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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성인 환자를 위하여

24.수술 환자의 상실 반응

by FraisGout 2020. 6. 3.

  수술은 대개 우리 신체의 일부를 떼어 내는 처치이기 때문에, 특히 신체 
중 크고, 중요하고, 쉽게 눈에 띄는 부위가 절단되면 그 상실에 대한 여러 
가지 심리적 반응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령 팔, 다리, 위장, 눈, 
유방 등의 수술로 절제되면 환자는 여러 가지 상실 반응을 보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면 '절단지증(phantom limb)'을 들 수 있다. 이것은 
팔이나 다리를 절단당한 환자가 수술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아직도 그 
부위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느끼는 증세이다. 없어진 다리가 계속 
아프기도 하고 가렵기도 해서 때로는 실제로 긁기까지 한다. 이런 현상은 
상처받은 신경 섬유가 계속 자극이 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없어진 다리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어떤 의사든 수술 후 환자가 닫는 이러한 심리적 고통은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은 그러한 상실에 대해 심리적으로 잘 적응이 되지 
않으면 수술 후 회복뿐 아니라 앞으로의 적용에도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잘 모르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환자와는 그 상실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는 것이 환자가 자신의 처지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신체 부위나 혹은 전혀 쓸모가 없는 부위가 절제되어도 이런 상실 
반응이 올 수가 있다. 하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전혀 절제된 
것이 없는 경우에도 수술을 받았다는 생각만으로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수술을 함으로 써 잃은 것은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신체상의 균형일 뿐이다. 한 번 깊게 베인 피부가 그 전과 같을 수는 없다. 
환자가 이렇게 사소한 일에 상심하는 것이 바보스러울지 몰라도, 어쨌든 
이것은 분명히 있는 일이다.
  이러한 상실감의 특징은 그 반응의 정도나 양상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손가락 두 개를 절단해도 걱정하지 낳던 환자가 얼굴이 좀 
찢어졌다고 아우성을 치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실제로 무엇이 
절단되었느냐가 아니고 환자가 그 상실된 부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마음이다. 예를 들어, 활동적이었던 환자는 비록 팔, 다리가 
절단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상심을 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그러한 환자들에게 있어서는, 주로 고정을 
한다거나, 강직 상태에 있다거나, 운동 기능 부전 상태에 있을 떄 많은 
상실감을 느낀다. 팔, 다리의 신체 활동적 기능보다 미적 기능에 높은 
관심이 있는 환자들은 외모가 많이 손상되지만 않으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고 해서 그리 큰 상실감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눈 수술이나 생식기 수술 등은 실제 신체적 손상과는 거의 관계가 
없을지라도, 환자에게 많은 상실감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얼굴, 머리, 
귀, 코, 이, 손과 같이 눈에 보이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수술한 후에는 
뒤이어 사람마다 특정적인 상실 반응이 나타난다. 그러나 어떤 수술이 
그러한 반응을 가져올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환자 
개개인이 겪고 있는 상실감에 대해서 어떤 개인적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를 
알아 내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모든 상실 반응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주로 복구 수술과 
관련된 것이다. 깊은 상실감은 선천적 기형뿐만 아니라 후천적 기형을 
교정한 후에도 나타날 수 있다. 흔한 예로는 코 성형 수술을 들 수 있다. 
즉 못생긴 코를 매력적인 코로 새롭게 바꾼 환자들에게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환자들은 수술한 결과에 대해 아무리 만족한다 해도, 옛날의 자기 
코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대해 아무리 만족한다 해도, 옛날의 자기 코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어떤 환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새로운 코에 대한 
불만족이나 낭패감으로 표현될 것이다. 또 어떤 환자들에게는, 상실감이 
슬픔이나 허탈감처럼 느껴지다가 일종의 애도 반응으로 나타날 것이다. 또 
다른 환자들은 자신의 자녀가 비슷한 수술을 해야 하거나, 자신이 이와 
비슷한 수술을 또 한 차례 치뤄야만 하는 몇 년 후에야 나타날 수도 있다.
