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는 항생제의 천국
최근에는 외국에 장기적으로 출장을 나가거나 여행을 하는 사람이 무척 많아졌다.
그런데 그렇게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준비해 가는 물건들 중에는 으레 상
비약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외국에 나가면 말이 잘 통하지 않는데,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곤란해질 것이
분명하므로 현명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는 말도 잘 통하고 그 쪽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면서도 꼭
준비해 가는 약이 있으니, 바로 항생제이다. 선진국에서는 의약분업이라는 제도 아래
약의 처방은 반드시 의사가 하고, 약의 조제나 판매는 반드시 약사가 하도록 역할을
분리하고 있다. 따라서 상처가 나서 곪아 터져도 병원에서 의사에게 처방 받지 않고는
약국에 가서 아무리 사정하여도 항생제를 구입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항생제는 치료의
약품으로 구분되어 판매에 엄격한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약분업이 되어
있지 않은 일본 같은 나라에도 항생제만큼은 판매에 제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열이 조금 올라도 항생제, 배가 아파도 항생
제, 이가 아파도 항생제, 머리가 아파도 항생제, 기침만 해도 항생제, 콧물, 재채기에
도 항생제, 벌레에 물려도 항생제, 피부습진에도 항생제, 신경통이 심해져서 붓고 아
파도 항생제 ... 이런 식이다.
약사들은 약국에서 환자를 대하다가 무슨 병이든지 무턱대고 항생제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한다. 더구나 환자 스스로 '몇백 원짜리' 또는 '몇 밀리짜
리'라고 지정해서, 그것도 본인이나 다른 어른을 통하지 않고 어린이에게 심부름을 시
키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하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나라는 의약분업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고, 아무런 규제도 하지 않고 있기 때
문에 항생제를 아무나, 언제나, 어디서나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는데, 그러한 의미에
서 항생제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를 선진국에서는 왜 철저히 규제하는지, 우리가 알고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
까?
그러한 의미에서 먼저 항생제는 무엇인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항생제의 정의와 종류
항생제라는 용어의 뜻은 '미생물이 만들어 낸 물질로서 미생물의 발육을 저지하는
물질'이다. 여기서 미생물이라고 말할 때, 앞의 미생물은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고 뒤
의 미생물은 사람에게 해로운 것이다.
사람의 몸에 들어와서 유해한 작용을 하는, 즉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세균, 리
케치아, 바이러스, 곰팡이, 원충 등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이렇게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균(미생물)에 대해서 치료 효과가 있는 의약품을
'항균성 화학요법제'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범주에는 '항생제' 말고도 '화학적 합성유
기항균제'가 있으며, 보통 화학요법제라고 하는 이 의약품의 예에는 결핵약 '아이나'
와 주로 방광염에 쓰이는 '설파제(상품명:박트림)' 등이 있다.
질병을 유발시키는 미생물 중에서 항생제가 가장 자주 그리고 일반적으로 쓰이는 대
상은 세균이다. 항생제는 염증을 일으키는 여러 원인들 중에서도 특히 세균을 죽임으
로써 염증을 치료하는 약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우리에게 염
증이라는 병을 가져다 주는 세균이란 놈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자.
이 세균(박테리아)이라고 하는 미생물은 생긴 모양에 따라 우선 분류된다. 길다란
막대처럼 생긴 세균은 간균, 둥근 공처럼 생긴 균은 구균, 둥근 공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생긴 균은 연쇄상구균, 둥근 공이 포도송이처럼 모여 있는 균은 포도상구균이
라고 한다. 물 론 이 균의 종류에 따라 발생되는 질병도 각각 달라진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여름에 상한 단팥빵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 배탈 나고 열이나 고생한 경험이 있
다면 그것은 포도상구균에 의해 발병한 것이다.
한편 세균은 '그람'이라는 사람이 만든 염색액에 의해 염색되는 세균과 염색되지 않
는 세균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러한 구분법을 그람 염색법이라고 하는데, 염색되는
것은 '그람 양성균', 염색되지 않는 것은 '그람 음성균'으로 나누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방법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생긴 모양에 의해서는 각각 다른 질병
이 발생하곤 염색여부에 의해서는 유효한 항생제의 범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생물의 종류와 유효한 항생제를 연결지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그람 양성균(일반 화농증, 폐렴, 기관지염, 임질균, 가스괴저균, 녹농균)에만 작
용하는 항생제:페니실린, 바시트라신, 린코 마이신, 조사마이신.
#2 그람 음성균(이질, 설사, 장티푸스, 식중독, 백일해 등)에만 작용하는 항생제:
폴리믹신, 콜리스틴
#3 그람 음, 양성균에만 작용하는 항생제: 세팔로친, 세팔로리딘, 스펙티노마이신
#4 그람 음, 양성균과 항산성균(결핵성 질환)에만 작용하는 항생제:스트렙토마이신,
가나마이신, 네오마이신, 사이클로세린
#5 주로 그람 양성균, 리케치아, 바이러스에 작용하는 항생제:에리스로마이신, 로이
고마이신
#6 주로 그람 음, 양성균, 리케치아, 바이러스에 작용하는 항생제:클로람페니콜, 테
트라사이클린, 겐타마이신, 메타사이클린, 독시사이클린
#7 곰팡이, 원충에 작용하는 항생제:트리코마이신, 나이스타틴, 그리세오풀빈, 암포
테리신
#8 항암 작용이 있는 항생제:사르코마이신, 마이토마이신, 크로모마이신, 불레오마
아신
이렇게 항생제의 종류가 많은 것은 바로 사람의 몸 안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
의 종류도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항생제의 종류는 이와 같이 복잡다양하기 때문에 병
원균의 종류, 내성, 감수성, 부작용에 대한 예민성 등을 과학적으로 시험하는 균검사
를 통하지 않고 항생제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시판되고있는 내복 항생제의 종류는 약 50가지이며(성분으로만 나누
어서), 1포장 단위도 50mg, 100mg, 150mg, 250mg, 300mg, 400mg, 500mg 등 매우 다
양하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항생제가 시판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병원균도 다
양하고 그에 대한 항생제의 효과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항생제와 인간의 수명
항생제의 숫자가 이렇게 많은 것은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다양하게 기여하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기도 하다. 먼저 항생제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약인지 인간의
수명 연장의 역사를 통해 알아보기로 하자.
