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는 4시간 수면법
1. 4시간 수면의 비밀
건강과 체력은 전혀 별개의 것
요즘 들어 곧잘 "체력을 길러서 건강을 증진하자"는 소리들을 많이 하고 있다. 체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그러한 소리를 듣고 우왕좌왕하는 것이 사실일것이다.
의사들은 무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무래도 이런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나로선 체력과 건강은 전혀 무관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옛부터 곧잘 체력 검정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100m를 몇초에 달렸는가? 2,000m를 몇 분으로 달렸는가? 턱걸이는 몇번 했는가? 하고 말이다. 이것은 체력이라는 것을 외견상 정량화함으로써 보편적으로 나타내는 것인데, 그 외도하는 바를 모르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량화된 순위대로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달리기는 잘해도 헤엄을 못치는 사람도 있다. 평형감각이 무디어 평균대 위도 걷지 못하고, 자전거나 스케이트도 못타는 사람이 상당 수에 달한다. 때로는 고공 공포증이 있어 높은 데는 딱 질색인 사람도 있다. 이런 데도 보통사람과 같은 체력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째로, 그러한 사람들도 4시간 수면의 생활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4시간 수면의 생활은 <수행>이기 때문에 체력의 소모가 매우 크다. 그러므로 그것을 해 내는 사람쪽이 훨씬 체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나폴레옹 수면을 장기간에 걸쳐 실천해 왔다. 그렇지만 구보는 언제나 꼴찌였으며 무거운 것을 나르는데 있어서도 꼴찌였다. 병이 갓나은 약질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꼴찌인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폴레옹 수면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내 생각으로는 체력이란 환경 조건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신체의 순응성, 또는 다소의 무리에 대해서도 그 건강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지속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럼, 건강이란 무엇인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자율신경 전체로서의 밸런스, 또는 조화성이라고 하면 어떨까?
환경 조건은 항상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자율신경은 서로 연계를 유지하며 그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그 대응 능력이 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일부에서 언밸런스가 생겨도 다른 부분이 협력함으로써 지탱되는 복원력이 바로 건강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건강이란 복원력에 의해 상징되는 자율신경 전체의 밸런스이며, 체력이란 힘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율신경 전체를 잘 조화시키면서 환경조건의 변화에 순응시켜 가는 능력으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복원력이 커지지 않으면 체력도 커질 리가 없다. 즉 "체력을 길러서 건강을 증진하자"고 하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속하는 두뇌와 자율신경의 건강
4시간 수면의 생활은 모든 자율신경을 혹사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훈련에 따라 강인하게 될 뿐만 아니라 상호의 연계가 긴밀해진다. 따라서 전체로서의 복원력이 증가한다.
일반적으로 4시간 수면은 신체를 망친다고 불안해 할지 모르나 그러한 불안은 전혀 쓸데없는 망상이다. 오히려 4시간 수면이야 말로 건강을 창조하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령이 되어서는 어떨지 모르나 의사들의 말로는 한창 성장기일 때는 만 3년이면 세포가 전부 교체된다고 한다. 이런 때에 4시간 수면을 실천하면 새로운 세포는 4시간 수면에 적응되도록 만들어지고 다듬어진다는 것이다. 즉, 이것이 건강을 창조한다고 볼 수 있다.
만 3년이 되면 이제 완전히 4시간 수면에 적응되는 신체로 만들어진다.
건강도 체력도 인간생활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정량적으로 평가해서 어느 쪽이 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종류의 성격은 아니다.
꼬마건 꼴찌건 병에 걸리지 않고 지치지 않는 쪽이 체력은 뛰어나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몸집이 크다거나 힘이 세다고 해서 또 달리기가 빠르다고 해서 반드시 체력이 있는 것은 아니며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째든, 4시간 수면의 생활을 지속하면 이른바 두뇌도 자율신경도 항상 긴장된 상태가 되어 한창 성장기가 아니더라도 신경 상호간의 연계가 밀접해진다. 그리고 3년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나가면 신체 안의 세포는 모두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머리의 회전도 빨라지고 허약한 신체도 병에 저항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4시간 수면은 곧 건강을 창조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건강은 스스로 창조한다
그러나 4시간 수면을 실천하여 건강을 창조한다고 해서 구보가 빨라지거나 힘센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체력이라는 것과는 별개이다. 하지만, 환경조건의 여하에 따라서는 반사동작이 빨라지며 평형감각도 예리해진다. 환경에 대한 순응성의 발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자율신경의 원활한 연계는 생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약이나 특정한 건강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즉, 상호연계의 조화가 무너지지 않는 한 약의 신세를 질 필요도 없고, 의사의 진단을 받을 필요도 없다.
4시간 수면 자체는 신체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당사자인 본인이 "수면부족으로 병이 되는 것은 아닌가?"하고 의심을 갖게 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자신을 자신이 믿지 않는한 4시간 수면은 실천될 수가 없다. 그리고 체질의 개조 또한 바랄 수 없는데 체질이 개조되지 않으면 몸에 배지를 않는다. 그렇게 되면 결국 3일 작심으로 끝나게 되고 만다.
요즈음 건강에 관해 관심이 높아진 탓인지 다방면으로 논의 되고 있다. 그런데 모두가 마치 건강이 생명을 보증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식물인간이 되어서도 건강만 하면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자율신경이 풀가동으로 활약하고 상호의 밸런스가 유지되면 신체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율신경을 그처럼 혹사하는 것이 누구일까. 본인이다. 즉, 본인이 살려고 하는 힘이 바로 건강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는 신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한 움직인 결과 최후로 죽음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하면 어딘가 종교적 분위기를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살아가고 그리고 살아 있는한 활약하고 싶다고 원한다면 역시 자기 스스로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건강이란 그러한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와는 관계가 없지만 확신을 가져야 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건강이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죠깅을 하는 것도 좋고 사이클링도 무방하겠지만 자기 체내의 자율신경을 무시한다면 백해는 있을지언정 일리도 없게 된다. 그점에 4시간 수면의 의의가 존재하는 것이다.
2. 생활의 리듬을 조정하는 4시간 수면
개인에 따라 다른 생활리듬
4시간 수면의 생활을 하려면 1주일을 하나의 주기로 삼은 생활 패턴, 즉 시간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뇌, 좌뇌의 적절한 사용이나 근육에 대한 노동 또는 자율신경에 대한 부담을 고정화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하여, 하루에 20시간의 활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이미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이 20시간 동안 계속해서 전력 투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물며 그런식으로 1주일 동안이나 계속한다면 자멸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그 방지책으로서 특별히 중시되는 것이 <리듬>이다.
여기서의 <리듬>이란 힘을 내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100% 또는 120%의 힘이 요구되어, 그것을 모조리 소모시킨 뒤는 80%의 긴장도라도 충분한 일로 대상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하기로 한다.
나는 전기공학이 본업이다. 따라서 100%, 120%의 힘은 전기공학의 분야에서 요구받는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학습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어는 본업이 아니다. 오늘은 몇개의 단어를 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법도 없으며, 몇 페이지를 해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을 풀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80% 정도의 긴장도라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각자 자신의 판단에 따라 경중의 평가가 내려지고, 그런 것이 적당히 짜여짐으로써 각자의 리듬이 조성되는 것이다.
리듬은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도 달라지며 인생관에 따라서도 일정하지 않다. 즉, 개인 생활에 있어서의 리듬은 각자마다 독립된 것으로서 보편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되는데로 내버려 두자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언급해 두기로 하자.
음악에는 멜로디, 리듬, 하아모니라는 3요소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3요소가 어떻게 짜여져 있느냐에 따라 명곡이냐, 명곡이 아니냐, 명연주냐, 서투른 연주냐가 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도 전적으로 이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으리라. 멜로디란 재능이며 소질이다. 리듬이란 움직임이며 하아모니란 환경에의 조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환경에의 하아모니가 재능을 발휘 한다
재능이나 소질이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받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본디 남남 사이였으므로 두 사람은 당연히 각자 특유의 많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몇 명의 자식을 낳아도 유전자의 결함에는 차이가 생긴다.
즉,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이라도 각자의 재능이나 소질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천태만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재능이나 소질이라는 것은 개개인에 따라 각각 다른 독자의 것이며 천혜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곳을 뜻대로 활약시킬 수 있으면 인생의 성공자가 되는 것이고, 스스로 그 천혜의 재산을 발견하지 못하면 인생을 실패로 끝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이나 소질이 어떤 점에 있는지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각자의 의무이며 사명인 것이다.
옛부터 "금강석도 갈지 않으면 빛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갈아보지 않고서는 유리알인지 다이아몬드인지 구별할 수 가 없다. 갈아보지도 않고 체념하거나 포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4시간 수면의 생활이 바로 그 갈아보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리듬>은 생동하는 생활 속에서 재능이나 소질을 찾아 내고 그것을 키우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히, 자신의 재능이나 소질을 발견한 사람은 생동하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또 언젠가는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재능이나 소질이 사회를 배경을 클로우즈업 되었을때 화려한 성공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즉, 하아모니이다.
하아모니가 잘 되지 않으면 멜로디도 리듬도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게 된다. 역사상 하아모니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뛰어난 멜로디나 피나는 생활의 리듬이 아무 쓸모없이 말살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멜로디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그나마 체념할 수 있으리라. 리듬을 그르친 사람의 책임이니 도리가 없다. 하지만 하아모니가 없었던 사람이야말로 비극의 주인공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하아모니라는 것은 그 생활이 존재하는 장소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작게 말하면 가정이고, 크게 말하면 국가이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진지하게 4시간 수면의 생활을 하고자해도 가족들에게 이해가 있어야만이 비로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영어에 능통해도 중국에 가면 통용되지 않듯이 어떤 재능이나 능력도 환경 속에서만이 평가받는 것이므로 그 환경을 무시하면 안된다. 즉, 하아모니이다.
리듬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성장을 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리듬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도 이미 짐작했지만 리듬은 멜로디와 하아모니를 잇는 입장에 있다.
누구나 환경 조건이 정비될 때까지는 가만히 참으면서 힘을 기르는 것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리듬인 것이다. 리듬은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상징이다. 리듬이 존재하는한 인간은 성장한다. 그리고 리듬을 타고 있는한 인간은 더욱더 건강해질 수 있다.
끝으로, 리듬을 적절히 만드는 것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4시간 수면의 생활을 실천하면 따로이 잔재주를 부리지 않아도 개인의 리듬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그것은 3년간의 수행 기간, 우여곡절을 경험하면서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2,3년 동안에 만약 불안이 닥치면 다음의 5가지를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첫째, 남의 흉내는 내지 말라-물론 위인전 등에서 큰인물들의 생활습관을 흡수하고,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다시 고쳐 사용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둘째, 자신의 결론에 대해 자신이 망설이면 안된다-모든 것은 시도해 보고 또 시도해야 한다.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고 이론만 내세울 바에는 처음부터 안하는 것이 낫다.
세째, 형편이 좋지 않거나 또는 무리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즉각 바꿔나가라-4시간 수면을 실천한다는 대목표만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리 생활을 바꿔도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솔직성, 순응성이 없으면 대목표 달성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네째, 항상 남이나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힘써야 된다-사회의 한 일원이라는 자각이 없으면 결국 하아모니로 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자신을 가지고 생활하라-공표하고 실행한다는 자신이야말로 자기 완성을 이룩하게 한다고 믿지 않으면 안된다.
3. 숙면과 건강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엷은 옷
4시간 수면의 실천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자율신경이라는 것을 잘 알았으리라 믿는다.
이 자율신경을 적당히 피로케 하고, 또한 휴식시키는 것이 숙면의 요점이라는 것도 이미 반복해서 말해 왔다.
4시간 수면법의 가장 큰 전제가 되는 것은 숙면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설명해 온 숙면의 비결을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한다.
1) 검소, 필요최소한 양의 식사
2) 9시 이후는 먹지 않는다
3) 음주할 때는 안주를 먹지 않는다
4) 매약류는 입에 대지 않는다
5) 부드러운 베개나 이부자리는 사용하지 않는다
어느 것을 보아도 <인색>한 이야기 뿐이다. 기왕 말하는김에 또 한 가지 <인색>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그것은 엷은 옷으로 일관하라는 것이다. 자율신경의 밸런스를 생각한다면, 피부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선 엷은 옷의 효용을 알아보기로 하자.
기온의 변화에 따라 피부 호흡의 정도를 조절해 주기 때문에 감기에 걸리지 않게 된다.
피부의 활동이 활발해져서 신진대사가 촉진된다
잠자고 있을 때 등, 땀의 흡수가 좋고 그런 만큼 숙면하기 쉽다.
등의 효과가 있다.
엷은 옷의 효용에 해당하는 수행의 종류로서는,
폭포를 맞는다
냉수 마찰
건포 마찰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런 수행을 매일 아침 실천하는 것은 좋으나 나중에 두꺼운 옷에 싸이거나, 난방에서 지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이런 수행을 실천하지 않아도 항상 엷은 옷으로 지내는 편이 훨씬 자율신경에는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이란 약한 존재이다. 수행이라고 하면 으례 단체로 참가한다. 어느 일면 군중심리도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리라.
추운 날씨에 수영하는 한중수영 같은 것도 제법 참가자가 적지 않은데, 그것은 매일 본인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극히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래가지고는 도저히 4시간 수면을 수행하는 만 3년 간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매일 할 수 있는 <엷은 옷>쪽이 훨씬 손쉽고, 또 항상 실천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옷값도 절약할 수 있다.
피부를 단련한다는 것은 빠르게 달린다거나 힘을 세게 하는 것과는 달라서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도 표면의 피부를 두텁게 하는 것도 아니며, 또 단순히 강인한 강도를 길러주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환경 조건의 변화에 대한 적응 속도를 높여 줄 뿐이다. 그 까닭인지, 나는 아무리 엷은 옷으로 자도 아침에 일어나 보면 다소 땀이 흐르고 있는데, 그것은 피부 호흡에 의한 배설물의 축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싸쓰를 입어도 어딘지 상쾌하지 않다. 따라서 아무래도 냉수마찰이나 건포마찰을 하고 싶어진다. 나는 매일 아침 하의를 갈아입기 전에 힘껏 건포마찰을 하고 있다. 물론 나폴레옹 수면을 뜻한 이래 줄곧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이다.
즉, 엷은 옷은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작용을 해 준다. 그런데 보통 사람보다 일어나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때도 많이 낀다. 그래서 때미는 수건으로 세게 밀어내면 신체 전체에서 때가 떨어지며 피부도 새빨갛게 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음 날이 되면 여전히 많은 때가 떨어진다.
이와 같은 신진대사의 촉진이 <엷은 옷>의 효용이며, 4시간 수면의 공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색>이 새로운 인생을 만든다
결국 4시간 수면의 생활이란 여타의 다른 문제들과 독립시켜서 실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같이 따뜻한 옷, 배부른 식사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것이다. 4시간 수면의 생활은 아무래도 검소, 필요최소한 양의 식사, 엷은 옷을 입는 등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엷은 옷으로 지냈다고 하자. 필연적으로 피부에서의 열 방산이 많아진다. 그러면 신체의 전표면에서 상실되는 열량에 해당한 분만큼 더 영향분의 흡수작용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소화기계는 물론, 모든 자율신경이 서로 협력해서 밸런스를 유지하려고 활동하게 된다. 그것이 신체의 건강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가령 미식으로 포식했다고 하자. 소화기계는 아무런 고통도 없이 요구되는 규정량을 다할 수 있다. 즉, 무리하게 전체적인 밸런스의 유지를 위한 일에까지는 요구받지 않고도 충분히 규정량을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건강의 본질이 상실되어 버리고 만다. 이처럼 평소에 전력으로 활약할 일이 없던 소화기계가 갑작스런 사태가 발생할때 응답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옛 말에 부자는 약질, 가난뱅이는 건강이라는 말이있다.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수면시간마저 최대로 절약할 수 밖에 없다(3--4시간 수면)
입고 있는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엷은 옷)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검소, 필요최소한 양의 식사)라는 3박자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기상 등의 자연환경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현재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라는, 즉 "난관을 극복하며 살아 나가는 것이다"라는 스스로 깨달은 적극적인 개척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인색으로 일관하지 않으면 안되며, 또 일관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쓰지 못한다는 것은 가난하기 때문이지 인색한 것은 아니다. 돈을 가지고 있어도 쓰지 않는 것이 인색이다. 그 극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구두쇠인 것이다.
가난하면 언제나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해지면 매우 소극적이다. 다급해지면 임시 변통으로 때우려고 한다. 또 열등감에 꽉차 있다.
그러나, 구두쇠는 다르다. 다소의 여유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최후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없었던 걸로 치고 맨주먹으로 대처하려 한다. 따라서, 다급해질 일도 없으며 임시 변통도 하지 않는다. 엄연히 목표를 향해 노력한다. 물론, 열등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오히려 우월감에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구두쇠로 일관할 것은 권하고 싶다. 일관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건강도 만들어 주고, 생활상의 신념도 확립해 준다. 그리고 월부나 대부금의 중압에서 해방해 주기 때문이다.
놀라운 한쪽 눈 수면법
여기서 나 자신의 체험담을 말하겠다. 23세 때, 나는 어떤 불운한 짓을 당해 350만엔 정도의 빚의 짊어지게 됐다. 지금 처지라면 별로 대단한 돈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다. 대학출신인 월급장이의 초임봉급이 4--5만엔이었던 무렵이다.
나는 이 큰빚을 갚기 위해 하루에 4개의 일을 해치우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는 가정용품의 외판원,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는 학원의 강사,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는 운송회사에서 철야근무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가정용품의 판매가 없는 날에는 아침부터 토목공사현장에서 땀을 흘렸다. 어쨌든지간에, 빚을 반년 안에 갚아야만 했었기 때문이다.
4개의 일을 걸머잡고 매일 24시간 전력투구라고 해도 좋을 가혹한 나날을 보냈다. 그 덕에 내 월수는 40만엔에 이르렀다. 대학졸업인 풋나기봉급자의 월급에 몇급에 몇곱을 더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간 동안 나는 어떻게 해서 수면시간을 짜냈을까?
이것은 과장된 표현도,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사실만을 밝힐 뿐인 것인데, 그 반년 동안 나는 옆으로 누워서 잔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걸으며 잤고, 일을 하면서도 잤고, 1초, 2초를 아껴서 겉잠을 잤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눈을 붙였을까. 이 방법을 내가 전에 TV의 장시간 쇼프로에서 <한쪽 눈 수면법>이라고 해서 소개한 적이 있었다.
우선 까만 안대로 오른쪽 눈을 2시간 덮고 다음에는 그 안대를 왼쪽 눈으로 바꾸어 단다는 것이다. 즉, 한쪽 눈씩 교대로 쉬는 것이다.
"그런 터무니 없는..."
하며 웃기지 말라는 독자도 많을지 모르지만 나는 잘라 말한다. 이것은 가능하다.
까만 안대를 끼게 해서 오른쪽 눈의 활동을 쉬도록 하면 그러는 동안은 오른쪽 뇌도 쉬게 할 수 있다. 2시간 지나면 오른쪽 눈과 뇌는 모두 산뜻하고 원기가 회복돼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혹사당한 왼쪽 눈과 뇌는 피로가 쌓여서 멍한 상태다.
그래서 안대를 왼쪽 바꾸어 끼면 이번에는 왼쪽 눈과 눈이 푹 쉬기 시작한다. 2시간 뒤에는 역시 사뿐한 상태가 된다.
이렇게 해서 나는 6개월간을 이럭저럭 억지로 넘기며 극복했다. 옆으로 눕지 않아도 근육의 피로를 풀 수 있다는 것을 내몸으로 스스로 실증해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4. 속박, 불안의 해방이 곧 장수다
자기암시와 자신감으로 만드는 건강
<불면증>의 치료에 자기 암시법이 유효하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바이다. 4시간 수면법도 당사자가 "할 수 있다" "해내고 말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성취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검소, 필요최소한 양의 식사>도 <구두쇠 같은 엷은 옷>도 일종의 자기 암시 없이는 결국 작심 3일으로 "굿바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건강도 또한 자기 암시가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나는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어느 체육 시간에 높이뛰기를 한 적이 있는데, 30cm를 넘지 못한 학생은 나 한 사람 뿐이었다. 그날의 최고 기록은 135cm였다. 정말 분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락해 본 끝에 이런 것을 발견했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검도를 배워 오고 있었다. 검도에서의 점프는 왼발이다. 그런 데도 높이뛰기는 오른발로 뛰어 오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스텝이 맞지 않은 것도, 30cm를 뛰어 오르지 못한 것도 말하자면 당연한 일이었다.
방과 후, 나는 혼자서 다시 뛰어 보았다. 과연 50cm정도까지는 아무런 힘도 들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 반의 최고 기록인 135cm를 뛰어 넘고자 매일 한 시간 정도 연습을 반복했다. 역시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100일이나 걸렸다. 그리고, 그것도 검도 실력에도 예상 밖의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이 사건은 그 후의 내 인생에 하나의 교훈이 되었다. 그야말로 나의 비약의 토대가 된 것이다.
즉, "자기가 믿고 노력하는 곳에 반드시 해결은 주어진다"라는 자기 암시를 거는 것이다.
나는 의학을 전혀 모른다. 게다가 한때는 의사에게 버림까지 받았던 생명의 주인공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생활, 지켜 오고 있는 양생훈같은 것은 모두 내 스스로의 체험에서 찾아내고, 체계화하고 자기 암시로 걸어 왔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인간은 백인 백색, 만인 만색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룰을 스스로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고 생각해 왔으며, 또 그렇게 주장해 왔다. 그런 만큼, 자기 암시가 맡고 있는 역할은 매우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의 나는 선병질로 허약한 약골이었다. 체력은 물론이거니와 병에 대한 저항력도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나폴레옹수면>을 만 3년 계속한 다음부터는 어쩐지 병에만은 저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해군 기술 중위로서의 의무도 아무 불편없이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해낼 수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전후의 거친 세파에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굳굳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죠오지대학에 봉직한 지 만 19년, 안주의 터전을 얻어 무한한 미래의 꿈을 펼치고 있다.
나는 혈압도, 체중도 10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자가용기의 면허를 취득한지 꼭 10년, 마음대로 하늘을 날고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나를 10세 정도 젊게 본다. 유년 시절, 건강 열등아였던 나는 환갑을 맞은 나이가 된 지금 건강 우량 노인이 되었다.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신진대사가 변함없이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건강 우량 노인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의 암시 속에 자기 나름대로의 리듬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의 생활을 지탱시키고, 나의 생명을 키워 온 것은 모두 자기 암시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절망 직전의 몸이 그런대로 별탈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암시의 덕분이다.
옛날엔,
"사람에게 밟힌 떡갈나무의 열매가..."하고 탄식하던 몸이 지금은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현존하고 있다. 물론 떡갈나무는 떡갈나무일 뿐 참나무나 자작나무가 되지는 못한다. 그래도 좋지 않은가. 짓밟힌 채 다람쥐의 먹이나 되었을 자신을 생각하면 그런 호사스러운 말을 하고 있을 처지가 못되는 것이다.
건강이란 자신의 능력을 항상 100% 발휘하는 것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몸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의사의 진단을 받고 지시를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무너지기까지의 과정에서 자율신경으로 복원시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내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의사의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되게끔 평소에 자율신경을 조정해 두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자기 암시의 의의가 있다.
인간이라는 것은 암시에 걸리기 쉽다. 예를 들어 주간지에 "염분을 많이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면 "나는 염분을 과다하게 섭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걱정하며 현실적인 증상은 전혀 없는 데도 "나는 염분 과잉으로 멀지 않아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믿어 버린 나머지 매일 고민하다 일찍 죽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늦건 이르건, 아무래도 어떤 암시에 걸릴 바에야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 암시에 걸려 버리는 게 훨씬 낫다.
"나는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 따라서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런 생활을 계속해 나가면 그리 간단히 병이 나지는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자율신경의 밸런스 복원력의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니...
어떤 명의가 추천한 것이라도 자신의 생활 리듬을 급변시키는 것은 도리어 건강에 좋지 않다. 역시 신분에 맞는, 관습화된 생활 속에 안주하는 편이 훨씬 건강에도 좋다.
흔히, 건강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포츠를 해야 한다고들한다. 그 말에 끌려서 죠깅이나 골프를 하는 사람을 본다. 그러나, 나는 부럽다고 생각지도 않고 훌륭하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왜냐 하면 본디 약하고 작고, 어설펐던 나로서는 스포츠에 합당하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도 축구도 언제나 응원석에 앉아 있는 신세였다.
따라서, 내가 진지하게 맞붙은 것은 검도뿐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여순공과대학 예과를 수료할 때까지만 10년간 수련을 했다. 그리고, 2단의 단증을 땄다. 그러나, 시합 성적은 조금도 양호하지 않았다. 체력의 문제도 작용했는지 모른다. 나폴레옹 수면이 아직 몸에 배기 전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훈련을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실제로 치고 받는 연습보다. 마루 소제로 상징되는 도장에서의 훈련, 예법에 의해 얼마나 귀중한 것을 얻었는지 모른다.
건강이라면 누구나 몸집이 크고 힘센 사람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건강이 아니다.
옳은 의미의 건강은 항상 그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이며, 한 순간 순간에 따라 적응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외면으로만 남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좀더 자신감을 갖고, 자기 자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편이 부러워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자기 암시가 맡은 역할은 큰 것이다.
스스로 살아가는 스스로의 인생
최근, 일반인의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고 한다. 그것 자체는 확실히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학이 진보하는 반면 식물인간이 된 채 단지 삶을 연장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수명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가? 나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윤리, 종교적인 면을 포함해서 금후에도 논의는 그치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논의에는 휩쓸리고 싶지 않다. 기적에 가까운 체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한 여러 가지 분야에서 힘껏 일하고, 어느날 예고없이...라는 식으로 죽는 것을 원하고 있다. 자고 있는 동안은 죽어 있는 것과 같다고 까지 극언하면서 그것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기 때문에 활약을 위한 수면이 아니면 차라리 영원히 잠들어 버리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폴레옹 수면]이라는 책 속에서 나는 57세가 되는 3월로서 대체로 일반인의 124세와 맞먹는다고 적었다.
그로부터 만 3년이 더 지났으니 평균적 일반인의 나이로 환산하면 실로 130세가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남들로부터 50세 전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즉, 장수라는 것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호적상의 연상이며, 또 하나는 깨어 있는 시간을 평균적 일반인과 비교해서 얻은 연령, 또는 종합적 작업량으로 환산된 연령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질구레한 논의를 하자면 이론이 끝이 없기 마련이다. 4시간 수면의 생활을 하면 어느 쪽도 신장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기 바란다.
4시간 수면을 첫째 자율신경을 조정하고 건강을 만들어 준다. 건강하면, 그만큼 병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수를 누리게 해 주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숙면에 의해 충분한 휴식이 주어진다. 이것도 이미 몇번씩 설명했으니 새삼스레 거듭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째, ...이하, 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일체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한 가지, "스스로 살아가는 스스로의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 두고자 한다. 손오공은 아니지만 인간 역시 뽐낸다고 할지라도 결국 관음보살의 손바닥에서 춤추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가령 <자유>를 표방해도 그런 것은 주어질리 만무하다. 법률가는 흔히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리가 통하면 도리는 곤두박히듯이 누구나 똑같은 수명이 주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징역을 살고, 학대를 받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있으면서 부처님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즉, 체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수동적인 인생을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자기 나름대로 즐거울 수 있는 생활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4시간 수면은 그것을 위한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깨달음>을 가진 매일의 생활
4시간 수면을 실천하면 혼자서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이 시간은 잘 안되는 일의 보충에 쓰여도 좋고, 새로운 꿈의 실현을 향해 소비해도 좋다. 요컨대, 봉급을 손에 쥐기 위한 시간이 징역이라고 한다면, 이런 종류의 시간은 자신을 만능의 문수보살로 완성시키기 위한 시간이 되는 셈이다. 또한 보통 때 방치해 두었던 사항에도 몇 번씩 손질을 하여 제대로 마무리지을 뿐만 아니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에도 쓰인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당신의 매일은 일이 주어지고, 봉급을 받기 위해서 징역과 다름없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그런 매일을 보낸다면 청년이 될 때쯤 해서는 두뇌도 오체도 완전히 숨통이 막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먹기 위해, 살기 위해서는 일해야지..."하고, 집에서 내쫓긴다. 그러니 "이제 지긋지긋하다. 빨리 죽어 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 상태로 장수를 한다고 해서 도대체 무엇하겠는가.
