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외 정보/발견

제9장 생활의 즐거움

by FraisGout 2020. 5. 16.

    1. 자리에 눕는 일에 대하여

  아무래도 나는 하나의 길거리 철학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 것 같은데, 그것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철학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단순한 사물을 알기 어렵게 만드는 학문적인 것처럼
생각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나로서는 난해한 것들을 단순하게 만드는 학문으로서의
철학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유물론)이니 (인도주의)니 (서험론)이니
(다원론)이니 그밖에도 가지가지의 기다란 이름과 (이즘)이 있지만 이름만 굉장할
뿐, 어느 것이나 내 자신의 철학보다 심원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감히
그렇게 주장하는 바다. 인생이라는 것은 끝까지 따지고 보면, 먹거나 자거나 친구와
만나고 헤어지고 친목회나 송별연을 베풀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울거나 웃거나
2주일에 한번씩 머리를 깎고 화분의 꽃에 물을 주고 이웃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거나, 그러한 일로 세월이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그러한 단순한 인생
현상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일종의 학술적인 헛소리로 그럴 뜻하게 꾸며 보인다는
것은, 대학 교수들이 그들의 의식 내용이 극도로 빈곤하거나 또는 극도로 공막함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인간 자신의 일을 알기 어렵게 만드는 학문이 되어 버린다.
  철학자가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무슨 이야기인지 통
영문을 알 수 없게 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철학자들이 이룩한 업적이다.
  나는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학적, 철학적 발견의 90퍼센트까지 사실은
과학자나 철학자가 한밤중인 새로 2시, 또는 새벽 5시 무렵에 침대 속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을 때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와상술의 중요함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적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세상에는 대낮에도 자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밤에 자리에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리에 든다는 말은 육체적으로 잠자는 것과 정신적으로
자는 것을 동시에 뜻한다. 이 두 가지는 때때로 일치되기 때문이다. 침대에 눕는다는
것은 인생 최대의 즐거움의 하나라고 나는 믿는데, 이런 생각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이다. 이와는 반대로 침대에 눕는 것을 예찬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짓말장이이며 실제로는 대낮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잠자는 위인들이다.
대낮에 낮잠을 자는 사람들은 도학자이며 유치원의 선생이며 (이이솝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와상술을 수양해야 한다는 내 주장을 솔직하게
승인하는 사람은 교훈 따위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은
이야기를 즐겨 읽는 정직한 사람들이다.
  그러면 침대에 눕는 데 대한 육체적, 정신적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육체적으로
말하면 자리 속에 들어가서 휴식과 안정과 명상에 잠기는 데 가장 편하고 알맞은
자세를 갖는다는 것은 외계와 동떨어져 완전히 자기 혼자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위대한 인생 예술가였던 공자는 자리에 눕는 데 마치 시체처럼 똑바로 드러눕지
않는다고 했다. 즉 시체처럼 똑바로 몸을 펴고 눕지 않고 언제나 옆으로 누워 몸을
움츠리고 누웠다는 것이다. 나는 인생의 가장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는 자리 속에서
다리를 움츠리고 자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최대한으로 심미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정신력을 활동시키고 싶다면 팔을 놓는 장소도 매우 중요하다. 가장 바람직한
이상적인 자세는 침대 위에 길게 사지를 쭉 뻗고 눕는 것이 아니라, 한쪽 팔이나 두
팔을 머리 위로 돌리고 크고 부드러운 베개에 머리를 30도 각도로 받쳐 놓는
자세라고 나는 믿는다. 이런 자세라면 시인은 모두 불후의 걸작을 쓸 것이요,
철학자는 인간의 사상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요, 과학자는 획기적인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홀로 있는 것과 명상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적은 데 정말 놀란다.
와상술은 하루의 긴장된 활동 뒤에 갖는 단순한 육체적인 휴식 이상의 것이다.
와상술이란 낮에 만난 사람들, 방문한 사람들, 어리석은 농담이나 주고 받기
좋아하는 친구들, 남의 행동을 올바르게 고쳐 주어 천국으로 가는 것을 보증해
주려고 애를 써는 교회의 형제 자매들, 그러한 사람들 덕분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린 뒤에 가질 수 있는 완전한 안식 이상의 것이다. 물론 침대에 눕는 것이
육체적인 휴식이고 완전한 휴식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와상술을 그렇게 훌륭히 터득하게 되면 마음이 대청소를 할 수 있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까지 바쁘게 뛰어다니고 세 개의 탁상전화가 쉴새없이 걸려 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많은 사업가들은 밤중 1시라도 좋고, 또는 아침 7시라도
좋으니까 한 시간 동안만 눈을 뜨고 자리에 누운 채 홀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들의 재산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침 8시까지 침대 속에 누워 있다고 한들 그것이 어떻겠는가.
  고급 깡통에 넣은 담배를 머리맡 탁자위에 비치해 두고, 유유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닦기 전에 그날에 처리해야 할 문제를 모조리 처리해 버릴 수 있다면, 그 편이
얼마나 좋을지 모른다. 갑갑하고 싫증나는 털샤쓰나 귀찮은 혁대나 바지 멜빵이나
숨이 막힐 것 같은 칼라나 무거운 가죽 구두 따위는 몸에 걸치지 않은 채, 발가락은
마음껏 해방되어 대낮에도 있을 수 없는 자유가 회복되는 아침 자리옷 바람으로 편히
침대에 누워 길게 몸을 뻗기도 하고 움츠리기도 할 때야말로 진짜 사업적인 머리는
제대로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발가락이 해방되어 있을 때에 두뇌는 해방되어
있고, 두뇌가 해방되어 있을 때에만 진짜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편하기
그지없는 상태에 몸이 놓여 있으면 어제 한 일과 잘못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여, 오늘
이제부터 해야 할 예정 가운데서 중요한 일과 하찮은 일을 뚜렷이 구별지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규칙대로 9시 정각이나 또는 9시 15분 전에 사무실에 나가 노예의
우두머리처럼 사원들을 감시의 눈초리로 흘겨보며 중국인의 이른바 (악착영영) 하며
쓸데없는 일에 심신을 소모하느니보다는 자기 자신을 확실히 파악한 뒤에 10시쯤
사무실에 나타나는 편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자리 속에서 한 시간 동안 가만히 누워 있다는 것은 사색가, 발명가, 사상가에
있어서는 그 효험이 아주 뚜렷한 바가 있다. 저작가는 아침부터 밤까지 책상 앞에
앉아서 억지로 머리를 짜내고 있는 것보다는 이러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가
논문이나 소설의 착상을 풍부하게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때야말로
전화라든가 선의의 방문객, 일상 생활의 자잘하고 번잡한 일로부터 해방되어,
말하자면 유리나 구슬로 수놓은 스크린을 통해서 인생을 바라보고 현실 세계의
주위는 시적인 환상의 광채에 싸여서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이상하기 그지없는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생생한 살아 있는
그대로의 인생은 아니다. 그것은 홀연히 예운림이나 미불이 그린 명화처럼 진실을
초월한 진실된 화상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리 속에 누워 있으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선 근육은
휴식을 취하게 되고, 혈액은 보다 원활하게 규칙적으로 돌게 되며, 호흡은 한층 더
차분해지고, 시신경, 청신경, 혈액신경은 모두 잘 쉬어 많건 적건 완전한 육체적인
평정이 얻어진다. 그러므로 이념에 대해서나 정감에 대해서나 정신적인 집중이 한층
더 명확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후각이니 청각이니 하는 감각도, 인간의 오감은
잠자리에 들어 있을 때가 가장 예민한 것이다. 좋은 음악은 모름지기 누워서 듣는
것이 가장 좋다. 이입 옹은 (양류)라는 제목의 글에서 모름지기 자리에 누워 새벽에
우짖는 새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새벽에 눈을 뜨고 신묘하기 그지없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참으로 아름다운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 의자에 걸터앉는 것에 대하여

  나라는 인간은 의자에 털썩 기대 앉아 있는 것으로 평판이 나 있기 때문에, 의자에
걸터 앉는 철학에 대해 좀 써보려 한다. 내 친구나 아는 사람 중에도 이 털썩 기대
앉는 패가 꽤 많은데 어찌된 셈인지 적어도 중국 문단에서는 나 하나만이 특히
평판이 되어 있다. 굳이 말하지만 오직 나만이 현대 사회에서 털썩 늘어져 앉는 것은
아니다. 내 평판은 매우 과장되어 있다. 왜 그러한 평판이 서게 되었는가 하면 내가
전에 (격주 어록)이라는 잡지를 내고 있을 때 그 잡지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
해롭다는 신화를 깨뜨리기 위해 크게 분투한 적이 있었다. 잡지에 담배 광고를 실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니코틴 마나님의 덕을 찬양하는 논문을 계속적으로 발표했다.
그러한 데서 어느 사이에 나라는 사람이 소파에 축 늘어 자빠져 잎담배를 피우는
외에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는 게으름뱅이라는 소문이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나는 곧 그 항설을 부인하고 나야말로 중국에서 가장 부지런한 인간의
하나라고 항의해 보았지만 항설은 점점 더 퍼져서 내가 미워하는 유한 인텔리 계급에
속하는 증거라는 말을 언제나 듣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전혀 내용이 부드러운 논조의 논문을 실은 다른 잡지를
창간한 뒤부터 사태는 악화됐다. 대체로 중국인이 쓰는 논설이 글자가 어럽고
이해하기 힘들며 위선적이고 거드름만 피우는 것은 열 두 세살의 어린이들에게
(구국)이니 (견인 불발의 정신)이니 하는 제목의 작문을 짓게 한 요 30년 동안의
작문 교수법의 결과이지만, 그런 문제에 그만 진절머리를 내고 있던 나는 좀더
친밀감이 있는 문장을 보급시킨다면 중국어의 산문을 유학자식 상투어의
거북살스러움으로부터 해방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별다른 생각없이 무심코 이 (친밀감 있는 문체)라는 말을 (유한적 문체)라는
의미의 중국어로 표현하고 말았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공산주의 진영으로부터
공격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중국의 모든 유한 문필가 중에서 가장 유한적인
인간이라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낙인이 찍히게 되어, (우리가 이 국민적 굴욕의
시대에 살고 있는 이때에 있어서) 가장 용서할 수 없는 놈이 되고 말았다.
  물론 나는 친구들의 응접실에서 축 늘어지듯이 소파에 걸터 앉는 것을 예사로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나 하나만이 아니라,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다. 도대체 안락의자라는 것은 편하게 주욱 몸을 펴고 걸터 앉는 외에 무슨 용도가
있겠는가. 20세기의 신사 숙녀들은 언제 어떤 경우라도 위엄을 절대로 허물어뜨리지
않고 단정하게 걸터 앉아 있어야 할 것이라면 현대적 응접실에 안락의자 따위는 있을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모두가 딱딱하고 거북한 자단의자에라도 앉아서 부인들은
대부분 방바닥에서 한 자쯤 되는 곳에 발을 대롱대롱 드리우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풍속, 건축, 실내 장식 사이에는 상상 이상의 밀접한 관계가 있다. 헉슬리도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서양 부인은 자기의 벗은 알몸을 보기를 두려워하여 그다지
목욕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도덕적 관념의 결과 현대식의 흰 법랑 철제 욕조가
수세기 늦게 나타났다. 옛날 중국의 가구 설계에 인간의 안락에 대한 고려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의 생활을 제약하고 있던 유교적 분위기를
인식하여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자단으로 만든 중국식 의자는 사람이 단정하게
앉게끔 설계된 것이다. 왜냐하면 단정하게 앉는 것만이 사회적으로 용인된 유일한
자세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황제들까지도 위의를 바로 하고 단정히 옥좌에 앉아야
했다. 나같은 사람은 5분 이상은 도저히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영국의 황제들도 중국의 황제나 마찬가지로 거북한 생활을 해왔다. 클레오파트라는
노예들이 멘 긴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마
공자의 이름을 듣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공자가 그 꼴을
보았더라면 제자의 한 사람인 원양이 단정치 못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을 보았을
때처럼 아마 (지팡이로 그 종아리를 때렸을 것)이다. 우리가 생활해 온 유교적
사회에서는 신사 숙녀는 적어도 공적인 석상에서는 철두철미하게 위엄을 차리고
있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다리를 내던지거나 하는 동작을 하는 날에는 당장 그
자리에서 야비하고 교양없는 증거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위사람을 뵐
때에는 특별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의자 앞끝에 조심조심 모로 단정히 걸터 앉아야
했다. 그것이 존경의 표시가 되고 교양의 높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유교의 전통과 중국 건축의 부자유한 점 사이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여기서는 이
문제는 건드리지 않기로 하자.
  18세기 끝 무렵부터 19세기 첫 무렵에 걸친 낭만주의 운동의 덕택으로 이 고전적인
에법의 전통은 타파되고, 인간의 수족을 자유로이 뻗치는 것은 이제 죄악이 아니게
되었다. 인생에 대한 보다 진실한 태도가 이에 대치되었다. 이것은 낭만주의 운동의
덕택이기도 하지만 또한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가 진보된 결과이기도 하다. 연극의
즐거움을 부도덕하게 보거나 셰익스피어를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태도는 없어지고
말았다. 여성들의 욕의, 깨끗한 욕조, 편안한 안락의자, 긴의자의 진화가 이렇게
해서 촉진되어 옛날보다는 진실미가 있고 친밀감이 있는 생활 양식과 문체의 진화가
실현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파에 벌렁 나자빠지는 내 습관과, 친절미가 있고
자유롭고 쉬운 문장을 현대 중국의 저널리즘에 주입하려는 나의 숙명 사이에는
실질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다.
  사지를 쭉 펴고 편하게 한다는 것이 죄악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친구의
응접실의 안락의자에 걸터 앉아서 마음대로의 자세를 취하면 취할수록 주인에 대하여
한층 더 경의를 표하는 것이 된다는 것도 인정해야만 한다. 즉 손님이 편하게 쉬는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그 집의 주인이나 주부나 어려운 접대술에 성공하게끔 도와
주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초대한 손님들이 편한 자세를 취하려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점잔을 빼고 있는 야회의 일을 생각하고 얼마나 많은 여주인이
몸서리쳤을 것인가. 나는 언제나 차탁이건 뭐건 제일 손 가까이에 있는 가구에 한쪽
다리를 올려 놓음으로써 주인 내외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늘 덜어 주기로 하고 있다.
그러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나는 나 외의 모든 손님들의 거짓 위엄이라는 덧저고리를
벗겨 놓고 마는 것이다.
  이제 나는 의자에 걸터 앉는 기분, 즉 어떻게 하면 비교적 기분이 좋겠는가 하는
공식을 발견했다. 그것은 지극히 간단한 말로 표현된다. 즉 의자는 낮으면 낮을수록
앉는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친구네 집 어떤 의자에 걸터 앉아 보고 어쩌면
이렇게도 앉는 기분이 좋을까 하고 깜짝 놀란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공식을 발견하기까지는, 어쩌면 실내 장식 전문가는 사용하는 사람에게 가장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의 높이와 폭의 비례 또는 경사도 따위의 수학적 공식을 알고 있는
것이겠지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기 나름의 공식을 발견한 뒤로는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떠한 것이라도 좋으니 자단으로 만든
중국식 의자를 집어들고 그 다리를 이삼 인치 가량 톱으로 자르고 보면 대번에
앉기가 훨씬 좋아진다. 이러한 현상의 논리적 귀결은 누구나 침대 위에 길게 누웠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일은 이렇게 간단하다.
  인간 생활이라는 것은 결국 일하는 것과 노는 것, 즉 긴장과 이완이다. 남성의
머리의 에너지와 일에 대한 능력도 마치 여성의 육체와 마찬가지로 한 달마다
순환한다. 윌리엄 제임스는 자전거의 사슬을 너무 단단하게 죄어 놓으면 도리어 편히
달릴 수 없다는 말을 하는데, 인간의 정신도 또한 그러하다. 결국 모든 것은 습관에
달려 있다. 인체에는 무한한 적응력이라는 것이 있다. 다다미 위에만 앉는 습관이
있는 일본인을 의자에 걸터 앉게 하면 경련을 일으키고 말 것이다. 몸을 똑바로
앉아서 집무하는 자세와 하루의 격무를 마친 뒤 편하게 몸을 소파에 던지고 쉬는
자세를 번갈아 취함으로써 우리는 생활의 최고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부인들에게 한마디 해두겠다. 당신네들 바로 앞에 다리를 쉬게 할 만한 것이 없을
경우에는 언제나 소파 위에 다리를 올려 놓는 방법이 있다. 그러한 자세로 있을
때만큼 여성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도 없다.



