 말하고 있다.
   "나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숭고한 창조적인 수준을 아주 조금 엿볼 것을 허락
받았  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는 모두, 매우 깊은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괴
로움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 복잡하고 외경스
런 영원한 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
   중간생으로의 마지막 방문-이번에는 주리아와 마이클의 두 번 윤회전생에 걸친 기
간-으로, 다시금 마이클의 개심이 어떤 것인지 분명해졌다. 그가 태어나기 전, 마이클
은 힐데브란트의 경우와 똑같은 부모를 택하고 라켈과의 중요한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 그의 인생의 목적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을 것이라는 도움말을 받았다. 
이런 사람들과 관련을 유지하면, 자기가 세운 방침도 알 수 있을 것이리라.
   또한, 피는 자기의 괴로움을 완전히 이해하고 해결될 때까지 해야만 된다는 도움말
도 들었다. 이렇게 도움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의 오바소울[대령]은 아마 과
거의 실패에 낙심하고, 앞으로 계속될 급속한 진보를 생각하지 않은 채로 현재의 전생
을 계획한 것이었다.
   그가 중간생에서 관찰한 것과 지금까지 그가 해 온 일을 비교해 보고, 마이클은 장
래의 전생을 위한 대체적인 계획이 이번 생으로 옮겨진 것을 알았다. 이것은 그가, 자
기 카르마의 대본에서 어려운 문제를 정리하는 속도를 빠르게 한 것에 보조를 맞추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마이클은 한 번의 전생 중에 몇 차례의 인생을 산 것이다-이 길
은 두드러지게 정력적으로 운명에 복종하는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다. 보통 경우라면, 
몇 차례나 되는 인생을 거쳐 행하던 힘든 일을 한 차례의 전생에서 그는 해치운 것이
다.
   잘 돼야 한다는 마이클의 소원-이것은 치료의 과정이 사실상 성공하기 위해 불가결
하다-은, 주리아의 불행을 끝났으나, 스스로를 치료하려고 결심하고 노력한 것에서 출
발되고 있다. 만리 P 호올은 <죽음에서 재생으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은 대
부분, 특정한 시기에 작심한 마음가짐을 계속 가짐으로서 카르마를 갚는다. 만약 전생
에서 죽었을 때, 이런 마음가짐이 있다면 그것이 윤회전생한 뒤의 새로운 인격을 거듭 
구체화시키기 위한 기동력으로 계속될 것이리라. '
   마이클 갸란다의 카르마의 케이스 스타디가 보여주는 것은, 어떤 인생에서 마치지 
못한 일들은 반드시 다음 전생에서 완성된다고 하는 것이다-말할 것도 없이 의지의 힘
이 충분히 있다는 걸 전제로 한 이야기지만... 자기 의지력을 동원하여 죄와 갈등을 
찾아내고 확인하여 그것을 이겨냄으로서 스스로를 해방시켜 온 마이클은, 앞으로 힐데
브란트로서 전생하기 전의 중간생에서 표명한 이상주의를 추구해 갈 것이다.
@ff
    제8장 인생에도 알레르기가 있는가? 
 
    아주 심한 병에는 아주 강한 약이 적당하다.
    히포크라테스
 
   "저는 몸도 말씀이 아니고, 인생도 엉망입니다. "
   헤자 화이트호름은 휫튼 박사를 처음 만난 1979년 봄에 이렇게 말했다. 이 같은 한
탄이 사실이라는 것은 카르테가 설명하고 있었다. 종래의 의학으로는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그녀의 육체가 차츰 무너져 내리는데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 적혀 있
었다.
   헤자는 병자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하게 보였다. 얼굴 표정은 밝고 혈색도 좋
아 그녀의 몸이 알레르기 반응의 싸움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알레르기 탓
으로 쉴새 없이 귀에서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청력이 나빠지고 심한 두통과 가슴과 목
의 충혈, 수 없이 나는 발진, 물집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었다. 숨쉬는 일조차 그녀에
게는 부담스런 일이었다. 먼지나 꽃가루, 고양이 털, 유제품, 앙고라 스웨터, 페인트, 
세제와 같은 흔히 있는 것들에 닿으면 그 뒤 반드시 불쾌감으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틀림없이 나는 인생 그 자체가 알레르기인가 보죠"
   이렇게 44세의 헤자는 수줍은 듯이 고백했다.
   이 같은 좋지 않은 증상 이외에도, 몇 번 폐렴이나 기관지염이 병발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겨울도 봄도 가을에도 계속 자리에 누운 채 보내는 것이었다.
   1977년, 헤자와 생물학자인 남편 휘립이 멕시코 시티에서 토론토로 이사온 뒤, 캐
나다의 겨울 기후 탓으로 발작은 더욱 악화되었다. 하지만, 화이트호름 일가가 공기가 
탁한 멕시코의 수도를 떠난 이유는 단 한가지, 의사가 헤자에게,
   "이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5년도 채 못되어 안개 때문에 죽고 맙니다. "
   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 의사는 헤자의 병을 오랫동안 성의껏 치료해 온 몇 안 되는 의사와 의료상담원
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어느 의사는 그녀의 몸이 '전쟁 상태'에 있다고 선언했으나, 결국 평화의 사도 역
할을 자기가 맡게 되면 치료를 단념하는 것이었다.
   다른 의사는 헤자에게 '극도의 전신 피로'에서 회복할 기회를 주려고 6개월 동안의 
절대 안정을 권유하였다. X선 검사와 혈액 검사, 소변검사 등을 철저히 하였으나 모두 
이상이 없었고 원인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의사나 많은 분량의 약-알레르
기제, 항생물질, 항히스타민제, 부신피질 홀몬제 따위-을 처방하여 주었다. 투약은 대
부분의 경우 거의 효과가 없었고, 때로는 새로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일도 있었
다.
   헤자에게는 그 밖에도 심각한 정신적 괴로움이 있었다. 자존심이 상하기 쉬운 그녀
는 겁쟁이였고 남이 하는 비판에 쉽사리 좌우되는 것이었다. 보석 디자이너로서의 장
래성있는 직업도 그녀의 이 같은 적응력이 없는 성격 때문에 그만두고 말았다. 막상 
창작에 열을 올리려는 단계에 이르면, 항상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작업장에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공포는 '솟아오르는 파도와 같이'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어두운 
우울증 상태일 때 더욱 심해지는 것이었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녀가 행복
의 정점에 있을 때, 늘 엄습해 오는 우울증 상태는 그녀의 과민성 증세를 더욱 심하게 
하였다.
   동시에 헤자는, 기분을 상승시키기 위하여 항 우울제를 먹을 수 없었다-항 우울제 
알레르기였기 때문이다.
   휫튼 박사는 증상을 한 가지 한 가지 조사하면서, 헤자의 무능력감이 심한 편이므
로, 이것을 빨리 고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병에 쐐기를 박고 이것을 근치하기 위해서 박사는 우선 일련의 병리학적 검사를 하
도록 명령했다. 그 결과, 헤자의 기관지염과 폐렴에 대한 저항력이 이상하게 낮아서 
끈질기고 골 치아픈 알레르기가 악화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헤자의 감정적 문제도 고려한 끝에-그녀에게서 정신적인 이상은 나와있지 않았기 
때문에-휫튼박사가 취한 견해는 일단, 그녀가 지금까지 억제해 온 심리적인 문제가 육
체적 장해라는 형태로써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퇴행최면을 할 계획일지라도, 그 전에 횟튼 박사는 현재의 생활에 관한 
자세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대개의 경우, 환자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는 경우가 많았
다. 하지만 헤자의 경우는 사정이 다급했으므로, 다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의
사와 환자 둘이는, 현재의 존재에 있어서 치료상 매우 중요성을 지닌 정신적 외상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헤자의 전생으로 급행하기로 했다.
   헤자는 특별히 최면에 걸리기 쉬운 타이프라는 것이 판명되었다-사실 매우 우수한 
피실험자로, 첫번째 시술이 있었던 날 밤, 자리 속에서 휫튼 박사의 기법을 흉내내어 
자기 자신에 게 최면을 걸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상당히 공포심을 느꼈으나, 곧 자기 최면은 매일같이 친근한 습관
이 되고 말았단. 진료시간을 단축시키고 조급히 회복을 꾀하기 위해 헤자가 집에서 최
면상태로 들어가 무의식을 탐색하여, 발견한 것을 일기에 기록하여 휫튼 박사와의 주 
1회 시술 때, 제출하기로 되었다. 
   헤자는 자기의 무의식 내부를 들여다보려고 하였으나, 처음 두 세 번은 잘 되지 않
았다. 마음의 눈이 혼돈된 먼 곳까지 바라다 볼 수 있게 되기까지 참을성 있게 훈련을 
계속하여 그녀는 유사시대부터 석기시대에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3차원 입체상은 분명
한 정보를 얻기에 이르렀다. 정보를 파악해도 그 이미지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큰 일
이었다.
   "어떻게 이다지도 엄청난 짐을 가져 왔어요. 마치 대형 덤프트럭만 하군. "
   휫튼박사는 대량의 일기 복사물을 곁눈질하면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 
써 있는 것은, 공상과 무수한 영상들이 뒤범벅이 되어 얼핏 그럴듯하게는 보이나 궤도
를 벗어난 전생의 여러 가지 행동이었다. 이런 식으로 6주일 동안 계속 '짐'은 운반되
었는데, 횟튼 박사는 이제 슬슬 다른 방법으로 바꿔볼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바
로 그럴 즈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애용하는 팔걸이 의자에 앉아서, 자기 
최면의 트랜스상태로 들어간 헤자가 만난 것은-이소벨이었다.
 
   이소벨 드라먼트의 주위에는, 어딘가 매우 구슬프고 우수를 띈 분위기가 감돌고 있
었다. 훤칠하게 키가 큰 그녀는 긴 검은 머리를 목뒤에서 묶어 올리고, 소매에 두 겹
으로 주름이 잡힌 핑크빛 시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아름답게 가구집기를 조화시킨 
영국집 거실을 요염한 몸짓으로 지나가 검은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그녀는 쇼팽의 
에튀드(연습곡)를 익숙하게 치기 시작했다... 
   이소벨의 독주를 가까이에서 분명히 들은 헤자는 자기 최면에서 깨어나자마자 심하
게 울었다. 지금까지 최면상태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으나, 이렇듯 절실하게 일체감을 
느낀 인물은 처음이었다. 멀지 않은 옛날, 다른 육체 속에 있던 이소벨이 자기와 같은 
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그녀는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 매우 젊은 여성의 모습이
나 피아노의 음색이, 어째서 그토록 자기를 불행한 기분으로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
었다. 휫튼 박사는 헤자가 다음에 그의 진료실에 나타났을 때 그 힘든 상황을 알아차
렸다.
   "어째서 이소벨이 당신을 의기 소침하게 하는 걸까요?"
   하고 박사가 물어 보았다.
   "다시 한번 그녀를 찾아봅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 때까지 그녀의 뒤를 따라가 
봅시다. "
   그날 하루 종일 헤자의 머리에는 이소벨의 일 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소벨이 자기
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날 밤 늦게 자리에 누워 침실의 불을 끌 때가 되어도, 
아직 그녀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전등 스위치에 손을 대려고 했을 때, 갑자기 몸서리 칠만한 충격을 느끼고, 그녀는 
숨이 멎을 뻔했다...전신이 강렬한 충격으로 기절할 것만 같았다. 후에 헤자는 말했
다. 
   "그 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자기 집안에서 아주 끔찍한 자동차 사고
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밖에는..." 
   이 '충돌'이 무슨 뜻인가? 그녀에게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 뒤 자기
가 이소벨의 몸에 있는 것은 분명히 느꼈다. 그녀는 땅위에 누워 있고 오른쪽 반신에
는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자기가 탄 차가 질주하고 벼랑을 돌파한 일을 무서움 속에서 알게 되
었다. 그것은 1931년의 일이었다... 
   이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은 극히 1~2초 사이의 일이었으나, 헤자의 신경은 완전히 
쇠약해졌고 남편의 위로의 말도 별 효과가 없었다. 밤새껏 저 무서운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몇 번씩이나 울었다.
   다음 날 아침, 다섯 시가 되어 겨우 남편인 필립이 잠들기 시작했을 무렵, 정처없
이 걸어서 서재로 들어간 그녀는 타이프 라이터 앞에 앉아 이렇게 타이프를 치기 시작
했다.
   "계속 떨고 있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
   괴로움은 이것으로 끝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사흘 동안, 헤자는 초조하여 
잠을 자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구역질과 심한 기관지성 기침으로 완전히 몸이 쇠약
해져 틀어박힌 채로 있게 되었다. 1979년 9월 1일(토) 오전 4시 20분의 일기에는 이렇
게 쓰여 있다.
 
   <나는 평상시의 예정을 모두 취소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태어나기 4년 전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의 충격과 마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니, 뭐라고 친구들에게 말을 
한담. 다만 또 감기가 들어서 위의 상태가 나빠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내 
병에는 익숙해졌으니까... >
 
   타이프를 다 치고 살며시 침대로 돌아오면서 그녀는 이제부터 겨우 몇 시간 뒤에 
굉장히 어려운 난관을 돌파해야 된다는 것 따위는 알 도리가 없었다. 잠이 쏟아져 오
고 피곤이 몰려와서 저녁 6시까지 쿨쿨 계속 잤다.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떴을 때, 
자기가 알레르기 약의 도움없이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을 알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 더욱 기쁜 것은 두통과 이명도 없어졌다. 항상 그러했던 가슴이 조여드는 느
낌도 마찬가지로 없어졌다. 피부도 깨끗해졌다. 그녀에게는 처음에 이 행운이 믿어지
지 않았다. 수화기 저쪽에서 기쁨을 감출 수 없는 듯이 이야기하는 헤자의 목소리를 
듣는 휫튼박사에게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틀 뒤, 약을 먹지 않아도 알레르기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헤자는 멀리 나가서 외계의 공기에 접해보기로 했다.
   일기에는 그녀의 변한 모습이 이렇게 적혀 있다.
 
   1979년 9월 4일 (목)
   노래의 렛슨 뒤에 K씨와 만나다. 고양이털 투성이인 곳에 앉아, K씨가 계속 피우는 
담배 연기 속에서 숨을 쉬어도, 재채기도 기침도 나오지 않는다. 그 다음부터는 알레
르기 약을 먹지 않고도 괜찮았다. 나에게 있어서는 신기한 일이다. 매우 기쁘다.
 
    1979년 9월 20일(화)
    오늘은 H의사에게 갔다. 어째서 갑자기 알레르기가 완치되었는지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 둘이서 실컷 웃었다. 내가 알레르기 약을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게 되었으므
로 의사 선생님은 기뻐해 주었다. 간호사가 피부가 고와지셨네요, 하고 말했다.
 
   알레르기가 눈에 띄게 좋아져 기쁨에 들떠있는 한편, 헤자는 3주일 동안 발작적으
로 울부짖기도 하고 악몽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휫튼 박사에
게도 가지 않고 자기 혼자의 세계에 처박혀 있었다.
   횟튼 박사에게는 무엇 때문에 헤자의 무의식이 활성화 됐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박
사는 이것을 낙관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주의를 요하는 것으로 보았다.
   환자의 눈부신 회복이 단순한 변덕에 지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까지 하
였다. 헤자가 매주 받는 시술을 다시 시작할 때까지 침착성을 되찾자, 휫튼 박사는 곧 
그녀를 최면상태로 들어가게 했다. 자기의 눈으로 그 자동차 사고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중해의 수평선으로 넘어가는 저녁해를 향하여 이소벨과 로버트라는 이름의 사나
이가 고속력으로 차를 몰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술로 인한 두통 때문에 심하게 말다툼
을 하고 있다. 로버트의 아이를 가진 이소벨은 그와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로버트는 그
런 일은 딱 질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태리의 국경에 솟아 있는 마리팀 알프스 산밑을 지나는 꾸불꾸불한 해
안 도로를 따라 위험한 머리핀 커브 따위는 아랑곳없이, 로버트는 홧김에 차를 계속 
몰고 있다. 좁은 도로가 북동으로 급커브하는 지점에 다달았으나, 그의 차는 속력을 
지나치게 내고 있었다.
   차가 도로 옆의 낮은 난간을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무너뜨리는 순간, 공중으로 날
아가 관목과 나무숲을 뿌리째 뽑아 놓고 벼랑 옆으로 튀어 올라간다. 바위에 차가 심
하게 부딪친 순간, 큰 소리와 함께 폭발한다. 로버트는 핸들사이에 끼어 즉사하고 이
소벨은 의식불명인 채 조수석에서 모래땅으로 떨어진다. 몇 차례나 폭발이 있었고 이
소벨의 오른쪽 반신은 연기와 불길에 싸였다. 우선 드레스에 불이 붙고 다음에 머리카
락에 불길이 옮겨 붙어, 불길은 그녀 얼굴의 오른쪽 옆을 핥고 지나간다.
 
   사고의 충격만으로도 너무 끔찍스러운 형편이었는데, 또 다시 그녀는 공포에 휩싸
이고 말았다. 마침 그 자리에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으므로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그 충돌의 희생자였다. 불타는 차에서 내 뿜는 뜨겁
고 검은 연기가 이소벨의 폐를 태우고 있는 동안 내내, 심한 기침이 멎지 않은 것이었
다-. 언제나 좋을 때는 최면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헤자는 그 뒤
의 구조작업을 지켜보고 모여든 사람의 무리들과 프랑스 소방대의 '사이렌이 아니라 
종이 달린'구급차를 계속 관찰하였다. 들것을 맨 네 사람의 사나이가 아래 길에서 급
한 경사를 올라와 이소벨이 누워 있는 장소로 달음질 쳐 왔다.
    헤자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통스런 자기 마
음의 핵심으로 다가오고 있는 지금, 외면할 수는 없었다. 보고 싶다고 하는 욕망을 억
제할 수 없었다.
 
    이소벨은 병실에 눕혀져 있다. 백의의 간호사들이 큰 거즈 붕대를 물에 적셔서 그
것을 그녀의 빨간 물집이 잡힌 몸에 감고 있다... 그녀는 고통에 신음한다. 오른쪽 반
신 전체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오른쪽 눈과 눈썹은 빨갛게 툭툭 부풀어 오르고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간호사는 젖은 거즈를 대고 2~3분간 놔두었다가는 떼고 있다. 이소벨에게 소정량
의 모르핀을 주사하겠다고 간호사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들 사고로 유산하고 만 
이 환자는 24시간도 못 간다고 느끼고 있다.
 
   헤자는 기분이 나빠진 최면상태에서 깨어났다. 휫튼 박사는 몇 분 동안 기다린 다
음, 차의 잔해에서 발생된 개스 흡입을 거듭 체험했으므로 알레르기의 문제 핵심에 다
가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헤자는 알레르기가 없어져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 일보 전진을 기뻐하
기는 하였으나, 언제나와 같은 우울한 '솟구치는 파도'가 점점 더 강해진 것처럼 생각
되었다. 게다가 최면 상태에서의 무서운 기억과 절망의 파도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
다.
   과거의 무거운 기억에 허덕이면서도 헤자는 다시금 이소벨에게 호기심이 있어, 알
고 싶은 마음은 더해갈 뿐이었다.
    휫튼 박사는 우울증 상태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직도 이소벨에게 분명히 있을 게 
틀림없다고 믿고 더 전생의 탐구를 하도록 계속 격려하였다. 그런 뒤 2~3주 동안에 걸
쳐 헤자가 자기최면을 할 때마다, 자동차 사고에 이르기까지의 이소벨의 생활이 분명
해져 있었다. 그 경험은, 반드시 기분 좋은 것 뿐만은 아니었다. 사실 이소벨을 알면 
알수록, 이 바로 전생의 인격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적어졌던 것이다... 
   뛰어난 피아노의 실력과 유복한 환경, 그 매력, 인기 그리고 넋을 잃을 정도의 미
모의 뒤안길에서 이소벨은 심각한 마음의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재능이 풍부한 피아니스트인 그녀는 젊은 여자가 원하는 것은 모두 가졌으나, 이기
주의적이고 자멸적이며, 진정한 애정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어린 시절
부터 애정에 굶주린 탓이었을까? 어려서 고아가 된 그녀는 부와 미모를 시기하는 가정
부의 손에서 자랐다.
   이소벨은 뉴욕의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위하여, 19세때 영국을 떠나 대서
양을 건너갔다. 1924년의 일이다. 그녀의 매니저는 니코가스라는 이름의 러시아계의 
유대인으로, 미국에서의 연주 출연을 몇인가 계약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하자 곧 이소벨은 프로로서 피아노에 전념하는 시간이 줄어들었
다. 사교계의 화려한 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술과 파티와 난잡한 사교에 시간을 보내
게 된 것이 다.
   이소벨은 영국으로 돌아오자 니코라스와의 결혼을 결정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버
지와 같은 존재인 니코라스만이 마음의 의지처였었다. 하지만 화려한 생활이 완전히 
몸에 밴 그녀는 런던과 남프랑스에서 차례로 정사에 빠지고 만다. 지중해의 해상 파티
에서 로버트와 만났을 때 비로소 그녀는 삭막했던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둘이서 런
던으로 돌아오자, 임신한 것을 알고 이소벨은 그와 사랑의 도피를 하려고 한다. 이것
이 원인으로 니코라스와 큰 싸움이 되고 말다툼 끝에 집에서 뛰쳐나간다. 로버트와 브
가디로 도망친 며칠 뒤, 이소벨은 니코라스가 죽은 것을 안다. 사인은 두 사람의 말다
툼 때문에 일어난 심한 심장발작이었다.
 
   헤자는 자기가 얼마나 이소벨에게서 많은 것을-카르마의 부채뿐만 아니라, 여러 가
지 소인-승계해 왔는지를 점점 더 알게 되었다. 멕시코시에서 자란 헤자도 피아노를 
치고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하여 멕시코 최고의 음악학교에 입학한 것이
었다. 하나의 생애에서 다음 생애로의 이와 같은 연결에 흥미가 쏠리면서도, 특히 거
즈의 붕대에 싸여 이소벨의 화상 입은 모습 따위는 잊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이소벨은 충돌사고로 살아난 것일까? 이 숨막히는 광경으로부터 그 결
과를 알 수는 없으나, 그 해답은 계속적인 몇 차례의 최면상태에서 나왔다. 재능 있고 
아름다운 피아니스트로부터, 한때 자기를 지원하고 우러러본 화려한 사교계를 떠나, 
상처를 받아 죽음을 바라는 여인으로 추하게 전락한 양상을 증언하는 동안에, 헤자는 
악몽을 꾸거나 울거나 하는 일이 많아졌다.
   다음은 헤자가 최면상태에서의 에피소드를 적은 일기에서 요약한 것이다.
   1933년 겨울, 영국의 사섹스주, 라이라는 마을 근처에 있는 해변의 작은 집에서 이
소벨은 간호사와 두 사람의 하인과 살고 있다. 그녀는 느릿느릿 몸을 움직일 따름이
고, 더구나 움직일 때는 고통이 뒤따른다. 이야기할 때도 괴로운 듯한 속삭임 소리 밖
에 내지 못한다.
   나는 용기를 내어 가까이에서 그녀를 보았다-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얼굴! 
상처가 있는 일그러진 얼굴은 오른쪽 눈도 입도 비뚜러져 있다. 머리와 목의 상처는 
연두색 긴 실크 스카프로 가리고 있다. 오른 손은 물집과 주름이 잡힌 피부로 덮여 제 
구실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집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으나, 이소벨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생명은 끝났다. 그녀는 
왼손으로 꽃 그림을 수채화로 그리고 있는 참이었다.
   이소벨은 몇 번이나 이 비참한 인생에 작별을 고하려고 생각해 왔다. 런던에서 유
행중인 옷을 차려입은 에리나라는 친구가 찾아왔을 때, 드디어 이 생각을 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에리나는 소파에 앉아서 홍차를 마시며, 이소벨의 상처를 도려내는 듯한 
이야기를 한 것이 었다.
   "이봐, 이소벨. 당신의 얼굴과 손이 엉망이 됐다는 이야기가 들끓고 있어, 당신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에게는 난, 그건 오해야 하고 말해주
지. 내가 당신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살아 있지 못해. 어떻게 하면 참을 수 있는 거지? 
그게 말이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자기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거냐구... 등등.
   이윽고, 이소벨은 집을 나와 황량한 겨울의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진눈개비에 볼
을 적시면서 집과 해안선을 가로막은 벌판을 가로 질러, 성난 물결이 구비치는 바닷가
를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 자갈이 깔린 바닷가로 통하는 미끄러지기 쉬운 나무 계단을 
몇 층인가 내려가 천천히 극한의 거센 바다로 들어가 계속 걸어가고 있다... 
 
    헤자의 어두운 기분은 그녀가 이소벨로써 마지막으로 땅 위를 걷는 저 몸서리치는 
밤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최면상태에서 거듭되는 체험을 한 뒤, 이소벨을 
삼킨 영국 해협의 솟구치는 우울한 물결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놀랍게도 헤자는 옛날, 
이소벨의 죽는 장면을 선명하게 작문으로 썼던 것이다.
    국민학교 학생일 무렵, 그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생각도 못하고 자기가 품어
온 황당무개한 생각과 감정을 전부 써서 표현한 일이 있었다. 담임 선생은 '아마, 자
네는 매우 불행한가 보구나'하고 말했다.
    이런 말을 듣고 비판을 받았다고 생각한 그녀는 독창적으로 쓰고 싶다는 욕망을 
누르고 몇 년 동안인가 이 분명히 우발적인 추억이라고 할만한 이소벨의 자살에 대한 
기억을 계속 억눌러 왔었다.
   이소벨의 죽음이 어떤 것이었는지가 분명해진 지금, 치료의 파급 효과를 계속 추구
하는 횟튼 박사의 눈에는, 헤자에게 남겨진 심리적인 문제가 차츰 확실해졌다. 박사의 
지도 아래, 헤자는 몇 주일에 걸쳐 열 아홉의 과거생을 조사하였다. 그 과거생 중에
는, 기원 전 13,000년 무렵, 프랑스 돌도뉴에 있는 동굴의 벽화가, 기원 전 3.100년 
무렵, 이집트가 아직 왕국이 되기 이전 시대의 공예가,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2세기 전
에 중국의 장안에 살았던 가난한 기술자, 서기 25년 무렵에, 신성 로마 제국의 루시타
니아 지방에서 아기를 낳다가 사망한 로마인 여성, 프랑스 브리타니 출신인 드루이드
교의 여사제, 15세기의 스페인에서 무참히 살해된 프랑스인의 귀족 여성 등이 포함되
어 있다.
   윤회전생의 대부분은, 헤자가 현재의 전생의 선두주자에 걸맞게 예술이나 공예 계
통에 종사하여 온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번 생에서 예술작품을 창조하려
고 할 경우, 그녀가 무력감에 빠져야만 하는지, 그것을 가르쳐 주는 건 아무 것도 없
었다.
   그녀의 과민증과 자기는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마음속으로부터 느끼는 이유도 전혀 
확실하지 않았다.
   이소벨의 존재를 제외하면, 헤자의 문제와 직접 관계된다고 생각되는 인생은 단 하
나, 헤르디난드 2세 치세 때의 특히 불길한 전생이었다.
    자기최면에 의해, 당시 카스테리아라고 불렀던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반제
린이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귀족인 여성의 존재가 분명해졌다.
    그녀는 카스테리아에서 스페인의 귀족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였다. 사나이
에게는 약혼자가 있었고, 그 인물은 헤자가 이번 생에서 어머니로 인정한 여성이었다. 
두 사람의 여자는 라이벌 관계가 되고 약혼자 쪽은 마침내 종교재판소까지 끌고 들어
가 이반제린을 죄인으로 빠뜨리는데 성공하고 끝장을 보게 된 것이다. 스페인의 세고
비아에 있는 아르카잘 궁전, 지하감옥에서 이반제린의 마지막 최면상태 체험을 타이프
로 치면서, 헤자는 혐오감으로 위가 메슥메슥하였다.

