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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헤비타트

'적절한 기술'을 개발한다

by FraisGout 2020. 9. 20.

  헤비타트의 자원봉사자들은 민첩하고 유능해야 한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최대
한 발휘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술을 익힐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특히 전혀 다른 언
어와 문화를 사용하는 해외에서 일하게 되면, 예기치 않았던 어려움이 흔히 생기게 마련
이다.
1979년 11월, 뉴저지 세일럼 카운티의 팻 클락은 자이레의 응톤도로 파견되어 공동체 개
발을 돕게 되었다. 팻은 바로 그  해 초 스미스 칼리지에서 정치경제학 전공으로 학부과
정을 마친 참이었다. 처음 몇 달 간, 팻은 그 지역 목수들과 함께 일하면서 헤비타트 집
에 달 문과 창문과 골조 등을  만들었다. 다른 자원봉자가 아파서 자리에 눕자, 팻은 임
시로 자이레 음반다카로 자리를 옮겨 그곳의 사업을 지휘했는데, 여기에서 이 젊고 정력
적인 흑인 처녀는 무려 35명에 달하는  남자 노동력을 지휘해야만 했다. 그 중에 그녀의 
학부전공과 연관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응톤도로 돌아오자 그 마을 여성들이 문맹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업을 시작하려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응톤도에서 읽고  쓸 줄 아는 여성들은 손에 꼽을 정도
였다. 새벽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작업장에서 일하고  집안일까지 책임지다보니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강의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얼마 되지 않아 불
어, 영어, 그리고 영양학 과정까지 개설되었다.  바느질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팻
은 집에서 바느질  강좌를 시작해 마침내 100여  명의 여자들을 불러모으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헤비타트 사업을  후원하기 위한 자그마한 바느질  가게까지 열었다. 그때쯤에는 
이미 모임이 너무 커져서 응톤도에서는 더  이상 모임을 가질 만한 장소를 찾을 수가 없
었다. 
팻과 12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지역 위원회는 회의를 했다. 그들은 강의 프로그램의 성격
에 꼭 맞게 특별히 설계된 건물을 짓기 위해 엄청난 일을 떠맡기로 했다. 건축에 필요한 
40,000개의 벽돌을 직접 만들기로 했던 것이다. 
팻이 응톤도에  처음 소개한 열처리  벽돌은 그 지방의 진흙으로  빚어 한꺼번에 쌓아서 
5,000개씩 구워내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자 첫 집회에서 보여주었던 
여자들의 열성이 사그라드는 것을 발견했다.  이미 그들은 벅차도록 빡빡한 일과에 시달
리고 있었으며, 게다가 여자의 일은  농사일이었고 집을 짓는 것은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처음 두 주일 동안 팻은 매일  아침 혼자서 작업현장에 가서 벽돌들을 '던져넣곤' 했다. 
팻이 다른 일들을 하러 작업장에서 내려올 때면, 깔끔하게 빚어진 사각 벽돌이 또 한 줄 
정갈하게 늘어서 햇볕에 건조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여성 위원회의  위원 한 사람이 팻에게 다가와 정말 놀랐다는 표정
으로 외쳤다. 
"당신, 진심으로 벽돌을 만들겠다는 거군요!"
처음으로 그녀의 일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은 어느 벽돌제조업자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여자들 몇 사람이 정기적으로  작업장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성 위원회는 
벽돌을 만드는 일을 돕지 않는  사람들은 인기가 좋은 오후 강좌에서 배제하겠다는 방침
을 세웠다. 그때부터 벽돌을 만드는 사람들이 대거 현장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벽돌을 던지는 일은 힘든 노동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작업현장 주변에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진흙반죽은 세계 어디에서나 인기 좋은 놀잇감이다-엄마
들은 쉬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며 수다를 떨었다. 마을 남자들도 줄기차게 찾아
와 구경을 하면서, 여자들은 벽돌 따위를 만들 수 없다는 굳은 믿음을 내심 확인하고 싶
어했다.
특히 몇 번인가 작업을 지켜본 한 남자는 인상이 깊었던지, 팻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당신이 정말로 우리를 걱정한다는 걸  알겠군요. 이렇게 우리와 함께 일하니 말입니다. 
벨기에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우리와 같이 일한 적이 없습니다."
1982년 4월 25일, 응톤도에서 여성센터 건물의 헌정을 기념하는 대규모 축하행사가 열렸
다. 방문객들이 비행기로,  트럭으로, 마상이 카누로, 또  걸어서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수도 킨샤샤에서부터 330마일 이상의 거리를  달려온 사람도 있었다. 네 시간에 걸친 의
식은 흥겨운 춤과 노래, 감격에 찬 연설과 발표로 장식되었다. 
