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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성인 환자를 위하여

2.환자와의 대화, 어떻게 해야 하나

by Healing New 2020. 6. 2.

성공적인 대화를 위한 요령이나 기술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간단하고 쉬운 것만도 아니다. 대화를 하는데 필요한 
요령을 살펴보자.
  #1 대화 시간은 15분보다 1시간이 좋다. 물론 5분보다는 15분이 훨씬 
좋다.
  #2 환자와의 대화는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복잡한 복도나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병실은 피하는 것이 좋다.
  #3 전화나 노크 소리가 대화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간호사나 외부 
사람들에게 대화에 방해를 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것을 꺼리는 의사들이 
있는데, 면담시간만큼은 환자의 전 유물이며, 오직 환자만을 위한 시간임을 
명심해야 한다.
  #4 의사의 진지하고 인간적인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 의사는 진지해야 
하며, 진정으로 환자를 걱정하고 도와주려는 태도와 그 일을 수행하는데 
인간적인 기쁨이 넘쳐야 한다. 감정이 없는 대상을 대하듯이 기계적인 
질문만 던진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5 눈은 대화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바탕 
위에서는 눈으로 하는 대화가 말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눈을 통해 알아낸 덕은 의사나 환자의 말과 관련이 있을 
때에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섬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조용한 눈으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표면상 태연한 듯한 환자의 
심층감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역시 눈의 역할이다. 
걸음걸이, 손짓, 앉거나, 서 있는 모습, 얼굴의 표정 등에서 그런 환자의 
감정 상태를 잘 읽을 수 있다.
  #6 대화에서 또 한 가지 요령은 환자를 진찰하는 동안에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계속하는 일이다. 어떤 의사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진찰시 환자가 조용히 해 주기를 바란다. 그게 
좋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의사들은 환자를 진찰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치료에 중요한 힌트를 얻어내는 
경우가 많다.
  #7 대화를 통해 진정으로 환자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의사는 말을 잘 
하기보다는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사실 대화의 목적은 환자가 
이야기하게 하고 의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의사가 말을 계속하고 
있는 한, 환자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말을 적게 할수록 현명한 
의사다. 의사는 환자가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게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환자만 이야기하게 하고 의사는 돌부처처럼 침묵만 지키면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떤 환자는 말이 잘 이어지지 않아 계속 
거들어 주어야 하는가 하면, 또 어떤 환자의 이야기는 너무 두서가 없기 
때문에 중간중간 정리를 해 주어야 할 때도 있다.
  물론 이야기하기를 좋아해서 환자에게는 말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 
의사도 있다. 이보다 더 나쁜 경우는, 환자가 의사 자신이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할 때 간섭하고 방해하는 것이다. 이럴 때 환자의 이야기를 
가로막거나 또는 화제를 슬쩍 다른 방향으로 바꾸기도 한다. 더욱 의사 
자신도 스스로의 행동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의대생의 실습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환자의 문진을 맡은 학생이 불과 
몇 분도 안 되어 이야기를 끝내고는, 특별한 소견이 없다고 보고했다. 이 
환자의 경우, 한쪽 손발이 마비되어 있었는데 이 학생은 이렇게 명백한 
사실조차 알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교수는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라고 
권했으나, 학생은 여전히 특별한 것을 찾아낼 수 없었다고 보고했다. 며칠 
후 교수는 문진을 맡은 그 학생의 아버지가 최근에 한쪽 손발이 마비되어 
병중에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제야 그 학생이 왜 그 환자와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는지가 분명해진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고민과 비슷한 환자의 증세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 학생에게는 
너무도 힘들었던 것이다.
  가끔 환자가 슬쩍 지나치면서 하는 이야기 속에 중요한 뜻이 숨어 있는 
경우가 있다. 비록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것과 연관지어 
생각하면 아주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환자와의 대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항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우리가 그 중요성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흔히 의사들이 자신의 문제로 인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피하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그런 증세가 시작되었습니까?"
