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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성인 환자를 위하여

14. 알코올 중독, 끝없는 인내만이 해결책

by Healing New 2020. 6. 2.

대부분의 의사들은 알코올 중독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한다. 알코올이 잘못 사용될 때 한 개인을 몰락시키고 가족을 파괴할 
뿐 아니라 사회를 위협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의사 자신도 알코올 중독에 대해 뚜렷한 해결방법을 지세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 누구도 확실히는 모른다. 의학적으로도 이를 성공적으로 
치유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과음으로 인한 부작용은 치료할 수 있어도 
알코올 중독 자체는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다면 알코올 중독 환자와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는 결론인데, 이 또한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많은 의사들은 몇 번 속고 나면 다시는 알코올 중독자와는 
이야기도 하고 싶어하지 않게 된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줄기차게 알코올 중독자와의 대화를 
계속하는 의사들은 각기 다른 각도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가장 흔한 견해는 알코올 중독을 단지 성격상 결함이나 약점, 또는 그저 
나쁜 버릇으로 보는 것이다. 이 견해대로라면 알코올 중독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다시 말해서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것은 그가 술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나쁜 
친구를 사귀기 때문이기도 하고, 혹은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낙천적인 견해를 가진 의사들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 단도 집입적으로 환자에게 술이란 무엇이고, 왜 그가 술을 
마시게 되었으며, 또 앞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어떤 친절한 의사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목욕도 하고, 면도도 좀 하고, 
옷도 좀 갈아 입으라고 몇 마디 덧붙이기도 한다. 술친구들을 피하고 일찍 
귀가하여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근무 태도를 바꾸고, 교회도 
나가고, 취미생활도 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그 효과가 길지 않다는 
점이다. 한동안 잘 한다 싶지만 얼마 후면 다시 녹초가 되어 응급실로 
실려 온다.
  사실 술을 끊게 하는 그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백 번도 더 술을 끊어 본 적이 있는 알코올 중독자도 있다.. 
어쩌다, 쉽사리 술을 끊지 못했던 알코올 환자를 금주하게 했다고 해서 
이제는 성공이라고 의기양양해 하면 곤란하다. 그들이 금주를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마침 그 이유가 의사의 경고와 일치하면 그는 
즉시 술을 끊을 수도 있고, 그 기간이 상당히 오래 갈 수도 있다. 때로 술 
마시는 이유가 지나친 죄책감 때문이라면, 의사의 꾸중이 그것을 씻어주는 
결과가 되므로 더 이상 술을 마실 이유가 없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알코올 중독자에게 엄격하게 도덕적으로 접근해 보는 것도 헛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느냐 하는 것이다. 
의사가 술을 끊으라고 야단치고 권유하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보다 광범위하게 알코올 중독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독의 원인까지 알아내려고 한다. 신체적인 원인을 찾아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그 중 하나이다. 유전이나 체질, 대사 과정의 이상 등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혹은 약물 중독으로 보거나, 또는 신체적인 이상이나 병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치료방법도 각각의 견해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의 성공률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알코올 중독의 
화학적 요법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에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즉, 의사가 정말 진지한 자세로 여느 
환자를 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성의껏 치료에 임한다면, 약과 주사를 
적절히 활용한 이 방법은 기적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알코올 
중독자는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느냐보다 인간의 진실에 
감동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대단한 것은 못 
된다.
  또다른 견해는 그 원인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찾고 있다. 신체적이고 
화학적인 원인보다는 어려운 세상을 살자니 괴로워서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즉 고통스럽고 참을 수 없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하여 술을 마신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이런 견해를 가진 의사들은 
환자와의 대화에서 그들이 무엇으로부터 도망가려 하고 있는가를 찾는 데 
중점을 둔다. 
  이런 관점에서 알코올 중독 환자와 대화를 하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이런 환자들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고, 괴롭기는 했어도 지루하지는 않게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온갖 사연이 얽혀 있어 이 정도면 술을 마시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소설책이나 나올 듯한 사연을 겪어 온 경우도 많다. 결손 가정, 
평온하지 못했던 어린시절, 사고 투성이의 청소년 시절, 어려웠던 결혼 
생활, 실직, 때로는 형무소 생활, 성적인 문제 등 그들의 어려웠던 
인생살이를 거침없이 들려준다.
