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는 그의 치아, 머리털, 폐, 심장 등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쓰지만 나의 존재에 대해서는 거의 의식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조의 간이다. 그가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다면 나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흔히들 짐작하는 그대로 생겼다. 나는 조의 몸 속에 있는 가장 큰 기관이며 무게는 1.4kg이나 된다. 갈빗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내가 조의 복부 오른쪽 윗부분을 거의 채우고 있다.
외모는 별나게 생겼지만 나는 조의 기관들 중에서 가장 솜씨가 뛰어난 존재이다. 복잡하다고 일컬어지는 심장이나 폐도 나의 복잡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500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데, 만약 내가 그 중의 한 가지만이라도 실수한다면 조는 장례식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는 조가 하는 거의 모든 일에 참여한다. 그가 골프를 칠 때는 연료를 공급해 주고, 아침식사로 베이컨을 먹으면 그것을 소화시켜 주며, 그가 밤에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타민을 제조한다.
내가 하는 일 중 비교적 간단한 일들을 큰 화학공장에서 해내려고 하면 아마 부지가 몇 에이커(1에이커 4.047m²)에 달하는 공장을 새로 세워야 할 것이다. 좀 어려운 일들은 화학공장에서도 도저히 해낼 수 없다. 나는 나의 화학적 변환작용을 담당하는 1,000여 종의 효소를 생산해 낸다. 내가 생산하는 응고인자가 없다면, 조는 손가락을 베여도 출혈이 그치지 않아 죽고 말 것이다. 나는 조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항체도 만들어 낸다. 조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장이 분해해서 만들어 낸 아미노산은 그의 혈류 속에 들어가면 청산칼리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나는 이들 아미노산을 '인간화' 시킨다. 다시 말해 나는 아미노산을 인체단백질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의 신체가 필요로 하지 않는 잉여물질이 있으면, 나는 그것을 요소로 바꾸어 신장으로 보내 배설시킨다.
조의 부신은 염분을 보존하는 호르몬을 생산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양을 생산하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조의 몸이 퉁퉁 부어 오르게 된다. 그 초과분을 내가 파괴해 준다. 나는 심장에 대해 일종의 안전판 구실도 한다. 나의 위편에는 조의 심장과 직접 연결된 암갈색 정맥이 있다. 만약 혈액이 갑자기 밀려들어 심장의 운동이 부자유스럽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나는 부풀어올라서 해면처럼 피를 빨아들인다. 그런 다음에 심장이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그 피를 되돌려 준다.
나는 뛰어난 해독자이다. 어떤 독성 물질 예컨대 니코틴, 카페인 및 조가 매일 섭취하는 갖가지 약품 등 을 심장으로 연결된 나의 나가는 핏줄 속으로 투입하면 조는 몇 분 안에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내게로 들어오는 핏줄에 그것을 투입하면 나는 혈액이 나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6∼10초 사이에 그 독성을 깨끗이 뽑아 버린다. 조가 마시는 칵테일 속의 알콜성분도 내가 무해한 탄산가스와 수분으로 분해하니까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의 혈액 속에 축적되어 치사량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나는 한 시간에 하이볼 반잔이나 맥주 4분의 3캔 정도를 처리할 수 있다. 이런 속도로 마시면 조는 아무런 취기도 느끼지 않고 계속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는 그보다 빠른 속도로 마시기 일쑤다. 그래서 나는 종종 밤새도록 일을 해야 한다.
물론 인체에서 생산되는 물질 중에도 너무 많이 축적되면 유독한 것이 있다. 나는 그런 물질들도 항상 체크한다. 조가 골프를 칠 때 그의 근육은 글루코스(포도당)를 태우면서 잠재적 위험성을 지닌 물질인 유산을 만들어 낸다. 나는 유산을 내버리지 않고 글리코겐으로 변환시켜 저장한다. 나는 낭비를 모르는 매우 알뜰한 주부이다.
조가 초콜렛을 먹으면 그 속의 설탕이 장에서 혈당(글루코스)으로 바뀐다. 이 글루코스가 혈류 속에 너무 많이 유입되면 조는 마치 인슐린 공급을 받지 못한 당뇨병 환자처럼 혼수상태에 빠져 죽고 만다. 내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한다. 만약 혈액 속에 글루코스가 너무 많으면 나는 그것을 풀 같은 글리코겐으로 변환시킨다. 이같은 방식으로 나는 설탕 200g에 해당하는 당분을 저장할 수 있다. 이렇게 저장했다가 끼니와 끼니 사이에 혈당량이 떨어지면(너무 적은 것도 많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해롭다), 나는 글리코겐을 다시 글루코스로 변환시켜 혈류속에 공급해 준다.
적혈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초마다 1천만 개의 적혈구가 죽는데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처분되어야 한다. 나는 그 파괴된 적혈구를 보존해서 새로운 적혈구를 만드는 데 두고두고 이용하도록 한다. 나는 또 그 중의 일부를 이용해서 황록색의 쓴 소화액인 담즙을 하루에 1퀴트(1.14ℓ)씩 만들어 낸다.