1991년의 우리 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남자 68세, 여자 76세라는 통계가 일전에
보고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 산다는 일본의 평균 수명을 보면 남자 79세, 여자 86
세를 근접하고 있다고 한다.
1905년~1910년 사이에 실시된 인구조사에 의하면 당시의 평균 수명이 남자 22.4세,
여자 24.2세로 나타났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22여 년밖에 못 살았다는 말은 아니다.
영유아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평균 수명을 많이 단축시킨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연장된 수명과 증가된 삶의 기회는 어디에서 비롯 되었을까?
이 수명 연장의 역사를 뒷받침해 주는 요소들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그 많은
요소들 중에서 항생제와 그의 선조 백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사망요인이 정부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조사되기 시작한 것은 전
쟁이 끝나던 해인 1953년부터였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얼마되지 않아서 발발한 전쟁
때문에 그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사망이나 출생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것
이다.
1953년 처음으로 실시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사망요인 조사에서 가장 큰 요인으로
드러난 것은 결핵이었다. 그리고 폐렴과 기관지염이 4위로, 감염 및 기생충성 질환이
8위로 드러났다. 그리고 당시의 평균 수명은 남자 48세, 여자 53세 정도였다.
1958년~1959년 사이의 주요 사망요인 중 1위는 폐렴 및 기관지염이었고 2위는 결핵
으로 드러났다. 이때는 폐렴 및 기관지염으로 인구 10만 명에 73.8명이 사망하였고,
결핵으로 인구 10만 명에 39.5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1966년~1967년 사이의 주
요 사망요인 1위는 역시 폐렴 및 기관지염이었고 2위는 결핵으로 드러났다.
1974년의 주요사망요인에서는 큰 변동이 일어났는데 악성신생물 즉 암이 제1위로 부
상되었고, 폐렴 및 기관지염은 4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1980년에는 결핵이 제8위가 되었을 뿐 폐렴은 10위에도 들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큰 변화의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즉 영양상태의 개선, 주거환경
의 개선, 교육수준의 향상 등 많은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
을 끼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항생제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위의 사망
원인에서도
보았듯이 수명 연장의 역사 이면에는 각종 균을 정복한 역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초의 평균 연령을 22~3세로 묶어 놓았던 것은 다름아닌 '염병' '괴질' '역질'과
같이 각종 균에 의한 질병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항생제의 사촌 맏형, 천연두 백신
이렇게 항생제가 우리들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러면 이러한 항생제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발전되어 왔는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 항생제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주의할 점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항생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그의 사촌 형뻘 되는 백신에 대
해 잠깐 언급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백신은 주로 우리들에게 왠지 두렵고 아픈 불주사 같은 예방 주사로만 인식되어 있
지만, 요즘은 소아마비나 장티푸스 백신과 같이 먹는 형태로 개발되어 있기도 하다.
백신이 처음으로 이용된 것은 천연두를 퇴치하기 위해 이용된 인두법으로, 500년경
중국에서였다. 즉 천연두를 앓고 있는 환자의 상처에서 고름을 약간 채취하여 천연두
를 앓지 않은 건강인에게 상처를 내고 발라 주는 이독제독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
러한 이독제독의 인두법이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이열치열'의 방법을 응용한 '우연한 경험적 발견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이와 같은 인두법은 중국에서 아랍을 거쳐 아프리카와 유럽(1700 년경)으로 전해졌
으며, 또다시 미국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인두법이 전해지면서 인두법이 법적으로 제도화되기도 했으나(1760 년경 워
싱턴 장군은 모든 미국 군인에게 접종을 받도록 명령), 그의 부작용에 대한 논란도 적
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두를 통해 천연두가 오히려 악화되어 죽는 일이 벌어졌을 뿐
아니라, 천연두를 앓는 환자에게 천연두가 아닌 다른 질환이 있을 경우에는 천연두를
피하려다 다른 질환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영국의 시골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가 사람이 아닌 소에서 고름을 채취
하는 방법 즉 '우두법'을 1798년에 발견해 냄으로써 천연두와 인간의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우두법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흉한 반흔으로부터 구해 냈
다. 우두법은 인두법이 전달된 경로를 반대로 밟아 중국으로 유입되었으며, 마침내는
우리 나라에도 정약용과 지석영에 의해 우두가 시술되었다. 우두종두가 우리 나라에서
얼마나 널리 실시되었는가는 1911년 6월 당시 전국의 종두업자 수가 1,135명에 달했다
는 사실만 가지고도 넉넉하게 알 수 있다.
1798년 시행되기 시작한 우두법 이래로 180년이 지난 1977년, 드디어 이 지구상에서
천연두는 사라졌고 국제보건기구에서는 천연두가 퇴치되었음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요즘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우두를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곰보 자국을 지닌 아이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천연두 백신인 우두법이 시행되면서 다른 전염병의 백신도 함께 개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오해이다. 천연두 백신에 이어 두번째로 백신
이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90 년이나 지난 1881년이었다.
백신과 항생제
1880년 당시 미생물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 낸 파스퇴르와 동료 과학자들은
드디어 한 세기 전 1789년에 그들의 선배인 제너가 발견한 종두법에서 힌트를 얻어 탄
저병 병원체의 시체(사균)를 이용해 탄저병 백신을 만들었다. 그 후에 다른 전염병의
백신들은 빠른 속도로 개발되어 나갔고, 당시 만연하던 각종 전염병도 퇴치되기 시작
하였다.
