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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정보/마음

자신이 믿는 대로 경험한다

by Healing New 2020. 6. 28.

  세상의 모든 일은 `자기가 믿는 대로 경험하기'입니다. 세상만사와 우리들 각 개인의 어떠
한 일도 `믿는 대로 경험한다'는 원리와  공식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모든 종교,  철학, 정치 
이념도 실은 뛰어난 지도자의 신념체계이며 `믿는 대로 경험한다'는 공식 내에 있습니다. 의
학이나 과학도 신념체계이므로 `믿는 대로 경험한다'는  원리가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최고의 지침이 되는 것입니다. 괴롭고 슬픈 신념이나 상념은  질병이나 고통을 경험하게 하
고, 밝고 고운 신념이나 상념은 건강과 행복을 경험하게 합니다. 즉 내가 평소에 믿는  바가 
나의 육신과 생활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는 몇 년 전 중국의 기공교사로부터 기공
수련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란 우주에 가득 찬 에너지란 뜻입니다. 기는 신념, 즉 내가 믿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기
가 전력이라면 내 마음이 발전소입니다. 신념에서 기가 나오고  기는 육신이나 물질의 모습
으로 전환됩니다. 신념에서 에너지가 나오고 그 에너지 기운이  우리 몸에 변화를 일으키는 
실험을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해볼 수 있습니다. 
  이 실험은 여러분이 더 아름다워지고 싶거나 생활의 변화를 원할 때도 응용할 수 있습니
다. 이제 여러분의 두 손 안쪽의 굵은 주름을 서로 포개서 손바닥과 손가락을 맞대보십시오. 
양쪽 손가락 끝의 길이가 꼭 같지요? 길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기억
해 두십시오. 이제 눈을 감고 여러분의 한 쩍 손을  들고(여자는 오른손, 남자는 왼손) 자신
의 주의를 들고 있는 손가락에 모으고 그  손가락이 하늘을 향해 쭉 늘어나고 있다고 믿고 
늘어나고 있는 느낌을 느끼십시오. 어떠한 의심이나 다른 생각은 접어두고 오로지 손가락이 
길게 늘어난다고 믿으세요. (약3분 후) 이제 눈을 뜨고 앞서와 같이 두 손목의 주름살을 포
개어 양쪽 손가락의 길이를 비교해 보십시오. 그쪽  손가락의 길이가 더 길어졌습니까? (아
마 길어졌을 것입니다) 이제 다시 눈을 감고 늘어났던 같은 손을 들고  이번에는 반대로 손
가락이 어린애 손처럼 작아지고 있다고 믿고 점점 작아지는  느낌을 가지세요. 의심하지 말
고요. (약3분 후) 이제 눈을 뜨고 손목의 주름을 포개어  손가락 길이를 견주어보십시오. 길
었던 손가락이 오히려 더 짧아졌습니까? (아마 짧아졌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최면을 걸
고 있거나 독자 여러분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 것입
니다.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통이나 질병의 해결을 위해서 나의 온 주의를 모으고 신념의 파
장을 보내면 믿는 대로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불치병이라는 혈루증에 걸린 여인이 예수님 
옷자락을 만진 후 즉석에서 회복되었지요.  예수는 "너의 믿음이 낫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대로 경험한다'는 원리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화가 나거나 
괴로운 심정일 때는 음식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손 끝에서 독이 나올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음식에 손을 댈 때는 항상 감사하고 좋은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음
식점에 가서 주인이나 종업원의 비위를 거슬러서 화가 나게 만들면 누가 손해일까요.
  중국의 과학 기술원과 기공협회가 공동으로 실험한 것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가 오
늘밤 손님들을 대접해야하는데 사업상 술을 마셔야 하지만 취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술잔에 
술을 받을 때 "알코올은 날아가 버리고 물만 남으라"고 나의 모든 주의를 술잔에 모으고 그
렇게 믿습니다. 술잔을 앞에 놓고도 계속 그렇게 믿고 알코올이 날아가고 있는 것을 상상합
니다. 술을 조금씩 마시는 순간에도 목구멍에 물만 넘어가고  알코올은 입으로 불어내서 나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렇게 믿고 있으면 취하지 않는답니다. 실제로 피를 뽑아 혈중의 알
코올 농도를 검사해 보면 현저하게 낮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념은 내 몸뿐만 아니
라 물질적 대상에도 변화를 일으킵니다. 
              
    건강과 행복을 부르는 신념
  어떤 신념이 고통과 질병을 부를까요? 교통사고나 끈질긴 난치병의 배후에는 고통을 부르
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병에 걸리고 사고를  내고 싶은 신념을 가지고 있
겠느냐고요?
  나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통해 많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모든 것을 곱게 보
고 늘 편안한 마을을 가지고 있으면 병원 신세를 질 일이 없게 됩니다. 오늘날 병원이나 의
학은 질병 그 자체만을 좇는  좁은 시각의 한계가 있습니다. 오염된  한강물이 서울 시내를 
통과할 때 강물을 정화시키고 약을 뿌리는  것이 의학적 방법이라면 오염을 일으키는  한강 
상류를 해결하는 것이 신념 다스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 가운데 '믿는 대로 경험
한다'는 원리를 믿지 않는 분은 자신이 믿는 대로 경험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믿는 대로 경
험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실은 그것도 믿는 대로 경험하고 있는 것입
니다. 
