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은 힘이고, 그 힘은 건강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제1장 면역이 뭐예요?
면역이 뭐예요?
"아저씨, 어른들은 가끔 면역이라는 말을 쓰는데, 면역이 도대체 뭐예요?"
뭐든지 궁금해하는 한 아이가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항상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아저씨께 여쭈었다.
아저씨는 유난히 호기심이 많은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시킬 수 있
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설명해 주었다.
"응, 우리 몸이 병이 걸리지 않도록 병균과 싸워서 이기는 것을 면역이라고 하
는 거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또 물었다.
"그럼 면역을 주면 병이 낫게 되나요?"
"물론이지. 면역은 아주 굉장한 힘인데, 이 힘을 주면 병균을 모조리 쳐부수어
병이 도망가지."
"약보다 좋은 거예요?"
"수백 가지 약도 면역보다는 못하지. 우리 목숨을 지키는 것은 약이 아니라 바
로 면역이니까."
"아저씨, 그렇게 좋은 면역을 어떻게 하면 우리 몸 안에 많게 할수 있지묘?"
"기운이 있어야지. 튼튼한 힘 말이야."
"그럼 무조건 힘을 기르면 되나요?"
흥이 나서 끝없이 이어지는 아이의 물음은 진리를 찾는 성자와 같았다.
"남이 주는 힘이 아니라 스스로 힘을 길러야지."
"아, 알겠어요. 제 스스로 운동해서 몸을 튼튼히 하면 되겠군요."
"글쎄, 네가 조금만 더 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냥 몸이 튼튼하다고
병이 낫는 것은 아니야. 우선 병 없이 건강하려면 마음부터 튼튼히 해야지."
"예? 마음을 튼튼히 한다구요?"
"그럼. 착하고 올바른 마음을 가지면 곧 마음이 튼튼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지."
아이는 마냥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이 튼튼해지는 방법만은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떻게 마음이 튼튼해진다는 것일까?
시간이 흘러 아이는 자라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고, 어릴 때 들었던 '면역
은 힘이고, 건강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라는 아저씨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
게 되었다. 여러 가지 자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과학에 흥미를 지녀 생물학,
의학, 한의학을 공부하였고, 지난날 들었던 아저씨의 간단한 말씀이 한치의 어긋
남이 없는 명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건강해지길 원하고 있다. 보약이 좋은지, 아니면 운동이 우리
몸에 좋은지.... 그러나 아저씨가 그 아이에게 말씀해 주신 것처럼 무엇보다도 먼
저 튼튼한 마음을 가져야 건강해지는 것이다. 21세기의 생명과학은 궁금증 많은
아이와 아저씨의 대화 속에 나온 진리를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마음은 건강의 주인이며, 마음은 면역을 다스리는 사령탑이며, 마음은 소
리없이 발산하는 무한한 힘의 원동력 이라는 것을.
병을 면제받는 것
가벼운 병치레든 깊은 중병이든 아파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깊이 알고 잇다. 끙끙대며 앓거나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 생기 있게 활동하는
건강한 사람을 보면 왠지 일부 사람들만이 건강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똑같은 액수의 돈을 벌었는데도 어떤 사람은 세금을
면제받기도 하는데, 세금을 꼭 내야 하는 사람은 면제 받은 사람을 부러워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 사회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면서도 각기 다른 생활을
하듯이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 현상도 인체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
타난다.
이렇듯 신비한 생명현상도 거창한 학문을 끌어들이지 않고 생활 속의 지혜를
통해 쉽게 이해하는 길은 없을까.
마치 세금을 면제받는 것처럼 병을 면제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건강이다. 우리
는 병을 면제받는 일을 짧게 줄여 '면역'이라 하고, '면역력이 강할 때 건강하다'
고 이야기 한다. 면역은 영어로 이뮤니티(immunity)라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은
이뮤니타스(immunitas)라는 라틴어로 부터 유래하는데, 이는 '세금 등을 면제받
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이 제일로 치는 소망이
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 질
병으로부터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옛 말씀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 는 말처럼, 스스로 건강을 저해하는 요인과
질병에 대처하는 힘을 가지게 되면 자기도 건강할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건강하
게 이끌어 줄 수 있다.
질병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건강에 대한 상식을 높일 수만 있다면 우리의 건
강을 크게 증진시킬 수 있다. 20세기 과학이 밝혀 놓은 생명현상 중 하나인, 외
부의 균을 방어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신체의 '방어체계' 를 알게 되면 건강유지
에 크게 도움이 된다. 사람을 포함한 여러 동물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균을 방
어하고 물리치는 현상은 마치 한 사회나 나라가 치안을 유지하고 적의 침입으로
부터 나라를 지키는 경찰 또는 군인들이 보여 주는 행동과 아주 흡사하다. 이처
럼 사람 사는 이치를 잘 생각해 보면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일
들도 어는 정도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면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 또 병과 그 밖의 생명현상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 몸 안의 방어체계인 '면역계' 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면
역계의 주인공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으며, 이러한 주인공들이 적군인 병원균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대처하며 처치하는가 등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그래도 지구는 돈다-21세기의 갈릴레이
국민학교 시절 읽은 많은 책 중에서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 는 갈릴레이(갈릴
레오 갈릴레이(1564-1642)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에 관한 위인전기는 제목만큼이
나 유별나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났던 점은
'갈릴레이는 왜 지구는 돈다고 우겼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갈릴레이를 종교재
판의 심판대에 올렸는가' 였다. 어린 마음으로 여러번 눈을 깜박거린 끝에 갈릴
레이는 자기의 관찰과 노력으로 알아낸 지구의 자전이라는 자연의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올바로 알려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용기를 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번을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갈릴레이가 문제의 재판대에 모여 사는 사회를 접하면서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극적이고 편견을 가진, 뿐만 아니라 입에 양기가 잔뜩오른 사람들
이 보았을 때는 갈릴레이의 주장이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동일한
사실도 시간과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를 나는 성인이 되어서 깨닫게 된 것이다.
마음이 착해야 건강해질 수 있다는 아저씨의 말씀은 줄곧 머리에 남아 있었다.
마음과 건강의 관계를 어떻게 밝혀낼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끊임없이 생각해 보
았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도전의 대상이 되었고 언젠가는 꼭 통쾌한 한판 승
부를 겨루어야 할 상대로 여겨졌다. 책의 첫부분을 장식하는 서론(introduction)
은 대충 뛰어넘고 중요하다는 것만 골라 진도를 나가는 선생님들의 강의를 듣고
나오면서 진짜는 빠졌다는 공허감을 느끼게 되었을 때쯤이었을까, 똑같은 대자연
을 묘사하고 해석하는 서양과 동양의 학문 사이에 일정한 가르마가 놓여 있음을
알았다.
연구 초보자였던 대학원 시절, 약물이나 여러 요인에 의한 실험동물의 생리변
화를 관찰하면서, 1년의 어느 철에는 약물에 상관 없이 오줌의 양이 변하거나 혈
액 성분에 차이가 나는 현상을 접했다. 원인은 다름아닌 지구의 공전으로 빚어지
는 사계의 변화에 따라 실험동물의 생리가 변화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구의
커다란 생리변화에 따른 생명체의 생리변화를 과학용어로는 서카디안 리듬
(circardian rhythm)이라고 이름붙여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 동양적인 사고 방식
으로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자연의 일부로서 당연
히 보이지 않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타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었던
현상이다. 그런데, 대자연 속에 사는 생명체는 과연 어떠한 정보 시스템을 통해
말없이 균형을 잡아 살아가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갔다.
그러던 중에 '모든 것을 통괄하는 대자연의 힘이 기이다' 라는 우리의 멋진 사
고를 접하면서, 바로 이 기가 하나의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에 착안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 어름에 나의 끼가 발동을 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연구실을 분주
히 오가며 가끔씩 머릿속에 스쳐가는 것은 분석적인 능력이 뛰어난 서양의 과학
을 도구 삼아서 기가 곧 대자연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정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은 벅차올랐고 앞으로
젊음을 쏟아 새로운 연구의 길을 개척하는 희망을 조금씩 부풀려나갔다.
하루하루의 연구결과를 정리하면서 문득 창문에 걸쳐진 붉은 노을을 바라볼
적이면, 늘상 지구의 자전을 알리고자 했던 갈릴레이의 진리에 대한 열정과 도전
과 의지를 되새겼다. 동, 서양 두 세계의 학문 체계를 통합하여 새로운 생물의학
을 구축하고자 하는 나에게 그것은 큰 용기가 되곤 했다.
진리를 보는 눈-거위 다리는 하나인가?
우리가 어린 시절에 한번쯤은 읽는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는 <왕자와 거위>
이야기가 있다.
왕자가 멋진 점심을 위해 거위요리를 시켰다. 얼마후 궁중의 요리사는 먹음직
스러운 거위요리를 은쟁반에 받쳐들고 왕자에게로 왔다. 왕자는 거위요리 고기
중에서도 쫄깃쫄깃한 다리를 좋아하였다. 거위 다리 하나를 맛있게 먹은 뒤 남은
하나의 다리를 마저 뜯으려 하는데 웬일인지 다리가 보이질 않았다. 왕자는 요리
사를 불러 이유를 물어 보았다. 몰래 다리 하나를 슬적했던 요리사는 능청스럽게
답했다. "사실 거위는 쉴 때에는 다리가 하나뿐이랍니다." 아리송해진 왕자는 요
리가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망원경을 꺼내 뜰 앞에 쉬고 있는 거위를 살
펴보았다. 아뿔사, 한 발로 서 있는 거위가 망원경 둥근 원 안으로 보이지 않는
가. "그럼 내가 지난번에 먹은 거위는 어째서 다리가 둘이었지?" 요리사는 "거위
는 두 발을 가지고 돌아다니므로 그럴 때 거위를 잡았으니 두 다리가 달린 거위
를 드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둘러댔다. 이야기를 듣고난 왕자는 요리사에
게 "그럼 다음부터 거위를 요리해 올때는 돌아다니는 것을 잡도록 하라."고 말했
다.
우리는 요리사가 왕자에게 거위요리를 가져오던 중 군침이 돌아 한 다리 슬쩍
하고는 꾀를 내어 위기를 모면한 것임을 알고 있다. 어떻게 거위 다리가 하나였
다가 두 개로 될 수 있겠는가. 왕자는 요리사가 둘러대는 말을 재미있게 속아 준
것이었다.
현재는 과학 만능의 시대다. 인류 역사에 비해 과학이 체계적으로 뿌리를 내리
고 성장한 역사는 짧다. 특히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동양과학에 비하면 서양과
학은 200여 년에 불과하다. 동, 서양의 과학이 관찰하고 연구하는 대상은 똑같다.
곧 우리들이 살고 있는 대자연이다. 거듭되는 연구를 통해 얻은 올바르고 훌륭한
업적들은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커다란 공헌을 해 왔다. 그러나 자연을 보
는 철학적 관점이 앞서는 동양의 과학 (동양의학)은, 마치 쉬고 있는 정적인 외
다리 거위처럼, 분석적인 서양과학의 입장에서 볼 때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졌다.
동양 과학이 서양에 소개되기 사작한 1940년대만 하더라도 서양의 과학자들은
대부분 관심은커녕 무조건 배척하였다. 물론 동양과학을 신비스러운 것으로 여겨
무조건 수용하는 과학자들도 있었다. 이들 극단적인 두 부류의 과학자들은 사실
동양의 잠들어 있던 과학을 옳게 이깨우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중도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동양과학의 원리와 실질적인 내용을 연
구해 온 서양 및 동양의 과학자들은 서양과학의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을 이
용하여 진리를 밝히고자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양과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옴으로써 이제 동양의 과학은 서양의 과학과 더불어 온전한 두
다리의 거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동양과학과 서양과학은 상호 보완적이어서 동야과학은 서양과학을, 서양과학은
동양과학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서로의 한계점을 극복하게 해주는 동반자라는 것
을 말해 주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반드시 우리 인류에게는 우스꽝스런 모습의
외다리 거위가 아니라 두 다리로 걷는 온전한 거위가 필요할 것이다.
하고 싶은 세 가지 이야기
이 책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것을 간추린다면 세 가지 정도가 될
듯하다. 그 첫 이야기는 우리 몸 안의 방어체계인 '면역' 을 되도록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면역이라는 내용을 쉽게 풀어쓰기 위해 1년 6개월
이 넘는 기간 동안 연구를 하면서 틈틈이 시간과 아이디어를 투자했지만 아직도
학문적인 용어나 그 뜻을 완전하게 쉽게 풀어 쓰지 못하고 있어서 아쉬운 생각
이 든다. 앞으로 더욱 쉽게 표현하는 데 꾸준히 힘을 모아 더 나은 책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부족하지만 우선 첫번째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
을 잇는 연결다리로서, 또한 우리 몸을 외부의 병원체로부터 보호하는 몸 안의
철통 같은 방어체계를 다루는 '면역'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아 보고 과연 우리의
고유한 기와 어떻게 관련성을 지을 수 있는지 이해해 보도록 하자.
두번째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내용은 수천 년 전의 선조들로부터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우리가 듣고 보아 온 기에 대해서 다시
금 그 정확한 뜻과 역할을 복습하듯이 알아 보는 것이다. 나아가 과학이 밝히고
있는 기의 세계를 알아 보고, 기에 대해서 우리들이 잘못 가졌던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이다. 미리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기는 특이한 일부 사람들만이 생각하
고 말하고 수련하는 것이 아님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는 사실상 너무도
평범해서 누구나 알고 행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
서 언제나 최선의 것을 추구해 온 인류에게는 이제 눈높이에 맞지 않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의 눈 높이를 슬쩍 조절함으로써 우리 눈높이에서 기를
바라보아 기에 대한 많은 것을 쉽고 올바로 공감해 보자는 말이다.
