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간관계에서도 겉만이 있다. 곧 사회적 조건으로 밖에 나타낸 것의 그런
관계다. 이에 비해 한국인의 인간관계는 표리의 이중구조로 돼 있다.
맥아더는 어느 사석에서 '일본은 열두 살 어린이요, 한국은 여섯 살 어린이'라고
말했다 한다.
일본을 미국에 비겨 열두 살이라 했음은 다만 미국 사람 측에서 보아 자기에의
모방이 아직 불충분하다는 것에 불과하다. 곧 표준을 자기네들에게 두고 봐서
한국은 여섯 살 어린이인 것이다. 물론 한국의 국민성에는 많은 결함이 있다.
그럼에 있어서는 미국도 같다. 반면에 우리가 그들에게 어린이일 수 있듯이 그들도
우리에 비해 어린이인 측면 또한 많다. 우리들의 문화는 미국의 그것에 비기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되었고 그만큼 세독돼 있다. 과밀지대에서 몇천 년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관계 처리는 고도로 성숙돼 있을 것이다. 곧 그 측면에서도
미국 사람이 여섯 살인 것이다.
오늘의 혼란은 우리 한국적인 동일성을 부정하고 얼핏 보아 정밀하고 합리적인 것
같지만 실속은 거칠고 기계적이며, 인간 본질의 이해로부터 떨어진 미국의 인간관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취한 것은 좋지만, 인간관계로부터 교육에 이르는 모든 것을 이
미국의 이론 위에 구축하려 했던 데서 혼란을 몰아온 것이다.
미국의 모든 신조는 앵글로 색슨 퓨리터니즘 위에서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토양은 그것이 아닌데 그들의 신조가 이상적으로 뿌리내린다는 것이 오히려
넌센스가 되고 만다.
우월문화는 마치 윗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열등 문화 쪽으로 흘러간다. 해방 후
세대에 공통된 의식구조 가운데 가장 보편성을 지닌 것으로 미국문화는 우월문화요,
한국문화는 열등문화라는 이분사고를 들 수 있다. 그래서 미국 것이면 비상도
좋다고 여긴다. 따라서 선별없는 수용을 해왔고 지금은 모든 사물의 판단을 미국적
가치관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젊은이들에게 끼친 의식구조면에서의 선은 곧 사물판단 기준의
미국화를 맨 먼저 들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양식을 별반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개의 경우 양식집에서는 빵으로 하겠는가
밥으로 하겠는가 택일하게 돼 있는데 필자는 밥을 택하는 것이 관례가 돼 있다.
거기에 몸이 비대한 편이어서 양식집에서 나오는 접시 밥으론 양이 안 차 한 그릇
더 불러 먹게 마련이다. 여급더러 밥 한 그릇 더 갖다 달라면 예외없이 이 여급들은
'라이스 말예요?' 하고 되묻는데 예외가 없다. '밥 달라는데 라이스는?' 하고
반문하면 이 여급들은 라이스도 모르는 자가 양식집에 다 왔다는 그런 측은하고
가엾다는 눈매로 필자를 깔아보는 것이었다.
한번은 '얘, 밥하고 라이스하고 어떻게 다르냐'고 물어 본 일이 있다. 이 아가씨의
대꾸는 명답이었다. '공기에 담아 온 것이 밥이고요, 접시에 담아 나온 것이
라이스'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별반 미국문화에 젖어들 기회도 갖지 못했을 이 여급에게까지 라이스는
밥보다 우월하고 보다 가치가 있어 보이며 영양가도 많은 것 같은 그런 막연한
인식을 주게 한 그 분위기다. 그 분위기는 곧 사물판단 기준의 미국화에 오염된
그런 분위기가 이처럼 괴변확대를 하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인 것이다.
한국 사람이 영어를 서툴게 하거나 틀리게 하면 수치로 알고 미국 사람이
우리말을 서툴게 하거나 틀리게 하면 애교로 받아들이는 것도 이 가치 전도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한국 사람은 영어를 잘 못해야 하는 당당한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얼마든지
잘못해도 되는데도 열등감을 갖는 소치는 바로 이 전도된 의식구조 탓인 것이다.
둘째, 미국문화가 끼친 한국인의 의식구조면에서 실은 양자택일이라는 O
X사고다.
배와 사과는 어느 쪽이 고급 과실이냐. 여론조사를 한다. 배쪽이 고급이라는
사람이 다섯 명, 사과 쪽이 네 명이다. 그럼 배를 고급으로 정한다. 그것이 진리이며
선이 된다. 이같은 O X사고를 객관적 평가법이라 하여 대학 입학시험 취직시험까지
확대 적용함으로써 이 사고를 젊은이들에게 체질화시켜 놓은 것이다.