그러면 우두에 이어 두번째의 탄저병 백신이 개발되기까지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파스퇴르와 동료 과학자들이 전염병은 병원균이라는 미생물에 의해서 발생, 전염된
다는 '전염설'을 확립하기 전, 유럽에서는 상당히 우랫동안 '장기설'이 유력한 전염병
발병이론으로 일반화되어 있었다. 즉 전염병이 썩은 공기에서 발생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장기설은 식민지와의 무역으로 돈을 번 당시 권력층에 의해 강력히 지지되고
있었다. 만약 전염설이 확립될 경우 모든 항구에서 검역과 격리가 실시되어야 하는데,
무역을 하는 자신들에게 불편과 불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 확실하였으므로 전염설이 확
립되지 못하도록 모든 압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전염설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현미경을 통해서 균의 존재를 밝히
고, 한천배양액에 균을 배양시키는 등의 방법을 이용해서 세균의 존재를 확실히 증명
하고, 또한 그 세균이 질병을 일으키는 감염원이라는 사실을 밝혀 내야만 했다.
진실과 권력 사이에서 파스퇴르나 코흐 같은 과학자들은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어,
드 디어 세균의 존재와 세균 때문에 전염병이 발생된다는 사실을 밝혀 내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과학자들의 노력에 무려 300년이나 앞서 1590년경 폴란드의 얀센이라는
사람이 현미경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제너가 우두법을 개
발할 때는 현미경을 통한 실험은 실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단 전염설을 입증시킨 과학자들은 그에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연구
와 노력의 목적이 인간을 질병에서 구해 내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실험과
관찰 그리고 천연두 백신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통해, 인류를 각종 전염병으로부터 구
출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던 백신도 개발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백신 개발의 시대로 접어들 당시에는 아직 백신이 어떤 기전으로
면역을 형성하게 되는지 정확하게 규명하지는 못한 상태였고, 다만 경험적으로 우두의
방법을 빌려 와서 이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백신이 면역을 형성하는 기전은 생리학과
병리학이 더 발전한 후에 밝혀졌는데, 병원균의 시체나 생균을 약화시킨 것(항원이라
고 부른다)이 우리 몸에 들어가면, 그것을 무독화시킬 수 있는 항체가 생성되는 기전
으로 면역이 형성된다.
백신이 개발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예방 주사를 통해 전염병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전염병과 세균의 감염을 백신으로
막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전염병에 대한 백신이 개발된 것은 아니었고, 예방 주사를 접종하고도 감염되
는 예도 많았으며, 또한 모든 사람이 모든 예방 주사를 맞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백신이 개발되고 나서도 전염병의 유행은 계속되었고, 사망자수가 상당히 줄
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물론 '606호' 같은 화학요법제가 이미 개
발되어 사용되기는 했지만 부작용이 많았고 치료 효과도 화실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이 개발된 것인 항생제이다.
최초의 항생제는 1928년 플레밍 박사가 푸른곰팡이에서 개발한 페니실린으로, 후에
2차대전 당시 수상이었던 처어칠 경을 폐렴에서 극적으로 구출해 낸 사건은 많은 사람
들이 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백신과 항생제가 사촌뻘이라는 이유는, 모두 전염설이 확립된 후 그 과학적
근거에 의하여 병원균과 전염병의 관계, 병원균의 증식 과정, 병원균의 약점 등을 연
구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산물이라는 점에서이다.
플레밍 박사와 페니실린
1881년 영국의 농촌에서 가난한 농부의 9남매 중 여덟번째로 태어난 알렉산더 플레
밍은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런던으로 나와 공예학교 상업과를 졸업했다. 그
리고는 5년간 상선회사에 다니다가,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여 의과대학 시험에 전국에
서 1등으로 합격하고 1901년 10월 런던 세인트 메어리즈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플레밍이 가장 흥미를 느낀 과목은 세균학이었다. 그
무렵 프랑스에서는 파스퇴른 독일에서는 코흐 등의 위대한 세균학자가 나와서 여러 가
지 전염병의 병원체를 발견해 내는 동시에 예방 접종 백신을 만드는데 성공하여 의약
학 연구에 모범이 되고 있던 터였다. 또한 세인트 메어리즈 의과대학 교수 중에는 유
병한 세균학자인 암로드 라이트 박사가 있었다.
라이트 교수의 연구실인 예방접종연구실에 드나드는 가운데 플레밍은 '나도 세균학
을 연구하여 파스퇴르처럼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법을 발견하자!'라고 결심하게 되
었고, 강의시간이 끝나면 언제나 라이트 교수의 연구실에서 현미경과 씨름하게 되었
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1928년 어느 날, 플레밍은 세인트 메어리즈 대학병원의 연
구실에서 포도상구균을 연구하고 있었다. 포도상구균을 연구하기 위해 그 균을 한천이
담긴 유리접시에 배양하던 중, 유리접시에 푸른곰팡이(학명:페니실리움 노타툼)가 번
식되 어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플레밍이 그 유리접시를 쓰레기통에 버리려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푸른곰팡이가 생긴 곳에는 포도상구균의 무더기가 말
끔히 없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거참 이상한 일이다. 푸른곰팡이가 있는 곳에 포도상
구균이 없다면, 혹시 푸른곰팡이에서 생긴 물질이 포도상구균을 없애 버리는 힘을 가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플레밍은 그때부터 자나깨나 푸른곰팡이와 씨름
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플레밍은 마침내 푸른곰팡이로부터 포도상구균이나 폐렴균을 없애는 물질
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고 그 물질을 '페니실린'이라고 이름지었다. 항생 물질 제1호이
자 의약연구에 혁명적 변화를 초래한 페니실린은 이렇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
었다.