마무리짓는 세번째 이야기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가 면역과 기와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실습현장으로의 출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면역과 기의 관계를
우리 손으로 입증하기 위해 모두가 직접 연구자가 되어, 가설을 세우고 첨단과학
을 이용하여 연구 결과를 얻어내 보는 것은 썩 괜찮은 작업일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과학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에 존재하는 진리를 보고 듣고 알기 쉽게
풀어 놓아 어느 누구든지 자연에 대한 애해의 폭을 올바로 넓혀 나가게 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동양의 철학적 아이디어와 서양의 과학이 한데 어우러진다
면 편견의 벽을 넘어 우리 눈앞에 면역과 기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소망스러운 사실을 열매 맺도록 하는 일은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제2장 방어의 주인공들
걱정 마라 아가야! 내가 널 지켜 주마
양수 속에 들어 있는 기간 동안 태아는 바깥세상에 나와서 부딪힐 병원체와의
전쟁에 대비히 임전태세를 갖춘다. 즉 방어를 하기 위한 무기를 생산하는 것이
다. 아기가 태어날 무렵 아기의 몸 안에 있는 방어군들은 이물질과 병원체를 색
출하여 제압할 준비가 갖추게 된다. 아기의 혈액 속에는 엄마로부터 받은 항체
(병원체 또는 이물질을 알아차리고 결합하여 방어기능을 나타내는 분자를 말한
다. 이 책에서는 적을 포박하는 오랏줄 또는 미사일 유도장치로 비유하고 있다.)
가 있으며, 이 항체는 엄마의 혈액 속에 있는 항체의 양보다도 훨씬 많아야 정상
이다.
한편 식세포(병원체 또는 이물질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식세포라고 부른다.)는
외부의 어떤 침입자라도 삼키려고 아기의 조직과 조직 사이에서 대기중이다. 또
한 일부의 식세포와 그 외의 많은 다른 종류의 질병 퇴치 의무를 맡은 병사들은
참호 속에서 전투 태세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신
생아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호시탐탐 노리는 미생물로부터 대대적인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방어태세, 즉 면역계는 어떠한 침입자라도 물리칠 수 있는
화력을 갖도록 막강한 지원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최상의 결정적인 화력은 신생
아가 엄마의 젖을 처음 먹을 때 갖게 된다. 출생 후 나오는 처음 며칠간의 모유
를 초유라고 하며, 이 속에는 갖가지 항체가 가득 들어 있다. 초유는 아기가 전
쟁에서 거뜬히 이길 채비를 갖추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아기가 2, 3개월 자라나게 되면 적색 골수와 흉선 속의 무기 생산 공장들은 전
력을 다해 일을 해야 한다. 이윽고 아기가 열 살이 되면 인체의 면역계는 완전
무장된 상태가 되어 가장 강력해진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운다는 섭리처럼 그
이후론 면역력이 점차 쇠퇴한다. 병원체와의 전쟁은 삶이 시작되면서 더불어 시
작되며, 마지막 숨을 거두고 나서야 비로소 끝이 나게 되는 것이다.
방어막의 구성
1) 우리 몸에 있는 천연적인 요새(균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우리 몸의 자연적인
방어막을 말하는 것으로 학술용어로는 선천성 면역체계라 한다.)는 무엇인가?
균들은 너무 작아서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실제로 그것들은 살아서 움직이며
언제 어디서나 우리 몸에 달라붙는가 하면 몸 속으로 침투하려고 호시탐탐 기회
를 노리고 있다. 균들은 그들이 살기에 적당한 곳을 찾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균
들이 우리 인간의 몸 속에 들어와 적당한 습기와 영양소 그리고 온도의 조건을
갖춘 곳을 찾게 되면 그 곳에 정착하여 빠른 속도로 번식하며 그 수는 엄청날
정도로 많아진다. 그러므로 실제 우리 몸이 균들의 침입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또
몸 안에서 증식하는 균을 방어하지 못하면 인체는 단지 '균들의 영양 창고, 균들
의 호텔' 이 되고 만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파괴적이고 무서운 균이라는 세력을 물리치기 위한 훌륭
한 방어막과 방어체계를 함께 니지고 있다. 그래서 균과의 전쟁에서 우리 몸은
대체로 승리를 할 수 있다. 우리의 몸 안에는 질병을 옮기는 외부의 침입자인 균
들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군이 1~2조 개나 된다. 서로가 사정을 봐달라고 할 수도
없고, 또 요청을 한다고 해도 수락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서로의 생사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방어체계와 균이 맞붙으면 일반적으로 우리 몸의 방어체
계가 승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몸이 처참히 균에게 패하여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은 우리 몸의 면역계가 얼마나 신속하게 싸움에
잘 임하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다는 셈이다.
우리 몸의 자연적인 방어막은 외부의 균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
다.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균(감염 미생물)들은 사람의 피부를 뚫고 침입하기가 어
려우며, 우미 몸 또한 여러 가지 생화학적 및 물리적 장벽을 이용하여 균의 침입
을 방어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균이 몸 안으로 들어올 때 첫번째 관문은 피부의 가장 바깥에 있는
'케라틴' 이라는 단백질로 된 층이다. 즉 균은 케라틴 장벽에 막혀 체내로 침입하
지 못한다. 그러나 피부에 상처가 생기면 이 벽이 무너지므로 외부의 세균은 피
부속으로 침튜하여 증식하게 되며, 그 결과 상처 부위에 염증을 일으킨다. 한마
디로 피부는 외부의 침입자를 막는 성벽과 같다.
피부는 단지 보호막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중요한 일을 한다. 피부
아래의 여러 층 사이사이에는 면역계에 균의 침입을 알아차리고 경고를 울려 주
는 세포가 주둔하고 있다. 우리 몸 전체의 피부에는 박테리아나 곰팡이가 수십억
개가 살고 있는데 심지어 어떤 경우는 1센치미터제곱당 300만 개나 사는 부위도
있다. 몸의 보호막의 일부로서 체내의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피막은 균의 활동을
억제하는 점액을 분비한다. 예를 들면 침, 콧물, 눈물 등에는 균을 죽이는 물질이
들어 있다.
한편, 우리 몸 중에서 피부 외에 외부와 직접 접촉하는 부위는 입에서 항문까
지에 이르는 소화관 내부인데, 이 소화관은 소화효소나 산성도(pH) 2의 강염산인
위산을 분비함으로써 균을 죽인다. 위까지 도달한 침입자는 소화효소나 위산에게
1차 공격을 받아 결정적으로 약해지고 위와 장의 벽에 있는 점액에 억류되었다
가 결국 다른 폐기물과 함께 배출된다.
2) 우리 몸을 지키기 위한 가공할 만한 방어체계(천연적인 요새를 이용한 방어
체계가 아닌 고도로 훈련된 방어군과 무기가 사용되는 방어체계를 말한다. 이를
학술용어로는 후천성 면역이라 한다.)
피부, 위산, 눈물, 콧물 등과 같은 분비물이 아닌 우리 인체의 혈액 속에 존재
하는 방어군인 백혈구, 그 중에서도 림프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최첨단의 방어
체계를 우리는 '후천적인 방어체계' 라 한다. 후천성 면역반응은 방어군들이 우리
몸에 침투하는 어떤 병원체를 아주 잘 기억하고 공략하는 정보까지 저장하는 능
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후천성 면역 반응은 똑같은 병원체(균)와 계속 마주
칠 때마다 그 능력이 증대된다.
다시 말하면 후천성 면역계의 주인공들인 면역세포들은 몸에 들어온 균을 지
난번에 침입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해 낸 뒤 만일 침입했던 균일 경우는 그 병원
체가 또다시 질병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지한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
일단 홍역이나 디프테리아와 같은 질병을 앓은 사람은 그 질병으로 부터 평생토
록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 종생면역이 생긴다. 이 후천성 면역이 자랑하는 점은
#1 침입한 적이 있는 특정균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특이성)과, #2 오랫동안 균
에 관한 정보를 기억한다는 것(기억력)이다.
3) 우리 몸을 철통같이 수호하는 방어의 주인공들은 누구인가?
문제는 균이 일선의 방어벽을 뚫고 상처 부위나 점액을 통하여 우리 몸 안의
혈액과 체액 또는 세포와 조직에 침입했을 때이다. 여기서부터는 면역계의 주인
공들, 즉 몸 안의 병사들이 균이라는 적의 침입을 알아차리고 균을 사살한다.
그러면 우리 몸 안의 방어를 담당하는 면역계의 병사들은 과연 어느 부위에서
출생하며 어느 부위에서 훈련을 받고 자라나 훌륭한 면역계의 병사가 되는지 알
아 보자. 아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방어군(면역세포)은 골수에서 생성
되어 #1 골수 자체 내에서, #2 흉선에 가서, #3 혈액 내에서, #4 지라 등에서 균
과 대처할 수 있는 교육뿐만 아니라 실전 경험을 축적한다.
그림에서 그물처럼 보이는 선들은 대량의 방어군이 이동하는 통로인 림프관(면
역세포의 이동 통로)이며, 검은 점은 방어군이 주둔하는 부대와 같은 장소로서
이를 림프절(면역세포의 주둔 부대)이라고 한다. 뼛속(골수)에서 만들어진 면역세
포는 혈액을 타고 이동하여 흉선 또는 골수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면역세
포의 교육장소에 따라 면역계를 지휘하는 총사령관(T세포)이 되느냐, 아니면 미
사일 유도장치의 기능과 오랏줄의 기능을 나타내는 무기 역할을 하는 항체(Y자
모양의 무기로서 오락줄같이 균을 포박하여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뿐만아니라
균의 표면에 붙어서 균을 파괴시키기 위한 미사일을 발사하여 균을 터뜨려 죽게
한다.)를 대량 생산하는 B세포가 되느냐가 결정된다.
심장의 바로 윗부분(그림 참조)에 존재하는 흉선에서 면역 세포가 교육을 받을
때는 면역계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이 되며, 골수 내에서나 간 등에서 교육을 받을
때는 항체를 만드는 세포가 된다. 다음 페이지의 그림은 여러 종류의 방어군(면
역세포)이 뼛속에 있는 하나의 어미세포로부터 증식, 성장해 나오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방어군의 자랑거리
1) 적군 찾아 삼만 리라도 뛰어다닌다(운동성)
1차 방어막을 뚫고 몸 안으로 침입한 적들을 방어군은 제자리에 앉아서 무찌
르는 것일까? 그저 마구잡이로 싸우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어느것 하나도 우연
에 맡기지 않는다. 침입한 병원균을 포함한 총사령관인 T세포, 미사일 유도장치
를 만드는 B세포, 식세포, 항체와 같은 무기들은 모두 그들의 운송수단인 혈액과
림프액을 타고 온몸을 두루 순환한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뛰어다닌다. 그러다가
잠깐씩 편도선, 림프절, 비장, 충수와 같은 기관들에 도달해서 적군을 발견하면
본격적으로 한판 붙는다. 이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는 곳이 림프절
이다.
림프는 조직 내의 세포를 씻어 주는 물성분이다. 림프는 조직에서 생성되며,
두께가 얇은 림프관 벽을 통과하여 관에 모이고, 이것은 다시 림프절로 흘러간
다. 계속 한 방향으로 이동한 림프액은 커다란 흉관에 모여서 마치 바다에 이르
듯 심장으로 가는 대정맥에 합류하여 온몸으로 펴져나가게 된다.
적군은 림프절이라는 방어군의 주둔 부대이자 검문소에서 색출되어 억류당한
다. 방어군은 이곳으로 밀집하여 억류된 적군을 만나 대격전을 시작한다. 우리의
아군이 몸을 방어하기 위해 림프순환계, 즉 온몸을 도는 데는 24시간 정도가 걸
리는데 그 중 6시간을 림프절에서 보낸다. 한편 혈액 속을 돌아다니는 적군은 도
망치지는 못하고 흔히 '지라' 라고 불리는 비장(spleen)으로 유도되어 흘러들어온
다. 우리의 비장에는 이미 백만대군을 능가하는 아군이 적군가 맞서 싸울 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몸 속의 전쟁은 시작된다.
수조 개가 넘는 우리의 방어군이 침략군을 무찌르고 승리의 기쁨을 나눌 때쯤
이면 몸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한 유비무환 태세로
되돌아가고자 균형을 잡는다. 이때 등장하는 멋있는 총사령관이 억제 T세포이다.
이는 전쟁이 끝날 무렵에야 두각을 나타내며, 전쟁의 끝남을 선포함과 아울러 전
투를 중지시켜 밀집한 아군의 전투 병력이 해산할 수 있도록 명령한다. 철저하게
조직화된 우리 몸 안의 방어체계는 정말 '멋지다' 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적이 쳐들어오면 회춘한다(회춘성)
우리 몸 안에 있는 방어군은 골수 또는 피부표면을 재생하는 상피세포처럼 항
상 분열능력이 왕성한 세포는 아니나, 일단 적군이 몸 안에 들어오면 왕성하게
분열하는 성질이 있다. 왜냐하면 1차 방어선인 천연적인 요새를 뚫고 들어온 적
들은 어느 정도 세력으로나 수적으로 그 크기가 거대할 것이므로 우리의 방어군
이 이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아군의 수도 증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잠자는 휴화산이 분출하는 것처럼 말이다.
