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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대화/어린이 환자를 위하여

41.까다로운 사춘기, 부모들은 힘들다

by FraisGout 2020. 6. 3.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여러 가지 고충을 겪게 마련이다. 
  아이들은 감성적이고 변덕이 심하여 좀처럼 다루기 힘들고, 또 그들의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도 없다.  좋지 않은 아이들과 어울리며 밤 늦도록 
돌아다니거나, 번번이 약속을 어기고, 말대꾸를 해대며, 다른 사람의 
말이나 충고는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런 청소년들의 행동은 
이미 잘 알려진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의 부모들 또한 어려움을 겪게 되며, 때로는 이로 인해 심각한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사춘기에 나타나는 현상 중 특히 다음 두 가지가 이런 문제들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먼저, 가장 가시적이고 또 자주거론되며 부모들의 화를 
돋구는 것은 독립을 얻기 위한 방항적인 태도이다.  또다른 하나는 
성적(성적)인 면에서의 급속한 성장이다.  10대 청소년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은 근본적으로는 정상적인 자립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아무리 정상적이라 할지라도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당황되고 혼란스러운 
경험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부모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아이들의 행동은 신체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세운 기준이나 이상을 탈피하려고 할 때 
심각한 것이 된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부모에게 무관심하게 되거나, 심하게는 적대적인 관계가 된다.  이런 
경우 부모들은 심각한 분노나 비통함, 또는 우울증에 빠지게 되며 
심하게는 신체적 행동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에게 변함없는 애정과 존경을 표하고 순종하여, 부모에게는 
일종의 자랑이자 기쁨인 청소년의 경우는 어떤가?
  마땅히 이런 부모들은 아이들 문제로 어떤 고통도 겪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모 역시 가끔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청소년이 
사춘기를 힘겹게 거치든 순조롭게 거치든, 그것은 지금까지의 유년기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어린 시절을 
끝내고 이제는 낯선 성인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결국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여 스스로의 일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부모는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할 것이며, 당연히 이런 
어려움을 예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부모들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는, 부모가 아이의 어떤 변화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데에 있다.  성장에 대한 뚜렷한 증거와 기록들이 
눈앞에 있는데도, 자기 아이는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라고 믿고 있다.  
부모의 이런 낭만적인 믿음이 문제를 일으킨다.  자식이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는데도 여전히 10대의 아이로 보게 된다.  자식이 
지신보다 더 나은 직업을 가졌어도 아이 때처럼 여전히 꾸중을 하고, 
지시를 하고 싶어한다.  이런 부류의 아버지는 아들 집을 방문했을 때 
가장으로서의 아들의 위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만약 어머니라면 
서른다섯 살이나 된 딸과 10대의 손녀딸에게 연달아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사춘기 초기에 나타나는 이러한 부모들의 간섭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0대란 대략 13세에서 19세까지를 일컫는데, 이 기간 동안에 아이들은 
성숙해져서,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도 점차로 강해지고 마침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게 된다.  부모들은 이 기간 동안 자신의 책임 하에 
아이들이 성숙해가며 커가는 것을 지켜보고, 그러는 동안 자식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다는 단념을 할 수 있는 시간도 갖게 된다.  물론 사춘기 
초기에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 그리고 윤리 기준을 
가르쳐야 한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사춘기 초기부터 꾸준히 진행되는데, 
단기 그 속도의 빠르로 늦음만이 다를 뿐 마침내는 완전한 독립에 이른다.  
이러한 성장의 속도는 아이의 사회적ㆍ정서적 적응능력이나, 어릴 때는 
부모의 전유물이었던 책임감이나 권위를 자기 것으로 얼마나 잘 만들어 
가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따라서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아이의 
준비가 어느정도나 되었는가를 측정하는 것은 부모들의 역할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이것은 어린아이가 혼자서 밥을 먹고, 대소변을 가리고, 
옷을 입을 줄 알고, 길을 건널 수 있는 시기를 판단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가끔씩 아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부모들의 두려움이 
자식의 이런 준비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러한 두려움은 너무도 강해서 자식들의 성장을 보여주는 분명한 
현상들까지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부류의 부모들은 자식이 독립의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식이 이미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서 살고 있는데도, 부모의 집에 왔을 때는 전에 함께 
살던 시절의 모든 규칙들을 준수하도록 강요하는 어리석은 경우도 있다. 
  부모들이 아이의 독립을 방해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은밀하게 이런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돈이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들고 부유해지더라도 동의 힘에 말려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의 협조없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해서 행사하고 있다면, 
여기에는 자식의 은밀한 동조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경우, 부모와 
자식 간에는 이런 관계를 지속시킬 만한 상호 이해 관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부모도 나이든 자식이 원치 
않는다면더 이상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의 간섭을 
항상 의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 아이를 둔 35세의 여성 환자는 억압적인 어머니에 대해서 고통스럽게 
불평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생일은 물론 남편이나 세 아이들의 
생일 까지도 모두 참견을 했다.  단순히 참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간섭이 도를 지나쳐서 생일 파티를 아수라자으로 만들곤 했다.  왜 
어머니를 생일 파티에 초대했느냐고 묻자, 그녀의 어머니는 초대하지 
않아도 온다고 했다.  그러면 파티가 그토록 엉망이 되는데 왜 생일 
파티를 계속 하느냐고 하자, 그녀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무슨 돈이냐고 하자, 생일 파티를 열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가 돈을 
주었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 돈은 단지 10달러에 불과했다.  나는 매우 
놀랐고, 그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의 남편은 부자여서, 단돈 
10달러 때문에 이런 고역스러운 일을 겪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생각을 너지시 말했을 때, 환자의 자신을 놀리는 
것이냐며 가볍게 웃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을 이렇게 고역스런 
생일 파티들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로 가져갔더니, 그녀는 그 상황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몇 가지 이유 중에는 그녀의 어린 
시절의 어머니상(상)을 깨뜨리는 것에 대한 주저함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어머니상(상)은 억압적이고 공포스런 면뿐만 아니라 강인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어머니였다.  환자는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결점과 
마주치게 되자 괴로움을 느꼈고 그것을 외면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실제로 어머니의 힘이 약해질수록 더욱 억압적이고 강인한 어머니로 
보여지도록 노력했다.  한편 어머니도 딸이 계속자신에게 의존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딸이 부모와 부모의 돈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매달렸다. 
  어떤 부모들은 돈이 아닌 애정을 이요하여 커가는 자식들에 대한 
통제력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내 말을 들어야지.  
네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는 안다"하는 식의 말을 
하거나,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고서는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겠지?"라는 말을 덧붙인다.  한 10대 환자의 아버지는 머리를 
못자르게 하느데 "네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만, 이 아빠에게는 너의 
긴머리를 보고 쓰다듬는 것이 큰 기쁨이란다"라고 말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 환자는 이런 식으로 사랑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 
머리를 자르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거절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많은 부모들이 10대의 자식들의 독립을 방해한다는 것은 꽤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어떤 방법이 여기에 사용되는가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최상의 대답은 
아니지만 가장 쉬운 대답은, 부모들이 자식의 성장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생활방식이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직성이 
보편적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대답의 전부는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10대의 자식들처럼 자신들의 인생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갖고자 하는 강한 
충도을 느끼게 되는 부모들은 자식의 행동을 모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청소년기는 새로운 방향과 목적을 모색하고자 하는 강한 충동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성향은 전염성이 아주 강해 여기에 전염된 많은 
부모들은 10대들처럼 행동하고 자식들처럼 변화하는 일종의 제2의 
청소년기를 겪고 싶어진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런 유혹을 두려워하며,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유혹의 원인을 제거하려고 한다.  
즉, 자식의 독립 자체를 반대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의 내면 세계에서, 청소년기에 이루어진 중대한 결정을 독립을 위한 
도전이다.  인생의 목표나 방향ㆍ야망, 그리고 앞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들이 모두 이 시기에 결정된다.  즉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무슨 일을 
하고,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바로 이때 이루어진다.  
