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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상식

척주

by FraisGout 2020. 8. 22.

  나는 신체의 다른 어느 부위보다 원인이 애매한 고통을 조에게 일으킬 수 있다. 나는 조의 척주인데 조는 나를 자기 멋대로 상상하고 있다. 그는 나를 가끔 퉁겨져 나오는 일련의 '관절'로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로 퉁겨져 나온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가끔 내가 불끈 성을 내면 조는 나를 두들기기도 하고 찜질도 하고 혹은 약도 쓰지만 모두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내가 그에게 주는 고통은 단지 그가 나를 잘못 대접하는 데 대한 나의 앙갚음일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조가 스스로 고칠 수 없는 나의 고장은 거의 없다. 사실 조는 다시 등의 통증을 겪지 않아도 된다.
  내 부위의 고통은 조의 조상이 똑바로 서는 직립자세를 취하기로 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훌륭하게 균형이 잡힌 적교(양쪽 언덕에 줄, 쇠사슬 등을 건너지르고 거기에 의지하여 매달아 놓은 다리 편집자주)이던 나는 천막의 중심지주로 변해 버렸다. 평범한 지주가 아니라 여러 가지 기능을 두루 갖춘 만능 지주가 되었던 것이다. 구부릴 수도 있고 비틀 수도 있고 머리를 회전시킬 수도 있으면서 체중의 대부분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46cm에 달하는 조의 척수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 1.3cm정도 두께의 이 회백색 케이블에 어떤 심각한 고장이 생기면 조는 여생을 휠체어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척수를 통해서 오고가는 수백만 건의 메시지가 조의 목 아래쪽에서 행해지는 조의 모든 활동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 겹의 싸개와 충격을 완화시키는 용액, 그리고 뼈로 된 집으로 나의 척수를 보호한다. 이 척수에서 31쌍의 신경이 가지처럼 뻗어 나간다. 그중 약 절반 정도는 뇌에 정보를 전달해 주는 지각신경이고 나머지는 뇌로부터 근육에 명령을 전하는 운동신경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척수가 독자적인 사고를 하기도 한다. 조의 손가락이 뜨거운 난로에 닿았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 정보를 뇌에 전하느라고 낭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나의 척수가 반사작용을 명령한다. 그래서 손가락을 홱 난로에서 떼게 된다. 
  나의 척수가 조에게 병을 일으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나의 33개의 척추골과 그 척추골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물들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부위에 고통이 생길 수 있다. 신장, 전립선, 간장 등의 기관에 고장이 났을 경우, 또 관절염, 각종 세균감염 심지어 희노애락의 감정까지도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일례로, 조는 며칠 동안 애태워가며 심각하게 고민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면 등에 둔한 통증을 느꼈지만 그는 그 통증을 자신의 번민과 결부시켜 생각하진 않았다. 언제나 그러듯이, 그는 내가 '잘못되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때 일어났던 일의 전말은 이러했다. 강한 감정의 변화는 근육을 팽팽하게 한다. 며칠 동안 가벼운 긴장상태가 계속되면 나의 근육은 지쳐 버리고 그러면 그것이 둔한 통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조가 번민을 하지 않게 되자 나도 고통을 일으키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조가 나의 구조에 대해 공부한다면 사실 공학적으로 빈틈없는 구조이다  등의 통증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무엇인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나의 제일 윗부분에서 7개의 경부척추골(경추)이 있는데 이들의 운동범위는 대단히 넓다. 조의 머리를 받쳐 주는 일 외에 비틀어서 조로 하여금 땅을 내려다보거나 별을 올려다 볼 수 있게도 해준다. 또 옆으로도 180도 회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조는 양쪽 어깨를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12개의 흉부척추골(흉추)이 있는데 이들은 경부척추골처럼 여러 방향으로 움직일 수가 없으며 또 구태여 움직일 필요도 없다. 이 흉부척추골에는 갈비뼈가 갈고리 모양으로 걸려 있다. 이 부위에 고장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 아랫부분에는 5개의 무거운 요추가 있는데 이들이 조의 체중의 대부분을 버티고 있다. 그 밑에 5개의 천골이 서로 맞붙어서 미골을 이루고 있다. 이것들은 한때 조의 조상들이 달고 다니던 꼬리가 퇴화하여 남은 것이다. 나의 아랫부분 특히 네번째와 다섯번째 요추는 대단히 말썽이 많은 부위이다.
  조가 갓 태어났을 때, 나는 비교적 곧은 모양이다. 그러다가 조가 머리를 곧추세우기 시작하면서 나의 척추골은 목 부위가 약간 구부러졌다. 그가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자 그 아랫부위도 곡선형으로 변해 갔다. 그 결과 현재의 나는 어설픈 S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 곡선형이 완전한 직선형보다 훨씬 낫다. 아치형이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는 그 밖에도 또 있다. 아니 당연히 있어야 한다. 만약 척추골과 척추골이 맞닿아 있어서 조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생기는 약 5Kg의 충격을 흡수한다면, 나는 그리 오래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척추골과 척추골 사이에는 디스크라는 쿠션이 끼어 있다. 젤리 도너츠같이 생긴 디스크는 겉은 꽤 튼튼한 연골로 싸여 있고 속에는 젤리 비슷한 탄력성 물질이 들어 있다. 조는 이따금 등에 통증이 있을 때마다 디스크가 삐끗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그런 경우는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고통을 당할 소지가 충분히 있으므로 그에 대해 좀더 소상히 알아두는 것이 좋다.
