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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어린이 환자를 위하여

39.아이보다 어려운 부모들과의 대화

by FraisGout 2020. 6. 3.

정신과 치료에서 어린이의 치료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그 부모도 함께 
치료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부모들이 치료에 협조적이든 
아니든 어린이의 치료에서 부모를 제외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들과의 
대화를 위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진단 과정에서 자세한 병력을 얻는 데 부모, 특히 엄마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재부분의 부모는 아이의 질병에 대한 내력과 아이의 
출생에서부터 성장에 이르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어린아이는 
엊그제 일어난 일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의사는 부모에게서 아이의 병력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얻어내야만 
한다. 어떤 부모들은 의사 이상으로 관찰력이 예민하고 또 필요한 부분을 
요령있게 의사에게 말해 주기 때문에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떤 부모들은 관찰력도 예민하지 못하거니와 아는 것도 요령 있게 
기술하지 못한다.  마치 맹인이나 귀머거리라도된 듯이 아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서 할 말이 없다는 부모들도 있다.
더한 경우는 부모의 이야기가 갈팡질팡이어서 도움은커녕 혼란만 
가중시키는 경우이다.  그렇게 되면 의사는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계속 
아이를 치료하게 되고 따라서 적절한 치료는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다.
 또 어떤 부모는 표현력이 부족해서 정확한 정보를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지나치게 자기 억제가 심해서 말을 아끼는 듯하다.  아이의 
출생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도 단순히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해 내지 못한다.  아이가 여섯 살이라면 그런 부모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겨우 "다른 여섯 살 짜리 애들이나 같아요"일 
뿐이다.  현재 아이의 질병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해도"오늘 아침밥을 
못 먹었어요"라고 말하고, 아이의 생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덧붙이지 
못한다.  이런 부모들이 의식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이에게 일어난 일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않는 것 또한 아니다.  단순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뿐이다.  이런 부모와 대화를 해서 아이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 의사는 절망적인 기분을 맛보게 된다.  이런 부모에게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용케 알아맞힐 수 있기를 바라면서 수십 가지의 직접적인 
질문을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얻어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아이가 
구토한 적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아이의 엄마는 "아니오"라고 물으면 
"예"라고 대답을 할 수도 있다.  더구나 이런 사람들은 생각이 너무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사건을 다른 사건과 연결시키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일들을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표현하지도 못한다.  이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방법은 그와 같이 자기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는 부모에게 사실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를 제시하거나 어떤 가상의 사건을 이야기해 준다.  이런 방법을 
사용할 때, 그렇게 융통성이 없는 부모는 의사가 예를 든 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믿어 버릴 수도 있으므로 의학적인 예를 드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먹는 이야기를 예로 드는 것이 좋고, 여행이나 영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괜찮다.  먹는 것을 예로 들 때 이야기의 순서를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내가 당신에게 당신의 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고 했을 
때 당신은 간단하게 '여섯 살인데요.  더 이상 말할게 있나요?' 라고 
말했지요.  그러나 내가 바라는 대답은 예컨대,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최근에 식당에서 먹은 식사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고 했을 때의 대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상대방이 당신 식으로 대답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식사였어요. 그밖에 또 할 말이 있나요?라고말하겠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은 똑같은 식사에 대한 질문을 받아도 식사에 대해서 반 시간은 
이야기할 정도로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남편이 나를 아주 좋은 
레스토랑에 데리고 갔는데 우리는 아주 즐거웠어요. 버스를 타고 갔어요. 
차창으로 보이는 날씨는 화창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어요. 우리는 
레스토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너무 너무 행복했어요. 그런데 그 
레스토랑의 음식은 형편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좀더 나은 게 없냐고 
물었지요. 그 레스토랑의 종업원들은 무척 친절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주었어요. 그 때 우리의 주문을 받은 웨이터는 나이가 좀 든 사람이었는데 
기분이 좀 나쁜 것 같았어요.  아마 다리를 다친 것 같았어요.  그래도 
자신의일에는 최선을 다했어요.  우리에게 그날 특별 메뉴가 수프라면서 
맛있을 거라고 해서 우리는 수프부터 주문을 했지요.  맛은 그런 대로 
괜찮았어요.  국수와 향료를 듬뿍 넣은 뜨거운 수프였어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문가 좀 다르지요?'