3) 얼굴이 모두 비슷해도 실제 이름은 다른다(이질성)
만일 우리가 몸 안의 방어군을 집합시켜 놓고 누가 총사령이고 누가 장교이며
누가 하사관인지를 현미경을 이용해 구분하려 해도 좀처럼 그 일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특히 총사령관인 T세포와 미사일 유도장치(Y자 모양의 항체)를 만드
는 B세포, 그리고 암과 같은 반란군을 감시하고 쳐부수는 자연살해세포 등은 같
은 림프구이므로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이들은 얼굴은 비슷해도, 즉 현미경으로 보아 모양이 똑같다 해도,
실제로는 자기만을 알리는 분자로 된 고유한 마커(marker)를 마치 우리 얼굴에
난 작은 점처럼 그들의 세포 표면에 달고 있어서, 방어군끼리는 혼돈 없이 서로
를 잘 구별하여 작전을 수행해 나간다.
오랏줄을 받아라
적군이 침입했을 때나 혹은 범죄자가 나타났을 때 우선 체포가 가능하다면 그
렇게 하는 것이 아군이나 적의 피해를 줄이는 최고의 전술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방어체계(면역계)는 외부의 침입자(우리 몸이 이방인으로 여기는 외부의 이
물질을 통틀어 학술용어로는 '항원'이라고 한다)를 알아보고 우선 간단히 오랏줄
(Y자형 항체)로써만 포박하여 적군의 행동을 무마시킴으로써 아군의 전력을 낭
비하지 않는 작전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역할을 위해 우리 몸의 방어체계는
1,000억 가지 종류의 침입자를 구별해 낼 수 있는 오랏줄을 생산해 낸다. 이 오
랏줄은 외부의 침입자가 어떠한 모양이나 형태를 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제거
하는 데 작용한다.
오랏줄이 작동하는 원리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만일 우리 몸에 잠입한 병
원균들이나 이물질을 자물쇠라고 한다면, 이 자물쇠가 작동하지 못하게 풀어 버
릴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오랏줄이라고 보면 된다. 어떠한 종류의 자물쇠가 존재
하든(어떠한 종류의 병원균이 침입하든) 이에 꼭맞는 열쇠(오랏줄)가 우리 몸 안
에서 만들어져 자물쇠의 작동을 조절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 몸 안에서 오랏줄(Y자 모양의 항체)이 이상한 물질이나 적군을 발
견하고 포박했을 때 벌어지는 재미있는 현상은 여려 가지이다. 그 중 첫번째로는
적군이나 이물질이 오랏줄에 칭칭 동여매어져 꼼짝하지 못하게 외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적군에게 달라붙은 오랏줄이 반짝반짝 신호를 내면서 마치 미사일
유도장치같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 몸 안의 미사일로 불리는 보체
(complement)가 오랏줄 부위로 발사되어 균을 터트려 죽이는 현상을 일으킨다.
세번째로는 균이나 이물질에 붙어 있는 오랏줄이 역시 우리 몸 안에서 뭐든지
잡아먹는 데 주력하는 식세포 군단을 유인하여 식욕을 증대시키는 일이다. 이때
오랏줄은 식세포가 균을 보통때보다도 다섯 배 이상 잘 잡아먹을 수 있도록 하
는 에피타이저(식욕증강제, appetizer)로서 작동한다.
이처럼 오랏줄은 우리 몸 안에 존재하는 일종의 방어무기라고 보아야 하는데,
이것은 방어군(림프구) 중에서도 B림프구가 만들어 내는 정교한 작품이다.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한 암호표(MHC)
우리의 방어군은 어떻게 원래 우리 몸에 속해 있던 아군과 이방인인 외부의
적군(균)이나 이물질을 용케 가려낼 수 있는가?
우리 몸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세포는 자기 몸 안의 아군임을 서로 알 수 있도
록 세포의 가장 바깥 표면에 암호표를 반드시 붙착하고 있어야 한다. 이 암호표
는 단백질 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증표를 달고 있어야만이 확실하게 아군으
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것으로 인해 면역계는 우리 자신의 세포를 알아보고 수
용하는 한편 우리의 암호표와 다른 분자를 달고 있는 세포는 적으로 구분짓고
무엇이나 공격한다. 물론 우리 몸에 속하지 않는 세포에도 분자(암호표)가 붙어
있긴 하나, 실제로 정밀한 관찰에 의하면 암호표가 다르므로 아군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암호표를 면역학 용어로는 대조직 적합성 복합체(MHC: 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라고 한다. 이 암호표는 크게 두 종류인데 방어체계를
담당하는 방어군 세포는 암호표 2(MHC Ⅱ)를 주로 사용하며, 이 외의 세포들은
암호표 1(MHC Ⅰ)을 사용하여 각 세포가 '아군(자기 self)' 인지 '적군(비자기
non-self)' 인지를 알아낸다. 암호표 2에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 대상은 우리의 방
어체계가 적군으로 간주하고 공격을 퍼붓는다.
막강한 군대!-식세포와 림프구
마침내 외부의 적이 일선의 방어벽을 뚫고 들어와 혈액과 몸 안의 조직 혹은
체액으로 침입하면, 치열한 공방전이 시작된다. 외부의 적(병원체)들은 전초전에
서 승리하고 뽐내며 침입하지만 아쉽게도 2조에 달하는 아군 병력인 백혈구 군
단의 힘찬 방어력에 눌려 여지없이 섬멸되는 것이다.
굴수에서 매초당 100만 개씩 생성되는 백혈구는 크게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먹어치우는 것을 자랑삼는 식세포와 방어군을 진두 지휘하는 총사령관인
T세포, 그리고 오랏줄 생성의 임무를 띤 B세포가 그것이다.
식세포의 원초적 본능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어 보면 균이나 이물질을 먹어 치
우는 것이라고 답하면 된다. 한편 머리를 굴려 정교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총사령관인 T세포와 치밀하게 설계된 오랏줄이자 미사일 유도장치로 작동하는
무기를 생산하는 장교인 B세포는 컴퓨터를 뛰어넘는 가공할 만한 브레인(뒤뇌)
을 가졌다고 보아야 한다. 또 T세포와 B세포는 우리 몸 안의 침입자를 정확히
알아차리고 분석할 수 있는 적군 감시 레이더 혹은 인식장치를 가져야 한다. 이
를 위해 각각의 T세포와 B세포에는 수많은 종류의 적군(병원체 또는 항원)을 혼
동하지 않고 정확히 알아내는 인식장치(학술용어로는 수용체(receptor)라고 한
다.)를 갖고 있다.
방어군도 학교 다니나?
총사령관인 T세포와 B세포는 골수에서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전쟁터로 나아가
적군을 무찌를 수는 없다. 마치 우리 인간이 사는 국가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장
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고된 교육과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싸움터에 나가
기전에 이들 세포들은 첨단 과학기술 훈련을 받아야 한다. 특히 총사령관이 될
T세포의 일부는 세균전에 임하는 내용을 배우며, B세포는 미사일 유도장치를 만
들고 이를 대량생산하는 작업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총사령관의 아카데미
매분 골수에서 생성되는 수백만 림프구의 절반은 총사령관이 되기 위한 막중
한 사명을 가지고 심장 윗부분에 자리잡은 타원형 잎사귀 모양의 흉선(thymus)
에 다다른다(그림참고).
우리들이 태어날 때 이 총사령관의 훈련소(흉선)는 200~250g 정도의 무게를 지
니고 있으며 8~10세 이후부터는 축소되기 시작하여 60세의 노인이 되면 약 3g
정도의 크기로 줄어든다. 나이가 든 노인에게서 방어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바
로 흉선의 위축과 이로 인한 총사령관 활동의 약화 때문이다.
이윽고 생명 수호의 역군으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흉선 내에서 3단계 교육을
받는데, 무척 까다롭고 가혹한 교육과정이다. 100명 입교한 후보생 중 10명만이
무사히 이 교육을 마치고 임관할 수 있을 정도이다.
드디어 후보생이 흉선에서 무사히 교육을 마치고 나왔을 때 비로소 훙선의 영
어명인 Thymus의 머릿글자인 T를 본따 T세포라고 불리게 된다.
사관학교를 졸업하는 장교들이 각자에게 맞은 병과, 즉 특공대, 공병 아니면
일반 육군이 되는 것처럼 T세포는 방어의 효율을 위해 협력세포, 억제세포, 자연
살해세포, 세포독성 살해세포로 나뉘어 온몸으로 배치된다.
미사일 유도장치는 세포당 1만 개!
흉선 아카데미를 지원하지 않은 나머지 림프구들 중 절반은 미사일 유도장치
와 똑같은 기능을 나타내는 항체를 생산하고 발사할 수 있는 훈련을 받기 위해
림프절이나 이와 관련된 조직으로 간다. 미사일 유도장치 생산 세포가 B세포라
고 부리게 된 이유는 제일 먼저 이 세포를 닭의 면역기관인 페브리셔스 낭
(bursa of Fabricius)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B세포가 되기 위한 후보생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입소했을 때는 그야말로 백
지나 마찬가지인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 장교들은 몸에 쳐들어오는 적군이나 적
군이 보낸 전투기 또는 쏘아 대는 폭탄을 정확히 막아 내기 위한 미사일 유도장
치의 제조 능력을 체득하기 위해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여기에는 필수적으로 총
사령관인 T세포의 협력이 필요한데, T세포는 하사관 대식세포로부터 입수한 적
의 동향과 구조, 모양 등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B세포에게 전달해 주
어, B세포가 정보를 입수한 대로 하나의 특성을 가진 미사일 유도장치, 즉 항체
를 1초에 세포당 1만 개의 비율로 만들게 한다.
막상 미사일 유도장치를 숨가쁘게 만들다 보면 B세포는 배부른 임신부마냥 그
크기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때는 특별히 '형질세포'라고 부른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난공불락의 요새인 우리 몸을 외부의 적군(병원균)들이 쳐들어오기 위해서는
집요하고 다채로운 병법을 펼쳐야 한다. 그러므로 일단 우리 몸에 들어온 적군
(병원균)들은 적어도 상당한 수준의 능력을 지닌 것들임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
서 이들을 쳐부수기 위해서는 우리의 방어군을 일사불란하게 지휘 할 수 있는
막강한 통솔력이 필요하다.
이렇듯 우리 몸 안의 방어군이 빗발치는 적군의 공격을 마다하지 않고 적진을
향해 뛰어들어 우리의 빼앗긴 고지를 탈환하도록 사기를 진작시키는 실질적인
명령은 주로 총사령관인 T세포가 하고 있다. 그런데 각 전투마다 제각기 알맞는
명령을 방어군에게 부여하여야 하므로 총사령관인 T세포는 많은 명령어를 절도
있게 사용해야 한다. 우리 몸의 방어군이 전투시에 주로 사용하는 명령어가 무엇
인지 많은 과학자들이 알아 본 결과 그 본질은 주로 단백질로 되어 있으며, 그
기능은 방어군을 활성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 명령
어를 '세포활성물질(cytokines)'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러니까 이 화학물질은 총사
령관 T세포가 우리 몸의 방어를 담당하는 전군을 통솔하는 데 사용하는 명령어
인 것이다.
이 명령어는 뒤에 설명할 호르몬의 작용과 비슷하며, 주로 병균을 처리하는 방
어세포의 성장, 전투방법, 방어세포를 관리하고 후원하는 데 사용된다. 명령어의
종류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인터페론(interferon)을 포함하여 인터루킨(현
재까지 13종류 이상 발견) 등이 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명령을 방어군이
일단 하달받으면 여지없이 명령에 복종한다는 점이다. 마치 충성스런 군인이 명
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것처럼.
제3장 그칠줄 모르는 전쟁
작다고 깔보지 마라!
작다고 깔보다간 큰코다치는 상대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몸 안으로 쳐들
어오는,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정말 조그만 병원균들이다. 과학자들이 병을 일으
키는 원인을 찾고자 노력했을 때 만일 병균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커다란 생명
체였다면 원인을 찾기란 아주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의 대부분은 우리의
육안으로는 구분이 어려운 미생물(microorganism) 이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했다.
과학자들은 불굴의 노력으로 현재 수십만 배까지 확대가 가능한 전자현미경을
개발하고, 이를 이용하여 병을 일으키는 이러한 미생물들이 어떻게 생겼으며 크
기는 얼마나 되는지를 밝히게 되었다.
적을 아는 것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지름길일것이다. 앞페이지에 균의 모양
과 크기가 대략적으로 표시되어 있다.
나쁜 균, 좋은 균 따로 있나요?
우리 몸 안의 방어체계는 우리가 사는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다른 일들과
꼭같다. 우리를 침범하려는 적이 있는 반면 도움을 주는 동맹군도 있듯이 세균도
질병을 안겨 주는 해로운 균뿐만 아니라 좋은 균도 있어 오히려 우리에게 커다
란 도움을 준다. 이래서 세상은 음양이 균형을 이루며 돌아가는 것인가 보다.
