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도 나는 조의 내분비선 가족의 한 가난한 친척쯤으로 취급되었다. 나는 맹장(충양돌기)이나 마찬가지로 진화의 유물로서 아무 쓸모없고 비생산적이며 도움은커녕 사고만 일으키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세월이 이렇게 빨리 변할 줄 누가 알았으랴! 갑자기 나는 열띤 의학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알레르기와 관절염에서부터 암과 노화현상에 이르는 광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다름 아닌 조의 흉선이다.
내 외모로 말하면 결코 멋지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종이성냥첩만한 크기의 볼품없이 생긴 조그만 회황색 조직덩어리가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의 두 폐 사이, 흉골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다. (조는 나의 친척을 먹어 보았을지도 모른다. 네크 스위트 브레드는 바로 송아지의 흉선이다.) 내 크기는 나이에 따라 변한다. 지금은 무게가 9g이 약간 넘지만 조가 태어났을 때는 나의 무게는 지금의 2배쯤 되었고 조가 사춘기에 이르렀을 때는 6배 가량이나 되었다.
나의 신묘한 기능이 새로이 인식된 요즘, 나는 흔히 '면역의 왕'이라고 불리고 있다. 면역이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병의 근원이 될 만한 외부의 침입자를 가려내서 파괴하려는 신체의 노력을 말한다. 이러한 외부의 침입자로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혈액형이 틀리는 피, 손가락에 파고 든 가시, 균류, 암세포, 독물, 이식된 피부 등을 들 수 있다. 조의 몸은 임전태세를 갖춘 병사들이 지키는 하나의 요새와 같다. 이 병사들은 모든 형태의 침입자, 즉 조에게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즉각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나라의 방위체제보다도 더 복잡한 조의 방위체제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나는 이 방위체제의 많은 구성요소들 비장, 임파결절, 골수, 편도선, 아데노이드(선증식 비대 특히 편도선이 부어 비대해지는 것 편집자 주), 맹장(충양돌기)이나 창자의 다른 부분들 역시 포함될 가능성이 있음 을 지원하고 뒷받침한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가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사실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즉 조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 있을 때는 내가 조의 심장은 물론, 조의 폐보다도 더 컸었다는 사실이다. 조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어머니의 혈액을 통해 받은 면역요인들을 제외하면 질병에 대해 거의 무방비상태었다. 어머니로부터 받는 면역요인들도 극히 짧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고 만다. 만약 조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내가 없었다면 가끔 이런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하지만 극히 사소한 세균감염만 되어도 생명에 커다란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또 발육불량의 병약한 유아로서 몇 달 살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있었기 때문에 어린 조는 곧 자기 힘으로 감염에 대항해 싸울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골수 속에 임파구라 불리는 미성숙의 세포 '묘목'인 수많은 백세포들을 지니고 있었다. 이 풋내기 전사 세포들이 혈류에 실려 나에게 보내졌다. 이 세포들을 빨리 키워서 비장과 임파계, 그 밖의 다른 기관들로 보내 완전하게 성숙시키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나는 또한 이들 기관에 호르몬자극제를 보내서 활동을 촉진시키는 일도 담당했다. 조가 태어나고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이미 어린 조의 면역성을 만들고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이 면역체계를 계속 관장해 오고 있다.
내가 만들어 낸 이 임파구들과 또 장기 어디에선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다른 무리의 임파구들은 비상한 재주꾼들이다. 이들은 탐정 노릇과 살해자 노릇을 겸하고 있다. 조의 백혈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이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고름을 만드는 포도상구균, 또 손가락에 파고 들어간 가시 등 온갖 잠재적인 적들을 즉각 알아본다. 적의 소재를 확인하면 이들은 즉각 비상을 건다.