    3. 벗과의 정담에 대하여

  (임과 하룻밤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10년 동안 책을 읽는 것보다 낫다) 이것은
옛날 중국의 한 학자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 한 말이다. 이 말에는 많은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야담)이라는 말은 벗과의 유쾌한 이야기를 밤에 나누는 것을 나타내는
유행어가 되어 있다(과거의 밤에 주고받는 이야기도 좋고 이제부터 맛볼 밤
이야기라도 좋다) 벗과 더불어 마음껏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과
같은 인생에서 다시 없는 즐거움은 일생 가운데 여간해서 맛보기 어려운 즐거움이다.
이입 옹도 말했듯이 현명한 사람으로서 말 잘하는 사람은 좀처럼 없는 법이고, 말
잘하는 사람치고 현명한 인사란 찾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인생의 모든
일을 이해하고 더우기 말재주도 뛰어난 그런 인물과 산속 깊은 절간에서 우연히
만난다거나 하는 일은, 천문학자가 새로운 유성을 발견하거나 식물학자가 새로운
종을 발견했을 때와 같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사업계의
경황 없이 변하는 템포 때문에 벽난로를 둘러싸고 크래커 통에 걸터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화술이 점점 없어져 가고 있다고 현대인은 한탄하고 있다. 이른바
템포라는 것이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가정이라는 곳이 전과 달라져 통나무를 땔 수 있는 벽난로가 없는 아파트에서
살게 된 것이 화술을 파괴하는 시초가 되고 자동차의 영향이 그 파괴를 완성시킨
것이나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대체 템포라는 것 자체가 좋지 않다. 참된 친구와 주고
받는 정담이라면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그런 데서 비롯되는 편안함, 유우머,
가벼운 뉘앙스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사람이 단순히 이야기를
한다는 것과, 이런 운치 있는 정담을 나눈다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중국어로는 설화(Speaking)라는 말과 담화(Conversation)라는 말로 그 사이의 구별을
짓고 있지만, 담화는 설화보다는 마음 가볍고 운연한 맛이 있으며 이야기의 내용도
비교적 세세한 것이어서 사무적인 데가 적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와 같은 차이는
사무용 통신문과 문우와의 편지 사이에도 있을 것이다.
  사무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따지는 것은 어떤 상대와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밤을 세워 가면서 마음껏 환담할 수 있는 상대란 매우 적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의미에서의 담화가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재미난 작가의 작품을 읽는 기쁨
이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거의 그것과 맞먹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물며 담화의 경우는 상대편의 목소리를 듣고 몸짓하는 동작을 보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때는 밤기차의
끽연실에서, 또 어떤 때는 먼 여로의 객사에서 우리는 그러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갖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며, 독재자와 반역자를 욕하는 통렬한 웅변에 섞여 유령의
이야기며, 여우에 홀린 이야기도 나올 것이다. 그 중에는 지금 어느 나라에서는 이런
새로운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점점 절박해진 정권의 뒤집힘이나 정변이
일어날 전주곡이니 하며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지식을 알려 주는 식견과
앞일을 내다보는 뛰어난 안목을 가진 좌담가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일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추억 속에 남게 마련이 것이다.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에 가장 좋은 때는 물론 밤이다. 밝을 때 주고 받는 이야기는
어딘지 매력이 적은 법이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장소는 어디건 좋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나 철학에 대한 유쾌한 대담을 즐기는 것은 18세기 식으로 꾸민 살롱에서도 할
수 있고, 오후의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면서 그 어느 농장 안에 놓인 빈 술통에 걸터
앉아서도 할 수 있다. 어쩌면 또 이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밤이나 비가
내리는 밤에 강을 배를 타고 여행한다. 맞은편 기슭의 배에서 비치는 불빛이
어른어른 물 위에 비치는데 이런 정취 속에서 사공들은 여왕의 공주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의 진짜 구수한 맛은
그 환경, 즉 장소나 시간이나 이야기 상대가 그때그때 바뀌는데 있다. 어떤 때는
강남차의 꽃이 필 무렵 산들바람이 부는 달 밝은 밤과 관련지어 그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고, 또 어떤 때는 벽난로에서 통나무가 활활 타던 캄캄한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밤의 기억과 함께 연상할 때도 있다. 또는 어느 누각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강을 내려가는 몇 척인가의 작은 배를 내려다보던 것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한 척의 배는 급류에 휩쓸려 뒤집혀졌었지. 그리고, 또 아침 한때
역 대합실에서 지낸 일도 추억에 떠오른다. 그러한 정경은 그때그때 주고 받는
이야기의 기억과 하나로 연결되어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그때 방 안에 있던 사람은 아마 두서너 명이었었지. 그리고 그날 밤은 아마 대여섯
명은 되었을 거야. 진군은 그날 밤 술이 좀 취해 있었던 것 같았어. 그리고 김선생은
코감기가 들어서 약간 코맹녕이 소리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것은 특히 그날 밤의
기분을 더욱 짙게 했었지. (달도 차면 기울고 꽃도 피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좋은 벗들은 언제나 서로 만나기 힘들다) 이런 것이 바로 인생이니까 우리가 이런
단순한 즐거움에 잠겨 있을 때 신들도 인간을 시새움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이야기란 언제나 친밀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는 뛰어난 수필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스타일이나 내용이 모두 수필의 그것과 비슷하다.
여우의 망령, 파리, 영국인의 기묘한 습관, 동양 문화의 서로 다른 점, 세느 강변의
노점인 헌책방, 양복점에서 일하는 음란증이 있는 여점원, 우리의 지배자, 정치가,
장군들의 숨은 이야기, 불수감(시트론의 변종)의 보존법 등 이런 것들은 모두 한담
재료로서는 안성마춤인 화제라 하겠다.
  이야기가 수필과 가장 공통된 점은 그 여유 만만한 스타일에 있다. 물론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슬픈 변화라든가 혼돈 상태에 대한 비판도 나올
것이고 자유와 인간의 품위, 나아가서는 인간이 목표로 삼는 행복까지도 앗아가
버리는 광적인 정치 사상의 종류 속에 문명 그 자체가 몰락해 가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에 대한 비판도 나올 것이다. 또한 더 나가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진리나
정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겠지만, 그러한 이야기들이 아무리 엄숙하고 중요한
화제라 할지라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마음 편하고 친밀감이 있고 한가한 태도로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유를 약탈한 자에 대하여 아무리
격렬한 분노를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명 사회에서는 입가나 펜 끝에 띤 가벼운
미소에 의해 그 감정을 나타내는 도리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감정을 모두
드러내 놓고 진짜 열을 띠고 이야기하는 격한 말 따위는 정말로 친절한 몇몇
친구들에게나 들려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뜻에서
기탄없는 이야기를 즐기려면, 있어서는 난처한 싫은 사람들은 빼놓고 소수의 마음
맞는 친구들만 모여서 정다운 분위기 속에서 마음 편하게 각자의 의견을 털어놓는
것이어야 한다.
  진짜 담화와 이와는 다른 정중한 의견 교환과의 다른 점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수필과 정치가의 성명과의 다른 점을 보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정치가의 성명 가운데도 특히 고상한 감정을 표현한 것도 상당히 있다. 즉 민주주의
감정, 봉사하겠다는 열의, 가난한 사람의 행복에 대한 관심, 국가에 대한 충성,
숭고한 이상주의, 평화에 대한 사랑과 변함없는 국제적인 우의의 확보, 권세욕이나
금전욕의 냄새를 절대로 풍기지 않는 태도 같은 것은 정치가의 고상한 정조의
발로라고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성장을 하고, 지나치게 짙은
화장을 한 여인처럼 마음 놓고 가까이 갈 수 없는 한가닥 악취를 풍기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진심으로 들려 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또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수필을 읽고 있을 때에는 수수한 옷을 걸쳐 입고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시골 처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머리칼은 약간 헝컬어지고 단추는 하나쯤 떨어져 있을지 모르지만 애교가 있고
친밀감이 있어 호감이 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서양 부인들이 입는 실내의가
노리는 정감 있는 매력이어서 아무렇게나 꾸민 가운데 깃든 세련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친밀감에서 오는 이 정이 가는 매력이야말로 온갖 즐거운 이야기와 수필이
지녀야 할 공통 요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담화가 지녀야 할 올바른 양식은 친밀감과 대범한 느낌이 하나로 어울린
양식이어야 한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자의식을 잃어버리고, 몸차림이
어떻다느니, 어떤 말투로 이야기를 한다느니, 재채기를 했다느니, 어디에 손을 얹어
놓고 있다든가 그런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또한 이야기가 어떠한
방향으로 진전되거나 도무지 상관하지 않는다. 이렇듯이 친한 친구들과 서로 만나
서로 마음을 편히 갖겠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비로소 진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은 곁에 놓인 탁자 위에 두 발을 올려 놓고 있고,
또 어떤 친구는 창틀에 걸터 앉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방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서
소파에서 끌어내린 쿠션에 몸을 기대고 있는 형편이어서 소파의 3분의 1은 텅 빈
채로 남아 있다. 사람이란 누구나 손발이 편해지고 몸이 편안한 자세를 취하게
되어야 비로소 심장도 편히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바 모두 마음에 드는 친구뿐일세
  내 주위에 눈 거슬리는 놈은 아무도 없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적어도 예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온갖
한담을 주고 받는데 절대 필요한 요건이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는지 그다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으니까 이야기에는 이렇다 할 순서도 방법도 없이 차례로
거침없이 나가게 마련이다. 이윽고 모두 유쾌한 기분을 지닌 채 흩어져 가게 되는
것이다.
  이상 이야기한 것이 한가로움과 담화와의 관계이며 또한 담화와 산문체가 흥륭하는
관계이다. 본디 나는 진실로 세련된 한 나라의 산문은 담화가 이미 하나의 예술의
경지까지 발달했을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사실은 중국과 고대
그리이스에 있어서의 산문 발달의 자취를 더듬어 보면 가장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공자가 나타난 뒤 몇 세기에 걸쳐 중국 사상은 발랄한 생기를 보여 이른바
(구류학파)를 낳기에 이르렀는데, 그 원인으로서는 주로 입씨름만을 일삼는 학자
계급에 의하여 구성된 교양이 높은 시대적 배경의 발달이라는 원인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화술이 생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유한적 사회에만 국한돼 있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뛰어난 수필이 나타날 수 있는
것도 화술이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화술과 훌륭한 산문 기술은
문명사상 그 모두가 비교적 늦게 발달되었다. 왜냐하면 인간 정신은 어느 정도
감정의 섬세함과 경묘함을 발달시켜야 하겠지만, 그것은 모두 한적한 생활에서만
바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산주의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한가함을
즐기고 가증할 유한 계급에 속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반혁명적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바이지만,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목적은 모두 대중에게 여가를
즐기게 하는 것, 즉 한가로움의 향락을 일반화시키는데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가함을 즐기는 것이 죄악이 될 까닭이 없다. 아니 죄악은 커녕 문화
자체의 진보가 한가로움을 총명하게 이용하는데 달려 있는 것이다. 담화는 그 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말할 수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저녁 식사가
끝나면 곧 잠이 들어 소처럼 쿨쿨 코를 고는 실업가 따위는 아마도 문화의 발달에
대해 아무런 보템도 주지 못할 것이다.
  이 (한가함)이 때로는 강제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구한다고 좀처럼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뛰어난 문학적인 작품은 강제적인 한가로운 분위기
속에서 생겨났다. 창창한 앞날을 가진 문학적 천재가 아무런 소용도 없는 사회적인
모임에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시국 문제에 대한 논문을 쓰거나 하여 정력을 소모하는
것을 보면 그를 구해낼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방법은 감옥에 집어 넣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왕이 인생의 변화를 논한 철학의 고전 (역경)을 쓴 것도, 사마천이
한문으로 쓴 가장 훌륭한 역사인 (사기)라는 걸작을 쓴 것도 모두 감옥에 갇혔을
때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문인이 정계에 대한 야심이 무너졌을 경우, 또는
정계의 정세가 너무나 비관적인 경우, 이따금 문학과 미술의 걸작이 생겨난다.
몽고가 중국에 군림했던 시대에 위대한 원대의 화가와 희곡가가 많이 쏟아져 나왔고,
만주인이 중국을 정복했던 첫 무렵에 석도나 팔대산인과 같은 위대한 화가가 나타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애국심이 이민족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극도의
굴욕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서, 예술과 학문에 대하여 전신전령을 쏟게 했던 것이다.
석도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 낳은 거장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거장이지만, 그의
이름이 널리 유럽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면도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청조의 역대 황제가 자기네 통치에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았던 이들 예술가의
공적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데도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 실패한 다른 위대한 문인들은 그들의 정력을 승화시켜 오로지 창조의 길로
정진하기 시작했다. (수호전)을 쓴 시내암의 경우, (요재지이)를 쓴 포송령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그 (수호전) 속에 역시 시내암이 쓴 것이라고 전해지는 머리말
가운데 친구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유쾌한 글이
있다.

  친구들이 모두 내 집에 모이면 모두 합해서 열 여섯 명인데 한 명도 빠짐없이
모이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비나 폭풍우가 부는 날이 아니고는 한 명도 오지 않는다는 것도 또한 드문
일이다. 대개 보통 날에는 여섯 명이나 일곱 명이 모이게 되는데, 그들은 집에
오자마자 곧 무엇을 생각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싫어지면
그만둔다. 즐거움은 술을 마시는데 있는 게 아니라 벗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정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우리의 격에 맞지 않는 일이기도 하고 이렇게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장에서는 대부분의 소식은 세상 소문에 의지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전해 들은 소식은 한낱 뜬소문에 지나지 않으며,
뜬소문을 갖고 논한다는 것은 타액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또한 세상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주고 받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과실은
없는 것이며, 우리는 그들을 비방해서는 안된다. 또한 우리는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놀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아직도 그렇게
뜻대로 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주고 받는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바쁜 세상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내암의 대작이 나오게 된 것은 이러한 정서 속에서였으나 그것은 그들이
한가로움을 즐겼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고대 그리이스에서 산문이 일어난 것도 분명히 이러한 한적한 사회적인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이스 사상의 맑고 깨끗함과 그 명쾌한 산문체는 분명히
한담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플라톤의 (대화)라는 표제만 보아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향연)편을 보면 한떼의 희랍 학자들이 땅바닥에 비스듬히 누워
술과 과일과 미소년의 분위기 속에 싸여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의
사상이 굉장히 맑고 깨끗하고 문체가 매우 명쾌한 것은 화술의 수련을 쌓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아카데믹한 저자들의 저 현학적이고 거만한 문체와 얼마나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가. 고대 그리이스 사람들은 분명히 철학의 화제를 마음 가볍게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이스 철학자들의 매력적인 환담의
분위기, 그 이야기를 좋아하는 기풍, 좋은 이야기 듣기를 소중히 여긴 점, 이야기를
나누는 환경에 마음을 썼다는 것은 (파이돈)의 머리말에 아름다운 필치로 쓰여져
있다. 이 글을 읽으면 고대 그리이스의 산문이 훌륭한 원인을 잘 알 수 있다.
  플라톤이 쓴 (공화국)만 하더라도 현대의 저술가라면 능히 쓸만한, (그 발전의
연속적인 단계를 통해서 본 인류 문명은 이종으로부터 동종으로의 역학적인
운동이다)라느니 어쩌니 하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잠꼬대 같은 말로 시작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같은 즐거운 문장이 첫머리에 나오고 있다. (나는 어제
아리스토의 아들인 글로코와 함께 여신을 참배하려고 페레우스로 갔다. 그리고
시민들이 어떤 모양으로 제전을 기리는지 보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이번 제전은 처음
보는 제전이었기 때문이다)
  사색이 가장 활발하고 왕성하게 행해진 고대 중국 철학자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분위기가 (대비극 작가는 또한 대희극 작가이어야 하는가. 그래서는
안되는 것인가)와 같은 화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그리이스 사람들 사이에도
있었다. 향연에 묘사되어 있는 그대로이다. 그곳에는 진지함과 명랑함이 뒤섞인
공기가 감돌고, 듣기에도 마음 가볍고 다정한 응답이 오가곤 했다. 한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마시는 모양을 놀려 대지만, 소크라테스는 매우 태연하게
마음이 내키는 대로 술잔을 들고 기분이 내키는 대로 술잔을 내려 놓곤 한다. 손수
따라 마시는 것이니까 남에게 폐는 끼치지 않는다. 이렇듯 아리스토파네스와
아가톤을 제외하고는 모두 잠들어 버릴 때까지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무리에게도 빨리 잠자리에 들도록 권하고 마지막에 혼자 남게 되면
소크라테스는 연회석상을 떠나 아침 목욕을 하러 리세움으로 간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신선한 마음으로 그날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이스 철학이 생겨난
것은 이러한 친근미가 넘치는 환담이 있는 분위기 속에서다.
  교양이 담긴 담화에는 그것에 필요한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여성의
참가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경쾌한 기분이라는 것이 한가로운 이야기의
기본 정신인 것이다. 실없는 말을 하거나, 떠들어대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이윽고
답답해지고, 철학 그 자체도 인생과 아무런 인연도 없는 하잘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생활방식을 이해하는데 흥미를 갖는 문화가 존재했을 때에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언제나 사교하는 자리에서 이성을 환영하는 풍습이 발달됐던 것이다.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젠스에서도 그러했고, 18세기 프랑스의 살롱에서도 그랬던
것이다. 남녀가 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금지했던 중국에서조차도 남자 학자들은
말벗이 되어 주는 여성이 참석하기를 바랐었다. 화술이 수련되어 일세를 휩쓴 진,
송, 명의 3대에 있어서는 사도온, 조운, 유여시, 이밖의 재원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중국의 남성은 아내가 정숙하고 다른 남자들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재능이 풍부한 여성들과 함께 앉아 즐기고 싶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중국 문학사는 결국 직업적인 창녀의 생활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자리에 여성의 매력을 약간 보태고 싶다는 요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일찌기 나는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몇몇의 독일 여성을 만난 일이 있는데 그뒤 영국과 미국에서
내가 아무리 애써 보아도 공부할 마음이 나지 않았던 경제학에 조예가 깊은 여성들을
보고 매우 어리둥절해진 경험을 갖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논할 수 있는
여성은 예외라고 치고, 이야기를 잘 들을 줄 알고 단정하고 생각이 깊어 보이는
여성이 몇 명 자리에 함께 있으면 이야기는 언제나 기분 좋은 자극을 얻는 것이다.
나는 멍청이같이 생긴 사나이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유쾌하다고
생각한다.



