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병신이 육갑을 한다면 욕이 되지만 구미 사회에서는 육갑을 짚을
줄 아는 병신이 육갑을 짚을 줄 모르는 성한 사람보다 높이 평가를 받는다.
하향 잘하는 구미인
서열이 사다리처럼 선명하게 정해져 있는 종구조 사회에서는 그 사다리를 꾸준히
기어오르려는 상향의식이 강해지는 반면에 그 상향역학의 반동으로 하향을 하지
않으려는 하향억제 역학이 또한 강하게 작동한다. 이 심리적 메커니즘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하향억제 의식을 남달리 강하게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 옛날 벼슬사회에서 일품 벼슬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하던 사람이 이품
벼슬인 판서를 한 사람은 거의 없다. 또 이품 벼슬인 판서가 삼품 벼슬인 관찰사로
낙향한 경우도 거의 이례적이었다.
벼슬은 그만두고 헐벗는 일이 있더라도 또 모래에 혀를 박고 죽는 일이 있더라도
하향은 거부했던 것이다. 이 하향억제 의식이 지금이라고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정부 수립 후에 국무총리 하던 사람이 장관으로 하향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장관하던 사람이 도지사로 하향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비단 벼슬 사회뿐만 아니다. 일반 단체나 기업체에서도 직위를 하향시킨다는 것은
대어놓고 그만두라고 할 수 없기에 취해진 사직권고이지 정상적인 인사라고 볼 수는
없다.
20여 년 전 모 대학의 한 중견 교수가 교수직을 버리고 택시 운전사로 직업을
바꾼 일이 있었다. 이때 도하 각 신문들은 사회면 톱기사로 이 하향직업 선택을
이색 화제로 다루었었다. 수년 전 장관을 역임했던 분이 시골 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했을 때도 신문들은 화젯거리로 크게 다루었었다. 곧 한국에서 하향을 한다는
것은 이처럼 신문에 날 정도의 이색적인 것으로 정상적인 것은 못 된다. 이에 비해
직위보다 직능 위주로 영위되는 구미의 횡구조 사회에서는 상향의식이나 그
반동으로 야기되는 하향억제의식이 별반 강하지 않기에 높은 직위의 사람이 아무런
심리적 갈등이나 저항없이 보다 낮은 직위로 곧잘 옮겨가곤 한다.
프랑스의 훠오르 수상은 후에 문교부장관으로 일하고 있고 프리므랑 수상은
시장을 하고 있다. 영국의 흄 수상도 10년 후에 외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일본에서도 하향억제는 우리보다 덜 심한 것같다. 내각총리대신이었던 가쓰라
다로가 외무대신으로 하향하고 있고 역시 총리대신이던 이토히로부미가
조선총독으로 하향하고 있다.
10여 년 전 나는 미 텍사스 주 오스턴 대학의 한 세미나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동양학 연구로 전통이 있는 이 대학에서 교양 과목의 텍스트로 채택했던 졸저
"Modern Transfomation of Korea"대한 학생들의 질의 응답을 위해서였다.
소정의 일을 마치고 작별인사를 하고자 동대학 학장을 찾아갔다.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칠십 가까운 이 학장은 미국 굴지의 동양학자로 오스틴 시민들이
자랑으로 삼고 있는 명사였다. 방학이 시작된 지 일 주일 후의 일이라 학장은
부재였다. 여비서는 몇 번가에 있는 무슨무슨 빌딩의 서비스 센터에 가면 학장을
만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빌딩 서비스 센터라면 그 건물의 청소, 유리닦기,
페인트칠, 수선 등 구질구질한 일을 도맡아 하는 용역 센터인 것이다. 그 고명한
학자가 그런 곳에...하는 의아심을 품고 찾아갔다. 서비스 센터에서 심부름을 한다는
한 노인인 앞장서면서 학장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따라오라고 했다.