   여러 장면이 뒤범벅이 되었다가 사라지고, 마지막에 나온 것은 벽의 시렁에 횃불이 
걸려있는 지하감옥의 광경이었다. 횃불보다 밝게 불타고 있는 것은 빨갛게 타는 석탄 
화로이다. 그 곳에는 인두와 집게가 꽂혀 있다. 살이 타는 냄새가 주위에 풍긴다. 저
쪽 구석에서 검은  머리의 여인이 두건을 쓴 몇 사람의 우람한 사나이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반제린은 쇠 수갑을 차고 천정에서 쇠사슬로 달아매여 있다. 팔은 어깨 관절에서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고 머리는 힘없이 앞으로 숙여져 있다. 허리까지 옷이 벗겨진 피
부에는 지진 자국과 매맞은 상처가 완연하다. 두 눈은 불로 짖어 멀어 있다.
   이반제린의 위축된 몸은 내려지고, 푸대에 돌돌 말려 독방으로 옮겨진다. 독방의 
문이 닫힌 뒤, 오랜동안 지나자 그녀는 의식을 되찾는다. 다시 시간이 지나자, 쥐가 
나타나 그녀의 몸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간신히 숨만 붙은 그녀에게는 쥐를 쫓을 기력
조차 없다.
 
   이 장면을 보고 헤자는 공포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번의 최면상태에서는 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지금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어
떻게 내가 이 장면을 재현시킬 수 있으리오. 타이프를 치는 것조차 힘든데, 팔은 마비
되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헤자는 지하 감옥에 있는 '검은 머리의 여인'이 어머니라고 인정했으나, 휫튼 박사
는 그 사실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의 모녀 관계를 물어보니, 이야
기는 산더미같이 많았다. 헤자의 어린 시절이 물질적으로는 매우 풍족하였으나 정서면
에서 질투심이 강한 어머니로부터의 애정이나 격려에는 굶주려 있었다.
   어머니의 태도는 애인을 떨쳐버린 스페인 사람 약혼자의 태도와 비슷했다. 딸을 공
격하거나 의기를 소침시키려고 하는 경쟁 상대자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예술에 전념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하고 있었습니다. "
   라고 헤자는 회상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계속 훼방만 당하였었다. 헤자가 마흔 
두, 세살 무렵인 병이 가장 심해 고통받고 있던 시절, 어머니가 지금까지 그녀에게 말
해온 의기소침시켰던 말을 생각해 내고, 자기는 가치없는 인간이며 행복해질 자격 따
위가 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근본적인 치료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마침내 나타나기 시작했다. 횟튼 박사는, 지
금 헤자의 나머지 심리적인 문제는 전생이 아니라, 불행한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
고 거의 확신하였다. 나머지 증상은 종래의 치료법으로 구할 수 있다고 느끼고는 있었
으나 박사는 우선헤자에게, 그녀의 현재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되도록 많은 것을 알기
를 바랐다. 그것은 그녀를 이소벨과 헤자, 두 사람의 인생을 잇는 중간생으로 안내하
는 일이다.
   이 세상의 말로 표현한다면, 이 중간생의 체재기간은 짧았다-1933년 겨울, 이소벨
의 죽음에서, 헤자가 태어난 1934년 여름까지 10개월도 되지 않는다. 헤자는 1980년 1
2월 3일의 일기에, 폭풍우의 영국 해협에서 이소벨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 초의식 상태
가 남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소벨의 몸이 성난 어두운 바다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거센 폭풍우가 노한 듯 
휘몰아치고 있었다. 자기는 한때 이소벨이었으나 지금은 육체를 지니고 있지 않다. 모
든 것을 감싸는 황금 빛 가운데 떠 있다. 기분 좋게 따뜻하지만 공기에 닿고 있는 건 
아니다. 몸은 없지만 주위의 모든 것과 완전히 하나가 된 느낌이다. 모든 방향을 볼 
수 있었다.
   이소벨의 시체를 바라다보는 나에게는 감정이라는 것이 없었다. 단지 혼자이지만, 
공포도 외로움조차도 느끼지 않는다. 그때 빛이 퍼지면서 나는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
처럼 보였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따뜻함과 사랑과 행복을 느꼈다. 주위는 모두 황금
빛인데, 마치 찬란히 빛나는 햇빛을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분열도 고독도 없었
다. 모든 것은 하나였다. 믿을 수 없을만큼 아름답고 평화스러웠다. 엷은 무지개 같은 
색깔이 보이고 단조로우나 아름다운 멜로디를 노래하는 많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곳에서 자기는 전체의 일부이고 그곳이 진짜 자기의 거처라고 느끼면서 행
복감에 쌓여 들떠 있었다.
 
   헤자는 계속 이 찬란한 빛에 쌓인 끝없는 세계에 계속 떠 있고 싶은 기분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보다도 해답을 탐색하고 있었으므로 이소벨의 카르마 대본
이 확실해지려고 할 때, 이 천상의 기쁨에 빠져있을 수만도 없었다.
   이소벨이 자기가 나갈 길을 그대로 걸어가기만 한다면 선택될 수 있었던, 화려한 
창조적인 음악가로서의 오랜 커리어가 그곳에 나타나 있었다. 레코딩도 런던, 파리에
서의 연주회도, 일련의 곡목도 모두 갖춰져 있고 다만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소벨은 중간생에서 세운 계획에서 멀리 떨어져 
방황하고 혼돈과 고뇌로 통하는 문을 열고 노력한 댓가만큼 성장을 계속할 수 있는 가
능성을 쓸데없이 허비하고 말았다.
   헤자는 이 중간생에서 알아낸 사실에서, 현재 그녀의 인생이 긴급한 대책으로서 갑
자기 만들어낸 것이다 라는 것을 알았다.
   잘못 쓰이고 미숙한 채로 끝난 이소벨의 카르마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
진 존재, 그것이 헤자였다. 그녀의 알레르기는, 자동차 사고로 생긴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정신적인 외상의 찌꺼기이상 가는 것이었다.
   알레르기는 그녀에게 과거를 메꾸게 하기 위한, 추진력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이
소벨이 방탕한 생활을 하고 나갈 길을 이탈하지 않았더라면, 헤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써넣었다.
   <이소벨이 지금쯤 죽었다면, 공도 세우고 이름도 빛낸 성공한 사람이 되어 있었겠
지. 그 일을 나는 중간생에서 알았다. 그녀가 참을성 있게 계속 일을 하였었더라면 틀
림없이 성공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역시 가정은 어데까지나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소벨의 행동
은 카르마의 화신에 불과한다, 헤자라고 하는 새로운 존재를 만들었다. 헤자는 전생 
업장의 반동과 끝까지 맞서보겠다는 의향을 자세히 적은 대본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가 이소벨에게 할 수 없었던 것을 메꾸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헤자는 이 인생의 
목표를 찾아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재판관과의 전격적인 만남으로 이어졌
다. '세사람'은 이집트의 신들인 라아, 오시리스, 이시스의 모습으로써, 넓은 신전의 
안쪽에서 그 모습을 나타냈다.
 
    신전으로 들어갔을 때, 고대 이집트의 타악기인 시스드람 소리가 나고 있었다. 소
리는 계속 이어지고, 여기에 손으로 치는 심벌즈와 플루우트 소리가 첨가되었다... 아
름답고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소리다. 나는 이시스 앞에 나갔다. 그녀는 놀랄만큼 키가 
크고 말을 쓰지 않고 이야기한다. 예술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라, 노력하다 보면 해답
을 찾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이시스는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헤자로서 다음의 전생을 살펴보아도, 혼에 있어서는 조금도 격려가 되지 않
았다. 그녀에게 경험하도록 지시가 내려진 것은 좌절과 거절과 눈물이라는 비참한 것 
뿐이었었다. 그에 덧붙여 곤란한 것은, 어떤 어머니의 자궁을 선택하는 게 가장 좋은
가, 하는 문제였다. 그것은 헤자에게 있어서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갑자기 나는 전율과 공포심을 느꼈다.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
했으나 이소벨로서의 보상을 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상을 받았
다. 이 무서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윽고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행
복하게 지내고 있을 때  부터 알고 있던 분이었으므로 조금 기분이 가라앉았다. 할머
니를 좋아했고 또 만나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초의식 여행과 마찬가지로, 3차원 세계를 넘어선 이 여행에도 잊을 수 없
을 만큼 강렬한 각양각색의 인간 감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면회하는 것을 알고 비명을 지를 뻔하였습니다. "
   하고 나중에 헤자는 말하고 있다.
   이 시련 때문에 심한 기관지염과 폐렴에 걸려 병은 몇 주일동안 계속되었다. 일단 
병이 가라앉자 그녀의 기분은 상쾌해지고 침착하며 낙관적이 되고 기관지나 폐의 질환
은 두 번 다시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1980년 12월 4일의 일기에는 그녀의 안정된 모
습이 이렇게 쓰여있다.
 
   솔직히, 나는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작은 희망을 비로소 이번 생에서 느
끼고 있다. 자기가 폭풍우를 극복할 수 있으면, 나이를 먹음에 따라 사태는 호전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이미 나의 인생은 천천히 좋은 방향으로 향해가고 있고, 남들도 내
게 호의를 갖게 된 것 같다. 싸워나간다면, 조금은 예술의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로부터 3년간에 걸쳐 휫튼 박사는 헤자에게 자기의 어린 시절을 파괴하고, 어른
이 된 다음의 인생을 왜곡시켜온 나쁜 영향과의 관계를 개선시켜 '싸워 이기게' 도와
주었다. 최면의 도움없이, 종래 방법에 의한 체계적인 심리요법에 의해 헤자는 자기가 
애정과 존경을 받을만한 가치있는 인간이라고 마음 깊이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자기의 불안감은 타고난 불비가 아니라, 오히려 어려서 받은 감정적인 학대라고 하
는, 카르마상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차츰 헤자의 불안감은 줄어들고 남의 태도에 좌우되는 일도 적어졌다. 자신감이 생
김에 따라,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힘도 생겨났다. 그녀는 남의 의견이 만일 찬성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예전보다 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인 필립은, '새로운' 헤자를 평하기를,
   "지금까지는 자기의 그림자를 무서워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젠 문제없어요! "
   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심기일전한 탓으로 친구도 많이 늘고, 완전히 자유스러워진 헤자에게는 
보석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진에도 새로운 에너지를 기울일 여유가 생겼다. 1983년, 마
지막 심리요법의 시술이 끝나고 한참 지난 무렵, 그녀의 첫번째 작품전을 개최하기로 
되었는데, 그녀의 수완은 개인적인 수집가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미술상인들부터도 주
목받고 있다.
   헤자 화이트호름은 최근 뭔가 어깨의 짐이 없어져 마음을 놓은 기분이다. 예전에는 
꿈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건강과 활력을 되찾은 그녀는,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전생의 인격-특히 이소벨을 생각해 본다. 이소벨이 타고나면서부터 가졌던 특권인 보
수를 헤프게 써버렸기 때문에 자기가 좌절하여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을 지
금의 헤자는 알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1979년의 일기에는 이런 어두운 말이 
적혀 있었다.
   "마치 의미도 목적도 없이 막연히 인생을 표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
   하지만 초의식과 전생의 탐구가 모든 것을 바꾸고 말았다. 한때 이소벨을 파멸로 
몰아넣고, 헤자에게 존재 이유를 제공한 것 같은 자기의 태도를 없애려고 그녀는 날마
다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ff
    제9장 불륜의 상대 

    사랑은 항상 가련하고도 불안 가득한 것이로다.
    제프리 쵸서

   게리 베닝튼은 결혼생활에 완전히 만족하고 있었다. 세상에서는 부부 관계의 파탄
이다, 붕괴다 하는 이야기가 많이 떠도는 모양이지만, 자기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사람
이냐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리와 아내 엘리자베스는 두 사람이 10대 때부터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계속된 다
정한 사이였다. 그가 심리학, 그녀는 영문학으로 각각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 한 뒤 결
혼하고 마침내는 서로 의지하는 남달리 원만한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30대 초에 아들과 딸을 얻고 아이들은 여유있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
랐다. 게리에게 있어 가정은 이상적인 안식처였다.
   그는 박사 학위를 받고 법조계로 들어가 법정 전속 심리학자로서 흉악사건 용의자
의 정신감정에 종사해 왔다. 게리는 처자식을 위하여 살아왔다. 사실 친구들의 대다수
가 이혼하거나 별거하고 있는 가운데, 가족이 화목하게 서로 협조하는 모습은 모두에
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결혼한 지, 16년이 지났는데도 게리의 아내에 대한 정열은 식는 일이 없었고 세월
이 지나도 엘리자베스의 미모와 매력은 더해가기만 했다. 마음이 편안한 집안의 화목
에 만족하 고 있는 게리는, 가정의 의무에서 도망치려고 생각한 일 따위는 전혀 없었
다. 하물며 모험할 기회가 있어도, 유혹에 빠지는 일 같은 건 없었다. 그런 그였으나, 
1982년의 크리스마스 칵테일 파티에서 카로라인 막비티를 만나 시선이 마주쳤을 때 그
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젊은 이처럼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이 순간적인 만남으로 마음이 설레이고,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 게리는 검은 넥타
이를 맨 사나이와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 사이를 정신없이 돌아다닌 끝에 어느 
틈에 열대식물이 담긴 바구니가 걸려 있는 창문께까지 와 있었다.
   복잡한 방 쪽을 바라다보면서, 그는 자기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은, 저 검은 
머리의 여인에게 말을 걸어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손님들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으
려니까, 그녀가 멀리 있는 술과 음식 테이블 사이의 사람들 틈 사이로 모습을 들어내
는 게 보였다. 그녀는 녹색 드레스를 입은 연상의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쪽을 
보고 있다. 차분하지 못한 채 게리는 사람들 통 사이로 성큼 성큼 들어가, 손님의 팔
꿈치와 술잔과 오드불이 담긴 쟁반사이를 지나 그녀 옆으로 다가섰다.
   평상시 성격적으로 거만한 데가 있는 자신 만만한 그였으나, 자기 소개를 하면서도 
어쩐지 계면쩍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고 보니 긴장이 풀리고 
곧 마음이 통하게 되었다.
   "그때의 느낌은 내 집에 돌아와서 마음이 푹 놓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
   게리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주위의 손님들에 대한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 날 밤은 계속 둘이서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이윽고 파티는 끝나고,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만나고 싶다고 두 사람은 생각하였다.
   게리와 카로라인의 관계는 급속하게 또한 열렬히 전개되고, 틈만 있으면 만났다. 
그래도 게리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차츰 적어지는 까닭을 아내에게 숨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내라면 자기가 카로라인과 만나는 것을 알아주리라고 생각하고, 사건이 터지자 
곧 그는 엘리자베스에게 그 사실을 보고한 것이었다. 깊이 상처입은 엘리자베스에게는 
그런 일이 이해되지 않았고, 또한 이해하기도 싫었으나, 거의 3개월 동안 참을성 있게 
게리가 집에 없는 걸 견디면서 두 사람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
다.
   엘리자베스는 비참했다. 화가 나기도 했으나, 무엇보다도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그녀는 지금까지도 게리가 언제고 자기 곁을 떠나가는 게 
아닌가 늘 걱정하고 온 것이었다. 그의 불륜으로 이런 걱정이 '화합'하여 구체적인 모
양의 공포라는 '물질'로 변한 것이다.
   1983년, 어느 얼어붙은 듯이 추운 금요일 밤, 엘리자베스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없어 자포자기에 빠졌다.
   한밤중이 지나 게리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녀는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워있었다. 
그저 자고 있으려니 하고 처음에는 생각했으나, 욕실에서 세면기 옆에 거의 바닥이 난 
수면제  병을 발견하고,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곧 침실로 돌아와 얼굴과 손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아내를 깨웠다.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간신히 눈을 뜨고 힘없이 한숨을 쉴 뿐이었다. 걱정과 자책하
는 마음이 게리의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사이에도 계속 엘리자베스의 절망
의 원인은 분명히 자기 자신이다 라고 하는 생각이 그의 앞에 버티고 있었다. 구급차
를 부르지 않아도 되나? 물론 불러야지...그는 자문자답했다. 나중에 골치아픈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하지만 이렇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는 직업적으로 온 동네의 구급차 운전기사에게 얼굴이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스 
역시 병원의 인턴에게서 질문을 받으면 당황해 할 게 틀림없다. 또한 비극으로 끝난 
그의 정사가 법의학 관계의 동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것이다.
   이런 초조한 자기 모순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게리는 엘리자베스를 혼수 상태로 
놔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 엘리자베스를 흔들기도 하고 두 손을 부벼도 주고 
그런 일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하지만 주로 그녀에게 이야기를 계속시키는 일에 힘
을 기울였다.
   그렇게 하는 사이에 어언 아침 햇살이 침실의 블라인드 틈 사이로 비쳐들었다. 엘
리자베스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완전히 의식을 되찾았다. 의식이 돌아오기 훨씬 전
부터, 게리는 또 한 사람의 여인 카롤라인의 일은 마음 속에서 결말을 내리고 있었다. 
정사는 완전히 끝난 것이다.
   게리가 두 사람의 관계를 갑자기 끊을 것을 결심했기 때문에 카로라인은 타격을 받
았다. 곧 그녀는 이에 대답이라도 하듯, 50대 초반의 돈 많은 독신 남성인 제임스 휴
즈와 새 생활로 들어섰고 그 사나이와 3개월을 함께 살았다. 그 뒤 그가 자기만을 위
해주지 않는 것에 속이 상했는지 카로라인은 진정으로 자살을 도모한다.
   영화 속의 자살 장면을 모방하여 욕실에 쇠기구를 설치한 것이다. 휴즈가 몇 분 뒤
에 귀가하여 샤워꽂이에 묶은 밧줄에 매달린 그녀를 발견했다. 밧줄을 끊고, 그녀를 
내려놓은 다음 토론트의 병원으로 급히 달려가 그 곳에서 그녀는 꼬박 두 달 동안 입
원하였다.
   카로라인이 자살을 기도한 것은 휴즈가 정열을 쏟아 그녀를 사랑해주지 않은 게 직
접적인 원인인 듯이 보였으나, 친구들은-또한 휴즈 자신조차도-그녀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것은 게리에게 대한, 진정이긴 했으나 불의의 사랑 탓이라고 주장하였다. 휴즈는 
나중에 카로라인을 회복시키기 위해 열심히 공헌했다.
   1년 남짓한 사이, 그녀가 매주 비행기로 뉴욕에 가서 정신분석가의 심리요법의 시
술을 받는 비용을 부담한 것이다. 굳이 뉴욕까지 간 것은 휴즈가 토론토의 분석가를 
신용하고 있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석가의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게리
와 아는 사이였으니까... 
   게리 베닌톤의 생활은 다시 이전의 차분한 페이스를 되찾았다. 상처 입은 그의 결
혼 생활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호전되고 있었다. 에리자베스는 용서하고 잊어버리려고 
힘껏 노력했고 나는 또한 당신의 것, 당신만의 것이라고 하는 게리의 말을 믿었다.
   게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변명할 수가 있었다. 자기 사회 생활에 있어서의 눈부신 
공적에 비한다면 불륜따윈 지극히 하찮은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흔히 인용되
는 한 구절이지만, 버트란드 럿셀도 <결혼과 윤리>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닌
가.
   "어른의 심리는 종래의 윤리에 의하여 잘못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일
부일처주의 결혼이 지켜지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한 사람의 배우자에게 이끌려 생활하
는 것과, 또 하나의 다른 사람을 진지하게 사랑하는 일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
다. 하지만 누구나 그것이 허위라는 것을 명백하다. "
   게리는 자기자신에 대하여 너무도 관대하였다. 하지만 잊을 수는 없었다. 카로라인
을 잃은 일과 아내의 자살미수에 대한 책임에 관해 그는 자기 자신과 절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어이없게도 이런 행동을 저지르게 된 그 뒤에 숨은 이유를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고 싶었다. 그녀에게 뭔가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었던 것일까? 억압당하
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엘리자베스와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의 로맨스에 하는 수 
없이 빠져들게 된 원인이나 잘못된 점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또 한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그와 카로라인이 서로 느낀 친근감의 원인
은 단순히 일시적인 운명의 장난을 훨씬 넘어선 곳에 있는 건 아닐런지?
   게리는 윤회전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정사에 대하여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문
득 어떤 친구가 횟튼 박사는 퇴행최면에 흥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던 일이 생각났
다. 전문가로서 대단히 존경받고 있는 게리는 그가 정신감정을 잘한다는 점에서는 정
평이 있었으므로, 당연히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빌린다는 것 따위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 철저하게 조사하는 일을 오랫 동안 망설이고 있었다.
    겨우 휫튼 박사를 찾아내어, 그는 문제의 사건에 대하여 신중하게 설명하였다. 적
어도 그 사건이 끝난 지 8개월이 지나고 있고 그는 이제 고민하고 있지도 않았고, 급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어째서 자기가 그토록 심하게 불륜
으로 빠져들어 갔던 것인지, 그는 분명히 알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리의 인품과 결혼 경력을 모두 들은 다음, 휫튼 박사는 이 정사는 단순한 심리적
인 이유에서 생긴 게 아니라고 느꼈다. 그 결과 박사는 게리를 최면에 걸고, 그와 카
로라인이 함께 했던 인생을 찾도록 지시했다. 그것을 알면, 아마 이번 생에서의 두 사
람의 친분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최면상태로 들어간 게리의 최초의 반응은, 당돌하고 극적이었다. 그는 곧 비행기 
엔진의 굉음과 코를 찌르는 석유 냄새에 몸을 움추렸다... 그는 피터 허그리뷔스라는 
이름의공군 소위로 이태리의 사레르노 부근의 활주로에서 이륙 준비를 끝내고 비행기 
옆에 서 있다.
   이태리의 국토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파괴되고, 영국 공군의 주둔이 연합국 측의 
이태리 전선에서의 사활을 쥐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1944년의 일이었다.
 
   허그리뷔스는 영국 공군의 정보장교인데, 직무상으로 파이로트가 아니나 비행 훈련
은 받고 있다. 독일이 반격을 위해 대대적으로 변참기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
내는 공군 사진을 보고 불안해진 그는 저공 비행으로 문제의 지역을 정찰하고 더 정보
를 얻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무기를 탑재하고 있지 않은 무스탕 P52에 태워달라고 간청해 보았으나 동료인 
장교들에게서 거절당했다.
   모두들 그에게 그런 활동은 무모한 것이다, 현지를 확인하는 일은 공중 정찰의 부
서 사람에게 맡겨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허그리뷔스는 그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조종석에 올라 이륙했다. 하지만, 목적 지점
에 가까이 가자, 그의 비행기는 독일의 전투기에게 방해를 받아, 단발기의 동체에 탄
환이 둔탁한 소리를 내고 박힌다. 탄환중의 한 개가 그의 왼쪽 다리를 관통하고, 그 
때문에 그는 후트페달을 제대로 조작할 수 없게 되고 하는 수 없이 들판에 불시착하고 
만다.
   그는 잡히고 기차로 북방으로 실려가, 나치스 친위대의 심문 센타로 연행된다. 그
곳에서 그는 부상 입은 다리의 간호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위독한 지경에 이른다.
   허그리뷔스는 텅 빈 작은 방으로 들어가게 됐고, 연합국 측의 작전에 대하여 말을 
하라고 몇 차례나 얻어맞는다. 식사나 수면, 의료처치를 박탈당하는 가혹한 학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치 있는 정보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의 영웅적인 행위의 보상은 고민한 끝의 죽음이었다. 죽음 직전의 그에게 집요하
게 군사 기밀을 자백하라고 강요하던 나치스의 고문관은, 마지막 수단으로 손가락의 
손톱을 벗겨버린다... 
 
   게리는 와들와들 떨면서 최면상태에서 깨어났다. 그는 최면상태에서 허그리뷔스의 
육체적인 고통은 당하지 않았다 치더라도, 이 비극적인 장교의 절망과 고독을 신물이 
나도록 경험했다.
   전쟁 중 이태리의 군사행동에 관한 것은 의식이 있을 때의 지식에는 없었으나, 게
리는 처음에 그 체험의 정확성을 의심하였다. 까닭인즉 최면상태에서는 몬테카씨노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 저기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일까요?"
   그는 휫튼 박사에게 물어보았다.
   "어째서 전쟁 중에 도박의 명소같은 것이..." 
   게리는 몬테카씨노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몰랐으나, 한때 그곳에는 커다란 수도원
이 계곡 입구에 솟아 있었고 전투 중, 가장 큰 싸움에서 그 이름이 등장되고 있었다.
   1944년 2월에 연합군이 로마로 진격했을 때, 이 수도원은 600톤의 폭탄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
   게리는 바쁘게 생각을 달리면서 1984년 3월의 그 날, 휫튼 박사의 진찰실을 나왔
다. 자기의 인생을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설명되지 않았던 경험이나 자기의 버릇에 
대하여 납득되 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면 상태를 체험한 덕분에 아직껏 잊을 수 없는 공포의 한 순간에 대한 것이 이해
되었나, 엘리자베스와 만나기 조금 전인 열 여섯살 무렵, 한 순간 섬광이 번쩍이는 듯
한 공포가 그의 감각 속으로 사정없이 파고 든 일이 있었다.
   파티에서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 일어난 이 순간적인 오싹할만한 환상은 그
를 텅 빈 방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나치스의 제복을 입은 장교에게 손톱을 뽑힌 것이
었다.
   이 플레시백(회상)이 일어난 것은 그가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을 때였으나, 자동
차의 후페달 조작 때, 무의식적으로 피터 허그리뷔스가 비행기의 페달을 밟았을 당시
의 그 당황함을 생각케 했고 그런 탓으로 고문 장면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었을까
?-새삼스럽게 게리는 놀라는 것이었다. 이 기억이 되살아난 덕택으로 게리는 더욱 먼 
과거를 헤매었다. 그러고 보니 자기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성장했는데도 어렸을 때 영
국의 액센트로 말을 했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그를 양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액센
트는 이윽고 없어졌으나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지금까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최면 상태에서의 에피소드는 게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안고 온 다리의 골절에 대
한 공포증도 설명해 주었다. 이 공포증 때문에, 그는 계속 스키의 활강같은 위험한 스
포츠를 하기를 망설였던 것이다.
   또한 근거도 없이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하는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이 되었다. 
그는 그와 같은 공포를 극복하려고 조종사 자격증을 따려고 생각한 일도 있다. 본능적
으로 작은비행의 조종법을 알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리라. 그의 행동을 속박하여 온 것
-지금으로서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은 무모함에 대한 공포에 지나지 않았다. 
이 무모함은 아마도 게리의 성격에 그 편린을 남기고 그런 탓으로 특히 운전 중 같은 
때, 몇 번이나 위험한 일을 당하고 있다.
   게리는 다음에 정보 수집이라는 자기의 일의 유사성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았다. 법
심리학은 분명히 그의 전생의 직업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또한, 어째서 손톱을 씹는 버릇이 들었는가, 어째서 도착된 고문을 즐겨 쓰는 버릇
이 있는지 그는 잘 알 수 있었다. 게리는 생각한 것 보다 깊게 자기를 알 수 있었으
나, 아직 자기의 떳떳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이유를 깨닫지는 못했다. 다음의 시술에
서는 그의 지난번의 과거생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불륜의 상대와 대면하게 되었다... 
 
   퍼터 허그리뷔스는 영국 상층 중류 계급의 천주교 신자의 가정에 태어나 이태리인 
유모의 손으로 자랐다. 연합국이 이태리 본토에 교두보를 만들었을 때, 그는 유창한 
이태리어가 인정되어, 지방에 있는 레지스탕스 투사와의 연락병으로 소집되었다. 사레
르노에서 레지스탕스 운동과 관련되어 접촉한 사람은 주로 에레나 봇치라는 젊은 여성
이었는데, 그 여성이 그에게 산 속에 있는 빨치산과의 연락을 주선해 주었다. 처음부
터 허그리뷔스와 에레나는 강하게 서로 끌렸고 위험이 끊이지 않는 상황 아래서 일하
는 사이에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에레나의 아버지는 얼마 전의 전투에서 
사망했고, 허그리뷔스는 곤궁에 빠진 봇치 일가를 부양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에 적
극적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나는대로 그녀와 결혼할 약속을 하고 있었다.
 
