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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정보/버릇

외적변화보다 느린 한국인

by FraisGout 2020. 9. 30.

  더디게 변하는 의식구조가 급속히 변하는 사회조건에 걸맞지 않아 병패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사회조건에 걸맞게 빨리 변하여 잔존해 있는 기성의 의식구조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해방하던 해를 분계점으로 하여 단군이래 해방되기까지의 변천과 해방에서 
현재까지의 변천을 비겨본다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거의 맞먹을 만큼 엄청난 
변화를 보고 있다.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문물의 변화는 가치관이나 의식구조의 
변화를 유발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다. 그렇다면 그 엄청난 변화를 
소화시킬 틈도 없이 쏟아부친 지난 45년의 의식구조 변화는 다양하기 그지없으며 한 
권의 책으로는 그 대강만도 쓰지 못할 것이다.
  다만 물질문화만큼은 정신문화가 따라서 변하지는 않으며 변천 속도도 느리고 
더디기는 하다.
  그래서 더디게 변하는 의식구조가 급속히 변하는 사회조건에 걸맞지 않아 병폐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사회조건에 걸맞게 빨리 변하여 잔존해 있는 기성의 의식구조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지난 45년 동안 사회조건이 크게 변했는데 그에 따라가지 못한 의식구조로서 
공공의식을 들 수 있다.
  해방 전까지는 한국 사람의 88퍼센트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촌락에서 살았었다. 
한데 지금은 촌락에서 사는 인구는 30퍼센트를 밑돌고 있으니 거의 역전이 되고 
있는 셈이다.
  촌락에 정착해 살던 시대에는 그 촌락 안에서 모든 의식주가 자급자족되었다. 
이따금 가다가 소금장수만 드나들면 되는 소우주였다. 그래서 바깥나들이를 할 
필요가 없이 평생 그 마을에서 태어나 그 마을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 소집단 밖은 나가지 않으니 그 소집단 밖에 사는 많은 낯선 사람과 접촉 기회도 
없고 또 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교섭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한 질서며 공중도덕이며 
낯선 사람끼리 공유하는 공공 공간에서 필요불가결한 공공의식이 발달한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이 사는 집--내가 사는 마을 밖은 나와 아랑곳없는 남의 
영역이기에 아무런 애정이나 애착이 생기질 않았다.
  이 촌락사회에서 미숙한 공공의식으로--공공의식 없이 살 수 없는 도시화 사회에 
살게 되면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고속버스를 타면 자기 앉을 자리는 
입으로 먼지를 불고 털고 손수건으로 닦고 앉으면서, 먹고 난 과자 봉지 나부랑이는 
차창 밖으로 죄책감 없이 버린다. 차례를 기다리는데 줄하나 제대로 서지 못한다. 
공공공간에서는 순경만 보지 않으면 못된 짓을 해도 된다. 한국인은 남들과 
공존하는데 내가 나의 이해로 얼마만큼 양보하고 겸양한가에 전혀 체질화되지 않고 
마치 어린애처럼 자기중심적으로 행동을 한다.
  이것이 45년 동안 여건은 크게 변했는데도 그에 따르지 못하고 있는 의식구조의 
한 본보기랄 수 있다.
  이와는 달리, 45년 동안 많이 변한 의식구조 가운데 하나로서 개인의식을 들 수 
있다. 45년 전까지는 '개인'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소멸돼 있었고 또 의당히 
그러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도리요, 가치였다. 풀어 말하면 각자 '개인'은 사람인 
이상 자신의 생각도 있고 감정도 있으며 주장도 있으며 욕망도 있고 취향이며 
소질이 있게 마련이다. 이같은 개인의 속성들이 부모를 정점으로 한 가족의 속성과 
대결했는데 의당히 가족의 속성이 우선되고 개인의 속성은 그에 수렴되거나 
희생되거나 해야 했다. 곧 가족의식이 개인의식보다 월등하게 강했던 것이다.
  한국인의 가족의식은 첫째 조상을 깍듯이 섬기는 강한 조상 숭배와, 둘째 
혈연끼리는 모든 이해타산을 초월하는 대가족 제도와 남녀의 성차에서 남편을 
극진히 존중하고 우대하는 부권지상주의가 그 온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족인의 
강한 가족의식을 지탱해 온 이 세 개의 뿌리가 해방을 계기로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첫째 조상과 나를 잇는 강한 고리에서 서서히 해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4, 5대조까지는 기일에 가제를 지냈으며 그 이상의 조상에게는 춘추로 
시제를 지냈던 것이 요즈음은 2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풍조가 일고 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만에 탈상--2년 동안은 집안에 상청을 차려놓고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며 심상에 준한 모든 행동을 규제받았는데 지금은 49탈상이 상식이 되고 있다.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 있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가서 고하고, 
색다른 음식을 먹게 되었을 때마다 먼저 가서 바치고, 멀리 출타할 때마다 가서 
고했던 그 사당을 모시는 집은 없다. 이렇게 45년 동안에 한국인은 조상으로부터 
해방돼 있고 가족의식의 기둥뿌리인 조상의식이 희석해질 대로 희석돼 버린 것이다.
  또 가족의식을 강하게 해온 대가족 제도가 붕괴--핵가족화한 것은 단군 이래의 
한족 역사상 가장 크고 획기적인 변화랄 수가 잇다.
  45년 전에는 5등친, 곧 고조 할아버지로부터 번져나간 혈손은 형제처럼 
살아왔는데 45년 동안에 그 혈연이 무참하게 단절되어 지금은 사촌정도로 그 
친밀감이 단축되고 말았다. 곧 한국의 '개인'은 혈연의 구속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 
물론 종적으로 조상으로부터 해방되고 횡적으로 혈연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보호나 배려나 상호부조로부터의 소외랄 수도 있다. 그래서 45년 전의 
'개인'보다는 지금의 개인이 한결 고독하고 세상사는 데 불안을 느끼고 살게 된 
것이다.
  핵가족화는 또한 단위 가정에 있어 부권을 약화시키고 모권을 강화시키게 
마련이다. 현대 가정에서 '아버지'가 증발되어 없다는 것이 요즈음 적지 않은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음도 이 때문이다.
  자녀에게 있어 어머니는 잘잘못이나 잘나고 못나거나 예쁘고 밉거나 그 모두를 
감싸는 감정적 포용 원리를, 아버지는 잘잘못을 가지고 잘하면 추기고 못하면 
꾸짖는 이성적 절단 원리를 대행한다. 부권 약화로 이같은 절단 원리 없이 모권 
강화로 포용 원리만을 받고 자란 요즈음 세대들은 개인중시적인 사고와 행동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45년만에 형성된 한국인의 개인주의, 곧 개인의식은 서양의 다른 아주 
이상한 개인주의가 되고 말았다.
  "개인주의는 모든 주변의 구속에서 해방되었다는 점에서 현대인이 오랫동안 
쟁취해 온 영광스런 전리품이라는 책임 또한 고되고 막중하다. 그 책임을 지고 
개인주의로 살려느냐, 그 책임을 지지 않고 개인주의로 살지 않으려느냐고 
택일하라면 명분상으로는 전자를 택하겠지만 본심으로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이것은 독일의 사상가 니체가 한 말이다.
  그토록 서구 개인주의가 형성되기까지는 고된 책임이 수반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한데 45년 동안에 형성된 한국의 개인주의는 책임은 수반되지 않고 
내멋대로 나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이상한 개인주의가 되고만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렇게 얻어낸 경망스런 '개인'의 자유의 책임을 찾아 추를 
드리워 묵중한 개인의 자유로 전환시키는 일인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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