  그러나 이야기의 내용이야 어떻든, 듣는 의사의 마음에 따라 반응은 
아주 달라진다. 어떤 의사는 이런 이야기에 너무 놀라고 거부감을 느낀 
나머지, 아예 대화를 포기하고 알코올 중독 환자의 치료를 맡지 않으려고 
한다. 또 어떤 의사들은 지나치게 감상에 젖어 환자의 문제를 순수 
해결하려고 나서는 경우도 있다.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옷을 사주기도 
하고, 살 곳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감옥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이 없게 
도와주고, 아내를 설득하여 재결합할 수 있게 해 주며, 해고당한 일자리를 
되찾게 해 준다. 또한 그의 주위 사람들에게 그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설득하다.
  이러한 친절은 당장에는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건 잠시뿐이다. 
왜냐하면 환자의 근본 문제는 건드리지도 않고 표면상의 원인만 제거한 
것일 뿐이어서 환자 스스로를 짓누르게 하는 스트레스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 환자에게는 마음속 깊숙이 숨겨진 스트레스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걸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재발은 괜찮은 편이다. 이런 식의 친절은 때로는 환자를 더 
나쁘게 할 수도 있다. 환자의 내면에 숨겨진 갈등이나 스트레스를 
이해하지 않고 친절만 베푼다면, 죄책감과 두려움을 더욱 자극하게 되어 
술을 더 마시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전정으로 알코올 환자를 돕고 싶다면, 그의 내면 생활을, 특히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심한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 또는 자기 자신을 철저히 증오한 나머지 이런 자포자기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사는 알코올 중독자가 섹스에 대해 가지는 내면의 감정과 두려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알코올 중독 환자들은 성생활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술을 
마셔야 하고, 술을 마실수록 성기능은 더욱 약화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동성애나 자위행위 등의 문제로 고민하는 것 또한 드문 일이 아니다. 
  환자의 이런 내면 세계에 접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알코올 
중독자의 분노나 은밀한 성적 감정은 일단 밖으로 드러나면 다루기 
곤란하고, 환자는 심하게 반발하거나 또는 밖으로 드러난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어 아주 폭발해 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의사들까지도 되도록 이런 화제는 피하려고 
한다. 이와 같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태도가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심한 
경우 다시 술을 마실 수밖에 없게 되므로, 일단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는 것도 나쁜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말만큼 쉬운 것은 아니다. 알코올 중독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내면 생각을 알고 싶어한다고 느끼면, 마치 공격이나 당한 것같이 
행동하기 십상이다. 의사가 하려고 하는 일에 조심스러워 그러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친절 일변도로 치료에 임한다면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즉, 
의사가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는 피하고 표면상의 문제만 다루는 데 
만족해서 친절하고 동정적이기만 하면 환자는 의사의 이런 태도를 
경멸하며,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 파괴적이 되어 다시 술을 마시게 
된다. 어느 쪽이든 언제나 그는 술이야말로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자기 패배의 길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모순된 상황은 의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알코올 중독환자의 이런 
모순성 때문에 많은 의사들은 아예 치료를 포기해 버리고 만다. 어떤 
방법을 쓰든 결과는 언제나 실패작으로 끝난다. 딱 한 잔의 술로써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의사는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니, 기분이 상하고 
화도 난다. 환자가 미워져서 다시 보기도 싫어진다. 구제불능의 환자로 
간주하거나, 혹은 의사인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기도 한다. 환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치료자가 이런 비관론에 부딪치게 되면, 그때부터는 
알코올 환자라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이런 결론이나 의사의 심경은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이런 
반응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화가 날 만도 하지만, 이런 기분이 드는 
이면에는 의사인 자신이 환자에게 속은 것 같고, 바보 취급이라도 당한 것 
같은 당혹스러움이 있다. 환자가 의사를 화나게 하는 일치고 이처럼 참기 
어렵고 용서가 안 되는 것도 없다. 이같이 환자가 의사의 자부심, 나아가 
자만심에 손상을 입히게 되면, 의사의 마음속에는 자기도 모르게 환자에 
대한 복수심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알코올 중독 환자를 거절하는 
의사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비밀스러운 복수심이 도사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이런 반응도 이해할 만하다. 사실 누가 알코올 중독 환자에게 상처 
받고 싶고, 또 놀림 받고 싶겠는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좀더 다른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볼 수 
있다면 알코올 중독 환자에게도 희망은 있다. 감정상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도 않을 것이고,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하면서 환자의 치료를 계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하자면, 의사는 자만심과 
잘못된 자존심을 줄여야 한다. 보통 환자들은 치료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의사의 자만심 같은 것은 느끼지도 못하고, 이에 반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자기 파괴적인 경향을 가진 환자에게는 이러한 의사의 지나친 
자신감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줄이자면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한다. 
