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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상식

성생활을 즐겁게 하려면

by Healing New 2020. 5. 5.

남성 주도적인 우리의 성문화
  지금까지 얘기한 성능력 개발의 요목은 미국 문헌들을 참고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
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따를지 모른다. 산업사회로 변모했지만 우리의 문화전통과 
풍토가 미국과 워낙 다르기 때문이다.  또 우리 사회는 변화의 폭이  넓어 세대간의 격차도 
심하므로 세대간에 수용방법과 정도가 다를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성생활과 관련된 실증조사가 거의  없다시피하므로, 보통 일상적인 성생
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의 짐작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막연하더라도 몇 가지 사항은 
짚어두어야 할 것 같다.
  성생활의 주도권도 대체로 남성에게 있다. 그렇게 된 이유가 신체적. 생리적 차이에  있는
지, 예로부터 내려온 남성우위의 문화 때문인지는 구분하기 힘들다. 그리고 남성우위의 양상
도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미국의 남성우위와 한국의 남성우위가 같을 수는 없다. 한국
의 남성우위 성문화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된다고 보는 점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남편주도가 갖는 의미
  성생활에서 남성우위는 먼저 부부의 성생활을 남편이 주도해야 한다는 관념과 행태로  나
타난다. 성생활이 남편의 권위임과 동시에  의무로 나타나는 것이다. 부인들 역시  성생활은 
남편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이 때문에 남편은 자기도 즐기고 부인도 만
족시킬 성능력을 가져야 하고, 그러자니  정력을 보강하는 일이 긴요해진다. 이는  남편에게 
과도한 의무감으로 작용하거나 엉뚱한 무능력자로 전락시키곤 한다.
  남편주도의 성문화가 아주 독선적으로 나타나는 양상도 있다. 부인에게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기생이기를 요구하는 남편이 있다. 이런 경우는 남편의  생각 바탕에 깔린 전근대적 
사고만 아니라면 문제가 안 된다고 불 수 있다. 남편도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한다면 재미
있는 성생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부인에게 성적 쾌락과 무관한  여자이기를 요구하는 경우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편주도의 성문화가 성의 본질을 왜곡하는 형태이다. 자기 부인은 순진하고 정숙해야 
하므로 성생활도 점잖아야 한다. 따라서 부인이 성적 극치감을  느끼는 일은 오히려 기피한
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농염한 성생활이나 쾌락을 추구하고 싶어 다른 여자를 찾는다.  이렇
게 되면 가정 파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여성의 수동성은 결혼 후에도 성생활을 통한 극치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인에게서 잘 나타
난다. 어떤 부인은 결혼 후 3년 정도 지나야 극치감을 느낀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3년이 되
면 극치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3년이 지났는데도 극치감을 느끼지 못하자 은근
히 남편의 기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여성의 수동성은 남자들이  권위의식에서 떠들어대는 허풍선이  행태와 대응된다. 
여자는 남자의 기술과 정력에 의해 극치감에 도달하게 되는데, 자기가 그런 데 탁월한 능력
이 있는 것처럼 으시대는 남자들이 있다. 이른바 허풍선이이다.
  자기는 성적으로 탁월하다고 생각하는데 자기 부인은 극치감을 못 느낀다. 자기과신에 빠
져 부인과의 조화로운 성생활을 추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남편은  부인이 의도적으로 
극치감을 회피하거나, 불감증이 있다고 생각하며, 경우에 따라선 이를 외도의 핑계로 삼기도 
한다.
  외도는 대체로 부인과의 성교보다 높은 만족감을 준다고  한다. 왜 그러겠는가? 부인과의 
성교에는 일상적으로 대처하면서 외도를 할  때는 성의를 다하기 때문이다.  부인과 성교를 
할 때 도 외도를 할 때처럼 최선을 다한다면 그 만한 만족감을  못 느낄 이유가 없다. 부인 
역시 성적인 불만을 느끼면서도 남편이 더 잘해주기만을 기다려서는 문제를 풀 수가 없다.
  근래에는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일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남편은 범상하게 대하는데 
밖에서 만난 남자는 성의를 다해 주므로 남편은 차고 무능한데 그 남자는 따뜻하고 유능해 
보일 것이다. 남편의 무관심과 무능력이 핑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의 탓은 없다. 그런
데 그 남자와 함께 산다면 그 역시 범상한 사람이기 쉬울 것이다. 일상에서 매번 특별한 성
의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점들에 비추어 보면 성능력 개발의 요목들이 우리의 성생활에 도입되어야 할 필요성
이 절실해진다. 특히 여성의 극치감 개발을 위한 감각적 여성의 개념을 남편과 부인이 함께 
수용해야 하리라고 본다. 여자의 극치감은 남자가 만들어주는 것이아니라 여자가 느끼는 것
이다.
