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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헤비타트

아이디어가 폭발하다.

by Healing New 2020. 9. 20.

  처음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KGO 라디오 방송국의 일요
일 아침 토크쇼에서 인터뷰를 할 때였다. 당시 나는 10일간의 강연 때문에 
출장중이었는데, 일정에 따르면 서부지역 8개 도시에서 각기 몇 차례씩 방
송출연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때가 1981년 4월이었다.
  이 주에서 저 주로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나는 주위에 펼쳐진 한없이 다
채로운 봄날의 풍경에 찬탄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정거장 하나하나를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꾸며 놓으셨고, 매년 그렇듯 4월의 색채들을 현란하
게 터뜨리고 계셨다.  하지만 바로 그 일요일  아침 폭발했던 것은 색채가 
아니라 아이디어였다.
  6시에서 9시까지 방송했던 그  라디오쇼는 당시 5년째에 접어든 '헤비타
트 운동'에 동참하는 모임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식의 전형적인 인
터뷰로 시작되었다. 당시 헤비타트는 제3세계 국가에서 세 군데, 미합중국 
내에서만 열한 군데에서 가난한 가족들을 위해 집을 새로 짓거나 개축하고 
있었다.
  연합 그리스도 교회의  목사인 탐 헌터가 매주  방송하는 그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고 있었다. 우리는 10여 분 동안 헤비타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
었다. 그런 뒤 헌터가 전화로  청취자들의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어떤 사
람은 우리가 짓는 집의  양식이 무엇인지 물었고, 대금상환 방법과 기본이
자를 궁금해 했다, 어떤 청취자는 정부지원금도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렇게 많은 집을 지을 돈을 구하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믿음
으로 일하고 있으며, 모든 자금과 자원과 노동력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꽤 시간을 들여 설명해야 했다.
  다음 전화를 받자, 어떤 여자가 짤막한 질문을 던졌다.
  "헤비타트 운동의 목표가 무엇인가요?"
  그때까지 이렇게 귀중한 질문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내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즉각 대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지구상에서 극빈주택을 완전히 추방하는 것입니다."
  나는 깨달았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총체적 비전이다. 1969년 이래로 
수 년 동안 우리는 '코이노니아 동지회'(Koinonia Partners)가 극빈세대를 
위해 집을 짓는 운동을 꾸준히 계속해온 이 곳 조지아 주 섬터 카운티에서 
극빈주택을 추방하겠다고  말해왔다. 헤비타트 운동의  아이디어가 탄생한 
것도 따지고 보면 '코이노니아'에서부터였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내 다른  지역과 전세계 곳곳에서 주창된 
헤비타트 운동이 알려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여기에서 할 
수 있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끝없이 늘어나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붙드는 일이었다. 도움을 방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팔을 걷어붙이고 도우러 
나선 사람들의 삶과 생활양식도 극적일 정도로 뿌리부터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광활하고 막막하기만  하던 풍경이 또렷한 
초점으로 사진에 찍힌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조지아나 뉴햄프셔나 과테말
라나 자이레에 수백  채, 수천 채의 집은 짓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목적은 미합중국의 모든 주와 온 세계 모든 나라
에서 극빈주택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청취자는 여전히  전화선 저쪽 끝에서 수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지구상의 모든 극빈주택이 사라지게 되면,"
  나는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었다.
  "다른 일을 시작할 겁니다!"
  그는 다시  숨을 몰아 쉬었다.그러더니 들릴락말락하게  웃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곧 방송국에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정말 굉장한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면 참여할 수 있을까요?"
  "어디에서 오셨다구요? 주소를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우리 이웃에도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데요, 자세한 정
보를 우송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대담한 목표가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사람
들은 이 운동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비전을  보았다. 궁지에 빠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며 두 손과 마음을 모으면,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비전을 말이다.
  그 날 아침의 토크쇼 덕분에 기쁨에 들뜨고 새 힘이 솟는 기분으로 며칠 
후 아메리쿠스에  있는 헤비타트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
다. 라디오에서 선언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너
무나도 많았다!
  나는 그 후 몇 달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강연할 때마다 이 목표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제 온 세상에서 판잣집은 모두 없애버릴 때가 왔습니다!"
  나는 헤비타트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자 하시는
지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진지한 고민을  많이 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엄청난 목표를 이루려는 거지요?"와 같은 
불가피한 질문에 튼실한 대답을 준비해야만 했다.
  내게는 모든 대답이 명백했다. 하지만 재 생각을 다른 이들과 나눌 만한 
새로운 기회를 끊임없이 찾아 나섰다. 이 책도 그러한 모색 중 하나이다. 
  극빈주택을 어떻게 추방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한마디로 그것을 
양심의 문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적절한 은신