  성형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아주 착잡한 심리적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코 수술 후에 역설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왜 코를 성형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는가 하는 근원적인 곳에서 
나타난다. 이런 경우, 코가 시원찮아 보여 더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것만이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신체 전체나 얼굴 윤곽에 처음부터 불만이 
있었거나 혹은 노이로제나 정신병 때문일 경우도 흔하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따로 두고 코 수술만 한다고 그가 만족할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수술이 잘못 됐으니 다시 해 달라는 등의 불평을 할 때는 환자의 
가슴 속에 무언가 다른 복잡한 이유가 있음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환자가 수술을 한 후에도 여전히 다른 문제들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실망하거나 낙심하기 쉽고, 아무리 코가 잘 생겨보여도 수술이 
실패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심하면 코가 전보다 못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의사는 환자의 이런 부정적 반응이 코 때문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다른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환자에게 코가 멋있어 보인다고 말하는 것만이 그가 멋있다고 생각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환자가 가지고 있는 다른 
문제들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먼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의 
코가 얼마나 멋있어 보이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무론 이렇게 하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수술 후 
나타나는 환자의 반응은 매우 복합적이고 미묘한 것이어서 몇 년 동안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쉽다.
  신혼 생활에서 생긴 다소 심각한 문제 때문에 내게 상담하러 왔던 
아름답고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가 처음 내 진료실을 
찾아왔을 때,
그녀에게 앉으라고 권하자 그녀는 그 즉시 앉지 않고 의자를 다시 
배치하고 앉았다. 그녀가 의자를 내가 앉아 있는 근처로 가져 왔으므로, 
우리는 매우 가까이 마주보고 앉았다. 그 다음 두 차례의 방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녀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알 숭가 없었다. 처음엔 그녀가 가는 귀가 
먹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 같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애매한 말을 했고, 나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코는 원래 못생겼으나, 열여섯 살 때 성형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수술 후 느낌에 대해 묻자, 그녀는 수술 후 매우 당황스러웠으며 수술한 
사실을 아무도 모르길 바랐다고 했다. 그녀는 너무나 당황해서 흉터와 
부기가 가라앉은 후에도 몇 주 동안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옆모습이 보이지 않게 항상 정면을 바라보고 대화를 하는 
것으로 이를 극복했다고 했다. 이때 나는 그녀의 의자를 가리키면서 
지금도 나와 정면으로 마주앉게 의자를 배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그녀는 놀라고 당황하면서 자신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과 대화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했는지 
의아해 했는데, 이것은 그 다음 날 몇 몇 친구들에게 물었을 때 
분명해졌다.
  나는 그녀에게 "당신은 열여섯 살 때 가졌던 것과 똑같은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군요 하지만 이런 걱정들은 당신의 코 때문만은 아닌 것 
같군요" 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말하지, 환자는 자신이 10대에 가졌던 
걱정거리에 대해서 말했다. 이 걱정들은 주로 그녀의 성에 대한 관심과 
연관이 있었다.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성장해 가는 신체, 특히 가슴에 
있었는데, 더 깊숙한 내면 세계에서는 성적 충동과 두려움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코와 마찬가지로 가슴도 거울에 
비춰보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이 두 가지가 그녀를 가장 
불안하게 했던 옆모습이었으며, 그녀는 '코와 가슴이 조금만 더 작았으며' 
하고 바랐다.
