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외 정보/이야기46

만일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만일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당신이 잃은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은 그만큼 어떤 다른 것을 얻은 것이다. 레바 맥켄타이어가 이라는 노래를 불러 히트시켰을 때 사람들은 그 노래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궁금해 했다. 그 노래는 만일 내가 다른 모든 친구들과 똑같은 날에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더라면 결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성장한 뉴멕시코 주의 클로비스에서는 열여섯살이 되면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다. 단 운전자 교육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하면 될 뿐이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우리반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열여섯살이 되었다. 중학생 시절의 마지막 날, 운전자 교육 과정을 무사히 통과한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날의 흥분과 기대는 우리에게는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2020. 4. 28.
노인과 바다 키 작은 소년이 말했다. "전 이따금 숫가락을 떨어뜨려요." 키 작은 노인이 말했다. "나도 그렇단다." 소년이 속삭이듯 말했다. "전 이따금 바지에 오줌을 싸요."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나랑 똑같구나." 소년이 말했다. "전 자주 울어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종종 운단다." 소년이 말했다. "하지만 가장 나쁜 건 어른들이 나한테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자 그 키 작은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소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도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2020. 4. 28.
마음에 새겨진 발자국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인생에 왔다가 금방 가 버린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잠시 동안 머물면서 우리의 가슴에 발자국을 새겨 놓는다. 그러면 우리는 결코 전과 같지 않은 사람이 된다. 몹시 추운 1월의 어느 아침, 새로운 학생이 내 가슴에 발자국을 찍으며 내가 맡은 5학년 교실로 걸어들어왔다. 처음 보았을 때 보비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작은 수영복 모양의 윗도리와 실밥이 터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신발 한 짝은 끈이 달아나고 없어서 걸을 때마다 날개처럼 펄럭거렸다. 설령 버젓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해도 보비는 정상적인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런 무관심하고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비는 표정만 이상한 .. 2020. 4. 28.
뼈대가리 살아 있는 날까지 나는 알빈 C. 하스를 처음 만난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가 1991년의 일이었다. 교도소의 다른 재소자는 그를 내게 소개할 때 알빈 하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알빈을 '뼈대가리'라고 소개했다. 그 별명은 내 귀에 무척 거북스럽게 들렸다. 키가 크고 목소리가 나즈막한 그 죄수는 나와 악수를 하면서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뼈대가리란 대머리를 뜻하는 것이다. 그는 별명 그대로 대머리였으며, 양 옆으로 난 머리카락이 길게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를 쓰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 중앙에 매우 크고 위협적인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 그는 머리에 문신을 새긴 .. 2020. 4. 28.
신발 다른 사람의 삶에서 고통을 덜어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살고 있단 말인가? 1930년대에는 모든 광산지대와 공장지대의 마을들이 정말로 살기가 어려웠다. 서부 펜실베니아에 있는 내 고향 마을도 수천 명의 남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배회할 정도였다. 우리 형들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가족이 굶고 있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우린 별로 먹을 게 많지 않았다. 나는 대가족의 막내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입는 모든 옷들은 위에서부터 대물림한 것들이었다. 팬티는 너무 길어서 무릎에서 펄럭였고, 짧은 바지들은 다른 천을 덧대 이어붙여서 입어야 했다. 셔츠들도 수선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신발은, 신발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신발은 다들 완전히 누더기가 될 때까지 신고 다녔다. 문자 .. 2020. 4. 28.
믿음, 희망, 사랑 열다섯살에 나는 체셔 학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은 코네티컷 주에 있는 기숙사 학교로 문제 아동들을 위한 교육 기관이었다. 내 문제는 알콜 중독자인 어머니에게 있었다. 어머니는 정신 장애가 있는 행동으로 집안을 풍비 박산나게 만들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 나는 계속해서 엄마를 돌봐야만 했다. 그 결과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전과목에서 낙제를 했다. 아버지와 학교 교장은 운동을 많이 시키고 규율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기숙사 학교로 나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알콜 중독자인 어머니로부터 적절히 나를 떼어 놓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면서, 또한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체셔 학원에서의 신입생 오리엔텐이션 때 마지막으로 연설한 사람은 학생 주임 프레드 올 리어리 선생.. 2020.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