팻은 또 하나의 특별한 선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여성 위원회 위원 12명은 식장
을 떠나면서 자랑스럽게 새 티셔츠를  치켜들었다. 앞면에는 헤비타트 로고가 그려져 있
었고, 뒷면에는 링갈라어로 '바시 나 톤도'(응톤도의 여성들)라는 단어가 꼼꼼하게 수놓
여 있었다. 
그 지역의 토산자원을 이용해 벽돌을  만든 팻의 노력은 제3세계의 물적, 사회적 개발에 
의미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새롭게 접근한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이것이 보통 우리
가 '적절한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헤비타트는 서구세계에서 개발도니 것처럼  노동을 아끼는 자본집약적 기술을 거부하고, 
의식적으로 그 반대로 일하려고 신경을 쓴다. 즉 노동은 아낌없이 투자하되 자본을 아끼
는 방식을 쓰는 것이다. 우리는  수세대 전의 테크닉으로 돌아가거나, 20세기 후반의 지
식으로 오래 전의  기술을 보강한다. 이것은 또한 팻  클락이 응톤도에서 이룩한 업적처
럼, 그 지역에서 사용가능한 인력과  천연자원을 최대한 철저하게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
다. 
헤비타트가 일하고 있는 수많은 나라의  물가인상률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1985년 과
테말라에서는 물가가 300%나 올랐다.  1980년 볼리비아에서 1달러는 20페소였지만, 1985
년이 되었을 때는 무려 30만 페소로 치솟았다! 이러한 경제체제에서 빈민들을 위해 저렴
한 건물을 짓는 유일한 방법은 진흙이나 나무처럼 물가인상요인과 관련되지 않은 토착재
료들을 가능한 한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건척에서 '적절한 기술'이  사용된 좋은 예로 수동  CINVA-Ram벽돌제조기를 들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컬럼비아에서 개발된 이  기계는 제3세계 전역에서 흙을 가압해 건축용별
돌로 만드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이  기계는 긴 손잡이를 이용해서 진흙반죽에 더 강한 
압력을 가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벽돌의 품질을 향상시켰다. 반죽에 소량의 시멘트를 섞
으면 훨씬 더 내구성이 강한 벽돌을 생산할 수 있다. 
첫 해외 사업장이  세워진 자이레의 음반다카에서, 우리는  낡고 헐었지만 노동집약적인 
전동 벽돌제조기를 복구했다. 그리고 이  기계를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수 년이 지
났지만 그 벽돌제조기는 아직도 작동하고 있으며, 수천 개의 견고한 건축용 벽돌들을 쏟
아내면서 적도지역의 중심도시에 빈민을 위한  주택의 수를 꾸준히 증가시키고 있다. 동
시에 이 기계는  실업과 불완전고용인구가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지역경제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CINVA-Ram 벽돌제조기는  점차 자이레 지역의 다른 사업장에 도입되었으
며, 현지주민들도 급속히 이 기계를 받아들이고 있다. 
1979년 자원봉사자  밥 스티븐즈는 과테말라에서 처음으로  헤비타트 사업을 시작하면서 
CETA-Ram 벽돌제조기를 차용했다. 이 기계는  CINVA-Ram을 과테말라 사정에 맞게 개량한 
것이었다.
벽돌제조기술은 다트머스 공대생었던 해리 생그리가 1979년 <보코톨라>를 읽고 자이레에
서 자원봉사자로 일할  무렵 또한번 개량의 전기를 맞게 된다.  해리는 귀국한 뒤 몇 년 
동안 DART-Ram을 개발하는 데 바쳤다.  DART-Ram은 효율적인 노동집약적 기계로서 한 시
간 동안 다른 유사공정보다 훨씬 더 많은 벽돌을 생산할 수 있다. 헤비타트와 몇몇 교회
들이 지원해준 소정의 연구보조비로 해리는 자신의 기계를 충분히 개량, 보완할 수 있었
다.
DART-Ram은 헤비타트의 해외 사업장에서 가동실험을 할 수 있었고, 1983년에는 미합중국 
특허를 따냈다.
초기 헤비타트 프로그램에서 건축은 시멘트 활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시멘트는 가장 
널리 보급된 '현대적' 건축자재이지만, 생산과 운반은 석유에 의존한다. 만일 대안을 찾
을 수만 있다면, 시멘트의 의존도를 낮추어서 건축비용을 전반적으로 대폭 인하할 수 있
다. 
그래서 헤비타트는 나무땔감을 쓰는  작은 가마에서 소박한 진흙벽돌을 구워내는 기술을 
다시 배워보겠다는 시도를 몇몇 군데에서 해보았다. 다만 이 방법에는 훌륭한 진흙과 땔
감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땔감을 구하기 어렵거나 값이 비싼 지역에서는 벽을 
올리는 데 가압성형한  진흙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든든한 터에 건물을 
제대로 세워서 빗물을 피할 수 있게만 한다면 진흙벽은 몇백 년도 견딜 수 있다!