빌딩 밖으로 나가더니 그 건물2__3층 즈음에서 밧줄에 매달려 유리를 닦고 있는
한 백발의 노인을 가리키며 저분이 그분이라는 것이었다. 노교수임을 확인하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나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 노 교수가 방학 중에 연구할 과제의 예상 용역비에 3백 달러
남짓이 부족할 것 같아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위험수당이 높게 붙는 이 빌딩
유리닦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잘사는 사람이든 못사는 사람이든 연중 응분의 돈을 사회에 환원을
한다. 어디에 환원하는가는 본인의 자유이지만 당시에는 주로 종합병원
운영기금이나 학자들의 연구기금으로 희사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기에 저명한 학자에게는 필요이상의 연구비가 몰려왔으며 이를 합리화시키는
방편으로 학자에 따라 자신이 받는 연구비의 회사상한액을 정해 그 이상의 돈은
받지 않는 풍조가 생기기까지 했던 것이다. 명분은 영세 기부자를 보호하고 또 영세
기부자의 돈으로 연구한다는 것에 보람을 찾는다는 데 있었지만 실속은 달랐다.
당시 학자들의 유명도를 가늠하는데, 그 학자가 받은 기부 상한액을 기준으로 삼는
풍조가 있었다. 곧 상한액이 낮을수록 유명도가 높아지고 높을수록 유명도가
낮아진다. 그러기에 상한액을 낮게 잡는 학자들은 10달러나 5달러 하는 푼돈만을
받다 보니까 예정했던 연구비용에 다소 모자라는 일도 종종 생기게 된다.
오스틴 대학장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도 바로 이에 있었던
것이다.
내용이야 어떻든 그 고명한 노 학자가 위태로운 빌딩 유리닦이를 아무런 저항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는 그 개연성이 하향억제의식이 남달리 강한 우리에게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 노 교수는 나를 알아보고 입에 두 손을 모아 큰 소리로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었다. 동경대학에 들러 동양문고에 소장된 무슨무슨 고문서며 서울 규장각에
소장된 무슨무슨 고문서를 복사해 보내 달라는 등 이야기할 것 다 하고는 손을 들어
굿바이 하고 유리닦기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빌딩 아래로 지나가는 행인이 노 교수를 알아보고 아는 체하면 낱낱이 '하이!'
하며 응답했고 이따금 흥얼흥얼 읊조리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는 것을 한동안
나혼자서 말뚝처럼 박혀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노교수 한 분이
빌딩에 매달려 유리를 닦고 있다고 가상을 하자. 삽시간에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올려보느라 교통이 두절될 것이다.
신문기자들이 달려와서 망원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댈 것이요, 방송 기자들은
장대에 마이크를 매어 일하고 있는 노교수의 입에다 밀어대며 말 한 마디 할 것을
강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튿날 신문 사회면에 사진과 더불어 대문짝만하게 그에 대한 기사가
실릴 것이요, 그 기사를 접한 한국 사람들은 한사람 예외없이 혀를 차며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노쇠하더니 돌았구먼!' 하고....
미국의 노 교수는 돌지 않고도 유리를 잘 닦는데 돼 한국의 노 교수는 돌지
않고서는 유리를 닦지 못하는 것일까.
바로 하향억제의식이 약하고 강하고의 차이에서 빚어진 자연스런 사회 현상이랄
것이다.
흥부의 불향억제
흥부가 하도 굶다 못해 혈육인 놀부집에 양식 얻으러 갔다가 양식은커녕 걷지도
못하게 얻어맞고 기어들어오는 장면은 널리 알려져 있다.
흥부 마누라는 여러 자식놈들의 '어매 밥' 소리에 정신 못 차려서 벗은 발에 두
손을 붙들고 이문 밖에 나가 기다리다가 빈손으로 기어오는 흥부를 본다. 쑥 들어간
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간신히 살을 가리운 그의 뒤쪽이 찢어져나가 빳빳이
마른 볼기짝에 몽둥이 맞은 자리가 구렁이가 감기듯 하였다. 흥부 마누라가 울며
말한다.
