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모로 따져볼 ㄸ 지금 있는 자원으로도 충분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에
게 집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지구상에는 다양한 건축자재가
풍부하게 널려있다. 물론 필요한 물품이 특정현장에 당장 조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보다 집을 지을 때 창의성이 더 필요
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필요한 물자는 조달 가능하다.
더구나 세상에는 모든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고도 남는 돈이 있다. 대저택을 짓자는 이야
기가 아니다. 사우나와 수영장과 테니스장이 딸린 부유한 빌라를 짓자는 이야기도 아니
다. 그저 모든 가족들이 살 수 있는, 작지만 쾌적한 집 한 채씩을 짓자는 말이다. 그럴
만한 돈은 충분히 있다.
인력 또한 풍부하다. 지구상에 사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미 널빤지를 톱질하고, 모르타
르를 섞고, 벽돌을 쌓고, 지붕을 올리고, 못을 박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들은 집 짓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집을 짓는 데 꼭 능수능란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요즘
같은 과학시대에는 땅에서 솟아올라 끝없이 하늘로 올라가서 달까지 닿을 만한, 아니 달
보다 더 높은 고층 건물을 지을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아예 터를 닦을 필요도 없이 공
중에 둥둥 떠다니는 구조물을 짓기도 한다. 그러니 옛날처럼 터를 닦고 단순한 집을 한
채 올리는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더 나아가 우리는 전세계에 걸쳐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는 인구를 수용할 새로운 종
류의 자원들을 사용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수요에 따라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다. 물론
독창성과 헌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인간적인 주거지를 위한 국제연합 센터'에서 후원하는 '부주택자를 위한 보금자리 마련
의 해' 회장직을 역임한 바 있는 존 E. 콕스는 <에키스틱스>(Ekistics, '인간적인 주거
지 문제와 과학'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를 따 제목을 정한 이 잡지는 주택공급의 전세계적
수요와 경향을 연구한다. 아테네 기술기구가 그리스에서 발행하고 있다)의 1984년 7-8월
호에 논문을 한 편 게재했다. 이 논문에서 콕스는 세계 전역의 빈민들에게 주택을 공급
하는 일의 어려움을 힘주어 강조하고 이 어려움을 해결할 일곱 가지 전략의 핵심을 열거
한 후, 다음과 같이 놀랄 만큼 낙관적인 발언으로 끝을 맺었다. "빈민을 위한 주택공급
은 단순히 해결가능한 문제일 뿐 아니라 20세기가 가기 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솔직히 나는 콕스의 시간표에 휘의적이다. 아무리 노력을 쏟아붓는다 해도, 2000년에도
여전히 비참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때까지 엄청난 진전
이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빈민을 대하는 태
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만 한다. 그리고 인류의 천재적 창의성을 한데 모아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집을 지어주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주택건설에 대한 창의적인 연구들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세키수이 헤임 회사에는 도요타가 자동차를 뽑아내듯 주택을 대량생산하는 공장이 여섯
개나 있다. 컴퓨터로 개별 주택을 설계하고, 공장에서는 각 방의 크기에 맞는 부품을 제
공한다. 이 부품은 로봇의 손으로 제작되어 주택부지로 운반도니다. 이 회사는 45분마다
한 채씩 집을 짓는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조립주택 건설회사는 미사와 주택이다. 이 회사의 회장인
치요지 미사와는 미래의 주택건설 자재는 실리콘과 세라믹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
리콘은 평범한 모래에서 추출하고, 세라믹은 모래와 진흙으로 만들어진다. 이미 세계 최
초의 세라믹 주택을 마케팅하고 있는 미사와 주택은 외벽을 PALC(미리 주물을 뜰 수 있
도록 고압처리한 경량 세라믹)라는 건축자재를 사용해 주형해낸다. PALC는 규토와 석회
암으로 만드는데, 원료는 모두 공장 근처에 이쓴ㄴ 언덕을 파서 충당한다.