  어떤 남자가 여자의 감각과 정서적인 분위기, 나아가서는 정신 및 영적 세계를 알아서 극
치감을 유도할 수 있다고 자신할수 있겠는가? 다만 부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남편이기에 
부인을 가장 효과적으로 극치감에 도달하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임에 틀림이 없다.
  극치감에 도달하는 일은 두 사람이 알아서 해야 하므로 부부는 서로의 극치감을 위해 노
력해야 한다. 부인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극치감에 도달하도록 본인을 개발해야 하며, 부인이 
부부생활에서 극치감에 이를 수 있도록  남편이 협조해야 한다. 부인이  극치감에 도달하는 
것은 남편에게도 좋은 일이다.
  성적 능력의 개발은 여성이 극치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고 할 수  있
다. 남편은 사정을 함으로써 대개 극치감을 느끼므로 크게 문제가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방적 만족으로 끝나는 경우와 부인도 극치감을 느끼는 경우를 비교하면 후자의 경우에 느
끼는 남편의 만족감은 전자에 비하여 질적으로 다르다 할만큼 크다.
  남편의 사정은 한번의 성교에서 도달한 극치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극치감의 
크기, 혹은 만족도는 성욕의 발산에 그치는 수준에서부터 희열을  느끼는 수준까지 여러 단
계의 스펙트럼이 있다.
  똑같은 사정 행위에서 어떤 수준의 만족을 얻는가는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부인을 성
적으로 만족시킨다면 자기도 큰 만족을 얻을 것이요, 자기만의 성교로 끝나버린다면 성욕의 
발산에 머물고 말 것이다. 결국 부인이 감각적 여성이 될 때 남편도  큰 만족을 얻을 수 있
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행동은 상황에 적합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부부마다 처한 상황이 
너무나 다를 수 있으므로, 외국의 경험을 어느 대목부터  어떻게 수용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매우 중요하면서도 아직은 은밀한 사항이므로 신중하고 은근히 대처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가 필요할지 모른다. 배우자의 수용태세나 주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성급하
게 움직이다가는 심각한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굳이 일반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역시 점
진적으로 수용하면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신중을 기한다는 취지에서 성능력 개발이 필요하고 가능한것인지 다섯 측면에 따라  다시 
한번 챙겨보자.
  (1) 신체-생리적 개발
  우리나라의 부부들에게 신체-생리적 성능력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은 가짜 조루증과 가
짜 불감증이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우리가 즐겨 쓰는 궁합이라는 말은 본시  성생활을 위한 신체적 조건의 합치를  연상시킨
다. 그런데 실제에서는, 특히 현대의 부부들에게는 정신적 조건의 합치가 더욱 중요하다. 신
체와 정신을 놓고,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가를 따지는 일은 지혜롭지 못하다.  일
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정신적 조화가 육체적 조화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러므로 결혼에 앞서 정신적 궁합이 잘 맞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신체적 궁합은 살아가면서 맞추어 가는 궁합이고, 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잘 맞출 수 있
지만 가짜 조루증과 가짜 불감증이 말해 주듯이 육체적 궁합을 맞추지 못하고 사는 부부가 
많다.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노력 없이 되는 일은 없다. 어떤 사람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궁합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노력에 따라 잘 맞출 수 있다고 하여 신체적 궁합이 부부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정신
적인 궁합에 비해 더 작은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 크고 기본적이다. 성생활의 조
화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부부 사이의 부조화를 녹이는 작용까지  하므로 그만큼 중요한 것
이다.
  서로의 마음만 합치한다면 두 사람에게 맞는, 두 사람이  함께 즐기는 성생활을 얼마든지 
개발해 나갈 수 있다. 사람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부부가 되었다면, 먼
저 신체적 궁합을 맞추는 데 함께 노력함으로써, 그 때까지  미처 맞추지 못한 정신적 궁합
의 부조화 부분도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해보자.
  (2) 정서적 개발
  이성간의 성적 접촉은 사랑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 
접촉은 신체적 느낌과 생리적인 반응이 동반될  뿐 진정한 성의 극치감에 도달하기는  어렵
다. 서로 좋아하고 사랑해야만 성적 접촉에서도 극치감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부부는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여 결혼을 했고, 일생을 같이 살기로 서약한 관계이다.  그러
므로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기본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
데도 많은 부부들이 이를 일상성 속에 묻어버림으로써 성생활의 기쁨을 반감시키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좋아하고 사랑하면서도 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해 성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
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성에대한 감정이 잘못되어  '부끄럽다', '싫다', '추하다', '천하
다', '동물같다', '죄악이다'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성적 접촉을 피하게 되고,  접촉을 해도 
감정이 무르익지 않아 별다른 느낌을  얻지 못한다. 이 문제는 정서적  개발 차원만의 일은 
아니지만, 성적 접촉에 대한 강한  욕구가 성생활의 기본이 되는 정서라는  점을 생각할 때 
성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하루빨리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3) 정신적 개발
  우리의 몸과 마음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학습된 지적 영역의 통제에 
의해 움직인다. 이것이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이며, 성행위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에 대해서는 본능적 속성만을 떠올리는데, 성에 대한 지식. 태도. 행위도 태어나서부터 오
늘까지 공식, 혹은 비공식적으로 학습된 지식과 경험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
에 대한 학습으로 자신을 개발하면 성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성에 대한 공식적인 교육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무지하며, 음지에서 떠도
는 잘못된 정보에 의존하기 쉽다.