  "글쎄요.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가 두 달이 되었고, 그 일 주일 후부터 이 
증세가 시작되었으니, 거의 두 달쯤 된 것 같군요."
  의사는 잠시 혼자 생각을 하더니 다시 물었다.
  "직업이 무엇입니까?"
  누가 들어도 환자의 증세와 모치의 사망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도 왜 의사는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을까? 아마 그 자신도 
이유를 모르고, 또 화제를 돌렸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모친의 사망이 이 의사에게 무언가 불안을 일으키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
  환자가 말하는 내용을 의사 자신의 문제와 연관시키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는 의사 자신의 입장과 너무도 똑같아서 도저히 계속 
듣고 있을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은 의사도 직업인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직업을 수행함에 있어, 개인의 감정을 누르고 
이성적이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솔직히 인정하고, 또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가 일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 방해가 되는 또 한가지는, 환자가 말한 
모든 내용을 어떤 일정한 틀에 맞추려 하거나, 또는 기계적으로 어떤 
패턴을 따르려는 태도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은 다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는 자체도 일이라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다. 그저 이야기에 몰두하기만 하면 된다.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시작할 필요도 없다. 어디서든 환자가 시작하는 
데서 출발하고, 또 그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다만, 환자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두루 이야기하게 하고, 때로는 되물어서, 의사가 그를 
이해했다는 기분이 들게만 하면 된다.
  환자가 말하는 것 전부를 진단의 근거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다. 환자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의 
의미를 알려고 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환자의 말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되면 의사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어 역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지나친 욕심이나 과열로 인해 환자와 시비를 할 
필요도 없고, 혼자 힘으로 환자의 모든 병을 완치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환자를 위로한다는 것이 
오히려 증세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환자로 하여금 안심하고 의사의 손에 
자기를 맡길 수 있도록 해 주기만 하면 된다.
  아울러 대화 중에 환자가 보는 앞에서 기록에 열중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환자가 말한 몇 가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차트에 기록을 남기는 것보다 의사의 마음속에 
새기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둘지 않아야 한다. 환자가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는 것 자체가 
때로는 진단적 가치가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다. 시간이 부족하면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게 하면 된다. 때론 두 번째 방문에서 첫 번째와는 
아주 딴판으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병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 주려고 성급하게 
서둘거나, 또는 어떻게 하라는 충고를 해 줄 필요는 없다. 환자가 질문해 
오더라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설픈 
충고보다 환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증세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떤 경로를 밟아 진행되었는가를 자세히 아는 
것은 진단상 대단히 중요하다. 그 경로를 추적할 때는 증세에서 출발하여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좋다. 가능하다면 환자가 자유롭게 대답할 수 
있도록 "그래서요?" "전에는 어땠나요?" 등의 질문을 한다. 때로는 자세한 
질문보다 막연한 질문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바늘에 찔린 득이 
아팠나요?" 라고 묻기보다는 "어떻게 아팠나요?" 라고 묻는 편이 낫다. 
너무 구체적인 질문은 환자로 하여금 대답을 유도한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하게 하므로 좋지 않다. 융통성 있고 폭넓은 질문이 문진의 요령이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가슴에 통증이 와서 잠을 깼다고 호소할 때, 
의사가 "어떤 통증 이었나요?" 라고 물었다면 그는 국소의 통증 자체만을 
이야기하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반면, "어땠어요?" 라고 좀 막연하게 
질문하면, 환자는 무서워 어쩔 줄 몰랐다는 이야기 등에서 시작하여, 통증 
발작의 여러 가지 상황까지 상세하게 이야기해 줄 것이다.
  "예, 아니오" 만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피하는 것도 성공적인 
대화에 도움이 된다. "성질이 급한 편이신가요?" 라고 잘라 묻는다면, 그는 
간단히 "아니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와는 달리 "성격이 어떠신가요?" 
라는 질문에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예까지 들어가며 자세하게 해 줄 
것이다.
