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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어린이 환자를 위하여

40.환자 부모들과 나눈 이야기의 실제

by FraisGout 2020. 6. 3.

부모와의 대화란 주제에 덧붙여서, 의사의 충고를 따르지 못한 한 
환자의 보호자를 예로 들어보겠다.
엄마들이 의사가 지시한 사항이나 충고를 따르지 못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의사의 충고를 들었을 때 엄마의 과거 경험이나, 친구나 
친지에게서 이미 들은 이야기, 그리고 유아에 관계된 책이나 신문에서 
읽었던 내용과 비교해 보고 다른 점이 있다면 함부로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 어떤 명백한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부모들은 자신이 의사의 충고에 따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망각해 버렸거나 혼란을 일으켜서 다르지 못할 수도 있고, 우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 충고의 내용을 바꿔 버리는 수도 있다.  그밖에 의사의 
충고를 곡해해서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 의사가 
지시하거나 충고한 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부모도 있다.
이와 같이 모순된 행동은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의사에게 좌절감을 주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잠재적으로 아이에게 해를 줄 수도 있다.  물론 
저절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모순된 행동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해야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엄마와의 대화가 
아이의 치료에 큰 효과를 주었다면 이는 바로 이런 경우라 하겠다.  
여기서 보여주고자 하는 첫딸을 가진 25세 된 엄마의 행동은 특별한 
연구의 대상이며 임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례이다.
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서 충고를 요청했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내 충고를 그렇게 열심히 따르지는 않았다.  아주 가끔 그 충고를 따랐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충고를 원했고 내 충고에 늘 
감사하는 것 같았다.
이제 8개월이 된 그녀의 아이는 낯선 사람들만 보면 불안해하고, 또 
새로운 일을 경험하면 개성을 지리거나 발버둥쳤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침울하게 고립된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 충고에 잘못이 있어서 상태가 
악화되었을 수도 있고, 아무리 좋은 충고라도 아이에게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이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어떤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아이의 엄마에게 다른 영향을 주었다.
그 사건은 엄마가 정맥류결찰(ligation of varicose veins) 때문에 병원에 
가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미 언급했지만 아이가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 
특별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고려해서, 나와 그녀는 그녀가 진료를 받기 
위해서 닷새 또는 엿새 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 것과, 이렇게 엄마가 없는 
도안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서 해야 할 조처에 대해 주로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와 떨어져야만 하는 상황은 아이를 아주 힘들게 할 것이며, 심한 
상실감과 질투와 걱정, 그리고 성난 감정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엄마와 떨어져 있는 아이를 낯선 
사람과 있게 해서는 안 되며, 아빠나 할머니, 아니면 다른 낯익은 사람이 
집에서 돌보도록 하는 게 좋다고 충고를 해 주었다.
그녀는 나의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여 곧 따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불과 3주 전에도 아이를 낯선 사람에게 맡겼지만 아무 일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아이를 그냥 집에 있게 할 수는 없나요?" 라고 
물으니 "안 돼요" 하고 딱 잘라 말했다.  "남편에게 일 주일 정도 휴가를 
받도록 하는 것을 어때요?"라고 말하자 "사장이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되받았따.  마지막으로 "외할머니께 부탁하는 건 어때요?"라고 
하자 다시 무뚝뚝하게 "안 돼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기서 그만두어야 했다.  그녀가 다른 방법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어 다른 사람의 충고를 좀처럼 듣지 않으려고 했고, 나는 
예기치 못한 반응이라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의논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를 계속해서 만나는 사이에 그녀가 왜 나의 충고을 
거부하는지 그 여러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그럴 듯한 
이유는 분노였다.  그녀 자신은 그러한 분노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분노는 다른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해 준 총고에 등을 돌리게 
했다.  심지어는 그녀 자신도 좋다고 생각했던 생각들까지 외면하게 했다.  
그런데 그 분노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녀에게 그동안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을 종합하여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의사들은 모두 그녀의 건강보다는 아이에게만 신겨을 써 주었다.  그녀 
자신의 병이나 수술에대해서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녀가 입원했을 때 아이에게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만 보면 그녀가 화를 낼 만도 했다.  그래서 남들의 
총고를 따르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다음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나는 그녀에게 그녀가 
개인적인 도움이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자기 자신의 건강에는 거의 
