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외 정보/버릇

원심병

by Healing New 2020. 9. 30.

  결합항을 극소화시키고 대립항만 비대시켜 나가면 개인이나 가정이나 정치사회가 
양극화하여 서로 증오하고 헐뜯고 끝내 얻는 것은 파멸밖에 없다.

  어느 한 일선 부대에서 장병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공작 한 쌍을 길렀던 같다. 
워낙 금실좋기로 소문난 새인지라 낮에는 볕받이에서 거닐다가 비가 내리거나 
이슬이 내리는 밤이면 단 두 마리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진 침실에 정답게 들어가 
있곤 했다.
  그 후 또 한 쌍의 공작이 늘어났다. 늘어나면서부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금실이 
좋은 탓인지 공작은 투정 또한 대단하다. 동물의 공격습성을 연구하여 노벨상을 탄 
로렌츠에 의하여 수공작은 그의 날개를 보다 크게, 도 날개의 무늬를 보다 영롱하게 
과시하는 것으로 암공작을 유혹한다던데 이것이 남의 각시에 대한 추파라 하여 
암공작을 유혹한다던데 이것이 남의 각시에 대한 추파라 하여 수놈끼리 필사적으로 
싸운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새망 속에서 쌍쌍간의 적의가 팽배한 가운데 서로 싸우다가도 비가 
내리거나 밤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면 단 두 마리밖에 들어갈 수 없는 침실에는 
예외없이 쌍방의 암컷 두 마리가 차지하게 하고 두 라이벌 투사들은 초라하게 비를 
맞으며 밤을 새운다는 것이다. 싸울 때는 깃이 다 빠지도록 싸우면서도 합의와 
예의가 필요할 때에는 이토록 의젓한 양보와 아량을 베푸는 공작은 기사요, 신사인 
것이다. 당간, 파간에 긴장이 팽팽한 요즈음 정국에 시사한 바 큰 공작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비단 정치사회뿐 아니라 세상 더불어 사는데는 서로 상극하는 대립 측면과 서로 
상화하는 결합측면이 있게 마련이다.
  대립측면에서는 아름답고 영롱한 그 깃이 다 빠지도록 싸워도 좋지만 
그러하다가도 결합측면을 당하면 비내리는 밤의 공작새처럼 관용과 아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역학이 대립측면에 작용하면 원심력이 되어 양극, 양분화로 치닫고, 
결합측면에 작용하면 구심력이 되어 화합, 동일화로 아물어 든다. 이 양극화 현상을 
원심병이라 해두자.
  우리 한국인은 예부터 사람이나 사물이나 사리를 평가할 때 대립측면만을 
부각시켜 그 일부로써 전체를 성격지우는 원심병에 양성이었다.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이 콩(대두) 꽃은 노랗고 팥(소두)꽃은 붉다고 여기고 있다. 콩이 노랗고 팥이 
붉기 때문에 열매 빛깔로 꽃빛깔까지 연장시켜 생각한다. 실은 콩꽃이 붉고 팥꽃이 
노란데 말이다. 율곡 이이 선생은 젊었을 때 신변의 번뇌를 가눌 길 없어 머리 깎고 
절에 좀 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불교를 이단시했던 유교지상사회인지라 이 유교의 
대학자는 이 잠시 동안의 이단행 때문에 평생동안 갖은 수모와 소외를 당하며 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립측면에 이렇게 무자비한 우리 한국인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이같은 원심논리는 비일비재했으며, 그 때문에 역사의 수레바퀴가 
뒷걸음질한 일 또한 비일비재했다.
  이견이나 이설을 존중하는, 존중하지 않더라도 인정한다는 것은 구미사회에서 
생존 조건이며 그 때문에 우리보다 잘 살게 됐다고 해도 대과는 없을 줄 안다. 
한국의 중류층... 하면 자기 집이 있고 TV와 냉장고가 있으며 자식들을 높은 학교에 
가르치는... 식의 물질적 조건으로 판단하려 들지만 영국의 중류층은 물질적 
조건과는 아랑곳없다. 영국 중류층의 3대조건은 1) 자타가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자기 집 독자의 요리솜씨 하나 이상 지녀야 하고 2) 서툴망정 자기나름의 도락적인 
학문, 예술, 악기, 스포츠 하나씩을 즐길 줄 알아야 하며 3) 자신의 독자적인 의견을 
분명히 갖되 자신의 의견과 다른 남들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세 
가지다. 3)항이 바로 우리에게 중증인 원심병을 면역시킨 요인이랄 수 있다.
  결합항을 극소화시키고 대립항만 비대시켜 나가면 개인이나 가정이나 기업이나 
정치사회가 양극화하여 서로 증오하고 헐뜯고 끝내 얻는 것은 파멸밖에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결합항은 진보와 반동, 체제와 반체제, 여와 야, 노와 사, 이편과 
저편의 대립에서 기회주의가 아니고 O X 사고에서 세모꼴이 아니며 흑백논리에서 
회색이 아니다.
  바로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이다. 화합은 하지만 뇌동하지 않고 서로의 뜻은 같지 
않지만 조화하는 것이다.
  임진왜란의 정국을 바로잡은 명상 유성룡은 그의 정치철학을 이렇게 말했다. '동은 
물에 물탄 것 같고 화는 국에 맛을 조화하는 것과 같다. 정사를 하는 사람은 무릇 
화하는 것이어야지 동해서는 안된다.' 정견은 부동해야 하지만 그 부동을 양극화하지 
말고 국맛을 맞추듯 화해야 하는 것이 정치요, 바로 정치의 묘가 그에 있다 했다.
  정국의 여야나 기업의 노사는 단적으로 원심병이 악화 일로로 치닫는 단계로 
성격지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치는 증발하고 없는데 원색적인 발언만이 오가고, 
말에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양상이야말로 이 원심병이 중태에 들어갔다는 단적인 
증상이다. 국회는 대립논리만이 난무했고, 오로지 단 하나 자신들 호주머니를 늘리는 
세비 인상하는 데만 결합 논리를 작용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팽팽한 대립의 
중간에서 와지직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있는데 말이다.
  성명이 번지고 단식이 늘고 각목이 춤추고 방화로 검은 연기가 충천하고 있는데, 
그것을 수렴하는 구심력은 행방불명이다.
  임어당이 영국 의회의 의원 끽연실을 '화이부동당'이라 호칭한 것은 퍽 시사한 
바가 있다. 의회당에서 신발을 벗어던지며 격론을 벌였던 정적끼리도 일단 이 방에 
들어오면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스카치를 나누며 유머와 환담을 한다.
  그 우정과 환담에서 새로운 창조가 잉태한다. 서로가 정견을 달리하면서도 더불어 
어려운 일에 부딪쳐 인간사회의 개선에 협력하고 또 서로가 상대방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겸허한 마음가짐을 갖기 때문이다. 의회당에서 여야끼리 녹초가 되도록 
싸운 날이면 여야에서 대표를 내어 체스 경기를 벌이기까지 한다니 화이부동당이 
아닐 수 없다.
  팽팽한 원심의 가운데 목에 화이부동당의 집을 짓고 그 속에 들어와 고함을 
지르고 우격다짐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속에서 화이부동하는 정치와 기업의 
부활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외 정보 > 버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른아병  (0) 2020.09.30
응어리병  (0) 2020.09.30
나도밤나무병  (0) 2020.09.30
방울샘병  (0) 2020.09.30
면형사고병  (0) 2020.09.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