이처럼 미래를 좌우할 만한 중요한 결정들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시기가 
두려움과 불확실성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10대뿐만 아니라    그 부모까지동 흥분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가 자식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가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실상 부모가 자식에게 줄수 있는 도움은 자신이 청소년기에 내렸던 
결정들을 되돌아보고, 이런 결정들이 어떤 결말을 초래했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청소년기를 되짚어 보고 충고해 주는 데데 그치지 
않는다.  청소년기의 자식을 보면서 자신의 총소년기로 돌아가 그때의 
충동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지류한 중년의 쇠고랑을 벗어 던지고, 다시 
인생을 출발하고, 새 직업을 찾고,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지금과 다른 곳에서 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심지어 주위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고 친구나 취미도 새롭게 하려고 한다.  이같은 현상은 
대다수의 성인들이 현재의 자신의 생활방식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들은 사춘기 시절 자신이 내렸던 결정들이 옳았던 것인가에 
해새서 의심해 본다.  현재의 자신이 좀더 모험적이고, 자유롭게 꿈을 
꾸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기를 바란다.  중년이 되어 이제 안정을 
찾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루한 생활을 위해 자신이 쏟았던 정성에 대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던가 회의가 생긴다.  지금 옆에 있는 이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더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한 불만족이 강해지면, 부모들은 사춘기의 자식들로부터 자극을 
받지 않아도 즉시 행동으로 옮기기 쉬운 상태에 빠진다.  중년기의 높은 
이혼율은 이러한 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부모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긴장을 대가로 치르면서도, 10대의 자식이 겪는 
자극적인 변화를 잘 참고 견딜 것이다.  그리고 어떤 부모들은 10대의 
자식들처럼 새로운 생활을 하고 싶은 욕망과 늘어가는 불행감 속에서도 
지금의 안정된 생활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된다.  이런 유혹과 억압 사이의 갈등이 설명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질병이나 행동의 변화, 그리고 결혼 생활에서의 변화를 야기시킬 수가 
있다. 
  이런 부모의 행동은 잘 알려져 있는 편이어서,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반응이 지나칠 경우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그리 고 이런 상처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저저로 치유된다.  
  자식들의 청소년기에 부모들에게 더 큰 긴장을 주고 더 큰 상처를 
야기시키는 것이 바로 성문제이다.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성 행위는 단지 
매력적이라는 사실 말고도 또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에 다른 성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사정(사정)을 하고 월경(월경)을 하는 것은 이제 
중요한 현실이다.  이제 성행위는 공상만이 아니고 현실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자위행위를 하는 동안의 성 행위에 대한 환상은 이제 
현실적인 생각, 특히   임신에 대한 생각을 포함하게 된다. 
  사춘기  이전까지 남자아이들은 기분좋게  학교 선생님이나 여자친구, 
여동생 또는 어머니를 대상으로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해를 주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 그들과의 성 관계를 공상 할수 있었으나, 사정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의 공상이 형태는 달라지게 된다. 생기 넘치고 
이전보다 더 흥분되기는 하지만, 성 행위 자체가 무해하지만은 않다. 이제 
당사자가 누구이건 간에 "나는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인식해야만 한다. 성적으로 성숙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든지 아니면 
두려워하든지, 혹은 이 둘을 공감(공감)하고 있든지 간에 그의 공상은 예전 
같을 수 없고, 그의 어머니나 다른 여자들을 두고 하는 상상 또는 예전과 
같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여자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초경과 함께 아버지나 다른 남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상 속의 성 행위는 갑자기 그 낭만적인 순결함을 잃고 
만다. 이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종종 듣게 되는  주의(주의)와 함께 "이제 
나는 임신을 할 수가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이런 성숙함이 
기쁘건 혹은 귀찮건 간에, 이제 아버지나 다른 남자를 대상으로 했던 공상 
속에 성 관계 또한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청소년기에는 성 해윅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을 갖추게 된다. 공상 
속에서만 실제했던 성 행위에서 현실적인 성 행위로, 혼자만의 
자위행위에서 상대방과 함께 하는 성 행위로의 전호나이 일어나고, 이성과 
동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행 보려는 시도 또한 행해진다. 요약하자면 성 
행위는 사춘기에 겪는 모든 과정 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런 성적(성적)변화에 대한 질적인 차이점들에 
대해서 깊게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성에 대한 두드러진 
특징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녀의 변화를 본다. 어떤 이들은 
기뻐하기도 하고 혹은 무시하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불쾌하게 
여기거나 병(병)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또 다른 부모들은 청소년의 성 
행귀가 부모에 대한 반항적인 행동의 일환이라고 보고 억누르려 애쓰기도 
한다.  부모를 가자아 걱정시키는 것 중의 하나가 청소년기의 가장 
보편적인 자위행위다. 부모 자신들도 자위생위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고,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던 자위생위에 대해서 다시갈등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껀 부모들은 
자신의 내적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 자식들을 아주 가혹하게 대한다. 
잔소리하고 꾸짖고 야단치면서 자위생위를 그만둘 것을 종용하다. 또 어떤 
부모들은 자위행위를 하는 자식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은밀히 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숨겨주지 않고 조혼(조혼)을 주선하거나, 이성과의 정사, 
심지어는 매춘(매춘)을 이용하기도 한다. 않은 남자아이들이 은밀하게 
자위행위를 계속하면서 부모의 눈을 속이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어떤 청소년들은 자위행위를 걱정하면서 부모가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경우 자위행위를 걱정하면서 부모가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경우 자위행위를 숨기려는 노력은 역설적으로, 일부러 들키고 
싶어하는 현상과 함께 나타난다. 흔히 남자아이들은 자위행위를 하는 동안 
방문을 열어 놓거나, 정액이 묻은 속옷으나 침대시트를 어머니가 
발견하도록 놓아 두거나, 발기된 상태를 부모들이 눈치챌수 있게 한다. 
이런 자식들의 암시적인 행동에 대한 부모들의 반응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자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움을 청하려고 고의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 대신 이 모든 것을 아예 무시해 버리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애기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그런 일을 무시해 버리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식이 자위행위를 구태여 숨기지 않는 것은, 이를 
고백하고 도움을 구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라고 이해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자위행위로 걱정하고 있ㅅ는 아들과애를 하려고 
마음 먹는다면, 아버지 자신이 하고 있는 자위행위와 이에 관련된 고민을 
자식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또래의 남자아이드은 아버지에 
대해서 이상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놓고 있는데, 아버지도 자위 문제를 
겪는다는 사실로 그 이미지가 깨진다면, 아들은 견 딜 수 없는 고통에 
빠지게 된다. 
  월경도 자위행위만큼이나 부모를 괴롭히는 문제다. 딸의 초경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은, 자신의 사춘기 시절 초경 경험을 명확히 드러내준다. 
속옷에 묻은 핏방울에 대해서 걱정스런 태도로 묻은 딸을 대하는 어머니는  
자신이 무얼 말하는지도 모르는 채, 지금껏 이 순간을 위해서 준비해 왔던 
말과는 전혀 다른 말들이 튀어나올 수가 있다. 어떤 어머니는 자신이 초경 
때 경험했던 두려움과 기억들을 쉴 새 없이 털어놓기도 하고, 자신의 
어머니가 예전에 자신에게 해 주었던 것과 똑같이 딸의 얼굴을 토닥거려 
주기도 하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이런 수많은 유형의 반응들은 어머니의 말하는 
방식이나 태도, 얼굴 표정 또는 어조에 나타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어머니는 해주어야 할 적절한 말을 
생각해 두고 딸의 초겨에 대해서 흥분하지 않고 침착해야겠다고 미리 
다짐을 해놓지만, 막상 그때가 되면 상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달라져 
버린다.  갑자기 신경질적이 되거나 무서워 떨면서 초조해 하다가 화를 
내기도 하고, 중대한 사건을 조급히 마무리지어 버릴 수도 있다.  또한 
과장된 관심이나 예측을 할 수도 있다.  어떤 어머니는 월경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더러우며 여자에게 얼마나 불리한 것인가를 딸에게 심어주려고 
애쓴다.  또 어떤 어머니들은 딸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제 남자아이들과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라든가 "이제는 
사내아이들과 키스를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어머니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월경이 시작됨에 따라 성 
행위는 이제 임신을 유발시킬 수도 있으므로, 성교로까지 연결될지도 
모르는 너무 깊은 관계나 키스는 조심하라는 얘기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들은 딸은 여자들이 남자들과 키스나 접촉만 해도 임신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게 된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던 어머니들까지도 결국에는 월경의 불결함과 비위생적인 점만을 
강조하고 만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딸들에게 "악취가 날 거야, 
옷도 버리게 될 거야, 그 기간에는 수영하거나 춤도 출 수가 없어, 쉬어야 
해, 괴로운 생리통도 경험할 거야, 매달 학교를 결석해야 될지도 몰라"라고 
말하고 만다. 
