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의 오른쪽 폐다. 내가 대표로 나선 것은 내가 그의 가슴 왼쪽에 있는 나의 짝보다 약간 크기 때문이다. 왼쪽은 폐엽이 2개 뿐이지만 나는 3개의 폐엽을 갖고 있다. 조가 나를 볼 수 있다면 그는 매우 놀랄 것이다. 그는 내가 속이 텅빈 연분홍색 럭비공 껍데기 같은 모습으로 가슴에 매달려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다. 나를 잘라 단면을 살펴보면 속이 텅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마치 욕실에서 쓰는 고무스폰지와 비슷한 모양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나는 연분홍색이 아니다. 조가 아기였을 때는 물론 연분홍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5만 개비의 담배연기와 5억회쯤 들락날락한 더러운 도시공기에 더럽혀진 탓으로, 검은 반점으로 얼룩진 보기 흉한 암회색을 띠고 있다.
조의 가슴에는 서로 분리되어 밀폐된 3개의 구획이 있다. 하나는 내가, 다른 하나는 왼쪽 폐가, 또 다른 하나는 심장이 각각 차지하고 있다. 나는 내 구획 속을 꽉 채운 채 느슨하게 매달려 있으며 무게는 450g을 약간 넘긴다.
나는 아무런 근육도 없기 때문에 호흡을 할 때는 수동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내 구획 속은 가벼운 진공상태로 되어 있어 조가 숨을 들이마시면 나는 늘어나고 반대로 숨을 내쉬면 줄어든다. 이것은 단순한 반동장치에 불과하다. 어떤 사고로 조의 흉벽에 구멍이 뚫리면 내 구획 속의 진공상태는 깨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상처가 치로되어 진공상태가 회복될 때까지 나는 축 늘어져서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한다.
내 생김새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10cm 가량 되는 조의 기관은 아래쪽 끝에서 두 개의 큰 기관지로 갈라져 하나는 내 속으로, 다른 하나는 왼쪽 폐로 들어간다. 기관지는 내몸 속에서 마치 거꾸로 선 나무처럼 가는 가지를 뻗고 있다. 먼저 큰 기관지가 가지처럼 뻗어 있고 다시 그 가지에서 0.25mm밖에 안되는 가느다란 기관지들이 뻗어 나간다. 크고 작은 이 기관지들은 단지 공기의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작업은 미세한 공기 주머니들이 포도송이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내 폐포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폐포들을 쫙 펴 놓으면 아마 테니스코트를 절반쯤은 덮을 수 있을 것이다.
폐포 하나하나는 모두 거미줄 같은 모세혈관으로 덮여 있다. 심장으로부터 공급되는 혈액은 이 모세혈관 끝까지 빠짐없이 스며든다. 적혈구가 이 혈관을 지나가면서 적혈구는 순식간에 통과한다 놀라운 현상이 일어난다. 적혈구는 모세혈관 벽의 가늘고 엷은 막을 통해서 싣고 온 탄산가스를 폐포 속에 퍼뜨리고 대신 산소를 받아 가지고 나간다. 그것은 마치 가스관판매점에서 가스를 바꾸어 가는 것과 같다. 즉 모세혈관의 한쪽 끝으로 파란빛을 띤 혈액이 스며 들어와서는 버찌처럼 붉은 활기찬 모습으로 바뀌어 다른 쪽으로 나가는 것이다.
조의 중요한 신체기관들 그중에서도 특히 심장 은 자동적인 통제를 받고 있다. 나도 대부분의 경우는 자동적인 통제를 받지만 스스로 임의적인 통제를 하기도 한다. 어릴 때 조는 몹시 화가 나면 가끔 얼굴이 새파래질 때까지 숨을 멈추고 있을 때기 있었다. 이때 어머니는 몹시 걱정을 했지만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어떤 탈이 생기기 훨씬 전에 자동적인 호흡작용이 시작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적인 호흡작용에 의해 조는 숨을 쉬고 싶지 않더라도 쉬게 되었을 것이다.
