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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상식

성능력도 노력한 만큼 개발된다

by FraisGout 2020. 5. 5.

성능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
  성능력이란 흔히 상대를 성적으로 만족시키는 능력으로  통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스스
로 성적 만족을 얻는 능력, 다시 말하면 성생활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상대방을 충
분히 만족시킬 때 자기도 최대의 만족을 얻게 되는 것이 부부의 성생활이므로 동전의 안팎
과 같은 개념이지만 주안점이 다르다.
  성적 만족의 정도는 매스터즈와 존슨이 말한 성반응의 4단계를 얼마나 흡족하게 거쳤는가
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능력은 성반응의 4단계를 제대로 거칠 줄 아는 능력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자신은 상대가 반응하도록 자극하고, 자신  역시 상대의 자극에 반
응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이 성적으로 불만스럽다면 그건 상대의 무능력에 원인이 있
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 맞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틀린 생각이다. 기껏해야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판단이다. 자신의 불만은 자신의  무지와 무능에 기인하기 십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가루지기타령의 주인공 변강쇠는 정력이 절륜한 남자의 대명사이다. 그의 짝은  옹녀이다. 
옹녀는 음심이 강한 여자의 대명사이다. 사람들은 은근히 이들을 부러워한다. 성기가 특별히 
크거나, 색정이 특히 강한 인물들은 사마천의 『사기』에도 여럿 등장한다. 그러므로 이처럼 
특별한 경우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매우 특별한 사례라는 
점이다. 특별한 것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병일 수 있다.
  그처럼 특별한 신체 조건 때문에 배우자가 견디지 못하고 일찍 죽거나 도망가서 불행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흥미 반 동정 반으로 전해오는 마을도 있다. 병이든 아니든 이들은 특별함 
때문에 대개가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맞는 짝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성기의 구조나 생리적 반응은 사람마다 드르지만, 병적으로 예외적인 경우가 아
니고는 차이가 크지 않다. 그리고 잠재력은 모든 사람이 거의 같다고 한다. 성의 신체생리는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선천적인 것은 유전적인 소인에 의해 결정
되는 것으로, 성기관의 크기나 모양, 생리적인 성에 대한 민감도 등이 사람마다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작다. 사람마다 눈. 코. 입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지만 그 기능은 별 차이가 없는 것과 같다.
  성기관의 크기를 따져본다면 보통  남성의 음경 길이는 평균11㎝  정도지만, 여성의 질은 
깊이가 평균 9㎝정도로 짧으므로, 음경과 질의 길이에 다소 증감이 있더라도 성관계에는 문
제가 없다. 평상시 작은 남성의 성기는 발기시에 몇 배로  커지지만 평상시에 큰 성기는 발
기시에는 별로 커지지 않으므로 발기 되면 모두 크기가 비슷해진다.
  이런 점을 보면 조물주는 사람을 매우 공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성에 
대한 해부구조나 생리 기능은 선천적으로 비슷하게 태어나며, 성기관의 모양이나 크기에 따
라 성기능의 차이는 없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적다.
  매스터즈와 존슨의 연구 결과는 남성 크기나 여성 성기의 모양에 따라 남성의 성적 능력
이나 여성의 성적 반응에 아무런 차이를 일으키지 않음을  실증해주었다. 다시 말하면 성적 
극치감은 성기관의 구조나 모양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부부가 오랫동안 성생활을  통하여 
서로를 알고 이해하면서 서로가 만족할 수 있도록 연구.  개발한 노력에 비례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인간의 성과 관련되는 선천적 기능과는 달리 후천적인 생리기능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크
다. 성반응 주기를 온전히 겪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성반응 주기를 똑같이 겪더라도 만족도
는 다르기 마련이다. 이런차이가 생기는 주된 원인은 후천적이다. 성적 반응을 위해  부부가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따라 성적 만족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만족스런 성생활이 부부의 삶을 활력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부가 
정상적인 '성반응 주기'를 맞이하면서 성적 만족도를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함은 당연하다. 각
자의 신체구조와 기능을 성감이 민감하도록 개발하면  성생활의 만족도를 크게 높일 수  있
다. 특히 여자의 경우는 성기의 구조가 남자보다 복잡할 뿐만 아니라 후천적인 성감 개발에 
따라서 성반응의 차이가 남자보다 크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성반응 주기가 훨씬 길다. 반응속도가 느린 것이다. 남녀 모두가 자신
의 성감을 개발하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명심해야 하는 부분이  이 점이다. 많은 
남성들이 스스로, 혹은 부인의 권고에 따라 이른바 정력에 좋다는 약이나 음식을  해먹는다. 
