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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버릇

험담병

by Healing New 2020. 9. 27.

  다만 이 남의 험담은 그 현장에서 끝나야만 하는 그런 일시성 임장성이어야만 
한다는데, 한국적인 험담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술집에 들어가면 이따금씩 풍선 터뜨리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다. 
젊은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이려니 하면 그것이 아니다. 40__50대로 돼 보이는 
장년이 더욱이 여러 명이 어울려 흥에 겨워서가 아니라 심각하게 혼자 앉아서 
술잔을 앞에 놓고 풍선을 쥐어짜며 터뜨리고 있는 광경을 이따금 볼 수가 있다. 
중국 사람들이 폭죽을 터뜨리듯이 축제 무드를 돋우기 위해 풍선을 터뜨리는 것도 
분명히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교외 캘리포니아 포도주 주산지의 한 조그만한 술집에는 카운터에서 
풍선을 팔고 있었다. 그 풍선의 표면에는 험상궂은 마귀 할미의 얼굴이며 대머리 
얼굴 등 다양한 얼굴들이 그려져 있었다. 풍선을 터뜨리고 싶은 사람은 그 어느 
것을 선택해 사들고 와서 술을 마시면서 짓이겨 터뜨린다.
  자기 아내 때문에 화가 치밀고 스트레스가 생긴 사나이면 마귀 할멈의 풍선을 
선택할 것이요, 또 자기 직장의 상사 때문에 부푼 화를 풀지 못한 사나이는 대머리 
풍선을 선택할 것이다.
  제각기 자신의 속에 치민 화나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그것을 있게 한 사람의 
얼굴을 그린 풍선을 터뜨림으로써 푼다. 곧 풍선에 어느 한 인간을 동일화시켜 직접 
화풀이 할 수 없는 사연을 간접으로 푼다. 어떤 술집에는 천장 아래에 권투 연습용 
펀치볼이 매달려 있기에 권투 선수들이 많이 드나드는 술집인가 보다고 말했다가 
웃음을 산 일도 있다. 그 펀치볼도 스트레스의 간접 해소용인 것이다. 맞대놓고 
해댈 수 없는 울화를 펀치볼을 마냥 침으로 푼다. 증오하는 상대자의 머리통으로 
동일시되는 이 펀치볼이기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증오받는 처지를 빗대어 '술집의 
펀치볼'이란 속담까지 있다 한다.
  혼자서 볼링장에 갔다 하면 무슨 화나는 일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그런 풍조도 
미국에 있다고 들었다. 핀을 와르르 쓰러뜨리는 그 볼링의 유희구조가 스트레스 
해소에 십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미국에 볼링이 성행하는 심층 이유 가운데 
하나로써 이 미국 사람들의 울화 해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영국에서 이색적인 흥행이 성업을 이루었다 한다. 
글라스 볼 등 유리 제품을 몽둥이로 두들겨 깨는 이 유희는 대체로 유리 공장에 
부설되었거나 유리 공장이 가까운 곳에서 개업하게 마련이었다 한다. 입으로 불어 
부풀게 했던 당시 수공업적인 유리 제품에는 실패작이 많이 나왔으며 이 실패작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돌려 돈을 벌고 깨뜨려진 유리 조각을 다시 녹여쓰는 
일거양득의 상술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글라스 볼을 깨뜨리는 편이 파열음도 크고 
파괴 박력도 강하며 따라서 울화 해소 효력도 더 컸을 것이다.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맥락, 다난해진 사회에 있어서 정말 화나는 대로 처리할 수 
없는 인간관계나 인간갈등이 적잖이 생겨난다. 그같은 관계나 갈등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또 서양이나 동양이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그 관계나 갈등에서 형성된 
울화나 스트레스의 긴장을 푸는 그 방법이 서로 다르다. 곧 문화권이나 민족, 나라에 
따라 인간관계에서 형성된 갈등 해소의 수법이 달라진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부부싸움을 할 때 파열음이 크고 파괴 박력이 강한 사기그릇 등 살림을 깨는 일이 
종종 있고 술집에서 술상을 뒤집거나 유리컵을 던져 깨는 행위를 이따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행위는 우발성이나 관습성일 뿐 미국의 그런 것들처럼 
보편성을 지닌다는 법이 없다. 어디까지나 어떤 특수한 개인 사정이지 미국에서 
풍선을 팔고 펀치볼을 매어두는 그런 보편적인 사항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는 보편성을 지닌 인간 갈등의 자체 해소방법은 무엇일까. 
어떤 문화권에 살든 그 갈등 때문에 형성된 정신적 긴장을 끌어가며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나라 나름의 그 해소방법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갈등을 있게 한 상대 인간이 없을 때 그 사람을 헐뜯어 말할 수 있는 
험담이 아닌가 싶다. 험담을 실컷 하고 나면 화도 다소 풀리고 긴장도 느긋해진다.
  남이 없는 자리에서 남을 헐뜯어서 말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좋지 