"몹쓸래라 몹쓸래라 시아주비도 몹쓸래라. 오늘같이 추운 아침 형보자고 간 동생
저리 몹시 때렸으니 사람이 할 일인가, 남의 원망 쓸데없네. 모두 다 내 죄로세. 내
설마 악을 쓰면 불쌍한 우리 가장 못 먹이고 못 입힐까, 가장은 처복 없어 나
까닭에 굶거니와 철모르는 자식 정경 더구나 못 보겠네. 짐승은 미물이라도 입으로
밥을 물어 자식을 먹여 주며 추우면 날개 벌려 자식을 덮는 것을 나는 어찌
사람으로 수다한 자식들을 굶기고 벗기는고. 벗어졌기고 탁문군의 본을 받아
술장수라도 해야겠소."
흥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술판다는 대목에 깜짝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아 땅을 다섯 번 치며 자네 그게 웬 소린가를 다섯 번이나 외친다.
흥부전을 통틀어 가장 큰 쇼크를 받는 연출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다.
"죽었으면 그저 죽지 자네시켜 술 팔겠나. 가사는 가장인 내가 나서서 품을 팔
터이니 자네는 두 번 다시 그 말 입에 내지 마소." 한다.
한국 소설사상 가장 가난한 흥부마저도 술 판다는 스테이터스에 하향을 하지
않겠다는 한국인의 억센 하향억제의식이 이 장면에서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다.
우리 옛 선조들에게 있어 술판다는 직업은 죽지 못해 하는 마지막 천하 생업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이 직업에의 하향을 억제함으로서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흥부도
그 나름의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살을 생업으로 삼는 백정은 전통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직업이었다. 사실
백정보다 스테이터스가 낮은 생업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했기로 백정들은 여느
사람과 한 마을에서도 살 수 없게 하여 강 밖이나 외딴 곳에 격리돼 살아야 했으며
옷차림새나 머리쪽도 여느 사람과 같이 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백정은 생업의 서열 랭킹에서 최하위에 속했으며 그보다 하향할 어떤
다른 스테이터스도 없었던 것이다. 한데 하향할 보다 낮은 스테이터스가 없는데도
하향억제를 했던 것이다.
옛날 백정들 각자가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졌던 데 예외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 돼지는 잡는다. 하지만 개는 안 잡는다.'
곧 개를 잡지 않는다는 어떤 한 스테이터스를 설정하고 그 스테이터스에 하향하지
않음으로써 한국인에게 집요한 하향억제의식을 충족하며 살았던 것이다. 곧 하향할
스테이터스가 없으면 일부러라도 만들어서 하향을 억제한 것이다.
개 백정이 소나 돼지 백정보다 천하다는 어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유는 없는
것이다. 미신이나 주술적인 이유도 없다. 개가 되든 염소가 되든 토끼가 되든
아랑곳없다. 어떤 뭣이건 어느 하나만을 선택, 그것을 잡지 않음으로써
하향억제의식을 충족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한국인의 의식 메커니즘에 개가
재수없게 선택했을 따름인 것이다.
이처럼 하향억제의식 충족용 스테이터스를 만들어 충족시키는 풍습은 사회적
통념으로 천하다고 여기는 생업에 보편화돼 있다.
창녀들은 비록 몸을 쉽게 팔지만 입술(키스)은 완강하게 지키는 것이 전통적
통념이 돼 있었다. 기방에서 '입이 헤픈년'이라면 남의 말을 잘하거나 지켜야 할
비밀을 못 지키는 기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에게나 입술을 잘 파는 기녀를
뜻하였다. 입이 헤프면 보다 천한 창녀로 창기 사회에서도 지탄을 받았던 것이다.
곧 모든 것을 팔면서도 입술만은 나의 의지로 고수해 내겠다는 비원이며 그
하향억제의식의 충족으로 보람을 찾으며 살았던 것이다.
송장 염하는 사람이 처녀 총각의 염을 기피하는 것도 바로 이 하향 억제의식을
충족시키려는 데서 형성된 한국적 터부인 것이다.