  어떤 어머니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너무 딸들을 놀라게 
하여 겁먹게 하지 않으려고 한 나머지, 너무 태평스럽고 냉정한 무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표현들은 대부분 과장되고 불합리하여 진실되지 
못하고, 딸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그 어머니가 어리석거나 
악의가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반응은 어머니 
자신이 청소년기에 경험했던 반응일 수 있다. 
어머니의 이런 반응은 오래 전 기억의 재생에 불과하다.  자기 딸에게는 
그렇게 반응하지 않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중에 판에 박힌 듯한 
반응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사춘기 자식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부모의 또다른 행동은, 
자식들이 발전적으로 향상되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감정으로 반응하는 
일이다.  의식적으로는 딸이 자신이 겪었던 것보다 월경에 대해 더 
편안하고 나은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이가 
자신보다 더 편하게 그 경험을 극복하는 것을 보고 분개할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양면적 반응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상호 관계 속에서 흔히 
나타난다.  그 예로 아이가 자랑스럽게 평균 B학점을 들고서 집에 왔을 
때의 부모의 반을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하거라. 너는 
A학점을 받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는 부모는 정말로 아이가 최고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대로 더 못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모순을 알아차리고 다음에는 A를 받을 수도, C또는 
D를 받아 올 수도 있다. 
  청소년들의 동성애 또한 부모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만일 
아이가 너무 많은 동성(동성)친구들을 사귀거나 이성(이성)과의 데이트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등, 여타 아이들과는 다른 면들을 보인다면 
부모들은 극도로 당황하게 된다.  조급해져서 아이를 일찍 결혼시키려고 
할 수도 있다.  또 아버지는 동성애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아들을 멀리 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딸에게 철저하게 냉담하거나, 
소외시킨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딸을 대할 수도 있다. 
  부모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식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성 문제는 
배우자(배우자)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만큼 부모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는 없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하고 또 
한편으로는 질투를 느끼면서, 어떤 사람은 내 자식에게 좀 부족하고 또 
어떤 사람은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에 갈팡질팡한다.  아직 배우자로 
완전한 결정이 내려진 것도 아닌데 미리 걱정을 한다.  그리고 드물지 
않게 이런 것정을 직접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저 애는 생긴 것 
만큼이나 멍청할 것 같다", "저 꼴불견은 자고 있는 거니, 깨어 있는 
거니?", "저 꼴에 남자라고, 할수 있는 건 먹는 것뿐이로구나!", "저 
여자아이를 괜찮게 꾸미려면 한밑천 들겠구나" 좀더 돌려서 말하는 
경우로는 "너의 데이트 상대는 괜찮아 보이기는 한데…"라고 할 수도 있고 
훨씬 더 부모가 교활한 경우에는 상대방을 헐뜯지도 않고 칭찬하지도 
않으면서 좀더 나은 상대를 자식들에게 만나게 해 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자식들의 성과 관련된 문제 중에서 가자 어려운 것은 자식에게 
부모 자신이 느끼는 성적 흥분이다. 많은 부모들이 이러한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해 하기 때문에 상상조차 하기 싫어한다.  하지만 
그런 흥분은 실지로 일어나며 이런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눈에는 아주 특이하게 보인다.  청소년은 상대가 누구든지 그를 자극하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있는 그대로도 그들은 
성적 매력이 넘친다. 어른들이 기분좋게 쳐다보고 말을 걸기가 쉬워서 
사춘기 아이들에 대한 열정을 식히기란 쉽지 않다. 
  그런 열정은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의사에게도 역시 문제가 된다. 
의사는 부모가 자식에 의해서 성적 흥분을 느끼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을 
싫어하고, 또 좀처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부모는 자식으로부터 종종 성적 감정을 느끼며, 
어떤 사람들은 이로 인해 많은 고민을 한다. 이런 부모들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며, 만일 의사의 도움을 원한다면 자신이 먼저 그런 
감정을 인정하고 그 문제에 관해서 의사들과 터놓고 애기를 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의사는 환자들이 상대를 안 가리는 성행위나 간통, 정사, 
부부 문제 또는 어떤 종류의 가족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하러 왔을 때에는 
이런 문제들과는 별도로 부모와 자식간의 성 문제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런 경우에 환자들의 행동은 모두 자식과의 성적 접촉을 예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10대의 자식들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대부분의 의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어떤 부모들은 충동을 못 
이겨 자식과 성적 접촉을 한다. 비록 부모 자식간의 실제 성교는 드물다고 
하지만, 의사들이 믿고 싶어하는 만큼 그렇게 희귀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부모와 자식 모두 이런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채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그런 관계를 지속시키는 경우는 있다. 
다만 몇 년이 지난 후에 둘 중 어느 하나가-대부분의 경우 자식이지만-그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일반적으로 이야기의 상대자는 의사가 된다. 
  껴안거나, 키스, 좀 심할 때는 성기(성기)에 손을 대는 것과 같은, 정도가 
덜한 행동들은 자주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이런 행동들은 순수한 동기나 
정상적인 현상이라는 이유로 얼버무리고 대충 넘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진한 키스는 자기 가정의 관습이라거나, 과도하게 밀착된 춤은 아이에게 
춤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으로 변명되어지고 또 아이가 부모의 무릎 위에 
앉는 것은 지금까지 그래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지나치기 마련이다. 
사춘기가 지난 이성의 자식과 함께 목욕을 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 왔는데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 변명할 수도 있고 발가벗은 
몸을 서로 마주보는 것은 성에 대산 그릇된 관념을 자연스럽게 막아줄 수 
있다고 애기할 수도 있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는 이런 생각이 바로 
오산이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그런 부무에게 "만일 아이가 
당신의 성 행위 장면을 보기를 원한다면 허락할 것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쉽게 드러난다. 그 대답은 예측컨대 "물론 안 되지요"이기 때문이다.
  직업이 의사인 부모들은 자식들에 대한 성적 접촉을 진찰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키려 한다. 소수의 의사들은 심지어 자식들의 성기까지 
진찰하기도 한다.
  부모 자식 간의 성 관계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말로 행해지는 
경우다. 이것은 주로 건강 상담 또는 성교육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자위행위에 대해서 대화를 한다면 부모는 자식에게 아주 
세세(세세)한 것까지 물을 수 있고, 자신의 청소년기나 지금 현재의 
자위행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가 
다른 사람과의 성 경험을 애기하면 이런 부모들은 언제, 몇 번이나, 어떤 
식으로 하는지, 그리고 느낌이 어떠했는지 등에 대해서 알려고 한다.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동안, 아이는 부모가 성적으로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부모가 충동을 못 이겨 실제로 아이에게 성적인 접촉을 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부모로서의 양심 문제다.  부모의 선악에 대한 관념이 흐릴수록 성 
접촉이 일어나기가 쉽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부모일수록 양심의 기능이 
마비되어 의사를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래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의사를 찾아오는 부모들은 경미한 접촉을 
했거나, 실제적인 행동은 없었지만 아이에게 성적흥분을 느끼는 것만으로 
몹시 시달려 온 부모들이다.  그들은 거의 저지를 뻔한 일들에 대해서 
털어놓거나, 꼭집어 말할 수 없는 신체적 문제나 부부 생활, 직업에 관계된 
문제만을 제시하기 때문에, 의사가 도움을 주어야만 자신의 성적인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이들은 먼저 혼외 정사 같은 
흔치 않은 성 행동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만일 불륜의 성관계가 
있었다면 그 대상은 젊음과 정열, 그리고 사춘기 자식과 같은 성적 매력을 
가진 젊은이일 것이다.  의사는 항상 그런 정사들이 혹시 근친 상간의 
유혹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대리 만족이 아닌가 의심해 보아야만 한다. 
바로 이와 같은 예가 있다. 
