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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어린이 환자를 위하여

38.자위행위에 대한 갖가지 생각들

by Healing New 2020. 6. 3.

솔직히 청소년의 자위행위에 대해서 "이것이 전부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의사는 없다. 따라서 의사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실언을 적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먼저 자위행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 책의 '제 8장 지나치게 
친절한 환자는 요주의'에서 환자에게 일어날 위험과 조심해야 할 점 등을 
이야기한 바 있다. 자위행위와 성행위에 대해서 충고를 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자위행위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는, 의사가 개인적이고 
전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혜롭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환자의 자위행위를 책망하거나 용서해야 한다. 의사가 청소년에게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행위에 대해 청소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10대 환자가 성행위에 대해서 물어볼 때에는, 먼저 환자 자신이 
성행위에 대해서 대체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넌지시 물어보거나, 그 
문제에 대해서 다소 간접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자위행위를 하는지, 한다면 얼마나 자주 하며,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등을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은 좋지 않다. 자위행위에 대해서 환자가 가지고 
있는 견해를 듣는 것은 환자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 환자에게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하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과장해서 말을 하거나, 아주 일부만을 말해서 정보가 불완전하거나, 
혹은 상대방을 의식해서 너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 치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 견해를 이야기하게 하면 
자신에 관한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아주 자세히 이야기를 해 준다. 그뿐 
아니라 자위행위에 대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 모두를 솔직히 이야기해 
준다. 환자의 이런 이야기는 자위행위에 대한 환자 자신의 습관과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의사에게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열두 살 난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는 자위행위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완강히 부인하는 바람에 
이야기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형의 이야기를 하게 했더니 말문이 열렸다. 
마침내 그 아이는 편한 마음으로 형의 자위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니 
형이 자위행위를 그만두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하며 
자위행위를 자제하지 못해서 성기를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하는 형에 
대해서 동정어린 어투로 이야기했다. 얼마가 지나서야 이 모든 것이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청소년이 자위행위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친한 
친구를 대신해서 의사에게 자문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고민하고 있는 
친구는 바로 자기 자신이고 너무나 부끄러워서 자신임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 환자 - 때론 그렇게 어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 대개 자신의 
자위행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감춘다. 의사는 환자가 잘못 알고 있는 
자위행위에 대한 지식을 올바로 고쳐 주면서 자위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다. 만일 한 남자아이가 자신은 자위행위를 하면 뼈가 
무르게 되고 더 이상 성장하지도 않고 바보가 된다고 믿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자위행위에 대한 두려움의 대부분은 그것이 나에게 해를 끼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외에도 육체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두려움을 비롯해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자위행위를 유치하고 타락한 행위라고 여기며 
중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의지력이나 자제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청소년은 성적인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청소년이 자신을 억제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의사는 단순히 "자위행위라 전혀 나쁜 것이 아니란다. 혹시 자위행위를 
했다고 해도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야"하고 안심시키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자위행위가 해로운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2차적인 문제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완전한 통제력을 가지기를 
원한다. 의사는 자위행위에 대한 염려 뒤에 숨어 있는 이러한 세부적인 
측면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이런 두려움과 자책감을 말로 옮기게 해서 
도움을 줄 수가 있다.
  의사는 이렇게도 얘기해 줄 수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욕구를 참고 조절하는 자제력을 아주 중요시한단다. 
때문에 자신의 자제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주 부끄러워하고, 
자위행위를 참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은 아무것도 자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 버리기도 한단다. 사실 너만이 아니고 모든 남자아이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단다. 그러나 성장해 가면서 언젠가는 자위행위를 
자제할 수 있게 될 거야. 그리고 자위행위를 한다고 해서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그 나이 또래의 모든 청소년들이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 
주는 것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만, 의사 자신도 어렸을 때 같은 문제로 
고민한 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의사가 자신도 어렸을 적에 
자위행위를 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의사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의사를 성공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부끄러운 실패자로 여기게 되어 그의 말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나약함에 대해서 너무 부끄러워한 나머지, 이 아이는 비록 
수십 년 전의 일이지만, 의사가 자위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를 
나약한 인간으로 보게 된다. 소년이 찾고 있던 사람은 자신과 같이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자제력 있는 강한 사람이며, 그런 강한 어른에게 도움을 