나쁜 균, 즉 적이 들어오면 즉각 대응하는 우리의 방어체계는 우방인 좋은 균
에게 몸 안에 진지를 구축하고 살아 가도록 허락해 준다. 비록 필자가 여기서 나
쁜 균의 종류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주위의 질병을 생각해 보고 그와 관련
된 균들을 떠올려 보면 어떤 균이 나쁜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좋은 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 보자. 먼저 소화를 담당하는 장은
외부의 음식을 받아들이고 분해하여 흡수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생명에 필요한
힘을 충전시켜 준다. 그런데 아무리 위생처리가 잘된 음식일지라고 그 곳에는 몰
래 잠입해 오는 적군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훌륭하게도 우리의 장은 적이
장을 통과하여 방어군이 이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수고스러움을 면하게 해
준다. 즉 끈적한 점액막(파이에르판)과 같은 천연적인 요새를 온통 산성화하여
들어온 적군을 화학전으로 녹여 버리는 방법과 점액에 수없이 많은 지뢰(학술용
어로는 항체 IgA라고 한다)를 깔아놓고 적을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는 작전을 쓰
고 있다.
바로 이때 장의 점액성 막을 더욱 산성화하는 데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더욱
이 지뢰를 만드는 것을 촉진해 주는 동맹군이 있다.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는 이
동맹군은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불가리커스균, 서모필러스균, 비피더스균 등이다.
이 유산균들은 우리의 장내에서 증식하면서 젖산, 초산과 같은 유기산을 만들어
낸다. 이 산으로 인해 장관 내는 더욱 훌륭한 방어막인 산성막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유산균들이 만들어 낸 물질과 유산균의 몸뚱아리 자체는 우리 몸 안의
방어군을 자극하여 방어능력의 태세를 강화시켜 준다.
이와 같은 원리로 인간의 생명이 탄생되는 엄마의 자궁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자궁경부(cervix)에도 우리의 동맹군인 젖산균이 진을 치고 있다. 이것도 역시 그
곳에서 자라나며, 산을 자궁경부의 점액막에 방출하고 장에서와 같은 양상으로
생명의 산실을 수비하는 것이다. 아, 정말 얼마나 고마운 공생인가?
청소부 하사관 식세포
효율적인 방어를 위해 총사령관과 청소부 하사관이 호흡을 잘 맞추어서 함께
하는 일을 알아 보자. 되풀이하는 내용이지만 용감한 여러 종류의 방어군 중에서
도 식세포는 단지 '먹어치우는 세포'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가려
먹지 않고 외부 미생물이건 죽은 세포건 그 밖의 조직 찌꺼기건 간에 미심쩍게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먹어치운다. 이들은 병균의 침입을 막는 보초병의 역할과
아울러 노폐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깔끔이 청소부 역할을 두루 수행하는
것이다. 심지어 폐를 시커멓게 만드는 담배연기로 인한 오염물질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간 흡연을 하게 되면 담배연기는 식세포가 생성되는 속도보다 더 빨
리 식세포를 파괴한다.
식세포의 종류에는 크게 호중구와 대식세포가 있다. 골수에서는 하루에 무려
1000억 개의 호중구가 생성된다. 호중구의 수명은 3~4일에 불과하지만 감염이 있
을 때는 그 수가 급증하는데, 무려 다섯 배까지 증가한다. 한 개의 호중구는 박
테리아를 대략 25마리까지 잡아먹은 후 죽는다. 그러나 호중구는 꾸준히 생겨난
다.
한편 한 개의 대식세포는 죽기 전에 약 백 명의 침입자를 없앨 수 있다. 대식
세포는 호중구보다 덩치가 더 크고 억세며 오래 산다. 대식세포는 침입자나 노폐
물에 대해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 반응한다. 그들은 다만 먹어치우기만 하는 것
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더욱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대식세포가 오직 쓰레기 청소
부로만 여기던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균을 녹일 수 있는 무
려 50가지 이상의 효소와 항미생물제, 심지어는 산소(superoxide) 및 질소
(nitricoxide) 폭탄까지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은 방어를 담당한
면역세포뿐 아니라 뇌신경세포, 호르몬생성세포 사이에서 아주 훌륭한 통신병 역
할을 해낸다.
SOS, 도와 주세요! 적이 침입했습니다!
용감한 대식세포는 적군을 잡아 먹어 치우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일
을 수행한다. 사실상 우리 몸의 모든 세포도 그러하지만 대식세포 또한 자기의
세포 표면에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한 암호표(MHC분자)를 달고 다닌다. 무척
재미있는 일은 대식세포가 병균을 잡아 먹고 소화한 작은 찌쩌기 분자를 떼어내
암호표의 움푹하게 팬 홈에 부착하고 병원균을 잡아 먹었음을 자랑한다는 것이
다.
자, 이렇게 되면 이 병균 쪼가리는 대식세포의 암호표와 더불어 위험 신호용
깃발 구실을 하면서 우리 몸 안의 모든 방어군에게 적이 침입했다는 에스오에스
(SOS) 경종을 울려 주는 셈이 된다. 균을 잡아 먹은 대식세포는 자기의 위용을
자랑하며 공습경보를 보내 더 많은 아군의 증강을 요청하는 것이다.
바로 이 곳에는 총사령관인 협력 T세포도 달려온다. 그러나 이때 우리 몸 안
에는 수십억 개의 총사령관 T세포가 돌아다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 대식세포가
알리는 공습경보의 종류를 분석하고 침입한 적군의 동태를 기억하고 있는 특정
한 종류의 총사령관 T세포만이 나서게 된다. 즉 대식세포의 바깥에 있는 암호표
의 움푹하게 팬 홈에 부착한 병원균 쪼가리(항원)를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협력
T세포인 것이다.
일단 적군을 상세히 알고 있는 정보통의 총사령관 T세포가 도착하여 적(항원)
을 실제로 확인한 뒤에는 총사령관 T세포는 자신을 포함한 청소부 하사관 대식
세포에게 명령(세포활성물질)을 하달한다. 그 결과 총사령관 T세포와 대식세포는
스스로 엄청나게 불어나며 방어력을 증강시킨다. 이렇게 되면 침입한 병균을 잡
아먹는 대식세포가 많아지면서, 대식세포의 공습경보를 알아차리는 특정한 종류
의 총사령관 T세포도 증가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 몸 안의 방어병력은 일시적으
로 증가되어 병균의 무리를 가차없이 전멸시키는 것이다.
멋있는 추격젼!
추격 미사일이 적군의 잠수함 또는 건물을 미사일 유도장치의 도움을 받아 쫓
아가 한방에 날려 버리는, 전시를 방불케 하는 일들이 우리 몸 안에서도 일어난
다. 미사일 유도장치로 작동하는 항체의 기능을 보좌하여 적군인 세균을 파괴하
는 미사일(면역학 용어로 '보체'라 한다.)이 있는 것이다. 이 혈액 속의 미사일에
관한 연구는 19세기 말부터 독립된 분야로 연구가 되어 왔다.
이 미사일은 하나만 발사되어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무려 9개에 달하는 미사일
이 정교하게 순서대로 발사되어야 한다. 먼저 첫 미사일이 적군의 위치를 표시해
주는 미사일 유도장치(항체)의 꽁무니에 따라붙으면 연달아 다음 미사일이 뒤따
른다. 9개의 보체 중에서 처음의 4개는 5번째부터 9번째까지의 미사일이 세균을
구멍 뚫을 수 있도록 선발대가 되어 준다. 그러면 5번째에서 9번째까지의 미사일
은 마치 반절로 잘라진 둥그런 도넛 모양으로 결합하고, 이 반절짜리 도넛 두 개
가 모여 완전한 도넛이 된다. 완전한 고리 모양의 도넛은 이제 세균의 세포막에
구멍을 뚫으며, 이로써 세균은 외부로부터 물 등이 거세게 밀려들어와 터져 죽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정교한 우리 몸 안의 미사일은 #1 식세포가 세균을 잡아먹도록(탐식)
도와 주고, #2 바이러스를 중화시키며, #3 고름을 만들어 내는 염증반응에도 관여
한다.
한편, 미사일(보체)이 만약 우리 몸에 결핍될 경우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은 적군의 침입(병원균의 감염)이 잦아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몸의 방어체
계는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모두가 소중하며 모든 것이 철두철미한 작전과 전
략 속에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과학자의 생명을 건 이야기
방금 이야기한 우리 몸 안의 미사일 체계, 즉 보체에 관한 이야기를 좀더 해
보자. 1950년대 이전까지는 미사일 유도장치(항체)가 적군(세균)의 진지에 꼭 붙
어 있어야만 미사일(보체)이 발사되어 세균을 쳐부수는 일을 한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1954년 미국의 클리브랜드에 있는 웨스턴 리버브 대학교의 뛰어난 과학
자인 루이스 필레머는 미사일 유도장치가 없어도 곧바로 미사일이 작동하는 과
정을 연구 발표하였다. 그리고 혈청에서 발견된 미사일(보체)을 직접 작동시키는
물질을 프로페딘(properdin)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미사일 발사를 위해 적군과 미사일 유도장치가 결합된 것
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미사일이 발사될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필레머의 연구발표는 완전히 무시되었고, 다른 과학자의 혹독한 비판까
지 받았다. 안타깝게도 필레머는 과학적으로 재능이 많았으나 심한 정서불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기의 연구 보고서에 대한 반박으로부터 오는 심한 정
신적 갈등과 압박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을 하고 만다. 그가 세상을 떠난 몇 년
뒤에 그의 연구 결과가 옳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미사일은 적군가 유도장치가 결합된 상태가 아니더라도 우리 몸 안의 혈액 내
에 녹아 들어 있는 많은 물질에 의해 작동됨을 아는 데에 한 과학자의 희생이
따라야 했던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과학을 하면서 자기의 연구 결
과만을 고집하는 오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자연을 탐구하며 도대체
무엇을 배워 왔는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슬픈 역사인 것이다.
외우는 거라면 자신 있어요!
한번 침입해 왔던 적이 다시 쳐들어오면 우리 몸 안의 방어군들은 어떻게 대
응할까?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고 총사령관인 T세포와 미사일 유도장치 제조 장
교인 B세포는 여러 해동안 또는 평생 동안 우리 몸의 혈액이나 림프관에 한번
쳐들어온 적의 신상명세를 낱낱이 기억하는 기억세포(memorycell)를 남겨 둔다.
총사령관 기억 T세포의 경우는 과거에 걸린 유행성감기(influenza) 또는 일반
감기 바이러스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종류의 균이 들어오면 이 기억세
포들은 즉각 알아차리고 빠르게 집중공격을 감행하도록 전군 소집명령을 선포한
다. 기억세포는 특히 바로 지금의 침입자가 처음 공격해 왔을때 무찌른 바 있는
종류의 T세포와 B세포를 엄청나게 많아지도록 이끈다. 혹시나 하고 두번째 침입
한 적들은 발 디딜 틈을 찾기도 전에 외우는 데 뛰어난 기억세포들에게 패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에 적을 무찌르는 데 3주일이 걸렸다 하더
라도 이제는 접전을 벌이기 전에 싸움을 끝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우리의 방어체계가 처음 침입했던 병균의 정보를 기억함으로써 똑같은
병균의 2차 도발에서는 쉽게 초전박살을 내어 버리는 현상을 일컬어 '면역'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칠 줄 모르는 전쟁!
하나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곧 또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적들의 종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양하다. 예를 들어 유행성 감기 바이러스의 종류도 여러
가지이고, 가끔씩 세계의 곳곳으로부터 강력한 병균이 들어오기 때문에 사태가
복잡하다. 감기 바이러스의 종류는 약 200가지를 웃돌며, 각 바이러스 종류마다
고유한 항원(스스로가 적임을 나타내는 이정표)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총사령관 T세포의 종류도 200가지가 있어야 하며 이 중에는 감기 바
이러스 중 한 바이러스의 항원과 맞는 수용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유행성 감기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키
며 그때마다 마치 새로운 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자물쇠에는
새로운 열쇠가 필요하듯이 총사령관 T세포의 수용체(적 감지 레이더)도 새로운
것이 필요하게 된다. 만일 감기 바이러스가 자물쇠를 계속 바꾸어 침입한다면 우
리 몸 안의 총사령관 T세포도 열쇠를 계속 바꾸어야 한다.
흔히 의사가 감기 하나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다고 투정을 하지만, 이러한 문제
를 이해하게 되면 지나친 불평은 삼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특정 종류의 감기에
걸린 후 낫게 되면 다시는 같은 종류의 감기에 걸리지는 않겠지만, 변이된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면역계의 방어군은 그것과 싸울 병력을 소집하기 위해 완
전히 새로운 총사령관 T세포를 만들어야 한다.
아! 인류의 역사처럼 우리 몸도 전쟁이 그칠 새가 없구나!
쿠데타는 우리 몸 속에서도 일어나는가?
"아니, 우리 몸 안에서도 쿠데타가 일어난다고?"
정말 놀랄 일이다. 아군이 자기 나라의 백성이나 군인에게 총을 들이댄다면 이
보다 비참한 일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몸 안에서 바로 이러
한 쿠데타(학술용어로 '자가면역질환' 이라 한다)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미 말한 바이지만 우리 몸 안의 짜임새는 마치 한 사회나 국가처럼 구성되어 있
으므로 한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이 실제 우리 몸 안에서도 발
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것이다.
현재까지 많은 과학자들이 면역과 관련된 질병을 연구하면서 밝혀낸 사실을
알아보자. 방어군(면역세포)들이 정상적으로 작용할 때는 우리 자신과 외부의 이
물질을 정확히 구분하고 자신은 공격하지 않는다. 쿠데타가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몸에 자기를 파괴시키는 유도장치(항체)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지휘하는 억제 총사령관(억세 T세포)이 지휘능력을 잘 발휘
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몸 안에 쿠데타가 일어난, 즉 '자가
면역질환' 을 나타내는 사람은 총사령관인 T세포 중에서도 억제 T세포의 기능이
나쁜 것임이 증명되었다.