자동적인 내 호흡통제장치는 척수가 뇌와 연결되는 곳에 자리잡은 연수에 있다. 연수는 극히 민감한 화학적 탐지장치다.조가 힘드는 일을 하게 되면 근육은 빠른 속도로 산소를 소비하고 대신 탄산가스를 찌꺼기로 내놓는다. 탄산가스가 쌓이면 혈액은 약간 산성을 띠게 된다. 호흡통제본부에서는 이를 즉각 포착하고 나에게 더 빠르게 활동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내 호흡활동이 조가 심한 운동을 할 때처럼 충분한 정도까지 빨라지게 되면 이 통제본부는 또한 깊은 호흡을 하도록 명령한다. 이렇게 해서 호흡은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간다.
조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는 1분에 약 9ℓ의 공기가 필요하며 앉아 있을 때는 약 18ℓ, 걸어갈 때는 27ℓ, 그리고 달릴 때는 55ℓ의 공기가 필요하다. 조는 사무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많은 산소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는 평상시에 1분에 16회 정도 호흡을 하며 한번에 약 0.5ℓ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나는 이 정도의 호흡으로는 일부만 부불어 오른다. 나는 이 호흡량의 8배까지도 흡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0.5ℓ의 공기가 모두 나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3분의 1정도은 기관과 다른 공기통로의 안팎으로 아무 쓸모없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나는 내가 받아들이는 공기가 열대지방 늪지에 있는 공기처럼 습기가 많고 따뜻하기를 바란다. 들이마신 공기가 불과 몇 cm의 공간을 거치는 사이에 바로 그런 공기로 바뀐다는 것은 정말 요술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의 두 눈을 적시는 누선과 또 코와 목에 있는 그 밖의 다른 수분을 분비하는 샘들은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를 축축하게 만들기 위해 하루에 약 0.5ℓ의 액체를 내놓는다. 한편 공기가 흡입되는 통로쪽의 표피혈관들 이 혈관은 날씨가 추울 때는 활짝 열리고 날씨가 따뜻할 때는 닫힌다 은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는 역할을 한다.
내 몸에 고장을 일으키는 요인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조는 매일 갖가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들을 들이마신다. 이러한 균들은 대부분, 코와 목에서 분비되는 리소자임이라는 강력한 살균물질에 의해 죽고 만다. 어두컴컴하고 따뜻하고 습기찬 내 통로 이 통로야말로 신바람나는 세균사냥터다 까지 용케 들어온 놈들은 보통 내가 맡아 처치할 수 있다. 식세포들이 내 통로를 순찰하다가 세균이 보이면 벌떼처럼 둘러싸서 먹어치워 버린다.
물론 나에겐 더러운 공기가 가장 큰 골칫거리다. 다른 신체기관들은 아늑한 곳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지만 나는 사실상 조의 신체 밖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각종 환경적인 위험요인과 오염물질들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굉장히 예민하고 연약한 내가 아황산가스나 벤조피렌, 납, 이산화질소와 같은 독한 물질들과 실랑이를 하면서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다. 이중 일부 물질은 나일론양말을 녹일 만큼 독한 것들이니 이런 것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능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공기정화 과정은 코 안에 있는 털에서부터 시작된다. 코털이 큰 먼지 입자들을 걸러낸다. 다음에 코와 목, 기관지 통로에서 분비되는 끈적끈적한 점액이 파리잡이 끈끈이 구실을 하면서 미세한 먼지 입자들을 잡아낸다. 그러나 진짜 정화작업은 섬모가 담당한다. 섬모는 극히 미세한 털로서 공기가 들어오는 내 통로에 수천만 개가 돋아 있다. 이 섬모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보릿대처럼 1초에 12회 정도 앞뒤로 물결치듯 흔들린다. 이 섬모들이 위로 쏠리면서 점액을아래쪽 통로에서 인후로 쓸어올리면 조는 그곳에서 이 점액을 쉽게 삼킬 수 있게 된다.
조가 현미경으로 내 섬모를 살펴볼 수 있다면, 담배연기나 몹시 오염된 공기가 섬모 위로 덮일 때 이들은 앞뒤로 물결치듯 흔들리는 동작을 중지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시적인 마비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자극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섬모는 쇠약해져 죽게 되며 일단 죽고 나면 다른 섬모로 대체될 수가 없다.