    4. 차와 교우에 대하여

  인간 문화와 그 행복이라는 점에서 보아 담배 피우는 것, 술 마시는 것, 차 마시는
것을 발명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류 역사상 일찌기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여가와 우정, 사교, 한담을 즐기는데 있어서 사실 이처럼 중요하고 직접
효과가 있는 것은 없다. 이 세 가지 것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첫째 어느 것이나
우리가 사교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 둘째 다른 음식처럼 위에 가득차지 않기
때문에 식간에 즐길 수 있다는 것, 세째 후각을 작용시켜 콧구멍을 통하여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문화에 끼친 그 영향도 실로 큰 바가 있다. 식당차
옆에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휴게실이 있고, 우리의 사회에는 식당이며 술집이며
찻집이 있다. 적어도 중국과 영국에서는 차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의 사회 제도가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담배, 술, 차를 정말로 즐기는 풍습은 한가로움과 우정과 사회의 분위기 속이
아니고는 발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담배, 술, 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란
친구와의 우정을 충분히 나눌 줄 아는 사람, 그룹을 만드는데 매우 세심한 사람,
타고난 성품이 한가한 생활을 사랑하는 인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교성이라는 요소를 빼 버리면 무의미한 짓이 되고 만다. 담배나 술이나 차를
즐기려면 달과 눈과 꽃을 즐길 때와 같이 그럴 만한 상대가 없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생활 예술가들이 자주 역설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종류의 꽃은 어떤 종류에 속하는 사람과 더불어 즐겨야만 한다. 어떤 종류의 경치는
어떤 종류의 여성을 연상해야 한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마음속으로부터
즐기려고 생각한다면 여름철에는 깊은 산 절간의 대나무 침상에 누워 조용히 들어야
한다. 즉 무슨 일에고 그것에 알맞은 기분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물에는
저마다 기분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그 장면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상대를 고르지
않으면 전혀 기분을 망쳐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을 논하는
예술가는 적어도 생활을 즐기는 방법을 배우려면 우선 누구나 절대적인 조건으로서
같은 기질을 가진 친구를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친구의 우정을 얻어 그
우정을 오래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마치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장기의 명수가 천리 길을 멀다 않고
친구인 기사를 찾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분위기라는 것은 이토록 소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의 서재와 생활을
즐기려고 하는 일반적인 환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나아가야 한다. 우선 즐거움을
함께 누리려는 한 무리의 친구가 있다. 즐거움의 종류가 다르면 그에 따라 취미와
성질이 다른 벗을 선택해야 한다. 공부만 파는 우울한 사람과 승마를 즐기려 함께
간다는 것은 음악을 모르는 사람과 음악회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당치도 않은
행동이다.
  (다록)에 의하면 (차를 즐기는 취미의 정수는 그 색채와 향기와 풍미를 맛보고
즐기는데 있으며, 차를 조제하는 원칙은 순청, 건조, 그리고 청결에 있다) 그런고로
이러한 차의 성질을 맛보고 즐기려면 정적이라는 요소가 필요한 것이다. 차의
감상력은 (냉철한 머리로 뜨겁게 단 세계를 능히 볼 수 있는) 사람이 갖는 힘이라고
하겠다.
  송대 이후 그 길의 전문가들은 한 잔의 박다를 가지고 지미로 삼는다고 했으나,
박다가 지닌 섬세한 풍미는 번거로운 생각에 몰두해 있거나, 주위가 시끄럽거나,
하인들이 말다툼을 하거나, 또는 얼굴이 못생긴 여자가 시중을 들려고 나오거나 하게
되면 차맛을 음미할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경황없이 마셔 버리게 되기 쉬운 법이다.
(차를 함께 마시는 상대도 많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까, 차를 마시려면 손님이 많지
않아야 한다. 손님이 많으면 시끄러워지고, 시끄러워지면 차가 풍기는 고상한 매력이
없어지고 만다. 혼자서 차를 마시면 이속이라고 말하고, 둘이서 마시면 한적이라고
일컬어지며, 세 명이나 네 명이 함께 마시면 유쾌하다고 말하며, 대엿섯 명이 마시면
저속하다는 말을 듣게 되고, 일곱 명이나 여덟 명이 어울려 마시면 경멸하는 뜻에서
박애라고 불리어지게 마련이다) 또한 (다소)의 저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큰
찻병에서 몇 번이고 계속해 차를 따라 마시거나, 단숨에 꿀꺽 마셔 버리거나, 조금
있다가 다시 데우거나, 굉장히 진한 차를 마시고 싶어하는 따위는 심한 노동을 한
뒤에 배를 채우려고 차를 마시는 농부나 직인이 하는 짓이다. 그래서는 차의 풍미는
다른 점을 즐기며 맛볼 수 없는 것이다)
  다도를 논하는 중국의 문인은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또한 정다에 필요한 엄정
청결한 마음씨를 고려하여 차를 달이는 사람 자신이 모든 일에 충분히 주의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혼자서 차를 달인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함을 면할 수 없는
일이므로, 심부름하는 소년 두 사람을 특별히 가르쳐서 차 달이는 일을 맡기는게
좋다고 말하고 있다. 차를 달이려면 보통 부엌에서 떨어져 있는 방이나 처마 밑에
마련된 차만을 달이는 작은 아궁이를 쓴다. 심부름하는 아이는 주인이 보는 앞에서
차를 달이도록 훈련을 시키고, 찻잔은 아침마다 씻게 하고(절대로 행주질을 하지
말 것), 손도 잘 씻고 손톱도 잘 다듬어 깨끗하게 하도록 모든 일에 있어 청결하게
하는 습관을 지키도록 가르쳐야 한다. (손님이 세 사람인 경우에는 아궁이는 하나로
충분하지만 다섯 명이나 여섯 명인 경우에는 따로따로 된 아궁이 둘과 차솥이 두
개가 필요하다. 한 아궁이에서 심부름하는 아이를 한 사람씩 붙여 놓는다. 혼자서
양쪽 아궁이를 지켜 보아야 하게 되면 일이 제대로 잘 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이
뒤범벅이 되고 만다)
  그러나 다도에 통달한 진짜 멋장이는 자기 스스로 차를 달이기를 더없는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일본의 다도처럼 까다로운 의례로 발달되지만 않는다면 차를
달여서 마신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알고 차분함과 고아한 정신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다도는 일본 사람처럼 성질이 잘고 도량이
좁다. 수박씨를 이 사이에 넣고 깨뜨려 가는 것이 먹는 즐거움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처럼 차를 달인다는 것은 차를 마시는 즐거움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다.
  진실로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분으로는 온갖 차의 도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기쁨은 다만 만지는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이를테면 채양과 같이 노년이 되어
차를 마실 수 없게 된 뒤에도 날마다 습관이 되어 자기 스스로 차를 달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던 사람도 있었다. 또 한 사람 주온복이라는 학자는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에 여섯 번씩 정해진 시간에 차를 달여 마셨고, 주전자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죽을 때 함께 관 속에 넣게 한 사람도 있다.
  그리하여 다도의 기술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소로 성립되는 것이 된다. 첫째,
차는 가장 냄새를 타기 쉬운 것이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언제나 깨끗하게
다루고, 술이나 향, 그밖에 냄새나는 것, 또는 그러한 것들을 다루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 둘째로, 차는 시원하고 메마른 곳에 저장해 두어야 한다.
장마철에는 그때그때 쓸것을 특별히 조그만 항아리에 적당히 덜어서 넣어둘 것,
이런 때 쓰는 작은 항아리로는 백랍계가 가장 좋다. 한편 큰 항아리에 넣어 둔 차는
필요한 경우 이외에는 뚜껑을 열지 말 것, 항아리에 넣어 둔 차에 곰팡이가 슬었을
경우에는 차 잎사귀가 누래지거나 색이 바래는 것을 막기 위해 약한 불에 올려 놓아
살짝 볶을 것. 그때는 직접 불을 쬐면서 쉴새없이 부채질을 할 것. 세째, 차를 잘
달이는 기술의 절반은 깨끗하고 순수한 좋은 질의 물을 구하는데 있다. 산에서 나는
샘물이 가장 좋고, 강물이 두 번째이고, 우물물이 세 번째라고 한다. 용두에서
나오는 물도 제방에 괸 물이라면 사실은 산골짜기를 흐르는 물이니까 또한 좋다.
네째로 진기한 찻잔을 감상하려면 조용한 친구들과 자리를 함께 할 것, 그것도 너무
여럿이면 안 된다. 다섯째, 보통 흔히 쓰이는 차의 알맞은 빛깔은 엷은 황금색이며,
모든 암홍색인 차는 우유나 레몬이나 박하나 그밖의 무엇이건 차가 지닌 쓴 맛을
없앨 수 있는 것을 넣어서 마실 것. 여섯째, 가장 좋은 차에는 (뒷맛)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것은 마신 뒤 30초쯤 지났을 때 화학적 요소가 타선에 작용하는
시간이 지났을 때 느끼는 맛이다. 일곱 번째로 알아둘 것은 차는 신선한 것을 넣어서
곧 마실 것. 맛있는 차를 마시고 싶거든 한 번 따른 뒤 남은 차를 너무 오랫동안
찻주전자 안에 담아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여덟 번째, 차는 방금 길어온 물로
달일 것. 아홉 번째, 다른 것을 섞는 것은 일절 피해야 한다. 다만 어떤 종류의
외국산 향료, 이를테면 재스민이나 육계같은 것을 약간 넣어 달이는 취미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기호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열 번째, 가장 좋은
차에서 바랄 수 없는 향기는 (갓난아이의 살결)에서 풍기는 델리킷한 향기이다.
  차에 관한 뛰어난 평론서인 (다소)는 사물을 즐기기에 알맞은 때와 환경을
규정짓는 중국의 관습에 따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차를 즐기기에 알맞은 때

  마음도 손도 모두 한가로울 때,
  시를 읽고 피곤을 느꼈을 때,
  생각이 어수선할 때,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노래가 끝났을 때,
  휴일에 집에서 쉴 때,
  금을 타고 그림을 바라볼 때,
  한밤중에 이야기를 나눌 때,
  창문이 밝아 책상을 향하고 앉을 때,
  잘 생긴 벗이나 아름다운 애첩이 곁에 있을 때,
  벗을 찾아보고 집에 돌아왔을 때,
  하늘이 맑고 산들바람이 불 때,
  가볍게 소나기가 내리는 날,
  조그만 나무 다리 아래 뜬 곱게 색칠한 배 안,
  높다란 참대나무 밭 속,
  여름날 연꽃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누각 위,
  비좁은 서재에서 향을 피우면서,
  연회가 끝나고 손님이 돌아간 뒤,
  아이들이 학교 간 뒤,
  사람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절에서,
  이름있는 샘과 기암이 가까운 곳에서.



