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빨리 가야 자리를 차지하고 빨리 가야 물건을 차지한다는 어떤 전통적 정신
체질이 한국인을 정신적으로 꾸준히 채찍질 하고 있는 것이다.
밤기차를 타본 승객들에게 대전역 구내의 국수맛은 별미다. 도착에서 발차까지의
짧은 시간에 쫓긴 승객들은 앞다투어 뛰어내리려 흡사 국수소동을 벌인다.
이 국수의 별미를 알고 있는 한 미국인 친구는 언젠가 이 국수소동 속에서
현명하게 별미를 즐기는 비결을 나에게 말해 주었던 것이다.
그는 이 무모한 소동의 와중에 끼어들지 않고 소동이 끝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유유히 내려가 한가로이 한 그릇을 비우고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곧
여유있게 먹을 것 다 먹는다.
서로 앞다투어 내려간 다중이 각박하게 먹고 난 시간과 이 미국 친구가 여유있게
먹고 난 시간과는 근소한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외국인이 한국에 사는 가장 필요한 지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우쭐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비단 쫓기는 시간 안에 국수를 먹는 일뿐만이 아니라 한국인은 항상 쫓기듯
바쁘다.
이를테면 지하철은 그다지 붐비지도 않는데 항상 붐빈다. 타고 내릴 때마다 빨리
타고 빨리 내리려는 한국인의 개연성이 집중되어 이 가속심리가 붐비게 한다.
차문이 열려서 닫힐 때까지의 시간이 30초로 알려져 있는데, 이 30초란
시간개념이 없기도 하지만 항상 어디서든 재촉하고 쫓기는 한국인에게 별나게 강한
'빨리 빨리'의 의식구조 탓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 구내, 선착장은 달리는 사람으로 인상지어진다
해도 대과는 없다. 탈토처럼, 더러는 큰 짐을 이고 끼고 절뚝절뚝하며 남녀노소없이
달려간다.
그 와중에 끼면 달리지 않을 수 없는 나를 이따금 발견한다. 달려가 보지만 결국
그 달림이 아무런 실용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리곤 한다.
시간이나 공간에 여유가 있는 줄 알면서도 발이 빨라진다. 차에 올라타서
권태로운 몇십 분을 지나면서도 일단 빨리 올라 타놓고 본다. 곧 시간과 공간에
완전한 보증이 돼 있는 경우에도 한국인은 달린다.
혹시 물리적으로는 달리지 않는다 해도 마음은 초조하여 항상 달리고 있는 것이
한국인의 정상적인 상태다.
팔레스타인 게릴라의 항공기 납치사건이 있던 직후의 베이루트에서 필자는
탑승자의 대열에 서 있었다.
지갑 속까지 뒤져보는 철저한 수하물 검사바람에 시간이 굉장히 늦어져 있었다.
비행기의 이륙시간이 5분 전으로 다가왔는데도 검사를 기다리는 탑승자의 대열은
1백여 명에 이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끼인 나는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초조함을 참지 못하여 짐을 앞사람에게 맡기고 여행사를 찾아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여행사 직원은 "모두 태우고 갈 테니 안심하십시오." 하며 초조한 나를
조소라도 하듯 야릇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돌아와 서 있던 나는 이륙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넘겼을 무렵 다시 초조함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나와 더불어 열을 짓고 있는 백 여 명의 백인들도 나와 똑같이 초조했을까.
초조했다면 저토록 태연하게 서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북구계 미국인이라는 뒷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비행기가 이토록 늦어진데
불안을 느끼지 않는가고.
그의 대꾸는 "늦어진 이유를 알고 있는데 왜 불안합니까." 라는 것이었다.
왜 한국인만이 이런 경우에 그토록 초조한가. 물리적으로는 비록 열 속에 서
있지만 마음 속에서는 바쁘게 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길에서는 빨리 가자 하고
일할 때는 빨리 하라 한다. 대화에서는 빨리 말하라 하고 밥상에서는 빨리 먹으라
한다.
양계장에서는 빨리 알을 낳으라고 전등으로 밤을 없애고 과수원에서는 빨리
익으라고 과실에 주사를 놓는다. 그러기에 텔레비전 유머에 '바쁘다 바빠'하는
평범한 말이 그토록 유행어로 정착하리만큼 어필했을 것이다.
이 항상 쫓기듯한 의식구조 때문에 빨리, 재빨리, 날쌔게, 얼른, 금세, 당장, 냉큼,
선뜻, 후딱, 싸게, 잽싸게, 속히, 즉각 등등... 가속부사가 어느 다른 나라보다
발달했다.
마작도 단판승부요, 범죄도 한탕에 천금을 얻으려 한다. 이제 연인들간에
플라토닉한 요소는 거추장스럽다. 임금도 즉각 인상하라 하고 배척도 즉각 물러가라
한다. 정치도 경제도 물가도 성급하고 행정에서도 급행료가 생기지 않았는가.
왜 이렇게 바쁠까.
두 가지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하나는 수요공급의 차질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수요에 비겨 공급이
흡족했던 시대가 없었다. 그러기에 남보다 빨리 앞서지 않으면 그 공급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러기에 남보다 빨리 앞서지 않으면 생존과 관계가 있기에 바쁘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교포가 야채상을 시작하면 여타의 백인들 야채상이 골탕을
먹는다는 것이 상식이 돼 있다 한다. 왜냐하면 남달리 일찍 일어나 신선하고 보다
양질의 야채를 가져다 점두에 늘어놓기에 손님이 몰릴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백인
야채상들이 연서명하여 한국 상인의 이 재빠른 행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관례가
돼 있다 한다.
곧 빨리 가야 자리를 차지하고 빨리 가야 물건을 차지한다는 어떤 전통적 정신
체질이 한국인을 정신적으로 꾸준히 채찍질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로서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쌀농사의 북한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는 것 같다.
유럽의 보리나 밀농사는 씨뿌리고 수확할 때까지 굳은 흙을 깨주는 중경이라는 단
한번의 손질만 해주면 된다. 이에 비해 한국의 벼농사는 못자리에서 벼베기까지
20__30번씩 일손을 들여야 한다. 같은 쌀농사이지만 남방에서는 씨를 뿌리고 베기만
하면 되는데 북한이라는 여건 때문에 어느 단시일 동안에 무슨 일을 꼭 해내지
않으면 안 되게끔 기후에 의한 연속된 시한의 노예가 되고 있다. 만약 물을 못
얻는다든지 그 어느 시한을 놓치면 태풍에 벼가 쓰러진다. 그 어느 시한을 어기면
서리를 맞고 그 어느 시한을 놓치면 벼가 썩는다. 이처럼 주어진 시한 안에 재빨리
그 일을 해내지 않으면 벼농사는 망치고 말고 망치면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그러기에 한국인은 바쁘다. 바쁘지 않으면 살 수 없게끔 농경적 조건이 돼 있기에
바쁘다는 의식이 체질화돼 버린 것이다.
이 바쁘고 빨리 해야 한다는 의식구조는 이 세상에서 드물게 보는 근면이라는
황금을 한국인에게 안겨 준 것이다. 어느 제한된 시간 안에 가장 그 일을
능률적으로 잘해 내는 능력의 소유 민족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을 손꼽는 것이
통념화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같은 조건이면 일본 사람보다 한국
사람이 보다 근면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은 일본보다 더
북한지대에 속하고 따라서 보다 시한적인 부지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천부적인 부지런을 어떻게 촉발하느냐가 앞으로 연구돼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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