조는 30년간이나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대부분의 섬모들이 죽었고 이에 따라 공기가 들어가는 통로의 점액을 분비하는 막들은 정상적인 두께의 8배로 두꺼워졌다. 조는 그것을 모르고 있지만 그는 사실상 익사의 위험에 빠져 있는 셈이다. 만약 많은 점액이 내 폐포 속의 공기주머니로 흘러 들어간다면 결과적으로 폐속에 물이 가득찬 것이나 마찬가지로 호흡작용을 정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막는 한 가지 작용이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터뜨리는 시끄러운 기침이다. 이 기침이 죽어 버린 섬모의 효능을 대신하는 것이다. 조는 이것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공기정화방법임을 잊지 말고, 함부로 진해제를 복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에 걸쳐, 정말 쓰레기같이 더러운 공기를 들이마시라고 나에게 요구하고 있다. 먼지 입자들의 일부가 가느다란 내 공기통로에 끼는가 하면 어떤 입자들은 내 조직에 상처를 내기까지 한다. 이렇게 되면 연약한 내 폐포벽은 신축성을 잃고 마는데 그 결과 내가 숨을 내쉴 때 폐포가 수축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기면 숨을 들이마실 수는 있으나 내쉴 수는 없게 될지도 모른다.) 탄산가스가 폐포 속에 그대로 남게 되고 이런 폐포는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고 찌꺼기인 탄산가스를 뽑아내는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폐기종이 생겨 한번 숨쉬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조는 모르고 있지만 이런 일은 이미 수백만의 내 폐포에게 일어난 일이다. 조는 사무직 근무에 필요한 폐활동의 약 8배나 되는 폐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상당히 많은 예비기능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금만 힘을 써도 숨이 차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경고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조는 다음과 같은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신에게 폐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면 이미 그 폐에 고장이 생긴 것이다." 아울러 그는 나를 좀더 잘 보살펴야 한다. 나를 잘 보살핀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에게 보다 맑은 공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담배를 끊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안된다면 좀 아쉬운 대로 그가 달리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실내 공기를 얇은 활성화탄소층 방독면제작에 사용되는 재료 으로 여과, 순환시켜 내 세포조직에 치명적인 화학물질들을 뽑아내서 실내공기를 정화시키는 조그만 기구가 있다. 이 기구는 값도 그리 비싸지 않다. 이런 기구를 조의 침실과 사무실에 설치해 두면 나는 조가 취침하는 8시간과 그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8시간 등 도합 16시간 동안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약간의 운동이나 보다 분별있는 식생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계단오르기나 산책, 조깅 등 대부분의 운동은 나로 하여금 보다 깊이 호흡하게 하는데 이런 심호흡은 매우 좋은 것이다. 또 나만을 위한 운동이 몇 가지 있다. 가장 좋은 호흡방법은 천천히 많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복식호흡이다. 조도 복식호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식호흡이란 어린아기나 오페라 가수들이 호흡하는 것처럼, 주로 가슴을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횡경막을 내리누르는 식으로 호흡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복식호흡을 하면 들이마신 공기가 폐포 가장 깊숙한 곳까지 빨려 들어간다.
조는 또한 하루에 몇 차례씩 내 몸에서 공기를 싹 빼줄 수 있을 거이다. 그는 보통 숨을 내쉬면 내 속이 텅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에게 입을 벌리고 숨을 한껏 내쉬도록 한 다음, 다시 입을 오므리고 내쉬라고 해 보면 아직도 공기가 많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담배연기를 들이마신 후에 이렇게 해 본다면 미처 몰랐던 다소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입을 오므리고 숨을 한껏 내뿜을 때 빠져나오는 연기는 그대로 놓아 두면 내 몸 속에 남아서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를 혼탁하게 만든다.
간단히 말해서 내 주변의 다른 대부분의 신체기관들은 웬만한일쯤은 불평없이 감당해 낼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조물주는 내가 요즘 세상에서 꼭 필요로 하는 방위능력을 갖추어 주지 않았다. 갖가지 폐질환이 전염병처럼 늘어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는 나에게 좀더 주의를 기울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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