그러나 플레밍 박사가 분리하여 사용한 균주는 배양액 1ml당 1~2단위의 페니실린밖
에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그 실용성은 대단히 미약했다(페니실린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보통 1회에 30 ~60만 단위가 사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페니실린이 태어난 후에도 10여 년간은 그다지 큰 각광을 받지 못하였다. 그
런데 1939년 2차대전이 일어나자 병사들의 부상으로 인해 페니실린의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또한 1941년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게 되자 미국 정부는 미국의 한 제약회
사에게 거액의 자본은 투자하면서 페니실린을 대려 생산할 것을 요구하게 되었고, 마
침내 몇 톤이나 되는 커다란 탱크에서 페니실린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작업 과정도 단순화되고 그만큼 노동력도 덜 들게 되었으며 따라서 생
산비도 낮출 수 있게 되었다. 2차대전 동안 수많은 군인과 일반인들이 페니실린으로
목숨을 건지고 감염증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페니실린의 형제들
페니실린이 생산되기 시작한 초기의 형태는 주사제였다. 먹을 경우에는 위산 때문에
파괴되어 효과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페니실린은 독성이 극히 적은 항생제이며 치료
효과가 아주 강하여 그야말로 이상적인 영약으로 전세계에 보급되었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페니실린 쇼크' 라는 무서운 부작용(페니실린 사용 후 발열, 피부감각 이상,
호흡곤란, 두드러기, 혈압저하, 의식상실, 무기력이 나타나고, 심한 경우 10분 이내에
사망하기도 한다)이 발생했다. 또 페니실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내성'을 가진 포도상
구균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내성균의 비율은 점점 높아져 갔다.
따라서 이러한 페니실린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기울여
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페니실린이 개량되기 위해서는 그
의 구조를 알아야만 되는데, 미국과 영국이 합동으로 연구하여 페니실린의 구조가 확
정되고 마침내 여러 가지 신페니실린(페니실린의 동생들)이 개발되었다.
더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하는 가운데 강력한 효과를 가진 페
니 실린 G가 태어났다. 또 주사약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
력하는 가운데 페니실린 G가 태어났다. 그러나 페니실린 G도 페니실린 V도 내성균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가 없어서 약 50여 가지의 페니실린의 동생들은 더 생
겨나야만 했다.
항생제의 족보-항생제의 세대교체
항생제 중 가장 먼저 세상에 태어난 페니실린은 주로 그람 양성 구균에 대한 효과가
뛰어났는데 점차로 효력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세균이 페니실린에 대한 저항력을 가
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포도상구균이 쉽게 내성을 갖게 되어 페니실린으로 치료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성 포도상구균은 페니실린 분해 효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내성 포도상구균용 페니
실린은 페니실린 분해 효소에 의해 분해되기 힘든 성질을 가지도록 개발한 것이었다.
이렇게 개발된 내성 포도상구균 페니실린에는 메치실린(주사약), 옥사실린(내복약, 주
사약), 클 록사실린(내복약, 주사약) 등이 있는데, 이들을 신페니실린이라고 통칭한
다.
페니실린이나 신페니실린은 주로 그람 양성구균에 작용하는 사용 범위가 좁은 항생
제였다. 따라서 그람 음성간균에 대해서도 유효한 페니실린을 만들어 내게 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암피실린(내복약, 주사약), 아목시실린(내복약), 탈암피실
린(내복약), 바캄파실린(내복약) 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사용범위가 넓은 페니실 린으
로 반합성 페니실린 또는 스펙트럼 페니실린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더욱 사용범위가 넓은 페니실린들도 많이 개발되어 페니실린계 항생제는
현저한 진보를 이루어 왔지만 연쇄구균이나 폐염구균과 같은 그람 양성구균에는 처음
개발된 페니실린이 가장 효력이 크다. 이러한 효력의 차이는 항생제를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균검사를 통하여 적절한 항생제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이렇게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계 항생제를 생산하면서, 또 다른 곰팡이에서도 항
생 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는데, 방선균(학명:스트렙토마이세스), 사
상균(학명:세파로스포리 움) 등이 바로 그들이다.
방선균에서 산출한 스트렙토마이신은 1945년에 등장하여, 그 이전에 사용되고 있던
화학요법제와 함께 결핵치료에 특효약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제하였다. 또한 일반적으
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에리스로마이신이나 테트라사이클린 같은 항생제도 같은 종류
의 균에서 생산되는 종류이다.
사상균에서 산출하기 시작한 '세펨계 항생제'는 광범위 페니실린계 항생제와 유사한
작용을 하는 항생제로서 페니실린계 항생제보다 매우 유리한 장점이 있는데, 즉 내성
균에 대해서도 강한 살균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매우 독한 항생제로 알려져 있
는 세펨계 항생제는 세프라딘(상품명:브로드세프), 세파드록실(상품명: 듀리세프)과
같이 내복약으로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현재 병, 의원에서 주사제로
가장 많이 쓰이는 항생 물질이다.
특히 세펨계 항생제는 세대 구분이 있어 제1세대, 제2세대, 제3세대에 이어 지금은
제4세대의 제품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세대의 차이는 항생제의 유효범위를 점
점 넓혀 나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형성되었는데, 세대수가 높을수록 항균범위도 넓고
항균효과도 강력한 것이다. 따라서 원인으로 되는 균이 불명인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
는 항생제는 많아져서 일면 의약학의 발전을 느낄 수 있기도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원인균을 조사하여 그에 대해서만 가장 효과가 좋은 항생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
이다. 우선 편리하다고 처음부터 제3세대에 속하는 광범위 항생제(이는 모두 주사제인
데, 세포탁 심등이 있다)를 안이하게 사용하다가 내성균이 생기게 되면, 결국에는 치
료할 약이 없어지는 불행을 당하게 된다. 항생제 사용을 잘못한 결핵 환자 중에는 돈
을 쌓아 놓고도 치료할 약이 없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병원에 가서 무턱대고 빨리 낫게 독한 주사를 놓아 달라고 말하면 제3세대 항생
제 주사의 사용을 자청하는 것이 되니, 이런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면 이렇게 내성을 비롯한 항생제의 부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왜 존재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항생제와 같이 오는 불청객 1-내성균의 조성
1942년 미국의 제약회사에서 페니실린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백신과 항생제
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인류를 세균의 무서운 위협 속에서 구해 내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류에게 소중한 존재인 백신과 항생제에도 예기치 않은 현상이 발생하
게 되었으니, 그것은 곧 쇼크를 비롯한 부작용이다.