  가슴은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코의 모양을 고치는 것은 가능했으므로, 
열여섯 살이 되자 부모님을 졸라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후 그녀의 
코는 아름다워 보였으나, 그녀가 이해할 수 없었던 몇 가지 어리석은 
이유로 그녀는 계속 혼란스러웠으며, 부분적으로나마 옆모습이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수술 후에 그녀는 코의 옆모습이 아름답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그 
옆모습을 감추려고 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정말로 감추고 
싶었으며 오늘날까지 감추려고 했던 것은 바로 그녀 가슴의 
옆모습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따라서 나는 환자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사람들과 마주보고 앉으려고 하는 것은, 적어도 마음속으로는 청소년기에 
그랬던 것처럼 가슴의 모양을 걱정하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말을 듣자 그녀는 한편으로는 
안심하면서도, 정말로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시인했으며 스스럼없이 
최근의 결혼 생활에 관한 문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미적 결함으로부터, 지나치게 병적이거나 생명을 위협하기까지 
하는 결함과 불가해한 것처럼 보이는 상실 반응으로 화제를 돌려볼까 
한다. 이런 상실 반응은 이러한 결함들을 복구하고, 교정하고, 제거한 후에 
흔히 나타난다. 이런 역설적 반응들은 환자의 만성적 신체 조건들이 비록 
보기 흉하고, 고통스럽고, 무력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환자의 정상 생활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며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환자는 이러한 
결함에 적응을 하고, 그가 이런 결함들을 싫어하거나, 그로 인해 불안해 
하거나 또는 불구가 된다 할지라도, 그의 생활에 익숙해지게 된다. 더구나 
환자는 종종 특별한 방법으로 이런 결점을 이용하거나 거기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환자는 어떤 경우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한 데 대한 
변명으로 이를 이용할 수 있다. 어떤 공격적인 행동을 취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환자가 자신의 결점을 정상화하기 때문에, 의사는 
결점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서 심한 상실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해서는 안된다. 결점이라 해도 갑자기 없어지게 되면 
착란증과 정신병 같은 불안, 혼란, 방향감 상실(인식혼란), 동요, 이질감, 
우울증, 심하면 몇 가지 복잡한 심리적 동요가 일어날 수 있다. 이런 
반응들은 환자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이 겪은 상실감을 극복하고 
적응하기 위한 부분적인 노력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수술 후 나타나는 이상 현상은 절제적인 상실에 대한 반응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하겠다.
  어떤 환자들은 별 도움 없이도 상실에 대해 적응을 잘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상실된 부위가 어떤 의미를 가져왔으며, 또 이것을 둘러싼 여러 가지 
심리적 갈등도 진지한 대화를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수술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떄문이다.
  한 중년 남자는 심장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주치의로부터 이젠 무슨 
일이든지 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으나 겨우 집안일이나 돌볼 뿐 외출조차 
삼가고 있었다. 언제가 다시 심장병이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땐 이미 수술 받은 지 8개월이 지난 
후였다.
  예저네 그는 일급 전기 기사였다. 그는 수술 전에도 몇 년 동안 직장을 
쉬고 있었다. 이젠 충분히 회복되어 복직을 할 수 있는데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환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수술은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아직도 자기 생명은 한 가닥 실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셔츠를 걷어 올리더니 아직도 벌갛게 
남은 수술 상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의사인 내가 보기에도 끔찍한 
상처였다.
  어쨌든 환자는 이미 오래 전에 회복되었고 병원에서도 퇴원했지만, 
여전히 심장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수술이 성공리에 끝나고 
회복이 되었는데도 그의 태도나 마음가짐은 수술 전과 변함이 없었다. 
그에게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있다고 몇 번씩이나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환자는 직장을 구하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항상 실패했다고만 했다. 가는 공장마다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그를 고용하지 않은 이유로 많은 것들이 있었으나, 그에게 있어서 이유는 
분명했다. 바로 그의 심장병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코 그 점에 대해 
분개하지 않았으면 오히려 인사담당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심장병을 앓았던 사람을 누가 고용하고 싶어하겠는가?