성생활의 만족도를 높이고자 널리 행해지는 일이다. 성기의 생김새나 성감과는 다른 차원의 
정력이라는 성능력을 기르려는 것이다.
  정력이란 사실은 전반적인 건강의 종합적 징표이다.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성생활에서
도 매우 중요하다. 건강이 좋지않으면  만족스런 성생활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럴때에는 그 
수준에 맞도록 절제된 성생활을 통하여 만족을 얻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 회
복에 힘써야 한다.
  정력제 가운데에는 고단백 식품이 많으므로 건강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
나 건강이 아니고 성능력만을  지칭하는 정력을 보강하는 약이나  식품이라면, 이는 건강을 
망치기 쉽다. 적당한 성생활은 삶의 활력소이며, 건강증진의 촉매제이지만 과도한  성생활은 
건강을 해친다.
  과도한가 적당한가는 일반적 건강수준과 관련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허약한 사람이 성
욕만을 강하게 자극해서 이를 분출시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로 인한 복상사가 우려 된
다는 어떤 한의사의 경고를 어느 신문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한의사의 경고는 너무나 당
연하다고 하겠다.
  일시적으로 성능력을 과시하고 싶어서이건, 남편에게 흡족한  서비스를 받아보고 싶은 욕
심에서건, 이러한 행위는 무지의 극치이다.  금병매의 주인공 서문경의 말로는 이러한  약물 
사용의 해독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행복의 틀을 암시해 
준다. 무절제와 불균형이 일시의 향락일수는 있어도 일상의 행복일 수는 없는 것이다.
  성능력 개발에는 왕도가 없다. 왕도가 아니라고 해서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것은 아니
다. 인간의 순리를 따르면 된다. 그길밖에 없다. 첫째, 일반적인 건강증진에 힘써야 한다. 둘
째, 절도 있는 가운데 최대의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성에 민감하게 자신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 배우자의 성적 특성을 올바로 이해하여 자신을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
을 바탕으로 건강에 알맞게 절도  있는 성생활을 한다면, 성생활은 늘  즐겁고 또한 건강을 
증진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건강한 부부관계는 여기에서 완결되는 셈이다.
  성능력을 개발하자면 부부가 각자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고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
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염두에 두되 자기의 성감은 각자가 책임진다는 데에 중점을 두어
야 한다. 상대가 자신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해야한  한다. 
그렇게 되도록 자기를 개발해야 하며,  배우자의 그러한 노력을 도와주어야 한다.  성생활에 
있어서도 인간의 불완성은 어김없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최대의 만족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자신을 아무
리 사랑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능동적으로 성을 향유하고
자 할 때 상대의 노력이 자신에게 최대의 만족을 주는 것이다.
  부부 쌍방이 각각 자기를 성적으로 개발하고 상대를 배려할줄  안다면 이는 최선이다. 최
선이 못 되는 경우에는 자기만이라도 성적으로 개발하여 즐거움을 갖도록 노력하면서  상대
를 유도해야 한다. 이것이 차선이다. 그런데 스스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성적 불만
족을 상대의 탓으로 돌린다면 이는 최악이다. 만일 쌍방이 모두 그렇게 고집을 부린다면 가
히 구제불능이라고 하겠다.
  굳이 성병이 아니라도 성적인 문제로 정신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내과 등의 치료를 받아
야 할 경우가 드물지 않다. 가장 흔히 얘기되는 남성의  조루증과 여성의 불감증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는 부부의 성생활에 큰 장애이므로 치료해서 고쳐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이 의사를 찾지는 않으면서 자신이 조루증이나 불감증이 아닌지 은근히 불안해하거나  배우
자가 그렇다며 불만스러워 한다. 이들은  대부분이 조루증이나 불감증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남성과 여성의 성반응 주기가 각각 평균 3분 및 13분이어서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데에 그 비밀이 있다. 남성이 극치감에 도달했을 때에 여성은 겨우 흥분기에 있다가 성교가 
끝나기 십상이다. 이를 두고 여성의 불감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불감증이 아니다. 굳이 말을 만들자면 불감증이 아니라 미감현상이라고 하겠
다. 실제로 불감증은 아니지만 불만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성의를 다했는데도 부인이 
아무 반응이 없다보면 남편은 거꾸로 자신의 조루증을 의심할 수도 있다.