   허그리뷔스는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전쟁에서 살아 돌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나치스에게 잔혹한 취급을 받은 것과 에레나에 대한 사랑과 미진한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는 사후에도 몇 주일이나 이 세상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중간생인 곳을 처
음 찾았을 때, 자기 전생의 인격이 아직도 지상에 억매여 있고 감정 특히 노여움 때문
에 신경이 고조되어 있던 것을 게리는 알았다.
   허그리뷔스가 격추 당한 것은 나치스의 첩보원이 빨치산에 잠입한 후, 그가 계획한 
모험비행에 대하여 독일측에 경계 태세를 취하게 한 탓이었다고 하는 것을 초의식의 
상태에서 알았다. 허그리뷔스의 육체를 떠난 혼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서, 몇 번씩
이나 배신당했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내는 것이었다.
   에레나는 허그리뷔스의 죽음을 지하 루트에서 알았다. 중간생에서 에레나를 지켜보
면서 허그리뷔스는 그녀가 실망의 극점에 이른 것을 안다. 그녀의 실망은 급속히 깊어
지면서 오랜 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하게 되었다.
 
   그는 자살하려고 마음 속으로 정한 에레나가 사레르노 근처의 벼랑 꼭대기를 향하
여 걸어가는 것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녀가 벼랑 끝에 다달았을 때 허그리뷔스의 혼은 그녀를 자살하지 않게 하려고 억
지로 자기의 몸을 물질화 시키려 몸부림친다.
   "자기에게 육체만 있다면, 결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 
   그의 마음은 몇 번이나 그것만을 생각하였다. 육체를 갖지 않은 상태에 완전히 낙
심한 그는 에레나가 뛰어내려 죽는 장면을 다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애인의 자살을 막으려고 하는 허그리뷔스의 헛된 노력을, 눈치 채이지 못한 건 아
니다. 카로라인은 명상에 의해 몇 번의 과거생을 생각해 냈으나, 바로 전 전생의 마지
막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은 게리의 최면 상태에서의 설명과 완전히 일치된다. 벼랑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힘과 격투한 일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
   에레나의 자살을 막지 못한 허그리뷔스의 혼은 나치스 친위대의 고통스런 심문센터
로 돌아간다. 이곳에서도 또한 그는 개입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자기를 도와준 죄수들
에 대한 고문을 중단시키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다. 배신에 계속 화가 나는 한편, 그는 
에레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죄악감을 느끼고, 그녀를 죽음에서 구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의 무
능을 책망한다.
   그는 또한, 심문센터에서 비참하게 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를 말리지 못한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현명한 연상의 가이드 같은 존재가 그에게 접근하였을 때, 
겨우 그는 지상에 연연하는 것을 단념했다. 마지못해 그는 허그리뷔스의 인생의 비극
무대를 떠났다.
   게리가 카로라인에게 끌린 이유는, 피터 허그리뷔스와 에레나 봇치와의 연애관계로 
설명이 됐으나, 두 사람의 관련은 더 깊었었다. 횟튼 박사는 게리를 도와 러시아인이
었을 때의 인생을 찾아냈으나 그곳에서 그는 누이동생과 근친상간의 관계에 있었다. 
그는 세바스찬 우두노프라는 이름의 오동통한 사나이였고 카로라인은 그의 누이동생인 
리젠카였었다.
 
   18세기 중엽, 세바스찬은 제정 러시아의 여왕인 가자리나 에리자베타 페트로드나의 
밀사로서, 루이 15세의 궁정에 파견되었다.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가 미묘한 관계에 있
었으므로, 그의 주된 외교상의 임무는 비밀 첩보원의 일과 비슷한 것이었고 스파이 방
지활동과 고국으로의 무기 수출공작을 다루고 있었다.
   세바스찬은 외교의 필요상 하는 수 없이, 리젠카와 떨어져서 살지 않으면 안되었
다. 오빠를 깊이 사랑하고 있는 리젠카는 그가 빠리나 베르사이유에서 다른 여자와의 
관계에 말려들지나 않나 하고 끊임없이 걱정한다.
   오빠의 행동에 대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소문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질투한 그녀는 존경하고 있던 아는 사람과 충동적으로 결혼하고 만다. 불과 2주일쯤 
뒤, 그녀는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관계를 계속할 수 있는 희망을 잃고 절망 끝
에 목을 맨다. 프랑스로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세바스찬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고독과 불행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엘리자베스가 수면제를 마신 날 밤, 게리와 카로라인이 러시아 요리를 파는 레스토
랑에서 식사를 한 것은 우연의 암호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게리는 점점 우연을 
믿지 않게 되었다. 월터 페이터의 말을 빌리자면 '기호란, 예전에 알았던 문화의 기억
이다. '
   윤회전생의 체험으로 비춰보면, 모든 것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게리가 최
면상태로 들어갔을 때, 자기 자신과 자기가 취한 행동이 끼치는 작용. 이에 대한 반응 
등이 바로   가까이에서 비춰졌다.
   게리의 직업에 있어서 비슷한 기능이나 능력의 연결, 또한 카로라인의 자살지향이
라는 두 가지 큰 테마가 나온 셈이지만, 이것은 이안 스티븐슨 박사 등 윤회전생의 연
구자들이 보여주듯, 생애에서 생애로 파급 효과가 미친 셈이다.
   전생의 역사를 안 지금, 어째서 게리와 카로라인이 아직도 불륜의 관계를 맺지 않
으면 안되었는지, 그 이유는 분명해졌다. 그것을 알게 되었어도, 게리의 결혼에는 아
직도 의문이 남는다. 그와 엘리자베스도 예전에 인생을 함께 했던 일이 있고 다시 함
께 된 것일까? 다음의 최면 시술에서는 게리가 19세기에 제레미 에봐렛드 라는 옥스포
드 대학의 수학강사였을 때의 일이 나타나고 그대로였음이 분명해졌다.
 
    제레미는 몇 년째 이중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에 강연과 학생 지도가 끝나면 
아내와 어린 아들 둘이 사는 옥스포드시 교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주중
에는 대학구내에서 살고 있고 두 어린 딸을 데리고 있는 애인을 근처에서 돌보고 있
다.
   제레미는 이 두 딸의 아버지로서 그 양육과 교육을 보증해 준다는 약속을 하고 있
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제레미는 30대 중반에 폐렴이 도져, 그에게 생
계를 의지하는 두 가족을 남기고 갑자기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내 쪽은 충분히 생
활을 보장받았다. 가옥의 소유권이니 잡다한 유산 같은 것을 받았던 것이다.
   애인과 그 아이들 쪽은, 그다지 행운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제레미는 젊어서, 앞날
의 일까지 생각하지 않았고 애인과 그 가족을 위하여 저축을 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롭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그의 탓이라고 연인을 잃고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애인은 
그를 저주한다... 
 
   이 게리가 영국에서 윤회전생했을 때, 아내가 누구인가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
만, 지금의 그 아내와 그가 죽었기 때문에 버림받은 애인과는 틀림없이 같은 사람이라
는 것이 최면상태에서 분명해졌다.
   엘리자베스는 역할을 바꾼 셈이나, 이것은 그룹 전생의 특징이다. 게리에게는 차츰 
엘리자베스가 몇 차례나 되는 전생을 비밀 연인으로서 함께 생활해 온 일이 판명되었
다.
   틀림없이 현재 두 사람은 비로소 떳떳하게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처럼 생각되
었다. 더욱 퇴행최면을 계속하니까, 고대 이집트의 인생이 분명해진다.
   당시 엘리자베스는 미모를 인정받아 파라오의 아멘호테프 3세의 배우자가 되고 한
편 게리는 왕궁을 지키는 호위관의 장관이었다. 두 사람은 은밀히 정사를 거듭하였으
나, 게리가 싸움 때문에 살해되었을 때도, 엘리자베스에게 있어서는 연인을 잃은 것뿐
이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체험해온 엘리자베스가 남편과 자기 곁을 떠나는 게 아닌
가 하고 늘 두려워한 것도 조금도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먼저 번의 실례는 이미 전생
에서부터 있었던 것이다.
   게리 자신의 공포가 된 과거생부터의 원인이 차츰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자기 가
족의 경제적인 보증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영국에서 애인에게 약속을 완수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최대의 걱정거리는 처자식을 위해 충분한 것을 해주지 못하는 게 아
닌가 하는 부담이다. 어째서 자기가 만일에 대비하여, 쫓기듯이 고액의 생명보험에 들
었는지 그에게는 겨우 납득이 되었다.
   1944년, 피터 허그리뷔스의 죽음으로부터 2년쯤 지난 뒤에 자기가 태어나기까지의 
바루도로 돌아왔을 때, 게리는 전생에서 생긴 감정적인 동기에 의해 엘리자베스와 카
로라인과 자기의 세 사람이, 각각의 성격을 개선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게리가 재판관들을 만나기 전, 자기가 육체를 갖추고 있는 듯한 느낌
이 들었으나, 그 육체에는 손가락이 없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것은 분명히 나치스의 소행이 투영된 것이다. 그는 세 사람의 재판관이 예수 그
리스도를 이상화시킨 모습이라고 느꼈다. 이렇게 느낀 것은 아마 허그리뷔스가 카톨릭 
교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세 사람의 재판관은, 자기의 혼이 누구인가를 잘 알고 있다고 게리는 확실히 느
낀다. 또한 피터 허그리뷔스의 인생을 돌이켜 보는 일이 진행됨에 따라 없어진 손가락
이 자기의 '그림자의'몸으로 돌아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젊어서 목숨
을 잃어버리는 원인이 된 무모함이 허용된-더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자기를 용서한-
일을 상징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그는 믿었다.
   '세 사람'은 그에게 몇 번인가의 전생에 끼친 그의 분별없는 성격에 대하여 주의를 
주고 그 성질을 억제할 수 있을 때까지, 다시 군무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1970년대 초, 게리는 정보장교로서 베트남 전선의 미국 육군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
지만 그의 내면의 소리가 끈질기게 속삭였기 때문에 이것을 단념했던 것이다. )
   또한 '세 사람'은 그가 지식이나 지적인 능력에 자만심을 갖고 있으나, 인간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도 말했다. 약하고 어리석어질 필요는 없으
나, 온유하고 겸손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게리에게는 지금도 타고난 무분별과, 교
만으로 나타나고 있는 능력에 대한 자만심, 공사간에 타인으로부터 배신당하지나 않나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버릇이 남아 있고 그는 이것들을 극복하려고 하고 있다.
   세번째 문제점에 대해서는 재판관으로부터 지적된 것은 아니었으나, 배신에 대한 
노여움은 중간생에 있는 동안 구제받지 못해 마침내 이 부정적인 면이 이번의 전생에
까지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자기와 친한 사람-이를테면 형 글레암-의 
문제도 그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태였다.
   게리와 카로라인이 밀회하기 시작했을 무렵, 엘리자베스는 글레암을 믿고 비밀을 
털어놓아 원래의 평온한 가정으로 되돌리기 위해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그래
서 글레암이 동생을 저녁식사로 초대했는데, 게리는 다정하게 사랑해 주는 형에게 마
음속을 털어놓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찾아갔다.
   그러나 글레암이 엘리자베스의 대리인으로서 게리의 처신의 잘못을 따졌으므로 게
리는 완전히 형의 행동에 상처를 입고 말았던 것이다.
   4개월간의 최면요법으로 게리는, 인간 행동의 이면에 숨은 동기뿐만 아니라 자기가 
놓인 상황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과거생과 초의식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에 그는 신랄하게 사람을 비판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지 않는 카르마
의 영향력을 마음에 두고 있는 그는 자기에 대해서나 남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너그러
운 태도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죽음을 무릅쓴 항의의 결과로서 뿐만이 아니라, 게리와 카로라인이 
끊임없이 주변의 상황에서 자극을 받은 결과, 끝난 정사의 원인을, 게리는 마음속으로 
완전히 해명 했다.
   감정적인 계피가 두 사람을 이어주기는 했으나, 그 관계는 중간생에서 계획된 게 
아니었으므로 이번 생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결정이었다.
   "나와 카로라인은 마치 대사를 잘못 외운 배우 같은 것이었습니다. "
   이 같이 게리는 말한다. 한편, 그와 엘리자베스의 관계는 호흡이 잘 맞은 이중창이
라고 할 만한 것이었고 약간 제3의 목소리에 방해를 받았다고는 하나, 막이 내릴 때까
지 이대로 계속되는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게리의 카르마 케이스 스터디는 온갖 애정 갈등의 본질에 대해 영원한 문제를 던
져 주고 있다. 오래 된 통계지만, 1953년에 간행된 성문제의 연구가로서 유명한 킨제
이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기혼남성의 거의 반수와 기혼여성의 4분의 1이 일생 동안에 
적어도 1회 이상, 혼외정사에 관여한다고 했다. 이런 종류의 결함이 생기는 것은 거의 
결혼생활에 싫증이 생겨 그 톤에 비집고 들어오는 이른바 '경계밖의'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성적 매력에 끌려가기 때문이다.
   최초의 열기가 식으면 연애 관계도 허물어지고 그와 같은 불륜은 대개 곧 좌절되고 
만다. 하지만 강렬한 감정과 성의 유인력이 결합하여, 진정한 애정있는 불의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 같은 또 다른 연애 관계도 있다. 게리의 최면에 대한 체험은, 다른 윤
회전생에서의 친밀감이, 이와 같은 감정을 한번 이상 불러일으키게 하는 중요한 원인
이 되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ff
    제10장 한줄기 빛
 
    그렇다면 이 칼로 하여금 조개처럼 닫혀있는 세상의 
    입을 벌리고 진주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월리엄 섹스피어
 
   휫튼 박사의 진료실에 있는 빨간 가죽 소파 위에서 린다 아뷩은 공포에 몸이 굳어
지면서 활처럼 휘어진 긴 칼이 자기의 옆구리에 꽂히는 것을 보았다.
   칼을 가진 사나이는 복면을 하고 있다. 은빛의 칼이 늑골을 꿰뚫고 복부를 찔렸을 
때, 린다는 칼이 너무도 잘 만들어진 것에 넋을 잃고 멍하니 보고 있었으나, 다음 순
간, 목 안에서 쥐어짜는 듯한 무서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소리를 치며 죽어가는 것
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인격을 분담하고 있는 이 거한인 그도 똑같이 죽은 것
이다. 그, 다시 말해서 루돌프 마이어라는 이름의 살인범은 콘셰리 쥬리라고 하는 파
리의 감옥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1761년의 을씨년스럽게 춥고 구질구질한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루돌프의 몸이 땅 바닥에 쿵하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있던 것은, 린다도 루돌프
도 아니고 두 사람을 포함시킨 존재였었다. 이 육체를 빠져나간 자기를 매체로 하여 
린다는 살인범인 루돌프가 감옥의 컴컴한 골목을 빠져나가 날아가는 것을 바라다보았
다.
   독방동에 죽 늘어선 높은 창살 달린 창문 건너편의, 횃불로 검게 그을은 더러운 것
을 바라다보면서, 그녀는 잠시 루돌프의 시체 휠씬 윗쪽에 떠 있었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 왔다. 린다에게 루돌프에게서 멀리 떠나가도록 재촉하는 휫
튼 박사의 목소리였다.
   "자 앞으로 가십시오. "
   박사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무엇이 보입니까?"
   갑자기 어둠이 사라지면서 강렬한 빛으로 변하고, 린다는 약동하는 빛의 터널로 빨
려들어 갔다. 무서움도 근심도 사라지고 지금에 있어 시간과 공간은 기억에 남아있는 
것에 불과했다.
   터널을 지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빛으로 가득찬 끝없이 넓은 곳으로 들어가니까, 
린다는 너무나 편안해서, 아름다움과 평안함이 일체가 되었다.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
분이었다.
   주변의 찬란한 빛에 익숙해지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린다는 대리석의 광장에 
있었다. 이 광장도 지금까지 지나온 곳과 마찬가지로 강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재판관 같은 존개가 세 곳의 구석에 있고, 남은 한 구석에 린다가 착석하자, 방금 
끝난 인생을 극히 객관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었다.
   "이야기하시오. "
   재판관들이 소리를 합해 명령했다. 린다는 자기가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된 것은 자
업자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재판관들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가 루돌프였을 때 저지른 업보 때문에, 
다음 번의 마리아 드봐로서의 인생에서는 오랫동안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라
고 말했다.
하지만, 하나 건너 다음 인생인 린다 아뷩으로서 윤회전생할 경우에는, 잘못했던 점을 
뒤돌아다보고 그것을 고쳐나갈 것이다 라고 세 사람은 가르쳐 주었다.
   현재의 린다는 30세의 몸집이 작은 여성으로 행동거지는 부드러우나, 분명한 성격
의 소유자이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커피나 알콜을 멀리 하고 요가와 명상법을 실천
하며, 여가에는 수채화를 그리거나 사교춤을 가르치거나 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대
부분 인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심리요법사로서의 일이다.
   데트로이트의 고등학교 재학 중, 린다는 치료 관계의 일에 종사하려고 작정하고 있
었다. 캐나다로 옮겨가서 토론토대학에서 심리요법을 공부하기로 하고 졸업 후에 토론
토 서쪽 변두리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본능과 직관에 이끌려서 사고나 병으로 심신에 결함이 생긴 사람들을 돕는 
이 일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전생과 중간생을 차례로 여행하여 보고, 비로소 어째서 자기가 이렇게 강하게 이 
일에 끌렸는지, 그녀로서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더욱 몇 번씩이나 최면 여행을 거
듭한 결과, 그녀가 자기의 가능성을 완전히 발휘하려고 해도 그것을 방해하는 듯한, 
때 없이 엄습해 오는 의욕을 감퇴시킬 만한 우울과 폐쇄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이다.
   초의식을 통해 린다의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거의 알아낼 수 있었다. 린다의 카르
마에 대한 케이스 스타디가 시작된 것은, 그녀가 루돌프 마이어와 만나기 훨씬 이전의 
일이었으나, 그 무렵의 인생은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전생을 찾아보면 오랜동안의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린
다는 1983년 11월 친구의 권유로 휫튼 박사를 찾았다. 문제가 어린 시절에서 오는 것
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린다는 지금까지 계속 어려움을 참아 왔던 것이었다.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분별이 없는 사람이었고, 자포자기가 되어서는 어머니와의 사
이가 파경에 이르는 막바지까지 간 일이 자주 있었다. 하지만 린다는 아버지의 문제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위기에 처한 집안도 그녀의 덕분으로, 이산가족의 슬
픔을 맛보지 않고 지날 수 있었다. 젊었을 때의 시련이나 집안 내의 골치 아픈 일에도 
굽히지 않고 린다는 오히려 강해진 것이었다.
   그녀는 원래 냉정하게 자기를 분석해 보는 성격이었으므로 10대 때는 힘든 가정 환
경과도 어떻게든 타협하면서 지날 수 있었다.
   린다는 20대 후반이 될 무렵에, 정기적으로 닥쳐오는 의욕을 감퇴시키는 우울한 상
태만 없었다면, 보다 더 환경에 잘 순응하여 나갈 수 있겠는데 하고 느끼고 있었다.
   우울증과 관련하여 어쩐지 자기의 천부적인 성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는 듯한 폐
쇄감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한계를 느끼고 마는 것은 틀림없이 내가 전생에서 지니고 온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없애지 않고서는 진보는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
   라고 린다는 말한다. 말하자면 감정의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여
러 모로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그녀는 이것 때문에 마음을 여는 일도 남에게 호의를 보이는 일도 하지 못하고, 공
적인 장소에서 말하는 것이 무서웠었다. 사람과 상대 할 때는 늘 '자기가 자기 아닌 
남처럼' 느껴
졌다. 또한 그녀는 또 한가지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대단한 실패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늘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공포증 때문에 린다는 소극적이고 무기력해져서, 보이지 않는 힘에 앞길을 저지
당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린다는 윤회전생을 믿고 있었으므로 전생의 존재를 확신시켜 줄 필요는 없었다. 하
지만 횟튼 박사와의 처음 두 차례의 시술에서는, 중세시대, 영국 어딘가의 성에 얽힌 
이미지의 소용돌이에서 자기의 상상이 솟아나오는 것을 느꼈다.
   린다는 갈색, 노랑, 파랑색의 짧은 자켓을 입은 죤이라는 성의 호위병이었다. 그러
자 어디선지 모르게, 1842년이라는 연대가 그녀의 마음의 스크린에 비쳤다. 1842년으
로서는 분명히 시대가 너무 어긋난 것이다라고 린다는 생각했다. 하지만 중세의 이미
지는 계속 오락가락하고, 마침내 이미지 이상의 것이 되었다.
   죤이 숨을 헐떡이며 말이 끄는 객차 뒤를 쫓아가, 멈춰! 하고 외쳤을 때, 이미지는 
현실적인 사건이 되고 그녀는 이미 자기가 린다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마차는 멈추려
고 하지 않았다... 
   린다가 평상시의 의식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전생 체험이라는 비의에의 참여가 시
작된 것이다.
   그녀가 가진 폐쇄감의 원인을 찾도록 지시했는데, 갑자기 1842년이라는 연대가 분
명히 시대 착오의 양상을 띄고 나타난 것은, 그녀의 무의식적 마음이 일부러 이것을 
피한 것이 틀림없다고 박사는 느꼈다.
   박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생의 향기롭지 못한 사실 때문에 조사를 받게 된 린다
가 아무리 대답을 망설일지라도 반드시 잘 되어간다고 믿고 그녀를 계속 채찍질하는 
일 뿐이었다.
   이윽고 참은 보람이 있어서, 다음에 최면에 들어갔을 때, 린다는 17세의 아가씨 몸 
안에 있었다. 아가씨는 마드리드의 무도회장에서 스페인 음악에 맞추어 춤추기에 열중
하고 있다. 빠른 템포의 곡을 타고 춤을 추며 오른쪽, 왼쪽으로 얼굴을 움직일 때마
다, 드레스 단을 장식하는 자수 무늬가 눈 앞에 펼쳐진다.
   무늬는 최면상태에 있는 그녀의 시야 가득히 퍼져 나가고, 마침내는 하나 하나의 
실오라기까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린다는 자기가 치마 단의 무늬를 지나, 무도회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때는 1842년으로, 이번에는 돈 많은 상인의 딸 마리아 드봐로서, 1842년이라고 느
끼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와 같은 나이 또래의 눈부실 정도로 준수한 청년, 카루로스 
바롯하와 사이좋게 춤을 추고 있었다.
   "지금의 인생에서 큰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옮겨 가십시오. "
   라고 휫튼 박사는 재촉했다.
   늠름한 카르로스에게 에스코트를 받고 완전히 춤에 열중한 그녀는 좀처럼 무도회장
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린다는 어쩌면 박사가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듯, 박사의 지시에 
따르자 슬픔의 구렁텅이로 가라앉아 버렸다.
   12년 전의 젊은 여성으로부터 탈바꿈하여 비탄에 젖은 미망인이 된 것이었다. 마리
아는 위에서 아래까지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 1854년에 스페인 혁명으로 전사한 육
군 사환인 남편, 카르로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
   마리아의 옆에는, 여섯 살 된 쌍둥이인 페르난드와 호르헤, 게다가 그녀가 특히 사
랑하고 있는 세살 난 딸 카라리나가 서 있다. 마리아의 절망은 너무나 커서, 숨을 쉬
는 것도 빠듯한 형편이다.
   고통은 이 때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 뒤부터 마리아의 우울증은 길어가고, 
내 신세가 불쌍하여 비탄에 젖어있을 따름이었다. 카르로스가 죽은지 14년 남짓 지나
서, 페르난드와 호르헤는 여왕과 국가의 이름아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하고 돌
아오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 뒤, 카타리나가 결혼을 하고 집에서 나갔다. 마리아는 세상에서 격리되었고, 마
드리드의 명소에 있는 큰 집에 틀어박히고 만다. 그 집은 시어머니와의 싸움 끝에 손
에 넣은 것이다. 그녀의 원한은 날을 거듭할수록 더해 갔다.
   린다는 마리아의 마지막 날로 끌려갔다. 이때 마리아는 45세로 바깥 큰 길에서 들
려오는 북소리나 싸움질하는 소리 또는 행진할 때의 발소리를 들으면서 음산한 집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1984년 1월 29일 린다는 일기에서 마지막으로 불길한 때를 맞
은 마리아의 심리상태를 다음과 같이 써놓고 있다... 
 
   "이 집, 우리들의 집이 되었어야 했을 이 집이 밉다. 시끌벅적했어야 했을 이 텅 
빈 집. 가끔 나를 남겨놓고 가버린 카르로스나 아이들에 대해 질투심이 난다. 굳이 카
라리나는 집을 떠나지 않아도 달리 방도가 있었을 텐데... 아니 그보다도 남아있는 사
람을 미워하는 것이 훨씬 쉽다. 어둡고 썰렁한 이 집이 밉다. 자기가 밉다. 이 집에서 
오래 살면 살 수록 나도 차츰 이 집처럼 음침해져 간다.
   아, 빛이 그립다! 하지만 아래쪽 길거리 쪽으로 난 창문으로는 전혀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무지한 인간들의 차가운 시선이 들어올 따름이다. 오늘도 또한 새로운 
지도자를  위한 행렬이 지나간다. 지도자는 계속 바뀌지만 어떤 지도자도 마지막 가는 
곳은 모두 같은 암흑세계이다. 길을 가는 군인들은 그들에게 다만 맹종할 따름이다. 
다른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자기들을 죽음으로 데리고 갈 뿐이라는 걸 어째서 모르는 
걸까?
   할 수 있으면 그런 일은 시키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가 무엇이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음침하고 공허하고 희망을 잃은 이 마리아. 나도 저 절망의 거리에 
있는 그들의  대열에 참가하리라. 이제 어둠에는 견딜 수 없다..." 
 
   휫튼 박사의 진찰실에서 마리아가 회상한 기억은 지극히 선명하여 마치 린다가 마
리아의 눈을 통해서 바라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시끄러운 큰 길을 내려다보는 이층 창문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열린 덧문 건너편에서 
비치기 시작한 한 줄지 빛에 정신이 들자, 그 눈부신 빛에 반한 듯이 창과 빛을 향해 
걸어갔다... 
   큰 길의 길바닥이 자꾸자꾸 눈 앞으로 다가왔는가 싶더니, 충격으로 몸의 감각이 
없어 졌다. 그곳에 마차가 부딪쳐서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다. 훨씬 아래쪽에는, 차바
퀴와 스포크 사이에 끼여, 길바닥의 돌 위에 쓰러져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있었다. 그
러자, 눈부실 정도의 빛이 나타나 그녀의 주의력을 길에서 떠나게 하고 윗쪽으로 향하
게 했다. 아아, 이 같은 자신의 빈 껍데기 따위는 아주 하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길거리의 일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빛 속을 걷고 있었으나, 태양보
다 눈부시게 빛나는 그 빛은 열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이 마음을 빼앗을 것 같은 눈
부심에서는 평화와 편안함이 넘쳐흐르고, 그녀는 아주 편안한 기분으로 자애로움 속에 
잠겼다.
   터널인지 튜브인지 번데기같은 것에라도 싸여 있는 듯한 느낌이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빨려 들어갔을 때, 주위의 황홀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휫튼 박사가 묻는다.
   린다로서는 잘 알 수 없었다. 마리아와 린다 양쪽이 뒤범벅이 되어 마음에 떠오르
지만, 그 어느 쪽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디에 있는 겁니까?"
   지금은 찬란함과 편안함에만 마음이 빼앗겨 있는 그녀의 귀에, 박사의 목소리는 너
무나 엉뚱하여 이질적으로 들린다.
   린다는 대답하고 싶었으나, 대답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주위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으나, 모습도 모양도 없는 이 놀라운 풍경
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을 찾아내기에는 벅찬 것이었다.
   린다의 1984년 2월 5일 일기에는 더욱 자세히 이렇게 쓰여 있다.
 