똑같이 청년이 되어도 "겨우 이제야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 기뻐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자면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4시간 수면을 실천해서 심적으로나 지력으로나 그리고 체력으로나 여유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4시간 수면의 생활이란 잠들어 있는 4시간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20시간을 문제삼는 것이다. 물론 깨어 있는 시간이라 해도 단지 시간만 문제삼는다면 4시간 수면자의 20시간과 8시간 수면자의 16시간 사이에는 큰 차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봉급을 받기 위한 징역에 해당하는 8시간, 왕복의 통근에 소요되는 3시간, 잡스러운 2시간을 제외하면 결국 4시간 수면자는 7시간, 8시간 수면자는 3시간이 남는데 그 차이는 두배 이상이나 된다.
따라서, 자유로이 살아가려면 이 시간을 어떻게 살려 가느냐에 달려 있다.
스스로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간다는 문제에 있어서 꼭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해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하찮게 생각되는 일까지도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할 수 있으므로 생활상에 있어 구석구석에 이르도록 일체의 불안 요소가 사라지게 된다. 즉, 단순한 속박에서의 해방뿐만 아니라 불안에서도 해방된다.
불안에서의 해방은 즉, <깨달음>인 것이다. 망설임과 번뇌속에서 구제받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서 <깨달음>을 가지면서 인생을 지낼 수 있다면 그것은 마음 속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최고의 장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 평생 서로 미워하고 지낼 바에는 부부가 되지 않는 것이 낫다. 모처럼 주어진 형제이면 한 평생 서로 돕고, 서로 존경하며 지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평생을 살아갈 인생이라면 <깨달음>의 경지에서 장수를 누려야 한다. 마음에 불안이 없으면 병도 나지 않는다. 밝은 가정에는 항상 복이 있다. 가난해도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면 만족이 생긴다. 즉, 4시간 수면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ff
제2장 4시간 수면이 만드는 발상의 전환
1. 유연한 머리가 발상 전환의 기본
두뇌를 합리적으로 혹사시키는 것이 제 1보
도대체 발상이란 무엇인가? 그 방면의 책을 보면 논리적인 면은 좌뇌가 작용하고, 종합적인 결론으로 정리해서 동작으로 나타내는 것은 우뇌가 작용한다. 아무튼 발상이란, 여러 형태로 좌우의 뇌가 얽혀서 작용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수면이 이러한 뇌를 쉬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나로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 가지로 신경을 피로케 하는 환경에 대응하게끔 종합적인 판단을 하고, 자율신경에 명령을 내리는 것도 또한 수면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만약 이런 대응이 무시된다면 결국 수행같은 것을 단지 생명을 단축시키는 작용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발상의 목적이 탐욕성에 있느냐 호신에 있느냐 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형태로 자기 자신에 관계되는 사항에의 대응으로서 생겨나는 것만은 확실하다. 따라서 당연히 뇌의 작용에 의존하는 것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뇌의 대응이 늦어지면 발상의 전환도 늦어진다. 뇌가 사보타아지하고 있으면 발상의 전환은 기대할 수가 없다.
옛적에는 노인들 중에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젊은층에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에 있어서는 발상의 전환같은 것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
뇌를 합리적으로 혹사시킴으로써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뇌를 합리적으로 혹사시키는 방법은 아무래도 단시간 수면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단시간 수면을 수행이라고 하면서도 수도자의 수행이나 참선의 수행과는 이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도자의 수행이나 참선이 몰아의 심경을 추구하고 아욕을 버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면 단시간 수면은 자신을 인식하고 의식 속에 행동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공통점은 자신을 단련하고 안주에 머물지 않는 자신을 만들려 한다는 점이다.
몇번씩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단시간 수면의 이점은,
1) 수마와 싸우는 의지의 강도가 양성된다.
2) 신체의 회복이 가능하도록 자율신경이 충분한 활약을 하게 된다.
3) 그 결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4) 수마와 싸우다 보면 당연히 작업량도 늘어나게 되고, 긴장시간도 길어지게 된다.
5) 즉, 심, 신, 지 다같이 축적이 많아지기 때문에 환경에의 대응도 빨라지게 된다.
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5)야말로 발상과 직접 관계를 지닌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이란 실은 무의식 중에 생겨나는 환경변화에의 대응 이면 순응이다. 따라서 "밀어서 안되면 당겨 보라"는 사고방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나는 전환이라는 것이 의식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어쩐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발상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리라.
어떻든 뇌나 신경을 합리적으로 혹사시킴으로써 대응속도를 높일 수 있고 광범위한 대응을 요구할 수 있다면 역시 단시간 수면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오감과 자율신경을 민감하게 작용시켜라
흔히 "머리가 딱딱하다"거나 융통성이 없는 "석두"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천성적이라는 뜻도 있겠지만 꼭 타고난 소질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싶다. 열성신자의 경우처럼 때로는 가치관의 변화에서 생겨나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서 주위의 변화를 깨닫는다. 이와 같은 정보는 몇 개의 경로를 거쳐 우뇌에 집합되어 좌뇌의 판단에 도움을 받으면서 상응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이 각각의 정보에 대응한 것이면 "머리가 유연하다(잘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 결론이 잠재관념에 좌우되거나 특정한 정보에 치우치고 있으면 "석두!"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결론이 각각의 정보에 충분히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반드시 연령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옛날의 사관학교처럼 어떤 사고 방식으로 고정화되도록 훈련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훈련된 것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내게 된다.
지식이 부족하면 이해할 수 있는 정보만을 택하고, 그 안에서 결론을 이끌어 내게 된다.
예를 들어, 계산같은 것이 포함되면 계산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또는 계산이 틀리게 되면 결과적으로 편파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게 된다.
"이래 주었으면"하는 바람이 잠재하면 아무래도 치우친 결론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각각의 정보 정리에 시간이 걸리면 내리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이른바 "피의 순환이 늦어진다"고 하며, 재촉에 대응하지 못해 그릇된 결론을 꼬집어낼 적도 있다.
하는 예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에 유연한 머리의 수지자가 되고 싶으면 이런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점을 유의하면서, 오감이 민감하게 작용해 줄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물론, 음악가처럼 훈련에 의해서 실현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 전에 더욱 보편성이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즉, 오감도 자율신경도 항상 긴장시켜 두는 것이다.
그러자면 검소, 필요최소한 양의 식사법을 지키고, 언제나 다소 공복의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 엷은 옷을 입는 것도 효과가 있음을 더 말할나위 없다. 4시간 수면을 실천하면 약간만 긴장이 풀려도 수마가 엄습하게 되므로 깨어있는 20시간 동안은 긴장을 한시도 늦출 수가 없다. 그리고 지속적인 긴장을 위해서는 공복이나 엷은 옷 등이 매우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운용한다.
항상 지식을 축적하고 축적한 지식은 기회 있을 때 마다 재이용하며, 언제라도 주저없이 운용할 수 있도록 해 둘 필요가 있다.
지식이란 독서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지식이 풍부한 사람으로부터의 가르침을 받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지식이든 운용되지 않는 지식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식이라는 것은 운용할 때만이 비로소 그 가치가 생겨나고,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가장 알기 쉬운 예로, 바둑의 정석에 대해서 말해 보자. 어떤 정석도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법이 달라진다. 때로는 매우 큰것 같이 보이는 돌도 프로는 태연히 버리고 만다. 그래서 프로인 것이다. 아마추어는 깊이와 시야를 넓게 가지지 못한다. 아마가 아마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밀어서 안되면 당겨 보라"는 속어가 있다. 한대의 차를 움직일 때 처음에는 미동하지 않다가도 어느 시기에서 적당히 밀거나 당겨 보면, 이윽고 차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러한 호흡이다.
이런 호흡은 몇 번씩 실패를 거듭하여 반복해서 경험하지 않으면 좀처럼 터득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회 있을 때마다 재이용에 힘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정량성 전에 정성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량성이라는 것은 계산처럼 좌뇌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정성이라는 것은 우뇌에 의해 판단되는 종합적인 판단이다.
따라서, 양부를 판단하는 것이 우뇌이며 그 정도를 표현하는 것이 좌뇌에 의해 판단되는 정량성인 것이다.
사항에 따라서는 정량성이 선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종합적 판단이 생겨날 적도 있지만 연구와 같은 내용의 예처럼 일반적으로는 정성적 판단쪽이 선행하고 정량성이 그것에 부수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학자 바보"라는 말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종합적 판단이라는 것은 반드시 지금 문제로 삼고 있는 사항에만 한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분야의 대가도 비결을 물으면 대부분이 똑같은 말이다. 그것은 자신이 고생한 경과에 대응시켜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역으로 말하자면 그만큼 경험이 많으면 또 정보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는 것이다.
다음은 폭넓은 지식과 폭넓은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학자가 세상사에 어둡다는 것은 옛부터 들어오는 말이다. 즉, 사용하는 뇌가 고정화됨으로써 생겨지는 결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사회인으로서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 모든 뇌가, 모든 신경이 동등하게 혹사당하고 단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폭이 넓은"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전기 공학의 분야에서 진전이 없이 막혔을 경우 음악이나 바둑에서의 감각이 해결의 포인트가 된 적이 많다. 나는 이런 점에 이른바 인간의 "두뇌 작용"의 신비성을 느낌과 동시에 그 필요성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의 지식이나 경험은 그것이 혼합되었을 때만이 새로운 세계를 펼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풍부한 정서와 고상한 교양이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점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리고 끝으로 중요한 것은 환경 조건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씨라면 이렇게 말하고, B씨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고 하는 식의 자기 나름대로의 잠재의식을 만들어선 안된다.
물론, 잠재의식대로의 이야기가 되면 문제가 없지만 잠재의식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면 대응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편견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머리가 유연하다는 것은 그 내용을 옳게 파악하고 순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의식을 잠재시키는 것 자체가 이미 잘못이라는 것이다.
기대가 있으면 자칫 오감까지도 그르치기 쉽다. 그리고, 한가지 잘못은 다음 잘못을 유발시킨다. 따라서 더욱 더 허둥대고 초조감이 생긴다. 반면에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충분히 진정해서 대처할 수 있다.
머리가 경직되면 이미 때는 늦어진다
이렇게 볼 때 "머리가 경직된다"는 말의 의미가 어느 정도 명백해진다. 그것은 반드시 연령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보행이 부자연한 고령의 서예가는 붓을 쥐어 주면 힘 있게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서 대작을 써 낸다. 무용가도 그렇고, 검도의 대가도 마찬가지이다. 즉, 항상 혹사시키고 오랫동안 단련한 신념은 나이와 더불어 세련되면 세련되었지, 너무 늙어서 별볼일 없다는 상태로는 되지 않는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하찮게 생각되는 것이라도 열심히 한 가지씩 이루어 가는 사람은 언제나 생동감이 넘친다. "젊어서는 속은 셈치고 열심히 하라! 하지만, 어느 연령이 되면 젊다고 해서 바보 취급을 받으니 적당히 속이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적당히 속이는 한 신경은 적당히 사보타아지하게 된다. 한번 사보타아지하는 것을 알면, 신경은 더욱 더 사보타아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퇴화가 시작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심한 경우 30대에 이미 이런 노화가 진행되는 사람도 제법 보게 된다.
"자네는 알 만한 나이인데도 아직 그런 말을 하고 있는가? 아무튼 중역이 되기는 글렀잖은가. 적당히 처세하면 되지 뭘 그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고도 별말이 없다면 발상의 전환같은 것과는 영영 인연이 먼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머리가 경직되고 나서는 이미 때가 늦다. 평균적 일반인이 볼때는 마치 헛수고로 보일지라도, 4시간 수면을 지속하는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머리를 경직시키지 않으려면 4시간 수면이 최고의 수단이다. 또한 젊음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발상의 전환을 원활하게 하는 모체인 것이다.
또 한 번 반복하기로 한다. 신경은 본인이 자발적으로 혹사시키는한 성장하게 될지언정 절대로 파괴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모든 신경을 평등하게 혹사시킴으로써 신속하게 시의에 적합한 반응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2. 풍부한 지식으로 발상의 전환을 한다
올바른 지식이란 자신의 판단으로 운용될 수 있다
지시에 대한 것은 이미 잠깐 언급한 바 있는데, 여기서 두세 가지의 설명을 덧붙이기로 한다.
보통의 일반인들은 대체로, 어느 연령이 되면, 현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떻게 전신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전혀 대답을 못한다. 현상에 대한 불만과 한탄, 그리고 장래에 대한 꿈같은 이야기로 시종할 뿐이다. 어째서인가?
그들은 너무나도 사물을 모른다. 갖가지 국가시험 제도가 있다는 것도, 단 세 사람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올바른 지식이란 스스로 판단해서 운용할 수 있는 내용의 지식이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아무리 책을 읽는다고 해도 그것이 올바른 지식이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항상 손수 운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보충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주간지에서 얼핏 본 기사도, 올바른 의미에서의 지식으로 완성시키자면 때로는 몇 년씩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적마다 자가용기로 창공을 비행한다. 기분 전환에는 최고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어느 정도 기상에 관한 지식도 지니고 있다.
비행 중, 각지의 날씨 정보를 입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비행하고 있는 시점에서의 풍향, 풍속 그리고 구름의 양과 흐르는 방향이다.
아무튼, 나는 기분 전환이 목적이기 때문에 몇 시까지 어디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은 없다. 따라서 구름의 방향여하에 따라서는 미야께지마로 생선을 먹으러 가려던 것을 갑자기 나고야로 국수를 먹으러 방향을 바꾼다고 해서 잘못될 것은 없다. 즉, 생선이 국수로 바뀌었을 뿐, 본인이 납득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대체로 발상의 전환이란 이런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즉,
선입관 구애받지 않고 가능한 범위로 목표를 옮긴다
그때 비행기에 대해서, 자신을 대응시킬 만한 목표를 찾아낸다.
몇 개의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경우, 한 가지씩 몸소 확인해 본다.
고 하는 것같은 내용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터무니 없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예상 밖이었다고 하겠지만.
따라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운용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짜건 관계가 없다. 결국 그런 것이 옆에서 보기에는 멋진 <발상의 전환>으로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발상의 전환이란 선입관을 제거하고 잠재관념을 불식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폭넓은 지식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내가 취득했던 몇 가지 지식을 예로 들어 구체적인 패턴을 소개하기로 한다.
나의 지식 축적의 비결
나는 현재 죠오지대학 이공학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인데, 이 학교에서만 19년째 봉직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과목을 담당해 왔지만 근자에는 거의 전력계로 치우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졸업생이다.
나는 졸업생들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죠오지대학에 봉직하기 전, 5년간 조교수로 근무한 도쿄 도립대학의 졸업생도, 시간 강사로서 근무했던 국철의 중앙철도학원, 혹은 도쿄 시바우라 공업대학의 졸업생도 다같이 나에게 있어서는 스승이다.
요쯔야라는 교통편이 좋은 곳에서 근무하는 탓인지 졸업생의 방문이 많다. 도쿄에 오는 길이었다거나 근처에서 위원회가 개최되었다거나, 때로는 주례를 서 달라거나 중매를 서 달라거나...아무튼 졸업생들과 함께 지낼 적이 많다.
그들은 모두 근황 보고를 해 준다. 최첨단의 기술 이야기에서부터 가족에 대한 것, 친구의 일, 직장의 일 등, 나에게 있어서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공부이다. 지식을 줄 뿐만 아니라 훈계도 되고 또 새로운 발상에의 계기도 된다.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현재 나는 기술사, 제1종 전기주임 기술자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IEEE,미국의 전기전자 공학회에 소속하고 이 학회에서 주최한 국제회의에도 참가한 적이 있다.
이런 것들은 대학교수로서는 얻을 수 없는 또다른 지식과 자극을 나에게 준다.
또 [나폴레옹 수면]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서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방대한 양의 연습을 쌓았다. 대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을 쓰기 위해서이다.
서예를 하게 되면 자연히 각 방면의 사람들과 상대하게 된다. 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가, 실업가 등등. 그리고 거물이 될수록 조예가 깊어진다. 따라서 그들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야말로 체험에서 얻어진 인생훈을 듣게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
나는 서예를 뜻한 덕분에 정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득을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전문적인 일로 좌뇌를 혹사시킬뿐만 아니라, 이러한 일들을 통해 우뇌에도 짐을 주어 왔다. 거기에, 좌뇌와 우뇌의 조화를 이루는 도순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더우기, 서예를 통해서 득을 보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전혀 무연하다고 생각되는 고대중국사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서법] [한자가 생기기까지] [고대 중국인의 수관념]도 출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나의 머릿속에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주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취미에서 새로운 지식의 원천, 술집까지
내가 바둑을 배우게 된 것은 1939년 4월, 여순 공과대학 예과에 갓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연상인 한 동급생이 "너는 꽤 머리가 좋은 것 같은데 사용 법을 모른다. 사물을 대국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둑을 뒤라! 내가 가르쳐 주지. 좀더 대국적으로 보는 눈을 길러라. 그렇게 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하면서 바둑을 지도해 주었다.
바둑의 장점은 무어라 해도 여러 가지의 수를 무궁무진하게 전개할 수 있다는데 있을 것이다.
승부를 겨루는 시합이면서도 예술의 아름다움이 있다. 물론, 전문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한가한 말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또 나는 가루다(딱지놀이의 일종)를 좋아한다. 가루다란 백인일수를 말한다. 국민학교시절 동급생의 집에 초대되어서 그 동급생 누이의 친구들과 어울려서 처음으로 가루다 놀이를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한 장도 집을 수 없었다. 가루다 놀이는 "어른의 놀이"라고 평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패를 당하고 나니 분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책을 사다, 닥치는 대로 암기했다. 덕분에 그 후로 거의 패해 본 적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고전을 배우게 되면서 비로소 백인 일수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여순으로 가서는 <아카시아 단가회>의 멤버가 되었고, 전후 히로시마에 거주한 1년 간은 히로시마 청년문화 연맹의 단가지도를 맡은 적도 있다.
내가 술을 입에 대개 된 것은 여순시절부터이다. 그러나 술의 진미를 알게 된 것은 해군시절이다.
전후, 나는 어엿한 기술자로서 일했지만 생활이 궁핍한 시대였다. 소주건, 탁주건 마실 수 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마셨다. 그리고, 그 기세로 3시간 수면을 하면서 공부했다. 신바시역의 <다찌바나>에서 친구와 어울려서 떠들석하게 술잔을 기울인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그 후로 차츰 <맥주>로 바뀌게 되었다. 술 속의 방부제가 체질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맥주로 바꾼것이다. 집에는 <맥주>밖에 두지 않고 있다. 따라서, 20년 이상이나 계속 마신 맥주는 나에게 있어서 안식처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즐겨 가는 술집은 생선구이집, 꼬치집, 그리고 초밥집이다. 맥주 몇 잔을 기울이며 편안한 마음으로 한두 시간 보낸다. 단골 명사의 이야기도 나오고, 옆자리의 날품팔잇군과도 대화를 나눈다. 신문이나 텔리비젼이 아무리 <경기>를 부추겨도 현실은 또 다르다. 거기에 새로운 지식의 원천이 있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과자도 전혀 먹지 않는다. 내 생명을 지탱해 주는 벗은 오로지 맥주뿐이다. 그런 만큼 나에게 있어 맥주를 마시는 장소는 중요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맥주를 마시는 장소는 나에게 있어서 강의실이며 도장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음악도 내가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중학교 시절, 틈틈이 하모니카를 부는 것이 인연이 되었다. 여순으로 가서는 좀더 어른의 음악을-하는 생각으로 기타, 만돌린, 첼로 등의 기초를 배웠다.
그 후,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는 바이올린을 시작한 것이다.
온갖 방면에서 얻은 지식들을 서로 짝지워라
비행기 조종면허를 취득한지도 어느덧 13년째가 된다. 게다가 적십자 비행대원이니 조종은 더욱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별로 비행곡예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오로지 수평 비행뿐이지만 비행시간은 그래도 300시간을 넘고 있다.
비행기 조종면허를 취득하자면 항공 신체검사에 합격한 다음 실기 훈련을 40시간 이상 받고서 학과 시험에 붙어야 한다. 학과 시험의 과목은 항공 공학, 항공 법규, 항공 기상, 항법, 통신 시설이 있다.
비행기 외에 나는 1급 소형선박 조종사 자격도 가지고 있다. 내용은 비행기와 비슷한 것이지만 비행기만큼 어렵지는 않다.
나는 전에 곧잘 미야자끼의 남단쪽으로 낚시를 다녔는데, 이 고장 남자들은 거의 원양어업에 나가고 있기 때문에 낚시배조차도 이쪽에서 면허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1개월이나 걸려 이 면허증을 취득했던 것이다.
바다낚시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만큼 바다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낚시나 낚시배를 통해서 얻은 지식은 결코 적지않다.
지금까지 나의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는데, 이런 각방면에서 얻어지는 지식들은 결코 서로 무관할 수는 없다. 그런 것들을 잘 짝지워 놓지 않으면 실제 운용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런 점에, 같은 지식이라는 명칭을 갖는 것이라도 내용적으로 상당히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비행기 조종면허만 해도 사업용과 자가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실제로 비행하기는 소형기이면 똑같으며, 기상의 변화나 항법도 전혀 현식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이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아마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한다면 처음부터 손대지 말라는 것이다. 기술이나 자격은 프로가 아니더라도 프로같은 진지성을 지니지 않으면 돈과 여가의 헛수고에 불과하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프로같은 의식을 가져야만 새로운 지식을 살려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시간의 여유로 능력을 배가 한다
목표를 잃지 말고 항상 움직여라
세상에서는 언제나 능력이라는 말이 쓰인다. 학생의 평점이건 회사내의 평가이건, 또는 서류작성이건 능력이라는 말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그 정의에 대한 문제가 되면 의외로 조잡하고 개략적이라는 것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능력이라는 말은 사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내용이 잡다하고, 썩 분명하지가 못하다.
능력이란 간단한 말 같지만 그 자체는 사실 종합적인 것으로서 상당히 복잡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즐겨 쓰는 스타일로 고치면 이런 내용이 된다.
1) 기력:보기만 해도 지례 질겁해서 물러나는 일없이 "해 보이겠다"는 채비이다.
2) 행동력:"해 보이겠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3) 정신력:체념하지 않고 끝까지 해 내고 마는 계속력이다.
4) 체력:목표로 삼고 있는 사항에 신체를 대응시켜 가는 힘이다. 따라서, 체격검정 같은 체력과는 본질적으로 질이 다르다.
5) 노력:인간은 사람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있다. 따라서 자신의 지식과 1)--4)항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6) 능력:5)까지의 결과로서 일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일의 내용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 능력이다.
따라서, 능력이 있으니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잘못이다. 성과로서의 일이 평가됨으로써 종합력으로서의 능력이 판정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면 능력을 만들건 육성하건 항상 움직이는 것을 전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서 자신의 목표와 움직임 사이의 차이를 주시하고 언제라고 코오스 위에 있도록 수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헛수고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경형이 풍부하지 않으면 자신이 코오스에서 벗어나 있어도 깨닫지 못할 적이 많다. 이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초조하지 말라"는 것이다. 젊을 때는 실패해도 몇 번이고 다시 할 수 있다-그 정도의 강경한 자세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마음에 여유가 없는한 발상의 전환은 바랄 수 없다"고 할수 있는 것이다.
마음에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충분히 시간을 들인다는 것이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초조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그러므로 젊어서 권하고 싶은 것이 4시간 수면법인 것이다.
실패의 체험이 직감력을 키운다
형사생활을 하게 되면 흔히 <직감력>이 강화된다고 한다. 이것은 하루 내내 신경을 곤두세워가며 몇 번씩 쓰디쓴 경험을 쌓아 가는 동안 자연히 키워지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직감력>의 좋고 나쁨은 발상의 전환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엄두가 나지 않으면 누구나 노력하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과라는 것은 해 본 다음이 아니면 나오지 않는데 엄두란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므로 직감력에 의해 판단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직감력에도 두 가지가 있다. 이른바 주사위 놀이처럼 여러 가지 경험 또는 자료를 가지고 있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 즉, 주사위의 숫자가 나오는 대로의 결론밖에 내지 못하는 타입의 직감력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많은 체험과 그 체험의 정리 방식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직감력을 키울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앞에서의 형사가 갖는 직감력이라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바로 이런 타입의 것이다.
아니, 더욱 중요한 것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매우 앞이 잘보인다는 것이다. 즉, 이런 종류의 <직감력>이 발달한 사람들이 볼때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필연적인 결론이라도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의표를 찌른 <발상의 전환>으로 보이고, 놀라운 폭탄성명으로도 들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직감력>은 발상의 전환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직감력>은 모두 체험이 모체가 되어 육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체험이란 대부분이 실패의 체험이지 성공의 체험은 아니다. 여기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다. 하나의 결과란 적어도 이 사회에 관한한 수많은 여러 가지 인자가 유기적으로 결합됨으로써 도축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뷰하는 아나운서가 흔히 "성공한 원인이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하고 묻는데 그럴때마다 한결 같이 "노력한 탓이겠죠"하고 대답하는 것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이외에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예상외로 실패가 거듭되면 누구나 애석하기 때문에 그 원인에 대해 자기 비판을 한다. 본인이 열심이면 열심일수록 애석함도 배가하기 때문에 자기 비판은 더욱더 섬세해진다. 그리고 "모처럼의 기회이니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알아 두자"고 노력한다. 즉, 그러한 노력이 <직감력>을 키우는 것이다. 개도 돌아다니다 막대기에 부딪친다거나 부딪쳐 넘어져도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관찰하며 칠전팔기를 반복하면 누구라도 배우는 것이 많아지고 또 <직감력>도 좋아진다. 요컨대, 거물이 되기 위한 제 1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과 속에서는 당연히 고생도 많고 괴로움도 많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노력이다. 따라서, 평균적 일반인 처럼 "자신만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거나, 또는 타인의 실패를 보고서 "허, 그렇다니까"하는 사고방식으로는 한평생 직감력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어떤 실패도 최후의 성공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믿고 매일매일 힘껏 노력하면 어떤 일에서도 성공한다. 그리고, 만약에 여의치 않으면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자각해야 한다. 내가 [나폴레옹 수면]에서 <장님의 총질도 백 번을 쏘면 맞는다>는 말을 인용한 것도 실은 이런 진의를 알아 달라는 의도에서였다.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기회만 있으면 모든 것을 기억에 넣어라
그럼 <직감력>을 키우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기로 한다.
첫째, 거듭된 실패의 반복에서 직감력이 얻어지는 것이니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4시간 수면을 실천해야 한다. 일상적인 시간은 보통 사람같이 쓰면된다. 다만 4시간 수면으로 벌은 여분의 시간을 이런 자기 단련으로 돌리면 된다. 그리고 절대로 조급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음미하며 보내 주기 바란다.
4시간 수면을 하면 낮 동안 몇 번씩 수마가 엄습한다. 따라서 절대로 방심하면 안된다. 즉, 항상 우뇌, 좌뇌를 적절히 쓰고 전혀 무의미하고 하찮은 일에 생각되는 것도 기억에 넣어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A양은 적색 계통의 색깔을 좋아 한다"는 것 같은 사소한 일도 훗날 제법 도움이 될 적이 있다. 이런 취향이나, 생활의 패턴 변화는 말하자면 생활 자체의 변화를 입증할 적이 많기 때문이다.
더우기, 여성은 혼담이 이루어지면 갑자기 리드미컬해지고 아름답게 보이며 남성은 중역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갑자기 대담해진다는 보편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기억은 단지 졸음을 깨려 하는 것이 목적이며 그렇게 썩 진지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다만 일시적으로 의식하되 뒤에는 마음에 새겨두기만 하면 된다. 매일 변함이 없는 직장이라도 아침에 들어설 때 무엇인지 여느때와 다르다는 감각을 피부로 충분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직감력>이라는 것이다.
일이건, 생활이건 국면의 타개를 꾀하려 할 때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것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결과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면 위험 천만이다. 그런 점에 <직감력>이 필요해지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일의 경우, 시종 일에 구애를 받고 일의 영역에서 떠나지 못한다면 발상의 전환은 바라볼 수 없다. 즉, 직감력이란, 분명히 말해 모든 것을 동원해서, 그 속에서 하나의 줄기를 찾아내는 것이며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든 기회를 이용하며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귀로, 눈으로 볼수 있는 것은 눈으로 무엇이든지 기억에 넣는다. 그리고, 자유스러운 시간이 되었을 때 전문서나, 혹은 물리 상수표, 공식집 같은 것에 의해 확인하면서 언제든지 옳게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 두는 것이다. 무슨일이건 "한 가지 일이 만 가지 일"이다. 어떤 지식이든 옳게 쓰이면 낭비가 되는 것은 없다. 오히려 기억 부족으로 고심할 때가 많다.