몸 안에 쿠데타(자가면역질환)가 경미하냐, 아니면 유혈 사태까지 번지느냐는
큰 관심사이다. 그런데 자가면역질환은 대개 중증인 경우가 많으며, 우리 몸의
여러 부위에서 다양한 질병을 일으킨다.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자가면역질환은
변형성 관절염(류마티즘의 일종)인데, 이는 바이러스가 침입하여 일어난다. 이 경
우에는 우리 몸의 방어군인 B세포가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유도장치(항체)를 다
량으로 만든다. 따라서 유도장치를 인식하고 발사되거나 모여든 미사일(보체)이
나 탐식세포들에 의해 관절이 점차적으로 파괴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원리로 생겨나는 자가면역질환은 이외에도 만성 갑상선염, 갑상선
기능 항진증, 중증 근무력증, 용혈성 빈혈, 눈의 포도막염, 인슐린 분비세포의 파
괴에 의한 당뇨병 등이 있다.
쿠데타가 일어나면 신속하게 진압하는 것이 백성의 안녕을 위해 가장 절실한
일이다. 하지만 자가면역지환은 발병 당시의 증상만으로는 발병 유무를 인식할
수 없고 한참 사태가 진전된 후에야 알아차리게 되는 단점이 있다. 이 질환에 대
해 현재로선 면역 억제제와 항염증제를 써서 그 증세를 호전시키고 있으나 이
방법으로는 자가면역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가 없다. 우리 몸 안의 방어기
구인 면역계에 대한 지식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
직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자연치유력을 증대시키는 기수련법을 통하여 총사령관의 기능을
스스로 조절함으로써 자가 면역질환에 대한 예방책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 전망
하고 있다. 또 부분적으로 천도선법 기수련의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임상적 연구
도 실행하고 있다.
이기고 지는 것
광견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개발한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
(1822~1895)는 '병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병에 걸리게 되는가?'
라는 궁금증을 파고들어 병의 원인은 바로 세균,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것을 많은
연구를 통해 밝히고 '세균설'을 주장했다. 파스퇴르 이후 1세기가 지나는 동안 이
설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확실한 사실은 병원균이 몸에 들어오면 우리는 그
균에 의하여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세균설이 만들어질 무렵 프랑스의 이웃나라인 독일의 뮌헨 대학 교수였
던 세균학자이자 위생학학자인 페텐코퍼라는 무명의 교수는 우연한 실험을 통하
여 체질과 질병 사이에는 중요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날 페텐코
퍼는 세균을 번식시키기 위한 실험을 하다가 예기치 않은 실수로 그 배양기에
알칼리액이 몇 방울 떨어진 것도 모르고 세균을 배양시켰다. 다음날 그는 알칼리
액이 떨어진 배양기 안의 세균이 번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처음 넣은 균조
차 모두 죽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 사람의 체질(혈액 속의
산성도)이 알칼리성으로 유지되었을 때에는 비록 외부의 적이 침입한다 하더라도
그 균이 번식하지 못하므로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페텐코퍼는 병의 원인은 세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몸의 체질에 달려
있다는 '체질설'을 주장했다. 우리의 몸이 산성이 아니고 알칼리성이면 아무리 바
이러스나 각종 병원균이 침입해 온다 할지라도 그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번식할
수 없으므로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동양의학적 관점에서도 병에 걸리느냐 걸리지 않느냐, 다시 말해 병원균 등의
침입한 적군과 싸워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것은 적군(병원균)의 전략이나 화력의
뛰어남보다도 우리 몸 스스로의 방어력에 희해 결정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체질설에 가깝다고 볼 수가 있다. 시시때때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들의 도발을 두려워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방어
체계(면역체계)가 임무를 아주 잘 수행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즉, 이기고 지는 것은 결국 침입하는 적(병원균)보다 우리 자신의 방어력(체질
적인 의미)에 의해 결정된다.
아! 이제 다 살았다!-에이즈(AIDS)
'20세기의 흑사병' 또는 '인류의 시한폭탄' 이라고 불리는 에이즈는 '면역이 결
핍하여 생기는 병(immunodeficiency syndrome: IDS)' 이다. 우선 이 병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인 문제 때문에 생긴 선천적인 면역부족증이 아니고 살아가면서
#1 성 접촉 #2 수혈이나 혈액제제의 공동 사용 #3 에이즈 환자인 엄마를 통한 태
아 감염 등으로 걸리기 때문에 '후천성(Acquired: A) 면역결핍증(IDS)' 이라고 한
다.
에이즈는 사람면역결핍 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라고
불리는 바이러스에 의해 걸린다.
이 적군의 동태를 살펴보자. #1 크기가 1만분의 1 밀리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
으며 전자현미경으로도 겨우 보일 정도이다. #2 이 적군은 카멜레온처럼 자기의
모습을 자주 바꾸는 이른바 돌연변이에 능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에이즈 바이러
스에 대해서는 항생제나 그 밖의 백신 등이 아직 효력을 잘 발휘하지 못하는 것
이다. #3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에이즈 바이러스는 유독 방어군의 총사령관인
협력 T세포를 파괴하는 총사령관 전문 킬러라는 점이다.
둥근 공 모양의 에이즈 바이러스의 표면에는 총사령관만을 잘 알아차리는 열
쇠(gp120)를 달고 있어 총사령관 세포의 안으로 들어가는 문의 자물쇠(CD4)를
열고 들어갈 수가 있다. 일단 총사령관 안에 들어가면 에이즈 바이러스는 자기의
유전자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숫자를 엄청나게 증가시키는데, 결국 총사령관 세포
는 에이즈 바이러스 번식의 온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에이즈 바이러
스의 숫자는 증가하지만 거꾸로 총사령관 세포의 숫자는 줄어든다. 아무리 훌륭
한 백만대군인들 어찌하랴. 이들을 지휘 통솔할 총사령관이 전사해 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몸 안이나 주위에서 기를 죽이고 살던 득실득실한 병원균들은 총사령관
이 줄어드는 기회를 엿본 뒤에 드디어 '야, 이때다' 하고 마구 진격해 온다. 전술
을 펼쳐야 적군을 섬멸할 수 있을 텐데 총사령관의 지휘를 받지 못하는 방어군
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우왕좌왕할 뿐이다. 이로써 우리의 방어군은 제대
로 싸우지도 못한 채 적군에게 생명 고지의 깃발을 넘겨주고 마는 것이다. 이를
의학적으로는 '기회감염' 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기회주의 적군들은 피부암을 일
으키는 카포시바이러스, 폐렴균, 칸디다 곰팡이 등이 있다. 재주는 에이즈 바이러
스가 부리고 값진 생명은 잡동사니 세균들이 파괴해 가는 것이다.
에이즈 감염으로 인한 사망 예상자 수는 앞으로 미국에서 만도 한국전이나 월
남전 때 사망한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아프리카에서는 무려
150만 명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에이즈 바이러스(HIN)에 감염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1,700만 명에
달하며, 이 중 3백만 명은 93년도에 새로 감염된 사람들로 확인되었다. 한편 우
리나라 보사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4년 7월 말 현재 한국의 에이즈 감염
자는 모두 369명으로 나타났다.
에이즈 전문가들은 금세기 안에 에이즈의 예방 백신이나 치료약을 개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바이러스보다 2~4배 돌연변이를 빨리 일으켜 한
종류의 모양을 알아차리고 쳐부수는 백신으로는 야누스처럼 변하는 에이즈 바이
러스에 대적살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가지 약재만으로 에이즈 바이러스를
박멸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백혈병이나 결핵에서 효
과를 본 것처럼 복합화학요법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치 적군을 향해 융단
폭격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희망을 걸어 보면 어떨까. '에이즈의 예방이나 치료에 나 자신
안에 내재한 활화산과 같은 자연 치유력에 불을 댕기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
다.
제4장 몸과 다리를 잇는 다리
마음은 어디에?
옛날부터 우리는 사람의 마음은 가슴 부위의 심장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
다. 그러나 실제 사람의 마음은 뇌에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사람의
마음(혹은 정신)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1 감각 또는 감정이라고 하여 사물을 느끼는 기능
#2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고 즐기며 시를 읽고 그 의미를 아는 기능
#3 어려운 내용도 오랫동안 기억하는 기능
#4 원대한 상상을 하고 계획을 세우거나 창조적인 구상을 해내는 기능
뇌가 이 모든 기능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몸과 마음, 즉 마음과 뇌는
따로따로가 아님을 알아 낸 것이다.
뇌도 부위에 따라 그 마음의 기능이 각기 다른데 각 부분이 담당하는 기능을
살펴보도록 하자.
대뇌는 전두엽(안쪽), 후두엽(뒤쪽), 두정엽(정수리 부분), 측두엽(옆쪽)의 네 부
분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이 중 사람다운 마음의 기능, 즉 생각하고 상상하며
계획을 세우는 일등을 하는 부위는 전두엽이다. 암기를 하는 부위는 주로 측두엽
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 기능은 후두엽과 두정엽이 하고 있다.
뛰고 노는 기능, 운동기능을 조절하는 것은 소뇌의 명령을 받은 전두엽의 뒤쪽
이 차지하고 있다. 한편 사람다운 기능 중 으뜸이라고 볼 수 있는 말하는 기능은
대뇌의 측두엽(좌측) 부근에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말하는 기능은 어릴 때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몸과 마음을 잇는 다리
유쾌한 감정이나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면, 그 감정은 우리 몸 안에서 신경회로
라는 초속 약 0.5미터에서 100미터에 이르는 고속전철을 타고 쏜살같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신경전달 물질, 즉 신경 호르몬을 쏟아내어 면역계에 파문을 일으킨
다.
한 나라의 수뇌부가 나라일을 다스리기 위해 정부의 계획이나 곧바로 행동에
옮겨야 할 명령을 여러 공공기관에 전달하려면 우편물이나 전선을 이용한 전화,
그 밖의 많은 통신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인간의 뇌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우
리 몸의 원만한 평화유지(건강)를 위해 모든 여러 기관과 조직 및 세포에 대해
수시로 상황을 점검하고 또한 그들과 신속한 연락을 취하고 있다.
몸 안에 있는 장거리 통시수단을 우리가 사회에서 쓰고 있는 방식과 비교하여
보자. 전선을 이용한 전화기나 팩시밀리와 같은 신경계가 있고, 한 장소로부터
배달되어 주소가 적힌 목적지에 이르러 내용을 전하는 우편물과 같은 호르몬이
있다. 몸 안의 신경계와 호르몬계(내분비계)는 바로 몸과 마음을 이어 주는 통신
수단이자 다리를 놓아 주는 물질인 것이다.
모방할 수 없는 컴퓨터
몸과 마음을 잇는 다리 중에서 제1의 튼튼한 다리 역할을 해내는 신경계는 어
떤 것인가. 지금은 바야흐로 컴퓨터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이루
어지고 있는 시대이며, 채 몇 개월도 안 걸려 처리속도와 기능이 우수해진 새로
운 기종의 컴퓨터가 대중에게 선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현세를 컴퓨터 왕국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우수한 컴퓨터가 있다 해도 아직까지 그 신비가 다 밝혀지지
않은 우리 몸 안에 자리잡은 뇌는 어느 컴퓨터도 모방할 수 없는 컴퓨터의 제왕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여러 가지 활동을 잘 해나가며 생명을 조절
할 수 있게 지휘하는 총사령부인 뇌는 우수한 컴퓨터인 셈이다. 뇌는 마음이라는
미묘하고도 복잡한 정보를 수집하고 재빨리 분석, 처리하여 몸으로 명령을 전달
함으로써 명령을 실행할 수 있게 하니까 말이다. 이 우수한 컴퓨터는 신경이라는
회로를 통해 전기를 이용한 정보전달 방법을 이용하여 온몸에 명령을 잘 전달함
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대로 활동하게 만든다. 마치 우리 일상 생활에서 팩시밀리
나 전화를 이용하여 소중한 내용을 전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말이다.
컴퓨터에 중앙정보처리장치(CPU)가 있듯이 몸 안에도 중앙정보처리장치가 있
는데, 이를 일컬어 중추신경계라 한다. 정보를 처리하여 몸에 전달하는 속도(신경
전달속도)는 초당 100~120m에서부터 초당 0.5~1m로 비교적 느린 경우도 있다.
마음대로 우리 몸의 근육 등을 조정할 수가 있는 것은 이러한 중앙조절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편 컴퓨터가 정보처리망, 즉 네트워크(network)를 형성하여 정보처리를 능률
적으로 하듯이 몸에도 이와 같은 네트워크가 있는데, 이것을 말초신경계라고 한
다. 이 말초신경계라는 네트워크는 온몸 구석구석에서 감지되어 들어오는 정보를
중앙처리장치인 뇌에 전달할 뿐만 아니라 거꾸로 뇌에서 하달되는 정보를 온몸
에 전하는 일까지 맡고 있다.