  이러한 상황이 한 달 가량 계속되자, 의사들은 인사담당자가 환자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사회복지 센터에 그 문제를 의뢰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한 사회사업가는 인사담당자와 공장 전담 의사가 그 
환자를 고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애매하게 대답했다는 것을 알고, 
환자가 다른 공장에 지원했을 떄, 미리 그 공장의 인사책임자에게 그는 
신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이러한 중재 덕택에 그 환자 정도의 기술을 가진 기계공을 필요로하는 
자리가 몇 있었지만, 환자는 여전히 직장을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 후에 나는 이 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가 이 환자와 이야기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내 안에서 생겨난 
감정 때문이었다. 그이 이야기를 30분 가량 들은 수에, 나는 나 역시 그가 
신체적으로 아프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의 태도, 외모, 
목소리,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 모두가 나로 하여금 극히 제한된 신체적 
능력을 가진 사람의 이미지를 갖게 했다. 그는 마치 있는 힘을 다해서 
말하는 것처럼 한숨을 쉬고 호흡도 아주 힘들어 했다. 그는 병든 심장을 
마치 그의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는 수술이 마치 종교적인 
기적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했다. 그는 치료된 환자가 아니라, 비록 목숨은 
건졌으나 위험한 상태에 있는 환자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상태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아슬아슬한 체력의 
한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심장학자와 주치의가 나에게 환자의 상태가 좋다고 말한 
것을 순간적으로 모두 잊어버린 것이었다. 환자가 거의 자동적으로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을 때, 그의 괴로운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셔츠를 젖히고 내의를 올려서 아직도 길도 빨갛게 남아 있는 가슴의 
흉터를 완전히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아직도 심장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나는 
완전히 그 심리에 말려든 것이었다. 취직을 하려 해도 아무도 그를 고용해 
주질 않더라는 그의 변명 아닌 변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인사담당자였고 그가 몇 분 전과 같이 행동했다면, 나 또한 그를 채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취직을 하러 갈 때도 나에게 했던 것처럼 병과 
수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상처도 보여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물론이죠, 거짓말을 해서야 됩니까?" 저 상처를 보고 누가 
취직을 시켜줄까? 그는 아직도 취직하고픈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이것이 우리가 첫 상담 시간에 했던 대화의 전부였다. 이로부터 나는 
몇 가지 결론을 얻었다. 하나는, 환자가 꾀병을 부리는 것은 아니었으며, 
정말로 직장을 갖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다른 잠정적인 결론은, 그를 지탱 
시켜 준 것은 병에 대한 계속적 집착, 병에서 벗어나는데 대한 무능력, 
자신의 병든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능력이써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상실 반응을 하고 있었고, 이것이 계속되는 동안 뭔가 
새로운 것으로 옮겨갈 수 없었다.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내 생각을 간단히 말하고, 이것이 그의 
생활 형태이며, 다른 상황에서도 천천히 변화하고, 천천히 적응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천천히 포기하는지 물었다. 그는 곧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으며, 몇 가지 예를 들어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특히 수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오랫동안 수술을 연기했고, 또 수술 계획을 두 번이나 세웠으나, 마지막 
병원 입원 수속 떄 취소했다고 했다.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환자는 수술을 받지 못하거나 직업을 갖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그에게 수술을 받게 한 사람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그가 수술을 연기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전에 여러 번 그와 이야기를 했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아들에게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수술을 
받게 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녀는 택시를 불렀고, 택시가 오자 아들의 
손을 잡고 택시에 태워서 병원으로 갔다. 그녀는 다시 아들의 손을 잡고 
입원 수속실로 데려갔다. 이것이 수술을 받게 된 사정이었다.