  실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부인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사내아이를 두었는데  이 아이가 늘 자기 머리털을  뽑고 
있습니다. 머리 한쪽에 소 눈깔 만하게 탈모가 되어 있어서 보기가 흉했습니다. 아무리 못하
게 말려도 소용없습니다. 손에 장갑을 끼워 놓아도, 매로  때려도 계속 뽑고 있어요. 피부과 
병원에 가서 치료해도 심지어 정신과에서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어요. 이 부인은 평소 시어
머니를 미워해서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저 노인네 머리채를  뽑아 버렸으면 시원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왠지 머리채를 뽑고 싶은 마음이 늘 들었습니다. 이 엄마의 상념이 아이를 
통해서 경험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 엄마의 마음을 바꾸게 했습니다. 당신을  걱정하게 
만드는 이 아이는 누구와의 사이에서 낳았는가? 남편과 좋아해서 낳았지요. 그 남편은 누가 
낳았는가? 머리채를 뽑고 싶은 시어머니가 낳았지요. 시어머니가  없는 데서 혼자 앉아 "어
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하루종일 반복해서 외웠습니다. 처음엔 저항감이 생겼으나 며칠
이고 계속하는 동안 뜨거운 눈물도 많이  흐르고 차츰 시어머니가 좋게 느껴지게  되었습니
다. 이 엄마의 마음이 완전히 바뀌어지자 아이가 머리에 손도 대지 않게 되었습니다. 
  건강이란 약이나 식이요법, 운동 같은 것으로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는 마음 
다스리기를 통해서 좋아집니다. 요즘에는 건강법 홍수시대라고  할만큼 수많은 건강법이 소
개되고 있습니다. 신문 잡지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대로 따라가려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입
니다. 이런 것에 너무 휩쓸릴 필요가  없습니다. 곱고 밝은 마음을 가지게되면 몸에  해로운 
음식을 싫어하게 되고 자연히 나의 건강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따라오게 됩니다. 그
러므로 좋은 신념과 상념을 가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현대 서양의학은-근래에는 일부 동양의학에서까지도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만-히포크라
테스의 전체적 생명관과 자연관을 망각해 버리고 분석적이며 세분화된 의학으로 발전해  왔
습니다. 사람 몸을 기계 부속품처럼  분해하는 이른바 기계론적 발상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서양의학을 지배해온 결과입니다. 따라서 생체와 환경을 둘로 나누고 몸과 의식을 이분화시
켜서 보는 경향이 팽배해졌고, 질병이란 곧 몸의 생물학적 기능의 이상이며, 건강이란  다만 
병이 없는 상태인 것처럼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인류는 오랫동안 기계적인 서양문
화에 세뇌되어 오다보니 이렇게 주입된 신념과 관점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데 익숙해지고 말
았습니다. 
  그러나 참으로는 자연이나 인체는 기계와 같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한 순간도 머무름
이 없이 변화해 가는 역동적인 흐름입니다. 자연과 인체는 많은 요소가 통합되어 이루고 있
는, 그것자체가 하나의 단위이므로 이를 분해, 분석하자마자 그 특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나무+나무+....=숲이 아니며 뇌+심장+위+간+....=사람이 아닙니다.  요소와 요소를 연결하는 
마음, 정보, 기 등을 매개로 하여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전일적인 에너지 째로 인체를  보아
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과 질병을 규정할 때 일직선을 그어 놓고 한쪽  끝은 건강이고, 반대 쪽 끝은 
질병이라는 식의 일차원적인 해석은 본질을 비껴선  발상입니다. 건강이든 질병이든 그것은 
생리와 심리, 생활양식, 자연환경, 사회환경, 문명구조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차원과 
요인이 그물코처럼 연결되어 나타내 보이는 다차원적인  현상입니다. 이러한 다차원성이 이
해가 될 때 질병이란 곧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부조화와 불균형의 반영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게 느껴지게 됩니다.
  불건강, 질병의 상태란 이러한 복합적인 부조화가 회복되지 못할  때 생체가 그러한 부조
화 상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탈출수단으로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
다. 그러므로 단순히 병증에 대한  물리적 제거가 꼭 건강으로 가게  하는 최선의 조치라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생체가 조화와 균형을 회복할 목적으로  어떤 질병을 통해서 탈출구를 
모색했는데, 그것이 차단되면 또 다른 탈출구를 모색해야만  합니다. 이를테면 알코올, 마약 
중독, 정신질환, 사고, 반사회적 행동, 자살, 기타 수많은 개인적, 사회적 고통의 모습으로 말
입니다. 그러니 질병이나 사고, 개인적인 삶의 고통이나 환경파괴, 사회적 죄악, 이것들은 모
두 같은 근원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따라서 어떤 환자에 대한 완벽한 치료를 위해서는 그 질병이나 사고와 관련되어 있는 요
인에 대해서 가능한 모든 차원, 모든 관점을 통해서 총체적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이 책에서 
건강을 이야기 할 때 다만  생물학적인 육체의 상태만이 아니라  의식, 생활양식, 사회환경, 
문명구조 등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려고 시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의학은 병원 중심의 질병치료 의학으로부터 생활중심의 건강 증진 의학으로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계론적인 종래의 치료방식으로는 현대적인 만성질환
들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우며 특히 불건강 내지 반건강 상태에 있는 절대 다수의 질
병 예비군을 병원 중심의 의학만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사랑으로 감싸라
  고통과 질병을 가져오는 신념의 뿌리는 욕망과 저항입니다. 무엇을 너무 좋아해서 가지려
는 욕망, 무엇을 너무 싫어해서 배척하려는 저항, 이 둘이 병통 입니다. 욕망은 지나치게 음
식, 이성, 재산, 명예, 권력 같은 것을 확보하려는 욕심입니다. 저항은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
는 마음, 인생은 고통이고 슬프고 불안하고 투쟁이라고 믿는 마음, 상대를 늘 배척하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념과 신념을 지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거나, 남을 미워했거나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고 더러는 배신도 했
지요. 여러분 가운데 그렇지 않은  분이 있습니까? 과거에 우리가  품었던 어두운 마음이나 
말과 행동은 하나도 빠짐없이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되듯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습
니다. 녹음된 테이프는 어느 땐가는 재생되어 나타나듯 과거의  어두운 신념 덩어리들은 기
회 있는 대로 고개를 들고일어나 고통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녹음테이프를 의도적으로 재
생시켜 공 테이프로 만들든지 밝은  내용으로 다시 녹음해야합니다. 그런데  나의 잠재의식 
가운데는 너무 많은 녹음 테이프가 저장되어  있으므로 보통 속도로 지우려면 세월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고속 녹음기로 짧은 시간 내에 풀어서 지우고 좋은 내용으로 녹음하는 방법
이 있습니다. 해리 팔머라는 심리학자가 개발한 강력한 자기 진화 방법입니다. 이 책을 읽어 
나가면 뒷부분에서 보다 자세히 소개를 해놓았습니다만 간략히 그 요령을 말씀드립니다. 