    5. 담배와 향에 대하여

  오늘날의 세계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피우지 않는 사람 이렇게 두 패로 갈라져
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금연가에게 다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피해가 육체적인 것에 비해 금연가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주는 피해는
정신적인 것이다. 물론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간섭하려 하지 않는 금연가도 많아,
부인들은 남편이 잠자리 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참을 수 있도록 훈련할 수도
있다. 이것은 결혼 생활이 행복하게 잘 되어 간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러나
금연가가 인류에서 가장 큰 쾌락의 하나를 잃고 있는 줄도 모르고 도덕적으로
훌륭하다느니 무언가 자랑할 만한 것을 갖고 있다든가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도덕적인 약점이라는 사실은
나도 기꺼이 인정하지만 그 반면에 약점이 없는 그런 사람은 조심해서 대해야 한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신용할 수 없다. 그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지나치게 냉정해지기
쉬워서 실수라고는 전혀 저지르지 않는다. 그들의 습관은 대체로 규칙적이며, 담배
피우는 사람보다 생활이 기계적이고 언제나 이성이 감정을 지배하고 있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은 좋아하지만 완전한 이성인이란 아주 질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담배
재떨이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집에 들어가면 언제나 마음이 조마조마해져서 도무지
불안하다. 방안은 대개의 경우 지나칠 만큼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있고, 방석은
일정한 곳에 놓여 있으며, 식구들은 누구나 단정해서 따뜻한 인정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나도 곧 남의 집에 간 서먹서먹한 행동을 하게 된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가장 불쾌한 행동인 것이다. 이러한 근엄하고 완전무결한
도덕가들, 감정이 없고 시적인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는 담배를 피우는
데서 얻는 도덕적, 정신적인 이익을 맛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공격을 받는 것은 예술적인 방면에서가 아니라
으례껏 도덕적인 면에서니까 우선 처음에 금연가보다 높은 수준에 서 있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도덕을 위해 한마디 변명을 해야 하겠다.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는 사람은 내 취미에 맞는 사람이다. 파이프를 입에 물었을
때의 끽연가는 여느 때보다도 명랑하고 사교적이며 한층 더 흉허물 없는 무례한
태도를 나타내고, 때로는 굉장히 이야기에 재치가 넘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쪽에서 그러한 것처럼 저편도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대커리에게 전적으로 찬성하는 바다. (파이프는
철학자의 입술보다도 지혜를 만들어 내며 어리석은 인간의 입을 닫게 한다. 파이프는
명상적이며, 생각이 깊고 인자하며, 허식 없는 좌담을 하게 만든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손톱은 대체로 더럽혀져 있지만 마음만 다정하면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명상적이고 생각이 깊고 명랑하며 허세를 부리지 않는
좌담이라는 것은 좀처럼 없는 것이니까, 그러한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라면 누구나
값비싼 희생을 치르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파이프를 입에
문 사람은 언제나 행복하며, 행복은 결국 도덕적인 가치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것이라는 사실이다. W. 매긴은 말하고 있다. (잎담배를 피우는 사람으로서 자살한
사람은 없다)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우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 아내와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진실에 가까운 명담이다. 그 이유는 매우 명백하다. 파이프를 입에 문 채 아주
큰소리로 아내를 야단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재주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다.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을 때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담배를 피우는 남편이 화를 낼 때 일어나는
현상은 대뜸 궐련이나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표정도 오래 계속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감정은 이미 발산할 곳을
찾아낸 셈이니까. 자신이 분개한 일이나 모욕감을 느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언제까지나 화난 표정을 짓고 있으려고 해도 그것이 계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파이프에서 피어 오르는 조용한 담배 연기는 사뭇 기분 좋게 마음을 진정시켜 주기
때문에, 연기를 내뿜고 있는 동안에 울적했던 노여운 감정도 한번 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배앝아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리한 아내는 막
역정을 내려는 남편의 태도를 알아차렸을 때는 상냥하게 남편의 입에 파이프를 물려
주면서 (자아, 그런 것은 빨리 잊어버리세요!)라고 말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공식은 언제나 효과를 거두게 마련이다. 아내가 실패하는 경우는
있어도 파이프가 실패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는데 있어서 얻어지는 예술적, 문화적 가치는 우리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한동안 금연을 했을 경우 무엇을 잃어버리게 되는가를 상상해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담배를 피우는 어떤 사람도 맹세코 니코틴 부인에게 대한 충성을
끊어려고 애쓰는 어리석은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뒤 얼마 동안 공상적인
양심과 싸운 뒤에 마침내는 제 정신으로 돌아간다. 나도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여
3주일 동안 담배를 끊었던 일이 있는데, 3주일이 끝날 무렵이 되자 내 양심은 다시금
바른 길로 되돌아가라고 몹시 고집스럽게 책망을 했다. 나는 또다시 옳지 않은 길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영원히 니코틴 신전의 경건한 신자가 되기를 그만 두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던 것이다.
  중국 문학에는 술에 비하여 담배에 대한 예찬은 비교적 적다. 담배를 피우는
풍습은 고작해야 16세기에 이르러 포루투갈서 뱃사람들에 의하여 수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대 이후에 씌여진 중국 문학 전반에 걸쳐서 자세히 조사해
보았으나 이 영묘한 향초를 칭송하는 것으로 너무나도 빈약하고 평범한 몇 줄의
어구를 찾아내었을 따름이다. 담배를 찬양하는 서정시는 분명히 옥스퍼드
대학생들에게서나 수입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은 차나 술이나 음식의 맛을
감상하는 그 태도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듯이 언제나 냄새에 대하여 매우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다. 담배가 없었던 시대에 그들은 향을 피우는 방법을 발달시켰다.
중국 문학에서는 향은 언제나 차나 술과 같은 범주로 분류되고 같은 기분으로
다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중국 제국이 인도지나까지 판도를 넓혔던 아득한 한나라
때의 엣날부터 공물로서 바쳐진 남쪽 여러 영토에서 나는 향은 궁정이나 권세 있고
부유한 가정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생활법을 논하는 책은 반드시 몇 조항을 만들어
향의 종류, 성질, 피우는 방법을 논하곤 했던 것이었다. 도적수가 쓴 (고반여사)라는
책의 향의 장에는 향을 피우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향을 피우는 이로운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속세를 떠나 한가로이 사는 고결한
학자들이 진리와 종교를 두고 논할 때 한줌의 향을 피우면 정신이 자못 맑아지고
마음이 유쾌해질 것이다. 깊은 밤 사경에 이르러 달이 홀로 하늘 높이 뜨고, 차갑고
싸늘한 기분이 피부에 스며들며 인간 세계를 멀리한 맑고 엄숙한 기운이 천지 사이에
가득찰 때, 그 마음을 온갖 근심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어 저절로 휘파람을 불게
해주는 것은 바로 향이다. 밝은 들창 가까이에서 옛 책의 필적을 살피거나 또는
파리채를 손에 들고 한가로이 시를 읊조릴 때, 또는 밤에 등잔불 밑에서 정신 없이
책을 읽을 때, 향은 졸음을 쫓아내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향을 일러 (고반월)이라 한다. 붉은 자리옷을 몸에 걸친 여인이 남자
곁에 섰고, 향로 위에 드리운 여인의 손을 어루만지며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 향은 사나이의 마음을 뜨겁게 하여 더욱 더 연정을 부채질 한다. 그러므로 향을
일러 (고조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비오는 날, 오후의 낮잠에서 깨어 꽉 닫힌 창가에 앉아서 글씨 연습을 하면서
그윽한 차의 풍미를 맛보고 있을 때, 향로는 점차 따뜻해지기 시작하여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좋은 향기가 주위에 감돌며 몸을 감싼다. 술자리가 끝나고 문득
홀로 술에서 깨어나면,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밤 하늘 한복판에는 둥근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고, 저 멀리 푸른 언덕을 바라보며 텅 빈 누각 안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현을 타거나 휘파람을 불면 주위는 더욱 고요해진다. 타다 남은 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한가닥 향연은 문이 친 발 근처를 맴돌고 있다. 이러한 정경은
더 한층 버리기 어렵다.
  향은 또한 악취를 막고, 습지에서 올라오는 고약한 기운을 쫓는데 도움이 되며,
적어도 사람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다. 가장 질이 좋은
향은 가남인데 이것은 좀처럼 구하기 힘들다. 산 속에 사는 사람 따위로는 도저히
손에 넣을 가망이 없다. 그 다음 가는 질이 좋은 향은 침향목, 일명 가라목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세 개의 등급이 있다. 1등품은 너무 냄새가 강렬하고 날카로와 코를
쿡 찌르는 지극이 너무 심한 결점이 있고, 3등품은 지나치게 메마른 데다가 연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한 냥으로 예닐곱 푼 정도 살 수 있는 2등품의 냄새가 가장
순하여 최우수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를 달인 뒤의 숯불을 향을 담는 그릇에 넣고 천천히 그것을 피울 수도 있다.
마음이 그지없이 흡족하고 흐뭇해졌을 때면 사람들은 이 속세를 떠나 날개가 돋혀
신선이 되어 훨훨 하늘로 올라가 선경에서 노니는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아,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요즘 사람들은 진짜 방향을 감상하는 힘이 없고 이상한
이국적인 향명만을 찾아서, 몇 가지 종류의 향을 마구 섞어서 헛되이 옛부터
내려오는 향과 겨루려 하고 있다. 침향목이 풍기는 향내야말로 진짜 자연의
향기이며, 그 좋은 것에서는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하고 그윽하며 깨끗한
향이 있음을 그들은 모른다.



    6. 술과 술좌석 놀이에 대하여

  나는 술을 잘못 마시기 때문에 술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격은 하나도 없다. 내
주량이라고 해야 쌀로 빚은 소홍주 석 잔 정도가 고작이고, 맥주도 겨우 한 잔에
완전히 취해 버린다.
  이것은 분명히 선천적인 문제로서 차를 즐겨 마시고,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성질은 아무래도 다같이 병행할 수는 없는 것인가 보다. 술을 잘 마시는 내 친구들
가운데 잎담배를 절반도 피우기 전에 벌써 머리가 핑 돌며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도
있고, 그와 반대로 나는 적어도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하루종일 쉴새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지만 이렇다 할 아무런 영향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일에 대해서는 영 형편이 없다. 이쨌든 이입 옹 자신은 차를
굉장히 즐기는 사람이지만, 자기가 술꾼인 체하는 태도를 남에게 보인 적은 한 번도
없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므로 술을 못하면 못한다고 정직하게 고백하는 경애할
만한 중국인들을 많이 발견하는 것은 나로서는 더없이 큰 기쁨이요 위안이다.
  나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그들의 편지와 그밖의 글에서 이러한 고백을 모아
보았다. 이입 옹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이밖에 원매, 왕어양, 원중랑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비록 술은 많이 못 마시지만 취하는 기분은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술을 이야기할 자격은 없지만, 이 제목을 무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술은
다른 무엇보다도 문학에 대하여 위대한 공헌을 하였고 담배를 피우는 풍습이 생긴
뒤로는 술과 담배는 양쪽이 서로 마주 대하게 되었다. 크게 인간의 창조력을 돕고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공적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는 쾌감, 더우기
중국 문학에서 언제나 보게 되는 이른바 (얼근히 취하는 미훈의 쾌감은 나에게
언제나 신비로운 것처럼 느껴졌는데, 상해의 어떤 미인이 얼근히 취한 상태에서
이른바 미훈(약간의 술냄새를 풍긴다는 뜻)의 공덕을 누누이 이야기한 것을 듣고서야
나도 비로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말하는 것이었다.
(얼근히 취한 상태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지요.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답니다)  얼근히 취했을 때는 누구나 의기양양해지고 어떠한 어려움도
정복할 수 있는 자신이 넘치게 되고, 감수성이 매우 예민해져서 나아가 현실과
공상과의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되는 창조적인 사고력은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인 듯하다. 또한 창조적인 심경에 도달하려면 매우 필요한
자신과 넓고 큰 마음이 생겨나는 것 같다. 이 자신에 넘친 기분과 단순한 규칙이나
기술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예술 부문에 종사하게 되면 매우 분명히
알 수 있다. 중국인은 차에 대해서 서양인에게 가르칠 수 있지만 술에 관해서는 그와
반대이다. 중국 구석구석 어디를 가나 소홍주, 소홍주, 오직 소홍주가 있을 뿐이다.
다른 종류의 술이란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술집에 들어가면, 어려
가지 모양의 술병이며 가지가지 레테르가 붙은 술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그만
어이없이 어리둥절해지고 만다. 물론 중국에도 소홍주 외에 예닐곱 가지의 술이
있기는 하다. 몇 가지 약용 포도주 외에 옥수수에서 짜낸 고량주도 있지만, 중국술의
리스트는 이내 바닥이 드러나고 만다.
  중국인 사이에서는 요리에 따라 다른 종류의 술을 내놓는다는 치밀한 접대 방법이
발달되지 않았다. 한편 소홍주의 보급은 굉장한 것이어서 그 이름이 생긴 소홍
지방에서는 딸을 낳게 되면 곧 술을 한 독 빚어 놓는다. 그리하여 그 딸이 시집갈
때는 20년 동안이나 묵은 오래된 술을 적어도 한 항아리는 폐백술로 반드시 가져갈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술의 본명인 (화조)는 그러한 데서 생긴 이름으로 단지
장식이 화려한 (꽃무늬)를 뜻하는 말이다.
  중국인은 술의 종류가 적은 결점을, 술마시기에 알맞은 때와 환경을 특히 시끄럽게
주장하는 것으로 보충하고 있다.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마음은 본질적으로는 옳은
생각이다. 술과 차의 다른 점은 이런 모양으로 표현되고 있다. (차는 세상을 버리고
숨어 사는 사람과 비슷하고, 술은 말에 올라탄 기사와도 같다. 술은 좋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차는 조용한 유덕자를 위해 있는 것이다) 어떤 중국의 작가는 술을
마시기에 알맞은 심경과 장소를 분류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거북하고 딱딱한 공식
석상에서 마시는 술은 천천히 한가하게 마음 놓고 마셔야 한다.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은 점잖게 낭만적으로 마셔야 한다. 병자는 적게 마셔야 하며, 마음에 슬픔이 있는
사람은 모름지기 정신없이 취하도록 마셔야 한다. 봄철에는 집뜰로 나가 마시고,
여름 술은 들로 나가서, 가을 술은 배 위에서, 겨울 술은 집 안에 들어 앉아서 마실
것이며, 밤 술은 달을 벗삼아 마셔야 한다)
  또 다른 작가는 이렇게도 말하고 있다. (술에 취하려면 알맞은 때와 장소가 있다.
꽃의 빛깔과 향기와 화합하려면 낮에 꽃을 바라보며 취해야 하며, 생각을 가다듬어
깨끗이 하려면 밤에 눈을 보면서 취해야 한다. 성공을 기뻐하며 취한 사람은 그
기분에 맞게 노래를 한 절 불러야 하며, 송별연에서 취한 사람은 기분에 곁들여 한
곡조 가락을 뜯어야 한다. 선비가 취했을 때는 창피를 당하지 않게끔 행동을 삼가야
하며, 무인이 취했을 때는 무용을 높이기 위해 많은 술을 가져오게 하여 더 많은
깃발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누각 위에서 술을 마실 때에는 시원한 바람의 덕을 보기
위해 여름철이 좋으며, 강 위에서 베푸는 잔치는 확 트인 자유로운 느낌을 더하기
위해 가을철이 좋다. 이것이야말로 술을 마시는 사람의 심경과 경치에 알맞은 음주의
옳은 방법인데, 이 법칙을 어기면 술을 마시는 즐거움은 사라질 뿐이다)
  중국인의 술에 대한 태도와 주연 중의 몸가짐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 비난
받아야 할 점도 있으나 또한 칭찬해야 할 점도 있다. 비난해야 할 점은 더 이상 마실
수 없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마시게 하고 좋아하는 습관이다. 유럽 사회에도 이런
습관이 있다거나 또는 일반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나는
일찌기 들어 본 적이 없다. 혼자서 마시는 경우나 여럿이 어울려 마시는 경우나
단순한 주량보다도 술이 지닌 신비로운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술꾼들이 지키는
정칙이다. 물론 술을 억지로 권한다는 것도 유쾌하고 흉허물 없는 친밀한 기분에서
나온 행동으로 그 때문에 술좌석이 떠들썩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소리가 일어나고 술좌석은 혼란해진다. 그것이 또한 한결 주홍을 돋구게
마련이다. 너나 할것 없이 제 정신을 잃고, 손님들은 큰소리로 술을 더 가져오라고
재촉을 하고 자리를 떠나기도 하고 바꿔 앉기도 하여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분간을 못하게 된다. 이러한 장면은 그냥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연은 대개 어느 편이 더 많이 술을 마실 수 있느냐 하는 술마시기 내기로
떨어지게 되기가 고작이어서, 사람들은 저마다 굉장한 주량 자랑과 간사한 지혜와
책략과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를 항복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서로 겨루게 된다.
누군가가 부정 행위를 감시하는 구실을 맡아서 상대편의 비밀 전술을 살피고
경계해야 한다. 여기서 느끼는 즐거움은 아마도 경쟁하는 정신 속에 있을 것이다.
  중국인이 술 마시는 데 있어서 칭찬할 만한 점도 그 요란스레 떠드는 점에 있다.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있으면 마치 축구 경기장에 가 있는 느낌이 든다.
그 많은 소리들이 도대체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축구 시합에서 일어나는 갈채와
함성과 같은 아름다운 리듬의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것은 분명
(알아맞히기 놀이의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적과 자기편이 동시에 몇
손가락씩 내밀고 적과 지기편의 손가락 수효의 합계를 큰소리로 맞추며 노는
놀음이다. (1. 2. 3. 4. ...) 등의 수는 모두 시적인 음절이 많은 말로 표현이 된다.
이를테면 (칠성)(북두칠성의 별자리)라든가, (팔준)이라든가, (팔선도해)니 하는
종류이다. 적이나 자기편이나 완전히 가락에 맞추어서 동시에 손가락을 내미는
동작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수를 나타내는 말은 자연히 일정한 음악적인 박자, 또는
소절을 취해야만 하게 되므로 그 가운데 여러가지 다른 음절을 압축해 버려야 한다.
숫자를 세는 소리가 끝나고, 다음 차례로 옮기는 사이에는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일정한 귀절이 들어가 그것이 또 다른 소절을 이루게 된다. 이리하여 어느 편이든
제대로 맞히게 될 때까지는 노래는 끊임없이 리드미컬하게 계속되게 마련인데, 이
게임에서 진 편은 미리 약속한 바에 따라서 큰 잔이건 작은 잔이건 철철 넘도록
가득히 부어서 두 잔이고 세 잔이고 단숨에 마셔야 하는 것이다. 손가락 수효를
맞히는 것은 아무렇게나 짐작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이 계속해서 같은 수를
내놓거나 어떤 순서로 수효를 바꾸는가 하는 버릇을 잘 알아내어야 하기 때문에
약간 머리를 재빠르게 활동시킬 필요가 있다. 이 놀이의 재미와 진행은 놀음에
참가한 사람들의 속도와 일관된 리듬에 달려 있다.
  여기서 우리는 주연의 개념의 핵심에 도달한 셈이다. 이것을 잘 이해함으로써
중국의 연회가 얼마 동안이나 게속되며 요리의 수효, 서어비스의 방법 따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인이 술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단지 마시고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차례차례 다른 음식이 들어오는 사이사이에 이야기도 나누고,
농담도 주고 받으며, 여러 가지 문학적인 수수께끼 풀이라든가, 시짓기 놀이를 하는
것이다.
  5분마다 또는 7분이나 10분마다 식탁 위에 놓여지는 한 접시의 요리에 좌중의
손님들은 한두 번 젖가락을 대기는 하지만 좌중은 오히려 요리 접시가 들어올 때마다
이야기 놀이를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식사법에는 두 가지의 효과가
있다. 첫째는 입씨름의 소란스러움에는 몸 안에서 알코올 성분을 발산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게 틀림없고, 둘째는 한 시간 이상이나 계속되는 연회가 끝나기까지는
먹은 음식의 어느 부분은 이미 소화되었기 때문에 먹으면 먹을수록 오히려 배가
고파지게 된다. 식사하는 동안 말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의 악덕이라 하겠다.
위생적이 아니기 때문에 부도덕한 것이다.
  중국인은 한편 라틴 민족적인 명랑함이 있는 유쾌한 국민이지만, 그런 사실에
지금까지도 의문을 품고 중국인은 무뚝뚝하게 침착하기만 하고 감정이 없는
인종이라는 선입감에 아직까지 사로잡혀 있는 중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 모름지기
중국인들이 먹고 마시고 할 때의 광경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때야말로 중국인이
타고난 본디의 성질을 마음껏 나타내고 있을 때이며 도덕적인 완성이 완전한 경지에
도달해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만일 중국인으로 태어나서 음식을 먹는 동안 유쾌하게
보낼 수 없다면 도대체 언제 즐길 수 있겠는가. 중국인의 주연이 두 시간쯤 금방
지나가고 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식사를 하는 목적은 단순히
마시거나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유쾌한 즐거움 속에 흠뻑 잠기어 마구 소리를
지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근히 취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술꾼이라고 하겠다. 현이 없는 악기를 켜면서 즐긴 시인 도연명과 같이, 애주가에게
있어서는 그 정서가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정서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글자는 한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시취를 알고, 기도 한마디 드릴 줄 몰라도 종교심이 있고, 한 방울의 술도 마실 수
없더라도 취한 정취를 알며 암석이 어떤 것인지는 전혀 몰라도 그림에 대한 정서를
가진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시인, 성자, 애주가, 화가와 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7. 음식과 약에 대하여

