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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상식

모발

by FraisGout 2020. 8. 22.

  실용성에 있어서 나는 무용지물이다. 나는 조의 신체 가운데서 별로 하는 일이 없는 몇몇 부위들 중 하나다. 하지만 조는 자신의 사활에 관계되는 대부분의 중요한 기관들보다 나에 대해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조와 그의 아내인 제인은 나와 나의 친구들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조의 머리에 있는 5만 6,789번째 머리카락인데 그의 온몸에 퍼져 있는 수백만의 모발을 대변하려고 한다.
  우리 모발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갖고 있다. 뻣뻣하고 짧은 눈썹이 있는가 하면, 길다랗고 부드러운 머리칼과 그 밖의 대부분의 신체부위에 나 있는 솜털같이 부드럽고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조의 머릿가죽에는 우리들이 약 10만 개나 모여 있으며 수염은 약 3만개 정도 된다. 우리는 그의 신체에서도 가장 잘 자라는 조직 중의 하나이다. 1년에 수염은 약 14cm, 머리카락은 약 13cm정도 자란다. 우리 모발들은 원시인들에게 특히 많은 공헌을 했다. 눈썹은 눈을 보호했고, 얼굴을 무성하게 덮은 털은 겨울에 따뜻하게 해주었으며 음부와 겨드랑이의 모발은 마찰을 완화시켜 주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기능의 대부분이 그 중요성을 잃었다. 특히 군인들은 반드시 수염을 깎아야 하게 되었다. 구레나룻은 칼을 뽑는 동안에 상대가 움켜쥐고 늘어지기에 편리한 손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들 모발은 무엇이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진피 표피 바로 밑에 있으며 피와 신경을 내포하고 있는 피부층 속에 약 0.3cm정도 묻혀 있으며 작은 모낭을 갖고 있다. 모낭이란 한마디로 모발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다. 모낭은 하루 24시간씩 근 7년 동안 놀랍고도 복잡한 업무를 헌신적으로 수행하다가 휴식과 정비를 위해 조업을 중단한다. 휴식이 끝나면 나의 모낭은 다시 시동을 걸고 생산을 재개한다. 우리 머리카락들은 잘 빠져 버리는데 새 머리카락이 나서 그 자리를 채운다. 조의 머리에서는 하루에 약 75개의 머리카락이 빠져나간다.
  조가 그의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생겨난 지 2개월 째 되던 때부터 나의 모낭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모낭에서는 보드라운 태아의 솜털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생후 7개월이 되었을 때 조는 이 솜털을 갈았다.
  조가 어렸을 때는 부드럽고 짧은 산모가 그의 온몸에 덮여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들자 산모를 생산하던 대부분의 모낭이 조가 현재 갖고 있는, 올이 좀더 굵은 '영구'모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경우에 따라서 머릿가죽에 있는 많은 모낭이 퇴화하여 '영구'모 대신에 산모를 생산하거나 아니면 아예 모발생산을 완전히 중지해 버리는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대머리는 대개 이렇게 해서 생긴다. 남자들의 상당수가 중년이 되면 이미 대머리가 되어 있거나 되어 가고 있지만 여자들에게는 비교적 대머리가 드물다.
  조가 늙으면, 우리 모발들은 그 제조공장의 규모가 작아짐에 따라 가늘어진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품질도 떨어지게 된다. 조가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본다면, 그는 끝에 곤봉 모양의 모구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보고 조는 다시는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을 한다. 그렇지는 않다. 이 모구는 단지 쉬고 있는 모낭에서 빠진 머리카락의 끝부분으로서 어차피 곧 빠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모낭의 주요 생산물은 단백질이다. 우리 털들은 거의 전적으로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모낭같이 조그만 것이 그렇게도 복잡한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나의 외피는 지붕의 기와처럼 세포가 겹쳐 있다. 이 외피는 머리카락에 강도를 주고 아울러 보호도 해준다. 외피의 안쪽에 있는 중간층은 털에 부피를 주는 훨씬 통통하고 길다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팽창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어떤 조건하에서는 길이가 늘어날 수 있다. 나는 또한 놀랄 만큼 튼튼해서 약 85g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  
  모낭은 나의 세포들을 만들어 내고 배열해서 이와 같이 복잡한 구조를 만들면서 고운 알갱이로 이루어진 색소를 나에게 살짝 뿜어준다. 모발의 색깔은 색소 흑갈색 계통 혹은 적황색 계통 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이들 알갱이의 모양, 숫자, 분포 등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각 모낭에는 피지선이 딸려 있어서 피지선이 분비하는 기름이 유연성과 방수성을 준다.
