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확실히 아름다움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무게가 340g쯤 되는 나는 적갈색을 띠고 있으며, 볼품은 그다지 없는 편이다. 나는 조의 충직한 노예인 그의 심장이다.
나는 인대에 매달린 채 조의 가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나는 길이가 약 15cm 제일 넓은 부분의 너비가 10cm쯤 되는데 모양은 흔히 알려진 하트 모양보다는 먹는 서양배 모양에 더 가깝다. 시인들이 나를 두고 읊은 미사여구를 많이 들었겠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로맨틱한 존재는 아니다. 사실 나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펌프에 불과하다. 보기에는 4개의 펌프가 있는것 같지만 실제적인 펌프장치는 2개이다. 하나는 피를 폐 속으로 보내 주고 다른 하나는 피를 온몸으로 밀어 보낸다. 나는 매일 총길이 9만 6,000km에 달하는 혈관에 피를 펌프질해 보내는데 이것은 1만 5,000ℓ 용량의 탱크를 펌프질해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활동량이다.
조가 어쩌다 나를 생각한다 해도 그는 나를 연약하고 가냘픈 존재로 생각한다. 연약하다니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지금까지 조의 가슴 속에서 나는 30만t 이상의 피를 펌프질했는데 나를 연약하다고? 나는 질주하는 육상선수의 다리근육이나 해비급 복싱 챔피언의 팔근육보다도 갑절이나 힘차게 활동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와 같은 속도로 팔다리 근육을 움직여 보라고 한다면 그들은 아마 몇 분도 안돠어 흐느적거리게 될 것이다. 사람의 신체근육 중에서 아기를 낳을 때 활동하는 여자의 자궁근육을 제외하고는 나만큼 힘센 것도 없을 것이다. 또 나보다 더 세다는 자궁근육도 나처럼 70여 년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진 않는다.
사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는 말은 좀 과장된 말이다. 나도 고동치는 사이 사이에 짬짬이 휴식을 취한다. 좌심실이 한번 수축하면서 혈액을 온몸으로 내보내는데는 대략 0.3초가 걸린다. 그러고 나서 나는 0.5초 가량 휴식을 취한다. 또 조가 잠을 잘 때는 대부분의 모세혈관들이 활동을 중지한다. 이것은 내가 모세혈관들에 피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잠을 잘 때는 내 고동수가 평상시의 1분에 72회에서 55회로 떨어진다.
조는 나에 대해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데 이것은 좋은 현상이다. 나는 그가 심장노이로제에 걸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걱정이 쌓이다 보면 그 자신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커다란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가 나에 대해 걱정이나 근심을 할 경우 그것들은 거의 예외없이 근거없는 것들이다. 어느 날 조는 잠을 자려고 뒤척이다가 문득 내가 조용히 쿵쿵 뛰고 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것은 내 판막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소리인데 그는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내가 중간에 고동을 한번 '거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걱정에 싸였다. 내가 활동을 멈추려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내 점화장치는 조의 승용차 점화장치나 마찬가지로 가끔 순간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자체적으로 전기를 만들어 충격전파를 보냄으로써 수축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나 가끔 점화를 잘못 일으켜 고동이 다음번 고동과 겹치는 일이 있다. 그때 내가 마치 고동을 한번 '거른' 것처럼 들리게 되지만 실제로 고동을 한번 거른 것은 아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가를 안다면 조는 놀라 자빠질 것이다.
조는 가끔 악몽에 시달리다 잠이 깨서 내가 몹시 뛰고 있는 것을 알고 걱정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은 조가 끔속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칠 때 나도 그에 맞게 고동쳤기 때문이다. 조가 가슴이 몹시 뛰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되면 나는 더 빨리 뛰게 된다. 그가 마음을 가라앉히면 나도 역시 진정된다. 그러나 그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을 때라도, 나를 가라앉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미주신경에게 브레이크 구실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 신경들은 귀 뒤쪽, 턱뼈가 걸려 있는 부분의 목을 지나는데 이 부분을 부드럽게 마사지하면 내 고동을 늦출수 있다.
조는 피로감이나 현기증 등을 거의 모두 내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나는 조가 느끼는 피로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또 가끔 나타나는 현기증은 보통 그의 귀에 원인이 있다. 가끔 그는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가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조는 심장마비가 일어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 통증은 2∼3시간 전에 잔뜩 먹은 식사 때문에 소화관에서 생기는 것이다. 나에게 어떤 이상이 있을 때는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지만 이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지만 이 통증은 격심한 활동이나 격렬한 감정변화가 있은 뒤에야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에게 부과된 일을 수행하는 데 충분한 영양분을 내가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에게 알린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법으로 영양분을 섭취하는가? 물론 혈액에서 섭취한다. 나는 조의 체중의 200분의 1밖에 안되지만 전체 혈액공급의 20분의 1을 필요로 한다. 이는 내가 다른 기관이나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영양분의 10배나 되는 영양분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좌우심방과 심실 등 4개의 방으로 흐르는 혈약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별도의 관상동맥 두 개가 있어 그것으로부터 영양분을 흡스한다. 이 관상동맥은 굵기가 음료수의 빨대만한 것으로서 작은 '가지' 들이 붙어 있는데 이 관상동맥이 나에겐 취약지점이다. 이곳의 고장이 가장 큰 단일 사망원인이 되고 있다
이곳의 고장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릴때 경우에 따라서는 태어날 때 지방성 침전물이 관상동맥에 쌓이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동맥 하나를 막아버릴 수 있다. 또는 웅혈이 생겨 갑자기 동맥이 막혀 버리기도 한다.