  여행공포가 있는 열세 살 난 소년이 있었다.  몇 주 전 그 소년은 
아버지의 출장에 따라가기로 했다.  그러나 비행기 출발 시간 직전에 그 
소년은 공포에 질려서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다음 주에 다시 시도를 해 
보았으나 결과는 같았다.  일 주일 후 그의 아버지는 차로 갈 것을 
제안했고 이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또 그 다음 날 아이는 몹시 
불안해 하며 집에 돌아가겠다고 떼를 썼다.  아버지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차로 데려다 줄 수가 없어서 비행기로 돌아가라고 
얘기해 보았다.  여전히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소년은 
비행기를 타기로 결심했고, 별 문제 없이 집에 올 수 있었다.  
그 당시 소년의 부모들은 이혼 직전이었고, 아버지가 이혼 후 결혼하게 될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는데, 소년의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아버지는 여자 같은 면이 많고 동성애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녀는 남편이 아들을 끌어안거나 키스하는 등의 이상한 
동성애적 애정 표현을 하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그러나 남편이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아이를 피하는 것 같았다.  아들 
역시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불안해했고 아버지가 안아주거나 키스를 해 줄 
때는 싫어했다는 것이다. 
소년과의 상담도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시외로 출장을 가거나 시골로 여행할 때, 심지어 야구장에 갈 
때에도 자기의 여자친구를 꼭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소년의 말을 듣고, 
처음에 나는 이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아버지의 불륜이고, 소년이 
여행공포를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아버지의 여자친구와 동행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어가 보니 상황은 
정반대였다.  소년은 아버지의 여자친구와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며, 오히려 
그녀가 동행했을 때가 더 즐거웠다고 말했다.  소년이 비행기타기를 
거부했던 것은 그 여자가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또 불안을 느끼며 
집에 다시 돌아갈 것을 고집했던 것은 그 여자가 첫날은 함께 지냈지만, 
둘째날에는 친척을 만난다는 이유로 떠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볼 때, 이 어린 환자의 공포는 아버지와의 너무 
가까운 접촉에 대한 두려움이었으며, 그 아버지 역시 그와 유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불륜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아들에 대한 성적 감정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과 아들에게 여자친구를 
보여준 것은, 자신은 여성처럼 나약하지 않고 오히려 여성을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환자 아버지와의 상담은 이런 나의 생각이 맞았음을 입증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동적애적 성향이 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지난 
몇 년 동안 고민해 왔다.  그의 부인이 남편의 동성애적 성향에 대한 방패 
역할을 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응급실에 실려 온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부인에게 가벼운 상처를 입힌 
후, 자신은 손목의 정맥을 끊으려 했었다.  치료를 받는 동안 남편은 겁에 
질려서 아무 말도 못하고 후회하고 있는 듯 풀이 죽어 있었지만, 이에 
반하여 부인은 마구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 부부는 결혼한 지 4년이 되었는데, 결혼할 당시 부인에게는 이미 아홉 
살 난 딸이 있었고 아이는 친척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약 1년이 지난 후, 
딸을 데려와 함께 살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들의 결혼생활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하는일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의견이 대립되었고, 부모가 
싸우는 것은 언제나 이 딸 때문이었다.  만일 둘 중 누군가 딸을 칭찬하면, 
상대방은 여지없이 아이를 헐뜯곤 했다.  1년 동안 언쟁을 계속하다 보니 
계부는 항상 딸을 두둔하고 있었다. 
  이런 첨예한 대립 끝에, 부인은 남편이 딸과 사랑에 빠졌다고 믿게 
되었고, 심지어는 성 행위까지를 원하는 인간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런 비난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아무 거리낌없이 딸을 
안아주고, 키스해 주며, 무릎에 앉히곤 했다.  그 아이도 계부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았고 오히려 좋아하는 듯했다.  결국 가족 사이의 언쟁은 
갈수록 험악해져서, 여러 번 경찰까지 출동해야만 했다. 
  남편은 응급실에 오기 몇 주 전, 갑자기 부인이 자신과 딸을 죽이려 
한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딸에게 계속해서 엄마와 떨어져 
있으라고 했으며, 친척집에 딸을 보내기도 했다.  그 자신도 잘 때 침실 
안에서 문을 잠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망치를 사가지고 와서 부인에게 그 망치가 
호신용이라고 경고했다.  어느 날 아침에는 부인을 죽이겠다면 망치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말로 죽일 작정을 하고 때린 것은 아니어서, 
그녀는 쉽게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경찰이 그 집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정맥을 끊어서 상당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남자의 마음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왜 이런 엉뚱한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을까?
  환자와 그 부인, 그리고 의붓딸과 많은 얘기를 나눈 결과, 몇 가지 
납득할 만한 해답이 나왔다.  그의 문제는 결혼과 함께 시작되었고 
의붓딸이 들어오면서 더 깊어졌지만, 실제 문제는 그 아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런 감정의 변화가 있기 
전까지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은 순수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순수한 
애정이 육체적 욕망이나 음부의 자극, 그리고 딸과 성행위를 하고 싶은 
충동으로 바뀌어갔다.  이런 변화는 그를 공포로 몰아 넣었으며, 의붓딸과 
부인의 행동에 의해 더욱더 악화되었다.  그는 의붓딸이 자신의 유혹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부인이 알게 되더라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부인이 했던 것은 단지 비난하고 
힐책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이젠 그의 양심만이 근친 상간을 막아 줄 
안전 장치였으나, 이 양심마저도 금지 신호를 내리기엔 너무 나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비틀거리는 양심에도 이 딜레마에 간접적이나마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정도의 힘은 남아 있었다.  이 해결책이 바로 정신 
이상이었다.  정신 이상에 빠지면 폭력을 비롯한 다른 모든 문제들을 
일으킬지도 모르지만, 근친 상간만은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특이한 정신 이상의 상태에서, 그 남자는 이미 딸을 성폭행해 버렸다고 
믿었고 또 그런 짓을 범한 사함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부인이 다른 
어머니들처럼 그런 짓을 한 자신을 죽이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정신 내면의 과정으로 인해서 그는 갑자기 그의 부인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녀가 자신과 딸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딸을 먼 친척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문을 잠근 채 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행동도 이해가 되며, 부인을 망치로 공격한 것도 납득이 
되었다.  딸을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성 관계를 조장하는 부인에 대한 
분노가 부인을 공격하게 된 진짜 이유였다.  
  그는 도대체 세상에 이런 끔찍한 짓을 하는 어머니가 있을 수 있는가 
분노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과연 어머니가 그럴 수 있을까?  딸과 남편 사이의 성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어머니가 있을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런 
어머니들이 꽤 있다.  언뜻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아버지와 딸 
사이에 성적 접촉이 일어났다면 항상 어머니가 공범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근친 상간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묵인없이는 지속될 
수 없고, 지속된다 하더라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어머니가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친 상간이 조장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와 어떤 형태로든 성 관계를 가진 적이 있는 
여자아이라면 엄마가 왜 한 번도 말리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은 그런 줄 몰랐다고 변명하면, 그 딸은 
엄마라는 사람이 어쩌면 그걸 모를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한다.
딸이 그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매우 놀라고 당황하면서 
그런 일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부인한다.  그러나 자신이 근친 상간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근친 상간의 공범자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어머니의 심리는 첫째로, 딸과 남편을 시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둘이서 성 관계를 갖게 하여 상처를 주려 했을지도 
모른다.  또 자신이 딸에 대해서 느끼는 동성애적 감정을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큰 죄악이라고 여겨지는 근친 상간적 
욕망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 딸과 남편의 관계를 묵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열세 살 난 아들을 둔 마흔 살의 어머니는 자식에 대해 느끼는 성적 감정 
때문에 심각한 문제에 빠졌다.  그녀는 한 차례의 심각한 자살 소동을 
벌인 후라서 너무 약해져 있었고 의기 소침한 상태여서 며칠 동안은 아무 
이야기도 나눌 수 없었다. 얼마 후 그녀는 안정을 되찾고 남편 이야기를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다가 끝내는 그녀를 버리고 
떠났다고 했다.  남편이 떠난 후 약 일 년 동안을 아들과 단 둘이서만 
살았다.  친구와 교제도 끊고 사회활동에도 거의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간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대화중 이상하게도 아들에 해대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 점을 지적하자, 처음에는 착한 아이라는 말밖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들에 대해서 좀더 얘기해 달라고 하자, 남편이 떠나고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자 아이도 힘들어 했으며, 지나치게 예민하고 화를 잘내는 
외로운 아이가 되어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들 모자(모자)가 외롭게 
서로만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후로 또 며칠이 지났지만 그녀는 아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들에 대해서 직접 묻지 않고 아들과 함께 먹는 
식사나, 함께 시청하는 TV프로그램 등과 같은 일상 생활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했다.  그녀는 늦게까지 잠을 못 자고 뒤척이는 때가 많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그때 나는 별 생각없이 아들의 수면(수면) 습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별 생각없이 던진 이 질문이 순간적으로 그녀를 
난처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냥 궁금했을 뿐이라고 대답을 하고선, 내 질문에 
그렇게 놀라는 것을 보면 아들의 잠버릇에 관해서는 뭔가 할 얘기가 있을 
것 같다고 넌지시 말해 주었다.  