빈민을 위한 조립주택은 남아메리카 콜럼비아의 '세르비비엔다'('저비용 주택공급 재단'
으로 번역할 수 있다)라는 기구에서 시범적으로 차용한 적이 있다. 나는 1978년에 이 단
체의 주요 생산 시설을 답사했다. 수도인 보고타에 본부를 둔 세르비비엔다는 천주교 신
부인 히메네즈 카데나가 창설했다. 본부에서 얇은 콘크리트 패널을 대량을 생산해서 트
럭에 싣고 각 건설부지로 운반한다. 수혜자 가족은 그 전에 부지를 준비하고 콘크리트
슬라브 바닥을 깔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몇 시간 뒤 집 한 채가 뚝딱 지어지는 것이다.
대규모로 건축을 한다 해도 자원과 기술력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일까? 그 대답은
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너무 약하기 때문일 뿐' 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간적인 주거지를 위한 국제연합 센터'의 부사무총장이자 실무이사인 아콧 라마찬드란
박사는 1984년 11월 2일 워싱턴 D.C. 에서 개최된 국제 주택공급회의에서 한 연설을 통
해 부동산업계가 나서서 세게의 주택공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그들
만큼 상황을 이해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어놓을 만한 세력은 없다고 만한 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했다.
무엇보다 부동산중개업자들은 개발할 만한 땅을 알아보고 집계하고 예비하는 일에 경험
이 많지 않습니까? 또 부지를 거래하고 법적 문제들도 도맡아 처리하지 않습니까? 게다
가 온갖 종류의 개발계획에 투자지원과 재정적 후원을 물색하는 것도 이들의 일이 아닙
니까? 수많은 국가에서 정부가 항시 증가하는 도시인구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토지
시장에 대거 개입하려 할 때 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고문역을 하며
비참하기 그지없는 빈민들의 토지소유권 문제에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을까요? 저
임금층에게 주택부지를 공급할 수 있도록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대규모 조치를 취할 수는
없을까요?
부동산 중개업자뿐 아니라 사회의 다른 단체나 개인들도 최소한 빈민들이 먹고 살면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소박하고 쾌적한 집ㅇ르 마련해주는 일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정말 의지와 욕구의 문제이다.
미합중국에서는 헤비타트 외에도 많은 민간기구들이 주택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뜻깊은 활동을 펼치고 있는 두 단체는 '앤터프라이즈 재단'과 '느헤미아 플랜'이
다. 전자는 워싱턴D.C. 의 '구세주 교회'가 펼친 '쥬빌리 주택공급계획'을 모체로 탄생
했다. 전국저긍로 유명한 개발사업가 제임스 라우즈가 설립하고 메릴랜드 주 컬럼비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엔터프라이즈 재단은 1986년 당시 25개 도시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
었다. 그 중 가장 야심찬 기획은 테네시 주 차타누가에서 진행중이던 프로그램으로, 이
단체는 1995년까지 이 지역에서 기준미달의 주택을 완전히 추방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
고 있었다.
라우즈에 따르면 엔터프라이즈 재단의 목적은 "단순히 극빈자들의 주택공급문제에만 매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들과 발맞추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며, 한 세대
안으로 빈민들에게 적당한 집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느헤미야 플랜은 1980년 이스트 브루클린 지역의 50개 교회가 합동으로 설립한 단체로
서, 브루클린에 있는 폐허가 다 된 인접지역들을 회생시키고자 일해왔다. 이들의 사업은
브루클린 동부에서 만 5,000채 이상의 주택을 짓는다는 비전과 함께 출범했다. 창립후 6
년 만에, 이 단체는 시에서 기부한 부지에 300채 이상의 집을 이미 준공했다. 이 주택들
은 수익금 없이 건축비용(대략 50,000달러를 약간 넘는다)만 부담하면 되고, 뉴욕 시에
서 10,000달러의 보조금을 제공해주며 세금감면 혜택도 받을 수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
되팔 때는 모두 즉시 반납해야만 한다. 구입자들은 계약금5,000달러만 지급하면 된다.