외국의 경우 백신과 항생제를 비교해 볼 때 백신은 대부분 예방 주사의 형태로 병원
이나 보건소 등에서만 제한하여 접종하며 경구 투여(먹는 약)의 형태라도 마찬가지이
다. 따라서 일반 환자나 소비자가 쉽게 접할 수도 없을 뿐더러 발생되는 부작용에 대
해서도 병원을 비롯한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항생제는 약국을 통해 특별한 제한 없이 판매되고 있기 때문
에, 소비자가 쉽게 접할 수 있어, 항생제로 인해 발생되는 부작용에 대해서 적절한 대
처를 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의약분업이 되지 않은 우리의 상황에서는 항생제에 대
해서 이해하고 항생제로 인한 분작용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환자와 소비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항생제를 오, 남용했을 경우 발생될 수 있는 부작용으로는 쇼크, 내성균의 조성, 균
교대현상,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혈액 장애, 간 장애, 위장관출혈, 청각 장애
등이 있다. 또한 최근의 새로운 항생제 주사 중에는 술과 함께 복용했을 때 심각한 장
애를 일으키는 것도 있다. 이렇게 많은 부작용은 비단 항생제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
지만 그 중에서 내성균의 조성, 균교대현상,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 등은 항생제에만
존재하는 심각한 부작용이다.
내성균이라는 것은 특정한 항생 물질에 반응하지 않고 질병을 일으키게 되는 균을
말한다. 특정 항생 물질에 반응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세균이 그 항생제를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어떤 특별한 상황, 예
를 들어 춥다든 가, 배고프다든가, 권투선수의 경우처럼 많이 얻어 맞는다든가 했을
때, 그에 대해 적응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과도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내성균이 생기는 이유는 첫째 감염원이 된 세균을 정확하게 파괴시킬 수 있는 항생
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세균에 감염되면 아무 항생제나 사용하기 이전에 먼
저 감염된 세균이 어떤 종류인지, 어떤 항생제에 의해서 파괴될 수 있는지 균검사를
먼저 해 보고 선택해야 하는데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사용하게 되면
쓸데없이 많은 항생제를 사용하게 되고, 그렇게 많이 사용한 항생제를 이길 수 있는
내성균이 또 발생된다는 것이다.
둘째 항생제의 사용량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항생제의 사용량은 세균을
죽일 만큼만 사용되어야 한다. 6시간마다 1알씩 복용하게 되어 있는 규정을 무시하고
빨리 낫고 싶다고 4~5시간마다 2~3알씩 복용한다고 해서 세균이 깡그리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흙에 비료를 준다고 생각해 보자. 식물이 빨리 자라는 것을 소원한
나머지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식물은 빨리 자라기는커녕 오히려 죽어 버리고, 땅마저
썩어 버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항생제의 주어진 사용량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고
많이 사용하게 되면 병은 낫지 않고 오히려 그 항생제를 이길 수 있는 내성균이 발생
된다.
셋째 항생제의 사용 시간 및 사용 기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 시
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핏속의 항생제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기 어려워진다. 핏
속의 항생제 농도가 유효치 이하로 떨어지면 죽어 가던 세균은 전세를 가다듬어 새로
이 인체를 공략 한다. 그렇게 세균으로 하여 인체를 공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질병
이 호전되지 않으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약을 사용하게 된다. 그 결과 질병이 다
나은 후에 또 다른 질병에 감염되면 처음부터 높은 단위의 항생제를 사용해야 하게 되
는 것이다. 또한 세균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사용해야 하는 기간을 지키지 않고 증
상만 호전되었다고 사용을 중지하게 되면, 마치 꺼져 가던 불씨도 조심하지 않으면 불
이 나는 것처럼 죽어 가던 세균이 다시 살아나 질병은 또다시 기승을 부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약을 사용하게 되어 내성균
이 생성되는 것이다.
내성균이 생기게 되면 환자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감염되는 경우가 생기
는데, 이렇게 간접적으로 내성균에 감염된 사람은 처음부터 고칠 약이 없어 고생하게
되니 소위 '약공해'라고 말할 수 있다. 성병이나 결핵균의 경우는 그러한 내성균이 특
히 많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가령 매독은 옛날에는 코의 연골을 침범하여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었는
데, 요즈음은 그런 사람은 볼 수 없기 때문에 매독이 없어진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요즘의 매독 병원체는 내성이 생기고 변질되어 옛날처럼 코를 떼지는 않지만,
주로 신경에
들러붙어 신경매독(뇌와 척수의 장애 유발)을 만드니 더욱 치료하기 힘들고 무서운 질
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교차내성의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교차내성이란 특정 약제에 대해
서 내성이 생겼을 때 그 약제와 화학적 구조나 작용기전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약제에
대해서도 공통적인 내성을 나타내는 성질을 말한다. 예를 들면 테트라사이클린과 오레
오마이신, 애클로마이신, 클로로마이세틴은 서로 교차내성의 가능성을 가진 항생제이
다.
항생제와 같이 오는 불청객 2-균교대현상
우리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의 방어력이다. 신
체의 방어력을 유지하는 요소로는 병균이나 독소 등의 항원이 꼼짝하지 못하게 결합해
버리는 항체와, 병균을 먹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백혈구, 그리고 신체가 외부와
접촉되는 부위에서 세균을 직접 죽이는 각종 물질이 있다. 눈에는 눈물이, 코에는 콧
물이 액체의 상태로 세균의 침입을 막아내고 있다. 또한 귓속이나 기관지와 같은 부위
에서는 털이 세균을 막아내기도 하고 위에서는 강한 산성의 소화액이 세균을 죽이기도
한다.
또한 우리 몸에 나쁜 세균을 잡아먹는 유익한 균이 항상 존재하여 우리 몸이 나쁜
세균에 감염되는 것을 막아 주는 부위도 있는데, 바로 입 속과 창자 특히 대장, 그리
고 여성의 질이 대표적인 곳이다.
