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신체 손상이나 외과적 처치, 마취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례를 소개하겠다. 여기서 소개되는
증례는 자신의 신체 손상에 대한 두려움을 좀 특별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일곱 살 된 소년의 이야기다.
어느 날 일곱 살 된 남자아이가 칼로 두꺼운 판자를 잘라 비행기를
만들며 놀고 있었다. 비행기 만드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칼을 만지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다는 비밀스러운 자신의 행동도 무척
재미있었다. 이렇게 한참을 푹 빠져 즐겁게 놀다가 그만 손을 베고 말았다.
손가락의 상처는 크고 깊어서 계속 피가 흘러나왔다. 놀란 아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상처 입은 손을 즉시 붕대로 감아
지혈을 시켰고, 곧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상처가 깊어서
봉합하려면 전신마취가 필요했다. 수술이 끝나고 아이는 마취에서 무사히
깨어났으며,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성공담일
뿐이었고 소년은 정신과의사에게 그가 그동안에 경험한 숨을 얘기를
털어놓았다.
아이는 담담한 어조로 자기 손이 거의 잘릴 뻔 했다고 얘기했다. 엄마가
병원에 가자고 했을 때 아이는 몹시 무서워했다. 그 이유는 엉뚱하게도
벼원에서 팬티를 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엉뚱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계속해서 엄마에게"병원에서 내 핀티를 벗기면 어떻게
해?"라고 물으며 "내 팬티를 못 벗기게 해줘"하고 애원했다. 엄마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일단 아이를 안심시켰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소년은
의사와 간호사에게도 똑같은 부탁을 했다. 그들은 아이의 겉옷을 벗기고
가운으로 갈아 입혔다. 그리고 속옷을 벗기려 하자 소년은 완강히
거부했다. 그가 너무나 큰 소리로 비명을 질러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팬티를 계속 입고 있도록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실에서도 간호사와
마취전문의가 다시 그의 팬티를 벗기려해 보았지만 실패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 났을 때 아이의 생각은 오직 한 가지,
팬티가 제대로 있는가 하는 것이었고 곧 손을 뻗쳐 자기가 팬티를 아직도
입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팬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홑이불 속에 발가벗긴 채로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그가 두려워했던
바로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감쪽 같이 자신을
속인 것이 슬프기도 했고 한편으론 화가 났다. 엄마와 의사,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다.
아이가 어른들의 속임수에 대해서 분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어른들의 잘못을 시인한다고 해도 의문은 남는다. 왜 팬티가
벗겨지는 것을 그렇게도 무서워했을까? 팬티를 계속 입고 있으려 하는
아이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6세에서 12세나이의 어린이와 대화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주장은 어이없게 느껴지지만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 어리석은 주장을 하는 거지?
또는 팬티를 입고 있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할까? 하면서 어깨를 으쓱하고
그냥 무시해 버린채, 그것은 일시적인 변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
버린다면 의사는 결코 어린 환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뭔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아이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린다.
아이가 팬티를 벗으려 하지 않는 이유로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점잖아서 고추와 항문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의 반응은 너무 지나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만지지 말라는 날카로운 칼을
만졌던 것과 같이 고추를 만져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고도 고추를 몰래
만진 죄의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 가지 금기사항을 어기다가
자신의 손을 심하게 베었듯이, 또 다른 금기사항인 고추만지기를 했기
때문에 고추를 베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팬티를 계속 입고 있음으로써, 고추를 만진 증거를 숨기려 했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아주 그럴 듯하지만 다소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으며,
아이의 두려움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은 아닌 것 같다.
왜 이 아이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기 팬티를 벗기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을까. 보다 더 직접적이고 단순한 이유를 우리는 일곱 살짜리
소년이 자기 불안을 방어하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손의 상처가 깊어서
피를 많이 흘렸다. 엄마는 놀라서 급히 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렇다면 바로
그때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두려움이
너무나 강하게 자신을 압도하면, 두려움의 원래 형태로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이 두려움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두려움이 필요해진다. 이 소년의 경우, 자신의 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팬티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팬티는 사실상 손을 상징하게 되었다. 소년이 팬티를 벗기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고집을 피웠던 것도, 사실은 의사나 간호사를 포함한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손을 자르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애원이었다.
만일 소년의 불안에 대한 이 해석이 옳은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해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소년의 경우에는 그가 정말로
걱정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그에게 말해 줌으로써 확인되었다. 나는
그가 정말로 걱정하는 것은 팬티가 벗겨지는 것이 아니라 손을 잃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가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손을 아래로 뻗어 팬티가 벗겨진 것을 알고 절망감에 빠진 것을 보면,
팬티를 확인하는 그 행동 속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네가 마취에서 깨어나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은 팬티가 아니고,
네 손이 잘려져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을 거야. 팬티가 벗겨진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네 손이 잘려나간 것으로 알았을 거야. 그래서 그때
네가 그렇게 크게 놀랐던 것이 아닐까?" 내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마취에서 깨어나 자기 손을 보니 붕대에 칭칭
감겨서 손가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몹시 놀랐으며 분명 손이
잘려나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증례에서 특이한 것은, 소년이 두려워한 것이 손을 잃는 것이 아니라
팬티가 벗겨지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표면상의 두려움은 하나의
이동이었다. 그에게 손을 잘라내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에, 이 두려움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상실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대체된 두려움은 너무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어서 의사를 포함한 어떤 사람도 알아채지 못했다.
손을 베고 수술을 받는 이런 손상 경험은 아이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를 피할 길은 없다. 사고와 수술은 하나의 위험이다.
그리고 이런 위험을 가능한 한 피하고 싶지만 위험없는 세상은 없다.
그리고 아이가 무서운 손상 경험을 한다고 해서 그 때마다 그의 인격이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경험이 그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줄
것이며, 또 모든 다른 경험과 마찬가지로 아이의 인생에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손상 경험이 심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결과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그 정신적
외상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통합시키고, 그 정신적 쇼크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반응을 이해할 수 있는 아이의 능력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만일 의사가 아이들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아이들이 자주 보이는 상징적
요구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또 아이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무엇인지를 적절하게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정신적 외상을 삶의 일부로
융합시키는 아이의 능력은 향상될 것이며 위험을 줄게 될 것이다. 만일
의사가 이러한 두려움의 실체를 감지하여 아이에게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을 잠시 미루고, 대신에 아이가
자신의 두려움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그 두려움은 어느 정도
감소될 수 있을 것이며, 최소한 그가 품고 있었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말 못하던 두려움을 말로 표현하고 나면, 그로
인한 위험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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