  집이라는 것을 넓은 뜻으로 해석하면 생활에 관련되는 온갖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넓은 관점에서 본 음식은 본디 우리에게 영양을 공급해 주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동물이므로 사람이라는
것은 먹어야 산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의 생명은 신의 무릎 위에서 지켜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숙수의 무릎 위에서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신사는 누구나 다 숙수를 소중히
여긴다.
  생활의 즐거움의 대부분이 요리의 취사 선택을 하는 숙수의 수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도 그러리라고 생각하는데, 중국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언제나
유모를 소중히 여기고 친절하게 대접하려고 애를 쓴다. 그것은 젖먹이의 건강이
오로지 유모의 기분이나 일반적인 생활 조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젖먹이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도 조심을
한다면 음식을 만들어 주는 숙수에 대해서도 유모에게 하는 것과 같은 친절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날씨가 좋은 날 아침 자리에 누워 마음을 가라앉히고 도대체 이
세상에서 정말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몇 가지나 있는가 하고 손꼽아 세어 보면, 반드시
맨먼저 손가락을 꼽아야 할 것은 음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있는가 어떤가를 알아 보는 것은 사람이 현명한가 어리석은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테스트라고 하겠다.
  현대의 도시 생활의 템포로는 굉장히 빨라져서 요리나 음식물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시간과 머리를 쓸 여가가 점점 적어져 왔다. 가정의 주부이며, 훌륭한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아내가, 남편에게 통조림 수우프니, 통조림 완두콩을 음식상에
내놓아도 남편 쪽에서 투덜거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이 먹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먹는다면 어딘지 좀 이상한 생활이다. 남에게 대하여 친절하고
너그럽도록 마음 쓰기 전에 우선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친절하고 너그러워야
한다.
  여성이 시정의 추한 꼴을 폭로하여 일반적인 사회 상태를 좀 개선했다 하더라도
두 개의 가스 버너를 동시에 틀어 10분 동안에 식사를 모두 끝내야 한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겠는가. 옛날에 공자는 음식 솜씨가 서툴다고 부인과 이혼했는데
이런 여자라면 당장에 공자로부터 이혼장을 받게 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공자 편에서 이혼할 것을 선언하였는지 부인 쪽에서 이 까다로운 인생 예술가의
주문을 피하기 위해서 집을 뛰쳐 나간 것인지, 그 사정은 별로 뚜렷하지 않다.
공자의 주문은 (쌀은 아주 희어야 하고 다진 고기는 매우 잘게 다져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부인이 (고기에 적당한 양념을 하지 않고 내놓았을 때)라든가,
(반듯반듯하게 고기를 썰지 않았을 때)라든가 (고기의 빛깔이 좋지 않을 때)에는
공자는 젓가락을 아예 대지도 않았다 한다.
  이렇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부인은 참고 견딘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날 신선한
음식이동이 나서 아들인 이를 근처 식료품점에 보내어 술과 언 고기를 사 오게 하여
그것으로 임시 변통을 하려고 하자, 공자는 (나는 집에서 만든 술이 아니면 안
마신다. 가게에서 사온 고기는 먹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부인으로서도 이쯤 되고
보면 짐을 싸들고 도망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는겠는가. 이 공자 부인의
심리는 나의 짐작에 불과한 것이지만, 공자가 불쌍한 아내에게 대한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조건은 고전에도 남아 있다.
  중국인은 음식을 통틀어 영양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음식물과 약을 전혀
구별짓고 있지 않다. 몸에 이로운 것은 약이며 동시에 음식이라는 생각이다. 현대
과학이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음식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인정하게 된
것은 겨우 전세기에 들어온 일이지만, 오늘날에는 다행히 모든 현대식 설비를 갖춘
병원에는 전문가인 식이요법가를 으례 고용하고 있다. 오늘날의 의사들이 한걸음
더 나가서 식이요법가를 중국을 보내어 수업시킨다면 약병의 필요성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옛날 의학자인 손사막(16세기에 생존했던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참다운 의사는 우선 병의 원인을 찾아낸다. 병의 원인을 알게 되면
처음에는 먼저 식이요법으로 치료하려고 하는 법이다. 식이요법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약의 처방을 쓰게 된다)  원 나라의 궁정에서 일한 어느 국수가 1330년에
쓴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중국에 현재 남아 있는 책 가운데서 음식물을 논한 가장
오래된 책이며, 음식물은 본디 양생의 문제라고 하여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주의를
하고 있다.
  스스로의 건강에 유의하는 사람은 음식물을 절도 있게 먹고, 근심거리를 없애고,
욕망을 줄이고, 감정을 누르고, 체력을 헛되이 소모하지 않도록 마음을 쓰고, 말을
적게 하고, 성패를 가벼이 여기며, 슬픔과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알고, 어리석은
야망을 버리며, 좋고 나쁜 생각을 피하고, 시력과 청각을 진정시키며, 내장의 섭생에
충실해야 한다. 정신을 많이 쓰고, 영혼을 괴롭히는 일이 없다면 어찌 병에 걸릴
까닭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심신을 기르려고 하는 사람은 배고픔을 느꼈을 때만 먹고
결코 배가 부르도록 먹어서는 안 된다. 또한 목마름을 느꼈을 때만 마시고, 더우기
배부른 상태가 되도록 마셔서는 안된다. 오랜 사이를 두고 조금씩 먹어야 하며, 너무
많은 분량을 쉴새없이 먹어서는 안된다. 배가 불렀을 때에도 약간 배고픔을 느끼고
배고플 때에 약간 배부름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배부르게 먹는 것은 폐를 상하게
하고 배고픔은 정력의 활동을 해치는 일이다.

  이렇게 때문에 중국의 모든 요리서와 마찬가지로 이 요리서도 마치 약국의 처방과
같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중국인이 적당하게 약과 음식을 혼동하고 있는 데 대해 축하의
뜻을 표시해야만 한다. 이런 혼동이 있기 때문에 중국의 약은 더욱 약다와지는 반면,
중국의 음식은 한층 더 음식다와진 것이다. 중국의 원 시대에 이미 포식의 신이
나타났다는 것에는 상징적인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타오치라는 이름의
신으로, 옛날 사람들이 즐겨 청동이나 석조의 모티프로 썼던 흔적이 오늘날 발견되고
있다. 이 타오치의 영혼이 우리 중국인의 마음 속에는 저마다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중국 약전을 요리책과 비슷한 것으로 만들었고, 중국의 요리책을
약전 비슷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또한 자연 과학의 일부분으로서의 식물학이나
동물학이 중국에서 발달하지 못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의 과학자들은 뱀이나
원숭이나 악어의 고기나 낙타의 혹이 어떤 맛일까 하는 생각을 언제나 하고 있다.
참된 과학적인 호기심은 중국에서는 식도락으로서의 호기심이다.
  어떤 야만족이나 한결같이 의약과 마법을 혼동하고 있으며, 노장의 무리들은
(양생)과 불로불사, 또는 오래 사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중심적 목적으로 삼고
있었으며, 이러한 점으로 생각해 볼 때 음식과 약은 흔히 그들 사이에서는 혼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예로 든 원조의 궁정 요리서였던 (음선정요)에는 오래
사는 방법과 병을 앓지 않고 재앙을 당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말한 몇 장이 있다.
노장 철학을 연구한 무리들은 열정적으로 자연에 귀의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야채성 음식과 과일의 효과를 역설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슬을 마시고 자라나는
델리킷한 풍미를 간직한 신선한 연밥을 먹는 것을 학자들은 가장 고상하고 운치있는
기쁨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시와 노장파적인 탈속감에 결부되어 있는
것같이 여겨진다. 가능하다면 이슬 그 자체를 마시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종류에
속하는 것으로 잣, 쇠귀나물, 칡뿌리 등이 있으며, 이것들은 모두 신기를 맑고
힘있게 해 주기 때문에 모두 장수의 효력을 지녔다고 한다. 연밥을 먹으면 색욕과
같은 인간적인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것보다도 좀더 약다운 것으로 연명
장수에 뛰어난 효과가 있고 어느 때 식사의 일부로 쓰여지는 것으로는 천문동, 지황,
고려 인삼, 창출, 자운영, 여뀌 등 그 밖에도 많이 있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들지
않기로 한다.
  중국의 약전은 유럽의 과학자들에게 광대한 연구 분야를 제공하고 있다. 간장에
조혈의 효능이 있다는 사실을 서양 의학이 발견한 것은 고작 지난 10년 이내의
일이지만 중국인은 옛날부터 간장을 노인에게 소중한 강장제라고 생각하여 왔다.
서양의 도살 업자가 돼지를 죽이면 신장, 위장, 장(그 안에는 위액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피, 골수, 뇌 등 가장 많은 영양 가치를 지닌 부문을 모두 버리고 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뼈는 인간의 피의 적혈구를 만드는 장소라는
것이 요즘에 와서 겨우 발견되어 가는 과정에 놓여 있다. 양 뼈, 돼지 뼈, 쇠 뼈
등을 훌륭한 수우프로 만들지 않고 버리고 만다는 것은 놀랄 만한 식품 가치의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는 바로는 음식에서 미미, 진미를 구하는 음식 철학은 결국 다음의 세 가지
점으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즉 신선함과 풍미, 이와 혀끝에 닿는
감촉이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명요리사라 할지라도 요리해야 할 신선한 재료가
없다면 쪼글쪼글한 캐비지 요리 한 접시도 만들 수 없을 것이며, 사실 요리법의
명인은 이르기를 훌륭한 요리를 만들려면 그 절반은 재료 사들이기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17세기의 위대한 쾌락주의자이며 시인이었던 원매가 고용했던 요리사는, 요리를
만들라고 주인이 말해도 구하는 재료가 한창 제철이 아닌 경우에는 절대로 만들지
않는 사나이였는데 원매를 그를 위대한 권위를 가진 사나이라고 칭찬하는 말을
썼다. 이 요리사는 매우 성급한 성질의 소유자였으나, 주인이 음식의 풍미를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랫 동안 계속해서 일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어떤
특별한 연회의 요리사로서 정중한 태도로 부탁하지 않으면 절대로 오지 않는 예순이
넘은 늙은 요리사가 지금도 사천성에서 살고 있다. 더우기 재료를 사 모으는 데
1주일 동안의 여유를 주고 절대로 자유럽스럽게 자기 생각대로 해야 하며, 메뉴의
결정도 일체 맡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연하다든가 쫄깃쫄깃하다든가, 꼬들꼬들하다든가, 입에 닿는 감촉이 아주 좋다든가
하는 음식을 씹는 감촉은 대부분 얼마 동안 불에 올려 놓느냐, 화력을 어느 정도로
조절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중국 음식점에서는 가정에서는 만들 수 없는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은 훌륭한 화덕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풍미에 대해서 말한다면 음식에는 분명히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소금이나 간장 외의 양념은 넣지 않고 음식의 재료 자체에서 나오는 국물로 요리를
하면 가장 맛있는 것이 첫째 경우이고, 다른 음식의 맛과 합하게 하는 것을 최상의
방법으로 하는 음식이 두 번째 경우이다.
  생선의 경우를 말한다면 신선한 등어나 송어를 가장 맛있게 먹으려면 물고기에서
저절로 나오는 국물로 요리를 해야 하며, 청어와 같은 기름진 생선은 소금에 절인
중국산 완두콩과 함께 요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요리 방법은 없다.
  옥수수와 콩을 함께 익힌 미국의 서커테시 요리 같은 것은 완전히 맛이 조화된
요리의 좋은 예라고 하겠다. 자연계의 어떤 종류의 맛은 서로 다른 음식의 맛과
함께 섞었을 때 비로소 가장 훌륭한 맛이 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죽순과
돼지고기는 아주 좋은 한쌍인 모양이어서 서로 상대편의 냄새를 빌어 오고 자기의
냄새를 빌려 주게 되어 있다. 햄은 단것과 잘 조화가 되는 모양이어서 내가 상해에
있을 때 부리던 요리사는 햄과 품질이 좋은 황금빛 북경 대추를 함께 찜통에 넣고
쪄서 만드는 요리를 아주 잘하는 것이 자랑이었다. 검은 목이버섯과 오리알도
수우프로 만들면 잘 어울렸고 뉴우요오크의 새우는 소금에 절인 중국의 비거(두부
소오스)와 잘 맞았다.
  사실 자기가 지닌 맛을 다른 음식에 빌려 주는 것을 주요한 구실로 삼고 있는
식품은 상당히 많다. 버섯, 죽순, 사천성의 잡채 따위가 그것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가장 진귀하게 여기는 음식물로서 제 자신의 맛은 없고 전혀 다른
식품에서 맛을 빌어서 만들어지는 음식도 상당히 많다.
  중국 요리 가운데 가장 값비싼 것으로 빠져서는 안되는 세 가지 특징은 빛이 없고,
냄새가 나지 않으며, 이렇다 할 뚜렷한 맛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식품은 상어 지느러미, 제비 둥우리, 은이버섯을 들 수 있는데, 이 세
가지는 하나 같이 걸쭉한 교상이며 무색, 무취, 무미다. 이러한 것들이 어째서
굉장히 맛이 좋은가 하면 언제나 가장 값비싼 수우프를 만드는 데만 쓰이기
때문이다.