  환자가 수술을 받게 된 이야기는 흥미로웠을 뿐 아니라 그에게 아픈 
사람의 이미지를 버리고 신체적으로 유능한 자아의 이미지를 되찾게 해 줄 
수 있는 완전한 지침이 될 수 있었다. 누군가가 그의 손을 잡고 가서 
직업을 구해 주어야만 했다. 나는 한 사회사업가를 만나 그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녀는 즉시 요점을 알아차리고, 내가 말을 마치자 
"내가 말 그대로 그의 손을 잡고 데려가야 한다는 말인가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환자가 실제로 고용될 대 
까지 함께 있어줘야 하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고, 냉정을 지키게 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먼저 사회사업가는 환자가 지원하려고 하는 공장의 
인사담당자와의 연락을 해서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는 
환자를 차에 태워 공장으로 데려간 후, 면접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었고, 
마침내 그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62세 된 한 노인은 항상 착실하고 어디에서나 적응을 잘 했으며, 열심히 
일하고, 양심적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보기 드물게 한 
회사에서 거의 40년 동안 근무했고, 그동안 한 번도 지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62세의 나이로 퇴직을 했고 상당히 많은 연금을 받고 있었다.
  환자는 가정에서도 흠잡을 데 없이 좋은 아버지이자 좋은 남편이었다. 
아내가 말한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직장에서처럼 집에서도 너무 
엄격하고 완벽하다는 것이었다.
  환자는 치아 상태가 나빠서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은퇴를 하고 나서야 
치과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치과의사는 틀니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며, 그는 두말 않고 즉석에서 이를 빼고 새로 틀니를 만들어 
끼웠다. 환자는 새 틀니에 대해 아주 만족해 했다.
  그러나 틀니를 맞춘 지 이틀째 되는 날, 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틀니를 끼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아내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날도 틀니를 끼우지 않으려 하지 아내는 조금 화가 
났다. 그녀는 남편을 설득해서 틀니를 끼우게 했으나 불편하다면서 다시 
빼버렸다. 이렇게 몇 칠이 지났고 그는 틀니를 물컵에 넣어 놓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결국 아내가 의사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했다. 
치과에서도 환자는 틀니를 끼우려고 하지 않았다. 의사는 처음 끼우는 
틀니라 불편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틀니가 잘 맞으므로 조금만 지나면 
편안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치과에 다녀온 지 한 시간 가량 지나가 환자는 다시 틀니를 빼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 버리고, 그때부터 아예 모른 척 했다. 아내가 
다시 한 번 끼워보라고 했지만 그가 너무 싫어했으므로 포기하고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다음 날, 환자는 훨씬 더 말이 없고 조용해졌으며, 잘 먹지도 않았고 
잠도 설쳤다. 이러한 상태가 일 주일 정도 계속되었고, 그는 점차 불안해 
하고 쉽게 흥분했으며, 심지어 희망이 없어 죽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아내는 가정의를 불렀고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정신과의사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렸으며, 전기충격 요업을 실시했다. 
2--3주에 걸쳐 예닐곱 번의 치료를 한 후, 우울증은 점차 나이지고 그는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틀니에 대한 그의 
태도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환자는 틀니가 맞지 않고, 적응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으며, 그냥 틀니없이 살아야겠다는 말만 했다. 더 물어보자 그는 
이빨을 뺀 것이 커다란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모두 그의 잘못이었으며 
아무도 탓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환자의 상실 반응이 단지 이를 뺀 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가정하에, 
퇴직한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처음에는 꺼렸지만 자꾸 물어보자 
자신은 퇴직하고 싶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일찍 
퇴직했느냐고 묻자, 상사가 그에게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많은 
연금을 이미 모았으므로 계속 일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면서 은퇴를 
권했다는 것이다. 상사가 일찍 은퇴하라고 한 또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묻자, 그는 조금 망설이면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계속해서 그가 무능력했기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이같은 말에 환자는 버럭 
화를 내면서, 개인 기록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훌륭했다면 왜 상사가 은퇴를 권했을까!
  그는 상사가 젊은 사람을 승진시키려고 했으며, 빈자리를 만들기 위해 
그의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고 말했다. 환자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 없이 
설명했다. 어떤 기분이었느냐고 묻자, 그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고 했다. 