그녀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아직 얘기하지 못한 것이 있다고 고백했다.  
아들이 어릴 때 종종 부모의 침실로 찾아왔었다는 얘기를 하더니 다시 
머뭇거리면서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는데, 남편이 밤새 집에 돌아오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으며, 그럴 때는 아들이 남편의 잠자리에서 잠을 자곤 
했다는 것이다. 그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아이는 단지 외로웠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아주 떠나 버리자 아들은 더 자주 그녀의 침대로 
왔다. 이 말을 하고 나서 그녀는 나를 쳐다보더니 "이것이 잘못된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이야기할 것이 더 있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과연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부모와 함께 자는 것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또 아이에게 너무 자극적이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아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밤 자신의 
침대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고, 잠을 잘 수가 없을 때만 그랬다고 변명하듯 
덧붙였다. 
  다음 날 그녀는 전날 내게 했던 말들이 너무 끔찍한 것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말 중에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서, 그녀가 자살기도를 할 당시에도 아들이 그녀의 침실로 찾아오곤 
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그녀는 아니라면서 그 사건이 있기 한 달 전에 
그 버릇을 완전히 고쳐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한 달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매우 
곤혹스러워하면서 애가 성적으로 흥분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도 이상 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들이 발기한 것을 의미하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렇다면 그 일이 있고 나서야 아들이 자신과 함께 자는 게 
나쁘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런 
얘기를 다 마치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이 아들에게 끔찍한 짓을 
한 것 같다며 걱정을 했다. 나는 이 사건이 그녀의 자살 소동과 관련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아들을 
흥분시킨 엄마라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내가 이 사건 이후로 아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고 하자, 그녀는 
짜증을 내며 "그 아이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계속 내 침실로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여전히 전체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서, 나는 
아들이 그녀와 한 침대에 있는 동안 발기한다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되었냐고 물었고, 그녀는 약 6개월 전이라고 했다. 곧 나는 그녀가 아들이 
자신의 침실로 찾아오는 것을 금한 것은 겨우 한 달 전이라고 말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깜짝 놀라서 얼굴을 붉히더니 도리어 
내게 화를 내면서 내가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니까 이제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다음 날에도 그녀는 역시 뾰로통하여 화가 나 있는 듯했다. 나는 괴롭게 
해서 미안하다는 얘기와 함께, 좀더 얘기할 것이 분명히 있을 것 같으니 
우리의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비꼬는 말투로, 만일 내가 할 이야기가 더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보지 그러느냐고 했다. 나는 그녀가 원한다면 내 생각을 
말해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나의 추측은 그녀의 침대에서 아들이 발기한 
것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것이 최악의 사건은 아니었을 것이며, 더 
나빴던 것은 약 한 달 전에 그녀 자신이 침대에 올라온 아들의 성기를 
자극해서 성행위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해 보았다. 그러자 
그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행동을 인정했고, 매우 고통스럽게 그 
당시 그녀가 얼마나 성적으로 욕구불만의 상태였으며, 얼마나 외롭고 화가 
나 있었고 절망적이었는지 얘기해 주었다. 급기야는 아들과 성행위를 할 
찰나에 자신을 발견하고서 자신이 얼마나 겁에 질렸었는지도 말해 주었다. 
그 일로 그녀는 자신을 증오하게 되었고, 많은 고민을 해 오다가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러한 정례들은 자식에 대한 성욕 때문에 여러 부모들이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 중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서 발생되는 
문제들을 비교적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앞에서 말한 경우보다 가벼운 
것들이 훨씬 더 많고,  그 유형도 다양하다. 
  부모 자식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마지막 유형을 다루기에 앞서 
가족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부터 해보자. 보통 가족은 여러 개의 삼각 
관계(multi-triangular)로 얽혀 있다. 이 중 가장 보편적인 삼각 관계가 
낭만적인 외디푸스 콤플렉스(roman-tic or oedipal triangle)다. 예컨대, 
어머니와 아들의 사이가 너무 가까우면 아버지의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또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들과 딸의 질투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딸은 어머니를 
자극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점하려 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차지하려고 
아버지에게 감히 도전을 시도해 본다. 자식들 간에 서로 좋아하는 것을 
질투하는 부모도 있다. 이런 모든 삼각 관계에서 섹스와 공격성은 서로 
어울려서 사랑과 증오, 질투와 부러움, 자부심과 영예, 경쟁과 대등, 방해와 
도움 등 서로 상반된 감정들을 만들어 낸다. 가족의 삼각 관계는 보통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지만, 만약 가족 내(내) 삼각관계의 한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다른  구성원들도 심한 영향을 받게 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이런 삼각 관계가 부모의 결혼 생활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들은 이런 관계를 재미있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서 사춘기나 성인이 되었을 때는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시기나 분노, 질투심, 그리고 어느 한 쪽만을 좋아하는 
행위는, 결국 부모를 당황하게 하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런 반응 중 어떤 것은 결혼 생활을 파국으로 몰고가기도 한다. 
  지금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부모의 행동 유형은 앞서 소개한 부모와는 
반대이다. 결혼 생활을 끝냄으로써 지식과 연관된 난감한 문제들을 
해결하였던 부모들과는 달리, 이 부모들은 불안정한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하나의 도구로 아이를 이용하고 잇다. 이 경우 아이는 가족을 
위한 희생양(scape goat)이 되는 것이다.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희생양을 제공하면 화해가 일어나고 협조 
관계가 된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희생양을 볼 수 있다. 적대적인 
두 사람이 공동의 관심사나 공동의 적인 희생양을 갖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마음이 통하는 공통의 동기가 생겨서 적대감이 줄게 된다. 예를 
들어, 사이가 나쁜 부모가 아픈 아이에 대한 걱정을 같이 하게 되면 서로 
더 가까워지게 무단 결석, 또는 청소년 비행과 같은 사건을 저지르는 것을 
보게 되면, 이들 사건의 배후에서 다른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이런 사건들은 서로 싸우던 
부모들에게 함께 걱정할 수 있는 공동의 걱정거리, 즉  희생양을 제공해 
주어서 두 사람의 싸움을 멈추게 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별다른 부작용만 없다면 이런 방법이 가장 손쉽기는 하다.  아이나 
부모가 모두 가정 생활 중에 나타나는 불화의 조짐을 느끼면 이것을 
처리하기 위한 사건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건강한 아이가 부모 사이의 
심각한 돌발 사태를 예감하고,  자신의 생명에 위기를 주는 질병에 
빠지거나 사건을 일으켜서 폭발할 듯한 상황을 가라앉히는 것을 볼 수 
잇다.  어떤 이들은 부모와 자식간에 이렇게 소로 속고 속이는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를 의심하겠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가족들이 어느 한 사람을 계속 희생양으로 삼는다면, 이는 여기에 
관련된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서로 공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희생양 현상은 여기에 관련된 사람들 자신들도 이것을 
보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여기에 관련되지 않은 사람, 예를 들면 
주치의 같은 사람만이 가족들 사이에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 
  가족간의 '희생양 만들기' 현상은 아이를 개입시키지 않고도 가능하다. 