몸 안에 울려퍼지는 교향곡
우리 몸의 훌륭한 정보 처리망이자 몸과 마음을 잇는 다리중에서도 소화기관
의 운동이나 배설 작용, 체온 유지, 심장 박동수, 혈압 등을 조절하는 네트워크는
중앙정보처리장치인 뇌의 직접적인 지시가 없이도 자동적으로 정보를 수행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를 자동정보처리장치, 곧 자율신경계라 한다. 이러한
자동처리장치는 주어진 역할에 따라 몸과 마음에 전체적으로 활력을 주어 활동
하게 하는 교감신경계와 고삐 풀린 망아지를 길들이는 것처럼 교감신경계가 과
다하게 해놓은 일들을 섬세하게 가라앉히는 부교감신경계로 되어 있다. 이렇듯
우리 몸을 하나하나 뜯어 보면 정보처리 방식에서도 음과 양의 시소게임이 잘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은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가진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계를 연구하
면서 마치 멋있는 지휘자의 손짓에 맞춰 감미로운 교향곡이 연주되는 듯한 현상
과 일치시켜 교향곡(symphony)의 '교향' 의 뜻을 지닌 '교감(sympathetic)' 이라
는 말을 신경계에 붙였다. 교향곡이 연주되면 감흥에 젖듯이 우리의 몸은 신경의
조절에 따라 가장 훌륭한 하모니를 이루어 가기 위해 온몸을 떨쳐 일어나 움직
이게 끔 하는 것이다. '자, 운동하자, 일을 하자' 라고 할 때 온몸의 연주단원인
교감신경계는 교향악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우리 몸은 그 흥에 젖어 움직인다.
그런데 교향곡이 끝없이 흘러나와 한없이 도취되는 것처럼 몸 안의 자율신경
계가 계속 작동하면 이는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연속적으로 밟는 것과 같아
우리들이 무의식적으로 도가 지나친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 선조들은 과하면 넘치는 게 당연지사임을 우리의 선조들은 익히 아셨고,
이 과함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항상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일상생활
속에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고삐 풀린 망아지 길들이기
하루를 긴장(스트레스) 속에서 살다 보면 자동처리장치 중에서도 교감신경계의
작동이 쉼없이 이루어져 마치 교향악 연주단원이 지쳐 버리는 것처럼 우리 몸에
서는 여러 가지 기능의 조절능력이 떨어진다. 모세혈관이 수축되고 혈압이 상승
하며 뇌, 신장, 골격근에 과다한 혈액이 모여든다. 모두가 쉽게 공감하듯이 현대
인들의 생활은 균형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따라서 몸 안의 정보처리장치는 쉴틈
없이 작동하여 우리의 생체에너지(기)를 고갈시키고 혈압도 오르게 하며 심장도
두손 들게 한다. 질주하는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지 못함으로써 차
는 더욱 과속하게 되는 현상처럼 말이다. 달리 비유하자면 우리 몸의 균형잡힌
상태가 고삐가 튼튼하게 매어진 망아지라면, 교감신경계의 과다한 작용은 거꾸로
우리 몸을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마구 날뛰는 망아지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누가 채찍을 휘두를 것이가?
우리 몸 안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를 다스리는 자동정보처리장치는 '부교감
(parasympathetic)신경계' 이다. 교향악의 연주음을 전달하는 교감신경계의 전선
이 몸에 분포하고 있듯이 고삐 풀림 방지를 위한 부교감신경계의 채찍과도 같은
전선 또한 몸 안에 뻗쳐 있다. 생명이 유지되는 기막힌 조화들 중 하나는 이처럼
음과 양의 밸런스를 맞추어 나가는 자동정보처리장치인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이 은밀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 몸의 자동정보처리장치는 중앙정보처리장치의
통제는 전혀 받지 않을 뿐더러 임의대로 정보를 변화시킬 수도 없는 것으로 여
겨왔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르러 많은 과학자들은 여러가지 바이오 피드백, 참선
등을 통해 자동정보처리장치인 자율신경계가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사실
을 알아 내기 시작하였다. 우리 연구팀들도 천도선법 기수련을 통하여 호흡과 심
장 박동수의 안정, 말초 혈류량의 증가와 같은 연구 결과를 직접 확인함으로써
그러한 결과들이 사실임을 더욱 입증할 수 있었다. 이는 이제 자율신경계가 수련
을 통하여 조절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새로운 이정표가 만들어져 가고 있음을 말
한다.
많은 사람들은 기수련을 단전으로 하는 호흡수련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
로 기수련이란 단전호흡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루하루의 생각을 정
리하고 반성하며 마음의 안정, 즉 뇌 활동의 안정화를 통하여 고삐 풀린 전신을
잘 길들이는 지혜로운 건강법이다. 그러므로 기수련을 하나의 커다란 숲으로 본
다면 단전호흡은 단지 한 그루의 나무에 불과하다. 전신이 잘 길들여지면 단전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강화될 뿐더러 호흡도 자연히 고르게 되는 것이다. 천도선
법 기수련의 세 단계 동작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복식 또는 단전을 중심으로 하
는 호흡의 효과를 신경학적으로 풀어 보자.
해부학적으로 배꼽 깊숙한 곳에는 위장과 소화관을 통제하는 자동정보처리장
치(신경절)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부분은 단전 부위와 거의 일치한다. 만약 이
부위를 자연스럽게 단련시키면 정보처리장치의 작동을 원활하게 해줌으로써 호
흡뿐만 아니라 소하를 좋게 하고 나아가 호르몬계와 면역계를 잘 조절하게끔 하
여 전신에 생체 에너지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이제는 고삐 풀린 망아지를 다스릴 자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깊이 이해해야
할 때이다.
사춘기의 마술사! 호르몬이 뭐지?
'호르몬' 하면 사춘기 때 가슴이 볼록해지고 코 밑에 가뭇가뭇 수염이 나게 하
는 마술사를 연상하면서 왠지 수줍음을 일으키는 단어로 떠오른다. 또 한편으로
는 듣기만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굉장히 복잡한 물질로도 생각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것이다.
우리 몸의 각 기관은 각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된 장소에 있다. 뇌는 머리
에, 간은 복부에, 그리고 신장은 허리 부위의 등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주 잘 협동하여 우리는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서로에게 연락을 주고받는 것일까? 뇌가 간에게 또는 신
장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할까? 우리의 몸이 위급한 상황에 빠
지게 될 때 방어군인 면역계에게 긴급하게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과연 어떤 방
법으로 해야 하는가? 이런 경우 몸 안의 통신수단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이러
한 우리 몸 안의 통신수단의 역할을 맡는 것이 바로 호르몬이다.
호르몬은 신경계와 더불어 우리 몸 속의2가지 통신수단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화나 통신을 하려면 상대방이 있어야 하듯 우리 몸 안에서도
통신 물질로 호르몬을 내는 발송기관이 있으며, 이 호르몬을 받아보는 기관이 있
다. 호르몬의 배달부는 바로 혈액이다. 호르몬은 심장박동에 따라 온몸을 구석구
석 돌아다니는 혈액에 담겨져 받는 사람의 주소를 찾아가는 우편물처럼 목적지
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호르몬은 우편물에 비유할 수 있다.
중요한 명령이나 대화 내용이 담긴 우편물을 발송하는 기관, 즉 호르몬을 혈액
중으로 분비하는 기관을 '내분비기관(endocrine organ)' 이라 하며, 우편물이 도착
하는 주소지의 기관, 즉 호르몬이 도달하는 기관을 '목적기관(target organ)' 이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우편물에는 항상 받는 사람의 주소가 적혀져 있어 정확하게
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호르몬도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며 여러 기관을
거치지만 실제로 작용을 나타내는 곳은 오직 보내질 때 정해진 목적기관뿐이라
는 사실이다. 자연의 섭리는 아직까지 우리가 다 이해하기엔 너무도 경이로울 따
름이다.
사춘기가 되면 뇌에서 여성의 경우는 난소, 남성의 경우는 고환을 성숙시키기
위한 생식기 성장 호르몬이 나와 혈액을 타고 바로 목적기관이 난소와 고환에
이르러 생식기가 성장하라는 명령을 전달한다. 그러고는 이 호르몬은 재빨리 몸
속의 대사과정을 통해 사라진다. 뇌로부터 호르몬을 통해 연락을 받고 성숙한 고
환과 난소는 각각 남성 호르몬(안드로겐)과 여성 호르몬(에스트로겐)을 혈액 내
로 분비하여 그들이 목표로 하는 지점인 코와 턱, 겨드랑이, 생식기 주위, 그리고
가슴 부위와 근육을 향해 보낸다. 장차 멋있는 남자, 어여쁜 여자가 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이 호르몬들은 목적조직에 도달하여 임무를 완수한다. 간혹 호르몬
은 내분비기관으로부터 쏘아져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로도 비유된다.
사랑의 호르몬!
여러분에게 '마음은 어떻게 면역계와 대화할 수 있는가' 라고 물으면 이제는
아마도 '호르몬과 신경이라는 몸 안의 통신수단을 통해서다' 라고 대답할 수 있
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과연 몸 안의 방어군(면역계)에게 힘이 되어
주고 건강에 활력을 줄 수 있는 호르몬은 무엇일까?라고 하면 여러분은 쉽게 '베
타엔돌핀(beta-endorphin)'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매스컴을 통해서 우리에게 아
주 잘 알려진 호르몬인 베타엔돌핀이 정답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식물에서 뽑아낸 마약인 모르핀과 코카인이 사람의 뇌에 과
연 어떻게 작용하기에 쾌감을 주는지 궁금하게 여겨 왔다. 그러던 중 1973년 미
국의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원생인 C. B. 파트는 그의 스승인 솔로몬 슈나이더와
함께 뇌에는 바로 외부에서 넣어 주는 마약에 반응하는 인식장치(학술용어로는
수용체(receptor)라고 한다.)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뇌는 외부
에서 주는 마약에 작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마도 우리 몸 속에서 자체적으로
마약과 같은 성분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장치(수용체)가 있는 것이라
고 추측하였다.
1975년 영국의 에버딘 대학교의 존 휴지는 동료 교수와 함께 우선 돼지의 뇌
에서 마약과 같은 물질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엔케팔린이라는 5개의 아
미노산으로 구성된 체내마약을 최초로 분리하였다. 곧이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호르몬 연구소의 리 박사는 뇌하수체로부터 강한 마약작용을 하는 물질을 추출
하였는데, 과학자들은 이것을 '엔돌핀(endorphin)' 이라고 이름지었다. 엔돌핀은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마약' 이라는 뜻이다. 이 중에서도 분자가 큰 베타엔돌핀
은 진통을 줄이는 효과가 뛰어난데, 식물성 모르핀보다 무려 7배나 강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베타엔돌핀이 사람에게 최고의 기분을 느끼게 하
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보배로운 호르몬이라는 점이다. 베타엔돌핀
은 우리들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을 때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
이 될 때 우리의 뇌하수체에서 직접 나오므로 '사랑의 호르몬' 이라는 별명이 붙
었다. 베타엔돌핀은 몸 안에서 자연적인 진통제로 작용하며, 따라서 관절염이나
신경통의 아픔을 진정시키고 염증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우리의 몸
을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지키는 방어군인 면역세포들은 바로 베타엔돌핀의 명령
을 받는 수용체가 있다. 이 호르몬의 작용으로 인하여 자연살해세포의 암세포 파
괴능력이 증가하고 면역세포의 기능이 향상된다는 사실이 신경면역학자들에 의
해 밝혀졌다.
다시 정리해 보면,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이 사랑이 몸 안에서 화
학물질인 호르몬으로 바뀌어 자연치유력을 증가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다. 동화 같은 이야기가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 아름다운 마음으로 진실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건
강을 지키는 최고의 지름길이며 보약이라 하겠다. 모든 성현들의 말씀이 사실임
을 현대과학이 밝혀낸 것이다.
분노의 호르몬!
'자, 싸우자, 일하자, 공부하자, 운동하자' 라고 마음 먹었을 때 몸 안에서는 어
떠한 반응이 일어날까? 이러한 마음을 먹자마자 재빨리 우리의 혈액 내에는 온
몸을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이 수뇌부인 뇌에
서뿐만 아니라 신경의 말단에서까지 다량으로 분비된다. 특히 심하게 분노할 때
에는 온몸에 널리 퍼져 있는 말초신경에까지 자극이 미쳐 노르아드레날린이 빠
져나와 사람을 전투적으로 만들어 잘못하면 성급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호르몬의 관점에서 인간의 하루를 살표보면 아침에 노르아드레날린이 혈액 중
에 증가되기 시작하여 눈을 뜨고, 낮에는 노르아드레날린의 일절량이 분비되므로
활동하고, 밤에는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가 줄어들면서 잠을 자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르아드레날린은 정신, 마음과 육체가 서로 대화하는 데 사용하는
소중한 화학물질이긴 하지만 분노의 감정 때문에 방출되었을 때에는 독으로 작
용한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하겠다.
정신신경면역학자들은 이러한 분노의 호르몬이 면역세포의 활동과 기능을 떨
어뜨리고 병원균에 의한 감염도도 높아지게 하며, 또한 반란군의 감시기구이자
제거능력을 지닌 자연살해 세포의 암세포의 파괴하는 능력을 떨어뜨려 암 발생
및 진행을 촉진하는 것을 관찰하여 보고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흔히 말해 '울화병에 걸려 죽었다' 고 하면, 보이지 않는 화
때문에 사람이 죽기까지 하는 데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누군가
'어떤 사람이 속을 태우다 화병 끝에 암에 걸려 죽었다' 고 말하면 그를 무식하
다고 비아냥하기보다느 과학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제5장 투명한 도화선
천만대군을 교란시키는 적-스트레스
순간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 조기공습경보기, 기막힌 미사일 유도장치와같은 첨
단 방어체계, 또한 우리 몸의 방어를 위해 철저히 훈련된 천만대군을 교란시키는
최대의 적은 누구일까? 21세기의 생명과학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놀랍게도 스트
레스가 그 주범임을 밝혀내었다.
스트레스야, 네 아빠가 누구지?