상사는 당연한 일을 했고, 자기가 상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한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회사의 이익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에겐 모든 것이 끝나 버렸고 그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자리에 오는 젊은이들만이 미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환자는 계속해서 부인했지만 빨리 은퇴한 것이 치명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회사에 전 생애를 바쳤다. 그는 모든 일에 
지나치게 양심적이었고, 회사에 지나치게 헌신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지나치게 소유욕이 강했다. 또 자신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깊은 애착에서 볼 때, 그가 정상적인 시기에 정상적인 
상황에서 은퇴했다 하더라도 심한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품위가 기켜졌거나, 먼저 그의 의사를 
물어보았거나, 명예직과 같은 것이 주어졌다면, 그는 슬퍼하면서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품위가 지켜졌거나, 먼저 그의 의사를 
물어보았거나, 명예직과 같은 것이 주어졌다면, 그는 슬퍼하면서도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금을 들먹거리며 얄팍한 속임수로 밀려나는 
것은 참기가 힘들었다. 젊고 더 유망한 직원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한 
위장이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론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불평하고 비난하는 것이 원래 이 
환자의 성격이 아니었고, 그의 소유적 태도가 회사와 사원들을 더 감싸고 
돌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신과의사는 환자들에게 느낀 바를 사실대로 
말해주는 것이 좋다 만약 의사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환자가 정정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의사가 하는 말이 옳으면, 환자는 솔직히 시인하고 한두 
마디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일 것이다.
  그와 대화를 함에 따라, 은퇴 후 즉시 치아를 빼고자 한 것은 그가 
얼마나 직장을 그리워하는지, 그에게 실직이 얼마나 참기 힘든 일인지, 
상사에게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를 감추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즉, 그는 상실의 대상을 치아로 설정해 놓고, 퇴직 후에 
느끼는 심한 상실감을 대신 나타내는데 치아를 이용했던 것이다. 그가 
새로운 틀니를 잘 사용하게 되면, 실직에 대한 대용물로써 그의 치아에 
대한 상실감을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치아에 대한 
상실감을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치아없이 지냄으로써 그가 
얼마나 허탈감을 느기는지 알고 나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화사측 입장에 대해서도 한두 마디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이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지나치게 양심적인 완벽주의자는, 그의 아내의 
말대로 함께 살기가 쉽지 않고 함께 일하기에도 어려웠을 것이다. 지나친 
정확함과 완벽함 때문에 그는 상사를 불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당연히, 상사는 이러한 이유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일찍 은퇴하도록 권했을 것이다.
  이 환자의 상실 반응에 대한 치료는 실직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달려 
있었다. 이것이 주된 문제였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부수적인 
문제인 틀니는 해결될 수가 없었다. 상실감을 원래 위치로 돌려 놓고,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처럼 그에게 직업에 대해서 자세히 
그리고 전반적으로 말하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환자가 회사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완고하고, 편협하고, 
완벽한 애착을 생각애 본다면, 그러한 해결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아마도 이전에 직장에 대해 애착을 가졌던 만큼, 치아에 
대해서도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으므로 계속 우울한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이 경우는 자신의 직업에 모든 것을 걸고 있던 사람의 은퇴, 특히 
남보다 빠른 은퇴는 아주 위험한 것이고 이러한 은퇴를 결정하기 전에는 
반드시 깊이 생각해 본 뒤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과, 의사들은 
완고하고 융통성 없는 환자에게 선택적인 수술을 하게 될 경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그 필요성이 환자가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수술 후 상실 반응에 수반되어 심한 우울증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이 경우를 통해 알 수 있고 따라서 의사들은 반드시 수술 후 상실 
반응이 심한 우울증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수술 후 상실 반응의 마지막 예는 착란증에 걸린 환자의 경우이다. 
착란증의 병적 증세로서의 상실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환자는 중년 부인이었으며, 착란증에 걸리기 쉬운 성향을 지닌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착란증에 걸리기 쉬운 다른 사람들처럼 매우 
특이했으며, 그녀가 했던 괴상한 일들은 현실 감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집착이 목적이었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 병적인 음주가였다. 그렇지만 결코 알코올 중독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술을 조금만 마셔도 정신을 잃어버렸다. 또한 
그녀는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거나 친숙한 물건들이 없어 졌을 때에도 
정신을 잃었다.