잔액은 집을 담보로 삼아 뉴욕 주로부터 시중보다 낮은 금리의 대부를 받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극빈자들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자금조달방식으로는 적절한
집을 마련할 처지가 못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교회 세계 봉사기구', '메노파 중앙위원회', '연합 감리교 구제 위원회' 등등 수많은
기독교관련단체 역시 전세계적인 주택위기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루지 주 컬럼비아에 본부를 둔 '창조적 사역'은 연합 감리교회의 기구로서 특히 제3세
계의 빈민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망명자들을 위해 작은 이동주택을 개
발했다.
많은 비종교단체들도 역시 저비용주택의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활동하고 있다. '협동주택
재단'은 원싱턴 D.C.를 본거지로 삼고 1952년부터 미국과 해외에서 저소득층의 주택문제
를 위한 개발게획을 기획, 추진하고 있으며, 전 미국인에기 적절한 집을 마련해주기 위
해 전국적인 운동을 벌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어도비 벽돌, 즉 태양건조 벽돌을
시험하고 있는 이 단체는 토건의 기술적 방법을 개선하여 저렴하면서도 내구성 있는 저
가주택을 지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전세게에서 현재 진행중인 민간단체와 정부의 모든 기획과 사업을 전부 합쳐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형편이다. 이러한 단체들의 노력은 일회용 밴드
노릇조차 하지 못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수백만의 백성들이 이토록 참혹한
상태에서 허덕이게 내버려 둔다는 것은 안에서 썩어 들어가고 있는 질병의 외부적 증후
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영적 자아를 깊이 살표보고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겨
치유할 때에야 비로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재능과
능력의 축복을 받았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이런한 선물들을 이기적인 목적만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이사야의 강력한 말씀을 다시금 곱씹을 필요가 있다.
장차 말하기르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
라"하리라.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르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줄 것이라.
그를 인동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가" 하셨느니나(사 57:14-19).
성경을 넘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생명의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자 하시는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이사야가 잊지 못할 웅변
으로 말했듯이, 빈민과 압제받는 자들을 도울 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하나
님은 좋은 것을 나누라고 명하셨다.
성경은 어려운 이들을 도우라는 주님의 명령을 잊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
는지 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모세는 부를 누리는 사람들을 경고했며(신8:11-14,17-19),
아모스는 북 이스라엘의 부자들에게 무시무시한 예언을 남겼다(얌 6:4-8). 또 세례요한
은 세레를 받고자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나무라고 소리높여 외쳤
다(눅 3:7-11).
이것이 진정한 종교이다.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 가난한 이들이 더 좋은 삶을
살게 해주는것, 회개하는 마음으로 행사는 것. 그럴 대 세상은 우리가 이기적이고 죄많
은 삶에서 돌이겼다는 사실을 말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성경 전체에 걸쳐, 주님을 섬기는 일과 가난한 이를 돔는 일은 서로 한데 얽혀 있다. 인
색한 부자에게 내릴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성경말씀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무서운 이
야기는 바로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은 부자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
고 날마다 호화롭게 연락하였다'고 하셨다. 이 부자가 누구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그 마을에서 잘 알려진 유지였음이 분명하다. 여러 개의 사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일 수도
있고, 유명한 스포츠 스타일 수도 있고, 인기 있는 연예인일 수도 있다. 또 '여자를 잘
만난'사람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부자의 문 앞에는
어떤 거지가 있었다. 아무도 그를 모를 뿐 아니라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는 말 그
대로 이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이야기의 특별한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름 없는 쪽은 오히려 부자였던 것이다. 부자는 '부자'일 뿐이다. 그러나 가난한 거
지에게는 '나사로'라는 이름이 있다. 그는 주님이 알아주시며 사랑하시는 사람이었다.
