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불안, 또는 환자의 불안한 이야기 자체가 의사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환자가 갖는 모든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어떤 의사들은 이러한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환자의
진료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의사는 흔히 사용하는 방어 기제에 따라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불안을 피 할 수 있는 기적적인
방법은 없다. 그런데 환자는 의사보다 더 불안해하고 겁을 먹을 특권(?)이
있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 앞에서 자신의 불안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어떤 의사들은 환자 앞에서 자신이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불안을 털어놓는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이야기를 하면서
불안을 털어놓는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환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려는 의도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큰
도움은 안 되고, 오히려 환자의 말을 막아 버리는 결과가 될 뿐이다.
불안한 의사는 환자의 말끝마다 자신도 그와 비슷한 증세가 있다고
맞장구를 친다. 어느 여자 환자가 진찰실을 나서며 "돈을 낼 사람은 내가
아니고 의사야. 내가 만약 생리 때마다 배가 아프다고 했더라면 그 의사는
뭐라고 했을까?" 라며 웃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오이만 먹으면 소화불량이 된다고 할 때, 의사는
자기도 그렇다고 말해선 안 된다. 환자와 같은 증세를 발견하면 흥미롭고
자신이 느끼는 불안을 다소 없앨 수는 잇겠지만, 이는 현명한 의사로서
바람직하지 못하며 환자 치료에도 나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불안한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환자를 대하기가 너무 불안해서 진료에 지장이 있을 정도라면,
그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진료를 하지 말아야 한다. 환자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되는 다른 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항상 불안한 것은 아니고 어떤 특수한 경우에만 약간 불안하다면,
우선 그 경우가 어떤 것인가를 잘 분석하여 가급적 그 상황을 피해야
한다. 남자 환자나 여자 환자, 부자나 가난뱅이, 젊은이나 노인, 학력이
높은 경우나 낮은 경우, 수동적이거나 공격적인 경우등 어떤 환자를 만날
때 가장 불안한가를 우성 알아야 하고, 어떤 특수 질환과 관계가 있는가,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인가, 알코올 중독 때문인가, 폐병 전염이 두려워
서인가...등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적잖은 의사들이 마치 알레르기처럼
특수한 환자나 특수질환에 특히 불안을 느낀다.
특수한 몇 가지 경우에만 불안해진다면, 그러한 불안을 야기 시키는
상황을 적당히 피하거나, 혹은 다른 적절한 방법으로 적응을 하는 것이
좋다. 여러 종류의 환자와, 그에 따른 다양한 진료 방법으로 경험하게 되는
안정과 불안에 대한 반사 작용이라고나 할까.
의사들은 전공과를 선택할 때부터 그들의 인간성과 직업성의 상호
관계를 잘 적응시킨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전공과의
선택은 적성이나 기술보다 오히려 그의 성격이나 과거의 개인적 경험들이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선택들은 의과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대개 졸업 전에 결정된다. 그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성취감을 얻지 못할 것 같은 전공과를 피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신이
하는 일을 지켜보는 것이 싫은 의대생이라면, 외과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닫혀진 문 뒤에서 환자와 단 둘이 있을 생각만 해도 진땀이
난다면, 정신과의사가 되지 않는 것이 좋다. 생사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이 싫다면, 고도의 기술과 노력을 요하기는 해고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전공과를 선택하고 싶을 것이다. 사회활동에 적극적이고, 여러 사람을
만나기를 좋아하는 개방적인 사람이 환자와 접촉하지 못하는 전공을
선택한다면, 불안해서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잘 고려하여,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신의 성격과 잘
맞고, 적어도 불안감을 주지 않는 전공과를 선택하려 애쓴다. 하지만 일부
의사들은 여러 가지 불안을 야기 시키는 일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스스로의 전공과 선택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는 즉시, 보다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과로 바꾸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의사들은 이를
시도조차 하지 않고 계속 불안한 상태에서 진료를 계속하게 된다. 어쩌면
그나마 찾아와 주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고마워한 나머지, 전공을
바꾸는 위험을 무릅쓸 용기가 없는지도 모른다. 또 경험이 부족한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불안을 초래하기 마련이라고 자위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호전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사는 불안하게 하는 환자를 피하는 대신 일부러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들은 두려워하는 대상에 직면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피해 달아나기 보다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세이다.
피가 두려울수록 외과 계통을 택하고, 죽음이 두려울수록 중 환자실
근무를 자청한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성공하는 예는 그리 흔하지 않다.
거칠고 난폭한 자신의 성격을 고치고 싶다는 이유로, 섬세하고 유연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전공과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의사들은 경탄의
대상이다. 이들은 자신의 선천적인 성격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고나 할까?
물론 이런 의사들이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죽음과 질병에 맞서 싸우는
그들의 확고부동함은 다른 의사들에게 귀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불안에 접근해서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환자를 치료하는 능력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성격은 변하지 않아 예전처럼 불안하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불안을 좀도 다른 방향으로 처리하는 의사도 있다. 그들은 불안을 야기
시키는 환자나 상황을 피하지 않고, 운명혼자처럼 참고 견딘다.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이 의사의 임무라고 생각하며 당연시한다. 시달림을 당하면
당할수록, 부담이 커지면 커질수록,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라는 은근한 자부심을 갖는 재미도 누린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많은 의사들이 불안을 고스란히 감수 할 뿐,
거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강구하려 들지 않는다. 의사의 불행이
여기서 시작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첫째, 의사들은 불안하기 때문에 의학적 지식이나 기술을 적절히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둘째, 계속되는 불안 때문에 의사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만다.
지치고 잠도 못 자고 초조한 것을 이겨내기 위해 술을 마시고 마약을
쓰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불안과 혼자 싸우다 이런 엄청난
비극을 맞고 있는가. 정신과 동료의 도움을 구할 수 있었다면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불안한 의사가 정신과 환자가 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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