그런데 항생제를 많이 오래 사용하게 되면 무차별 폭격으로 우리 몸에서 일종의 파
수병 노릇을 하고 있는 유익한 균까지 깡그리 죽여 우리의 몸은 완전한 무균상태에 이
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평상시에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던 바이러스나 대장균 또는
곰팡이균 같은 것들이 덤벼들어 고치기 힘든 질병을 일으킨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균
교대현상이라고 한다.
항생제를 오랫동안 사용하는 사람에게서 구내염과 같은 입 안의 염증이나, 설사나
변비와 같은 대장 이상 증세, 여성의 경우 세균성 질염이나 다른 염증을 치료하려다가
질 속에 칸디다라는 곰팡이가 번식하여 매우 가렵고 끈적끈적한 분비물이 많아지는
등, 완치가 어 려운 증세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 바로 균교대현상으로 인한 질병이다.
구내염은 그 자체로는 위험한 질병은 아니지만 입 안이 헐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말하기도 어렵고 음식을 먹기도 어려운 매우 귀찮은 증세이다. 또한 대장균
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매일매일 섭취되므로 일단 균교대증에 의해 대장 이상이 발
생하게 되 면 치료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특히 여성의 질에서 발생되는 균교대증은 성
접촉이 없는 미혼 여성에게서도 발생되기 쉬운데, 이는 본인에게도 당혹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치료하는 데 매우 큰 어려움이 따르는 불행한 일이다.
항생제와 같이 오는 불청객 3-유전자에 대한 작용
항생제는 유전자에도 작용을 한다. 특히 그러한 작용은 사상균류로부터 만들어지는
항생제인 테트라사이클린, 클로람페니콜 등인데, 이러한 항생제는 세균의 단백질 합성
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세균에 의한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람이 이러한 항생제를 사용하면 세균의 단백질
합성만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핵의 유전자를 변질시키는데, 임신한 부인이 항생
제를 사용하면 기형아를 낳고, 보통사람의 경우에는 암세포로 발전하기도 한다.
물론 임신한 부인은 모든 약을 섭취할 때 매우 신중해야만 한다. 특히 항생제의 경
우 더욱더 조심해야 하는데, 임신중에 가나마이신을 사용하면 태아의 제8뇌신경을 손
상시켜 청각 장애아를 낳게 된다. 또한 임신중에 테라마이신을 복용하면 태아의 이가
황색, 회색, 갈색 등으로 변색되는데 이러한 변색은 영구적이다. 그 밖의 항생제들도
많은 양을 사용한 동물실험에서 기형이 발생했다는 실험결과가 나와 있다.
임신한 부인에 대한 항생제의 부작용은 이제 모자보건교육이 확산되면서 상당히 줄
어들고 있다. 그러나 보통사람의 항생제에 의한 암세포 유발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부
각되어야 한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나라의 가장 큰 사망요인은 결핵이나 폐렴 같은 감염성 질
병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와서는 가장 큰 사망요인으로 암이 부상되었다. 이와 같
은 변화와 더불어 사망률도 현저히 낮아졌고 평균 수명도 연장되었는데, 이러한 변화
를 긍정적인 것으로 본다면 항생제는 수훈갑의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렇게 고마운 항생제가 발암 물질이 될 수 있다니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2차대전이 한창일 무렵에 새로이 개발된 두 가지 위력적인 물질이 있다는 소문이 항
간에 떠돌았다고 한다. 그 하나는 원자폭탄으로, 성냥갑만한 것이 인간의 상상을 넘는
폭발력을 통해 결국 일본을 패망시켰다. 나머지 하나는 항생제로서 폐렴등으로 죽어
가던 사람을 살려 놓는 위력 때문에 '약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원자폭탄이 예기치 못했던 방사능으로 인해 수많은 후유증을 낳았고 그 중에
서도 특히 발암성이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처럼, 항생제에도 쇼크나 위장관
출혈 등과 같이 사용 후 바로 나타나는 부작용보다는 발암성이 이제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항생제 사용에 있어서 명심할 점들
우리 나라에서 시판되고 있는 항생제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적용범위도 다르다.
더구나 1회에 사용하는 단위는 성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100mg에서부터 1,000mg까지로
10배 가량 차이가 있으며, 1일 사용 횟수도 1일 1회에서부터 1일 6회까지로 사용법이
다양하다.
이렇게 항생제의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단위를
나타내는 수치가 크면 독한 항생제라는 통념을 갖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통념은
옳지 않다. 더구나 비싼 항생제가 독한 항생제는 더더욱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병
균을 죽일 수 있는 항생제가 바로 가장 독한 항생제이다.
따라서 항생제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먼저 균검사를 통하여 적절한 항생제를 찾
아야 내성균이 생기지 않고 최단 시간에 치료를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병이
나 피부병이 부끄럽다고 병원에 가기를 주저하여 아무 항생제나 사용하면 절대로 안
될 것이다. 병, 의원에서 염증을 치료할 때에도 균검사를 하지 않고 항생제를 처방하
지 않도록 균검사를 요구하자. 균검사는 귀찮고 쑥스러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
는 의식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환자가 요구하는 균검사를 거절할 권리를 가진 의사
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처방된 항생제는 사용 횟수와 사용 간격을 정확하게 지켜야 함을 명심해야 한
다. 만약 바쁘다든가 실수로 횟수와 간격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아서 염증의 치료가 정
상적 과정을 밟지 않게 되면, 치료를 위해 처방되는 항생제의 단위가 점점 높아져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유발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치료가 완전하게 끝날 때까지 항생제를 사용하여야 한다. 치료가 덜 끝난 상
태에서 증상만 없어졌다고 투약을 중단하면 병균이 잠복해 있다가 그 전보다 더욱 심
하게 발병할 가능성도 있고, 아울러 다른 장기에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시판이 중지되었거나 신중히 사용되고 있는 항생제가 처방되었을 경우에는
다른 항생제로 바꾸어 처방할 것을 요구해 보자. 왜냐하면 항생제를 처방하는 의사 모
두가 의약 정보에 신속하지는 않고, 무엇보다 내 건강과 내 생명은 내가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시판이 중지되었거나 신중히 사용되고 있는 항생제
플루클록사실린(상품명: 플록신)
플루클록사실린을 사용하면 황달을 비롯한 간손상을 일으킬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사
실이 호주의 임상연구팀에 의해 발표되었다. 특히 노인 환자나 2주 이상 장기 복용자
에게는 이런 위험이 월등히 높은데, 클록사실린이나 디클록사실린도 비슷한 부류이므
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하였다.