   "여기는 어디일까. 이 장소에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행되는 충격은 차
츰 사라지고 감정이 되돌아왔다. 몹시 슬프고 울고 싶었다.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눈
물이 자꾸 자꾸 나왔으나, 아직도 소리가 들려왔다... 박사에게 마리아의 괴로움은 부
당합니다 라고 불평했다. 마치 자기를 변호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나는 마리아와 그 
최후의 언동을 정당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리아가 사후의 일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으나, 지금은 육체가 죽어도 의식이 남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내가 있는 곳, 그곳은 아름답고 멋진 곳이다. 이 곳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시간이 없는 중간생이라고 하더라도 초의식을 탐구하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
다. 휫튼 박사도 예정이 꽉 짜여 있으므로, 서서히 린다를 이 세상의 현실로 돌려보낼 
필요가 있었다. 다시 조정하는 경과를 거치지 않고 중간생에서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
다. 그녀의 경 
우도, 일기에 의하면 이 마리아 바롯하와 린다 아뷩의 두 생애 사이의 중간생에 머문 
다음, 집으로 돌아가, 방 친구가 시끄럽게 봉고(작은 북)를 두들겨 대고 있었다는데도 
두 시간이나 잠을 잤다고 한다. 그녀는 그날,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고 꼬박 일주일 
동안 멍하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있었다.
   수면은 깊고 길었으며 일상생활에 있어서 기운은 조금 떨어졌으나 그녀 자신의 마
음 속 깊은 곳에서는, 마음이 바뀌는 전조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계속 대
단한 초의식 이란 것을 몇 차례나 생각하는 것이었다.
   "저 황홀한 세계를 계속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린다인 자신을 떠나서 추억 속의 그 
장소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기쁩니다. "
   라고 린다는 말하고 있다.
   그 뒤 며칠 동안이나, 해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추억에 잠겨서 즐기
기 위해 린다는 몇 번 기억 속에서 중간생으로 되돌아갔다.
   삶과 삶의 사이에 있는 중간생을 생각해 보고, 비로소 마리아의 절망은 확실히 카
르로스의 죽음에서 생겼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다지 불공평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린다가 다음 시술에서 중간생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마리아의 괴로움을 자세히 
알려고 열심이었다. 1984년 3월 6일의 일기에는 이렇게 보고되고 있다.
 
   "중간생에서 마리아를 보니까 그녀가 독선적이고, 자기만의 행복을 바라며 자기만
을 위해 사랑과 우정을 구하는 것 밖에 머리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또 그녀가 사랑이
나 우정을 구하기만 할 뿐, 자기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
다.
   그녀는 카르로스나 두 아들의 죽음을 그다지 슬퍼하지 않고 대신에 자기가 입은 손
해만을 슬퍼한 것이다. 카르로스의 사후,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깊게 하면
서 아이와의 유대를 굳게 하고, 슬픔을 발전적인 것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
지만 그녀는 인생에 빛이 비치는 것을 거부하고 슬픔을 극복하면서 애정 깊은 어머니
가 되려고 노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두 아들의 죽음은 그녀에게 있어서 손실이라기보다 카르로스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
을 확인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 고통에 대한 것만을 생각해 왔으므로 딸인 카타
리나와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카타리나의 결혼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에서도, 마리아의 자기 중심적인 생각은 분
명했다-그녀는 딸을 위해서 기뻐해 주지 않고, 자기가 더욱 슬프고 외로워질 따름이라
고 느꼈던 것이었다. "
 
   이런 일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알아야 할 일은 그밖에도 
있었다. 휫튼 박사가 그녀에게 확인시켜야 할 것은 마리아의 삶과 죽음이 어떻게 린다 
자신의 윤회전생에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이었다.
   박사의 신중한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린다는 자기의 오바소울(대령)의 환영을 보았
다. 대령은 심에 태고의 슬픔이라는 검은 덩어리가 있는 '빛의 캐비지'로써 나타나고 
전생할 때마다, 새로운 캐비지에 있는 빛의 잎이 벌어지고 있었다. 잎이 벌어지는 것
은, 암혹이라는 잔 부스러기를 아주 조금 내뱉고 고통을 조금 흘려버리기 위해서였다. 
많은 잎(인생)이 자란 뒤, 고통은 모조리 사라지고 캐비지는 찬란히 빛났다.
   캐비지는 혼의 발전을 나타내는 린다 개인의 상징이었다. 그녀도 얼핏 보면 캐비지 
잎과 마찬가지로 하염없이 윤회전생을 계속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 (꽃잎이 열리면 곧 
시들고 마는 장미와 대조적이다). 마리아는 비탄에 젖어있을 뿐이고 다른 일에는 아랑
곳도 하지 않고 장님이 되어 그녀의 인생(캐비지의 잎)이 성장할 가능성은 없어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이 실패가 이번 전생에 넘겨지고, 린다의 우울증과 인격의 완성을 가로막는 폐쇄감
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것을 안 린다는 비로소 잔잔한 물결같은 해방감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
다. 그녀의 인생이 마리아의 인생만큼 마음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지라도, 이 전생의 
인격이 보여주는 태도는 너무도 현재의 자신의 인격과 비슷하였으므로 마음이 흔들렸
다. 그녀도 또한 자신에게 져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 음침함과 '폐쇄감'은 린다가 마리아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이었으나 자기가 영구
히 존재하는 것을 안 지금, 성장의 방해가 되는 나쁜 영향은 반드시 제거된다고 린다
는 깨달은 것이다. 깨달음과 함께 해방감이 찾아왔다... 
   해방감을 느낀 린다가 우선 한 일은 옛날의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2년 전에 결혼한 그의 일을 린다는 계속 사무치게 생각해 온 것이다. 두 사람은 토론
토와 몬트리올 사이 540마일 떨어진 곳에서 두 시간이나 수다를 떨고, 그 뒤 린다는 
이제 하염없이 기다리는 날들은 끝이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무의미한 동경심
에서 해방된 것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죽은 카르로스가 돌아오기를 마리아는 오랜 동안 기다렸습니다만, 나에게도 마찬
가지로 괴로운 주제에, 언제까지나 같은 일만을 일편단심 생각한다는 비현실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두번째로 중간생을 방문한 바로 뒤에,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
과 뜻있는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고 만다고 하는 것을 똑똑히 알았습니다. "
   그로부터 2, 3주일 동안 린다의 자각한 마음에 초의식의 체험이 차례로 떠올라 와
서 그녀에게 눈을 뜨게 했다.
   이를테면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아버지와 그의 자살하려는 버릇에 동정해 왔으나, 
그것은 마리아의 윤회전생에 원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별히 중요한 일은 린
다의 일기에 쓰여 있듯이 그녀가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1984년 3월 14일: 이 2~3일 동안 나는 어려운 고비를 지나온 것 같다. 이번 주는 
에너지가 샘솟듯이 솟아난다... 저 팔방이 확 막힌 듯한 느낌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번의 인생에 비하면, 지금의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 그러므로 더욱 더 전진
해야 되겠지... 
 
   1984년 4월 7일: 이제와서는, 마리아가 남긴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음이 온통 가벼워지고 이제까지보다 훨씬 '나' 다워졌다. 심한 우울증은 이미 
없어졌다.
 
   최근에 린다가 눈에 띄게 명랑해진 것은 그녀를 아는 사람들의 눈에도 분명했다. 
이제 그녀는 언제까지나 겁을 먹고 의기가 소침해지는 일이 없어지고 보다 많은 것을 
주고 보다 많은 것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캐비지의 이미지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되
도록 많이 빛을 비춰보아라'하고 조용히 격려해 줄 것이다. 단, 한 가지만 문제가 남
아 있다. 그  녀는 아직도 실패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에 계속 시달리고 있는 것
이다.
   꿈이 전생의 체험을 지적하는 일이 있으나 1984년 5원 15일 밤에, 이 최후의 문제
를 해명하는 열쇠가 되는 매우 뚜렷한 꿈이 나타났다. 꿈속에 친구가 나타나서 린다에
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전생에서부터 보여줄 것이 있어."
   그리고 린다가 왼쪽으로 획 한 바퀴 돌자 남자가 되었다. 남자는 감옥에 들어가 있
었다. 오른쪽 옆구리에는 칼로 입은 상처가 초생달 모양으로 입을 딱 벌리고 있고, 남
자는 절규하고 있었다.
   그가 죽은 순간, 큰 물줄기 같은 이미지는 잠시 멈췄다. 잠시 뒤, 이번에는 린다가 
작은 여자 아기가 되어 또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 갓 태어났는데, 자기가 외치고 있는 
것은 칼로 벤 때의 일을 생각해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린다는 휫튼 박사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그 이미지는 무의식의 마음이 계획적으로 
전생의 중요한 에피소드를 의식시키려고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박사도 이
것에 고개를 끄덕이고 최면상태에서 이 인생이 언제의 일인가 조사하고, 그녀의 현재
의 상황과의 관련을 찾도록 린다에게 지시했다.
   곧 린다는 꿈에서 본 척살장면으로 끌려갔다. 그녀는 루돌프 마이어라고 불리우는 
죄수이고, 번쩍 빛나는 칼이 옆구리에 세워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기는 이 뜻하지 않은 죽음에 걸맞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시
무시한 죽음의 장면을 떠나 그녀는 열 두살의 루돌프로 돌아온다.
   스위스와의 국경 근처에 있는 독일 농장에서 어린 루돌프는 꽃과 나비를 보고 희희
낙락하여 들판을 뛰어 다니고 있는 장면이었다. 나중에 린다는,
   "무심히 놀 수 있었던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
   라고 박사에게 말했다.
   박사가 린다에게 소년인 루돌프에서 떠나 10년 앞으로 가도록 지시를 하자, 다음에 
나타난 루돌프는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22세의 그는 공격적이고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파리 대학의 학생이었다. 그는 사
방을 경계하듯이, 자기가 13명의 사나이로 조직된 비밀결사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
했다.
   박사가 결사의 이름을 몇 번이나 물어보아도 냉정하게 거절했으나, 루돌프가 말한 
바에 의하면 혁명 전야의 프랑스에서 사회에 혁명운동을 추진시켜 나가는 것이 이 결
사의 목적이었다. 그는 자랑스러운 듯이, 그 조직은 '국가의 지도자를 위협하고 혼을 
내주고 있다. '고 말했다.
   '자네들은 테러리스트인가?' 라고 박사가 물어본다.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 "
   루돌프는 프랑스 사투리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다른 놈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우리들의 방법이 반드시 받아들여진다
고 장담은 못하지만. 최종 목표는 옳은 것이오. "
 
   박사는 린다에게 지시하여 1년 앞의 23세로 가게 했다. 갑자기 루돌프는 안절부절
못하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결사의 멤버들이 차례로 사라져가고, 사라진 방법도 이유도 알 수 없다. 결사 멤
버의 한 사람과 결혼한 앙리에뜨라는 빨간 머리 미인이, 혁명가들의 지하 활동을 탐지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그녀는 결사에 들어오고 싶어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그런데 그녀에게 열중한 몇 사람의 멤버가 사라지고만 것이다. 루돌프는 복수
심에 불탄 앙리에뜨가 사나이들을 유인한 뒤, 한 사람 한 사람 죽인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루돌프의 친구인 쟝이 석연치 않은 죽음을 당했을 때, 그의 말을 빌리면 루
돌프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되어 앙리에뜨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나쁜 계집 같으니... 마녀 같은 년이다. 이 이상 살인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
다..." 
   루돌프는 박사에게 말한다.
 
   그 다음의 최면 시술에서 린다가 본 것은 감옥 안의 루돌프가, 감옥에 들어가게 된 
원인이 된 악업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힘겹게 싸우는 모습이었다. 그가 휫튼 박사의 질
문에 대답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몸을 사리고, 심하게 저항을 했었는지... 저항하는 루
돌프에게 자백을 하게 하려고 린다가 분투하는 동안에 그녀의 시야를 불길이 가로막았
다.
   보이는 것은 불길뿐이다. 하지만, 마침내 그녀는 루돌프의 힘센 몸에 들어간 자기
가 긴 빨간 머리의 여자를 불길 속으로 밀어 넣는 장면을 본 것이었다. 살이 타는 이
상한 냄새도 풍겨온다.
 
   박사 - 어째서 이런 짓을 하고 있나?
   린다(얼굴을 찡그리고) - 지금은 말할 수 없다. 이렇게 하고 있는 것도 힘겹다.
   박사(강한 말투로) -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나?
   린다 - 저 계집이 미워. 계획으로는 저 계집을 죽이기로 되어 있어.
   박사 - 무슨 계획인가?
   린다 - 누군가, 살이 타는 냄새가 난다... 도망가야지.
   앙리에뜨를 불 속에 밀어넣고, 불길에 쌓인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을 
보고 루돌프는 도망친다. 하지만 자유의 몸은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
   그는 체포되고 쇠사슬에 묶여 콘세르쥬리 감옥으로 연행된다. 그곳에서 그는 매일 
매일 그냥 앉아서, 독방 벽에 불길이 싸여서 몸부림치는 여자의 환영을 계속 보는 것
이다. 자책하는 마음이 잠시도 떠나지 않고 달라붙어서 그를 괴롭힌다. 그리고 마침내 
앙리에뜨의 오빠가 루돌프의 사형수속을 밟고 복수하는 날이 찾아온다. '그치에게 더 
이상 살인하는 걸 내버려둘 순 없었다. 하지만 굳이 죽이지 안해도 됐었는데... 그건 
큰 잘못이었다. ' 이렇게 말하는 린다의 목소리는 울먹울먹했다.
 
   최면 시술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될 때가 되었는데도, 아직 린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박사는 그녀의 울적한 감정이 언젠가는 해방될 것을 알고 있었다. 린다는 어떻게든 
감정을 억제하고 집에 도착하자, 방에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지면서 소리쳤다.
   "난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
   스스로도 깜짝 놀랄만큼 격한 부르짖음이었다. 그 뒤 대여섯 시간 가까이 계속 울
고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에서 그녀의 마음은 눈에 띄게 후련해 졌다. 그런 뒤로, 린다
는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시달리는 일은 없어진 것이다.
   린다가 걱정해온 잘못이란 루돌프가 저지른 비극적인 실책이었다. 루돌프의 자책심
이 그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가 되어 현재의 인생으로 승계된 
것을 겨우 알게 된 것이다. 두려워할 필요는 이제 없었다. 1984년 7월 26일의 일기에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루돌프였었을 때 이래로, 나는 자신을 책망해 왔다. 자기는 감옥에서 사형 당하여
도 할 수 없다고 느껴왔다. 다음에 마리아가 피어 죽은 사람처럼 사는 것으로 자기를 
학대하여 왔다. 하마터면 나는 이번 생에서도 마리아의 발자취를 따를 뻔했었다...>
 
   루돌프가 처음으로 나타날 때, 아무래도 린다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같이 보였으
나 바로 그대로 그를 다시 발견한 일이 문제를 해결로 이끌어 갔다. 전생의 잘못이라
는 속박에서 해방된 린다에게는 지금의 생활이 한층 쾌적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이 장
의 처음에서 말한 중간생의 체험은 린다의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루돌프와 마리아 사이의 중간생에서, 재판관들이 '나쁜 점을 반
성하고, 그것을 고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으나, 현재 그녀는 전문 치료사로서 일하면
서 중간생에서 정한 것을 착실히 실행하고 있다. 루돌프의 잔인한 충동은 없어지고 이
와 맞바꾸어 날마다 사람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ff
    제 11장 마음으로부터의 부르짖음 
 
    가장 숭고한 행위란 자기보다도 남을 우선시키는 일 
    이다 
    윌리엄 브레이크
 
   검사 결과는 역시 아이린 케리가 가장 두려워했던 대로였다. 수술은 이미 가능성이 
아니라 필수였다.
   유방에 대한 X선 촬영과 세포의 생검으로도, 그녀의 오른쪽 가슴에 생긴 큰 종기가 
분명히 암 같은 종양으로 판정된 것이다.
   1974년 봄의 시점에서, 종양이 악성인지 아닌지를 아직은 외과적인 검사로 밖에 찾
을 수 없으며, 의사의 말로는 유방을 전부 절제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녀가 살아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말하지 않았고 오로지 두려운 가능성을 부정하려고 애쓸 따름이었다.
   이 위기를 알고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심리적으로 동요한 것은, 
아이린의 남동생인 해롤드 자워스핀였다. 수술하기 열흘 전, 행동과학을 연구하고 있
는 37세의 해롤드는, 잠이 들면 일시적인 방편이기는 하나, 절망감의 이 숨막히는 기
분에서 헤어나리라 생각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어둠 속에 누워 있을 따름이었다...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언제나 가족들이 의지했던 아이린. 누나가 없는 생활을 생각하니, 그의 마음은 술렁거
렸다. 누나가 먼저 세상을 뜨면 남편과, 애들-특히 누나에게 위안을 받고 가르침을 받
고 도움을 받으며 누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두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할 
수록 근심을 더해갈 뿐이었다. 그의 머리 속에서 절망적인 생각이 새벽녘까지 계속 오
락가락 하였다.
   이래서는 잠들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 불안감이 갑자기 사라짐과 동시에, 여
지껏 없던 신에 대한 뜨거운 기도의 말이 해롤드의 입을 통해 나왔다. 부디 아이린이 
위기를 벗어나 완전히 건강을 되찾을 수 있게 하여 주소서, 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마
음속에서 누나의 목숨과 맞바꾸어 자기의 목숨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반적인 오누이의 애정보다 강한, 해롤드 조차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열렬한 마음으로부터의 부르짖음이었다.
   수술하기 전날 밤 해롤드가 누나를 병석으로 위문하자, 누나는 은근히 내일 수술의 
결과를 걱정하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누나를 지성으로 위안하고 그는 병원을 뒤로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
기의 마음을 달래려고 무거운 마음을 안고 토론토의 중심부에 있는 공회당으로 향했
다. 그곳에서는 카나다 방송 협회의 크래식 연주회가 녹음되고 있었다.
   프로그램은 진행되고, 실내 악단의 연주는 브람스에서 모차르트로 옮겨가고 있었
다. 그 때 갑자기 제 정신이 들고 해롤드는 몸이 굳어졌다.
   조명이 그를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 처음에 그는 주위를 신경질적으로 둘러보았
다. 틀림없이 모든 사람이 목을 길게 빼고 이 한줄기 눈부신 빛을 받고 떠오른 사나이
를 바라다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습니다. "
   해롤드가 말했다.
   "아무도 빛의 방향 같은 것은 보고 있지 않았다. 빛은 아무에게도 보일 턱이 없었
으니까요. 그리고는 왈칵 황홀감이 밀려오는 것이었습니다-발 밑에서부터 치솟아 오르
는 높은 파도 같이- 시간에 대한 감각은 온통 없어지고 눈부신 빛으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감은 눈꺼풀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이 같은 매우 
강렬한 체험을 하는 동안에 나는 알게 된 것입니다-누나는 건재하다는 것을..." 
   해롤드의 체험은 '우주의식'으로 알려져 있는 것인데, 1901년에 간행된 리차드 버
크 박사의 같은 이름의 책에서 유래된 말이다. 버크 박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주의식의 첫번째 특징은, 그 이름이 가리키듯 우주의 의식-다시 말해서, 우주의 
생명과 질서인... 우주 의식과 함께, 그것에 의해서만 새로운 단계에 이르게 되고, 또
한 새로운 종류와 비슷한 인류의 일원이 되게 하기 위한 총명한 깨달음, 또는 명지가 
생긴다. 여기에다 숭고한 정신 상태, 다시 말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흥분과 
기쁨이 첨가되고 도덕 관념이 민감해진다. 이것은 개인에게 있어서나, 인류 전체에 있
어서나 전혀 충격적인 것으로, 지력의 증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와 함께, 처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이전에도 느낀 일이 있는 듯한 불멸감-다시 말해서 영원
한 생명을 의식하는 일-이 생긴다."
   눈부신 빛과 근간 감각의 상실이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주의식이란, 훨씬 
옛날의 중간생의 기억이 자연 발생적으로 해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혼의 체
험과 이 세상의 생활과를 격리시키는 막에 한 순간 구멍이 뚫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음 날, 해롤드는 편안한 마음으로 병원에 돌아와 아이린의 수술 결과를 기다렸
다. 수술 뒤, 그는 외과의사에게 면회를 요청했으나, 의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
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중이었다.
   종양이 양성이었을뿐만 아니라 놀랄만큼 작아져 있고 거의 찾아낼 수 없을 정도였
었다. 악성이 아닌 일부분의 절제만으로 끝났으니 유방은 절제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윽고 그녀는 눈에 띄게 빨리 회복되고 완치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뒤, 해롤드는 생명에도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중증의 바이러스성 
간염으로 고통받게 되었다.
   바이러스성 간염의 일반적인 증상인 불쾌감, 구토, 피로감, 황달이 계속되면서 그
는 꼬박 3개월 동안 일을 할 수 없었다. 그 뒤 9개월 동안, 그의 건강상태에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1976년 5월, 그는 무릎이 부은 걸 알았다.
   검사 결과, 요단백에서 이상이 발견되고 내과 의사에게 조사를 의뢰해 본 바, 신장
의 생검을 하라는 것이었다.
  8월에 내과의사는 해롤드가 특발성막질사구체신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 병명은 
원인 불명인 중증 신장병일 가능성이 있을 경우, 그것을 얼버무려서 표현하는 어려운 
의학용어 이다. 
   내과 의사는 결코 낙관적이 아니었다.
   "어린이가 아니어서 유감입니다. 아이였으면 회복할 가능성도 큰 데 말입니다. "
   라고 의사는 말했다.
   어른일 경우, 살아날 가능성이 10~20% 퍼센트임을 알자, 해롤드는 사형 선고를 받
은 듯한 기분으로 병원을 나왔다.
   "의사가 해줄 수 있었던 일은, 소금기를 줄이시오 라고 말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라고 해롤드는 말했다.
   당연히 해롤드는 도움을 받으려고 여러 곳의 다른 병원도 기웃거려 보았다. 그러는 
동안, 토론토의 사니브룩 병원에 신장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으나, 그 의사에게
서 작년의 간염 바이러스가 증상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을 듣
고 그는 깜짝 놀랐다. 이 때문에 간장의 잠복성 감염으로 항원항체복합체라는 물질이 
생겨, 차츰 신장이 침범 당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해롤드의 증상이 심한 것은, 이들 조직이 쇠약해지는 것과 동시에 독
소를 제거시킬 수 없게 된 탓이었다.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치료법이 규명된 셈은 아
니었다. 그래도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서, 어느 의사는 수혈이 좋다고 하고, 또 어
느 의사는 시험 단계에 있는 값비싼 약, 인터패론이라면 체내에 면역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증상이 악화됨에 따라 그에게는 누나의 목숨을 보장한 것처럼 보인, 자기 희생의 
맹서에 대해 마음이 걸렸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정하게도 그에게서 외상값을 받아 낼 셈인가? 그렇지 않으면, 
해롤드가 자기는 죽어도 좋다고 맹서한 것이 무의식적으로 작동되어, 저렇게 필사적으
로 구한 의학의 도움을 혼란시키는 결과가 된 것일까?
   진상은 어떻든 간에 병은 점점 악화되고 희망은 차츰 멀어져 갔다.
   해롤드는 6주일 동안 시크로호스화미드라는 약을 계속 복용했으나, 효과는 없고 차
츰 칼슘 결핍증이 진행되어 이가 물러지고 단속적으로 몇 초 동안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증상도 나타났다. 얼마 동안은 늘 이뇨제의 복용으로 소변의 배설을 촉진시켜 왔
으나, 양쪽 다리와 양쪽 무릎이 다시 붓기 시작했다.
   그는 콜레스테롤치를 내리기 위한 약을 복용하면서 습진이 생겨 괴로워하고 얼굴 
색은 나빠지고 체중은 52 키로에서 46 키로로 줄었다. 간신히 기운을 차려서 회사에 
나가는 일도 어쩌다가나 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혈액 검사, 소변 
검사가 계속됐고 사니부룩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차츰 길어져 갔다.
   "마치 실험용 모르모트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의사는 치료법을 몰랐고 
이 쪽은 점점 악화되기만 하였고... "
   이렇게 그는 말한다.
   이 이상 병의 증상이 호전될 것 같지도 않다고 생각됐을 때, 해롤드의 마음속에서
는 화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종래의 의학으로는 구해줄 수 없을 뿐더러, 덕분에 병 증상까지 나빠졌다고 생각
하니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더군요... 이런 처지가 된 책임을 질 때가 마침내 온 것
이라고 깨달았습니다. "
   해롤드는 초심리학에는 기초상식이 있었다. 일찌기 1959년에 그는 퇴행최면 실험을 
본 일이 있었고, 윤회전생이나 카르마의 이론에도 정통하고 있었다.
   "자기의 병은 카르마에 의한 것일까? 보통 하는 치료법이 잘 되지 않은 경우, 전생
으로의 퇴행최면이 성공할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하고 자문하는 것으로서 그는 비로소 이런 이론을 자기의 경우에 맞춰보는 것이었
다.
   이런 의문에 생각을 돌리면서 해롤드는 병원 도서실에 비치된 초심리학의 자료를 
다시 읽어보았다. 자료실에서 꺼낸 한 권은, 아이리스 오웬의 <피립의 초령>이라는 책
이었다.
   책장을 읽어가자, 조엘 L 휫튼박사의 '포르타가이스트 반응의 심리학'이라는 장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이름이 인상 깊었던 것입니다. "
   라고 해롤드가 말했다. 휫튼 박사가 심리치료 의사로 불리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고, 형이상학에 흥미를 가진 친구에게 박사를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마침 그 친구는 박사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가 토론토에 살고 있는 정신과 
의사며, 임상최면 요법가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곧 소개하는 수속을 밟아 주었고, 크리스마스 직전에 해롤드는 휫튼 박사의 
진찰실 소파에 생기 없는 몸을 조용히 눕힐 수 있게 되었다. 요독증을 앓아 끔찍하게 
야위고 우울하게 지친 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기적밖에 없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 뒤 3주간에 걸친 헤롤드의 회복은, 아마도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
이었다. 그는 최면 상태에서 윤회전생의 역사를 탐험하기 시작했을 따름이었으나, 그 
무렵-아직 7주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혈액 검사에서 그의 간장의 기능이 정상으로 돌
아오고 신장도 급속하게 회복되어가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1977년 3월 말에, 해롤드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 눈부신 
회복의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점도 여러 가지 있으나 다음과 같
이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다시 말해서 해롤드가, 이 비참한 카르마의 빛을 짊어지게 된 원인이 된 전생과 접
촉함으로써 그 댓가로 이번 생에서 자기의 생명을 내놓는다는 무의식적인 의무에서 해
방된 것이다... 
   해롤드의 회복이 엄밀하게는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논의할 여지가 있다. 전생과 
만난다는 것이 육체적으로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해롤드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시키기까지 더욱 깊이 전생의 탐구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쏘오라는 이름으로 1000년 전에 살아 있던 바이킹의 침략자, 에리자베
스 조의 영국에 살았던 하리라는 원만한 성격의 부두 노동자, 잔드라는 7세기 경 메소
포타미아의 조로아스터교 신관, 남북전쟁이 일어난 뒤, 곧 사망한 버지니어주 출신의 
젊은 육군장교인 에드거 코트니를 포함한 일곱 번의 인생임을 알았다.
   7개월의 최면시술이 끝난 뒤, 간신히 현재의 전생과 가장 관계가 깊은, 에드거 코
트니의 인생이 나타났다. 휫튼 박사의 조사로 시술을 거듭할 때마다 에드거와 현재의 
해를드의 누나 아이린, 역시 전생의 누나 세이러에 얽힌 비극적인 이야기가 연결되어
갔다.
   19세기의 미국에서 생긴 두 사람의 불행한 관계는 해롤드의 누나에 대한 억압된 죄
악감-아이린을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희생시킬 정도로, 그를 헌신적으로 만
든 죄악감-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에드거와 세이러의 오누이는, 버지니아주 하리슨버그 근처에 있는 시골의 큰 저택
에서 같이 자랐으나, 두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애정이 싹텄다. 에드거가 열 두살이고 
세이러가 열 여섯살 때, 두 사람의 애정은 순간적인 근친상간관계로 발전한다. 아버지
가 말을 사러 출타한 사이에 두 사람은 집에서 떨어진 숲으로 피크닉을 떠났으나, 일
은 그 때 일어난 것이다. 이때 에드거는 세이러에게 이 사건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
는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몇 년인가 뒤, 세이러가 에드거가 매우 싫어하는 사나이와 
약혼을 하자, 에드거는 그 사나이를 쫓아버리기 위하여 하는 수 없이, 두 사람의 비밀
을 폭로하고 만다. 파혼이 된 것은 곧 마을의 소문이 되어 퍼진다.
   체면을 잃은 세이러는 있을 수 없어 집을 나간다. 그리고 치욕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고 고독과 괴로움에 견딜 수 없어서, 그녀는 곧 자살한다. 에드거의 후회와 뉘우침
은 쓰디쓰고 억제하기 힘든 것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있는 그는 미국에서 남
북전쟁이 터지자, 남군에 가담하여 격전에 몸을 맡긴다. 처음 종군에서 에드거는 배와 
어깨에 총을 맞고 하느님께 목숨을 빌면서 싸움터에서 괴로운 죽음을 맞는다. "
 