  그 첫째 방법은 '화해와  축복의 산책'입니다. 
 혼자서 목표를 정한 후 산책을  나가는데 목표지점까지는 화해, 즉  어두운 녹음을 지우는 
작업을 하고 목표에서 돌아올 때는 축복, 즉 밝은 내용을 새로 녹음하는 작업을 합니다. 자, 
이제 실제로 '화해와 축복의 산책'을 떠난다고 상상하고 같이  해보실까요? 여러분 기억 가
운데 몹시 미워하거나 원한을 기지고 있는   대상, 또는 공포나 슬픔의 대상이나 사업실패,   
퇴직, 배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사별, 등의 사건을 하나 떠올려  보십시오. 아직도 화
가 나거나 미운 생각이 있다면 의도적으로 그 느낌을 강하게 확대시켜 느끼고 자신의 귀에 
들리만큼 소리를 내서 다시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또 다음   상대나 대상을 떠올려서 같은 
방식으로 합니다. 어릴 때 이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의 모든 기억을 되살려 냅니다.  아
마 여러분은 놀라실 것입니다. 내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미워하고 원망했나 하구요.  목표
에서 돌아갈 때는 반대로 저절로 떠오르는 대상들에게 내 귀에 들릴 만큼 축복하는 말을 속
삭입니다. "아무개 씨,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즉   내 마음의 테이프에 밝은 내용을 
녹음시키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남을  대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많습니까?  더 높은 자기가 
육신의 자기에게 화해를 하고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개야, 너는 사랑스럽고 훌륭하다"
고 말해줍니다. 이 산책을 진심으로 하시는  분은 눈물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미운 마음, 
질투심이 안 나올 때까지 자꾸 반복해서 완전히 지워야 합니다.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밑바
닥에 더러운 것들이 남아 있지요? 이  더러운 쓰레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돌멩이 하나만  물 
속에 던져도 다시 흙탕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산책을 자꾸 하다  보면  모두가 다 곱
고 좋게 보일 때가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욕망과 저항을 떠나 큰사랑으로 받아들이기'입니다.           
 우리는 보통 거리를 지날 때 예쁜 꽃과 쓰레기,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등과 같이 매사에 
좋다, 나쁘다, 선이다 악이다로 구별시비를 합니다. 이러한 분별시비 하는 마음이 고통의 씨
를 녹음하는 꼴입니다. 분별시비를 멈추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보든지 싫다(저항), 좋
다(욕망)는 생각을 떠나서 한 걸음 물러나 모두를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듯이 경탄하
며 큰 자비심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 훈련이  마음속에 밝은 내용을 녹음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연습을 하나 해보실까요?
  눈을 감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마음속에 떠올리세요.  그 대상을 아름다운 경치
를 보듯이 큰사랑으로 감사하며 바라보십시오. (약 1분 후) 이제 다시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리세요. 이 사람도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보듯이 큰사랑으로 감사하며 바라보십
시오. (약 1분 후) 이제 다시 건강하고 잘 생긴 젊은 사람을 떠올리세요. 아름다운 경치처럼 
감탄하며 바라보세요. (1분 후) 병에  걸려 죽어가는 환자의 모습을  떠올리세요. 이 사람도 
아름다운 경치를 보듯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세요. (1분 후) 좋아하는 동물이나 꽃을 떠올
리고 감사하며 큰사랑으로 바라보세요. (1분 후) 혐오하는 동물이나 물체를 떠올리고 아름다
운 경치처럼 감동하며 바라보세요. (약 1분 후) 이제 눈을 뜨십시오. 옛날의 느낌과 조금 차
이가 있습니까?
  좋다 싫다를 떠나 내 주변의 모두를 큰 자비심으로 받아들이면 우선 내가 편해집니다. 내
가 편안하고 즐거워지면 작은 아파트에 살아도, 남편이 돈을 적게 벌어도, 아이의 학교 성적
이 떨어져도 그냥 행복할 뿐입니다. 실은 내가 편안해지면 건강과 번영, 행복이 저절로 따라
오게 됩니다. 내가 성인군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끼실지 모르나 이러한 생각이 옛
부터 의학의 핵심이었지요. 