조가 손가락을 베여 그곳이 약간 감염되었다고 하자. 내 임파구들에게는 '사소한' 감염이란 있을 수 없다. 이들은 즉각 항체를 쏟아내기 시작하고 다른 세포들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요청한다. 침입자에 따라 그를 담당하는 특수한 항체가 각각 따로 있다. 즉 이하선염에 대항하는 항체, 백일해와 싸우는 항체 등등이 별도로 있다. 조의 몸 안에는 그 기능이 서로 다른 항체들이 아마 100만 개쯤 있을 것이다. 이 항체들은 상처를 통해 침입해 온 세균들을 공격하여 죽인다. 한편 임파구는 식세포, 즉 혈액 안에 있는 백세포들과도 협력한다. 식세포들은 단순히 죽은 박테리아의 시체들을 먹어치운다. 이렇게 해서 조의 손가락상처는 별탈없이 아문다. 조는 이 과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상처가 낫기까지는 워털루전투와도 같은 대격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때때로 내 임파구는 위험을 과대 평가하고 지나치게 호전적으로 대응함으로서 갖가지 번거로운 증세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특정한 침입자 예를 들어 개쑥갓속 식물의 꽃가루 따위 에 대해 이처럼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레르기라고 한다. 다른 사람처럼 조도 몇 가지 가벼운 알레르기가 있어 괴로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 알레르기들은 최소한 조에게 자신의 면역체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조는 두 가지 면역체계를 갖추고 이다. 하나는 아마도 그 본부가 창자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주로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들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내 임파구들인데 임파구도 물론 일부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들과 대항해 싸우지만 주된 적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과 갖가지 형태의 균류감염, 그리고 이질적인 조직 등이다. 가령 조가 어느 날 간장이식수술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내 임파구는 사전에 억제시켜 놓지 않는 한, 이 새로운 간장이 조의 것이 아님을 즉시 알아차리고 항체를 만들어 내기 시작해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이런 이유로 조의 의사는 이식수술에 앞서 나와 내 보조기관들의 활동을 약제나 방사능으로 처리해서 기능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잠시라도 우리의 기능을 완전히 정지시킨다면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심한 감염으로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로 면역반응도 나이가 들면 둔해진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보다 암에 잘 걸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여기 또 한 가지 흥미있는 사실이 있다. 의사들은 오래 전부터 암의 '자연'치유, 즉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암이 슬며시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품어 왔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사례들이 충분히 입증되어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어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면역체계가 일시적인 고장을 일으켰다. 그러자 암이 생겼다. 그때 면역체계가 제 기능을 회복, 이 암세포를 발견하고 맹렬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암은 사라져 버렸다. 이상이 한 가지 설명이고 또 다른 설명은 외과적 수술로 비록 불완전하지만 암조직을 제거한다면, 그때까지는 암조직이 워낙 커서 감당하지 못했던 면역장치가 나머지 종양을 물리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일부 암환자, 특히 어린이 환자의 경우 이렇게 해서 암이 치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설명들이 암의 자연치유에 대한 시원한 해명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럴듯한 설명인 것만은 분명하다.
내 면역체계처럼 복잡하기 짝이 없는 장치가 언제나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 임파구는 가끔 엉뚱한 실수를 저질러, 정상적인 신체조직을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온 물질로 착각하고 공격을 퍼붓기도 한다. 이들은 관절의 안쪽을 공격하여 류마티스성 관절염 같은 고통스런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만약 임파구들이 이처럼 엉뚱한 실수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가장 흔한 형태의 관절염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조도 스트레스에 자주 시달리는데 내가 특히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스트레스이다. 스트레스는 그것이 계속되는 소음이나 불안, 피로, 질병 등 어떤 형태의것이든간에 신체 내부기관에 커다란 타격을 준다. 나 역시 스트레스로 인해 커다란 타격을 받는 신체기관 중의 하나이다. 스트레스가 매우 심하면 나는 며칠 사이에 평상시 크기의 3분의 1로 줄어들기도 한다. 내가 스트레스와 싸워 나가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역할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성인이 된 조에게는 내가 어렸을 때처럼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나의 임파구생산도 그렇게 큰 중요성을 갖지는 못한다. 내가 오래 전에 다른 기관들에게 나누어 준 임파구들이 이제는 그곳에서 든든한 뿌리를 내리고 왕성하게 증식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종양으로 기능을 상실하면 조는 갖가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즉 균류가 파고들어 손톱을 갉아먹기 시작하고 입안이 균류에 감염되어 고통을 느낄 것이며 또 근육에 염증이 생겨 약해지고 그 밖의 여러 가지 병들이 생겨 살맛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조가 성년이 된 후에 내가 하는 중요한 역할이 현재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다.
최근에 발견된 사이모신이라는 내 호르몬이 그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좋은 예이다. 내가 사이모신을 혈류 속에 흘려 넣으면 이 호르몬은 전면역체계를 자극시킨다. 비장의 기능을 활발하게 하고 임파계를 자극해서 적절한 분량의 임파구를 만들어 내도록 한다. 조가 과도한 양의 방사선을 조사받아 면역체계가 파괴되었을 경우 내 호르몬이 활동을 중지하고 있던 비장과 다른 기관을 자극하여 다시 항체생산에 나서게 함으로써 조의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는지도 모른다. 사이모신에 관한 한 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조가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이 호르몬의 생산을 점차 줄이다가 50세 전후가 되면 완전히 중지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노화과정의 중요한 일부가 아닐까? 그렇다면 사이모신을 주사함으로서 노화를 늦출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은 나도 잘 모르는 일이다.
나는 조의 신체기관 중에서 아직도 많은 의문에 싸인 기관이다. 나에 관해서는 아직도 규명해야 할 사실들이 많이 남아 있다. 물론 나는 나에게 기울여지는 많은 관심 때문에 우쭐한 기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드디어 때가 왔다"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내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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