  의사의 말은 정확하게 분명해야 한다. 위의 경우처럼 때론 애매한 듯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계획적으로 한 
것이다.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 의사의 말이 
환자에게도 분명히 그런 뜻으로 전달되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지시를 
내리거나 치료 방향을 제시할 때에는 특히 그 정확성이 중요하다. 환자가 
의사의 지시를 엉뚱하게 알아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의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보다 환자가 어떻게 알아 들었느냐가 결과적으로 더 
중요하다. 의사가 환자에게 물을 많이 마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가 있다. '많이' 란 한 주전자도 될 수 있고 한 컵으로 
들릴 수도 있다. "체중을 많이 줄이시오", "과로하지 마시오", "휴식을 
취하시오", 또는 "곧 한번 더 오시지요" 하는 말은 의사가 흔히 하는 
말이지만 듣는 환자에 따라 그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의사가 지시를 내릴 
때는 환자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게 무엇을 얼마만큼 하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의사도 환자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아야만 한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어림짐작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환자가 "약주를 좀 합니다" 라고 할 때, 의가 자신의 주량으로 환자의 
주량을 짐작하거나, 환자가 마시는 술이 꼭 맥주일 것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비슷한 예로 "조금 걱정이 돼요", "각혈을 좀 했어요", "체중이 좀 
줄었어요" 라고 할 때도 그 정도가 분명히 측정될 수 있는 수치로 
계산되어 져야 한다. 의사와 환자는 같은 말을 써도 그 의미가 다를 수 
있고, 쓰는 말이 아예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가 쓰는 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외에도 대화를 원활하게 하는 요령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의 
요령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의사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있다. 좀 
심한 농담도 적절히 구사하여 원활한 대화로 이끄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어색한 이야기로 환자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대화는커녕 
환자와 싸움으로까지 번지게 하는 수도 있다. 따라서 대화의 요령을 
습득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개성에 맞게 적절히 구사할 수 
있는 방법까지 스스로 연구해야 한다.
  또한 대화의 요령은 의사 자신이 적절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대화의 요령을 습득하는 것만으로 대화를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의사의 판단력이 자신의 시굴이나 지식뿐만 아니라 
환자의 내면 세계, 환자의 불안과 공포, 비애와 분노, 고통과 고뇌, 희망과 
기대 등과 공감할 수 있어야만 대화의 요령은 제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표면상의 차원을 넘어 내면까지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르고, 많은 
내용을 잘 정리해서 일관성 있게 이해하는 의사의 능력도 물론 중요하다.
  앞에서 얘기한 사항들을 의사가 모두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지나친 
요구이기는 하다. 환자와의 대화는 의사가 해야 할 다른 일들처럼 힘겨운 
것이다. 환자와의 원활한 대화를 위하여 정확히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자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질 중에서 몇 
가지는 앞에서와 같이 일일이 나열할 수도 있겠지만, 정확히 "이것이다" 
라고 말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결국 그에 대한 해답은 정의할 수 있는 
어떤 자질들을 열거하는 것이 아니고,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찾음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내 생각에, 그 자질이란 바로 
'의사다움' 이다. 그 '의사다움' 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의사답다' 는 것과 '의사답지 못하다' 는 것을 구별해 주는 한가지는 
도움을 청하러 온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태도이다. 환자가 도움을 청할 때, 
이를 대하는 의사의 반응이란 특별한 것이다. 그것은 지식을 초월하는 
것이며, 인간의 생명에 대한 특별한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이며 - 이런 
책임감은 의사 자신에 대한 거의 교만할 정도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다 - 
환자 치료의 오랜 전통으로부터 발전되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생명에 대한 애정 넘치는 책임감이란 그리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대생은 의학 지식과 기술의 연마에도 바쁘겠지만 의사다워지는 
데 필요한 자질들을 갖추기 위해서는 건강과 질병을 대하는 특별한 감정 
및 기술, 그리고 기교를 배우고 발전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가르치고 배운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의사다워지는(Becoming a doctor)' 것이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 하더라도, 결코 의사답지 못할 수도 있다. 선량한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 의과 대학생이, 환자에게 인정 많고 
친절하며, 치료에 사려 깊고 열성적이더라도, 의사답지는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 의사다워진다' 는 것은 의사라는 지위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환자를 직접 치료할 때, 의대생이 대학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하려면 의사다워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즉 자신이 특별한 일들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 언뜻 듣기에 교만해 보이는 -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학위, 전문의 자격증, 개업 허가증 등 
공식 서류가 이런 권위를 객관적으로 인정해 주지만, 이러한 서류가 
의사다움까지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의사의 마지막 권위라고 할 수 
있는 '의사다움' 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스스로 의사로서 합당한 
소신이나 자신감 등을 가져야만 한다.