이렇게 말해 주어도 어떤 부모들은 말귀를 못 알아먹고, "우리 아이는 
착한 애예요. 그런데 지금 많이 아파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라고 밖에 
말하지 못한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약점에 대해 지나치게 만감한 나머지 의사에게도 
감추려 한다.  그리고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병 증세를 과장해서 말한다.  
"기절할 정도로 무섭게 먹어대요," "잠을 한숨도 안 자요", "매주 감기에 
걸려요", "신장(신장)이 나빠요", "한 달에 한 차례씩 구토 증세를 
일으켜요"등 아주 과장해서 이야기한다.  이렇게 과장해서 말하는 
부모들의 의도가 항상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이의 상태가 나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런 과장된 말을 하는 
것이다.
또 어떤 부모들은 의사의 관심이 심한 증세나 큰 사건에만 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해서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건은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 어떤 부모들은 의사에게 꾸지람이라도 들을까 봐 되도록 말을 하지 
않고 웬만한 일은 감췌 버리기도 한다.
의사들은 이런 특성들을 고려해서 환자의 부모와 대화를 할 때 한쪽 
귀로는 말하는 내용을 듣고 또 한쪽 귀로는 말하는 어투를 살펴야 한다.  
계속해서 아이의 엄마가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과 더불어 그녀가 만들어 
내려고 하는 이미지를 조사해야만 한다.
이런 문제들은 어른 환자를 진찰할 때문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부모로부터 아이의 병력을 알아낼 때 의사는 어린이와 부모, 
그리고 의사라는 삼각관계 위에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더 복잡해진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부모와 이야기할 때 아이 앞에서 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가 없는 곳에서 이야기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의사는 꼭 아이의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아이가 있는 곳에서 아이의 엄마로부터 
병력을 얻어내야만 하는가? 아이가 걸려있는 병에 대한 설명도 아이 
앞에서 해야만 하나? 수술에 대해서는? 만일 아이가 그런 대화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그렇게 철이 든 아이라면 아이와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하지만 나이가 아주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위와 같은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전혀 못 알아듣는 
갓난아기라면 문제시할 것 없이.  그러나 말은 거의 하지 못해도 아장아장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아이의 경우는 다르다.  아이의 이해력은 말보다 
앞서 발달한다.  아이가 말을 못하거나 겨우 한두 마디 정도밖에 할 수 
없을 때에도 그 이해력은 엄청나다.  어느 정도 철이 들어 어른들의 
대화를 큰 오해 없이 들을 수 있는 나이라면 함께 이야기해도 좋다.  
그러나 말은 알아듣되 자기 나름의 괴상한 환상이나 오해를 할 가능성이 
있는 애들의 경우 부모와 단독으로 만나 아이의 병세나 앞으로의 
치료계획을 이야기하는 게 안전하다.
부모와 대화를 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즉 부모는 의사에게 
들은 말을 아이에게 다시 말해 준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 믿고 부모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  그런 내용은 
가끔 왜곡된 채 전달되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방수단으로 의사는 어떤 것을 아이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부탁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환자의 부모와 대화를 하는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부모와 의사의 사이가 나쁜 경우다.  대개 부모가 의사에게 화가 나 
있거나 의사가 부모에게 화가 나 있는 경우가 그렇다.  어떤 경우는 
부모가 아예 협조를 안하거나 의사를 방해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이든 
부모와 의사 사이가 악화되면 아이를 치료하는 노력들이 허사가 되기 
쉽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어린 환자의 잘못은 잘 참고 견디면서도 부모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주 인색하다.  이렇게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을 구분하는 
태도는 성인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은 일이지만 
소아과의사의 경우에서는 종종 나타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문제는 의사가 부모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의사의 지시를 어길 때는 
그들을 꾸짖고, 그 따위로 애를 키우기 때문에 애가 병이 낫다가 
몰아세우기도 한다.