받고자 의사를 찾아왔던 것이다. 자신처럼 나약한 사람에게 기대어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또 다른 유형의 두려움을 낳게 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은 자신이 비난을 받을까  봐 남들 앞에서 자위행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자위행위로 고민하는 그를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 취급을 할 까 봐 두려워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사람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그랬는데 뭐"라고 말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의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되 너무 잘난 체 하는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되고, 너보다 나을게 없다는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된다.
  의사는 10대 환자들이 설치해 놓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함정에 
걸려들면 의사는 해선 안 될 말을 하고 마는 것이다. 의사는 함정에 빠져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자위행위에 대해서 일반적인 정의를 한다거나 경솔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의사가 함정에 빠지게 되는 가장 흔한 경우는 청소년에게 자위행위가 
전혀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나서 "너무 많이 하지 않는다며"이란 
단서를 붙일 때이다. 이는 자위행위가 너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겠지만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말과 같다. 환자는 의사가 한 말에서 보여지는 
명백한 모순을 재빨리 알아차린다. 그렇다고 그 일관성이 없는 말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진 않지만 당황하거나 의사를 비웃으면서 도망치려 할 
것이다. 만일 환자가 의사의 말을 질책하려 든다면 의사를 아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의사가 "하지만 너무 자주 하지는 말아라"했을 때 "너무 
자주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죠?"하고 아주 적절한 질문을 할 것이다. 
의사가 자신의 의견을 일반화시키거나 애매하게 해서 곤경에서 빠져 
나오려 하면 청소년은 아주 구체적인 것을 질문하고 질문의 횟수를 늘려 
의사를 당황하게 한다. "일년에 한 번 정도 자위행위를 하는 것은 
괜찮은가요?",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 주일에 한 번은 어때요? 
하루에 한번은?"하며 의사를 진퇴 양난의 상태로 몰고 간다.
  청소년이 얼마나 자주 자위행위를 하면 괜찮은가를 물을 때에는 
반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너는 얼마나 자주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니?" 하고 물었을 때 그가 의견을 말하면, 그 이상도 해롭지 
않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좋다. 청소년들은 흔히 자위행위를 
너무나 많이 하면 정액이 모두 흘러나와 성인인 되었을 때에는 아이도 못 
나혹, 또 정액이 바닥나면 나중엔 정액 대신 피가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횟수에 대해서 어떤 아이들은 너무 자주 하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너무 
오래 자위행위를 하지 않는 것도 해로운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배출될 곳이 
없는 정액은 계속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터져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사정(사정)을 안전 밸브 장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다른 걱정의 유형은 성욕이 너무 지나치면 자제력을 잃고 성 폭행이라도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생각하고 있는 위험은 
실제로는 자위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많은 의사들은 밤에 몽정(몽정)을 하기 때문에 정액이 배출되므로 
자위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말로 청소년들을 
안심시킬 수는 없다.  사실 청소년들은 몽정 자체를 아주 무서워하고 있다.  
잠자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몽정을 자제할 수 
없는 성적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몽정을 예방하기 위해 자위행위를 
하는 아이도 많다. 
  자위행위에 대해서 청소년이 자문을 구하면, 의사는 환자가 자기에게 
오기 전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환자의 부모들은 어떤 이야기를 해 주었으며 목사님이나, 
다른의사, 학교 선생님, 혹은 보이스카웃 단장, 친구들은 어떤 충고를 해 
주었는가를 물어 보아야 한다.  어떤 청소년들은 남에게 자문을 구하기 
보다 그에 관련된 여러 가지 책을 구해서 읽는 경우가 있다.  의사는 각 
학교도서관에 성에 관한 책들이 엄청나게 많이 열람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의사는 아이들이 대화의 중요한 대상인 엄마, 아빠, 목사님, 그리고 
책으로부터 성에 대해서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를 듣고나서 충고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대뜸 그것이 틀렸다고 하는 것보다 아이가 
자신이 들은 이야기라고 한 그 말들을 재분석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의사를 더 믿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으므로, 
비교하거나 대조하는 것이 혼란만 가중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극심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안심을 시키느라 지금껏 해 온 자위행위는 해로운 것이 아니니 
괜찮다고 말하면서 심지어 자위행위를 부추기기까지 한다.  이는 
자위행위로 자신을 해치는 일은 없으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얼마든지 
하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결코 좋은 충고가 아니다.  
자위행위가 해로운 게 아닌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계속하라는 암시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이미 위협받고 있는 아이의 자제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역할만 할 뿐이다.  자위행위가 해롭거나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부인(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청소년이 자위행위를 
멈추려고 하거나 빈도를 줄이고자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결정할 일이다.  
만일 아이가 그런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한다면, 의사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하는 게 옳을 것 같은데?"라고 말해 주는 게 좋다. 
  지나친 죄책감, 창피, 두려움 때문에 거의 광적으로 자위행위를 그만두려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증거다, 하지만 청소년이 아무런 
죄책감이나 창피도 못 느끼고 자유롭게 자위행위를 한다면 이는 더더욱 
정신적으로 건전치 못한 것이다.  청소년이 성에 대해서 약간의 죄책감을 
갖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한 감정은 내적 자제력으로 
작용할 수 있고, 청소년으로 하여금 적절한 사회적, 개인적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이런 감정들이 너무 지나쳐서 
청소년의 성격 형성 및 성장에 지장을 초래하는 정도라면 좋지 않다. 
  성 문제가 심각한 불안감을 가져온다든지 의사와 대화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할 때는, 정신의학적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성의 문제는 언제라도 
신경증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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