린코마이신(상품명:린코마이신, 린코신), 클린다마이신(상품명: 클레오신, 클린다마
이신)
린코마이신과 클린다마이신을 사용하면 클로스트리디움균과 그 세포독의 내성균이 자
라나서 생기는 위막성 대장염을 유발시켜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꼭 필
요한 경우에만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클로람페니콜(상품명:신도마이세틴, 헤로세친, 네오세친-비) 클로람페니콜은 세균성
장염인 이질에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으나 부작용으로 조혈기관인 골수기능이 저하되어
치명적인 재생불량성 빈혈을 일으키므로 선진국에서는 뇌수막염, 장티푸스, 로키산 반
점열 등 부작용의 위험보다 그 효과가 뚜렷한 경우에만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즉
폐렴, 이질, 성병의 치료와 특히 예방의 목적으로는 절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
으며 거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에리스로마이신(상품명:에리신, 에리스로-피, 아이로손, 스테판, 프로마이신, 이 -
마이신 좌약) 에리스로마이신은 간에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선진국에
서는 등록이 취소되어 생산이 금지되었다.
테트라사이클린은 우유 및 유제품과 킬레이트 화합물을 만드는 성질이 있어, 이들을
함께 섭취하면 항생제의 효과는 떨어지게 된다. 밥 대신 우유와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
하고 항생제를 복용하려고 한다면 그 항생제가 테트라사이클린이 아닌지 먼저 확인해
보자. 대부분의 항생제는 위벽을 직접 공격하는 성격이 있다. 위장병을 앓고
있거나 평소 위기능이 나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항생제와 더불어 위보호제를 함께
복용하고, 위기능이 나쁘지 않더라도 가급적 식후 30분이나 식직후의 규정을 지키도록
하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항생제를 발견하기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던
제너, 파스퇴르, 코흐, 플레밍 등과 같은 선각자들의 뜻을 이어가는 데는 두 가지 길
이 있다.
그 하나는 과학자나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몫으로, 그들 선각자들이 살았을 당시에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던 전염병과 용감하게 싸웠던 것처럼, AIDS와 암 그리고
환경 오염으로 인한 질병 등 현재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항생제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의 몫이다. 항생제는 땅에서 솟아난 것
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다. 항생제는 전염병이나 감염증에 걸려 있거나 걸릴 가
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장기설을 신봉하던 동료과학자들의 질시나 상
업자본가들의 위협 속에도 굴하지 않은 용기 있는 과학자들의 땀의 결실이다. 따라서
항생제를 사용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화하게, 신중하게,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항
생제의 오,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노력을 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의 뜻
을 이어 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들도 무덤 속에서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해 주기를 기원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항생제의 짝꿍 소염제
항생제에게는 소염제라는 협조자가 존재한다. 항생제가 병균을 직접 죽이는 작용을 한
다면 소염제는 병균과 체내 방어 체계가 투쟁하면서 만들어 낸 고름이나 체액, 찌꺼기
같은 것을 없애는 작용을 하여 치료가 신속하고 완전하게 되도록 돕는 작용을 한다.
다래끼가 났을 때 항생제만 사용하면, 고름이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서 부은 것이
없어지지 않아 고생하기도 하는데,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소염제를 같이 사용
해야 한다.
소염제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효소로서 단백질과 섬유소 등을 분해하
는 작용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해열 진통 소염제로서 열을 일으키고, 통증을 일으
키며, 충혈과 부종 즉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인 '프로스타그란딘'이 합성되는 것을 막
는 작용이 있다.
먼저 소염 효소제를 살펴 보면 '세라치오펩티다제'(상품명:단젠)와 '브로멜라인'과
'결정트립신'의 혼합제제(상품명:기모타부) 등이 있다. 병균이 우리 몸 안에 들어오면
항체나 백혈구 또는 리소짐과 같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방어 체계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이러한 싸움의 결과 죽은 시체들이나 부러진 무기들이 바로 고름이나
진물의 형태로 우리 몸 안에 고여 통증이나 부종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불편한 감각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름이나 진물의 성분을 좀더 자세히 분석해 보면
그것들은 대부분 단백질이 변성된 변성단백이거나 섬유소의 괴사 물질 그리고 그러한
물질 주변에 갇혀 있는 물 등이다.
만약 그러한 병균과 우리 몸의 싸움이 경미하게 일어나서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면, 싸움의 결과 만들어진 고름이나 진물도 소염 효소제의 도움 없이 자체적
으로 청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몸에 침입한 병균이 아주 많고 또한 증식 속도가 매우 빠른 독한 균이
라면 우리는 항생제의 도움을 받아 그것들을 처치해야 하는데, 항생제의 도움으로 독
한 균이 모두 죽게 되었다면, 세균과 항생제와 백혈구들의 싸움의 잔해를 청소하는 것
도 소염 효소 제의 도움을 받는 것이 병을 빨리 낫게 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왜냐하
면 아무리 병균이 다 죽었다 하더라도 고름이나 진물이 남아 있으면, 우리 몸은 계속
통증이나 갑갑함으로 고통을 느끼게 되고, 치료가 덜 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염증을 치료하고 병균을 죽이기 위해서 항생제를 사용할 때 함께 소염 효소제도 사
용하게 되면, 항생제가 죽인 병균의 시체를 소염제가 바로바로 청소하기 때문에, 통증
도 줄 뿐 아니라 항생제의 공급도 원활해져서 병균을 죽이는 데 드는 시간이 단축되는
효과도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소염 효소제의 작용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1 병균이 있는 장소(병소)와 그 주변의 섬유소가 망가진 물질(괴사 물질) 및 고름
을 분해, 청소시켜 회복을 촉진한다.