의사들은 어린이의 병을 흔히 부모 탓으로 돌린다.  사실 부모 때문에 
병이 난 경우도 낳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부모란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어린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결론은 부모의 
긍정적인 면도 고려한 다음에 내려야 한다.  사실 모든 부모의 행동을 
아주 비판적으로 냉정하게 조사해 본다면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이런저런 식으로 아이를 천대했거나, 또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모의 악영향은 따뜻한 
보살핌을 경험할 때 사라져 버린다.  집은 치워지지 않아 늘 불결하고, 
끼니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말도 거칠게 해서 아이에게 결코 좋은 
환경이 못 되는 경우에도 엄마가 자녀를 따뜻하게 대해 주기만 한다면 그 
집에서 살고 있는 아이가 부모로부터 악영향만 받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아이의 음식이며 수면에 신경을 쓰고, 일정한 체온과 청결함을 
유지하게 하고, 의사가 처방한 대로 꼼꼼하게 지시에 따르는 등 철저하게 
보호자의 역할을 잘 한다 해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 진실된  애정이 
결핍되어 있다면 치료의 효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소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의사가 환자의 부모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많은 경우에 부모의 비협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는 아이에게 
해를 끼치거나 치료를 방하기 때문에 환자의 엄마에게 화를 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충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자신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지 않기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엄가가 가정 치료를 주장한다거나, 할머니의 민간 요법을 쓴다거나, 이웃의 
충고를 따르겠다고 하면 의사는 감정이 상한다.  사실 의사가 듣는 그런 
치료법은 비과학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어머니 세대나 할머니 세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그런 미신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런 주장들이 아이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불쾌하게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의사는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이유가 부모의 행동이 
정말 어린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치료를 방해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지 의사의 감정을 상하게 했기 때문인가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라면 싫어도 아이의 엄마가 하는 대로 지켜볼 수 애쓰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만약 부모가 실제로 아이의 치료를 방해하고 의사의 지시를 완전히 
무시해 버린다면 아이의 건강이 위협을 받게 되므로 즉각적으로 
처리해야만 한다.  지시사항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반복해서 말해 
주고 정확히 따라야 한다고 당부해도 부모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 때는 
부모에게 어떤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아이에게 
너무 태만한 부모는 정신병적인 혼란 상태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 의사는 당무의 몇 가지 심각한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1. 정신 박약증-지능이 너무 낮아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의사가 지시를 
해 주지만 그 말의 의미를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하는 부모들; 의사의 
지시대로 하고 싶지만 이해력이 부족해서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2. 정신병-이전에는 아이를 잘 보살펴주었는데 언제부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관심해진 부모들; 정신병적인 태만은 질병과 치료에 
대해서 망상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다.  그런 부모들은 아이에게 어떤 
확실한 치료 약을 주는 것을 거부하고 초자연적이고 미신적인 치료를 하려 
한다.
3. 히스테리-의사가 지시한 대로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무의식적인 
갈등 때문에 노력과는 반대로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는 부모들; 의사가 
꾸지람을 하면 할수록 더 열심히 하려고는 하지만 자신과 아이는 더 
혼란에 빠지게 된다.
4. 반사회적 성격(paschopathic state)-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들;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지만 아이를 돌보는 것이귀찮아지면 그냥 
방치해 버린다.
이러한 부모들의 태만은 의사 혼자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되는 문제이다.  
만일 정신병적인 문제가 있다면 대화만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보다는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시설이 갖추어진 
사회기관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더 낫다.
지금까지 나는 부모가 아이의 치료에 방해가 되는 경우들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의사는 말과 행동으로 부모의 행동 양식을 치료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어떤 의사는 부모가 치료에 협조적이 되도록 하는가 하면, 
어떤 의사들은 부몰 하여금 치료에 귀찮고 불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환자와 쉽게 대화가 잘 통하는 의사와 그렇지 못한 의사의가장 큰 
차이점은 의사가 환자의 부모를 대하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대화를 
잘 하는 의사는 환자의 부모를 치료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여기며, 동시에 어느 부분에서는 치료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나 의사 모두 아이의 질병이라는 공동의적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에 환자의 부모를 
골칫거리로 여기는 의사는 그들이 치료에 방해가 될 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환자의 부모를 너무 멍청해서 간단한 의료 절차나 
의사의 설명조차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로 취급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주어도 소용이 없고, 차라리 치료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치료를 망치는 기회를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타입의 
의사는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의사인 자신뿐이고, 
부모는 아이의 질병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생각해서 아이의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전자의 예가 후자의 예보다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환자 
부모의 편에서는 의사가 더 효과적인 대화를 이끄러갈 수 있으므로 적절한 
의학적 치료를 수행하기가 더 쉽다고 하겠다.  환자 부모에게 항상 짜증이 
나 있는 의사도 때로는 치료에 성공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결과를 
얻으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치료에 방해를 주고, 우둔해서 의사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주의하게 아이를 돌보는 등 부모들이 이상한 행동을 
할 때는 참기가 힘들다.  그러나 그들의 이상한 행동에는 항상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며 의사는 그 행동의 의미를 알아봐야 한다.