    8. 양복의 비인간성

  양복은 현대적인 터어키인, 이집트인, 인도인, 일본인, 중국인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고, 전세계의 외교관의 공식적인 옷차림으로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구식 중국옷에 집착을 가지고 있다. 많은 친구들이 어째서
양복을 입지 않고 중국옷으로만 지내고 있느냐고 곧잘 묻는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기들을 내 친구라고 말하고 있으니 정말 어이가 없다! 그러한 질문을 하려면
차라리 어째서 자네는 두 다리로 서 있는가 하고 묻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부터 그 까닭을 설명할 생각이지만 이 두 가지는 우연한 상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내가 세계에서 오직 하나인 (인간적)인 옷을 입고 있는 이유를 왜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태어난 나라의 옷을 입고 파자마와 슬리퍼로 지금 이렇게 집
안팎을 돌아다니고 있는 인간이, 숨막힐 듯한 칼라, 조끼, 혁대, 멜빵, 양말대님
등의 일습 속에 꼼짝도 못하게 갇히고 마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수한 포함이나 디젤 엔진을 연상한다는 사실 외에
양복의 명성은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양복은 심미적, 도덕적, 위생적,
또는 경제적인 논거에서 옹호할 수는 없다. 그 우월성은 순전히 정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옷과 양복과의 배후에 있는 철학의 다른 점은 양복이 인간의 형태를
나타내려고 하는 데 반하여 중국옷은 그것을 숨기려고 하는 점에 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본디 원숭이를 닮았기 때문에 보통 경우는 그다지 드러내 놓지 않을수록
좋은 셈이다. 그러기에 헝겊 하나만을 걸치고 있는 간디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양복을 입고 견디어낼 수 있는 것은 미적 감각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뿐이다. 완전한 인간의 자태란 좀처럼 없다고는 누구나가 하는 말이다.
만약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누구라도 좋으니 코니아일랜드(뉴우요오크
항구의 피서지)에라도 가서 참된 인간의 자태란 어떤 것인가를 잘 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양복은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의 허리 둘레가 32인치인지
38인치인지 알아 맞힐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인간은 내 허리 둘레는
32인치입니다 하고 세상에 대고 왜 공언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우연히
정상을 벗어난 일일지라도 왜 본인은 그것을 사사로운 일로 덮어둘 권리가 없는
것일까.
  양복은 20세부터 40세까지의 젊은 여성의 아름다운 모습과 자연적인 육체적 리듬이
아직 문명적 생활 형태에 지배받지 않은 모든 어린이들에게는 적당하다고 내가 믿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남녀에 대하여 공중 앞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라고 요구하는 것과는 자연히 이야기가 다르다.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점잖은
부인은 동양의 재봉사 따위는 도저히 꿈도 꾸어 보지 못한 기막힌 매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한편 영양 과다와 수면 과잉으로 보이는 40대의 귀부인들이 오페라 공연의
첫날에 금빛 찬란한 복스에 파묻혀 앉아 있는 꼴을 보는 수가 많은데 이것 또한
서양이 발명해 낸 눈에 거슬리는 것 중의 하나이다. 중국옷은 이러한 양복보다 눈에
거슬리는 점이 적다. 중국옷은 죽음처럼 크고 작음과 아름다움과 추함을 모조리
한결같이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중국옷은 양복보다 민주주의적이다.
  심미적 고찰은 이 정도로 하고, 이번에는 위생과 상식면에서 본 반대 이유를
말하련다. 적어도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교황청 추기관인 리슐리외나 월터
로올리 경 시대의 유물인 칼라가 건강상 좋은 것이라고는 설마 말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서양에서는 다소라도 분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거듭 칼라에
대해 반대해 왔다. 서양 여성의 옷은 목둘레에 관해서는 이전에는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해방의 쾌감을 이제는 충분히 획득하고 있는 셈이지만 이와는 반대로 남성의
목은 아주 보기 흉하고 부도덕하고 공공연히 남의 앞에 내놓지 못할 물건이므로,
허리 둘레만큼은 남의 눈에 띄게 해야겠지만 목만큼은 감춰 두어야만 한다고 아직
서양의 유식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악마적 견해의 결과 여름에는 적당한
통풍이 없고 겨울에는 적절한 방한법도 마련할 수가 없어, 4계절을 통해서 올바르게
사물을 생각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칼라에서부터 그 아래쪽은 인간의 상식을 사정없이 짓밟아 온 한 편의 애사다.
네온사인과 디젤엔진을 발명할 만큼 현명한 서양인에게는, 현대인의 체내에서
자유로운 부분은 오직 머리만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칠 만큼의 상식도 없다. 살에
딱 들러붙어 자유로운 통풍을 방해하는 내의라든가, 상체를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없게 하는 조끼라든가, 영양 상태가 다르면 거기에 따라 으례 서로 달라야 할
터인데, 그러한 것을 일체 인정하지 않는 멜빵이니 허리띠니 일일이 다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조끼라는 물건이다. 나체의
자연적인 자세를 연구한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완전히 똑바로 선 자세가 아니면
인체의 등의 선과 전면의 가슴의 선의 길이가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뻣뻣한 앞단이 붙은 와이샤스를 입어 본적이 있는 사람은 몸을 앞으로 굽힐
때마다 단단한 앞단이 앞으로 툭 튀어나오는 것을 경험에서 알고 있다. 그러나
조끼는 이 두 면의 길이가 언제나 같다는 가정을 기초로 하여 디자인된 것이기
때문에 조끼를 입은 사람은 하는 수 없이 완전히 똑바로 선 자세를 취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도 그렇게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조끼의 아래쪽이 튀어나오거나 주름살이 잡히거나
하여 몸을 압박하게 된다. 비만증의 사나이의 경우에는 조끼의 아래쪽은 반드시
일그러진 선을 그리며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다. 그 틈새로 바지와 허리띠의 안쪽의
둥그런 선이 삐져 나오게 된다. 적어도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서 이 이상
그로데스크한 것이 또 있을 수 있겠는가. 저 나체주의 운동이 인간의 몸을 이렇듯
그로데스크하게 싸버린 것에 대한 항의 반동으로서 발생하였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인류가 지금도 아직 네발짐승의 단계에 있다고 한다면 허리띠에도 다소의
존재 이유는 있다고 하겠다. 즉 말에 안장띠를 매는 식으로 졸라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벌써 두 다리로 똑바로 서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데도 허리띠는
인류가 지금도 여전히 네발짐승이라는 가정하에서 만들어져 있다. 해부해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복근이라는 것은 모든 체중을 등뼈로 지탱하는 네발짐승에
알맞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두 다리로 똑바로 서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그 비참한 결과로서 인간의 어머니는 동물에는 없는 유산이나 조산의 재앙을
짊어지게 되었고, 남자의 허리띠는 중력으로 해서 자꾸만 흘러내리는 경향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흘러내리지 않도록 힘껏 단단히 허리띠를
졸라매는 길밖에는 없겠는데 그렇게 하면 창자의 모든 자연적인 운동을 저해하게
되는 결과가 되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야 한다.
  서양인이 비이기적인 방면에서 앞으로 한층 더 진보했을 때, 언젠가는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한층 더 시간을 짜내게 되고 또 옷차림의 문제에 대해서도 좀더
상식을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서양 여성은 일찌기 부인복의
간소화의 상식을 얻었는데 반하여 남자는 옷차림 문제에 관하여 보수주의에 빠져
혁신을 두려워한 벌로서 지금 막대한 벌금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삼 십 년 후의
일이 아니라, 몇 세기나 먼 장래의 일을 생각한다면 서양 남성들도 부인복이
본보기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결국에 두 다리로 똑바로 서기에 알맞는 합리적인 옷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허리띠나 멜빵과 같은 귀찮은 물건도 차츰
없어지게 되어 몸에 꼭 들어 맞는 우아한 모양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어깨에서 흘러
내린 듯한 옷을 연구해 낼 것이다. 속에 솜을 넣은 어깨라든가 뒤로 꺾어 넘긴
옷깃이라든가 하는 그러한 쓸데없는 것은 없어지고 오늘날의 디자인과 전혀 다른
실내복의 자켓 따위와 비슷한 매우 상쾌한 모양의 옷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내가
보는 바로는 장래의 남자옷과 부인복의 커다란 차이는 다만 남자는 바지를 입는 데
반하여, 여자는 스커트를 입는다는 것뿐으로 되어 버릴 것이다. 상반신에 관한 한
오로지 입기 편하고 입어서 상쾌해지도록 근본적인 고려를 하게 될  것이다.  여자의 
목처럼 남자의 목도 해방되고, 그에 따라 조끼도 없어지고, 마치 오늘날의 부인들의
코우트처럼 자켓이 사용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부인들이 코우트 없이
지내고 있는 것처럼 대개는 자켓 없이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샤쓰에 관한 오늘날의 사고 방식의 혁명을 의미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부터 샤쓰는 안에 입는 것이 아니라 빛깔이 진한 천으로 겉에 입는 것이 될
것이다. 재료는 계절에 따라 가장 가벼운 비단으로부터 가장 무거운 양모에
이르기까지 사용하지만, 되도록 보기 좋기 재단될 것이다. 그리고 입고 싶을 때
언제나 그 위에 자켓만을 걸친다. 그러나 이 샤쓰 하나만을 걸친다는 장래의
옷차림이 어떠한 자리에 나가도 실례가 될 리는 없을 테니까, 자켓을 입고 안 입고의
예의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날씨를 고려해서 정하면 된다. 견디기 어려운 허리띠나
멜빵을 없애 버리기 위해서는 샤쓰와 바지가 함께 붙은 일종의 컴비네이션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여성 드레스처럼 머리에서 뒤집어 써서 입도록
되어 있으며 모양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해 체제상으로나 실제상으로도 허리 둘레를
적당히 늘이거나 줄이거나 한다.
  허리띠나 멜빵의 폐지안은 현재 식의 양복을 입은 채 이제라도 금새 실행할 수
있다. 전체를 규제하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옷의 중량을 평균적으로 분산시켜
어깨에 매달리게 하는데 다만 밀착과 마찰과 압력만으로 하복부의 수직면에 졸라맬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남자의 허리를 병 모가지 역할에서 해방하여 헐렁한 내의 한
벌을 실현하게 해야 할 것이다. 조끼가 없어지는 진보의 도정에 오를 경우 남자는
오늘날의 아이들의 옷차림 샤쓰와 바지를 단추로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얼마 뒤
속옷이었던 샤쓰가 겉에 입는 옷이 되는 시대에는 샤쓰는 지금보다 더 좋은 감으로
만들어지고, 어쩌면 바지와 같은 색으로 동질의 천, 또는 조끼를 양복에 필요한
부분으로 그대로 남겨 두는 방향으로 개혁해 간다면 현재의 형을 그대로 남긴 채
조끼와 바지를 한 가지 천으로 만든 컴비네이션으로 만들어 조끼의 등은 간단히
두 개의 대각선의 끈으로 해버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바지의 단추가 걸리는 단추
구멍을 낸 여섯 개의 작은 부가물 앞에 넷, 뒤에 둘, 이러한 식으로 조끼 안쪽에
붙여두기만 하면 현재라도 허리띠나 멜빵을 폐지하는 것은 문제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조끼는 바지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오늘날 입고
있는 조끼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일단 양복을 개혁하기 시작하여 오늘날의 양복의
재단이 우주와 더불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남성이 깨닫게 된다면
이 컴비네이션 옷을 오우버롤(내리닫이로 된 노동복)보다 보기 좋게 만들어(단
원칙은 어디까지나 다를 것이 없다) 조끼 그 자체를 서서히 바꾸고 고쳐서 드디어는
폐지할 수 있을 것이다.



    9. 집과 실내장식에 대하여

  (집)이라는 말은 모든 생활조건, 즉 가옥의 물질적인 환경 전부를 포함해야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집을 고르는 데는 집의 내부가 어떤가 하는
것보다는 집안에서 바깥을 내다본 전망이 어떠냐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집이 시골에 있다는 것과 그 주위의 경치가 중요하다. 자기가 소유하는 손바닥만한
땅을 굉장히 자랑하고 있는 상해의 부자들을 전에 나는 만나본 일이 있다. 그 땅
안에는 지름이 10피이트쯤 되는 연못이며, 개미가 그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3분쯤
밖에 걸릴 것 같지 않은 동산이 있는데, 그들은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산기슭
오두막에 살면서 산과 개울과 호수를 자기네 정원으로 삼고 있는 것을 모른다.
양자를 비교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산 속에 세워진
집들이 있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손바닥만한 땅을 자기의 소유지로 만들어 담을 둘러
치거나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집에서 나와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산마루에 걸려
있는 흰 구름이며, 하늘을 나는 새, 폭포수, 새들의 노랫소리가 한데 어울려
이루어지는 자연의 교향악, 눈앞에 널리 펼쳐지는 모든 경치는 다 자기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도시에 살고 있는 어떤 백만장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진짜 부자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하늘을 나는 구름은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구름을 바라보는 일은 좀처럼 없다. 어쩌다가 구름을 바라보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름은 푸른 산의 윤곽과 대조를 이루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구름을 바라보는 진짜 묘미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배경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그러기에 중국인이 지니고 있는 집과 정원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은 마치 아름다운
함 속에 들어 있는 보석과도 같이 집 그 자체는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전원의 한
부분이며 게다가 조화를 이루는 한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근본 관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이 간 모든 흔적은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하여
벽의 직선은 그 위에 드리워진 나뭇가지로 가리거나 중단하거나 해야 한다. 거대한
벽돌처럼 네모 반듯한 집은 공장의 건물이라면 또 수긍이 간다. 능률을 첫째
목적으로 삼는 것이 공장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히 네모 반듯한 주택이라는
것은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중국인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집은 어떤 문인의 다음 글로 충분히 표현되고 있다.