  의사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일을 하는 특별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일을 하게 
마련이다. 오직 특별한 사람들만이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한다. 의사들이 
특별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의사들이 보통사람보다 
지능이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의사가 특별한 
것은 사람을 치료하는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사들을 칭찬하거나 과대 평가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의사로서의 
됨됨이 중 꼭 갖추어야 하는 하나를 설명하려고 할뿐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이 했다면 형, 사법적인 것은 물론이고 도덕적, 사회적 
규준까지 어기게 되는 일을 의사들이 수행한다는 점이다. 의사가 이러한 
비정상적인 일을 정상적인 일처럼 행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의사를 특별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하지 않고서는 고통스럽고 위험 부담이 큰 의사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할 수도 없고, 환자의 몸이나 마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이런 일을 결코 잘하지 못한다. 즉, 의사만이 사람의 
몸에 위헌한 칼을 댈 수 있고, 위험할 수도 있는 약을 먹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 시술을 받게 하고, 생사가 달린 선택을 할 수 있다. 
의사가 이런 특수한 일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별 불안을 느끼지 않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자신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직업인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의사들은 자신이 일반인과 다르게 생각되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의사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의사 선생님' 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한다. 어떤 의사들은 의사의 역할과 함께 부과되는 
책임감이 두려워 남들과 다르게 취급되는 것을 싫어한다. 또 다른 
의사들은 특별하다는 역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려 한다. 의사의 역할이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어지는 의사의 역할이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떤 의사들은 이러한 의사의 역할을 자기자신도 못 받아들일 뿐 아니라 
다른 의사들이 그러는 것도 견디지 못한다. 이런 의사들의 주장에 따르면, 
환자들은 의사와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하며, 소비자인 환자가 치료 방법도 
결정해야 된다. 소비자 자신이 무엇을 소비해야 할지 결정한다는 것이 
옳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에게는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큰 책임감이 따르므로, 자신을 다른 사람이 일반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환자에게 행할 수 있는 예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의사가 자신이 환자의 삶 속에 깊숙이 개입함이 정당하고 적절하다는 거의 
겨만에 가까운 신념을 가질 때, 환자와의 대화술을 포함한 모든 의술이 
최상으로 발휘될 수 있다.
  '의사다움' 이 훌륭한 의술을 펴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하기 때문에, 
의사나 환자 모두 그 '의사다움' 이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의대 교육이나 의료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변화들이 '의사다움' 발휘해 
나가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의료와 관련된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고, 이들이 환자들을 위해 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앞서 말한 '의사다움' 과 유사한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간호사, 호스피스, 
사회사업가, 심리학자들도 의사와 함께 일하든 독자적으로 일하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특별한 권위를 의식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 권위와 함께 
요구되는 막중한 책임을 주저 없이 받아들일 때, 환자를 위해서 최상의 
일을 할 수 있다. 어떤 직종은 이런 태도를 이해하거나 실천하는 곳이 
비교적 쉬울 것이다. 반면, 어떤 직종은 환자와 직접 대하는 일이 거의 
없거나 책임질 만한 부분이 있지 않아서 환자나 질병에 대해 앞서 
이야기한 '의사다움' 의 자세를 이해하거나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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