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아는 세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곧 하는 나, 보는 나, 보여지는
나가 그것이다.
중학교 입학시험 때 체력시험의 한 종목으로 마라톤이 있었다.
마라톤을 해본 학생이면 어느 누구나 체험했듯이 도중에 걷고 싶은 강력한 유혹을
받게 마련이다. 비록 단축된 마라톤 코스이긴 하만 달려봤다는 것이 겨우 운동회 때
100미터 이상 달려본 체험밖에 없는 당시의 나로서는 걷고 싶은 유혹이 대단했다.
처지면 시험에 떨어진다는 그런 정신적 압력과 이 유혹 틈에서 무척 갈등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정신과 육체가 서로 싸움을 하면서 달리는데 드디어 어느 수험생 하나가
달리기를 포기하고 걷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한 사람이 걷기
시작하지 잇따라 두 사람, 세 사람, 다섯 사람, 열 사람이 걷기 시작했다.
'남들도 다 걸어가는데....' 하고 내 나름의 합리화를 한 다음 나도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약 3분의 1이 걸어서 달리는 이상한 마라톤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걸어가는 마라톤을 했던 그 많은 수험생들 모두가 나처럼 남들도
걸어가니까 나도...하는 합리화 끝에 걸었을 것은 뻔한 일이다.
뮌헨 올림픽 때 마라톤에서 처녀 출전한 무명의 미국선수 쇼터가 우승을 했었다.
이때 어떻게 해서 우승할 수가 있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쇼터는 다음과 같이
대꾸했던 것이다.
"마라톤은 과격한 경기입니다. 남과 겨룬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괴로운
운동이죠. 그래서 나는 남과 겨루지 않고 또 남을 의식하지 않고 철저하게 내
나름대로 뛰었습니다. 물론 몇 등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배제하였고, 미국의
명예 같은 것도 전혀 생각 밖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그를 압박하는 국가의 명예와 자기 자신의 명예 그리고 승패 같은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뛴 것이 바로 우승하게 한 원인이 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
된다. 바꿔 말하면 대타경쟁은 전혀 염두에 없고 오로지 대자경쟁만을 했다는 것이
된다. 만약 마라톤을 대타경쟁으로 뛴다면 다른 선수가 느리게 뛰니까 나도 느리게
뛰어도 되고 압도적으로 앞서서 승부가 결정적으로 파악되면 곧 가까이 가서
걸어가도 된다. 그러나 대자경쟁은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시험 마라톤에서 걸었던 것도 철두철미 남을 의식한 대타경쟁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비단 마라톤뿐만 아니다. 우리 일상 생활은 온통 이 대타경쟁의 여울에 휘말려
영위되고 있다 해도 대과가 없다.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공부를 하지 않는 가장
본격적인 이유가 '남들도 노는데 난들....' 하는 생각이다. 공부를 하는 소수에의
동화보다 공부를 하지 않는 다수에의 동화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버스나 택시
정류장에서 열을 서서 기다리다가도 몇 사람이 그 열을 무시하고 잡아타면 열 서서
기다리던 것이 바보처럼만 여겨져 '남들도...' 의식이 재빨리 작용하여 열은 이탈
혼잡을 이룬다.
따라서 무슨 일이 잘못됐을 때 남의 탓도 잘한다.
무슨 일을 실패하면 남이 그렇게 시켰기 때문에 실패했다 하고 내가 공부 못한
것은 집이 가난했기 때문이요, 내가 가난한 것은 조상탓으로 미룬다.
내가 희망한 대학에 떨어진 것은 선생이 학과 선택을 잘못해준 탓이요, 또 희망
대학에 동급생이 대거 낙방하면 남들도 낙방했는데, 하고 자위한다.
나-자아(ego)는 다음과 같은 세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곧 하는 나, 보는 나, 보여지는 나가 그것이다.
'하는 나'란 주체적으로 무엇인가 행동하는 나다. 행동적인 인간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하는 나'의 요소가 다른 요소보다 강하기 때문에 행동적이다. 바람직한
요소이긴 하지만 이 '하는 나'의 요소가 별나게 발달한 사람은 달리고 나서
생각한다는 식으로 행동만이 앞서서 분별없는 결과를 곧잘 가져오기도 한다. 우선
먼저 때려놓고 먼저 부셔놓고 시비는 나중에 한다. 이를테면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 격이다.