남편이 부인과의 언쟁이 위험 수위까지 달했다고 느꼈을 때 갑자기 복통을 
일으킨다.  남편이 아프니까 아내는 그를 간호하고,  그러는중에 부부 
사이의 위기는 지나간다. 부부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단들이 
사는 부부가 상호 묵인 하에 상대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경우에는 그리 
나쁠 것 없이 넘어간다.  하지만 이 경우도 다른 가족이 관여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을 여럿 둔 가정에서도 그 중 어느 한 아이만이 
희생양으로 선택된다.   희생양이 되는 아이는 부모의 결혼 생활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우연히 병들었던 아이나, 어려운 일을 당했던 아이, 부모의 
관심을 끌었던 아이다. 만일 그때 아이의 문제가 부모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막아주었다면 그 아이는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가족의 
희생양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항상 똑같은 것은 아니다. 어느 아이가 한 번 우연히 
희생양이었다고 해서 계속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니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곤란에 끼어들게 되고 그 희생양 역할에 익숙해지면, 
점점 더 그 역할에 빠져들게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같이 
아이들의 행동은 서로 다른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 만성 질환으로 
시달리고, 무기력하며, 불행한 아이들도 자신이 결코 이런 상황에서 
희생양으로 이용되는 것을 허락치 않고 거부한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이런 역할을 환영하고 요구하며 오히려 그런 관계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깊고 넘어갈 것이 있다.  희생양의 역할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한 사람을 평생 동안 고질적인 
실패자로 고정시켜 버리는 경우라면, 당연히 나쁘고 당사자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가끔씩은 희생양이 가족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그가 맡은 역할이 항상 가족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것이 가증해진다. 그는 이러한 
힘을 의식해서, 자신을 이용하는 상대방을 오히려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도 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가족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그 역할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마음대로 상대방을 다시 
싸움으로 몰아 넣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런 희생양이 가족들 중에서 반드시 무능하고 시시한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십중팔구 간교하고 남을 교묘히 잘 
다루며 속일 줄도 아는 기회주의적 성격의 소유자이며, 동시에 지적이며 
영리하고 품위도 있어서 여러 면에서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훨씬 
능가하는 사람을 경우가 많다. 
  스무 살이 거의 다 된 젊은 남자가 자기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한 상태로 어머니의 차를 몰고 가다가 박살을 냈고, 
일 주일도 채 못돼서 형의 차를 또 박살 냈다. 응급실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무심코 당직 의사는 일 주일 사이에 똑같은 사고를 두 
번이나 당한 것이 좀 이상하다고 이야기했다. 응급실 의사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환자는 자신이 정신과의사와 상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의사의 추천으로 내게 오게 되었다. 그 환자는 스스로 의사와의 
상담을 하기 위해서 두 대의 자동차를 부수는 힘든 과정을 거친 셈이었다. 
  그는 상담을 요청한 이유가 자신이 선천적 패배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잘 지내는데 자신만은 항상 문제에 부딪쳤다. 
잔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주의하라는 경로를 
수없이 받으면서도 모든 이의 걱정의 대상이었으며, 남에게 의심받고, 
구속받고, 잘못을 고백해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학교는 중퇴하고서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도무지 자신을 찾을 수 
없었다. 때로는 술도 마셨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흔히 즐기는 
약물에 빠져들기도 했다. 가족들의 차를 몰고 나가기도 했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선뜻 차를 빌려 주려고 했겠는가?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그를 믿지 못해 다시는 어머니의 차를 몰고 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으며, 행여나 이 약속을 어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몹시 화를 
내셨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술에 빠져들고 직업을 자주 바꾸며 
방황했다. 
언뜻 보기에 그 환자는 타고난 성격에 문제가 있는 듯했다. 천성적으로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여, 하는 일마다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나는 환자 자신이 그러한 패배자의 이미지를 일부러 만들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 이면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환자의 어머니가 나를 마나나고 싶다고 전화를 
해왔다. 난 보통은 청소년기 환자의 가족을 만나는 것을 꺼리지만 그 
제의를 수락하기로 했다. 젊어 보이는 그녀는 상냥하고 예의발랐으며, 
아들에 관한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말로 그는 그때까지  
말썽투성이였으며, 다른 형제들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 모두가 지금은 고인이 된 전 남편의 영향이라 했다. 거친 운전 솜씨에 
술고래이자 성격 또한 포악했으며 아이들한테도 심하게 대했는데, 특히 이 
환자에게는 더욱 심했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아버지처럼 이 아들도 역시 
약속도 지키지 않고 늦도록 돌아다니며 반항적이고 무책임했다. 
  나는 그녀가 재혼을 생각해 보았는지를 물었다. 놀랍게도 이미 2년 전에 
재혼을 한 상태였다. 그 사실을 몰랐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순간 당황한 
듯했고, 곧 그녀의 새 남편을 지나칠 정도로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새 
남편을 전 남편과는 전혀 다른,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에 사려싶고 지적인 
남자이며, 술도 마시지 않고 외도도 하지 않는, 돈도 잘 벌고 사회의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계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 아이만 
제외하고는 모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아들만은 계부를 
싫어하고 자꾸 계부의 성질을 돋구지마 계부가 곧 참아 버린다고 했다. 
  환자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이 환자의 행동이 어머니와 계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삼각 관계임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환자와의 계속된 상담을 통해서 계부에 대한 질투와 경쟁이 자기 파괴적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이런 것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단순한 지적 정신 치료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듯했다. 지금 현재 그를 이런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직접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것만이 그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겉으로는 부모가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 부모의 결혼 
생활의 심각한 위기를 인식하고,  이를 걱정한 그가 말썽을 일으켜서 
부모들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일종의 희생양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주일 후 환자를 만났을 때 여느 때처럼 
자신이 새로 일으킨 문제들을 얘기하려는 걸 가로막고서,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얘기했다. 이상하게 들릴지라도  한 번 들어보라고 
말문을 연 뒤, 아주 간략하게 그가 부모와 그들의 결혼 생활이 흔들리는 
것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을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퉁명스럽게 바보 같은 생각을 다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그는 "제가 그들을 걱정한다고요? 왜 제가 
걱정해야만 하나요? 제가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게 옳을 거예요. 그들은 끊임없이 저를 들볶느라고 서로 다툴 
시간도 없는 걸요"라고 말했다. 
  나는 거에게 내가 말하려던 것이 바로 그것이라며 그가 부모의 결혼 
생활을 걱정하기에 고의로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면서 자신에게 관심을 
쏟게 하려 하고 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들이 자신을 들볶는데 
정신이 없도록 만들어서 두 사람이 서로 다툴 시간을 가질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다시 나의 생각이 어리석다고 말하며 자신의 부모들은 절대로 
싸우지 않으며 자신을 들볶는데 열심히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가 부모의 결혼 생활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나의 
생각을 다시 말해 주었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부인했고 나는 여기에 대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선생님은 제가 단지 부모님의 
위태로운 결혼 생활 유지시키려고, 제 생활을 고의로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말도 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한 
주간에 두 대의 차를 부수어 버렸다는 것을 생각해 봐요"라고 했다.
  그는 잠깐 동안 생각을 해 보더니 이윽고 자신의 계부가 어머니에게 
대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다고 시인을 했다. 어머니는 첫 남편인 
자신의 아버지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그 생활은 최소한 이렇게 
지루한 것은 아니었는데 두 번째 남편은 지루할 뿐만 아니라 냉정하고 
비열하다고 했다. 그는 숨을 한번 돌린 후, "제가 선생님이 말한 대로라면, 
저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겠지요?"라고 물었다. 
