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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성인 환자를 위하여

22.환자가 의사에게 화를 낸다

by FraisGout 2020. 6. 2.

한번은 중오한 수술을 받고 몇 주가 지난 뒤 처음으로 
재조사(follow-up)를 받아야 하는 다섯 살 난 소년과 함께 주치의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어린이는 장난감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총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그 총으로 의사 선생님을 쏠 
것이라고 했다. 내가 놀라고 다소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꺼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고 묻자 그는 
의사 선생님에게 줄 것이라고 대답했다.
  많은 환자들은 의사에 대해서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의사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이 두 감정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후자가 더 
의식적인 반응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다섯 살짜리에게는 당연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장난이라도 초을 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수술을 
해 준 의사 선생님을 총으로 쏘겠다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나의 
말에 쉽게 동의하는 것으로 보아 소년 자신도 그렇게 느낀 것 같았다.
  수술 환자가 화를 낸다는 것은 특히 외과의사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밤중에 잠도 못자고 성의껏 수술을 해줬는데 화를 내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뿐 아니라 그로 인해 상처를 입기도 한다. 어떤 
외과의사는 환자가 화를 내는 것이 자신의 치료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몹시 기분 나빠하기도 한다. 
  그러나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좀 다르다. 화를 내는 것은 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물론 수술해 준 의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술이란 다지고 보면 상처를 입는 일이다. 상처를 입거나, 충격을 
받았거나, 위험에 처하게 되면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또 
당연히 화가 나야 한다. 따라서 한자가 수술 후에 화를 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수술은 자비로운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한자의 정서적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폭력일 수밖에 없다. 그는 수술에 
대해서 위험을 느꼈고, 수술 후에는 상처를 입었으며, 무능력한 상태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건 모르건 간에, 그는 화가 나 있다. 더구나 수술 
자체가 아무리 자비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수술이 필요한 이유는 그렇지 
못하다. 심하게 말하면 어떤 환자도 수술 후에 더 좋아질 수는 없다. 물론 
병이 약화되지 않고 죽음으로부터 구제된 것은 사실이지만,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몸의 상태를 수술 전보다 더 좋아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수술이 자비로운 행위라 하더라도 환자의 기분에선 상처를 
주는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 잇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환자에 따라서는 화가 난 이유가 이런 차원을 떠나 아주 분명한 경우도 
있다. 수술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상처가 너무 크다거나, 또는 
회복기간이 다른 사람에 비해 길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화를 
낸다. 이럴 대 외과의사는 대단히 기분이 상한다. 배은 망덕이란 생각은 
다음이고 무엇보다 자기가 중시하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수술 환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분노를 느끼게 마련이고, 
환자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분노를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가 화를 내는 것을 자연스런 반응이라고 
단순히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개의 의사들은 환자의 분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의 분노를 성가신 
것으로 치부하고, 자기 환자들이 하를 내지 않으면 그들의 상태는 더 빨리 
좋아질 것이라고 믿게 된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믿음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화를 낼 
수도 없는 환자는 상태가 호전될 수 없다. 정상인들과 마찬가지로 
환자에게도 화는 건강과 안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환자는 화를 
필요로 하고 화를 내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무엇보다도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써 화를 필요로 한다. 화는 죽음으로 인한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해 준다. 화는 우리 생명력의 일부이며, 적당히 
화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인간의 행동은 목표성과 효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화가 해로울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화는 환자가 자신의 
분노를 자제할 수 없게 될 때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폭력이 된다. 분노가 심하게 억제되거나 낙천주위자와도 같은 친절함으로 
그럴싸하게 꾸며질 때 또한 해로울 수 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환자의 
분노를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도가 약하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끼칠 해도 적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해  다른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수술 환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분노의 유형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속으로 감춰진 것이 더 흔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수술을 끝마친 후부터 화가 나 있지만 모두가 그 분노를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환자들은 자신의 분노를 조용히 억제하면서도 자신의 화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다섯 살 난 소년처럼 의사의 따듯하고 친절한 
태도와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자신의 화를 억제한다. 근본적으로 
이런 따뜻함과 친절함은 화를 없애는 데에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지만, 
그이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 든다. 화를 없애는 것은 하에 대한 환자의 
사회화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환자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화가 
혼란스러운 감정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화를 꾹 참아 버리거나, 더 심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아무리 화가 났다 
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보통 이렇게 화를 부정하는 것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으며, 수술 후 
회복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화를 억제하려는 시도는 
떄떄로 다른 식으로 표현이 된다는 점에서 그다지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환자는 의사에 대한 자신의 화를 노골적으로 나타내지 못하고, 
얼토당토 않게 음식이나 서비스, 문병 오는 친척들에게 불평하는 것으로 
대신하다. 보통 이러한 사소한 전환은 환자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겪게 
되는 귀찮은 일일 뿐이다.
  이보다 더욱 해로운 것은 환자의 행복을 방해하는 반응들이다. 예들 
들어, 환자의 화가 수술 후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을 위해 행해지는 모든 일에 대해 도전하고 반항을 하며, 
의사나 간호사가 권하는 일은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하려고 한다. 
이런 일이 생기고 환자들이 치료에 대해 부정적이며, 표현되지 않은 화를 
다른 식으로 발산하고 있음을 그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더 미묘한 것은, 노골적이고 고의적으로 비협조적인 것은 아니지만, 
의사와 간호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환자의 
경우이다. 그는 친절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잘못되게 만든다. 그는 설명과 지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해선 안 된다고 
충고했던 일만 한다. 그런 환자는 아무런 반항이나 부정적 태도를 취하지 
않으므로 많은 혼란을 야기하게 되고, 머지않아 의사와 간호사들을 화나게 
만들며, 환자가 협조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에 그들은 한편으로 
화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직원들이 환자에게 화났음을 깨달을 떄마다. 환자가 당황해서 협조할 수 
없게 될 때마다, 임상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환자가 속으로 화가 
나지 않았나 하고 의심해 보아야 한다. 사실상 환자에게 불행하거나 
특별하거나 특별히 일이 생길 때마다 감춰진 화는 악마가 되어 나타날 수 
있다.
  감춰진 화가 환자의 치료에 끼치는 혼란의 예는 '4장의 불안하기는 
의사도 마찬가지'에서 다루었다.
  화를 억누르는 수술 한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몇 가지 다른 반응들이 
있다. 우울 반응은, 그 원인과 내용이 무엇이든간에, 항상 강한 분노를 
감추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울증에서 화에 대한 언급은 '23장의 
수술 후 찾아오는 우울'에서 다루었다.
  어떤 환자들은 수술 후 화를 억제하기 위한 반응으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정신병 환자의 숨겨진 분노의 역할에 대한 전반적 논의는 
'15장의 병을 만드는 갈등과 분노'에서 다루었다. 
  신체의 일부를 제거한 수술 후, 눈에 띄게 상실감과 슬픔을 느끼는 
환자들은 화가 나지 않았나 하고 항상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측면의 
화는 '24장의 수술 환자의 상실 반응'에 설명되어 있다.   
  숨겨진 분노가 환자의 회복이나 치료에 지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떄마다, 환자는 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는 화를 찾고 표현할 
수 있도록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화에 대해서 누구와 이야기하든 
간에 그 사람은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해 주어야 하고, 환자가 
말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환자들이 화를 내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해줌으로써 그 환자 또한 자연스럽게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하를 겉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고 환자의 
치료와 회복 속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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