첫째, 아이의 병에 대해서 지나치게 겁을 먹고 있는 경우인데, 이것은 
어린아이를 치료할 때 부모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다.  그들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자신의 평소 감각을 잃은 것이다.  이때 의사는 
환자의 부모로 하여금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게 해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에게 강하고 용감해져야 한다고 하기보다 큰 소리로 
울어서 가슴에 쌓여 있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라고 조언해 주는 것이 더 
좋다.  용감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환자의 부모는 아이를 
치료하는 데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의 두려움을 밖으로 표현하고 나면 마음이 진정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이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부모들이 아이의 병이 자기들 때문에 생겼다는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치료에 비협조적인 경우인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경우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애가 병들게 된 것이 아닌지 걱정한다.  
즉, 가정 불화나 음식을 잘못 먹여서 병이 난 것을 아닐까 걱정하고, 
자기가 애한테 병균을 감염시킨 것이 아닌지, 혹은 부모가 잘못해서 
외부로부터 감염된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한다.  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이가 병에 걸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이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서 의사의 지시를 받고 
초기에 병을 발견함으로써 그런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쓴다.  이런 
죄책감은 아픈 아이를 가진 부모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조금씩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죄책감이너무나 클 때는 좀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즉,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이 지나친 열성을 보이고 더 
많은 치료를 요구하거나, 약을 처방대로 먹이지 않고 한 번씩 더 먹이기도 
한다.  때로는 더 많은 의사에게 진찰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자기 아이에게만 좀더 신경을 써 달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내재된 
감정과 행동은 자신들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신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자신의 죄책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이런 내재된 
죄책감을 보일 때 의사는 "부모라면 자기 아이들이 병들었을 때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느끼게 되는 것이 보통이지요"라는 설명을 통해 굳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으며, 지금 그들은 아이의 치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안심을 시켜주면 상황은 호전된다.  광적(광적)으로 아이의 
치료를 도우려는 어마는 아이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다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의사가 부탁한 간단하고 쉬운 일까지도 쉽게 
잊어버리거나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다.  그녀는 계속해서 "왜 아이가 
아픈가?", "이 병의 원인은 무엇인가?"등을 묻는다.  그러나 그녀는 의사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똑같은 질문을 또 해댄다. 어떤 엄마는 의심스럽다는 
말투로 "최선을 다 하고 계신 거죠?" 또는 "의사가 이 정도 병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되죠?" 혹은 "저는 선생님만 믿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환자의 엄마에게서 이런 행동이 나오면 의사는 곧 그녀가 불안과 죄책감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사가 이것을 지적해 주지 않으면 
그녀는 자신이 불안하고 죄책감에 쌓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지적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의사뿐이다.  의사는 "어머니의 불안을 이해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다. "무척 괴로워하고 있군요.  아이가 걱정되시겠지요.  아이는 
아프고, 엄마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 두려울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엄마들은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어 어떻게든 도와보려고 애쓰지요."
뭔가 할 일을 주는 것도 불안해하는 엄마를 돕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냥 집에 앉아서 약이 배달되기만을 기다리기보다 그녀 자신이 
약국으로 달려가서 처방을 받아오기를 바란다.  엄마들은 입원해있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욕을 시켜 주고, 옷을 입혀 주는 등 뭔가 
아이를 위한 일을 해 주는 것이 허락될 때 안도감을 느낀다.  그들의 
죄책감을 무겁게 하는 무기력감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픈 아이에 
대한 불안감과 죄책감에 대한 부모의 또 다른 행동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그 상황을 회피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부모들은 너무나 괴롭고 
죄스러워서 아픈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을 힘들어한다.  아이가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부모로서 참기 힘들기 때문에 
외면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가 우는 것조차도 견딜 수가 없어 아이와 
멀리 떨어지려고 하고, 이러한 반응이 심해지면 의사와 상담하는 것도 
견딜 수 없게 된다.  의사가 그들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거나 자신의 
무관심에 대해서 꾸지람을 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부모들의 
해동은 좋을게 하나도 없다.  아이는 버림받았다고 느낄 것이고, 부모의 
소심한 행동은 아이로 하여금 훨씬 더 많은 죄책감을 가지게 한다.  