않다. 남을 헐뜯어서 말한다는 것은 좋지 않지만 남을 헐뜯어서 말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한국인과 외국인을 비교 이해하는데, 중요한 관건이 된다고 본다.
  한국인의 한국인다운 특징으로써 둘만 모이면 남의 이야기를 곧잘 한다는 것을 들 
수가 있다. 사실 많은 대화 가운데 가장 즐겁고 진지한 것이 남의 이야기다.
  부녀자들이 모였을 때 정치나 경제 이야기가 진진하고 즐거운지, 서로가 아는 
남의 이야기가 진진하고 즐거운지 자문해 보면 자명해 진다. 세상 이야기할 때의 
표정과 남의 이야기할 때와는 얼굴의 표정이나 생기가 전혀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부녀자뿐만이 아니다. 남자들도 예외가 술을 무척 즐겼던 조선왕조 중엽의 정승 
상진이란 분은 여러 가지 술안주가 많지만 남의 험담처럼 맛있고 좋은 안주가 
없다고 시에 읊고 있다.
  술친구끼리 술마시러 가면서 오늘 술안주는 ooo부장으로 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곧 그 부장을 씹는 것으로 안주를 삼겠다는 이 말을 어떤 미국인이 정면으로 
받아들인다면 아마 한국인은 식인종이 아닌가 하고 도망쳐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험담을 함으로써 험담 대상의 그 인간과의 사이에서 형성된 긴장과 울화를 
풀기에 굳이 풍선을 터뜨리지 않아도 된다. 따지고 보면 아주 다정하고 맘이 놓이는 
친한 사이란 남의 험담을 두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사이라 정의를 내려도 대과가 
없을 줄 안다. 험담은 해도 그것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고 또 그 험담에 고개를 
끄덕여 주어 공감동조하며 보다 에스컬레이트시켜 주는 그런 사이일수록 
다정해진다. 곧 누군가가 험담을 신나게 하면 곁에서 그럼 그렇지 그것말고도 이런 
일도 있었다면서 보다 농후한 험담으로 에스컬레이트시켜 주는 그런 사이가 다정한 
것이지 신나게 험담을 하고 있는데 '남 없는 데서 남 이야기하는 것은 나쁘다'고 
제동을 걸면 전혀 즐겁지도 않으려니와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생기고 친한 관계가 
아니게 된다.
  다만 이 남의 험담은 그 현장에서 끝나야만 하는 그런 일시성 임장성이어야만 
한다는데 한국적인 험담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험담이 밖으로 
누설되거나 본인에게 들어가도록 이른다는 것은 친한 사이에서 당장에 소외하고 
악인으로 비판을 받는다. 곧 험담을 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험담을 누설시킨 
것이 한국에서는 나쁜 것이다.
  험담은 미국인의 사고방식과 한국의 그것과는 정반대다. 미국의 어린이 교육에 
있어 남 없는 데서 남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악덕시한다. 웃사람이든 
선생이든 친구든간에 정정당당하게 정면에서 반성을 추구해야지 이면에서 
시시비비하는 것은 악 가운데 최고의 악이 된다. 누군가가 그자는 인색하다고 남의 
이야기를 하면 비록 인색하다는 것에 공감하는 일이 있더라도 본인 없는 자리에서 
헐뜯는 건 도덕적이 아니라고 정면에서 공감요구를 거절당한다. 그러기에 남 
이야기를 해도 재미가 없다. 뿐만 아니라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악이기에 이를 
공악으로 추방하는 뜻에서 그 험담의 당사자에게 '그 사람이 너에 대해 이렇게 
험담을 했으니 주의하라'고 충고를 한다. 한국에서는 이같은 행위가 밀고로 악덕시 
되지만 미국에서는 통고로서 미덕시 된다.
  구미의 근대화를 구축해 온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영국인과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사로잡아온 퓨리터니즘의 억센 윤리관은 험담을 용납치 않았던 것이다. 험담의 
도덕적 가치 차원을 벗어나서 생각하면 인간관계의 갈등에 형성된 울화를 험담으로 
풀 수 있다는 것은 편리한 방편일 수도 있다. 크고 작은 욕구불만이 이 험담에 의해 
해소된다는 것은 바로 한국 사람에게 정신 질환이나 정신이상, 노이로제 발생률이 
다른 구미 사람들에 비해 낮은 이유 가운데 하나로서 이러한 험담할 수 있는 
함수관계의 문화적 특성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곧 인간의 결함이나 약점 측면에서 연결되어 서로가 용서하는 그런 인간 관계가 
한국적 인간관계의 특성이랄 수도 있다.
  어느 좌중에서 험담이 에스컬레이트되어 나가다가도 어느 한계에 이르면 그 
상승은 그만두고 인간 신뢰로 U자 회전을 하는 것이 또 한국적인 험담의 인간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험담이 너무 심했다고 서로 공감을 하면 그 사람에게도 이런 좋은 
점은 있다느니, 그런 환경이나 여건에서 누군들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느니 
인간적으로 이해해 주려는데 또다른 에스컬레이트를 한다.
  이같은 인간성에로의 회귀 끝에 험담이 멎는 경우도 없지 않다.
  마귀할멈이나 대머리 영감의 얼굴을 그린 풍선을 터뜨리며 몸부림치며 술을 
마시면서 남의 욕을 하는 이유가 겨우 맞지 않은 일기예보 때문이라는 미국 
사람들이기에 도덕적으로는 바람직할지라도 인간적으로는 딱한 면도 없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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