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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생식

유방암 투병 생식체험기

by Healing New 2020. 10. 3.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을 만큼 견디기 어려운 통증과 불안 속에서 
유방암으로 투병을 시작한 지도 벌써 만 4년여가 되었습니다. 그때 함께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암환자들 중에서 제가 알았던 환자들은 모두 
저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이렇게 혼자만 살아 있다는 사실이 
신비스럽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저의 암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85년도 가을이었습니다. 평생 동안 병이라곤 앓아보지 
않았고, 3형제를 출산했어도 산후에도 아파보지 않았던 건강한 
체질이었습니다. 하루는 허리가 아프다는 것을 느꼈어요. 곧 회복되리라고 
믿었지만 계속 통증이 있어서 약방에 가사 약을 세 번이나 조제해다가 
먹었지만 그때뿐이지 여전했어요. 또 개인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척추의 물렁뼈가 퉁구러져 아플 수가 있다며, 
대소변을 받아낼 정도로 누워서 몸조리를 하라고 하셨는데 그렇게는 
못하고 약만 먹었더니 효력이 없었어요. 하루는 진통이 좀 심해서 온몸을 
만지며 살펴보았더니 오른쪽 유방에 적고 단단한 몽우리가 있고, 다르쪽 
유방에까지 번져 있어요. 개인병원에서 치료를 했는데 세브란스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 해서 일주일 동안 입원을 하고 종합진찰을 
받았습니다. 몽우리가 생긴 지 3년이 지났기에 늦게 왔다고 박사님이 
꾸중을 하셨어요. 겨드랑이에도 암종양이 생겼다며 인턴들이 와서 자꾸 
몽우리의 조직을 뜯어갔는데 아프기도 하고 해서 화까지 낸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병이냐고 물어도 대답을 안 해요. 수술실로 데리고 가서 
겨드랑이를 한시간 정도 수술을 한 후에, 의사선생님이 와서는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라면서, 본인 마음이 50%, 의사가 
말하는 대로 하는 것이 50%이니 그렇게 하라고 권고를 받았습니다. 
유방암이라는 사실을 남편으로부터 들었을 때도 병원에서 치료를 해주니 
완치가 될 것으로 막연히 믿었어요. 진찰이 끝나자, 집에서 다니면서 5주 
동안 방사능치료를 받았습니다. 온몸이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어요. 차에 
받힌 것같이 뼈라는 뼈는 안 아픈 데가 없었어요. 점점더 아파서 앉지도 
못하고 누워서만 지냈죠. 5주 동안 방사선치료가 끝난 후에는 약물치료를 
받았어요. 대기실에 가면 앉아 있지도 못하고 의자에 누워서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무슨 암이 이렇게 아픈 게 있냐고 간호원한테 물었더니 
드물대요. 간호원 얘기가 골수까지 전이된 모양이라고 그러더군요. 
약물치료를 2년 동안 받았어요. 병에 든 노란 것하고, 하얀 거하고 다섯 
개씩 맞았어요. 맞은 다음에는 굉장히 고통스러워요. 밥도 먹을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86년 9월에 감기가 들었어요. 모든 데가 
굉장히 약해졌으니까 감기가 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20여일이 지나도 
낫지 않아 병원에 갔습니다. 가슴 사진을 찍어보더니 아주 갑자기 
나빠졌다며 방사선을 더 받자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가슴 밑의 피부에서 
진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너무 아팠어요. 밤을 꼬박 새웠어요. 기침이 
나서 입원한 지 14일 만에 퇴원을 했습니다. 여전히 아파서 죽겠는데도 
의사가 나가라고 해서 나왔어요. 통원치료를 하며 매일 다녔어요. 
진통제를 목에다 놓고, 또 척추에도 줄을 연결해서 두시간에 한 번씩 
놓았는데, 배 아래는 마비가 되어 감각이 없었어요. 너무 아파서 
신경수술까지 하려고 하다가 위험하다고 해서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더니 
주사약을 바꾼다고 하시더라구요. 인터페롤이라는 빨간 주사약이었어요. 
그걸 딱 한 대 맞고 나흘이 되니까 머리가 하나도 없이 빠져버렸어요. 