'보는 나'는 관찰자요, 사고자로서의 나다. 사물이나 사리를 용의주도하게
관찰하여 객관화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무슨 행동을 하기 전에 그 행동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진다는 것을 세밀하게 계산을 하고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행동을 수정하기에 소극적일 수도 있지만 빈틈이 없다.
하지만 이 '보는 나'도 너무 심하면 실행이 따르지 않고 비평만 하고 탁상공론으로
지새우는 결점이 있다. 앞서 자동차의 브레이크에 비기면 브레이크가 너무 자주
걸려, 가기보다 가지 않는 것을 장기로 한 자동차가 된다.
'보여지는 나'는 나 이외의 남이 보는 나와 이것은 타인으로부터 '보여지는
나'이며 남들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 바꿔 말하면 내가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
하는 의식이다. 이 역시 남들과 사는 공동 사회에서 내가 적자로서 생존하려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멋대로 산다 해서 그멋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요, 또한 남을 의식하고 살다 보면 그 공동체에서 소외당해
버림받은 인생이 된다.
하지만 너무나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의식하고 살다 보면 개성도 없고 창의력도
없는 부족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
자동차에 비기면 그저 남보기에 모양만 좋고 빛깔만 좋을 뿐 달리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자동차 격이다.
가장 이상적인 자동차는 성능 좋게 달리기도 하고 또 브레이크는 잘 들어야 하며
빛깔도 디자인도 좋다는 이 세 가지 요소의 균형이 잘 잡혀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만약 파란색의 얼룩말을 발견한 자에게 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준다고 미국의 한 부호가 현상금을 걸었다고 하자. 이에 대한 각국의
반응은 다음과 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독일 사람은 맨 먼저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가 진화론부터 따져 그 파란 얼룩말의
생태와 그 생존하는 지역을 탐구하려 든다.
이에 비해 영국인은 맨 먼저 아프리카의 지도부터 산다. 그리고 사파리 복을 입고
여행 준비를 시작한다.
프랑스 사람은 어느새 노새 한 마리를 구해 놓고 베레모를 쓰고 파이프를 문 채
그 노새 몸에다가 파란 페인트 칠을 한다.
일본 사람은 파란 털을 구해다가 낱낱이 노새의 몸에 심는다.
스페인 사람은 파란 줄말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 백만 달러라는 돈에 신이 나서
성대하게 전야제를 벌이고 한탕 먹고 본다.
각 민족의 민족성이 완전히 들어나고 있다. 앞서 자아의 세 가지 유형에다 맞추어
보면 '하는 나'의 유형이 강한 것은 아프리카 지도를 먼저 사는 영국인이요, '보는
나'의 유형이 강한 것은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독일 사람이며, '보여지는 나'의
유형이 강한 것도 페인트 칠을 하는 프랑스 인과 그리고 푸른 털을 심는 일본
사람이란 것이다.
만약 이 어느 유형에 한국인이 해당하는가를 따져 보면 한국인은 프랑스 인과
일본인이 속하는 보여지는 나의 유형에 속할 것은 뻔한 일이다.
곧 한국인은 이 세 가지 자아유형 가운데 가장 발달하고 심한 요소가 남을
의식하고 그 남의 눈에 빗나가거나 어긋나지 않게 사는 것에 가치를 두는
문화이기에 이처럼 남 하는 대로 하는 민족성이 정착하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곧잘 '알았습니까?' 하고 묻는다. 선생님이
이렇게 물었을 때 자기가 가르친 내용을 못 알아 들은 학생을 가려내어 철저히
주지시키고 넘어가려고 묻는다는 법은 없다. 몰라도 '예'하고 안다고 대답해 줄 것을
기대하고 묻는데 예외가 없다.
또한 학생들도 비록 이해 못 했어도 남들이 이해했을 테니 그에 동조해야 하고,
또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학생의 도리로 알고 있기에 몰라도 '예' 한다. 남
나름의 동조가 이토록 철저하다. 미국 아이 같으면 아무리 나 이외의 모든 학생이
알았다 해도 모르면 모른다고 알 때까지 우긴다.
요즈음 학생들의 수험 공부도 너무 남을 의식하는 대타경쟁에 편중되고 있기에
공부한 만큼 효력도 못 얻고 고달프고 피로하다. 마라톤에 처녀출전한 미국의 쇼터
선수처럼 대자경쟁으로 전환 수험공부에 임하는 자만이 승리할 것이다. '남이
하니까...'의 의식개조, 그리고 '보여지는 나'에 대한 대담한 탈피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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