  첫째, 의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치료에 성공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줄여야 한다. 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했다는 느낌을 실제적인 치료행위 
이외에서는 찾을 수가 없는가? 예를 들어 어떤 환자를 치료하더라도 
의사들은 환자 위에 군림하는 우월감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 환자가 
보내는 감사의 마음으로부터, 또는 환자에게 자기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생각하면서, 이도 아니면 정말 난 훌륭한 의사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추켜세우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의학 치료에 대해서 성공 
이상의 만족을 얻는다면, 이건 자부심이 아니라 자만심이다. 의학적 치료의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도 또한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런 만족감은 
불가피한 것이다. 의사들 모두가 이러한 만족감을 느껴왔고, 또 의사라면 
이런 만족감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를 전적으로 부인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버리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게 너무 지나치면 치료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 환자나 이와 유사한 환자들의 치료를 담당할 때, 
의사는 자신의 자만심을 인식하고 주의하며 치료에 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알코올 중독 환자처럼 자기 파괴성이 있는 환자의 치료에는 의사의 
치료적 자만심은 금물이다. 이걸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때 환자가 다시 
술잔을 드는 경우에도 크게 상심하지 않고 그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알코올 중독 환자는 의사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허영과 
자만심까지도 자극하여 의사를 우쭐하게 만들었다가, 얼마 후에는 크게 
실망시켜 버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의사가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면 알코올 중독 환자의 
치료도 새롭게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알코올 중독 환자를 
치료할 때에는, 치료가 일시적으로 성공함에 따라 자부심과 자만심도 함께 
커가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환자가 의사를 크게 
실망시키리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으면 의사들의 반응도 달라질 
것이다. 즉 화도 덜날 뿐더러 비밀스러운 복수심도 생기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속은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알코올 중독 환자의 행동 자체가 의사의 
도움을 결사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며, 자기 파괴성의 표현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게 된다. 알코올 중독 
환자가 치료를 거부함으로써 의사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환자가 자기 자신에게 심각한 공격을 가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이유는 의사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자기 파괴성이다. 특히 
환자와 함께 술 마시는 이유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면, 더욱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환자로 하여금 자기 파괴를 목적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게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모든 
도움을 거절했듯이 자기 이해의 기회도 거부하려 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자기 파괴성을 지적하는 것은 환자의 치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술 마시는 일이 얼마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인가에 대해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고 하여, 술을 끊지 않으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라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환자 자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환자 자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의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마저도 파괴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모르고 있는 것은 그런 짓을 무의식 상태에서 일부러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자기 파괴와 연관하여 자신을 돕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실패로 끝나도록 해야 직성이 풀리는 점도 지적해 주어야 
한다. 최근의 몇 가지 일을 예로 들면서 차분히 지적한 후,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해 두는 것도 좋다. 이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앞으로의 치료 과정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또 언젠가는 이런 강박적인 자기 파괴성이 지금껏 받아왔던 일체의 치료를 
수포로 만들 수도 있음을 지적해 두는 것도 좋다.