#2 세균이 침입하여 염증이 생겼을 때, 염증 부위에 나타나서 발열과 통증을 일으키
는 물질인 '브레드키닌' '프로스타그란딘' 등을 분해시킨다.
#3 우리 몸에 원래 존재하는 단백 분해 효소를 생성시킨다.
#4 항생제가 병소조직에 침투하기 쉽게 만든다.
#5 병소 주위의 체액 순환을 촉진하여 부종을 가라앉히고, 혈종을 응해, 제거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작용들이 있기 때문에, 소염제는 항생제의 짝꿍으로서 염증치료에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해열 진통제로 사용하는 약들도 소염 작용이 있는 종류가 많은데, 아스
피린이나 부루펜 그리고 폰탈과 같은 해열 진통 소염제들은 앞에서 말한 소염 효소제
와는 달리 프로스타그란딘의 합성을 저해함으로써 소염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해열 진통 소염제들은 세균의 침입이 원인이 되는 염증에 대해서보다는 외상이
나 충격을 받았거나 독물 등이 들어왔을 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 몸에서 방어적
으로 일어나는 염증의 소염 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왜냐하면 이들
해열 진통 소염제는 세균의 시체나 찌꺼기를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균이 침입하여 고열이 나고, 통증이 심할 때는 해열 진통 소염제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사람에게 사용하는 항생제, 가축에게 사용하는 항생제
약국에서 항생제를 사 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르
는 애완용 개나 고양이 또는 물고기에게 사용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떨 때는 직
접 강아지를 약국에 데리고 와서 "이 강아지가 눈곱이 끼고 밥을 잘 안 먹으니, 적당
한 항생제 좀 주세요" 하며 애처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 봄이 되면 길가에서
파는 노란 병아리를 몇 마리 사 와서 하룻밤 자고 나서 시들시들해 졌다고 항생제를
먹이는 꼬마들도 적지 않다. 또 어항에서 키우는 물고기를 위해서 항생제를 사는 사람
도 무척 많다.
일반적으로 약국은 사람을 위한 약을 파는 곳이지 가축이나 동물용 약을 파는 곳이
아니므로 약사로서도 곤란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아주 위독해서 가축병원으
로 보낼 정도가 아니면 대개 항생제를 사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항생제를 사용하는 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일 때는 키워서 잡아먹지 않기 때문에
괜찮지만, 애완용이 아닌 식용일 경우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이다.
원래 미생물에 의한 전염병이나 감염증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파스
퇴르가 1868년에 처음으로 병원균의 존재를 확인한 것도 인간의 질병이 아니라 누에고
치에게 병을 일으키는 연쇄 상세균이었다. 또한 코흐도 1876년에 소에게 탄저병을 발
생시키는 간균을 확인함으로써, 전염병의 원인으로서 장기설을 타파하고 미생물설을
결정적으로 확립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미생물에 의해 감염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백
신을 사용하고 이미 감염되었을 때는 항생제를 사용하여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다.
그러나 식용으로 키우는 동물에게 항생제를 사용하였을 경우에는 간접적으로 사람이
항생제를 사용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동물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어
항생제를 사용하게 되면 장차 사람에게 어떤 부작용을 안겨줄지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
지 않은 것이다.
특히 우리 나라는 최근 10~20년 사이에 식단이 많이 바뀌어 육류 소비의 증가가 두
드러지고 있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계란 등을 많이 먹게 되어 소, 돼지, 닭이
식용을 위해 대량 사육되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민물고기나 바다생선의
양어장이 대규모화되면서 이들이 사용하는 항생제의 양은 도저히 추적할 수 없을 정도
의 엄청나게 늘었다.
그러나 식용동물에 사용하는 항생제의 양을 알 수 있고 그 양이 엄청나다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그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규제 방법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항생제를 다
량 사용한 동물을 사람이 섭취하였을 때의 부작용에 대해서 연구된 적이 별로 없기 때
문이다.
1986년에 농수산부가 제정, 고시한 '동물약품규격규정서'에 기재된 동물약품 371개
품목 중에 항생제는 독시사이클린, 린코마이신 등 사람에게 사용하는 거의 모든 종류
가 다 망라되어 있다. 그런데 그러한 항생제의 설명에서 동물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적당한 용량 과 용법에 관한 언급만 있을 뿐, 그 항생제를 사용한 후 식용으로 사용했
을 때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몇몇 약에 대해서 가
축을 도살하기 며칠 전에 투약을 중지해야 한다는 경고만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그 경
고가 잘 지켜진다는 보장 은 없다).
일전에 유방염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사용한 젖소의 분유가 말썽이 된 적이 있다.
그리고 요즈음의 계란은 쉽게 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많은 주부들이 깨닫고 있다. 실
제로 산란용의 닭에게 독시사이클린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투약을 중지한 후 11일~19일
동안이나 독시사이클린이 계란 속에 g당 0.05㎍보다 많은 농도로 존재한다는 것이 밝
혀진 바 있다. 또한 염산린코마이신은 질병 치료용으로 사용 될 뿐 아니라 사료 첨가
제의 형태로 병아리, 브로일러 등의 성장 촉진, 체중 증가, 사료 효율 개선을 위해서
사용되기도 하며, 그 밖에 많은 항생제가 사료 첨가제로 사용된다니 더욱 놀랍다.
더구나 수입개방이 가속화되면서 외국산 육류가 더 많이 밀려들어 오게 되면, 그렇
잖아도 병든 소 수입으로 국민을 경악시킨 적이 있었는데 항생제를 잔뜩 사용한 육류
가 수입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보사당국은 가축의 항생제 사용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역학조사하며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식사할 수 있도록 조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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