  일 주일 후에 있었던 다음 면담에서는 그는 더 깨끗해지고 좀더 
정상적인 생활로 되돌아와 있었다. 직업을 찾았으며 집에서부터 멀리 
독립해 나갈 계획도 세웠다. 그는 점차로 자신의 일에 몰두했으며, 그의 
부모들은 지기들의 일에 관심을 돌리는 등 모든 게 잘 풀려 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 다음 방문시에 그는 아주 당황하고 있었다. 거의 용서를 
비는 듯한 어조로, 부모들이 다시 싸움을 시작했으며, 지신을 윽박지르던 
때보다 상태가 더 심각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다시 박으로 
떠돌며 술을 마시거나 직장을 집어치우고 싶은 유혹을 느꼈으며, 이러는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그가 부모들을 서로 
싸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고의로 말썽을 일으켜왔다는 것은 아마도 
사실인 것 같으며, 만약 그랬다면 이제 더 이상 그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힘든 일이었다. 지금껏 해오던 희생양의 역할을 벗어 던진다는 게 
그에게는 쉽지가 않았다. 부모가 다툴 적에는 다시 끼어들고 싶은 유혹이 
강했으며, 그 또한 예전의 자기 파괴적인 습성으로 빠져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으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 한 달 후에는 드디어 집에서 독립해 나올 
수 있었다. 집에서 나와 이사한 몇 주 후에, 그는 이제는 동생이 말썽을 
일으키며 부모의 언쟁의 대상이 동생에게로 옮겨졌다고 했다. 이번에는 그 
대신에 동생이 희생양의 역할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는 동생에게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18세 된 여자아이였다. 그녀와의 상담은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내게 상담을
의뢰한 가족주치의 말에 의하면, 환자의 어머니는 그에게 딸의 임신 
여부와 성병, 약물중독 검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6개월 전, 딸이 학교를 
그만둔 이후로 줄곧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 다녔기 때문에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예전의 그 아이는 신중한 성격이었고 대학에 
진학하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던 중 특별한 이유없이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고, 부모들이 오면 시무룩해서 부모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항상 시비만 걸었다. 집안일을 좀 도와달라고 하거나, 어디에 
가는지, 누구와 같이 갈 것인지를 물으려고 하면, 그녀는 잔소리 좀 그만 
하라고 화를 냈고, 자신을 아이 취급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결국은 
부모가 아이의 뒷조사를 하게 되었고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애와 차를 타고 돌아다녔고, 새벽 1,2시까지 동네 
술집에서 술을 마신 적도 있었다. 부모들은 그녀의 밤 외출을 금지시켰다. 
한 주일은 아무 말 없이 따르는 듯 했다. 그러나 곧 여기에 반항을 하더니 
부모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상태는 갈수록 심각해져서 
급기야는 집에서 한바탕 싸우고 나가 이틀 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얼굴이 창백했고 어딘가 아파 보였다. 딸의 가출에 
놀란 부모는, 한편으로 아이의 귀가에 안심도 되었지만 그녀를 주치의에게 
데리고 갔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후 주치의는 그 환자가 성병에는 걸리지도 
않았고 임신한 것도 아니지만 마약 사용도 여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환자는 자발적으로 정신과의사와의 상담을 
주선해 줄 것을 요구했다. 주치의는 자신이 수 년 동안 그 가족들을 맡아 
왔으나, 그가 아는 한 그들은 모두 예의바르고 존경할만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환자의 아버지는 잘은 모르지만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어머니는
지역사회 봉사에 적극적이었다.
  내가 그 환자를 만났을 때 그녀는 긴장된 모습으로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어서 측은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가련한 모습으로 자신은 절망이라고 했다. 
자신은 부모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으며, 가족의 불명예이고, 무엇을 하든지 
꼭 잘못되고 만다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남자친구들에게 너무 
잘해 준다고 하지만, 그녀로서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즐겁고 자기 
생활 중 유일하게 자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 때라고 했다. 
그들과 함께 차를 타고 돌아다닐 때도 다정하고 편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고 했다.
  그녀도 인정했지만 가족들은 모두 좋았다. 어머니는 항상 올바른 일만 
했고, 환자는 그런 가족을 자랑스러워 했으며, 이런 가족의 체면을 
손상시키고 싶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가족들에게 누를 끼치게 된 자신이 
싫다고 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항상 자신을 믿지 
못해 다짐을 시키고는, 자신이 막상 다짐을 해도 그것을 믿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는 조금 힘들었다. 평소에도 말이 
없었으며, 딸이 이런 증세를 보인 이래로는 거의 딸에게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 정도 하는 말이 고작 "말썽을 피우면 내쫓아 
버린다"는 위협이었다. 아버지의 본래 성격은 난폭했지만 잘 드러내지 
않았으며, 좀처럼 집안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들이 그녀에게 섹스나 약물, 또는 성병에 관해 평소에 어떤 말을 
해 주었는지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들은 한번도 딸에게 섹스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며 단지 "조심해라", "말썽 피우지 마라", "남자들과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라" 등이 전부였다. 나는 부모의 그런 말들이 
무엇을 암시하는 것인지 알겠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섹스"하고 대답했다. 
그녀가 자기는 부모에게 걱정만 끼쳤다는 강박 관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녀의 학교 생활과, 하고 싶은 일들이 무엇인지에 관해 물어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고등학교를 마치기 전까지는  모범학생이었으나 마지막 
기말고사 직전에 자포 자기 상태에 빠져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된 것이 모든 것의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그 아이들은 모두 나이도 많았고 그 애들과 어울릴 때만 
재미있었고 학교 생활은 지루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자퇴라는 성급한 결정을 내렸고, 또 그 
당시에는 이런 일들이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고 했다. 어울렸던 
아이들이 자신보다 훌륭해 보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 그들은 그렇게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꿈도 없고 직업도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모두들 친절히 대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아이들 중에서 어느 한 명과 결혼할 생각이냐는 나의 말에 
그녀는 당황해 하며 물론 아니라고 대답했다.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느냐고 묻자 그녀는 정말 가고 싶었고, 또한 응시한 학교에 
합격까지 했으나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듯해서 진학을 포기했다고 
대답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더 상담을 했지만, 그 환자는 누구와 만났는지, 어느 
술집에 갔는지, 얼마나 늦게 집에 돌아왔는지 등에 대해서 세세하게 
보고하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녀를 밤늦게까지 
기다리고 앉아 있다가 귀가한 그녀를 나무라며 술이나 마약을 복용한다고 
야단치는 것을 아주 재미있어 하며 나에게 말하곤 했다. 사실 그녀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약물도 복용하지 않았었다. 
  어느 날 나는 그 환자가 자신이 문제아라는 것을 나에게 확신시키기라도 
하는 듯 지나치게 이 부분들을 강조하는 것 같아서 그녀가 일부러 자신의 
부모들에게 근심을 끼치려 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 순간 아이는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시, 그녀가 고의로 
자신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고 하자, 전에도 그런 말은 들었으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짐작컨대 그녀가 부모들의 결혼 생활이 파국을 맞는 걸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부모들은 절대 싸우지 않으며, 둘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내가 "그러면 둘 사이에 좋은 점은 
무엇이냐?"고 묻자, 그 환자는 내가 모든 걸 꾸며내고 있다며 항의했다. 
하지만 그녀의 호기심이 다시 살아나자, 그 다음 면담 때에는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 좀더 얘기를 해 보려고 애썼다. 결국 그녀가 인정했지만 그 
환자의 아버지는 매우 특이했다. 술을 많이 마시기는 했으나 정말로 
가족들을 외면해 버리는 그런 가장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들만 없었어도 오래 전에 남편을 버렸을 거라고 했다. 말을 멈추자 
나는 그녀가 부모들의 이런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느껴서 부모들이 자신 
때문에 고민하도록 만들어 그들 사이의 거리를 극복하게 하려 했다는 나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부모가 둘이서 함께 자기를 걱정해 주고 
꾸짖으며 고함을 질러댄 것은 인정하지만, 자신이 그들을 결합시키기 위해 
고의로 그러한 일을 벌였다는 것은 동의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매주 면담 때마다 부모들의 결혼 생활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부모들이 자신들의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특히 이 
딸을 이용해 왔다는 사실들이 점차로 밝혀졌다. 이 환자는 자신이 
이용당해 온 것에 분개했다. 이런 분노에 대항이라도 하듯이 그녀는 빠른 
속도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으며, 옷도 훨씬 단정하게 입고, 전에 자주 
어울리던 불량한 아이들과도 점차로 멀어졌다. 그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녀는 곧 직업을 가졌고,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예측했던 대로 그녀 부모 사이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제 
그들은 거침없이 신랄하게 싸웠다. 아버지는 더 심하게 술을 마시게 
되었으며 직장도 결근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 울면서 딸에게 
자신의 불행을 하소연했다. 급기야는 그녀가 집을 떠나면 어머니인 자신도 
어린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그 환자는 이런 모든 사건들이 자신의 행동변화로 초래된 것임을 깨닫기는 
했지만, 부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젠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계속된 나와의 면담을 통해서 
그녀는 자신의 일에만 충실하겠다고 단언을 했다. 