  디스크는 여러 유형의 상해를 입기 쉽다. 갑작스럽고도 극심한 충격 자동차 사고, 낙상 사고 등 을 받게 되면 한 개의 디스크, 대부분의 경우 맨 끝부분에 있는 한 개가 으스러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흔히 으스러진 디스크의 파편을 제거하고 두 척추골을 접합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보다 가벼운 부상을 입더라도 디스크의 튼튼한 표피가 파열되어 안에 들어 있던 젤리가 흘러나오는 수가 있다. 그러면 격심한 고통이 뒤따른다. 새어 나온 디스크의 구성물질이 신경을 압박하면 자극을 받은 신경은 나의 근육들 중 하나에 경련을 일으킨다. 이 경련은 일종의 보호책이다. 내가 곤란에 빠진 것을 근육이 알고 더 이상의 손상을 가져올지도 모를 움직임을 방지하기 위해 부목 역할을 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경련을 일으킨 근육은 그 밖의 다른 효과도 낸다. 즉 몸을 뒤틀어서 기울게 하는데 흔히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또 거의 예외 없이 파열된 디스크는 다리까지 뻗어 있는 좌골신경을 자극한다. 따라서 통증이 발가락까지 퍼지게 된다. 
  조의 등의 통증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400개의 근육과 1,000개의 인대로 이루어진 나의 정교한 모조 시스템의 쇠약과 긴장에 의해 일어난다. 조가 만약 내 근육의 상태가 얼마나 엉망인가를 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는 일요일에 골프를 쳐서 자신의 컨디션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조가 내게 억지로 떠맡기는 무거운 짐들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그의 배는 올챙이배처럼 불룩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4.5Kg 정도의 군살이 붙은 것이다. 얼마전부터 그의 복근이 약해지고 있으므로 나의 배근이 늘어난 짐을 짊어져야 한다. (조의 아내가 임신할 때마다 통증이 생기는 것은 바로 복부의 추가되는 체중 때문이다.)
  47살이 되었는데도 조는 바른 자세로 앉을 줄을 모른다. 그는 속을 많이 넣은 푹신한 소파나 의자에 푹 파묻혀 앉는다. 그렇게 앉으면 그는 편안할지 모르지만 나의 근육은 결코 편안치가 않다. 나의 근육들은 구부러진 척추골내의 질서를 바로 잡느라고 과로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푹신푹신한 쿠션이 있는 조의 회전식 업무용 의자가 끔찍이도 싫다. 날이면 날마다 똑같은 근육부위에 똑같은 긴장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가 꼿꼿한 식탁용 의자를 사용하면서 가능하면 언제라도 다리를 꼬아 나를 쉬게 해준다면 나로서는 더 좋을 것이다.
  조는 나를 지렛대로 생각하고 있다. 천만에! 지렛대는 팔과 다리지 내가 아니다. 나는 본래 꼿꼿하게 유지되어야 이상적이다. 만약 조가 통나무를 불에 던지거나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고 싶다면 쭈그리고 앉아 두 다리가 대부분의 일을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 조는 가능한 한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지 않는 것이 좋다. 나의 쇠약한 근육은 이미 자기능력껏 일하고 있기 때문에 과중한 부담, 심지어 단단히 닫힌 창문을 열기 위해 힘을 쓰기만해도 심한 긴장이나 디스크의 이상을 유발시킬 수 있다. 조는 나의 척추골 사이에서 쿠션역할을 하는 디스크들이 그전만큼 튼튼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그것들은 조가 20대에 접어들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여 점점 연약해지고 탄력성도 줄어들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들은 앞으로도 몇 년 동안은 완벽하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을 혹사할 여유는 없다.
  지금까지 나는 주로 요추 부분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또한 윗부분에서도 말썽을 일으킬 수 있다. 드문 일이지만 경추부의 디스크가 파열하여 팔까지 고통이 퍼지는 수가 있다. 조의 목이 가끔 뻣뻣해지는 것은 근육이나 인대가 긴장되어 있거나 염증을 일으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사태는 역시 목이 부러지는 경우이다. 여기서 나는 조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야겠다. 만약 그가 교통사고 현장의 첫 목격자가 되었다면 그는 부상자가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그를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척주가 부러진 사람의 머리를 섣불리 들어울리다가 오히려 척수를 더 다치게 하여 영구마비를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뼈는 약화된다. 이러한 약화현상이 나의 척추골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칼슘성분이 차차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의 디스크가 점점 연약해지고 척추골도 강도가 약해짐에 따라 조의 등은 더욱 구부러질 것이다. 노년기에는 조는 약간 곱사등이 될 것이다. 
  만약 조가 내가 요구하는 만큼 나에게 주의를 기울여 준다면 다가올 여생에 많은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조는 당장 자신의 자세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벽에 등을 최대한으로 밀착시키고 꼿꼿이 선 다음, 허리의 잘록한 부분 뒤로 손을 살그머니 밀어넣어 보라. 그곳에는 아주 좁은 공간밖에 없어야 한다. 틈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많이 휘어져 있는 것이며 아마 그 이유는 근육이 약해진 때문일 것이다 조는 괴롭힐 가능성도 그만큼 많아진다. 근육의 약화, 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조는 의사를 찾아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에는 어떤 것이 있나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매일 단 몇 분간씩이나마 운동을 하고 자세에 대해 주의하고 침대와 의자를 주의해서 선택하는 것(딱딱한 것이 좋음) 등이 나의 건강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수롭지 않은 대가이다. 만일 조가 제대로 나를 대우해 준다면 나도 그에게 정당한 대접을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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