또한 헤비타트는 제3국가에서  너나없이 차용하고 있는 주름진  슬레이트 지붕을 대신할 
만한 자재를 찾고 있다. ('양철'지붕이라고 불리는 이 자재 속에는 양철 성분이 전혀 없
다.) 심각한 화재위험이 있고 벌레, 쥐, 뱀의 온상이 되는 이엉을 제외하면 슬레이트 지
붕은 제3국가에서 가장 선호하며 흔히 볼 수 있는 자재이다. 
서구인들이라면 열대지방에서 금속지붕을 올리려는  생각을 선뜻하지 못할 것이다. 맑은 
날에는 열기에 숨이 막히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에 귀가 멀 지경이다. 그러나 개발
도상국의 저임금 세대에는 이상적인 지붕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가볍고, 오래 가며, 
짓기 쉽고,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최근에 '영구성'의 기준은  계속 내려가고 있다. 치솟는 인플레이션으로 원
자재와 운반비용이 하늘 높이 치솟는  바람에, 철지붕의 표준함량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ㅅ한 지역에서는 3,4년만 지나면 새 지붕에 녹이 슬기 시작한다. 헤비타
트 임대기간920년)동안 견딜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더구나 금속지붕을 사용하려면 서구에서  공장생산하는 수입원자재에 의존해야 한다. 이
러한 수입 비용과 운반 비용 때문에  집 한 채를 지으려면 지붕값이 절반을 차지하는 경
우도 생긴다. 
아프리카의 도시를 걷다 보면 벽은 세워져 있지만 지붕이 없는 집을 수백 채 만날 수 있
다. 가난한 시민이 허리를 졸라매고 절약하면 집  한 채를 지을 벽돌을 살 만한 돈이 생
길지 모르지만, 지붕을 올릴 만한 목돈을 한꺼번에 마련한다는 것을 꿈 같은 일이다!
대안적 지붕자재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는 시
멘트와 유황을 함유한 천연섬유, 아스팔트를 주입한 나무섬유, 하드우드 슁글, 개량이엉 
등이 있다. 니카라과에서는 현지의 노인을 강사로 새워서 젊은 세대들에게 토산진흙으로 
스페인식 기와지붕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게 했다. 아이티의 자원봉사자들은 함철시멘
트(철사조각들 위로 진한 시멘트 반죽을 부은  것)로 아치를 지어, 새롭고 저렴한 돔 모
양의 지붕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헤비타트는 전세계의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저렴하고 쾌적한 집을 짓기 위해 노
력하는 한편 '부적절한' 기술이 사용되는 두 가지 주요 영역을 피하고 있다. 
첫째, 현지의 참여와  지도가 없이는 사람들이 개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가난한 가구들은  현대적이고 부유해 보이는 가옥에  살고 싶어하게 마련이
다. 만일 특정  자재나 디자인이 유행에 뒤떨어져  보이거나 초라한 분위기를 풍긴다면, 
소득수준을 불문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주택보급에 접근하는 헤비타트의 방식은 단순히 적절한 기술을 활용하는 것 이상을 의미
한다.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은 '후원'이 아니라'동역관계'이다. 자원봉사자
들은 집을 지음과 동시에 인간관계를  쌓고자 노력한다. 사용가능한 새로운 자재가 있다
면 소개하겠지만 건축형태의 최종적 결정은  현지주민들에게 맡겨야 한다. 만약 어떤 특
정 자재를 사용하라고  명령한다면 가부장적인 태도를 풍길 뿐  아니라, 또 다른 현태의 
식민주의가 되고 말것이다. 
몇 년 전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한 장로교회에서 연설했던 적이 있다. 그때 동행했던 사
람은 자이레 응톤도의 고향마을에서 사업대표를  맡고 있던 샘 몸퐁고였다. 워싱턴 주립
대학을 졸업한 샘은 외국에서 살아보고 일급의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조국으로 돌아와 어
려운 동포들을 돕고자 결심한 흔치 않은 인물이었다. 
우리가 애틀랜타의 교회를 방문하던 날, 아프리카 주택보급사업에 대한 강연을 들으려는 
조지아텍 건축과 학생들이  꽤 많이 참석하고 있었다. 샘과  내가 각기 체험담을 들려준 
뒤에 자유질문 시간이 이어졌다. 학생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서 짓고 있는 집에  양철지붕을 올리시는 겁니까? 열대지방에서는 건초나 종려가지
처럼 토착적인 재료를 써야 합니다."
"자이레 사람들이 양철을 좋아합니다."
샘은 한 마디로 대꾸했다.