또다시 입원을 했다가 병원에서 나가라고 해서 두달 만인 87년 1월 27일에 
퇴원을 했습니다. 여전히 통증이 심한데도 오히려 퇴원하라는 말을 들으니 
이젠 못 고치고 죽는가보다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어요. 집에 와서 
우상을 섬기고 있던 부적 같은 것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마음이 
기뻐지면서 눈물이 자꾸 나왔어요.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집 옆에 있는 감리교회에 나갔어요. 마침 부흥회가 있었어요. 
첫날부터 막 회개하면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교회까지 5분 거리인데 걸어서 가면 땀이 줄줄 흘러요. 그만큼 힘이 
들었어요. 새벽 기도에도 다니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어요. 그리고 
연신내 권사님 재단에 5개월 동안 다녔어요. 별 효력을 못 보고 병원에 
다시 가니, 기도원에 있다가 오니까 어떠냐고 그러셨어요. 병원에 다시 
다니면서 암병동 진료실에 가서 약물치료를 받는 도중에 호스피스 실습을 
하러온 송재순 집사를 만났어요. 송 집사가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책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책은 침대 밑에 감췄어요. 생식하는 방법을 다 
적어 주어서 다음날부터 실천을 했어요. 의사한테 물으니 죽을 때까지 
주사를 맞아야 한대요. 이왕 죽을 바에야 생식이나 해 보자. 이거 하면 
낫는다니 혹시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13일 동안 생식과 
냉온요법을 하니까 진통이 멎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87년 11월 
17일경이었어요. 송 집사가 진통제를 끊으라고 전화로 성화를 해서 생식 
다음날부터 끊고, 집 옆 공중 목욕탕의 뜨거운 물 속에서 온열요법을 
하면서 참았어요. 매일 거의 한두번씩 송 집사 집에 전화를 해서 
냉온요법과 생식하는 방법을 일일이 물었어요. 현미쌀을 저녁에 
담그었다가 아침에 먹었는데 잡곡을 제대로 못 섞었어요. 겨울에는 
괜찮지만 날씨가 더워지면 쉬어요. 여름에는 두시간 정도 담그어야 제맛이 
납니다. 담그었던 쌀을 건져서 물이 빠진 다음에 믹서로 갈아서 먹었어요. 
하루 한 끼밖에 더 못 먹어요. 두 끼도 먹었지만 주로 한 끼를 오전 
11시쯤에 먹었어요. 반찬은 여러 가지 야채(양상추, 샐러리, 피망)를 씹어 
먹었습니다. 자고 나면 물 두 컵을 마시고, 당근과 토종 시금치, 케일 등 
야채 생즙을 만들어 하루 여섯컵 이상 마셨어요. 시금치와 당근이 통증을 
멎게 한다고 송 집사가 얘기해서 초기에는 많이 마셨어요. 감자즙도 
마시고, 당근, 샐러리, 상추, 파슬리, 미나리, 쑥갓, 산나물 등 채소는 다 
먹으라고 해서 즙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생현미 떡가루를 먹을 때는 
반찬처럼 씹어 먹었어요. 야채가 없으면 가루를 얼마 못 먹어요. 살구씨는 
하루 40알씩 먹었어요. 써서 먹기 힘든데 대추하고 같이 먹으면 쓰지 
않아요. 그때는 몰라서 쓴 대로 먹었어요. 미역, 다시마 같은 해초도 꼭 
먹었고, 조선 재래송 소나무잎도 쌀을 갈 때 넣어서 현미가루와 같이 
먹었습니다. 솔잎을 넣어서 갈면 잘 갈아져요. 당근, 시금치, 케일, 상추, 
해초 같은 야채를 먹었지만 미나리도 좋다는 얘기를 듣고 송 집사에게 
물어보니 좋다고 해서 먹었어요. 호박잎, 깻잎도 먹었지만, 칡잎은 구할 
수가 없어서 못 먹었어요. 매일 온탕욕을 했어요. 목욕탕에 갈 때는 
레몬즙, 생수, 쌀가루, 채소를 가지고 가서 먹으면서 몇 시간씩 온탕욕을 
했어요. 한증막에도 갔었는데 한증막은 너무 멀고 힘이 들어 그만 
두었습니다. 처음 온탕에 들어가면 뜨겁게 느꺼지지만 훈련이 되면 뜨겁지 
않아요. 처음에는 따뜻한 물에 적응을 하면서 온도를 높였어요. 냄 몸에 
맞게 온도를 맞춰 놓으면 다른 사람은 뜨거워서 못 해요. 집에서는 욕조가 
작고 뜨거운 물도 잘 나오지 않아서 공중목욕탕을 이용했어요. 하루 한 번 
했다고 하니 하루 최소한 두 번은 해야 된다고 해서 오전 오후 두 번을 
했습니다. 온탕에서는 머리에 찬 수건을 매고 땀을 내고, 밖에 나와서는 
찬물에다가 수건을 적시어 피부가 빨개지도록 문지르며 닦았어요. 