한국형 인질사건
이처럼 한국인에게는 하향억제의식이 강하며 따라서 한국적 인간관계에 있어 하지
말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금기로서 이 하향억제의식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들 수가 있다. 바꿔 말하면 가장 간단한 수법으로 살인까지도 불사할만큼 인간관계
악화를 험악하게 할 수 있는 의식구조가 바로 하향 억제의식이랄 수가 있다.
대체로 우리 한국인은 일상생활이나 조직생활에서 남들의 외형으로 나타난
열등요소나 내면에 간직된 열등요소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예외요, 또 관습이 돼
있긴 하지만 이따금 화가 났을 때나 무슨 일이 잘못됐을 때, 관계가 악화되려 할
때는 곧잘 남의 열등요소를 자극함으로써 하향억제의식에 손상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를테면 절름발이 보고 맞대어 놓고 절름발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호칭하지 않는 것이 예의가 돼 있다. 한데 그 친구와의 사이가 악화되거나 그 친구
때문에 화가 났거나 그 친구가 무슨 일을 잘못해서 나에게 피해가 미쳤을 경우는
서슴없이 절름발이 새끼라고 말하게 된다.
브라질 여행 때 한 후배를 만나 그곳 중국집에서 술을 나누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곱게 늙은 한 브라질 중년 신사가 유별나게 발을 절며 그 술집에 들어섰다.
그 브라질 신사는 함께 앉아 있는 후배와 잘 아는 사이였던 것 같다.
"야. 절름발이야(Hey! Cripple guy!)" 하고 후배가 불러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아찔해졌다. 혹시 그 브라질 신사가 화를 내어 칼이라도 뽑아들고 대어들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마저도 들었던 것이다.
한데 나의 조바심은 배신받고 만 것이다. 이 중년 신사는 만면에 희색을 띠며
다가와서 합석을 하는 것이었다. 소개를 받았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그분의 신분이 브라질 국회의원이요, 국회의원 가운데에서도 외교분과위원장이었기
때문이다.
술 한잔 나누고 그 발을 저는 신사가 떠나간 뒤에 나는 후배를 나무랐다. 그분이
국회의원이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절름발이더러 맞대어 놓고 절름발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보아하니 나이도 많은 연장자인데다 한국 처지로 보아 말을 놓을 만한
사이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상소리를 한다는 것은 한국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하는
반국가적 행위일 수도 있다고 나무랐던 것이다.
한데 이 후배는 싱글싱글 웃으며 나의 무지를 겨냥, 역습해 왔다.
물론 한국에서 병신더러 병신이라고 했다면 칼부림이 날 것이지만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고 전재하고 중남미의 라틴 아메리카 사회에서는 불구자, 곧 절름발이를
절름발이라 부르고 째보를 째보로, 앉은뱅이를 앉은뱅이라 부르는 것이 결코 그
불구자의 열등감을 자극한다는 법이 없으며, 오히려 그렇게 불러주는 편이 애칭처럼
친밀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좁다지만 이토록 하향억제를 둔 의식구조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에 세
번째 놀랐던 것이다.
절름발이를 절름발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육체적 개성을 객관적으로
적시하는 합리적 호칭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불구도 마치
눈빛깔이 다르고 살색이나 머리빛깔이 다른 것에서 느끼듯한 그런 상이감을 성한
사람에 비해서 느낄 따름이다. 대체로 구미 사람들도 라틴 아메리카 사람 정도는
아닐지라도 이 육체적 결함을 지닌 사람 자신도 한국에서처럼 심한 열등감을
갖는다는 법이 없다.
한국에서처럼 성한 사람의 사회로부터 소외당한다는 법이 없으며 그저 불행한
육체적 특성 정도로 여기는 것이 고작이다. 오히려 개성이나 재능이나 그 사람
특유의 어떤 자질이 없는 성한 사람보다 개성이나 재능이 뚜렷한 불구자가 존경받는
그런 사회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병신이 육갑을 한다면 욕이 되지만 구미 사회에서는 육갑을 짚을 줄
아는 병신이 육갑을 짚을 줄 모르는 성한 사람보다 높이 평가를 받는다.