이 이야기에는 언뜻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깝짝 놀랄 만한 측면이 하나 더 있다. 부자는
사실 꽤 인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기적으로 나사로에게 식탁에서 남는 음식들을 주어
배를 채우도록 배려했던 것이다. 사실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이런 사람들은 다시 찾아
오지 않는 법이다. 부자는 남은 쓰레기들을 마당에 파 묻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했
다면 불쌍한 거지가 계속 돌아와 아름다운 풍경을 망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부자는 실제로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관심의 한계가 너무나 뚜렷한 것이 문제
였다. 그의 관심은 남는 부스러기 몇 조각을 던져주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러한 배려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갚아 주셨을까? 누가복음의 설명은 적나라하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눅 16:23).
최근에 이 강력한 이야기의 신랄함을 상기시켜주는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아메리쿠스의 부유한 유지인 한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밑고 끝도 없
이 돼 도로시의 집을 지어주지 않느냐고 따졌다.
"어떤 도로시 말입니까?"
"아시잖아요, 도로시 말이에요."
나는 내가 아는 도로시가 여러 명 된다고 말했다.
"우리 집에 8년이나 있던 하녀 도로시 말이에요!"
나는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혹시 성을 아시나요?"
여자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당신 사무실 근처에 사는 도로시를 모른단 말인가요?"
"아, 그 도로시!"
"자, 그럼 왜 도로시 집을 짓다가 말았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나는 도로시의 집 건축은 잠정적으로 연기되었을 뿐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집을 짓
는 데는 돈이 필요하니 기부금을 주시면 도로시의 집 공사가 한층 빨리 진척되리가고 넌
지시 이야기했더니 마구 화를 내는 것이었다. 이 여자의 배려는 하녀의 집공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정도를 넘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만큼의 관심은 없었던 것
이다.
당신은 빈민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름을 아실 만큼 깊은 배
려를 하는가? 아니면 그저 보통의 부자로서 이 세상에서는 잘 살아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름 없는 사람이 되려 하는가? 당신은 실질적으로 희생을 감수하면서 가진 것을 나누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모두 채운 뒤에야 남을 생각하기 시작하
는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깨워 주신다.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
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
로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나사로와 도로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관심은
쉽게 한두 마디 하고 남는 것을 좀 던져주는 정도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실질적인 선
물을 주고 의미 있는 행동을 통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뒤 재산의 절반을 털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눅
19:8). 또 예수님께서는 부유한 젊은이에게 재산을 전부 가난한 이에게 주고 그를 따르
라고 말씀하셨다(눅 18:22).
또한 늘어나는 재산을 쌓아두기 위해 점점 더 큰 헛간을 지었던 부유한 지주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종류의 탐심에도 미혹되지 않도록 경고하셨다(눅 12:15-20). 초대 교인들은
이 말씀을 온전히 이해했다(행 4:34-35).
사도 바울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문제에 대해 특별히 자세히 설명했다(고후
8:13-15). 그리스도인의 삶은 곧 재산을 기쁜 마음으로 내던지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물질적 즐거움을 누릴수 있고 그래야 하지만, 이 땅과 이 땅의 즐거움은 모두 주님의 것
이라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품고 있어야 한다. 내 몸같이 이웃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이
웃의 어려움을 내 것처럼 알고 우리 스스로에게 하듯이 이웃과 함께 모든 것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주님은 말씀과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 분명히 보여주셨다. 그리고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지듯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도
록 가르치셨다(마 6:10). 이 말씀을 재산 문제에 적용해보라. 천국에 과연 빈부가 있을
까? 어떤 사람은 먹을 게 너무 많아서 비만이 될까봐 매일 걱정하고, 다른 사람은 목숨
을 부지하기 위해 허접쓰레기를 주워먹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어떤 사람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가난의 지옥구덩이에서 허덕이는데, 한쪽에서는 특권을 누리는 소수층이 영
원히 부를 만끽하는 그런 천국을 상상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이 기도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오 ㅏ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곤 한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천국에서 우리가 살 곳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셨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나는 장례식에서 이 성경말씀을 경건하게 읽는 것을 많이 들었고, 사실 이 말씀은 그런
자리에 참 잘 어울린다. 하나님께서는 저세상에 그 백성들의 자리를 예비해 두셨다. 사
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가족에게는 참으로 위로가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성경말씀을 그런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들려주신 핵심적인 이유
를 놓치는 일이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사도들에게 저편에 준비된 자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은 남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기 위해서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천국의 헤비타트 운
동을 맡으신 것이다. 이것은 '이제 완벽한 집이 지어지고 있으니, 이 문제를 걱정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주님게서는 사도들이-또한 우리들이-이 땅에서 하나
님의 충실한 대리인이 되는 데 삶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기를 바라셨다.