<직감력>이란 이러한 기반 위에 비로소 만들어지고 키워지는 것이다. 수고를 아끼다가는 직감력은 양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만큼 사회적으로 뒤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ff
제3장 4시간 수면으로 천재가 된다.
1. 사람의 능력은 무한히 신장 된다
기억력을 향상시키려면
인간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갖가지인데 결국 능력이란 기력, 행동력, 정신력, 체력, 노력 등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서 하나의 형태를 이루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기억력(멜로디), 집중력(리듬), 창조력(하아모니)의 셋으로 좁혀서 설명키로 한다.
우선, 기억력인데 한 번 기억되면 화제에 번번히 등장하는 것이므로 음악으로 말하자면 멜로디라고 해도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접해 보면 확실히 뛰어나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모두가 천부적으로 타고난 소질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같다. 옛부터 "5세에는 신동, 10세에는 천재, 20세가 지나면 범인"이라거나, "문 앞의 나의 어린 중, 배우지 않은 경을 읽는다"라고 하는 말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김에, 오해를 풀기 위해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말하기로 한다.
최근, 영어는 유아 때부터라는 선전에 놀아나 중요한 유아기에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외국에 장기 체류할 일이 있어 가족 동반으로 가게 될 경우, 확실히 어린이쪽이 말이나 생활에 있어 부모보다 훨씬 빨리 적응한다. 하지만 몇 년 지나서 다시 귀국해 살게 되면 아이들은 대부분을 까먹게 된다. 어린이란 그만큼 순응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고교생 정도가 되지 않으면 정말 몸에 배지가 않는 것이다.
기억이란,
"빨리 외운 것일수록 일찍 까먹고 시간이 걸려서 외운 것일수록 오래도록 까먹지 않는다"
고 한다. 그러므로, 역시 사람은 각자마다 특유의 기억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숫자를 외우는 데에는 자신이 있다. 특히 전화번호에는 더욱 자신이 있다. 물론 내가 외우는 데는 어떤 기본이 있다. 예를 들어,
집이나 연구실의 전화번호
친척도 포함한 생년 월일
집이나 연구실의 주택 표시
좋아하는 숫자(우수, 기수, 소수 등)
같은 것을 기본으로 하여 거기에다,
지역에 따른 국번의 특이성
대표 번호의 특이성
등을 가미하면 외우기 쉽다.
이렇게 해도 잘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국철의 기술 연구소를 예로 들면, 구니다찌에 있으니 지역 번호는 (0425))이고 번호는 72-2151인데, 나의 기억에는 7, 2, 5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기억할때는 몇 사람의 연구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쪽의 번호는 XXXX로 바뀌었습니다"하고 알리고, 불필요한 전화는 일체 걸지 않는다. 한 번 걸면 이제 잊지 않으니 재차 확인할 필요도 없다.
어째서 7, 2, 5만으로 충분하느냐는 것은 설명할 바가 없다. 그 점에서는 오히려 바둑 이야기쪽이 재미 있을지 모른다.
전문 기사는 몇 점씩이나 깔아 주고 이른바 지도 바둑을 둔다. 지도 바둑이기 때문에 다 두고 나면 꼭 복기를 하며 잘못을 지적해 준다. 아마추어들은 그것을 보고 대개는 놀라게 된다.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모조리 외울 수 있습니까?"하고 물으면, "이 정도를 외우지 못한다면 프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하고 일소에 붙인다.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초인적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프로기사들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국면에 따라 여러 가지의 패턴이 있는데 그런 것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필연적인 수의 변화를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1국만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프로기사는 굉장하다"고 그저 혀를 내두를지 모르지만 실은 프로기사가 되기까지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여러 가지의 패턴을 전부 정리해서 머리 속에 넣지 않으면 안된다는 현실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의 수치만 하더라도 수 없이 많은 데이터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계산의 과정에서 분명히는 말할 수 없지만 여러가지의 기본 패턴이 정리되어 있으며, 그것이 전화번호에 결부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일이 만 가지 일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그리고 가장 친밀하고 중요한 사항과 잘 결부되면 기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또한 장기간 잊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고생을 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볼 때는 마치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생각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기억력이란 그렇게 특이한 능력이라고도 할 수 없다. 앞에서 말한 종합력이 하나로 정리되어서 인상에 강하게 남는 것에 불과하다.
집중력이란 전력투구가 낳은 몰아의 상태
집중력이란 신체 안의 모든 부분이 전력 투구하려는 의지를 중심으로, 일체가 되는 집약력을 말한다. 따라서, 생활에 있어서의 <리듬>에 필적한다고 볼 수 있다.
야구가 성행하게 되면서부터 전력 투구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되었는데, 이것과 집중력과는 매우 관련이 깊어서 집중력의 설명에는 안성마춤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력 투구란 다만 볼의 속도를 높이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투구의 순간에 있어서,
"상대(타자)의 폼에서 그가 노리는 방향을 알아낸다"
"상대의 기세로 타이밍을 알아내고, 거기에 어긋나게 던질 것을 생각한다"
"타자가 볼을 그냥 보내어 스트라이크 되는 것같은 구종을 택한다"
고 하는 것을, 극히 제한된 시간 안에 판단하지 않으면 안되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의 결과의 구질로 볼이 던져질 때 비로소 전력 투구가 되는 것이다. 집중력도 전적으로 이와 똑같은데, 단순히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한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기로 한다.
나의 경우 일요일은 원고를 쓰는 날이다. 아침 4시나 5시에 기상해서 일을 착수한다. 그날, 아내는 요꼬하마의 친정으로 갔다. 당시는 신혼 초였기 때문에 아내가 떠나자 나 혼자뿐이었다. 이렇게 되자 더욱 기분이 느긋해져서 일이 잘 되었다. 오로지 일에 몰두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어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집안에 불도켜지 않고서..."
"뭐, 잊은 것이라도?"
"무슨 말씀을 하세요. 벌써 저녁 9시가 지났는 걸요."
요컨대, 나는 주위의 밝고 어두운 것에 개의치 않고 아침과 점심도 굶은 채 스탠드 불빛 아래서 줄곧 일만 한 것이었다.
이렇듯 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배후의 존재가 바로 집중력이라는 것이다. 마치 알콜에 젖은 표본처럼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흠뻑 젖도록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집중력의 유무에 달려 있다.
또 하나의 다른 사례를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한때 OB교향악단의 멤버였던 적이 있다. 세컨드 바이올린은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리듬도 하아모니도 후스트 바이올린과 똑같다. 단지, 멜로디가 적다는 것일 뿐 테크닉도 실은 쉬운게 아니다.
처음에는 악보에 쫓긴다. 다음에는 지휘봉에 쫓긴다. 그리고 연습을 쌓으면 악보를 거의 보지 않고서도 그 무우드 속으로 젖어들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집중력에 의해 빨려 들어가는 몰아의 심경인 것이다.
떨어지면 안된다거나, 따라가지 못한다면 어쩌나 하고 걱정만 한다면 집중력은 생기지 않으며, 동화될 수도 없다. 오히려 무심이 되어서 동화하려고 힘쓰는 동안에 집중력이 키워지고 동화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어느 정도 알았을 것이다. 어느 일정 수준에 이르지 않은 초심자에게는 아무리 말해 보아도 집중력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것은 본인 자신이 항상 의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빨리 그 영역에서 탈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도 연습, 둘째도 연습이다. 그처럼 기초가 튼튼한 자기 단련을 거치지 않으면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을 것이다.
비행기 조종을 배울 때면 교관은 언제나 "몸으로 익혀라!"고 한다. 이론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몸으로 익히는 훈련을 쌓아야 비로소 이론적인 뒷받침이 이해된다. 아무리 열중한다고 해도 거기까지의 훈련 과정이 없으면 쓸 데가 없다. 비전문가는 불필요할 때에 힘을 주고 긴요할 때에 힘을 뺀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몸에 익지 않았단, 말이리라.
또 한 가지 실례를 소개하기로 한다. 그것은 서예의 연습이다. 예를 들어, 하루 걸려서 2절지 100매의 연습을 했다고 하자. 처음에는 보고 써야 되기 때문에 20매를 넘으면 우선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도 강행해서 연습하여 30매를 넘을 무렵에는 더 이상 보지 않고도 어느 정도 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50매를 넘으면 글씨가 의식되지 않는다. 사고가 일시적으로 경화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자는 무슨 자였지?"하는 상태였는데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써내려가 이윽고 80회를 넘기면 새하얀 종이에 그려진 검은 빛의 무늬처럼 의식된다. 그리고 그 무늬 속에 미를 추구하는 리듬과 하아모니에서 운필이 터득된다는 것이다.
100매의 연습도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먹을 갈고, 정좌 해서 계속 쓰면 여러 시간이 걸린다. 나는 200매 이상까지도 해본 적이 있는데, 12시간 이상이 걸렸다. 연습이 끝난 다음 신문을 보니 눈이 어른어른하여서 활자가 보이지 않았다.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은 <미혹>이다.
"이런 것으로 하루를 소비해도 되는 걸까?"
"저 선생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저 말뿐이 아닐까?"
"이 자습서를 익히면 정말 글씨를 잘 쓸 수 있을까?"
무엇이건 마찬가지이다. 이런 미혹이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한 집중력은 생기지 않으며, 기량의 성장도 바라볼 수 없다.
4시간 수면도 창조력의 소산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다"라는 말이 있다. 창조라는 것도 환경조건에 대한 일종의 응답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창조는 음악에서의 하아모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창조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데서 불쑥 튀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창조의 과정에 대해 순서를 세워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된다.
1) 새로운 것의 필요성을 인식한다
2) 그 인식에 대해, 자신의 지식을 대응시켜 본다
3) 부족한 지식이 있으면 즉각 보충한다
4) 요구에 일치한 스타일로 정리해 본다
5) 형편이 좋지 못한 점을 수정한다
6) 최종적인 결론을 낸다
실제로는 5)에서 1)로 다시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하며 몇 번씩 반복될 적이 있다.
어떻든 적극성이 기본이다. 그리고 그것을 정확히 포착할만한 힘이 전제가 된다. 거기에 창조력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에 중요한 것은 각 단계로 옮기고 바뀌는 사이에 항상 연구가 따라야 한다. 그것은 연구해서 사물을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요구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응시키느냐 하는 의미에서의 연구이다.
세째로 꼭 필요한 것은 도중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몇년이 걸려도 6)에까지 도달시키겠다는 의욕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창조력이 풍부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과묵하고 언제나 무엇을 하고 있다. 그리고 눈빛이 빛나며 맑다.
보통 창조력이 풍부하면 흔히들 초능력과 결부해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는 지금 말한 것처럼 적극성, 연구 그리고 지속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는 행동력, 판단력, 지속력에 의해 표현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떻든 앞에서 든 2), 3)을 중심으로 요구에 맞는 현실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착상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창조력이 넘치는 사람은 항상 무의식 속에서 발상의 전환을 반복한다. 그 좋은 예가 나의 체험인 나폴레옹 수면일 것이다. 나는 흔히,
"어떤 계기로 그런 일을 할 마음이 생겼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는데, 그때마다 나는,
"단지, 시간이 필요해서..."
라고 할 뿐이다. 약하고 작고 어설픈 운명으로 태어난 나로서는 오로지 시간만이 구원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직감에만 의지한 것은 아니다. 공평히 주어진 하루 24시간의 배분을 자기 나름대로 시간표로 작성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한 것 뿐이다. 모든 것이 계산 위에 존재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 결과로서 여러 가지의 창조를 할 수 있는데 나폴레옹 수면을 발견한 것 자체도 일종의 창조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일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너무 지루하지 않도록 이쯤에서 총괄해 보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능력이란 기억력, 창조력같은 형태로 설명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기력, 행동력, 정신력, 체력, 노력이 집약된 결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극언하면 능력이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으로서 부모로부터 받는 것도 아니고 스승이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결국 그 인간의 일생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말은 없다!"
고 나폴레옹은 말했다고 한다. 평균적 일반인은 그것을 과대망상이라 생각하면 "결국 러시아 원정에서 패하고 유배생활로서 일생을 마치지 않았느냐"고 힐난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속령이기는 했지만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인이었다. 그런 그가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별로 황제가 되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약하고 작고 어설픈 숙명을 뒤집으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건강한 우량 노인 (벌써 60세이다)이며, 비행기로 하늘을 날고, 30세 때에 학위를 받았으며, 대학교수로 20년간 근무했다. 즉, 지금은 강하고 크고 단단한 인간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뜻을 세우고 노력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불가능이라는 말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만약에 결과가 여의치 않으면 자신의 의지가 약했고 노력이 부족했으며 타이밍도 잘맞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자각해야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느냐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불가능을 긍정하는 한 모든 생각은 꿈으로 끝나게 되며 모든 노력은 무의미할 뿐이다. 나폴레옹이나 유방간은 역사상의 산 증인이 있다. 그들도 사람이요, 나도 사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사전에도 <불가능>이라는 말은 없다.
"능력이란 무한히 신장할 수 있다."나는 이렇게 믿고 있다. 60세가 된 지금도 나는 매일매일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몸소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2. 무한한 활력을 주는 시간철학
<시간의 구두쇠>로 일관하라
옛부터 "시간은 돈이다"라고 했다. 시간이란 중요한 것이니 돈이라고 생각하고 낭비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 말은 서양에서 전해진 격언인데 동양에도 똑같은 의미를 가진,
"청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소년은 늙기 쉽고...뜰 앞에는 오동잎이 이미 가을 소리를 내는 구나"
등의 말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사람들은 돈에는 제법 침착하면서도 시간에는 전혀 무관심하고 있다. 게다가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낭비하는 것은 자유라치더라도 타인의 시간을 무시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약속을 잊는다
지각을 당연한 것처럼 행동한다
필요없다는 데도 언제까지나 치근덕거리면서 돌아가지 않는다(보험이나 구입의 권유 등)
같은 것은 정말 불쾌하여 견딜 수가 없다.
나는 본디 가난한 말단 관리의 집안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남의 앞에서는 그렇지 않은체 사실 혼자가 되면 정말 구두쇠다. 검소, 필요한 양의 식사, 단벌신사의 생활 등 모두 구두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에 대해서는 더욱 더 구두쇠가 된다.
언제나 메모 용지를 갖고 다니며 사람을 기다리는 등의 토막 시간에 계산을 하거나 생각나는 것을 적거나 해서 메모를 한다. 그것이 나중에는 논문이 되고, 특허가 되며, 학생들에 대한 훈계가 되는 것이다.
나는 우선 지각을 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무슨 빚을 진 것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정확히 5분을 넘기면 굉장히 중요한 용건이 아닌한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하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인간이란 제멋대로여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시간적 관념도 타인에게는 제법 엄격한 법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신용을 얻으려면,
약속을 꼭 지킨다
절대로 지각하지 않는다
고 하는 2가지를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사회에서의 신용도 부하로부터의 신뢰도 이것 없이는 바랄 수 없는 것이다. 4시간 수면을 뜻하는 사람은 이런 의미에서도 시간에 대해서는 철저한 구두쇠는 그래도 금전적 구두쇠보다는 나은 취급을 받는다. 오히려, 시간적 구두쇠는 생동감이 넘치는 활동력을 보증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경의와 신뢰를 함께 지니는 인간으로서 평가 받게 된다. 따라서, 똑같은 구두쇠일지라도 금전적 구두쇠와 시간적 구두쇠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옛부터 시간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은 출세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서양이나 동양도 똑같다. 따라서 지금까지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시간적 구두쇠짓을 한 것이다. 4시간 수면은 이런 의미에서도 큰 역할을 하게된다. 더우기 앞길이 창창한 젊은 사람에게는 꼭 권하고 싶은 것이 바로 <4시간 수면>이다.
세계는 엄청난 인구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그 반면 기계화, 로봇화가 진행되어 직장은 자꾸 줄고 있다. 언젠가 닥칠 것으로 예측되는 세계적 불황에 대비해 젊은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해야만 하겠는가?
어느 시대에도 악인은 있었다. 낙오자도 있었다.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이상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는 지금까지보다도 더 많은 이상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그때 가서 후회해봤자 이미 때가 늦게 되는 것이다.
"일관한다"는 것은 4시간 수면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관한다"는 말에 대해서 한 마디 설명해 두기로 하자. 나는 나폴레옹 수면의 생활을 해오는 동안 자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함을 요구해 왔다. 타인에게는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대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항상 엄격했다.
나폴레옹 수면 자체가 수행인 이상 그러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4시간 수면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에 일관하면서 다른 것도 적당히 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특수한 예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즉, "일관한다"는 것은 몰입하는 것이며, 다른 일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가지가 만 가지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4시간 수면을 실천해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면 의미가 없다. 그럴 바에는 8시간 수면을 해서 불필요한 시간을 만들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관념론에 귀기울일 필요는 없다. 실제로 4시간 수면의 생활을 해 보면 끊임없이 수마가 엄습하므로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만한 긴장 속에 살면 자연히 시간적 구두쇠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구두쇠로 일관하는 것도 역시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무슨 일이건 일관해서 할 마음이 없다면 도저히 수마를 이겨낼 수는 없다.
따라서, 새삼 구두쇠로 일관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럴때면 다음과 같은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 것 - 구두쇠로 일관한다는 것은 오히려 절대적인 성격의 것이지 상대적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몸차림을 개의치 말 것 - 타인의 빈정거림이나 뒷말을 겁낼 정도라면 4시간 수면 같은 것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런 상태에서는 도저히 실천하지 못한다.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하게 할 것 - 평균적 일반인과 동격으로 의식할 정도라면 아예 <보통 사람>으로 남아 있는 쪽이 마음 편하다.
타인을 의지하지 말 것 - 부모나 형제에게 <몇 시에 깨워 달라>고 부탁하는 정도라면 우선 가망이 없다. 언제든지 자신의 일은 스스로 대처하는 기개가 없으면 안된다.
즉, 시간적 구두쇠로 일관한다는 것은 결국 4시간 수면을 실행하는 것이다.
3. 일생의 설계
4시간 수면은 일생을 설계하는 기본
요즘 들어 갑자기 <일생의 설계>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50세 전후가 되어 허둥댄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역시 뜻을 세우는 것은 젊을 때가 아니면 안된다. <타협>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면 어떻게 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업이나 자가영업의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샐러리맨에게는 한결 같이 청년이라는 것이 있다. 다소 연령에 차이는 있어도 후진을 위해 길을 터 주는 것이 연장자로서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그 무렵이 되어서, "나는 힘껏 일하며 살았다. 이제부터는 편히 쉬어야지"
하는 생각이라면 별문제이지만,
"집에서 빈들빈들 놀기도 그렇고, 쥐꼬리 만한 연금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으니..."
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비극이다. 그러므로 숨을 거둘 때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 일생의 설계를 해야 한다. 또한 설계는 그런 막다른 데까지 몰리기 전에도 언제나 할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일생의 설계란 손수 작성해야 한다. 젊은 때라면 어떤 꿈을 그려도 노력에 따라서는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된다. 게다가, 때로는 연령 제한을 받을 수도 있다.
뒤늦게 "자유업이나 자기 영업을 하는 사람이 부럽다"고 생각해 보았자, 이미 때가 늦은 것이다. 자유업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의가 국가시험에 의한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가 영업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건의 운반, 수금 등 샐러리맨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생이 따르는 법이다.
그런데, 고령자가 되면 자유업이나 자가 영업을 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렇다면 국가에서 실시하는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돈을 모아서 여생에 쓸 수 있도록 축적해 두어야 한다. 전자는 시간을 필요로 하고 후자는 절약을 전제로 한다. 즉, 일생을 설계하는 기본은 시간적 구두쇠, 금전적 구두쇠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도움으로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에 금전적 구두쇠로 일관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렇다면, 일생을 설계하는 기본은 시간적 구두쇠로 일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만약에 일생의 설계를 생각한다면 우선 <4시간 수면>을 뜻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4시간 수면이란 일생의 설계에 빠져서는 안될 필수조건인 것이다.
현실적 바탕을 두고 행동해라
국가에서 부여하는 자격증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국가에서 부여하는 자격이란 그 법률에 의해 보장되어 있는 범위 안에서 갖가지의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의사, 변호사, 공인 회계사, 변리사, 전기주임 기술자, 세무사, 사법서사...열거하자면 한이 없는데 모두가 국가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만 합격하면 부와 지위가 함께 따르는 것이니 만큼 시험을 보는 것은 쉽지만 합격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개중에는 그것만을 목표로 삼아 몇 년을 공부해도 합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만약 샐러리맨이 그 중의 어느 것에 뜻을 세웠다고 하자. 물론 샐러리맨으로서의 일은 다른 사람과 다름없이 처리해야 하므로 보통 사람처럼 공부해서는 어림도 없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의 두 배, 세 배의 내용으로 인생을 진하게 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4시간 수면의 의의가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때로는 타인과의 의리를 어기는 일이 있을지라도 자기 연마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리를 버릴 각오까지도 할 정도로 노력을 쌓는 냉혹성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자격이라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학력으로 대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험에 합격하지 않는한 영구히 무자격으로 있을 수 밖에 없다.
그와 반대로, 다소 비판을 받아도 또 뒷말을 듣는 일이 있어도 자격을 취득하기만 하면 그러한 것은 모조리 사라진다. 이런 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4시간 수면은 다만 심신에 고통을 강요할 뿐이다. 그래서는 모처럼의 인생도 무엇 때문에 있는지 모르게 된다.
예를 들어 회사같은 한 조직 속에서 일하면 조직으로서의 자격이 문제가 되며, 개인의 자격은 그다지 문제시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조직 속에서 일을 할 때에는 개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지 않아도 조직이 보유하는 자격만으로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즉, 정년이 되어 샐러리맨을 졸업하면 아무리 활발히 활약한 실적이 있었다 해도 개인적인 자격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 하나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샐러리맨에게 있어 최대의 함정은 이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생의 설계를 생각한다면 거기에 필요한 자격은 모두 자신이 보유하지 않으면 안되다. 그것도, 정년이 되기까지 사이에 모두 입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이랬으면 좋을 텐데..."
하는 식의 마음 편한 꿈이나 동경을 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
"정년이 될 때까지는 적어도 이런저런 자격을 취득할 테야!"
하는 현실적인 행동이 아니면 안된다. 가령, 조직 속에 있으면서 승진하고 있는 동안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행동파의 생활을 할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결국 남의 힘을 빌려서 씨름하는 격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프로인체 하는 아마추어"라고 부른다.
<평균적 일반인>으로 만족하지 않으려면
대단히 실례된 말이지만 내가 말하는 <평균적 일반인>이란 "프로인체 하는 아마추어"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천박한 지식을 내세워 식견이 있는 체하고, 자기 연마를 보류한 채 알랑거려서 이익을 얻는 것으로 일관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들에 놀아나서 샐러리맨 생활을 끝내는 사람들이다. 그런 상태에서 일생의 설계를 생각한들 도대체 무엇이 이루어지겠는가. 따라서 나는 "그것으로는 안된다"고 확언하는 바이다.
4시간 수면을 실천하는 사람은 아무리 학력이 없어도, 아무리 가난에 쫓겨도 이제 <평균적 일반인>일 수는 없다. 언젠가는 화려한 일생이 약속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일생의 설계 속에 반드시 <4시간 수면> 을 포함시키는 의의가 있는 것이다. <4시간 수면>은 후회없는 일생을 약속해 주는 성공의 바이블인 것이다.
@ff
제 4 장 수험생에게 꼭 필요한 수면법
아침형과 밤형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4급 5락(4시간 수면이면 합격, 5시간 수면이면 불합격)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이것은 수험공부에 있어 수면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부라는 것은 시간 못지 않게 그 내용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턱대고 공부시간을 많이 늘린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이다.
공부의 효과는,
집중력
우뇌와 좌뇌의 적절한 사용
몰입 계속 시간
등에 좌우되는 것이다. 먼저 이러한 요소들이 이상적인 상태로 조화를 이룬 다음에야 비로소 수면시간이 문제되는 것이 아닐까?
인간에게는 아침형과 밤형의 두 가지 패턴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일반적으로 밤형이 많고 아침형은 드물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이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나태성>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아침형> 쪽을 권하고 싶다. 밤에는 여러가지 소음이 많이 들린다. 게다가 심야방송은 특히 문제거리다. 좀처럼 그 방송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러나 아침은 조용하다. 게다가 수면을 취하고 난 다음이라서 머리도 매우 맑다.
말이 나왔으니 심야방송에 대해 한 마디 해 두고자 한다. 심야 방송도 주위의 다른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듣는 것이라면 굳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집중력이 매우 저하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집중력이 저하된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공부는 도저히 바랄 수 없으며 아무리 장시간을 노력해도 얻는 것은 별로 신통치 않다. 말하자면 가장 비효율적인 공부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시간 사용을 할 바에야 무리해서 4시간 수면에 도전할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
4시간 수면 +- 1시간
그런데 또 한 가지 시간에 관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계획적인 시간표 작성이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시간표는 잘 지켜지지 않은 적이 많다.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그렇다기보다는 자칫 의욕이 앞서 인간성이 무시된 채 시간표가 작성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긴장된 상태이고 이상적인 건강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역시 산 몸뚱이다. 하루를 통해 보아도 리듬이 수없이 바뀐다. 하물며 1주일, 1개월, 1년 동안의 고정 패턴을 결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같은 시간 할당일지라도 좀더 여유를 느낄 적도 있을 것이고 또 힘에 겨워서 반도 지키지 못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억지로 참고 견디면 실행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힘겨운 짐을 지고서는 공부를 해 봤자 절대로 머리 속에 들어갈리가 없다.
수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고 싶을 만큼 실컷 잠을 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4시간 수면을 실천한다는 구실 아래 멍한 머리로 밤 늦게까지 자지 않고 견뎌 보았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산 몸뚱이인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한편으로는 의지를 단련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습관화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해나가야 할 것이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4시간 수면에 플러스 마이너스 1시간정도의 폭을 두면서 습관화시켜 나가야 한다. 신체의 컨디션이나 그날의 형평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알맞는 수면법을 스스로 개발해 나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1시간 정도의 가감된 범위 안에서 어느 정도 신축성을 두고 해 나가야 한다.
본디 수면이라는 것은 신체의 모든 부분에 걸쳐 고른 휴식을 전제로 한 것이며 또한 그 휴식은 다음의 생명활동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기상 후에도 컨디션이 나쁘다거나 머리가 멍해서 공부를 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올바른 휴식을 취했다고 볼 수 없으며 또한 충분한 수면이라고도 할 수 없다. 즉, 수면시간도 문제이지만 수면 자체의 질도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양해를 구해 두어야 할 것은 수면의 질이라는 것은 한결같지 않아서 도저히 획일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에 따른 선택이 필요하며 스스로 그것을 찾아낼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수면법을 택해야 하는가? 그것은 한 개인의 건강상태, 성장한 환경 조건, 부모의 생활 태도 혹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판단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나름대로의 개성을 살린 수면법을 확고하게 습관화시키는 것은 입시합격의 지름길임은 물론 장래의 성공까지도 보증하는 길인 것이다.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4시간 수면법
나는 매우 기묘한 현상을 경험해 오고 있는데 그것을 소개하기로 한다.
가령, 매우 전문적인 분야의 원고를 쓰고 있을 경우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에는 써 내지 못한다. 전문적인 분야라서 자료수집 관계도 있으므로 단번에 죽 써 내려가지 못하고 중단했다 다시 쓰고, 또 중단했다가 다시 쓰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다시 써 내려 가려고 할 때는 으례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대충 훑어보고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한밤중 2시까지 써 나가다 수면을 취하고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다시 책상에 앉으면 앞부분이 전혀 다시 읽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잠을 자고 있는 동안의 3시간 수면은 육체 두뇌 및 자율신경의 휴식은 되었을 망정 의식의 단절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나는 3시간 수면이었지만 이러한 현상은 4시간 수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렇게 해서 또 시간을 번 결과가 된 것이다.
4시간 수면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을 자신만이 몇 배로 늘리려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음가짐도 있어야 하겟지만 항상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것을 하나의 발판으로 삼아 항상 새로운 극면을 조성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개이건 돌고래이건 가르치기만 하면 어떻게든 기억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먹이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억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먹을 것을 얻으려면(생존하려면)우선 기억해야 한다.