   끈적끈적하고 따뜻한 피가 배를 누른 손을 타고 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이 마지막 
공포의 장면은 끝났다.
   평상시의 의식을 되찾은 해롤드는 떨고 있었다. 7월이고 실내 온도가 27도 이상 되
는 무더운 방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편하게 하기 위해, 몇 
분 동안 손  발을 부비지 않으면 안되었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극도로 감정을 움직이
게 하는 체험을 하면, 가끔 체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일이 생기고, 그런 경우를 대비하
여 진찰실에는 담요가 항상 준비되어있다.
   해롤드의 바로 전, 전생은 미국의 쿠인시라고 불리우는 마을에서 일곱살에 죽은 바
레트의 생애였다.
   쿠인시로 부르는 마을은 미국에 적어도 열 두군데나 있는데, 1911년 수두가 크게 
전염되어 그가 죽은 장소가 어덴지는 끝내 알지 못하고 말았다.
   "살고 있는 주 이름은?"
   하고 휫튼 박사는 해롤드에게 물었다.
   "나 몰라. 어머니한테 물어 봐야돼. "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그는 대답했다.
   이 세상의 계산으로 하면, 바레트의 죽음에서 1937년에 해롤드가 태어나기까지의 
중간생에 그가 있었던 것은 26년간이 된다. 병에 걸린 소년시절부터 중간생에 이르기
까지의 사이에 계속 그가 바레트의 의식에 동행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 대신 이행하자 
곧 중간생으로 들어가서 소년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기의 혼을 보았다.
   두려운 생각에 잠겨 초의식 상태에서 깬 그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나는 흰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은 바레트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죽은 것은 알
고 있어도, 그에게서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멀리서 부르고 있었
으므로 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벽도 천정도 없는 큰 방에 있었습니다. 어린애처럼 많은 사람
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모두 내 일 같은 건 아랑곳도 하
지 않는 듯 하였습니다. 나는 아직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고, 그쪽은 수다를 떠느라고 
바빴겠지요. 이상한 일입니다만, 자기는 한 편으로 애의 입장에서 판단하는데 다른 한 
편으론 몹시 나이를 먹은 듯한 마음이 든 것입니다. 그 장소에는 색깔이 없고, 사진 
원판이나 흑백 사진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레트는, 그의 오우버 소울-혹은 영원한 아이덴티티(동일성)라고 하는 시간을 초
월하고 이름도 형태도 없으나, 최면 치료를 하는 동안 만난 어느 인물보다도 진짜 자
기자신인 것-과 서서히 융합되어 가는 과정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육체의 죽음에서 살아난 사람들을 위한 중간역과 같은 '벽이 없는 방'에서 바레트
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나이 든 사나이가 다가와서, 그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최면상태에 서 해롤드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나한테 어깨 같은 것 없는데...하지만 이것으로 이제 무섭지 않게 됐
다. "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바레트는 죽었다. 바레트의 몸은 이제 내 몸이 아니다. "
   "그렇다면 바레트에게 돌아갈 수 없으면 앞으로 나가야지."
   휫튼 박사는 물을 권유했다. (시간에 관해서 이 말이 경솔했으므로, 답답하게 느꼈
다고 나중에 해롤드는 말하고 있다. 그는 '인생과 인생 사이의 장소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습니다'고 말하고 양보하지 않았다.)    
   이윽고 해롤드는 나이 든 사나이에게 이끌려, 교회 같은 아치 모양의 높은 천정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이 위엄있는 보호자는 사라지고, 흰 옷을 입은 세 사람의 장로들이 들어와서 책상 
건너 쪽에 앉았다. 재판관들이 도착한 것이다. 해롤드의 기억으로는, 다음 전생할 때
까지 공부하고 체험을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재판관들은 그에게 조언했다고 한다. 
휫튼 박사가, 다음 전생에 대비하여 어떤 계획을 세웠는가 조사하여 보라고 말하자, 
해롤드는 자기의 탄생을 앞에 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마치 어머니의 젊었을 때 사진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라고 그는 설명
했다. 아버지의 모습도 보았으나, 아버지는 19세기의 버지니어주에서의 인생이고, 그
를 다정하게 원조해 주던 할아버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아이린도 그곳에 있고, 분명히 에드거 코트니의 누나 세이러와 같은 인격을 갖추고 
있었다.
   해롤드가 중간생을 조사하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는 누나와 재회하고 두 
사람이 분담한 카르마의 회계장부에 있는 수지를 청산하기 위해 윤회전생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화해하는 일이 이 인생의 첫번째 목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30대 후반에, 카르마 대
신에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 목적에 한 발자욱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도 알았다. 이런 기억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정확하게 지정되지 않
았으나, 그에게는 어째서 자기가 온갖 불쾌함에 계속 시달렸는가를 이제 와서 알게 되
었다.
   그는 과거의 보기 흉한 행위를 분명히 청산하고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다.
   "병에 대한 것은 카르마의 대본에서 계산에 넣지 않은 겁니다. 병은 계획을 실현시
키기 위하여 스스로 일으킨 것이었나 봅니다 "
   해롤드는 말했다. 그가 느낀 것과 같은 것을 하워드 마훼가 <미지의 나라>에 이렇
게 쓰고 있다.
   "우리의 인생에는 패턴(원형)과 큰 줄거리만 정해져 있다. 이들 원형을 선택한 것
은 우리 자신이다. 선택한 운명이라는 넓은 길을 가면서 우리는 작은 부분을 메꾸어 
가는 것이다."
   현재, 해롤드는 갖가지 전생과 중간생에서 배운 것을 결코 잊고 있지 않다. 그는 
자기가 존재하는 이유를 어데까지나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 결과 표면적인 것이나 
천박한 것, 사소한 것에 낭비할 시간은 없다고 하는 걸 깨달았다.
   그는 죽음에서 되살아난 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사실, 그가 죽음을 면한 것은 거
의 틀림없다. 누나가 저렇게 아주 극적으로 회복된 지금, 그는 자기의 목숨과 맞바꿔 
주십시오, 하고 바랐던 것이 자기의 목숨을 잃는 것을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상황에서 미루어 보아도, 틀림없이 그 같은 결과가 되리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런 무서운 억측을 뒤엎을 계획이 있었음을 그는 알게 되었다.
   계획에 따르면, 미숙한 상태에서 죽지 않고, 화해하여 사이 좋게 살아가기 위하여 
살아나서 생각해내야만 한다는 것이 정해져 있던 것이다.
   해롤드가 직관에 이끌려, 자진하여 치유되는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그는 회복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책임은 자주적인 판단과 이어진다. 윤회의 과정을 받아 들
이는 일, 그것은 다름 아닌 차례로 환생하여 자기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밖에 급
속한 성장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라고 인정하는 일이다.
   해롤드의 누나인 아이린 문제인데, 그녀는 두 사람의 각각의 의학적인 '기적'의 비
화도 모를 뿐더러, 두 사람의 카르마에 있어서의 관계도 알지 못한다.
   "누나는 윤회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고, 이 쪽도 누나를 화내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하고 해롤드는 말한다.
   이 케이스 스타디에는 흥미를 끄는 점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카르마의 문제와는 
관계 없는 것이나, 해롤드가 생각해 낸 전생의 신빙성을 납득시킬 수 있는 논증이 되
는 것이다.
   그는 깊은 최면 상태에 들어가 있는 동안, 바이킹인 쏘오와 조로아스터교의 신관 
잔드의 두 전생에서 사용하던 말을 생각하고, 그것을 '듣기' 시작했다.
   해롤드가 쏘오였을 때의 인생을 다시 체험하고 있을 때, 횟튼 박사는 그에게서, 주
고 받는 말을 발음대로 써놓도록 지시하였다.
   해롤드는 이 요구에 응하고 그의 어구를 썼으나, 그에게는 어느 말도 이해할 수 없
었다. 아이스랜드어와 노르웨이어를 말하는 언어학의 권위자들이 이들 말 가운데 10단
어 바이킹의 언어이며, 현대 아이스랜드어의 선구가 된 고대 북구어라고 확인하고 이
것을 번역했다. 다른 
몇 갠가의 말은 러시아어, 세르비아어, 내지는 스라브어에서 파생된 말 같이 생각되었
으나, 이것들도 또한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말은 바다에 관한 것뿐이었다. -틀림없이 바이킹의 전사들이 쓸만한 말뿐
이었다.
   카나다의 환경청 연구원인 아이스랜드어의 전문가, 소오 제이코브슨박사는 해롤드
가 쓴 것을 검토한 결과, 말의 대부분-'폭풍우' '심장' '빙산'을 포함함-은 '바로 아
이스랜드어에 기원이 있는'말이라고 하는 결론을 내렸다.
   말의 몇 가지는 다른 언어에 기원을 가진 것으로 이 일이 결국 복사한 말이라는, 
신빙성을 더하게 하는 것이 되었으나, 그 이유는 끊임없는 활동을 계속한 호전적인 바
이킹이 유럽의 구석구석까지 방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제이코브슨박사는 말하
고 있다.
   '바이킹이 당시의 외국어를 포함한 말을 지껄였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라고 박
사는 지적한다. '이것은 방랑하던 바이킹의 언어 패턴에 합치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
겠지요.'
   '제노그롯씨'란, 말하는 이가 알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에 대해 기
록하는 이가 알지 못하는 말을 기록하는 것을 '제노그라피'라고 말한다. 맨 처음 해롤
드는 제노그롯씨의 능력에 조금 어안이 벙벙했으나, 그가 최면상태에서 계속 소리친 '
로코! 로코!'라는 말이 아이스랜드어의 로크, 다시 말해서 '폭풍우'와 같은 말이라는 
게 확인되었을 때. 그는 이 것은 진짜에 틀림없다고 통감했다.
   머리 속에서 말을 생겨나게 한 최면 시술을 되돌아다 보고 해롤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항해를 떠났습니다. 그러자 큰 폭풍우가 발생하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뱃사공에게 큰 소리로 외쳤던 것입니다. 자기가 '여기서 빠져나가자!' 하고 소리
치고 있는 거다, 하고 나의 마음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숙달된 뱃사람들이라면, 설령 
그것을 번역한 말이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니라도 '폭풍우'라는 말을 들으면 곧 그 뜻
하는 바를 제대로 알았을 것입니다."
   바이킹의 쏘오가 말한 말을 몇 가지 보기를 들기로 한다. 발음대로 표기하고 밑줄
을 친 말은 해석이 합치되는 것이다. 두번째 난에 있는 것은 이에 대응하는 아이스랜
드어의 단어이고, 세번째는 그 뜻이다.
   해롤드의 전생인 잔드라는 인물이 나온 일이 있었으나, 그 때 휫튼 박사는 피실험
자 책상 앞에 앉히고 연필을 손에 쥐게 하고 최면을 걸었다.
 
  YIAK    JAKI 빙 산
  LEJNESVKONJA    NES VIK 두개의 만 사이에 있는 토지의 부분, 만
  ROKO    ROK 폭풍우 
  VOLNYKIAGE    (VOLNY 러시아어로 '파도'의 뜻)
  YIAK LEDDEREN    (JAKIED 세르비아어로 '튼튼한 얼음'이란 뜻)
  HYARTA    HJARTA 심장 
  KNOLOTTEN
  VLOGNIA    LOGN 잔잔한 바다 
  NEGI LOKUSNO    LOK LOKS 용기, 종결, 마침내 (NIJE USUSNO 세르비아어로 '취미가 
안 좋은'의 뜻 
  KIAK 80 SANTI    (80 SANTI 세르비아어로 '80의 떠있는 얼음덩어리'의 뜻. 80은 숫
자로 쓰여있었다. )

   박사는, 우선 해롤드를 1300년 전의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한 시점으로 데려가고, 
그런 다음 헤롤드를 글씨를 쓸 수 있는 나이가 되게 하여, 그에게 그 시대의 달로 영
어의 '형제''집' '옷' '마을' 따위에 해당되는 말을 쓰도록 지시했다. 
   극히 가볍게 연필을 쥔 해롤드는 이상한 아라비아식 글씨로 섬세하고 유치한 필적
으로 신중하게 썼다.
   "자기가 쓴 것을 보아도, 구불구불한 선이 모인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은 정말 하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휫튼 박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박사는 환자의 필적을 도서관 책에 
있는 고대의 문자와 비교해 보았으나 판단이 어려워, 마지막으로 와싱턴의 국회도서
관, 근동과의 고대 페르샤어와 이란어 전문가인 이브라함 파하디 박사에게 가져갔다. 
파하디 박사는, '구부러진 선'이 진짜 사산조 시대의 파리뷔어라고 부르는, 아득한 옛
날에 쓰지 않게 된 언어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 언어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서기 226년에서 651년까지 사이에 사용되었고 현재의 
이란어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한다.
   제노그롯씨라는 것은 노벨상을 받은 프랑스인 생리학자 샤르르 리계박사(1850~193
5)가 만든 말이다.
   이 말은 '기묘한' 혹은 '이국의'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접두사인 '제노'와, '언어'
를 뜻하는 '그롯싸'라는 말에서 유래되는 것으로, 중세에 제노그롯씨는 악마의 존재를 
가리키는 바로 그 증거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1608년에, 카톨릭의 관점에서 악마에 대해 쓴 교과서인 괏소의 <악한 것 모음>에
는, 이 기묘한 뜻대로 되지 않는 현상을 악령이 붙은 증거의 하나로 들고 있다.
   과거 100년 이상에 걸쳐, 제노그롯씨는 무의식적인 기억의 유출을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들 생각해 왔다. 월리엄 제임스에서 이완 스티븐 박사에 이르는 유명한 초심리학
의 연구가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 케이스가 조사되어 왔다.
   1970년대 초반부터 전생요법이 널리 행해지게 됨에 따라 이번 생에서는 보도 듣도 
못한 외국어를 써서 지껄이는 피실험자가 수 없이 나타났다. 그 말은 범위가 매우 넓
고 현대 유럽의 말과 중국어, 심지어는 정글에서 사용되는 사투리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해롤드는 현존하지 않으나, 한때 존재했던 두 가지 언어로 말하는 능력을 입증
한 유일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ff
    제 12장 후회의 피가 흐를 때 
 
    고통이나 공포, 유혈의 처절함을 동반하고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이 필연을 영광의 승리로 
    바꾸어... 
    월리엄 워즈워즈
 
   1980년 4월10일 목요일, 소셜 워커(사회사업가)인 제니 손다아즈에게 있어서는 그
날도 역시 평소 때와 마찬가지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아홉 시에는 직장의 책상 앞에 앉을 수 있도록, 일곱 시 반까지는 일어나서 겉옷을 
걸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침실에서 달려나온다. 불과 몇 걸음 걸었을까 한 순간이었
다. 맨발로 거실의 융단 위를 밟고 지나가려다 제니의 발걸음은 멎고 말았다. 아직도 
졸리운 두 눈이 놀라움에 휘둥그래졌다.
   바로 눈 앞의 벽에 제니는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곳에는 눈 높이 정도의 벽에 새빨
간 얼룩무늬가 네 다섯개, 어렸을 때부터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인형이 집합된 어린애방 
맨 위에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려고 목을 길게 빼어본다. 
얼룩은 꼭 핏자욱 같았다. 서둘러 자기 몸에 상처라도 난 게 아닌가 보았으나 아무 것
도 없었다.
   이어서 어제밤, 케첩을 쏟은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니야, 그럴 까닭이 없다. 어
젯밤에는 케첩을 쓴 기억이 없다. 게다가 얼룩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케첩보다는 피에 
가까운 선홍빛이었다. 아무래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간신히 마음을 바로잡고 커
피를 끓이면서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였다. 방심상태에서 커피
를 마시면서도 제니는 그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 뿐이었다. 
    그날은 매우 바빴다. 정신박약아동 복지사무실의 케이스 스타디를 맡고 있어 전문
지식이 풍부한 제니는 언제나 여기저기 바쁘게 불려다니는 입장이었다. 지금 28세인 
제니는 철이 들면서부터 줄곧 정신박약아들을 위하여 일하고 싶다고 생각해 왔었다. 
자기 직업을 너무나 좋아했었으므로 오랜 시간의 근무도, 월급이 적은 것도 개의치 않
고 동료들이 놀랠 정도로 멸사봉사의 그날 그날을 보내고 있는 제니였다.
   그날도 평소 때와 같이 케이스 스타디를 끝내자, 벌써 저녁 일곱 시가 넘었었다.
   그런고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벽의 얼룩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도 무
리는 아니었다. 아파트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전기를 켠 순간, 그녀는 예의 얼룩
을 생각해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제니는 인형의 집 위의 벽에 또 새로운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고 온 몸이 오싹
했다. 아침에 본 얼룩이 말라서 검게 변한 근처에 또다시 새로운 얼룩이 생긴 것이었
다. 당황하여 그 자리에서 떠나려고 하다가 그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만져보았다. 
끈끈한 촉감이 마치 피와 같은 느낌이었다.
   얼룩은 아무래도 흰 페인트가 칠해진 벽의 표면에 생긴 것인 듯, 벽 뒷쪽에서 스며 
나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뒤 2,3일 사이에도 크고 작은 얼룩이 나타났다. 제니의 친한 친구 두어 서너명
이 이 괴상한 현상을 확인했다.
   친구들이 아파트를 찾아와서 얼룩을 확인한 뒤, 제니와 두 시간 가량 외출을 했다
가 돌아와 보니까, 아파트를 비운 사이에 새로운 얼룩이 나타났던 것이다. 친구의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마 제니가 자기도 모르게 얼떨결에 만든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그
렇지가 않았습니다. 영화 구경을 갔다가 돌아와 보니까, 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얼룩이 나타나 있었으니까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
   제니에게는 이 이상한 일에 놀랐다기보다는 몹시 신경에 걸리는 일이었다. 이 불쾌
한 일이 신경에 거슬려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머리 속은 얼룩 때문에 꽉 차있는
데, 이상하게도 그녀에게는 이 얼룩을 지워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었
다. 얼룩은 점점 더 넓게 퍼져서 테레비 곁에까지 퍼져갔다. 물론, 추상화와 같은 얼
룩을 그녀가 즐겨 바라다 본 것은 아니었고, 어째서일까,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하고 
줄곧 고민을 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인형의 집의 뽀죽한 지붕에까지 피와 같은 얼룩이 확대된 것
을 보고 마침내 그녀도 어쩔 수 없이 그날 친정에다가 전화를 걸었다.
   제니가 부모님에게 전화를 건다는 것은 여간해서 없던 일이었다. 그녀는 거의 부모
와는 만나지를 않았고 가족이 모이는 것은 크리스마스 때나,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있
을 때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니의 부모는 딸의 전화를 
받고 그날 밤 곧 아파트로 달려와 주었다.
   두 사람은 작은 탄성을 올리면서 이것저것 조사를 했는데, 제니의 어머니가 갑자기 
이렇게 외쳤다.
   "이 곳에 악령이 붙어있는 게 분명하다."
   초자연적인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건은 분명히 영혼의 출몰을 
암시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 가능성은 이제까지 제니뿐만 아니라, 제니의 친구
들도 생각해 온 일이었다. 마음속에서는 그렇게 생각했어도 지금까지 그 누구도 분명
히 입으로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로부터 '악령인가 무엇인가가 붙어 있다'는 말을 듣고 당황한 제니는 공포 
때문에 아파트에서 도망쳐 나와 그 금요일 밤에는 친구 집에서 한잠도 자지 못한 채 
밤을 뜬 눈으  로 새워야만 했다. 다음 날, 그녀는 토론토 시내의 또 다른 아파트를 
구하여 일요일에는 인형의 집을 포함해서 신변 주위의 짐들을 모두 챙겨 이사했다. 그
러는 동안, 제니의 아버지가 카나다의 온타리오주에 있는 피터뽀로 부근 별장에서 휴
가중인 횟튼 박사를 방문했다. 제니의 아버지는 박사가 '괴기'현상의 전문가로서 테레
비젼에 출연한 것을 보고 딸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박사는 토론토에 돌아오는대로 제니를 진찰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피가 얼룩진 표본은 갖고 있으신가요?" 하고 박사는 제니의 아버지에게 한마디 물
었다.
   뒤늦게나마 제니도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공포심이 가라앉은 뒤, 벽
의 얼룩이를 사진으로 찍고 긁어내어 증거로 삼으려고 그녀가 아파트에 돌아와 보니
까, 관리인이  전날 비운 거실에 새로 페인트칠을 한 직후였다. 관리인은 비누물에 적
신 딱딱한 솔이 달린 브라쉬로 얼룩을 지우려고 했다. 그러나 페인트를 칠한 밑의 시
멘트에까지 얼룩이 스며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벽의 핏자국'을 감추기 위하여 진한 
잿빛 페인트칠을 했던 것이다.
   첫번째의 상담을 하기 위하여 휫튼 박사의 진찰실에 나타난 제니는, 자기는 무서운 
힘을 가진 악령을 끌어낸 게 분명하다고 완전히 믿고 있었다. 그러나 휫튼 박사는 이
와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에 걸쳐서 포르타 가이스트나 염동작용
[포르타 가이스트란 '장난꾸러기 귀신의 장난'이며, 염동작용은 염력이라고도 하는데 
살아있는 인간의 마음이 물체를 움직이게 하거나 물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을 조사
해온 박사는 제니의 심리상태가 정신적 갈등의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이상한 피의 얼룩
을 발생시킨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리분석가인 난도 포오드에 의하면, 이런 종류의 무의식적인 행동은 '투영된 억압
의 여러가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염동작용은 그 머리 글자를 따서 PK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
는 불과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PK현상은 한번에 끝나는 게 아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와 같은 현상을 몇 번이고 일으킨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두개의 커다란 문제-즉, 제니에게는 염동작용을 일으킨 경력이 있는가, 
만일 있다면 어떤 일이 벽의 피를 생기게 하는 깊은 갈등을 불러 일으켰는가-가 제기
된다.
   첫번째 문제의 대답은 물론 긍정적이었다.
   제니는 지금까지 수많은 염동작용의 사건에 관여해 온 게 사실이고, 원인은 아무래
도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휫튼 박사는 제니를 'PK양'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나중에 박사는 카운세링의 시
술 도중, 진찰실에서 섬광과 같은 그녀의 무의식이 지닌 힘을 목격했다. 박사는 지금
까지 다음과 같은 기묘한 일이 있었음을 알았다. 
 
   *제니의 집, 식기 꽂이에 건조시키려고 세워 두었던 유리잔이 손도 대지 않았는데 
박살이 났다.
   *제니와 친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 친구의 아파트에 있는 올렸다 내렸
다하는 식으로 된 창문에 걸려 있었던 닫아 놓은 커튼이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하여 
완전히 열리 고만 일이 있다.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아서 친정에 갔을 때였다. 제니는 천정에서부터 무거운 쇠
사슬에 매어달린 대나무로 엮은 새장을 앉아서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새장 속에
는 아주 예쁜 모조품 새가 들어 있었다. 이것이 진짜 새인가 하고 제니가 생각하고 있
을 때, 갑자기 1미터 가량의 쇠사슬과 함께 새장이 떨어져 내려왔다. 새장이 방바닥에 
부딪친 뒤, 쇠사슬은 보이지 알게 되었는지 소멸되었는지, 그것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
다. 
   *친구가 제니에게 수정으로 만든 꽃꽂이 화병을 준 적이 있었다. 뒤에 이 친구가 
자기 아파트에 와 달라고 전화를 했는데, 제니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기분도 좋지가 
않았기 때문에 가지 못한다는 사과의 말을 시작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에 PK양
은 또다시 해치웠던 것이었다. 아연히 지켜보는 제니의 바로 눈 앞에서, 방 건너편 경
대 위에 놓아 두었던 꽃병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목이 부러지면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
각이 나고 말았던 것이었다.
   *데이트를 하고 저녁식사를 끝낸 뒤, 남자 친구가 제니를 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겠
다고 해서 마지못해 승낙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귀가하겠다'
고 그가 끈질기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같이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조금 있자, 그는 함
께 잠자리를 같이하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제니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고 남자에게 
자극을 준 것도 아니었다. 좀 더 늦은 시간이라면 그는 하는 수 없이 돌아갈텐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제니의 팔목시계를 포함해서, 
아파트 방에 있는 시계의 네 개 바늘이 똑같이 앞으로 돌아가, 새벽 한시 삼십분을 가
리켰다. 남자친구는 당황하며 일어서서 돌아갔다. 그를 전송해준 뒤에 정확한 시간을 
알아보기 위하여 라디오의 스윗치를 돌렸더니, 마침 저녁 아홉 시의 뉴스가 끝나는 순
간이었다.
 