어린아이에게 아빠가 누구냐고 묻는 것은 자연스런 인사 중의 하나이다. 그러
나 우리가 스트레스를 만났을때 '네 아빠는 누구냐? 너는 어디서 왔냐?' 고 물어
보면 그에 대한 답을 바로 얻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라는 말이 어
디서 유래하여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스트레스(stress)라는 말은 원래 물리학이나 공
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들 학문에서는 스트레스를 '외부에서 어떤 물체에
힘이 가해졌을 때 그 힘을 받아서 물체가 변화된 상태' 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
리가 고무줄을 당기면 길게 늘어난다. 그러나 고무줄은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려
고 한다. 여기서 힘을 받아 고무줄이 늘어난 상태가 바로 '스트레스' 이며, 고무
줄을 잡아당기는 힘, 즉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요인을 스트레서(stressor)라고 한
다.
이러한 과학적 용어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5년 캐나
다 맥길 대학의 생리학자인 한스 세리에 교수에 의해서이다. 그는 외부 환경과
인체의 생명현상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연구, 관찰하게 되었다. 세리에 교수는
인체에 해를 주는 외부의 많은 해로운 요인에 반응하여 몸에 생긴 상처 또는 몸
이 그런 해로운 것을 방어하려는 반응을 통틀어서 스트레스라고 새롭게 정의하
고, 이 단어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외부로부터 자
극을 받은 상태를 스트레스(stress)라 하고, 이렇게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을 스트
레서(stressor)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화 도중에 스트레스와 스트레서를 엄격
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미 전달에 큰 지장이 없으므로 이 책에서도 구
분을 엄격하게 하지 않고 '스트레스' 한 단어만 사용하고자 한다.
스트레스 삼총사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스트레스, 그러나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양태(방법)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이들이 스트레스 삼총사이다.
첫번째는 물리적인 스트레스로 이것은 어쩔 수 없이 대자연으로부터 받는 추
위, 더위 등의 스트레스를 말한다. 두번째는 생리적인 스트레스로서 무리하여 생
긴 과로, 병원균에 의한 감염 등의 스트레스를 말한다. 세번째의 것은 사회적, 심
리적인 스트레스, 곧 정신적 스트레스인데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깊은 슬픔,
분노 그리고 직장 등에서의 인간관계, 실망이나 좌절감 등이 이 범주의 대표적인
스트레스라 하겠다.
이상의 스트레스 삼총사 중에서 우리가 제일 많이 영향을 받는 순위를 따져본
결과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달타냥(알렉산더 뒤마의 작품<삼총사>에 나오
는 주인공)인가?
반란의 조짐-대답 없는 너, 암세포!
암이 발생하는 원인은 아직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진 내용을 알아 보는 일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원래 정상세포의 유
전자에는 암을 일으킬수 있는 유전자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이 사실을 발견한 학자는 1992년 노벨 의학상(캘리포니아 대학의 바머스와 비숍
이 공동 수상.)을 받았다.
우리가 건강하고 정상적일 때에는 이 유전자는 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자극을 받으면 활동을 시작하여 무서운 반란군인 암세포가 되
어 버린다고 한다. 이때 암 유전자를 일깨우는 자극물질을 발암물질이라고 하는
데, 이러한 자극물질로는 해로운 화학물질 또는 발암 바이러스 등이 있다.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당
히 오랜 세월을 거쳐 조금씩조금씩 암으로 진행된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암세포
는 바이러스나 그 밖의 세균과 같이 외부에서 침입해 온 이물질 세포가 변한 것
이 아니라 몸 안에 있는 정상세포가 자극에 놀라 제정신을 잃고 비정상적인 세
포로 바뀐 것이다.
암이 거대한 반란군의 모습을 지니게 될 때까지는 2단계의 과정을 거친다고
본다. 처음에는 마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기 위해 도하선이 필요하듯 암유전자
를 직접 일깨우는 데에도 '도화선(이니시에이터: initiator)' 이 필요하다. 그 다음
으로는 암 즉 반란군이 세력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촉진제(프로모터:
promoter)' 가 작용한다. 프로모터는 도화선에 불을 지르는 라이터 불과 같은 역
할을 한다. 만일 우리 몸 안에 도화선만 있고 불이 없다면 암은 발생되지 않는
다.
정상세포가 반란을 일으킬 때는 1개로부터 시작하여 거대한 규모로 커나가는
데, 이것은 하나의 도화선에 일단 불이 붙으면 연쇄적으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
하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다.
반란군을 일깨우는 투명한 도화선
스트레스가 반란군(암)을 일깨우는, 보이지 않는 도화선이라는 사실이 과학에
의해 증명되기 시작한 것은 이제 기껏해야 20년에 불과하다. 1976년 개최된 '암
발견과 예방에 관한 국제 심포지움' 에서 버넌 릴레이 박사는 다음과 같이 스트
레스와 암의 관계를 보고하였다.
"정상적인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사령탑인 뇌(대뇌피질, 간뇌, 뇌하수체)와 부
신을 통하여 혈액 중에 스테로이드 호르몬인 코티졸의 농도를 높인다. 그리고 또
흉선, 비장, 임파선 등의 무게를 감소시킨다. 이로써 방어기능을 담당한 면역세포
의 감소가 일어나므로 정상세포가 암으로 변하기 쉬우며 암 유발 바이러스가 활
성화되어 발암율이 높아진다."
또한 노벨상을 받은 와르부르그는 암 발생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으면 호흡은 얕아지면서 생체조직 중에 탄
산가스가 많아진다. 이렇게 되면 거꾸로 산소의 공급이 부족해지므로 산소결핍
상태에서 암세포가 발생한다."
미국의 로체스터 의과대학의 한 연구팀은 109명의 환자를 조사함으로써 감정
의 손상 때문에 혈액암인 백혈병(leukemia)과 임파종(lymphoma)이 발생하는 것
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깊은 슬픔(비애), 걱정, 분노의 감
정에 잠길 때, 직장을 잃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일어나는 감정 변
화의 커다란 스트레스가 곧바로 암의 도화선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 보스턴 대학의 로크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잘 풀지 못
하는 사람은 우리 몸 안의 방어체계 중에서 육박전 능력(학술용어로는 '세포성
면역'이라 한다.)이 줄어든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당기는 방아쇠
정상적인 스트레스가 커다란 질병인 암까지 다가가는 길은 실로 멀고도 멀다.
즉, 스트레스가 단순하게 암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복잡한 여러 과
정을 거친 다음에 이으킨다고 봐야 한다. 우리 몸이 기껏 스트레스에 쓰러질 하
찮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심리적, 정신적 스트레스(우리는 이것을 투명한 적군이라고 부르자)를 받게 되
면 우선 절망감과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이 투명한
적군(스트레스)과 마주치게 되는데,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병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병에 걸린 사람을 조사해 보
면 대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절망감에 빠져 헤매는 사람들
이다.
그러면 일단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것이 우리 몸 안의 어느 곳을 향해 방아
쇠를 당기는지 살펴보자.
첫번째 반응을 보자. 인간의 뇌(대뇌 변연계)는 몸의 전체적인 균형을 위해 갖
가지 일들을 통솔하며 지휘하고 있는데, 예컨대 생명이 위협당할 경우 달아나야
할지 아니면 싸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역할도 한다. 외부의 스트레스에 자극을 받
아 기분이 우울하게 변하면 이것은 대뇌에 기록된다. 또 대뇌를 잡는 데 가장 앞
장서는 명지휘관인 시상하부에게 이 여파를 전한다.
다음 두번째 반응을 보자. 시상하부는 이때부터 마치 한 나라에 계엄령을 선포
하여 모든 것을 자기의 명령권하에 두듯이 온몸을 호르몬이라는 명령전달물질을
통해 명령을 내린다. 시상하부는 거리상으로 근접해 있는 또 하나의 지휘관 조직
인 뇌하수체에 긴급명령 1호를 전달한다. 긴급명령이란 '스트레스를 방어하자'는
내용이 담긴 체내의 화학물질, 즉 스트레스 호르몬(CRH: corticotropin releasing
hormone)을 내보내는 것을 말한다.
이번엔 세번째 반응을 살펴보자. 시상하부의 시위를 떠난 스트레스 호르몬은
날으는 화살이 되어 세번째 반응을 주도하는 뇌하수체의 과녁에 명중한다. 여기
서부터 활쏘기 릴레이가 시작되는데 시상하부는 날아온 화살의 명령 내용이 무
엇인지를 알아내고, 다음 단계에서 방어준비를 맡을 기관이나 조직에게 제2호 명
령(ACTH: adrenal corticotropichormone)을 전달한다.
네번째 반응에서는 역시 '스트레스를 방어하자'는 제2호 명령(ACTH)이 우리
몸의 기관 중 신장 윗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엄지손가락 크기만한 부신피질에 가
서 작용한다. 이때 코티졸이라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나온다.
다음 다섯번째 반응에서는 코티졸 호르몬이 스트레스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하여 영양(에너지)창고인 간으로 달려가, 간세포에 저장하고
있는 에너지 덩어리인 글리코겐(glycogen)을 글루코스(glucose)라는 포도당 조각
으로 나누어 혈액 속으로 분비하도록 명령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간은 최종적
으로 스트레스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혈당량을 증가시킨다. 이렇게 스트레스에
대한 방어 작용은 릴레이식의 명령전달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가능하게 된다.
이상의 릴레이 주자 중에서도 3박자 호흡을 잘 맞추는 것이 시상하부-뇌하수체-
부신이다.
문제는 이상과 같은 한번의 릴레이 반응으로 스트레스가 해소되면 더할 수 없
이 좋겠으나 한번의 릴레이 반응으로 과다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
는 데 있다.
스트레스가 병으로 가는 세 단계
이제는 스트레스라는 말을 듣거나 글자를 보기만 해도 그자체가 왠지 스트레
스를 받게 하는 듯 하다. 아무튼 최근 들어 스트레스가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유발하는 도화선으로 작용하는 데는 크게 세 계단을 넘어야 하는 것으로 보고되
고 있다.
제 1단계는 마치 적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하여 경계경보를 일으키는 것과 같
은 경고기이다. 스트레스가 작용한 경고기에는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이 떨어지
며, 체온의 저하, 방어군(백혈구) 수의 감소가 일어나고 혈액의 점도가 높아지면
서 몸은 산성체질로 변화한다.
제 2단계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심해짐으로써 경고기의 후유증이 넘쳐 우리 몸
은 스트레스를 꼭 이기려고 기를 쓴다. 즉 스트레스에 강력한 저항을 하게 되므
로 저항기라고 한다. 이때 뇌하수체 전엽에서는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많이 나온
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는 스트레스가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또다시 시상하부-뇌
하수체-부신의 3자 릴레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부신피질에서는 수뇌부의 연락을
받고 코티졸을 내보내어 스트레스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에너지를 공급받은 우리 몸은 새로운 자연치유력이 생겨나 체온, 혈압, 혈당량도
올라가며 경고기에서 나타났던 증상은 해소된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제 3단계에 이르면서 발생한다. 이 단계는 모든 것을 다
써 버리는 소모기이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해 저항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우
리의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은 릴레이를 더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지치게 되고
급기야 그 고유한 기능을 잃고 만다. 이때 부신은 과다한 노동 때문에 뚱뚱해지
고, 면역세포계, 즉 몸 안의 방어군의 아카데미이자 진지인 흉선과 임파선계는
작게 위축된다. 또 위, 십이지장 등에 궤양이 생기는가 하면 영양을 저장하며 해
독작용을 맡아보는 간에도 이상이 나타난다. 부신이 스트레스를 방어하느라 과로
하여 내놓은 코티졸이 혈액 중에 많아질 경우는 대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그 중 중요한 것으로는 여러 가지 병원균에 대한 감염, 항체 생산의 저하, 골다
공증, 근육 위축, 당뇨병, 혈전증, 소화기관의 궤양 등이 있다.
스트레스가 이 세번째 단계에까지 오르지 않도록 하는 삶을 우리는 배우고 익
혀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자아완성의 길인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하
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종교와 의술이라는 것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그러나 엄
연히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다스리는 법을 설파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꾀 많은 반란군
'암입니다' 라는 진단은 마치 '너 이제 그만 하직하고 오너라' 라고 하는 염라
대왕의 부름으로 들릴 만큼 우리게겐 가장 무서운 질병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암이라는 것도 우리 몸의 방어체계인 면역이 제 구실을 해내지 못했
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이 점은 방어군의 전력이 떨어진, 즉 면역겸핍인 사
람들에게서 정상인보다 100배나 더많이 암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학자는 우리가 80세까지 살 경우 암이 생겨날 가능성은 무려 10억 회 정
도나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암에 거리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호프(hope)
인 방어군이 맡은 바 임무인 반란군 감시기능을 철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
리는 이것을 쉽게 자연치유력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이야기한다.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1개의 암 덩어리는 10억 개 정도의 세포가 모여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반란군이 불어나서 그 결과 무엇보다도 귀중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비상사
태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전적으로 방어군의 잘못으로 돌려야 하느냐는 것이
다.
반란군은 참으로 꾀가 많다. 생각보다 복잡하고 영리한 녀석들이다. 최첨단의
감시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반란군이 펼치는 수법을 한번 알아보자. 우
선 반란군 암세포는 자기가 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표지판을 감추거나 몰래 숨겨
방어군을 교묘하게 따돌리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암세포 자신이 오히려 자기가 반란군이라는 증표(항원)를 마구 쏟아
부어 반란군을 공격하려 하는 아군(면역세포)의 반란군 감지 능력을 무디게 하는
것이다. 암세포가 쏟아내는 항원은 아군(면역세포)이 암세포의 표면에 부착할 때
사용하는 손발을 묶어 버리는 연막전술이라고 보면 된다.