이 모두가 한국인에게 억세게 강한 하향억제의식에서 형성된 외국과의 차이점인
것이다.
불구라는 외적인 열등요소를 두고 동서를 비교해 봤으나 내적인 열등요소도
매한가지다.
한동안 우리나라의 다방이나 술집 같은데서 일부 특정의 손님들을 인질로 잡고
횡포를 부리는 인질사건이 자주 일어났었다.
언젠가 미국인 친구 하나가 이 한국의 인질사건을 두고 너무나 한국적인
법죄라면서 우리 한국인이 느끼지 못한 점을 지적해 준 일이 있다.
구미에서도 인질사건은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구미에서의 인질사건은 인질
목적이 선명하고 뚜렷하다. 인질값으로 돈을 몇백 만 달러 지불하라든지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지를 석방하라든지 목적을 내걸고 흥정을 한다.
한데 한국의 인질사건은 예외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인질의 대가로서 무엇을
요구한다는 법도 없고 또 요구한다 해도 선명치 못할 뿐 아니라 해결할 수 없는
추상적인 것들이라는 지적이었다. 예리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한국의 인질사건에 있어 인질범들이 돈을 요구했거나 누구를 석방하라는
구체적인 요구를 했던 기억은 전혀 없다. 그저 막연히 총을 들고 나와 이렇다 할
요구없이 버티다가 지쳐서 잡히거나 자수하거나 죽거나 하는 데 예외가 없었다.
경찰은 인질범을 달래기 위해 가장 정에 무른 범인의 어머니를 불러다가 스피커나
전화를 통해 요구가 무엇이냐고 캐어 묻게 했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하고 있느냐.
말을 해라. 내가 죽는 일이 있더라도 요구를 들어 줄 테니 말을 해라.'하고 울며불며
물어대도 대꾸를 하지 못한다.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두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요구나 목적이 아예 없는데 자꾸
물어대니 인질범도 답답했을 것이다.
이런 적도 있었다.
너무나 애절하게 물어대는 어머니에게 궁지에 몰린 인질범은....
"미스 김좀 데려다 주시오." 하고 의중에도 없던 요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이렇다 할 목적도 없이 자신의 생명을 건 엄청난 모험을 할 수 있게 한
원흉이 무엇일까.
어느 조직 사회에서 하향억제의식을 자극받은 것이 누적이 되었다가 어느 날
폭발함으로써 이루어진 심정적인 우발 범죄이지 계산된 목적 범죄가 아닌 것이다.
각기 다양한 서열기준을 지닌 사람끼리 어울려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서열
충돌이 잦으며 이 서열 충돌은 하향억제의식의 자극을 누적시킨다. 그 누적이
극한에 이르면 이성을 잃고 흉폭해져 인질사건을 벌인다.
당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제일동포 김희노의 인질사건에서 범인 김은 인질의
대가로 무엇을 달라거나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요구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곧
한국형 인질사건의 테두리를 못 벗어났었다.
어릴 때부터 주변의 일본 사람들로부터 조센징이라는 편견과 차별을 받은 것이
누적되었다가 어느 날 본인에게 더욱 이성으로 참을 수 없는 하향억제의식을
자극받고 그 극한 풍선을 터뜨린 것에 불과했다.
곧 한국의 범죄도 한국인의 의식구조상의 함수관계에서 발생되고 있으며 따라서
범죄 대책도 한국인의 의식구조 위에서 재정립돼야 한다.
이같이 흉악 범죄로까지 악화시킬 수 있는 한국적 인간관계의 작동인자를 아예
제거한다는 것이 한국적 인간관과 한국적 리더십의 기본 원칙이랄 수가 있다.
특히 조직이나 단체의 결속력이 인간적인 측면보다 규칙적인 측면이 강하거나,
상하 서열이나 규율 측면에서 강제성을 띤 조직이나 단체일수록 하향억제의식을
자극할 빈도가 높다.
그외 정보/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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