  새로 생산된 모발세포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그러나 그들이 모발관을 타고 뻗어 나옴에 따라 각질화라고 하는 경화과정이 시작된다. 피부 밖에로 솟아난 부분은 이미 죽어 있다. 우리 모발들의 구성물질인 이 각질은 소의 뿔이나 오리의 깃털, 염소의 발굽에서도 볼 수 있다. 각 모낭의 생산속도는 조의 신체 부위에 따라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눈썹과 눈까풀의 모낭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쉬고 있다. 그러나 눈썹을 뽑아버리면 모낭의 활동을 자극하게 되어 면도를 한 뒤보다 더욱 왕성한 속도로 눈썹이 자라난다. 나(머리털)의 모낭은 활동적인 편에 속한다. 나의 모낭은 한 달에 약 1.3cm씩 모발을 자라게 한다. 조의 구레나룻을 생산하는 모낭은 그보다 약간 더 활동이 왕성하다. 제인은 조와 거의 비슷한 수의 모낭을 갖고 있지만 제인의 모낭의 대부분은 아주 다른 유형의 모발을 생산한다. 제인의 전신과 얼굴의 모발은 대부분이 가느다랗고 거의 육안으로 식별하기 힘든 솜털인데 이것은 조가 어렸을 4대 온몸을 덮고 있던 솜털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제인은 이와 같은 행운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자칫 잘못되었더라면 제인에게도 수염이 나고 가슴에 털이 무성하게 됐을테니까.
  우리의 모낭이 만들어 내는 모발은 곧은 것도 있고 꼬부라진 것, 곱슬곱슬한 것도 있다. 단면을 볼 때, 우리에게는 세 가지 기본 유형이 있는데, 원형, 타원형, 편평형이 그것이다. 원형은 곧은 모발의 것이고, 타원형은 꼬부라진 모발, 편평형은 곱슬곱슬한 모발의 것이다. 물론 같은 유형 안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다. 단면이 편평하면 편평할수록 우리는 더욱 곱슬곱슬하며 둥글면 둥글수록 더욱 곧다.
  조는 이제 47살, 희끗희끗한 머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의 색소분비선의 생산속도가 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들은 생산을 전면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조의 머리는 완전한 백발이 될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우리 모발들은 조의 신체의 기록 보관자이다. 조가 섭취한 모든 물질의 미세한 부분이 우리들 속에서 발견되는 수가 많은데 특히 금속성분이 그러하다. 조는 오늘날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해 공기가 납성분으로 오염되어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만약 조가 그의 할아버지의 머리카락 한 개를 가지고 있다면, 그 속에는 조의 머리카락보다 몇 배 더 많은 납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 조의 할아버지는 아마 연관과 납성분이 든 유약을 바른 오지그릇으로부터 납을 섭취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조의 찻잔에 비소를 살짝 집어넣었을 경우, 유능한 화학자라면 조의 모발을 검사하여 조가 비소를 먹은 시간을 48시간 이내의 오차로 알아낼 수 있다.
