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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성인 환자를 위하여

17.우울증과 자살의 함수관계

by Healing New 2020. 6. 2.

'우울하다'는 말은 감정이나 기분 느낌을 의미한다. 우울증 환자는 그저 
우울하다. 그러나 이것을 우울이 아주 가벼운 정도인 경우에 한해서다. 
우울이 심해지면 정신 기능의 장애도 함께 나타난다.
  우울증은 그 나타나는 형태나 정도도 여러 가지고, 유발되는 원인도 
신경성, 반응성, 단순성, 급성, 조울성, 흥분성, 정신성, 우울성, 자살성, 
혼미성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문가로서 이 병명과 성질을 구분해 내는 
것은 치료상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선 편의상 우울증을 경증과 
중증 두 가지로 나눠서 이야기하기로 한다. 이것은 다만 일반 의사들이 
치료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정도만으로 편의상 구분한 것이다. 중증의 
우울증 환자는 정신과의사에게 맡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경증 환자들의 증세는 노이로제에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사는 현재 
치료하고 있는 정서적으로 불아한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히 말을 잘 하고 약간의 정신치료에도 좋은 
반응을 나타낸다. 경증의 환자들은 여느 불안한 환자처럼 쉽게 치료될 
수도 있고 또 적절한 정신 치료로 상당한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반면에, 중증인 경우에는 병적인 정신 장애를 동반하므로 환자는 보통 
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일은 전문적 지식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 장애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의사는, 정상인으로 보이는 심한 우울증 환자가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환자를 자살이라는 비극으로까지 
몰고갈 수도 있다. 중증 환자의 병적 사고는 정신과의사만이 이해하고 
해결 할 수 있으므로, 정신과의사가 이런 환자에 대한 치료를 책임져야 
한다.

    1.경도의 우울증 환자
  경도의 우울증은 감기보다도 더 흔한 것이며, 의사에게 애매한 증세나, 
불만, 혹은 진단하기 어려운 이상현상에 대해 상담하는 환자들 중에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우울은 대개 살아가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된 일이 
있을 때 반응성으로 생긴다. 가장 흔한 이유로는 신체적 질환에 대한 
마음의 반응을 들 수 있다. 폐렴, 감기, 간염, 소화성 궤양, 사고, 수술, 
분만, 등 환자를 우울하게 하는 거의 모든 질환들이 우울증 반응과 동시에 
나타나거나, 그 이전에 일어난다. 암, 중풍, 관상동맥질환과 같은 중병에 
걸렸을 때에는 누구나 우울에 빠진다.
  당뇨병이나 결핵, 매독과 같은 만성병을 앓는 환자에게도 경도 우울은 
항상 서려 있다. 만성적인 신체질환의 경우 환자가 만성병에 적응한 
후에나, 혹은 이 병으로 죽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없어지게 된다. 때로는 우울증이 만성병을 덮고 있어서, 자칫 그 병의 
일부로 간주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수도 있다.
  이런 만성적인 반응성 우울증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치료가 
필요없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우울증이 질병에 대한 보호기구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증의 경우에는 치료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과감한 방법은 쓰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주 가벼운 반응성 우울증이라 하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발견해서 치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의사는 어떤 
신체질환에도 우울증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그래서 특히 회복이 너무 늦거나, 경과가 이상하거나, 병에 너무 
지쳐 보이건, 증세가 너무 막연하거나, 또는 정상적인 감정이나 정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엔 일단 우울증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반응성 우울은 또한 환자 개인의 감정적 마찰, 스트레스, 가족의 죽음, 
사업의 실패, 정서적 갈등, 잦은 말다툼, 이혼 등 일상생활에서 오는 
어려움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반응성 우울 증세는 신체질환과 비슷해서 가끔 오진을 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들은 쉽게 피로를 느끼고,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불평한다. 또 
소화불량이나 불면증 등 뚜렷한 의학적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막연한 
증세들을 호소한다. 그들은 보통 일찍 잠자리에 들지만 늦게 일어나고 
낮에는 낮잠을 잔다. 또 자신의 직업과 다른 일상 활동에서 흥미를 잃기 
쉽다. 외부에 대한 관심도 없어지고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며 혼자 하루 
종일 방안에서만 지내기도 한다.
  그래서 의사들도 이들이 우울해 있다는 사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과로나 과중한 업무로 쇠약해진 것이라고 오진하는 수도 있다. 이런 
오진으로 환자에게 충분한 휴식과 수면, 영양섭취, 비타민 등을 권할 뿐, 
우울증을 고스란히 남겨둔다. 이런 것은 대부분 우울증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자가 피곤해 하고, 원기도 없고, 쉽게 피로를 느끼면 
확실한 신체적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는 우울증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해야만 의사는 경도 우울증을 더 쉽게 치료할 수 있다.