  대문 안에는 작은 길이 있다. 이 길은 구불구불해야 한다. 작은 길이 구부러지는
모퉁이에는 옥외용 울타리가 있다. 이 울타리는 아주 작아야 한다. 울타리 뒤에는
대지가 있다. 대지는 평평하여야 한다. 대지 양쪽의 조금 높은 곳에는 꽃이 피어
있다. 이 꽃들은 언제나 싱싱해야 한다. 꽃 너머에는 담장이 있다. 담장은 낮아야
한다. 담장 옆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이 소나무는 반드시 노송이어야 한다.
소나무 밑둥에는 몇 개의 바위가 놓여 있다. 바위는 반드시 기암의 운치가 있어야
한다. 바위 너머에 정자가 있다. 정자는 간소한 느낌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정자
뒤에는 대나무가 드문드문 있어야 한다. 대밭이 끝나는 곳에 집이 있어야 한다.
집 곁에는 길이 있다. 길은 갈라져 있어야 한다. 몇 갈래의 길이 합치는 곳에 다리가
있다. 다리는 손님들이 건너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매력이 있어야 한다.
다릿목에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 나무들은 키가 커야 한다. 나무 그늘에는 풀이
있고 그 풀은 푸르고 싱싱해야 한다. 풀밭 위쪽에 도랑이 있다. 그 도랑은 그 폭이
좁아야 한다. 도랑 끝에는 샘이 있다. 샘물은 퐁퐁 솟아나와야 한다. 샘 위에는
산이 있다.
  산에는 깊은 산 속과 같은 아취가 있어야 한다. 산기슭에 서원이 있다. 서원은
네모 반듯해야 한다. 서원 모퉁이에 채소밭이 있다. 채소밭은 아주 넓어야 한다.
채소밭에는 황새가 한 마리 있다. 황새는 춤추듯이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황새가
손님이 왔음을 알린다. 손님은 야비하게 굴어서는 안된다. 손님이 오면 술상이
나온다. 술은 절대로 거절해서 안 된다. 잔을 거듭하는 동안에 취기가 돈다. 취객은
자기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집의 매력은 그 집이 지니고 있는 개성에 달려 있다. 이입 옹은 그의 저서인
(한정우기) 속에서 집과 집안의 실내 장식에 대해 몇 장을 쓰고 있는데 그
머리말에서 친밀감과 개성이라는 두 점을 역설하고 있다. 나는 친밀감보다는 개성을
느낄 수 있는 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크고 여봐란 듯이
잘 꾸민 집이라 할지라도 주인이 기분 좋게 거처할 수 있는 특별실이 반드시 하나는
있어야 되며, 그 방은 대개 어김없이 좁고, 이렇다 할 꾸밈도 없고 난잡하게
흐트러져 있어 친밀감과 따뜻함이 있는 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입 옹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은 옷을 입지 않고는 나다니지 못하는 것처럼 집이 없이는 살 수 없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 옷이 지닌 본뜻이지만 그것은
집에도 그대로 들어 맞는다. 지름이 몇자씩이나 되는 굵은 대들보를 건네고, 높이가
이삼 십 척이나 되는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면 아주 위풍이 당당하지만, 본디 그러한
집은 여름철에는 좋지만 겨울철을 지내기에는 알맞지 않다. 관원이 사는 저택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누구나 몸서리를 치는 것은 공간이 너무나 넓기 때문이다. 마치 너무
커서 허리둘레에 딱 들러 붙지 않는 털외투를 입은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한편
낮은 벽을 둘러치고 겨우 무릎을 하나 들여 놓았을 만한 가난한 사람의 집은 검소한
생활의 미덕이 나타나 있어 집 주인은 그래도 좋겠지만 손님을 대접하기에는 알맞지
않다. 가난한 선비가 거처하는 오두막집에 들어갔을 때 왜 그런지 모르게 거북하고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 하겠다. 관원의 저택은 너무 높거나
으리으리하지 않는 게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집과 그 안에 사는 사람은 반드시
서로 조화가 조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그림을 그릴 때의 요령으로
풍경화에 그리는 집은 10척의 산을 그리면 나무는 1척이고 1촌의 말에 콩알 만한
인물을 그려야 서로 조화가 잡힌다는 공식이 있다.
  10척 산 위에 이삼 척이나 되는 나무를 그리고, 1촌 높이로 그린 말안장이나
쌀알이나 좁쌀 만한 인물을 그리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 일이다. 관원의 키가
9척이나 10척 쯤 된다면 이삼 십 척 높이의 저택에 사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건물이 높을수록 집안에 사는 사람은 키가 적어 보이고, 집이 넓을수록
몸집이 초라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저택을 조금 작게 하고 몸을 좀더 살찌게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이입 옹이 그의 저서에서 자세히 설명한 가옥의 설계와 실내 장식에 대한 요점을
다음에 소개하기로 한다. 그가 다루고 있는 제목은 지붕이 있는 집, 창문, 간막이,
등잔, 탁자, 의자, 골동품, 장식장, 침대, 여행가방 등에 걸쳐 있다. 드물게 보는
독창적인 발명가여서 어떤 제목에 대해서도 반드시 참신한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가 발명한 것 가운데 몇 가지는 이미 오늘날의 중국 전통의 일부가 되어 있다.
  물론 그가 끼친 가장 현저한 공헌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개자원전)으로서
시장에 나온, 그가 고안한 서간전과 창문과 간막이의 새로운 안을 들 수 있다.
생활술에 관한 그의 저서는 아직 그다지 유명해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름은 오늘날
가장 널리 쓰여지고 있는 초보자용인 죽국화의 교본 (개자원화전)과 연결되며, 또한
그의 저서인 (십종목)을 통하여 언제나 기억되고 있다. 그는 실로 극작가, 음악가,
쾌락주의자, 의복 디자이너, 미용 전문가, 아마튜어 발명가 등을 한몸에 겸한 보기
드문 인재였었다.
  그는 침대에 대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그는 새 집으로 이사할
때마다 언제나 맨 먼저 찾아내어 자세히 조사해 보는 것은 침대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의 침대는 옛날부터 커어튼과 테두리간을 막는 커다란 장식장과 같은 것으로서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작은 방을 이루고 있는 그런 설비였다. 주위에는 기둥이 있어서
책, 찻병, 구두, 양말 같은 것을 올려 놓거나 넣거나 하는 선반과 서랍이 기둥
주위에 달려 있다.
  그는 침대에도 꽃병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방법은
폭이 한 자 이상, 높이는 고작해야 두세 치 밖에 되지 않는 얄팍한 나무 선반을
만들어 그것을 수를 놓은 커어튼 앞에 장치하는 일이다.
  그의 의견에 의하면 이 나무선반은 뜬 구름과 비슷한 느낌을 주도록 약간 주름을
잡아서 수를 놓은 비단천으로 둘러싸야만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무슨 꽃이든지 그 계절에 피는 꽃을 놓는 것인데, 때로는
(용뇌향)을 피우는 것도 좋을 것이고, 향내가 좋은 불수감이나 마르멜로 열매를 놓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는 여기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몸은 이미 사람의 몸은 아니다. 꽃 사이에서 춤을 추고, 꽃 속에서 잠을 자며,
꽃 속의 꿀을 빠는 나비인 것이다. 이미 사람이 아니라 낙원 속을 천천히 거닐며 그
곳에서 자고 깨는 신선인 것이다. 나는 일찌기 자면서 비몽사몽간에 매화꽃 향내를
맡은 적이 있다. 무어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그 달콤한 향내는 마치 내 몸 안에서
나오는 것처럼 목과 이와 뺨에도 스며들었다. 날아갈 듯이 가벼워 마치 몸이 세상에
살고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잠이 깬 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이런 행복을 즐기고 있는 우리는 도대체 어떠한 사람이겠소. 이런 즐거운 생각만을
하고 있으니, 본디 하늘이 준 다른 즐거움을 죽여 버리고 말게 되지나 않겠소?)
그러자 아내는 대답한다. (우리가 언제나 가난하여 출세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겠지요. 당신의 말씀이 옳아요)

  이입 옹이 이룩한 공적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창문에 대한 고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호방식 부채 모양의 창과 (매화창)을 고안해 낸 것이었다.
  유람선 옆에 부채꼴 모양의 창을 낸다는 생각은 부채에 그림이나 글을 쓰기도
하고, 부채에 그린 그림을 모아서 앨범을 만들기도 하는 중국인의 습관과 관계가
있다. 그러니까 이입 옹의 생각은 부채꼴로 된 창문을 액판으로 하여 배 옆에 달아
두면 배 안에서 기슭의 경치를 바라보는 사람도, 강둑 위를 거닐면서 배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연이나 다회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도 중국 부채에 그려진 그림과
같은 경치를 바라볼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눈은 영혼의 (창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본디, 창문이 지닌 뜻은 그곳에서 경치를
바라보자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문은 가장 좋은 경치를 바라볼 수 있도록,
또 가장 편리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것은 이입 옹도 말하고 있듯이 바깥 경치에서 자연의 요소를 따다가 실내
장식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탁자나 의자나 장식장 등에 대해서도 그 수많은 새로운 고안을 해냈다. 여기서는
다만 겨울에 쓰는 보온 의자, 즉 따뜻한 의자의 발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이것은 방안이 적당히 따뜻하지 않을 경우에는 매우 편리하고 유익한 발명이라
하겠다. 보온된 긴의자라는 것은 나무로 만든 긴의자에 높은 목제받침을 장치한
것으로 그 받침대는 높이가 두 세자, 주위에는 낮은 탁자 정도 높이의 똑바른
널빤지가 붙어 있다. 긴의자의 양쪽에도 두 장의 널빤지로 된 문이 달려 있어서
사람이 의자에 걸터 앉으면 그 문을 닫게 되어 있다. 이 널빤지로 만든 문은
받침대의 주위에 둘러쳐진 똑바른 널빤지와 함께 완전히 조립식 탁자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리하여 긴의자에 걸터 앉은 사람은 책상 후면에 둘러 싸이고 만다.
받침대에는 뜨거운 재와 연기가 나지 않는 잘핀 숯불을 넣는 서랍이 달려 있다.
긴의자는 걸터 앉아서 일을 하거나 피곤할 때는 옆으로 누울 수도 있게 되어 있다.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 나무랄 데 없는 이 일터를 유지하는 비용은 하루에 불과 네
덩어리의 숯(아침에 두 덩어리, 오후에 두 덩어리 넣는다) 이상 더 필요가 없다고
그는 잘라 말하고 있다. 또한 여행할 때에는 두 개의 튼튼한 대나무 장대를 양쪽에
매어 고정시키면 이 긴의자는 보통 가마와 같이 쓸 수 있다는 것도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다리를 차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가지고 가는 음식이건
술이건 언제나 따뜻하게 해 둘 수 있다는 이익까지 있는 셈이다.
  그는 또한 여름철에 쓸 수 있는 것으로는 서양식 욕조와 비슷한 벤치를 생각해
내고 있다.
  이것은 특별히 도기로 만든 욕조르 맞춰 벤치 안에 장치한 것으로 의자 등받이까지
으르는 욕조에 물을 가득히 채워 자리를 차게 하려는 생각이다. 따뜻한 의자를
난의라고 하는데 반해서 이것은 양궤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회전할 수도 있고 접을 수도 있고 그 높이를 조절할 수도 있고
역전시킬 수도 있고 새 부분품과 같아 낄 수도 있는 침대니 소파니 이발용 의자 등을
발명했으나 어찌된 셈인지 떼어낼 수 있는 조립식 테이블이나 골동대 따위는 생각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발달되어 온 것으로
상당히 정교한 것이 만들어져 있다.
  (연궤)라고 불리는 이 조립식 테이블의 원리는 서양에서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나뭇조각 맞추기 놀이와 같은 미국 어린이들의 놀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뭇조각
맞추기 놀이라는 것은 빈틈없이 주워 맞추면 정방형이 되는 한 벌의 나뭇조각을
평평한 곳에 늘어 놓아 동물이나 사람이나 도구나 또는 가구 등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노는 놀이를 말한다. 여섯 개의 부분으로 된 (연궤)는 그 조립 방법 여하에
따라서 크고 작은 다른 정방형, 장방형, T자형 등 몇 가지 모양의 탁자가 되고
게다가 위쪽을 여러 가지 다른 각도로 향하게 하면 모두 40종의 배열이 가능하게
된다.
  또 하나의 조립식으로 (접궤)라고 불리는 조립 테이블은 3각형의 부분과 대각선이
있는 점에서 연궤와 다르다. 즉 구성하는 부분이 복잡하기 때문에 완성된 것의
윤곽도 한층 더 여러 모양의 여러 종류가 되는 셈이다. 첫번째 연궤의 형은 대체로
크고 작게 어느 쪽으로나 만들 수 있는 식탁용, 골패 탁자용으로서 설계된 것이며
촉대를 놓는 장소가 흔히 탁자 한가운데 만들어져 있는 수가 많다. 두 번째 접궤의
형은 식탁, 골패 탁자, 화대, 골동대를 겸해서 설계된 것이다. 화대와 골동대는
보다 다종 다양한 변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접궤는 열 세 조각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조립하기에 따라서는 정방형 테이블, 장방형 테이블, 다이야몬드형
테이블이 되며, 탁자의 표면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구멍을 만드는 것도 자유자재하여
색다른 모양으로 조립되며, 그것은 주부가 머리에 쓰기에 따라 무한해질 수가 있다.
  중국인의 실내 장식의 이상은 간소함과 공간이라는 두 가지 관념으로 이룩된
것으로 생각된다. 잘 정돈된 방에는 틀림없이 몇 가지의 가구가 비치되어 있고
그것은 대개 마호가니제로서, 겉에는 단순한 선을 새기고, 매우 정성껏 닦아서
끝쪽은 흔히 둥그스름하게 한다. 마호가니제를 닦는 것은 손일이어서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므로 윤이 나는 정도는 물건의 값이 나가는 정도를 뜻한다. 대개 서랍이 없는
긴 판자로 된 테이블을 벽쪽에 놓고 그 위에는 붉은 갈색의 큰 꽃병을 놓는다.
방안의 다른 구석에는 높이가 다른 마호가니의 꽃병받침이나 골동대가 한둘 또는
셋 쯤, 그리고 우툴두툴한 나무 뿌리로 다리를 만든 걸상이 두서넛 놓여 있는 정도일
것이다. 책장이나 골동품을 장식하는 장이 한편에 놓이고, 높이와 세로 폭이 다른 각
부분이 잇달아 죽 놓여 있어 이상하게도 현대적 효과를 보이고 있다. 벽에는 족자가
한두 폭 걸려 있다. 순수한 필력이 훌륭한 글씨거나 화필 자국보다 공백이 더 많은
족자다. 그 화면처럼 방은 (공령) 즉 (비었으되, 영동하고) 있어야 한다. 중국 가정
설계와 가장 뚜렷한 특색은 뜰을 깐 안 마당이다. 이것은 스페인의 수도원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며 평화와 고요와 안식의 상징이다.