세번째로는 암세포의 항원을 미끼로 아군의 출격 명령을 억제하는 총사령관(억
제 T세포)을 꼬드겨 반란군을 처단하는 살해세포의 출동을 막게 하는 전략도 있
다. 우리의 방어군이 이와 같은 반란군의 눈속임(trick)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
면 어쩔 수 없이 반란군이 득세하는 것이다.
특공대 출격-암세포의 파괴현장!
나라를 지키는 정규군 중 그 규모는 작지만 일당백을 거뜬히 해내는 특공대처
럼 우리의 방어쳬계에도 특공대와 같은 살해세포(killer cell)가 있다. 살해세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나빠졌을 때 이 세포를 찾아
내어 파괴하는 것이며, 반란군인 암세포를 죽이거나 또는 바이러스나 외부 인자
들로 인해 감염된 세포를 쳐부수는 일이다. 그 종류는 암과 같은 반란군을 격퇴
하는 자연살해세포와 특정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된 세포만을 골라 제거하는 세
포독성 T세포가 있다. 이들 또한 총사령관인 협력 T세포의 명령에 복종한다.
살해세포는 아주 효율적이면서도 단계적으로 암세포를 파괴하는데, 먼저 암세
포와 같은 적군을 정확히 발견하고 그 적군에게 강렬한 포옹을 하며 달라붙는다.
그러고는 죽음의 키스를 선사하며 암세포를 터뜨릴 수 있는 직격탄을 정확히 조
준, 발사한다. 주위의 정상세포가 전혀 피해받지 않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하면서
말이다.
직격탄을 맞은 세포는 표면에 구멍이 뚫리고 외부의 물이 세포 내로 침입하면
서 터져 죽게 된다. 구멍을 잘 뚫는 이 직격탄은 '퍼포린(perforin)' 이라는 이름
을 가지고 있다. 퍼포린은 100만분의 5내지 20밀리(5~20나노미터(nm))의 구멍을
뚫어 반란군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는다.
우울한(melancholy) 사람, 고독한(solitary) 사람은 자연살해 세포의 작전능력이
두드러지게 떨어져 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2세기 로마의 의학자인 갈레노스가
'암은 자꾸만 우울한 일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걸리기 쉽다' 라고 한 말이 마치
예언처럼 20세기의 과학으로 확실하게 증명된 것이라 하겠다.
최근에는 이상에서 살펴본 적군에게 죽음의 키스를 전하는 살해세포의 전투력
을 키우고 직격탄의 화력을 강하게 증대시킬 수 있다면 암과 바이러스성 질환,
그리고 심지어는 AIDS와 같이 손을 쓸 수 없는 병까지도 치료할 수 있을 것으
로 기대하고 있다.
제6장 미친 면역학
미친 면역학!-정신신경면역학
지난 94년 4월 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국제실험생물학회를 마치고 앨라
배마주의 버밍햄시에 있는 앨라배마주립대학의 면역학 교실에 세미나를 할 목적
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면역계의 총사령관인 T세포는 천도선법 기수련 운동을
통하여 변화된다>는 제목의 세미나는 참가한 많은 면역전공과학자들에게 큰 관
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기초면역학 중에서도 병원균들이 코, 입, 소화기의 점막을 통해 들어와
어떻게 지병을 일으키는가를 연구하고 이를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하고자 하는
학자들이었다. 이날 따라 많은 연구자가 모였는데, 그 이유는 방어군의 총사령관
인 T세포가 기수련에 의하여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사실로 여겨졌기 때
문이었다.
세미나를 마치고 여러 명의 과학자와 차례로 그들의 연구실에서 짧은 토론을
하였다. 나의 특별한 학문적 관심이 무어냐는 물음에 앞으로 마음(mind)과 면역
(immunity)의 관계를 밝히는 정신신경면역학(psychoneuroimmunology)을 집중적
으로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대답을 듣고 난 상대 교수는 웃으면서 '크레이지 이
뮤놀로지(crazy immunology)?'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 말을 듣고 웃었
다. 그의 말이 유머스러웠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연구 업적을 통해 정신신경면
역학이 인정받기에 이르러서 다행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정신신경면역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정통면역학에서 빗나간 사이비 학문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새로운 자연현상을 연구한 내용이 빛을 보게 될 때까지 겪어
야 했던 필수적인 고난 과정처럼, 과거에는 정신신경면역학이 찬밥신세일 수밖에
없었던 분위기를 연상하며 말을 건넨 것이다.
미친 면역학!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표현이다.
되돌아보건대, 마음이 착하고 밝고 긍정적이며, 그리고 항상 웃으며 살 때 건
강할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은 이제 하나의 유력한 가설이 되었고, 그 가설들
은 20세기의 생명과학중에서도 마음과 면역관계를 다루는 크레이지 이뮤놀로지
(미친 면역학)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정설임이 입증된 셈이다.
그 동안 미친 면역학에 관해 연구한 많은 과학자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두
드러진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 행해진 솔로몬의 연구라 하겠다. 서양의 해부학
적 시각에서는 마음의 자리가 뇌이므로 뇌의 중요 부위인 시상하부가 손상되었
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를 알면 마음으로 인한 몸의 변화를 알 수 있다는
가설이 세워질 수 있다. 20세기의 솔로몬은 동물의 시상하부를 손상시켜 면역력
이 확실히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외부의 스트레스가 시상하부를 통해 면역계
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최일선에서 우리 몸을 방어하는 면역계는 이로써 우리의 뇌 신경계와 항상 미
묘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당연히 심리상태와 정신(특히 감정)
과도 대화의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면역계는 신경
계의 연장이라고도 한다. 이로써 '정신신경면역학' 이 탄생되었고, 인간의 감정
변화가 건강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면역계와 관련지어 증명하게 된 것이다.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진다는 진리의 말씀!
우리는 스트레스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났으며 또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스
트레스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
어 준다. 우리 몸에 어떠한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몸에 좋은 스트레스(쾌스트레
스: eustress)와 건강을 해치는 나쁜 스트레스(불쾌스트레스: distress)로 나눌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예들은 나쁜 스트레스가 되겠다.
이제 유익한 스트레스의 예를 알아보자. 좋은 음악이 우리의 정서를 안정시켜
준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젖소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젖을
풍부하게 만든다고 한다. 심지어 음악은 술의 효모균이 좋은 술을 만들도록 발효
를 도와 주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나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이를 잘 소화해 내기 위한 방법들을
많이 개발하고 있다. 이들을 우리는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한다. 그 중에는 자
기가 직접 나서지 않고 수동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인 음악요법, 향기요법 등이 있
으며, 자신이 직접 스트레스 해소에 참여하는 심신수련법(기수련법), 바이오 피드
백법, 생체 에너지요법, 명상법(TM) 등이 있다. 이들 스트레스 대처 방안들은 과
학적으로 그 효력이 입증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동시에 치료 및 처방까지 할 줄 아셨던 우리의 선인들이
쓰시던 최고의 방법은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화내면 한번 늙는다' 는
짧은 경구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한번 크게 웃고 숨을 밖으로 내보내면
부교감신경의 작용으로 혈압이 내려가는데, 이때 혈액 내의 산소량은 증가하고
이산화탄소의 양이 감소되어 뇌의 운동을 지시하는 운동중추와 호흡을 조절하는
호흡중추의 흥분이 가라앉는다. 또한 심장 박동수도 감소한다.
그리고 나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요인들인 불안, 초조, 공포, 실망, 좌절, 원망,
증오, 욕심 등의 감정을 한바탕 웃음으로 날려 버린다면 이 얼마나 멋진 스트레
스 해소법이겠는가? 바로 이 책의 주된 내용인 정신신경면역학적 입장에서 볼
때 우리의 선조들은 웃음의 조건반사를 우리의 몸에 입력시켜 면역력, 즉 방어력
을 강화시킴으로써 건강을 증진시킨 것이다. 이는 가장 과학적인 처방이며 긍정
적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전한 진리의 말씀이 아니겠는가?
공즉시대-나무아미타불
'색즉시공, 공즉시색' 하면 웬 염불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부처님은 성현이셨고
자신의 큰 도를 깨우쳤으니 만물의 이치가 훤히 보였을 것은 당연하다. '색즉시
공 공즉시색' 이란 눈에 보인다고 인정한 것이 시간과 공간이 바뀌면 형체 없이
사라지며, 또한 보이지 않아 없다고 우긴 것도 시간과 공간이 바뀌게 되면 우리
의 눈앞에 형상으로 나타남을 설파하신 것이다.
투명해 보이지 않는 적, 스트레스는 공이요, 우리 몸 안의 신경과 호르몬을 매
개로 시간과 공간을 거쳐 나타나는 면역력의 변화는 색이다. 여기서 스트레스와
면역력의 관계를 불교의 선적 깨달음인 '색즉시공 공즉시색' 으로 풀이해 보면,
이 '색즉시공 공즉시색' 의 진리는 스트레스를 완전하게 해소하여 스트레스 자체
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나타내는 위대한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제 종교의 명제마저도 어느 누구나 거침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반적인 사실
에 불과함을 입증하고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볼 때 진리를 밝히는 과학자의 위대함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
는 명확한 결과를 얻어내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먼저 과학
자의 위대함은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긍정적이고도 진취적인 생각과 행동에
서 빚어지는 것이 아닐까. 긍정적인 생각(공)과 진취적인 행동(색)은 다름아닌
'공즉시색' 의 길이다.
우리것은 소중한 것이야
어느 어린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선조들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어요?
"우리 선조들께서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생각했지. 그리고 이를 다스려 건강을
이루었던 방법은 이미 네가 학교에서 배운 고구려 시대의 무사제도, 신라 시대의
화랑도 들이 있었단다."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묻는다.
"그것은 모두가 전쟁터에 나가 싸움 잘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었잖아요?"
어른은 공격적인 아이의 질문에도 침착하게 말을 잇는다.
"많은 사람들은 '고구려의 무사, 신라의 화랑' 하면 네 생각처럼 싸움 잘하는
용맹스러운 군인을 떠올리지. 그러나 실제 그러한 사람들은 무조건 싸움만 잘하
기 위해 교육을 받고 몸과 마음을 수양한 것은 아니었단다. 무엇보다도 작게는
가정, 크게는 사회와 나라에 있어서 훌륭한 주인이 되기 위하여 수련을 했던 게
지. 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렴. 몸과 마음을 갈고 닦은 젊은이들이 어찌 부모를
공경하지 않겠으며, 어찌 나라가 위태로운데 앞다투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
지 않겠느냐. 무엇보다도 먼저 얼마나 똑바른 정신을 몸에 심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니? 만일 그들이 싸움만 배웠다면 나라에 충성함
이 왜 중요하며 부모에 효도함이 왜 필요한가를 모르고 살생만 하는 잘못을 저
지르지 않았겠느냐."
말똥말똥한 눈망울을 굴리며 이야기를 듣던 아이는 사실을 조금은 이해한 듯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어느덧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고, 수천년 동안 우리의
선조들은 얼마나 지혜롭게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몸을 가꾸기 위한 법을 소중하
게 여겨왔는가 자주 생각하였다. 나아가 귀중한 많은 시간을 면역과 기의 연구에
투자하면서 지난 일들을 새삼 돌이켜보게 되었다.
건강을 위한 수만 가지의 처방들이 물밀듯 쏟아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TV와 신문지상에 광고로 실리는 내용 중 우리가 입는 욧, 자는 집 등의 선전을
제외하고는 약 선전이나 헬스(health)에 관계된 상품을 알리는 것이 일 등을 차
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이는 중국의 기수련이 동양의 온갖 신비란 신비는
다 담고 있어서 중국의 기수련을 하면 그 효과가 신비로울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앞서서 서양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보
다 동양적이며 독창적인 건강법으로서 기수련을 선정했다. 그러고 나서 이를 기
초과학적인 연구와 임상실험을 통해서 기수련을 일반화하고 상품화하여 세계적
으로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에 교유한 기수련법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다른 나라 것에 관심
을 두고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냥 몸에 좋다는 생각으로 무심코 널리 선
전되고 있는 것을 택해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고 우리의 것을 발굴하고 이를 소
중히 여겨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화의 방법은 바로 과학화에 있다. 우
리 원광대학교 생명공학연구소 기의학 분과의 연구원들은 기 연구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과학화하려는 진리탐구의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몸과 마음
을 하나로 엮어 건강을 꽃피우는 기수련의 깊은 뿌리는 저 5천 년 전 동양의 정
신문화를 주도한 단군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에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현재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우리는 '면역과 기' 라는 거대한 인구 테마를 입
증하기 위해 단지 실험기계와 시험관만을 토닥거리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이 연
구를 통해 우리의 가리워진 역사를 돌이켜볼 수 있게 되었다. 동화 속에 한 장면
을 들어 설명하자면 이제 5천 년간 잠자던 숲속의 공주인 우리의 소중한 사상과
행동은 과학이라는 핸섬한 왕자의 입맞춤으로 깨어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우리의 땀과 노력을 기울여 소중한 우리것을 일깨운다는 것은 그 얼마나 자랑
스럽고 좋은 일인가!
"제비 몰러 나간다... 암, 우리것은 소중한 것이야!" 하시는 명창 박동진 옹의
우렁찬 소리가 귓전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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