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너 살 된 어린이의 경우,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유아기와는 상황이 아주 달라진다. 말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유아기와는 상황이 아주 달라진다. 말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의사와의 대화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유아기 때와 마찬가지로, 낯선 사람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갖고
있을뿐더러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의사를 더욱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니까 무엇인가를 알아들을 수 있고, 또 설명해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의사로서는 한결 수월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의사에
대한 두려움이 대화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 다음 난점은 이 시기의 아이들은 무슨 말이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마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비유나 농담 또는 추상적인 이야기는 금물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직선적이고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융통성 있게
해석할 능력이 없다. 모든 것은 사실이고, 의미는 단 하나뿐이며, 말을
하는 의도도 단 하나뿐이다. 추리를 하긴 하지만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
의존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의사는 어린이에게 말을 할 때 단어의 선택에 신중해야 하며 쉬운
단어만을 선택하되 비유적인 말은 삼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말한 것을
아이에게 다시 말해 보게 함으로써,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조심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자기가 들은 것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버리고 만다.
어린이들이 순진하고 매력이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논리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린이의 1+1=2와 같은 직선적이고 단순한 사고방식 때문에
어린이를 좋아하게 된다. 만화가들도 이런 점에 착안하여 만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이 때론 어른들을 무척 당황하게도 만들므로 그
점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엄마가 '산촌은 돼지'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아이는, 며칠 후 집에 온 삼촌에게 꼬리를 보여달라고 조른다. 개인적인
비유로 쓰인 말들을 어린이는 말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해서 당황스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소리를 듣고는 한쪽 얼굴은
어디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아이들은 '개판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와
같이 비유적으로 쓰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밑에 깔려 있는 의미를
이해하기보다는 개나 말, 귀와 같은 낱말 각각의 의미만을 받아 들일
뿐이다.
두서너 살 된 아이들이 말 그대로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린이의 발달 과정의 일부이며, 이런 순진성
대문에 아이들이 귀여운 것이다. 이런 점을 이용한 놀이를 어른과 아이들
모두 재미있어 한다. 어른이 아이의 코를 훔쳐가서는 손가락 사이에 있는
코를 보여주는 놀이도 이런 어린이의 순진성을 이용한 것이다. 아이들은
이 놀이를 재미있어한다. 이 놀이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코를 떼어간다는 것은 무서운 현실이다. 그러나 코가 아직도
얼굴에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맘을 놓게 된다. 그리곤 그 놀이를 또
하자고 자꾸 조른다. 그리고 매번 자기 코가 제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재미있어 한다.
또 다른 예로 어른들이 아이에게 "너무 이뻐서 깨물어 주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자. 어른들에게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칭찬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먹힐지도 모른다는 말로 들린다. 또한
어른들이 "네 눈 정말 예쁘구나? 내게 팔지 않을래?"하고 물으면,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칭찬으로 여겨지기보다는 말 그대로의 의미로 먼저
와 닿게 되는 것이다.
2--4세 아동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아이들과의 대화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그들의 또 다른 하나의 특성은 모든 물건들을 인간과 같은
특성을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처럼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책상이나 의자와 같은 집안의
모든 물건들도 자기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선풍기가 멈추면 아이들은 선풍기가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하고, 기계에서 소리가 나면 기계가 화를 내거나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아이들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며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리고 전혀 나쁠 것도 없다. 그러나 어른들이 계속해서 어린이의
비현실적인 경향을 부추긴다면, 어린이의 발달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네 살 된 남자아이가 장난감
딱정벌레를 무서워하며 지나가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딱정벌레가 자기를
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장난감
딱정벌레가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자 이제 지나올 수 있지? 딱정벌레가
잠들었으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아이에게 말했따. 그렇지만 아이는
계속해서 딱정벌레를 쳐다보며, "언제 일어나는데?" 하고 묻는 것이었다.
차라리 그 딱정벌레는 진짜 딱정벌레가 아니라 장난감이고,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도 물지 못한다고, 그리고 다시 태엽을
감아주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 더 간단하고
사실적이지 않았을까? 딱정벌레가 잠들었다는 이야기는 아이의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는데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사물을
의인화시키는 것을 부추겨 줄 뿐이다. 그렇다고 어린아이가 물건을
살아있는 것처럼 이야기할 때마다 이를 바로잡아 줄 필요는 없다. 다만,
너무 심하게 장단을 맞추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처음에는 깜짝 놀라지만 결국 사람이
조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곧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이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또 한 가지 난점은 2--4세 아이들은 함께 앉아서 오랫동안
이야기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설치고, 던지고, 부수고, 그리고 화났다거나, 슬프다거나, 무섭다거나 하는
감정들을 드러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웃고, 울고, 성내고,
두려워하고, 느끼는 그대로를 곧바로 표현해 버린다. 아이들은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이고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며 의사가 설명해 주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들에게는 무엇이든 반복해서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2--4세 아동들에게는 당연한 특성들이다. 아이들이
흥미있어 하는 것은 단 한 가지, 계속 움직이는 지루하지 않은 게임뿐이다.
하지만 의사들에게는 아이들만을 재미있게 해 주기 위해 투자할 힘과
시간이 많지 않다. 다만 의사에게 비협조적인 이 어린 환자를 이해하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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