  오늘날의 의학이 너무 물질의학 쪽으로 치우쳐 있는 셈이지요. 독자 여러분이 `욕망과 저
항을 떠나 큰사랑으로 바라보기'를 계속하고 있으면 병원에  갈 일이 안 생길 것입니다. 항
상 이 마음을 유지하고 있으면 늘 편안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 방법을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문제들에 응용해보십시다. 일상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들을 몇 가지
로 분류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내용은 건강에 대한 바른 신념 갖기, 상대와 자신을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기,  배우자에 대한 좋은 신념 갖기, 자녀에 대한  밝은 신념 갖기, 돈에 대
한 바른 신념 갖기, 죽음에 대한 편안한 신념 세우기, 자유롭고 편안함을 얻는 길 등입니다. 
       
    건강에 대한 바른 신념 갖기
  내 건강은 나쁘다, 내 몸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언젠가 병에 걸리거나  교통사고를 
당할 지 모른다, 병원에 입원해서라도 조용히 쉬고 싶다와 같은 어두운 신념을 지워야 합니
다. 그러한 신념을 지우지 않으면 기필코 현실로 경험할 날이 있습니다. 
  작년에 두 명의 젊은 여성이 교통사고로 입원한 일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고교 3학년 때 
취업을 하여 지난 5년간 매우 바쁘게 살았습니다. 친구들은 여행도 다니며 즐기는데 자신은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가 늘 불만이었습니다.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할 때 이 차가 전복되
어 교통사고라도 나면 쉴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결국 승용차를 몰고 가다 차
가 전복되어 폐에 구멍이 나고(기흉)갈비뼈가 골절되는 사고를  입고 오랫동안 병원에서 쉬
게 되었습니다. 
  다른 아가씨는 외국을 다니며 조그마한 무역업을 하였는데 늘 쉬고 싶다고 염원을 하였습
니다. 이 사람도 역시 교통사고로 어깨뼈가 골절되어 몇 달  동안 입원하여 쉴 수 있었습니
다. 대개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은 욕망과 저항에 치우쳐  살아온 탓으로 지쳐 있음을 보
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욕망과 저항을 떠나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면 절대로 지치지 
않고 특히 병원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가 없습니다. 건강에 대한 부정적인 신념을 `
화해와 축복의 산책`과 같은 방법으로 그 느낌을 확대하여 느끼고 말로 풀어버리며 이제 그
런 어두운 상념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믿으면 좋습니다. 그 다음  아름답고 건강한 자신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림으로 그려 벽에 붙여도 좋습니다. 가족 모두의 건강도 같은  방법으로 
신념을 세우면 좋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또 불안한 생각이  떠오르면 같은 방법을 반복해
서 밝은 신념만 남을 때까지 계속합니다. 
  간단한 방법입니다. 어두운 녹음 테이프를 고속으로 재생하여 지우고 밝은 내용의 신념을 
녹음해두자는 것입니다. 고통의 신념이 잔뜩 녹음된 마음의 테이프를 고속으로 지워놓지 않
으면 앞으로 끈질기게 고통을 당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처럼 묵은 신념을 지우고 자신의 밝
은 모습을 떠올리고 이것이 나의 참모습이라고 믿고 속삭이면  밝은 신념이 녹음됩니다. 그
렇게 되면 밝은 생활을 경험하겠지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잠깐 자신의 밝은 
모습을 떠올리며 속삭이는 습관도 좋습니다. 자기가 자신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감사하며 바
라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건강과 일상  생활에 밝은 신념만을 가지면  이러저러한 건강법을 
쫓아다닐 필요가 없게 됩니다. 
       
    상대와 자신을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기
  우리는 가끔 한 자리에 같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싫은 사람, 미운  사
람, 경멸하고 싶은 사람, 천하게 여겨지는 사람, 추하게 여겨지는 사람 등. 그러나 실은 우리 
마음의 필터(Identity)를 통해서 우리가 그러한  인상으로 지어내서 보는 것이지, 그것이  그 
사람들의 참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싫은 사람이 보이면 싫어하는  마음의 색안경을 내가 끼
고 보는 것이므로 그 색안경을 벗고 바로 보면 모두가 다 곱고 좋은 대상인 것입니다. 필터
와 색안경이란 자신이 지닌 신념입니다. 사람과  사물을 볼 때마다 좋다 나쁘다, 예쁘다  밉
다, 선/악으로 분별시비를 하다보면 나의 주의가  분산되고 따라서 생명 에너지가 고갈되어 
지쳐버립니다. 나는 결국 불안과 고통만 맛보게 됩니다. 이런 분별시비를 떠나서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을 한결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듯 의도적으로 존경하며 바라보면 내가 우선 편해
집니다. 이것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매우  이기적
이지요?
  우리는 가끔 몇 사람이 모이면 그 자리에  없는 어떤 사람의 흉을 보거나 비난하는 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흉을 보기 시작하면 좌중의 이 사람  저 사람이 덩달아 흉보기 경쟁을 
합니다. 한 사람을 몹쓸 사람으로 만들게  되지요. 남을 칭찬할 때도 정도 이상으로  높여서 
말하기 일쑤고 주변을 웃기기 위해서 농담을 할  때에도 이 소리 저 소리로 꾸며보려 하기 
일쑤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은 자신을 잘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더 재치있게 보이기 위해
서,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자신을 잘 꾸며대고 가끔은 남을 가혹하게 매도하기도  합니다. 