확실히 기억이란 젊어서는 왕성하고 나이와 더불어 감퇴되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항상 반복훈련을 통해 기억력을 증강시키지 않으면 안되다. 그러므로 인간도 반복훈련을 통해서 기억력을 증강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개나 돌고래에게 주입하는 식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만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허기 때문에 기억술이나 기억력 향상법 같은 연구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개성을 살린 기억법
인간이란 기묘한 것이어서 어떤 인간일지라도 나름대로의 장점은 반드시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장삿군은 비록 수학을 잘 모를지언정 손해냐, 이익이냐의 계산은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 음악가는 대체로 물리학은 질색이지만 경이적인 귀를 가지고 있어 거기에 결부시키면 단 한번의 인상으로도 강하게 기억할 수 있을 적이 많다.
즉, 자신이 장점으로 삼고 있는 것에 결부시키면 반복훈련을 거치지 않고서도 쉽게 기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음악가가 사용하는 부호중에 A에서 G까지의 글자가 있다. 기본이 C장조이니 C는 1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여기에 <742-2151>이라는 전화번호가 있다고 하자. 이것을 앞서의 음악부호로 바뀌 쓰면 <BFD-DCGC>가 된다. 만약 익숙해지면 여기에 리듬도 달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기억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변환을 행해야 하며, 이 변환 방법이 키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컴퓨터도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변환을 행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무엇에 대응시키느냐 하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것을 찾아내어 대응시키면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음악가의 부호를 예로 들었지만 이런 종류의 변환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무선통신에 사용하는 부호, 우편번호에 사용되는 숫자 등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또는 구양순, 저축량, 우세남이라는 식으로 전당 삼필의 필법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변환 방법은 획일화 될 수도, 획일화할 수도 없는 것이다.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초서체는 옛날 중국에서 일종의 속기술로 고안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기억을 위한 이런 종류의 장점이 되는 기본요소가 자신에게는 전혀 없을 경우는 도대체 어찌하면 좋은가? 그런 사람은 거의 드물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럴 경우에는 신변에 있는 사항들이 중요한 대역을 하게 된다.
어학만 해도 그렇다. 단어를 외운다는 것은 매우 고생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신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용해서 기억에 도움을 얻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야구중계를 들어보면 라이트니 레프트니 센터니 하고 모두가 영어이다. 다만,
라이트 right -> 오른쪽, 옳음, 도리...
light -> 왼쪽, 빛, 견해, 가볍다, 용이한...
이라고 정리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야구에서 곧잘 쓰이는 말을 하나씩 조사해 보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단어를 외울 수 있다.
요컨대 가만히 있어서는 무엇 하나 외울 수 없다. 기억력 배증 법이건 이 책에서 설명하는 4시간 수면법이건 간에 제일 효율적인 것은 자기 자신에게 맞는 개성적인 방법을 개발해서 실천해야 된다는 것이다.
우뇌와 좌뇌의 적절한 사용법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에게는 <아침형>과 <밤형>이 있다. 하지만 4시간 수면을 전제로 할 때 어느 한 쪽만을 살린다는 것은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의 특성을 기준으로 하여 우뇌와 좌뇌를 번갈아가며 잘 이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반적으로 이론적인 것(수학, 물리 등)은 좌뇌가 작용하고 정서적인 것(사회, 생물)은 우뇌가 작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학 같은 것은 양쪽이 모두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용에 따라 적당히 할당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침에는 머리가 맑고 밤에는 지쳐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자연히 아침에는 이론적인 것 즉, 좌뇌를 사용하고 밤에는 우뇌를 사용해야 되지 않나 생각된다. "머리가 지쳤으니 피로를 풀어야지"하고 음악을 들었을 경우 휴식을 취한 것은 좌뇌일 뿐 우뇌는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좌뇌를 회복시키려면 몸의 형편에 따라 훈련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몰입계속 시간의 연장은 바랄 수 없다.
좌뇌의 사용에서 우뇌의 사용으로, 우뇌의 사용에서 좌뇌의 사용으로의 자유로운 전환은 익숙한 사람이면 몰라도 일반적으로는 어렵다고 한다. 특히 우뇌에서 좌뇌로의 전환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발상의 전환이나 머리의 전환같은 것이 화제에 오르는 것은 실은 이처럼 좌우뇌의 전환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원래부터 수학이나 물리학을 좋아했고 오랜 세월 전기공학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오히려 좌뇌에서 우뇌로의 전환쪽이 더 힘들고 귀찮다. 그것은 오랜 세월의 습관 탓이리라. 그렇지만 나는 서예나 음악 같이 우뇌를 사용하는 분야에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 적절한 좌뇌의 휴식과 동시에 내 인생의 더욱 많은 것들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피로를 없애주는 머리의 사용법
그런데 급속히 전환하는 것이 어려울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어학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영어처럼 비교적 역사가 짧은 언어는 문법이 논리적으로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좌뇌적인 요소를 좀더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떻든간에 어학은 표면에서 본 문학성, 감성 외에 문법, 언어학으로 상징되는 논리성을 함께 갖추고 있다. 즉, 우뇌적인 요소와 좌뇌적인 요소가 함께 갖춰져 있다. 그러므로 우뇌와 좌뇌를 잇는 매우 큰 교량역할을 할 수 있다.
우뇌는 여러 가지의 양태로 피로를 발산시킬 수 있다. 음악이건 회화이건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충분히 쉬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몰입계속 시간이 별로 많지 않은 데도 자신으로서는 제법 길었다고 착각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내지고 폐기물 제거되지 않으면 피로는 회복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쉽게 피곤을 의식할 뿐더러 자신은 상당히 참고 견뎠다고 생각해도 몰입계속 시간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다음과 같은 패턴으로 공부를 하면 피로를 모르고 공부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수학공부를 한다. 그리고 지치면 어학으로 바꾼다. 어느정도 어학을 공부하다 이번에는 사회나 생물같은 암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과목을 공부한다. 다음에 피로를 느끼면 국어나 한문공부로 바꾼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계속한 뒤 이번에는 물리학을 공부한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주기로 삼을 것인가
싫어하는 과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어느 과목도 모두 싫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다. 그런데 시간적 주기이건 싫증이 생기는 것이건 사람에 따라 각각 차이가 있으니 각자 개인적으로 충분히 생각해서 해결 해 주기 바란다. 요는 개개인의 <의지>가 기본이다.
입시 때에는 싫어하는 과목이 가장 큰 문제거리이다. 합격, 불합격은 거의가 싫어하는 과목에서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클로즈업 되는 것은 앞에서 말한 기억력 향상법이다. 주변의 손쉬운 것을 연상시켜 쉬운 것부터 외운다. "외우고 있다" "외울 수 있었다"는 만족감이 싫다는 장벽을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일이 있어도 초조해서는 안된다. 시간을 충분히 배정해서 우선 외운다. 그리하여 싫다는 장벽이 제거된 뒤에 천천히 논리적으로 다시 생각해 본다. 싫다는 장벽만 제거되면 논리의 요점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인 것이다.
집중력 배증법
인간이란 자칫 잡념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러므로 전신을 집중해서 몰아의 심경에 달하기는 좀처럼 어렵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잡념을 떨쳐버리려고 요가 도장에 다니기도 하고 참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들은 극히 일시적인 효과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역시 몰아에 빠져든다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수행이라는 것을 어느 기간 체험하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4시간 수면법도 평생을 통한 수행이라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에게 이런 한가로운 말만 늘어놓아 보았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래서 집중력을 배증시키는 두세가지 방법을 여기에 소개해 보기로 한다.
본디 인간이란 제멋대로이고 이기적이며 약한 존재이다. 따라서 이러한 본성을 잘 파악하여 그것을 역이용한 자기 암시를 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 뜻에서 볼 때 제일 자연스러운 것은 <재미>를 붙이는 것이다. 무엇이든 "재미 있다"고 느끼면 주위의 일같은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재미 속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가령 공부하다가 미스프린트를 찾아 내거나 또는 비슷한 말, 비슷한 법칙, 비슷한 수학공식 등을, 자기 나름대로의 표로 작성해 보는 일이다.
그리고 선생이나 선배에게 보여 잘못된 것은 수정한다. 물론 선생이나 선배에게 보일 수 있을 정도의 쓸만한 것으로 완성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다 보면 자연 열중할 수 있고 집중력도 유지된다. 그리고 이 방법은 싫어한다는 혐오감이나 열등감을 없애는 데에 특히 효과적이다.
이런 종류의 표나 일러스트 등을 작성한다는 것은 확실히 논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좌뇌를 혹사하게 된다. 허지만 한편으로는 꿈이 있다. 또한 이해할 수 있다는 만족감도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억력도 제법 작용하게 된다. 즉, 적당히 좌우의 뇌가 분담해서 활약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의외로 몰입 계속 시간도 길어지고 피곤도 덜하다.
공부가 단순한 암기인 동안은, 그것은 오히려 벌이라고 볼 수 있다. 모두가 수동적이다. 괴로움은 있어도 재미는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지속성이 없으며 피로도 심하다. 하지만 그 속에 어떠한 형태로든 <창작>이나 <창조>의 요소를 가미시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창작>이나 <창조>는 모두 개인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다. 따라서 모두가 능동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여기에서 정복자로서의 만족감이 생겨나고 즐거움이 배증되며, 동시에 집중력 배증력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암시에 속박당하지 말라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을 첨가해 둔다. 그것은 흔히,
떨어지면 어쩌지!
그에게 지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종류의 말은 부모들이 자주 입 밖에 내고 있는데 수험생 여러분은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어떻게 복잡한 논리를 이해하며 공부할 수 있겠는가? 수험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우선 비장한 결심부터 하고 시작하는데 그것은 도리어 마이너스이다. 오히려 긴장을 풀고 자기 페이스로 즐기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창작성이나 창조성을 도입한다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자기 페이스로 즐기면서 공부를 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올바른 공부에의 지름길인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개나 돌고래는 먹이에 끌려서 여러가지를 외운다. 물론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인간이 그것들과 다른 것은 인간은 그 미끼가 반드시 자동차나 텔레비젼 같이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미끼도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많이 활용해 주기 바란다는 점이다.
이제 집중격 배증법이란 반드시 어떠한 수행을 쌓아야만이 실현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어려운 과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집중력의 저하는 수동적인 것에서 온다. 따라서 만일 이와 반대로 정복자로서의 만족감같은 것이 주어진다면 어느 누구든 집중력 배증법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무엇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 라는 구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므로 여기서는 무어라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내가 여기에 예시한다 해도 그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은 의문이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하루의 생활패턴을 확립하라
4시간 수면의 목적은 한정된 24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는데에 있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 시간 즉, 나머지 20시간 중에서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끄집어 내어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점에 제일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의 생활 패턴을 고정화할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이건 마찬가지겠지만, 4시간 수면 역시 완전히 자신의 몸이 익기까지는 노력(3년쯤)이 필요하다.
4시간 수면이 몸에 완전히 익게 되면 매우 안정되고 생활패턴도 고정화되지만 문제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3년 동안이다. 그 동안은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무서울 정도의 수마가 엄습한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4시간 수면은 몸에 익지 않는다.
시간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단단히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3분, 5분일지라도 긴장을 풀지 말고 진지하게 대처해야 한다.
"바쁠수록 일의 진척이 빠르다"
는 말은 일을 많이 소화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이것은 곧 그들이 3분, 5분의 시간 사용법에 능숙하다는 뜻이다.
레포트 작성이나 번역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고를 쓰고 몇 번씩 추고를 거듭한 다음에야 정서를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에 찬성할 수가 없다. 왜냐 하면 그것은,
나중에 다시 보는 데서 일이 아무래도 조잡해진다.
나중에 정서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글자가 거칠어질 뿐만 아니라 잘못을 알고도 다시 고치겠다는 생각으로 지나치기 쉽다.
추고를 반복하는 것은 좋으나 다소라도 인상에 남아 있으면 아무래도 추고 자체까지도 조잡하게 되기 쉽다.
문장의 추고가 반복되면 중요한 그래프나 도표의 잘못이 간과되거나 또 번역의 경우에는 원의에 벗어날 적이 많다.
일 자체가 진지하지 않기 때문에 수마의 먹이가 되기 쉽다 등의 단점이 지적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방식은 어떠한가. 나는 처음부터 목숨을 건 승부로 알고 시작한다. 글자까지도 한 자 한 자 정확히 쓰고 항시 사전류를 곁에 두어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즉시 확인한다. 이럴 경우 가장 유익한 점은 수마에 엄습당할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곧잘 메모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는 이상하게만 생각된다. 왜 기억해 두지 않는 것일까?
물론 나도 메모를 해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회의 장소, 시간 등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
금액, 치수 등 수량이 분명할 필요가 있을 때
책을 주문하거나 아무래도 적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항 등에 한정하고 있다.
요즘의 학생들은 제록스로 복사를 해두면 마치 내용을 모두 이해한 것같은 생각이 들고, 메모를 해 두면 다 기억한 듯이 생각되는 모양인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메모의 경우 오히려 적어 놓았다는 안심감이 기억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메모를 곧바로 찾아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메모를 찾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거나 분실해 버려 내용을 알 수 없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시간 감각을 몸에 배게하라
"시간은 귀중한 것이다. 누구에게 있어서도 귀한 인생의 한 장면이다"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지각을 하거나 시간 약속을 어기는 등의 타인에게 실례되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시간이 귀중한줄 알면 타인의 시간도 침범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절대로 지각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4시간 수면을 실천하려면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긴장을 풀어서는 안된다. 조금이라도 긴장이 풀리면 즉각 수마가 엄습해온다. 따라서 깨어나 있는 20시간은 긴장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4시간 수면의 실천자는 이처럼 초긴장 상태로 살고 있기 때문에 지키려고 함으로써 20시간 속에 리듬이 생기게 된다. 이 리듬은 생활의 패턴을 공식화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다.
하루를 살다 보면 3분, 5분같은 도막 시간이 수 없이 나온다. 기껏해야 3분, 5분이라고 하찮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20번을 거듭하면 1시간이 넘게 된다. 3분이면 외국어 단어 하나둘 쯤은 외울 수 있다. 하루에 20개를 외운다면 1년에 무려 7천여 개를 외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금까지 의식조차 할 수 없었던 3분, 5분의 허드레 시간만으로 1년에 1개 국어의 기본단어를 마스터할 수 있다니 아마도 상상조차 못했으리라.
시간을 생산한다는 말은 없는 시간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 아니다. 토막시간을 살려 나가는 것이 바로 시간의 생산이다.
일부러 30분, 1시간을 할애해서 일정표를 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예상외로 공중에 뜨게 된 토막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오히려 4시간 수면의 특색인 것이다.
그리고 솔직이 말한다면 이러한 것은 결국 졸음을 몰아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처럼 토막시간까지도 철저하게 계산을 하게 하면 작업량은 4인분 이상에 달하게 된다.
신경과 시간의 낭비를 피하라
나는 비행기 조종면허나 1급 소형선박의 조종면허를 갖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자동차 운전면허는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집은 교통편이 좋은 곳에 있고 게다가 나는 술꾼이기 때문에 자동차 운전면허 같은 것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 그것은 변명일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그러한 데에 바칠 시간도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 지금껏 사고를 낸적이 없었을 뿐더러 자연 누구에게 폐를 끼친 적도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 자신도 4시간 수면이 몸에 배기까지의 3년간은 끊임없는 수마의 엄습을 받았다. 그런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마치 미친 사람에게 칼을 쥐어 준 격이었으리라.
다행히 사고를 내지 않는다고 해도 신경에 대한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한 신경의 피로가 어떤 형태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겠지만 아뭏든 플러스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동차 운전면허 자체는 지극히 단순해서 문제될 것이 못된다. 그러나 각종의 교통표지,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교통신호, 정신을 어지럽히는 추월이나 갑자기 튀어 나오는 차량들을 생각한다면 그저 한가로운 말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정신을 어지럽히는 일은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어쩌다 순조롭게 달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린 적도 있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사고를 이어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손수 운전하지 않고 버스나 전철 또는 택시를 이용하면 그 순간의 시간은 전적으로 자신의 것이 되지만 손수 운전을 하고 있으면 다른 일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시간 낭비일 뿐만 아니라 신경도 몹시 피로해진다. 다시 말해 신경과 시간의 낭비일 뿐이다.
이미 몇 번씩 말한 바와 같이 4기간 수면의 생활은 순간순간이 승부이다. 그리고 근육, 두뇌, 자율신경의 조화를 유지해 주지 않으면 어김없이 건강에 지장을 가져오게 된다. 3년 동안이나 고행하면 부단히 노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4시간 수면의 생활이란 숨돌릴 틈조차 없는 자기 지도형의 일정표에 자신을 올려 놓는 일이다. 수동적인 잡일의 증가는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
@ff
제 5장 누구나 할 수 있는 수면법과 실천일정
2주간 일정의 단면법 완성
그러면 지금부터 2주간에 단면법을 실천에 옮기는 구체적인 일정을 설명하기로 한다.
그에 앞서 이것만은 말해두고 싶다. 저에 이 단면법을, 자세한 설명도 듣지 않고 느닷없이 실행했던 사람이 있었다. 하루, 이틀째는 무척 쾌조였다.
"해보았더니 의외로 간단한데요. 처음에는 보나마나 졸립겠지 하고 생각도 했습니다마는 그렇지도 않군요."라는 식의 명랑한 목소리가 전화에서 들려온 것은 꼭 3일째였다.
그러나 그 뒤로는 전혀 보고가 끊겼다. 어떻게 된 것일까 생각하며 전화를 했더니 며칠 전과는 아주 다르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졸립고 졸려서 저에게는 아무래도 무립니다. 수면시간을 4시간으로 한다는 것이 사흘쯤이면 해낼 수 있어도, 그 이상은 도저히 안되겠어요. 단념했습니다."
여기까지 듣던 나는 무슨 사연인지 다 알아챘다. 이 사람은 몸도 풀지 않고 당장에 수면시간을 4시간으로 줄였던 것이다. 워밍업이 없이 한다면 제아무리 단단한 사람이라도 며칠이면 뻗기 마련이다.
수면시간이란 갑자기 줄여서는 안된다. 단계를 거쳐서 천천히 줄여 가는 방법을 택하지 않는 한은 결국 표절의 겉치장으로 그치게 된다.
내가 권하는 것은 2주일 일정으로 잠자는 시간을 4시간으로 굳치는 방법이다. 여태껏 7--8시간 자고 있던 사람이 수면의 리듬을 완전히 4시간으로 정착시키기에는 아무래도 2주일이 걸린다. 제1주는 수면패턴의 변혁기이고, 제2주는 그 안정기라 할 수 있다.
단면법 실천 일정표
<제 1주=수면리듬의 변혁기>
1일째(준비일): 수면시간 -> 8시간
7(8)시간 수면은 이날이 마지막이 된다.
4시간 수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4시간 수면의 뜻을 재확인
2일째: 수면시간 -> 0시간
수면리듬을 제로의 상태로 돌리기 위해 완전히 밤샘을 한다. 철야를 한 뒤에 36시간 계속 일어나 있는 것이 중요.
3일째(제1반응기)<첫날째>: 수면시간 -> 6시간
이날이 가장 괴롭다. 다리, 허리나 관절이 은근이 아프고, 눈이 따끔따끔 하며 미열도 나오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되도록 몸을 움직이며 의지력으로 넘긴다.
4일째(제1반응기)<이틀째>: 수면시간 -> 6시간
놀라우리만큼 숙면이 되고 사뿐히 긴장상태가 찾아온다. 수영이나 죠깅등으로 몸을 움직인다. 단것, 수분은 되도록 피하며 적게 먹는다. 목욕, 알콜도 삼가한다.
5일째(제1반응기)<사흘째>: 수면시간 -> 6시간
체중이 준다(성인은 1--2kg) 이것에 신경을 너무 쓰면 스트레스가 오히려 크게 반응하므로 요주의.
6일째: 수면시간 -> 4시간
채식중심(고기3: 채소7)의 식생활을 명심한다.
반응기는 좀 조용해지지만 완전히 끝난 셈이 아니므로 요주의.
7일째: 수면시간 -> 4시간
눈에 띄게 말쑥해진다.
<제 2주=수면의 안정기>
8일째: 수면시간 -> 4시간
4시간 수면의 리듬을 굳치기 위한 안정기에 접어든다. 기상, 취침의시간을 정한다.
9일째: 수면시간 -> 0시간
두번째의 밤샘. 전혀 괴롭지 않다. 식사의 양과 수분을 지나치게 드는 것을 잘 주의한다.
10일째(제2반응기)<첫째날>: 수면시간 -> 4시간
다시 반응기가 찾아 왔다. 그러나 첫번째 만큼 괴롭지 않다.
11일째(제2반응기)<이틀째>: 수면시간 -> 4시간
12일째: 수면시간 -> 4시간
여기서 두통, 어지러움, 토할 듯한 메스꺼움, 빈혈, 미열 등의 증상이 나온 사람은 체질개선이 돼 있지 않으니까 당장에 중지하고, 다시 한번 제1일째로 되돌아가서 4주간 예정의 일정으로 시작한다.
13일째: 수면시간 -> 4시간
14일째: 수면시간 -> 4시간
14일째를 지나게 되면 4시간 수면의 리듬이 완전히 몸에 배어 있다. 목욕도, 알콜도 전과 같이 해도 아무 지장이 없다.
1일째. 이날은 4시간 수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마음가짐과 지식을 키웠으면 한다. 우선, 수면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는 자각을 여기서 재확인한다. 4시간 수면이 가져다 주는 이점을 차분히 정리해 본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의 인생살이에 크게 보탬이 되고 구실을 한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 신념이 조금이라고 뒤흔들린다면 4시간 수면을 정착시킨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2주일간의 수행으로 빚어지는 여러 증상을 예비지식으로 머리속에 잘 정리해서 집어 넣어 두어야 한다. 그 증상이란 말할 나위 없이 극복하기가 결코 호락호락 쉬운 거싱 아니다. 4시간 수면을 굳치는 데에 있어, 기어서 빠져나가야 하는 장애라고 여겨야 한다.
그러나 곰곰이 잘 생각해야 한다. 고작 2주일간의 <수행>으로 앞으로의 일생을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수면법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한번 정착시킨 수면리듬은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당신이 30세라면 앞으로 40년간쯤은 넘쳐서 남은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쓰게 된다.
이렇게 제 1일째는 어디까지나 자각의 하루인 것이다. 마음을 고요하고 잔잔하게 먹으면서도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이날밤이 7(8)시간 잠자는 것은 마지막이다.
"바야흐로 내일부터 훈련이 시작된다. 힘내서 견디어야지..."하고 결의를 새로이 굳치는 것이다.
"7(8)시간 자는 것은 오늘뿐이다"
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되면, 잔다는 것이 고맙게 여겨지고, 기분 좋은 숙면을 할 수 있는 것이다.
2일째. 이날이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자기의 수면리듬을 완전히 허물어뜨리기 위해 완전히 밤샘을 하게 된다. 수면시간을 단번에 0시간으로 하면서 잠자는데 대한 굶주림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3일째. 완전철야로 지샌 새벽녘이긴 하지만, 잠자는 것은 밤이 돼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로서, 밤샘 뒤에 적어도 36시간은 뜬 눈으로 버티어야 한다.
이날부터 반응기가 시작돼서 여러가지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눈이 따끔따끔하며 아프다. 어깨가 뻐근해진다. 다리와 허리 그리고 관절, 마디마디가 은근히 쑤신다. 나른하고 기력이 없어진다. 체중이 0.5kg 준다. 오줌이 눈에 뛰게 노래진다. 그리고 개중에는 미열이 나는 사람도 생긴다.
"병에 걸린 것이 아닌지?..."
하고 걱정이 앞설지 모르지만 이러한 반응은 모두 철야의 피로가 풀리면 사그라지니까, 안심하고 이 관문을 지나면 된다.
4일째, 5일째. 모두 수면시간은 6시간으로 한다. 밤샘을 한뒤라, 6시간으로도 놀라우리 만큼 푹 잘 수 있고, 7--8시간 잔 것같은 생각이 든다. 4일부터는 4시간 수면을 향해 몸을 익히는 단계에 들어 선다. 철야하고 그런 뒤에도 계속 일어나 있다는 거센 파도를 무난히 넘었다는 데에서 심신에 산뜻한 긴장상태가 맴돌게 된다.
이 양일의 주의점은 되도록 수분을 들지 않아야 한다는 일이다. 한없이 수분을 들면 눈에 띄게 맥이 빠지고 나른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수분이란 커피, 홍차, 쥬스, 청량음료, 맥주, 술, 과일, 스프 등등이다.
그리고 단것도 삼가한다. 단것을 들면 잇몸이 들뜨거나 이가 아파지기도 한다. 식사량은 웬만큼 줄이고 꼭꼭 씹어 먹도록 명심하고 실천에 옮긴다.
사람이 이로 씹으면 위아래의 이로 해서 50kg이나 되는 압력이 걸린다. 굉장한 힘이다. 그러니까 같은 음식을 먹으도 잘 씹지 않고 삼키는 사람과 천천히 힘주어 씹어면서 먹는 사람과는 소화력에 얼마만큼의 차가 있기 마련이다.
잘 씹어 먹으면 그만큼 침도 많이 나오고 위액의 분비도 느려진다. 이것은 식욕에 브레이크가 걸린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잘 씹어 먹게 되면 그럴수록 자연적으로 음식을 적게 먹도록 된다.
이 양일은 목욕도 되도록 삼가하는 편이 좋다. 더운 물에 들어 가면 갑자기 피로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알콜도 피하는 것이 좋다. 술을 마시면 취기도 빨리 돌고 허리가 빠지는 것 같은 느낌에 빠진다.
6일째. 7일째. 수면시간을 이틀 줄여서 4시간으로 한다. 이 무렵이 되면 팔목시계가 헐 겨워질 정도로 여윈다. 자는 시간이 적으니까 그만큼 체력이 소모되고 세포안의 지방직이 급격히 분해돼서 체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불룩나온 배에 신경을 쓰던 사람도 한결 날씬해진다.
헌데, 6시간에서 4시간으로 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그다지 괴롭지 않다. 4시간으로 줄인 이틀째의 밤같은 때는 오히려 쾌적하기조차 하다. "또 철야라도 할 수 있는 것 같군"하는 자신마저도 생긴다.
식사내용은 이 무렵부터 채식중심으로 하는 것이 좋다.
2주일째는 4시간 수면을 정착시키는 기간이다. 이 무렵에는 취침과 기상시간을 정할 필요가 있다. 아침중심형으로 하느냐, 밤중심형으로 나가느냐를 분명히 한다.
9일째. 밤에 두번 째의 완전철야를 실행하고 10일째의 밤까지 다시 36시간 이상 일어나 있다. 실천해 보면 알지만, 이 두번째의 밤샘은 전혀 괴롭지 않다. 이상한 일이지만 몽롱히 둥둥 떠있는 듯한 부유감에 휩싸이고 육체의 피로는 거의 느끼지 않는다.
10일째. 다시 4시간 수면으로 되돌린다. 이 때도 잠이 깊어서 7--8시간 숙면한 듯한 느낌이다. 여기까지 오면 4시간 수면은, 두번째의 철야로 잠을 다시 제로로 샜던 것으로 해서 이번에는 생리리듬에 걸맞는 것으로 달라졌다.
14일째를 지나면 4시간 수면은 아주 자연스러이 몸에 배게 돼있으므로 목욕이나 알콜 섭취도 평소의 상태로 되돌려도 괜찮다.
단지, 개인차가 있으니까 2주째에 들어 섰을 데도 반응기에 이어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12일째가 되는 무렵에 두통, 어지러움, 메스꺼움, 빈혈, 미열을 느끼는 증상을 보이는 사람도 나온다.
이런 경우는 무리를 하지 말고 당장에 중지한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제 1일째로 되돌아 가서 이번에는 4주일간의 일정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하루하루 단계를 이틀로 늘려서 실시하는 방법이다.
또 나날에 따라 수면시간에 강약의 리듬을 붙이는 편이 지내기가 쉽다는 사람에게는 <6대 3의 리듬>을 적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나고야의 츄꼬대학 학장이 실천하고 있는 방법인데, 6시간 잠잔 다음날은 4시간, 그 이튿날은 6시간 하는 식으로 6 , 4의 리듬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통산한다면 5시간 수면이 된다. 우수인 날은 6시간, 기수인 날은 4시간(또는 그 거꾸로)으로 정하면 실천하기가 쉬울는지도 모른다.
