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를 잃은 지 얼마 안 된 환자와 대화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 이러한 환자들을 대할 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상실감의 고통을 겪도록 한동안 그냥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는
것은 당연하다. 배우자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의학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병이나 혹은 다른 이유로 잃었을
때는 애도 반응이 일정한 과정을 밟아 진행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우리
머릿속에서는 어떤 정신적 과정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들이
바람직하게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애도의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며, 밟아야 하는 과정들은 비록 괴로워도 모두 훌륭한 치료제인
것이다.
죽음이란 한 사람의 삶의 끝이다. 그러나 남아 있는 친척들이나
친구들에게 그는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고 아직 살아있다. 죽었다는 것을
정신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정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또 그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 누구나 처음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일단 죽음을 부정하려고만 한다. '그가 죽었을 리가 없어. 그가
죽다니, 난 믿을 수 없어' 등의 부정적 심리가 작용한다. 이미 죽은 사람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그 사람을 염두에
두고 세우기도 한다. 죽은 사람에게 매달리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현실을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되면, 그들은 다른 식으로 반응을
한다. 죽은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그와 같아지려고 하고, 그가 원하던
바를 대신 이루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죽은 사람과 함께 있으려고 몸부림친다. 고인에 대한 모든
기억은 아름답게 되새겨지고, 더욱 생생하게 기억된다. 이렇게 살아있는
기억들을 통해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고인에게 집착하려고 한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서 슬픔, 상실, 무력감 따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온통
죽은 사람을 포기할 수 있어야만 치유가 되고, 새로운 대상에 대해 새로운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정상적인 애도 반응이고, 앞으로의 정신건강에도 필요한
과정이므로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사실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주의해야 할 대상이다. 의사는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흔히 이런 환자를
위로하느라고 취미활동을 권하거나 다른 흥미있는 일거리를 권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그를 기쁘게 해 주려고 하지만 이야말로 금물이다. 대개의
경우 애도 반응은 별 도움없이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아 성공적으로
끝난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과정이 진행되지 않거나 또는 그 정도가
지나치거나 혹은 과정이 너무 지연되는 등, 병적인 애도 반응을 보일 때는
그들에게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때이다.
한 가지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을 슬픔이라고 하는 것도 눈물이나
다른 감정처럼, 느리긴 해도 자연스런 과정을 통해 서서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에 따라서는 이런 과정을 겪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몇 달이 지난 후에도 애도의
정도가 지나치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므로 의사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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