  우울증에 대해 저지르기 쉬운 또 다른 실수는 우울증 환자는 쉽게 
낙심하거나 단지 슬퍼하기만 한다고 생각하거나, 우울증을 불행이나 
실망에 의한 단순하고 직접적인 반응이라고 간주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과는 상당히 다르다. 우울 반응도 모든 정신 증세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갈등 속에서 빚어지는 아주 복잡한 정신활동의 과정을 밟아 
생긴다. 우울증 환자라고 해서 단지 슬퍼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슬픈 
환자는 슬퍼하기만 하지만, 우울증 환자의 내면에는 적극적이고 생동하는 
문제들이 엉켜 있다. 따라서 우울 환자는 비록 경증이라도 아픈 상처와 
함께 고통을 받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울 반응은 그의 내부 갈등을 
표현하거나 숨기기 위한 그 나름의 복잡한 반응이고, 또한 그러한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이나 주위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우울증 환자가 느끼는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은 환자 내부에 숨겨진 
분노이다. 우울증 환자는 작은 모욕이나 상처에도 쉽게 흥분하고, 조금만 
자존심을 건드려도 몹시 화를 낸다. 그리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
  환자로부터 분노를 찾아야 한다. 분노는 가끔 다른 것으로 위장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환자느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또 그것이 자신의 
내면과 일상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우울증을 환자의 이러한 분노와 복잡한 이유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분 전환을 좀 하라, 여행을 해라, 만사를 쉽게 생각하라, 
상심하지 마라, 기운을 내라고 말하는 것들은 별 도움이 못 되고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언뜻 듣기에 아주 진지하게 격려해 주는 좋은 말 
같지만, 환자에게는 의사가 자신의 심경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환자는 화가 나고 그런 의사에게 실망한 
나머지 우울증은 더 깊어지게 된다. 의사로서 경증 환자에게 도움이 
되거나 위로가 되는 말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세월이 약이고 우울증을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는 것이 오히려 더욱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환자의 현재 생활을 계속 위협하는 고통이 있을 때는 그 
문제에 대해 적절한 마음의 조치를 강구할 수 있도록 직접 대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내과의사로부터 의뢰받은 여대생 환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항상 피곤해 
했고, 잠도 많고, 집중도 안 되고,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해 
방안에만 틀어 박혀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대학에 흥미를 잃었다고 
말했다. 입학할 때부터 학생이나 교수 모두가 그녀에게 s 못마땅했다. 
그럭저럭 이제 2학년이 되었으나 아예 대학이라면 거들떠보기도 
싫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만 해도 아주 명랑하고 우수한 
학생이었다는 걸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런데 그녀의 말대로라면 충분히 
일류 대학에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런 형편없는 대학에 진학했던 
것일까? 그녀는 함참을 망설이더니, 지금 다니는 대학에서 아주 많은 
장학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기를 모셔가다시피 했으며 가기 
싫었지만 부모의 성화에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여자가 대학은 왜 
가? 더구나 돈들여 가면서! 공짜로 시켜주겠다면 모를까" 그녀는 그대 
일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이야기를 더 나누면서,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어떤 대학에도 보낼 수 
있는 재력이 있었고 그녀의 오빠는 현재 명문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빠와 자신의 이러한 차이를 변명하면서 "그렇지만 
아무래도 여자보다 남자가 더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상투적으로 동의하면서 여자의 교육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나에게 약간 화가 난 듯했다. 
"선생님은 아직 제 부모님을 잘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난 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난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환자 자신의 자존심과 가치관, 그리고 
그의 지적 능력에 관해서였다. 그는 조용히 나의 이야기만 듣고 있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 시간에 우리는 그녀의 지성과 관련된 갈등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국민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많은 성생님들이 그녀의 
우수한 성적을 칭찬했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를 하는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많았다. 그러나 그녀 부모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녀의 성적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가사일의 미덕만을 강조했다. 이러한 부모였기 때문에 
대학에 보내 주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비록 이류 대학이긴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적으로 보람있는 대학 생활을 해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렇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녀가 이 대학을 그렇게 
싫어하고 원망했던 것은 사실, 그의 부모에 대한 감정 표현이었다. 첫 
1년은 말없이 잘 참았지만 2학년이 되자 더 이상 오빠에 대한 질투, 
부모에 대한 원망, 학교에 대한 혐오증 등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우울증에 빠진 것이다. 아무 일도 하기 싫게 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고, 공부도 안 되는 등의 우울 증세들은 그녀의 이러한 
분노나 깊어만 가는 자신의 열등감을 은폐하기 위한 무의식의 작용이었다.