졸음을 쫓는 단전중심법
앞서 "단시간 수면으로 하루를 지내려면 설혹 5분간이라도 겉잠을 잘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만일 눈붙일 시간의 여유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겉잠이라도 자지 않으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시들어지는 수가 있다. 집중력을 높여 놓고 있지 않으면 일이나 공부의 질은 눈에 띄게 떨어진다. 이쯤 되면 진퇴양난에 빠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집중력의 쇠퇴를 막을 수 있을까.
우선, 집중할 수 있는 정신적 자세는 이해하는 일이다. 인간이 매사에 정신적으로 집중하는 데에는 차분하고 침착한 상태로 있을 필요가 있다. 그런 상태를 만드는 것이 자세다.
침착한 상태란 것은 인간의 중심이 배꼽 3cm아래의 단전이라는 부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한다. 몸의 중심이 <단전>이 아니라, 그 위쪽에 있게 되면 반드시 기분이 들떠 있다. 이른바 "상기돼 있다"는 정신상태는 그 중심이 가슴에서 목, 얼굴에까지 올라 있을 때에 일어난다.
예를 들어, 아는 이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느닷없이 피로연의 사회자로부터 인사말을 하라고 지명받았다고 치자, 미리 부탁받은 것도 아닌 것이었기에 누구나 허둥대지 않을 수 없다. 마이크 앞게 서니 머리끝까지 핏기가 치솟아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어진다. 이런 경우, 이 사람의 중심은 완전히 위에 와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고가 집중되지 못하고, 무릎도 바르르 떨린다. 단전에 중심이 머물러 있다면 무릎이 떨리는 일도 없고, 머리의 회전도 활발할 것이며, 인사말도 막힘이 없을 것이다.
단전에 중심을 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서 있건 앉아 있건간에, 엄지 발가락에 힘을 꾹 주고 골반을 죈다. 골반을 죄게 되면 등뼈가 곧아진다. 그리고 전부근을 좌우에서 세게 죈다. 그러면 항문 괄약근이 좌우에서 꽉 죄어든다.
흔히 "기력이 빠졌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항문의 괄약근이 축 늘어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늘어져서 맥없이 벌어진 항문에서 기력이 빠져 나가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정신의 집중 따위가 될 리 없다.
어쨌든, 단전에 중심을 두게 되면, 되도록 크게 숨을 들이키고,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길게 숨을 토한다. 이것이 긴요한 동작이다. 이렇게 하면 횡격막이 밑으로 처지고 중심이 단전에 차분히 가라앉는다.
졸음을 쫓는 3개의 동작
1. 귓밥을 세게 아래로 잡아 당기면서 크게 눈을 뜨고 숨을 다 토해 낸다. 이런 동작을 10회 되풀이하면 졸음이 당장 사라진다.
2. 머리 복판에 있는 백회에 두손의 엄지손가락을 갖다댄다. 숨을 토하면서 6초 동안 세게 누른다. 이것을 6회 되풀이한다. 머리의 혈액흐름을 좋게 하고 피로를 없앤다.
3. 곧바로 앉아서 목덜미의 목뼈 양쪽에 있는 천주를 손칼로 친다. 핫핫 숨결을 거세게 토하며 20회 강타한다. 양손으로 골고루 치는 것이다. 다음 천주의 양족 2cm의 우묵한 풍지에도 손칼질을 한다.
당신도 회사에서 졸음에 시달릴 때, 이 단전중심법을 꾀해 보면 어떨는지. 당장에 졸음이 사라지고 다시 일에 집중할 수가 있다. 수험생의 심야공부에도 이 방법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정신집중에 효과가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것은 <수식관>이라는 호흡법인데, 좌선이나 명상과 같은 효과가 있다.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켜고는 토하면서, 하나 둘 셋...하고 마음 속으로 셈한다. 단순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팔리거나 걱정스러운 일에 어디까지나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실행하는 것이 긴요하다.
잡념이 떠오르면 다시 호흡을 맞추어 하나, 둘에서부터 출발한다. 무아의 경지에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벌렁 누워서 얼마까지 셀 수 있는지 시험해 본다. 보통 700쯤까지 약 10분이 걸린다. 10분이 지난뒤, 가만히 눈을 뜬다. 숙달되면 효과면에서 이 10분간이 밤의 수면 2시간 가량과 맞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집중력을 놀라울 정도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머리띠는 늘어진 정신을 집중시킨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또 하나, 좋은 방법이 있다. 머리띠를 싸매는 방법이다.
인간의 머리를 형성하고 있는 두개골은 여러 부위가 봉합돼 있다. 그 부분을 봉합부라고 부르는데, 사람이 무엇엔가 사고를 집중시키고 있을 때는 봉합부가 느슨히 벌어져 있다. 그러니까 정신을 집중시키고 싶을 때는 이 느슨한 부위를 꽉죄면 된다.
머리띠를 두르면 느슨히 벌어지기 쉬운 두개골을 꽉죄게 된다. 정신이 집중되면 행동적일 수 있고 동작도 기민해진다.
내가 잘 아는 어느 작가는 원고의 마감이 다음날로 육박하고 있을 때는 반드시 머리띠로 싸매고 핏기어린 눈으로 책상과 맞붙어 있다.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그가 어깨까지 머리카락을 걸친 장발이니까 머리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본인은,
"아니지, 머리띠로 힘껏 머리를 싸매지 않으면 그럴싸한 스토리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거든."
이라고 말하고 있다.
헌데 머리띠에도 제대로 두르는 법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 아무렇게나 싸맸다고 당장에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 매는 법이란 이렇다. 눈의 바로 뒤가 되는 후두부의 부위와 목덜미 위인 중간에 머리띠를 대고, 이마의 윗부분과 연결시켜 꽉 싸맨다. 즉, 후두부의 불룩 나온 부위를 위로 치켜 올리듯이 매는 것이다.
머리띠는 무명수건이 제일 쫗다. 인간의 기억중추라는 것은 측두엽, 즉 머리의 측면에 있으므로 그 측면을 강하게 죄어서 머리에 자극을 주려는 것이다.
피로회복을 위한 놀라운 호흡법
3시간 수면을 실천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호흡법이다.
인간은 산소로 살아 간다. 몸통 뿐 아니라 뇌도 산소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말했다.
올바른 호흡법을 하고 있으면 피로는 그때마다 없앨수가 있으므로 단시간의 수면으로도 건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끝으로 마무리짓기 위해 지금까지 소개되지 않았던 호흡법을 몇개 더 소개하겠다.
눈떴을 때의 호흡법
이것은 창문을 열거나 집밖에 나가서 외기를 마시며 실행한다.
1) 좌우 뒤꿈치를 맞대고 곧바로 선다.
2) 콧구멍으로 7--8초 걸려서 숨을 천천히 들이켠다. 가슴을 크게 벌리는 요령으로 어깨도 딱 벌리며 숨을 마신다. 그런데 의식의 초점을 발바닥의 우묵한 허리에 집중하고 거기서 공기를 들이켜는양 생각한다.
3) 다음에 발돋움을 하면서 뒤꿈치를 한꼈 치키고 7--14초 동안 숨을 멈춘다.
4) 숨을 토하며 뒤꿈치를 천천히 내린다. 10초쯤 걸려서 뒤꿈치를 바닥에 내린다.
이상의 동작을 매일 아침, 5회 되풀이 한다.
걸을 때의 호흡법
1) 똑바로 서서 턱을 가볍게 당긴다.
2)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본다.
3) 단전에 힘을 주고 엄지 발가락에도 힘을 모은다. 발바닥의 허리에 의식을 집중시키고 무릎을 펴서 가볍게 걷는다. 걸음의 속도에 마시는 숨결과 내뱉는 숨결의 리듬을 맞춘다. 이 호흡법은 통근 때, 활용하면 좋다. 피로를 느끼게 하지 않는 걸음 걸이이면서, 동시에 쌓인 피로를 가시게 하는 효과도 있다.
배고플 때의 호흡법
1) 서있어도 좋고 앉아있어도 괜찮다.
2) 혀를 길게 말아서 입술 밖으로 내민다.
3) 그런 모습으로 7초쯤 걸려서 숨을 마신다.
4) 혀를 원상으로 돌리고 14--21초쯤 숨을 멈춘다.
5) 콧구멍으로 10초 걸려서 천천히 숨을 내뱉는다.
4시간 단면법을 실천에 옮기면 처음 1주일간쯤은 공복감에 시달린다. 그런 때에 이 호흡법을 쓰면 배고픈 증세가 좀 덜해진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호흡법
1) 앉아 있어도 괜찮고 벌렁 누어 있어도 좋다. 가장 편한 자세로 있으면 된다.
2) 양손이 손가락을 끼고 단전 위에 놓는다.
3) 크게 깊게 숨을 들이켠다.
4) 입을 모아 띠엄띠엄 숨을 뱉는다. 이 때, 양손으로 단전을 꾹꾹 눌러 마치 배안에서 숨을 내미는 듯이 한다. 이런 동작을 10회쯤 계속하면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고 잠들기가 수월해진다.
수면을 위한 식사법
음식물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우리는 보통 여러 종류의 음식물을 합쳐서 섞어 들거나, 조미료를 쳐서 먹는다.
그러나 조리과정에서 어떤 결함이 생기는가 아는지. 말하자면, 그 음식물이 본디 지니고 있는 특징이나 성질을 바뀌게한다는지 칼로리도 증감시키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우채나 즙과 당근채나 즙을 무치거나 동시에 들으면 어떻게 될까. 무우의 비타민C와 당근의 비타민C에 포함된 파괴효소가 작용돼서 2개의 비타민C가 모두 파괴당한 끝에 아무 영향도 없는 것이 된다.
푸성귀 중에서 시금치는 비타민과 철분이 많은데, 뜨거운 물에서 데치면 비타민의 7할이 파괴된다.
칼로리 계산에 있어서도 매한 가지다. 무우는 칼로리가 적어서 미용식으로서 여성들의 환영을 받고 있으나, 무우에는 디아스타제 소화효소가 있다. 이 당화효소는 함께 먹은 전분(녹말)의 소화를 촉진해서 칼로리를 보다 많이 흡수기키게 한다. 그 때문에 거꾸로 비만을 불러 온다.
이러한 결함을 없애고 올바른 식사법에 유념치 않으면 건강유지나 비만방지로 이어지지 않는다. 모처럼 단면법을 실천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말한 것 이외에 식사때는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설명하겠다.
(1) 화학조미료나 첨가물을 피한다.
현대의 식생활에서 화학조미료나 첨가물을 피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쌀이나 빵에까지 첨가물이 들어 있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자연식품을 중심으로, 어느 식품이라도 내용표시를 단단히 확인하고, 첨가물이 적은 것을 골라 사는 일이 긴요하다.
(2) 중성세제를 쓰지 않는다
채소나 과일을 세제로 씻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아주 좋지 않다. 음식물에 스며 들은 화학세제는 아무리 물로 씻어도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매한가지로 식기를 헹구는 경우도 세제를 쓰지 말고 더운 물이나 냉수를 써야 한다.
(3) 식물유를 든다
동물성 지방은 칼로리가 높아서 비만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다시 혈액을 산성으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몸의 움직임을 우둔하게 만든다. 버터도 식물성 마가린으로 바꾼다든가 참기름 따위를 써야 한다.
현미는 영양의 다이아몬드
끝으로 2주간의 기한으로 4시간 단면법을 실천해서 생리화시키기 위한 식단표의 예를 소개하겠는데, 이 식사에 관해서 나의 경험을 비추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점을 몇개 밝히겠다.
우선 흰쌀 중심으로 식사를 하면서 단면법을 실천하다가 몸의 심지로부터 힘이 나오지 않게 돼서 무척 괴로왔던 일이 있었다. 언제나 몸이 나른하고 힘이 솟지를 않아 운동능력도 어지간히 떨어진다. 특히 점심을 먹은 뒤의 1시나 2시쯤에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내는 데에는 무척 고생했다.
그렇다면 빵을 중식으로 식사를 하면 어떨까.
이것도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온종일 몇번이나 배고픔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특히 표백된 흰빵은 먹고 4시간 수면을 실행하면 가볍게 어지러움이 덮쳐 왔는데, 걷다가 나도 모르게 전주나 벽에 기댄 적도 있었다.
국수류를 중심으로 한 경우는, 밀국수나 라면보다는 메밀국수가 좋다. 내 경험으로는 그것도 다른 조미용의 건덕지가 없이 메밀국수만을 먹은 편이 힘을 쓸 수 있었다.
메밀국수에 관해서 나는 독자적인 요리법을 갖추고 있다. 출장이나 여행 길에 오를 때는 메밀가루에 현미와 밀의 배아를 섞은 것을 언제나 휴대한다. 이것은 약간의 물에 개서,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는 김으로 말아 먹는 것이다. 이것을 들면 어지간히 격렬한 운동을 하더라도 충분히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고, 4시간 수면도 쾌적한 것이 된다.
헌데, 야채만을 중심으로 해서 먹고 단면법을 체험한 적이 있다. 야채는 섬유질이라 변비가 되는 일이 없다. 다시 소화기계통의 병은 거의 회복된다.
다만, 이른 아침이나 오밤중에 손발이 차가와 오는 일이 종종 있다. 이것은 생채소가 인체에 음성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채소식법은 냉증기미가 있는 사람에게는 권할 수 없다. 또 채소식법은 정신노동자에게는 좋을는지 몰라도 운동선수나 육체노동자에게는 맞지 않는다.
끝으로 현미중심의 식사법을 설명한다.
이것은 나 뿐 아니라 내가 지도했던 비즈니스맨이나 수험생 등등 약 300명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모두 한결 같이
"몸의 심지로부터 상쾌한 상태가 됐다."
고 입을 모았다.
현미만으로는 영양실조가 되지 않느냐? 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 듯한데,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다. 현미에는 단백질, 회분, 칼슘, 인, 철분, 칼륨, 비타민B, 비타민E 등등 45종류의 영양소가 포함돼 있어서 정녕 <영양의 다이아몬드>라고 일컬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식품에 현미만큼 많은 영양소가 포함된 것은 달리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4시간 단면법을 쾌적하게 실천하기 위해서 현미식은 불가결의 것이라 할 것이다.
4시간 단면법을 위한 식단표(2주간)
날짜 아침 점심 저녁
1일째 콜리플라우어(양배추의 일종)의 카레샐러드 콘비프와 오이볶음, 양념구이 전갱이와 비지, 야채볶음, 죽순찌개
2일째 콘수프, 시금치무침 과즙주를 넣은 빵, 오렌지 쥬스 그린피스와 다시마 조림, 고래고기구이, 생야채(오이, 양배추, 샐러리, 토마토, 아스라파거스)
3일째 햄과 흰배추의 밀크수프 곤약스테이크, 셀러리 샐러드 감자베이컨말음, 토마토샐러드, 달걀국
4일째 잡생선, 야채찜 샐러드(무우, 평지잎, 송이버섯, 홍당무), 감자된장국 해온, 곤약샐러드, 돼지국
5일째 생송이버섯, 어묵된장국, 김 생오징어구이, 닭찜 소간구이(생강), 두부된장국
6일째 샐러리의 기름 볶음, 둥근파된장국 오이와 오징어생채, 중국풍 볶음밥 닭고기, 달걀덧밥, 다시마된장국
7일째 피망졸임, 모시조개된장국 닭고기산적, 양배추무침 해쉬트라이스, 야채샐러드(양배추, 토마토, 상치, 아스파라거스)
8일째 시금치무침, 뷔에너소시지볶음 고등어조림, 다시마된장국 닭고기 술에 적신찜, 샐러드(서양배추, 토마토, 상치, 샐러리), 새우조림, 순무된장국
9일째 감자카레, 어물과 쑥갓국물 실곤약복음, 아스파라거스샐러드 넙치를 과즙수에 담근찜, 시금치볶음
10일째 스크램블에그, 귤, 탈지밀크, 토스트 유두부국수 국수볶음, 생야채(상치, 토마토, 샐러리, 오이), 우엉조림
11일째 토마토스프, 치즈토스트 나폴리풍참치 넣은 스파게티, 야채샐러드(서양배추, 상치, 홍당무, 오이) 야채튀김(고구마, 피망, 가지), 무우즙, 쑥갓을 곁들인 어육, 야채냉국
12일째 낫또(설익은 메주콩에 간친것)에 생달걀 친 음식, 둥근파된장국, 김과생선 선호구이(서양배추, 토란, 생강, 생우, 달걀) 이탈리풍스파게티, 토마토쥬스
13일째 조개, 야채 등의 조림 연한 캐비지고기볶음, 토마토쥬스, 둥근파옴렛 토란국 메밀국수 간장의 빵가루튀김 샐러리와 홍당무생채
14일째 스틱샐러드(당근, 오이, 샐러드), 오렌지쥬스 달걀볶음밥, 마카로니샐러드 넙치버터구이, 숙주나물, 모시조개된장국
*양식이 아닐 때는 현미 한 공기의 밥을 먹도록 한다.
볶는 데에는 참기름 쓰고 토스트는 마가린을 쓴다.
@ff
제 6 장 당신의 수면법은 어떤가
1. 하루 8시간 수면은 근거없는 낭설
전문가들이 말하는 <상식>에 현혹되지 말라
요즘 텔리비젼이나 잡지 등에서 수면에 대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의깊게 보아왔지만 납득되지 않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방면의 전문가로 소개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면 시간이 짧다는 것은 건강상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하루 7--8시간의 수면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미 상식화돼 오고 있는 하루 8시간 수면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근거없는 전문가들의 추측적인 발언에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래부터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해 온 것은 아니다. 평균적인 일반인들이 그러한 대답을 강요해 왔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수면이라는 것 자체가 규명되지 않고 있다는 데도,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는 게 좋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문가들도 뒷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무난한 대답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하루 8시간 수면>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리라. 즉, <하루 8시간 수면>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근거없는 망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폴레옹처럼 (전기에 의하면 수면시간을 줄였다고 씌어져 있지만 3시간 수면이라고까지는 씌어 있지않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나폴레옹의 수면 시간은 3시간 정도로 추측되므로 <나폴레옹 수면 = 3시간 수면>으로 해두자.)하루 3시간 수면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4--5시간 수면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 만약 하루 8시간 수면이 아니면 건강을 해친다고 한다면 이미 병들어 죽고 말았어야 할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닐 것이다. 짧은 수면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죽기는 커녕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을 나는 수 없이 보아 왔다.
반농 반어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하루 3--4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않는다. 정치가나 장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각계의 제 1선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하루 8시간 수면이란 꿈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하루 8시간은 자야 한다"고 한가한 말은 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학생이나 별볼일 없는 직책의 샐러리맨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하루 8시간 수면의 근거는 더욱더 희박해지는 것이다.
"수면을 취한다"는 것은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아무런 의식도 없는 시간의 경과를 의미한다. 8시간이 경과하면 잠에서 깨어 또 다시 일을 하거나 어떤 생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잠자고 있는 동안은 죽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의식적으로는 죽어있는 것과 전혀 다름이 없다.
따라서 남보다 더 많이 수면을 취한다면 당연히 경쟁조건이 나빠진다. 그러므로 경쟁에 이기고 싶으면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깨어 있는 시간을 늘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제 1선의 활약자들은 하루 4시간 밖에 자지 않는다
세상은 경쟁 사회이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범죄까지도 서슴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현대는 경쟁 사회가 아니라 범죄 사회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시끄럽고 뒤숭숭한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한가로이 하루에 8시간씩이나 수면을 취할수 있다면 그사람은 굉장한 거물이거나 하잘것없는 바보라고 할수밖에 없다.
앞에서, <하루 8시간 수면>이라는 말은 전문가들의 추측적인 발언에 유래한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은, 왜 일반인들은 "선생은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주무십니까?"하고 좀더 구체적으로 묻지 읺느냐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8시간 수면>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면 시청자들이나 독자들이 충분히 만족스럽게 납득할 것이라는 일종의 연기적인 요소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말하고 있는 전문가 자신들도 만약에 확고한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현역이라면 아마도 하루 4--5시간 수면이 고작일 것이다. 즉, 전문가 자신들도 질문을 받았으니 <8시간>이라고 대답하고 있을뿐 자신이 그것을 신봉하거나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발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균적인 일반인들이란 실로 슬픈 존재들이다. 아무리 학력이 높거나 지식이 있어도 일단 매스콤에서 <하루 8시간 수면>이 좋다고 하면 곧 거기에 흔들리고 만다. <하루 8시간 수면>을 취해오고 있던 사람들은 곧 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고 당황해 하며 어딘지 논리성을 잃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매스콤의 정보조차 입수할 틈도 없이 바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8시간씩이나 잠을 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되건 좌우간 일부터 해 놓고 봐야지!"
이러한 강직성이 없으면 무언가 성취시키는 인간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일에 매진함으로써 생활의 리듬을 타게 되고 그로 인해 오히려 건강도 한결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평균적 일반인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매스콤을 신뢰하는 사람이 정상이고 매스콤을 무시하는 따위의 사람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는 큰 잘못이 있다. 그렇게 하다가는 오늘의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제 1선의 활약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남보다 우수한 인간이기 때문에 이만큼 된 거야. 잠도 자지 않고 일만하는 저런 괴팍한 소수점 이하의 놈들은 멀지 않아 도태되고 말 거야"
그러나 그들이 정년이 되었을 때 "수고했다"고 말하는 중역은 아마도 그들이 무시한 바로 그 <소수점 이하의 놈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일에 대한 의욕이나 일에 비친 총 시간 수에 있어 두 사람은 비교될 수 없을 맡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루의 수면 시간을 줄이면 반드시 경쟁에 이긴다
다시 한 번 말해 두겠지만 본디 <하루 8시간 수면>이란 말은 없었던 것이다. 먼저 이 것을 분명히 인식하지 않는한 <하루 4시간 수면>과는 한평생 인연이 없게 될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현대 사회는 경쟁 사회이고 범죄사회이며 또한 정보사회이다.
정보가 부족했던 탓으로 경쟁에서 지거나 범죄자가 되기도 하는 예는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정보량은 너무나도 엄청나다 밤샘을 거듭한다 해도 도저히 다 처리해 낼 수가 없다.
그렇게 되니 자연 너나 할 것 없이 텔리비젼이나 주간지 등에 혹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텔레비젼이나 주간지에서 얻은 것들은 비록 정보는 정보일지라도 매우 일반적인 성격의 것들이어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가 없다.
정보량은 과다하고 게다가 어느 정도 정리된 정보는 이미 때가 늦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진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물론 정보의 진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어떤 논리 같은 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수 많은 경험에서 얻어진 직감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직감력은 4시간 수면을 통한 장시간의 연마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자.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옛날부터 <토끼와 거북>의 우화가 전해지고 있다. 아무리 느린 거북이라도 토끼를 앞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상대가 토끼이기 때문에 빠르고 거북이기 때문에 느리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수면 시간을 최소로 줄여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배 후 일본 사회에서는 종전의 계급제도가 전적으로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그 반면 새로운 계급 제도가 또다시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즉, 한편은 학벌, 문벌 그리고 재벌을 표방하면서도 고작 샐러리맨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마는 피고용자 계급과 다른 한편은 수면 시간을 줄이고 검소, 필요최소한 양의 식사로 자기 억제를 행함으로써 대성하고 자본가가 되어 가는 계급과의 두종류이다.
세습제도가 부정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도 사회적으로 볼 때는 남남 사이에 불과하다. 그러면 이러한 사회 패턴에서 자신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면 좋단 말인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거기에 대한 대답이 바로 하루 4시간 수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필요불가결의 수면이란
수면은 다음의 생명활동을 위한 준비기간
<충분한 수면>이란 말은 곧잘 쓰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충분한 수면인지에 대해서는 도대체가 불분명한 설명들 뿐이다.
아뭏든 8시간이니 뭐니하는 것을 볼 때 수면 속에는 시간적인 것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옛부터 <깊은 잠>이니 <얕은 잠>이니 하는 것으로 보아 깊이로 상징되는 요소도 함께 내포되어 있다는 것 역시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가 수면의 질을 나타내는 인자라고 한다면(가장 단순히 생각해서)이 <깊이>와 <시간>이 표출해 내는 어떤 값이 그 수면의 내용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 생각이 옳다고 가정한다면 이 값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값보다 작으면 불충분한 수면이 되는 것이며 더 수면이란 결국 수면의 시간과 깊이가 표출해 낸 가장 적당한 값인 것이다.
하지만 이 <가장 적당한 값>이라는게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수가 없을 것이다.
이 값은 각양각색의 개인차까지 감안해서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더욱 더 알 수 없게 된다. 이런 점에 수면 해석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충분한 수면>이 어떤 것인지 이론적으로 가정할 수는 있지만 실체가 어떤 것인지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아뭏든 논리적으로는 충분한 수면, 불충분한 수면이 어떠한 것인지 납득이 가지만 "좀더 자고 싶다"는 인간의 마음을 해명해 주는 데는 불충분한 것 같으니 보다 다른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생물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생식하며 그 종족 번영을 위한 활동을 계속한다. 그리고 그 목적이 달성되면 생명력을 잃게 된다. 즉, 죽음이 계속 되는 윤회이다.
1년생 초목은 종자를 맺으면 시들어 죽고 만다. 송어류의 어떤 것은 산란을 끝내면 힘이 다해서 죽고 만다. 불쌍하게 생각되지만 그것은 하늘의 섭리이니 도리가 없다.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수면이란 죽음과 마찬가지로 <의식이 작용하고 있지 않은>시간의 경과이다. 단지, 죽음과 다른점은 죽음은 영원의 휴지를 뜻하고, 수면은 다음의 생명활동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수면은 휴식일뿐 정지가 아니므로 그 휴식은 다음의 생명활동이 목표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의 생명 활동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현실적인 행동, 두뇌활동, 자율신경의 작용이라는 세 종류로 구분해서 생각하고 있다. 좀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기업체의 활동, 군대의 전투와 비유해서 설명하기로 한다.
첫 번째의 <현실적인 행동>이란 근육 운동도 물론 현실적인 리듬 운동(예를 들면 음악연주 등)같은 것도 포함된다. 이것은 기업체의 생산, 판매에 관한 활동, 군대의 전투활동에 해당된다.
두 번째의 두뇌활동이란 <판단>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기업체의 기획, 개발, 설계같은 업무, 군대의 작전 부문 또는 참모분야에 해당된다.
끝으로, 자율신경의 작용이란 분명하게 인식하기 어려운 것으로서 때로는 무시되기 쉽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니 주의해 주기 바란다. 기업체의 자금조달, 자재구입 또는 적재 적소의 인사이동, 군대의 보급 문제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상의 설명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생명활동은 두뇌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활동을 위한 휴식은 이러한 세 종류의 각각에 대한 휴식의 측면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두뇌, 육체, 자율신경을 동시에 휴식시켜라
앞에서 말한 <수면의 깊이>라는 것도 포함시켜서 수면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설명하기로 한다. 그런 목적에서 그린 것이 다음의 도표이다.
(A)에 표시되어 있는 세 종류의 구분은 앞에서 말한 휴식의 세 종류 즉, 현실적인 행동(육체활동), 두뇌활동, 자율신경의 작용을 뜻한다.
각각의 길이는 수면의 '시간', 높이는 수면의 '깊이'를 나타낸다. 깊이와 시간을 곱한 값 즉, 도표의 면적은 충분한 휴식을 뜻한다.
(A)=세 종류의 휴식이 충분한 상태이며 또한 시간적으로 동시에 취해진 예이다. 이렇게 되면 수면 시간은 3시간으로 충분하다.
(B)=세 종류의 휴식이 각각 충분한 상태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대에 휴식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을 위해서는 9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가장 극단적인 예를 나타낸 것이다.
(C)=휴식의 깊이가 60%[(C)의 두뇌활동의 깊이는 충분한 상태의 두뇌활동 깊이인 (A)의 60%]면 소요시간은 5시간, 50%[(C)의 육체 자율신경 활동의 각각 깊이는 충분한 상태의 육체, 자율신경의 깊이인 (A)의 50%]면 6시간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세 종류의 휴식 시간대가 위에서 만큼의 차이가 나면 8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일반인들의 수면 패턴으로 생각해도 좋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나의 경험을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의학서 같은 것은 일체 참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독단과 편견이라는 말은 들어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충분한 수면'이라는 말의 뜻은 충분히 이해했을 줄로 믿는다.