  그러나 몇 달 후에는 심히 괴로워하면서 자신의 결심이 무너져 버렸음을 
고백했다. 나에게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예전처럼 술집을 돌아다니고 
불량한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다시 말썽을 피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부모들의 싸움이 멈추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제는 더 이상 그 어느 쪽도 신경쓰기 싫으며 자신이 
걱정스럽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임신을 한 것 같으나 부모에게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의 어머니의 반응은 상상만 해도 
두렵다고 했으며, 아버지는 심장 발작을 일으킬지도 모르기에 혼자서 이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녀는 애인이 임신 중절 비용을 준비해 줄 
것이므로 부모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때 나는 별다른 얘기없이 그저 묵묵히 그녀의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일 주일 후에 그녀는 애인이 돈을 마련할 수 없다고 했다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녀가 총명하니까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 보았을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으며, 과연 나의 
생각처럼 그녀는 벌써 임신 테스트 받는 것을 준비해 놓았고, 만일 임신이 
확실하다면 그녀의 어머니에게 사실을 말할 계획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그녀의 임신은 확인이 되었고, 그녀는 어머니에게 얘기를 꺼냈으나 
어머니는 의외로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임신 중절에 
대해서 의논하기 시작했다고 전화로 내게 알려왔다. 
  환자의 임신으로 인해 가족 내에는 위기 상황이 다시 발생했으나, 이번 
경우는 과거와 그 양상이 달랐다. 그래서 나와의 상담도 그 성격이 
변하였다. 그녀는 이제 자신을 파괴하지 않으려는 굳은 결심을 했고, 
부모들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이용하려는 것 자체에도 강력히 반발했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임박한 지신의 임신 중절 수술에 관하여 아버지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꺼냈을 때 아버지도 역시 
어른답게 자신을 잘 제어할 수 있었다. 이번의 위기 상황에서 그녀가 
자신을 잘 통제해서 예전같은 희생양의 역할을 하지 않은 결과로, 부모는 
지난 몇 년 동안의 결혼 생활 중 어느 때보다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수술 이후 환자는 한동안 우울해 했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모가 
서로 가까워진 것을
발견하고 더 이상 자신을 희생양으로 쓰지 않고서도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자 그녀는 자신의 능력에 걸맞는 
좋은 직장을 찾았고, 새 직장과 더불어 그녀는 집을 떠나서 독립을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으면, 새로운 분야로 자신의 관심을 돌렸다. 그녀의 
상황이 다소 안정되고 우울증도 사라져가자 나와의 상담 역시 더 이상 
필요치 않음을 깨닫고 점차적으로 면담을 정리해 나갔다. 
그러나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그녀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편지를 
내게 보냈다. 자신의 어머니가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환자의 진짜 고통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이런 모든 일들을 
하소연하지만, 그녀는 아직 그런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희생양의 역할을 하는 자식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거슬리는 
행동이나 자기 파괴적인,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냉담과 무반응으로 나타난다.
집밖에서는 여느 아이와 다름없었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냉담해지는 15세 
소년이 있었다. 반항적이 행동을 한다거나 부모에게 대드는 일은 없었지만, 
무슨 일을 하든지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다. 아침마다 늦잠을 자고 숙제도 
미루기 일쑤였다. 목욕도 잘 안하고 옷을 갈아입는 일도 귀찮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TV 앞에만 앉아 있었다. 그는 특별한 불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떤 일에든 무관심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 아이의 
부모는 활동적이고 능동적이며 야심에 차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아들의 무관심이 못 견디게 답답했고 그럴수록 더욱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들을 더욱 무관심하게 만들뿐이었다. 그의 
부모에게는 이런 무반응과 수동적인 반항보다는, 차라리 다른 아이들처럼 
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 같았다. 몇 개월 동안 부모들의 
생활은 이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찼고, 아들과 싸워보기도 하고 
전문가와 상담도 해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결국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난감해했다. 
  15세 소년의 이런 행동에는 여러 가지 외적·내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에 대한 반항이라기보다는 단지 자기 문제 때문에 우울증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우울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내적 갈등, 즉 자위행위에 대한 고민, 부모와의 삼각관계, 성욕이나 성에 
대한 공포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사춘기 아이들이 수동적이 되거나 
무관심하게 되었을 때는 그 이면에 이런 종류의 문제들이 숨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이러한 가능성들을 생각해 볼 때 아들의 행동 변화에 대한 
부모들의 지나친 관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 소년이 부모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하고 자문해 보았다.
그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 나타났든지 그가 부모들을 괴롭히려 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환자와 그의 부모를 계속 만나면서 나는 그 부모가 상당히 곤란한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환자는 부모의 이 걱정을 자신에게로 돌리려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그가 부모에게 주고 있는 
걱정거리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무리 심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더라도 
이 싸움을 말리기에 충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환자에게 부모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는 것 같다고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무슨 근거라도 있나요?"하고 
반문해서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마도 부모의 결혼 생활이 
문제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이혼이라도 할 것 같다는 말이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것이 단순한 의견 차이나 말다툼 정도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그가 부모들을 걱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 때문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것이 사실인 듯 들렸으나, 이것은 다만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그 환자의 바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몇 번의 상담을 더 거친 후 
나는 내가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났고, 이제까지의 추측에서 
벗어나서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어떤 다른 이유가 이 
소년으로 하여금 그의 부모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의 편견에서 벗어나자, 이 소년이 육체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한다는 것을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여러 가지 중세를 
이야기하며 이런 증세들이 무슨 병과 연관이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의사들이 병을 진단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리고 어떻게 환자가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어느 날 그가, 
아버지가 보통 때와 다르다고 얘기하자 나는 그가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그의 아버지는 아주 
건강했으며, 내가 그의 부모를 만났을 때도 아픈 기색은 없었다. 혹 그들이 
아팠는데도 내가 눈치 채지 못한 것일까?
  여하튼 나는 나의 환자에게 아버지나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실제 몇 가지 사실들이 이상하다고 했다. 
먼저, 아버지가 예전보다 자주 병원에 가는 것 같고, 몸 상태나 먹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며, 자기가 방에 들어가면 부모가  하던 이야기를 
중단해 버린다는 것이었다. 또 어머니도 전화를 하시다가 그가 방에 
들어가면 몇 번이나 황급히 끊어 버리더라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가 
체중이 빠지신 것도 기억해 냈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얘기한 후, 그는 
마치 화제를 바꾸고 싶은 듯 "선생님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이 모든 
것이 부모님이 이혼하려는 걸 암시하는지도 모르죠"라고 말했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예측처럼 
실지로 집안에서 어떤 건강상의문제가 곧 나타날 것 같았다. 
  나의 이런 예측은 적중했다. 그 후 일 주일도 안 되어서 그는 
어머니에게 자연스럽게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물었다. 그의 어머니는 조금 
당황하기는 했으나, 아버지가 당뇨병 진단을 받은 일과 그 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아버지에게 
심상치 않은 증세들이 나타났었고, 진찰 결과 당뇨병이란 진단을 받았는데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았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도 어려웠고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조차 
힘들어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들이 걱정할까 봐 이런 사실을 숨기는 
것은 부모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이 어린 환자도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긴 했으나, 이때는 이것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대신에 우울해 하고 불평을 터뜨리며 부모에 게 
무관심의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이런 무관심을 이용하여 
부모님의 관심을 자신의 문제로 돌려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건강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도록 했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얻는 이익은 부모의 
고통과 자신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신들에게 
큰 고민거리가 생기면 아이들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또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게 함으로써 부모의 관심을 자기에게로 끌기도 한다.
  '까다로운 사춘기, 부모들은 힘들다' 라는 내용을 맺으면서 가족간의 
상호관계란 참으로 복잡한 것이라는 점을 간조하고 싶다. 다른 여타의 
복잡한 요인들은 제쳐 두더라도,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문제들은 두 가지의 주요한 요인에 의해서 일어난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그 중 하나이고,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의 내부에서 겪는 갈등이 
하나이다. 특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을 하며, 실은 이 갈등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내면적인 욕구와 이를 가로막는 힘의 
싸움이 갈등이며, 좌절감, 열등감, 죄책감, 소외감 등은 내적 갈등의 
산물이다. 이런 갈등과 그 부산물은 타인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성격 특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다. 그런데 
이 갈등은 대인 관계에서 상황에 따라 강력한 힘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의사가 가족 내의 문제로 상담 요청을 받았을 때에는, 
가족 구성원 중 어떤 개인의 내적이 문제가 가족 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개인의 사적인 문제로 상담을 요청 
받았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 환자의 내적 갈등과 가족내의갈등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광범위하고 
전체적이 통찰을 통해서만 한 가족이나 개인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제대로 진단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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