  이러한 숨겨진 감정들이 차차 이야기가 되고 배설되면서 그녀는 좀 
부끄럽고 창피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우울증은 한결 좋아졌다. 
차츰 책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이나 학생에게 가졌던 지나친 
실망이 사실은 자기의 이런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더 확대, 왜곡되었다는 
것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학생이나 교수에게 아무런 매력을 못 느낀 것은 
사실은 자신에 대한 매력상실증이었다. 그녀의 우울증이 회복되면서 
대학을 보는 눈도 현실적으로 변해갔다. 이 대학이 일류 대학은 
아니었지만 절망적인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대학이 자기에게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몇 번의 
면담을 거치는 동안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만이 자신이나 부모를 
위해 반드시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도 차츰 이야기하게 되었다. 적어도 
자기 의견을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이었다.
  그녀의 결심을 분명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껏 다니던 대학과 
장학금을 청산하고 처음 목표대로 일류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이런 결심을 차분히, 그러나 분명히 부모에게 말했을 때 놀랍게도 그들은 
쉽게 동의했다. 만일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했더라면, 그래서 부모가 그의 
심경이 얼마나 안타까왔는가를 알 수만 있었더라면, 그는 지금쯤 마음에 
드는 학교에서 행복한 대학 생활을 누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도 쉽게 포기하고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하다 보면 내면에 항상 갈등과 
분노가 이글거리게 마련이고, 또 그에 대한 반응으로 우울증이 나타나게 
된다.
  한 중년 남자가 쉽게 피로를 느끼고, 일도 귀찮고, 우울하다는 호소를 
해왔다. 그렇게 피곤하고 우울해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던, 그는 두 번에 
걸친 아내의 수술 때문에 지쳐 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도 
동의했다. 그러나 한 가지 석연찮 게 있었다. 아내는 완전히 회복해서 
퇴원한 지가 이미 6개월이 되었고 또 그의 우울은 이 기간에 생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록 그의 우울이 아내의 수술과 연관이 있긴 
하지만, 좀 넓은 각도에서 아내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제의했다.
  그는 별 주저없이 그들의 결혼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런대로 
만족한 생활이긴 했지만 그의 아내가 좀 신경질적인 게 흠이었다. 작은 
일에도 성을 내고 따지고 시비를 걸어온다. 싸움을 먼저 걸어오는 건 
아내였고 참아야 하는 것은 항상 자기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은 아내가 그렇게 순해질 수가 없었다. 정말 그는 화낼 
일이 없었다. 아내가 앓고는 있었지만,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그들은 무척 
화목했다.
  지금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내의 건강이 회복되어 갈수록 
예낫처럼 나빠져 간다느 것이었다. 자신도 차차 짜증이 나고 아내가 
미워지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두려움은 만약 자신이 또 전처럼 
아내의 신경질을 받아 싸움이라도 하고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는 날이면 
이번에 아내가 꼼작없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아내가 병이 난 것이 자기와 싸운 것 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초조하고 불안해 했다. 날이 
갈수록 아내의 신경질은 심해지고 언제 폭발할지 모를 자신의 화를 과연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가 하고 초조해 했다.
  불행히도 나에게는 이 경우 좋은 처방이 없었다. 화를 내라고 할 수도 
없었도 그냥 참고 견디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 환자와 꾸준히 
대화를 함으로써 그에게 쌓여 있던 화를 조금이라도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몰론 극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그 환자가 아내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차차 그의 우울증은 호전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 시점에서의 치료는 이제 아내와의 관계를 예전과 같이 만족스러운 
상태로 회복시켜주는 일이었다.
  아내가 수 년을 앓아 두 번이나 큰 수술을 받아야 했던 동안 사실 
그들에게 아기자기한 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아쉬운 것도 많고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잃고 살아간 시간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증세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고 잃었던 순간을 되찾으려는 듯 
아내와의 관계도 호전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가 아내와 
말다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치료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많이 실망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기뻤다. 비록 그들이 화를 내면서 다투긴 했지만 싸움의 양상은 그전과는 
아주 달랐다. 이제 그는 폭발하지 않고도 화를 낼 수 있었다. 또 싸움을 
했다고 아내가 죽지도 않았다. 그는 이런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그것은 
사랑싸움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증례들이 보여주듯이 대개의 가벼운 우울증은 일상생활에서 
상실감, 박탈감, 무관심, 모욕감 등을 느낄 때 반응성으로 나타나다. 그러한 
유발 요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언제나 환자 내부에 분노와 자존신의 
손상을 일으키고 우울증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우울 환자에게서 
자살기도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이들과 규칙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익하다. 몇 번의 대화가 환자의 우울증을 가시게 
하는데도 아주 효과적일 뿐 아니라 그렇게 될 때 의사로서의 자부심이나 
긍지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다.