  그리고 현명한 의사라면 환자가 언제 폭발할 것인가도 예측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시기는 환자 생각에 이젠 의사가 자기를 믿어 준다고 
안심하는 순간이다. 혹은 의사가 아무도 하지 못했던 치료를 해냈다고 
만족하는 순간이다.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징조를 보이는 시기에 
마치 무슨 마력에나 끌린 듯이 환자는 폭발해 버린다. 환자는 의사의 
때이른 만족감을 깨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고, 이때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물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일이다.
  알코올 중독환자와의 대화가 효과가 있으려면 의사는 환자에게 올바른 
방법으로 같은 이야기라도 여러 차례 들려 주어야 한다. 환자가 
즉각적으로 반응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이야기해서는 치료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면 십중 팔구 환자는 술을 계속 마셔대면서 도움을 
주려는 의사에게 전혀 협조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환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막연히 알고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환자가 품고 
있던 생각을 일단 말로 표현한다, 일종의 구속력이 생겨 명료하지 못했던 
생각이 분명해질 수 있다. 알코올 중독 환자에게 현재의 행동과 앞으로의 
행동을 이야기해 주는 것은 미리 구체적인 참조점을 제시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환자가 예측되었던 감정과 행동을 보이면, 의사는 당황하지 
않고 지금껏 자신이 환자에게 했던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환자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의사의 치료 프로그램을 
와해시키려할 때, 의사는 이러한 결과를 예측했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또 이러한 것들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있으면, 
의사는 자신이 자만하기 시작하는지 돌아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알코올 중독 환자들도 자신들의 행동을 미리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를 놀라게 하고 기분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가벼울 것이다. 
스스로를 책망해야 할 필요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이 정도의 결과나마 가져올 수 있다면 이야기한 보람이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거부하는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의사가 환자를 도우려고 애쓰는 그 사실만으로 환자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의사를 좌절시키려고 한다. 환자의 이처럼 끝없는 고집은 
의사를 낙담하게 만든다. 하지만 구제할 길 없어 보이는 이 고집을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치료에 고무적일 수 있다. 이와 같이 치료의 상황을 
낙관적인 면에서 바라보기 위해 서는 알코올 중독 환자를 술을 마시는 
자체보다 그의 고집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아야 한다. 흔히 의사는 환자가 
술 마시는 것만 보고, 그것을 알코올 중독 환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많은 약점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만 생각한다. 이런 약점들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리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환자의 강점을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해동이 치명적인 죽음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하겠다는 그 알 수 없는 
고집을 고려하지 않고 대화를 하는 경우가 문제다.
  그런데 의사가 환자의 고집을 잘 이용하면 환자가 다시 손을 대는 일이 
없게 할 수도 있다. 환자의 고집은 술을 끊는 데 중요한, 아니 유일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일 의사의 도움으로, 그러한 집념이 술을 
마시는 자기 파괴가 아닌 술을 끊을 수 있는 자기 건설적인 방향으로 
돌려진다면 치료는 성공할 수 있다. 환자의 의지가 약해서 술을 
마신다고는 하지만, 위에서 말한 고집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의지는 약한 
것이 아니라 아주 강한 인상마저 준다. 따라서 환자의 의지가 약하다고 
하기보다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일 옳을 것이다. 정도가 심한 알코올 중독 
환자가 친구들에게 버림받고 손가락질 당하며 온갖 싫은 소리를 다 
감수하면서도 계속 술을 마시는 것을 보면, 그들의 의지력은 정말 
대단하다. 
  의지가 강하고 약하다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이다. 알코올 
중독 환자를 평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사들은 흔히 이런 환자들이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치료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지가 약해 
보이는 알코올 중독 환자의 이면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즉, 의사의 치료에 대해 능동적이고 단호하게 저항하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 환자와 대화를 하는 중에 의사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환자의 약점 때문이 아니다. 사실 의사들은 환자의 약점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고 술을 마시고자 하는 그들의 알 수 없는 고집 때문에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환자의 이해하기 어려운 고집에 직면하고, 이 때문에 환자의 치료를 
여러 차례 실패해 본 경험이 있는 의사들은 점차로 알코올 중독 환자의 
치료 자체를 외면하려 한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의사의 권리이고, 
사실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차라리 잘 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라면 자신이 돌봐줄 수 없는 환자들이 다른 곳에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어야 한다. 지역에 따라 알코올 중독 환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다양하다. 
