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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어린이 환자를 위하여

36.우리끼리만 통하는 이야기

by Healing New 2020. 6. 3.

어린이와 대화할 때 또 한 가지 어려움은 그들만이 쓰는 특수한 단어나 
화법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딘가 분명치도 않고 불합리하고 
때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대화를 끌고 간다. 묻는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 대신에 자기가 질문을 해 온다. 별 의미도 없는 질문을!
  사실 아이들은 그들만의 비밀스럽고 상징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다. 
연령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어린이들은 자기들만 아는 상징적이고 비밀이 
담긴 말이 있어서 가까이 지내는 부모들도 때론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알고 있는 단어가 몇 개 안 되는 아주 어린아이는 몸짓이나 손짓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말할 수 있는 단어가 거의 없다 하더라도 화가 
날 때는 울거나, 부수거나, 물건을 흐트러 놓는다. 또 어떤 아이는 화가 
나도 이런 직접적인 표현 대신 아주 다른 방법으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주사를 놓는 의사에게 잔뜩 화가 난 아이가 소꿉장난을 통해 의사를 
때리기도 하고 혹은 주사기를 부숴 버리기도 한다. 의사놀이는 그 
자체로도 아주 유쾌하고 재미있는 놀이다. 그런에 의사놀이를 하는 도중에 
인형에게 하는 어린이의 행동은 의사와, 의사의 진찰 및 치료 과정, 
환자였던 당신의 자신에 대한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의사의 역할을 맡은 아이는 진찰받을 당시의 자신을 상징하는 인형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옷을 찢고, 머리를 마구 쥐어박은 후 날카로운 
핀으로 세게 찌른다. 만일 그가 진찰을 받을 때 실제로 그런 대우를 
받았다면, 이런 행동은 상상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관적 감정 
경험을 표현할 때 아이들은 상상력을 동원한다. 아이들은 환자에게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특권은 의사에게만 주는 것은 아니다. 인형에게도 
환자의 역할을 하게 하여 의사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행동을 취하게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형에게, 
불쌍하게는 보이지만 그대로 누워서 아무런 저항도 말고 의사의 거친 
치료를 참아 내라고 강요한다. 그래서 마침내는  그 인형을 죽게 만들고 
장례식까지 치른다.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인형이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하게 만든다. 감자기 반항하면서 벌떡 일어나 의사를 
공격하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어린이들은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두렵고 화난 감정을 표현한다.
  존 나이가 든 6세에서 13세 가량의 잠복기에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두려움의 감정을 이런 상징적인 놀이를 통해 표현하지 않고 말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 말은 너무 상징적이거나 비밀스러워서 종잡을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여덟 살 난 사내아이가 불쑥 이런 질문을 했다. "도대체 왜 돈을 
정부에서만 만들 수 있는 거죠? 다른 사람도 만들 수 있어야지 이건 
불공평해요? 그럴 듯한 논리로 진지하게 물어 왔다. 처음 얼마간 나는 
당황했다. 처음에 그 소년이 질문한 내용은 정상적이고도 논리적인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 역시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는 내 
날은 들으려 하지도 않았고, 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왜요?"라고 되받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그의 질문인 아이의 
비밀스러운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질문 속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돈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돈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뿐이었다. 그가 진짜 분개하고 있는 
것은 독점 문제 같았다. 이러한 추측과 더불어 그의 엄마가 최근에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고 비교적 쉽게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돈을 만들어 내는 일의 독점이 아니라 아이를 만드는 
일의 독점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왜 정부만 돈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인 것 같은데?"라고 슬쩍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 
아이는 내 추측이 맞다면서 금세 빙긋이 웃었다. 그러더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그의 엄마의 임신과 관련된 자신의 감정과 환상들을 
서둘러 털어놓았다. 그는 수 개월 동안이나 이와 같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 어느 누구에게도 - 간접적으로라도 - 물어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나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싶어했고, 내가 
아이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그 중에서도 특히 아빠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다. 그는 아빠만 아이를 만들 수 있고, 자신은 안 
된다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른들을 귀찮게 만드는 아이들의 많은 질문과 이야기들은 숨겨진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자신이 겉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에 관해 기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제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뒤에 다른 어던 의미를 
숨기고 있다. 아이들의 상징적인 화법은 때론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어떻게요?", "왜요?" 등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들의 질문은 끝이 없다. 
그들이 하는 말은 비밀스럽고 상징적이기 때문에 말 속에 숨은 뜻은 
완전히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흔히 하는 비밀스런 질문 속에 
숨은 뜻은 완전히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흔히 하는 비밀스런 
질문 속에는 생명의 근원이라든지, 아이의 탄생, 또는 성별의 차이와 같은 
것들이 숨어 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점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끝없는 질문을 하게 한다. 그리고 모든 대상의 크기, 색깔, 형태, 
숫자, 모양, 기능 등을 비교한다.
  어떤 의사들은 어린이들의 이와 같은 특별한 언어를 쉽게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이런 능력은 어린이와의 대화를 이끌어 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들은 어린이들의 관심을 쉽게 파악하며 "애들 말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단 말이야"하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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