신경도 못 쓰면서 아이의 불편만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처음에는 살짝 부인하는 듯하더니 이내 동의했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그녀가 입원하 후에 아이를 위해서 마련할 조처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대화는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로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졌고, 마침내 아이와 엄마를 떼어 놓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그녀에게 원인 모를 불안감에 싸인 아이를 다른 집에서 돌보지 
않고 집에서 돌보게 하면, 아이는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엄마를 계속해서 
느낄 수 있으며, 항상 보아왔던 주위의 모습·냄새·소리 등과 
같이자신에게 친숙한 환경이 마치 엄마와 함께 있는 듯한 효과를 
줄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아빠가 곁에 있으니 엄마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아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엄마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여기서 그녀는 나의 말을 중단시키고 남편이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걱정이라고 고백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아이가 아빠하고 더 친해질까 봐 
두렵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암심시키면서 모순이 있는 것 같이 
들리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고 분명하게 말해 주었다.  아빠는 엄마를 
기억하게 하는 대상이 될 것이고, 아빠에 대한 애정은 엄마의 부재에 대한 
위로가 되어줄 뿐 엄마와의 사이를 갈라 놓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외할머니에 대해서도 남편의 경우와 같은 심정으로 혼자 아이를 돌보게 
하고 싶지 않았느냐고 내가 묻자, 그녀는 거기에 동의했다.  그녀는 
외할머니가 엄마인 자신보다 아이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둘이서 너무나 사이가 좋기 때문에 때로는 질투를 느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둘이 함께 지내게 하면 별로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몇 분 동안 
이야기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에게 아주 엄하고 무서웠기 때문에 
어린 시절이 별로 행복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고 했다.
그녀의 말 속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고,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실들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손자·손녀와는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친자식인 
그녀와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아마 그녀의 어머니가, 딸인 그녀가 
손녀딸과 같은 어린아이였을 때 함께 재미있게 지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어서, 이제서야 그 기쁨을 만끽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일지도모른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할 말을 거의 다한 뒤에 그녀는 웃으면서 자신보다는 자기 아이와 
어머니에 대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고 말하고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그녀는 이번 대화에서도 역시 자신이 무시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아이에 대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가 버렸다.
  며칠 후 그녀는 전화를 걸어 아주 즐거운 목소리로 아이를 집에서 
돌보기로 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일 주일의 휴가를 얻기로 했고 
그녀의 어머니도와서 집안일을 돌봐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수술 때문에 적어도 가족이 
분열되느 일은 없게 되었으니 안심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녀의 두려움과 
분노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가치있는 일이었다.
  돌이켜 볼 때 당시에는 그녀가 한심하게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는 얼마든지 있다.  이런 일들은 어린이에게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성인의 경우에도 친척이 환자를 돌보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여컨대 외과 환자나 정신과 환자, 그리고 노인 환자들이 그런 
환자들이다.  그런데 회사들은 가끔 이런 문제들을 간과한다.  우선 눈앞에 
있는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환자의 친척들까지 돌봐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 자란 성인들이 친척들의 감정 문제까지 의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얼른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가 가족들의 감정 문제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위에서 소개한 
엄마의 증례가 구체적인 대답을 준다.  이 아이의 엄마가 의사의 충고를 
제대로 따르지 못한 이유는 자신의 문제 때문이었다.  의사가 그녀를 
무시한 채 아이에게만 관심을 쏟는 데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엄마의 
두려움과 질투가 이해되고 그것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의사의 충고를 따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해 둘 것은, 이렇게 
의사의 조언에 대한 거부 반응이 해결되었다고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 반응은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지켜봐야만 한다.  여컨대, 이런 유형의 엄마는 자주 
비슷한 거부 현상을 보이는데, 보통은 협조적이지만 종종 어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상담을 취소하건, 그동안 일어났던 사건이나 병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며, 때로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기도 한다.  대부분 
이런 행동이 나타날 때는 의사가 엄마의 문제를 잊고 아이으리 건강에만 
신경을 쓸 때이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보호자가 자신의 조언에 대해서 거부 반응을 보이면 
그보호자의 감정이나 문제점들이 무시되지나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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