이상의 도표에서 우리는 다음의 3가지 현상을 알 수 있다.
첫째, (A)형의 수면에 접근하면 수면시간이 가장 짧아지고 또한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다.
둘째, (B)형처럼 깊이도 충분하지 않고 시간대에도 차이가 나면 수면시간은 지극히 불안정하다. 평균적인 일반인의 수면 패턴이라 생각해도 좋다. 또한 (D)형처럼 시간대에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면 10시간 이상의 수면을 취해도 좀더 자고 싶다는 마음이 남는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 둘 것이 있다. 수면에서의 깊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물리량으로서 측정되는 것이 아니며 개인차 또한 크다는 것이다.
즉, 개개인이 각각 자기 자신의 기준에 따라 충분한 깊이가 얼마인지 찾아 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3. 수면부족의 해소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만족감
인간이란 실로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다.
시각, 미각, 취각, 청각이라는 이른바 오감 이외에 기쁨, 슬픔, 애처로움, 즐거움을 느끼는 정감이 있고 공포감이나 불안감도 있다. 그런가 하면 반드시 직감만이 작용해서 행동에 결부된다해도 할 수는 없다.
이런 어려운 말을 늘어 놓아 보았자 골치만 아플 테니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가령,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하자. 즉, 공복상태라고 하자. 이런 경우 눈 앞에 음식물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기꺼이 먹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1) 색이 변한 것을 보니 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먹지 않았다.
2) 흔들어 보니 상한 계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먹지 않았다.
3) 썩은 냄새가 나서 버렸다.
4) 입에 넣어 보니 어쩐지 시큼한 맛이 들어 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뱉았다.
5) 만져 보니 뭉클거려 그만 두었다.
6) 독이 섞인 것같아 버렸다.
7) 공복에 술은 좋지 않아서 마시지 않았다.
8) 3일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사람이 옆에 있어서 양보했다.
9) 옆의 아이가 먹고 싶은 눈치여서 그 아이에게 주었다.
10) 값을 치를 돈도 없고 신세지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
아직도 얼마든지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요컨대 공복이라고 해서 반드시 먹는 동작이 수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만족감>이란 자율신경에서 발신되는 요구가 다른 여러가지 감각이나 신경에 전혀 방해를 주는 일이없이 충족되었을 경우에는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걱정 때문에 음식물이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일이 너무도 바빠서 점심을 드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고 하는 등의 현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즉, 만족감이란 그때그때의 당사자의 정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24시간 또는 1주일, 1개월, 1년, 평생을 통해서 항상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똑같은 인간일지라도 경우에 따라 만족감이 다른데 하물며 서로 다른 사람일 경우 만족감에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앞에서 말한 <먹는다>는 동작에 따르는 거절현상은 접어두더라도 동일한 음식을 같은 양으로 먹었을 때의 만족도도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며, 또 개개인의 만족도도 그때그때의 정황에 따라 수시로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A)모양이 좋지 않아서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우기 단맛도 덜하고 역시 제과점의 것이 좋다.(--- 늘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것과 모양이나 맛이 똑같았다. 정말 맛있었다. 이런 대접을 받다니 정말 고마웠다.)
(B)싫은 냄새가 나서 먹어 치우는 것이 힘들었다. (전부터 말로만 들어오던 것이어서 기쁜 나머지 냄새도 몰랐다.)
(C)싫은 냄새가 나서 먹어 치우는 것이 힘들었다. (전부터 말로만 들어오던 것이어서 기쁜 나머지 냄새도 몰랐다. 처음 대하는 것이라 정말 맛있었다.)
(D)매우 좋아하지만 연 3일째 먹어온 터라, 통 맛을 몰랐다. ( 좋아하는 것은 역시 항상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맛있었다.)
(E)설사병중인 탓인지 차가운 것을 입안에 넣는 순간 겁이 났다. 하지만 실례가 되는 것 같아서 참고 먹어 치웠다.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리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차가운 것이 뭐라 말할 수 없는 만큼 맛 있었다.)
(F)발암성 착색제를 쓰고 있었잖은가. 도저히 먹을 마음이 나지 않았지만 따돌림을 당하면 큰일이라 싶어서... (그 안에는 한약재로 쓰이는 성분이 들어 있어서 보신을 한다는 생각으로 먹었네 뭐라 할까...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네.)
(G)매우 좋아하는 것이었고 맛도 있었지만 너무 소량이어서 먹은 것같지 않더군. (역시 요리는 소량 다품일세. 양이 적다는 점이 한층 맛을 더해 주더군.)
(H)뭐야 이게. 이건 마치...사람을 무시하다니.나는 사장이야. (나는 채식에 필요 최소한 양의 식사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무엇이건 가리지 않고 먹지만 양은 소량이면 됩니다.)
얼마든지 예를 들 수는 있지만 도저히 끝이 없을 것 같으니 이 정도로 해 두자.
<제약>이 수면의 만족감을 가로막는다.
이제 본래의 수면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지금까지 든 예들을 분석해 보기로 하자. 서로 연관이 있는 이야기니까.
1) 시각에 의한 혐오감
2) 청각에서 생기는 불안감
3) 취각에서 생기는 불쾌감
4) 미각에 의한 자기 방어 작용
5) 촉각에서 생기는 불안감
6) 환경에 대한 논리적 판단
7) 경험에서 얻어진 자기규제
8) 연민의 정에서 생기는 자기규제
9) 윤리 규제에 대한 자기 순응성
10) 사회 윤리를 기본으로 한 인격의 고립성
(A) 생활 형편에 관습이 생기는 부정(시각) <-> 생활 형편에 대한 희망과 육친의 정(시각).
(B) 청각으로 인식하는 환경에의 위화감 <-> 청각에 의해 자각하는 환경에의 동화.
(C) 취각에서 생기는 혐오감 <-> 취각에 의한 의식에서 미리 가진 기대에 대한 만족감쪽이 이긴 예.
(D) 반복에 의한 피로감(미각) <-> 관습에서 생기는 만족감(미각)
(E) 건강 상태에서 생기는 거절(촉각) <-> 체조와 촉각의 조화.
(F) 건강 상태에서 생기는 거절(촉각) <-> 지식에서 생기는 자기규제.
(G) 양에 대한 기대가 어긋나는 것 <-> 양에 대한 만족감.
(H) 자기 현시욕에서 생기는 거부 <-> 윤리관 속에 있어서의 만족감.
나는 의사도 아니고 심리학자도 아니다. 그러므로 혹시 용어에 착오가 있을지도 모르니 양해해 주기 바란다(오감을 괄호 안에 써 넣은 것은 다른 감각의 예를 들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함).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지탱하려는 매우 능동적인 행동이다. 그런데도 이런 여러 가지의 제약을 받고 있는데 하물며 제일 수동적인 성격을 지닌 수면의 경우엔 오죽하겠는가.
따라서 여러 가지의 제약을 능숙하게 처리해 주지 않으면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수면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어릴 적 어머니 품에 안겨 잠들던 시기에 어머니의 품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100%의 만족도를 얻을 수 있다. 이윽고 자라서 어머니 품을 떠나더라도 원만한 가정의 어린이라면 누구나 어머니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항시 100%만족도의 수면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어쩌다 어머니가 입원하는 사태가 생겨 부재중이면 아무리 아버지가 같이 있어 주어도 100%의 만족한 수면을 얻을 수 없다.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수면의 만족도는 제로에 가까와질 정도이다. 하물며 양친이 원만치 않아 언쟁이나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친척끼리의 말다툼도 마찬가지이다. 즉, 이러한 시기부터 이미 사람마다 개인차가 형성되는 것이다.
아무리 평등을 표방해도 결국 개인은 개인이 될 수밖에 없다.
양친의 원만함, 친척끼리의 원만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진, 천둥, 화재, 홍수 등에 의한 체험의 차이, 전근에 의한 이사와 전학, 교내에서의 사건에 대한 느낌의 차이, 양친의 일상생활과 사고 방식 등, 여러가지의 소인이 성장과정에 영향을 미쳐 각기 개성이 다른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20세 전후가 되면 벌써 각양각색의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런 과정에서 관습, 동화 또는 습관성이라는 것이 배양되므로 인간은 그런 기본 요소들을 적당히 조절해 주지 않는한 수면의 만족도를 높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시골 출신의 청년은 시골로 돌아가면 수면의 100% 만족도를 되찾을 수 있다. 그곳에는 자기가 성장한 산이며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 출신이 아닌 도시 청년들은 어떤가? 대부분이 불안정으로 인해 만족한 수면을 취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것은 변화하는 환경 조건에 대해서 끊임없이 본능적 자기 방어 작용이 계속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시기까지는 순응성이 제때제때 작용해서 별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차츰 자의식 속에 생활 기준의 상실을 심어 주게 된다. 즉, 어떤 곳에서도 생활할 수 는 있어도 마음 속에 <안주하는 곳>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에서 말한 각자의 환경적인 불안요소들을 극복해나가야 만족한 수면을 취할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이책에서 말하는 4시간 수면의 실천 이상의 것은 없다고 본다.
수면부족을 없애는 숙면법
나는 <수면 부족>이라는 말은 중학교 시절부터 들어 오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로서는 한 번도 수면 부족이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른다. 40여 년을 나폴레옹 수면으로 살아 오고 있는 나로서는 <수면 부족>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이상하게만 생각된다.
나는 오히려 "당신은 수면 부족이 아니라 타면부족이 아닙니까?"하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아뭏든 내가 이렇게 말해 보았자 부질없는 일이니 이제부터 차근차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가장 적당한 값>에 차지 않으면 확실히 수면 부족이라는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적당한 값이란 과연 정해져 있는 것이며 또한 객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일까?
앞에서 예로 든 도표를 다시 한 번 보아 주기 바란다. (A)형이라도 3시간 이하의 수면을 취하면 논리적으로 말해서 명백히 <수면 부족>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단시간 수면이 습관화 되면 신체 속의 자율신경이 서로 원조할 수 있도록 작용하므로 어쩌다 2--3일의 철야를 했다고 해서 특별히 <수면부족>같은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자신 직접 체험해 온 바이니 믿어도 좋다.
평균적 일반인의 수면을 상징하는 예로서 도표의 (C)형을 들었는데, 이 경우도 어쩌다 5시간쯤 잤다고 해서 그렇게 수면 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양으로 말하면 충분한 수면의 약72%밖에 되지 않지만 이런 상태에서 <수면 부족>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신경 과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본디 인간의 신체라는 것은 항시 자율신경이 작용해서 환경에 순응시키도록 만들어져 있다.
짧은 가수면으로 심신이 상쾌하다.
잠이란 도시 어떤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잠자기란 크게 나누어 2개의 모습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정수면이라고 부르고 다른 하나는 역설수면법이라고 일컫는다. 정수면은 정통수면법, 또는 서파수면이라고도 한다.
정수면은 다음에 설명하는 4개의 단계로 구성돼 있다.
제 1 단계 = 졸음에 들어 가는 시기
잠들어서 2--3분간의 얕은 시기다. 졸리움을 느끼며 꾸벅꾸벅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자극을 조금 받게 되면 번쩍 정신이 드는 그런 상태다. 맥박은 깨어나 있을 때보다 좀더 늦고, 호흡도 낮으며 눈알의 움직임은 벽시계의 추처럼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고 있다.
제 2 단계 = 얕은 잠에 빠지는 시기
졸음에 들어 간 다음의 잠이다. 이것은 약 10분쯤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상태에 접어 들게 되면 작은 소리쯤은 깨닫지 못하고 새근거리게 된다. 대낮의 겉잠은 대게 이런 상태에서 눈을 뜨는 일이 흔하다. 그 때문에 저항감 없이 눈을 뜰 수가 있다.
제 3 단계 = 중간 정도의 수면시기
뇌파는 느슨해지고, 맥박도 한결 뜸해지며, 눈알도 움직이질 않는다. 밖에서 자극을 주어도 깨어나기 힘든 상태다. 보통 20--30분쯤 계속되는데, 1시간 이상 미칠 때도 있다.
제 4 단계 = 깊이 잠드는 시기
가장 깊은 잠에 드는 시기로서 뇌파는 제3단계보다도 더욱 완만하게 되고, 맥박은 1분간에 50--60쯤으로 떨어진다. 물론 안구는 움직이지 않으며 몸짓도 거의 없다. 동태처럼 뻗었다는 상태가 바로 이 시기의 모습이다.
근육도 축 늘어져 있고, 말을 걸거나 웬만큼 꼬집어도 깨어나지 않으며, 흔들어야 겨우 눈을 뜬다. 시간으로 쳐서 30--50분 가량이다. 수면의 주기 가운데 이 시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많다.
이 깊이 잠든 시기는 얼마 뒤, 엎치락뒤치락하는 몸의 움직임으로 중단되고 다음 상태로 넘어 간다.
이상이 정수면의 주기다. 누구든 예외 없이 이 주기에 따라 점차 깊은 잠에 빨려 든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10분 가량의 겉잠이 몸에 유익하다는 일이다. 왜냐하면 2--3분간의 졸음에 접어 드는 시기로 부터 10분 가량의 얕은 잠에 빠지는 시기에서 깨어나게 되면 정신이 사뿐하고 몸이 가뿐하기 때문이다.
"야아, 잠들었었군."
하고 느껴지는 잠시 동안의 눈붙임은 깨어나기가 무척 부드러우니까 눈뜨고난 뒤에도 얼마 동안 머리와 몸이 멍하고 나른한 법이 없다.
옛 사람들은 흔히 "낮잠은 1시간쯤으로 하라"고 말했는데 이것도 실은 사리에 맞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지금 말한 제1단계에서 제4단계까지의 정수면 리듬에 덧붙여, 지금으로부터 설명하려는 역설수면법까지가 바로 1시간 전후로서 끝나기 때문이다.
만약, 2시간 동안의 낮잠을 잤다면 어떨까. 1회째의 주기를 마치고 두번째의 제3단계(중간정도의 수면시기)에 접어든 무렵에서 눈을 뜨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지간히 일어나기에 걸맞지 못한 상태이므로 눈을 떠도 몸이 나른하게 무겁고 홀가분하지 못하다.
1시간의 낮잠이라면 대개는 깊은 잠에 든 시기의 한복판에서 눈을 뜨게 되는 셈이다. 깊은 잠을 맛본 직후이므로 눈이 번쩍 뜨이고 피로가 기분좋게 가셨다는 실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긴 이런 경우 눈을 떴다는 것은 깊은 잠의 직후이므로 10분쯤의 겉잠만큼 당장 정신이 가뿐이 드는 것은 아니다. 일어나서 몇분 동안은 나른한 느낌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잠자는 중에도 뇌는 눈떠 있다
잠의 주기에는 정수면의 제4단계(깊은 잠)뒤에 시간으로 쳐서 약 20분 가량 또하나의 전혀 다른 형태가 이어진다. 이것은 제1단계의 졸음에 접어 드는 시기와 비슷하긴 한데, 뇌의 잠은 얕지만 몸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불가사의한 수면 형태다. 이것을 역설수면이라고 일컫는다.
왜 <역설>이라는 것인가. 그것은 뇌파가 겉잠이 들 때처럼 분명 얕은 잠에 들어 있는 데도, 근육은 극도로 늘어져 있어 웬만큼 외적 자극을 주어도 눈이 뜨이지 않을 정도로 푹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수면은 파라독스수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역설수면은 램수면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것은 래피드아이 무브먼트(급속 안구운동)를 생략한 표현이다. 그것은 역설수면이 정수면과 구별되는 최대의 특징이 수면중에 눈알을 마치 깨어나 있을 때처럼 두리번두리번 굴리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 안구의 움직임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대뇌생리학의 권위, 클레이트만 박사였다. 그는 우유를 먹고 다시 잠든 갓난아기를 찬찬히 관찰하고 있던 중에 그 귀여운 눈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눈여기게 됐다.
박사는 졸음에 접어 드는 시기(제1단계)에 눈알이 움직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갓난 아기의 움직임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일어나 있을 때처럼 무엇인가를 쫓고 있는 듯한 눈굴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른을 실험대상자로해서 살폈다. 자고 있다가 안구운동이 시작되면 당장 실험대상자를 흔들어 깨우기로 미리 약속 돼 있었다. 그 결과 역설수면에 들어 가기 시작하면 꿈을 꾼다는 것을 알아 냈다. 또 눈알의 움직임에 따라 맥박도 늘어나고 호흡도 불규칙적으로 흐트러져 있다는 것도 알아 냈다.
헌데, 이 역설수면은 반드시 매일 밤마다 어느 누구에게나 정수면 다음에 찾아 든다. 그리고는 다시 정면법으로 되돌아 간다. 즉, 사람은 누구나 매일 밤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꿈 따위는 좀처럼 꾸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것은 꿈꾸지 않은 것이 아니라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잊어 버린 것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꿈의 메카니즘으로 설명한다면 대뇌가 완전히 잠자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수면일 적에는 대뇌가 잠들어 있었으나 역설수면이 한창일 때, 몸은 것의 완전히 늘어진 상태이고 잠도 참으로 깊이 들어 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정수면은 대뇌의 잠이고 역설수면은 몸의 잠이다."
라고 전문가는 말하고 있다.
이렇게 좀 야릇한 수면형태는 전수면시간 가운데서 얼마만큼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여느 사람들의 평균수면시간(7--8시간)으로 셈해보았더니, 1시간 반에서 2시간을 역설수면이 차지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 뜻으로 말한다면, 벌렁 누워서 눈감고 아침까지 계속 푹 깊은 잠에 들곤 한다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역설수면은 인간 뿐 아니라 모든 포유동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개나 고양이는 갓 났을 무렵은 역설수면만으로 잔다고 한다. 사람도 갓난아기는 생후 6개월쯤까지는 역설수면이 전수면시간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 날에는 벌써 5시간 수면에 대응 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도표에서 말하는 세 종류의 휴식이 각각의 시간대를 조금이라도 일치시키려는 것은 물론 각각의 깊이 또한 깊게 하려는 이면작전을 전개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수면 부족>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다소 머리가 멍해지거나 신체가 나른하다는 현상은 느껴질지 모른다.
그렇지만 일이 한창 바쁠 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일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며 일을 팽개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볼 때 <수면 부족>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치병에 지나지 않으며 마음 가지기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쟁 중 도쿄나 오사까의 근교는 연일 B29의 공습을 받았다.
또 어떤 곳에서는 새벽에 함재기의 기총 소사도 받았다. 따라서 제대로 잠자리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고작 2--3시간 이었다. 이러한 상태는 매일 계속되었으며 2--3시간 잘 수 있는 것도 집이 타지 않고 남아 있을 동안의 일이었다. 그래도 어느 한 사람 <수면 부족>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었다. 요컨대 산다는 것에 몰두했기 때문에 환경에의 순응이 잘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수면 부족>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자의식에 의해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수면 부족이란 결국,
수면은 시간에 의해서만 규정된다고 의식하며 <그 시간 이하로는 안된다>고 믿는 사람
사회생활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 사람
자신만 고생할 필요는 없다. 주위 사람들과 똑같이 해 가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만이 오는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을 읽고 하루 4시간 수면의 생활을 소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결국 수면 부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4. 잘못된 수면 상식
평균적 일반인의 수면에서 벗어나라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평균적 일반인들은 매스콤이 주장하는 수면 상식을 무조건 <진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또 그렇게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매스콤도 잘못된 진리를 강요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런 잘못된 진리를 절대적인 것처럼 믿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특히 젊은 층이 많은데, 요즘의 젊은이들은 고지식하게 무슨 일이건 믿어 버리는 경향이 많다. 그것도 자신에게 안이한 길은 특히 잘 따르는 것이다. 자기 연마를 하는 것은 역시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가는 한 평생 아무일도 하지 못하는 낙오자가 되고 만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하루 4시간 수면을 실천하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뭔가 이룩하는 인간이 되려 한다면 최소한 이런 평균적인 일반인에서 벗어나 부단히 자기 연마를 해 주기 바란다.
물론 하루 4시간 수면에 신체가 완전히 익숙해지기까지에는 대체로 3년은 필요하며 그 동안은 어느 정도의 괴로움도 따를 것이다.
그렇지만 평균적인 일반인들이 <비>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3년간에 걸쳐 자신의 신체를 완전히 개조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고통은 당연히 따르는 것으로서 평범한 생각으로는 해내지 못한다.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수면에 관련된 몇몇 <잘못된 상식>을 소개해 보겠다.
(1) "하루 8시간을 자지 않으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거짓말
이것은 명백히 거짓말이다. 이미 이 책의 서두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 거듭 설명하는 것은 피하기로 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수면 부족이다"라고 하는 자기 암시에 걸리는 것을 피해야 한다.
(2) "배부르면 수면이 잘 된다"는 것은 거짓말
이것도 거짓말이다. 좀 어려운 내용을 지니고 있지만 알기 쉽게 설명해 보기로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항상 산다는 것 즉, 먹이를 찾는 것에 신경도 근육도 긴장 상태에 있다. 따라서 배부름을 의식한 순간 신경도 근육도 긴장감에서 해방되고 이완해 버린다.
즉, 휴식의 상태로 들어가 버린다. 그래서 졸음이 오는 것이다.
그러나 배부름의 상태가 되면 소화기계는 풀가동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신체의 각 부위로 보내지고 있던 혈액은 필요 최소한까지 억제되고 나머지 혈액은 모조리 소화기계에 집중된다.
그리하여 뇌도 근육도 이완된 결과 일종의 졸음이 오게 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배부름은 수면(휴식)이 잘 되게 해주는 것같지만 사실은 소화기계를 포함한 자율신경계는 풀가동이 한창이며, 따라서 휴식을 취할 겨를이 없다. 즉, 완전한 수면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폴레옹 수면에 뜻을 둔 이래 잠들 무렵에는 반드시 공복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도 밤 9시 이후에는 고형물은 일체 입에 대지 않는다. 가령 아침부터 한 끼니도 먹고 있지 않은 날이라도 소화 흡수가 빠른 맥주나 엽차를(커피나 우유는 포함 된지 않는다)입에 댈 정도이다.
여기서 오해가 있어서는 안되므로 한 마디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내가 수면이라도 하는 것은 <깊은 잠>을 말하는 것으로서 얕은 잠, 또는 가수면이라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자면 수면으로 간주하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누워 있어도 신경이 긴장하고 있거나 자율신경이 풀가동에 한창이면 실질적으로는 깨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부름의 경우에 잠이 잘오는 것은 혈액의 분포가 크게 바뀌어서 졸음을 유발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면이나 일을 정상으로 계속하려면 혈액의 분포를 크게 바꾸지 않는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즉, 식사는 필요 최소한으로 참아야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소, 필요최소한 양의 식사는 일이나 <깊은 잠>과 큰 인과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하루 4시간 수면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3) "숙면은 폭신한 침구에서"라는 것은 거짓말
요즘 들어 곧 잘 쓰이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나의 체험으로는 어쩐지 숙면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몇 번이나 외국 여행을 했지만 그때마다 호텔에서 괴로움을 겪었다. 쿠션이 좋고 호화스러운 매트와 폭신한 베개가 갖춰져 있어 마치 자신이 큰 부자나 된 것같은 기분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옛부터 잠자리가 바뀌면 잠들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나는 값싼 여관에 묵으면 잠을 잘 잘수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여행을 하면 나는 눕자마자 1분도 되기 전에 코를 곤다. 그래서 다음 날 일찍 학생들을 깨우면 이구동성으로 불평을 듣게 되기는 하지만, 너무나도 빠른 잠들기와 커다란 코골기 때문이다. 즉, 학생들과 함께 묵을 수 있는 정도의 보통 여관이면 잠자리가 바뀌어도 나에게는 전혀 지장이 없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 보자. 예를 들어 마룻방에서 잤다고 하자. 판자에 접촉하는 부분은 체중이 얹히므로 압박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세를 조금만 바꾸면 압박되는 부분은 이동한다.
즉, 자면서 몸을 뒤치는 것으로서 신체의 모든 부분은 돌아가며 해방된 시간을 맛보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폭신한 이부자리에 누웠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폭신하다는 것은 신체의 면적을 감싸서 체중이 얹히는 것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지니게 된다. 그것은 아무리 자세를 바구어도 신체의 부위가 압박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상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가장 나쁜 것은 폭신한 베개이다. 아무리 자세를 바꾸어도 경동맥을 압박 당해서 뇌가 쉬지 못한다. 어떤 학자들은 흔히 두꺼운 책을 베개삼아 가수면을 한다는데 과연 머리를 쉬게 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삼아 내 베개를 소개하기로 한다. 겨울철은 보통의 메밀껍질이 들어 있는 베개지만 여름철이 되면 등나무로 엮은 것을 사용하고 있다. 단단한 데다 머리의 냉각 효과가 좋아 실로 기분좋게 숙면할 수가 있다.
이상의 세 가지 예에서 알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른바 상식이라는 것이 반드시 진실과 결부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상식에 끌려다니는한 하루 4시간 수면을 실천할 수는 없다. 즉, "하루 4시간 수면을 뜻한다면 잘못된 수면 상식은 버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ff
제7장 4시간 수면은 이렇게 한다
1. 보다 짧고, 보다 깊은 수면법
뇌의 피로가 졸음을 유발한다
4시간 수면을 행하면 평균적 일반인들보다 깨어 있는 시간이 4시간이나 더 많아진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만이 아니다. 평균적 일반인들이 휴식하고 있는 시간 속에 끼어들어 4시간이나 더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평균적 일반인이 8시간 자고 16시간 깨어 있다는 것은 1시간의 수면으로 2시간 활동할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것에 불과하지만, 4시간 수면에서는 1시간 수면으로 5시간 활동할 수 있도록, 3시간 수면에서는 1시간 수면으로 7시간 활동할 수 있도록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깨어 있는 시간을 늘리려면 수면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이미 수면의 패턴에 대해서는 도표로 설명을 했다. 그리고 4시간 수면을 실행하려면 (C)형에서 (A)형으로의 전환이 필연적인 수단이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했을 줄로 안다.
그러므로 수면 시간을 단축하려면 두 가지 면에서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는 깊은 수면을 취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두뇌, 육체, 자율신경의 휴식 시간대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스포츠를 해서 근육을 움직이건 공부를 해서 머리를 쓰건 형태는 다르지만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자율신경은 소비된 에너지에 대응하는 보급을 하고자 필사적인 활동을 지속하게된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에 주의해 주기 바란다.
예를 들어 럭비처럼 격렬한 스포츠를 했다고 하자. 체내의 산소 보급을 충족시키려고 숨이 가빠지고 게임이 끝날 무렵에는 서있을 수조차 없게 된다. 게임이 끝나면 한숨 돌리기는 하지만 갈증이 나고 무엇이건 먹고 싶어진다. 그러나 졸음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와는 반대로 밤을 새워 마작을 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근육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는 데도 굉장한 피로를 느낀다. 잠시 눕기만 해도 이내 잠들어 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럭비를 한 경우와 밤새워 마작을 한 경우 사이에는 극단적인 차이점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격렬한 스포츠를 하면 그만큼 에너지의 소비가 많다. 따라서 그에 대응하는 분 만큼의 영양을 필요로 하게 된다.
당연히 자율신경은 소비에너지에 대한 보충은 물론 전반적인 신체의 균형을 고려해서 활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스포츠가 끝나면 갈증을 느끼고 공복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이 만족되고 안정된 상태로 진정되기까지는 졸음을 느끼게 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 마작의 경우는 어떠한가. 몸은 앉은 채이다. 패를 다루는 것도 그렇게 심한 동작은 아니다. 그것도 단순한 반복작업에 불과하다. 즉, 의외로 근육에너지의 소비는 적은 것이다. 따라서 자율신경도 반쯤은 졸고 있어도 된다. 동작은 별다른 것이 없고 똑같은 일의 반복이기 때문에 근육도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뇌의 피로가 최우선이 된다. 끝났을 때 신체의 피로를 느끼는 것은 뇌로부터 휴식을 요구받는 데서 오는 자율신경의 작용이지 근육의 피로에서 오는 휴식의 피로는 아니다. 왜냐하면 근육 자체는 심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뇌, 좌뇌를 교대로 쉬게 하라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수면이란 휴식이며 다음 날의 활동에 대비한 태세의 재정비이다.
그리고 두뇌, 육체, 자율신경의 3가지가 저마다의 입장에서 각각의 정도에 따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각각에 따라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반적으로 샐러리맨이나 수험생은 가벼운 스포츠는 해도 심한 스포츠를 하는 것은 드물다. 그러므로 이들은 철야 마작형의 에너지 소비 패턴이다.