  성에 대한 무지는 막연한 공포감을 주게되고, 그릇된 지식은 엉뚱한 행동을 낳는다.  나아
가 사람을 자신없고, 주저하게 만든다. 이런 데서 벗어나 인간적 자연으로서의 성생활을  제
대로 즐기려면 성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성생활에 대한 학습을 하고 실천하여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성
에 대한 지식. 태도. 기술을 기억하고, 이해하고, 적용하고, 분석하고, 합성하고, 평가하는 능
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적 개발이란 성에 대한 자긍심, 즉 자신감의 개발인데  여기에는 자신의 노력에 못지 
않게 배우자의 인정과 격려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에는  타인에 대한 칭찬과 격려
가 활발하지 못하다. 더욱이 성에 이르면 쑥스러워지기 십상이다. 행복한 부부생활을 추구하
는 진정한 마음으로 부부 사이에서 은근하게 시도해 볼 만한 일이고, 실천해야 할 일이다.
  (4) 영적 개발
  서양에서도 종교와 성은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 신성한것과 추한 것으로 대비되면서 
오랫동안 대립적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도 그런 경향이 상당히 강하다. 신부. 수녀. 승
려 등이 결혼을 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이, 성행위를 죄스럽
게 여기게 하며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게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성적인 무감각과 불만족 상태
를 종교적으로 가치 있는 것처럼 생각함으로써  이 문제를 정신적으로 해결하는 경향도  있
다.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은 선악의 차원에서 판단할 문제라기보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삶의 부분이다. 모든 종교
가 결혼을 권장하고 이를 성스러운 의식으로 축복해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
데 결혼생활의 핵심이 되는 성생활이 신앙에 방해가 된다거나 추하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래
도 잘못이다. 자기 최면이나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부부는 모름지기 성에 대한  가치관을 바르게 갖고, 성생활에도  정성을 다한다면 순수한 
희열을 체험할 것이다. 이는 매우 인간적임과 동시에 영적인 체험이 아니겠는가?
  (5) 사회적 개발
  사회적 개발이란 사회가 용납하는 범위에서 성에 대한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함으로써 성
생활의 기쁨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일부일처제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부인
은 부인대로, 이를 지켜주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어떠한 노력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뿌리 깊은 남성우위가 조장하는 허풍선이 행태, 급격한 사회변화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 성의 상품화 물결 등으로 안정된 부부상을 정립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남녀간에 실수가 있기 쉽고, 상황을 고려하여 일시적 실수를  용서하는 관용도 필요한 시대
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이러한 상황을 부부가  함께 냉철히 인식해서 즐거운 
성생활, 건강한 부부관계, 활기찬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6) 운동과 변화로 성을 즐겁게
  우리나라에도 도색 잡지나 영화, 이른바 포르노가 많이 들어와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
다. 어떤 부부들은 이를 함께 즐기고, 여기에서 성생활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굳이 아
이디어까지는 아니라도 성적 충동을 얻거나 분위기를 잡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지나치게 탐닉하거나 의존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대개는 그것이 그것
이어서 금방 식상하게 되면서, 자꾸더 강렬하고 충동적인 내용이  아니면 자극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적 감각이 무뎌지는 것으로, 크게 우려되는 불건강한 사태이다. 또 포르노의 성
행태는 그것만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매우 특이한 것이므로,  이를 일상적 성생활에 그
대로 도입한다면 역시 불건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즐겁고 만족스러운 성생활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적당한 운동이다. 기본적으로 부부는 
건강해야 한다. 허리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있으면 성생활을 마음
껏 즐길 수 없다. 체력을 좋게, 심장을 좋게, 기분을 좋게 해야 성생활도 잘 할 수 있다.  그
러므로 평소에 부부가 함께 건강증진에  힘써야 한다. 운동은 건강증진의  핵심 요소이면서 
성생활에도 자연스럽게 절제와 활력을 주게 된다.
  다른 하나는 가끔 생활에 변화를 주는 일이다. 예컨대, 일상성으로부터 벗어나 부부가  함
께 여행을 한다면, 일반적인 건강증진과 함께 성생활에도 활력소가 된다. 즐겁고 만족스러운 
성생활은 기발한 데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건강한 성생활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늘  같은 
것 같으면서도 늘 새로운 성생활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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