  사실, 우리 모발을 병의 진단에 이용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모발검사를 혈액검사나 소변검사같이 으레 하는 테스트의 하나로 넣자는 것이다. 전자현미경으로 우리를 자세히 살펴보거나 X선 분석을 하여 보면 조가 유전성 질병 또는 그 밖의 다른 질병에 걸려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우리의 건강은 전적으로 조의 전반적인 건강상태에 좌우된다. 고열을 동반하는 질병 특히 성홍열이나 폐렴 은 일시적으로 모낭의 활동을 중단시켜서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게 할 수 있다. 또한, 지극히 드문 일이지만 고조된 감정상태가 지속됨으로써 비정상으로 많은 수의 모낭이 한꺼번에 휴식에 들어가 일시적인 대머리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에 관한 터무니없는 말들이 많이 나돌고 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우리가 자라난다고 흔히들 믿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피부가 오그라들고 말라 버리면 이미 살갗 아래에 형성돼 있던 모발이 겉으로 드러나서 언뜻 보기에 꼭 모발이 자라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면도를 하면 모발의 올이 굵어지고 거칠어진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제인은 자기 다리털을 깎을 때마다 이 점을 걱정한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또 대머리는 혈액순환이 나쁘거나 햇볕을 너무 많이 쬐거나 너무 적게 쬐기 때문에 생긴다는 말도 있다. 대머리는 그런 이유 때문에 생기지 않는 다. 그것은 내가 증명할 수 있다. 조에게 받침접시만한 대머리가 생겼다고 하자. 조는 그의 목에서 8∼12올의 모발이 나 있는 식피편을 여러 개 떼어내서 대머리 부위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을 수 있다. 그 이식모들은 불모의 생육지로 간주되었던 곳에서도 잘 자랄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대머리에게는 단단한 머릿가죽이나 혈액순환 불량 이외의 어떤 이유들이 있는 것이다.
  유전이 크게 작용한다. 만약 조의 아버지가 대머리였다면 조도 대머리가 될 가능성이 반반이다. 양친이 다 대머리였다면 그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진다. 선들도 조의 모발에 영향을 미친다. 사춘기가 되었을 때 조의 남성 선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에는 털이 없던 부위에서 갑자기 '영구' 모발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음부, 겨느랑이, 다리와 앞가슴 부위에 털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솜털같이 부드럽던 얼굴의 털이 거뭇거뭇해지고 거칠어졌다.
  호르몬은 제인의 모발에도 영향을 준다. 임신중 제인에게서는 다량의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고 있었다. 제인은 자기의 두발이 숱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출산 후 한두 달이 지나자 머리를 빗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기 시작했다. 제인은 대머리가 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사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오래지 않아 호르몬 분비가 정상으로 회복되었고 머리도 빠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제인이 남성 호르몬을 과량 복용한다면 끔찍한 결과가 빚어질 것이다. 정상적일 때, 제인의 부신은 극소량의 남성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러나 종양이 생겨 부신을 자극하여 남성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게 하면, 제인은 수염 난 여자로 서커스단의 구경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갑상선 호르몬도 한몫을 한다. 과다한 갑상선 호르몬은 모발을 지나치게 충성하게 하고, 반대로, 과소 분비되면 모발에 윤기가 없어지고 잘 빠지게 된다.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발도 고통스러운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우선 모낭을 파괴시키는 미세한 종양이 생길 수 있다. 균종 즉 백선의 침입을 받기도 한다. 어떤 약품들, 예를 들어 과다한 비타민A 의 섭취는 우리들을 빠지게 한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의한 병들도 있다. 한 가지 이상한 병은 원형탈모증이라는 부분적으로 대머리가 되는 병이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유전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위 '모발 전문가'들이 좋아하는 병이다. 조의 나이에는 두세 달 지나면 머리가 원래대로 되살아날 가능성이 많다. 소위 '모발 전문가'들은 머리가 다시 살아나면 그 공을 자기네들이 차지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모발을 보호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우리 모발에는 먼지, 박테리아, 그리고 그 밖의 부스러기들이 잘 붙는다. 따라서 매주 한두 번씩 감아 주는 것이 좋다. 여름의 직사광선에 과다노출시키면 모발이 건조해지고 부서지기 쉬우며 탈색현상까지 일어나므로 스카프나 차양이 넓은 모자를 착용하여 우리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이나 염소로 소독한 물에서 수영한 뒤에 헹구거나 감아주면 모발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조나 제인에게 내기 해주고 싶은 가장 좋은 충고는 그들 신체의 건간을 유지하면 나도 건간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이다. 유전적인 이유로 내가 조의 머릿가죽에서 영영 떠나야 할 때가 온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조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제인의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백발이 되면 염색을 하거나 가발업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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