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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어린이 환자를 위하여

35.엄마가 없는 건 싫어

by Healing New 2020. 6. 3.

어린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엄마와 떼어놓아야만 할 때 또다시 대화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보통 어린이를 부모와 떼어놓게 되면 아이는 
굉장한 불안과 슬픔에 빠지게 된지만 이 두려움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이럴 때 어린이의 감정표현 방식 중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엄마와 
떨어지자마자 울음을 터뜨리거나 헤어지기 직전에 엄마를 큰 소리로 
불러대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아이가 항상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떠나도 전혀 울지 않는 아이가 있고, 또 울더라도 금세 
언제 울었냐는 듯이 울음을 멈추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엄마가 
떼어 놓고 가도 무관심하고 찾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이런 아이들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에 무감각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가 온순하고 태연해 보여도 불안과 슬픔을 느끼고 있다. 지나치게 
태연하거나 조용하고,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나, 혹은 짜증을 잘 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것 등은 이 아이도 엄마와 떠러지는 게 불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남들이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면 
슬며시 슬픈 표정을 짓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기색이 보이건 말건 간에 
엄마와 떨어지는 아이는 두려움과 상실감을 느낀다. 이럴 때 의사가 
대화를 통해서 아이의 슬픔과 두려움을 숨김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아이의 상황은 좋아질 것이다. 의사가 어린이에게 그의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면 반응이 없던 아이는 큰 소리로 울고, 울던 
아이는 더욱더 세게 울게 되겠지만, 그런 반응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 아이가 자신의 두려움을 자각하게 되면 의사나 간호사에게 
대들거나 비협조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치료자들에게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아이가 두려움을 
인식하게 되면 상태는 한결 나아지고 치료에도 협조적이 되면, 다음에 
의사들에게 진찰을 받을 때에도 훨씬 덜 무서워하게 된다.
  엄마와 떨어질 때 아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엄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엄마가 꼭 돌아오겠다고 말해 주어도 아이는 
안심이 안 된다. 부모와의 이별불안의 정도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실생활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져 왔느냐에 달려 있다. 보통,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잠시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루에 몇 번씩 사라졌다가도 배가 고프거나 필요할 때면 언제나 
나타나 주는 엄마, 이런 엄마라면 떠날 때 언제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지 
않아도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엄마와 짧은 시간동안 
떨어지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도 아플 때는 오랫동안 내재되었던 두려움이 
크게 노크를 하고 나오기 일쑤다
  아이들의 이러한 심리 상태를 아는 의사는 아이와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아이가 엄마랑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며 엄마가 안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얼마나 큰가를 그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된다. 아이는 두려움을 말로 완전히 바꾸어 표현할 
때 안심이 된다. 그래서 의사느 아이가 이별불안을 말로 표현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렇게 해야 엄마가 꼭 돌아올 것이라고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다.
  대개의 의사들은 어린아이가 울면 괜히 자기가 불안해져서 우선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서둔다. 하지만 아이를 안심시키고자 한다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어린이의 걱정, 불안, 그리고 상심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난 
뒤에 하는 말이라야 효과가 있다. 아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는 것은, 성인 환자에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검토하지도 않은 채 잘못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과 같다. 자신을 걱정스럽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른채 안심시키려고만 하는 의사의 말을 믿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바보일 것이다. 따라서 아이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많이 알면 
알수록 아이가 그 두려움을 이해하고 극복하게 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엄마와 떨어질 때의 불안은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걱정 이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러한 이유 중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엄마가 이제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나쁜 아이여서 엄마가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거나,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지금까지 엄마 말을 듣지 않은 데 대한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픈 아이에게 특히 심각한 일이다. 나쁜 짓을 하면 병에 
걸린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고 실제로 엄마 말을 듣지 않아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아이는, 그가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아프게 되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가 아플 때 이런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많은 
원인들을 우리 가정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 말 안 
듣고 손을 씻지 않은 채 밥을 먹으면 병균이 들어가 병에 걸린다", 
"잠자기 전에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감기에 걸린다", "착한 일을 하지 않고 
제때에 밥을 먹지 않으면 키가 자라지 않는다"는 등 수많은 위협을 들으며 
산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는 어딘가 아프면 그건 곧 자기가 잘못해서 
아픈 것으로 생각하고, 따라서 이제 엄마는 자기가 싫어져서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두려움은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 무서운 것이어서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의사는 아이가 두려운 감정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로 하여금 자신이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걱정하고 있음을 인정하게 한 후에 "나는 네가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단다. 넌 엄마가 
네가 나쁜짓만 하는 것에 질려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고 있는 거야." 만일 어린이가 이 말에 관심을 