  그러나 경증 우울 환자를 치료할 때 다음 두 가지만은 명심해야 한다. 
첫째, 이런 환자들은 체질적, 성격적으로 작은 상처에도 쉽게 우울해지기 
때문에 대화만으로는 치료가 잘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도 재발하는 수도 
있다. 둘째, 가벼운 우울증이 중증으로 되는 수도 있고 심각하지 않게 
생각되었던 환자가 자살을 기도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가벼운 증세의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때는 계속해서 일정 기간 동안 그 환자의 우울증의 
깊이와 정도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1.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하는 환자
  우울증에 걸린 환자의 행동이나 말이 점점 느려지고, 질문에 대한 
반응이 늦어지거나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고, 의사와의 대화에도 별 반응이 
없으면 심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울할 생각들로 가득 차 있거나,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거나, 또는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으로 괴로워할 때, 의사는 항상 그 환자가 심한 
우울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우울증 환자가 
흥분하거나 잠을 못 자고, 새벽에 일찍 깨거나 미동도 않고, 그의 감정을 
걸어 잠그거나 그의 무가치를 고민할 때 그의 증세는 이미 가벼운 정도의 
우울증이 아니다. 
  물론 안전하게 생각하려면 모든 우울증을 중증이라고 보면 된다.
  어떤 우울증 환자와의 대화에서도 일단은 자살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게 안전하다. 그 심각성을 측정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단계적이고 기술적인 접근을 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요즈음 기분이 
어떠냐로부터 시작해서 차차 깊이 있게 물어야 한다. 어떤 화자는 쉽게 
이야기할 것이고 또 어떤 환자는 주저하다가 가끔 자살을 생각해 본다고 
말할 것이다. 또 농담처럼"죽고싶다"고 하는 환자라도 농담으로 들어 
넘겨서는 안 된다. 따라서 그 문제에 다음과 같이 점차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환자 : 어깨를 으쓱한다.)
"별로 좋지 않으신가 보죠?"(환자 : 머리를 흔든다.)
"우울한가요?"(환자 : 고개를 끄덕인다.)
"희망이 없어 보이나요?" - "그래요"
"때론 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나요?" - "맞아요"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있나요?" - "많아요"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겠네요?" - "가끔 해요"
"어떻게 자살할 것인지 생각해 봤나요?" -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이러한 대화는 너무 자세하고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생각'의 배후에 환자가 죽음과 자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고, 얼마나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웠는지 알아내기 
위한 목적이 있다. 이러한 정보는 좀더 윗단계의 질문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주어진 예에서, 환자는 자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고,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증거도 없다. 어떤 환자는 의사의 자살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장전된 총을 쥐고 그 전날 반 시간 가량 서 
있었다거나, 일줄일 전에 튼튼한 밧줄 또는 배기관용 튜브를 샀다고 말할 
수도 있다. 또 다른 환자는 한참 동안 대화를 한 후에야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환자가 자살 계획을 얼마나 잘 세웠고, 구체적인 계획들이 얼마나 
완벽하게 세워졌으며, 이러한 계획들이 얼마나 실행에 옮겨졌는가를 
기초로 위험을 판단해야 한다. 만약 환자가 실제로 자살을 계획했거나 
신중하게 생각중이라고 한다면, 의사는 환자가 위험하다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환자가 아무런 계획이나 행동을 나타내지 않으면 위험이 있을지라도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의사로서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피해 벌리 수도 없는 일이다. 일단 자살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즉각적인 응급조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성 안전한 
보호병실에 입원을 시켜야 하는데, 이것 또한 의사가 환자에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의사는 환자에게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종종 환자가 자신은 입원할 필요가 없다고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의사의 결심은 분명히 수행되어야 한다. 
어떤 환자는 정신과병동에 입원시키면 그때는 정말 죽어버리겠다고 
위협한다. 또 창피하니 제발 정신병자처럼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만약 환자가 자살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의사는 
어떠한 말에도 동요되지 않아야 한다. 환자의 자존심에 손상이 가는 일이 
있더라도 그를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낫다. 또 많은 경우, 이렇게 
반항하는 환자들도 일단 입원하고 나면 아주 안심을 하고 안정을 되찾게 
된다. 자기는 보호를 받고 있고 또 자기를 해치고 싶은 충동에서도 이젠 
벗어났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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