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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상식

송곳니

by Healing New 2020. 8. 21.

  나를 조의 몸 속에 있는 육체노동자 중 하나쯤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나는 간처럼 훌륭한 화학자도 아니고 심장처럼 헌신적인 노예도 아니다. 나는 조가 살아 있는 동안에 가장 사라져 버리기 쉬운 신체부분이지만, 반면에 그가 죽을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죽은 후에 가장 오래 남을 수 있는 부분이다. 조의 다른 부분이 먼지가 되고 난 뒤에도 나는 수천년 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조의 오른쪽 위 송곳니이다. 나는 나의 쌍둥이, 즉 왼쪽위에 있는 송곳니와, 우리와 마주 보고 있는 아래턱의 두 송곳니와 함께 조가 어른이 되면 전부 32개가 되는 우리 팀의 구성원이다. 조가 식사를 할 때 우리는 그의 소화과정의 첫 부분을 담당하며 그가 음식맛을 즐기게 하는 데도 한몫을 한다. 음식이란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켜서는 맛을 모르는 법이니까.
  우리들의 속성 중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것들도 있다. 우리들에게는 부드러운 것과 딱딱한 것을 씹는 담당이 따로 있으며, 음식이 들어올 때마다 우리들 중 누가 그것을 담당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탐지기구도 있다. 우리는 다른 기관 같으면 떡이 되고 말 큰 압력도 거뜬히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신장이나 피부, 그리고 조의 다른 신체부분들은 상처를 입어도 어느 정도 자가치료를 할 수 있으나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한번 상처를 입으면 그대로 지내는 수밖에 없다.
  나에게 조의 입속에 있는 다른 치아들을 대표할 권리가 있느냐 하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가장 흥미를 끄는 치아는 송곳니라고 생각한다. 옛날 조의 조상들이 미신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 조의 조상들은 내가 그들의 눈에까지 이르는 긴 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 뿌리가 빠지면 그들의 눈도 병들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그런 생각이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오늘날에 와서도, 조는 아무리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송곳니하고는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
  우리들 치아의 조상은 아마 먼 옛날 바다 속에 살던 물고기의 비늘일 것이다. 그러나 육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우리들은 점차 그 형태와 위치를 바꾸어 오늘의 치아가 되었다. 조는 처음 태어났을 때 우리들을 입안 가득히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잇몸 속에 52개나 되는 치아가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제대로 형체를 갖추고 있지 않았었지만 그중 20개가 유치로 성숙해 갔다. 성숙되는 과정에서 표면이 법랑질(사기질)로 덮이게 되었다. 조가 갓 태어났을 때는 그의 턱은 작고 제대로 발육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의 얼굴 구조는 젖을 빨게 되어 있었을 뿐, 무엇을 씹을 수 있게 되어 있지는 않았다. 유치들이 겨우 자리잡을 정도의 공간이 있었을 뿐, 32개의 영구치가 들어앉기에는 공간이 너무 비좁았다.
  잇몸은 말하자면 우리의 자궁이었다. 조가 태어난 지 여섯 달이 지났을 때, 우리들 가운데 첫번째로 아래쪽 중앙의 두개의 치아 조는 이것을 앞니라고 부른다 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나(송곳니)의 유치는 생후 18개월 만에, 마지막으로 나는 유치인 둘째 어금니는 24개월 만에 솟아났다.
  조가 6살이 되었을 때, 영구치 중에서는 첫번째로 어금니가 유치들 뒤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의 나(영구치 송곳니)는 조가 12살 때 났고 마지막에 나는 치아인 사랑니 지치 는 18살이 지나서야 나왔다.
  나의 구조를 살펴보자. 그야말로 하나의 정밀한 공학설계 작품이다. 잇몸을 뚫고 나오는 나의 부분은 법랑질 '피부'를 갖고 있다. 법랑질은 유기물질(생명체의 구성물질)도 함유하고 있지만 주성분은 인산칼슘이다. 나의 법랑질 피부는 똑바로 서 있는 연필 묶음과도 같이 6각형의 막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들로 머리카락 크기만큼 되게 만들려면 아마 100개는 모아야 할 것이다. 나의 법랑질 피부에는 신경조직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지 않으며 음식을 씹을 때의 엄청난 압력에도 끄떡없이 견딜 만큼 단단하다.
  나의 법랑질 피부 밑에 있는 상아질은 뼈와 친척간이다. 치아의 감각기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상아질 밑에는 나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치수가 있다. 비교적 연한 물질로 되어 있는 이 치수에는 신경, 혈관 및 세포가 들어 있다. 이 신경, 혈관, 세포들은 상아질의 미세한 관속으로 뻗어 있다. 이렇게 구성된 치아 전체는 딱 맞는 크기인 턱의 강속에 자리잡고 있는데 골질조직과 수천 개의 섬유조직에 의해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턱뼈의 한 부분은 아니다. 화분에서 자라는 화초처럼, 우리는 우리들이 수행하는 과업을 위해 제가끔 거기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음식을 자르는 역할을 하는 양쪽 윗니나 나(고기나 질긴 음식을 찢는 역할을 한다) 같은 경우는 하나의 뿌리면 충분하다. 그러나 저 안쪽에서 음식을 분쇄하는 힘든 과업을 수행하는 어금니는 세 개의 뿌리가 받쳐 주어야 한다.