따라서 폭음포식을 하지 않으면 자율신경이 분담하는 작업량도 작아지게 된다. 하물며 검소, 필요최소한 양의 식사를 실행하면 더욱 편해진다. 실제로 휴식을 필요로 하는 것은 두뇌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두뇌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요즘 갑자기 도처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에 좌뇌인간이니 우뇌판단이니 하는 말이 있다. 즉, 인간의 뇌는 오른쪽과 왼쪽이 분담하는 작업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좌뇌는 논리성을, 우뇌는 정서성, 종합성을 관장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 같은 두뇌활동일지라도 일의 내용에 따라 피로해지는 부분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좌우의 두뇌를 평등하게 사용하여 좌우뇌의 피로가 동등하게 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학공부로 좌뇌를 혹사했다고 하자. 좌뇌는 풀가동하고 있는 것이지만 우뇌는 그 사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 지나서 좌뇌가 지치면 이번에는 어학이나 음악 등 우뇌를 활동시키는 일로 대체시켜 좌뇌를 해방시켜 준다.
이렇게 하면 외면상으로는 쉴새 없이 두뇌를 계속 활동시키는 식이 되지만 실은 반씩 적당히 쉬게 한 결과가 된다. 이처럼 좌뇌와 우뇌를 번갈아가며 능숙하게 사용하면 극히 적은 시간으로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1947년에서 1952년까지 학위논문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물론 나폴레옹 수면의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바이올린을 켰다. 1951년 1월부터는 교양악단의 멤버가 되어 연습도 거의 쉬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 생각해 보니 좌뇌와 우뇌의 적절한 사용 덕분이었던 것이다.
신체에 맞는 시간표
한 사람의 인간을 볼때 겉에서만 보면 마치 수퍼맨처럼 보일적이 있다. 기술사가 좋은 예이다.
그러나 그들은 요령있게 필연성을 이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4시간 수면이건 나폴레옹 수면이건 모두 마찬가지이다. 만일 합리적이 아니라면 멀지 않아 무너지고 말 것이다.
자신의 신체를,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그러한 합리성 위에 조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패턴의 고정화라는 것이다.
우뇌가 무엇을 관장하고 좌뇌가 무엇을 관장하느냐 하는 것은 최근 여러 종류의 책이 나와 있으니 자세한 것은 그것을 이용해 주기 바란다. 요컨대 깨어 있는 20시간 동안에 우뇌를 사용하는 시간대, 좌뇌를 사용하는 시간대 또는 근육을 사용하는 시간대를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를 생각하여 신체의 모든 부분이 똑같은 조건으로 피로하도록 시간표를 작성하는 것이 선결문제이다.
인간의 신체는 물론 환경조건에 어느 정도의 순응성은 지니고 있지만 변화의 방식이 급격하고 무리한 내용이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건강을 해치거나 작심 3일로 끝나게 된다.
이 점을 잘 이해해 두지 않으면 4시간 수면은 출발점에서부터 좌절하게 된다. 아예 4시간 수면 자체가 큰 부담이 되는 것이다.
시간표를 작성한다는 것은 그러한 부담을 줄이고 4시간 수면을 실천하는데 있어서의 저항을 제거해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시간표의 실천을 괴로와 한다면 말도 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보다 짧고, 보다 깊은 수면을 쟁취하는 비결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간에 따른 수면법
젊은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전쟁 중의 수면은 놀라운 것이었다. 언제 공습이 있을지도 모르고 더우기 이부자리에서 잘 수 있는 것은 집이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동안 뿐이었으니까.
나폴레옹은 말 잔등에서도 잤다고 한다. 인간은 극도의 긴박상태에 몰리면 때와 장소에 전혀 관계없이 깊이 잠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죽어 버리거나 발광해 버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훌륭한 사람들 중에는 회의 석상에서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불과 3--5분 동안이지만 타인의 설명이나 경과보고 때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끝날 무렵이면 눈을 번쩍 뜬다. 그래도 제법 이야기의 내용을 포착하는 것이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졸고 있는 것은 쉴새없이 머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오는 피로에 대한 휴식일 따름이다. 본래 큰 인물이란 그런 사람인 것이다.
의사록을 적는 것도 아니면서 쉴새없이 메모를 하는 사람중에 출세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 보자. 4시간 수면을 실행 한다는 것은 이부자리 속에서 정신없이 잠드는 시간이 4시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3분이나 5분의 토막시간을 이용하여 적당히 존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으며, 그것으로 머리가 맑아진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
물론 젊은 나이로 근무시간에 코를 고는 것은 생각해 볼 만한 일이지만.
어쨌든 이러한 3분이나 5분의 토막시간에 코를 골 수 있다면 훌륭한 일이다. 다만 적당한 시간에 즉시 잠에서 깰수 있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곤란하다.
그러면 3--5분 쯤 잠시잠시 틈을 내어 잘 수 있는 토막시간은 구체적으로 어떤시간이 있을까?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적어 보기로 한다.
, 전차를 기다리는 동안 벤치 위에서
러시아워를 제외하고는 전차의 운행 회수가 뜸해진다. 따라서 때로는 5분이나 10분쯤 잠들 수가 있을 것이다. 다만 시간에 맞춰 잠에서 깨지 않으면 물건을 잊기 쉬우니 주의를 요한다.
, 혼잡한 전차 안에서 좌석에 앉았을 때
전차도 혼잡할 때는 책을 펴볼 수조차 없다. 이런 때 3--5분쯤 잠드는 것은 정말 기분좋은 법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거나 물건을 잊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통근차 안에서는 절대로 잠을 자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습관화되어 생활의 패턴 속에 들어 와서 고정화 되기 때문이다.
, 다방에서 기다릴 때
적어도 4시간 수면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타인의 시간도 아껴줄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최근에는 교통사정이 매우 복잡해져서 넉넉하게 여유를 갖고 출발하지 않으면 약속시간에 늦어 상대의 시간을 낭비케 할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약속시간 보다 10--20분 더 먼저 도착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그런 경우에는 10분 정도는 충분히 잠들 수 있다.
, 기업을 방문했을 때 응접실에서
나와 같은 식의 생활을 하고 있으면 대개 약속 보다 일찍 당도할 적이 많다. 그럴 경우 응접실로 안내되면 여사원에게, "약속은 XX시 00분입니다. 일찍 도착한 것은 내 사정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고 곧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무례하다면 무례한 일이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만큼 상대방은 오히려 기뻐하는 것이 아닐까.
, 실험이나 작업하기 전
실험이나 작업이 있을 경우 현지로 출장나가는 일이 많다. 그러나 모든 기재가 갖추어지고 전원이 다 모이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이럴 경우 겨울철이면 모르지만 따뜻한 때이면 어디서든지 잠들 수 있다. 이런 때야말로 3분이나 5분이 아니라 30분도 잠들 수 있다. 따라서 극단적인 경우에는 미리 그것을 수면 시간에 산입해 두어 잠자리의 수면시간을 줄일 적도 있다.
, 자가용차로 안내를 받을 때
자가용차로 안내를 받을 때 운전사에게 말을 거는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 못된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나는 잠을 자기로 한다.
그러는 편이 상대방도 운전하기가 편해지고 또는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적당한 속도로 달려주기 때문에 사고가 날 염려도 없게 된다.
마음먹은 시간에 잠을 깰 수 있다.
이러한 가수면을 하려면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그저 졸음이 오니 자는 것이라면 제때에 잠에서 깨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번씩 반복하는 얘기지만 잠든다는 것은 다음 활동에 대비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때에 눈을 뜨지 못해 활동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곤란하다. 물론 제때에 눈을 뜬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므로 3년간은 훈련이 필요하다.
인간이란 여러번 반복하면 자연히 전혀 이종의 의식이 형성되어지기 마련이다. 언제 어디서건 3분이나 5분의 가수면을 할 수 있으러변 바로 이러한 이종의 의식이 확립되어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의식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 것인지 또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며, 또 그 정확성이야말로 놀라울 정도여서 나자신 놀라고 있다. 역시 훈련의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삼아 실화를 하나 소개하기로 한다.
어느 여름방학에 나는 희망 학생들을 거느리고 산 속으로 수력발전소 견학을 떠났다. 학생들은 이런 단체여향을 좋아하는 모양인지 모두들 즐거워했다.
저녁식사에는 술과 맥주도 나오게 되었다. 각자 부담이지만 파티가 벌어진 것이다. 9시무렵에 그것도 끝이 나고 자유시간이 되었다. 학생들 대부분이 마작을 좋아해서 나에게도 도전장이 날아들었다.
"내일 아침 4시"라고 선언을 해 둔 후 마침내 마작이 시작되었다. 2시가 지나도 학생들은 그만 두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2시 반이 되어서야 나는 그만 두고 화장실을 들러 방에 돌아왔다. 한 학생이 잠자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곧장 깊은 잠에 빠졌다.
우연히 마작을 하지 않은 학생이 3시 40분경 화장실에 가려고 잠을 깼다.
"그렇지!"
그는 재빨리 몸차림을 갖추고 나의 베갯머리에 앉았다. 그 때가 4시 3분전, 나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잠시후 그는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5, 4, 3, 2, 1, 0"
그 순간 나는 정확히 일어나 앉았다. 당사자인 그 학생은 멍청히 앉아 있기만 했다.
나에게는 이런 종류의 체험이 제법 많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인지 나로서도 알 길이 없다.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수면이 나의 나폴레옹 수면을 지탱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4시간 수면을 뜻하는 사람들도 역시 이런 가수면을 할 수 있도록 되지 않으면 몸에 밴 4시간 수면의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말할 것도 없이 훈련이 필요하다. 4시간 수면의 생활은 단순히 생각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수행>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2. 게으른 잠을 일소하는 4가지 방법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중요하다
옛부터 "타면은 탐한다"는 말이 있다. 그려면 도대체 타면 즉, 게으름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해 4시간 수면을 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4시간 이상의 수면은 모두 타면이다. 앞에서도 그림으로 제시한 바와 같이 (C)형의 수면에서 보면 8시간 이상의 수면이 타면이다.
구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C)형일지라도 어떤 연구나 노력을 하면 수면시간을 8시간 이하로 줄일 수 있다. 그러므로 타면은 현상에 안이해 있거나 또는 그릇된 상식에 안주하고 있는 데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타면이란 간단한 말 같지만 그 내용을 파고들면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다. 깨어나면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지 막연한 경우라면 구태여 서둘러서 깨어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막연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더라도 구체적인 뚜렷한 목표가 없으면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잠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시간이 모자라서 안타까웠고, 그리하여 생각해낸것이 나폴레옹 수면이었다. 즉,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타면 퇴치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4시간 수면을 뜻한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절실하게 시간이 필요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설명을 진행하기로 한다.
그렇게 되면 타면 자체가 좀더 뚜렷해진다. 이런 관념을 전제로 하여 그 일소법을 소개해 보자.
(1)가령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났어도 마찬가지이다. 내친김에 세면까지 끝내 버리면 정신이 들게 마련이다.
의사들에 의하면 새벽잠은 얕고 꿈도 많다고 하는데, 그말은 다시말해 수면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는 '나폴레옹 수면'에서 3시간 정도 숙면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잠이 깨게 된다고 적었는데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좀처럼 이부자리를 빠져나올 수 없어서..." 하고 서신을 받았다.
즉, 3시간 숙면을 하고 나면 저절로 잠이 깬다는 것은 비단 나에게만 가능한것이 아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에게도 통용되는 생리적인 현상이 아니겠는가.
추운 겨울날 아침 늦게까지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을 즐긴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이것은 명백히 일종의 타면이다. 따라서 타면을 일소하자면 아무래도 과감히 이불속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소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방법 외에는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만일 어느날 이불을 박차고 일찍 일어났다고 하자. 평상시보다 수면 시간이 적어졌으므로 그 부담은 하루의 어느 때인가 나타나게 된다.그렇다고 해서 그부담을 견디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참고 밀어붙이지 않으면 자율신경이 순응해 주지 않는다. 부담을 견디지 못하면 결국 일찍 일어나는 것은 단 하루로 그치고 만다.
즉,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체를 단련해 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타면을 정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3년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 잠잘 때 외에는 눕지 말 것
앞에서도 <숙면의 정도>라는 것에 대해 언급했지만, 수면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잠드냐 하는 것이다. 잠드는 방법이 좋지 않으면 숙면을 엄두도 낼 수 없다. 이불 속에 들어가서 언제까지나 몸을 뒤척이고만 있다면 그것은 바로 타면의 요인이 된다.
빨리 잠드는 방법으로서 수면제, 최면술 등이 있는 모양이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술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든 신경을 긴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작용을 한다. 신경이 긴장된 상태에서는 잠을 들 수 없기 때문이다. 긴장해 있다는 것은 신체의 조직이 아직 수면에 들어갈 상태에 있지 않다는 걸 말한다.
역시 숙면을 원한다면 신체의 조직이 수면에 들어가기 쉬운 상태가 되도록 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중요하게 부각되어지는 것이 평소의 생활이다. 평소의 생활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습관이 되어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습관을 잘 이용하고 더 나아가 습관을 고치도록 힘써야 한다.
인간은 수면에 들어갈 때 대체로 몸을 옆으로 눕힌다. 말은 선채로 잠든다고 하는데 인간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떻든 인간은 잠잘 때 이외는 눕지 않는다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흔히 배를 깔고 주간지나 신문 등을 읽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런 짓을 하면서 4시간 수면을 하려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틈만 있으면 잠자게 되어 도저히 4시간 수면을 할수 없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잠자리에서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이것 또한 찬성할 수 없다. 그것은 필요 이상으로 시신경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신경은 오감중에서 가장 만감하며 뇌에 대한 자극도 강하여 뇌가 받는 부담이 매우 크다. 그러므로 조명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시신경을 혹사한다는 것은 피로를 증가시킬 뿐이다. 비록 잠드는 데에 좋다고 할 망정 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눕기만 하면 잠이 드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다른 짓은 일체 할 수도 없거니와 하려고도 않는다.
(3) 공복의 상태로 잠자리에 들 것
흔히 공복 상태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람이 있다. 또 배부르면 잠이 잘 온다는 사람도 있다.
배부름과 졸음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공복과 졸음에 대해서 설명하기로 한다.
확실히 들짐승들은 공복일 때는 필사적으로 먹이를 쫓고 배부르면 누워서 잔다. 동물로서의 인간을 생각한다면 인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4시간 수면의 실행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인간은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음식을 먹으면 들어가고 위는 소화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장으로 옮겨져서 흡수된다.
이 동안의 활동을 진행하고 제어하는 것은 자율신경이다. 근육이나 두뇌는 휴식을 취해도 자율신경은 전혀 쉴 수가 없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으므로 이해했을 줄로 믿는다.
4시간 수면은 3종류의 휴식을 동일 시간대로 맟춰 주지 않으면 도저히 실현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인간은 동물의 경우와는 달리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음식물만 있다면 즉,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상태에 있기만 하다면 먹는 것에 대한 불안은 없어진다. 따라서 잠자리에 굳이 그것을 위 속으로 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밤 9시 이후에는 일체 음식물을 입에 대지 않는다. 따라서 잠자리에 들 때는 언제나 뱃속이 비어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빨리 잠든다. 한번 속은 셈치고 시험해 보기 바란다. 그러면 틀림없이 빨리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생활은 어떤 것이든 습관성을 지니고 있다. 공복으로는 잠들 수 없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 암시에서 오는 관념론이지 실제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릇된 습관은 하루라도 빨리 없애는 것이 좋다.
(4)취하는 것도 때로는 방편이 된다
앞에서 다소의 술은 잠드는 데 좋다고 했는데, 때로는 술에 취하는 것도 방편이 된다. 특히 신경질적인 사람, 신경을 많이 쓰고난 사람 등은 일종의 흥분상태가 장시간 계속되어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는 때가 많다. 이런 때에 권하고 싶은 것이 술이다.
그런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술만을 마셔야지 안주나 기타 어떤 음식물도 먹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음식물을 먹는다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갗이 자율신경을 혹사하게 되어 숙면에는 전혀 도음이 되지 않는다.
알콜 성분은 매우 흡수가 잘 된다. 따라서 소화흡수에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자율신경에 주는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안주 없이 마시는 술이니 만큼 도수가 높은 증류수는 삼가하고 발효주를 택하는 것이 좋다. 오로지 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찬성할수 없다.
취하면 근육도 두뇌도 해방된다. 알콜은 꼭 필요한 것이 물이다. 술이 깰때의 물맛이 좋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어떻든 간에 술취해서 잠이 들면 갈증과 소변 때문에 의외로 단시간 수면으로 잠이 깬다. 중요한 것은 이때 즉시 일어나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잠을 자게 된다. 그렇게 되면 주객이 전도되는 셈이다.
흔히들 슥취를 염려한다. 그러나 역시 잠재하는 일종의 자기 암시와 습관성을 불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3. 불면증은 이렇게 고쳐라
잠들지 못하는 것은 사치병이다.
<불면증>이라는 말은 자주 들어 오지만 나로서는 그러한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다. 따라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이 말을 듣는다면 엉터리같은 소리라고 일소에 붙일지 모른다.
그럼 불면증이라는 괴로운 현실을 극복하고 싶으면 속은 셈치고 내 말대로 한 번 시험해 보길 바란다.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불면증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1)신경이 흥분해서 잠들 수 없는 형
걱정이 있어도 신경이 진정되지 않지만, 여행의 전날 밤처럼 큰기대가 눈잎에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수동적인 경우는 기대하는 것이 없는 만큼 괴로움도 남다르다. 하지만 괴로워해도 그것은 모두가 허사일 뿐이다.
20원은 어디까지나 10원이지 10만원이 되지는 않는다. 10만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괴고워하는 것은 때늦은 것이다. 10원을 10만원으로 바꾸는 연구와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4시간 수면의 생활이란 보통사람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거니와, 또한 평균적 일반인에 비해 약 3배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실현되지 않았다 해서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고 단지 계산이 빗나간 것일 뿐이니 체념하기도 쉬워지고 또한 체념하는데 구애 받을 것도 없다.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에 맡긴다는 심정일 뿐이다.
4시간 수면의 생활을 시작하면 쉴새없이 수마가 엄습해 온다. 그러므로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쉴새없이 머리도 쓰고, 신체도 움직여야 한다. 머리 속에서 망설이거나 생각만으로 괴로워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는 이미 완전히 지쳐서 내일을 걱정할만한 체력이나 기력의 여유같은 것은 전혀 없다. 따라서, 4시간 수면의 실행자는 자연 <불면증>같은 현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더 알기 쉽게 직선적으로 말하면 몸과 마음이 다같이 지친만큼 진지한 생활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해 수면과잉의 생활을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일종의 사치병 즉, 불면증인것이다.
"잠이 올때까지 깨어서 일하라"
내가 이렇게 말하면 "몸을 망친 다음 후회해 보았자 소용없지 않은가!"하고 반발한다. 그러나 후회하고, 안하는 문제가 그렇게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 평생 "걱정하기보다 낳는 것이 쉽다"는 말의 의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4시간 수면의 생활을 하면 잠자리에 들 때 "나는 오늘 힘껏 일했다!"는 만족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신경이 안정된 편안한 수면을 할수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매일매일을 만족감 속에서 보내게 된다. 불안도 없고 동요도 없다. 이렇게 될 때 진2정으로 내일의 생활이 기대되는 것은 아니겠는가.
(2) 과로로 인해 잠들 수 없는 형
나는 경험한 바이지만 심한 운동을 하면 신체의 마디마디가 쑤시어 좀처럼 잠들 수 없는 적이 있다.
이것은 체내에 만들어진 배설물을 제거함과 동시에 영양분을 보내어 다음 활동에 대비하려는 자율신경의 작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러한 작용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혈관이 넓어지고 혈압은 상승하며 맥박도 빨라진다. 또한 약간의 열이 발생할 적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알아 두어야 할것은 이런 현상은 회복되기까지의 극히 일시적인 현상으로서 매일 밤마다 엄습해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이런 종유의 과로가 연일 계속돼도 신체에 면역이 생겨서 괴로움의 정도는 경감되는 것이니, 과로 때문에 불면증이 되었다는 말은 거의 들은 적이 없다.
(3)자율신경의 활동 때문에 잠들 수 없는 형
꾸벅꾸벅 졸거나 잠깐 잠든다는 말로 표현되는 잠이 있다. 이럴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것은 오체도 신경도 잠들어 있지만 숙면이라는 상태에까지는 이르지 않은 것이다. 이런 현상는 제법 잠든것 같이 보일 때에도 생기는 것이다. 잔걸까 하고 생각하면 벌써 잠에서 깨게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새벽녘까지 몇 번씩 반복된다. 따라서, 만족감이 따르지 않는다.
"어제는 잠 부족이었어. 이러다가는 불면증이 되고 말꺼야"라는 자기 관념이 더욱 더 불면증으로 몰아가게 된다.
이런 종류의 좋지 못한 잠들기는 4시간 수면을 하고 있어도 가끔 생기는 법이다. 예를 들어,
, 자기 전에 소화가 잘안되는 음식물을 먹었을 때
, 맥주를 많이 마셔 소변의 배설기구가 풀가동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 자기 전에 따뜻한 온천 등에 들어 갔기 때문에 정상 이상으로 자율신경계의 흥분상태가 지속되고 있을 때
등의 경우이다. 어떻든 자율신경도 휴식시키지 않으면 수면이라 할 수가 있다.
이제 야간에 먹는 음식의 해로움도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두뇌, 육체, 자율신경이라는 3인자가 동시에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이상적인 수면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자율신경은 직접 "아프다"거나 "지쳤다"는 의사 표시는 전혀 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저 묵묵히 일만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만큼 신경을 써 주지 않느면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자율신경의 밸런스가 극단적으로 무너져 복원력을 잃었을 때 인간은 병이라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기까지의 중간 과정으로서 잠들기가 힘들거나 잠을 깨어도 부족한 느낌이 남거나 하는 일종의 중간적 증상을 나타내는 법이다. 물론, 불면증도 그러한 증세의 하나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태일 때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긴요하다. 특히, 여기서 취급하고 있는 자율신경계의 실조로 인한 불면증일 경우는 곧 뒤에 <병>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니 더욱 주의하기 바란다.
어떻든간에 자율신경을 쉬게 하기 위해서는 호흡기계, 순환기계, 소화기계 또는 그밖에 계통이 긴장이나 흥분에서 해방되도록 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호흡기계는 산소의 충분한 공급 즉,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도록 완전한 공복상태가 되게 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종류의 불면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상과 같이 치밀하게 신경을 쓰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신체의 병으로 인해 잠들지 못하는 형
(3)의 경우가 더욱 심해지면 병이 된다. 머리가 쑤시거나 배가 아프거나 또는 가슴이 답답한 것이 원인이 되어 잠들 수 없는 형이다.
물론, 이가 쑤시거나 골절한 자리가 아픈 것처럼 원인이 확실한것은 별도의 대처방안이 있으니 너무 걱정할 것이 없다. 문제는 역시 자율신경의 언밸런스, 피로 또는 실조에서 오는 병인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병이기 때문에 자율신경의 회복이 이뤄지지않으면 안된다.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의사의 진단을 받아 그 지시나 조치를 따라야 한다. 멋대로의 요법은 오히려 병을 악화시킬지언정 절대로 완치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3)의 관계야말로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뷸면증이라고 하면, 곧 수면제나 최면약이 화제에 오른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것들은 반드시 부작용을 수반 한다.
따라서, 가령 의사의 처방일지라도 조심스럽게 복용해야 된다. 하물며, 멋대로 귀동냥으로 들은 말을 믿고 과량복용한다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다.
4시간 수면으로 불면증을 녹아웃
결국 불면증이란,
, 폭음 포식의 결과 생겨나는 일종의 사치병
, 자의식으로 병을 예찬하는 지식인이 스스로 관념적으로 조각하는 일종의 공상병
, 그릇된 상식에 이끌려서 자신의 자율신경을 혹사하여 자멸로 몰고 가는 일종의 자살병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내용은 경우에 따라 다를지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이해해 준다면 불면증은 치유될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검소, 필요최소한 양의 식사를 권장하고 있다. 잘 때에는 공복이기를 권한다. 술을 들 때에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한다.
지금 술을 든다고 하자. 알콜은 식도, 위벽에서도 흡수된다고 한다. 따라서 소량을 마셔도 시간적 관념이 없어지고 취한 기분이 된다. 즉, 많이 마시지 않고도 알콜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무엇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 먹은 음식물을 소화하는 양 만큼 더욱 자율신경은 활약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처럼의 알콜분은 그 음식물에 섞여 버리기 때문에 흡수하는 데에 더욱 시간이 걸린다. 즉, 알콜분에 기대하는 효과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많은 양을 마실 수밖에.
알콜의 양이 많아지면 음식물을 먹는 양도 많아진다. 말하자면 일종의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만약, 알콜로 해방감을 기대한다면 적당한 양만으로도 충분하며 자율신경에 대한 부담도 적다. 그런데, 음식물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 음식물이 들어간 만큼 알콜분의 효과는 덜해진다. 그리고, 그에 따라 알콜의 양은 늘고 자율신경의 혹사도 심해진다.
내가 이해를 바라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수단은 목적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나 신체 안에서는 여러 가지의 부분이 서로 상호 연관을 유지하고 균형을 이루는 것인데, 국부적인 1대 1의 대응만을 끄집어 내는 것은 무리이다. 그런 데도 의사의 말은 비교적 단순하다. 예를 들어,
마실 때에는 먹지 않으면 위를 상한다(간장에는 어떨까?)
동양인은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량이 적다(동양인의 체질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서양인과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동양인은 염분을 과다하게 섭취한다. 적당히 섭취하지 않으면 안된다(함께 먹는 음식물과의 상관성은 어떨까?)
스포츠를 않으면 체력이 유지 되지 않는다(체력이란 무엇일까? 설마 힘센 사람만이 체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닐텐데?)하는 식으로 말이다. 괄호 안은 나의 질문인데,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신체 전체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편에서 다소의 언벨런스가 생겨도 신체의 나머지 각 기관들이 그 언밸런스를 복원하거나 서로 보완해서 그이상의 언밸런스가 되지 않도록 협력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무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부적인, 그것도 일시적인 언밸런스를 너무 확대 해석해서 허둥댈 필요는 없다.
이런 논리를 알게 되면 4시간 수면의 생활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불면증은 사라질 것이다.
4. 4시간 수면을 실천하는 비결
공표하고 실행하면 꼭 할수 있다는 자기암시를 확립하라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4시간 수면의 생활은 말하자면 일종의 <수행>이다. 따라서, 관념으로만 흐른다면 도저히 될 수 없으며, 또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리 뜻해도 이루어질 리가 없다.
수도자만 해도, 초보단계에서는 단체로 수행을 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눈앞에 대하면서 심두를 멸각해야 제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고고하기만을 추구한다고 해서 무엇하나 얻어지는 것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우선 <공표>할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것은 안이해지려고 하는 마음에 대한 자기규제의 수단이며, 또 불의의 사고를 피하기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공표>는 자기규제의 유일한 수단임과 동시에 증인의 감시속에서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고의 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잘 되면 큰소리로 선전하고 도저히 지속할 수 없을것 같으면 모른체 할 수 있는 <말하지 않고 실행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그 양상을 달리하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다음에 꼭 필요한 것은 실천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거는 일이다. 될까말까한 반신반의로 해 보았자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 기독교에서 "믿으라, 그러면 구제 받으리라"고 말하듯이 몸소 실천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한 4시간 수면처럼 괴로운 <수행>은 절대로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것이니 아무래도 <자기암시>라는 것이 필요해진다.
최근, 곧잘 <최면요법>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수험 대책으로서도 최면술은 유효하다고 한다. 그러나 최면술에 걸리게 된다는 수동적이 생활태도로서 도저히 4시간 수면의 실행은 무리이다.
역시 더욱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최면술에 걸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자기 최면법이며, 자기 암시법인 것이다. 또한 정신적인 사항이 우선할 경우는 자기 암시가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자기 암시라도 전혀 반대 현상이 되면 자기를 파멸시킨다. 불면증도 그 한 예이며, "운이 텄다"고 노름하다 패가망신을 하는 것도 그 한 예이다. 노력하는 것이 전제로 한 자기 암시여야만 노력을 키울 수 있다는 귀중한 의의를 지니게 된다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
기상 시간은 꼭 지켜라
다음은 네번째이다. 이제 현실적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아침의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정해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활의 패턴은 무엇보다도 기상으로부터 결정된다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 1시에 취침해서 5시에 기상하든, 0시에 취침해서 4시에 기상하든 그것은 자유이다. 하지만, 스스로 정한 패턴은 절대로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기상은 하루의 시발이니 절대로 파기해서는 안된다.