  이 환자는 병원 응급실에서 유명했으며 조금만 병이나 사고로도 자주 
병원을 찾곤 했다. 어느 날 그녀는 베인 상처 때문에 병원에 찾아 왔고, 
상처의 봉합을 결정하기 위해 외과 레지던트가 호출되었다. 그 레지던트는 
환자의 배가 볼록하게 나온 것을 발견하고 이유를 묻자, 그녀는 오래 된 
복면 탈장이라고 했다. 탈장의 크기에 놀라서 그는 환자에게 한 번 보자고 
했다. 환자는 마지못해서 옷을 벗고 진찰을 받았다. 레지던트는 탈장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구나 탈장으로 인해 생긴 주름 
부위는 피부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궤양까지 생겼다. 레지던트는 환자의 
진로기록 카드를 보면서, 몇 군데의 궤양을 심하게 감염되어서 병원에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탈장을 치료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환자에게 왜 이전에 치료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탈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레지던트는 탈장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컸으므로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더 많은 질문을 하자, 그녀는 
치료받는 것이 두려웠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몇 년 전 탈장이 난 직후에 
받은 수술로 인해 그녀는 매우 놀랐으며, 두 번 다시 그런 수술을 받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레지던트는 탈장을 치료하고 나면 훨씬 더 
건강해지고 기분도 나이질 것이며, 감염된 부분과 궤양의 통증도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의 설득에 못 이겨 환자는 수술을 하기로 하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 
수술은 쉽지 않았으나 성공적이었다. 커다란 종양을 제거했고 그녀의 
복부에 잇던 보기 흉한 상처도 없어졌다.
  그러나 환자에게는 착란증이 생겼다. 그녀가 의식을 회복, 자신과 주위 
환경을 알아본 후 첫 증세가 나타났다. 이때 의사는 자신이 끝마친 수술에 
대해서 매우 흐뭇해 하면서 환자를 보러 왔고, 그녀에게 새로운 모습에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의사는 그녀에게 수술 부위를 
보라고 했다. 복부에는 붕대가 감겨 있긴 했지만 이전처럼 보기 흉한 
모습은 아니었다. 배가 홀쭉하게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이 어이없는 반응에 놀란 의사는 그녀를 위로했으나 
진정하지 않자 병실에서 나와 버렸다. 몇 분 후에 간화사들은 환자가 
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침대로 눕히자, 그녀는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고 간호사들에게 병실이 이리저리 돌고, 침대가 흔들거리고, 
간호사들이 빙빙 돌고, 바닥이 위로 올라온다고 말했다. 그녀 주위의 모든 
것이 변하고 쉬지 않고 움직인다고 했다. 그녀가 점점 더 불안해 했으므로 
진정제를 투약하고, 떨어질것에 대비해 침대 옆에 받침대를 세웠으며 
손목도 묶어 놓았다.
