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환자도 문제지만 의사를 화나게 하는 환자도 또한 문제이다.
의사에게는 가끔 이런 싫은 환자도 찾아온다. 예를 들면, 의사 자신이 강한
반감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는 반사회적 성격의 환자들이다. 민주당
의사에게 공화당 환자가 오는 정도의 단순한 관계도 있지만, 훨씬 심각할
수도 있다.
사기꾼, 도둑, 건달,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또는 가족에게 몹쓸 짓을 한
환자를 만날 때면, 의사이기 전에 인간적인 감정이나 편견 때문에
객관적으로 진찰하고 대화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일 때문에 의사의
감정이 너무 약화되면, 환자의 진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의사라고 해서 도덕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 자기
주장을 모두 버릴 수는 없다. 이상적인 의사는 편견이 없어야 하는데,
이것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진찰실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놓고 불 때에는 문제가 달라야
한다. 환자가 무엇 때문에 찾아 왔든, 환자인 이상 우리는 모든 편견을
초월하여 엄숙한 입장에서 진료에 임해야 한다. 그것이 어려우면(사실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른 의사에게 치료를 의뢰할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의사에게는 뚜렷이 미워할 외적인 명확한 이유도 없는데
괜히 싫은 환자가 있다. 건달도 아니고 깡패도 아니다. 딱히 싫은 이유는
댈 수 없지만, 어쨌든 싫고 짜증스럽고 화가 나는 환자다. 사람인 이상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워할 만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한한다.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미워하게 될 때에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유없이 환자를 싫어했기 때문에 의사로서 죄책감이 따른다.
이러한 죄책감 때문에 의사에 따라선 이를 보상하기 위해 그 환자에게 더
잘해 주고, 다른 환자에 비해 더 많은 신경을 써 주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싫은 감정을 억누르고 그를 좋아하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며, 환자를 싫어한다고 해서 치료의 효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의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신통치가 않다.
싫어하는 이유가 의사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사 내부에
있는 무엇인가가 적대감을 일으키고, 환자들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대개 이런 경우는 의사 자신의 과거 경험 가운데 싫어하던 삶이
있고 지금의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그 미운 사람으로 연상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연상은 의사 자신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신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아무리 그 환자를 좋아하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유없이 환자가 싫을 때는 좋아하려는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는 수가 많다. 따라서 이런 환자야말로 다른 의사에게 치료를 받도록
알선해 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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