대개 사람들 마음은 한시도 쉬지 않고 이런 짓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성인
들은 사람 마음을 원숭이에 비유했습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 나무 저 나무로 방
정맞게 옮겨 다니는 것이 원숭이 아닙니까? 우리 마음이 원숭이와 꼭 같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어느 자리에서나 늘 자기가 남에게 잘 보이려고, 능력 있게 보이려고, 혹은 인기를 
얻기 위해서 자신을 꾸며대고 있는 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
이에 내가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는 금방 중단하려 하지 말고 더 높은  내가 
내 마음의 원숭이가 까불어 대는 것을 보고 "너  참 잘한다, 어서 계속 까불어라"하며 주시
하고 있으면 스스로 부끄러워서 꼬리를 내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 원숭이뿐만 아니라 남
의 원숭이도 늘 살펴보고 있어야 합니다. 원숭이들 놀음 속에 덩달아 휩쓸릴 필요가 없습니
다. 이런데 휩쓸리다 보면 나는 뒷날 고통을 맛보아야합니다. 
  상대와 대화를 할 때도 대개는 상대를 잘 설득해 보려는,  내가 잘 보이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재주를 부리거나 겸손한 척하거나, 머리를 이리저리 쓰게 되지요. 이런 식의 대화
는 상대와 나를 하나로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두 사람의 내면에서 모두 감동이 일어나지 않
습니다. 상대에게 진정으로 관심과 주의를 모으고 존경하며 바라보면 내가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상대도 따라서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존경하는 척이 아니고, 존경하도록 노력해야지 
하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존경심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실은 이렇게  쓰고 있는 나도 잘 안
됩니다. 내가 지금 독자 여러분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재치있는  말재주를 부리거나 
인기를 끌어볼까 하고 머리로만 생각을 짜내면 우선은 재미있어할지 모르지만 그런 식의 대
화는 향기 없는 조화와 같아서 빛깔만 현란할 뿐 생명과  혼이 없습니다. 감동을 주지 못합
니다. 
      
    배우자에 대한 좋은 신념 갖기
  주변에서 남편의 외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부인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러한  경우 
가정이 파탄하거나 부인의 건강이 크게 상하는 일까지도 있지요?
  얼마 전 내게 50대 후반의 부인이 찾아왔는데 이 부인 지난 3년 동안 자궁암으로 어느 대
학 병원에서 치료했지만 이제 병원  치료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선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나는 이 부인처럼 끈질긴 고통을 당하는  배경에는 반드시 어떤 저항하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조사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부인의 어린 시절, 친정 아버지가 본처
한테서 두 딸을 낳고 나서 아들을 낳겠다는 이유로 첩을 얻었습니다. 이 때부터 어린 마음
속에는 아버지와 첩에 대한 심한 원망과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이란 배신자이며 
믿을 게 못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지요. 이 분이  커서 시집을 갔는데 이제는 남편
이 춤바람이 나서 사흘 걸음으로 외박을 합니다. 이 버릇을 잡으려고 백방으로 애를 써봤지
만 3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버릇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인의 오랜 마음고생이 
자궁암을 낳게 한 뿌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이 분이  어릴 적부터 마음 가운데  새겨 놓은 
"남자는 도둑이고 믿을 게 못된다"는  신념을 친정 아버지에 이어서 남편의  모습을 통해서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인에게는  의학적 치료도 필요한 것이지만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뿌리 깊은 저항의 신념을 떠나 그들을 감사하고 존경하며 큰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우선 되어야할 치료법입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쉽게  가질 수 있겠냐고들 합니다만 
자신이 진정으로 건강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꼭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이런 일은 그 대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편해져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외도를 하거나 허튼 짓을 하고 있다고 할 때 남편을 공격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
이 아닙니다. 이런 일로 고통받는 부인들에게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나 자기 남편을 배척하
고 원망했던 신념이 꼭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먼저 지워야 합니다.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은 채 남편만 고치려고 하는 것은 고통의 영화 필름을 바꾸어 놓지 않고서 스크린에 비치
는 고통의 화면을 지우려고 덤비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남편에 대한 어두운 신념을 지우면
서 이제 이것은 나의 남편의 모습이 아니라고 다짐합니다. 밝고 훌륭한 남편의 인상을 마음 
가운데 새겨 항상 큰사랑으로 존경하고 바라보면서 이것이야말로 내 남편의 진짜  모습이라
고 믿는 것입니다. 조그만 의심도 없이 확고한 신념으로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훈련을 
계속하고 있으면 사랑하는 척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마음이 우러나오면 남편은 외도를 하라
고 해도 안 하게 됩니다. 
  부부간의 갈등이 질병이나 사고를 불러온 사례가 많습니다만 남편에게서 어떤 허물이  눈
에 띄면 그것을 고치려고 우기지 말고 남편에 대한 나의 부정적 신념을 먼저 지우며 이  허
물은 내 남편의 참 모습이 아니라고 스스로 선언합니다.  훌륭하고 사랑스런 남편의 인상을 
떠올려 `존경하며 바라보기`를 계속하다 보면 남편은 서서히 바뀌어 질 것입니다. 남편 눈에 
부인의 허물이 보일 때도 남편은 똑같이 이렇게 해야겠지요.  배우자의 잘못을 물리적 힘으
로만 바꾸려고 덤비지 말고 자신의 상념을 밝은 쪽으로 먼저 바꾸는 것이 해결의 열쇠입니
다. 
    
    자녀에 대한 밝은 신념 갖기
  어린 자녀의 건강 상태나 운명은 부모가 평소 먹는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
다. 앞서 시어머니 머리채를 뽑아놓고 싶었던 부인의 아이가 제 머리털을 뽑은 사례가 좋은 
예입니다.
  갓난아이를 둔 한 아기엄마가 남편이 바람을 피워 속을 썩인다고 남편을 상대도 하지 않
고 말을 안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오랫동안 남편에게 대꾸도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아이가 
다섯 살이 넘도록 말을 못합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아도 신체에 특별한 이상은 없는
데도 말입니다. 