동맥이 하나 막혀 버리면 그 동맥으로부터 영양공급을 받던 심장근육의 일부가 죽고 만다. 죽은 조직은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이 흔적은 작을 경우, 조그만 조약돌만하고, 큰 경우는 테니스공의 절반크기만하다. 따라서 병이 얼마나 심한가는 막힌 동맥의 크기와 부위에 좌우된다.
조는 5년 전에 심장마비를 일으켰었으나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었다. 분주한 생활을 하다보니 가벼운 가슴의 통증쯤은 모르고 지나갔던 것이다. 막혔던 동맥은 내 후면 벽에 있는 조금만 동맥이었는데 내가 죽은 조직을 밀어내고 완두콩만한 크기의 상처가 생긴 그 부위를 말짱하게 고쳐 놓기까지는 2주일이 걸렸다.
조의 집안은 심장병을 자주 앓아온 집안이므로 통계에 비춰 볼때 나도 앞으로 말썽을 일으켜 그를 괴롭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가 이런 유전성 요인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노력으로 위험을 극소화시킬 수는 있다.
우선 체중초과문제부터 생각해 보기로 하자. 조는 현재 허리와 배에 군살이 찌고 있어서, 중년의 그 펑퍼짐한 몸매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놀림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쓸데없는 지방이 몸에 붙어 있으면 그 지방 100g당 약 70km의 모세혈관이 자리잡게 되어 나는 그 속으로 혈액을 펌프질해야 하는 추가부담을 안게 된다. 조는 쓸데없는 군살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부담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이런 큰 부담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혈압이 문제가 된다. 조의 혈압은 140/90이었다. 이것은 그 나이 또래의 정상적인 혈압수치의 상한선에 해당한다. 140이란 수치는 내가 수축할 때 작용하는 압력을 측정한 것이고 90은 박동과 박동 사이에 내가 쉬고 있을 때의 압력이다. 큰 수치 보다는 작은 수치가 더 중요하다. 이 수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만큼 내 휴식은 줄어든다. 사실 심장은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활동하다가 지쳐서 죽어 버리고 만다.
혈압을 보다 안전한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조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그 첫째가 군살을 없애는 것이다. 살을 빼고 나면 조의 혈압은 깜짝 놀랄 정도로 떨어질 것이다.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 금연이다. 조는 하루에 담배를 두갑씩 피운다. 이것은 그가 24시간 동안에 80--120mg의 니코틴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니코틴은 매우 독한 물질로서 동맥, 특히 손발의 동맥들을 수축시킨다. 손발의 동맥이 수축되면 내가 받는 압력은 자연히 늘어나게 된다. 니코틴은 또한 나를 자극해서 내 고동을 더욱 빠르게 만든다. 담배 한 대를 피우면 내 고동은 평상시의 72회에서 80회로 늘어난다. 조는 이제 담배를 끊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담배의 해독이 이미 온몸에 퍼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가 담배를 끊고 지속적인 니코틴 자극을 없애 버릴 수만 있다면 내 부담을 훨씬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조는 다른 방법으로도 나에게 휴식을 줄 수 있다. 그는 경쟁적이고 정력적이며 여러 가지 문제에 신경을 쓰는 다시 말해서 성공적인 사업가타입이다. 그는 자신이 계속 초조하게 쫓기는 생활을 함으로써 부신을 계속 자극해서 많은 아드레날린과 노라드레날린을 분비케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니코틴과 똑같은 영향을 미친다. 즉 동맥을 수축시켜 혈압을 높이고 나로 하여금 보다 빨리 고동치게 하는 것이다.
요컨대 조는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 나 역시 편안해진다. 항상 그렇게 조바심을 하며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가끔 가볍게 낮잠을 자면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회사의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와서 붙잡고 있기보다는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운동도 도움이 된다. 조는 주말에 집중적으로 과도한 양의 운동을 하는 타입이다. 그는 지금도 테니스코트에 들어서면 마치 자기가 젊은 대학생인 것 처럼 공을 쫓아서 네트 앞으로 전력질주하곤 한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면 내 활동량은 평상시의 무려 5배로 급증한다.
조에게 꼭 필요한 것은 규칙적이면서 과격하지 않은 운동이다. 하루 2∼3km를 걷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며 자기 사무실까지 가면서 두어 층 정도를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사무실은 10층에 있으니까 3층 까지 걸어 올라가저 엘리베이터를 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조그만 일들이 크게 도움이 될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방성 퇴적물이 이미 내 동맥 중 일부를 막아버리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운동은 혈액이 흘러갈 새로운 통로들이 생겨나게 한다. 따라서 동맥 하나가 막힌다 하더라도 나는 다른 동맥에서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끝으로 식이요법이 있다. 나는 조에게 엄격한 규정식을 취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지방질은 내 동맥 안에 퇴적물이 쌓이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조는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 중 45%를 지방질 식품에서 얻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이런 식의 식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맥이 막혀 사망할 가능성이 50대 50쯤 된다.
조는 지방질 식품을 많이 먹었을 때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 가를 알았으면 좋겠다. 지방질의 조그만 말맹이는 혈액 속에서 적혈구와 엉겨 걸쭉한 물질로 변한다. 나는 이 물질을 모세혈관 속으로 밀어내야 하는데 이 일은 상당히 힘이 드는 작업이다.
나는 이것 저것 요구하는 게 많은 타입이 아니다. 나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조를 위해 할 수 있는 한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긴 해도 그가 나에게 베풀 수 있는 몇 가지 형태의 휴식이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체중을 약간 줄이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며, 조금 더 느긋하게 긴장을 풀고, 지방질 식품과 담배를 줄이라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앞으로 오랫동안 그를 위해 계속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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