보이는 듯하면 의사는 "넌 좋지 않은 일을 해서 아픈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하면서 좀더 자세히 아이의 생각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가 
의사의 이런 주장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 
좀더 상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며, 어린이를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 아이 스스로 자신이 품어왔던 불안, 공포를 말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가 의심스러웠던 모든 것을 말하게 되면 이제 의사는 안심하고 
그 오해를 풀어줄 수 있게 된다. 병이 난 건 그가 나쁜 짓을 했기 때문도 
아니고, 더구나 엄마는 그것 때문에 화나지 않았으며, 약속한 대로 꼭 
돌아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차분히 해 주면 된다.
  엄마와 떨어지게 된 아이들이 갖는 감정은 두려움만이 아니다.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잔뜩 화가 나 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든 엄마에게 화가 난 것이다. 이렇게 화가 나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현재 자신에게 엄습해 오는 두려움이 너무나 엄청나서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감춰 
두었다가 어떤 특별한 경우에 위장된 형태로 표현한다. 엄마에 대해서 
화가 난 아이들이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 특히 엄마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화가 나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은 
엄마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무시무시한 사건들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런 상상들은 대개 엄마의 안전을 걱정하는 내용이다. '왜 엄마가 안 오는 
거지? 엄마가 어디 아픈 것은 아닐까? 다리가 부러졌거나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아니겠지? 혹시 엄마가 죽었을지도' 하면서 엄마를 걱정하는데 
어린이는 엄마가 잘못되었으면 어쩌나 하는 현실적인 걱정과 동시에, '날 
버리고 떠났으니 마땅히 그 벌을 받아야 해'하며 엄마에게 무슨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화가 난 아이들은 엄마가 돌아왔을 때에야 비로소 엄마를 향해서 
그 화난 감정을 터뜨릴 수 있게 된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는 동안, 
아이들은 자기가 엄마에게 화가 나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그 위험의 상황이 다 지나가고 엄마가 다시 아이에게로 돌아오게 
되면 - 특히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친근한 태도로 나타났을 때 - 
그때서야 비로소 아이는 자신의 화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화가 난 아이들은 막상 엄마가 돌아왔을 때 엉뚱한 방향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거의 미칠 듯이 엄마를 찾으면서 아우성치던 
아이가 막상 엄마가 돌아오자 엄마라는 대상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척 하면서, 엄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신 엄마가 없을 때는 손도 대지 
않던 장난감을 집어든다거나, 또는 의사나 간호사에게 짖궂은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아이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해서 가련한 
엄마를 외면서해 슬픔에 빠뜨리려고 한다. 이것은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에 대해 아이가 줄 수 있는 벌이다. 하지만 아이는 자기 자신이 
견디지 못해서 이런 행동을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 곧 침묵을 깨고 
엄마에게 달려가서는 기쁨과 안도감에 엉엉 울어 버린다.
  많은 경우, 이렇게 엄마를 다시 만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어린이의 진짜 
감정이 노출된다. 특히 엄마와 떨어졌을 때 아무런 불평도 못했던 아이는 
이제야 자신의 감정을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여유를 갖게 된다. 이런 
아이들은 엄마가 없는 동안 울지도 않고 방실방실 웃으면서 다른 아이들과 
자유롭게 뛰어 논다. 마치 엄마가 없는 그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은 병원에서 착한 아이 혹은 적응을 잘 하는 
아이로 통한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착한 
행동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너무나 놀라고 두려운 나머지 
자신의 진짜 감정을 내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엄마가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역시 화가 난 
아이처럼 엄마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 무관심한척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엄마가 나타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린다. 참았던 설움의 
둑이 터진 듯, 엄마가 없는 동안 울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서럽게 울어댄다. 이런 행동은 엄마와 떨어져 있는 동안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린이가 내심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던 가에 대한 좋은 증거이다. 엄마가 돌아와 자신의 눈앞에 
서 있으니 이젠 엄마와 떨어져 있는 동안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그 
상실감을 밖으로 내비칠 수 있을 정도로 안심이 된 것이다. 엄마를 본 
순간 억눌려 있던 아이의 두려움은 갑자기 물밀 듯 밀려 나온다. 
엄마에게는 이렇게 심하게 울면서 자신을 맞이하는 아이를 보는 것이 기쁜 
일만은 아니다. 엄마는 당황한다. 아이가 자신을 보고 기뻐서 활짝 웃어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때 의사는 아이 엄마에게 아이가 울거나 화를 
내는 것은 엄마를 보고 너무 좋아서 그러는 것이며, 이런 행동은 자신의 
슬프고 화난 감정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 줌으로써 당황하는 엄마를 안심시킬 수 있다.
  가끔 병원 직원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고, 엄마가 오면 아이의 버릇이 
나빠져 치료에 역효과가 나기 때문에 부모의 방문을 금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병원에서 내내 협조적이고 착하게 굴었던 아이들이 부모의 
방문과 동시에 망쳐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겉으로 보기에 조용한 아이는 사실은 조용한 게 아니라 겁을 먹고 있는 
것이며, 엄마가 나타나서 울고 버릇이 나빠진 것은 그만큼 안도감을 
찾았다는 증거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거나 표출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이러한 
방법들을 아이나 부모 모두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당황하게 되는데, 
의사는 대화를 통해서 이들을 도울 수가 있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게 될 
때 일어나는 이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치료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의사가 이러한 부작용들을 발견하여 그것을 아이에게 지적해 주면, 그 
해로움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문제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병이 마치 
자기들의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여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아이를 입원시키는 것이 괴롭고 미안해서 입원을 거부하거나 다른 
의사에게 데려가겠다고 하는 등 치료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의사는 
아이를 치료하기 전에 부모의 이러한 감정을 잠시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죄책감을 이해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치료에 더 협조적이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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