흔히, 연회나 마작 또는 갑작스런 업무나 열차 사고 등으로 취침시간이 늦어질 경우가 있다. 그래도 다음 날의 기상 시간을 변동해서는 안된다. 출장을 가거나, 남의 집에 묵는 경우일지라도 물론 예외일 수는 없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혼자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즐기기 위해서는 언제, 어느 때에, 어느 정도의 여유시간이 주어져도 절대로 헛되게 낭비하지 않을 만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조건에 따라서는 가수면으로 돌려도 나쁘지는 않다.
다음은 다섯번째이다. 4시간 수면의 생활은 <수행>이기 떼문에 강인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좀처럼 실행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은 약한 면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히 고독감에 시달리는 것 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와 사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지난 이야기나, 현재 하고 있는 일에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잔을 기울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산길을 산책하거나 낚시를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항상 <듣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의식을 가져야지 옳고 그름을 명백히 가리려는 자세로 맞서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 목적인데 그렇게 하여 긴장을 강화 시킨다면 오히려 마이너스의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다음은 마지막 요점이다. 그것은 4시간 수면의 실천에 들어서면 차츰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괴로워도 가족에게 짜증을 내서는 안된다. 가족에게 짜증을 내면 일시적으로 후련해 지기는 하겠지만 가족은 자신에게 있어서 최대의 동지이며, 이해자이므로 불필요한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늘 같이 살기 때문에 으레 짜증을 내는 것이려니 하고 당연시하는 수도 있는데 그것은 매우 좋지 않다.
가족을 만만히 보고 대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인데 그것은 습관이 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그래서는 절대로 4시간 수면을 실천하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계율은 자신의 책임하에 자신이 지킨다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상은 비결이라고 할수있지 않을까. 물론, 1)시간 내기, 쓰기, 2)자가용차는 타지 말라, 3)검소, 필요최소한 양의 식사에 철저하라, 4)9시 이후는 야식을 입에 대지 말라, 5)음주할 때에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등, 지금까지 말한 것들의 포인트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5. 불면증의 치료법
정신제어로 마음을 달리 잡아라
이제, 불면증의 타입을 분류해 보기로 하자. 다만 이것은 조금 아까 말한 것과 같은 <완전한 불면증>이 아니라 흔한 불면노이로제에 대한 것이라고 알아 주기 바란다.
잘게 나누면 불면증의 유형은 다음의 4개로 나뉜다.
A타입 = 잠들기가 어렵고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B타입 = 잠기가 얕아서 오밤중에 곧잘 깬다.
C타입 = 일단 눈이 뜨이면 자지 못한다.
D타입 = 비몽 사몽, 꿈만 꾼다.
A타입은 걱정거리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뚜렷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웬일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은 신경질적이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꼼꼼한 사람이 많다.
"빨리 자지 않으면 내일 일에 지장이 온다. 자아 자야지, 자자."
하는 생각이 지나쳐서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잔다는 것에 대해 무척 굳어져 있다. 즉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발 더 나아가게 되면, "지금부터 제대로 잘 수 있을까?"
하는 식으로 일종의 강박관념을 품게 된다.
이 때문에 이런 타입의 사람은 겨우겨우 잠이 들게 되더라도 사소한 일로 깨어 버려서 다시 얼마간 잠을 잘 수가 없는 일이 많다. 하지만 잠들기가 나쁘다고 해도 한번 잠들면 어느 정도는 숙면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웬일인지 잠들지 않아."
하고 투덜대면서도 비교적 생각보다는 기력이 찬 사람이 많은 것은 그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정신을 스스로 제어하면서 마음을 달리 잡는 일(마인드 콘드롤법)이 긴요하다. 자기 마음을 생각대로 움직이는 능력이 모자라니까 불면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낮의 사무활동에는 큰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그래서 회사의 일, 건강, 앞으로의 일, 가족 등등의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맡기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성취되기를 바라며 될 수 없는 일은 바라지도 않는다는 식으로 마음가짐을 전환하는 일이 긴요하다.
신경이완법으로 속 편하게
다음은 B타입이다. 이런 사람들은 잠들기가 어렵지는 않은데, 야밤에 몇 번이고 눈을 뜨며 아침에 일어나도 푹 잔것 같은 느낌이 없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하룻밤에 여나무번 눈을 뜨기도 한다. 또 이런 유형의 사람은 한밤중에 눈을 떴던 횟수를 분명히 외우기도 한다.
어쨌든간에 이런 종류의 사람도 전적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두눈을 뜬 횟수가 많더라도 다시 곧 스르르 잠들어 버릴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은 대개 신경과민인 사람이 많다. 지각신경이 보통 사람보다 날카롭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은 주위의 소리에도 단번에 눈을 뜬다. 그러나 신경이 몽땅 과민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시 곧 잠에 빠진다.
이런 사람들은 <신경이완법>을 숙달하면 된다. 인간이란 밤에 잘 때는 신경활동이 느슨해져 있기 마련인데, 이 자동제어장치가 어쩌다가 거꾸로 작용하기 때문에 불면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을 느슨하게 하는 방법의 대표적인 것을 들어본다.
(1) 가벼운 운동을 한다.
(2) 미지근한 물로 목욕을 한다.
(3) 샌드위치, 카스텔라와 같은 가벼운 식사를 든다.
(4) 만화를 보든가, 경음악을 듣는다.
자기의 최대능력에 도전한다
이번에는 C유형인데 환경이 한때 변화되는 것으로 해서 이따금 불면증으로 도지게 된다.
예를 든다면 출장을 갔다든지, 남의 집에 묵었다든지, 아니면 해외여행에서 돌아와서 아직도 시차파악에 어리둥절 할 때에는 야밤이나 새벽 2--3시에 눈을 뜨게 되면 그후에는 전혀 잘 수 없게 되는 수가 흔히 있다.
이것은 자기가 지니고 있었던 생활리듬이 갑자기 파괴당했기 때문에 수면의 생리가 흩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결코 오래 가지 않으니까 걱정할 것은 없다. 시차로 말미암은 멍한 증상은 며칠이면 제자리를 찾게 마련인 것처럼 몸이 생활패턴에 순응하게 되면 이런 상태는 반드시 흔적도 없어진다.
만일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면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자기의 최대능력>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 시험하기 위해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즉, 자기 체력이 얼마나 강한가 알아 보는 것이다.
전에 타께무아 켄이찌시와 대담했을 때 타께무라 씨가,
"익숙치 않은 고장에서 눈을 뜨게 되면 이거 잘됐다고 책을 읽기로 하고 있어요. 그러면 다음 날 강의에서도 콘디션이 좋아요. 게다가 나에게는 이런 체력이 아직도 있었구나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즐거워지거든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녕 <자기의 최대능력에 대한 도전법>이다.
불면증은 이렇게 치료한다
A타입 : 잠들기 힘들고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정신제어법 : 일, 건강, 가족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으로 맡기고, 가능한 것을 바라고 안될 일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마음을 전환한다.
B타입 : 잠기가 얕아서 한밤중에 곧잘 깬다.
신경이완법 : 가볍게 운동한다.
미지근한 물에 목욕한다.
가벼운 식사를 한다.
만화를 보거나 경음악을 듣는다.
C타입 : 일단 눈이 뜨이면 자지 못한다.
자기최대능력 도전법 : 야밤에 눈을 뜨면 그런 기회를 이용해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어서 자기 체력을 시험해 본다.
D타입 : 비몽 사몽, 꿈만 꾼다.
남아도는 에너지 승화법 : 하루의 운동량을 서슴치 말고 늘려서 에너지를 더욱 발산시킨다. 잠의 양보다 질에 유념한다.
남아도는 에너지 발산
그러면 마지막으로 D타입을 설명하자.
"나는 매일 밤, 꿈 꾸고 도통 잠잔 것 같지가 않다."
며 시무룩한 낯을 하는 이들이 흔한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전혀 걱정할 것이 못된다.
꿈이란 병을 앓을 때 말고는, 필요 이상으로 잠잤을 적에만 꾸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꿈을 꾼다는 것을 게을리 늦잠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꿈꾼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침 눈뜨기 직전에 꾼 것인 경우다. 물론 한밤중에 무서운 꿈을 꾸고 눈을 떴다가 잠들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그 무서운 꿈을 기억하기는 한다. 그러나 세세한 것까지는 기억하고 있지 못하기가 일쑤다.
아침 잠이란 말하자면 덤으로 덧붙여진 수면이다. 몸과 마음의 피로를 가시게 한다는 데에 있어서 꼭 필요한 잠이라고 할 것이 못된다. 숙면형의 단시간 수면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사람은 아침에 눈뜨기 직전, 꿈을 꾼다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들에게 덤으로 덧붙여진 늦잠이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하룻밤에 꿈을 몇 개나, 몇 번이나 꾸는 사람이 있다. 꿈을 꾸고는 눈을 뜰 때마다 꿈꾼 생각만은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가 아침에 일어나기까지 4--5회 되풀이된다. 그러나 정작 깨어났을 때는 마지막 꿈의 내용만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D타입의 사람은 덮어놓고 꿈을 꾸었다는 인상이 강한데 그래서 밤새 거의 숙면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심한 사람의 경우는,
"나는 줄곧 꾸었으니까 거의 잠자지 못한 것과 같다."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은 터무니 없는 착각이다.
대뇌생리학자의 말로는 1시간이나 2시간 동안 계속 꾸어온 것처럼 여겨진 꿈도 실지로는 고작 4--5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룻밤 사이에 너덧차례 꿈을 꾸었다손 치더라도 합해서 고작 30초도 못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까 그 나머지의 몇시간은 편안히 자고 있는 셈인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꿈은 정수면 뒤의 역설수면 때에 꾼다. 또 어느 누구든지 역설수면일 때는 반드시 꿈을 꾼다.
헌데, "나는 좀처럼 꿈을 꿈을 꾸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꿈을 꾼다"는 이도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꾸었던 꿈을 당장에 잊는 사람과 깨어나서도 얼마동안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깊이 잠자는 사람이고 후자는 잠이 얕은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은 달리 표현해서, 숙면을 할 수 있는 이는 단시간 수면형이고 잠이 얕은 사람은 늦잠형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소개했던 <세이부> 재벌의 쯔쯔미사장 등은 "꿈을 꾸기 시작하자 당장에 후다닥 일어나 버린다."는 정도의 단시간 수면형으로서 "꿈을 꾸는 것은 건강치 않다는 증거"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꾸었던 꿈을 기억하는 것과 같은 수면 방법은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타입의 사람에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 뿐이다.
"좀더 수면시간을 짧게 하고, 양의 수면보다 질의 잠에 한껏 유념하시오."
라는 권유다.
이렇게 말하면 D타입의 사람은,
"실컷 잤던 만족감도 없는데 자는 시간을 줄이라니 너무한 충고다."
라고 입을 비쭉거릴지 모르나, 단시간 수면이야말로 유효한 치료법이라고 나는 강조하고 싶다.
보다 적게 자면 거꾸로 숙면시간이 늘어서 지나치게 꿈을 꾸지 않게 되는 것이다. 8시간 수면으로 꿈에 꿈을 되풀이하느니 보다도 3--4시간 수면으로 꿈을 격퇴하면 눈떴을 때의 기분이 몇배 더 상쾌해지는 법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근본적으로 고치려면 과분히 섭취한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남아도는 에너지의 승화법>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 사람들은 운동이 부족하기 때문에 식사로 섭취한 에너지의 방출이 적다. 그래서 에너지가 넘쳐서 남아도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연본능의 작동으로 자기 전에 이부자리 위에 딩굴든가 고개짓도 하고 엎치락뒤치락 거린다.
한마디로, "운동을 실컷해서 에너지를 발산시켜 주시오"라고 몸이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과잉이므로 말미암아 잠기는 얕고 꿈만 꾸게 되는 것이므로 대낮에 서슴치 말고 한껏 에너지를 소비시켜야 한다.
불면 탈피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살고 있노라면 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스트레스에게 심신이 으름장을 받기 마련이다. 제대로 절도있게 자고 먹고, 과부족없이 운동을 하고만 있으면 인간은 건강한 법인데, 수면방법이 나쁘거나 먹지 못하거나 하면 당장에 몸의 어디엔가에 이상이 생긴다. 불면, 식욕부진의 악순환이 인간을 점점 더 불건강쪽으로 몰아 붙인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인간들이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정신자세 하나만으로 몸속의 신호등이 간단하게 적신호로 바뀌어버리는 탓이다.
불면증으로 치더라도 원인은 모두 정신적인 문제에서 실마리가 비롯돼 있다. 하찮은 마음가짐 하나로 밤잠을 자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의 신문보도로는 1983년 한해에 일본 전국의 자살자수효는 2만 5,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는 이숫자를 보고
"아아, 인간이란 이토록 약한 것인가."
하고 곰곰 생각에 잠겼고 깨달은 바도 없지 않았다.
이 2만 5,000명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약하디 약한 자기의 정신에 져서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다 보니, 무엇인가로 마음을 앓고 잠을 자지 못한다는 일이 아주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일만같이 여겨져왔다.
불면을 이용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
"잠잘수 없다는 것이 정말 괴로운 일이더군요."
세상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숱하게 있다.
"허어, 그렇게 괴로운가요."
나같으면 이런 대꾸를 해서 상대를 얼떨떨하게 만들겠다. 이장에서 재삼 말해 왔듯이 나는 불면증 따위는 두려워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 괴롭구말구요. 내일은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다는데 웬일인지 말똥말똥해져서 잠들지 못하는 경험, 당신에게는 없나요?"
상대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대든다.
나는 태연히 대꾸한다.
"있지요. 있긴 하지만 괴롭지는 않아요. 난 도리어, 잠잘수 없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서 말이외다..."
상대방이 입을 딱 벌리고 놀라는 표정은 참으로 즐겁기만 하다.
- 잠이 안온다. 가끔 졸인다. 애태우니까 더욱더 잘 수가 없다. 괴롭다. 힘겨워 못견디겠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조바심을 하며 자기를 볶는 것이 틀렸다. 나라면 이렇게 생각한다.
- 잠이 안오는군. 좋아, 잠이 올 때까지 이것저것 생각에 팔려 보자.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머리가 차분히 날카로와지는 것이 즐겁다. 한가지 생각이 끝나도 졸음이 안오면 다음 생각으로 넘어 선다. 이것도 즐겁다. 시간이 지나는 것도 잊는다. 좋아, 아침녘까지 즐기자. 그러다가...어느사이엔가 잘 수 있다.
즉, 잠이 안오면 야, 좋은 기회구나 하고 여기는 것이다. 이시간을 이용해서 대낮에 못했던 <궁리하기>를 차분히 챙겨 본다. 혹은 바쁜 통에 평소에는 엄두도 못냈던 즐거운 상념에 파묻힌다.
나와 가까운 어떤 이는,
"아아, 오늘은 잠들기가 어렵겠군."
하고 느껴지면 당장 이런 생각에 팔린다고 한다.
그것은 무엇이든 <베스트 10>이라는 <궁리거리>다. 자기 지식의 테두리 안에서 갖가지 분야의 <베스트 10>을 골라내서 순위를 붙이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 친구는 영화를 좋아하니까 여지껏 몇 번이고 영화에 관한 자기 나름대로의 <베스트 10>을 마련했다.
국산, 외국 영화 베스트 10, 영화감독 베스트 10, 인기스타 베스트 10, 혹은 명조연 베스트 10, 미인여우 베스트 20.
하나의 주제를 정하면 그것에 잇따라 차례로 사고의 실마리를 더듬어 간다. 지긋이 눈을 감고 누운 채, 고단해지면 뒤친다. 좌우로 뒤치다가 엎치기도 한다. 어쨌든 졸릴때까지 계속해서 열심히 생각에 잠긴다.
나는 세상의 숱한 불면증자들에게 이런 자세를 본받으라고 말하고 싶다. 잠이 안오면 그 시간을 활용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ff
6. 단시간 수면의 실천
(주)동양비디오 상무취체역 가메이(), 46세
(주)동양비디오는 1967년에 설립, 텔리비젼, 라디오 프로그램의 제작을 비롯해서 영상, 음성을 소재로하는 모든 업무를 취급한다. 최근에는 기업내의 교육훈련, 홍보, S, P(세일즈 프로모우션)용 비디오를 기획, 제작하고 있다. 또, 비디오나 수증 카메라 등을 중심으로 한 시스템의 설계, 시공, 트레이닝 같은 사업도 병행해서 취급하고 있다.
매우 바쁜 가메이 씨의 수면시간은 하루 4시간이다.
바쁜 비즈니스맨은 4시간 수면을
하루는 24시간,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바쁜 비지니스맨이 자신이 마음 먹은 대로 일하려면 결국 수면시간을 줄이는 도리밖에 없지 않을까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활 패턴은 일에 8시간, 사적인 시간에 8시간, 수면에 8시간이라는 식으로 하루를 8시간만 일하고 귀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도 남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고,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러자면 8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한 결과이지만 우선 나의 사적인 시간을 절약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수면시간을 단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8시간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충분치 않다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수면시간 중에서 몇 시간이나 숙면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대체로 4시간밖에 자지 않지만, 숙면을 하기 때문에 충분합니다.
수면에 대해 과학적으로 조사해 보면 잠에도 깊이의 정도가 각각 다릅니다. 이것을 잘 이용해서 리듬을 타면 숙면이 가능한 것입니다. 수면은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깊이>가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밤 12시 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은 매우 드물고, 대개 12시 반이나 1시에 잠자리에 드는데 밖에는 을 마시고 들어오지 않는 날은 자기 전 양주에 물을 탄것을 한 잔 걸칩니다. 잠자리 전의 술이지요.
약간 저혈압 증세가 있기 때문에 아침에는 깨우도록 합니다. 기상은 5시입니다.
아침의 행동은 정해져 있습니다. 우선 잠을 깨면 이부자리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쥬우스를 한잔 들이킵니다. 그러면 머릿속이 매우 맑아지므로 두 개의 조간 신문을 대충 훑어보며 담배를 2,3개비 피우고 일어납니다.
5시에서 7시까지의 두 시간 동안 일을 합니다. 주로 기획서나 교육 비디오의 시나리오를 씁니다.
낮은 사무실에서는 마음이 차문해지지 않기 때문에 글쓰는 일은 집으로 가져와서 합니다. 남들은 대개 밤에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침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릿속은 잡념이 없고 맑으며 주위의 잡음도 없기 때문에 아침의 2시간은 심야의 3시간 이상에 필적하는 능률이 오른다고 봅니다.
대충 일을 마무리 지어서 사무실에서의 오전 시간에 여유가 있을 때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상쾌한 기분이 됩니다.
(2) 서서도 가수면은 할 수 있다.
나는 메모광이라고 할 만큼 무엇이건 수첩에 적어 둡니다. 수첩에 적힌 걸 보면 지난 1주일 동안 잠자리에 든 시간의 합계가 10시간이었습니다.
또 48시간 자지 않은 적도 있는데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부자리 위에서 자지 않은 것일 뿐 다른 곳에서 어떻게 잘 보충하느냐에 따라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회사까지 전차를 타고 있는 시간이 30분입니다. 여기서 잠자는 것입니다. 앉았으면 물론 별문제가 없습니다만 서 있을지라도 누구나 잠들 수 있습니다. 손잡이를 잡고소 잠들 수도 있는데 만원일 때는 위험합니다.
나도 도어 옆의 기둥이 확보되면 안심이 됩니다. 그곳에 등을 기댄 채 몸을 움직이지 않고 눈을 감으면 서서도 잠들어 버립니다. 두세 곳의 역 안내방송을 듣지 못했는데 그곳에서는 깊이 잠들어 있었구나 하고 내리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폭신한 이부자리에서는 도리어 잠을 잘 수 없더군요. 될 수 있으면 집에서도 맨바닥에 담요를 깔아 놓은 위에서 자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상하게도, 이런 생활은 계속해 왔지만 병마에 쓰러진 적은 없습니다.
40세까지는 3시간 수면을 해 왔으며, 지금도 4시간 수면밖에 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까리소독(주)전무취체역 구로자와(), 41세
이까리 소독(주)은 1959년에 설립, 현재 종업원 350명, 연 판매액 30억엔을 올리고 있다. 업무는 유해 생물의 방제. 빌딩, 주택, 호텔, 병원 등에서 식품, 축산, 정원수에 이르기까지 분야가 다방면에 걸치기 때문에 기술진은 전문지식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 중에서도 구로자와씨는 5시간 수면을 실천하며 솔선해서 면허증 취득에 도전해 왔다. 고압 가스 취급 면허, 위생관리자 면허, 자가용 비행기 조종사 면허, 무선자격 면허, 서도, 독극물 취급 면허 든 그 수는 50여 가지에 이르고 있다.
(1) 100세는 살 수 있는 인생 4분론
업무 내용이 다방면에 걸쳐 있는 관계로 회사 전체가 기술자집 단화의 길은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년 전부터 솔선해서 각종 면허의 취득에 도전하려고 결심하고 5시간 수면을 시작했습니다.
기상은 오전 4시. 일반인이 6시 반이나 7시에 일어난다면 남보다 3시간쯤 더많은 시간으로 사는 계산이 됩니다.
나는 하루를 아침, 낮, 밤의 셋으로 구분하는 인생의 3분론을 아침 일찍 일어남으로써 4분론으로 하려고 마음 억었습니다. 그런 만큼 아침식사 전의 3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귀중한 것입니다.
현재 일반인의 평균 수명이 76세 정도라고 한다면 내가 기상해서 일하는 시간부터 계산해 보면 일반인 보다 하루를 25% 정도 많이 사는 것이되며, 결국 100세는 살게 되는 계산이 아니겠습니까?
5시간 수면을 결심한 20세 경이 내 인생의 전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디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7시간은 자고 있었습니다. 수면시간을 5시간으로 정하고 나서부터 달라진 것 중의 한가지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면증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밤에는 11시가 지나서 잠자리에 들고 아침 4시가 되면 어김없이 깨어납니다...
"깨어났다"는 것은 꼭 깨어나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발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깨는 시간이 기상시간이 되었습니다. 좀 이른가 싶어도 한 번 깨어났다 다시 잠을 자는 <두번 잠>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깨어난 때가 일어나는 때라고 정해 버렸습니다. 차츰 일어나는 것이 빨라지고 마침내 4시 기상이라는 좋은 습관이 몸에 배게 되었습니다.
<필요>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므로 자명종은 쓰지 않고 있습니다. 캄캄해도 일어날 수 있고, 휴일도 마찬가지입니다.
(2) 계속이야 말로 힘이다.
술을 싫어하지는 않은 편이어서 교제상 1주일에 2.3회는 밖에서 음주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첫번째 들린 술집에서는 양껏 즐기며 마시지만, 장소를 옮겨 가면서 술은 마시지는 않습니다. 술은 1차로 정하고 있고, 귀가하는 것은 11시 전으로 하고 있습니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 피곤하고 몸을 망치게 됩니다. 12시전에 자면 아무리 마셔도 다음 날 아침 4시에 일어나도 지장이 없습니다.
흔히, 월요일에 지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두 번 잠도 자신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긴장이 풀리면 감기에도 걸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나는 일요일에도 잠을 깼을 때가 일어나는 때입니다. 5시간 수면을 시작하고부터는 긴장을 푼 적도 없고, 감기 한 번 걸려본 적이 없습니다. 4시간 수면, 5시간 수면이란 긴장을 풀지않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4시에 일어나게 되었을 무렵도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찍 일어남으로써 자격, 면허를 취득한다는, 큰 목표를 향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즐거웠습니다. 목표를 가진다는 것은 즐겁더군요.
그리고, 아침의 조용한 시간은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어떻게 살면 좋은가를 곰곰히 생각할 수도 있어 충실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우 시험 직전의 2,3일 정도로는 안됩니다. 매일 빼놓지 않고 실행하는 것이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요구 됩니다. 일요일이 그밖의 휴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계속>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좋다는 것을 알게 죕니다.
(주)은죄 르노아르 대표취체역 고미야야마, 61세
끽다점 르노아르의 넒고 여유 있는 내부는 마치 호텔의 로비를 연상케하는 분위기이다.
이런 종류의 끽다점은 이미 시내를 중심으로 130여 개가 영업하고 있는데, 그 중의 94개 점포가 고미야야마씨의 것이다.
적수공권으로 돈을 모아 패전 후 가까스로 조그만 과자점을 시작하다 1957년 요쯔야에 <르노아르>1호 점포를 개점한 이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젊어서부터 단시간 수면을 실행하여 오늘까지 평균 수면 시간을 5시간으로 하고 있다.
(1) 남의 두배로 일하면 두배로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
나는 30년 이상 1시나, 늦으면 1시반 경에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자명종 시계가 울리면 어김없이 깨어나며, 게다가 오랜 습관이 아침 목욕을 합니다. 다만 오랫동안 목욕하지는 않고 탕 안에 들어갔다 이내 나옵니다. 이것을 거듭하면 혈액순환이 좋아져서 감기에 걸리지 않게 됩니다.
곧잘 친지들로부터 그렇게 조금 자고도 낮에 졸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지만 나는 끄떡없습니다. 잠이 올때는 어디에서도 잠들 수 있는 특기가 있어, 차 안에서나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 등 매우 짧은 틈에도 잠듭니다.
6시에 기상하여 8시 반에는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퇴근하는 것은 10시, 늦을 때에는 11시 경입니다. 내 나이로 보면 어느정도 무리한 근무 시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고통은 전혀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젊을 때부터 이런 식이었지요. 때때로 남들 처럼 저녁 일찍 귀가해서 쉬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불평을 하자면 끝이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나와 같은 업종의 경영자들을 보면 대체로 점심 때쯤 회사에 나와서 일하다 6시경이 되면 직원들에게 "그럼, 잘 부탁한다"면서 퇴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매일 8시 반에서 밤 10시가 넘도록 일하고 있으니 두배는 일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시작은 남처럼 하나의 점포였지만, 100개의 점포를 만든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일했습니다. 처음에는 꿈같은 숫자였지만 지금은 94개의 점포까지 와 있습니다. 남의 두 배로 일하면 남보다 두 배로 신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재능이 있고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남보다 많이 일하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 단시간 수면으로도 피로가 풀린다
흔히 몇 시간 이상 자지 않으면 안된다거나 그 이하가 되면 피로가 풀리지 않기 때문에 몸에 나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수면이란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숙면하는 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단시간 수면으로도 피로는 충분히 풀리며, 어떤 불편도 없는 것입니다.
귀가하면 일에 대해서는 일체 생각치 않습니다. 그리고 깊이 자는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보통 9시 경에 일을 끝내고, 나머지 1,2시간은 잡지나 필요한 책을 읽으며 공부 시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두 돌아간 뒤라 아주 조용해서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일이 바빠서 몸이 아무래도 지쳐 있을 때는 귀가하는 즉시 "30분만 자겠다"고 아내에게 말하고 잡니다. 그리고 깨어난 다음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피로가 아주 잘 풀립니다.
아침에도 이렇게 할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몸이 지쳐 있을 때는 6시에 일어나서 세면을 한 다음 아주 잠시 동안 다시 한번 눈을 붙입니다.
나에게는 이 방법이 효과가 좋은 것 같습니다.
수면과 피로의 관계는 재미 있더군요. 일로 인한 피로와 그 이외의, 예컨대 운동으로 인한 피로와는 전혀 다릅니다.
매주 1회, 밤이면 유도를 하고 있는데 몸은 지치지만 기분은 상쾌해집니다. 일의 피로와는 다릅니다. 따라서, 일을 하고(5), 운동을 해도(5) 5+5=10이 아니라 6이나 7정도의 느낌입니다.
적당한 피곤은 수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모양입니다.
단지 너무 과도하게 지치면 좀처럼 잠들 수 없으므로 조심하고 있습니다.
나의 경우는 2시까지나 일어나 있을 수 있는 시간의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를 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킵니다. 그렇게 하면, 단시간 수면이라도 충분히 건강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ff
'건강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씨앗 건강법 (0) | 2020.06.06 |
---|---|
내몸에 흐르는 기를 찾아서 (0) | 2020.06.04 |
건강장수 교실 (0) | 2020.06.03 |
건강한 사람의 19가지 습관 (0) | 2020.06.03 |
기 (0) | 2020.05.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