천국의 집을 약속하신 뒤 곧바로 이어지는 놀라운 약속들을 들어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2-14).
이 약속은 요한복음 15장에서 두 번 더 반복된다.
예수님을 믿는가? 그렇다면 이 약속은 당신에게도 적용된다. 당신은 예수님이 하신 일보
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다. 너무나 믿기지 않는 말씀이 아닌가? 예수님은 그의 말씀대로
끊임없이 구하고, 주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끊임없이 넓히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나아가 '과실이 항상 있게 하겠다'고 하셨다. 우리가 맺을 과실 중 하나는
집을 갖지 못한 자에게 집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
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이나 금식은 '낯선 이를 초대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
서는 이 가르침ㅇ르 거듭 말씀하시며, 남을 초청하는 것은 곧 주님을 우리 집으로 모시
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헤비타트 운동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낯선 이를 '초청'한다. 우
리는 낯선 이를 위한 집을 지어 그들도 다른 이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기쁜 경험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삶은 신비로 가득차 있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많다. 그러나 삶에는 목적이 있
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께서 다른 이들을 부르셨듯이 나를 부르셔서 주님의
이름으로 나누고 섬기는 기쁨에 동참하게 하셨다고 믿는다. 내가 받은 무르심은(나는 이
것이 당신의 부르심이 되기를 바란다) 전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집
을 지어주고 다시 짓고 고쳐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손을 잡는 것이다.
헤비타트에서는 가난한사람들에 관한 성경의 이 모든 가르침을 '망치의 신학'으로 집약
했다. 이것은 우리가 망치를 도구 삼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세례나 성
찬의 방식이나 기도회를 갖는 요일이나 목사의 복장은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주님
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복음의 절대명제에는 우리 모두 동의할 수 있
다. 우리는 가난에 허덕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집을 짓는다는 생각에 동의하며, 이
윤도 이자도 없는 성경적 경제원리에 다르자는 데 동의할 수 있다.
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했던 설교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교황은 '인간적 주
거지를 위한 국제연합 센터'의 활동을 거론하며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나서 가
난한 이들에게 음식과 살 곳을 제공하기 위한 국제적 원조와 협력을 당부하였다.
우리는 집 없는 이의 얼굴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주님께서 보여주신 너그러운 희생정신에 따라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서 인간
이하의 환경에서 신음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동시에 좋은 뜻을 가진 모든
이들과 기쁘게 손을 잡고, 오늘날 절대적인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수백만의 인구에게 적
당한 주거지를 제공 해 주어야 한다는 이 뜻깊은 움직임에 동참해야 합니다…. 바오로6
세는 "개발은 평화의 새로운 이름이다"고 했습니다…. 음식과 주택을 마련해주기 위한
프로그램은 평화를 도모하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평화는 호의와 신뢰와 끊임없는 노력
을 통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국제 기구와 정부, 민간단체가 어려운 이들
에게 음식과 살 집을 마련해주기 위한 상식적인 노력에 매진할 때, 그리고 환경을 개선
하기 위해 함께 힘을 합쳐 일할 때, 그들의 노력을 통해 평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재산과 시간과 생각을 나누라는 성경의 명령은 선택조건이 아니라 필수조
건이다. 철학적 신착적 차이를 떠나 오직 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로 돕는 것은 의로
운 일이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신학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데 동의했다고 믿는다.
자, 이제 가서 망치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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