혈액순환과 백혈구가 튼튼해진대요. 몇 십년을 공부하고 연구해서 
박사까지 된 의사선생님들이 못 고치는 암인데 풀을 먹고 낫는다고 해서 
처음에는 잘 믿어지지 않았지만 애들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도와주어서 할 수 있었습니다. 송 집사는 비료와 농약을 주지 않은 채소를 
구해다 먹으라고 해서 남편이 적극적으로 구해다 줬어요. 한 서너달 
지나니 이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야채를 먹을 수 없도록 아파서 송 
집사에게 물어보니 부작용이 생긴데요. 한 열흘 지나면 낫는다고 했지만 
잘 믿어지지 않았어요. 잇몸이 아픈 데는 양상추가 효력이 있다고 해서 
먹었어요.. 한 일주일 지나니 나았어요. 또 목기 간질거리면서 열은 나지 
않고 계속 기침만 났어요. 며칠 동안 견디다가 물어봤더니 산초씨를 사다 
끓여서 물을 마시라고 했어요. 산초씨도 햇것을 사다 먹어야 하는데 
벌레가 나서 썩은 것도 있으니 조심해서 골라야 돼요. 남편이 새까만 
윤기가 나는 씨를 경동시장에서 사왔어요. 끓여서 먹었죠. 이틀 만에 
기침이 멎더니 사흘째는 완전히 멎었어요. 마약처럼 효력이 나는 것 
같았어요. 송 집사 얘기가 다른 환자들도 써봤는데 잘 낫는데요. 몇 달 
지난 후에 지렁이 엑기스가 외간 수도원 농장에서 나오는게 있는데 좋다고 
송 집사가 사다 먹으라고 해서 여러 병을 사다 먹었어요. 계속해서 먹을 
까 했더니 1일 1회분이 한 병에 4천원씩이라서 경제적으로도 곤란하고 송 
집사 얘기가 몇 번 먹어야 좋은 거지 계속해서 먹을 것은 못 된다고 해서 
끊었어요. 동대문 회기동에 있는 새생활문화센터에서 간증도 한 번 
했어요. 송 집사는 몇 가지 채소를 썰어서 믹서에 넣고 갈아 날채소 
범벅을 만들어서 먹으라고 하는데 그렇게는 못 했어요. 맛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생식을 하면서 병이 낫는 것을 보고 생식을 
해보겠다는 환자도 있었습니다. 제 동생의 남편이 위암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중이었어요. 수술을 하려고 개복을 해보니 위, 간 등 내장에 
온통 암세포가 번져서 수술도 못하고 그냥 봉합하고 만 환자였습니다. 
물만 겨우 마시고 음식도 못 먹던 환자 였습니다. 송 집사에게 알려서 
관장을 하고 감자즙, 생즙을 먹도록 했어요. 그리고 여러 가지 야채즙을 
먹더니 병이 호전디 되었어요. 몸이 좋아지니 음식이 먹고 싶어 못 배겼던 
모양이예요. 요리한 음식을 먹고 중국집에서 볶음밥까지 시켜 먹다가 병이 
악화되어 다시 즙도 먹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생식을 한 지 6개월이 
되니 누렇던 얼굴이 제 빛깔이 나고, 피부도 고와지더군요. 몸도 
날씬해져서 더 젊어졌다고 했어요. 현미에 율무, 조, 수수, 통밀, 보리, 
메밀, 깨 같은 잡곡을 섞어서 현미가루를 만들어 먹으라고 하는데 제대로 
못 했어요. 또 발바닥에 물집이 생긴 적이 있었어요.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했는데 송 집사가 숯가루 포를 붙이라고 해서 붙였더니 
나았어요. 휴가를 온 아들이 무좀 때문에 고생했는데 숯가루를 붙였더니 
나았어요. 숯가루의 미세한 구멍이 바이러스나 균을 흡수한다고 해요. 
