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에 사로잡힌 환자를 흔히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
'그만한 일이 무슨 잘못이나 된다고......', '그게 뭐 그리 나쁜일인가......'
라고 너무 간단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또 이런
환자들에게는 무턱대고 위로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그런 후에 하는 말이라야 환자가 믿을 수 있고, 또 효과가 있다.
그런데도 계속 죄책감으로 고민하면, 그에게는 무언가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더 많은 대화를 가져야 한다. 환자가 계속해서
죄책감으로 고민하는데도 위로만 해 주는 것은 환자의 무의식적인 정신
생활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셈이다. 따라서 환자의 그런 감정은
존중해 주어야만 한다. 그것은 가책을 느낄 만한 일이 못 되며, 오히려
환자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을 해줌으로써 죄책감을 더 깊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의사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지만, 환자가 사실을 바로볼 수도
있다. 의사는 겉으로 나타난 환자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됨을 평가하기
마련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환자가 겉으로 표현하는 행동은 그야말로 모범적이고,
의사는 아무 의심없이 그를 모범적인 환자로 규정한다. 반면, 환자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바가 그다지 선량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환자가 죄책감에 괴로워할 때는 인내심을 가지고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이 보다 과학적이고 효과적이다.
위로를 해도 적당한 선에서 해야지 너무 지나치면, 환자는 믿지를
못하고 의사의 능력마저 의심하게 된다. 그는 마음속으로 '당신은 내가
얼마나 나쁜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군요, 나를 좀더 안다면, 그렇게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 텐데....... 나의 어두운 면을 보지 못하다니,
당신은 바보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한 환자가 처음 진찰실에 들어서면서, 자기가 차를
몰아도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그는 가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쉽게
피곤해진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는 가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쉽게
피곤해진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럴 만한 신체적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운전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후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다른 의사에게 다니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중대한 결정을
함부로 내렸다' 며 나를 욕했다고 한다.
그의 말이 백 번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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