  요즘은 자녀를 적게 두는 시대라서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는 나머지 우리 아이가 건강이 나
쁠지 모른다, 무슨 사고라도 당할지 모른다고 늘 불안해하는 부모들이 상당히 있는 것 같습
니다. 멀쩡한 자녀에 대해서 걱정하는 마음, 불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아이를 도와주는 것
이 아니라 아이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내 아이는 밝고 완전
하다는 인상을 상상하고 늘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이가  학교에 갈 때 뒷모습을 
보며 이러한 신념의 파장을 보내면 좋을 것입니다. 남편이 출근할 때도 이처럼 하면 좋겠지
요. 
  다 그럴 바는 아니겠습니다만 아이들이 화상을 입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심하게  아파 
병원에 오는 경우 특히 아이엄마의 마음상태와 관련되는 경우가  상당히 있는 것 같습니다. 
사례를 일일이 다 들 수 없지만 엄마가 시부모님이나 남편 또는 주변과 갈등을 반복하는 상
태에 있는 경우 아이의 건강이나 운명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원한다면 부모 마음 가운데 어두운 그림자가 없는지 찾아서 
지우고 밝은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부모 마음이 밝고 행복해야만 그 파
장으로 자녀도 밝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좋은 신념 갖기
  약 2년 전 30대 후반의 젊은 부인이 자주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병 때문에 병원에 온 일
이 있었습니다. 이 부인은 결혼한 지 10년 가량 되었는데 결혼 전까지는 건강했으나 첫아이
를 낳은 뒤부터 자주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증세가 간질발작과는 아주 다릅니
다. 멀쩡한 사람이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처럼 몇 시간이고 깨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일로 
병원 입원을 스무 번  이상했고 뇌신경계통에 유명하다는 의사,  한의사를 찾아가 진찰하고 
각종 검사를 해봐도 별 이상 소견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떤 의사는 간질병으로 진
단하고 간질병을 처방해 주어 여러 해 동안 먹고 있으나 그 증세가 호전되지를 않았습니다. 
이 부인은 장남 되는 사람과 연애 결혼하여  잠시 시댁에 함께 살게 되었는데 시집오던 날 
기독교 교화 권사인 시어머니가 "너 이제 우리 집 식구가 되었으니  교회에 다녀라"는 것입
니다. 그런데 이 며느리는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늘 절에  다니며 기도하는 데 
익숙해 있었습니다. 도저히 교회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게 되면 부처님을  배신
하는 것 같아서였겠지요. 이 부인이  좀 트인 여자 같았으면 불교나  기독교나 표현만 다를 
뿐 하나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알고 시어머니 명령을 들어주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몇 차례 경고를 했음에도 며느리가  꿈쩍도 않자 어느 날 
시어머니가 극도로 화가 나서 "너 뱃속에 있는 애기 지워 버리고 우리 집을 나가라"하며 엄
청난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이때가 첫아이 임신 8개월로 몸이 무거웠을 때입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며느리는 1주일 동안이나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부터 며느리  눈에 시어머니가 무서운 독사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와 마주치면 꼭 소름끼치는 독사를 보는 듯 가슴이  뛰었습니다. 따라서 이 부인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증세는 항상 시어머니와 충돌을 하고 난 후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며느리의 병은 '시어머니 공포증'이고 그 원인은 시어머니에  대한 지독한 저항이었지요. 나
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지금 시어머니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세상
의 도리로 보자면 아주머니께 잘못이 없지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시대에 종교를 강요하
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학대하는 시어머니가 잘못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믿고 있는 불교의 
도리에 비추어 본다면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과거에 그만한 고통의 씨를 심은 결과
가 아닌가요?
  당신은 이 집에 시집올 때 갚아야 할 고통의 부채 장부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고통의 부
채는 당신이 고통을 맛보아야만 갚아질텐데 시어머니가 악역을 맡아가면서까지 당신의 부채
를 갚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시어머니는 독사가  아니고 당신이 우러러 모셔
야 할 관세음보살인 것입니다. 이 때부터 부인의 심경에 큰  변화가 온 듯 눈물을 흘렸습니
다. 집에 돌아가서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있을 때 방에 홀로 앉아서 또는 산책을 하면서 시
어머니가 살고 계신 쪽을 향해  "시어머니, 당신을 독사로 잘못 보았던  저를 용서하십시오. 
당신은 관세음보살입니다"를 되풀이해서 귀에  들릴 만큼 외우십시오.  시어머니 듣는 데서 
직접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한 방법이 어째서 심신에 강력한 변화를 일으키는가는  `화해와 축복의 산책`을 이야
기할 때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 부인이 일주일 가량을  온종일 시어머니 쪽을 향해서 그렇
게 시키는 대로하였습니다. 뜨거운 눈물도 많이 흐르고 시어머니가  차츰 좋게 느껴지기 시
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시어머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는데 말입니다. 적대감으로  꽉 
차있던 부인의 눈꺼풀이 편안히 풀리게 되었고 얼굴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 
방법이 맘에 드신다면 매일매일 아주머니가 완전히 편안해질 때까지 몇 달이고  계속하라고 
권했습니다. 