살균도 되고 진통도 돼요. 아픈 데도 없고 건강해진 것 같아서 88년 
가을부터 현미밥을 먹었어요. 송 집사에게는 얘기하지 않고 먹었어요. 
그해 겨울, 강서구 염창동에서 살다가 경기도 부천시 역곡으로 이사를 
갔어요. 정원주택아파트인데 역곡에서도 시골로 한참 가야 돼서 교통도 
불편해요. 그러데 허리 척추가 좀 무겁고 해서 자석요를 사다 깔았더니 
괜찮았어요. 역곡에 가서는 순복음교회에 다녔지요. 흰 쌀밥 먹고 고기만 
먹어도 기운이 펄펄 나는 것을 보니 흰 쌀밥이 먹고 싶어졌어요. 몸도 
건강하고 아픈데도 없었어요. 하나님이 주신 음식이니 걱정하지 말고 
감사하게 먹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해서 흰밥에 맛있는 반찬도 
먹었어요. 한 20여일 먹었는데 다리와 온몸에 동통이 와요. 그래서 남편이 
중국교포한테서 곰쓸개 50만원어치를 사다가 하루 두번씩 며칠을 
먹었어요. 그 웅담을 먹을 땐 안 아픈데 안 먹으니 또 아픈 거예요. 송 
집사한테 전화를 했어요. 여러 가지 물어보더니 자석요를 치우라고 
그래요. 임시로 며칠을 사용하는 것은 몰라도 자석은 우리 몸의 철분을 
비롯해 조혈작용과 신경계통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쁘다는 거예요. 그런 
것은 자연의 원리에 어긋나는 물질이래요. 남편이 부항기계를 사왔어요. 
암에 좋다고 팔더랍니다. 송 집사한테 물었더니 고름을 빼는 기계라면서 
해롭다고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했습니다. 송 집사님이 역곡에서도 교통이 
불편한 저의 집을 찾아왔어요. 6월말경이었어요. 웅담도 팥알만한 것을 
같이 먹었어요. 여러 가지 얘기도 했어요. 생식을 하래요. 그러면서 평생 
생식을 하라고 했어요. 집사님도 앞으로 산골에 가서 농사지으며 살 
계획이라면서 시골에 가서 무공해 식물을 길러서 먹으랍니다. 저의 바깥 
분도 시골 가시기를 원하는데 저는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아요. 그후 음식 
조심을 하고 했더니 동통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교인들과 함께 가정방문을 
다니면서 주는 음식을 먹고 무리를 했더니 또 아프기 시작해서 송 
집사에게 전화를 했어요. 생식을 하라고 해요. 살구씨는 쓰니 대추와 같이 
먹으래요. 냉온요법도 철저히 실시하라고 해서 그대로 실천했어요. 다리에 
찜질도 했어요. 암은 적어도 8년, 또는 10년, 20년 이상의 잠복기간이 
있는데, 그동안 자연의 법칙을 어긴 생활로 세포의 유전자 정보가 
상했대요. 이 유전자를 고치자면 적어도 3년은 생식을 해야 되고 그리고 
방사선과 항암제를 많이 맞았기 때문에 암이 또 생길 위험성이 있으니 
평생 음식 조심을 하라고 합니다. 남들은 잘 먹고 여행도 다니며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나 이 병으로 
해서 하나님을 알게 됐고, 남이 모르는 체험을 했어요. 잘 먹고 여행하고 
즐겨봐야 내 몸에나 남에게나 유익되는 점은 없고, 마음과 몸만 타락하고, 
병만 들 뿐만 아니라, 자연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죠. 다시 생식을 하고 
찜질도 하고 했더니 10여일 지나고부터 아픈 통증이 가라앉아요.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고 생식을 할 작정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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