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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버릇

외래품을 좋아하는 버릇

by Healing New 2020. 9. 26.

  우리 한국 사람이 내가 보는 나, 곧 실제의 나와 남이 보는 나, 곧 남에게 
인식시키고 싶은 내가 다르다는 것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외래품 불매운동을 생각하기 전에 왜 우리 한국 사람이 외래품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순리일 것 같다.

  거기에는 물리적 이유와 심리적 이유가 있다. 물리적 이유란 외래품이 질이나 
색상이나 디자인이나 내구성 등이 좋았기 때문에 외래품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양의 공업기술이 발달하여 질이 좋을 수밖에 없었고, 또 2차대전과 
6.25전쟁을 겪는 동안 물자부족과 궁핍 때문에 국산품 질이 외래품을 따라갈 수 
없었던 데서 형성된 어찌할 수 없는 외래품 선호랄 수가 있다.
  이같은 물리적 이유는 국산품의 질적 향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이유랄 수가 있다. 
사실상 분야에 따라서는 외래품에 못지 않거나 외래품을 앞서는 국산품이 나오고 
있어 물리적 이유의 극복은 낙관적이랄 수 있다.
  한데 비관적인 것은 심리적 이유다. 한국 사람이 외래품을 선호하게 된 것은 질이 
좋다는 물리적 이유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사람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국이 좋고 커서 잘 산다는 막연한 
사대사상이 의식구조 속에 체질화돼 내려왔다. 수천 년 계속된 중국에의 사대 
때문도 있겠고, 또 삼국시대 이래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어떤 외국으로부터도 
쇄국을 해왔기 때문도 있겠다.
  한말에 타력에 의해 쇄국에서 풀리면서 접하기 시작한 외국들이 모두 우리보다 
문명이나 문화나 경제가 발달된 서양 여러 나라였기에 외국에 대해 열등감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열등감이 외국 선망이라는 또다른 사대사상을 싹트게 했던 
것이다.
  곧 외국것은 선별없이 무턱대고 좋다는 막연한 생각은 이같은 사대전통과 
쇄국전통의 필연적인 선물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우리 한국 사람은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두개의 자아를 갖고 
살아왔던 것과 외래 선망이 야합하여 외래품 선호의 심리적 이유를 형성해 놓고 산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이 내가 보는 나, 곧 실제의 나와 남이 보는 나, 곧 남에게 
인식시키고 싶은 내가 다르다는 것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외출한 때의 복장과 집에서 있을 때의 복장이 그렇게 표변할 수가 없다. 
이브 생 로랑에다가 구치 핸드백이니 최고급품으로 차리고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기가 바쁘게 훨훨 벗어 버리고 인조치마에 속곳가랑이 펄렁이며 산다. 곧 집 
밖에 나가 남이 보는 나와 집안에서 내가 보는 내가 이렇게 표변한다.
  물론 서양 사람도 파티나 음악회 같은데 나갈 때는 요란스럽게 꾸미고 나가지만 
친구를 만나다든가 쇼핑한다는 등의 일상적인 외출을 할 때는 집안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나간다. 곧 집안팎에서 차림새의 표변이 없다.
  이처럼 우리 한국 사람은 남들에게는 실제의 나 이상으로 잘 보이려고 하는 
의식구조의 노에가 되었다. 경제측면에서나 명예측면, 권력측면, 인격측면에서 
실제의 나보다도 돋보이려 하고 이 표리의 이중구조가 남이 보는 외형적인 것에 
사치를 유발한다. 남들이 고급으로 여기는 것을 몸에 지니거나 걸치거나 집에 차려 
놓으면 남이 보는 나, 곧 환상적인 자아를 충족시키기에 십상이다.
  외래품은 고급이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고 우리나라에서 외래품 지니기를 좋아하는 
심리적 이유가 이 한국인의 속다르고 겉다른 표리구조에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외래품을 선택할 때 그것이 비록 값이 비싸지만 내구성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경제적이라는 판단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고급이라는 
인식에 부응하기 위해 선택을 한다. 곧 상표 때문에 산다. 외래상표의 국산품이 이 
세상에서 우리나라처럼 판을 치는 나라가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분명히 
국산 자재 가지고 국산 기술로 한국 사람이 만든 상품인데도 상표가 외국상표라 
해서 값은 곱절 이상으로 받고 또 그것이 팔리는 이상한 나라인 것이다.
  이 심리적 이유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험난한 과정이 놓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남이 보는 환상적인 나와 내가 보는 실제적인 나 사이에 공백을 짓눌러 
버리고 표리가 있는 나가 아니라 단일의 나로서 성숙해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외래품이 고급품이라는 인식의 증발이 따라야 한다. 모든 한국인이 가식 없고 
허식이 없는 본연의 나가 되었을 때 발을 붙이려 해도 붙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외래품 불매운동은 외래품을 사면 그만큼 우리 돈이 외국으로 나가 
가난하게 된다는 국가적인 대의명분 갖고는 설득력도 없고 또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다. 오히려 외래품을 몸에 지니고 걸치고 또 먹고 집안에 놓아두는 것이 실제의 
자기 자신을 외래품이라고 위광을 이용하여 돋보이려는 위선행위요, 위선자라는 
인식을 보편화시키고 생활시키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 본다.
  곧 외래품을 선호하는 심리적 이유, 그 밑바닥에서 대책을 세워 계몽하는 쪽으로 
몰아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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