  정신과 의사들은 보통 알코올 중독 환자를 치료할 때 심리요법을 
택한다. 정신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는 일단 환자는 입원시킨 후 금주하고, 
수 주간 적응 훈련을 시킨다. 그 외에도 알코올 센터가 있다.
  의사가 환자를 다른 곳으로 소개해 주려고 할 때, 환자에게 다른 곳에서 
지속적인 도움을 받으라는 말만 하지 말고, 의사가 주선해 주는 곳에 대해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나 환자의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를 해 
준다면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환자는 새로 치료 받게 될 곳과 접촉을 함으로써 그곳에 대해 좀더 
잘 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때 특별한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환자에게 적합한 정신과의사나 병원, 알코올 
센터를 지적해 주기만 하고, 나머지는 환자가 알아서 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 나라에도 알코올 중독 환자를 전문으로 치료하는<Alcohlics 
Anonymous>가 있다. 일반인에게는 AA통하는 이곳에서는 알코올 중독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고 환자를 치료해 왔고, 이곳을 통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환자들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AA에서 환자를 위해 
실시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친 알코올 중독환자는 AA회원들에게 
술을 마시기 시작하기 전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왔던 바를 
토로한다.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어요. 나는 하룻동안에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술을 마신답니다. 그 때문에 교도소에 갔다온 적도 있고, 
실직하기도 하고, 아내마저 내 곁을 떠나 버렸어요.", "나는 정말 구제 
불능이라니까요. 내 자신이나 가족까지 모두 망가뜨리고 있어요. 난 
뼈속까지 악마의 물이 들었어요. 그런데 누가 날 도와줄 수 있겠어요?" 
라는 식이다. AA회원들은 이런 말에 대해서, "그건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운이 나빴을 뿐이예요". "우리는 당신을 새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어요" 따위에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AA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다른 회원들의 치명적인 과거사를 
들려준다. 이렇게 되면 그 환자는 어느 정도 현실감을 되찾을 수 있다. 
물론 스스로가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기만큼 
파괴적인 다른 사람들도 문제를 극복했다는 것을 알고 편안함을 얻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AA회원들은 이런 환자들에게 자기들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견해로는 프로그램이 
성공적이려면 환자 자신이 스스로 도움을 청하러 와야 하고 또 이런 
환자들이 나름대로 최악의 상태를 경험해 보아야만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알코올 중독자들이 
실직의 쓰라림을 맛보거나, 음주운전 사고를 내거나, 교도소에 가거나, 큰 
병을 앓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결혼 생활의 파경이라도 겪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진짜 문제는 내면에 
있는데, 지금껏 술에만 의존해 왔으며, 혼자 힘으로는 극복이 안 되니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AA회원들이 환자에게 어느 시점이 최악이었나를 이야기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환자가 형편없이 혼란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지적해 줄 
뿐이다. 그리고 AA회원들은 환자의 증세가 아무리 심각하고, 처해있는 
상황이 아무리 혼란스럽다 하더라도 환자를 지지하고 도움을 주겠다는 
것을 환자에게 약속한다.
  AA 프로그램이 치료에 성공한 또 다른 비결은 새 회원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스스로의 단점도 다른 회원들 앞에서 들추어 넷 구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일부 의사들의 견해처럼 이것은 자기 
과시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이 기회를 잘 이용하여, 죄책감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혐오하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수 년 동안 
마음속에만 품어 왔던 일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렇게 
내면의 이야기를 말로 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끼겠지만,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탓하지 않고 아무도 우월한 척 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듣고도 여전히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이 어떤 친절하고 따스한 
말보다도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준다.