  서너 달쯤 후에 이 부인이 아파트 이웃들이랑 같이 내게 찾아왔습니다. 얼굴이 밝아져 있
어서 딴 사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부인에게 놀라운 이변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제 수면제 같은 약을 먹지 않아도 푹 잘 수 있고 몸도 편해졌지만 그보다도 오늘 아침 시
어머니한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는데 "너희들 사는 아파트가 너무 작으니까 좀더  큰 곳으
로 옮기거라. 내가 돈을 대줄 테니까"했다는 것입니다. 종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
니다. 너무도 놀랍고 기뻐서 이웃 사람들이랑 내게 찾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이 부인이 시어
머니를 독사로 보았던 신념을 빨리 경험하여  끝내고 밝은 관세음보살로 신념을 바꿔  가진 
결과 시어머니가 관세음보살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16세기의 위대한 의학자 파라켈수스는 이 부인 같은 경우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 몸이 아파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의 반 이상은 각종 검사를 해도 별 이상 소견이  찾아지
지 않는 경우입니다. 따라서 약물 같은 치료가 큰 효험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가 하면 과학혁명 이후 지난 1백년 동안 현대의학이 물질의학 쪽으로만 빠진 탓
입니다. 요즘 현대 의학에서도 이런 데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아이오아대학 
웰레스 교수 같은 이는 <깨달음의 신경생리학>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신념 및 정서와  건강
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알코올-마약  중독, 자살 기도 같은 심리적 문제
뿐만 아니라 암과 에이즈 같은 끈질긴  난치병의 배경에도 어두운 신념과 감정이  파괴적인 
에너지 소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하면  건강의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암 환자의 의학적 치료결과가 좋은  경우 대부분 그 치료과
정에서 어두운 신념, 감정, 생활 태도가 바뀐 사람이 잘 치료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돈에 대한 바른 신념 갖기
  돈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항상 있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대개는 나한테 돈이 부족하니 
더 많이 있으면 좋겠다고 갈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이란  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 있
을 때, 내가 하는 일이 즐거울 때 자연히 따라오는 에너지라고 합니다. 따라서 돈을  몇백만 
원 몇천만 원과 같이 수량적인 단위로만 보지 말고 좋은 일과 좋은 감정에 따라 다니는  에
너지 흐름으로 바라보는 것이 돈에 대한 가장 좋은 신념인  것입니다. 돈을 대할 때도 사람
이나 다른 사물을 대할 때와 같이 배척하는 저항도 갖지 말고 반대로 그것을 집요하게 쥐려
고 하는 욕망도 떠나서 자연스런 흐름으로 이해하고 감사하며 바라보면 돈으로부터  비롯되
는 돈으로부터 비롯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빚을 주었다가 떼인 후 고민하여 몸에 병을 만든 분들이  가끔 병원에 옵니다. 이런 분들
은 빚을 준 내게는 잘못이 없고 빚을 떼먹은 상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이 고통
은 공동창조이며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내가 지어낸 것입니다.  내게는 책임이 없고 상대에
게만 책임이 있다고 잘못 보는 데서 고통이 비롯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책임을 지는 것이고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화병을 만든 분들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것은 내 책임이라고 인정하며 상대를 원망하지 않게 될 때 비로소 어떤 
약으로도 듣지 않던 병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서  경제적 어려움도 차츰 풀리겠지
요. 내게는 책임이 없다고 끝끝내 고집하며 원망하고 있으면  병도 깊어지겠지만 여러 모로 
경제적 고통이 가중될 것입니다. 
  내가 겪고 있는 모든 현실은 나의 신념과 생각의 반영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내 책임이지
요. 이 원리는 돈에 대해서도 틀림없이 적용된다고 봅니다. 다른 현실과 마찬가지로 돈도 나 
자신의 신념과 생각의 반영입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싶다고  갈망하여 돈을 벌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데도 돈이 생기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잘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
시 오래 전부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돈에 대해 저항하고 있지나 않은지 말입니다. 
  돈은 더러운 것이다, 부자들은 양심이  불량하다, 돈이 모든 부정의  근원이다, 나는 항상 
돈이 없어 쩔쩔매고 있다, 돈은 절대로  쉽게 벌리지 않는다, 청빈한 삶이 아름답다....  등과 
같은 믿음을 한 편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돈이 안 생긴다고 한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
겠습니까? 돈은 선과 악의 잣대로 저울질할 대상이 아닙니다.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는 대중신
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착하고 선한 일에는 반드시  번영과 행복이 뒤따를 때 그
러한 일들이 오래 지속되고 더욱 확대될 수 있지 않을까요?
     
    죽음에 대한 편안한 신념 세우기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는 일과 함께 가장 큰 사건입니다. 그래서 생사대사라
고 하지요. 따라서 일생에 가장 큰 일이 생사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
의 문제는 다른 사람이 대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현대의학이나 병원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해소시켜주지 못합니다. 각자의 종교나 철학적 관점에 따라  죽음에 대한 견해가 다
르겠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죽음 같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몸이 사라
지는 것을 보고 죽음이라고 여기는 것은 평소  `몸이 나다'라는 착각과 환상을 가졌던 탓이
지요. 우리의 몸이란 이를테면 우리가 입고 있는 옷과 같은 것이지요.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날마다 똑같은 옷을 계속 입고 있다면 어느 땐가는 싫증이 나지 않겠습니까? 자연히 그 옷
을 벗게되고 새 옷으로 갈아입게 되겠지요. 묵은 옷을 벗는다고  해서 내가 끝나는 것은 아
니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특정종교의 윤회설을 옮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이란 우리 생명의 근원인 의식이 새로운 단계의 경험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음의  본체를 바로 알고 그 본질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면 그의 삶은 어떤 성취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큰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태어나고 죽는 것이란 생명의 근원인 순수의식의 한정 없는 바다 위에 파도가 떠
올랐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천파만파 수없는 파도가 모습을 보였
다가 사라졌다를 계속할 지라도 바다라는 하나의 큰 생명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생명의 근원에서 보면 생사가  없으며 `참 나'는 바다라는  하나의 큰 생명으로서 
영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의 파도로서의 내 몸의 모습은 나의 신념대로 나타났
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지요. 
