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돌이 되기 전의 유아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의사는 그
아이에게 말을 해야 한다. 비록 아기가 말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해도
목소리를 통해 말의 뜻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의사는 아기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유아는 말 대신 대화 중 비언어적 요소들의 의미를 감지한다. 이것이
어린아이들의 특징이다. 즉,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이다.
이런 감지력이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항상 활동하고 있고, 다라서
아이의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또한 이때
유아가 감지해 낸 의미는 어른이 의도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다. 실제로
유아가 관찰해 낸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유아가 뭔가를 인식했고, 거기에 반응하며, 감지해
낸 의미와 그에 대한 반응이 나이에 따라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유아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판단하는데 아주 제한된 시각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로부터 공통점을 찾거나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경험이
아주 적기 때문에, 대상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것은 자신과 어머니에게로
집중되어 있다. 이것이 그가 아는 세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유아는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대부터 자신의 욕구를 감지하고, 먹고, 자고, 싸고,
우는 등으로 욕구에 반응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그의 삶의 전부이다.
그러나 곧 엄마의 행동이나 기분에도 반응할 줄 알게 되고, 때로는 엄마
자신보다도 더 정확하게 변화를 알아내곤 한다. 엄마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정확하게 아기의 메시지를 알아듣게 된다. 따라서 아기가
칭얼댄다거나, 웃는다거나, 울고 찡그리는 모든 것들이 구체적이고 선명한
의미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아기들은 아주 일찍부터 엄마나 주변의 익숙한 사람들의 행동은
이해한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의 감정, 즉
위험하다는 느낌만을 갖게 된다. 어린 아기나 갓난아기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특히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들은 놀랍고 무섭게만 느껴진다.
갑작스런 움직임이나 이상한 동작, 이상한 물건이나 상황, 그리고 낯선
사람들을 아이들은 의심스럽게 느낀다. 아이에게는 낯선 것들이 불편하고
갑작스런 움직임 또한 전혀 즐겁지가 않다. 그들은 이런 모든 것들을
그렇지 않다고 판단될 대까지 위험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이런
갑작스럽고 이상한 행동이 계속 반복될 대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줄게
된다. 즉,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면 아이들은 그것을 자신의 일반적인 주변
환경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상황에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주
어린아이는 사람들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기만 하면 그들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6개월 이상이 되면 낯선
사람들을 모두 의심하기 시작하고, 이런 의심은 낯선 사람과 친해질
때까지 계속된다.
이 시기의 아기를 접하면서 의사가 가장 조심할 일은 아이가 겁을 먹지
않게 하는 일이다. 의심스런 눈으로 낯선 사람을 보는 어린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시선을 부딪치지 않고 무관심한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의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어떤 적극적인 행동도 하지 않고 얼굴을 외면한
채로 얼마 동안 있으면, 아이는 안전한 위치에서 의사를 잘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난 후 의사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민다. 이때
장난감을 보여주거나 혹은 그냥 맨손이어도 좋다. 의사감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아이는 안심하고 이에 대한 첫 반응으로 의사를
만지려 한다거나, 손을 잡으려 한다거나, 혹은 의사의 관심을 끌려고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의사를 관찰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고,
아이가 호기심에 의해 스스로 다가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협적인 행동은 절대 금물이다. 아이를 놀라게 하는 행동이란 무섭게
겁을 주는 것만이 아니다. 얼굴을 찡그린다거나, 아이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혹은 환심을 사기 위해 큰 소리로 웃는 것도 역효과를 내어 아이를
놀라게 한다. 또한 아이를 지나치게 쳐다보는 것도 아이에게는 무서울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위협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6--7개월 된 아이들도 남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이들은 의사가 자신을 보지 않을 때 훨씬 편안함을 느낀다.
눈을 깜빡거린다거나 씩 웃는 행동으로 아이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좋다. 행복한 아이라면 이런 행동들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긴장한 아이에게 이런 것들은 위협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이에게 "자 이리 와볼래?"하며 손을 내미는 것이 좋은 반응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접근은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아이로 하여금 더욱 엄마에게 매달리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이가 일단 안심을 했다 싶으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거나
아이가 자신에게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 말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어머니로부터 받아 안는 것이 효과적이다.
아기를 안는 것 역시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아기들은 각기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그것은 대부분 엄마가 안아주는 방식인데 만약
다른 방식으로 아기를 안았을 때는 불안감을 느낀다. 따라서 의사가
아기를 안았을 때 아기가 울거나 불편해 하는 것은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의사가 아기를 잘못 안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명한
의사는 엄마가 그 아기를 어떻게 안는가를 자세히 눈여겨보고, 아기를
안을 때 엄마와 같은 방식으로 아기를 안는다. 아기의 얼굴이 아래로
향하게 하는지, 위로 향하게 하는지, 아기가 엄마 무릎에 누워 있는 것을
편안해 하는지, 세워주는 걸 좋아하는지, 약간 느슨하게 아래로 처지도록
안는지, 아니면 아기를 꼭 안는지 등등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아기를 안는 방법을 평가할 필요까지는 없다. 엄마의 아기 안는
습관을 고쳐주려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습관을 바꿔주려다가는
아이만 울리고 만다.
일반적으로 아기들은 반듯하게 눕히거나 비스듬하게 안는 것 보다는
꼿꼿이 세워 안는 것을 좋아한다. 즉, 아기의 얼굴이 의사를 향하게 안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게 안으라는 것은 아니다.
아기의 얼굴을 의사의 어깨 위에 놓이게 한다. 아기를 더욱 안심시키려면
의사가 엄마를 등지고 서서 어린이가 엄마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
말 못한은 어린이와의 대화는 물론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아기가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 의사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는 의사의 말보다는 그 목소리에 더 잘 반응한다. 부드럽고
친절한 흥얼거리는 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주의해야 할 것은 아기가 말을 못한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라는 과정에서는 표현능력보다 이해 능력이 먼저
발달한다. 따라서 아무리 말 못하는 아기 앞이라도 어린아이가 들어서는
안 될 말이나,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은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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