  AA 치료의 정신적 측면은 더욱 깊이가 있다. 알코올 중독 환자는 
아무리 자유롭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내면에 너무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스스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기 파괴성을 
두려워한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이 위험은 인간의 힘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불안을 극복하려면 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AA에서 새롭게 맺는 인간관계도 알코올 중독 환자를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AA는 친구도 멀리하고 취미활동도 없는 환자에게 
친구를 사귀게 하고, 환자에게 적절한 취미활동을 권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도 준다.
  AA 회원이 알코올 중독 환자와 계속 유대 관계를 갖는 것은 회원 
각자의 회복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쉽게 설명되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주된 이유는 AA 회원들은 자신과 새 회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동일시하고, 새로운 인물의 문제를 마치 자기 자신의 
문제인 양 취급하는 데 있는 듯하다. 사실상 자기를 새 회원과 동일시하여 
주면, 결국은 스스로를 돕는 셈이 된다. 알코올 중독 환자가 된 사람들은 
거에 예외없이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자기 파괴성에 
반응하고, 이러한 위험을 피하고자 택한 유일한 방법이 술을 마시는 
것이므로 다른 환자와 일체감을 느끼기가 쉽다. 따라서 한 환자는 다른 
환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공포, 
생각, 반응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서도 나타나는 동일한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난 후에라야 
깨달을 수 있으므로, AA 회원들은 도움을 주고 있는 다른 환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보고서야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환자들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AA 회원들은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게 된다. 더욱이 새 회원들의 불안을 해결해 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무의식중에 자신의 내부에 형성된 위험하고 불안한 감정들을 
해소시킬 수 있다. 또한 새 회원이 현시를 직시할 수 있도록 되풀이해서 
도와주다 보면, 스스로도 현실감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AA 회원이 다른 환자들과 친분 관계를 맺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 회원들이 다른 회원들을 도우려고 
애쓸수록 자신의 회복에 성공하는 확률도 높아진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AA가 알코올 중독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지만. 모두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AA에 대한 반응은 아주 긍정적인 것에서부터 아주 
부정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반응만 다른 것이 아니고 AA 단체 자체도 
다양하다. 도시마다, 그리고 각 도시 안에서도 이러한 단체들의 성격, 운영, 
회원에 이르기까지 차이점이 많다. 따라서 환자를 AA에 의뢰하는 
것만으로는 성공적인 치료를 보장받을 수 없다. 환자에게 진정 도움이 
되려면 추천하는 AA 모임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그 종류가 여럿일 
때는 환자 개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곳을 추천해 주어야 할 것이다. 
AA에서는 환자들 사이에서 아주 친밀한 개인관계를 유도하므로, 처음부터 
사회적, 지적, 그리고 성격적인 수준이 맞아야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환자들이 AA를  통해 회복되면 앞으로의 생활이나 
교우관계는 그 모임을 통해 만나는 사람이나 AA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하게 되면, 문자 그대로 AA에 가입하는 
셈인데 그 모임에 친구가 될 만한 사람들이 있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다.
  AA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관심을 끌 만한 것이 
많으며, AA 회원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은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애쓰는 의사들에게 훌륭한 교육 기회가 될 것이다. 회원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가지고 몇 번쯤 그들의 모임에 참석해 보면, AA 뿐만 
아니라 알코올 중독 환자들의 사고에 대해 보다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일부 의사들은 AA 회원들이 의사들은 알코올 중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데에 반감을 느낀다. AA를 방문하는 
의사라면 이런 이야기를 수없이 들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회원들은 알코올 중독 환자에 대한 의사들의 치료 방법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어떤 의사들은 AA 모임이나 활동들이 마치 종교적 부흥회 같은 
분위기에서 이로어지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는 죄인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또한 다시 술 마시지 않고 절제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신에게서 온다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임에서는 죄를 고백하고 사함을 
받는 것과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므로 외부인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있다. 또한 의사들은 회원들이 AA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일부 의사들이 AA에 대해 
부정적이 견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AA가 알코올 중독 환자에게 
확실한 도움을 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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