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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어린이 환자를 위하여

33.잠, 마취, 죽음은 같은 거죠

by Healing New 2020. 6. 3.

어린이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마취다. 어른들은 마취를 하면 
곧 잠이 들 것이라고 안심시켜 줄 수 있지만, 이런 말을 들은 어린아이는 
자신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 어떤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때문에 편도선 수술이나 맹장 
수술을 당연히 무서워한다. 그 외에도 수술중에 불구가 되거나 큰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두려움에 빠진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영영 마취에서 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해하기 어렵다. 개나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이 죽었을 때 "깊은 잠을 
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부모에게 들은 적이 있는 아이는 마취를 할 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욱 심해진다. 특히 친척이 죽었는데 부모가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면, 마취와 잠, 그리고 죽음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잠, 죽음, 마취 사이에는 많은 연관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취를 받아야 하는 아이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마취에 대해서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두려움은 잠을 자고 
있는 동안, 즉 무의식의 상태에서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좋지 
않은 행동이나 부끄러운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부지중 이불에 
오줌을 싼 적이 있는 아이라면, 잠을 자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마취 상태에서 이불에 
실례를 하거나, 혹은 자신이 잘 모르는 의사나 간호사 앞에서 더 부끄러운 
실수를 저질러서 그들이 그에게 화를 내거나 그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잠꼬대를 하는 아이는 마취 상태에서 
마음속에 감춰 두었던 부끄러운 비밀들을 모두 말하게 될까 봐 걱정을 
하게 된다.
  어린아이가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두려움은 일단 의식적인 자기 
통제력을 잃게 되면 자신이 난폭해져서 주위 사람들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마취중의 무의식 상태에서 갑자기 난폭해져서 엄마를 
공격했다는 것을 마취가 깬 후에 주위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던 열 살난 소년의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에 
깜짝 놀랐지만 자신의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서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후 그의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 아이가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서 느끼는 슬픔은 보통 아이들이 겪는 
슬픔보다 훨씬 더 컸고, 급기야 그를 심한 우울 상태에 빠뜨렸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동안 그는 점차적으로 
우울증과 죄의식의 이유를 밖으로 표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고, 마취 상태에서 그가 날렸던 살인적인 주먹이 어머니의 
죽음을 가져온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끔찍해서 죽고 
싶었지만 이런 비밀을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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