   이 정신적인 갈등의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내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제니는 직장 일에 관한 한, 분명하게 의사 표시를 하는 확실한 성격이었으나 일단 
직장을 떠나 세속적인 교제를 하게 되면 굉장히 수줍어하는 성미였고 겁이 많은 편이
었다. 그녀는 정신과의사의 신세를 진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정서상의 문제로 단골 의
사의 진찰을 받은 일 조차 한번도 없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동은 
불안때문에 완전히 힘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휫튼 박사는, 정말 그녀가 마음의 갈등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갈등
은 필이 억압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에 관한 아주 기본적인 
정보를 끌어내는데는 몇 시간에 걸친 최면이 필요했다. 하나하나 세밀한 데까지 이야
기할 수는 없다는 듯이 그녀는 두서없이 비참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10대 때, 제니는 오해를 받고 너무나도 암담한 기분이 된 나머지, 집에 있고 싶지 
않다는 단지 그것만의 이유로 세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갈등의 문제
가 나오면 제니는 
   "당치도 않아요! 그런 일이 있을 까닭이 없어요!"하고 대답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반응은 몹시 가혹한 대우를 받고 자란 사람들에게서만 찾아 볼 수 있는 특
유한 것임을 휫튼 박사는 알고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가 학대받았다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게 마련이고, 설사 했다고 해도 불만은 털어놓지 않는 법이었다.
   의학박사 마이켈 H 스톤은 그의 저서인 <경계증후군>에서 어린 시절 심한 학대를 
받은 환자의 '사고의 혼란이 취하는 미묘한 형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
다.
   "느낀 것은 기억되지 않거나 혹은 적절하게 표현되지 못한다. 또는 의식 위에 떠오
르기 전에 지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어째서 PK양이 무의식적이었다고는 하지만, 4월 10일이라는 날을 골라서 피
의 얼룩을 생기게 한 것이었을까?
   횟튼 박사는 지금까지, 중간생에서 결정된 무의식적인 지령에 따라 자기들의 장애
의 근원을 찾아내게 된 깜짝 놀랄만한 사건을 갑자기 생기게 한 많은 환자들의 실예를 
관찰해왔다.
   아마도 얼룩진 피자욱의 벽도, '기념일 현상'이라고 불리워지는 것 중 한가지 실례
일 것이다. 즉, PK현상은 환자에게 정신적인 외상으로 중요한 뜻을 암시하는 날에 생
겼을 게 분명하다. 제니로서는 그날이 자기에게 있어서 감정적으로 어떤 뜻을 가진 기
념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이 주장이 옳은지 아닌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그
녀는 무거운 입을 열고 이렇게 작은 목소리로 고백했다.
   "작년 여름 임신을 해서...낙태를 하러 갔던 것입니다. 이 일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요."
   휫튼 박사는 마치 유력한 단서를 찾아낸 탐정사 같은 열정을 가지고, 이 말에 주의
를 집중시켰다. 순간, 쉽게 머리에 떠오른 것은 낙태를 시킨 것으로서 제니의 마음에
는 죄의식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제니는 열심히 지진아들(지능이 떨어지는 애들)의 뒤를 보살피고 있고, 성인
인 장해자들에게 부모로서의 필요한 기술을 지도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자신
은 어린애를 갖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박사는, 그녀의 죽은 아이
가 1979년 6월23일에 수태했다는데 주목했다. 이는 제니로서는 단 한번의 성 교섭을 
가진 날이었기 때문에 생각해 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계산해 보니까 순조롭게 진
행되었더라면, 4월 초가 출산 예정일이었다.
   제니를 담당한 토론토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의사의 기록에서 이 점이 분명하게 확
인되었다. 만일 갓난애가 배 속에서 살아 있었드라면 1980년 4월 10일-제니 방의 벽에 
처음으로 핏자국이 나타난 바로 그날-에 출산했을 게 분명했던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제니는 틀림없이 이 임신과 관계있는 또 하나의 PK사건을 털어놓
았다. 그 1년 전에 그녀는 흔히 '베이비즈 티어즈(갓난애의 눈물)'라고 불리우는 관엽
식물을 기르고 있었다. 
   허약해 보이지만 생생한 이 식물은 9월2일 아침, 일찍 그녀가 낙태를 시키기 위해 
병원을 가기 조금 전에, 분명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말라 죽어버렸다. 병원에서 조사
를 해보니, 배 안의 태아는 3일 전에 죽은 상태였고, 따라서 중절수술은 할 필요가 없
게 되었다. 이때, 제니는 '갓난애의 눈물'생각이 기억에 떠올랐다. -식물은 태아가 죽
은 것과 똑같은 시간에 즉시 시들어서 갈색으로 변했던 것이다. 이 같은 자연유산은 
드문 일이 아니며, 적어도 전체 임신수의 10에서 20% 정도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볼 때, 제니의 자궁에 있어서 이 PK현상은 지나치게 높아진 심
령능력 뿐만 아니라 이상하게 강한 감정도 나타내고 있다.
   염동작용[사이코키네시스, 사이코 즉, '정신, 마음'과 키네시스 '움직임'에서 온 
말]은 옛날부터 악령이 빙의된 탓이라고 생각이 되어왔으나 현재로서는 의식 밑의 긴
장감이 심령적으로 유발되어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자기 마음
대로 PK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기도 하나,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사람들
도 있다. 1960년 후반에서 1970년 초에 걸쳐서, 마슈 매닝이라는 10대의 소년 -그의 
아주 탁월한 능력은 1974년에 토론토에서 횟튼 박사와 A· R 죠오지 오웬 박사에 의해 
시험된 바가 있다-은 무의식적으로 PK현상을 일으켜서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영국의 
캠브리지시에 있는 마슈의 집에서 가벼운 장식품과 의자, 포오크, 스푼, 잿덜이, 접
시, 소형 커피 식탁 등 많은 물건들이 집안을 이리 저리 날라 다녔다. PK현상의 발생 
건수는 점차 늘어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안의 모든 곳에서 무엇을 두드리는 것과 
같은 소리와 끽끽, 하는 소리가 울려오곤 했다.
   1968년에 매닝 집안이 린튼 마을로 이사 온 뒤에도 때때로 무거운 식탁이 다른 식
탁으로 올라 앉거나, 침대 위에 놓인 물건이 자주 치워지거나, 침대가 뒤집혀지는 일
조차 일어났었다. 캠브리지주, 오크 햄학교의 마슈가 들어 있던 기숙사에서는 어느 때
인가 무거운 강철로 된 이층 침대가 혼자서 움직였고, 열 네개의 식사용 나이프가 벽
과 침대에 던져졌다.
   유리조각과 못, 나무 판자 조각, 자갈 등이 어디서부터인지 돌연 나타나기 때문에 
한동안 기숙사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1970년에는, 동안의 이스라엘 사람인 유리 게라가 금속물질을 구부리는 기술로 서
방 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의식적으로 PK능력을 발휘하여, 테레비 스튜디
오, 연구소 등 그가 가는 곳마다 굽혀진 수저나 포오크, 열쇠가 쌓이곤 했다.
   게라는 여러가지 초능력 실험의 실험대가 되었으나 아직껏 과학자들이나 미국 마술
사 협회의 전문가들도, 그의 힘에 대하여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
정이다.
   역사에는 제니 소온다아스가 일으킨 것과 같은 물질화 현상을 포함한 염동작용의 
실례가 많이 발표되고 있다. 1919년에는 신문기자 등 증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국 
싸포오크주의 스완튼 노봐아스 교구 목사관에 있는 벽과 천정에서 기름과 물이 흘러나
온 일이 있다.
   횟튼 박사의 예비조사에 의하여, 염동작용이 제니에게 깊이 억압된 정신적인 외상
이 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긴장을 해방시켜 주는 수단도 되어 있다는 박사의 독
특한 견해가 옳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제니는 자기의 PK에너지와 벽에서 닦지 않고 놓아둔 핏자욱을 의식해처 관련시키려
고 하지 않았으나 박사는 이에 대해 별로 놀라지 않았다. 제니가 망각하고 싶어하고 
있음과 동시에 기억하고 싶기도 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산된 아이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억압하려고 몹시 애쓰고 있었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잊
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피의 얼룩점은, 그녀를 온전한 정신을 갖게 해주기 위
한 일종의 해방작용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얼룩은 마음 속 깊이 소용
돌이치고 있는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불안이 무엇인지는 조사해 볼 필요가 있
었다.
   제니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의 핵심을 해명하는데 있어서, 휫튼 박사는 우선 최면요
법을 써서 그녀를 어린 시절로 후퇴시키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후, 2년 동안에 걸친 
치료 과정에 
서 그녀가 열 한 살이 될 때까지의 중요한 사건들이 하나하나 파헤쳐졌고 차례차례로 
의식 위로 떠올라와서 눈 앞에 전개되어 갔다. 최면상태에서 고통과 노여움 때문에 숨
을 몰아쉬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동안에, 제니가 쓰고 있던 겁 많고 무표정한 가면
은 차례로 벗겨져 갔다.
   망각의 저 너머에 매장해 버린 수많은 불쾌한 경험을 해방시키는 게 얼마나 끔찍스
러웠는지 몰랐다. 반대로 이야기한다면 해방작용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짐작하기 어려
울 지경이었다. 환자와 의사가 협력한 결과 제니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혹한 학대 
행위와 성적학대의 희생자였음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다만 살아남기 위하여,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어린 시절의 공포의 기억 전부를 억압해 왔던 것이다.
   어른이 된 뒤에도 제니는 어머니에게 대해 공포와 미움밖에 느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억눌러도 공포와 미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단지 자기
를 돌봐주지 않고 내버려두었을 뿐만 아니라, 발육기에 고통을 준 인물임을 알고 제니
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최면 상태에서 제니가 다섯 살 무렵부터,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이 어머니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받았음이 밝혀졌다.
  사타구니 안쪽에 두 개의 상처가 있는 것을 언제나 이상하게 생각해 왔었는데 그것
은 어머니가 가위로 낸 상처였다. 제니는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무엇 때문
에 어머니가 그런 짓을 했는가를 증언했다.
   "네 몸을 사내들이 싫어하는 그런 몸으로 만들어 줄테다!" 어머니는 철없는 제니를 
향하여 이런 말을 내어 뱉었던 것이다.
   제니는 처음에 자기의 어머니가 그와 같은 혹독한 행위를 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
지 않았었다.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일찌기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의식 위에 정착시키는데는 몇 번에 걸친 최면요법을 받아야만 했었다.
   일단 까맣게 잊어버렸던 과거의 기억을 최면상태에서 더듬어 가면서, 그녀는 어머
니에게 두들겨 맞은 것과 성적으로 고약한 대우를 받은 것, 울부짖은 것, 오랫동안 혼
자 갇혀 있었던 것을 또다시 경험했다. 제니의 아버지는 커다란 전기회사의 홍보담당 
중역인데, 아마도 딸의 고민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일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일에 쫓겼고 여간해서 집에 있었던 일도 없었다.
   제니가 맨 처음 생각해낸 것은, 배고픈 배를 움켜쥔 채 어린이침대 위에 누워있었
을 때의 기억이었다. 멀리 있는 문이 열리고 젖병이 제니 옆으로 던져졌다. 아직 작은 
손으로 병을 붙잡을 수 없는 어린 제니는 고무 젖꼭지 있는 곳까지 힘들게 몸을 끌고 
가 겨우 겨우 우유를 입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정하게 젖병도 놓아주지 않는 
그런 엄마의 모성애로 보아 앞으로의 고생은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제니의 모친은 정기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마약 상습자로 딸이 성장하자, 너
는 살인자라고 닥달을 하기도 하고, 제니가 사산이 된 바로 다음에 태어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기도 했다.
   "그 애는 네가 살기 위해서 죽지 않으면 안됐단다."
   이렇게 말하는 게 모친의 입버릇이었다.
   나중에 가족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사산아의 이야기는 모친의 신경증에서 온 
망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았다. 하지만 당사자인 제니에게 있어서, 어렸을 때 마음에 
심어진 죄악감은 자기 몸에 가해진 충격과 마찬가지로 정말로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었
다.
   죄의식은 그녀의 무의식 속에 머물러 있었고, 1979년에 낙태를 꾀함으로써 불문곡
직하고 그 기억이 되살아날 때까지 계속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뭣보다 그녀는 자신이 살기 위해 태아를 '죽인' 것이었다.
   반드시 최면 시술로 완전히 기억을 의식 표면으로 끌어낸 것은 아니고 제니의 꿈이 
그 과정을 보충해준 일도 자주 있었다.
   또한 염동작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기억을 의식으로 떠올리게 하는 계기를 제
공해 주는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제니가 일어나 보니, 아파트의 딱딱한 나무 바닥 구석에 선명하게 붉
은 줄이 20개 이상이나 그려져 있었다. 붉은 립스틱도 쓰지 않았고 빨간 크레용도 놓
여 있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다, 하고 제니는 답답해했으나 더 이상 그녀는 그런 사
건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서둘러 샤워를 하려고 하였을 때,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제니도 그만 기
절할 뻔했다. 오른쪽 허벅지에 15센티 정도의 가늘고 긴 검은 흔적이 생긴 것이었다. 
다음 시술에서 제니는 여섯살 때, 어머니의 메니규어를 몇 갠가 꺼내 가지고 놀았던 
일을 생각해 냈다.
   그녀는 마루바닥의 붉은 줄과 같은 색의 빨간 메니큐어를 골라서 부모의 침실 벽을 
칠하고 있었다. 예술가가 된 기분으로 벽을 칠하고 있는 제니를 발견한 모친은 그녀를 
가죽혁대로 때렸다. 그 때문에 다리를 몹시 다쳐 꼬박 일주일 동안 학교에도 갈 수 없
었다.
   휫튼 박사는 시술의 여파로 마음이 흔들려서 잠을 잘 수 없으면 안 된다고 제니에
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었으나 어느 날 아침, 그 안정제 약병에 피 같은 얼룩점이 
몇 군데 붙어 있었다.
   핏자국이 있는 병은 그녀의 모친이 대량으로 각종 정제약을 먹고 있던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촉매작용을 해 준 것이었다. 흔히 이런 PK의 실례는 휫튼 박사가 증인이 되
어 사진으로도 찍고 있다. 
   파묻힌 기억을 발굴함에 따라 그녀의 근심은 사라졌다. 남에게 대한 공포심도 없어
졌으며 모친을 두려워하는 일도 없어지고 (미움은 남아있지만) 자신감도 생겼다. 
   사실 그녀는 매우 적극적이 되었으므로 다른 심신장해자의 봉사기관으로 전직하여, 
보다 책임 있는 직책을 맡을 정도였다. 이 무렵 (1981년 8월) 토론토대학에서 열리는 
제10회 국제초과학회의를 앞두고, 횟튼 박사는 제니 손더스의 케이스를 정리했다. 그
러나 불가사의한 PK현상을 자세히 쓴 레포트를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는 순간에, 휫튼 
박사는 제니의 경우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니에게 
완전히 문제가 없어졌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도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죄의
식이 가벼워지기는 하였으나 결코 없어질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
려움이 아직도 남아 있었고, 끝이 뽀족한 
칼에 대한 공포증도 남아 있다. 또한 아버지에 대한 이유 없는 혐오감에 대해선도 괴
로워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제니는 '고간결절'이라고 그녀 자신이 표현하는 증상때문에 시달림을 받아 왔
었다.
   그러기 때문에 섹스는 쾌락이라기보다는 고통-그것도 심한 노여움으로 변하는 고통
-이었다. 그래서 제니는 이성관계가 전혀 없는 생활을 몇 년씩이나 보내왔다.
   그녀가 철저한 독신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나, 자기에게 접촉하는 사람을 무조건 죽
이고 싶어지는 분노가 치받치는 게 싫었던 것이다. 만약 분노가 계속되면 그녀는 가위
로 자기 몸을 상처 입히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그 분노를 자기자신에게 돌렸을 것이다. 
그녀 어머니의 난폭성을 생각해 보면, 이런 반응을 그녀가 나타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
다, 라고 박사는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완전히 노출시켜 보아도, 증상은 좀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다른, 속수무책인 증상과 마찬가지로 이 증상의 원인이 현재의 인생보다 더 깊
은 곳에 있는게 아닌가, 하고 박사는 상상했다. 마침내 어린 시절을 더 거슬러 올라가
는 전생으로 제니를 데리고 갈 때가 온 것이다. 휫튼 박사는 그녀가 모친이 되기를 무
서워하는 원인을 찾으려고 17세기에 살았던 영국의 인생으로 퇴행시켰다. 제니는 쉽사
리 전생으로 이행해 갔다... 
 
    "1689년이었다. 런던은 지진아를 가진 미혼모에게 있어서 무정한 거리이다. '큰 
일이군...큰 짐이 될 뿐이예요.'모두들 루시 보우덴의 세 살짜리 딸에 대해 장애아니
까 처치해 버리라고 권한다. 지진아는 죽이던가, 마을 변두리에 버리는 걸로 생각하던 
시대였으나, 21세의 루시는 무엇보다 딸을 귀여워하고 있었다.
   친정에서 많은 경제적 원조를 받으면서, 두 사람은 화이트차벨가의 삼층 다락방에
서 살고 있다. 주제넘게 누군가가 딸을 꼬여내서 그대로 내버리지나 않나 하고 그녀는 
아이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하고 있다. 집을 비울 경우에는 늘 문을 잠그고 아이
를 밖에 내놓지 않고 오랜 시간 걸리는 외출은 결코 하지 않는다. 좀처럼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그녀였다.
   어느 날 근처 시장에서 식료품을 산 다음, 루시는 친구들 모임에 얼굴을 내밀기 위
해 선술집에 들른다. 친구가 술을 사주고, 못 마시는 술에 머리가 횡해지고, 뜻하지 
않게 오래있고 말았다. 갑자기 제 정신이 들어 시계를 보니, 이미 몇 시간이나 지났
다. 황급히 식료품을 챙기고 다락방으로 급히 돌아가려고 한다. 자기 집으로 통하는 
길모퉁이를 돈 순간,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올라오고 있는데, 그것도 자기 집에서 나
오는 것이였다. 건물은 자욱한 연기 속에서 이미 불길에 싸여 있다. 루시는 모여든 구
경꾼을 헤치고 가까이 가보았으나, 어린 딸을 살릴 도리가 없다. 희망은 완전히 사라
졌다. 아! 빨리 돌아와 있었기만 했어도... 절망에 빠진 루시는 끊임없이 자기를 계속 
책망한다. "
 
   평소 때의 의식으로 돌아온 제니는, 자기가 이미 루시의 몸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안도의 숨을 몰아쉰다. 그녀는 어째서 자기가 어머니가 되기를 두려워하는지 알기 시
작했다.
   또한 몸이 가루가 되도록 지진아를 위하여 일하게끔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유가 무
엇인지 납득되었다. 다음 시술에서 제니는 이 영국에서의 인생의 보다 더 앞의 생으로 
인도되었다.
 
   습하고 곰팡내 나는 교회의 지하실에서, 두 사람의 사제가 천천히 돌리는 수평으로 
놓인 나무 차바퀴에 루시가 가죽끈으로 묶여 있다. 차바퀴의 손잡이를 쥐는 사제의 모
습이 흰 가운을 입은 루시의 흔들리는 시야에서 보일 듯 말 듯 하다. 찬송가와 기도와 
주문의 소리가 울린다. 루시는 자신에게 빙의되어 악한 일을 하는 악마의 눈을 어지럽
게 하여 몸에서 내쫓기 위해 자진하여 이 시련을 받고있는 것이다.
   루시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사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야. 나를 선술집에 오래 있게 
하고 그 애를 불 속에 내버려두어 죽게 만든 것도 틀림없이 악마의 소행에 틀림이 없
어.
   슬픔과 후회에 시달려 루시는 영국 국교인 성공회 사제를 찾아간 것이다. 사제는 
그녀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듣고 애도의 말을 한 다음, 당신이 오랜동안 집을 비우는 
일 따위는 할수 없었을 것이고 악마의 소행에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제는 
그녀를 이 악마를 쫓는 장소로 데려온 것이다.
   벽이 빙빙 돈다...현기증과 구토가 난다...기도 소리가 들린다...이윽고 또 구토가 
난다...의식은 마지막에 이르고 주전자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새끼양의 피가 
벽에 부어진다.
 
   다시금 피묻은 벽. 먼 옛날에 있었던 사건의 여운이, 현재까지 뚜렷이 이어져 오는 
것이었다.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 또 하나의 피로 얼룩진 벽을 포함하여 조사하지 않으
면 안 되는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박사는 제니를 또 하나 앞의 전생으로 유도
해 갔다.
 
   1846년, 안제라는 다섯살때, 부모에게서 시카고의 고아원 현관 앞에 버림을 당한
다. 열 여섯살 때, 얼마간의 돈을 훔친 다음, 무서운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잔꾀를 
부려서 어떻게 살아가던 중, 중서부의 오지로 여행을 계속했다. 그러다 마침내 코로라
도주의 행정구인 코로나라고 하는 변경 마을에 다달았다.
   용모가 빼어난 안제라는 곧, 그 곳의 바의 호스티스로 고용되고 이윽고 그 가게에
서 가끔 창녀로서 일하고는 용돈을 벌게 된다. 그녀의 매력은 마을 의사의 눈에도 띄
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의사에게는 아내가 있었으나 안제라에게 완전히 반해서, 바 
주인에게 큰 돈을 주고 그녀를 들여앉힌다. 마침내 안제라도 이 사나이를 사랑하게 되
었다. 임신하자 그녀는 일편단심 아이를 원했고 의사는 바의 이층에서 건강한 사내아
이를 받아낸다.
   돈에 얽혀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였으나, 안제라는 깊이 의사를 사랑하고, 지금
까지의 자신의 생활방식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만족감도, 간
통을 한 여자가 의사의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 노한 그 곳 목사로부터의 방해 때
문에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아기를 제대로 키우고 싶으면 공공 시설에 넣는 것이 제
일이다, 라고 목사가 의사를 설득한 것이다.
   안제라가 갖 태어난 아기와 침대에서 쉬고 있는 곳에, 목사가 의사와 마을의 공무
원 두 사람을 데리고 저벅저벅 올라온다.
   의사의 초췌한 얼굴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그녀는 곧 신경질적이 된다. 
마침내 공무원에게 아기를 빼앗기자, 그녀는 몸을 날려 침대 밑에 숨겨둔 엽총을 손에 
든다.
   또 한 사람의 공무원이 총을 보고 달려들어 안제라와 몸싸움을 하는 동안, 총은 폭
발하여 아기도 그 애를 안고 있던 사나이도 죽고 만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탄환을 
맞은 두 사람의 피가 뒷쪽의 벽을 빨갛게 물들었다.
   안제라는 비탄에 젖어 말을 잃은 채, 충격을 받고 마루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의사
는 도망치고 뒤에 남은 목사가 바로 내려가려 하자, 총소리를 듣고 흥분한 여섯명의 
술에 취한 카우보이들과 맞닥들인다. 바로 이때란 듯이 목사는 안제라에게 불리한 이
야기를 꾸며대고, 사람 죽인 매춘부에게 합당한 벌을 주라고 사나이들을 유혹한다.
   카우보이들은 안제라를 방에서 끌어내고, 가축 도살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근처 창
고로 데려 간다. 비웃는 목소리와 야비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이트 가운을 벗긴 안제
라는 닥치는대로 윤간을 당한다. 그런 다음 폭 넓은 대들보에 매달아지고, 살이 찢어
지도록 가죽 채찍으로 매를 맞는다. 숨이 끊어질 듯하게 되자 안제라를 묶은 밧줄은 
끊어지고 끝이 뾰족한 엽도로 피부가 벗겨진다.
 
   안제라의 마지막 무서운 고통에, 제니는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괴로워했으나 죽음
의 체험으로 옮겨지자, 차츰 그것도 멀어져 갔다. 아직 최면 상태를 계속할 수 있을지 
어떨지 다시 확인한 다음, 그녀는 피부가 벗겨져 피바다에 누워 있는 육체를 떠나 초
의식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하여, 비로소 그녀는 삶과 삶의 사이로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나이들의 머리 위를 떠돌면서, 시체가 들려져 창고에
서 끌려나간 뒤, 마침내 썩은 동물의 잔해가 산처럼 쌓인 위에 던져지는 것을 지켜보
았다.
   몸을 떠난 안제라에게 있어서, 육체의 고통은 종지부를 찍었으나 마음의 고통은 조
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죄의식이라는 고통이며 엽총에 손을 뻗치고 말았다는 
후회이고 자기 자식을 죽이고 말았다는 분노이기도 했다.
   안제라의 죄 많은 행각을 재체험하면서, 제니는 휫튼 박사 앞에서 처음으로 단 한
차례만 소리를 내고 울었다. 그녀는 어렸을 무렵, 아주 사소한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어머니에게 심한 봉변을 당하므로, 아무리 혼이 나도 소리를 내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것이 완전히 습성이 되어 있었으므로 안제라의 비극이라는 괴로움에 
직면하기까지, 제니는 최면상태에서 한번도 소리지르거나 신음 소리를 내지 않고 흐느
껴 우는 일조차 없었던 것이다... 
   다음 주가 되자, 제니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카우보이에게 피부가 벗겨진 
뒤로 계속된 뽀족한 칼에 대한 공포는 과거의 것이 되고, 사나이들에게 강간당한 때에 
생긴 괴로운 '고간결절'도 거의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알 수 없었던 아버지에 대한 
공포심은 옛날, 아버지가 그 19세기때 코로라도에서의 참극 중 그녀를 강간하고 피부
를 벗겨낸 악당중의 한 사람이었음을 알고 설명이 된 것과 동시에 사라졌다.
   현재 제니는, 완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신뢰하기까지 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이 
문제에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안제라의 인생을 재체험하고 비로소 그
녀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전생요법을 통하여 자기를 깊이 이해하게 된 결과, 예전과 같이 제니의 PK능력이 
저절로 나타나는 일은 이제 없다.
   이 놀라운 능력이 어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건가를 찾으려고 휫튼 박사는 그녀
를 다시금 최면으로 인도하였다.
   최면상태에서 그녀는 에리라는 2세기 때, 로마를 근거지로 하고 있던 밀의교단의 
흰 옷을 입은 여사제였다. 에리는 자기가 염력을 써서 물건을 움직이게 하거나 변화시
키거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힘은 의식에 사용되고 그녀는 아가씨들에게 그 능력
이 사용법을 훈련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최면상태에서 이 새로운 사실이 표
면에 나타난 뒤, 제니가 이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능력을 시도해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와서는 지금까지 방치되어온 이 힘에 농락 당하지 않고, PK양은 
이 타고난 심령능력을 의식의 자각 아래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3년 동안에, 제니는 자기자신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자기의 정신적 외상의 밑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왔다. 그 댓가는, 파아-예전에는 자기의 자아였으나, 앞으로는 
다시는 상대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상대하고 싶지도 않은 자아-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체험을 통해 그녀가 알게된 것은, 과거의 사건에는 그 자체의 의미와 목적과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우연이라던가 설명이 되지 않는 사건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1980년 4월의 시점에서, 제니의 방 벽에 핏자국이 나타난 것은 정말로 이상
한 사건으로 생각되지만, 결론을 찾아서 끝까지 조사를 진행시켜 간다면, 반드시 그 
답은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이 복잡한 케이스 스터디는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계속 생기는 것 같다. 도대체 이 매우 복잡한 제니의 경
우에 있어서, 루시에서 안제라, 그리고 제니로 이어지는 발달 과정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휫튼 박사에게는,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은 초의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박사는 다
시 한번, 환자를 안제라와 제니의 인생 사이로 이끌어 갔다.
   '무엇이 보입니까?'
   박사는 가만히 물어보았다. 제니가 너무도 강한 감각을 맛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
므로, 박사는 시공을 초월하여 중간생에 떠도는 그녀를 막는 일을 중단했다.
   이윽고, 이번에는 조금 각도를 달리해 다시 질문해 보았다.
   "누가 보입니까?"
 
   내가...쇠사슬에...검은 옷을 입고...손발에는 쇠사슬이...재판관...부끄러워 못견
디겠어요. 큰 죄를 범하고 말아서...이제 다시는 그런 일은 결코... 
 