  몸이 내가 아님을 바로 알고 그 몸을 품고 있는 한정 없는 의식의 바다가 `참 나'임을 안
다면 의식의 바다 위에 잠시 떠올랐던 파도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죽음이라
고 애석하게 여길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자유롭고 편안함을 얻는 길
  불편한 감정이 내 몸의 병으로, 내 생활의 고통들로 현실화됩니다. 어떠한 원리 때문에 불
편한 감정은 불편한 몸으로 표현되며, 불편한 감정을 지우면 어째서 즉시 몸에 변화가 일어
나는가?
  근원의식에서 나온 개체의식은 `내가 있다'라는 첫 번째 신념에 이어 대상을 좋다, 싫다로 
구분하여 판단하는 두 번째 신념을 대체로 갖게 됩니다. 어떤 현실을 나쁘다고 판단하여 그
렇게 믿으면 불편한 감정, 불편한 생각이  나오겠지요. 이 불편한 감정과 생각이 몸의  모든 
세포가 저항의 파동으로 공명진동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질병을 일으키는 최초의 씨가 되지
요. 현대물리학은 의식으로부터 나오는 생각, 감정은 아무런 힘도 없는 허무가 아니라  진동
수를 지닌 파동이며 에너지가 있는 물질입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통스런 감정의 파동이 
저항의 전기적 성질을 띤 구체적인 물질입자가 되어 몸의 세포를 이루는 질료가 되지 않겠
습니까? 
  그러므로 "화해와 축복의 산책"과 같은  방법을 통해서 불편한 감정을 짧은  시간 동안에 
경험시키고 나면 몸이 그것을 오랫동안 끈질기게 다시 경험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을 잘 돌이켜보아 다른 대상에 대해서이든 자기자신에 대해서이든 불편한 감정이나  생
각이 있다면 불편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게 될 때까지 이런 실천방법을 계속할 필요가 있
습니다. 정말로 불편한 감정이 다 사라진다면 우리 몸과  생활이 틀림없이 편안해질 것입니
다. 
  이어서 `모든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잘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묻기를 어떻
게 나쁜 일이나 악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들  합니다. 어떤 것을 나쁘다거나 
악이라고 보는 것은 판단입니다. 사람들의 이러한 판단은 거의가 빗나간 것입니다. 설사  어
떤 사람이 나쁘고 악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공동창조한 것이며 실은 나의 현실에  비치는 
모든 일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 악을 범한 사람이 따로인 것 같
지만 앞서 말한 대로 파도와 파도가 따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원에서는 하나의 큰 바다이
듯이 나를 하나의 파도로 간주하여 다른 파도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너 따로 나 따로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요. 아무튼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결정적  열쇠는 특히 싫어하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저항 쪽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는 마음
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로 풀어내어 자유롭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그것이 생겨 나온 최초의 바탕인  의식에서 해결되어야 하듯이, 몸
의 고통들도 그것이 만들어진 최초의 바탕인 의식에서 다룰 때 뿌리째 해결될 것입니다. 질
병에 대한 치료와 예방 그리고 건강증진에 대한 근본목표, 밝은 세상과 생명의 문명으로 진
화하는 데 대한 근본 목표는 결국 각자가 자기 삶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삶에서 균
형을 이룬다함은 자신이 현실과 자기 우주의 절대적 책임자임을 자각하고 새로 깨어나는 입
장에서 삶을 운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책 가운데 어떤 내용은 다소 전통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인상으로 비쳐질는지  모르겠
습니다. 과학적인 신념체계의 관점에 사로잡힌 사람의 눈에는 더욱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
지요. 어떤 관점 하나만이 옳다고  고집하게되면 사물을 다른 식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고 맙니다. 사물을 다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을 억제하다 보면 다차
원화하고 통합시키고 예측하는 능력 또한 제한됩니다.    
  주입된 신념과 관점들이란 일시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개는 
힘을 잃게 됩니다. 
  나는 한때 미국 위스컨신대학 의과학센터에서 연구교수로 지낸 적이 있었는데, 이때 도서
관에 소장된 여러 종류의 의학잡지를 창간호부터 두루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개 1백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저널이었는데 당시 내가 느낀 바는 1백년 전이나 50년 전의  의학의 
모습이란 현대인들의 눈으로 볼 때는 참으로 우스운 골동품 같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러나 늘 시간과 공간의 한계 너머
로 나아가 사물을 바라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훈련들이 가능하며 또한 유익하다는  것을 이 책 속의 여러 
가지 사례들이 보여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여러 차원, 여러 관점에서  사물을 융통성 있게 보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이 
관점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식의 신념을 주입시키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 관용과 자비심이 커지게 되고 사물을 바로 보는 지혜와  능력도 개발됩니다. 있을 수 있
는 모든 관점에서 진실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인생의 근본목적은 생명의 본성을 자극하고 체득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
나 그것은 지식이나 학문처럼 머리로 알기를 통해서는 성취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경험하
기를 통해서만 깨달아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성인들의 위대한 생명의 메시지가 가슴으로부터 자각되도록 하
기 위해서 되도록 감성이 깨어날 수 있는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이 책은 어떤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학술서적이  아닙니다. 머리로 따져 생각하
는 것을 그만두고 가슴으로 느껴 경험하는 길로 가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입니다. 

  자연계 우주만물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인 당신의 생명에 대하여 어떠한 한계나 제약도  상상하지 마십시오. 온 우주
가 당신의 품에 들어오도록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지금이야말로 당신의 삶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오기  위해 일생동안 기다려 왔던 바로  그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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