    10. 여행의 즐거움

  옛날에는 여행이 놀이였으나 요즘에는 하나의 일이 되고 말았다. 물론 백년 전에
비하면 오늘날의 여행은 훨씬 편해졌다.
  정부는 국립 관광국을 만들어서 관광사업을 시작했다. 그 덕분에 현대인은
전체적으로는 그의 할아버지가 한 것보다는 여행하는 일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오늘날에는 이미 사라져 버린 예술이 되어 버리고 만 것 같다.
여행에서 맛볼 수 있는 진짜 묘미를 알려면 젼혀 여행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갖가지
엉터리 여행에 대해서 우선 알아 두어야 한다.
  엉터리 여행의 첫번째는 정신을 향상하기 위한 여행이다. 오늘날 정신 향상이라는
것은 확실히 정도가 좀 지나치고 있다. 사람의 정신이 그렇게 쉽사리 향상될 수 있는
것인지 어떤지 나는 큰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클럽에서 주고 받는 이야기나
강연회에서 정신이 향상된다는 것은 우선 바랄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년 내내 그렇게 진지하게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만 온갖 애를 다
쓰고 있다면 적어도 어쩌다 얻는 모처럼의 휴가 때만은 마음을 한가하고 편하게
가져서 쉬게 해주어야 한다.
  여행에 이런 잘못된 생각이 여행 안내인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에서는 여행 안내인이라는 사람만큼 참을 수 없는 수다장이고 꼬치꼬치
성가시게 구는 사람들도 없다. 이 사람들로부터 누구누구는 1792년 4월 23일에
태어나 1852년 12월 2일에 죽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고는 길 모퉁이건 동상
앞이건 그냥 지나가 버릴 수는 없다. 나는 일찌기 수녀원의 수녀들이 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가는 일행과 묘지에서 만났던 경험이 있다. 그 한 무리가 묘석 앞에 걸음을
멈추자 수녀는 학생들을 보고 고인이 언제 어떤 일을 했느니, 몇 살에 결혼을
했느니, 부인의 이름이 무엇이니 하고 모처럼의 여행하는 즐거움을 완전히 망치는
박식한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어른들도 또한 학교 학생들처럼 안내인으로부터
시끄러운 강의를 받게 된다. 우등생 타입의 여행자쯤 되면 선량한 학교 학생처럼
정성껏 노우트에 기록까지 한다.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도 미국을 여행하는 사람이 라디오시티에서 경험하는 것과
똑같은 불쾌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 다만 다른 점은 중국의 안내인은 전문가가
아니며 과일 장사거나 당나귀를 모는 마부거나 농부의 아들이거나 해서, 미국의
여행 안내인보다 성질은 쾌활하지만 설명이 그다지 정확하지 못하다는 결점이 있다.
전에 나는 소주의 검지를 찾았던 일이 있는데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머릿속에서
역사의 연대며 사건이 뒤죽박죽이 되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사연인즉 이러했다... 검지의 상공 40척이나 되는 곳에 온몸이 오싹할 것 같은
다리가 걸려 있고, 그 돌다리에 검이 용으로 둔갑하여 승천했다든가 하는 둥근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다. 귤을 파는 소년의 이야기로는 여기가 옛날의 미녀 서시가
아침에 몸단장을 하던 곳이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서시의 화장대는 거기서
1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소년은 여러 가지로 많은 말을 했지만 결국 소년이
바라는 것은 자기의 귤을 좀 사달라는 것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어떤 모양으로 변하고 수식되어 그 모습이 변태되는가를
알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두 번째 엉터리 여행은 화제를 얻게 위해, 다시 말해서 뒷날 이야기할 재료를
얻기 위해 여행하는 일이다. 차와 샘물로 이름난 항주의 호포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자기의 사진을 친구에게 보인다는 것은 과연 시적인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사진에 정신이 팔려서 진짜 귀한 차 맛을 모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이 버릇이 되면 좀처럼 떼어버릴 수 없는 위험이 있다. 우리가
런던이나 파리 시내를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가끔 보게 되는 일이지만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여행자들에게는 특히 그렇게 될 위험성이 많다. 카메라에 정신이 팔려서
명소를 구경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들여다 볼 특권은 갖고
있겠지만 트라팔가르 광장이나 상제리제의 사진 같은 것은 뉴욕에서도, 북경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것쯤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사적을 눈으로 보고 구경하려는
것이 아니라 뒷날 이야기 재료로 삼으려는 생각이니까 유역하는 장소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억도 풍부해질 것이고 화제로 삼을 장소도 많아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하루 동안에 한
곳이라도 더 많이 돌아다녀야만 하게 된다.
  여행하는 명소의 프로그램을 손에 들고 한곳에 올 때마다 프로그램을 연필로 지워
간다. 이러한 관광객에 한하여 모처럼 휴가를 얻어 노는 날에도 능률만을 올리려고
아둥바둥하는 것이다. 실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와 같이 어리석기 그지없는 여행을 하게 되니까 아무래도 세 번째 잘못이
생겨나게 된다. 이런 타입에 속하는 사람들은 비엔나나 부다페스트에 몇 시간
머무는가 하는 것을 미리부터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완전한 여정표를 만들어 둔다.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지켜 나가는 것이다. 집에 있을
때는 시계에 얽매이고 달력에 끌려다니는 셈이다.
  이러한 옳지 못한 여행만이 여행은 아니다. 나는 감히 말하거니와 진짜 여행의
동기는 다른 데 있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우선 첫째로, 여행하는 참된 동기는
세상을 피하고 사람들에게서 떠나는 것이어야 한다. 좀더 멋지게 시적으로 말한다면
잊기 위한 여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자기의 가정이 있는 동네에 있으면 손윗사람들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상당한 사람으로 생각되어 제법 의젓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일정한 인습이라든가, 규칙적이라든가, 습관이라든가, 의무에 매여 살게
마련이다. 어떤 은행가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에 있을 때는 보통 일반으로
취급받기가 힘들며 자기가 은행가라는 사실을 잊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한 경우 여행을 떠나는 참된 동기는 여행만 하면 보통 사람처럼 취급해 주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리라. 장사일로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소개장은 매우
편리한 것이겠지만, 상용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순수한 여행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소개장을 가지고 있으면 일개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발견하고
사람이 조직한 인위적인 우연에 의하여 만들어진 사회적인 지위를 떠나서 타고난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찾아낼 기회가 적어지게 마련이다. 외국에서 친구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자기와 같은 사회층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안내를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숲속을 마음껏 돌아다니는 편이 훨씬 더 감흥 깊고 크다.
손짓만으로 치킨프라이를 주문하거나 토오쿄의 순경에게 길을 묻거나 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적어도 이런 여행자는 운전수나 비서에게
그다지 수고를 끼치지 않고 자기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참된 여행자에게는 언제나 방랑하는 기쁨, 유혹, 모험심이 있다. 여행한다는 것은
(방랑) 한다는 뜻이다. 방랑이 아닌 것은 여행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여행의 본질은
의무도 없고, 일정한 시간도 없고, 소식도 전하지 않고, 호기심 많은 이웃도 없고,
환영회도 없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나그네길인 것이다. 좋은 나그네는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도 모르는 법이고, 나무랄데 없는 훌륭한 여행자는
심지어 자기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방랑하는 정신이 있어야만 사람들은 휴가를 이용하여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나그네는 인적이 드문 곳, 참된 고독을 맛볼 수 있는 곳, 자연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방면에 피서지를 구해서 가고 싶어한다. 여행
준비를 하기 위해 백화점을 찾아가거나 핑크나 푸른빛 수용복을 사느라고 오랜
시간을 허비하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입술 연지만은 그래도 좋다고 해두자.
왜냐하면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은 장 자끄 루소를 신봉하는 사람이니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붉은 입술 연지를 바르지 않고서는 어떤 부인도
자연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문명의 입술은 창백하며, 자연의 입술은 붉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같은 피서지나 바닷가를 찾아가서 자연과의 보다 친밀한 결합을
잃고 또는 잊기 때문에 입술이 파랗게 되는 것이다. 유명한 온천으로 찾아간 사람은
혼자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제야 내 혼자 몸이 되었구나) 그러나 저녁 식사를 끝낸
다음 호텔의 휴게실에서 신문을 집어들고 B부인이 월요일부터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음날 아침 (홀로 호젓한) 산책을 하다가 어젯밤 기차편으로
도착한 더들리 집안 식구들과 만나게 된다. 목요일 밤에는 S부인도 남편과 함께
이 멋진 산골짜기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기뻐한다. 이윽고
S부인은 더들리 집안 식구들을 티파이티에 초대하고, 더들리 집안 식구들은 S부부를
트럼프 놀이에 초대한다. 다음에 S부인이 호들갑스럽게 떠들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들려 온다. (얼마나 멋져요? 마치 뉴욕에 와 있는 것 같군요, 안그래요!)
  그러나 나는 말하리라. 여기에 또 다른 취미의 여행이 있다. ...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다람쥐와 사향쥐와 산쥐와 구름과 나무 외에는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아무와도
만나지 않는 그런 여행이 있다. 내 친구인 어느 미국 부인이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향주 부근에 있는 어느 산 위로 아무것도 보지 않기 위해서 올라갔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안개가 짙은 아침이었다고 한다. 산 위로 올라감에 따라 안개는 점점 짙어 가기만
했다. 나뭇잎을 후두둑 가볍게 때리는 물방울 소리도 들린다. 안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 부인은 실망했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올라 가 보세요.
꼭대기에서 보는 경치가 아주 좋답니다. 하고 중국 친구들이 주장하는 바람에 부인은
그들의 뒤를 따라 계속해서 올라갔다. 얼마쯤 올라가자 구름 멀리에 싸인 보기 흉한
바위가 보인다. 앞서 말한 멋있는 경치란 바로 이 바위를 두고 한 말이었다. (저게
뭐죠?) 하고 부인이 물으니까 (역연암이랍니다) 하고 친구가 대답했다.
  은근히 화가 난 부인이 산을 내려가려고 하자 (하지만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정말 훌륭하답니다) 하고 그들은 말한다. 부인의 옷은 이미 안개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래도 내려가는 것을 그만 두고 남들을 따라 올라갔다. 간신히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안개만이 자욱이 떠돌고 있을 뿐, 먼
산줄기의 윤곽만이 수평선 위로 보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것도 안 보이지 않아요) 하고 그녀는 항의했다.
  (그게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않기 위해 이리로 올라온 것이랍니다)
  이것이 중국인 친구들이 들려준 대답이었다는 이야기다.
  사물을 보는 것과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사물을
구경하면서 다니는 많은 나그네들은 사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아무것도 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사실은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책을 쓸 재료를 얻기 위해서)니 뭐니 하면서, 마치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 사람들이나 자기 나라 사람들의 생활은 완전히 다 보아 버려서 주제가 동이
나고 만 것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며 외국으로 떠나는 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우스워 견딜 수가 없다. (실밥)은 로맨틱하지 않고 게룬세이 섬(영불 해협에
있는 해협, 군도 중의 한 섬)은 너무나도 따분하고 지루해서 큰 소설의 재료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인가 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녀석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여행은 관찰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하는 철학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철학에 의하면 먼 나라로 여행하는 것과 오후에 뜰을 한가로이 산책하는
것과의 차이는 없어지고 만다.
  김성탄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 양자는 똑같은 것이다. 이 중국의 극평가가
저 유명한 (서상기)를 평하는 가운데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나그네의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도구는 (가슴 속에 뛰어난 재능과 눈썹 밑의 신안)이다.
사물을 느낄 줄 아는 마음과 사물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갖추고 있는가 어떤가
하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 없이 산에 오르는 것은 시간과 돈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가슴 속에 뛰어난 재능과 눈썹 밑의 신안)을 갖추고 있다면,
비록 산에는 오르지 않더라도 집에 머물러 있거나 들판을 거닐면서 뜬구름, 개,
생울타리, 외로이 서 있는 나무를 관찰하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참된 여행법에 대한 김성탄의 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세상 사람들이 쓴 기행문을 읽고, 참다운 여행법을 이해하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물론 여행에 익숙한 사람은 먼 길을 여행하여 바다와 육지의 웅장한 경치를
바라보고 그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보고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놀라움과 신비로움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바다와 육지의 명승지를 전부 찾아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의 가슴 속의 뛰어난 한폭의 재능과 눈썹 밑의 한쌍의 신안이 일개워
준다. 어느날 발과 눈과 마음의 힘을 많이 소모하면서 어느 석굴을 찾아간다. 그것이
끝나자 곧 이어서 또 다음날에도 다른 좋은 경치를 찾아 발과 눈과 마음의 힘을
소비한다.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날마다 이곳 저곳
명승지만 돌아다녔으니 얼마나 좋을 것인가. 어떤 석굴을 찾아보았는가 하면 또 다른
명승지를 찾고 있으니...) 그러나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은 아주 중요한 점을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찾아간 두 곳은 떨어져 있다 해도, 2백 리나 3백 리,
그렇지 않으면 80리나 70리나 50리, 아니 단지 10리나 5리 밖에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슴 속에 뛰어난 재능과 눈썹 밑의 신안)을 갖고 불과 10리나 5리 거리의
차라면 석굴이나 명승지를 본 것과 같은 눈초리로 바라볼 수는 없었던가.
  만물의 어머니인 자연이 위대한 기술과 지혜와 힘으로써 석굴이나 명승지를
갑작스럽게 만들어 낸 것을 보면 필경 눈은 놀라고 마음은 서늘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때로 나는 이 우주의 작은 것, 새, 물고기, 꽃 또는 가련한 식물, 새의 깃,
물고기의 비늘, 꽃잎, 풀잎 같은 것을 뚫어지게 들여다 보고는 어머니인 자연이,
그 위대한 기술과 지혜와 힘으로써 이런 작은 것까지도 창조해 낸 신비로움을
감탄하게 된다.
  사자는 들토끼를 잡는 데도 큰 코끼리를 공격할 때와 똑같은 힘을 기울인다고
하는데 만물의 어머니인 자연이 하는 일도 이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자연은
석굴이나 명승지를 만들어 내는데 그 힘의 전부를 쓰지만 새, 물고기, 꽃, 꽃잎,
풀잎, 심지어는 새의 깃, 물고기의 비늘, 꽃잎, 나뭇잎을 만들어 내는 데도 그가
지닌 모든 정력을 기울인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눈을 놀라고 하고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것은 유독 석굴이나 명승지만은 아니다. 또한 석굴이나 명승지가
어떻게 생겨났는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장자는 현명하게도 말한다. (말의 몸의
여러 가지 기관 하나하나를 가리켜 말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 서로 다른 기관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 말이 눈앞에 있으면 우리는 그것이 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커다란 호수 주위에 빽빽이 우거진 숲과 큰 묏부리를
덮는 나무나 비석이 있다고 하자. 깊은 숲과 나무 비석이 서로 한데 모여서 큰
호수나 큰 묏부리의 경관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그네에게는 즐거운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절벽이나 높은 산봉우리도 작은 돌들이
모여서 만들어졌으며, 떨어지는 폭포는 하잘것없는 작은 샘물이 한데 모여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에 대해서 말한다면 돌은 사람의 주먹만한
크기의 것이며, 샘은 보잘것없는 작은 시냇물 정도 밖에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노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한데 모여서 저마다의 구실을
주장하지 않고 한몸이 되면 비로소 수레의 구실을 하게 된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든다. 진흙이 자기의 본성을 버리면 비로소 쓸만한 그릇 구실을 하게 된다. 우리는
벽에 구멍을 뚫어서 창문과 문을 만든다. 창문과 문들이 자기의 존재를 잃게 될 때
집으로서의 구실을 하게 된다) 석굴이나 명승지를 찾아가서 우람하게 높이 솟은
산봉우리와 꼬불꼬불 돌아가는 산 길, 깎아지른 것 같은 절벽, 똑바로 흘러서 강을
이루는 것, 비스듬히 기울어 언덕을 이루는 것, 그런가 하면 바닥이 되어 고원
구실을 하는 것, 기울어 언덕이 된 것, 걸쳐서 다리가 된 것, 한데 모여서 협곡이
된 것 등등을 볼 때, 변화무쌍한 그 속에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찾아내고 더우기
위대함과 신비로움은 자연의 각 부분이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고 공이 될 때 생겨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각 부분이 하나하나의 개성을 주장하지 않게 되면 그때는 이미
산길도 아니고, 절벽도 없고, 하천도 없고, 고원도 없고, 언덕도 없고, 다리도 없고,
협곡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더우기 가슴 속의 뛰어난 재능, 눈썹 밑의 신안이
유유히 떠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것이 공이 되었을 때이다. 이렇게 되고 보면
구태여 석굴을 찾고 명승지를 찾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같이 생각할 때, 새삼스럽게 석굴이나 풍경지를 찾아갈 필요는 없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불과 2백 리나 3백 리, 아니 10리나 5리 되는
길가에도 이러한 자연의 단편이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고 공이 된 상태로 뒹굴고
있지 않은가. 조그마한 구부러진 다리, 가지가 엉성하게 외따로 서 있는 나무,
보일까말까한 늪지대, 마을, 생울타리, 개... 내가 유유히 돌아다닐 수 있는
석굴이나 명승지의 신비로움이 이런 데도 있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을 것인가.
  (가슴 속에 간직한 뛰어난 재능과 두 눈썹 아래 날카롭게 빛나는 눈)이 필요한
것은 이밖에는 없다. 그러나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데 남다른 재능이 필요하고,
유유히 배회하는 데 날카로운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면 여행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가슴 속의 특별한 재능, 눈썹
밑의 특별한 눈이라는 것이 특별히 따로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떠돌기를 즐긴다는
것이 이미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뜻하며 유유히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남다른 눈이 갖추어 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가간다. 저 미불이 바위를 평가한
표준은 (수)(추)(투)(수)였다. 그러나 10리나 5리 안에 널려 있는 물, 마을, 다리,
나무, 생울타리, 개 따위는 모두가 수이고 추이고 투이고 수이다. 그것을 알아볼 수
없다면, 미불이 바위를 본 눈초리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지닌
수, 추, 투, 수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사이를 배회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된다. 이 네
가지를 빼놓고 험준한 못부리 산길이나 절벽이나 하천이나 고원이나 사면이나 다리나
좁은 골짜기나 또는 석굴과 명승지의 웅대함과 신비로움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석굴이나 명승지를 꼭 찾아가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많이 남겨두고 있는 셈이 된다. 아무데도 찾지 않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의
생울타리, 한 마리의 개에서 자연이 지닌 신비로움과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석굴이나 명승지를 대하더라도 위대하지 않은 것, 신비롭지 않은 것 밖에는 알아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인 착산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역사상 여행법을 가장 잘 터득한
사람은 공자요, 왕희지가 그 다음이었다) 내가 어째서냐고 물으니까 착산이
설명하기를 (쌀이란 아주 희게 씻을 수는 없고, 다진 고기는 아주 훌륭하게 잘게
다질 수는 없는 법이다 라고 말한 공자의 말에서 능히 짐작할 수 있고, 왕희지는
그가 쓴 글로 알 수가 있다네. 왕희지가 쓴 글에는 그의 아들인 왕헌지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거든) (자네 이야기는 옛부터 전해온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이네) 하고 나는 말했다. 착산은 일찌기 이런 이야기를 한 일이 있다. (왕희지는
집에 있을 때면 정원에 심은 나무에 핀 꽃의 암술을 세면서 하루를 보낸 일이 흔히
있었다. 암술 세는 데 온 마음을 쏟은 나머지 하루종일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제자가 스승의 곁에서 수건을 들고 서 있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나는 말했다. (그럼
그 이야기의 권위를 자네는 어디에서 찾아내는가?)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가슴 속에서) 그는 이같이 경탄할 만한 인물이었다. 아아, 그러나 그는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그의 로맨틱한 공상력은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지 못했다.

'그외 정보 >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1장 교양의 즐거움  (0) 2020.05.16
제10장 자연의 즐거움  (0) 2020.05.16
제8장 가정의 즐거움  (0) 2020.05.16
제7장 우유론  (0) 2020.05.16
제6장 인생의 항연  (0) 2020.05.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