반동이냐 진보냐, 체제냐 반체제냐, 내편이냐 남의 편이냐 하는 이분법으로
인간관계를 단순 처리한다. 부패 급식빵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 그럼 급식빵이
나쁘니까 X다. X는 나쁘다. 나쁘니까 없애 버린다. 이렇게 급식제도가 나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급식 관리가 나빠서 일어난 일인데도 O X사고는 급식제도가 나쁜
것으로 극단사고를 한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이같은 이분법은 적어도 인간에게 적용한다는 법은 없었다.
유자광은 유명한 간신이었다. 그러나 중종반정 때 공훈을 받고 있음을 O
X사고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추앙받았던 학자 김안국은 간신
김안로와 절친한 사이였다. 친하면서도 김안로를 규탄하고 규탄하고서도 친분을
유지했다.
인간관계에는 어떤 상황에도 대립측면과 결합측면이 있다. 정면충돌은
대립측면만이 가능했을 경우에 일어난다는 조건부요, 유한적인 것에 불과하다. 결합
또한 그렇다. 이 결합과 대립에는 깊고 얕고 넓고 좁고 다양하다. 그같은 본질적
이해가 있으므로서만이 인간다운 인간관계가 성립된다. 옛 우리 인간관계도 이처럼
이분법으로 따져지질 않는데 묘미가 있었다. 거기에만이 참다운 의미의 대화가
존재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노사, 사제, 부자, 부부 등 모든 관계가 기계적이고 형식적 관계로
타락한 것도 이같은 인간관계의 변질 때문인 것이다.
미국의 인간관계에도 겉만이 있다. 곧 사회적 조건으로 밖에 나타낸 것의 그런
관계다. 이에 비해 한국인의 인간관계는 표리의 이중구조로 돼 있다.
스승은 지식을 전승해 주는 그런 사회적 조건의 표관계 이외 일생동안 은혜로
맺어진 인간적 이관계와 평행해서 유지된다. 옛날의 직장에서 과장과 과원은 직책,
직능상의 표관계 이외의 친부모다운 인생의 선배로서 배려하고 추종하는 그런
인간적 표리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한데 미국문화의 영향으로 스승은 네가 내는 등록금을 받고 그 대가로서 지식을
전달하는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만으로 타락해 버리고 과장은 직책상의 관계만으로
고갈해 버린 것이다.
한데 미국문화의 영향으로 스승은 네가 내는 등록금을 받고 그 대가로서 지식을
전달하는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만으로 타락해 버리고 과장은 직책상의 관계만으로
고갈해 버린 것이다.
셋째, 미국 문화가 변질시킨 한국인의 의식 가운데 '수줍음'의 상실을 들 수 있다.
수줍음은 곧 함수로 치에 가까운 부끄러움과는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누가 보고
있지 않을 때도 항상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의식 시선이 없는 시선의 자의식이 곧
수줍음이다.
부끄러움이란 항상 타자를 의식함으로써 우러난다. 그러기에 부끄럽다는 것은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수줍음은 아무도 없다. 혼자 있는 방에서도
수줍고 나도 몰래 얼굴 붉히는 그런 의식, 그런 감각이다. 이 의식, 이 감각이 그
사람의 행위, 말, 몸짓 속에서 아련히 스며나오는 그런 것이다. 그것이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하는 아름다움이요 덕이며, 인간미며, 사람 사는데 윤택하게 하는 정신적
습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한데 미국문화는 이 습기를 말려 버리고 한국의 젊은이들을 드라이하게 했다.
그들 정신피부는 소녀같이 윤택하지 않고 마치 70대 노인처럼 메말라 까슬까슬하다.
뻔뻔스럼고, 닿기만 하면 '칵!' 하고 즉시 반응형이다.
여대생 딸을 가진 한 친구는 어느 날 한 낯선 젊은 청년의 방문을 받았다. 그
청년은 당돌하게도 선생님 따님을 사랑하는 남자라고 자기 소개를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결혼할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사나이의
사윗감 여부로서가 아니라 그렇게 드라이하게 나올 수 있는 젊은이들의 개연성에
실망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수줍고 망설이는 것보다 시원시원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기계나 물질끼리의 관계 같으면 가치를 형성하지만 인간관계는
반드시 그같은 합리적이고 타산된 요소보다 비합리적이고 정적인 요소가 몇 곱절
크게 그 관계를 향상시킨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우리나라는 인간관계의 실천면에서는 미국보다 한결 선진국이며 나이로 따지면
미국은 여섯 살이다. 한국 재발견의 필요성은 바로 이같은 미국적 인간관계에 묻힌
한국적 인간관계의 동일성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의 전진 가능성은 이같은 우리의 세련되고 원숙한 지혜를 밑바닥부터
발굴하여 이것을 현대화하는데 있다고 본다.
우리는 미국문화의 포유시대에 머물러 젖을 빨고 있기에는 남보기 부끄러울 만큼
늙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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