  몇 시간 후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의 불안은 덜한 것 같았지만 환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아가야, 내 
아가야"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아이는 없다고 말하면서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겁에 질리고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고, 때문에 감히 접근해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환자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에, 나는 무슨 조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 떄문인지 겁에 질린 듯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눈동자는 불안에 휩싸인 듯 심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그녀가 수술을 받았고 탈장은 깨끗하게 제거되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덧붙여 이러한 변화 때문에 주위의 모든 것이 낯설고 편치못한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비록 그녀 자신은 내 말을 
들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가 듣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혼란스러운 변화에 
대한 나의 관심이 현실 또는 환상 세계에 대한 그녀의 혼란스러운 변화에 
대한 나의 관심이 현실 또는 환상 세계에 대한 그녀의 집착을 더 심하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줄어들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내가 말했듯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이미 환자에게 했던 내가 말했듯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이미 환자에게 했던 말을 몇 번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되풀이했다. 나는 또한 괜찮다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고 그녀는 여전히 그대로이며, 곧 상실감을 이겨낼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했다. 내가 계속해서 말하자, 그녀는 머리를 흔들고 눈동자를 
돌리면서 겁에 질린 듯한 신음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정신상태가 다시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할 떄마다, 나는 변한 것은 병실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고, 병실은 예전과 같다고 말했다. 20분 정도 뒤에, 
그녀가 인정을 되찾은 것 같았으므로 나는 병실에서 나왔고 다음 날 다시 
갔다. 불안과 동요는 줄었지만 착란증과 환각은 더 심해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녀는 아기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했으며 얼르는 
시늉을 하고, 노래를 불러주었고 아기를 돌보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번에는, 지금 그녀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좀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고 그녀를 대화에 끌어들이려고 했다. 나는 착란증에 
대해서도 아기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아기가 나타내고 있는 것이 
바로 복면 탈장이라는 말을 했다.
  그녀는 내가 수술에 대해 말하자 당황한 것 같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그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배에 있었던 커다란 
물체에 익숙해졌음에 틀림없고, 비록 그것이 불편하고 보기 흉했을지라도 
애착을 갖고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그것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게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된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오후에 그 환자를 담당한 간호사로부너 전화가 왔다. 여전히 
착란 증세가 있기는 하지만, 환자가 더 밝아 보이고 말도 더 많이 하므로, 
그녀와 이야기하기에 좋은 시간일 것이라고 했다. 환자는 내가 전에 말을 
했던 말을 어떻게든 듣고 있었고 거기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말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탈장에 대한 
이상하고 기이하고 설명을 했다. 그것은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그녀에게 탈장은 큰 부담이었고, 몸의 균형도 제대로 잡을 수 없어 등을 
뒤로 젖힌 채 걸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옷과 속옷까지도 바꿔 
입어야 했고, 그것을 받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띠를 둘러야 했는지도 
말했다. 그녀는 그 부분을 청결하게 하고, 씻고, 말리고, 분을 발랐다. 
그녀의 말투는 점점 엄마의 애정어린 말투로 변하고 있었다. 그녀는 배를 
보살피는 데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고, 돌아다닐 때는 배를 한 손이나 
양손으로 받치고 다니곤 했으며, 잠잘 때 자세를 바꾸며 배가 이리저리 
움직였다는 말을 했다. 이런 생생한 설명을 듣고 나니 그녀에겐 탈장이 
단순한 질병 이상이었고, 아기처럼 여겨졌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피부 찰과상 궤양과 염증으로 인한 통증이 고통스럽고 
귀찮은 것이긴 했지만, 그녀에게는 중요한 것이었다. 탈장 부위에 염증과 
종기가 나면 열습포로 몇 시간 동안이나 싸고 있었으며, 병원에도 갔던 
것을 변명조로 이야기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했던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말할 때의 
목소리와 어휘의 선택이었다. 그녀는 현실의 것,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었다. 때때로 상실감이 들 때면, 그녀는 눈물을 흘렸고, 
한두 번 "내 아가" 라고 말했다. 이럴 때마다 그녀는 상을 당한 사람처럼 
죽은 사람과의 추억을 되새기고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차차 
마음의 정리를 했고 조금씩 상실감을 극복해 나갔다.
  며칠이 지나가 환자는 더 이상 불안해 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슬픔에 
싸여 있었고, 자신에 대해 확신도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직 까지도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녀는 커다란 
탈장이 없어서 상심했으며, 한 달 또는 1년 후쯤에 똑같은 만족을 줄 수 
있다는 다른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앞 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아 수술 후의 상실 반응은 우울증이나 
착란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너무 흔하고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우울증 환자와 착란증 환자들을 대할 때에는 무의식적인 
상실감으로 시달리고 있는지 않은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우울증이나 
착란증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치료를 한 방편으로써 환자의 상실감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보상하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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