   제니는 우물거리며, 세 사람의 성실하고 만족한 표정을 한 존재가 어떻게 자기를 
기다리고 위로하며 격려하여 주었는가를 말했나. 제니는 그들의 지혜와 동정에 두려워
하고, 자기는 이 사람들에게서 관심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끼면서, 조심조심 그 
쪽으로 다가갔다.
   충동적으로 아이를 죽였으니까, 어떤 처벌을 받아도 할 수 없다-그녀는 안제라의 
인생에서 잘못을 저지른 내 몸을 계속 책망했다.
   그래도, '세 사람'은 곁에 있어서 계속 그녀를 지지해 주었다. 상황은 빼도 박도 
못할만큼 긴박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제니는 손과 발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가
는 것을 느꼈다.
   재판관들은 방금 끝난 인생을 평가하는 것을 도와주고 여러가지 중요한 에피소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인생을 회고하는 일이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는 가운데, 제니의 세 사람에 대한 신
뢰는 강해졌다. 또한 그녀의 영원한 목표를 더욱 깊이 이해시켜주기나 하듯이, 루시의 
아이도, 안제라의 아이도 같은 혼의 요소이고, 이 혼에는 카르마적인 이유때문에 두 
개의 짧은 목숨이 필요했다. 라고 배웠다. [중간생의 계획에서 정해진 것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번 생으로 전생하는 기간이 특히 짧아지는 경우가 있다. 초의식이라는 대국
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육체의 죽음-그 죽음이 빠르건 늦건-은 반드시 노력과 성장을 
촉진시켜 준다.]
   다음에 제니가 본 것은 긴 드레스를 입고 애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
다. 아이들 중의, 단 한 아이만이 그녀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곧, 그 애가 
루시와 안젤라가 낳은 애와 같은 존재라는 걸 알았다. 그 애는 아장아장 그녀에게 다
가가, 안아 달라고 하듯 드레스를 잡아 당겼다. 제니가 따뜻이 마음을 환히 갖고 이에 
답하자, 배가 불러오는 걸 느꼈다.
   그녀는 이 인생에서, 장차 이 애가 다시 자기에게서 태어날 것이다, 라고 분명히 
느꼈다. 제니는 중간생에 오래 머물러서 지식을 빠짐없이 흡수하려고 열심이었다.
   안제라는 카르마의 문제를 감수하려고 조차 하지 않았으므로, 제니로서 진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안제라의 인생이 끝난데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
았다. 다시 말해서 그녀에게는 안제라의 정신적인 외상이나, 그것과 같은 것이 필요했
다. 세 사람의 재판관들의 조언으로, 이 장의 처음에 말한 것 같은 무서운 어린이 시
대를 체험하는 걸, 그녀는 괴롭지만 결심한 것이다.
   제니의 혼은 다음 전생에서의 뛰어난 시련을 엿보고, 지상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다
고 저 항했다.
   "저에게는 아직 돌아갈 준비가 돼있지 않습니다. -무섭습니다. "
   그녀는 환생을 주관하는 안내역으로 여겨지는 찬란히 빛나는 모습을 향해 말했다.
   재판관들의 권유를 마지못해 받아들인 제니는, 이번 인생에서는 지진아의 복지에 
전력을 다 하는 것으로 카르마를 변제하기로 작정했다.
   또한 그녀의 유산이, 자기의 불행한 과거를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특히 선
택된 것도 알았다. 임신과 그에 연결된 염동현상이 결국 제니를 치유해준 것이다.
   "당신은 공포와 분노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 하고 '세 사람'이 말
했으나, 그녀가 당면한 것은 바로 그 일이었다.
    카르마에 있어서 제니가 참고 견뎌야만 했던 무서운 어린 시절 따위는 전혀 그녀
에게 있어, 체험할 필요가 없었던 걸로 보일 것이다.
   역시 그녀는, 영국의 전생에서 지진아를 지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코로
라도에서 태어난 아기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일까? 틀림없이 그녀는 
노력도 하고 최선을 다했으나, 이들 두 가지 상황 아래서의 행위를 보는 제니의 눈은 
자책하는 마음에 사로잡힌 나머지, 비뚤어지고만 것이다.
   이 세상에서 죽은 뒤에도 자기가 느끼는 일이 자기에게 있어서는 현실인 것이다. 
루시였을 때, 선술집에서 오랫동안 멍청히 시간을 보내고 무의식 중에 남의 말을 따르
다가 아기를 죽게 했다. -이렇게 그녀는 믿고 있었다. 안제라였을 때에도, 설령 그 사
건이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살인 행위를 한 자기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나중에 그녀가 재판관들 앞에 쇠사슬에 묶여 나타난 것은, 자기가 그렇게 하기를 
택한 탓이었다. 세 사람에게 격려의 말을 듣고 쇠사슬이 손에서 벗겨지기는 하였으나, 
그녀는 자기를 용서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의 실수처럼 보이는 함정에 묶인 그녀는, 이번 생에서 보다 
많은 괴로움을 짊어지는 일을 자기에게 부여한 것이다.
   고통의 대부분은, 자기가 그것에 합당하다고 그녀가 느낀 것이었다. 중간생으로 다
시 돌아오기까지, 제니는 자기가 악인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중간생에서 제니는 카르마의 대본을 읽고, 그 대본이 30대 처음까지 자세하게 작성
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때까지 모든 것이 계획대로 간다면 그녀는 부정적인 카르마의 
영향을 완전히 극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 때가 되어 비로소 그녀는 남은 인생을 어
떻게 할까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인쇄에 돌려질 경우, 제니 손더스는 34세가 되어 있을 것인데, 그녀는 현
재, 전직을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진아를 다루는 일을 해온 것이 물론,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는 있으나, 그녀는 이제 이런 종류의 봉사를 계속하도록 지시받지
는 않는다.
   어머니가 될 공포를 떨쳐버린 그녀는 자기의 아이를 갖기로 정하고, 태어나서 처음
으로 그 체험을 나눠갖는 상대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되기까지 적당한 상대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인공수정에 의한 어머니가 되
기 위한 응모 수속도 해두었다. 휫튼 박사도 이 일에 기꺼이 찬성해주었다.
   "결국 그녀는 완전히 문제를 해결했으니까요. 제니 손더스 이상으로 정이 깊고 헌
신적인 어머니 란 여간해서 없다고 생각합니다. "
@ff
    제 13장 스스로 중간생을 찾으려면 
 
    인간의 노력 가운데서 가장 숭고한 것은 마음 속으로 
    통하는 길을 개척하는 일이다.
    제임스 S 퍼킨스
 
   "이성을 초월한 기능을 가지고 유한한 자기로부터 물러남으로써, 비로소 무한한 존
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3세기에 희랍의 철학가 프로티노스가 이 글을 썼을 때, 그가 뜻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는 정확하지 않으나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중간생을 스스로 찾을 때의 기본 원칙
이었다."<혼의 강>을 찾아라-그대가 언제부터 어떠한 상황 아래 있었는가를 찾으라"하
고 예언자 조로아스터가 말했듯이, 그러기 위해서는 평상시의 세계를 멀리 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상시에서 떠나, 느긋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시켜 참을성 있게 
결과를 기다린다-그 때에 겨우, 삶과 삶의 사이의 정보를 찾아내고 그것을 입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전생 사이의 기억을 분명히 하려면, 퇴행최면을 받는 일이 손쉬운 방법일지 모르
나, 마지막까지 하려고 결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관상법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 더
구나, 일단 자기탐구의 방법을 습득하면 남의 힘을 의지할 필요없이 뜻대로 이를 실천
할 수 있다.
   관상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에 불과하다. 무의식을 목록에 넣고 자기
가 알고 싶은 바르도나 전생의 체험을 분명하게 하는 방법인 것이다.
   많은 방법 가운데서 휫튼 박사가 권하는 것은 '하늘의 성스런 장소'라고 부르는 몇 
세기 째 그 유효성이 증명된 전통적인 방법이다. 이 방법은 마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순응시키는 것으로, 십자군 시대에 꽃 핀 기독교의 신비주의 단체인 성당기사단 사람
들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기본 개념은 간단한데, 장려한 대성당이 땅 위의 먼 상공에 떠있는 장면을 상상
하는 것이다.
   대성당 대신에 종지에 따라서 사원이나 머스크, 시나고스(유대교 회당)따위를 상상
해도 무방하다. 우뚝 솟은 이 하늘의 성소에는 '아카시크 레코드'를 수록한 넓은 도서
관이 있다. 앞에서도 기술했듯이, '아카시크 레코드'에는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
각각의 혼이 이세상에서 있었던 인생과 중간생의 완전하고 상세한 기록-이 에테르에 
영구 보존되어 있다. 이 성소를 의식의 마음에 그려넣을 때, 이 천상 세계의 수집에는 
어떤 도서관도 따를 수 없을 만큼의 방대한 분량의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
자.
  이제부터 말하는 관상을 하려면. 경건함과 신념이 필요하다. 지식의 배후에 있는 영
원 불멸의 지적 존재에 대한 경건함과 필요한 지식은 틀림없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신념이다.
  예전에 석가모니도,
  "어떤 것이든 그것을 얻으려고 마음으로 작정하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우선, 기억을 자극하는 연습으로서 어렸을 때의 앨범을 보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
자. 열살 때의 생일 사진이 붙어 있는 쪽을 연다. 당신과 그 주위의 사람들을 본다.
  자연스럽게 사진 속의 얼굴 뿐만 아니라 사진의 틀 밖에서 생긴 사건이나 그 때의 
감정까지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당신은 이런 것을 중얼거릴지도 모
른다.
  '그 무렵에는, 사리와 사이좋게 지냈었지' 라던가 '남동생 지미가 나무에서 떨어졌
던 무렵인데, 아직 깁스를 하고 있군' 이라던가.
  사진은 그 테두리를 넘어서 확대되는 기억을 차례로 되살려준다. 당신이 에테르의 
도서관에 들어가서 알고 싶은 과거생이 쓰여진 책을 꺼내는 것은 이 때인 것이다. 중
간생의 기억은 순서대로 기억되고 있지 않으므로 얼핏 보면 무의미한 줄무늬로 밖에 
보이지 않는 홀로그램 처럼 혼란상태를 나타낸다.
  홀로그램에 레이저 광선이 비춰져서 줄무늬가 3차원 입체화상으로 바뀌는 것과 같
고, 식별하는 사람이 사고하는 과정에 익숙한 시점에서 중간생도 뜻있는 이미지를 만
들어 주는 것이다.
  데카르트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본다.'라고나 할까. 사진이나 
홀로그램의 공통점은 단순히 숨겨진 기억을 유발하는 보조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억이 영화처럼 나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겨우에는 도서관 선반에서 
책이나 앨범이 아니라, 비디오 테이프의 카세트를 꺼내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그것을 
영사실로 가져가서, 비디오 플레이어에 넣고 관상의 크라이막스에 이르렀을 때 재생 
버턴을 누르는 것이다.
  여기서, 이 관상의 목적이 이미 일어났던 것을 생각해내는 것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
지 않으면 안된다. 데이터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변경은 할 수 없다. 정보가 마음에 
떠올랐을 때, 진짜 기억의 수맥을 찾아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 - 정보가 옳으면 그 이미지에 마음 속으로 부터의 깊은 확신이 동반될 것이
다. 한편, 그 여러 가지 광경이나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환상이나 공상에 지나
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것은 틀림 없이 환상인 것이다. 흔히 말하듯이, '의심스러운 
것은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관상이 잘 안되는 사람은 흔들리는 촛불이라던가, 4각이나 동그라미의 일정한 기하
학적 이미지를 마음 속으로 보는 연습을 하면 좋을 것이다. 방에 발을 들여놓고 되도
록 조심스럽게 방 안의 것을 둘러보고, 이윽고 눈을 감고 본 것을 전부 생각해 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생생한 이미지를 그려보는 능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처음으로 
천상의 성소로 들어가기 전에 이같은 예비 연습을 몇차례 반복해야 된다.
  만약 열심히 노력해서 잘 안되더라도 정보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관
상의 도중 혹은 그 뒤에 이르러,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직관으로서 감지 하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대충 준비가 된 셈인데, 관상으로 유도하는 문장은 자기가 읽어도 좋고 파
트너에게 읽어달라고 해도 좋다. 스스로 소리 내어 읽은 것을 녹음하여 자기 탐구의 
준비가 다 되면 재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작하기 전에 더 좀 마음의 준비를 해두
는 편이 좋을 것이다. 자기 과거의 탐구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 싶다.
  적극성이 없는 취미적인 태도로 시작하면 심한 저항을 당하게 된다. 중간생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그 사람의 존재하는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일이며, 이와 같이 중요한 
탐구에 있어서는 엄숙한 태도와 겸허함이 요구된다. 성소의 시작과 목적에 대한 소책
자를 쓴 찰스 다나 디인에 의하면, 천상의 성소는 '각자에게 있어서, 최대한의 순수함
과 신성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준비 의식으로 들어
가기로 한다.
  우선, 누구에게나 훼방받지 않고 명상을 계속할 수 있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 본다. 
깨끗한 물로 손을 씻고 잘 말린다. 이것은 몸을 정갈하게 하는 것을 상징한다. 다음에
는 눕거나 의자에 앉건간에, 몇분 동안 완전히 긴장을 풀고 평상시의 자질구레한 일이
나 부정적인 생각에서 서서히 자기 자신을 해방시킨다. 이 과정을 돕기 위해 눈을 감
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집중시키며, 몸에 닿지 않도록 재빨리 손바닥으로 몸의 
표면 바로 위를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오라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제거하여 정화시킬 수 
있다.
  이 때, 피부가 팽팽해지는 듯한 느낌을 기대하기 바란다. 주기적으로 손을 움직이고 
당신의 오라에서 불필요한 찌꺼기를 털어버리면서, 골치 아픈 일이나 정신이 산란해지
는 잡다한 일을 모두 없애버리는 것을 상상해보자. 파트너에게 이 정화하는 행위를 해
달라고 부탁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현세에서의 불멸주의'의 저자, 버너드 샤논의 말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실습을 바라는 사람은 육체의 물리적 제약을 받으면서도 다른 존재를 의식하고, 인
간 생활의 혼란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후회시키지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 깊이 배
운다거나 명상할 필요는 없다. 광대한 존재의 영역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고 그 영
역이 어떤 것인가에 별로 마음 쓸 일은 없다. 원자 구조를 갖지 않은 순순한 사고 에
너지라고 생각하면 충분하다... 마음의 눈으로 보다 높은 영역을 오로지 보라. 아무것
도 생각하지 않고 그 영역이 그곳에 있는 것을 의식하라. 심상이 존재할 뿐이다..."
  그건 그렇고 이것으로 실습할 준비는 되었다. 어떤 중간생이나 전생을 탐구할 수도 
있으나 우선 가장 새로운 중간생으로 가보기로 한다.
  다른 전생이나 중간생을 조사하고 싶을 경우에는 그것에 따라서 실습방법을 수정하
고, 최신의 중간생 체험 대신에 알고 싶은 것을 불 수 있도록 부탁하면 된다.
  "누워서 몇번 심호흡을 하고 조용히 편안한 상태로 들어간다. 남이 읽어주어 실천할 
경우에는, 눈을 감고 쉬면서 읽는 말 하나 하나를 잘 음미하고 듣도록 한다. 자기가 
읽을 경우, 천상의 성소를 향하여 첫 발을 내디디기 전에, 마음을 편안히 하면서 천천
히 시작한다.
  어떤 방법을 취하거나 리얼리티의 변성상태에로 차츰 깊이 하강하는 일에만 집중하
면서, 당신 자신의 안쪽으로 깊이 내려가자. 당신의 의식에 들어오는 것은 자기 자신
의 마음과 이런 말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이제 하늘 높이 구름 저 쪽에 있는 대성당을 상상해보자. 지금까지 이 지상에 세워
진 어떤 신앙의 장소보다도 훨씬 웅장한 대성당이다. 이 천상의 성소에는 두 개의 첨
탑이 높이 솟아있고 큰 아치 아래 입구가 두 개 있다. 그러고 묵직한 한쌍의 돌계단이 
입구로 통해 있다... 정신을 집중하고 이 광대한 성당의 공들인 구조를 세부에 이르기
까지 마음껏 바라다 보자. 돌 계단 밑에는 입구를 똑바로 쳐다보고 잇는 자신이 있다.
.. 거칠게 다듬은 화강암의 돌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며 오르기 시작한다. 한
참 오르고 마침내 최상단에 다달아 큰 문 아래 선다. 깊이 숨을 내쉰 다음 손을 뻗혀 
나무결을 만져보자. 군데 군데에 못이나, 빗장이나, 금이간, 니스칠이 된 표면을 가볍
게 손으로 부빈다. 이윽고 한 쪽 문을 살며시 민다. 문은 불러들이는 것처럼 열리고 
어둠침침하게 비춰진 내부가 차츰 보인다. 문지방을 건너 발소리가 울려퍼지는 입구 
홀의 디딤돌 위를 걸어가면 큰 빗장이 닫혀진다.
  그곳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자. 높고 둥근 천장, 장식유리의 창, 거대한 기둥, 몇줄
로 이어지는 긴의자들. 빛이 몇 가닥이 되어 비스듬히 비치고 긴 의자를 가로지른다. 
향 내음이 달콤하게 감돈다. 이 곳의 장엄함, 고요함, 훌륭함에 당신은 압도당한다. 
제단을 향하여 중앙의 통로를 전진하는 대신, 왼쪽을 향하여 저쪽 벽쪽으로 걸어가 보
자. 벽까지의 거리는 멀다. 나아감에 따라 발 밑의 디딤돌은 잘 닦아진 대리석으로 변
하고 벽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검은 마호가니 재료로 부착된 것을 알게된다. 자, 이 
벽을 따라 작은 문을 찾아보자. 쉽게 찾기 힘드니까, 잘 보아야 된다. 겨우 놋쇠로 만
들어진 작은 손잡이가 보이고 그 곳을 향하여 나간다. 문까지 갔으면 열어 보자...
  입구를 지나면 돌계단이 보인다. 닳고 닳은 좁은 계단이 지하실로 통하고 있다. 계
단을 내려가 계속 대성당의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느껴보자. 계단 밑에는 늙은 사나이
가 서 있다. 발목까지 닿는 길고 검은 가운을 입은 이 백발의 인물은 기록고의 수위인
데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여기에 왔는지를 그는 알고 싶어하니까, 당신이 자기 탐구를 하는 까닭을 설
명하고 먼저번의 중간생의 기록을 보고 싶다고 부탁하자. 노인은 절을 하고 당신의 설
명에 귀를 기울인 다음에 당신의 부탁을 들어준다.
  이윽고, 수위는 자기 뒤를 따라 도서관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걷기 시작한다. 어
데까지나 이어지는 복도를 지나, 책이 높이 쌓인 선반을 차례로 지나가는 동안 당신은 
어쩌면 그의 가운의 펄럭이는 옷자락 뒤에 떠있는 것 같다. 서가의 줄 사이에서 겨우 
그는 멎는다. 잠시 멈춰 서서 그는 어느 선반을 가리킨다. 손가락 끝을 더듬으니, 선
반에 금빛 글씨로 당신의 이름이 적혀있다. 읽고 확인해 보자. 이윽고 당신의 선반에 
있는 책을 찾아본다...
  선반에는 많은 책이 꽂혀 있다. 각각의 과거생에 한 권, 중간생에 한 권씩 있다. 왼
쪽에서 오른 쪽으로 연대수에 따라 꽂힌 가죽 표지의 책 등을 바라다 보자. 이번의 인
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기록은 완료되지 않았으나, 가장 오른 쪽에 있는 것이 
가장 새로운 중간생의 경험을 완전히 수록한 책인다. 수위에게 이 기록을 꺼내달라고 
부탁한다. 그가 책에 손을 뻗혀 꺼낸 다음 건내주는 것을 차분히 지켜본다. 책을 꼭 
잡으면서 부드러운 가죽 표지의 감촉을 잠시 음미하고 페이지를 연고, 가장 새로운 중
간생의 차례를 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 재판관, 다음 인생의 계획 등 어떤 장면도 
마음대로 볼 수 있다. 책을 펼칠 때, (책 대신에 앨범이나 비디오 카세트를 꺼내도 좋
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안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었고, 잠재의식
에 있어서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당신은 단지 기록을 보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다음에 책을 펴고 목적하는 중간생의 항목을 조사하여 본다. 냉정하게 기록 내용을 
살펴본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전부 보았으면 책을 닫고, 떨어진 곳에서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수위에게 책을 돌려
준다. 수위는 책을 선반에 다시 꽂은 다음 손짓을 한다. 그의 뒤를 서둘러 미로와 같
은 도서관을 지나 최초로 그와 만났던 성당으로 통하는 계단 있는 곳까지 돌아온다. 
이윽고 당신은 수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계단에 올라, 작은 문을 지나 조용하고 장엄
한 성당으로 들어간다. 문을 닫고 화려한 천장 아래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입구로 돌
아온다. 이번에는 천상의 성소를 나와, 천천히 돌계단을 내려간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감에 따라 평상시의 의식이 천천히 돌아오고 계단 아래에 도달할 무렵에는 주위의 
일에 완전히 정신을 차리게 된다.

  처음으로 관상을 시도해 보고 자기의 중간생의 기억을 알게되는 사람도 있으나, 대
개의 사람은 기억이 제대로 의식에 떠오르기 까지, 몇번이고 이 연습을 되풀이할 필요
가 있다. 끈기있게 계속하는 사람들 -혹은 제8장의 혜자 화이트호름 처럼 '선천적으
로' 시각화의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이미지가 흘러나와 노력이 보답을 받게 될 것이
다. 나중에 꿈에 나타나거나 평상시의 각성상태에서, 때로 직관이 번득이거나 하는 일
도 있을 것이다.
  휫튼박사가 피실험자 몇사람을 최면중에 경험했듯이, 무의식의 마음에 정보가 수집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를테면, 중간생의 책을 펼쳤을 때 마음의 눈에 비친 것
은, 공백의 페이지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저항을 만나는 사람은, 기억의 흐름을 멈
추게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깨달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중간생의 기억
은, 꿈이나 직관을 일기에 쓰는 것으로써 증강된다. 몇번이나 천상의 성소를 방문하는 
동안, 계속 일기를 적고 있으면 혼에 기록된 중간생이나 과거생의 정보는, 파묻힌 도
시가 고고학자의 손에 의해 발굴되고 모습을 나타내듯이 착실하게 나타날 것이다.
@ff
    제14장 삶과 삶의 사이가 뜻하는 것
  우주에 빛을 던지는 것, 우리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야말로 이 알 수 없
는 세계에서 마땅히 환영 받아야 된다.
  아레이스터 크로우리

  삶과 삶의 사이는, 자기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계시해 준다. 이 계
시를 통해, 육체를 갖춘 인간을 옳은 관점에 서게 해 준다.
  인간의 정묘하고 영적인 것-즉, 우리들의 정수가 되는 것-이, 죽음을 넘어서도 계속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초의식은 말하고 있다.
  죽으면 우리는 다음 삶의 단계를 개시하기 위해, 스스로가 선택한 살과 뼈의 몸에서 
떠나간다. 우리의 본래 고향인 다음의 세계는, 우리들에게 각성과 기억과 명쾌함을 회
복시켜준다. 그러므로, 참다운 자기의 모습을 보고 전번의 지상에서 있었던 리얼리티
로의 여행에서 배우며, 진보의 정도를 평가하고 마침내는 필요에 따라서 다음의 전생
을 계획할 수 있는 것이다.
  온세계가 무대라면, 바르도(중간생)은 무대의 양쪽 울타리에 있는 배우 대기실과 같
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곳에는 무대에서 핵심이 되는 여러 가지 시설이나 대사를 쓴 카드 따위, 무대에서
의 상연을 가능케 하는 모두가 갖추어져 있다. 상연이 결정되고 리허설과 준비작업이 
끝나면 잘하고 못하고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의 인생이라는 '연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연기자의 손으로 각각의 대본이 쓰여지고 연출되며 상연되지만, 몇번의 
인생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많은 대본이 필요하게 된다. 끊임 없이 등장과 퇴장을 되풀
이하는 냉엄한 무대 연기를 계속하는 것에 의해서만 배우고, 성장해 갈 수 있는 것이
다.
  신중하게 선택하는지, 계획없이 선택하는가 하는 차이는 있어도, 이 세상의 환경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초의식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의 놓여진 상황도 
-설령, 그 사람이 에이즈의 희생자이건, 미국의 대통령이건- 그것은 모두 우연의 일
도, 부조리도 아니다, 라고... 중간생에서 객관적으로 본다면, 어떤 사람의 체험도 우
주라는 교실에서의 수업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수업에서 배우면 배울수록 우리의 성장
도 빨라진다. 중간생에서 계획을 세울 때는 반드시 사랑과 봉사의 기회를 찾게 되나, 
결국 이 사랑과 봉사야말로 자기 성장의 근본과 관계된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이따금 
고독을 체험하는 일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원기를 회복시켜 주기는 하지만, 카르마의 
전개에는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일이 필요하다.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극히 작
은 단편-우리들 현재의 리어리티-을 끝없이 넓은 배경에 놓았을 때, 비로소 인간의 존
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원한 생명은, 이제 단순한 종교상의 개념에 대해
서 붙여진 명칭은 아니게 되고, 돌연히 현실이 된다. 설령, 말로 표현할 수 없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의 의미와 목적이 놀랄만큼 분명해진다. 시간도 공간도 없는 외경 
해야될 영겁의 무한... 중간생에 펼쳐지는 광경은 놀라울 따름인 것이다.
  그 무한 속에는, 우리들의 인생과 중간생의 모든 것이 존재하며 또한 개개인을 성장
시켜가는 카르마의 패턴도 또한 그 속에 있다.
  또한 여기에서, 전생에서의 행위나 중간생에서의 체험을 자세히 조사할 수 있도록, 
우리들이 지나온 여로-이루 표현할 수 없을만큼 기나 긴 생사를 반복해 온 정처 없는 
여행-의 전모를 바라다 보는 일도 허용된다.
  이 위대한 리얼리티를 알아차리고 죽음이 단순한 이행에 지나지 않음이 명백해지면, 
세속적인 가치나 자세 및 선입관은 완전히 변하고 만다. 의식이 불멸이라는 사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의 변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칼 융이 '융, 자전-추억, 꿈, 
사상'에 썼듯이 '참으로 중요한 것은 무한한 것이라고 알기만 하면, 우리는 쓸데없는 
일에 흥미를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휫튼박사의 환자들 증언이 우리를 데려가 주는 곳은, 매우 가까운 곳이다. 가이드
(안내), 재판, 계획을 세우는 과정 등, 중간생의 여러 요소를 아는 일이 그 첫걸음인 
것이다. 다음에는 그런 활동과 이 세상의 인생에 대하여 주는 영향과를 철저히 탐구해
가지 않으면 안된다.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우세를 자랑하는 합리주의적, 물질주의적인 정통파 의학도 새
로운 차원에 눈을 뜨지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미국 의학계의 증진인 스턴리 R 딘 박사
는 이 새로운 차원과 기존의 정신의학과의 통합을 위해 '메타 정신의학이라는 새 말을 
만들어 냈다. '정신의학과 신비주의'에서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메타 정신의학은 극히 학술적인 것으로 초심리학, 철학, 종교, 경험논리학과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고 이들과의 보완적인 요소가 단독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성과를 
올릴 수 있는 학문이다.
  오랫동안, 육체의 치료와 마음의 치료와는 전혀 다른 학문 분야라고 생각해 왔으나, 
전생요법이 등장하므로써 전체적인 접근이 다시금 예전의 지위를 되찾는 조짐을 보이
게 되었다. '의학에 있어서의 마음'에서 영국의 정신과의사인 아서 가덤은 다음과 같
이 말하고 있다.