"하지만 양철은 자이레 문화에 이질적인데요."
"저는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다른 나라의 아이디어나 재료들을 사용하고 있는 걸 많이 봤
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식 건축물을 세우고, 일본 차를 타고 다니며, 피자를 먹지 않습
니까? 이 곳 바닥을 보니 카펫이 깔려 있군요. 카펫은 애틀랜타에서는 쓸 만하지만 열대
지역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입니다. 양철지붕은 자이레  사람들에게 유용합니다. 그 
곳에서는 거의 매일 비가 내리기 때문에 물이 새지 않는 지붕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나 아무리 샘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어도 젊은이는 요지부동이었다. 자이레 사람들
이 사는 집을 짓는 데 수입원자재를 쓰는 것은 영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질문을 좀더 받은 뒤 강연은 끝이 났고, 가벼운 다과회가 있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둘
러서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샘이 갑자기 내게로  달려왔다. 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까 그 젊은 친구가 왜 그렇게 양철지붕을 반대했는지 알아냈어요. 프랑스 출신이더군
요. 식민주의자였어요!"
두 번째로 우리가 피하고자 하는 영역은  바로 실험이다. 어떤 시 도는 불가피하게 실패
하게 마련이다. 가난한 가족들은 이런 실패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헤비타트 동역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때때로 새로운 기술을 설명해 주면서, 인도나 파푸아뉴기니 같은 곳에서 한번 실험해 보
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우리의 대답은 똑같다. "철저히  실험을 거친 뒤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요."
대부분의 직업학교들은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교육한다. 우리의 목적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개발해놓은 최고의 
기술을 찾아내어 이 기술이 제대로 작동되고 문화적으로도 수용될 만한 곳에서 활용하고
자 노력한다. 
자원봉사자 루앤 구달은  자이레에 로레나 화덕을 성공적으로  도입했는데, 이것은 원래 
과테말라에서 CIDA가 처음 개발한 장치였다.  어도비 벽돌을 쌓아만드는 이 화덕의 꼭대
기에는 냄비에 꼭맞도록  구멍을 뚫게 되어 있었다. 로레나  화덕을 쓰면 보통 모닥불을 
쓸 때보다 40%의 땔감을 절약할 수 있다. 또한 이 화덕은 여성들이 매일 몇 시간씩 연기
를 들이마시지 않아도 되게 해주기  때문에 결핵과 같은 호흡게질환에 걸릴 위험성을 상
당히 줄여준다.
아이티에서는 주조성형한 콘크니트  벽체를 사용함으로써 건축비용을 파격적으로 감축할 
수 있었다.  '옛날 방식'의  콘크리트 벽돌로  반든 헤비타트  집 한  채는 1984년  당시 
1,692달러의 배욧ㅇ이 들었다. 그런데 주조성형 벽체로 바꾼 뒤에는 총비용이 1,360달러
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숙련된 기술이 없는 가족들도 일을  할 수 가 있어서 협동과 
참여라는 중요한 측면들이 한층 강화되었다. 
헤비타트는 기존의 건축법을 좀더 참신한 시각으로 해석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우리
는 비용을 인상하지 않고도 지진과 태풍을 견딜 수 있는 집을 짓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
내고자 한다. 우리는 아메리쿠스에  개발도상국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형태의 모델하우스
를 실제 크기로 몇 채씩 지어두고 자원봉사자들이 해외로 나가기 전에 좀더 직접적인 체
험을 할 수 있게 하고자 한다.  비전문가들이 비전문가들과 함께 일할 때를 위한 소박한 
단행본인 <기초건축 참고자료짐>의 간행도 진행중인데, 이 책에는 전세계에서 모은 실행
가능한 기술의 아이디어와 전문적 지식들을 한데 모을 예정이다.
분명한 것은 어떤 지역에서나 다 통하는 만병통치의 기술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기
술이 적절하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1) 현지사회가 이해하고 수렴해야 한다.
2) 현지주민의 능동적 참여를 통해 개발되고 사용되어야 한다.
3) 그 지역에서 저비용으로 사용가능해야 한다.
4) 가능한 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토착자원을 활용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5) 현지에서 일자리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 
6)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7)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없어도 유지할 수 있도록 단순해야 한다.    
8) 현지노동자들이 자기 상황에 맞게끔 융통성 있게 개조할 수 있는 구조라야 한다.
9) 로열티, 특허세, 관세 등의 부담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힘겨운 주문이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극빈주택을 추방하겠다는  엄청난 꿈에 한 
걸음이라도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꿈에 조금이라도 접근하는  모든 아이디어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이 길을 고집할 것이다. 
헤비타트에는 결코 변치 않을 건축비법이  하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르타르의 종ㄹ
가 아무리 바뀌더라도, 그 속에는 언제나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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