  부부간에 성반응 시간을 염두에 두고 보조를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성능력의 개발도 
구체적으로는 여기에 초점이 모아져야 함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성능력의 개발이란 상대가 
있는 성생활을 통해서 최대의 만족을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적 만족을 위한 성능력의 초점을  남자의 정력에 두었다면, 미국에서는 
성반응 주기상의 남녀간 시간차에 주목하여 성교에 앞선 전희에 초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
다. 전희로 여성을 최대한 흥분시켜  절정기 직전에 성교에 들어감으로써  남성이 절정기에 
도달하는 짧은 시간에 여성도 극치감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다가 여성 자신이 성에 민감해지도록 개발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해결
방법으로 등장하였다. 이른바 감각적 여성이다.  흔히 남성들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여성을 관능적이라고 말하는데, 감각적이란  남성을 유혹하는 힘이 아니고  스스로 즐길 줄 
아는 능력이다.
  이러한 전희나 성감개발은 본래 여성의 성적 만족을 위하여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
나 부부의 성생활에서는 부인의 만족 없이 남편의 만족이 온전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전
희는 남성도 더 오랜 시간 성행위를 즐길 수 있도록 성교 시간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으므
로, 남녀 모두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 
  전희는 성에 대한 감정이 고조되도록  작용하는 일체의 언행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포옹, 
입맞춤 등이 있다. 그러나 사람마다, 그리고 전희 방법에 따라 반응이 다르므로 부부만이 즐
기는 전희 방법을 개발하여 서로의 감정이 고조되도록 도와주는게 좋다.
  요컨대 성적 만족을 극대화하려면 각자가 전희나 성교에 대하여 민감하게 되고 부부 상호
간에 반응주기를 맞추는 데에 그요체가 있다. 그런데 성적으로 민감하게 자신을 개발할수록 
상대방에게 자신을 맞추는 능력, 다시 말하면 성반응 주기의 조화를 이루는 능력도  커진다. 
그러므로 성능력의 개발이란 구체적으로는 성교를 통하여 흥분기. 상승기. 절정기. 융해기를 
느낄 줄 알뿐 아니라, 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성욕의 분출을 널리 성적 만족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성교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
다. 자위행위도 대개의 경우 자연스럽고 훌륭한 해법이다. 그러나 이성간의 육체적 접촉, 즉 
성교를 통해서 느끼는 만족감과 같을 수는 없다.
  성행위는 기본적으로 이성간의 육체적 접촉이다. 극단의 예로는 여자가 강간을 당할 때도 
극치감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극단적이고 특수한 경우지만, 성의 즐거움에는 신체-생리적
인 요소가 중요하며,성적 극치감을 위해서는 신체적이고  생리적인 자극이 기본적으로 제공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남자들은 신체-생리적 요소만으로 극치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술버릇. 돈벌이. 학식. 
외모 등등의 이유로 외견상 형편없어 보이는 남자가 잠자리에서의 서비스로 부인의 온갖 불
만을 잠재운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걸 보면 여성에게도  이 요소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
다. 결국 성생활에 작용하는 정신적. 사회적 요소는 신체적.  생리적 요소에 통합될 때에 그 
빛을 내는 촉매이지 독자적인 요소는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체적. 생리적 요소만은  독자
적으로 성적 극치감을 만들 수도 있고, 이를 바탕으로 이른바  부부의 금실을 좋게 하여 웬
만한 부부간의 갈등은 녹여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일시적으로만 가능하며, 항상성을  가지려면 반드시 서로간에 좋아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 사람이다. 생리적 충동만으로  하는 성교와 사랑하는 마음이 
같이하는 성교는 만족감이 다르다. 그 욕구의 크기부터가 다르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만족
감은 성행위에 대한 자신감이 있을 때 더욱 깊어지고, 도덕적으로 떳떳할 때에 더더욱 깊어
진다. 그 기초에 신체적. 생리적 만족이 깔려 있을 경우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형태의  성행위라면 일시적으로는 만족을 얻을지  몰라도 
일상적으로 성적 만족을 향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충동적 성행위는  부부가 아닌 
경우에는 물론이고, 부부간일지라도 대개가 일방적이고 폭압적이어서 인간적이지 못하다.
  인간의 성행위는 동물적 자연이 아니라 복잡한 인간적 자연이다.  성적 만족을 제대로 얻
으려면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만족스러워야 하며, 오로지  부부에게만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부부는 마땅히 이를 향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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