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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어린이 환자를 위하여

31.아이다운 두려움

by Healing New 2020. 6. 3.

4--7세의 어린이들은 수술이라면 깜짝깜짝 놀란다. 그리고 실제로 
수술을 받을 경우에 받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 나이의 어린이 환자와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수술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4세에서 7세까지는 자기 신체에 대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시기다. 이 나이의 아이들, 특히 5세 전후의 아이들에게는 신체의 
모든 부분들이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신체뿐만 아니라 장난간, 옷 
,아끼는 고양이까지도 소중하게 느끼기 때문에, 이 중 어느 하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신체의 일부이거나 물건이나 간에, 
아이에게는 심각한 영향을 줄 수가 있다.
  그래서 4--7세의 아이들은 특히 수술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이 시기의 
남자아이들은 힘도 과시하고 싶어하고, 용감한 장국이나 영웅처럼 
으시대고도 싶어한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아주 태연하며 용감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수술이 두려우면서도, 한편 용감해 보여야 하는 두 가지 
상반된 심리가 이들의 고민이자 갈등이다. 
  물론 이런 갈등은 어린 시절에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생 동안 
우리는 이런 갈등을 안고 살아간다. 소유욕이 강할수록 그것을 잃었을 때 
받는 충격은 더 큰 것이다. 여하튼, 5세 정도 아이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완벽함에 어떤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을 끔직히도 두려워한다. 따라서 힘센 
것에 높은 가치를 두는 아이라면, 자신을 위축시키거나 약점을 노출시키는 
것에 특히 강한 반발을 보인다. 자기 누이에게 자신의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던 여섯 살 난 사내아이가, 어느 날 이웃집 아이와 싸우다가 두들겨 
맞았다면, 그 아이에게는 그것이 단순한 싸움의 패배가 아니라 자기 인생 
전체의 패배로 여겨질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잘 먹이고, 재우는 수단으로 아이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하곤 한다. 예를 들어, 힘센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힘이 약해질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이걸 먹으면 힘이 세진단다" 하는 부모의 권유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될 것이다.
  남자아이나 여자아디 모두 소유물을 잃으면 과민 반응을 보인다. 이런 
반응 역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고, 그것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심리다. 어떤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고 
금방 찾지 못할 때 아이들은 굉장히 화를 낸다. 여자아이들은 좋아하는 
인형옷을 입히지 못할 때 불안해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옷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느냐'가 아니라 '그 옷이 무엇을 대신하느냐'이다. 그 옷은 
여자아이에게는 자신의 일부를 의미한다. 그런 옷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자기의 삶이 불확실해지는 것이며, 변하는 것이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잃어버릴까 
봐 불안해 하는 상반된 두 감정으로 인해, 아이들은 살갗을 조금 긁혔을 
때에도 즉각적인 관심을 요하며 아주 작은 상처에도 당황하고 두려워한다. 
머리를 잘랐거나 새 옷을 입었거나 하는 변화들도 이들에게 기쁨과 공포의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줄 수 있다. 아이들은 이런 변화들이 자신의 
완벽함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불안해 하기 때문이다. 낡은 장난감이나 
누더기 이불까지도 아이들에겐 보물처럼 귀중하고 자기 자신처럼 소중한 
것이다.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자긍심은 아이들의 성기에서 비롯된다. 아이에게 
성기는 아주 소중한 것이며, 또 온갖 환상이나 불안이 성기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이를 직접 표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5세 정도 된 아이들은 
자신의 성기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성기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이 생기면 아이들의 공포심도 거기에 따라 커지는 것이다.
  이러한 발달 단계에서의 심리적 특성들을 고려할 때, 응급 수술이 아닌 
이상 어떤 수술도 이 나이에는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선택의 여지가 
있는 수술이라면, 되도록 4세 이전에 미리 해 주거나 7세가 될 때까지 
미루는 것이 좋다. 꼭 이시기에 해야 할 수술이라면, 사전에 대화를 통해 
이러한 어린이의 느낌을 충분히 이해하고 마음의 준비를 시킴으로써, 
아이가 받을 충격을 다소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연령층의 이러한 심리적 측면을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이것을 
이해해야만 4--7세 사이의 어린이 환자와 성공적인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신체 손상도 두려워하는 그들이 의사를 두려워할 것은 
당연한 이치다. 더욱이 의사에게 가까이 가서 아픈 곳을 말하고 
진찰받는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큰 두려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가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위험으로 느껴지고, 자신의 건강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은 마치 곧 수술이라도 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문진할 때는 너무 단도 직입적으로 서둘러선 안 된다. 어떤 의사가 
한 소년에게"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더니,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고추를 