  우리들 치아에도 고장이 잘 생긴다는 것을 조는 잘 알고 있다. 조는 벌써 우리들 중 넷을 잃었으며 또 다른 우리 동료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조의 동료 중에는 40세에 이미 치아 10개를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 그가 우리를 제대로 돌봐주었다면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는 규칙적으로 칫솔질을 하고 양치질 약도 사용하고 있으니까 자신의 입이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입은 사실상 거대한 세균배양소이며, 이들 세균을 박멸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조의 일생을 통해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는 것은 입 속의 음식 찌꺼기와 박테리아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기는 부식이다. 치아의 갈라진 틈에는 자연히 음식 찌꺼기가 모여며 이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조의 치과의사는 이것을 플라크라고 부른다. 플라크 속의 활동성 박테리아가 음식 찌꺼기를 발효시켜 산을 만들어 내고, 그 산이 법랑질을 분해해서 박테리아가 내부조직 속으로 침투할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침투방식도 있다. 조의 치아의 법랑질에는 미세한 균열이 있을 수 있고, 이 틈을 통해 박테리아 스며들어 법랑질 안쪽에서 치아를 부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이러한 부식은 X선 촬영을 통해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부식은 35세 이후에는 줄어든다. 이제 조가 아주 조심해야 할 것은 잇몸선 아래에 생기는 치주염이다. 여기서도 주범은 플라크이다. 눈에 띄지 않는 플라크가 침 속에있는 미네랄을 오랫동안에 걸쳐 조금씩 흡수해 딱딱하고 톱니처럼 들쭉날쭉한 치석이 된다. 치석이나 플라크가 쐐기처럼 치아와 잇몸 사이를 벌려 놓음으로써 음식찌꺼기나 박테리아가 끼어들 수 있는 작은 주머니들이 생긴다. 그러면 갖가지 탈이 생길 수 있다. 잇몸에 염증이 생길 수도, 출혈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원래 잇몸으로 보호되던 치아의 연한 부분을 박테리아가 공격할 수도 있다. 이것을 그대로 두면 고름주머니가 생겨 우리와 턱뼈의 결합이 느슨해진다. 이 시점에 이르면 우리는 조와 이별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47세인 조가 현재 가지고 있는 치과질환 중 중요한 것은 대개 이런 과정을 밟아 생긴 것이다.
  조가 어렸을 때 그의 부모가 차아교정을 해주었더라면 치주염의 또 다른 원인이 되는 부정교합 현상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부정교합은 위턱에 있는 우리들 중의 하나가 마주보고 있는 아래턱의 동료와 꽉 맞물려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한 치아는 일하는데 다른 치아는 놀게 되어 치근 부위가 자극을 받지 못한다. 놀고 있는 치아의 잇몸이 벗겨지고 박테리아가 침입하여 고름주머니가 생겨서, 치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늘날에는 부식이나 치주염은 거의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조가 자랄 때 불소가 섞인 음료수를 마신 덕분에 우리들 치아는 훨씬 단단해지고 부식에 대한 저항력도 커진 것 같다. 조의 나이가 벌써 47세라고는 해도 나에게 생기는 골칫거리를 최소한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치아 사이를 깨끗이 칫솔질해서 입 안을 깨끗이 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쑤시개는 사회적으로 금기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아주 훌륭한 청소기구이다. 깨끗한 물을 뿜어 헹구는 것도 좋다. 식사 후, 특히 단맛 나는 디저트를 먹은 다음에는 입 안을 씻어 주는 것이 좋다. 박테리아 번식의 온상인 당분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의 치과의사가 조에게 플라크를 발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수 있다. 플라크는 형식적인 칫솔질만 해서는 떨어져 나가지 않으며 또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 방법이란 하루에 몇 분만 할애하면 되는 손쉬운 것이다. 조는 그저 식품 색소를 함유하고 있는 특별한 알약을 씹기만 하면 되는데, 약방에서 살 수 있는 그 알약을 쓰면, 플라크는 붉은색 반점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그는 그것이 우리를 해치기 전에 제거할 수 있다.
  만약 조가 이 일을 규칙적으로 계속하기만 한다면 많은 골칫거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1년에 두 번씩 치과의사에게서 전문적인 입 안 청소를 받는다면 그때 조가 모르는 사이에 잘못되고 있는 부분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치아의 저작면에 균열이 생겼을 경우, 치과의사는 플라스틱으로 때워서 박테리아의 침입을 예방해 줄 것이며, 아래 윗니가 정확히 맞물리지 않는 곳이 있으면 치아를 갈거나 똑바르게 세워서 맞추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조는 또한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다른 징후들에도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잇몸의 출혈은 가장 상처를 받기 쉬운 곳인 잇몸선이 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과의사들은 대개 첫눈에 그 원인을 알 수 있으므로 조는 조속히 치과의사를 찾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에게는 운동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는 명심해야 한다. 씹으면 파삭파삭한 음식, 예컨대 사과나 셀러리 같은 음식은 우리들의 지지구조에 자극을 주어 좋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하나가 효과를 그만큼 더 해주는 것들이다. 만약 조가 우리들을 깨끗히 닦아 주고, 1년에 두번씩 전문의사의 청소를 받게 해주고, 잇몸에 출혈이 있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준다면 우리도 그를 위해서 오랫동안 봉사해 줄 것이다. 조 역시 값비싼 금속성 물질을 입 안 가득 넣고 있는 것보다는 우리와 더불어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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