의사나 친지들도 그런 부모의 행동을 싫어하고 부모가 너무 냉담하고 
무관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부모가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피하는 것이 일부러 하는 행동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피하기 때문에 
또다른 고통을 당하고 있다.  단지 불안감과 죄책감이 너무 커서 도망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픈 아이에 대한 부모의 죄책감은 아이가 느끼는 죄책감과 아주 
흡사하다.  아픈 아이는 자신이 잘못해서 병이 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믿음에 도달하게 되면, 자신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타이르고, 나쁜 
짓을 하면 병에 걸린다고 했던 엄마, 아빠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이 아픈 것은 나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부모들도 자신이 나쁜 부모였기 때문에 아이가 병에 걸렸다고 여기고, 
좀더 좋은 엄마, 좋은 아빠였다면 아이가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병에 걸리고 말았으니 무언가 부모의 역할을 잘 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병든 아이를 둔 부모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며, 치료에 
방해인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의사가 이런 부모의 반응을 이해하고 도울 
필요가 있다.  의사는 "부모들은 아이가 아프면 항상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들을 비난하지요"라고 말해 준 뒤에, "아이의 병은 부모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말해 주면 부모는 안심한다.
의사가 환자의 부모와 그들이 느끼고 있는 죄책감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하더라도, 또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죄책감에 휩싸여 있는 환자의 부모에게 아이의 병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  놀랍게도 어떤 의사들은 부지중에 그런 느낌을 준다.  
이런 의사들의 단순한 질문도 부모에게는 끔찍한 심문처럼 들린다. 
"아이가 무엇을 먹었지요?"와 같은 간단한 질문도 "무슨 썩은 음식을 
먹였길래 이 가엾은 아이가 이렇게 아픈 거죠? 이이를 죽일 셈인가요? 
아니면 뭐였죠? 당신 바보 아니요?"라고 들리도록 말하는 의사가 있다.  
이런 성향을 가진 의사가 자신이 한 말을 녹음한 후, 다시 들어본다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한 말 자체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 말의 
뉘앙스는 끔찍하다.  이것이 바로 이미 강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부모들을 괴롭히는 의사의 무의식적인 공격이 된다.
죄책감은 부모의 무능력하게 하고 치료를 방해하는 요인이 될 뿐 아니라 
의사를 공격하는 행동을 초래하기도 한다.  보통 죄책감에 쌓여 있는 
부모들은 의사 치료에 태만하다고 비난한다.  이런 비난은 자신이 아이에 
대해서 태만했던 것에 대한 좌책감을 의사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부주의한 사람은 의사지,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린 환자의 부모는 다른 방식으로 죄책감과 불안감에 대응할 수 있다.  
어떤 형태로 대응을 하든지, 환자의 부모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비협조적이며, 치료에 비효율적이고 화가 나 있는 듯한 행동을 보이면, 
의사는 그 행동의 바탕에 부모의 죄책감과 불안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고, 의사가 부모의 그런 감정을 밖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면 부모들은 자신들의 어리석고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행동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고, 행동의 개선이 일어날 
것이다.
환자의 부모들이 아이의 의학적 치료를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지만, 
아이를 성공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사실상 
부모의 도움없이는 성공적으로 아이를 치료할 수 없다.  이 필요성을 
부인할 의사도 없고 환자의 부모와 적대관계에 있다고 생각할 의사도 없을 
것이다.  의사는 환자 부모들의 특별한 행동이 아이의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잘 평가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의사 자신이 부모의 
입장에 서 보기도 해야 한다.  의사가 부모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들을 도와줄 때, 아이의 치료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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