처를 가질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일깨우고 행동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조
치라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우리는 이 일을 동역관계의 정신으로 해낼 
것이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과 동역관계를  맺고 있다. 헤비타트가 개인들이 모
여 벌이는 운동에 불과하다면,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
은 하나님의 운동이며, 그 무엇도 주님을 막을 수는 없다.
  둘째, 우리는 서로 동역관계를 맺고 있다. 헤비타트 운동의 가장 근사한 
점은 평소에 전혀 어울려 일하지  않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그 어디서
나 같은 명분을 위해 함께  일한다는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고등학
생과 노인,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로마카톨릭과 기독교, 인종과 민족
을 초월해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우러진다. 설교하는 방식, 옷입는 방식, 세
례와 성찬 방식, 하다 못 해 성찬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조차 다른 사
람들이 함께 망치를 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못을 박을 수 있
다. 못 한 개에 마음을 모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러한 이중의 동역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우리는 전세계의 개인과 조직
의 양심들을 일깨워 우리의 명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모두 함
께 힘을 모아, 우리는 판잣집을 없애버릴 것이다. 단 한 채도 남김없이!
  헤비타트 운동 국제 이사회의 회장인 데이빗 로우는 매사추세츠 주 멜로
즈의 제일 침례교회 목사이다.  1985년 가을 데이빗과 부인 보니는 교회의 
주말 봉사단을 이끌고 메인 주 포틀랜드에서 열리는 헤비타트 행사에 참석
했다. 이틀 동안 포틀랜드  최초의 헤비타트 주택의 지붕을 올리며 합심해 
일한 사람들은 23명이었다.  가장 어린 아이는 열  살이었고, 가장 나이가 
든 사람은 여든 살이었다.
  포틀랜드의 헤비타트 사람들은 꼭 필요한 곳을 골라 사랑의 증거물을 쌓
기 시작했다. 다 낡아 쇠락해가는 동네 한가운데 쓰레기가 잔뜩 쌓인 모퉁
이 공터였다. 그들이 지은  첫 집은 복식주택이었다. 9월의 싸늘한 토요일 
아침 매사추세츠에서 메인까지 자동차 다섯 대에 나누어 타고 온 자원봉사
자들이 그 곳에 도착했을 때에도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공사장 앞에 차를  세우자 아마 그 곳에 사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깡통 
스프레이로 커다랗게 휘갈겨 썼을  법한 글자들이 손님을 맞았다. 낙서 몇 
개는 인용할 수도  있다. 데이빗은 그 낙서들이  성령의 감화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는데, 나도 동감이다.  포틀랜드의 반쯤 지어진 건물 한쪽 
벽에는 경멸조로 '완전히 미친  헤비타트'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
던 것이다.
  만약 '미쳤다'라는  말이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뜻밖이고, 흔치 
않으며, 심지어 받아들이기 힘든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뜻한다면, 헤비타
트는 그 수식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원봉사자들은 자기 생애의 몇 달,  또는 몇 년을 아낌없이 바치며, 후
원자들은 엄청난 돈뭉치를 아낌없이  내어 놓는다. 그리고 고 임금의 전문
직 종사자들은  시간과 기술을 아낌없이 제공한다.  가난한 가족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기  몫의 땀방울'을 흘린다. 미합중국의  전직 대통령 부부고 
작업복을 입고 몇 주 동안이나 육체노동을 한다. 참여한 보든 이들은 서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전세계  곳곳에서 집을 짓고 있다. 아무도 영리를 
챙기지 않고, 주택 소유자들도 이자를 부담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
들에게는 모두가 미친 소리로 들리리라.
  기원후 1세기에는, 이미 오래전 죽은 순회 랍비를 추종하는 일단의 사람
들을 조롱조로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다. 이 고집 센 무리는 맡은 
사명을 다하고자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졌을 때에도 여전히 조롱을 감내해
야 했으며, 그보다 훨씬 더한  고난도 이겨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
을 바꾸겠다는 어리석은 목표를 흔들림 없이 지켰다. 역시 신앙심 깊은 그
리스도인들의 모임인 헤비타트 운동은 20세기에 도 하나의 엉터리 같은 목
표를 향해 믿음으로 일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지구상에서 극빈주택의 
자취를 지워버리겠다는 목표이다.
  뉴욕 시에서 열린 1985년 가을 이사회에서 데이빗 로우는 포틀랜드의 낙
서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광기를 결코 버리지 말자"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우리는 "미친 이대로  바보천치가 되어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세상에 어울리지 않게 보이며,  엉뚱하기 짝이 없는 생각으로 세상이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행동을 하자"고  했다. 언젠가 "우리가 세상의 눈을 바꿀 
때까지" 말이다!
  오래 전인 1976년 9월, 뜻을  함께 한 동역자들과 협동 주택건설의 개념
을 지지하는 후원자들 27명이  아메리쿠스 근처의 코이노니아 농장에 모였
다. 그들은 11개 주와  다양한 기독교 단체의 대표자들이었다. 3일동안 심
도 깊은 토론과 기도를  마친 결과, 헤비타트 운동이라는 아이디어가 형체
를 갖추게 되었다. 그 모임의 묵상시간에 나는 금세기초의 탁월한 미국 건
축가였던 대니얼 허드슨 번햄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함으로써 참석자들
의 의욕을 북돋았다. 
  작은 계획은 세우지 말라.
  그 안에 사람의 피를 끓게 할 마법이 없다. 
  큰 계획을 세우라.
  기억하라. 우아하고 논리적인 도표는
  일단 기록되면 결코 죽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 우리가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그것은 살아, 끝없이 성장하는 생명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할 것이다.(Thomas S. Hines,  Burnham of Chicago, 
Architect  and   Planner,  2nd  ed.,(Chicago:University   of  Chicago 
Press,1974),401.)
  헤비타트 운동은 그의 말대로 큰 계획을 세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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