"현재, 인류는 심령면에서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있으나, 그에 따라 의학에 있어서의 우
주적인 요소도 더욱 더 널리 인식되어갈 것이다. 현대의학은 지금까지 예지에 계속 등
을 돌려왔다. 예지가 소위 과학적 측면에서나 종교적 측면에서도 아니고, 사물을 통일
체로서 보는 위대한 현인이나 철학자들의 이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의 빛
이 미치지 않는 그늘 부분에, 진리의 빛을 보내고 비쳐지게 하도록 용인되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혼의 활력이 되는 근원을 중간생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므로 초의식이 치료 기술 
따위의 학문 분야를 더욱 깊게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정신적
으로 깊숙한 내면의 자기와 접촉하고 혼이 육체를 떠난 상태의 특징인 우주의 질서와
의 조화를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됨에 따라, 심리요법은 크게 전진을 이루려 하고 있
다. 다른 리얼리티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고 만다. 안심입명
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비굴해지거나 근심하거나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만약 근심이 있다면, 잘못된 원인이 이 세상의 리얼리티와 격투
를 하는 동안 진리를 잡는 능력을 보유할 수 없게 된데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간생을 아는 것인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이 매우 커지게 되
는 것이다. 이 세상은 중간생에서 계획된 것이 시험 당하는 장소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인정한다면 날마다의 생활은 새로운 의미와 목적에 충만된 것이 된다. 또, 설령 이 세
상의 환경이 아무리 곤란해도 짧은 삶을 마쳤을 때, 인간은 사랑의 근원인 아름다움과 
웅대함 속에 감싸이는 것이다. 중간생(바르도)이야말로 우리들이 살아야 하 세계인데, 
지구라는 혹성은 혼의 진화를 위하여 필요한 시험장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성과가 있기는 했지만, 아직도 삶과 삶의 사이는 진가를 알지 못한
채, 지하에 파묻혀있는 자원 같은 것이다. 광범위하게 조사 연구를 하기만 한다면 저 
세상의 비밀은 더욱 자세히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진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삶과 삶의 사이를 텀험한 최초의 기록이다. 과학자들이 중간생으로 더 깊
게 들어가 본다면 우리가 사후에 육체를 떠나 어떤 운명을 걸을 것인가를 앞으로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초의식의 연구에는 탄생과 죽음의 장벽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으
면서도 인간의 놓여진 상황과 크게 관련지어 생각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우리들이 여기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또한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초의식의 
연구는 우리들에게 그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절대적으로 도와준다.
@ff
    종장 저승을 다녀온 사람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혼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는 아
주 틀렸었다고 여겨진다.
  사람은 누구나 영혼을 가진 존재이며, 죽으면 저승이라는 곳을 저승사자의 안내로 
가게 되고, 염라대왕으로부터 생전에 한 일들에 대하여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또는 
극락으로 또는 인간 세상이나 짐승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죽은 조상을 알기를 산 조상보다도 더 소중히 알았었고, 잘되면 제탓이오, 
못된 것은 조상탓이라는 속담까지 생겨났던 것이다.
  죽은 조상의 노여움을 사면 자손에게 재앙이 온다고 굳게 믿었었기에 무덤 가꾸는 
것을 소중히 여겼고, 조상 제사 받드는 것이 큰 일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뿌리 깊은 아들 선호도 알고 보면 죽은 뒤에 제사받기 위한 욕심
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아들을 낳아 받치지 못한 아낙네가 아예 친정으로 쫓겨가서 한을 품고 죽은 경우도 
엄청난 수효가 아니었던가 한다.
  그러다가 팔일오 해방과 더불어 이 땅에 기독교가 홍수와 같이 밀려들자, 기독교에
서는 제사를 안 지낸다고 해서 너도 나도 기독교 신자들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어느덧 
기독교 국가처럼 변모하게 되었다.
  과학사상이 널리 보급되면서, 영혼 운운하는 이는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었고, 
미신 취급을 당하게 되었다.
  죽으면 그만이지, 죽은 뒤 영혼이 어디 있는가? 이런 사람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
일수록 더 많은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정작 과학이 발달된 서구사회에서는 심령과학이라는 분야가 새로 개척되어서, 지금 
미국같은 나라만 해도 인간의 영혼의 환생을 믿는 이들은 국민의 60%가 넘는 실정인
데, 우리나라는 그 반대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필자가 심령과학에 대한 책들을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필자가 심령과학 서적을 내기 훨씬 전인 1961년도에, 본서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모
리 번스타인이 쓴 '브라이디 머피를 찾아서'라는 책이 '죽인 이와의 대화'라는 제명으
로 이철주씨에 의하여 번역되어 출판된 바가 있다.
  모리 번스타인이라는 최면시술자가 루스 시몬에게 퇴행최면을 걸어서 태어나기 이
전, 브라이디 머피였던 과거를 알아낸 책으로서, 오늘날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전생요법의 시작을 가져 온 책이었다.
  우리나라는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에, 한국일보에 유석현 박사가 '심령과학'에 대
한 기사를 두달 동안 연재한 것이, 심령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가 된 셈이다.
  그 뒤, 인연이 있어서 필자가 쓴 '심령과학 시리즈'10여권의 책들이 발행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심령문제가 소개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선 후,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심령관계 책들을 일본어로 직접 
번역해서 일본의 대륙서방에서 출판한 바가 있다. 그리고 체질을 개선해 줌으로써 거
의 모든 질병을 치유시켜 줄 수 있는 '옴 진동수'의 발견은 일본에서 큰 붐을 일으켜
서, 한때 일본에서만도 회원 수효는 5000명이 넘었던 일도 있었다.
  필자는 단지 인간의 영혼이 실존하는 존재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힌 서구의 심령과
학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데 그친게 아니라,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우주의 여
러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서 #1인과응보 #2공존공생 #3불간섭의 원칙 이 우주의 3대 법
칙임을 밝혔고, 풍부한 실례를 들어서 이런 우주 법칙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바가 있다.
  1993년 5월 12일, KBS 7에서 방영된 '밤으로 가는 쇼'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인간의 영혼이 존재하는가, 죽은 뒤에 세계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소개를 
한바가 있다.
  이 프로에서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담을 이야기했으나, 민속학
자인 서정범교수는 사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하나의 문화적 형태일뿐 실제
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터무니 없는 결론을 내렸다.
  어설픈 정신분석의 이론을 적용시켜 집단무의식에서 모태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저승에 갔다 왔다는 환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필자도 이에 맞서서 영혼은 존재하며, 죽은 뒤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했으
나, 방송된 것을 보니 필자가 이야기 한 것은 90%가 삭제되어 있어서 한심하다는 느낌
을 면할 수가 없었다.
  결국 KBS에서는 영혼과 죽은 뒤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방향을 이야기를 끌고 
나갔고, 필자는 한낱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을뿐더러, 필자가 편 반대이론은 전혀 소개
도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뜻에서 이 프로는 처음부터 방송국에서 어떤 편견을 갖고, 서정범씨의 영혼부
재론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프로였음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공영방송은 모름지기 양쪽 의견을 공평하게 방송하여 일반 청중의 판단에 맡겨야 하
는데 그렇지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문화면에서 아직도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다.
  이 방송에서 이복순씨는 다섯 살 때 가사상태로 경험한 저승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
데, 물위를 날라가다가 저승에 갔다 돌아온 이야기를 했고, 기독교의 독실한 신자인 
이장수씨는 50년 가까이 옛날인 젊었을 때, 깡패두목으로서 부하에게 세군데 칼로 찔
려서 죽은 뒤, 저승에 가서 천사들을 만나고 돌아온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정연씨(여자임)는 일곱 살 때와 설흔 일곱 살 때, 두 번 가사상태를 경험한 
저승에 가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난 체험담을 이야기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서정범씨는 저승은 물을 건너서 간다는 공통점을 들어
서, 이것은 자궁의 양수를 말하는 것이며, 모태회기라는 집단무의식이 만들어낸 환상
이고 저승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은 뒤에 영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30여년에 걸친 
그의 연구 결과 얻은 무신론을 어설프게 전개했던 것이다.
  그는 무당을 연구했을 뿐 서구의 심령과학 연구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임을 스스로 
자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옳다고 크게 선전하는 것 이상 큰 죄는 없다고 생각한다.
  TV라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방송매체를 통해 사실을 잘못 전한 그의 죄는 크다
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뒤, 1년 가까이 지난 94년 4월 17일에 KBS에서는 또다시 추적 60분이라는 프로에
서 '죽음의 문턱'이라는 제목으로 임사체험을 취급했다.
  이번에는 의사들도 동원되고, 심지어는 최면을 시켜서 저승세계를 구경시키는 경험
도 했다.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사람들의 증언도 여러 명이었다.
  이들의 공통된 점은 죽는 순간, 자기의 영혼이 몸 위로 떠올라서 자기의 육체를 보
았다고 했고, 저승으로 가는 길에는 큰 바다가 있고, 하늘을 날라서 물을 건너는 경우
가 많았으며, 아름다운 꽃들과 새들이 있는 평화스러운 곳이어서 다시 이승으로 돌아
오고 싶지가 않았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역시 서정범 교수가 등장해서 인간이 갖고 있는 집단무의식의 모태회
기와 소망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역시 영혼은 존재하지 않으며, 저승은 환상의 세계라는 결론이었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40살까지 철저한 무신론자였었다.
  그러던 것이 마흔살 된 해, 1월 2일 밤, 유체이탈을 했고, 저승에 다녀 온 뒤로 필
자는 본인의 전생이 무엇이었던가를 알았고,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철저한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변신한 셈이었다.
  죽었다 살아난 순간에 필자는 그때까지 지니고 있던 여섯가지 질병이 완전히 치유되
었을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는 없었던 여러 가지 초능력이 생긴 것이었다.
  우선 상대방의 영파에 동조함으로써 상대방의 전생을 알수가 있게 되었고, 물에다가 
'옴 진동'을 쪼임으로써 물을 생명수로 변질시키는 PK능력이 생겼던 것이었다.
  그리고 필자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몇번인가 유체이탈을 한 체험이 있고, 심지어
는 교통사고를 당하여 완전히 식물인간이 된 사람의 영혼을 저승에 가서 데려옴으로써 
기적적으로 소생시킨 경험도 있는 터이다.
  여러 제자들이 보는 뜰에서 열시간 가까이 의식불명이 되었다가 다시 살아난 경험도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크며, 우주의 본질세계라는 것도 강조하면서 이 글을 끝맺고저 한다.
@ff
    역주
  1. 하디시즘 - 유대교 사상 몇번이나 나타난 종교운동으로 기원전 2세기, 유대교의 
일파인 '하시디임'(히브리어로 경건한 사람이란 뜻. 영혼의 불멸, 내세의 응보 따위, 
율법의 참뜻을 믿고 엄격한 종교생활을 보냈다.)의 활동에 기인한다. 좁은 뜻으로는, 
18세기 동구에서 일어난 종교운동(16세기의 이사크 루리아나 17세기의 사바다이 쓰뷔
에의한 카바라 - 다시 말해서, 유대교의 구전에 의한 밀교적인 부분 - 의 부흥운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을 말한다. 카바라를 평상시의 신앙생활에 연결시켜 신과의 일체
감이 되는 가운데 신비적인 구원을 얻는 것을 중요시하였으나, 정통파로부터는 이단으
로 몰렸다. M 부우바에게 영향을 끼쳤다.
  2. 리처드 버크(Richard Bucke) - 카나다의 정신과 의사. 20세기 초, 온타리오주의 
정신병원 원장으로 있었던 시대에는 정신병자를 인간적으로 취급했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식을 받아들인 것으로 유명해졌다. 1901년에 간행된 저서 '우주의식'은 고
전적 명저로서 구미에서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소설가인 리처드 벅(Buck)과는 
다른 사람.
  3. 전생요법 - 태어나기 이전, 전생에서의 체험이 원인으로 생긴 심리적 문제를 최
면에 의하여 찾아내고 치료하는 방법으로, 1980년대에 이르러 특히 미국에서 많이 활
용하게 되었다. 정신분석에 의한 치료에 비하면 짧은 시간에 끝나지만, 최면에 걸리기 
히든 사람에게는 쓸 수 없고 전생요법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곳은 미국의 정신과의사, 
심리요법가 중의 5퍼센트에서 1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제1장의 역주에 있는 '최면' '
정신적 외상' '퇴행최면'의 항목도 참조하기 바란다.
  4. 근본주의자 -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일어나 1980년대에 이르러 급격히 커진 프로
테스탄트교회의 교의 운동인 '성서 근본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말함. 성서에 쓰인 
내용을 글자 그대로 믿는 것을 신앙의 기본으로 삼는다.
  5. 근사사체험에 대한 연구가 계속 개발됨에 따라 - 1975년 간행된 레이몬드 무디의 
'엿본 사후의 세계'를 시작으로 케네스 링, 마이클 세이봄, 모리스 로링그즈 등의 연
구가 잇달아 공표되고, 1979년에는 국제 근사사 연구회가 설립되었다.
  6. 케네스 링 박사 - 미국의 코네티커트대학 교수. 심리학 박사. 국제 근사사 연구
회 회장. 그의 저서로는 '영계탐방 - 근사 체험에서 나는 이렇게 환생되었다.'(Headin
g Toward Omega, 1984.)도 발간되었다.
  7. 최면 -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면가 비슷한 상태. 이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쉽
게 암시를 걸 수 있다. 최면을 의료에 사용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3,000년전 이집트의 
의료 문헌인 에베르스 빠삐르스에서 볼 수 있다. 근대 최면의 역사는 18세기 프랑스의 
안톤 메스메르에 의해 시작됐다고 하며 샤르코, 리에보, 베르네므 등의 연구를 거쳐 1
9세기에는 영국의 제임즈 보레이드가 희랍어의 '잠'을 뜻하는 말을 바탕으로 '히프노
시스(최면)'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1950년대에 영미의 의사회가 최면을 의료에 사용할 
것을 승인한 이래, 정신요법이나 무통분만, 치과 치료 같은데서 널리 사용하게 되었
다.
  8. 트랜스 상태 - 여기서는 최면하에서의 의식의 변용 상태를 말함. 자발적 의지 행
동의 감퇴와 함께 마음의 심층에서 자율적인 사고와 감정이 나타난다.
  9. 카르마 - 불교에서 말하는 '업'. 산스크리트말로는 '행위'를 뜻한다. 자세한 것
은 카르마를 주제로 삼고 있는 제6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10. 정신적 외상(트라우머) -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주는 경험으로 개인적으로 처리
할 수 없는 것. 억압 당하여 기억에 남지 않는 일이 많으나, 그 영향은 언제까지나 계
속된다.
  11. 퇴행 최면 - 퇴행이란 보다 발달되지 못한 단계로 되돌아 가는 일로 피실험자를 
최면의 암시에 의해 과거로 데려가고, 억압되거나 의식상으로는 잊어버린 기억을 떠올
리게 하는게 퇴행최면 이다. 퇴행최면에 의해 마음에 상처를 남긴 유아체험 따위를 발
견하고, 심리요법을 할 때는 그 단서로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취급하는 전생요법이란 
퇴행최면에 의한 연령퇴행을 더욱 진행시켜 전생에서 생긴 정신적 외상을 찾아내 치료
하는 것인데, 1980년대로 들어와 미국을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하게 된 수법이다.
  12. 전생요법을 쓰는..., 획기적인 치료가 가능해 졌다. - 영국에서는 1955년, 미국
에서는 1958년에 최면을 의료에 사용하는 일이 의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되게 된 이
후, 심리요법 따위에 최면이 많이 사용되게 된 셈이지만, 치료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피실험자가 전생으로 되돌아가, 의외로 마음과 몸의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생
겼고 여기에 착안한 심리요법가들 사이에서 점차 퍼졌다. 환자가 전생에서 정신의 외
상적인 체험이 생겼던 장면을 쵬녀하에서 체험하면 어째서 심신의 장해가 없어지는가, 
아직 이론적인 뒷받침은 되어있지 않은 듯 하지만, 현실적으로 환자의 증상이 사라지
는 것은 사실이며, 주목을 끌게 되었다. 1980년에는 APRT(American Assoiation for Pa
st Life Research and Therapy)라는 전생요법의 연구협회가 설립되고, The Journal of 
Regression Therapy라는 기관지가 간행되고 있다.
  13. 우주의식 - 카나다의 정신과의사 리처드 버크(역주: 2)의 저서 '우주의식(Cosmi
c Consciousness)'에 유래되는 말.
  14. 바르도 - 불교용어로는 중유 또는 중음이라고 한다. 죽음의 순간부터 다음의 삶
을 받을 때까지의 사이의 시기.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모든 것, 다시 말해서 '유정'의 
네가지 존재하는 방법인 사유, 중유, 생유, 본유의 하나.
  15. '바르도 소돌('티베트의 사자의 글')' - 인도 후기 밀교의 흐름을 딴. 티베트의 
금강대승불교(탄트라야나 또는 라마교 라고도 함)의 책. 티베트 불교의 시조인 파드마 
산바바가 저술하고 카르마 린파에 의해 체계화되었다고 함. '사프튜 시토 곤파 란돌'
이라는 밀교 체계의 일부를 옥스퍼드대학의 에봔스 벤츠 교수가 1927년에 영역하고 '
티베트의 사자의 책'이란 제명으로 소개한 것. 바르도 소돌이란, '바르도에 대한 진리
를 듣고 해탈한다'라는 듯. C,G,융이 논문 '티베트 사자의 책의 심리학'에서 집합적 
무의식의 원형을 찾아냈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16. 크리어 라이트(밝은 빛) - 진짜 실재하는 빛나는 투명한 빛. 이것으로 원초의 
크리어 나이트로 인도되고 중간상태를 지나는 일 없이 다르마 카야(법신, 완전히 깨달
음을 얻은 상태)를 얻는다고 한다.
  17. 후생 - 저승이란 뜻인데, 풍장 묘지가 있었던 오끼나와 같은 곳에서는 후생을 
죽은 영혼이 떠돌아 다니는 곳으로써 종경한 듯 한다.
  18. 만리 P 홀 - 신비철학의 학자, 저술가. 1934년 미국의 로스엔젤스에서 철학탐구
협회를 설립. 수만권 신비학 관계의 서책이 수집된 이 협회의 도서관은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그 방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쓰여진 저서는 소책자를 포함하여 200권에 이르
고, 동서의 신비학의 진수를 세상에 전했다. 80세를 넘은 현재도 계속 활약중이다.
  19. 루돌프 슈타이너 - (1861 -- 1925.) 독일의 사상가, 1913년에 새로운 정신운동, 
인지학을 완성시켰다. 인간의 안에 있는 인식능력을 훈련에 의해 불러 일으키면 투시
력이 생기고 정신적 세계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20 이안 스티븐슨 박사 - 1918년 카나다의 몬트리올에 태어나다. 1957년에 버지니아
대학 의학부 정신과 주임교수가 되고, 1968년 정신과의 한 부문으로서 초심리학 연구
실을 설립하다.
  21. 오바 소울 - 미국의 평론가, 시인, 초절주의자 에머슨이 만든 조어로 우주 생명
의 근원을 이루는 '대령'을 말함. 대령이란, 에머슨자신의 말을 빌면, '만인의 개별적
인 존재를 모조리 내부에 품고, 다른 모든 존재와 일체가 되는 저 <하나인 것>을 뜻하
는 것. 인간도 자연도, 궁극적으로는 대령 - 다시 말해서 신과 일체라고 한다.
  22. 레이먼드 무디 박사 - 의학박사, 철학박사. 현재 버지니아대학에 봉직중. 박사
가 11년간 탐구의 성과로 된 150 실례의 근사사 체험을 모두 모은 '얼핏 본 사후의 세
계'는 20개 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그 후 1988년에는 근사사 체험에 대한 새 저서, Th
e Light Beyond가 Bantam Book에서 출판되었다.
  23. 아스트탈체 - 신지한의 용어로, 유체, 성기체 라고도 한다. 흔히 육체와 겹쳐 
있으나 수면중이나 최면상태체는 육체에서 벗어나, 죽은 뒤에도 살아남는 초감각적인 
실체. 스토어파, 신프라톤파, 파라케르스스 따위에 의하여 성기체의 존재는 옛날부터 
주장되었었다.
  24. 마이클 세이봄 박사 - 미국의 아트런터 복원 군인 의료센터에 근무하는 심장병 
전문의사. 1979년에 케네스 링들과 국제 근사사 연구회를 설립.
  25. 모리스 로링그즈 박사 - 1922년 생. 미국 ㅌ네시주의 대병원 다이어그노스틱크
센터에 근무하는 의사. 인공소생술의 임상전문가.
  26. '텐널'체험 - 레이먼드 무디의 '얼핏 엿본 사후의 세계' 등으로 근사사 체험자
의 대다수가 삶에서 죽음으러 이행할 때에 턴널상태의 통로를 지난다고 보고하고 있
다. 이 책 제 10장의 린다 아빙의 이야기에도 같은 체험이 나온다.
  27. '이집트 사자의 글' - 사후에 부활하여 안전하게 저 세상에 가기위한 주문이나 
기도문으로 된 고대 이집트의 서로 피라미드에 새겨졌거나, 두루말이의 형태로 사자와 
함께 묻혔다. 텍스트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통일된 것을 아니나, 1842년에 독일의 레
프시우스가 프토레마이오스조에 쓰여진 두루말이, '쓰린, 파피르스'를 번역하여 '사자
의 글'의 제목으로 간행된 것에서 이 이름으로 불리웠다.
  28. 엠마뉴엘 스웨덴보그 - (1688 -- 1722) 스웨덴의 자연과학자, 신비사상가. 과학
자로서 활약하였으나, 후반생은 스스로의 영적 체험에 바탕을 둔 영혼과 사후의 셍계
에 대하여 말하는 종교가로서 살았고 에머슨, 브레이크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29. 노자 철학의 삼보 - 도덕경 제67장에 있고, 제69장에서 다시 예시되는, 노자에
게 있어서의 '세가지 보물' 다시 말해서 '자'(자비), '겸'(낭비하지 않음), '불감위천
하선'(천하 사람의 선두에 서는 일을 바라지 않고 겸손할 것).
  30. 인도의 삼신일체 - '트리무르티'라고도 함. 창조자 브라후만, 파괴자 시봐, 보
지자 비슈느의 세 신에 의해 우주의 최고 원리를 나타냄.
  31. 오오라아브 오스티슨의 노래 - 노르웨이의 13세기 초의 '드라움크베데(꿈의 노
래)'(작자 미상, 단테의 '신곡'에도 비슷한 내용의 작품)에 나오는 것으로, 오오라아
브 오스티슨이 보았다고 하는 이계탐방에 관한 꿈의 시, 노르웨이의 민요중에서도 특
히 널리 알려져 있다.
  32.아카시크 레코드 - 고대 인도에서는 사대원소인 지, 수, 화, 풍 외에 다섯번째의 
원소로서 '공', 다시 말해서 천지를 채우는 정기가 있다고 되어있고 이것을 산스크리
트말로 '아카샤'라고 한다. 신비학에서는 이 아카샤에 온갖 욕망과 상념, 감정, 행동 
따위의 기록이 남겨져 있다고 하는 것이다.
  33. 에드가 케이시 - (1877--1945) 이 책, 제5장 참조. 또한 약 5만페이지에 달하는 
케이시의 투시 및 예언은 미국의 버지니어주에 있는 에드가 케이시 재단의 관리하에 
있고 동 재단의 공보교육기관 ARE의 회원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34. 젠 로버츠 - 생년미상. 1985년 사망. 미국 뉴욕 근교에 살았던 여류 시인, 수필
가. 1963부터 세스와 교신하기 시작, 그 형이상학적인 인간론, 우주론에 관한 통신은 
1972년 출판된 Seth Speaks등 10여권으로 엮어져 널리 읽히고 있다.
  35. 세스(seth) - 젠 로버츠를 통하여 600회 이상 교신을 하였다. 몇백년 전에는 인
간으로서 이 세상에 살았으나, 지금은 인간으로서 전생할 필요가 없는 진보된 존재가 
되고 있다고 한다. 세스로부터의 혼, 의식, 상념의 물질계에 주는 영향 따위에 관한 
정보는, 라이얼 와트슨이 저서 '생명조류'에서 신빙성 있는 것으로서 평가하고 있듯이 
흥미 깊다.
  36. 자이너교 - 석가와 같은 시대의 마하비라(기원전 6--5세기경)에 의하여 시작되
었다. 업 때문에 윤회를 되풀이하는 영혼의 해탈을 위하여 계율에 따르는 등, 올바른 
실천생활을 보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종교. 신도수는 적으나, 인도사상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37. 헨리 데이빗 소로 - (1817--1862) 미국의 수필가, 사상가, 에머슨의 제자로 근
대 기계문명을 싫어하고 자연으로의 복귀를 주장하고 스스로 숲속 자연 속에서 생활하
며 스승인 에머슨의 초절주의를 실천하였다. 작품으로 '웨르덴, 숲의 생활' 기타가 있
다.
  38. 오시리스신 - 고대 이집트의 신. 명계의 지배자, 불사의 상징으로서 널리 숭배
되었다. 인간은 죽은 뒤, 오시리스의 재판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
면, 오시리스는 동생새도에게 살해되고, 갈기 갈기 찢겨 나일강에 던져졌으나 아내 이
시스에게 구원되어, 살아나서 명계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39. 그리스의...차바퀴 - 고대 그리이스에는 윤회전생을 주장한는 퓨타고라스 교단, 
오르훼우스 교단이 있었고, '필연의 동그라미' '운명의 차바퀴'등, 이것과 비슷한 표
현이 쓰여졌다.
  40. 도르이도 교도 - 도르이도란 '떡갈나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뜻으로, 고대 켈
트인의 신앙을 주관한 사제 계급을 말함. 기원전 7세기 무렵부터 나타났고, 동식물의 
모습을 본딴 신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샘이나 숲, 특히 기생목 떡갈나무를 신성시
하였으나, 켈트인이 쇄퇴와 동시에 소멸되었다.
  41. 상기설(아나무네시스) - 인간의 혼은 불사이고, 몇번씩이나 환생되는 가운데 천
상계의 일도 지상계의 일도 다 알았으나, 혼은 지상에서 사물을 경험했을 때, 생전에 
배워서 알게된 천상계의 원형인 '이데아'의 모습을 생각해낸다고 한다. 상기설에 대해
서는 프라톤의 '메논'에도 나오지만, 윤회설과 관련된 상기의 정의에 대해서는 '파이
든' (영원한 생명을 믿는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앞에 두고 제자나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주고받은 대화를 쓴 프라톤의 작품)의 73C, 76A에 기술되고 있다.
  42. 그노시스파 - 그리스도교와 같은 무렵 성립되고, 알렉산드리아나 시리어를 중심
으로 숭배받은 종교사상. 4세기 이후 급속하게 쇄퇴했다. '그노시스'는 희랍어로 지식
이란 뜻인데, 원래 신 안에 있었으나 전락하여 육체에 갇히게 된 인간이 자기가 지니
고 있던 지식에 눈뜨고, 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교의는 헤르메스 문서의 일부
인 '포이만드레스'나 '나그 하마디' 문서에 남아 있다.
  43. '신앙의 지혜'(피스티스 소피아) - 봐렌티느스파의 문헌으로, 3세기에 고프트말
로 쓰여졌다. 4세기 이후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고 그노시스주의는 이단으로 전멸 되었
기 때문에, 남아있는 얼마 안되는 그노시스 문헌이 중요시 되고 있다.
  44. 윤회설의 '무서운 부활' - 윤회설을 믿은 오리게네스와 마찬가지로 혼의 선재설
을 믿고 '완성한 때에, 만물이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고, 인간은 모두 그리스도와 같게 
된다'고 선언한, 오리게네스파의 '이소그리스도이'라고 일컬어지는 수도사들이 나타났
다.
  45. 파문을 집행한다는 포고를 내기까지 - 553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5회 공
의회에서 황제가 내놓은 '15개조의 이단 선언문'을 말함. 앞서 말한 이소그리스도이파
를 배척할 것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서, 공의회 석상에서 결정된 것은 아니고 회의전에 
제출된 것. 공문서로 회의록에는 없었으나, 17세기에 이 기록이 발견되었다.
  46. 알베르 드 로셔 대령 - 독일의 화학자인 카알 라이헨밧하의 '오도'라고 부르는 
자연의 에너지 연구를 이어받아, 1891년 의사들과 짜고 파리에서 최면에 걸린 피실험
자를 활용하여 일련의 실험을 하였다.
  47. 프란츠 안톤 메스멜 - (1734--1815) 근대 최면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르네쌍스 
시대의 파라케르스스가 주장한 자석에 의해 치료를 하고,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일약 
유명해졌으나, 나중에 권력과 짠 의학계에 의해 추방되었다. 그의 이론은, 병의 원인
이 우주를 채운 눈에 보이지 않는 유체인 '동물자기'가 인체에 있어서 균형이 깨져, 
자기의 균형을 최면에 의해 바르게 함으로써 치료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신지학에서 
말하는 '아스트랄체'가 최면중에 유리된다는 설을 생각해 본다면 흥미 진진하다. 현
재, '키르리언 사진'에 의해, 생물에서 방사되는 에너지가 사진에 찍혀, 질병의 경우 
에너지의 나타나는 정도로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장차는 메스메르의 주장이 증
명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48. 초감각적지각(ESP) - 투시, 테레파시, 예지 따위를 통털어 말함.
  49. 기독교적인 그노시스파 - 아레산드리어의 크레멘스(150--215)와 그의 제자 오리
게네스(185--254)들의 사상을 말함. 본래의 그노시스 사상은 이에 대하여 이교적 그노
시스주의라고 부르고 구별하는 경우가 있다.
  50. 성당기사단 - 1118년 무렵, 이스람교도로부터 되찾은 성지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십자군 전사들에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다. 현지에서 이슬람 교도와의 교류가 
있었던 탓으로 이스람 신비사상이 유입되었다. 1312넌에 탄압을 받아 해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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