담즙은 대개 나에게서 담낭으로, 다음에는 위와 소장 사이에 있는 십이지장이라는 작은 주머니로 이동한다. 담즙은 식사할때 분비되어서 지방분을 소화될 수 있는 수용성의 작은 입자로 분해한다. 담즙은 또한 지방질의 퇴적물을 씻어내 줌으로써 나의 통로들이 막히지 않게 해준다.
내가 담낭 속으로 끊임없이 공급해 주고 있는 담즙에는 또한 적혈구가 파괴되어 생긴 폐기물인 두 가지 색소가 들어 있다. 하나는 빌리루빈(적색 담즙)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빌리베르딘(녹색 담즙)이다. 이들 색소가 혈류 속에 너무 많이 유입되어 피부와 눈동자에 노란 반점이 생기는 황달을 유발시키는 수가 종종 있는데, 이런 증상은 병이라기보다는 나한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신호이다.
황달의 원인은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다. 말라리아나 어떤 종류의 빈혈 같은 질병에 걸려 적혈구가 빠른 속도로 파괴될 경우, 파괴된 적혈구에서 생긴 색소가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축적된다. 담낭이나 담관에 장해가 생겨도 색소가 늘어날 수 있고, 이들 색소가 혈류 속에 넘쳐 들어와 황달이 유발될 수 있다. 또는 간장염이나 기타 질병에 의해 나의 일세포에 염증이 생기거나, 지방질에 의해 내 속의 통로들이 막히는 경우 나는 색소를 배설할 수가 없다. 그러면 나는 큰 곤란을 겪게 된다.
그렇지만 나는 엄청난 잠재력과 재생력을 갖고 있다. 질병으로 인해 내 일세포의 85%가 파괴되어도 나는 내 할 일을 계속할 것이다. (사실 이런 잠재력은 나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조가 어떤 경고를 받기 전에 내가 아주 위험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 수술을 받아 내 몸의 80%가 잘려 나가도 나는 여전히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나는 또한 대부분의 다른 기관들은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다. 즉 불과 몇 달 사이에 나 자신을 재건해서 정상적인 크기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간장염은 나의 일세포를 수백만 개가 때려눕힐 수 있다. 그러나 수주일 지나면 이 바이러스감염은 보통 가라앉으며, 그러면 나는 손상된 부분을 수리한다. 대개의 경우 나는 정상상태로 되돌아간다.
지방분이 침투해도 매우 심각한 사태가 야기될 쉬 있다. 지방분이 일세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방분이 너무 많이 침투하면 나는 부어 오르고 예민해진다. 지방분은 혈류 속으로 파고 들어가 중요한 기관들에서 혈관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더욱이 지방질의 침투는 더욱 심각한 사태로 발전할 수도 있다. 내가 아무 쓸모 없는 섬유질 조직으로 대체되는 사태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쪼그라들고 딱딱해지며 혹 같은 것이 생기고 색깔은 누르스름한 병색을 띤다. 이것이 간경변증인데, 생명에 위험이 되는 적신호이다.
무엇이 간경변증을 일으키는가?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감염에 의해서도, 비소나 가타 약품들의 중독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발병의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이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바로 빈약한 식사와 알콜이다. 부실한 식사를 하고 하루에 340g의 위스키를 계속 마시는 사람의 경우, 거의 틀림없이 지방성 간으로 발전하며 거기서 더 나아가면 간경변증이 된다. 다행히 조의 간은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 손상된 부분이 띠 모양으로 몇 개 나타나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충분한 일세포가 남아 있다.
나는 '과묵한' 기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몇 가지 방식으로 불평을 한다. 만약 조가 심한 피로를 느끼거나 식욕을 잃거나 복부가 부풀어오르거나 하면 나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만약 그의 상체에 있는 거미 모양의 핏줄이 팽창하거나 황달증세가 나타나면 가능한 한 빨리 의사를 찾는 것이 좋다.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나안지를 확인하기 위해 의사들은 몇 가지 방법으로 검사를 한다. 한 가지는 물감(브롬설퍼레인)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만약 내가 최고의 컨디션에 있다면 그 물감을 45분 이내에 제거해야 한다. 또 하나 널리 쓰이는 방법은 혈액 속의 빌리루빈 색소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 양이 너무 많으면 나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늘을 나한테까지 찔러 넣어서 내 조직 중심부의 일부를 떼어서 검사하는 것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조가 이런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설사 간경변증으로까지 진전되었다 해도 의사들은 나에게 가장 많이 생기는 이 심각한 문제를 다루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다. 의사들은 조를 입원시킨 다음 고단백질의 영양식과 다량의 비타민을 공급할 것이다. 그리고 알콜은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고 경고할 것이다. 이러한 치료를 받으면 나는 새 출발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불유쾌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선 체중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가 살이 찌면 나한테도 지방질이 낀다. 비타민, 특히 비타민 B군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알콜을 적게 섭취하고 분별 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최소한의 주의만 기울여 주어도 나는 조를 위해서 만능화학공장으로서의 나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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