잘라 버릴 거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4--7세의 어린이 환자에게서 뭔가를 얻어내고자 한다면, 
직접적인 질문 대신 불분명하고 일반적인 간접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만약 직접 본론으로 들어가 "나는 이러이러한 의사인데, 어디가 아파서 
왔지?" 하고 묻는다면 아이는 틀림없이 "난 아무 데도 안 아파요"하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대답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고, 고집도 아니며, 
거짓말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단순히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방어일 
뿐이다. 아이로서는 첫째, 자신의 완벽함을 유지하고 싶고, 둘째는 
아픈데에만 흥미가 있는 의사로부터 어떤 공격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전혀 아픈 데가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자신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4--7세 
사이의 아이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런 특징들을 그보다 더 나이 
많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에 
상관없이, 의사는 아이들이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병에 걸렸더라도, 그리고 벼을 치료하고 나서도 여전히 
힘세고 아주 튼튼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는 
아이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그가 얼마나 많이 자랐으며, 얼마나 
튼튼해 보이는지, 그리고 얼마나 얼굴색도 좋아 보이는지 등을 이야기해 
주면서 아이의 좋은 점들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 또는 아이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야구나 수영같은 것들에 대해 먼저 물어본 후, 
점점 신체에 관한 이야기로 접근해 가는 것이다. 물론 이때도 아픈 
부위에서 먼 곳부터 질문해 나가야 한다. 때로는 아이의 건강한 부분들을 
하나한 짚어감으로써 아이가 자기에게 적어도 건강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건강한 곳들을 몇 군데 언급한 후에 "배가 좀 
아프다 그랬던가?", "아침을 안 먹었다면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한편 아이의 취미나 장점, 건강한 신체 부위들을 언급하면서 
충분히 안심을 시킨 다음 차차 증세로 접근하게 되면 아이는 자기가 아픈 
곳을 쉽게 한두 가지쯤 이야기해 줄 것이다. 
  형제 자매가 있는 아이라면, 본인에 과한 이야기 대신 주변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다 의사의 목표가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아이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할 것이고 간간이 자신의 이야기도 해 줄 
것이다. 
  4--7세 어린이와 이야기할 때 유용한 화술이란, 결국 누군가에게 
공격당하거나 자신의 귀중한 신체에서 뭔가 잘못된 것을 찾아낼까 봐 
두려워하는 어린이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 다시 말해서, 의사는 
아이들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대단한 자심감을 갖고 있으며 그만큼 신체적 
손상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는 것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해서 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나이 또래의 용감한 아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어떤 
아이들은 자제심이 강하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협조적이고, 용감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속지 말라! 그 아이는 속으로 떨고 있다. 그 아이 
속에는 무서워 떨고 있는 다른 아이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용감한 척 
하는 아이로부터는 어떤 정보도 얻어낼 수 없을뿐더러 의사로서 전혀 
도움을 줄 수가 없다. 의사는 이런 아이에게 이끌려가서도 안 되겠지만, 
아이가 계속 그렇게 하도록 부추겨서도 안 된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무서워해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용감한 척, 무섭지 않은 척 하고 싶은 걸 
다 안다는 것, 하지만 무섭거나 아프면 울어도 괜찮으며 운다고 해서 
아무도 약하고 못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 등을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의사가 할 치료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의사가 단지 진찰만 
하겠다거나, 주사만 놓을 것이라거나, 혹은 편도선만 제거할 것이라는 
말들이 믿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도 해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진찰을 받을 때 굉장히 
아플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어쩌면 무시무시한 기계를 쓸지도 
모른다거나, 혹은 마치 시계나 자동차를 검사할 때처럼 자신의 몸을 
완전히 분해해 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해 
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주사를 무서워하는 것은, 주사 바늘이 정원에 물 
주는 호스만 하고, 길이는 발 길이만 한데, 그 바늘로 주사를 맞으면 
주사맞은 구멍이 영원히 남고 그 구멍으로 계속 피가 흘러나와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사바늘이나 주시가, 혹은 
청진기 등을 직접 만져보게 함으로써 공포를 없애고 친숙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편도선 절제술 같은 경우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그런 공포와 더불어, 편도선을 없으면 살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것이라거나, 
편도선을 제거하려면 자기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절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두려움들은 아이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차분하게 이야기해 주고 안심시켜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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